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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변하지 않는 국회

    참~ 변하지 않는 국회

    나향욱 막말·역사교과서 등 공방 지역 사업 원활 추진 당부 급급해 2015회계연도 결산 심사를 위해 12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온통 지역구 민원과 정치 공방으로 얼룩졌다. 그야말로 ‘대정부질문’을 연상케 했다. 여야 의원들은 황교안 국무총리와 정부 부처 장관 등을 상대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과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막말 파동, 영남권 신공항 문제, 광복절 특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 민감한 정치 현안부터 꺼내들었다. 정작 해야 하는 전년도 결산 심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황 총리는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면 사드 배치도 중단되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북한이 비핵화를 선행한 다음에 판단할 문제”라고 답했다. 나 기획관의 발언 파동에 대해 황 총리는 “국민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다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사드는 일개 방공 포병 중대 규모 수준”이라면서 “엄격히 말해 주한미군이 통보하면 협의해 승인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의원들은 질의 순서가 오면 너도나도 자신의 지역구 사업부터 언급했다. 그러면서 황 총리와 해당 부처 장관에게 원활한 추진을 당부하거나 예산을 지원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정부로부터 얻어낸 긍정적인 답변을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포장해 지역구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인천 연수을이 지역구인 민경욱 새누리당 의원은 “인천 송도 GTX는 지역구의 희망”이라면서 “계획대로 잘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강원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의 같은 당 황영철 의원은 “강원 30년 숙원 사업인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사업이 확정됐다”는 말부터 꺼냈다.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의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영란법에 따른 농축산업 종사자들의 직간접 피해액이 10조원으로 추산된다”면서 “금품 대상에서 농축산물을 제외해 달라”고 주장했다. 전북 김제·부안의 김종희 국민의당 의원은 새만금신항만의 접안 시설 확충 등을 요구했다. 영남권 의원들은 신공항 문제로 공방을 벌였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서울 성북 등 16곳 공약 변경·폐기때 의회 승인

