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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미를 찾아라”…예능에 부는 ‘공익 열풍’

    “의미를 찾아라”…예능에 부는 ‘공익 열풍’

    최근 예능프로그램에 의미 찾기 열풍이 불고 있다. 과거에도 MBC ‘양심냉장고’, ‘칭찬합시다’, ‘러브 하우스’ 처럼 오락성에 사회적 의미를 담은 예능프로그램들이 종종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지만 단발성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거와 달리 ‘무한도전’, ‘남자의 자격’, ‘1박2일’ 등 재미에 크고 작은 의미를 담은 예능프로그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파를 타고 있다. KBS 2TV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은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를 테마로 오합지졸 아저씨들이 남자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담배를 끊고 아이를 돌보며 눈물을 흘리는 남자들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일에 대한 노고와 보람을 느꼈고 힘들게 번 돈으로 선물을 주는 모습에는 정이 담겨 있었다. ‘1박 2일’ 역시 버라이어티 정신을 내세우며 재미를 추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아름다운 국토를 알리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또 시골에서 홀로 지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가 일일 손자 노릇을 하는 등 함께하는 따뜻함을 전해주기도 했다. 의미 찾기라면 MBC ‘무한도전’을 빼놓을 수 없다. ‘무한도전’은 봅슬레이라는 스포츠를 재조명하고 베이징 올림픽특집에서 비인기 종목을 다루는 등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소재를 화두로 던져왔다. 또 남산시민아파트, 오쇠동 철거지 등 허름한 서울의 모습을 담고 ‘까불면 더 세게, 진압의 법칙’, ‘말하면 감옥행’, ‘미국산 소 백스텝으로 쥐 잡은 격’ 등 뼈있는 자막으로 세태를 풍자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가요제 개최와 달력을 제작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수익금을 기부하면서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오락성에 공익성을 가미한 이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시청률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가히 공익예능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이런 와중에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는 아예 공익성을 전면에 내세운 새 코너 ‘역사 문화 버라이어티 노다지’를 오는 26일부터 방송할 예정이다. 예능의 이러한 변화는 한동안 오락성만을 추구했던 것에서 벗어나 재미 외에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사진제공 = KBS, MBC 화면캡처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푸른눈의 한옥지킴이’ 고법 선다

    ‘푸른눈의 한옥지킴이’ 고법 선다

    ‘푸른 눈의 한옥 지킴이’라는 별명을 얻은 피터 바돌로뮤(61)가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지난달 4일 미국인 바돌로뮤 등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동소문동 6가 주민 20명은 서울시를 상대로 낸 동선3주택재개발정비구역에 대한 지정 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이겼다. 그러나 이 구역 재개발조합 설립추진위원회(추진위)는 1심 판결에 불복,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추진위는 소송 당사자는 아니지만 소송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피고 보조참가인으로서 항소를 제기할 수 있다. 분쟁의 핵심은 노후·불량 주택률이다. 낡거나 붕괴의 위험이 있는 주택이 전체의 60%가 넘어야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될 수 있다. 1심 재판부는 “서울시가 이미 철거된 뒤 건축물대장에만 남아 있는 건물 4채를 노후·불량 주택에 포함한 사실이 인정되며 이를 반영하면 노후·불량률이 58.75%에 그쳐 구역 지정은 위법하다.”면서 원고의 손을 들어 줬다. 추진위 측은 비록 서울시가 노후·불량률을 잘못 산정했다 할지라도 재개발 구역지정 시점인 2007년 10월 이후, 지은 지 20년 이상된 노후·불량 주택이 늘어나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추진위 총무 한경록(51)씨는 “추진위 조사 결과 노후·불량 주택이 60%를 넘어 재개발 구역 승인 요건을 갖췄다.”면서 “소송으로 불필요한 행정비용이 낭비됐다.”고 주장했다. 피터 바돌로뮤 등 원고 측은 2007년 10월 당시 구역을 지정한 서울시의 행정처분이 잘못됐음을 밝히는 소송이기 때문에 항소심 판결도 달라질 게 없다는 입장이다. 원고 측 소송 대리인 이남진 변호사는 “지은 지 20년 이상 됐다고 무조건 노후·불량 주택으로 보는 것은 서울시의 행정편의적 관행일 뿐 도시주거정비법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20년이 채 안 된 건물도 대지가 90㎡(26평) 미만이면 과소부지에 의한 불량건축물로 분류된다.”면서 “항소심에서 이 기준의 위법성에 대해 밝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률자문 결과 시 차원에서 항소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용산시위 전철연 간부 실형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김기정)는 용산 재개발지역 화재 참사 사건 이후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경찰을 폭행,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국철거민연합 간부 인모(여)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인씨는 지난 1월20일 용산참사 당시 전철연 간부로 일하며 주도적으로 집회를 이끌었고, 한 달 뒤 농성자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 장례식장에서 동향을 파악하던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대원군 ‘서원철폐령’ 실체 첫 확인

    대원군 ‘서원철폐령’ 실체 첫 확인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대원군 시절 서원철폐령의 실체가 최초로 확인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1일 경남 창녕 관산서원(冠山書院·경남 문화재자료 335호) 사당터에서 사당의 신주(神主)를 묻은 ‘매주(埋主)시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고종실록을 보면 대원군은 1868년과 1871년 두 차례 ‘서원철폐령’을 내렸다. 이 명령으로 전국 1700여개 중 47개를 제외한 서원이 철거당하고 사당에 모신 유학자들의 위패도 땅에 묻혔다. 그 위패가 묻힌 곳이 바로 매주시설이다. 이번에 발견된 시설은 옹관(甕棺)처럼 옹기를 맞붙여 세운 형태로 철폐된 사당터 자리 한가운데에서 발견됐다. 그 속에 위패를 봉안하고 둘레에는 3겹의 기와를 쌌다. 또 기와 사이에는 습기제거 또는 벽사(?邪)용으로 추정되는 숯덩이를 넣어 흙을 덮었다. 옹기 속에서는 영의정(추증) ‘정구’(鄭逑·1543~1620년)의 위패 한 점이 나왔다. 정구는 광해군 시절 대사헌에 올랐던 인물로 사후 그를 기리기 위해 1620년에 세워진 사원이 관산서원이다. 이 서원도 서원철폐령 때 철폐됐다가 1899년에 다시 서당으로 복원, 최근 다시 복원공사를 하던 중 매몰돼 있던 매주시설이 나온 것이다. 발굴을 담당한 가야문화재연구소 양숙자 학예연구사는 “그간 서원철폐령 기록과 함께 철폐된 서원 현장은 많이 나왔지만 실제 위패를 묻은 시설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면서 “이로써 어떤 방식으로 서원의 위패를 처리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용산 시신 서울광장行 불발…경찰, 범대위 시위2명 연행

