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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라야마 “그 시대 한국에 필요했던 대통령”

    일본 언론들이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한국 민주화에 대한 공헌, 대일 입장 등을 조명했다. 아사히·니혼게이자이·요미우리 등 주요 신문들은 1면에 주요 기사로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했다. 신문들은 “김 전 대통령이 군부독재 아래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끌고 1992년 당선으로 문민정권을 부활시켰다”면서 “재임 중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체포를 명하고 1980년 광주사건(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의 진상 규명에 노력하는 등 한국의 민주화에 크게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일부 신문은 김 전 대통령 재임 중에 역사 바로 세우기의 하나로 중앙청으로 쓰던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독도에 접안 시설을 건설한 것도 소개했다. NHK 웹사이트에서 김 전 대통령 서거 기사는 많이 읽은 5위 등에 랭크되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김 전 대통령이 역사나 영토를 둘러싸고 일본에 강경한 발언을 많이 했으나 2002년에는 와세다대 특명교수로 취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91) 전 일본 총리는 이날 “그 시대 한국에 가장 필요한, 어울리는 대통령이었다”면서 “마음으로부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1995년 8월 15일 총리직에 있던 무라야마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는 한·일 관계의 기본 틀을 만든 역사적 담화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무라야마 전 총리의 역사 반성 등에 대한 일본 내 국수주의적 정치인들의 반발과 망언이 늘면서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한·중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관련 망언에 관해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강한 어조로 언급해 양국 관계가 경색되기도 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금융실명제·공직 재산공개… OECD 1년만에 외환위기

    금융실명제·공직 재산공개… OECD 1년만에 외환위기

    ■ YS가 남긴 功 김영삼 전 대통령도 국내외의 다른 모든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공(功)과 과(過)가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역사적인 평가와 재평가가 계속 이어지겠지만 김 전 대통령 시절의 대표적인 공적으로는 ‘금융실명제 도입’ ‘군 사조직(하나회) 숙청’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일제 잔재 청산’ 등이 꼽힌다.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 등도 주요 성과로 기록됐다. 김영삼 정부의 첫 번째 업적으로 금융실명제를 꼽는 데는 이견이 없다. 모든 금융 거래를 실제 명의로 하도록 하는 제도다. 1982년 ‘이철희·장영자 거액 어음 사기 사건’ 발생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다. 제도 도입 전에는 가명이나 차명, 무기명으로도 금융 거래가 가능해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의 음성적 거래가 심각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를 발동했다. 그는 당시 “국회의 법 개정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금융시장 동요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득이 ‘긴급명령’ 방식을 택했다”고 밝혔다. 또 “금융 거래에서 부정부패, 부조리를 연결하는 고리를 차단해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데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실명제는 우리 사회의 ‘검은돈’을 걷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합리적 과세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금융실명제는 부동산 실명제로 이어졌다. 금융실명제 도입 이후 자금이 부동산 투기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1995년 1월 6일 부동산 거래 실명제 실시 계획이 발표됐다. 입법도 단 3주 만에 이뤄졌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대대적인 정치 개혁에 나선 김 전 대통령은 군의 대표적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했다. 하나회는 1963년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포함된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이 주도해 만든 조직이다.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에 참여한 군부세력들이 주요 회원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10일 만인 1993년 3월 8일 하나회 멤버였던 김진영(육사 17기)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육사 19기)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다음날 김 전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모두 깜짝 놀랬제”라며 웃었다고 한다. 이어 군부 실세들이 줄줄이 경질됐다. 모두 42개의 별이 날아가며 군사 정권의 종식을 알렸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전격적으로 숙청을 단행해야만 저들이 규합할 시간을 주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베일에 가려 있었던 30조원 규모의 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 비리에도 사정의 칼날을 들이댔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도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쇠말뚝 뽑기,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등과 같은 일제 잔재 청산 작업에도 힘을 쏟았다. 1993년 8월 광복절을 앞두고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 지시가 떨어진 이후 광복 50주년이 되는 1995년 8월 15일 중앙돔 해체가 시작돼 1996년 11월 13일 지상 부분 철거까지 모두 완료됐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취임 사흘째인 1993년 2월 27일 첫 국무회의에서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며 자신의 재산을 공개했다. 17억 7822만 6070원이었다.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화의 첫 출발점이었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하자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군 장성, 판검사들이 잇따라 재산을 공개했고 이 과정에서 전·현직 국회의장의 부정 축재 의혹이 드러나기도 했다. 고위 관료들의 부동산 투기 정황도 대거 노출됐다. 또 청와대 국무회의나 각종 회담 자리에서 제공된 ‘칼국수’는 개혁의 상징이 됐다. 시민사회운동 활성화, 정상외교 확대, 지방자치제 부활, 2002년 월드컵 유치 등도 김 전 대통령이 일궈낸 성과다. 현행 초·중·고교에서부터 대학까지의 교육제도 기틀을 잡은 1995년 5·31 교육개혁도 김영삼 정부의 공으로 평가된다. 민선 지방자치제를 부활시켜 지방분권 시대를 연 것도 김 전 대통령의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 YS가 남긴 過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것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선진국으로의 진입에 대한 기대감은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켰지만 동시에 금융위기 사태를 초래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은 패착으로 인식된다. 김영삼 정부는 9%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적극적인 시장 개방이 이뤄지자 1996년 12월 OECD에 가입했다. 대한민국이 6·25전쟁의 상흔을 딛고 40여년 만에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고 대내외에 알린 것이다. 여권은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야권은 “외화 출자, 개발도상국 지원 등 의무 사항이 많다”며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OECD 가입은 1년 만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방만한 경제 운영과 부실한 대처는 결국 ‘외환위기 사태’를 불러왔다. 1997년 1월 재계 14위인 한보그룹 계열사인 한보철강 부도를 계기로 대기업 연쇄 부도 사태를 맞았다. 삼미와 기아자동차, 쌍방울, 해태, 고려증권, 한라그룹이 연이어 쓰러졌다. 1997년 한 해 동안 부도를 낸 대기업의 금융권 여신만 30조원을 훌쩍 넘었다. 해외 금융기관들의 부채 상환 요구가 쇄도했고 정부는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모라토리엄’(대외 채무 지불 유예)을 가까스로 면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비판이 김 전 대통령과 한국에 쏟아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11월 22일은 공교롭게도 18년 전인 1997년 우리나라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의 개인사뿐 아니라 대한민국으로서도 잊지 못할 ‘역사적인 날’이 된 셈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공기업 민영화와 재벌 정책 등에서 일관성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대외적으로 공정 거래를 강조하면서도 재벌 위주의 경제 정책을 펼친 까닭에 ‘대재벌’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세계화’ 역시 방향 설정은 좋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만 생기면 내린 고위 공무원 경질이라는 ‘충격적 처방’은 관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한 과도한 사정은 역풍을 가져왔다. 정권 말 정작 자신의 차남인 현철씨가 알선 수재·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 수감되면서 김 전 대통령의 부패 척결 드라이브는 빛이 바랬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독재정권 시절 민주화투쟁 주도 ‘정치9단’