    11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따르면 강원 철원군(이현종 군수), 전북 무주군(황정수 군수) 등은 지자체 홈페이지에도 공약 이행 정보를 주민에게 공개하지 않아 대표적인 ‘불통’ 지역으로 꼽혔다. 최하위 등급인 F등급(불통)을 받았다. D등급을 받은 시·군·구는 지자체 홈페이지에는 공약 이행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만 공약 이행의 구체적인 과정을 알 수 없었다. 모두 18곳이었다. 시로는 경기 군포시(김윤주 시장), 전남 여수시(주철현 시장)·순천시(조충훈 시장) 등 시 4곳, 군으로는 인천 옹진군(조윤길 군수), 강원 고성군(윤승근 군수), 충남 태안군(한상기 군수), 전북 장수군(최용득 군수)·부안군(김종규 군수), 전남 무안군(김철주 군수)·영광군(김준성 군수)·장성군(유두석 군수)·신안군(고길호 군수), 경북 청송군(한동수 군수)·울진군(임광원 군수), 경남 하동군(윤상기 군수) 등 13곳, 구는 인천 남동구(장석현 구청장)였다. D등급과 F등급을 받은 지역은 대부분 인구가 적고 면적이 넓거나 인허가가 집중되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이 지역들의 행정이 불투명하고 행정 추진을 독선적으로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서울 성북구(김영배 구청장)·관악구(유종필 구청장)·강서구(노현송 구청장)·강동구(이해식 구청장)·양천구(김수영 구청장)와 광주 남구(최영호 구청장)·북구(송광운 구청장), 경기 고양시(최성 시장)·의왕시(김성제 시장), 강원 인제군(이순선 군수), 충남 아산시(복기왕 시장)·논산시(황명선 시장), 전북 남원시(이환주 시장)·완주군(박성일 군수)·부안군(김종규 군수), 경북 김천시(박보생 시장) 등 16곳은 공약 보류·폐기나 내용 변경이 필요할 때 지방의회 승인 혹은 인구 비례에 의한 지역주민 직접 승인 등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김중만(62)과의 만남은 금요일인 지난 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예정돼 있었다. 그 주 수요일부터 수영 박태환을 리우올림픽에 내보내자는 1인 시위를 국회 정문 앞에서 벌여 온 그가 일단은 그곳에서 보자고 제안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후에 쏟아진 폭우로 그는 철수를 해야 했고 결국 청담동 스튜디오로 장소가 변경됐다. 폐렴 증세가 있는데 비까지 흠뻑 맞은 그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좀 있으니 그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법원에서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인정했다는 뉴스였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이제 정말 사자도 보고 침팬지도 보고 하마랑 코뿔소도 보고 그러는 거예요?” 1970년 여름 어느 날 저녁 나는 만세를 불렀다. 끓어오르는 희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홍대부고 1학년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는 충남 한산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하셨는데, 가족들을 불러 앉혀 놓고 상상도 못했던 말씀을 하셨다. “정부에서 아프리카 봉사활동 파견 의사들을 모집하는데, 거기에 지원했다. 거기 가면 여기에서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나와 동생은 기뻐 날뛰기만 했지, 아버지의 입가에 흐르는 씁쓸한 미소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대접받는 의사의 자리를 버리고,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안 되는 나라로 떠나갈 결심을 한다는 게 얼마나 깊은 번민의 산물이었을지는 나중에 좀더 철이 든 뒤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6·25 참전 군의관이셨다. 내가 휴전 이듬해 강원도 철원에서 2남1녀의 맏이로 태어난 건 그래서였다. 아버지는 군인들이 이 땅을 계속 통치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요즘 ‘헬조선’이라며 이민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46년 전에 그걸 몸소 실천에 옮기셨던 것이다. 그것도 가난과 모래폭풍이 지배하는 아프리카 오지에 가는 걸로 말이다. -아버지는 전역 후 당신 아버지의 고향인 전북 군산 대신에 어머니의 고향인 한산에 정착해 의원을 차리셨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만 해도 우리 집이 양계장을 하는 줄 알았다. 아픈 사람들이 돈이 없으면 닭을 가져왔고 아버지는 늘 그걸 웃으며 받아주셨다. 매일 닭 요리가 밥상 위에 올라왔는데, 그때 물리게 먹어서 지금도 닭을 안 좋아한다. -내가 아프리카행에 그토록 환호했던 것은 탐험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대니얼 디포의 고전 ‘로빈슨 크루소’를 주셨는데, 난생처음 밤을 새워 읽은 책이었다. 이후 내 머릿속에는 무인도나 정글 생활 같은 것들이 꽉 들어찼고, 중학생이 돼 서울로 올라와서는 틈만 나면 청계천 8가 헌책방 거리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중대 발표가 있고 보름 후 부모님과 우리 형제, 이렇게 네 식구가 탄 비행기가 서아프리카 오트볼타 상공에 도착했다. 오트볼타는 지금은 부르키나파소로 개명된 옛 프랑스 식민지였다. 하지만, 비행기가 랜딩 기어를 내릴 즈음 나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창밖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 전혀 아니었다. 밀림이나 사자는커녕 아래로 온통 시뻘건 모래사막뿐이었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사하라 남쪽에 위치한 오트볼타는 거대한 사막의 끝자락이었다. ‘아프리카면 다 똑같은 줄 알았더니….’ 게다가 우리가 살 곳은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버스로 20시간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였다. 철판으로 벽을 세운 묘한 형태의 집에 방 두 칸과 나무침대가 전부였다.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계시는 아버지가 야속했고,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남은 여동생이 부러웠다. -아버지는 그 길로 평생을 아프리카 사람으로 사셨다. 오트볼타에서 의료 활동을 마친 후에는 더 남쪽에 있는 보츠와나로 옮기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계셨다. “내 통장에 2000풀라(보츠와나의 화폐 단위)가 있는데, 그 정도면 괜찮겠냐.” 1999년의 어느 날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직감한 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와 병 수발을 들고 있는 나에게 물으셨다. 그게 장남인 나에게 남겨 주시는 전 재산이란 얘기였다. 아버지의 표정은 대단했다. 2000풀라면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인데, 거의 200억원을 물려주시는 듯한 그 당당함이란. 얼마 후 돌아가셨을 때 당신이 남긴 거라곤 정말로 그 2000풀라와 양복 2벌, 청진기 3개, 모자 3개, 모터 달린 자전거 1대 그리고 ‘김정’이란 이름 두 글자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대한 유산이 그리고 이만큼 멋진 분이 또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나는 동생보다도 아프리카 생활을 못 견뎌했다. 일단 마을에 학교가 없어 답답했다. 불어를 익히는 것 말고는 나를 채워 줄 것이 없었다. 신물 나게 양배추 김치만 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고, 독거미에 물려 사경을 헤맸던 일도 끔찍했다. 1971년 나는 아버지가 수소문한 끝에 프랑스 서부의 작은 도시 숄레로 보내져 고1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인생의 황금기가 열렸다. 사방이 포도밭이었는데, 모두가 와인을 만들어 먹고살았다. 학교건 기숙사건 와인이 넘쳐났다. 그리고 1500명 학생 중에 유일한 동양인인 나에 대한 남녀 학생들의 관심과 배려는 한이 없었다. 꿈결 같은 3년을 보냈다. -원래 꿈대로라면 문학을 전공해야 했는데, 그러기엔 수학 실력이 너무 달렸다. 수학 시험을 안 보고 갈 수 있는 대학 전공은 미술밖에 없었는데, 그건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으로 숱하게 상을 받은 나였다. 1974년 니스에 있는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1년을 보내고 난 어느 날, 기숙사에서 사진을 취미로 하는 법대생 친구가 인화 작업을 도와 달라고 했다. 사진 한 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처음으로 보게 됐다. 3~5분 만에 인화지에 그림이 새겨지는 건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내 그림은 석 달이 걸려도 완성이 될까 말까인데. “맞다 저거야. 내 성격엔 저게 딱이야.” 친구에게 카메라를 빌렸다. 잠자고 씻을 때를 빼고는 카메라를 품고 살았다. 풍경, 얼굴, 동물 등을 닥치는 대로 찍었다. 아르바이트해서 몇 푼 손에 들어오면 무조건 필름 가게로 달려갔다. 늘 필름에 목이 말랐다. 주변에 있는 여자들의 누드도 찍었는데, 이는 내가 작가로서 초기에 명성을 얻게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데뷔 시절 나의 주제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대학 2학년 때 일찌감치 아들을 보았다. 아이의 엄마는 특수교육을 전공하던 한 살 어린 프랑스인 여자친구였다. 가장이 됐으니 생활비가 필요했고 필름값도 벌어야 했다. 돈을 아끼려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아이를 몰래 돌보다 쫓겨난 적도 있었다. 주말이건 심야건 닥치는 대로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디스코텍에서 DJ도 했다. 점심때 식당 주방에 설거지를 하러 가면 늘 4~5m 높이 분량의 접시들이 쌓여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아프리카 의료 활동으로 받는 돈은 고작 석 달에 500달러였다. 멀리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 전혀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사진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얼마 안 돼서 나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사진에 과감하게 미술적인 프레임을 접목한 게 먹혀들었다. 주어진 것을 찍는다는 생각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장소를 정하고 모델을 세웠다. “니스에 동양인이 한 명 있는데 사진을 잘 찍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를 찾는 곳이 늘어갔다. ‘프랑스 오늘의 사진 80인’ 등 몇몇 중요한 상을 거머쥐고 나는 파리로 진출했다. 자연히 니스에서의 학업은 더이상 이어갈 수가 없었다. 파리에서는 유명작가들 밑에서 패션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당시는 세계적인 대가일수록 동양인 어시스턴트를 두는 게 유행이었다. 이게 나에게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어떠한 다른 동양인 사진작가도 나만큼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다. -1977년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23세 때였다. 