    용산 철거민 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는 ‘용산 참사’ 발생 6개월째인 20일 희생자 5명의 시신을 서울광장으로 옮기려 했지만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경찰은 이날 오후 시신이 안치된 한남동 순천향병원 주변에 12개 중대 840여명을 배치해 시신 인도를 막았다. 이 과정에서 범대위측과 격한 몸싸움이 이어졌다. 병원측이 5억 5000만원에 이르는 장례식장 비용 미납을 이유로 시신 인도를 거부하자 유가족들은 빈 관을 들고 서울광장으로 진출을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봉쇄됐다. 범대위측은 오후 6시쯤 삼각지 로터리에 모여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남일동 참사현장으로 진출하려 했다. 경찰은 이에 강제해산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2명을 연행했다. 범대위는 이후 남일당 빌딩 앞에서 회원과 시민 6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시국 미사와 추모대회를 잇따라 열고 경찰 진압을 규탄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쌍용차 공권력 진입] “도장공장 진입 등 모든 가능성 고려”

    경찰이 20일 법원의 퇴거명령 강제집행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쌍용차 노조원들이 점거 농성 중인 공장안에 진입한 것은 사실상 농성 해산을 위한 공권력 투입의 전초단계로 볼 수 있다.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 점거농성이 60일째 계속되고 있어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상태”라며 공권력 투입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밝혔다. 이어 “그동안 노사간 대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하기를 기대했고, 또 도장 공장의 위험성과 강제진압에 따르는 인명 피해를 우려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왔다.”고 당위성을 거듭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장 공장안 진입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겠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등 강제 진압에 나설 뜻임을 내비쳤다. 사실 경찰은 지금까지 용산철거민 참사 이후 공권력 투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도장 공장내 위험 요소 등을 의식해 자율적 해결을 기대하며 한발 물러서 있었다. 하지만 회사 측이 정상 출근을 위한 경찰력 지원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는데다 외부 세력까지 개입한 불법파업 행위를 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법원의 강제집행 개시일을 경찰 진입 시기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엄정한 법집행을 요구하는 정부 일각의 방침도 작용한 듯하다. 강희락 경찰청장도 이날 “도장 공장처럼 위험한 곳은 오늘 당장 확보하기 힘들어, 사측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오늘 (공권력 투입의) 목표다. 회사측이 상주해 있으면 당분간 경찰력은 그 완충 지점에 머물 것”이라며 사태가 더 장기화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실마리 못찾는 용산 참사 6개월… 해법은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20일로 6개월을 맞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유족과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정부의 사과와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철거민 이주·생계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보상은 재개발조합과 유족이 풀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범대위 측은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서울광장에서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홍석만 범대위 대변인은 “유족들은 희생자 명예회복 없이 위로금만으로 끝낼 수는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 측은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4일 철거민들과 유족들의 생계를 위해 임시상가와 선임차권 제공을 요청한 야 4당의 요구를 다른 세입자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거절했다. 접점이 모아지지 않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유족 및 범대위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범대위 측 관계자는 “정부가 무대응으로 일관한다고 해서 (우리가 먼저) 요구조건을 낮출 순 없지만 협상을 통해 의견을 조율할 수 있다는 내부 의견도 있다.”며 중재를 촉구했다. ‘제2의 용산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극한투쟁의 원인이 됐던 재개발 관련법 개정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입자들의 보상 및 퇴거 관련 조항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49조에 따르면 보상여부와 관계없이 조합이 관할관청에서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기만 하면 세입자들의 퇴거를 요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재개발이 진행되는 상가 세입자들은 마땅한 생계 대책 없이 점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정부는 지난달 철거민이 정당한 영업보상비를 받지 못할 경우 강제퇴거하지 않아도 되는 내용을 담은 도정법 일부개정안을 공포해 11월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에 따른 4개월치(기존 3개월치에서 개정) 휴업보상비만 지불하면 언제든 퇴거를 명령할 수 있다. 영세상인들은 보상비가 2000만~3000만원 정도인데 권리금이나 초기 인테리어 비용 등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라며 현실적인 재정착 비용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개발로 이주해야 하는 세입자들이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임시상가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에 대한 법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리처분계획인가 단계에 이르기 전 사업시행을 담당하는 조합과 세입자 간에 충분한 의견 교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합은 기존 점포 감정가를 낮춰 보상비를 줄이려 하고 세입자들은 보상 조건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해 보다 많은 돈을 받으려고 한다. 재개발 사업은 국가의 책임이므로 관련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재개발 조합에 대한 명확한 지도·감독, 행정청의 조정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건형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용산 시신 서울광장行 불발, 범대위·경찰 온종일 신경전

    용산 철거민 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는 ‘용산 참사’ 발생 6개월째인 20일 희생자 5명의 시신을 서울광장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병원측의 제지와 경찰의 원천봉쇄로 강행하지 못했다. 범대위는 시신 인도과정에서 시신이 안치된 순천향병원측과 5억 5000만원에 이르는 장례식장 비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범대위는 만일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 시신 인도를 원천봉쇄한 경찰과 하루종일 신경전을 벌였다. 경찰은 병원 주변에 12개 중대 840여명을 배치했다. 용산범대위와 유가족은 이날 오후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6개월 동안 청와대, 정부, 서울시측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모르쇠로 일관했다.”면서 “영안실을 서울광장으로 옮겨 용산 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글 / 서울신문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테마스토리 서울] (4) 서울 1호 시민아파트 ‘금화’

