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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① 프롤로그-변천사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① 프롤로그-변천사

    우리에게 서울이란 무엇인가. 한강 기슭에 터 잡은 한성백제 이후 2000년의 역사가 어린 한민족의 고향쯤이기도 하고, 북악 아래 도읍을 정한 지 600년을 훌쩍 넘긴 조선의 심장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유린당했지만 정체성을 지켰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은 민족정기 말살을 노리는 대못을 구석구석 박았다.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일제의 식민 경영에 의해 서울은 심각하게 왜곡됐다. 한국전쟁의 포연 속에서 서울시내 건물의 3분의1이 파괴됐다. 사대문 안 문화재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서울은 폐허에 가까웠다. 그런 서울이 ‘한강의 기적’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60년.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압축적인 성장과 변화가 휩쓸고 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장기 개발독재와 불도저식 행정가의 밀어붙이기 도시계획에 따른 엄혹한 고통을 묵묵히 감내한 서울시민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견뎌 내지 못했더라면 인도의 뭄바이,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울은 진화 중이다. 진화는 상실을 수반한다. 기억하고 남겨야 할 가치마저 토건의 흙먼지 속에 숱하게 사라졌다. 개발 연대의 기록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숨가쁘게 달려온 길이 보인다. 험하고 불편했지만, 기억 속에서는 정겨운 시절이기도 하다. ‘서울 택리지’(擇里志)는 지금 우리 옆에 남아 있는 건물, 도로, 장소, 풍광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재생 과정을 도시계획적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잊고 지내 온 것들을 되새김하고자 한다. ■서울 2000년사 새로 써야 하나 미국의 도시설계가 케빈 린치는 “도시는 랜드마크(landmark)와 구역(district), 통로(path), 접점(node), 경계(edge)로 인지된다”고 ‘도시의 이미지’를 정의했다. 서울을 도시건축적 시각에서 보면 다섯 가지 키워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본 서울은 만감이 교차하는 상념의 뿌리 같은 곳이다. 서울의 진짜 나이는 몇 살일까. 우리는 ‘서울은 600년 역사를 지닌 도시’라고 알고 있고, 서울을 소개하는 대부분 책에 그렇게 적혀 있다. 1978년 ‘서울 600년사’가 편찬됐고, 1994년에는 서울 정도 600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서울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정설은 흔들리고 있다.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는 2009년 ‘서울 역사 2000년’을 내놓으면서 서울의 공간을 확장했고, 역사도 1400년 늘렸다. ‘온조가 위례에 자리 잡았다’는 삼국사기의 백제 건국설화에 따라 서울의 기원을 기원전(BC) 18년으로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성백제시대 493년이 서울의 역사로 편입됐고, 한강 이남까지 영역이 확장됐다. 위례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일대다. 백제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을 받아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옮겼으므로 백제 수도로서의 서울 역사는 500년 가까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석촌동 일대에는 백제 초기 적석총 10여 기가 남아 있는데 이 중 3호분을 13번째 왕 근초고왕(?~375)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곧 한성백제 493년에,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가 서울을 남경(南京)으로 삼은 기간까지 더하면 수도 서울의 역사는 물경 2000년에 이른다는 것이다. 로마, 아테네, 바빌론, 이스탄불, 다마스쿠스, 테베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반열이다. 900년 설도 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은 18㎞ 사대문 안과 사방 십리(城底十里)를 의미하는데 위례는 경기도 지역으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울에 속한 곳이므로 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지역이라는 것이다. ‘오래된 서울’을 펴낸 최종현·김창희씨는 “서울의 기원을 위례에서 잡을 것이 아니라 고려 숙종의 남경 천도로 잡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숙종이 경복궁 근처에 남경행궁을 만들어 행차한 1104년을 서울의 기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서울의 역사는 919년이 됐다는 얘기다. 묵을수록 좋다고 하지만 서울의 나이를 무한정 늘리는 것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1392년 조선 건국과 한양 천도를 한민족 수도 서울의 주춧돌로 보는 것이 일반의 통설이다. ■고려 286년 동안 5차례 시도된 한양 천도 한양 천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얘깃거리가 많다. 고려 건국 후 서울은 양주(楊州)로 불렸으며 지방 호족이 할거했지만,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한 문종은 1067년 남경으로 승격시켰다. 개경(개성), 서경(평양)과 함께 고려의 3대 도시로 삼은 것이다. 한양 천도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 성공과 이에 따른 지배층 정리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역사 교과서는 소개하고 있지만, 천도는 고려 중기부터 끊임없이 시도됐음을 알 수 있다. 1308년 충선왕은 남경을 한양부(漢陽府)라고 고쳤다. 1357년 공민왕은 남경 천도를 본격화했다. 수도를 옮김으로써 국내외 혼란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송도(개경)의 지덕이 다해 나라 안팎의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는 지리도참설이 도읍을 옮기도록 부추겼다. 1382년 우왕은 한양 천도를 단행했지만, 이듬해 개경으로 돌아갔다. 1390년 공양왕은 한양으로 옮기면서 백관들이 양쪽에서 나눠 근무하게 함으로써 6개월짜리 ‘반쪽’ 수도에 그쳤다. 천도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한 지 3년 만인 1395년 6월 6일 한양부를 한성부로 바꾸면서 완성됐다. 고려의 한양 천도는 1104년 숙종 때 처음 시도된 이래 충선왕, 공민왕, 우왕, 공양왕 등 5명의 고려왕이 시도했지만, 무위로 돌아갔고, 결국 조선 태조에 의해 291년 만에 실행에 옮겨졌다. 고려왕조 476년의 절반을 넘는 286년 동안 고려의 마음은 개성을 떠나 한양을 기웃거렸다. ■‘서울특별시’의 탄생 비화 서울은 지명이 아니라 도읍을 이르는 용어다. 서울은 고려 때 한양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 공식 지명은 한성부(漢城府)였다. 중국이 지금까지 서울을 한성(漢城)이라고 호칭하는 까닭이다. 일제는 경성부(京城府)로 개칭, 경기도 내 행정구역의 하나로 깔아뭉갰다. ‘서울’이라는 지명은 1946년 8월 14일 미 군정청 특별발표에서 처음 등장한다. 손정목 전 시울시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미 군정장관 아처 러치 소장이 광복 1주년 기념 선물로 서울을 경기도에서 독립시켜 특별시(영문 표기는 독립시)로 승격시켰다고 한다. 서울특별시는 군정 법령의 효력이 발생한 1946년 9월 28일을 기해 공식 지명이 됐다. 서울 사대문 안이 미군의 무차별 공습에서 벗어나 문화재를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하게 된 비화도 전해진다. 한국전쟁 당시 주일대표부 전권공사를 지낸 김용주(1905~1985)는 ‘나의 회고록, 풍설시대 80년’에서 도쿄사령부로 맥아더 장군을 찾아가 설득한 경위를 밝혔다. 그는 5대 궁과 사대문을 포함하는 지역을 작전지도에 표시하면서 폭격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고, 맥아더는 “좋은 조언을 해 줘 대단히 기쁘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김용주는 후에 전남방직을 창업했고 경총회장을 지냈다. ■이중환은 ‘서울 택리지’를 어떻게 쓸까 나라에 사(史)가 있으면 고을에는 지(志)가 있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 전통이다. 지리지(地理志)는 지역의 역사, 지리, 인물, 풍속 등을 기록한 책이다. 지리지도 정사의 일부였다. 중국의 경우 반고는 한서(漢書)에 지리지를 포함했고, 삼국사기와 고려사도 각각 지리지를 갖추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이 펴낸 택리지(擇里志)는 동국여지승람과 함께 우리나라 지리지를 대표한다. 동국여지승람이 행정중심적 백과사전이라면 택리지는 생활권과 지역권의 시각으로 서술한 근대 지리학의 맹아라고 할 수 있다. 이중환은 30여년간 전국을 떠돌면서 살 만한 곳을 찾아 헤맸다. 공자가 논어에서 ‘군자는 살 만한 곳을 찾아 거한다(可居地)’는 그곳, 동양의 유토피아였다. 특히 사람이 살 만한 곳의 입지 조건으로 지리(地理)와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 등 4가지를 꼽았다. 이중환은 살 만한 곳을 찾았을까? 택리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신택리지’의 저자 신정일은 “끝내 살 만한 땅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울은 살 만한 곳인가?’ 서울은 ‘연식’은 오래된 도시이지만 ‘마일리지’는 환갑을 넘지 못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다이내믹하게 변화한 도시다. 조선 말 20만명이 살던 도성은 해방 전후 100만명으로 늘어났고, 1990년 1000만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은 광적으로 서울에 몰렸다. 개발 연대기 서울 행정은 인구 분산과 교통난 해소, 택지개발, 아파트 건설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서울은 늘 만원이고, 늘 공사 중이었다. 개발의 와중에서 역사와 애환이 서린 ‘그때 그곳’은 보호받지 못했고, 달랑 표지석으로 남은 곳이 숱하다. 그런 서울이 사람 위주의 환경도시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개발 연대를 대표하는 청계고가의 철거와 청계천 복원이 터닝포인트였다. 2013년 서울은 수도권 주민 등 3000여만명이 드나들고,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이 지향하며,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이 찾는 ‘동방의 메트로폴리스’가 됐다. 불과 반 세기 만에 일어난 경천동지할 변화다. 이중환이 현대 서울을 보았다면 택리지의 후편으로 ‘서울 택리지’를 집필했을 것이다. 그는 무엇이라고 쓸까. joo@seoul.co.kr
  • 이대우 부산 잠입한 듯…목격자 증언은?