칸 미술제 참석을 위해 프랑스에 온 우리나라 화가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내 사진을 보더니 “한국에는 이런 사진이 없다”며 전시회를 열어 보라고 했다.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인연으로 한국에 계속 머물게 됐다. 이듬해 배우 오수미(1950~1992)를 만났다. 남편인 신상옥 감독이 납북되고 혼자 살고 있던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아름다움에 현기증을 느꼈다. 얼마 후 한국에 같이 머물고 있던 첫 번째 아내에게 “새로운 운명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별말 없이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떠났다. 그녀는 지금도 니스에서 전공을 살려 정신지체아들을 돌보고 있다. 지금도 아내와 아들과는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그녀는 가히 천사다. 방학이면 해마다 인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나는 테레사 수녀님을 따서 그녀를 ‘마더 테레사’라고 부른다. 지금도 우리들은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아들은 나와 같은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이 땅에서 두 번의 추방을 당했다. 1985년에는 프랑스 국적의 외국인이면서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고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1986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정보당국에 붙들려가 일본과 미국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 보내졌다. 두 번째 추방은 신상옥 감독이 북한을 탈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걸 계기로 오수미와는 자연스레 결별을 하게 됐다. -1988년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됐다. 당시 나는 프랑스에서도 톱클래스에 있었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두 번이나 나를 추방한 이 나라에 뭔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해 당시 톱 모델이던 이인혜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1995년 5월에는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됐다. 검찰이 일부 마약사범의 진술에 의존해 나에게 대마초 흡연 혐의를 씌웠는데, 나는 이미 2년 전에 같은 혐의로 구속돼 55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했고, 이후로는 완전히 절연한 상태였다. 검찰은 소변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자 13일간 나를 정신병원에 가뒀고, 이는 인권탄압 사례로 신문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어쨌거나 이 일로 나는 국립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강사에서 잘리고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했다.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갔다. 1년을 아이와 둘이 살고 있으니 아내가 다시 찾아왔다. LA에서 3년 동안 패션사진, 상품 카탈로그 등을 찍으며 세 식구가 괜찮게 먹고살았다. 그런데 1997년 말 한국 외환위기의 파고가 멀리 LA까지 밀려왔다. 주된 고객이던 한국 기업들이 도산을 하거나 경영난에 빠지면서 일감이 뚝 끊겼다. 결국 월세 3000~4000달러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빈민들이 사는 300달러짜리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꼬박 1년을 살면서 전당포를 세 번을 갔다.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500달러에 카메라를 잡히면 그날은 LA갈비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얻은 건 가족애였다. 극심한 가난 속에 우리 셋은 정말로 하나가 됐다. 너무도 소중한 가치였다. -“형, 처자식 고생 그만 시킬래.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형이 사진전 좀 열 수 있도록 주선해 줘.” 1999년 LA라디오 사장이던 가수 이장희에게 귀국을 고했다. 떠나기 전에 라디오코리아에서 내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 사람들에 신세진 것들 좀 갚고 남은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부모님 계신 보츠와나를 거쳐 서울로 오는 티켓이었다. 그런데 카메라 장비며 책이며 옷가지 등 해서 짐이 250kg이나 됐다. 추가 화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 고작 400달러 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사진 5장을 별도의 휴대용 박스에 넣고 우리가 예매한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카운터를 찾아갔다. 책임자를 보자고 했다. 후덕해 보이는 여성이 나왔다. “저는 사진을 하는 예술가입니다. 짐이 좀 많은데, 추가 비용을 낼 형편은 안됩니다. 저의 작품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게 힘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는 내 사진을 한 장, 두 장 보더니 곧바로 ‘오케이’ 사인을 냈다. 이에 더해 우리 가족의 티켓을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내가 절실할 때, 진실할 때 정성이 통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의 힘이란 걸 새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보츠와나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의 30년 아프리카 여정을 기리는 뜻에서 카메라 장비를 챙겨 초원으로 나갔다. 요하네스버그, 세렝게티, 타랑기레 등의 동물들을 담아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한국에 돌아왔다. -막상 귀국을 하니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내 한 몸은 고사하고 아내와 아들이 머물 수 있는 집 한 칸이 없었다. 상업사진을 시작했다. 명함을 만들고 압구정동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패션, 영화포스터, 음반표지 등 닥치는 대로 작업을 했다. 3년을 일하니까 서울 전농동에 아파트 한 채를 살 돈이 모였다. 3년을 더 하니까 한 해에 15억원 정도가 손에 들어왔다. -‘이게 내가 추구하던 삶인가? 맹목적으로 일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먹고 살 만 해지니까 또 다른 생각에 발동이 걸렸다. 2006년 고비 사막으로 여행을 갔다. 보름 동안 50대, 60대의 김중만은 어때야 할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돌아와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 상업사진 그만할게. 그래도 괜찮겠지?” 6년 동안 상업사진을 찍으면서 50억원 이상을 벌었는데 남은 건 거의 없었다. 빌딩 한 채 사 두라는 주위의 말들 무시한 채 어려운 나라에 학교 지어 주고, 카메라 장비 사고, 스튜디오 운영하고, 먹고 놀고 했더니 남은 게 없었다. -2008년 관광공사의 외주를 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앵글에 담기 시작했다. 한국의 이미지는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나는 우리나라의 이미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어느날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에 갔다. ‘600년 된 학교인데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고, 옆에는 숲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600년 전에 이런 학교를 지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우리나라를 너무 피상적으로만 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이미지 촬영은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됐다. 무엇보다도 해외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극단적으로 동양적인 본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극단적으로 서양적인 표현력을 갖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겸비한 이중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작가’ 등 평가들이 나왔다. -예술사진으로 다시 돌아와 시간이 흐르니 내 작품 가격이 2500만원, 5000만원, 7500만원 등으로 해가 다르게 뛰었다. 대부분 외국에서 구매하는데 3개월 전에 처음으로 작품 하나를 파리에서 1억원에 계약했다. 작품의 가격은 작가의 자존심이다. 5억원까지는 올려보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의 철칙은 지키려 한다. 작품의 영역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순결해지자는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사진작가 김중만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다. 10대 중반 아프리카를 거쳐 프랑스에 유학해 21세 때인 1975년 니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데뷔했다. 1977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에 역대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면서 주목받았다. 인물, 동물, 꽃, 풍경, 패션 등 다양한 주제에서 틀에 짜인 관습과 앵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을 창조해 왔다. 현재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2006년부터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예술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 지원과 캄보디아, 베트남 학교 건립 등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1954년 강원 철원 출생 ▲한산초, 홍익중, 프랑스 숄레 고등학교, 니스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 중퇴 ▲프랑스 아를 국제 사진페스티벌 젊은 작가상(1977), 올해의 패션사진가상(2000),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2010),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2011) ▲ 작품집 ‘불새’, ‘인스턴트 커피’, ‘동물왕국’, ‘아프리카 여정’, ‘애프터 레인’, ‘네이키드 소울’, ‘오키드’ 등
  • 서울, 경기, 인천 등 중부지방 ‘호우경보’ 발령···외출 자제해야

