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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마을호 3량 탈선 ‘아찔’

    휘어진 철로를 지나던 새마을호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열차운행이중단되고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29일 오후 1시48분쯤 경북 경주시 동천동 경주철교(길이 150m,일명 복천교량)를 지나던 서울발 울산행 제71호 새마을호(기관사 박주목·46)열차가 급제동하면서 기관차와 3,4호 열차 3량이 탈선했다. 사고는 철교밑 동천강변 도로를 지나던 경북15나 5001호 대형 펌프카(운전자 김도원·32)가 3.2m 높이의 교각 상판을 들이받아 상판 일부가 무너지며철로 50여m가 휘어져 일어났다. 사고 열차는 사고지점 400여m 전방에서 급제동하기 시작했으나 사고지점까지 미끄러져 기관차와 3호,4호 열차 등은 서로 부딪치며 기울어진 채로 철길을 이탈했다. 이 사고로 열차 8량에 나눠타고 있던 승객 250여명이 크게 놀랐으나 다행히인명피해는 없었다. 사고가 나자 부산지방 철도청과 경주역은 관광버스 10여대를 동원,승객들을 울산 등 목적지로 이송하고 복구작업에 나섰으나 완전 복구까지는 2∼3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경찰은 펌프카 운전사와 기관사,목격자 등을 상대로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주 이동구기자 yidonggu@
  • 5·18 20주년 소설·詩選集 어느 오월 광주의 상념들

    5·18 20주년 기념 소설집 '밤꽃'과 시선집 '꿈,어떤 맑은 날'이 도서출판이룸에서 출간되었다. 소설집(최인석·임철우 엮음)에는 90년대 초까지 발표됐던 중단편 10편이묶어졌다.윤정모의 '밤길'은 최후의 결전을 눈앞에 두고 광주항쟁의 진실을밖으로 알리기 위해 현장을 빠져나와 밤길을 재촉하는 신부와 청년의 번뇌를쓰고 있다.가해자와 피해자를 부부로 등장시켜 항쟁의 비극을 드러내는 한승원의 '어둠꽃',택시부대 일원으로 항쟁에 참여했다가 정신이상으로 넋을 놓아버린 남편에 관한 이야기 '어떤 넋두리',행방불명된 누나를 동생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이삼교의 '그대 고운 시간', 광주항쟁의 주체와 그들의 분열을 집중적으로 탐구한 문제작들인 홍희담의 '깃발'과 공선옥의 '씨앗불' 등이 실려 있다.이밖에 '녹슨 철길'(문순태) '포경선 작살수의 비애'(박양호) '머나먼 광주'(이청해) '어느 오월의 삽화’(채희윤) 등도 수록.시선집(김사인·임동확 엮음)은 주로 90년 이후 쓰여진 100명 시인의 시 101편을 담았다. 5·18 뿐아니라 광주,전라도,민족 등을 다룬 시들이포함되어 있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사투리를 숨기고 표준말로/이야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또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다 보면/당당하게 사투리를강조해서/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숨기는 사람의 가슴속에 들어 있는 공포나/드러내는 사람의 광기를 들여다보면/겁이 난다/사투리가 무섭다///(유용주 '사투리가 무섭다'일부)김재영기자
  • 5·18항쟁 문화적 영향/ 문학·출판부문 성과