    [테마스토리 서울] (4) 서울 1호 시민아파트 ‘금화’

    ‘서울에서 가장 늦게 눈이 녹는 곳, 공포영화 ‘소름’의 촬영장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민아파트….’ 16일 서대문구 냉천동 14의9. 30여분간 꼬불꼬불한 금화산 길을 따라 올라가자 산꼭대기에 금세라도 허물어질 듯 초라한 아파트 2개 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40년째 자리를 지킨 짤막한 5층 아파트는 주변 신식 아파트들과 달리 세월의 켜를 고스란히 간직했다. 해발 200m의 아파트 초입은 찌는 더위에도 서늘할 정도로 시원했다. “거래가 끊긴 지 2년도 넘었지요. 한때 재개발 소식이 들려 10여평 아파트 한 채당 2억원을 호가했지만 지금은 세입자 10여가구만 살고 있어요.” 나이든 부동산중개업자는 낡은 아파트에 관심없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곳곳에 철골을 드러낸 낡은 시멘트 건물의 이름은 ‘금화아파트’.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시민아파트’로 지금은 옛 추억을 더듬으려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출사 장소로 각광받을 뿐이다. 시민아파트는 무허가 판잣집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집 없는 서민을 입주시키려고 서울시가 만든 아파트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9년 김현옥 서울시장이 첫 삽을 떴다. 판잣집 13만여가구를 없애고 대신 3년간 9만여가구의 아파트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해 건설한 아파트만 406채. 모두 산 중턱에 들어섰다. 금화아파트는 특히 청와대에서 한눈에 올려다 보였다. “높은 데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니냐.”는 김 시장의 말이 지금도 회자된다. 그러다 1970년 4월 마포 와우아파트가 폭삭 무너져내리며 시민아파트 건립계획이 전면 백지화됐다. 이듬해부터 7년간 무려 101개 동의 아파트가 철거됐다. 97년에는 시민아파트 5개년 정리계획이 수립됐고, 남은 아파트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때 130여동에 이르렀던 금화아파트도 지금은 3동과 4동만 남았다. 옛 집을 찾은 초로의 신사들을 우연히 만났다. “산 중턱에 지은 홍보용 아파트라 시내 어지간한 곳에서도 다 보였어요. 당시에는 산에 나무가 별로 없던 때라 벌거숭이 산에 하얀색 아파트는 그야말로 언덕 위의 하얀집이었죠.”, “무허가 판잣집에 살다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이곳에 둥지를 틀었죠.”, “중앙난방과 수세식 화장실을 갖춰 인기 영화배우와 고위직 공무원들이 편법으로 입주권을 사서 들어올 만큼 괜찮았던 아파트였죠.” 마지막 남은 금화아파트 2개 동은 북아현재정비촉진지구에 포함됐다. 이르면 내년 봄에 철거된다. 지난해 7월 시행된 건물 안전검사에선 사용금지에 해당하는 E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세입자들과의 보상문제가 미뤄져 철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파트 철거 후 1273㎡의 부지는 1만 5000㎡ 규모로 조성되는 공원에 포함된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광주 ‘도심 주말농장’ 주민 쉼터로

    광주 ‘도심 주말농장’ 주민 쉼터로

    “토마토가 어른 주먹만 한 크기로 자라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지난 주말 광주 서구 풍암동 풍암제와 이웃한 중앙공원 빈 터에서 채소류를 돌보고 있던 이모(66)씨는 “요즘 화초와 채소류를 돌보는 데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자연을 접하기 어려운 손자들을 데리고 틈나는 대로 텃밭을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서구는 지난 5월 빈 땅으로 방치된 이곳 일대 7000㎡를 10㎡ 단위로 쪼개 주민들에게 무료로 임대했다. 모두 360개 텃밭이 생겼고, 주민들이 고추·상추·토마토·화훼류 등을 가꾸기 시작한 지 3개여월 만에 ‘도심 속의 농촌’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주말마다 가족 단위로 텃밭에 나와 밭을 일구고 채소류에 물을 주는 등 체험과 여가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모(56·여)씨는 “텃밭에 심어진 화초를 가꾸다 보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며 “이를 오래도록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구가 이 주말농장 임대사업을 시작한 것은 잡초가 우거진 빈 터에 쓰레기가 쌓이는 것을 막고 주민들에게 친환경 유기농사법을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주변에 80m 깊이의 관정을 파고, 모터 펌프를 설치하는 등 급수 시설을 마련했다. 공모를 통해 주민을 선발하고 농사를 짓도록 했다. 농약 사용을 금지하고 비닐 피복 등은 설치하지 못 하도록 했다. 또 희망근로사업과 연계해 무단경작과 쓰레기 불법투기 등을 막았다. 구는 당초 이 농장을 추수기인 10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주민의 반응이 너무 좋아 연장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 일대는 불법 투기한 쓰레기와 무허가 건축물이 철거되는 등 ‘웰빙테마파크‘로 변신하고 있다. 1956년 농업용으로 축조된 저수지는 면적 24만여㎡에 총 저수량 43만t에 달한다. 주변엔 풍암·금호지구 등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서구는 이에 따라 2007년 중앙공원, 금당산과 연계한 생태공원화 사업에 착수했다. 주말농장 주변의 무허가 음식촌 등을 정비하고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 2600여그루의 나무와 꽃들을 심었다. 벽천분수, 한식정자, 생태습지, 목교, 1300㎡ 규모의 튤립동산 등 수변과 어우러진 자연친화 시설물을 설치했다. 황톳길, 자연 쇄석길 등 1.7㎞의 웰빙순환산책로와 경관조명 공사도 조만간 마무리한다. 전주언 서구청장은 “풍암호수 일대를 생태체험이 가능한 가족 쉼터로 가꾸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캠퍼스 라이프]