    서울, 경기, 인천 등 중부지방 ‘호우경보’ 발령···외출 자제해야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5일 서울, 경기, 인천 등 중부지방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면서 ‘호우경보’가 발령됐다. 앞서 기상청은 오는 6일까지 중부 일부 지역에서 최대 150㎜ 이상의 폭우가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기상청은 이날 오전 9시 서울 지역에 호우경보를 발령했다. 호우경보는 6시간 동안의 누적 강우량이 110㎜ 이상 또는 12시간 동안의 누적 강우량이 180㎜ 이상으로 예보됐을 때 내려진다. 오전 9시 기준으로 서울의 강수량은 52.5㎜를 기록하고 있다. 앞서 서울 지역은 지난달 21일~30일 ‘마른 장마’가 이어지다가 지난 1일 108.5㎜의 장맛비가 내렸다. 지난 2일에는 4.0㎜, 월요일인 지난 4일에는 29.5㎜의 비가 내렸다. 경기 북부 10개 시·군 전역에 내려졌던 호우주의보도 호우경보로 격상됐다. 전날부터 이날 오전 9시까지 경기 북부지역인 의정부(신곡)에는 201.5㎜, 포천(가산)에는 188.5㎜, 양주에는 172. 5㎜ 등의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오전 9시 기준으로 경기 북부지역에는 시간당 30~50㎜의 비가 내리고 있다. 기상청은 이날 오후까지 최대 130㎜의 많은 양의 비가 경기 북부지역에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인천에도 호우경보가 발령됐다. 이날 오전 9시 기준 인천 중구 무의도에는 96㎜, 강화군 교동도 95.5㎜, 옹진군 자월도 90㎜, 서구 공촌동 79㎜의 비가 내리고 있다. 기상청은 목요일인 오는 7일 오후 늦게까지 50~150㎜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호우경보가 내려진 곳은 서울시, 강화군과 옹진군을 제외한 인천시, 강원 양구군·인제군 산간·고성군 산간·속초시 산간·고성군 평지·인제군 평지·춘천시·화천군·철원군, 경기 가평군·남양주시·구리시·파주시·의정부시·양주시·고양시·포천시·연천군·동두천시·부천시 등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오늘 오전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오후에는 서울·경기와 강원에는 시간당 30㎜ 내외의 강한 비와 함께 많은 비가 오는 곳이 있을 것”이라면서 “중부지방에서는 장맛비가 장소에 따라 낮 동안 소강 상태를 보이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글로벌 시대] 에코투어리즘으로 관광산업 고도화를/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글로벌 시대] 에코투어리즘으로 관광산업 고도화를/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월미도 4500명 치맥 파티’, ‘한강 8000명 삼계탕 파티’. 최근 중국의 아오란 그룹과 중마이과기발전유한공사가 인센티브관광으로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쏟아졌던 신문기사 제목들이다.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엄청난 숫자뿐 아니라, 쇼핑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여행 실태가 놀라움을 자아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에 1320만명의 외래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들 중 중국인은 598만명으로 외래 관광객의 45.2%에 해당한다. 올해 들어서는 유커들의 방한이 더욱 두드러져 우리 관광산업을 견인하는 활력소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의 한국 관광이 일시적이거나 지나치게 소비적인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이제는 유커를 중심으로 한 외래 관광객의 양적 증가를 뛰어넘어 관광 프로그램의 다양화·고도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관광산업으로 우리의 관광정책을 발전시키는 방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여행 관광산업은 전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산업 중 하나이다. 세계여행관광위원회의 최근 보고서에 의하면 관광산업을 통한 총생산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8%에 해당하며 2억 8400만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은 경제 활성화의 돌파구를 찾고 아세안 공동체를 달성하기 위해 ‘아세안 관광전략계획 2016-2025’을 수립했다. 특히 아세안은 지속 가능하고 포괄적인 관광을 전략목표로 설정하고 단일 관광지로서의 아세안을 추구하고 있다. 매년 50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찾는 관광지인 아세안 국가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을 보호하면서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형식의 관광형태에 주목하고 있다. 에코투어리즘(ecotourism)과 지역기반 관광, 홈스테이 관광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즉,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 지역 사회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냄으로써 지속 가능하고 포괄적이며 보다 경쟁력 있는 관광산업을 진흥시킨다는 것이다. 세계생태관광협회(The International Ecotourism Society)에 따르면 이러한 형태의 에코투어리즘은 매년 급신장하며 한 해에 4700억 달러에 달하는 이익을 창출해 내고 있다. 최근 한·아세안센터는 에코투어리즘을 주제로 한·아세안관광진흥워크숍을 개최하였다. 한국과 아세안 10개국의 에코투어리즘 전략과 도전 과제를 공유하는 가운데 모범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에코투어리즘의 발전 방안과 미래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또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창덕궁 비원과 철원 비무장지대(DMZ) 생태평화공원 등을 방문하며 자연자원뿐만 아니라 문화유산 또한 에코투어리즘의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직접 체험했다. 우리에게 에코투어리즘이란 표현은 아직 생소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유커들이 빠져버린 제주도, 공항면세점과 명동거리를 연상해 보라. 저가 단체관광이나 소비성 관광에 치우치다가는 우리 관광산업이 피폐해지지 않을까. 외래 관광객 숫자만을 내세우는 구태의연한 관광정책이 아니라, 에코투어리즘과 같이 인간과 자연, 역사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지속 가능하며 포괄적인 관광’에 주목할 때다.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공식 집계만 5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터전을 잡기 시작한 이래 가장 치열했고 가장 처참했던 전쟁이었다. 미·소 냉전 구도 속에서 김일성의 야욕과 이승만의 오판이 불러온 이 전쟁은 삼천리금수강산을 잿더미로 만들고 막대한 사상자를 냈지만, 66년이 흐른 오늘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북한은 개전 초기 있었던 어떤 한 사건만 없었다면 계획대로 수도권 일대에서 국군의 주력부대를 전멸시키고 파죽지세로 남하해서 UN군이 개입하기 전에 부산을 점령해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전쟁 발발 당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대단히 컸고, 서부전선에서 국군 방어선의 붕괴 속도는 김일성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나 북한군은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뒤 서울에 무려 3일이나 틀어 박혀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이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국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후퇴하여 방어선을 다시 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북한은 부산 점령에 실패하고 다 이겨놓은 전쟁을 망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개전 초기 북한군의 발목을 잡았던 그 사건이란 무엇일까? 준비된 北, 방심한 南 전쟁 발발 하루 전인 6월 24일 북한군 전 부대에 하달된 ‘조선인민군 전투명령 제1호’에는 북한의 남침 작전 계획이 소상히 기재되어 있는데, 이 작전의 요지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서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서부전선을 맡은 제1군단이 개성-동두천-포천 일대에서 38선을 돌파해 공격을 개시하면, 중부전선의 제2군단이 춘천을 통해 밀고 내려와 그대로 이천-용인-수원 일대까지 진출해 제1군단에 쫓겨 후퇴하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 섬멸시키고 그 이후 사실상 무주공산이 되는 남한 전역을 신속하게 점령해서 일찌감치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 김일성의 구상이었다. 이 작전은 강력한 화력과 우수한 기동력이 생명이었는데, 김일성은 이를 위해 소련에 대량의 화포와 전차, 그리고 전투기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고, 스탈린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소련은 전쟁 직전까지 북한에 대량의 무기를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최고의 걸작전차라 불렸던 T-34/85 전차 242대와 YAK-9 전투기 200여 대, 각종 화포 1,100문 등이 그것이었다. 당시 북한군은 너무도 막강했다. 당시 북한군에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에 소속되어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고 돌아온 병력도 많았고, 해방 직후 소련군에게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기와 장비의 수준도 훌륭했다. 반면 우리 국군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실전 경험이 있는 장병도 드물었고, 체계적인 훈련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변변한 무기도 없었다. 당시 미국은 북진 통일을 부르짖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반감과 불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남한에게 제대로 된 무기 제공을 상당히 꺼렸다.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242대의 전차와 1,100문이 넘는 화포를 제공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수 만대의 전차가 잉여 물자로 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단 1대의 전차도 주지 않았다. 수백만정의 소총과 권총 재고가 있었음에도 이를 남한에 제공하는 것을 꺼려했다. 이 때문에 M1 소총 등 미국제 장비로 무장한 부대는 전방 일부 부대에 불과했고, 후방 부대들은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총기와 탄약, 장비들을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을 정도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극심했다. 사실 소련의 대규모 원조와 북한의 전쟁 준비 사실을 우리 정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북한의 기습 남침에 어느 정도 대응할 기회는 있었다. 1949년 육군본부 정보국은 북한이 1950년 봄 대대적인 남침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는 정보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고, 당시 소령 계급을 달고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장을 맡고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북한군이 38선 일대에 집결을 완료했고, 남침이 임박했으니 대비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전쟁 하루 전날 작성해 군 수뇌부에 보고하는 등 북한군의 남침 준비 사실을 소규모 병력 이동까지 세세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전쟁 발발 하루 전 비상경계를 해제했고, 사단장급 지휘관들을 육군본부 주최 파티에 초대하는가 하면, 전체 병력의 반 이상을 농번기 대민지원에 내보내는 등 스스로 사실상 무장해제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듯 6.25 전쟁은 시작 전부터 북한이 이길 수밖에 없는 ‘다 이겨놓은’ 전쟁이었다. 청성부대의 춘천대첩 6월 25일 새벽 4시, 38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김일성이 하달한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북한군은 대량의 화포와 강력한 T-34 전차를 앞세워 남한의 방어선을 유린했고, 수도권 북부 지역을 방어하던 우리 국군 부대들은 처절하리만치 온 힘을 다해 저항했으나,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전선은 무너졌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우리 국군 부대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한강 이남으로 패퇴했다. 이때 만약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북한군 제1군단이 한강을 건너 남진을 계속하고 중부전선에서 춘천을 관통한 북한군 제2군단이 이천-용인-수원 방면을 통해 서울 남쪽에 나타났다면 우리 국군은 완전히 포위되어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남쪽에 북한군 제2군단은 나타나지 않았고, 일찌감치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제1군단은 작전계획에 따라 제2군단을 기다리느라 한강 이북에서 무려 3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이 3일 동안 우리 국군은 패퇴한 부대들을 모아 전력을 재정비한 뒤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고, 결국 이로 인해 북한의 속전속결 전략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군 제2군단이 포위망을 만들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춘천 일대를 방어하고 있던 국군 제6사단 청성부대에게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주춤하며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중부전선 철원 일대를 철통방어하고 있는 청성부대는 당시 국군 모든 부대 가운데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다. 특히 전쟁 발발 2주 전 사단장으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은 대단히 유능한 명장(名將)이었고, 예하 7연대장을 맡고 있었던 임부택 중령 역시 매우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특히 임부택 중령은 전쟁 발발 1년 전부터 38선 정면의 적 2군단이 남침할 경우 춘천-가평 일대를 주요 공격 루트로 활용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일대의 주요 고지와 능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임 중령은 육군본부에 방어진지 구축에 필요한 예산과 자재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을 설득해 이들의 도움으로 전쟁 발발 1개월 전에 완벽한 방어진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새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 역시 전쟁이 임박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단의 모든 포병전력을 북한군이 주력 침투로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춘천 일대에 배치하는 한편, 이 일대에서 북한군의 파상 공세를 상정한 방어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이러한 훈련이 실시되던 6월 초·중순은 농번기였고, 육군본부에서도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지시하고 있었으나 김 대령은 사단장 직권으로 외출·외박을 취소하고 대부분의 사단 병력을 영내에 대기시키며 임박한 전쟁에 대비했다. 6월 25일 새벽, 북한군 제2군단은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앞세워 춘천 일대로 밀고 들어왔다. 북한군은 큰 무리 없이 춘천을 점령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첫 전투였던 춘천-홍천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대패했다. 당시 춘천으로 밀고 내려온 제2군단은 제2사단, 제12사단, 제15사단 등 3개의 보병사단과 T-34/85 전차와 SU-76 대전차자주포 등으로 무장한 제603모터사이클연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병력은 청성부대의 3배가 훨씬 넘었고, 전차는 물론 강력한 포병의 지원까지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군은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2군단의 선봉으로 투입된 제2사단은 SU-76 대전차자주포를 앞세워 임부택 중령이 이끄는 제7연대 정면으로 파상 공세를 가했다. 그러나 7연대는 청성부대 예하 부대 중에서도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고, 청성부대는 7연대 작전지역에 사단의 모든 포병화력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전투준비가 되어 있기는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과 학생들은 빗발치는 적 포탄과 총탄을 뚫고 청성부대 장병들에게 포탄과 식량을 날라다 주었다. 민·군이 합심하여 필사적으로 저항한 결과, 기세 좋게 쳐들어온 북한군 제2사단은 7연대를 상대로 졸전을 거듭하며 하루 만에 전체 전투력의 40%를 상실하고 패퇴하며 사실상 부대가 사라졌다. 당황한 북한군 제2군단장 김광협 중장은 인제 방면으로 진격해 들어가던 제12사단을 춘천에 투입했다. 북한군 제12사단 전면에는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가 있었는데, 김종오 사단장은 제12사단 병력이 움직이자 민병권 중령의 제19연대를 투입, 제2연대와 함께 북한군 제12사단에 맞서게 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제2연대를 집중 공격했지만, 제2연대는 압도적인 우위의 적과 맞서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북한군에 역습을 가하며 치고 빠지는 공격을 반복해 북한군의 진을 빼놓았다. 춘천 일대에서 벌어진 3일간의 전투에서 청성부대는 407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북한군 제2군단은 6,9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당초 제2군단은 일찌감치 춘천을 돌파해 이천-용인-수원을 거쳐 서울 이남에서 국군 주력부대를 포위해 궤멸시키는 것이 핵심 임무였지만, 춘천에서 3일간 발이 묶인 것은 물론, 주력부대가 사실상 궤멸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제2군단의 패전 소식에 김일성은 격분했다. 김일성은 즉각 제2군단장, 제2사단장, 제12사단장을 해임 및 숙청하고, 전투력을 집중해 춘천을 점령할 것을 지시했지만, 춘천을 방어하던 청성부대를 후퇴시킨 것은 북한군이 아니라 육군본부였다. 육군본부는 서울 함락 직후 김종오 사단장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모든 부대가 후퇴한 마당에 청성부대 혼자 고립되어 춘천 일대에 남아 있으면 적에게 포위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북한군 제2군단은 후퇴하는 청성부대를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청성부대는 전력을 온전히 보존하며 피난민들까지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후방으로 후퇴했다. 흔히들 6.25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전투는 맥아더 장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이었다고들 평가한다. 지금도 9월이 되면 곳곳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열리며, 작전을 지휘했던 맥아더 장군을 영웅으로 기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개전 초기 압도적인 전투력 열세 속에서도 청성부대가 거둔 ‘춘천대첩’이 없었다면 국군은 궤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UN군이 증원 오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 인천상륙작전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개전 초기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한 이 ‘춘천대첩’에 대해 이제는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희생 기억해줘 감사”… 86세 6·25 참전용사의 시구