    이대우 부산 잠입한 듯…목격자 증언은?

    26일째 도주 행각을 벌이고 있는 탈주범 이대우(46)의 흔적과 지문이 부산에서 발견돼 경찰이 수색에 나섰다. 경찰은 14일 오전 7시 30분쯤 부산 수영구 민락동 동방오거리 근처 2층 주택에서 이대우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주택은 나흘 전 주인이 이사를 간 뒤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으로 철거를 앞두고 있다. 이대우를 발견한 사람은 작업차 들른 철거업자 김모(50)씨였다. 김씨는 13일 오전 7시 30분쯤 주택 내부 다락방에서 누워있는 이대우를 발견했다. 김씨는 이대우에게 “여기서 뭐하느냐”고 물었고 이대우는 “잘 곳이 없어서 여기서 지내는 중”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이대우는 김씨가 철거 작업을 준비하자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김씨는 애초에는 이대우를 단순한 노숙자로 생각했다. 하지만 작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운 뒤 딸에게 “이상한 사람을 봤다”고 말했고 김씨의 딸이 인터넷으로 이대우의 사진을 보여주자 이날 오후 6시 50분쯤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이대우의 인상착의에 대해 “머리카락이 ‘빡빡머리’라고 할 정도로 짧았고 노란색 반팔 티셔츠와 빨간색 계열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이대우가 가발을 가지고 있었다고도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집 안에 있던 과자 봉지와 술병, 음료수 캔 등을 수고해 지문 감식을 벌였다. 감식결과 이 지문은 이대우의 것과 75% 이상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대우가 아직 부산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주택 일대를 수색하고 있다. 또 공항과 버스터미널, 기차역 및 주요 도로에서 검문 검색을 벌이고 있다. 또 주변의 폐쇄회로(CC)TV 화면을 분석해 행방을 쫓고 있다. 이대우는 지난달 20일 전주지검 남원지청에서 특수절도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수갑을 풀고 달아난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이대우, 부산시민 목격담 “베이지색 모자 쓴 노숙인 행색”

    이대우, 부산시민 목격담 “베이지색 모자 쓴 노숙인 행색”

