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NT운동 공동위원장 조명래 교수
이색적인 ‘나무 위 시위’ 끝에 극적으로 녹지보존 결정을 받아낸 대지산지키기 운동의 성공을 계기로 한동안 답보상태에 있었던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다시금 진용을 정비하고 있다.단체간의 연대를 모색하기도 하고 내셔널트러스트특별법 제정을 위한 분위기 조성작업도 활발하다.조명래(趙明來·46) 단국대사회과학부 교수는 지난해 1월 출범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공동대표 고은 김상원 김성훈) 공동운영위원장으로서 이 운동의 이론적 토대 제공과 현장 전략수립에 참여해 왔다.그를 통해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이념과 국내 과제등을 들어보았다.
◆ 대지산살리기운동을 평가한다면.
시민들이 모금을 통해 땅을 매입해 개발로부터 자연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기본틀인 시민 모금과 땅 매입이 있었던 것이죠.그러나 시민단체 소유 땅이라도 정부의 수용령이 내리면 수용당할 수밖에 없게 돼 있는 법적 한계는 변함이 없어 앞으로 운동이풀어나가야 할 몫으로 남게 되었죠.
◆ 어쨌든 정부가 땅 개발을 중지하고 공원이나 녹지로 보존하기로 했으니 성공한 것 아닙니까.
내셔널트러스트의 본질은 보전 가치가 있지만 사적 소유하에 있는 자연이나 문화유산을 ‘국민신탁’으로 전환시켜시민주도적으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것입니다.영국은비록 국가라 하더라도 이 유산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게의회의 특별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소유권을 바꿀 수 없도록내셔널트러스트법으로 보장하고 있죠. 그러나 우리는 민간단체가 유산을 매입해 놓더라도 ‘시민소유’를 인정 못받으니 갈 길이 먼 거지요.앞으로 이땅의 용도지정을 지켜볼겁니다.
◆ 우리나라처럼 땅값이 비싸고 사유재산 집착이 강한 곳에서 매입을 통한 보존운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시민들의 모금 참여나 기부문화가 취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등산공유화운동등 자발적인 로컬 운동이 활발하고(별도박스 참조)동강 문희마을 보존등 내셔널트러스트 성금모금에 대한 호응도 높아지고 있습니다.다양한 모금방법을 개발해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고 법적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사실 영국도 내셔널트러스트가 전 국토의 1.7%를 소유하게 되기까지는 100년이상이 걸렸어요.
◆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활발해지면 사유재산이 침해되고자원 이용에 제약을 받게 되는 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기본적으로 이 운동은 영구적인 보존을 추구하는 환경 문화운동이지만 매입이나 사용권임대를 통해재산권을 보장해 주고 신탁 이후에도 관람,교육 등에 시설을 활용함으로써 환경자원을 경제적 수익으로 연결시키는데까지 활동영역에 포함시킵니다.지역주민들에겐 일상 활동을 친환경적으로 재편하면서 수익도 얻을수 있게 하는 공생의 관계를 형성하는 거지요,동강문희마을의 경우 주민들과땅 매입을 통해 환경보존을 하기로 합의했지만 생태기행,생태학교,농산물구입,숙박등을 통해 농가소득 증대에도 기여할 계획입니다.
◆ 현재 내셔널트러스트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곳은 어디가있습니까.
지역단위에서 광주무등산,서울둔촌동습지,천리포수목원,해남 당두리 철새도래지,부산 해운대달맞이동산 등에 대한 매입운동이 일고 있고 우리 단체에서 동강문희마을과 신두리해안사구를 지정해 놓고 있죠.추진주체들이 대부분 지역에기반해 트러스트운동 양상이 전국형인 영국형보다 지역형인일본형에 가깝게 전개되고 있습니다.오는 30일에는 이들 단체가 모두 모여 연대방안을 모색해 볼 계획입니다. 또 29일엔 ‘내셔널트러스트 활성화를 위한 의회의 역할’을 주제로 국회환경포럼을 열어 특별법 제정문제등을 논의합니다.
◆ 한국 내셔널트러스트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어느쪽이라고 보십니까.
현장성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전국형으로 나가야 합니다.내셔널트러스트를 ‘땅사기운동’정도로 오해하는 분들이많습니다.하지만 이것은 환경이라는 이념과 기부행위가 결합된 이념적 실천운동입니다.국가도 개인도 아닌 ‘제3의소유’를 통해 시민사회국가를 지향하는 것이죠.