    “희생 기억해줘 감사”… 86세 6·25 참전용사의 시구

    육군 39사단·NC 다이노스 공동 기획 “어렸을 때 어리광을 부릴 때는 몰랐는데 군에 와서야 할아버지와 같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이 얼마나 고귀한지 알게 됐습니다.” 6·25 전쟁 66주년을 맞아 25일 마산구장에서 참전용사인 외할아버지와 프로야구 시구행사에 나서는 육군 39사단 차유록(22) 일병은 23일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육군은 “25일 경남 마산구장에서 6·25 참전용사 최필수(86)씨가 시구를 하고, 그의 외손자인 육군 39사단 차 일병이 시타를 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39사단은 6·25 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지역 연고 프로야구 구단인 NC 다이노스의 협조를 얻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최씨는 광복 직후인 1949년 군에 입대해 육군 3사단에서 근무하던 중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선에 투입됐다. 그는 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영화 ‘포화 속으로’의 배경이 된 포항·영덕지구 전투에서 북한군과 싸웠고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로 꼽히는 철원지구 전투에도 참가했다. 철원지구 전투에서 허리에 총상을 당한 최씨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7년 동안 군 복무를 하다가 1960년 5월 특무상사로 전역했다. 최씨는 39사단의 시구 제안에 “전쟁이 터졌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면서 “나라를 위해 싸운 참전용사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줘 고맙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한밤중 오줌누다 천장 무너져 갇혔다 구조된 군인 ‘황당’

    강원도 철원의 한 군인아파트 5층에서 화장실 천장이 무너져 40대 군인이 2시간 동안 갇혔다 구조되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17일 오전 1시쯤 철원군 서면 자등리의 한 군인아파트 5층에 사는 A(41)씨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던 중 갑자기 천정이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천장 구조물에 깔려 머리와 다리를 다친 A씨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더구나 무너진 천장 구조물이 출입문을 막아 A씨는 화장실에 갇혔고, 전기마저 차단됐다. 마침 아내와 가족은 친정집에 가고 혼자 집에 남아 있던 A씨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깨진 변기 조각 등으로 벽을 치며 ‘살려달라’고 외쳤고 이 소리를 들은 아래층 주민에 의해 사고 발생 40분 만에 112에 신고, 구조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철원 김화파출소는 해당 아파트에 군인이 산다는 것을 알고 119구조대와 군부대 등에 협조를 요청해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천장 구조물에 깔린 A씨를 구조, 병원으로 옮겼다. 천장 구조물이 무너진 아파트는 지난해 5월 입주한 신규 아파트로 알려졌다. 철원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새누리 황영철 의원 ‘경로당 주치의법’ 발의

    새누리 황영철 의원 ‘경로당 주치의법’ 발의

    황영철(강원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 새누리당 의원은 12일 경로당의 주치의 제도화를 위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 한다고 밝혔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노년층의 건강 악화를 예방하기 위해 의료방문서비스를 법제화하는 내용의 ‘노인복지법’과 ‘지역보건법’ 개정안이다. 노인복지법 개정안은 자치단체와 의료기관이 업무협약을 맺고 경로당을 방문해 건강 상담을 제공하는 ‘경로당 주치의 제도’를 법제화하고 예산 지원 규정을 명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역보건법 개정안은 지역의 보건소가 경로당에서 정기 건강 검진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황 의원은 “농어촌 등 의료서비스 취약지역 어르신은 의료기관 접근성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개정안이 시행되면 의료기관이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들의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25억년을 견뎠다… 살아 있는 지질 박물관