    부산 시민을 중심으로 14일 이대우 목격담이 잇따라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부산의 한 철거대상 폐가 안팎에서 탈주범 이대우(46)를 본 집주인과 상인, 철거업체 관계자 등의 목격담에 따르면 이대우는 노숙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남루한 옷차림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가발을 갖고 다니는 등 변장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 띄면 곧바로 달아나는 ‘도주 본능’을 발휘했다. 부산에서 이대우를 처음 봤다는 사람은 폐가 근처에 있는 동네 슈퍼마켓 주인 이모(67)씨다. 이씨는 “지금 생각하면 이대우가 지난 12일 오후 9시 이후에 1000원짜리 지폐를 1장 가지고 와서 우유인가를 사갔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옷차림이 남루했고 늦겨울에나 입을 것 같은 긴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깊이 눌러 쓴 베이지색 모자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에는 정신장애인이 아닌가 하고 한번 더 봤다는 이씨는 “그 사람이 이대우라니 섬뜩한 느낌이 든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대우를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경찰에 신고한 철거업체 사장 김모(51)씨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13일 오전 8시 40분께 철거작업을 하려고 폐가에 들어갔다가 1층과 2층 사이 눈높이에 있는 다락방에 누워 있는 이대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대우에게 “여기서 뭐하느냐”고 했고, 이대우는 “잘 데가 없어서 여기서 지내고 있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대우는 김씨가 철거작업을 준비하자 급하게 집을 빠져나갔다. 그는 머리카락을 짧게 깎았고 연보라색 반소매 티셔츠, 흰색 바지 차림이었다. 또 베이지색 모자와 붉은색을 띠는 운동화를 착용하고 가발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발은 이대우와 함께 사라졌고 현장에서는 과도와 촛불은 켠 흔적이 발견됐다. 폐가 주인 홍모(48)씨는 비슷한 시각에 작업현장을 둘러보려고 들렀다가 부엌에 딸린 문에서 나와 급히 달아나는 이대우를 다른 작업인부들과 함께 목격했다. 홍씨 등은 당시 이대우를 단순한 노숙인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영도다리/손성진 수석논설위원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어린 시절 “니(너)는 영도다리 밑에서 주우(주워)왔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다. 장난투의 놀림이었지만 참말로 알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영도다리에서 부산 사람들은 고향 같은 친근함을 느낀다. ‘구포다리는 걷는 다리요, 영도다리는 드는 다리요, 영감다리는 감는 다리요’라는 익살스러운 부산지방의 구비 민요도 있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조금 못 미치는 영도(影島)는 선사시대의 패총 유적이 많고 해안 경치가 아름다운 섬이다. 영도와 부산의 본토 남포동을 잇는 다리가 영도다리다. 영도의 남쪽 끝에 있는 태종대로 가려면 영도다리를 건너야 한다. 6·25 피란 시절 영도다리 밑은 피란민들이 비를 피하고 잠을 청했던 공간이었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처럼 영도다리는 피란민들이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향수에 빠졌던 곳이기도 했다. 영도다리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4년 11월 준공됐다. 준공식에는 멀리 김해나 밀양에서까지 6만 인파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밤새 제등행렬도 이어졌다고 한다. 영도다리가 명물 중의 명물이 된 것은 국내 유일의 도개교(跳開橋,draw bridge)였기 때문이다. 영도다리는 부산의 남항과 북항 사이에 있어서 배가 영도 남쪽을 돌아가는 시간 낭비를 해결하는 비책이 도개교였던 것이다. 영도다리는 하루에 여섯 차례 들어 올려졌다. 거대한 물체가 하늘로 치솟아 오를 때 처음 본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부산사람들은 그저 “영도다리가 끄덕끄덕한다”고만 했다. 그러나 교통량의 증가로 1966년 9월부터는 영도다리가 들린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다리를 들어 올릴 때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기다려야 했다. ‘배 몇 척을 보내려고 수많은 차들이 기다려야 하느냐, 배가 돌아가면 되지’ 하는 원성이 자자했던 것이다. 노후화된 영도다리를 철거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었다. 결국 복원하기로 결정되어 2006년에는 부산시 기념물 제56호로도 지정됐다. 이듬해 7월 보수·복원공사가 시작되어 최근 상판 연결공사가 끝났다. 부산시는 다리를 복원함과 동시에 47년 만에 도개 기능도 재현한다고 한다. 올 연말에는 영도다리가 ‘끄덕끄덕’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낭만적인 풍경을 위해서라면 잠시 교통이 정체되는 것쯤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쓰레기장 된 ‘農心 나눔쉼터’

    쓰레기장 된 ‘農心 나눔쉼터’

    “농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에 먼지와 거미줄만 수북해요.” 11일 오전 경북 의성군 봉양면 화전1리 마을 한복판에 자리한 ‘농심 나눔쉼터’. 육각 정자의 나무 바닥엔 찌든 먼지가 수북했다. 천장과 벽체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고, 검은 곰팡이도 피어 있었다. 정자 주변에는 주민이 몰래 내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쌓였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농민을 위한 공간이라지만 사람이 이용한 흔적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화전리에는 178가구에 주민 395명이 살고 있다. 주민 김모(61·여)씨는 “수년 전에 쉼터가 설치됐지만 지금까지 주민이 이용하는 걸 못 봤다”면서 “쓰레기 불법 투기 장소로 전락해 하루빨리 철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북도와 시·군이 농민들에게 휴식 공간 등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170억여원을 들여 설치한 농심 나눔쉼터가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도 등에 따르면 1991년부터 올해까지 23년간 지역 23개 시·군의 농촌마을 2397곳에 나눔쉼터를 마련했다. 나눔쉼터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사각 또는 육각 정자를 비롯해 의자, 탁자, 파고라, 체육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지역별로는 경주시가 137곳으로 가장 많다. 성주군 129곳, 예천군 126곳, 상주시 124곳, 봉화군 123곳 등이다. 여기에는 총예산 172억 9200만원(도비 20%, 시·군비 80%)이 투입됐다. 곳당 설치비는 200만~1000만원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나눔쉼터를 거의 이용하지 않아 막대한 예산낭비 논란이 거세다. 일부 지역 나눔쉼터는 청소년들의 탈선 및 쓰레기 불법 투기 장소로 전락됐다며 주민들이 조속한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대다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특히 2000년 이전에 설치된 나눔쉼터들은 흉물로 방치돼 보수 또는 철거가 시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김천시와 칠곡군 등 2개 시·군은 2008년부터 이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박보생 김천시장은 “전시행정으로 예산낭비 요인이 크다”며 사업 중단을 지시하기도 했다. 경산시 등 다른 시·군 관계자들은 “나눔쉼터의 활용도가 낮은 것은 알지만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1마을 1나눔쉼터를 설치하고 있다”면서 “적극적인 관리 및 이용 홍보를 통해 유익한 시설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도 관계자는 “나눔쉼터 운영상의 문제 등으로 2~3년 전쯤 사업 중단을 검토했으나 시·군 요청에 따라 부득이 계속하고 있다”면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결국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의성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대화한다던 터키 총리 하루만에 최루탄 진압