    문학은 제일 먼저 느끼고 가장 늦게 잊는다.5·18 광주민주항쟁은 잊어버리고 싶으나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억울한 피의 기억,죽기 전에 다시 느끼고 싶은 뜨거운 시민 공동체의 삶이 있다.문학이 어찌 5·18을 모른체 할 수 있을까. 5·18을 소재로 한 5·18문학,광주문학은 지난 20년 동안 연면히 이어졌다. 5·18이 가지고 있는,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역사적 지형성과 풍부한 문학적 잠재량 등에 비춰 그간의 문학적 노력이나 성과가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이 있긴 하다.그러나 문학의 바탕이 되는 일반의 관심과 인식을 살필 때,5·18이 전국적·보편적 스케일로 성장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여러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광주 5·18의 피에 절은 꾸러미를 풀어보지도 않고서 싫증을 내며 창고에다 쳐박아 버렸다면 틀린 말일까.이같은 지역적 한계를 염두에 두면 소설이 주축이 된 지난 20년간의 5·18 문학화는 긍정적인 색채를 띤다.특히 최근 이삼년 5·18문학의 재흥 기류는 보다 더 확실하다. 5·18 문학은 80년대에는 외적 제약을 비집고 나오려고애를 썼고,90년대에는 내적 관심의 불씨를 다시 살리는 데 힘을 쏟았다.사태후 4년 가까이 거론조차 할 수 없는 금기였던 5·18은 ‘존재’가 점선,괄호로나마 인정되면서문학화를 출발시켰다.85년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광주항쟁의 전말과 의미를 민중적 전망아래 정리한 보고문학의 역작이나 본격 문학작품은 아니었다.본격작품은 이보다 다소 앞선 84년말 임철우의 단편 ‘봄날’을 꼽을 수 있다.5·18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유추하게 하는 이 작품은 내용도 항쟁의 당시상황이 아닌 항쟁이후 남은 자의 죄책감에 관한 것이다.이같은 사태이후의 후일담 성격은 알레고리나 우회적 언급을 차용한 작품화 방편을 거둬들인 뒤에도 80년후반 1차 광주문학 활성기의 주조라 할 수 있다. 광주문학을 연 작가 임철우는 이어 4년간 ‘직선과 독가스’ ‘사산하는 여름’ ‘불임기’ ‘관광객’ ‘동전 몇닢’ ‘어떤 넋두리’ 등의 광주 단편을 차례로 발표했다.윤정모의 85년 단편 ‘밤길’도 항쟁 현장을 빠져나온부끄러움을 이야기하지만 보다 강한 저항의 정신을 담고 있어 주목받았다.국회 광주특위가 가동된 88년에 발표된 중편들인 홍희담의 ‘깃발’과 최윤의‘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방향에서 커다란 편차를 드러내 넓어진 광주문학의 폭을 말해준다.시민군 주체와 관련해 노동자의 주도성을 급진적으로 해석한 ‘깃발’은 광주항쟁이 없었으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이며 항쟁 와중에 실성한 소녀의 실존적 후일을 그린 ‘저기 소리없이…’에서 광주사태는 역사성이 최대로 희석된 특수한 인간조건으로 확장된다. 80년대 말까지의 5·18문학은 87년과 90년에 차례로 나온 소설집 ‘일어서는 땅’(인동)과 ‘부활의 도시’(인동)에 집약되었다.문순태(‘일어서는 땅’‘녹슨 철길’)한승원 (‘어둠꽃’)이영옥(‘남으로 가는 헬리콥터’)정찬(‘완전한 영혼’‘새’‘슬픔의 노래’)정도상(‘십오방이야기’‘저기 아름다운 꽃 한송이’)공선옥(‘씨앗불’‘목마른 계절’)을 비롯 김중태 김남일 김유택 박호재 김신운 박원식 백성우 이명한 이삼교 홍인표 이순원등이 1차 광주문학의 축대에 돌을 보탰다. 문학의 역사성에 반기를 든 90년대 들어 5·18은 소설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으나 끝무렵 새얼굴의 문학을 솟구쳐 낸다.임철우는 97년말부터 98년초에걸쳐 장편 ‘봄날’ 5권을 완간,다시 광주문학의 기수 역을 맡았다.완성하는 데 10년이 소요된 이 대장편은 작가가 소설이 아니라 기록으로 읽어달라고주문할 만큼 비참하고도 찬란한 당시상황을 세밀하게 복원한다.이어 그때 수습위원으로 일했던 송기숙과 현지 신문사 부국장이었던 문순태는 올해 장편‘오월의 미소’와 ‘그들의 새벽’을 각각 내놨다.80년대에 볼 수 없었던항쟁기간의 디테일 삽입과 함께 화해와 테러를 동시에 모색하거나 노동자 출신 시민군의 마음 끝까지 더듬고자 한다.그리고 시인 황지우는 5·18 당시와 오늘을 역동적으로 엮은 희곡 ‘오월의 신부’를 지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처럼 90년대 말부터 재기한 2차 광주문학은 장편화와 입체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기억과 껴안음의 새 길을 열고있는 5·18문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층 뜨겁고 투명한 불꽃을피워낼 것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5·18은 민중문화 뿌리내린 주역”. 소설가 임철우(46)씨는 이맘때만 되면 예서제서 부지런히 들먹거려지는 사람이다.누구 한사람 ‘5월’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광주이야기를 감히 소설로 썼었다.그러나 여전히 맘은 편치 않다.그날의 이야기가 오늘로 남지 못하고 20년전 과거로 잊혀지는 지금,‘5월 작가’라는 이름표는 버거운 짐이다. “진상은 제대로 파악되지도 알려지지도 않았는데,모두들 부담스러워 잊어버리려 하는 게 5월의 역사 아닙니까? 광주시민들에게는 피눈물 솟구치는 현실이 세상사람들에게는 한낱 수습 끝난 과거가 돼있으니까요.5월만 되면 으레들떠서 설치는 언론들도 솔직히 밉상맞고 그렇습니다”그는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소리를 하느라” 청년기의 한 토막을 생으로 바쳤다.1980년 5월16일부터 27일까지 열이틀간의 ‘광주사태’(소설을탈고할 때까지 ‘사태’였다) 현장으로 아득바득 사람들을 이끌어간 소설이장편 ‘봄날’이다.모두 5권짜리 대하소설을 이태전 원고지 7,000장으로 묶어내기까지는 꼭 10년이 걸렸다. 그에게 소설은 단순한 글쓰기 영역이 아니다.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하지 못했던 그에게 그건 “비겁하게 살아남아 치르는 대가”일 뿐이다.전남대를 휴학하고 지역마당극단에서 연극운동에 몰입하던 당시 ‘광주사태’는글쓰기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다.아니,확신이라기보다는 의무를 주었다고 해야 옳다.등단하기도 전이라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치열하게 현장을 기록하고 다녔더랬다.광주시내 골목골목을 뒤지며 보이는 것,들리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적어뒀다.그 수첩 기록들이 고스란히 ‘봄날’ 원고속으로 들어갔다. ‘5월 문학’이란 용어를 그는 달가워하지 않는다.5월 이야기가 한국문학사의 엄연한 한 맥락인데,굳이 거기에 특별한 수식어를 달아 생색내는 것 같아서이다. “80∼90년대의 화두는 광주였습니다.그 화두를 꺼내 고통스런 십자가를 지는 역할을 문학이 자임했고요.5월 문학이 없었다면 ‘민중문학’이나 ‘민중론’이 목소리를 낼 터전도 없었겠지요.5·18은 우리 사회에 민중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문화예술에서의 민족 주체성을 확인시킨 주역이었어요”그는 5월 이야기를 다시 꺼낼 엄두를 못 내고 있다.5월을 폐광처럼 팽개치는 세상에다 또 그 이야기를 들이민다는 게 맥도 빠진다.“기력이 소생하기를기다린다”며 그가 웃었다.지난 3월 5·18연극 ‘봄날’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던 그는 요즘 수원 한신대로 출강한다. 황수정기자 sjh@. *6·29선언 계기 활발히 출간. 5·18의 참상을 친구들 간에도 터놓고 얘기하기가 불안했던 시절이 꽤 오랜기간 있었다.활자화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지난 85년 5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황석영 기록)가 처음 책으로 묶여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당시만 해도 비밀리에 인쇄를 마치고 제본작업을하다 발각돼 전량 압수당한 뒤 밤새 마스터인쇄로 조금씩 찍고 손으로 제본해 5,000부를 발행,대학가 서점을 통해 은밀히 판매했다.대학가의 필독서로자리잡았다. 5·18 관련단체와 종교단체 등이 증언록이나 자료집을 간간이낸 것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시피했던 5·18 관련서적은 87년 6·29선언을 계기로 활발히 출간되기 시작했다.‘죽음을 넘어…’도 이때야 정식출판됐다.이제까지 나온 책은 대략 수백종.종류도 시·소설 등 문학물에서 사진기록·자료·증언·수기집,취재기,정치·사회·법적 연구서까지 다양하다.‘광주민중봉기와미국’(이삼성) 등 잡지 등에 발표된 글이나 연구논문들도 많다.5·18 관련주요 서적을 정리한다. 김주혁기자 jhkm@
  • [대한광장] 5·18묘역 유감

    문산에서 서울역까지 달리는 교외선 열차를 볼 때가 있다.요즘은 기차 외벽에 꽃들을 그려 어여쁘다.동체를 길게 늘어뜨리고 봄 아지랭이를 삼키며어디론가 간다는 게 내게는 막막함 혹은 까닭모를 설렘을 생각하게 한다.이따금 선로를 보수하기 위해 곡괭이를 어깨에 메고 하염없이 가는 사람도 본다.어디론가 가버린 기차와 터덜거리며 걸어가는 선로보수원 중 누가 더 멀리 가는 것일까? 분명 힘을 내서 달려간 기차가 단순한 길이에서는 더 멀리갔을 것이다.하지만 생계라는 마음의 먼길을 향해 막막하게 걸어가는 선로보수원의 길은 체감의 측면에서 더 멀고 아득한 것이 아닐까? 침목을 받치고있는 자갈이 발부리에 걸려도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 선로보수원을볼때마다 나는 다리가 아프다. 요즘에는 철로 가를 외국산 초본 식물이나 영산홍을 심어서 한참 울긋불긋하다.미루나무가 한가하게 서있거나 망초꽃 혹은 달맞이꽃이 속절없이 피어있는 길보다는 훨씬 아름답다.이런 봄 철길 가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내게 무엇인가 보듬어버리고 싶은 가벼운신열을 일으키기도 한다.두 다리 바깥의피부를 잡아당기는 듯한 이 ‘가여운’ 신열,가슴은 막막하고.그렇지만 이러한 인공의 설렘은 아직 내게 익숙하지 않다. 얼마전 광주 5·18 묘역을 다녀와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깨끗하게 단장이되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장엄하고 엄숙하다는 느낌을 줄수 있도록 정돈이되어 그날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것같아 위안이 되었다.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조차 그 묘역이 정돈되어 있지않았다면 무척 답답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으리라.그 날 쓰러져간 사람들의 영정들이 따로 모셔져 있고 또 ‘그날’의 상황을 누구나 느끼고 알수 있도록 자료관이 갖추어져 있어 그날을 역사로만 아는 사람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줄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그런데 동시에 나는 꼭 이런 것인가라는 느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아마도 이런 소회는 이전의 광주5·18묘역을 참배한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우선 그들 많은 분들의 죽음이 소중해도 이른바 공동의 묘원에있는 사람들에 비해 너무 색다르게 꾸며져 있다는 어떤 이질감이 느껴졌고 또한 ‘그날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의 뜻과 의미를 나름의 자리에서 또 나름의 방식으로살아낸 사람들,예를 들면 이한열이나 강경대 등 학생운동가는 물론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거기에 더해 김남주 시인 등 광주5·18과 직접 관련이 있어돌아가신 분들과 격절되어 모셔져 있었기 때문이다.내가 들은 바로는 묘역조성과정에서 유족회가 여러가지 이유로 이른바 혈통으로 적장자 고르듯 직접적인 5·18 희생자들만 새로 조성한 묘역에 모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주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살려 이 땅에 참된 민주화와 통일 조국의건설을 위해 분투하다가 쓰러진 뒷날의 수많은 희생자들이 그렇게 분리되어있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안고있다는 생각이다. 예전 광주 5·18묘역에 유해를 모실 경우 유족회나 관련단체가 심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광주 민주화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그에 못지 않은 역사적 의미를지닌 사람들이 상당수 거기에 같이 모셔져 있어 광주민주화운동의의미를 확장시키고 발전시켰는데 지금은 구묘역 신묘역으로 나뉘어 있어 인위적인 두그룹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놓인 형국이다. 역사는 사유화될 수 없다.당시 그날의 현장에서 쓰러지지 않았다 해서 바로그날의 의미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을 분리시키는 것은 ‘광주의 의미’를 지나치게 좁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나날의 일상에서 또 자신의 전문화된 범위에서 ‘그날 광주’의 의미를 묻는 일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의 본뜻아닐까? 선로보수원이 기차보다 더 먼길을 간다. 강형철 숭의여대 교수 시인.
  • 민중가수·노래패 “새앨범 향해 진군”