     86세로 생을 마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 정치의 산증인이다. YS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DJ·1926~2009)과 함께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쌍두마차’였다. 김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마다 보여준 승부사 기질은 그가 ‘정치 9단’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이기도 했다.    ●유년기-거제도서 출생, 한인학생 차별 일본인 교장 골탕먹이다 정학 처분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음력) 경남 거제도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부친 김홍조(2008년 작고)씨와 모친 박부연(1960년 작고)씨 사이에서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장목초등학교를 나온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경남 지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던 동래중에 응시했다가 낙방했으며, 1년 뒤 통영중에 진학했다. 통영중 재학 시절에는 한인 학생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장의 이삿짐을 훼손하는 등 골탕을 먹인 일화가 유명하다. 이로 인해 경찰 조사를 받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김 전 대통령 스스로 모교로 꼽는 경남중으로 전학한 것은 해방을 맞은 1945년 11월이다. 대통령의 꿈은 이 때부터 비롯됐다. 당시 부산 하숙방 책상머리에 붓글씨로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붙이고 뜻을 키운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경남고를 거쳐 만 20세인 1947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정치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하고, 우익 학생단체인 ‘순학회’를 결성하는 등 정치 입문을 위한 사전 준비에도 힘을 쏟았다.    ●청년기-한국전때 학도의용대 가담, 동갑내기 손명순 여사와 맞선 한달만에 결혼  정계 진출의 기회는 대학 2학년 때 찾아왔다. 정부수립 기념 웅변대회에서 외무부 장관상(2등)을 수상, 당시 장택상 외무부 장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50년 5·30 총선에서 경북 칠곡에 무소속 출마한 장택상 후보의 당선을 돕기도 했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학도의용대에 가담했다.  김 전 대통령이 손명순 여사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1951년 2월 ‘할아버지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 그가 만난 사람이 바로 동갑내기 손 여사였고, 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를 하기로 했던 목사가 날짜를 착각해 결혼식장에 오지 못하는 바람에 주례를 즉석에서 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혼 당시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생이었던 손 여사는 당시 교칙에 따라 결혼하면 퇴학을 당할 처지였지만,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쳐 무사히 졸업했다. 손 여사는 결혼 초기 시댁이 있는 거제로 내려가 멸치 말리는 법부터 배웠다. 당시 익힌 ‘시래깃국에 갈치 한 토막’은 이후 손 여사의 ‘대표 메뉴’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2011년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식에서 “내 인생에서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민주화를 이뤄낸 일이고, 다른 하나는 손 여사를 아내로 맞이한 일”이라고 했고, 이에 손 여사는 “좋아서 살았지예”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정치적 성장기-26세때 최연소의원에, 최연소 원내총무 최다선 의원등 숱한 기록  김 전 대통령은 1952년 5월 장택상 당시 국회 부의장이 국무총리에 발탁되면서 총리실 인사담당비서관에 기용됐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장 총리가 ‘고시진 사건’으로 물러나자 1954년 3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고향인 거제로 낙향했다.  그는 3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 공천을 받아 최연소 의원(26세)이 됐다. 이후 최연소 원내총무(38세), 최다선 원내총무(5회), 최연소 총재(46세), 최다선 의원(9선) 등 숱한 기록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이 같은 화려한 꼬리표와 달리 고난의 연속이었다.  1954년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으로 유명한 이승만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표를 던지고 자유당 입당 7개월여 만에 탈당했으며, 이는 야당 정치인으로서 30여년 동안 고난의 길을 걷는 출발점이 됐다.  1958년 4대 총선에서는 고향인 거제를 떠나 부산에서 출마했다 고배를 마셨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치러진 5대 총선에서 원내에 복귀했으나, 같은 해 9월 어머니가 무장간첩에 의해 살해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5·16 쿠데타로 정치 활동이 전면 금지되는 등 시련이 잇따랐다.  1963년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정 연장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수감되는 등 굵직굵직한 정치 현안에 저돌적으로 맞서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민주화 투쟁기-3선개헌 반대하다 초산테러, 10·26 신군부시절 가택연금 단식투쟁  1965년 통합 야당인 민중당의 최연소 원내총무에 올랐으며, 1969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 상도동 자택 앞 골목길에서 괴한에 의해 ‘초산 테러’를 당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김 전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로서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970년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당시 김대중 후보에 밀렸다.  김 전 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은 유신 체제에 대한 정면 돌파로 이어졌다. 1974년 5월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후 유신 체제에 맞서다 결국 2년 뒤 ‘각목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권을 내주기도 했다.  특히 1979년 5월 총재직에 재당선되고 2개월 만에 ‘YH무역 사건’이 터졌다. YH 여성 근로자들이 신민당사에서 폐업 반대 농성을 벌이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법원에 의해 총재 직무가 정지되고 의원직마저 박탈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표현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1979년 10·26 사태를 계기로 신군부가 등장하자, 김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23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한 그의 결단은 정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85년 2·12 총선 직전 신민당을 창당해 돌풍을 일으키는 등 전두환 정권에 대한 끈질긴 압박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대권 도전과 성공-1990년 3당합당, 1992년 대선 당선 ‘문민정부’ 시대로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987년 대선에 김 전 대통령 역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른바 ‘1노·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맞붙은 선거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듬해 4월 13대 총선에서는 제1야당의 자리마저 DJ의 평민당에 내줬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대권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1990년 여당인 민정당과 제2·제3 야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을 합쳐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출범시키는 ‘3당 합당’을 결행했다. 35년 야당 생활을 접고 여당의 대권 주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결국 1992년 대선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 도입,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하나회 해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처벌 등 굵직굵직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임기 말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비판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는 서민적인 청와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칼국수가 대표적이다. 칼국수가 당시 청와대 대표 메뉴가 되면서 대통령의 영양 관리라는 뜻밖의 고민거리도 생겼다. 청와대 방문객들이 한번쯤 맛보는 별미지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임기 내내 칼국수로 점심을 때워야 했기 때문이다.    ●뚝심과 감의 정치인  김 전 대통령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키는 ‘뚝심의 정치’를 보여줬다. 정치적 고비마다 국민 여론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이 탁월해 ‘감(感)의 정치인’으로도 불렸다.  김 전 대통령의 화법은 단순 명료했다. 돌려가며 얘기하는 법이 없다. 직설적인 화법 탓에 ‘말실수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공정한 인사를 해서 부패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할 표현을 “공정한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하거나, ‘결식 아동’ 문제를 언급하려다 ‘걸식 아동’이라고 발음하는 식이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이름을 잊어버려 회의석상에서 ‘차씨’라고 발언한 사례도 유명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말실수에 핑계나 변명을 하지 않았기에 친근감과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김 전 대통령과 DJ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민주화 동지에서 1987년 대권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하며 불편한 관계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DJ의 서거를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병원을 전격 방문, 22년간의 반복과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 전 대통령은 화해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기자 질문에 “이제 그럴 때가 됐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제6대 국회 때부터 동지적 관계이자, 경쟁 관계로 애증이 교차한다”고 애틋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금융실명제에서 IMF까지 ‘대통령 김영삼’의 공과