    터키에서 반정부 시위가 12일째로 접어든 11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을 예고했다. 이날 여당인 정의개발당(AKP) 국회의원들에게 한 연설에서 에르도안 총리는 “이번 사건은 이제 끝났다. 더는 관용을 (시위대에) 보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시위가 ‘폭력의 악순환’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며 “민주적 요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날 터키 정부는 에르도안 총리가 12일 시위대 대표와 회동할 예정이라고 발표해 사태 해결에 대한 기대를 모았으나 하루 만에 강경한 태도로 돌변, 반정부 시위가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1일 이번 시위가 촉발된 탁심광장에서 철수했던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진압 차량 2대를 동원, 광장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을 향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진압에 나섰다. 시위대도 경찰을 향해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맞섰으나 속수무책이었다. 탁심광장 뒤편의 게지공원으로 물러난 수천명의 시위대는 텐트 수백 개를 설치한 채 타이이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했다. 휘세인 무틀루 이스탄불 주지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우리의 목적은 광장 주변에 있는 현수막과 동상을 제거하는 것”이라면서 “게지공원과 탁심광장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탁심광장은 ‘타이이프(총리) 사임’, ‘입 닥쳐, 타이이프’라고 적힌 현수막으로 뒤덮였으나 모두 철거됐다. 경찰은 대신 터키 국기와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케말 파샤의 초상화를 내걸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불산 누출 삼성전자 직원 등 4명 불구속 입건

    경기 화성동부경찰서는 지난달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 누출 사고와 관련해 삼성전자 직원 2명과 협력업체인 성도ENG 안전관리 책임자 2명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유해화학물질인 불산의 취급 및 관련 설비에 대한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11라인 중앙화학물질공급장치(CCSS)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는 철거 작업 중이던 배관에서 잔류 불산이 흘러나온 것으로, 이로 인해 성도ENG 작업자 3명이 손과 발 부위에 화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번 주 내에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방침이다. 이와는 별개로 산업안전보건법·유해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 중인 고용노동부와 환경부는 잘못이 드러나면 관계자들을 형사 처벌할 방침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쌍용차 분향소터 둘러싼 경찰띠

    쌍용차 분향소터 둘러싼 경찰띠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 노동자 임시 분향소를 기습 철거한 10일 경찰이 분향소터와 화단을 둘러싸고 있다.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는 기습 철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려 했지만 경찰이 불법 집회라고 막아서면서 무산됐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하늘님도 개운하시겠네! 환구단, 일본식 석등 걷어내고 전통방식으로 복원

    하늘님도 개운하시겠네! 환구단, 일본식 석등 걷어내고 전통방식으로 복원

    대한제국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환구단이 제 모습을 되찾았다. 서울 중구는 지난해 10월부터 추진한 사적 제157호 환구단 복원 공사를 마치고 10일부터 개방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헐린 환구단엔 총독부의 철도호텔(현 조선호텔)이 들어섰다. 지금은 하늘과 땅 신령의 위패를 모신 황궁우, 돌북 3개, 석조 정문만 남아 있다. 특히 환구단에 설치됐던 석등은 한국미술사에 등장하지 않은 이질적 형태로 근대 이후 일본의 정원 장식용으로 널리 보급된 일본식 석등과 매우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또 일본식 정원으로 논란을 빚은 잔디 1340㎡를 들어내고 전통 방식에 따라 마당 1462㎡ 전체를 마사토로 포장했다. 배수가 잘 되도록 집수정 7곳과 배수관로 110m도 설치했다. 석등 21개와 가로등, 조형수 7그루를 철거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주변에 흩어졌던 난간석과 지대석도 한데 모았다. 황궁우의 파손된 부분은 전통 돌로 다시 깔았다. 환구단은 오전 9시~오후 9시 연중무휴 무료로 개방된다. 황궁우 내부는 매주 토요일 오후 2~4시 운영하는 중구 문화유산탐방,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볼 수 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발주 비리’ 이종상 前토공사장 무혐의 처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여환섭)는 10일 건설업체 사장으로부터 공사 발주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뇌물수수 및 변호사법 위반)로 수사를 받았던 이종상(62) 전 한국토지공사 사장과 그의 전 비서 허모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이 전 사장은 2009년 경기 하남 위례신도시 개발지구의 철거 사업을 맡기는 조건으로 철거업체 사장 신모(71)씨로부터 상품권 1000만원어치를 받은 혐의로 경찰청의 수사를 받았다. 또 퇴임 후 2년간 공사 소속 직원들에게 청탁을 해주는 명목으로도 신씨에게서 10여 차례에 걸쳐 1억 8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이 전 사장은 부인이 상품권을 받았다고 진술했는데 이 전 사장이 상품권을 받은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또 “퇴임 후 받았다는 돈 중 일부가 확인됐고 해당 철거업체를 대형 건설사 사장에게 소개해준 정황도 나왔지만 사기업 간에 오간 거래를 처벌할 근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지난해 8월 이 전 사장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경찰에 수사의뢰했으며, 경찰은 이 전 사장에 대한 기소 의견으로 관련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새만금에 첫 휴양시설 들어선다

    새만금지구에 첫 휴양시설이 들어설 전망이다. 새만금 간척지 조성사업이 시작된 지 22년 만이다. 전북도는 지난 5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신시도 휴게시설 개발사업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을 조건부로 통과시켰다고 6일 밝혔다. 이 계획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공모한 민간사업자인 ㈜새만금에서 2017년까지 군산시 옥도면 신시도 주차장 일원 5만 5000㎡에 총사업비 777여억원을 들여 휴게소와 호텔, 관망탑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난 1월 열린 회의에서 철탑 철거 여부와 관망탑의 디자인 등에 대해 재검토 의결이 내려지는 바람에 유보됐다가 이날 위원회에서 조건부로 통과됐다. 위원회는 새만금사업의 시급성 등을 들어 우선 착공을 허용했지만 추후 철탑을 철거하고 랜드마크인 전망타워의 디자인을 바꾸도록 권고했다. 신시도에 휴게시설이 들어서면 새만금지구가 스쳐가는 관광지에서 묵어가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양래 도시계획담당은 “이 사업은 새만금방조제 안에 설치되는 첫 휴양 관련 시설물이란 데 의미가 있다”면서 “호텔과 휴게시설이 들어서면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아파트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 권역별 관리 일시집중 방지…주거 전후 2회 안전진단