    민중음악을 표방하고 나선 곽주림,김호철,이지상 등 한국민족음악인협회소속 가수들이 일제히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 운동권 가요의 ‘2000년대 버전업’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총선시민연대의 로고송 ‘바꿔’를 불러 주목받았던,대학노래패 ‘조국과 청춘’출신 곽주림은 여성로커로서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한 독집을 12일부터녹음한다.“음악으로 승부하겠다”며 극구 내용 공개를 꺼리고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조국과 청춘 분위기의 노래들과 ‘노란 참외’ 등이 수록될 예정이다. 역시 같은 단체와 ‘노래마을’ 소속이었던 손병휘가 포크를 기조로 한 프로그레시브 분위기의 새 앨범을 만들고 있다.도종환 시 ‘오늘 하루’와 안도현 시 ‘그대를 만나기 전에’ 등을 담아 5월 인터넷 등을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전대협노래단 준비위 출신으로 손병휘와 함께 작업했던 이지상은 ‘사람이사는 마을 2집-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에서 치열한 삶의 뒤안길에서 고통받는 공허와 허무에 대해 노래한다.백창우,정지원,신동호,민병일 등의 시에 곡을 붙여 조선독립군 출신 노인과 북한동포,기지촌 여성으로 살다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고 윤금이씨 사연 등을 노래한다.‘통일은 됐어’‘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철길’등. 노래마을에서 활동하고 ‘산책’ 영화음악에도 참여했던 윤정희도 서정적인삶과 희망을 노래한 앨범을 기획 중이다.가장 고전적인 의미의 민중음악 진영에 속하는 대구지역 노래패 ‘소리타래’는 준비중인 4집 ‘화수분’에서우리 가락과 록리듬의 접목을 꾀해 솔직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전달하겠다는 의지다.불러도 불러도 지치지 않는 희망의 화수분을 퍼올리겠다는 것이다. 80년대 ‘단결투쟁가’‘무노동무임금을 자본가에게’ 등 전투적인 노동가요히트곡들을 양산한 바 있고 90년대 들어 인터넷 방송 ‘노동의 소리’를 운영중인 김호철도 박준 2집,박은영,류금신 등의 새음반을 통해 그간 가다듬은목소리를 토해낼 계획이다. 이들의 실험정신이 21세기들어 어떤 변화를 치러낼지 주목된다. 임병선기자
  • [조약돌] 경부선 철길에서 돈벼락 소동

    16일 오전 6시30분쯤 경북 구미시 사곡동 경부선 하행선 철길에서 때아닌돈벼락 소동이 벌어졌다. 김천발 부산행 무궁화 303호(기관사 이보현·39)가 서울기점 280.6㎞지점에서 철길에 놓인 가로,세로 60㎝ 크기의 금고를 들이받아 금고가 부서지면서5,000원권과 1만원권 등 현금 수백만원이 철길 부근에 날렸다. 신고를 받은 구미역 직원들이 급히 현장에 도착,현금 108만원을 회수했다. 이 금고는 이날 새벽 구미시 송정동 모 개인병원에서 분실된 것으로 병원측은 5,000원권 250만원과 1만원권 70만원 등 현금 320만원과 백지 가계수표등이 들어있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회수하지 못한 나머지 현금과 수표는 급정차한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주워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절도범이 금고를 부수기 위해 철길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구미 한찬규기자 cghan@
  • ‘박하사탕’촬영무대 제천 진소마을을 찾아서

    영화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박하사탕’이 그랬다.영화는 주인공 김영호가 달리는 기차를 마주하고 철로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소리치며 인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현재 그의 모습을 보여주고왜 그렇게 됐는지를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영상으로 보여준다. 김영호 인생의 출발과 종착점이 됐던 그곳에서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싶었다. 촬영지는 충북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진소(眞沼)마을.천등산 끝자락이다.이곳에서 영호의 청춘은 시작됐다.영호는 동료의 눈을 피해 첫사랑 순임과 서로 눈길을 주고 받으며 가슴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왜 이곳이었을까 궁금했다. “장소를 물색하러 전국을 다니다 이곳을 발견했어요.터널을 빠져나온 기차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지 않고 곡선을 그리며 달려 영화 속의 기차길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적당했지요.” 제작사인 이스트필름 관계자의 이야기다. 진소마을은 충북선 삼탄역과 공전역 사이에 있다.기차가 천등산을 관통한 터널을 빠져나오면 철교를 지나 마을을 끼고달려간다.철교 아래는 제천천의지류가 흐르고 있었다. 원래 이 강은 이름이 없었다.제천시내를 거쳐온 물이라 하여 그냥 제천천이라고 불렀다.그러나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마을 이름을 따 진소천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충주와 제천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에 깊은 못이 있었답니다.그런데 못 주인이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귀찮아했고 못을 메우면 발길이 뜸해질 것이라는 말에 솔깃,못을 메웠고 이후 사람들의 발길은 끊기고 못 주인은 망해 마을을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이 마을 농촌지도자 한기걸씨의 이야기다.‘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들으니 영화처럼 기차를 타고 시간여행을 떠난 듯했다. 한때 20여 가구가 살았으나 모두 떠나고 현재는 3가구가 살고 있다.고추·담배·콩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른다. 하루 4차례씩 달리는 충북선 상·하행선과 수시로 달리는 화물열차가 적막을 깰 뿐이다. “어릴 때는 이 기차길을 따라 공전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지요.”한씨는기차가 지나가면 귀를 꼭 막고있다 꼬리를 밟으려고 뛰어가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기차길을 걷다 철길을 내려가 강물을 보았다.강물 방향이 반대였다.역류하는것처럼 보였다.산을 끼고 S자형으로 굽어 흘러가서 그렇단다. 강 흐름이 궁금해 물길따라 왔던 길을 되돌아 10여분을 가니 ' 합천 (合川·명암마을)'이란 팻말이 보였다.지명 그대로 강물이 합쳐지는 지점이다. 진소천과 천등산 덕동계곡에서 시작된 원서천이 만나는 곳이며 제천천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진소천에서 제천천에 이르는 물길은 강 흐름과 산세가 동강과 비슷하다 하여 충청도의 동강으로 불린다. 멀리 기차소리가 들려왔다.주인공 영호의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절규와‘나 어떡해’라는 젊은이들의 흥겨운 노래가 교차하면서 메아리쳤다. 제천 강선임기자 * 가는길 -기차 서울 청량리역에서 중앙선을 타고가다 제천에서 충북선으로 바꿔타고 10여분 가면 나오는 공전역에서 내린다. 버스를 타고 백운면으로 와서 한치마을행 버스(오전 7시,오후 2·6시 하루세차례 다님)를 타고 30∼40분쯤 덜컹거리는길을 가다 백운초등학교 애련분교 앞(한치마을)에서 내린다.오른쪽에 있는 허름한 콘크리트 건물을 끼고 돌아 30분 정도 시골길을 걷어가면 진소마을이 있다. -고속버스 충주나 제천에서 내려 충주와 제천을 오가는 버스를 타 백운면에서 내린다.(충주에서 내리면 다릿재를 넘어야 하고 제천에서 내리면 박달재를 지나야 한다.)이곳에서 한치마을행 버스를 탄다. -승용차 중부고속도로를 타고가다 호법IC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남원주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옮겨 서제천에서 빠져나온다. 38번 국도를 따라가다 박달재를 넘어가면 바로 백운면이 나온다. 덕동계곡 팻말에서 좌회전하여 명암마을,한치마을을 지나면 진소마을이다. - 음식점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식당을 찾기 힘들다.시간에 따라 백운면 대흥식당(0443-652-6067)에서 손칼국수를 먹거나 진소마을 가는 길에 있는 느티나무집(0443-46-5832)에서 먹는 얼큰한 매운탕도 맛있다.박하사탕 촬영팀이 이곳에서주로 식사를 해결해 주인의 구수한 말 솜씨로 촬영 뒷이야기도 덤으로 들을수 있다.반주를 곁들이고 싶으면 이 지역 특산주인 고본주를 맛보는 것이 좋다.고본주는 월악산에서 나는 고본을 이용해 담은 술.혈액 순환을 원활하게해줘 옛날에는 사약에 넣었다고 전해진다. -숙박시설 충주호 주변에 숙박시설이 있으며 박달재 자연휴양림(0443-652-0910)을 이용할 수 있다.
  • [21세기 내고장 역점사업](51) 전남 곡성군