◆ 어떻게 내셔널트러스트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처음엔 그린벨트 운동을 했는데 정부가 이를 해제하는 걸보고 땅 매입을 통한 보존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습니다.영국서섹스대학에서 공부할 때 내셔널트러스트를 접했고 98년 객원연구원으로 다시 갔을때 집중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개인적으로 사회정치론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조명래교수는 누구인가.
□55년 경북안동 산□79년 단국대 법정대,92년 영국서섹스대 박사(도시및 지역학과)□현재 단국대 사회과학부교수,한국도시연구소 소장,‘공간과 사회’편집위원장,내셔널트러스트운동 운영위원장, 문화개혁시민연대 공간환경분과위원장,경실련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
□‘포스트포디즘과 현대사회 위기’(다락방) ‘녹색한국의구상’(푸른숲) ‘도시사회론’ ‘녹색사회의 탐색’(한울·출판중)등 저서 다수.
* 국내 NT운동 성공사례.
국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내셔널’트러스트라기 보다는 ‘로컬’트러스트의 성격이 강하다. 지역 단위에서 주민과 시민단체가 해당 지역 유산의 보존 결정을 이끌어내는양상이다.대표적인 사례 3건을 소개한다.
아파트건설로 사라져버릴 뻔한 동네 야산을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주민들이 돈을 모금해 직접땅을 매입함으로써 보존결정을 이끌어낸 첫번째 사례로 기록된다.
처음에는 조상의 묘가 훼손될 것을 염려한 경주 김씨 문중등이 그 지역 일대 30여만평을 그린벨트로 묶어달라는 청원을 냄으로써 시작됐다.그린벨트 지정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번엔 이곳을 녹지·휴식공간으로 이용했던 주민들이나섰다.환경운동단체와 함께 땅을 직접 매입해 개발로부터보호하는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주민 256명이 2,000만원을 모아 지난해 11월 대지산 중턱에 100평땅을 거점으로 확보했다. 그러나 토지개발공사가 당국의 허가를 앞세워 토지수용 조치에 들어가자 환경정의시민연대박용신 정책부장이 ‘나무 위 시위’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지난 10일 건설교통부는 대지산 일대 5만㎡와 개발제한구역 청원지역 21만㎡등 28만㎡를 공원 또는 녹지로 확충하겠다고 두 손을 들었다.
50년대 근대건축물과 이에 딸린 숲이 아파트건설부지로 팔리자 지역사회 주민들이 제3의 기관의 매입을 주선, 마침내문화재 지정을 앞두고 있는 사례.
오정골 선교사촌은 한옥과 양옥의 절충 설계로 건축사적 가치가 있는 근대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40여종의 희귀조류들이 서식하고 있는 소 생물권지역이다.99년 5월 이중 일부인 3,121평을 밀어내고 아파트 2개동이 들어선다는 소식을접한 교수 언론인 시민운동가들은 ‘오정골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을 구성하고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선언했다.부지매입을 목표로 ‘땅 한평 사기운동’‘1인1계좌갖기운동’을 추진했으나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자 토지매입 의사를 가진 한남대를 통해 보존을 유도하기로 방향을 바꾸었다.시민들은 10여회 이상의 협상을 중재,26억8,000만원에 한남대가 이를 매입토록 한 데 이어 시와 대학측을 설득해 이곳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관리될 수 있는 ‘대전시기념물’로 지정하겠다는 합의까지 받아냈다.현재는 문화재위원회의 등록문화재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93년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가장 오래된 내셔널트러스트운동.광주의 상징인 무등산을 난개발로부터 보호하자는 취지로 시민들이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를 결성하면서 시작됐다.‘한 계좌 1,000원모금’등을 꾸준히 벌여현재 모금액만도 1억7,000만원,개인이 매입해서 기증한 땅도 426평 갖고 있다.
지자체의 호응도 커 98년 광주시는 최초로 ‘무등산보호관리기금조례’를 제정하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시의회가 예산에서 1억원을 ‘무등산공유화기금’으로 책정하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환경부로부터 ‘재단법인 무등산공유화재단’허가를 받아 법적인 지위도 확보했다.재산권 행사가 안되고있는 사유지를 공시지가로 계약해 시민들이 한 평씩 사서재단에 기탁하는 방식으로 시민참여 분위기를 북돋운다는구체적 계획까지 세웠다.향후 5년간 50억을 모금해 개발압력을 받는 땅들을 우선적으로 매입할 계획이다.
신연숙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