     22일 새벽 서거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공과는 어떤 역대 대통령보다 뚜렷하게 갈린다.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등 과감한 개혁 정책을 펼쳤다는 점은 주요 성과로 기록된다. 하지만 무리하게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하다가 임기 말 외환위기를 맞은 점은 김 전 대통령의 과(過)로 지적된다.  5·16 군사정변 이후 31년간 동안의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문민 시대를 연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초 과감한 개혁으로 국민적 지지와 기대를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하자 마자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사회 투명성을 전반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또 과거사 바로세우기 작업을 통해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들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줄줄이 구속시켰다. 쇠말뚝뽑기, 구조선총독부 철거와 같은 일제 강점기 잔재 청산 작업이 이때 이뤄졌다.  특히 “변화와 개혁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내걸었던 김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둘러싼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우선 금융·부동산의 양대 실명제를 이룩해 부패 차단과 과세 형평성을 확보했다는 점은 성과로 꼽힌다. 당시 가명과 차명을 쓴 금융거래가 각종 비리·부패 사건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자,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 발동을 통해 금융실명제를 전격 시행했다. 또 금융실명제 실시로 부동산 투기 우려가 높아지자, 1995년 부동산 실명제를 전격 도입했다.  대외적으로는 임기 전반기 역점 사업으로 추진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점도 업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OECD 가입은 급속하게 시장개방과 자본 유출입을 허용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초래했다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1997년 1월 재계 14위인 한보그룹 계열사인 한보철강 부도를 시작으로 이어진 대기업 연쇄 부도 사태는 한국을 금융위기로 몰아가게 된다. 같은 해 삼미그룹과 기아자동차의 도산 사태가 터졌으며 쌍방울그룹, 해태그룹, 고려증권, 한라그룹도 차례로 위기를 맞았다. 해외 금융기관의 부채 상환 요구에 외환보유액이 바닥나자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1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을 가까스로 면했다.  집권 초 지지율이 90%에 달했던 김 전 대통령은 부패 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아들 김현철씨의 뇌물수수 및 권력형 비리가 드러나자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IMF 사태와 친인척 비리는 정권교체의 빌미로 작용해, 1997년 대선에서 영원한 ‘경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주게 된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자연 속 한옥도서관 “벌써 한 살 됐어요”

    종로구 인왕산 자락에는 자연 속에 묻힌 고즈넉한 한옥 건물이 있다. 전통 가옥으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의 이름은 ‘청운 문학 도서관’. 1만여 권의 문학 서적을 소장하고 있는 한옥 도서관이다. 종로구는 19일 오후 청운 문학 도서관 개관 1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17일 밝혔다. 지난 1년의 운영 성과를 돌아보고 축하공연 및 문학강연을 통해 시민들에게도 추억을 선사한다. 오후 3시부터 열리는 축하행사에는 대한민국 대학국악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국악앙상블 ‘시울운’의 공연을 시작으로 명창 박윤정과 테너 김은교의 공연이 이어진다. 오후 4시부터는 지하 1층 열람실에서 정호승 시인이 ‘내 인생에 힘이 되어주는 시’를 주제로 문학 특강을 진행한다. 종로문화재단에서 선착순 70명의 신청을 받는다. 청운 문학 도서관은 전통문화와 한옥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심혈을 기울인 공간이다. 당초 이곳에는 공원관리 사무소로 사용하던 낡은 2층 양옥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김 구청장은 인왕산의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전통건축 양식인 한옥으로 도서관을 짓기로 했다. 1층 한옥 지붕은 수제 기와를 사용하고, 담장에 얹는 기와는 돈의문뉴타운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된 한옥 기와 3000여장을 가져와 재사용했다. 이를 인정받아 지난달 국토교통부 주최의 ‘2015 대한민국 한옥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구청장은 “인근에 인왕산 공원과 윤동주 문학관 등이 위치해 도심 속 쉼터로 손색없는 공간”이라면서 “내년부터는 저자와의 만남, 출판 기념회 등을 운영해 문학의 메카로 자리매김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강남구 “SETEC 내 서울시 불법 시설물 연내 철거”