    ‘칙칙폭폭…,섬진강 기차마을’ 증기기관차는 배 고프던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던 사람들에게 신발을들고 기적소리를 뒤쫓아 마냥 달리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 점에 착안해 전남 곡성군이 전국 최초로 기차를 주제로 한 테마공원을만든다.증기기관차에 섬진강변의 들꽃과 바람을 접목시켜 관광상품화하겠다는 것이다.침체된 관광산업을 되살리기 위한 승부수다. 곡성군은 전라선(이리∼여수) 직선화 사업으로 쓸모 없게 된 섬진강변 철로 17.9㎞와 부지 20만1,861㎡을 활용,기차마을과 강변 인근 관광명소,호국 유적지 등을 연계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기차마을은 2001년 5월 5일 어린이 날에 개장되고 2002년 상반기안에 증기 기관차가 달린다. ?재원 2002년까지 3년동안 민간자본 등 200억여원을 투입한다.내년 예산에확보한 국비 4억원 등 8억2,000만원으로 옛 곡성역사와 주변 부지 등을 정비한다.내년 1월 실시설계와 2월 민간자본 유치 설명회 등으로 60억여원을 모을 계획이다. 2002년에는 민자 30억여원 등 120억여원으로 레저·스포츠 유원지 등을 만든다.2006년까지 투자한 원금을 회수하고 이듬해부터 연간 20억여원의 이익을 낼 것이란 용역결과에 고무돼 있다. ?구간별 개발계획 옛 곡성역∼압록역(13.2㎞) 구간에는 증기 기관차가 다닌다. 옛 곡성역사는 생활사 박물관으로 꾸며 세계 각국의 축소모형 기차와 국내기차 발달사 자료,어려웠던 시절의 농촌 생활상 관련 물품을 전시한다. 또 철로 주변 곳곳에 초가집을 지어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연출한다.집 안팎으로 코스모스·목화·철쭉 등을 심어 60∼70년대 농촌의 정경을 담아낸다. 또 강변에 가족단위 놀이공간 21만여㎡,녹색 생태공원 1만5,000여㎡,먹거리 기차마트 1만여㎡ 등을 조성한다. 특히 철길아래 시퍼런 강물을 이용해 자연형 레저·스포츠 유원지를 비롯,전망 좋은 곳에 계절별 특색을 살린 건강마을을 만든다. 한편 섬진강 2교∼옛 곡성역(4.7㎞) 구간의 철로는 걷어낸다.휴식과 운동장소로,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만들고 길 옆으로 넝쿨 장미를 심어 꽃 터널을꾸민다. ?관광산업 연계 산촌의 전원생활을 만끽하고자 하는관광객을 겨냥해 석곡면 염곡리 노치마을을 녹색 관광마을로 지정해 전략적으로 개발했다. 또 기차마을 인근에 산재한 볼거리를 테마별로 묶어 순환형 관광코스(7개권역 53곳)를 개발중이다. 성륜사·심청공원 등 옥과권과 녹색관광마을의 석곡권,동악산∼형제봉 등산행코스,태안사∼연화사∼도림사∼관음사를 잇는 사찰과 섬진강변을 따라산재한 호국역사 유적지 순례코스 등이다. ?철도청과 협의 군수와 관계 공무원이 철도청을 여러차례 방문해 긍정적인답변을 받아 놓은 상태다.철도청도 경영수익사업으로 폐선로와 부지를 재활용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곡성군의 제안을 반긴다. 철도청은 폐선로와 관련 부지 등을 현물로 출자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다만 기관차는 빌려주되 증기 기관차가 국내에 없기 때문에 기술적인 자문을 통해 곡성군의 증기기관차 특수제작을 도울 계획이다. 곡성 남기창기자 kcnam@ **高玄錫 곡성군수 인터뷰“2002년 기적소리 울릴것”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살려 ‘다시 찾고 싶은 곡성’을 만들어 가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고현석(高玄錫) 곡성군수는 ‘섬진강이 흐르는 젊은 곡성 비전 21’을 기치로 내걸고 관광산업 육성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밝혔다. ?곡성은 옛부터 지리산 관광권의 길목으로 섬진강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데도 인근 남원 춘향골과 지리산권 등 유명 관광지에 묻혀 인지도가 낮은 게사실이다. 전라선 개량공사로 남은 폐선로가 섬진강 협곡을 끼고 국도 17호선과 나란히 달린다.경관이 수려한 이 철로 주변에 기차마을과 놀이공간 등을 조성할 경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특색있는 관광지로 발돋움 할 것으로 본다. ?열악한 재정형편상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텐데. 총 사업비 200억원중 2000년에 우선 국비 34억원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여기에 군비 4억원을 보태 38억원을 마련,20억원으로 철로 주변 땅(5만평)을 사고 10억원으로 특수기관차를 제작하며 8억원으로 옛 곡성역사를 정비할계획이다.다만 민자를 얼만큼 끌어 모아 기반시설 조성에 쏟아부을 수 있느냐가 사업 성공의 관건이라고 본다.마지막으로 민자 유치가 쉽지 않을 경우민·관 합작형태인 제3섹터 방식도 고려중이다. ?열차 임대는 어떤가. 철도청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철로와 인근 부지,건물 등을 출자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 곡성군과 철도청이 협의체를 구성해 세부적인 사항을 논의해야 하지만 별다른 걸림돌이 없을 것으로 본다. ?기차 운행 시기는. 내년에 어떻게든 증기기관차를 특별 제작하려고 한다. 국내에는 증기기관차가 없기 때문에 증기기관차 모형의 특수 기관차를 제작해 늦어도 2002년 초에는 열차가 기적을 내뿜으며 달릴 수 있다. 곡성 남기창기자 **전남 곡성군 '효의 대명사' 효녀 심청공원 ‘효녀 심청공원’ 곡성군은 ‘효(孝)의 대명사’로 통하는 ‘심청이’를 통해 무너져 가는 도덕성을 회복하고 효 사상을 다져감으로써 곡성이 ‘효의 본산’임을 알리기위해 이 공원을 만들었다. 지난 3월 문을 연 심청공원은 백제 고찰인 오산면 선세리 관음사 앞 300여평에 조성됐다.우선 효행비 1기와 심청전에 나오는 인물 23명을 장승으로 형상화해 23개를 세웠다. 앞으로 국내 200대 성씨의 문중에서 효행자를추천받아 위패와 영정·족보등을 전시하는 ‘효 박물관’을 이곳에 세울 계획이다. 또 길목인 호남고속도로 옥과 인터체인지에서 심청공원(7.5㎞)까지 흰불두화·흰만리향화·흰진달래 등 3백화(白花)를 심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이어 심청공원에서 관음사(4.7㎞)에는 장승 100기를 세워 장승거리로 조성할 방침이다. ‘심청전’의 원형 작품은 관음사의 창건을 알려주는 연기설화.서기 300년쯤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설화의 주인공인 원홍장을 모델로 해 심청전이 생겨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대학기관의 고증 결과 중국 진(晉)나라 제후 심공이 동방에서 온 원홍장을부인으로 맞았고 원홍장은 관습에 따라 남편에 맞춰 성을 심씨로 바꿨다는것.당시 흔적과 심청전과의 관계를 확인해 주듯 중국 저장성(浙江省) 보타구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 연꽃처럼 보인다는 연화(蓮花)바다와 심씨촌이 있다.
  • [대한매일을 읽고] 철로변 학교부지 배정 안전 우려