    [명인·명물을 찾아서] 25억년을 견뎠다… 살아 있는 지질 박물관

    화석·특수지형 보존된 동해안 20곳 ‘여의도 780배’ 새 지질공원 인증 추진 25억년 전의 신비를 간직한 경북 동해안과 청송지역의 지질자원이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 우수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5일 경북도에 따르면 국가지질공원위원회는 지난 3일 서울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제13차 회의를 열고 경북 동해안 4개 시·군 지질명소 20곳(울진 4곳·영덕 7곳·포항 5곳·경주 4곳)을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하기 위한 단일 안건에 대한 심의를 벌였다. 인증 결정은 올해 3분기 중에 내려질 전망이다. 경북 동해안 일대는 세계적인 희귀암석, 화석산지, 신생대지층, 해안단구 등 보존 및 연구 가치가 높은 데다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지질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질공원 인증 작업이 추진되는 면적은 서울 여의도 면적(2.9㎢)의 약 780배인 2261㎢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추진 중인 국가지질공원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다. 동해안이 지질공원으로 인정되면 경북은 기존 울릉도·독도와 청송에다 1곳이 더 늘어나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많은 3개의 지질공원을 보유하게 된다. 전국에는 현재 모두 7곳이 있다. 제주도(1864.4㎢)를 비롯해 부산 금정·영도 등 7개 자치구(296.98㎢), 강원(철원·화천·인제·양구·고성, 2067.07㎢), 무등산권(광주, 전남 화순·담양, 246.31㎢), 한탄·임진강(경기 연천·포천, 766.68㎢) 등이다. 이처럼 경북이 국가지질공원 최다 보유 지자체의 위상을 높이게 된 것은 2013년 7월 ‘경북도 지질공원 관리 및 운영 조례’를 제정하고 자연자원인 지질자원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관광자원화를 위해 적극 노력한 덕분이다. 지질공원은 개별 국가가 인증하는 국가지질공원과 유네스코가 국가지질공원 가운데 인증한 세계지질공원으로 나뉜다. 세계지질공원은 유네스코가 인증하는 세계유산, 생물권보전지역과 함께 3대 자연환경 보존제도 가운데 하나다. 지질공원 인증제도는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우수한 지역으로, 이를 보전하고 교육 및 관광사업 등에 활용하기 위해 도입됐다. 우리나라는 2012년 1월 자연공원법을 개정하면서 들여왔다. 인증 조건으로는 공원 면적 100㎢, 지질명소 20곳 이상 보유 및 필수조건 25개를 이행해야 하며 인증기간은 고시일로부터 4년이다. 이후 4년마다 평가를 받아 재인증한다.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후보 지역별 명소는 ▲울진 성류굴·불영계곡·왕피천 계곡·덕구계곡(전체 면적 653.9㎢) ▲영덕 고래불 해안·철암산 화석산지·영해면 24억년 부정합·원생대 변성암·죽도산 육계도·경정리 백악기 퇴적암·해맞이 공원해안(439.7㎢) ▲포항 내연산 12폭포·호미곶 해안단구·구룡소·두호동 화석산지·달전리 주상절리(669.5㎢) ▲경주 양남 주상절리·남산·문무대왕릉·골굴암(497.9㎢) 등이다. 주요 명소별 특징으로 성류굴에는 살아 있는 화석으로 평가받는 프람보사이테르속 패충류가 서식하고, 칠보산은 세계적으로 희귀해 연구가치가 높은 연필구조 지질자원을 갖고 있다. 영덕의 부정합 지층은 무려 24억년의 차이를 극복한 부정합 단층으로 유명하다. 바위 한쪽은 25억년 전 원생대에 형성된 ‘녹니석편암’이고, 다른 한쪽은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된 ‘역암’으로 맞닿아 있다. 철암산에는 조개화석 8종이 분포한 화석층이, 경주 남산의 80여개 화강암 불상은 풍화작용과 관련해 연구가치가 높은 지질유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곳곳마다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경북도는 지질공원 승인을 앞두고 홍보 차원에서 다음달 4일부터 11일까지 8일간 ‘동해안 지질 대장정’에 들어간다. 행사에는 전국 지구과학 교사와 대학생 등 300여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울진~영덕~포항~경주~울릉도~독도 지역 지질자원을 직접 둘러보며 우수성 등을 확인하는 에듀테인먼트 생태체험관광을 하게 된다. 도는 청송 및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의 세계지질공원 등재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우선 지난해 말 유네스코 본부에 청송 세계지질공원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데 이어 다음달 말 예비심사를 앞두고 관련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이미 지질 탐방로, 탐방객 안내센터, 지질 학습관, 지질 명소 안내판 설치 등 기반 조성을 마무리했고 학술용역 및 연구활동도 지속하는 등 인증 요건을 다지고 있다. 청송 세계지질공원 등재 여부는 오는 9월 제7차 세계지질공원 총회에서 결정된다. 청송 국가지질공원은 군 지역 전체 845.7㎢에 달하는 면적에 얼음골, 주산지, 연화굴, 달기약수탕 등 24곳의 지질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고고학적·생태적·문화적·학술적 가치가 높아 세계지질공원 등재에도 손색이 없다는 게 국가지질공원 인증 당시 평가단의 종합적인 분석이었다. 청송에는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부터 중생대 퇴적암과 화성암류, 신생대 화성암류 등 다양한 지질이 분포돼 있고, 이들 지질 간의 상호작용으로 보기 드문 특징들(단애, 구과상유문암, 페페라이트, 공룡발자국, 동굴, 폭포 등)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또 2012년 국내 처음으로 국가지질공원에 이름을 올린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의 세계지질공원 등재를 위해서도 운영 내실화, 인프라 구축, 국제총회에서의 홍보 등을 지속하고 있다.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은 일부 해역을 포함한 울릉군 전 지역 127.9㎢다. 140만∼1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울릉도와 신생대 제3기 말(460만∼210만년 전)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뒤 오랜 기간 파도에 의한 침식·퇴적 및 풍화작용 등을 거친 독도에는 삼형제굴바위와 울릉도 코끼리바위 등 지질명소가 23곳 있다. 경북도는 지역 지질자원의 국가 및 세계지질공원 인증으로 자연유산 보존은 물론 동해안 등지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고 생태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육·관광 등을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한다. 특히 도는 청송군 청송읍 일원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센터를 유치해 지질 관련 교육연구시설 등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도는 이 시설이 유치될 경우 연인원 7000여명의 지질공원해설사 교육과 연간 30만명의 관광객 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세계지질공원 로고 사용이 가능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할 수 있는 데다 ‘세계지질공원 네트워크’(GGN)에도 참여하면서 생태·지질 관광의 수준도 한층 더 높일 수 있다. 김정일 경북도 환경산림자원국장은 “경북이 전국 최대·최고의 지질 명소를 자랑하는 만큼 앞으로 지속적으로 국가 및 세계지질공원 인증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면서 “지질공원과 관련한 관광은 단순한 관광 차원을 넘어서 지질·생태·문화·체험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복합 관광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 김성원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 김성원

    20대 국회 새누리당 지역구 국회의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김성원(42·경기 동두천·연천) 의원은 국회와 당에 부족한 점으로 ‘속도’를 꼽았다. 첫 당선자 총회에서 “30~40대가 새누리당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속도가 느려서”라고 당차게 말했다. 그는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회도 무게와 격식을 따지느라 부처 장관, 차관을 부를 게 아니고 사무관이나 과장이 직접 설명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Q. 나에게 정치는 무엇인가. A. 설계. 토목공학을 전공했는데 모든 것의 기본은 설계다. 설계가 잘못되면 전체가 다 어긋난다. 설계처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힘을 모을 수 있는 청사진을 보여주는 게 정치다. 결국 정치가 바로 서야 민생도, 나라도 일어서는 것 아니겠나. Q. 정치를 선택한 계기는. A. 아버지. 동두천 시의원을 두 번 하셨다. 소선거구제였던 당시 시의원이 각 동을 다니며 시에서 보지 못하는 곳들을 찾아 도와주곤 했다. 아버지가 했던 이런 소정치에서부터 세상이 바뀌고 밝아진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선거운동을 도와 인사를 다녔는데 아버지가 한 장애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자 오지 말라고 싫다고 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때도 손사래를 치던 사람이 세 번째 만났을 때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더라. 진정성을 갖고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Q. 토목 전공인데 초선에 최연소라 국토교통위원회에 갈 수 있을까. A. 일하는 국회와 통일 한국을 위해서 꼭. 원내부대표에 청년소통특별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아서, 일부 선배들이 혜택을 너무 많이 받았으니 상임위원회는 인기 없는 곳으로 가라고 농담 삼아 말한다. 그러나 20대 국회 민의는 ‘일하는 국회’다. 전문성을 갖고 정치를 제대로 해보려고 토목공학으로 석사, 학사, 박사를 모두 땄다. 일을 하려면 국토위에 가야 한다. 저마다 ‘일꾼’을 자처하지만 이들이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원내 지도부의 역할이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가장 중심이 될 도시가 연천인데 인프라를 미리 구축하지 않으면 통일 뒤 혼란에 빠질 것이다. 국토위에 가서 준비해야 한다. Q. 20대 국회에서 김성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A. 정치적 실험 중. 국회 월급을 받는 직원은 전부 국회에서 일을 하도록 하고 있다. 지역 사무실에 있는 직원 월급은 사비를 쓰든, 후원금으로 충당하든 국민의 세금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의원보다 의원실 직원이 훨씬 많다. 보통 국회 직원 2~3명은 지역으로 보내지만, 국회 직원은 국회에서 일하라는 게 내 원칙이다. Q. 중점적으로 추진하려는 법안은. A. 통일경제특구법안. 연천, 동두천, 철원, 파주 등을 통일 한국의 경제 중심도시로 만들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모법이 있어야 지원과 준비를 할 수 있다. 우선 중첩된 규제를 완화해서 도로나 물류기지, 산업단지 등 부지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 전체를 다 풀자는 것은 아니다. 연천, 동두천도 마을회관에서 자다 보면 북쪽에서 포탄 소리가 들려온다. 지원이 연평도에 집중돼 있는데 접경지에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프로필 ▲1973년 경기 동두천 출생 ▲고려대 토목환경공학과 졸업 ▲(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 국회의장 정무비서관, 고려대 연구교수, 한국자유총연맹 대외협력실장
  • 환경부, 국가지질공원 인증엔 ‘의욕’ 지원은 ‘인색’

    환경부, 국가지질공원 인증엔 ‘의욕’ 지원은 ‘인색’

    재정자립도 낮은 지자체 ‘울상’ 국가지질공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형식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환경부에 따르면 2012년 국가지질공원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7곳이 인증을 받았다. 울릉도·독도, 제주도, 부산 금정·영도 등 7개 자치구, 강원(철원·화천·인제·양구·고성), 경북 청송, 무등산권(광주, 전남 화순·담양), 한탄·임진강(경기 연천·포천) 등이다. 국가지질공원은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뛰어난 곳을 국가가 인증한 공원이다. 소중한 지질자원 보존과 교육·관광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인천 옹진, 전남 여수, 강원 태백·정선·영월, 경북 경주·포항·영덕·울진, 전북 무주·진안·고창·부안 등 13곳이 인증을 준비하고 있다. 환경부는 2022년까지 모두 17곳을 지정할 예정이다. 이 중 8곳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목표로 한다. 이처럼 환경부가 인증에 의욕을 보이면서도 지원은 인색하기 짝이 없다.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올해 국가지질공원 7곳 가운데 6곳에 운영비 명목으로 국비 6억 9600만원(1곳당 1억 1600만원)을 지원한다. 매칭 사업이라 지자체들도 50% 부담한다. 하지만 적은 국비 지원으로 지질공원 관련 시설 설치 및 운영, 해설사 양성, 세계지질공원 인증 준비 등에 차질이 빚어진다. 재정자립도 10% 미만으로 전국 꼴찌 수준인 청송군과 울릉군의 경우 전문 해설사 각 18명과 25명을 확보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활용조차 못하고 있다. 프로그램 개발 등 상당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은 엄두조차 못 낸다. 한탄·임진강 지역은 지난해 말 지질공원으로 인증됐지만 예산 확보철이 지났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이런 가운데 환경부는 올해 지질공원을 추가 지정하면 내년에는 국비 지원액을 더 줄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국가지질공원 제도 도입의 본래 취지를 살리고 운영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비 증액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환경부 관계자도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 “지질공원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은 만큼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의 재정 확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국가지질공원에 대한 정부 지원 인색 ‘쥐꼬리’