    서울시와 강남구가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세텍·SETEC) 부지에 건립을 추진 중인 제2시민청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강남구는 17일 국내외 전시행사로 관광객과 기업인이 찾는 대형 시설물을 일제 조사했으며, 적발된 불법 건축 시설물에 대해서 연말까지 행정대집행 절차를 통해 정비를 완료한다고 17일 밝혔다. 구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세택 부지 내 제2시민청 건립 반대 추진위원회(공동대표 장영칠)가 불법 건축물이 겨울철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구에 강력한 행정조치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 서울시가 토지를 소유하고 서울산업진흥원(SBA)이 건물을 소유한 채 운영 중인 대치동 세택 부지에서는 총 11개(220㎡)에 달하는 불법 시설물이 적발됐다고 구는 전했다. 무단 증축, 옥외 발전기실, 재활용과 쓰레기 분리시설, 직원휴게실 1개동, 창고시설 3개동 등이다. 특히 구는 소방시설을 갖추지 않아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대형 사고의 위험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강남구가 한 차례도 위법 건축물에 대한 지적이나 시정 요구를 하지 않은 채 14일 시정명령서를 통보하고 사흘 뒤 행정대집행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관련 절차를 무시한 ‘행정권 남용’이라고 반발했다. 행정대집행법에 따르면 상당한 이행 기간을 정하고 그 안에 이행하지 않으면 영장을 발부하고 대집행을 예고하게 돼 있다고 서울시는 주장했다. 시 관계자는 “법적 기준을 충족한 소방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무단 증축 시설물은 스프링클러 설치를 위한 물탱크”라면서 “2005년부터 2년마다 강남구의 사용 재승인을 받아 사용하던 시설물”이라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日, 위안부 협상 조기 타결 조건으로 소녀상 철거 요구”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사실상의 군 위안부 협상 ‘조기 타결’ 조건으로 내건다고 교도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로부터 소녀상 철거에 대한 확약을 얻은 다음 아시아여성기금(군 위안부 피해자 구제책으로 일본이 1990년대에 만든 기금) 후속 사업 예산(2014 회계연도 기준 약 1300만엔)을 늘리는 등의 방안으로 최종 타결을 도모할 방침이라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소녀상 철거를 조기 타결의 전제 조건으로 삼는 방침은 아베 신조 정권의 간부가 이달 상순 총리 관저와 외무성 관계자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교도통신은 소개했다. 이에 대해 교도통신의 취재에 응한 일본 총리 관저 관계자는 “한국이 진심으로 문제의 타결을 도모할 의사가 있다면 스스로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민간에서 설치한 소녀상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철거를 약속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위안부 소녀상은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을 포함한 한국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도 설치돼 있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군 위안부 문제의 조기 타결을 위한 협상 가속화에 합의한 이후 지난 11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를 재개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힘든 날들은 벽이 아니라 문이다(구영회 지음, 나남 펴냄) 저자는 33년에 걸친 방송기자 생활을 마친 뒤 지리산 속으로 푹 안겼다. 작은 구들방과 부엌만 있는 누옥에서 홀로 지내며 가끔 서울서 내려오는 부인과 가족들의 방문을 받을 따름이다. 예순을 훌쩍 넘긴 중씰한 이가 산자락에서 홀로 지냄은 자칫 세상과의 단절, 관계의 절연으로 지레짐작할 법하다. 하지만 저자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쉼없이 만났다. 그리고 성찰과 사유의 과정, 결과를 담아 ‘미생’으로 스스로 자조하는 청년들에게 말을 건넨다. 젊은 시절 무척 가난했던 그는 그 경험을 성공한 인생의 훈장처럼 회억하지 않고 더 깊숙이 자기 안으로 들어가 성찰한다. 희망, 행복의 가치, 다양함이 존중받는 세상에 대한 속깊은 바람이 절로 느껴진다. 248쪽. 1만 2500원.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강윤중 글, 서해문집 펴냄) 때론 한 장의 사진이 구구하게 적은 숱한 기록보다 더 강렬하게 진실을 직시하기도 한다. 익숙함과 편견의 틀을 깨는 이미지 탄생의 출발이다. 사진기자의 카메라는 고스란히 사람들의 삶을 향해 있다. 성적소수자, 장애인, 광산 노동자, 이주노동자, 철거민, 독립영화감독,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살아남은 사람들, 독거노인, 산골 분교 아이들 등 다양하다. 하지만 본질은 하나다. 사회의 외면 혹은 오해와 편견에 눈물을 떨구고 있거나, 이에 분연히 맞설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때로는 덤덤히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진실을 드러내고, 때로는 가슴 먹먹하게 그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기에 글의 언어, 카메라의 언어조차 따뜻하기 그지없다. 326쪽. 1만 3900원. 한반도 삼국지(이충렬 지음, 레디앙 펴냄)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이라는 한국 현대사 속 세 정치 거인의 삶을 좇는다. 부제 ‘세 개의 혁명과 세 개의 유훈통치’에서 짐작하듯 그들이 살아생전 혁명적으로 추구했던 가치와 함께 여전히 그 자장 아래 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진단이기도 하다. 각각 ‘근대화 혁명’(박정희), ‘민주주의 혁명’(김대중), ‘공산주의 혁명’(김일성)으로 규정하며 가치적 측면에서 이들로부터 시작한 갈등과 대립이 아직 끝나지 않음에 주목했다. 세 사람의 인물열전과 더불어 해방의 과정부터 시작해 70년 한반도 현대사를 정치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아직 현재 진행형인 신삼국지의 결말이 누군가의 승패가 아닌, 화해와 인류보편적 가치의 추구로 결론 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384쪽. 1만 6000원. 과거의 죄(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권상희 옮김, 시공사 펴냄) 지난 8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담화문에서 전후 세대에게 사죄의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국가 범죄의 주체는 국가이며, 특정 개인이나 세대가 사죄하고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음을 뜻한다. 독일인인 저자는 나치 독일이 저지른 국가 범죄의 법적·도덕적 책임을 명쾌하게 풀어냈다. 그는 가해자 후대를 향해 ‘과거에 형성된 정체성 안에 붙들려 있으면, 그들은 과거 세대와 연대 관계를 맺게 되고, 그로 인해 과거 세대의 죄에 연루되어 그 죄를 떠안거나 그 죄에서 벗어날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고 역설했다. 죄라는 것은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친일파 문제가 새삼 언급되는 한국사회에도 경종의 소리로 들린다. 222쪽. 1만 3000원. 패션, 영화를 디자인하다(진경옥 지음, 산지니 펴냄) 옷은 일종의 메시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의 옷,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브로치, 박근혜 대통령의 한복 등은 외교 회담 등에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입장과 의사를 상징했다. 영화에서 배우들이 입고 나오는 옷도 그냥 대충 걸치거나 당대의 패션 코드를 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 의상은 스토리텔링을 담고 있는 비밀스러운 영화 언어다. 1948년 아카데미 의상상이 제정된 이유다. 오드리 헵번의 리틀 블랙 드레스, 제임스 딘의 청바지, 옷으로 신분 상승의 변화를 보여준 ‘귀여운 여인’ 속 줄리아 로버츠, 점차 바뀌어 가는 조폭 패션의 변화를 가감없이 선보인 ‘친구’와 ‘신세계’ 등 국내외 각종 영화와 공명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패션 이야기다. 320쪽. 2만원.
  • 이 남자의 뚝심행정 4년 주민숙원 풀었다