    아파트 리모델링 수직 증축을 허용해도 안전성은 담보돼야 한다. 자칫 전세난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따를 수 있다. 이에 국토교통부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놨다. →수직 증축 허용 시 일시 집중 등 전세난 방지 방안은. -지자체별로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수립해 계획기간 내 단계별·권역별 인허가 물량 등을 관리하여 일시 집중을 방지할 계획이다. 리모델링 사업 과다집중으로 전세난 등 주거불안이 현저히 우려되는 경우에는 국토부 장관이 지자체장에게 리모델링 허가 시기 등을 조정하도록 요청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안전진단을 두 번 실시하는 이유는. -1차 진단은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다. 수직 증축 허용범위 결정, 구조안전성 확인을 위한 육안·비파괴 검사 등을 실시하는 것이다. 주민이 이주하면 2차 진단을 해야 한다. 내장재를 철거한 상태에서 구조도면 내용 확인과 구조 상세진단 등을 위한 전문가 안전진단을 추가로 실시한다. 1차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조합은 사업 규모 및 추진 여부를 결정하고, 사업계획승인 시 제출된 실시설계도서의 구조 적합성·보강공법의 안전성을 최종 평가하기 위해 2차 진단은 전문가에게 맡긴다. →리모델링 기본계획 수립 지연으로 사업이 지연되면. -리모델링 기본계획 관련 조항은 다른 개정사항(수직 증축 범위 등)과 달리 공포 후 즉시 시행해 수립 이전의 공백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기본계획 수립 이전이라도 조합설립·안전진단 등의 절차는 진행할 수 있다. 기존 조합이 리모델링 방식을 바꾸는 것도 허용된다. →수직 증축이 실제 가능해지는 시점은. -법령 시행 전이라도 사업성 검토나 조합설립 동의서를 받는 것은 진행할 수 있다. 법 시행 후 조합이 설립되면 1~2년 뒤에는 사업계획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아파트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 건축비 30% 이상 절감… 지지부진 ‘재건축’ 새 돌파구 찾을 듯

    [아파트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 건축비 30% 이상 절감… 지지부진 ‘재건축’ 새 돌파구 찾을 듯

    리모델링 수직 증축 허용으로 주민들의 리모델링 건축비 부담이 기존 방식과 비교해 30%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리모델링 수직 증축 허용이 꺼져가는 주택시장에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지지부진했던 재건축 사업도 새로운 탈출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① 건축비 얼마나 감소하나 경기 안양 평촌에 있는 15층짜리 아파트 단지(실제 사례)의 리모델링을 가정했다. 이 아파트는 전용 34㎡ 384가구, 전용 58㎡ 61가구로 이뤄졌다. 쌍용건설 리모델링사업팀의 시뮬레이션 결과 이 아파트를 수직 증축하면 수평 증측 때보다 리모델링 건축비가 30% 이상 절감되는 것으로 나왔다. 가구당 면적을 23% 늘리는 것으로 설계, 수직 증축할 경우 기존 주민들의 아파트 전용면적은 각각 41㎡, 71㎡로 넓어진다. 여기에 가구수 증가 허용 범위(기존 가구의 15% 이내)를 적용하면 59㎡짜리 아파트 140가구를 추가 건설할 수 있다. 수익성을 비교하면 수평 증축의 경우 기존 58㎡를 갖고 있는 집주인은 가구당 1억 3000만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수직 증축으로 나온 가구수 증가분을 3.3㎡당 1800만원에 일반분양하면 가구당 부담이 8600만원으로 줄어든다. 수직 증축이 리모델링 건축비 34% 절감 효과를 가져온다. ② 리모델링 정책 선회 배경 정부는 2012년 1월 구조상 안전 우려가 없는 수평·별도 건물 증축을 통한 가구수 증가를 허용했다. 수직 증축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 때문이었다. 건축 전문가들과 건설업계는 제한된 수직 증축을 허용해도 구조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끈질기게 주장했다. 주민들도 수평·별동 증축만으로는 가구수 증가가 원활하지 않아 부담이 너무 크다며 수직 증축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지만 정부는 불허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리모델링 정책이 돌아섰다. 전문가들의 주장과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주택거래를 늘리고 가격을 회복시켜 주택시장을 정상화한다는 ‘4·1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전격 허용한 것이다. 소형 아파트 의무비율 등 현실적으로 너무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지지부진한 재건축 사업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③ 수직 증축 허용 범위 차별 적용 이유 아파트 리모델링 수직 증축 허용범위를 층수에 따라 2~3개층으로 구분한 이유는 건물의 하중(건물 구조에 작용하는 외부의 힘 또는 무게)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구조 안전성은 저층일수록 확보가 불리하다. 예를 들어 20층에 3개층을 증축하면 하중이 15% 증가하지만 10층은 3개층 증축시 하중이 30% 증가한다. 기존 건물의 구조를 보강해 하중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정도만 수직 증축을 허용한 것이다. 현재의 아파트에 2~3층을 더 얹어도 보와 기둥을 보강하면 충분히 하중을 이겨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지어진 아파트는 대개 라멘조(기둥과 보가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나 벽식조(벽면이 하중을 받는 구조)이다. 주상복합 아파트에 적용하는 철골조보다 하중을 받는 정도가 약해 그 이상의 증축은 하중을 견디지 못해 허용할 수 없다. 국토교통부 박승기 주택정비과장은 “기존 아파트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 기초와 벽체를 보강하면 최대 2~3개층을 증축해도 구조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필로티(건물 1~2층에 아파트를 넣지 않고 비워 두는 공간)를 설치해도 3개층 이상은 허용되지 않는다. 늘어나는 가구수가 20가구 이상이면 반드시 일반에 분양해야 한다. ④ 건물 안전 담보할 수 있나 수직 증축의 전제는 안전성 확보다. 국토부는 신축 당시 구조도면이 없으면 외관상 튼튼해 보여도 건물의 기초에 대한 상태 파악이 어렵고 완벽한 복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직 증축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절차도 강화했다. 우선 현행 1차 안전진단(재건축 여부 판정)에 수직 증축 범위 결정 등을 위한 전문기관의 2차 안전성 검토조사를 추가했다. 건축심의가 접수되면 지자체는 전문기관(한국건설기술연구원·한국시설안전공단)에 수직 증축 범위의 안전성 검토를 맡겨야 한다. 또 수직 증축 리모델링 설계자는 국토부가 고시하는 구조기준에 맞게 구조설계도서를 작성하고, 감리자는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설계변경 등에 대해 구조기술사의 확인을 받도록 했다. ⑤ 가구수 증가 문제 없나 가구수를 현행보다 5% 포인트 늘려 15%까지 허용하면 주민들의 사업비 부담은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도시과밀 및 일시집중 부작용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재의 도시 인프라가 가구수 증가에 따른 부작용을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느냐이다. 국토부는 분당 등 1기 신도시의 경우 가구당 실제 인구가 계획 당시 4명보다 적은 2.7명이기 때문에 현재의 도시 인프라만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충분히 떠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직 증축을 허용해도 교통시설·상하수도·공원·녹지 등 도시기반시설 추가 부담은 미미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 지자체별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통해 기반시설에 대한 영향을 검토하고, 도시계획심의로 과밀여부 등을 판단하도록 했다. ⑥ 전면 리모델링해야 하나 수직 증축을 허용한다고 모든 단지가 당장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업비 부담이 가능한 지역과 주민들의 합의가 이뤄진 단지에서만 사업이 추진된다. 전면 철거형의 경우 95㎡를 132㎡로 리모델링할 경우 가구당 1억 8000만~2억원이 들어간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주민들이 원하는 부분만 리모델링하는 ‘맞춤형 리모델링’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예를 들면 주차장 증설, 주차장 증설+설비교체, 주차장+설비+에너지 절약형 수선 등으로 나눠 공법·단가정보 등을 제공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 배포할 예정이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세계 최대 용광로 불 뿜는다… 포스코, 또 하나의 신기록