    학교부지를 철길 옆으로 배정한 장삿속 기사(대한매일 10월15일자 24면)를읽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음과 진동 등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기존의 학교도 쾌적한 곳으로 옮기고 있는데 부산시와 부산도시개발공사가 아파트 분양 저조를 우려해 10곳의신설학교 부지를 철로변 근처로 설계변경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철로변에 학교가 들어서면 수업에 지장을 줄 것은 뻔하고 학생들의 안전사고도 우려된다. 그러다 안전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한번 지으면 50년 이상 사용해야할 학교를 이렇게 졸속행정과 얄팍한 상혼으로 지었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 학교를 옮겨줄 것인가. 아니면 일단 지어놓으면 어쩔 수 없을 것이란 배짱인가.쉽게 고칠수도 없는일을 잘못된 줄 알면서 그대로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이인숙[경남 사천시 용강동]
  • 6·25참전 美軍증언

    [워싱턴 AP 연합] 1950년 8월 3일 미군은 왜관교와 고령교를 폭파하면서 수백명의 양민도 함께 숨지게 했으며,이 일이 있기 전에도 피란민들에게 총격과 포격을 가해 숨지게 했었다고 미 참전병사들은 증언했다. 제대군인인 에드워드 L.데일리는 왜관교의 경우 북한 인민군의 남진으로 밀려드는 피란민들을 저지하기 위해 피란민 머리 위로 경고 사격을 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피란민의 남하를 저지하는데 실패한 미 1기갑사단 사령관 호바트 게이 소장의 지시로 왜관교에 장전한 폭약을 터뜨렸으며,폭발과 동시에 불길이 치솟았고 교량 지지대들이 산산조각났다고 데일리 등 다른 병사들이 전했다. 왜관교에서 40㎞ 하류에 위치한 길이 195m의 고령교 폭파도 이보다 약간 앞서 일어났으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 육군 공병이었던 조지프 이포크는 “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외쳤지만 다른 병사들이 ‘폭파해야 한다.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제14 전투공병대 병장 출신의 캐럴 킨즈먼은 “제 14 공병대가 이틀간에 걸쳐 3,000㎏의 폭약을 설치한 뒤 당일 오전 7시 1분에 폭파 명령이 떨어졌으며 이어 폭발과 함께 다리가 산산조각났다.당시 다리에는 피란민들이가득했다”고 말했다. 앞서 1기갑사단 병사들은 다리 폭파가 있기 하루 전인 2일 수십명의 다른군인들과 함께 낙동강으로 퇴각중이었으며,이들 뒤를 80명 가량의 흰옷 입은 한국인 피란민들이 뒤따르고 있었다고 참전병사들은 전했다.그런데 오후 민간인으로 가장한 5명의 인민군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당시 상황을 에드워드 데일리는 “북한군이 발포하자 즉각 사살했다”고 말한 반면,유진 헤슬먼은 “인민군들이 항복해 끌려갔다”고 엇갈린 증언을 했다.헤슬먼은 “인민군들이 피란민 사이에서 나왔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우리는 피란민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대부분 사살했다”고 말했다. 이보다 1주일 전쯤에도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160㎞ 떨어진 철길을 따라 걷던 피란민 수백명에 대해 미군의 박격포 공격이 이뤄졌다고 1기갑사단 재향군인들은 회상했다. 제임스 맥리어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대령이 포대에 무전을 보내 그들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죽이라고 지시했다”면서 “포탄이 떨어진 뒤 팔다리,몸뚱이가 어지럽게 널렸다”고 덧붙였다.
  • [김삼웅 칼럼] 다른 양민학살도 밝히자

    6·25한국전쟁 발발 다음날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만행이 반세기 만에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나는 1995년 이맘 때 ‘해방후 양민학살사’란 책을 쓰면서 현지를 취재한적이 있다.50년 6월 25일 영동군 일대와 대전지역에서 피란온 많은 사람이노근리 부근 금광굴에서 피란생활을 하고 있었다.26일 한낮이 되자 미군이일본인 통역을 대동하고 나타나 주민들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명령하여 주민들은 내키지 않는 피란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피란민이 경부선 열차의 철길을 따라 노근리에 당도했을 때 미군들의 무전연락을 받은 미군 전투기 2대가 나타나 피란민들을 향해 무차별 기총사격을 가하는가 하면 인근의 미군들도 일제히 총을 쏘아댔다는 것이 생존 주민들의 증언이었다.4월혁명이 나던해 11월 유족들은 미국정부가 피해보상을 해준다고하여 서울에 개설한 소청사무소에 배상을 청구했다.그러나 소청사무소는 “법정기한이 경과한 후 제출한 것이기 때문에 심의할 권한이 없다”는 답변으로 유족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곧 5·16쿠데타가 일어나 이 사건 역시 다른 양민학살사건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졌다. 불행한 한국 현대사는 수많은 양민학살의 비극을 겪어왔다.양민학살은 우리시대의 아물기 어려운 비극이고 상처이다.결코 덮어둔다고 아물 수 없는 상처인 것이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인민군이나 외국군에 의한 양민학살도 심했지만 우리군과 경찰, 우익단체들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도 수없이 많았다.학계는 45년 해방에서 공비토벌이 끝나는 10여년 동안에 6·25전쟁으로 인한 군인·군속 등 전쟁 관련 희생자를 제외하고도 줄잡아 100만 명으로 추산한다.희생자대부분이 이데올로기 문제로 죽어갔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고한 양민들이었다. 이들은 좌익척결의 이름으로,공비토벌의 명분으로,통비분자라는 혐의로,용공이적·인민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죽어갔다.6·25전쟁의 와중에서 발생한 양민학살 사건으로는 남원·문경·부산·해남·완도·고양·함평·임실·고창·순창·무주·산청·함양·거창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제14대 국회는 ‘거창 양민학살사건 관계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제정한 바 있고 현 국회는 ‘제주 4·3양민학살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활동중이다. 또 고양시 금정굴 양민학살과 전북 함평지역에서도 진상조사위원회가 활동한 바 있다. 우리 민족처럼 망자(亡者)에 대해 정성을 다하는 민족도 흔치 않다.그런데무고하게 죽은 100만 혼령의 대부분이 유골 수습도 제대로 안되고 진상규명도 안된 가운데 반세기를 보내고 있다.이것은 사자에 대한 도리가 아닐 뿐더러 문명국가의 수치스런 일이다. 양민학살 실태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더 이상 미루다가는학살실태를 밝혀줄 공공기관의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당시의 참상을 증언할 목격자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영구미제로 남게 된다.행자부에 따르면 거창사건은 위령비 건립 등이 추진중이며 함양·산청사건도 진상규명이 끝나명예회복이 추진중이라 한다.여타지역의 사건도 조사에 나서야 한다.4월혁명후 세상이 바뀌면서 진상규명 작업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지만 군사정권은 유가족과 사회단체들이 유골을 찾고 위령비를 세우고 진상을 청원하는 행위를‘용공’으로 몰아 탄압했다. ‘국민의 정부’는 과거 정권과 달라야 한다.국회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전국적 조사에 착수하고 정부가 뒷받침해야 한다.그리하여 유골을 수습하여 영원한 안식처를 만들고 위령탑을 건립하고,명예회복과 위령제를 지내용서와 화해의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 미국 남북전쟁때 남·북군 4만여명이 숨진 게티스버그에 링컨이 세운 국립군사공원,프랑코가 스페인 내전때 ‘전몰자의 계곡’에서 사망한 수십만명장병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대사원을 세운 것에서 우리는 배울 바가 있어야한다.양민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미래에 그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못하도록 하는 역사 교훈으로서도 중요한 것이다. 김삼웅 주필
  • [철도 100년] 21세기 청사진