    국가지질공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형식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환경부에 따르면 2012년 국가지질공원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7곳이 인증을 받았다. 울릉도·독도, 제주도, 부산 금정·영도 등 7개 자치구, 강원(철원·화천·인제·양구·고성), 경북 청송, 무등산권(광주, 전남 화순·담양), 한탄·임진강(경기 연천·포천) 등이다. 국가지질공원은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뛰어난 곳을 국가가 인증한 공원이다. 소중한 지질자원 보존과 교육·관광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인천 옹진, 전남 여수, 강원 태백·정선·영월, 경북 경주·포항·영덕·울진, 전북 무주·진안·고창·부안 등 13곳이 인증을 준비하고 있다. 환경부는 2022년까지 모두 17곳을 지정할 예정이다. 이 중 8곳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목표로 한다. 이처럼 환경부가 인증에 의욕을 보이면서도 지원은 인색하기 짝이 없다.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올해 국가지질공원 7곳 가운데 6곳에 운영비 명목으로 국비 6억 9600만원(곳당 1억 1600만원)을 지원한다. 매칭 사업이라 지자체들도 50% 부담한다. 하지만 적은 국비 지원으로 지질공원 관련 시설 설치 및 운영, 해설사 양성, 세계지질공원 인증 준비 등에 차질이 빚어진다. 재정자립도 10% 미만으로 전국 꼴찌 수준인 청송군과 울릉군의 경우 전문 해설사 각 18명과 25명을 확보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활용조차 못하고 있다. 프로그램 개발 등 상당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은 엄두조차 못낸다. 한탄·임진강 지역은 지난해 말 지질공원으로 인증됐지만 예산 확보철이 지났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이런 가운데 환경부는 올해 지질공원을 추가 지정하면 내년에는 국비 지원액을 더 줄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국가지질공원 제도 도입 본래 취지를 살리고 운영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비 증액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환경부 관계자도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 어려움 점이 있다”면서 “지질공원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은 만큼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의 재정 확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더민주 김정우 의원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더민주 김정우 의원

    기획재정부 국고국 과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정우(군포갑) 의원은 당내 재정전문가로 꼽힌다. 김 의원은 1996년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뒤 20년간 기재부에서 일했다. 12~15대 총선 철원·화천·양구 지역에서 보궐선거 한 차례를 포함, 모두 다섯 번 출마해 낙선한 더민주 김철배 강원도당 고문의 아들이기도 하다. Q. 더민주를 선택한 이유는. A. 더민주 DNA. 부친께서 범민주당 계열에서 오래 활동했다. 나도 ‘더민주 DNA’를 갖고 있는 셈이다. 총선 전 더민주 산하 유능한경제정당위원회에 참여했다. 당이 이래서는 어렵겠다고 느꼈다.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을 제안했다. 고민 끝에 수락했다. Q. 출마를 결심했을 때 부친의 반응은. A. “아들까지 바보처럼 살게 할 수는 없다.” 선거에 나간다고 했을 때 반대를 많이 하셨다. “나도 다섯 번 출마해도 안 됐는데, 아들까지 바보처럼 살게 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이대로는 정권 교체를 할 수 없다고 설득했다. 더민주가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직자 출신이 야당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Q. 정치적 최대 관심사는. A. 재정민주화. 일반 국민들은 자신이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모른다. 4대강 사업에 세금이 낭비돼도 전혀 알 길이 없다. 예산 낭비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국회의 통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국가 재정 투명화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만들 것이다. Q. 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A. 관료 경험. 야당에는 관료 출신이 드물다. 고위 공무원들은 어깨가 뻣뻣하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그렇지 않다. 서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누구보다 경쟁력이 있다. Q. 다음 선거에서 철원에 출마할 가능성은. A. 없다. 나는 이제 군포 시민이 됐다. 군포가 바로 내 고향이다. 군포 발전을 위해 선출된 국회의원인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것이 나를 믿고 뽑아 주신 군포 시민에 대한 도리다. Q. 1호 법안은. A. 인구문제 해결 법안. 인구문제를 국가 어젠다로 다루는 법안을 1호 법안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현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될 뿐이다. 앞으로 인구가 없어서 존립 근거가 없어지는 기초 단체가 생길 것이다. 정부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경제 발전도 이룰 수 없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프로필 ▲1968년 강원 철원 출생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브리스톨대학교대학원 정책학과 박사 ▲제40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기획재정부 국고국 계약제도과장, 세종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 [단독]“페브리즈 無害 발표 성급…DDAC 체내 축적 치명적”

    [단독]“페브리즈 無害 발표 성급…DDAC 체내 축적 치명적”

    “정부 ‘안전’ 근거, 접촉 독성 기준”정부측 “폐에 축적 가능성 작아” 한국피앤지(P&G)의 탈취제 ‘페브리즈’ 성분인 ‘제4급 암모늄클로라이드’(DDAC) 성분의 흡입독성이 이미 여러 논문을 통해 보고됐다는 주장이 18일 제기됐다. 환경부가 미국 환경보호국(EPA)의 인체 무해성 결론을 전한 지 하루 만이다. 전날 “흡입 실험 실시를 검토 중이지만(즉 조사한 바 없지만), 인체에 위해를 주는 수준은 아니다”라며 한국P&G의 발표를 동어반복한 환경부의 태도가 소비자 불안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페브리즈 홈페이지엔 ‘환경부에서 페브리즈 안전성을 입증하였다’는 공고가 게시됐다. 사용 후 청색증 피해 주장이 제기된 ‘119가습기 살균제’의 판매사인 LG생활건강도 이날 입장자료에서 “119 살균제의 주성분은 환경부가 인체 위해를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한 DDAC 계통”이라고 자신했다. 박철원 전 연세대 내분비연구소 조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DDAC에 대한 동물실험 결과 폐 염증과 섬유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논문이 이미 학계에 보고됐고, DDAC가 세포 변형을 유발한다는 연구도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일본의 환경독성연구소 연구팀은 2010년 국제 독성학회지에 기고한 논문에서 “쥐 실험 결과 몸무게 1㎏당 폐에 인공주입된 DDAC 양에 따라 1500㎍일 때 부종, 150㎍일 때 염증이 나타났고, 15㎍일 때 가시적 증상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지난해 6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페브리즈의 유해 성분 함유 의심을 최초로 제기한 박 교수는 환경부의 “인체 무해” 인용이 성급했다고 비판했다. DDAC가 미량(미국 정부 허용 기준치 0.33%보다 낮은 0.14%) 사용돼 인체에 무해하다는 주장에 대해 박 박사는 “1회 사용량이 유해하지 않다고 해도 독성 성분이 체내 축적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김필재 국립환경과학원 위해성평가 과장은 “수용성이며 고분자 물질이 아닌 DDAC가 폐 등에 오래 잔류하며 축적될 가능성이 작다”고 재반박했다. 미국 EPA 검토 보고서를 한국 환경부가 인용한 데 대해서도 박 박사는 “미국 연구는 대부분 접촉 독성에 관한 것”이라면서 “고깃집, 차 시트 등에 듬뿍 뿌리고 향기 흡입을 유도하는 내용의 페브리즈 광고가 나오는 국내에선 흡입독성 연구 및 독성 표시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YS 킹메이커’ 김재순 전 국회의장 별세