    이 남자의 뚝심행정 4년 주민숙원 풀었다

    서대문구는 4년간 주민 숙원 사업이었던 ‘홍은사거리 유턴 허용’을 위해 13일부터 공사를 시작한다고 12일 밝혔다. 주민의 뜻을 모아 구가 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 등 관계 기관을 끈질기게 설득해 이뤄 낸 성과다. 구와 시 서부도로사업소는 오는 30일 준공을 목표로 유진상가 쪽 보도 후퇴와 신호기 이설, 노면 표시 설치 공사 등을 진행한다. 이달 말 관련 공사가 끝나면 일대 주민들이 차량 이용 시 1.3㎞를 더 우회 통행해야 하는 불편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홍은사거리 유턴은 홍제고가차도가 철거되고 2011년 12월 중앙버스전용차로가 개통되면서 금지됐다. 이에 따라 홍제동 330 일대 주민들은 집에 가기 위해 좌회전 신호를 받아 돌아가거나 녹번역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잇따르는 주민들의 민원에 구는 적극 나섰다. 2012년부터 관계 기관에 도로 구조 개선을 통한 유턴 허용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고, 문석진 구청장이 직접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건의하기도 했다. 관계 기관과 주민이 함께하는 간담회 및 현장 점검도 수차례 개최했다. 아울러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유턴이 허용되고 있는 고양시 중앙로 6곳의 사례도 자체 분석해 관계 기관에 제시했다. 이에 지난 7월 경찰청 교통안전시설심의에서 홍은사거리 유턴 허용 설계안이 가결됐고 시와 검토한 후 이번 공사가 확정됐다. 구 관계자는 “유턴 시행 후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인근을 지나는 운전자들이 교통신호 지키기, 꼬리물기 근절 등 교통질서를 잘 준수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안전 대한민국 서울신문고] 위험천만 가로등 기둥 새로 ‘뚝딱’…방치된 정화조통 처리도

    [안전 대한민국 서울신문고] 위험천만 가로등 기둥 새로 ‘뚝딱’…방치된 정화조통 처리도

    A씨는 얼마 전 술을 마신 뒤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깜빡 졸아버리는 바람에 가로수와 충돌해 쓰러뜨렸다. 인천국제공항 근처에서다. 겁부터 먹은 그는 얼른 줄행랑을 쳤다. 그러고선 고성능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튿날 경찰에 자수했다. 음주 사실은 뺀 채였다. 잔꾀로 큰 불상사를 막은 것이다. 그러나 쓰러진 나무에 대한 변상 책임을 져야 했다. ‘공공시설’을 훼손한 셈이다. 11일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안도로에서 가로등 기둥이 비스듬히 넘어가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밑동이 쭈그러져 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정읍 건설담당이 곧장 현장에 나가 파악한 결과 교통사고 탓이었다. 수소문해 사고 당사자가 가입한 보험회사에 수리·보수를 마치도록 맡겼다. 먼저 기둥을 철거하고 나흘 뒤엔 말끔하게 새로 설치했다. 아울러 자동차들이 자주 침범해서인지 맨땅으로 삭막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주변엔 화단을 만들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도로 원흥삼거리→창릉사거리 방면에선 엄청나게 큰 정화조통이 방치돼 안전을 위협한다는 제보를 받았다. 커브를 돌자마자 나타나기 때문에 운전자가 발견하기 어렵다. 옆에 연락처를 쓴 현수막까지 내건 점으로 미뤄 특정 업체의 광고용 같다고 신고자는 덧붙였다. 덕양구 건설행정팀이 현장에 출동해 주변을 말끔히 정리했다. 농사용 전주가 넘어져 안전을 해칠 수 있으니 조치해야 한다는 신고도 잇따랐다. 비가 내리면 누전 및 감전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한국전력 포천지사는 포클레인을 동원해 전주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미술인들 국립현대미술관 외국인관장 선임설에 항의 성명

     미술인 400여명이 바르토메우 마리 전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책임있는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아울러 예술현장과 무관한 관료적 문화행정을 중단하고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의 지체와 관련, 신임관장 선정과정 및 선임에 관한 공청회등 열린 토론의 장을 즉각 만들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12일 오전 언론에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에 즈음한 미술인 성명’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배포하고 온라인 서명에 참여한 미술인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공성훈 구정아 김범 노순택 양주혜 이수경 임옥상 임흥순 등 이름있는 작가들이 대거 포함됐다.  미술인들은 성명서에서 최종 3인에 오른 후보 중 유일한 외국인인 마리의 관장 유력설에 대해 큐레이터로서의 현장윤리 논란을 거론했다. 이들은 “마리의 검열윤리 문제를 들어 그가 회장으로 있는 현대미술관협의회(CIMAM)의 이사 3명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은 마리가 관장 재직시절 검열로 전시를 파행시키고, 부적절하고 비윤리적으로 처신해 CIMAM의 위상을 해쳤다며 마리의 회장직 사퇴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최근 문화계 전반이 정부의 검열과 관료주의로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다는 문제제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연극 사전검열,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삭감,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전의 일부 작품 철거 등을 거론하며 “정부지원 체계 및 국공립기관들은 행정을 앞세운 반예술적 태도로 예술가들을 길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구본영 칼럼] 한국 외교, 연미협중이 숙제다