    “화륜거(火輪車)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독립신문(1899년 9월19일자 3면)은 한국철도가 국내 최초로 1899년 9월18일경인선 노량진∼제물포 33.2㎞ 구간의 운행을 위해 노량진역에서 기적을 울리며 떠나던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국철도가 18일 창설 100돌을 맞아 지난 한세기동안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전국 반나절 생활권 시대’를 열 채비를 하고 있다.오는 2020년이면 주요 간선의 복선화,전철화와 더불어 평균 시속 200㎞의 열차가 투입돼 전국주요 도시를 3시간안에 연결하게 될 전망이다. ■반나절 철도생활권이 열린다 지난 89년 5월 추진방침이 결정된 경부고속철도는 점유용지가 도로의 8분의 1,에너지 소모량은 자동차의 20분의 1 수준으로 다가오는 21세기 육상교통을 선도할 것으로 평가받는다.서울∼동대구 구간은 오는 2004년 4월 개통된다.전 구간이 뚫리는 2010년에는 최고 시속 300㎞로 서울∼부산 412㎞를 2시간40분(현 새마을호 4시간 10분 소요)에 주파하게 된다. 이와 함께 철도청은 21세기 철도망 구축을 위해 우선 1단계로 오는 2002년까지 경부선 수원∼천안,경인선의 복복선화와 호남선 송정리∼목포 구간 복선화,경부선 천안∼조치원과 충북선을 전철화할 예정이다. 2단계(2003∼2007년)에는 경부선과 호남선을 전철화하고 대구선과 경원선,경의선을 복선 전철화하는 등 국가 기간철도망의 대략적인 골격을 완성한다.3단계(2008∼2012년)에는 교통수요 증가에 대비한 고속·대량간선 철도망과남북·동서축의 기간 철도망 확충을 위해 경춘선,장항선,전라선,군산선,동해남부선을 복선 전철화한다.포항∼삼척 노선도 새로 생긴다.마지막 4단계(2013∼2020년)에는 영동선,경북선,태백선,중앙선을 복선 전철화하고 춘천∼속초,김천∼진주,보령∼조치원 노선을 신설한다. 이 때가 되면 서울∼부산 2시간40분,서울∼장항 1시간42분,서울∼목포 2시간58분으로 각각 단축돼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접어든다. ■통일철도 어떻게 돼 가나 남북의 혈맥처럼 이어지다가 잘린 철길은 경의선(서울∼신의주) 경원선(서울∼원산) 금강산선(철원∼내금강) 등 3개 노선.이들 철길은 82년 1월 정부의 ‘남북 기본관계에 관한 잠정협정’ 제의에 따른대북 시범사업으로 경의선 복구계획이 수립된 뒤 91년 12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철도연결 합의가 이뤄지는 등 복구를 위한 희망이 움터 왔다. 철도청은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지난 84,85년 경의선 단선구간(문산∼봉동20㎞)가운데 남측구간(문산∼장단 12.0㎞)의 복구를 위한 세부설계를 마치고97년엔 용지매입을 끝냈다. 경원선도 단선구간(신탄리∼평강 31.0㎞)가운데남측 단선구간(신탄리∼월정리 16.2㎞)도 91년 세부설계와 97년 용지매입을완료했다. 정부는 고속철도의 경우도 통일 뒤에는 경의선고속철도(서울∼신의주) 경원고속철도(서울∼원산) 평원고속철도(평양∼원산) 등을 건설,이미 남한에서운행 중인 고속철도와 연계 운행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처럼 남북철도망이 다시 연결되면 중국횡단철도(TC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통해한반도에서 유럽지역까지 열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날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박건승기자 ksp@
  • 권희로씨 ‘마지막 면회’

    [도쿄 황성기특파원] 박삼중 스님은 6일 도쿄에서 가진 회견에서 지난 2일과 3일 후추 형무소 마지막 면회 때 권희로씨와 나눈 대화내용을 소개했다. 권씨의 심정이 담긴 내용을 요약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부모님의 제사를 내손으로 모시고 싶다.긴 감옥생활로 인해 현실적응이 잘 될지 걱정이지만 열심히 살겠다.부산에 고모와친척이 있는데 이번에 스님이 찾아주셔서 너무 기쁘다. 아버님은 내가 다섯살 때 돌아가셨지만 훌륭하신 분이었다.의붓아버지가 들어온 뒤 집안은 엉망이 됐다.동생들과 밥을 굶기가 예사였다.열살이 되기 전부터 나는 냄비공장 심부름꾼,야채상 심부름꾼 등 갖은 험한 일을 다했다.잘 곳이 없어 역구내에서 자다가 경찰에 붙잡혀가 실컷 두들겨 맞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어머님은 언제나 고향 부산을 그리워했다.모친의 유골이나마 부산으로 모시고 가게 돼 기쁘다.내 고향은 부산 수정동이다.형제들을 고생시킨 게 참으로 마음에 걸린다.바로 밑 여동생 권풍자가 고생한 게 특히 마음 아프다. 출소가 눈앞에 오니 잠을 이룰 수가 없다.귀국 후 비행기 트랩을 내릴 때는 우리 모시적삼에 마고자,고무신 차림을 하고 싶다.예전에 어머님이 챙겨주시던 김치,나물,불고기가 너무나 먹고 싶다.감옥을 나가면 정문 앞 벤치에앉아서라도 제일 먼저 한국음식을 먹고 싶다. 내가 싸우고 저항한 것은 일본 전체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다.약한 사람을차별하고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개 돼지 취급하려던 부류와 싸운 것이다.나는 그런 대접을 당하면 지금도 그때같이 맞서 싸울 것이다.일본인들의 차별을 견디다 못해 어린아이를 안고 물에 몸을 던진 아낙네도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지탱시켜준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사건 당시 어머님은내게 남자답게 당당하게 죽으라고 하셨다. 나는 아홉살 때 의붓아버지 학대를 못견뎌 집을 나왔다.며칠을 꼬박 굶으며 히로시마 오노미치란 작은 항구까지 철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하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 철로에 귀를 대고 “어머니 힘을 내세요.꼭 성공해서 어머니를호강시켜 드리겠어요”라고 다짐했다.그 약속을 못지켜드리고 어머님을 저세상으로떠나보낸 불효를 저질렀다.저 세상에서 어머니를 만나 무슨 말로 용서를 빌어야할지 모르겠다. marry01@
  • “나는 해충같은 존재” 신창원 일기 재구성