    세계 최대 용광로 불 뿜는다… 포스코, 또 하나의 신기록

    세계에서 가장 큰 용광로(고로)가 광양제철소에 탄생한다. 포스코는 7일 전남 광양제철소에서 정준양 회장과 임직원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내용적 6000㎥ 규모의 제1고로에 불을 댕기는 화입식(火入式)을 한다고 6일 밝혔다. 1고로는 1987년 4월 처음 쇳물을 쏟아낸 뒤 세번째(3대기)로 증설된 것이다. 보통 고로의 높이는 100m 이상이다. 포스코는 고로 안 내용적이 3950㎥(2대기·연산 328만t)에서 58% 늘어난 데다 자체 개발한 고출선비 제선기술이 더해지면서 쇳물을 연간 565만t 생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승용차를 연간 237만대 더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전세계에 5000㎥ 이상 대형급 고로는 21개에 불과하다. 그동안 가장 큰 고로는 5800㎥급으로 중국 최대 민영 철강사인 사강그룹의 1고로였다. 이어 일본 오이타제철소의 1, 2고로와 포항제철소의 4고로가 뒤를 이었다. 포스코 관계자는 “고로의 내용적은 커질수록 생산 효율성이 높아지는데, 여기에 최신 설비를 갖춤으로써 친환경 제품을 저렴한 원가로 공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고부가가치 에너지 강재와 자동차용 강판 등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양산할 것”고 말했다. 또 1고로는 수증기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무증기 수재설비’를 갖춰 에너지 회수율을 높였고, 전력이나 용수를 절감하는 시설을 도입해 친환경 고로로 개선했다는 것이다. 1고로는 1987년 처음 출선 후 2002년 수명을 다한 뒤 개수공사를 거친 2대기에서 그해 6월부터 10년 8개월 동안 하루도 쉼 없이 총 7745만t의 쇳물을 생산해 왔다. 고로는 한번 불을 지피면 계속 조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화입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로 내부의 내화벽돌이 마모되면서 수명을 다하게 된다. 이를 고로의 ‘1대기’라고 한다. 고로의 수명이 다하면 불을 끈 뒤 고로 본체를 철거하거나 내화벽돌을 새롭게 교체하고, 일부 설비를 새롭게 하는 보수 작업을 해야 한다. 3대기 개수공사는 지난 2월부터 109일간 진행됐고, 하루 1300여명이 공사에 참여해 공사 기간을 10일 단축했다. 앞서 지난 3월 개수공사 현장을 방문한 정 회장은 초대형 고로와 친환경 설비, 안전 공사 등을 주문한 바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최초의 초대형 고로라는 세계 철강업계의 의미 외에도 개수공사가 불경기에 지역경제에도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 관급수주로 큰 황보건설… 정·관계 특혜 배후 드러나나

    관급수주로 큰 황보건설… 정·관계 특혜 배후 드러나나

    검찰이 5일 황보연 황보건설 대표를 구속함에 따라 관급공사 수주 관련, 원세훈(62) 전 국가정보원장 등 이명박(MB) 정부 실세 로비 의혹과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 재직 당시 ‘현대건설-황보건설-정·관계’로 이어지는 삼각 커넥션이 드러날지 관심이 쏠린다. 검찰 관계자는 “황보건설이 이명박 정부 시절 수천억원대의 관급공사를 수주하게 된 경위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면서 “비자금의 용처를 추적하고 있는 만큼 황보건설이 공사 수주를 위해 로비한 ‘배후 인물’들도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황씨는 원 전 원장이 서울 용산구청에 있던 1990년대 초반부터 그의 ‘스폰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전·현직 공무원, 정권의 금융권 실세 등과 함께 골프 회동을 한 정황을 포착, 원 전 원장이 황보건설의 관급 공사 수주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원 전 원장의 로비 의혹이 제기된 삼척그린파워발전소 제2공구 토목공사 외에도 황보건설이 강원도 삼척 지역 등에서 관급공사를 수주한 경위를 대대적으로 훑고 있다. 황보건설은 2010년 한국가스공사가 발주한 1200억원대의 삼척 LNG 생산기지 호안 축조 및 부지 조성 공사에 하청업체로 참여했다. 원청업체인 현대건설이 주축이 된 컨소시엄은 제한경쟁 입찰 방식으로 황보건설을 하청업체로 선정했다. 제한경쟁 입찰은 특별한 자격, 지역, 면허 요건 등 조건을 충족한 업체에만 입찰 기회를 주는 방식이다. 지역 건설업체에 계약금액의 30% 정도 하도급을 줘야 한다는 권고 사항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업계 안팎에선 정권 실세 로비 및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지역의 건설업체 관계자는 “당시 황보건설 하청을 두고 권력기관의 백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황보건설이 서울시에서 발주한 공사를 여러 건 수주한 점도 주목하고 있다. 황보건설은 서울시에서 발주한 동대문운동장 2공구 철거공사(2007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파크 토목공사(2009년), 문래고가차도 철거 및 교통개선공사(2010년) 등의 시공사로 선정됐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서울시 공무원 출신의 원 전 원장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황씨는 2004년 서울 용산구 주택재개발사업 수주 등의 청탁과 함께 구청 도시관리국장에게 금품 등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황보건설은 관급공사로 급성장했다. 2008년 자본금 19억원에 매출액 63억원으로, 도급순위 490위대 중소 건설사였던 황보건설은 2009년 296억원, 2010년 408억원, 2011년 473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건설공사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황보건설의 2010~2011년 전체 매출액 881억원 중 관급공사 비중이 598억원으로 68%에 달한다. 황씨는 1997년 고려대 노동대학원을 다니면서 정·관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와튼스쿨 최고경영자 과정 총교우회 수석부회장을 지내면서 재계 인사들과도 친분을 유지했으며 김종훈 한미파슨스 회장,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 등이 속한 ‘작은 도움 클럽’에서도 활동했다. 한편 황보건설은 지난해 5월 유동성 부족이 원인이 돼 부도가 났다. 무리한 공사 수주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새 정부 들어 수사를 받을 것에 대비해 ‘위장 부도’를 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권혁 변호사의 행정법 판례 강의 (31)] 환지계획과 다른 환지처분 당연 무효… 취소·무효확인보다 손해배상 청구를