    [구본영 칼럼] 한국 외교, 연미협중이 숙제다

    난사군도 해역에서 미국과 중국이 부딪치면서 생긴 격랑이 한반도로 밀려올 기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후 회견에서 “중국이 국제 규범과 규칙을 지키지 않으려 할 때 한국도 말을 해 달라”고 했다. 그가 공개리에 주문한 대로 우리의 입장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는 형국이 됐다. 한반도가 강대국들로 에워싸여 있음을 실감케 되는 요즘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과 리커창 총리 간 한·중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끝난 듯했다. 한국산 김치와 삼계탕까지 대중 수출길이 트였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만 해도. 하지만 리 총리가 배타적경제수역(EEZ) 협상을 제의했다는 중국 측 보도를 접하고 등골이 서늘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이어 이어도 해역을 분쟁 수역화한다면 우리에겐 악몽의 시나리오다. 우리는 일본과는 미국의 ‘안보 우산’을 함께 받쳐 쓰고 있는 처지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의 대한 관계개선 의지는 여전히 미심쩍다. 그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의 조기 타결을 위한 교섭을 가속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 방송에 출연해 “위안부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에 따라 완전하게 해결됐다”고 말을 바꿨다. 엊그제는 요미우리신문을 통해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에게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한 사실을 슬그머니 흘렸다. “함께 우산을 쓰면 연인이 되지만, 함께 비를 맞으면 동지가 된다.” 우리의 뒤통수를 때리는 아베의 행보를 보면서 떠올린 어느 논객의 책에서 읽었던 메타포다. 한·일은 근세사에서 차가운 역사의 소나기를 함께 뒤집어쓴 적은 있다. 숱한 청년들이 일제의 징용에 끌려가 죽었고, 가련한 이 땅의 소녀들은 일본군의 성노리개가 돼야 했다. 그야말로 원치 않은 억울한 희생이었다. 이런 과거사에 대해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 없이 한·일이 연인이나 동지가 되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미국이 중재한다고 될 일인가. 그렇다고 지레 의기소침할 이유도 없다. 어제 정부는 개발도상국에 무상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국민총소득(GNI) 대비 0.2%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0년 ODA 규모는 4조원에 이르게 된다. 미국의 잉여 농산물로 허기를 달래던 산업화 세대가 일궈 낸 국격 제고의 징표다. 지금은 힘이 턱없이 모자라 열강의 각축 속에서 국권을 잃었던 구한말은 아니다. 그러나 온전히 마음 놓기는 아직 이를 듯싶다. ‘먼 길을 가기 위해선 부드러운 말(言)과 큰 몽둥이를 들어야 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 대통령이 즐겨 인용했던 서아프리카 속담이다. 미·일과 중국이 노골적으로, 혹은 넌지시 자기 편에 줄을 설 것을 요구하는 요즘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경구다. 남중국해 사태는 윤병세 외교장관의 비유처럼 우리에 대한 러브콜일 순 없다. 어느 편을 들더라도 후환이 두렵지 않을 만큼 우리에게도 ‘큰 몽둥이’가 있다면 별문제겠지만. 아쉽게도 경제력·군사력 등 우리의 총체적 국력은 아직 취약하다. 통일과 번영으로 가는 긴 여정을 안전하게 가려면 ‘부드러운 말’로 주변 강국의 협력을 얻어 내야만 한다. 고난도의 과제다. 이런 판국에 어설픈 이념에 찌든 우리 사회 일부 인사들은 미국보다 중국을 더 가까이 하자는 주장을 편다. 무책임한 탈미 친중론이다. 시진핑 주석은 며칠 전 국제 싱크탱크 21세기위원회 대표들과 만나 “중국은 공격 유전자가 없다”고 했다. 만리장성도 방어를 위해 쌓았다는 걸 근거로 들면서다. 하지만 반만년 역사에서 중국은 공룡 같은 위험한 이웃이었다. 멀리는 고조선 멸망, 가까이는 중국이 북한의 편에서 참전한 6·25전쟁에서 체득한 사실이다. 까닭에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고전적 외교 전략을 싹 무시해선 안 될 법하다. 멀리 있는 미국이 인접한 중·일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는 안전판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베이스캠프가 든든하지 않으면 어느 히말랴야 고봉엔들 오를 순 없다. 한·미 동맹을 공고히 다지면서 중국과도 협력을 강화하는 ‘연미협중’(聯美協中)이 갈 길이다.
  • “위안부 협의 계속” 공감대만…

    “위안부 협의 계속” 공감대만…

    한·일 정상회담 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법 도출을 위해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린 제10차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양국은 “접점 모색을 위해 앞으로도 협의를 계속한다”는 공감대만 확인했다. 양국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국장급 협의를 추가로 하고 이견 해소를 위한 논의를 이어 갈 방침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11일 “2시간에 걸쳐 양국은 정상 간 합의에 따라 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심도 있고 유익한 협의를 했다”며 “조금씩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측 대표인 이시카네 기미히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도 “위안부 문제가 일·한 관계에 장해가 되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입장 속에서 접점을 찾는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정부는 협의에서 정상회담 직후 일본 언론을 중심으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잇따라 보도되는 데 대해 강한 유감의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일본은 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철거와 일본산 수산물 규제 등의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오는 26일 1심 선고가 이뤄지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 문제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은 위안부 문제 해결과 관련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반인도적 불법 행위로서 양국 간 재정적, 민사적 채무 관계 해결을 정의한 청구권 협정과는 관계가 없으며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임성남 외교부 1차관도 이날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양국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양국이 협의를 이어 가고 있지만 연내 타결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일본이 가해자로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우리 측 입장에 대해 “어디까지나 가능한 한 조기에 해결하고 싶다”면서도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world 특파원 블로그] “아베, 위안부像 철거 요구”… 日 연일 언론플레이

    요미우리신문은 10일 “아베 신조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일본 국민이 위안부 문제로 느끼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 전했고,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동상 철거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또 외교부 장관 등만 배석한 단독 정상회담은 아베 총리 제의로 이뤄졌고, 회담에서 두 정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다른 입장을 1시간 동안 서로 솔직하게 논의했지만 ‘감정적인 장면’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일·한 수뇌(정상)회담 검증’이란 제목으로 단독 정상회담 내용까지 흘렸다. 아베 총리가 “(내용을) 발설하지 않기로 하자”고 말한 사실까지 언급했다. 최근 일본 언론들은 정상회담 뒤 쉴 새 없이 회담 및 막후 조율 내용을 쏟아 내고 있다. 보도들은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은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다 소멸됐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일 협정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우리 입장과 상반된 주장을 노골화하고 있다. 지난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아베 총리가 한국 측의 ‘법적 책임’ 주장에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고 회담 내용을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법적 책임 종결 뒤로도 일본은 인도적 노력을 다해 왔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합의가 최종적임을 한국이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도 부각시켰다. 보도들은 일본 정부의 입장을 명확하게 대내외에 확인시키고, 아베 정부의 주장을 합리화했다. 일본 측 입맛에 맞는 내용을 언론에 흘려 이를 기정사실로 삼으려는 의도다.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국수적 인사들을 향한 “이만큼 했다”는 메시지도 된다. 11일부터 재개되는 한·일 군 위안부 문제 실무회담을 앞둔 포석이란 시각도 있다. “전제 없는 회담을 관철했다”(니혼게이자이), “(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구체적인 내용의 언급을 요구하는 한국 측의 주장을 받지 않았다”(산케이 등) 등 나름의 성과와 ‘선전’(善戰)도 담았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오찬 불발 이유 등 일정과 의전, 의제를 둘러싼 내용도 전해졌다. 반면 우리 외교 당국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밝힐 수 없다” 등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도쿄발 소식’에 우리 외교 당국이 끌려다니고, 이를 일본인은 물론 제3자까지 전부 사실로 여기는 분위기의 확산이 우려된다. 우리의 정당성과 도덕적 우위가 일본의 언론을 활용한 ‘외곽 때리기’와 세련된 공공외교로 무색해지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믿게 하느냐가 힘이 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우리 외교 당국의 전략적 접근과 대응이 아쉽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어르신들을 위한 빼빼로데이