    공학교육 혁신센터 평가 우수 ●영동대 최근 실시된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공학교육혁신센터 지원사업 중간평가에서 우수평가를 받았다. 이 사업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산업기술진흥원이 전국 60개 센터를 지원하는 것으로 평가 상위 10%에 들어 인센티브를 받게 됐다. 이 센터는 산업계 맞춤형 우수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전담기구로, 공과대학 혁신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자판기 철거하고 정수기 설치 ●전북대 생활과학대는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는 탄산음료와 카페인 음료 등을 마시지 않도록 자판기 3대를 모두 철거하고 대신 정수기를 설치했다. 차연수 학장은 “좋은 음식과 고른 영양 섭취를 연구하는 생활과학대부터 건강을 해치는 탄산음료 등을 멀리하도록 단과대 전체를 ‘그린푸드 존’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차 학장은 “일부 학생과 업자들의 반발도 예상되지만 생활대가 학생들의 건강과 환경 지킴이로서 선봉에 나설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과학기술 우수논문상 받아 ●순천대 생명산업과학대학 조주식(생물환경학) 교수가 최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한 올 대한민국 과학기술연차대회에서 과학기술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논문은 ‘게르마늄 토양처리 시 토성이 벼의 생육과 게르마늄 흡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고 한국환경농학회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 [뉴스 다큐 시선]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뉴스 다큐 시선]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 시인 김광섭은 1968년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서 개발의 열풍 속에 파괴돼 가는 인간성을 비둘기에 빗대 표현했다.여기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시작한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계획’이 서울 전체를 바꾸고 있다. 이 사업은 2007년 대학로, 이태원로 등 10개 지역에 439억원을 투입해 전면 재단장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것의 이면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그 뒤안길에는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녹아 있다. 철거가 됐거나 이제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서울의 추억을 찾아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 봤다. 글 박건형 오달란 유대근 박성국기자 kitsch@seoul.co.kr 동영상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30년 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일대에는 80여채의 한옥들이 서로 처마를 맞댄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집집마다 경쟁하듯 내놓은 화분이 골목을 화사하게 꾸몄다. 대문은 잠겨있는 적이 없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영이 엄마, 된장이 다 떨어졌네. 한 숟갈만 퍼줘.” “언니, 나 대파 한 단 사올 동안 우리 애 좀 잠깐 봐 줘요.” 하는 정겨운 대화가 오갔다. 이 동네 14칸짜리 한옥에서 35년째 살고 있는 피터 바돌로뮤(61)가 들려준 이야기다.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지난 13일 저녁 바돌로뮤의 집 대청마루에 앉았다. 마당에 심은 대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렸다. 그는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한옥을 불편하고 낡았으니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푸념했다. 그는 “콘크리트 건물도 수리하지 않으면 30년을 못 간다.”면서 “나도 매년 두 번 지붕에 올라가 깨진 기와를 보수하고 홈통에 쌓인 낙엽을 치우면서 집을 부지런히 가꾼다.”고 말했다. 그의 기와 수리 실력은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나다. 옆집 할머니가 ‘피터씨, 김치 넉넉히 줄 테니 우리집 기와도 손 봐주우.’라며 부탁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정겹던 동네 인심은 재개발 광풍이 몰아치면서 사나워졌다. 2004년 이 일대가 동선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자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과 한옥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바돌로뮤는 “쥐꼬리만 한 보상금 몇 푼과 평생 지켜온 유일한 자산인 집을 바꾸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면서 “재개발되면 이 일대에는 삭막한 아파트 4동이 들어서게 될텐데 그 모습은 절대 못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겨웠던 동소문동 한옥마을 정부 중심의 재개발 정책이 일방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한옥마을의 예술적 가치를 몰라보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멀쩡히 사람이 사는 곳에 테두리를 쳐놓고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독재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생각하는 재개발의 근본 취지는 하꼬방(판잣집)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살 만한 곳으로 바꾸어 주는 일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정릉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개량 한옥 한 채를 남겨 주민들의 자치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한옥 마을을 단지 구경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동소문 일대를 제2의 인사동, 제2의 북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갤러리와 점집, 골동품 가게, 카페와 한옥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예술마을을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 사라질 뻔한 골목에 다시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대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삶의 전부인 세운상가는 추억의 공간 같은 날 종로구 장사동 세운1지구 ‘초록띠 공원’. 40여년간 자리를 지켰던 세운 현대상가가 헐리고 대신 들어선 공원 한쪽에는 벼, 옥수수 등을 직접 기를 수 있는 ‘도시농장’(시티-팜·City-Farm)이 조성되고 있다. 모내기 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웅재(59)씨가 한마디 던진다. “서울시민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데 터를 지켜온 사람들은 왜 슬퍼해야 하나.” 그는 30년째 세운상가의 전체 7동 중 하나인 세운상가 본관에서 TV와 난로 등을 팔아온 ‘터줏대감’이다. 시는 지난해 5월 남산에서 세운상가와 종묘를 가로질러 북악산까지 연결되는 ‘세운 녹지축’ 조성계획을 발표했고, 1단계 사업을 통해 현대상가터에 ‘초록띠공원’을 만들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5월20일 열린 초록띠공원 준공식에서 “5개월 전 착공 당시 삭막하기만 했던 터가 녹지로 바뀐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흐뭇해했다. 시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청계천~을지로~퇴계로 구간도 오는 201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 보는 이씨등 세운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70년대 초 세운상가에 처음 발들여 놓은 이씨는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종업원으로 시작해 점포를 얻었고 96년부터 8년간 상인연합회장도 지냈다. 대학생인 아들도 상가에서 장사하며 낳고 길렀으니 “세운상가가 내 삶의 전부”라는 이씨의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러나 시가 상인들과 별 상의없이 세운 녹지축계획을 발표하고 지난해부터 공사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면서 “3개월 영업보상비와 대체상가 등을 마련해 줬지만 몇십년째 이곳에서 일한 상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할 뿐”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재개발도 좋지만 그동안 터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게 의견을 묻고 배려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모두가 행복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가 철거된 현대상가의 상인들을 위해 대체건물로 지어준 인의동 ‘세운스퀘어’의 정인학(54) 상인연합회장도 “일본 도쿄시는 65년된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오 시장의 눈에 세운상가는 없애야 할 낡은 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세운상가 터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로1, 2가 뒤쪽 골목에 이어져 있는 피맛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여년 간 이곳에서 생선구이집을 해온 대림식당 사장 석송자(67·여)씨는 “자고 나면 가게가 하나씩 없어진다.”면서 “외국인들도 600년 전통의 거리를 왜 없애느냐며 아쉬워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일 당시 경찰을 피해 피맛골에 몸을 숨겼던 대학생들이 어느새 40대 중년이 돼 아이들과 이곳을 찾기도 한다.”면서 “서민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은 보존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운 듯 되물었다. 골목 한쪽에서 35년째 ‘원조 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옥희(70·여)씨는 “이곳에서 감자탕을 팔며 죽은 남편 대신 3남매를 키웠다.”면서 “재개발 때문에 곧 건물을 비워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사라져 가는 옛 터전들. 그곳을 지켰던 서민들에게 도시개발 계획은 빛보다 그림자였다. “정치하는 사람들 눈에는 문화는 없고 돈만 보이는 것 같아요. 이렇게 독특한 예술촌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데 왜 보존할 생각은 못하고 없애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영등포구 문래동 3가. 낡고 녹슨 소규모 철강소들이 거리를 따라 줄지어 이어졌다. 그중 대부분은 문을 닫고 일부 철강소에서만 쇠 깎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허같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범상치 않은 그래피티(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은 마니아층에게 ‘문래예술공단’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함광일(26)씨는 공단 곳곳을 찾아다니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함씨는 “이곳이 없어지기 전에 사진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 찾았다.”면서 “문래예술공단은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과도 같은 곳인데….”라며 아쉬워했다. ●“문래동 3가 예술촌 보존은 안되나요” 문래동3가는 70~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철공소 상인들은 공단을 떠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이 찾아와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70여개의 작업실에 16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준공업지역인 이곳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예술촌 주변은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에워싸고 있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예술촌은 어색하고 초라해 보였다. 이곳의 예술가들은 문래동 3가의 매력을 세가지로 꼽았다. 우선 임대료가 저렴하다. 그래서 요즘도 홍익대 부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도 많이 건너온다고 한다. 주변이 빈 공단이거나 철공소라 작업 중에 발생하는 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래동 3가만의 녹슬고 낡은, 오래된 분위기가 예술적 영감을 자극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소주(33)씨는 “재개발을 하게 되면 건물 주인은 임대료를 올려 입주해 있는 예술가들을 쫓아낼 것”이라면서 “단순히 예술가들의 문제가 아닌 한국 문화계의 위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조선후기 석축·배수시설 ‘모습’ 백자등 15~20세기 100여점 나와