    도시개발사업 등 공용환지 제도가 규정되어 있다. 공용환지란 토지의 이용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사업을 위하여 토지의 소유권 및 기타의 권리를 권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교환, 분합하는 것을 말한다. 환지는 ①환지계획 ②환지예정지의 지정 ③환지처분의 순서로 진행된다. 환지계획은 환지예정지 지정이나 환지처분의 근거가 되지만, 그 자체가 직접 토지 소유자 등의 법률상 지위를 변동시키거나 고유한 법률효과를 수반하는 것은 아니어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대판 97누6889)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환지예정지는 환지처분이 행해지기 전에 종전 토지 대신에 사용, 수익하도록 지정된 토지를 말한다. 도시개발사업 시행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므로 도시개발사업 시행 중에도 종전 토지 대신 환지로 예정된 토지를 사용, 수익하도록 지정하는 것이다. 환지 예정지 지정이 있게 되면 토지 등 사용·수익권에 변동이 있으므로 처분에 해당하지만, 그 뒤에 환지처분이 있게 되면 환지예정지 지정처분은 그 효력이 소멸되어 더 이상 다툴 소의 이익이 없어진다.(대판 99두6873) 위와 같이 환지계획은 처분성이 부정되고, 환지예정지 지정은 환지처분 이후에 소의 이익이 부정되므로 결국 환지처분이 가장 중요한 다툼의 대상이 된다. 환지처분은 사업시행자가 공사를 완료한 후 환지계획에 따라 환지교부를 하는 처분을 말하고, 그에 의해 직접 토지 소유자 등의 권리의무가 변동되므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다.(대판 97누6889) 오늘 살필 대판97누5534판결의 사안을 단순화시켜 살펴본다. A는 환지 전 (가)토지를 소유하고 있다가, 건물을 신축하여 제주도지사로부터 준공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제주도지사는 건설부장관으로부터 (가)토지 일대가 편입된 사업계획 시행인가를 받아, 환지계획에 의하여 환지처분을 하였다고 하면서 A에게 건물 철거를 명하고, 철거기한까지 이를 이행하지 아니할 때에는 대집행을 하겠다는 계고처분을 했다. 이에 A가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원심에서는 환지계정지 지정 및 환지처분 공고에 의해 (가)토지 소유권이 제주도에 귀속하게 된 사실을 인정하고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환지계획이나 환지예정지 지정이 있은 이후 신축허가 등은 사업계획에 저촉되어 금지되는 것인데도, 신축허가와 준공검사가 이루어진 점, (가)토지 위에 사업계획상 예정된 도로개설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을 보면 환지처분이 환지계획에 따라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원심에 환송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위 판결에서 환지계획과 다른 내용을 가진 환지처분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환지계획에 의하지 아니하거나 환지계획에도 없는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환지처분은 당연무효로서 그 효력이 발생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대판 97누5534) 다만, 환지처분이 일단 공고되어 그 효력이 발생한 이상 환지 전체의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지 않는 한 그 일부만을 떼어 환지처분을 변경할 길이 없으므로, 환지처분 중 일부 토지에 관하여 환지도 지정하지 아니하고 청산금도 지급하지 아니한 위법이 있다 하여도 이를 이유로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으므로 그 환지처분의 일부에 대하여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은 없다.(대판 84누446) 결국 전체 소유자들의 환지처분에 대해 취소나 무효확인을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환지처분에 대한 위법은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
  • [커버스토리-로컬푸드 시대] 남몰래 경작꾼 공무원은 골치, 질소 비료 뿌려대 하천 오염도 걱정

    로컬푸드 붐 속에 소규모 불법 경작 문제가 도드라지고 있다. 그림자도 드리운 셈이다. 한국인 유전자(DNA)에는 ‘경작 본능’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국내에서는 공간만 생기면 불법과 합법을 따지지 않고 소규모 경작을 하는 경우가 잦다. 도심 공원이나 근린공원, 하천 둔지 등을 거닐다 불법 경작 경고 팻말이나 철거 팻말과 마주치는 것도 흔한 일이다. 공원 녹지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해마다 불법 경작지를 단속하고 복원하는 일을 되풀이하곤 한다. 불법 경작을 막기 위해 수목을 옮겨 심기도 한다. 최근 도시농업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단속 사례는 줄어들었다. 과거 불법 경작지였던 공간이 합법적인 공간으로 바뀐 탓도 있다. 서울 노원구의 경우 불법 경작이 만연하던 상계3동 마을 뒷산을 공원화하면서 텃밭을 조성해 주민에게 분양하기도 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텃밭을 분양하고 있지만 소규모 경작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킬 정도는 아니다”라면서 “최근 들어서는 공원 녹지보다 주택 단지 인접 지역에서 불법 사례가 잇따른다”고 설명했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이 땅 저 땅옮겨 다니며 ‘게릴라 텃밭’을 꾸리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구청 관계자는 “주민 의식과 관련된 문제”라면서도 “강압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접촉하며 설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환경, 유기농을 추구하는 도시농업·로컬푸드 운동이지만 무분별하게 확산될 경우 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최근 서울시는 용산구 이촌동 거북선 나루터 주변에서 텃밭 조성 사업을 추진하다가 환경단체의 반발 등으로 사업 장소를 옮긴 바 있다. 당시 환경단체들은 하천 오염 가능성을 제기했다. 텃밭에 뿌려진 질소, 인산이 함유된 비료 성분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도롱뇽 등의 양서류 서식지로 잘 알려진 종로구 부암동 계곡이나 인천 계양산의 경우에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텃밭이 생태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환경연합 신재은 생태도시팀장은 “도시농업을 위해 찾은 공간은 대개 보호해야 할 녹지”라면서 “도시농업도 좋지만 인근 생태계를 고려해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대형사찰 공사중 인부 추락사… “흉하다고 안전망 없애”