    ‘YS 킹메이커’ 김재순 전 국회의장 별세

    김영삼 집권 뒤 ‘토사구팽’ 말 남겨 화제샘터 창간 등 문화·교양 사업에 족적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17일 오후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3세. 평양 태생의 김 전 의장은 평안남도 평양공립상업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 민주당 선전차장·국제문제연구소 총무로 정계에 입문했고, 1960년 제5대 민의원으로 선출됐다. 외무부와 재무부 정무차관도 역임했다. 1963년부터 1973년까지 강원 철원·화천·양구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6~8대 의원을 지냈다. 당시 공화당 원내부총무와 대변인, 원내총무 등의 당직을 차례로 맡았다. 국회직으로는 상공위원장과 재경위원장을 맡아 활약했다. 이후 유신 시절인 1973년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9대 의원을 역임한 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정당 소속으로 강원 철원·화천에 출마해 당선됐다. ‘여소야대’ 정국이었던 13대 국회에서 전반기(1988~1990년) 국회의장을 역임하며 정치 인생의 꽃을 피웠다. 14대 총선에서도 승리를 거두면서 7선 의원 고지에 올랐다. 김 전 의장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 고문을 맡아 ‘김영삼(YS) 대통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92년 대선때 YS의 찬조 연설자로 나서 YS를 중국을 통일하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YS가 집권 뒤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를 추진하자 김 전 의장도 부정축재 의혹에 휩싸여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김 전 의장은 당시 “토사구팽(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이라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됐다. 이후 정치권과 거리를 둔 김 전 의장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맡아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전 총재를 도왔다. 김 전 의장은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 분야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70년 교양지 ‘샘터’를 창간한 데 이어 1976년 월간 ‘엄마랑 아기랑’을 발행했다. 1985년에는 파랑새어린이극장 대표를 지냈다.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한 ‘샘터’는 법정스님, 이해인 수녀, 소설가 최인호 등의 글을 장기간 연재해 큰 인기를 끌었다. 김 전 의장은 최근까지도 샘터의 고문으로 일했다. 콜롬비아 상·하원적십자대훈장, 페루 앙드레레이아스 공로훈장, 태국 최고백상대훈장, 무궁화대훈장 등을 받았고 2006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용자씨와 아들 성진, 성린, 성봉, 성구 씨 등 4남.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지금, 이 영화] ‘철원기행’

    [지금, 이 영화] ‘철원기행’

    가족은 제국이고, 가족 구성원은 식민지이다. 가족주의라는 이름의 제국주의는 부부·부모·자식·형제·자매 관계를 식민화한다. 가족 체제는 가족 구성원이 서로가 서로를 은밀히 수탈하며 유지된다. 이것은 가족에 관한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래서 예민한 시인은 이러한 시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80년 전, 이상(李箱)의 시구이다. “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수명을헐어서전당잡히나보다. 나는그냥문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 문을열려고안열리는문을열려고.”(‘가정’의 일부) 식민지 조선 청년은 일본과 가족-두 개의 제국에 압사당하고 있었다. 이제 한 개의 봉인은 풀렸다. 그러나 아직 한 개의 봉인이 남았다. 80년 후, 우리는 모두 그 문 앞에 서 있다. 철원에서 평생 고교 교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정년퇴임을 하는 날이다.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어머니, 큰아들 부부, 작은아들은 오랜만에 철원으로 왔다. 초라한 퇴임식이 끝나고 궁상맞은 중국집에서 다 같이 식사를 한다. 아버지와 큰아들은 말이 없고, 늦게 온 작은아들은 쩝쩝대며 먹느라 바쁘다. 퇴임식도, 중국집도 못마땅한 어머니는 연신 투덜대기만 한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큰며느리는 여러 가지 말을 꺼내지만 별로 신통치 않다. 술잔을 기울이던 아버지가 마침내 침묵을 깬다. “이혼하기로 했다.” 가족이라는 제국으로부터 독립할 것을 선언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 ‘철원기행’은 진짜 시작을 알린다. 영화 제목은 어쩔 수 없이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떠올리게 한다. 이때 ‘기행’이라는 단어의 쓰임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알고 있는 대로, 기행은 여행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한데 그렇게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철원과 무진은 등장인물들에게 전혀 생소한 곳이 아니라, 그들의 연고지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직장이 달라 전부 떨어져 살지만 원래 철원은 (큰며느리를 제외한) 가족의 보금자리였고, 무진은 주인공의 본적지였다. 애초에 기행은 고향과 연결시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두 작품은 모순된 표제를 내세운다. 낯익은 동네에서 등장인물들은 정말로 낯선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가족-타인을, 또한 조금도 의심치 않던 자기 자신을 하염없이 헤맨다. 갑작스럽게 눈이 푹푹 쏟아진다. 철원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이 막힌다. 형식적으로만 이어져 있던 가족 해체를 공표한 바로 뒤, 식구들이 한집에서 며칠 동안 얼굴을 맞대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펼쳐진다. 가족이 가진 제국의 속성과, 가족 구성원이 가진 식민지의 속성이 저마다 부딪치고 뒤섞여 엉클어진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해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며느리, 아들과 며느리의 입장이 중첩된다. 내면의 그늘이 조금씩 서로에게 드리워진다. 각자 감추고 피차 모른 척해 왔던 것이다. 눈이 그친다. 이들은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아무것도 해결된 문제 없이, 다만 서로의 그늘이 마주 겹쳤던 흔적을 지닌 채로. 12세 관람가. 21일 개봉.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내년 총선’ 고대하는 낙선자들

    역대 최다 당선 무효형 선고 가능성 4월 재보선, 작년 ‘미니 총선’ 능가할 듯 낙천·낙선자들 벌써부터 표밭 챙겨 내년 4·12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벌써부터 시선이 쏠린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사법 당국의 수사 선상에 오른 당선자가 100여명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역대 최다인 15곳에서 치러져 ‘미니 총선’으로 불렸던 2014년 7·30 재·보선의 규모를 거뜬히 초과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내년 대선 전초전 성격을 띨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1일 현재까지 이번 총선과 관련해 230여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 의뢰 조치했다. 검찰은 현재 입건된 당선자 104명 가운데 98명의 혐의를 집중적으로 따지고 있다. 79명이 수사 선상에 올랐던 19대 총선 직후 때보다 25명이 더 많은 숫자다. 여기에 경찰도 자체 단속 결과 등을 토대로 45명의 당선자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선관위도 출마자들의 선거 비용에 대한 강도 높은 실사를 벌일 예정이어서 20대 총선의 당선 무효 사례는 19대 총선 때의 규모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에는 새누리당 김근태·성완종·안덕수·이재균·이재영, 새정치민주연합 배기운·신장용, 무소속 김형태 당선자 등 8명에게 당선 무효형이 내려졌다. 또 지난해 7월 선거법 개정으로 인해 4월과 10월 연 두 차례 치러지던 재·보선이 1회(4월)로 축소됐다는 점도 선거의 규모를 키우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총선 낙천·낙선자를 중심으로 내년 재·보선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강원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의 새누리당 황영철 당선자는 유권자들에게 금품을 돌린 혐의로 이미 기소돼 22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공천에서 탈락한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의 새누리당 김종태 당선자도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 만에 하나 재선거가 치러진다면 공천에서 탈락한 김재원 의원의 출마가 유력해 보인다. 이 밖에 서울 종로에서 낙선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서초갑에서 낙천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대구 수성갑에서 낙선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인천 서을에서 낙선한 황우여 의원, 불출마를 선언한 김태호 의원 등도 재·보선 투입이 유력한 인사들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경기 수원무) 당선자는 쌀을 기부한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았다. 국민의당 박준영(전남 영암·무안·신안) 당선자는 억대의 공천 헌금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선 임내현 의원이 재기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경기 안산 상록을에서 낙선한 국민의당 김영환 의원도 내년을 노리고 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세계 기자들, 평화와 언론의 역할 논의

    세계 기자들, 평화와 언론의 역할 논의

    세계평화기자포럼이 18일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규성 기자협회장, 김병호 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50여개국 80여명의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막됐다.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이번 포럼은 ‘한반도 비핵화와 세계평화를 위한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23일까지 열린다. 참가자들은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부산 남구의 유엔기념공원 등을 방문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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