    어르신들을 위한 빼빼로데이

    “할아버지·할머니, 빼빼로처럼 꼿꼿한 허리와 다리를 유지하며 건강하게 사세요.” 충북 제천에서 3년째 노인들을 위한 ‘빼빼로데이’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제천시 영서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는 11일 독거노인과 여고생들이 함께하는 이색적인 빼빼로데이 행사를 가졌다. 회원들은 가래떡과 빼빼로과자, 수면양말을 노인들의 빼빼로데이 선물로 준비했다. 선물 전달에는 제천여고 학생들이 동행해 지역 독거노인 30명에게 직접 쓴 손편지를 읽어 드리며 즐거움을 선사했다. 손편지에는 “겨울철에 감기 조심하시고 빼빼로를 의미하는 숫자 ‘1’처럼 항상 꼿꼿하게 사세요”라는 학생들의 소망이 담겼다. 지난해는 회원이 쓴 편지 한 통을 복사해 활용했지만 이번에는 제천여고 학생 30명이 각자 쓴 편지를 읽어 드렸다. 회원들의 아코디언과 기타 연주 공연도 곁들였다. 학생들은 회원들이 학교 옥상에 정원을 가꾸며 정서를 순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어 편지 쓰기 제안을 선뜻 수용했다. 협의회는 편지를 쓴 학생들에게 도서상품권을 선물했다. 이날 행사 경비는 회원들이 새벽에 아파트의 불법 현수막을 철거해 받은 보상비로 충당했다. 협의회가 노인들을 위해 이런 행사를 처음 시작한 것은 2013년이다. 빼빼로데이 행사가 젊은이들만의 이벤트로 전락하면서 혼자 사는 노인들의 소외감이 더욱 클 수 있다고 판단해 마련했다. 한종석(53) 협의회장은 “학생들이 편지를 읽을 때 너무 고맙다며 눈물을 보이는 어르신도 있었다”며 “어르신들을 위한 빼빼로데이 행사가 세대 간 소통 창구가 되는 것은 물론 복지 사각지대의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의미 있는 지역 행사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이종걸 “박원순 흠집내기 옹졸해”

    이종걸 “박원순 흠집내기 옹졸해”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여당의 공세에 대해 “박 시장에 대한 과도한 흠집내기는 바로 청와대의 옹졸함”이라며 “공세를 보면 전방위적 발목잡기 대책회의가 만들어진 듯하다”고 비판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노무현 정부 때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권 도전 프로젝트라고 짐작됐던 청계천 사업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직접 지원했던 것을 기억한다”며 박 시장에 대한 여당의 정치공세를 꼬집었다. 이어 “행정부는 박 시장의 정책을 위험물 취급한다”면서 “안전문제로 철거할 도심 고가를 도심재생으로 추진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서울지방경찰청이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 위에 청와대가 있는 것”이라며 “박 시장에 대한 정치공작에 단호하게 맞서겠다”고 밝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특파원 칼럼] 혼다와 아베, 그리고 위안부 기림비/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혼다와 아베, 그리고 위안부 기림비/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백발에 인심 좋은 아저씨 같은 인상의 일본계 ‘친한파’ 마이크 혼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을 워싱턴DC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눈 것은 지난해 7월 ‘제1회 미주 한인 풀뿌리 활동 콘퍼런스 갈라 및 위안부 결의안 7주년 리셉션’에서였다.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강일출 할머니와 함께 단상에 올라가 연설을 하고 내려오는 혼다 의원에게 악수를 청했는데, 그는 안경을 올려 눈물을 닦고 있었다. 순간, 마음이 찡했다. 한국이 아닌 미국, 그것도 수도 워싱턴에서 누군가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그 뒤로도 혼다 의원을 자주 볼 수 있었다. 2007년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 주역인 그는 위안부 관련 행사라면 빠짐없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특히 지난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에 앞서 일본 측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원 본회의장에서 20분간 아베 총리의 과거사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최근 워싱턴 인근 한식당에서 한인단체들이 주최한 ‘혼다 의원 후원 행사’에 찾아가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한·일 문제를 넘어 인권 문제,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인데 일본이 이를 부정하고 돈으로 막으려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며 앞으로도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놀라웠다. 일본계인 그가 일본 측의 집요한 훼방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지성인의 양심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다 의원에게 “차기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힐러리 클린턴”이라며 “힐러리가 당선되면 박근혜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아베 총리를 몰아붙여 꼭 사과를 받아 내야 한다”며 또다시 위안부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위안부 문제로 꽉 차 있는 것 같았다. 혼다 의원을 만나고 며칠 후인 지난 주말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시 도서관 옆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를 찾았다. 5년 전 미국 내 최초로 세워진 이 기림비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주변 나무·꽃과 함께 어우러져 빛을 내고 있었다. 시 당국과 함께 기림비 설립을 주도한 한인풀뿌리단체 시민참여센터 김동석 상임이사는 “1호 기림비에 이어 인근 버겐카운티 청사 옆에도 2013년 기림비를 세워 미국인들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미국의 지자체들이 직접 나서 기림비를 세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혼다 의원에 대한 방해공작뿐 아니라 미 지자체들의 기림비·소녀상 건립을 기를 쓰며 막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 의회도, 정부도, 싱크탱크도, 언론도 역사 왜곡을 시도하는 아베 총리 편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만큼 위안부 문제 해결은 정당한 지지를 받으며 후세를 위해서라도 꼭 풀어야 하는 숙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미 의회 연설과 8월 종전 70주년 ‘아베 담화’ 발표에 이어 또다시 기회를 놓쳤다. 그는 오히려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는데, 양국 정상이 “위안부 문제의 조기 타결을 위해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믿어야 할까. 아베 총리는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손가락질하고 있음을 깨닫고 전향적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chaplin7@seoul.co.kr
  • 靑 “日, 위안부 문제 성의 있게 조속 해결하라” 전날 아베 ‘연내 해결 신중론’ 발언에 신경전

    한·일 정상회담 개최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의 해법을 놓고 신경전을 펼쳤던 양국이 정상회담 개최 후에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신경전을 이어 가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5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후속 협의 질문을 받고 “일본 정부가 국장급 협의 등을 통해 보다 성의 있는 자세로 임해 조속한 시일 내에 해결됐으면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전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다니가키 사다카즈 자민당 간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의 연내 타결에 대해 “연내로 잘라 버리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한 데 따른 반응이다. 다만 정 대변인은 “한·일 정상회담 시 합의한 대로 ‘올해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라는 전환점에 해당되는 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가능한 한 조기에 위안부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한다는 데 양국 간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양국이 합의한 대로 위안부 문제가 조속히 타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조기 타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합의한 만큼 제10차 국장급 협의를 위한 일정 조율에 들어갔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일 국장급 협의를 이달 내에 개최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보도했다. 정부는 정상회담 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에서 계속 부정확한 보도가 나오는 데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을 보이지 않고 언론플레이를 통한 주도권 잡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위안부 해법을 둘러싸고 법적 책임이 아닌 인도적 지원 방안이 논의된다는 식의 일본 언론 보도나 정상회담 오찬을 조건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일본의 양보를 요구했다는 식의 보도와 관련해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31일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소녀상 철거 문제를 거론했다는 보도에 대해 “소녀상의 ‘소’자도 나오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정부는 일본에서 계속되는 이런 보도를 두고 위안부 문제의 협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반응 떠보기’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정상회담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얘기가 나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성신지교’(誠信之交)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시애틀 관광명소 ‘껌벽’ 24년 만에 사라져