    조선후기 석축·배수시설 ‘모습’ 백자등 15~20세기 100여점 나와

    서울시 신청사 건립공사 현장은 지난해 동대문운동장 철거 현장과 마찬가지로 과거 우리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유물·유적의 보고(寶庫)였다. 지난달 11일부터 유물 조각이 드러나기 시작한 곳은 건립부지 1만 2709㎡ 가운데 옛 시청 주차장 터(2231㎡·전체의 18%)였다. 문화재청 발굴단은 이곳부터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옛 시청 주차장서 무더기 발굴 14일 문화재청과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유구(遺構)의 시기는 조선시대 후기에서 일제강점기 초기이며 3개의 문화층으로 조사됐다. 상층에서 하층으로 내려가면서 ▲근·현대 유구(건물지) ▲근·현대 유구(입사지정·건물의 기초를 앉히는 자리) ▲조선시대 유구(석축·배수시설)로 나눌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은 분청사기, 백자, 도기, 기와류, 일본사기 등에 이르기까지 15~20세기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아직 미분류 상태지만 유물 조각까지 합치면 100여점에 이른다. 1912년 지적도와 현 지적도, 발굴 조사지역 현황도를 비교한 결과 하층부에서 보이는 석축과 배수시설은 1912년 지적도에 표시된 도로와 구거(溝渠·인공 수로 또는 그 부지)의 진행 방향과 비슷하다. 따라서 이는 도로 양측에 축조되는 구거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4일 신청사지도위원회 의견에 따라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곧 본격적인 유물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역사학 전문가들은 서울시 신청사 부지에서 유구와 유물의 발견은 예견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도회의에 참석했던 한 전문가는 “일제가 우리나라에서 건물을 지을 때 터파기를 거의 하지 않고 짓는 바람에 서울시청이나 한국은행 등 강점기 때 건물 밑에는 선조들의 유물과 유적들이 고스란히 묻혀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면서 “땅을 파고 새 건물을 지을 때 조심스럽게 발굴작업을 마친 뒤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2011년 완공 등 공사에 차질 서울시는 문화재청의 본격 발굴 방침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사 현장 근처가 조선시대 병기제조 관청인 군기시터(서울신문사 자리)여서 15일부터 진행되는 본격 발굴을 통해 희귀 군 병장기를 발굴할 수 있다는 문화재청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 발굴지점이 전체 공사면적의 일부(18%)여서 건립공사와 발굴작업을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첨단복합문화시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DDP)’를 건립하는 현장에서도 유구·유적 및 서울성곽 흔적이 발견되자 1년6개월여간 공사를 중단한 전례가 있다. 이어 발굴부지에는 서울성곽(이간수문, 치성)과 조선시대 건물지 유구 44기 및 조선백자와 분청사기 등 유물 1000여점을 DDP 안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 영구 전시하기로 했다. 2011년 서울의 랜드마크 건물로 재탄생할 신청사는 2288억원이 투입돼 지하 5층, 지상 13층, 연면적 9만 7000㎡ 규모로 들어설 예정이다. 한옥 처마지붕의 음영과 곡선미를 뽐낼 신청사는 전체 면적의 30% 이상이 다목적홀 등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꾸며진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경산 휴게소에서 고분공원 둘러보세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고품격의 문화공연을 즐기며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생겨 났다. 13일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경산휴게소에 따르면 최근 휴게소 인근에서 발굴된 신라고분의 모습을 이용객들이 직접 살펴볼 수 있는 ‘고분 공원’ 조성과 함께 ‘고분군 테마 음악회’를 열고 있다. 고분공원은 경산시 진량읍 신상리에 있던 옛 경산 휴게소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때 것으로 추정되는 10여기의 고분과 유물을 발굴하는 과정을 재현했다. 또 일부 출토물을 발굴현장 위에 강화유리를 덮는 형식으로 전시해 고속도로 휴게소 이용객들이 선조들의 장묘문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휴게소측은 또 최근 지역의 문화 단체인 ‘대구관악합주단’, ‘에코뮤직패밀리’ 등과 함께 공연 및 공연 콘텐츠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매달 둘째, 넷째주 토요일 정기적인 클래식 공연에 들어갔다. 지난 11일 첫 공연을 펼쳐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경산휴게소 관계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고분공원이 조성되고 정기 공연이 이뤄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매월 새로운 주제로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기획해 고전과 현대, 예술과 어우러진 고속도로 휴게소를 만들어 운전자들이 즐겁고 의미 있는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공간을 꾸며 나가겠다.”고 말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 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 시인 김광섭은 1968년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서 개발의 열풍 속에 파괴돼 가는 인간성을 비둘기에 빗대 표현했다.여기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시작한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계획’이 서울 전체를 바꾸고 있다. 이 사업은 2007년 대학로, 이태원로 등 10개 지역에 439억원을 투입해 전면 재단장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것의 이면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그 뒤안길에는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녹아 있다. 철거가 됐거나 이제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서울의 추억을 찾아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 봤다. 글 박건형 오달란 유대근 박성국기자 kitsch@seoul.co.kr 동영상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30년 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일대에는 80여채의 한옥들이 서로 처마를 맞댄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집집마다 경쟁하듯 내놓은 화분이 골목을 화사하게 꾸몄다. 대문은 잠겨있는 적이 없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영이 엄마, 된장이 다 떨어졌네. 한 숟갈만 퍼줘.” “언니, 나 대파 한 단 사올 동안 우리 애 좀 잠깐 봐 줘요.” 하는 정겨운 대화가 오갔다. 이 동네 14칸짜리 한옥에서 35년째 살고 있는 피터 바돌로뮤(61)가 들려준 이야기다.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지난 13일 저녁 바돌로뮤의 집 대청마루에 앉았다. 마당에 심은 대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렸다. 그는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한옥을 불편하고 낡았으니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푸념했다. 그는 “콘크리트 건물도 수리하지 않으면 30년을 못 간다.”면서 “나도 매년 두 번 지붕에 올라가 깨진 기와를 보수하고 홈통에 쌓인 낙엽을 치우면서 집을 부지런히 가꾼다.”고 말했다. 그의 기와 수리 실력은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나다. 옆집 할머니가 ‘피터씨, 김치 넉넉히 줄 테니 우리집 기와도 손 봐주우.’라며 부탁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정겹던 동네 인심은 재개발 광풍이 몰아치면서 사나워졌다. 