    신창원의 일기장은 ▲법 집행과 행형에 관한 불만 ▲도피생활과 경찰을 따돌린 행적 ▲자신의 삶에 대한 소개 등 크게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일기장에는 98년 1월 전북 익산 역전파출소 앞에서 경찰을 뿌리치고 달아난 일등이 적혀 있다.신의 일기장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익산역 탈주 98년 1월8일 익산역 근처에 있는 호프집에서 영숙이와 함께식사를 하고 있는데 6∼7명의 사내들이 들어왔다.그들은 내게로 와서 “신창원이 여기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그런다”며 신분증을 요구했다.나는 “주민등록증을 갖고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형사들은 내게 윗옷을 벗어보라고했다.나는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파출소나 경찰서에 함께 가서 신원을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경찰 승합차를 타고 역전파출소로 갔다.차가 파출소 앞에서 멈춘 뒤형사가 내 바지를 잡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팔을 뿌리치고 한 형사를 빠르게 밀치자 틈이 생겼다.그 순간에 나는 그 틈으로 뛰었다. 막 뛰는데 “쏴라”는 소리가 들리고 여러 군데서 총성이 들렸다.총을 피하기 위해 지그재그로 뛰는데 앞에 창고 같은 건물이 있었고 우측으로 꺾어지는 모퉁이가 있었다.그곳을 돌아 다음 담까지는 20∼30m.그 담 위로 몸을 던지는 순간 자동소총을 쏘는 듯한 총성이 연속으로 들렸다.담을 넘어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철길 쪽으로 가는데 창고를 돌아서 포위하려고 온 듯한 형사 2명이 사격을 해 반대쪽으로 방향을 돌려 빌라쪽으로 가서 담 위로 몸을 날리는 순간에 7∼8발의 총성이 더 들렸다.나는 담을 넘어 빌라단지 안에 상의를 벗어 놓고 T셔츠 차림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경찰이 나를 향해 쏜 총알은 최하 30발 이상이었다.0.5초만 늦었어도 내 몸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아마 사살령이 내려진 것 같다.뛰는순간 곧바로 집중사격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나쁜 놈에다 사회에 해충 같은존재인 것은 분명하다.범죄를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 ■천안 도피생활 (97년 10월18일 천안시 목천면 삼성리 한영빌라에서 평택경찰서 원종렬(元鍾烈) 경장을 따돌리고 달아난 뒤 천안에 있는 애인 전모씨에 다시 나타났을 때) 그들(원경장 등을 지칭하는듯)이 해분이(애인 全씨의 이름인 것 같다) 혼자 있는 집에서 안방을 차지하고 해분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가.그들은 나를 더 이상 수사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하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해분이를 건드렸다.이것은 해분이가 울면서 내 뺨을 때리면서 한말이다.그 자리에 성경이(97년 11월1일 평택에서 동거를 시작했던 姜모양을가리키는 것 같다)도 함께 있었다.해분이에게 7∼8대 뺨을 맞으면서도 그냥있었다.내게도 잘못이 크기 때문이다. ■익산 은거 1 (98년 1월11일 천안시 광덕면 산천식당 앞에서 경찰 2명과 격투 끝에 권총을 빼앗아 도주한 뒤 3월6일 김제시 금구면 대화리 신선휴게소앞에서 낚시배낭을 벗어던지고 도망갈 때까지 사이인 것 같다) 익산에 있을때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 있었다.추운 겨울 손목 3군데가 부러지고 머리6∼7군데가 깨진 상태에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벌거벗은 채 이틀을 견뎠고 울면서 뼈를 맞췄다.비스킷 하나로 하루를 살며 두 달을 버텼고 썩은 고기를 먹고 며칠을 복통으로 신음했다. ■익산은거 2 (98년 3월6일 신선휴게소 앞에서 달아난 뒤 7월16일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서 경찰과 격투를 벌인 때 사이인 것 같다)비오는 날 잠을 잘곳이 없어 비를 맞고 자다가 심한 몸살도 앓아 봤고 한여름에는 모기에 물리면서도 잠을 자야 했다.아침에 일어나면 온 몸이 마치 두드러기가 난 것 같이 부어올랐고 몸에 피가 날 때까지 긁고 또 긁으면서 두 달을 넘게 살았다. 이런 것은 견딜 수 있다.이보다 몇 배 더 힘든 것도 견딜 수 있다. 매일 술을 마셨고 낮에는 논에 가서 쓰러진 벼를 베었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마치 미친 놈처럼 쉬지 않고 일을 하니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보았다.내가 벼를 벤 것은 농부들이 불쌍했기때문이 아니라 내 몸을 학대하면서 일을 하는 동안에는 분한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 ‘창원 어린이 교통공원’개원

    어린이에게 교통질서와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하는 ‘창원 어린이 교통공원’이 오는 15일 문을 연다.경남 창원시(시장 孔民培)는 지난해 11월부터 2억3,000만원의 사업비로 대원동 레포츠공원에 조성해 왔던 어린이 교통공원이마무리됐다고 5일 밝혔다.시내 39개 초등학교와 88개 유치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교통관련 교육을 하게 된다. 전체 면적 1,200여평인 교통공원에는 너비 1.6m인 왕복 2차선 도로와 보도,터널 횡단보도 교차로 자전거도로 신호등 경보기 철길건널목 교통안전표지판 등이 갖춰졌다. 시는 올해 유치원생 9,700명,초등학생 2만7,800명 등 모두 3만7,000여명을교육할 계획이다. 창원l李正珪
  • 수영국가대표 7시간 피랍

    국가대표 여자 수영선수가 괴한들에게 납치됐다가 7시간 만에 풀려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지난달 31일 오후 4시50분쯤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정문 앞에서국가대표 수영선수 李모양(16)이 괴한 3명에게 승합차로 납치됐다. 李양은 “뒷머리를 주먹으로 맞고 의식을 잃었다”면서 “깨어보니 승합차문을 여닫는 소리가 났고 눈과 발이 테이프로 묶여 있었다”면서 “서울 말씨를 쓰는 젊은 남자 2명과 40대 전후의 남자 1명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李양은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린 제54회 회장기 수영대회에 출전한 뒤 대구 고향집에 들렀다가 태릉선수촌으로 복귀하던 길이었다. 범인들은 李양의 휴대폰으로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42)에게 “수영을 그만두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수영을 시키지 않겠다”는 대답을듣고 1일 0시15분쯤 李양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역전 화물터미널 근처 철길에 내려놓고 달아났다. 李양은 경찰에서 범인들이 지난 2월22일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새로 선발된선수들의 이름을전부 알고 있었고 “전에 있던 선수들을 내쫓은 사람들은무사하지 않을 것이다” “감독이 수영계를 말아 먹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국가대표선수 선발과 감독 교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범행으로보고 최근 국가대표 감독에서 물러난 朴모씨(46)를 불러 조사했다.국가대표에서 탈락한 高모(20)·趙모군(20) 등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경찰은 그러나 “뒷머리를 주먹으로 맞았다고 진술했지만 뒷머리에서 상처를 발견하지못한 데다 진술에 일관성이 없어 납치 자체가 거짓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고 밝혔다.
  • [기고] 남북간 끊어진 철도 다시 잇자