    시애틀 관광명소 ‘껌벽’ 24년 만에 사라져

    미국 시애틀의 관광 명소의 하나인 '파이크플레이스마켓(Pike Place Market)'에 관광객들이 벽에 껌을 붙이기 시작해 만들어진 유명한 '껌벽(Gum Wall)'이 24년 만에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고 미 언론들이 5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파이크플레이스마켓'은 약 108년 전인 1907년에 개설된 마켓으로 시애틀 관광의 명소로 자리 잡았으며, 여러 가지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그런데 1991년께 이곳에 위치한 한 마켓 영화관에 관광객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누군가가 벽에 껌을 붙이기 시작해 지금의 유명한 '껌벽'이 만들어졌다. 초장기에는 동전을 벽에 붙이기 위해 껌을 이용했으나, 껌만 벽에 붙이는 것으로 변모했고 초창기 극장 직원들이 나서서 여러 차례 제거를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해, 오늘날의 껌벽이 만들어졌다. 약 100만 개가 넘는 껌들로 이뤄진 이 벽 장식은 각종 메시지와 함께 여러가지 모양의 형상을 포함하고 있어 커플들이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오히려 유명한 장소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마켓 관리 당국은 이 껌 벽이 원래 마켓의 역사적 상징물이 아니며 오히려 역사적 건물의 중요성을 해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결국 철거를 결정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한 관계자는 "껌이 설탕이나 화학물질을 포함한 성분으로 되어 있고 벽에 붙어 있는 것을 좋은 일이 아니다"며 철거 결정 이유를 밝혔다. 철거 작업은 오는 10일부터 시작해 3일 동안 이뤄질 것이며, 약 138도에 달하는 스팀을 벽에 분사해 껌이 녹아 흘려서 땅바닥을 떨어지게 한 다음 이를 수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이 유명한 시애틀의 '껌벽'은 한때 여행전문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가 발표한 지구상에서 가장 균이 득실거리는 관광명소 리스트에서 아일랜드의 블래니 스톤(Blarney Stone)에 이어 2위에 오를 정도로 불결한 관광지라는 별명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시애틀의 관광 명소로 등극한 이 껌벽이 철거된다는 소식에 많은 네티즌을 비롯한 이곳을 방문했던 관광객들은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특히, 이 껌벽의 생성 원인을 제공했던 극장주는 "이곳은 정말 관광객들이 스스로 만든 매력적인 장소였다"며 "그것이 사라지더라도 곧 돌아올 것"이라고 밝혀 껌이 철거된 후에도 다시 관광객들이 벽에다가 껌을 붙이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 미 시애틀의 유명 관광명소가 된 '껌벽'의 모습 (현지 언론, 트위터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조계종 총무원 강남시대… 한국불교 1번지 바뀐다

    조계종 총무원 강남시대… 한국불교 1번지 바뀐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로.’ 한국불교 맏형 격인 조계종 총무원이 늦어도 10년 이내에 강남으로 이전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국불교 1번지’의 모습도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지난 3일 느닷없이 “10년 이내에 총무원 청사를 봉은사로 이전할 계획”임을 밝혔다. 중앙신도회(회장 이기흥)가 종로구 견지동 전법회관 1층에서 개최한 ‘브리지센터 카페 바라밀’ 개관식에 참석해 깜짝 선언을 한 것이다. 자승 스님은 “총본산성역화 불사를 10년 내에 마무리 지을 것이고 총무원 청사 활용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봉은사 인근의 부지 매입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 총무원 시대’를 전격 예고한 셈이다. 조계종 총본산성역화 불사추진위원회 총도감을 맡고 있는 총무부장 지현 스님도 “현행 총무원 청사가 입주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은 공간이 협소하고 본래의 건립 목적에도 맞지 않다”며 자승 총무원장의 깜짝 발언을 뒷받침했다. 지현 스님은 “자승 스님은 성역화 사업과 맞물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의 본 취지를 살릴 생각을 갖고 있다”며 “종무 행정 기능을 봉은사 쪽으로 이전하고 문화 관련 부분을 현재의 기념관에서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현 스님은 “총무원 이전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한 상태는 아니다”라면서도 “향후 5~6년 내에 중앙종무기관을 봉은사로 이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총무원 강남 이전 계획을 거듭 확인해준 셈이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총무부장 지현 스님의 발언대로라면 ‘한국불교 1번지’인 조계사 일대가 대대적으로 바뀌게 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정화운동을 통해 창종된 조계종단의 빛과 그림자가 혼재한 역사적 현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우선 총무원을 비롯해 중앙종회, 포교원, 교육원 등 대부분의 중앙종무기관이 모두 강남으로 옮기게 된다. 특히 자승 스님은 “총본산성역화 사업이 추진되면 향후 5년 이내에 전법회관의 철거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현행 총무원 청사를 신도 단체 등을 위한 공간으로 배정하고,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신행과 전통문화의 공간으로 조성해 불자와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 총무원 청사로 쓰고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은 1~4층은 중앙종무기관 사무공간이 입주해 있고 불교중앙박물관, 국제회의장, 지하 전통문화예술공연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에 따르면 강남 봉은사는 현재 중앙종무기관이 위치한 조계사보다 공간이 넓어 총무원 청사 입주에 적당하다는 내부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총무원 청사를 강남 봉은사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집행부는 우선 봉은사 인근 예식장을 매입해 총무원을 이전할 계획이다. 봉은사 예식장 매입에는 부채를 포함해 70억원이 소요되고 추가 부지 매입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따라서 청사 이전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집행부의 행정에 반발하는 스님과 신도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자승 총무원장이 지난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세종시 총무원 분소 설치’ 계획도 무량회, 무차회, 백상도량 등 이른바 ‘3자 연대’의 거센 비판을 받았었다. 한편 총무원은 총본산성역화 불사와 그에 따른 청사 이전 계획을 오는 16일 ‘총본산성역화 불사를 위한 모연의 밤’에서 밝힐 예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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