2004년 이 일대가 동선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자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과 한옥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바돌로뮤는 “쥐꼬리만 한 보상금 몇 푼과 평생 지켜온 유일한 자산인 집을 바꾸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면서 “재개발되면 이 일대에는 삭막한 아파트 4동이 들어서게 될텐데 그 모습은 절대 못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겨웠던 동소문동 한옥마을 정부 중심의 재개발 정책이 일방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한옥마을의 예술적 가치를 몰라보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멀쩡히 사람이 사는 곳에 테두리를 쳐놓고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독재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생각하는 재개발의 근본 취지는 하꼬방(판잣집)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살 만한 곳으로 바꾸어 주는 일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정릉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개량 한옥 한 채를 남겨 주민들의 자치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한옥 마을을 단지 구경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동소문 일대를 제2의 인사동, 제2의 북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갤러리와 점집, 골동품 가게, 카페와 한옥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예술마을을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 사라질 뻔한 골목에 다시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대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삶의 전부인 세운상가는 추억의 공간 같은 날 종로구 장사동 세운1지구 ‘초록띠 공원’. 40여년간 자리를 지켰던 세운 현대상가가 헐리고 대신 들어선 공원 한쪽에는 벼, 옥수수 등을 직접 기를 수 있는 ‘도시농장’(시티-팜·City-Farm)이 조성되고 있다. 모내기 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웅재(59)씨가 한마디 던진다. “서울시민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데 터를 지켜온 사람들은 왜 슬퍼해야 하나.” 그는 30년째 세운상가의 전체 7동 중 하나인 세운상가 본관에서 TV와 난로 등을 팔아온 ‘터줏대감’이다. 시는 지난해 5월 남산에서 세운상가와 종묘를 가로질러 북악산까지 연결되는 ‘세운 녹지축’ 조성계획을 발표했고, 1단계 사업을 통해 현대상가터에 ‘초록띠공원’을 만들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5월20일 열린 초록띠공원 준공식에서 “5개월 전 착공 당시 삭막하기만 했던 터가 녹지로 바뀐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흐뭇해했다. 시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청계천~을지로~퇴계로 구간도 오는 201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 보는 이씨 등 세운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70년대 초 세운상가에 처음 발들여 놓은 이씨는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종업원으로 시작해 점포를 얻었고 96년부터 8년간 상인연합회장도 지냈다. 대학생인 아들도 상가에서 장사하며 낳고 길렀으니 “세운상가가 내 삶의 전부”라는 이씨의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러나 시가 상인들과 별 상의없이 세운 녹지축계획을 발표하고 지난해부터 공사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면서 “3개월 영업보상비와 대체상가 등을 마련해 줬지만 몇십년째 이곳에서 일한 상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할 뿐”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재개발도 좋지만 그동안 터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게 의견을 묻고 배려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모두가 행복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가 철거된 현대상가의 상인들을 위해 대체건물로 지어준 인의동 ‘세운스퀘어’의 정인학(54) 상인연합회장도 “일본 도쿄시는 65년된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오 시장의 눈에 세운상가는 없애야 할 낡은 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세운상가 터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로1, 2가 뒤쪽 골목에 이어져 있는 피맛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여년 간 이곳에서 생선구이집을 해온 대림식당 사장 석송자(67·여)씨는 “자고 나면 가게가 하나씩 없어진다.”면서 “외국인들도 600년 전통의 거리를 왜 없애느냐며 아쉬워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일 당시 경찰을 피해 피맛골에 몸을 숨겼던 대학생들이 어느새 40대 중년이 돼 아이들과 이곳을 찾기도 한다.”면서 “서민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은 보존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운 듯 되물었다. 골목 한쪽에서 35년째 ‘원조 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옥희(70·여)씨는 “이곳에서 감자탕을 팔며 죽은 남편 대신 3남매를 키웠다.”면서 “재개발 때문에 곧 건물을 비워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사라져 가는 옛 터전들. 그곳을 지켰던 서민들에게 도시개발 계획은 빛보다 그림자였다. “정치하는 사람들 눈에는 문화는 없고 돈만 보이는 것 같아요. 이렇게 독특한 예술촌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데 왜 보존할 생각은 못하고 없애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영등포구 문래동 3가. 낡고 녹슨 소규모 철강소들이 거리를 따라 줄지어 이어졌다. 그중 대부분은 문을 닫고 일부 철강소에서만 쇠 깎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허같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범상치 않은 그래피티(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은 마니아층에게 ‘문래예술공단’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함광일(26)씨는 공단 곳곳을 찾아다니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함씨는 “이곳이 없어지기 전에 사진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 찾았다.”면서 “문래예술공단은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과도 같은 곳인데….”라며 아쉬워했다. ●“문래동 3가 예술촌 보존은 안되나요” 문래동3가는 70~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철공소 상인들은 공단을 떠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이 찾아와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70여개의 작업실에 16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준공업지역인 이곳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예술촌 주변은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에워싸고 있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예술촌은 어색하고 초라해 보였다. 이곳의 예술가들은 문래동 3가의 매력을 세가지로 꼽았다. 우선 임대료가 저렴하다. 그래서 요즘도 홍익대 부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도 많이 건너온다고 한다. 주변이 빈 공단이거나 철공소라 작업 중에 발생하는 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래동 3가만의 녹슬고 낡은, 오래된 분위기가 예술적 영감을 자극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소주(33)씨는 “재개발을 하게 되면 건물 주인은 임대료를 올려 입주해 있는 예술가들을 쫓아낼 것”이라면서 “단순히 예술가들의 문제가 아닌 한국 문화계의 위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인공폭포에 물레방아까지 도심속 청풍명월 따로 없네