    서울 송파구에 있는 대형 사찰의 재건축공사 현장에서 건물 5층의 외벽 마감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소속 인부가 떨어져 숨졌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시공사 측이 건물 외부의 안전그물망 등을 철거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안전장치 미비에 따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14일 석촌동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B사찰에서 건설 인부로 일하던 홍모(49)씨가 건물 5층에서 바닥으로 추락,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30일 밝혔다. 송파서는 시공사인 S건설과 외벽마감 공사를 맡은 하청업체 C건설 등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는지를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S건설 현장소장과 C건설의 현장 인부들을 상대로 법에 따라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도 사고 현장에 감독관을 파견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했는지 검사하고 있다. 사고 당시 홍씨는 사찰 건물 5층 외벽에 설치된 작업 발판에 의지한 채, 외벽에 돌을 붙이는 작업을 하다가 접착 부분이 떨어진 돌을 받아내다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추락했다. 홍씨가 떨어진 장소에는 지하 2층 깊이의 구멍이 뚫려 있어 실제 홍씨가 추락한 높이는 건물 7층에 달했다. 공사 목적으로 파놓은 구멍 위에는 그물망이나 난간 등의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의 유족들은 “B사찰과 S건설 측이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신도들에게 지저분한 공사 모습을 감추기 위해 건물 외벽에 설치됐던 파이프와 안전그물망 등을 철거했다”며 안전장치 미비에 따른 인재라고 주장했다. 고용부의 1차 현장 조사에서도 외벽에 있어야 할 안전그물망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규칙은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 안전 난간이나 덮개 등의 방호 장치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공사와 하청업체 측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대형사찰 공사중 인부 추락사… “흉하다고 안전망 없애”

    서울 송파구에 있는 대형 사찰의 재건축공사 현장에서 건물 5층의 외벽 마감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소속 인부가 떨어져 숨졌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시공사 측이 건물 외부의 안전그물망 등을 철거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안전장치 미비에 따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14일 석촌동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B사찰에서 건설 인부로 일하던 홍모(49)씨가 건물 5층에서 바닥으로 추락,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30일 밝혔다. 송파서는 시공사인 S건설과 외벽마감 공사를 맡은 하청업체 C건설 등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는지를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S건설 현장소장과 C건설의 현장 인부들을 상대로 법에 따라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도 사고 현장에 감독관을 파견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했는지 검사하고 있다. 사고 당시 홍씨는 사찰 건물 5층 외벽에 설치된 작업 발판에 의지한 채, 외벽에 돌을 붙이는 작업을 하다가 접착 부분이 떨어진 돌을 받아내다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추락했다. 홍씨가 떨어진 장소에는 지하 2층 깊이의 구멍이 뚫려 있어 실제 홍씨가 추락한 높이는 건물 7층에 달했다. 공사 목적으로 파놓은 구멍 위에는 그물망이나 난간 등의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의 유족들은 “B사찰과 S건설 측이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신도들에게 지저분한 공사 모습을 감추기 위해 건물 외벽에 설치됐던 파이프와 안전그물망 등을 철거했다”며 안전장치 미비에 따른 인재라고 주장했다. 고용부의 1차 현장 조사에서도 외벽에 있어야 할 안전그물망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규칙은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 안전 난간이나 덮개 등의 방호 장치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공사와 하청업체 측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조선의 혼’ 사직단 원형 복원, 아직도 예산 타령만

    ‘조선의 혼’ 사직단 원형 복원, 아직도 예산 타령만

    왕실이 토지와 곡식의 신(神)에게 제사 지내던 ‘사직단’ 복원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적 121호인 사직단은 올 초 문화재청에 의해 땅의 용도가 공원에서 사적지로 뒤늦게 바뀌었으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원형 회복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조선의 500년 수도인 한양을 상징하는 ‘종묘사직’ 가운데 경복궁 동쪽의 종묘와 종묘제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지만 대칭점에 자리한 경복궁 서쪽의 사직단은 일제시대 이후 명예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 사직대제는 삼국시대 이후 국가의 명운과 평안을 기원하며 땅과 곡식의 신에게 지낸 제사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자취를 감췄고 사직단은 빈터로만 남았다. 1922년 일제는 종묘사직의 맥을 끊으려고 사직단 일대를 공원으로 지정해 지위를 격하했고 사직단 부속시설도 철거했다. 1932년에는 대지 일부가 교육시설로 잘려 나갔다. 해방 이후에도 잦은 도시계획 사업으로 정문이 두 차례나 옮겨졌고 그 자리에 도서관과 수영장이 신축되는 몸살을 앓았다. 문화재청이 사직단 복원에 뒤늦게 뛰어든 것은 지난해 1월. 관리 주체도 종로구청에서 문화재청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문화재청 산하 사직단지킴이인 재단법인 예올은 “‘사직대제’가 ‘종묘제례’ ‘석전대제’에 이은 대표 무형문화재인데도 국가나 지자체가 아닌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이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사직대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형식적으로 복원된 이후 매년 9월 셋째 일요일에 거행되고는 있으되 지금까지 악무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식이 전혀 다른 종묘제례의 노래와 춤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게 예올 측 주장이다. 지금은 사직단의 존재와 의미를 아는 시민도 드물다. 사직단 주변 황폐화도 심각한 문제다. 사직단 사적지 안에는 여전히 파출소, 도서관, 주민센터, 창고 등 여러 공공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일제 때 경희궁에서 이전해 온 황학정 앞에는 2002년 국궁전수관이 건설돼 지금도 사직단 쪽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다. 그나마 모습을 갖춘 것은 제단과 정문, 담장 정도다. 문화재 관련 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일본식 돌담은 정리됐으나 조잡한 일본식 조경도 논란거리다.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사직단의 역사성 회복은 단순한 복원이 아닌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명 예올 이사장도 “사직단이 주말이면 인왕산 등산객들의 집합 장소쯤으로 변질돼 컨테이너 가건물이 들어서는 등 훼손 상태가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관련 단체들은 “정부의 의지가 없고서는 복원은 앞으로도 요원한 일”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문화재청은 올해부터 복원을 추진한다는 종합계획을 마련했지만 정작 예산은 한푼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경희궁~사직단~경복궁을 잇는 역사로 정비 방안이 제시되고 있으나 이 또한 수백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사업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평가된다. 사직단 복원 작업은 여전히 시민단체의 몫으로 남은 게 현실이다. 예올은 분기마다 350여명의 회원들과 주변 청소 등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오는 10월에는 사직단 역사성 회복을 위한 대규모 포럼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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