    최근의 남북관계를 바라보면,6공의 북방정책이 문민정부의 수많은 실책으로 이어지면서 남북간에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잠수정 사건과 같은 꽃샘바람이 없지 않았지만,금강산관광이 활기를 띠고 북한 당국이 먼저 고위급 회담까지 제안해 오는 것을 볼 때,새 정부의 일관되고 당당한 대북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제 남북간 화해협력의 시대가 열리고 민족 공존과 공영의 길을 모색하는시점에서 남북간 연계교통망 구축은 무엇보다 시급한 현안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남한 땅은 북으로 비무장지대에 가로막힌 한 개의 외로운 섬에 불과했다.철도·도로·해운·항공 할 것 없이 모든 교통수단에 있어서 서울은북쪽 끝을 의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금강산관광을 위한 동해의 물길이 열리고,우리 민항기가 북한의 영공을 날게 되면 유럽이나 미국 가는 길이 지금보다 두 시간 가까이 단축될것이다.그렇게 되면 주요 교통수단 다섯 가지 중에서 도로·철도·파이프라인이 남게 되는데,인적 교류나 경제협력에있어서 육상교통 부문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치 크다 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 브란트정부 출범 이후 교통협정에 대한 적극적 자세와 함께 인적 교류와 경제교류를 분리 추진한 결과 1972년 마침내 동·서독간의 인적·물적 통행 전반에 관한 교통조약을 체결하게 됐다.이를 계기로 독일은 동·서독간 교류협력 단계를 사실상 완성하고 유럽통합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세계는 지금 유럽과 아메리카·아시아 세 경제블록으로 크게 나뉘어지고,생산과 소비활동 역시 단순한 국가적 단위를 넘어 지역연합 추세로 가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우리는 육상교통망 연결을 통한 경제교류를 바탕으로 아시아 경제의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철도는 별도의 선로를 달리기 때문에 북한 당국에 불필요한 우려나 긴장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또한 북한의 교통체계가 철도 중심인 점을 감안할 때 경의선·경원선·동해북부선 등 끊어진 철길을 복구해 미연결 구간만보완한다면 큰 기초투자 없이도 쉽게 교통망을 복원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장차 남북한을 연결하는 사다리꼴의 기간 철도망은 물류 적체 문제를 크게해소하는 효과는 물론 중국횡단대륙철도(TC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에까지 자동으로 연결되면서 우리의 활동공간을 무한히 넓혀줄 것이다. 올해는 철도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선진 외국에서는 혼잡한 도로교통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철도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철도부흥시대를 맞고 있다.철도는 신뢰성과 정시성(定時性)이 뛰어난 것은 물론 안전과 환경보호 측면에서도 크게 각광받고 있다. 철도는 한정된 기간에 대량수송이 가능하고 특히 우리의 국토조건과 인구의 밀집성 등을 감안할 때,가장 이상적인 교통수단이라 하겠다.이제 남북간 평화적 교류는 철도 중심의 교통망 구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앞으로 남북 당국간 회담에서 이 문제가 적극적으로 다루어져 남북기본합의서와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에 명시된 대로 끊어진 철도와 도로 연결이 꼭 실현되도록 해야 하겠다. 강재홍 교통과학연구원 원장
  • 韓-中‘바다철길’열린다

    컨테이너를 적재한 화물열차를 대형 선박에 실어 중국 옌윈(連運)항까지 간 뒤 바로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해 대륙으로 화물을 수송하는 ‘한·중열차페리’가 빠르면 2002년부터 운영된다. 인천국제공항과 부산·인천항,군포복합화물터미널이 올해 하반기에 관세자유지역으로 지정된다. 건설교통부는 7일 선진국 물류체계 기반 구축을 위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물류기본계획(99∼2003년)을 확정했다. 건교부는 인천국제공항과 부산·인천항,군포복합화물터미널을 국제 물류센터로 육성하기 위해 관세청과 협의를 거쳐 이들 지역을 관세자유지역으로 지정,화물의 통관·반출입신고를 생략하고 관세·교통세·부가가치세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외국인이 투자할 경우에는 조세감면 혜택도 줄 방침이다. 건교부는 특히 지난 연말 金大中대통령의 중국 방문당시 체결된 ‘한·중철도교류협력약정’에 따라 한·중 열차페리 운항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올해 안에 끝내기로 했다. 한·중간 열차페리 운송시스템은 이미 기초조사를 끝냈으며 노선은 인천항∼중국 옌윈항∼예카테린부르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열차페리가 운항될 경우 인천항에서 컨테이너를 적재한 화물열차는대형선박에 실려 옌윈항까지 간 뒤 중국횡단철도(TCR)를 타고 대륙을 건너네덜란드의 로테르담까지 연결된다.朴建昇 ksp@
  • 성큼 다가온 금강산­車窓에 비친 北 사회상

    ◎100가구 온정리마을 새단장 분주/개울가엔 신명난 아이들/여성들 붉은 스카프 둘러/군인 여전히 경직된 모습 차창 밖으로 보이는 북한의 모습은 가슴 저미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지난 19일 금강산 관광을 위해 북한땅을 처음 밟았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만은 않았다. 초겨울의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마을을 가로지르는 길 양쪽으로 쳐진 2m 높이의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금강산마을’은 족히 100가구가 넘어 보였다. 주민들은 집을 짓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현대 신작로’를 내느라 철거한 삶의 터전을 새로 짓는 참이다.얼핏 보니 20여채에 달한다.집 바탕에 돌을 쌓고 그 위에 벽돌을,또다시 진흙 벽돌을 얹은 뒤 나무로 지붕을 얽는다.한쪽에선 삼삼오오 군불을 놓고 손을 녹이는 이들도 있었다.유치원생인 듯한 어린아이 셋이 양지바른 모퉁이에 앉아 물끄러미 관광버스를 바라본다. 초로의 할머니들도 삼삼오오 모여 무슨 영문인지 살핀다.3층짜리 다세대주택의 1층에서는 한 가장이 땔감을 쌓는 모습이 눈에 띈다. 뒷산은 나무가 없이 덩그렇다.여기저기서 연기가 굴뚝을 빠져 나온다. 옷차림은 한결같이 군청색이나 국방색의 작업복이다.날씨에 비해 옷두께는 얇아 보였다.아주머니들은 귀가림용으로 대개 붉은 스카프를 둘렀다.금강산관광 안내원의 옷차림도 비슷하다. 민가 인근 밭에는 비쩍 마른 소떼가 색이 바랜 풀위에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옆에선 한 주민이 인민모를 쓰고 담배를 피워 문 채 상념에 젖는다. 건너마을 개울 둑에는 소년들이 신명나게 거닐고 있다.한 소년은 축구공을 차고 내달린다.개울 밭에선 두 소녀가 곡괭이질을 하며 무언가를 일구고 있다. 한 아주머니가 염소를 왼손에,다른 손으로 머리에 인 푸른꼴을 잡고 발걸음을 옮긴다.오가는 사람들의 등에는 봇짐이 매달려 있다. 철조망 가까이로 스무살 안팎의 군인(경무원)이 경직된 자세로 서있다.외투를 두르지 않아 파리해진 얼굴에 조금 큰 듯한 모자,보기에도 살벌한 권총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산중턱 바위에는 체제찬양의 글이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오토바이 한대를 몰고 도로와 관광지를 오가는 군인의 모습도 보였다.버스와 군용차량은 하루 한번 보면 다행이다. 멋모르는 초등생(인민학교생)들이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든다.그러다가 군인에게 혼쭐이 나며 목을 움츠린다.관광객이 나타나자 바위 뒤에 몸을 숨기는 어린이도 보인다.하교길 남매는 철길을 따라 집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나무 전봇대와 애자는 전깃줄 3가닥을 얹은 채 산바람에 윙윙 울고 있었다.
  • 철로 뛰어든 딸 구하다 60대 아버지 함께 轢死/지하철 교대역서

    10일 하오 2시57분쯤 서울 지하철 3호선 교대역 구내로 진입하던 대화역행 3258호 전동차(기관사 崔병용·48)에 洪승주씨(33·여·서울 서초구 반포동)와 아버지 洪現杓씨(63·무직)가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목격자 李동헌씨(25)는 “전동차가 역 구내로 진입할 때 한 여자가 철길로 뛰어내렸고 옆에 있던 남자가 여자를 붙잡으려다 함께 떨어졌다”고 말했다.경찰은 아버지 洪씨가 우울증을 앓아온 딸 승주씨를 늘 데리고 다녔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갑자기 전동차에 뛰어든 딸을 구하려다 부녀가 함께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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