    인공폭포에 물레방아까지 도심속 청풍명월 따로 없네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이 복원 1년 만에 청계천 부럽지 않은 주민들의 쉼터로 자리잡았다. 구는 지난해 6월 메마르고 황량했던 홍제천을 맑은 물이 흐르는 ‘생명천’으로 되살렸다. 이후 이곳은 황포돛배가 떠있고,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도심속 청풍명월’과 같은 공간으로 변모했다. 홍제천은 북한산 기슭에서 발원, 종로구와 서대문구, 마포구를 거쳐 한강으로 이어지는 하천으로 총길이 11㎞ 가운데 서대문구가 가장 많은 6.1㎞를 차지한다. 구는 지난해 유진상가에서 한강 합류지점까지 5.12㎞에 달하는 구간의 1단계 공사를 마친 뒤 통수식이 열렸던 홍은동 백년교 부근을 홍제천의 중심부로 삼고 다양한 시설을 설치했다. ●문화행사 등 폭포 앞은 주민들의 쉼터 산자락 밑에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그 앞에 황포돛배를 띄워 분위기를 살렸다. 안산 절벽에 시원스러운 인공폭포를 만들었고, 폭포수 정면에 홍제천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데크도 만들었다. 특히 홍제천의 중심부인 폭포수 앞은 다양한 문화 행사나 공연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휴일이나 밤에 가족단위의 주민들이 산책을 나와 색소폰 연주, 그림그리기,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다. 14일 저녁에는 이곳에서 홍은2동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홍제천 폭포수 음악회’와 시낭송회를 연다. 홍제동에 사는 이정희(49·여)씨는 “예전의 홍제천은 각종 이물질과 악취 때문에 근처에 가기가 꺼려졌는데, 이렇게 달라졌다니 믿기지 않는다.”면서 “지금은 하루 한번 홍제천 나들이가 일상생활이 되었다.”고 말했다. ●7㎞ 자전거 전용도로도 조성 한편 구는 홍제천에 총 길이 7㎞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새로 조성하고 있다. 현재 홍제천변 사천교에서 연가교, 홍연2교에서 홍연교까지 총 1.2㎞ 구간과 홍제3교에서 유진상가까지 320m에 걸쳐 자전거 도로가 우선 완공됐다. 이 도로는 홍제동 일대와 남·북가좌동이 직선코스로 연결되어 근거리 교통보조수단으로서 자전거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달 중순 연희동 696번지 일대 홍남교 부근에 자전거종합센터가 문을 연다. 총 4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 센터는 지하 1층, 지상 2층에 면적 230㎡규모로 대여·휴게·정비·건강체크 등 복합 기능을 갖췄다. 구는 유진상가에서 홍지문까지 0.9㎞ 구간에 대해서도 2010년 완공 목표로 홍제천 2단계 공사를 추진 중이다. 현재는 홍지문 근방의 기본 복개 주차장 철거공사와 옥천암 암반 폭포 설치, 홍은교 워터비전 설치공사가 한창이다. 현동훈 구청장은 “홍제천 복원사업은 서대문구 발전의 원동력이며, 남은 공사를 차질없이 마무리하여 주민들의 편안한 휴식처이자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초교주변 미신고 판매업소 적발

    서울시는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분식점·슈퍼마켓 등을 점검한 결과 신고 없이 슬러시를 판매하거나 분식점 영업을 한 업소 25곳을 적발해 고발했다고 13일 밝혔다. 시는 지난 3일 24개 민·관 합동 점검반을 투입해 89개 초등학교 주변에서 슬러시 기계나 사탕뽑기 자판기를 설치한 문구점·분식점·슈퍼마켓 등 111곳을 점검했다. 지난 3월22일 시행된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에 따라 그동안 지도와 계몽 위주 활동을 했으나 일부의 위반행위가 끊이지 않아 고발 등 강경조치를 취했다. 시는 이중 무신고 슬러시 판매업소 18곳과 무신고 분식점 7곳을 고발조치했고, 포장 식품을 뜯어 낱개로 팔거나 영업장 외에서 영업한 업소 등 5곳에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시정명령 등을 내렸다. 시는 이날 단속 이전에도 지도·계몽 활동으로 무신고 업소 167곳을 등록시켰고, 217개 업소에서 슬러시 및 과자류 뽑기 자판기를 자진철거시키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3월22일 시행된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은 초·중·고교 반경 200m 안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의 건강 및 신체 발달을 저해하는 식품을 팔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노무현 전대통령 49재]4대 종교의식 거행속 헌화·분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일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영면에 들었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낮 12시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조성된 묘역에서 한명숙 장의위원장 등 추모객 3만여명(경찰 추산)이 운집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을 묻는 안장식을 엄수했다. 백자합에 담긴 유골은 지난 5월29일 영결식 직후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이날 오전 49재(齋)를 마친 뒤 아들 건호씨의 가슴에 안겨 석관에 안치됐다. 안장식은 군 조악대 연주에 이어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으로 치러졌다. 유가족과 전직 국회의장, 국무총리, 각 정당 대표, 시민사회 원로 등이 헌화하고 분향했다. 안장식장 주변에서는 고인의 일대기 등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고, 21발의 조총발사와 묵념이 이어졌다. 추모 문화제도 열렸다. 안장식이 끝나자 높이 40㎝, 가로·세로 각각 2m 크기의 비석을 기중기로 묘역 위에 얹으면서 고인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봉하마을에 설치된 분향소는 설치 49일 만에 철거됐다. 한편 이날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는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또 서울 조계사와 화계사 등 일부 사찰에서는 마지막 재를 상징하는 행사가 열렸다. 조계종 원로의원 무진장 스님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행사에서 “육신의 기억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좋은 생각과 의지, 업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박정훈기자 kws@seoul.co.kr
  • ‘영원한 안식’ 들어간 盧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일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영면에 들었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낮 12시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조성된 묘역에서 한명숙 장의위원장 등 추모객 3만여명(경찰 추산)이 운집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을 묻는 안장식을 엄수했다. 백자함에 담긴 유골은 지난 5월29일 영결식 직후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이날 오전 49재(齋)를 마친 뒤 아들 건호씨의 가슴에 안겨 석관에 안치됐다. 안장식은 군 조악대 연주에 이어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으로 치러졌고, 유가족과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각 정당 대표, 시민사회 원로 등이 헌화하고 분향했다. 안장식장 주변에서는 고인의 일대기 등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고, 21발의 조총발사와 묵념이 이어졌다. 추모 문화재도 열렸다. 안장식이 끝나자 높이 40㎝, 가로·세로 각각 2m 크기의 ‘아주 작은 비석’을 기중기로 묘역 위에 얹으면서 고인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봉하마을에 설치된 분향소는 설치 49일만에 철거됐다. 한편 이날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는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또 서울 조계사와 화계사 등 일부 사찰에서는 마지막 재를 상징하는 행사가 열렸다. 조계종 원로의원 무진장 스님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행사에서 “육신의 기억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좋은 생각과 의지, 업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글 / 김해 강원식 박정훈기자 kw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영원한 안식’ 들어간 盧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일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영면에 들었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낮 12시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조성된 묘역에서 한명숙 장의위원장 등 추모객 3만여명(경찰 추산)이 운집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을 묻는 안장식을 엄수했다. 백자함에 담긴 유골은 지난 5월29일 영결식 직후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이날 오전 49재(齋)를 마친 뒤 아들 건호씨의 가슴에 안겨 석관에 안치됐다. 안장식은 군 조악대 연주에 이어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으로 치러졌고, 유가족과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각 정당 대표, 시민사회 원로 등이 헌화하고 분향했다. 안장식장 주변에서는 고인의 일대기 등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고, 21발의 조총발사와 묵념이 이어졌다. 추모 문화재도 열렸다. 안장식이 끝나자 높이 40㎝, 가로·세로 각각 2m 크기의 ‘아주 작은 비석’을 기중기로 묘역 위에 얹으면서 고인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봉하마을에 설치된 분향소는 설치 49일만에 철거됐다. 한편 이날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는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또 서울 조계사와 화계사 등 일부 사찰에서는 마지막 재를 상징하는 행사가 열렸다. 조계종 원로의원 무진장 스님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행사에서 “육신의 기억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좋은 생각과 의지, 업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글 / 김해 강원식 박정훈기자 kw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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