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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경희 여주시장, 미국 윌슨빌서 열린 맥아더장군 동상 제막식 참석

    원경희 여주시장, 미국 윌슨빌서 열린 맥아더장군 동상 제막식 참석

    미국을 방문 중인 원경희 여주시장이 6·25 한국전쟁 67주년 기념 맥아더 장군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고 26일 밝혔다. 원경희 시장과 방문단은 지난 24일 오리건주 윌슨빌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열린 맥아더장군 동상 제막식 현장을 지켜보면서 역사적인 의의를 되새겼다. 이날 동상제막식에는 문덕호 시애틀총영사를 비롯해 한국과 미국의 주요 인사와 동포들이 참석했다. 맥아더장군 동상을 미국에 세우게 된 것은 16년 전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한국전 참전비를 오리건주 윌슨빌에 세우는 일을 주도했던 임용근 전 오리건주 상원의원이 한국의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논란이 안타가워 하던 차에 그 동상을 미국 오리건주로 옮겨올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맥아더 장군 동상을 윌슨빌에 세우기로 하고 여러 해 동안 노력한 끝에 이번에 맥아더장군 동상을 제막하게 됐다. 원경희 시장은 이에 앞서 미국 워싱턴 주 중부도시 시애틀에서 22일 시애틀한인회와 문화 교육 등에 걸친 우호교류협약을 체결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5호선 김포연장” 김포 여·야 선출직 한목소리

    여야 국회의원 등 경기 김포시 선출직 공직자들이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연장에 뜻을 모으고 초당적 대응을 다짐했다. 김포시는 지난 23일 시청상황실에서 선출직공직자협의회를 열고 최근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지하철 5호선 김포연장에 경제성과 당위성을 들어 비교 우위를 강조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날 선출직 공직자 협의회에는 유영록 시장을 비롯해 홍철호(바른정당, 김포을), 김두관(더불어민주당, 김포갑) 국회의원, 시·도의원 전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한강을 건너 연결하기보다 인근 김포로 연장되는 것이 건설비용과 B/C(비용편익비)를 고려하면 더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고양시는 이미 지하철 노선이 3개나 있다고 주장했다. 홍철호 의원은 회의에서 “5호선 유치는 김포의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다. 여야 구분 없이 선출직들이 초당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두관 의원은 “5호선 차량기지에 대해 기피시설이나 혐오시설이란 말을 쓰면 안 된다. 김포연장의 당위성을 말해야 한다”면서 “5호선과 신곡수중보 문제는 고양시와도 맞물려 있다. 서두르기보다 철저히 준비해 접근해야 한다 ”고 말했다. 협의회 회장인 유 시장은 “부시장을 단장으로, 관련 국과장과 시·도의원, 국회의원실 보좌관 등이 참여하는 실무 TF를 조속히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참석자들은 신곡수중보 철거에 앞서 농업용수의 원활한 공급에 대해 농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안 마련과 갈수기 때 팔당댐의 방수량을 늘리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특히, 홍 의원은 “한강하구 하상의 퇴적물이 더 문제라 홍수위험이 크다”면서 “내년도 국가 예산에 한강하구 하상의 퇴적물 조사 용역비를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49년 만에 ‘청와대 밤산책’

    49년 만에 ‘청와대 밤산책’

    “이렇게 하나하나 개방하고 시민께 돌려드리다 보면 국민과 소통하고, 늘 국민 곁에 있는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조금 더 빨리 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26일 49년 만의 청와대 앞길 개방 행사에서 이같이 말하자 50여명의 행사 참여 국민들이 박수 치며 환호했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돼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면서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스스로 발 딛고 서 있는 위치를 낮춰 더 많은 사람과 마주 보고 더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집무실을 비서진이 있는 건물로 옮기니 소통이 활발해지고, 경호 문턱을 낮추니 국민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 여사는 또 “아무래도 경호실과 경찰 일은 더욱 많아질 것 같다. 앞으로도 시민의 안전을 잘 부탁드리겠다”면서 “앞으로 많은 분들이 편히 통행하시고,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이 길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 앞길은 1968년 1·21 사태(김신조 침투사건)를 계기로 49년간 가로막혀 있었다. 청와대는 이날부터 열린 청와대를 구현하겠다는 취지로 춘추관(청와대 기자실)과 분수대 광장을 동서로 잇는 청와대 앞길을 야간에도 개방했다. 이날부터 청와대 주변 5개 검문소의 육중한 바리케이드가 철거되고 대신 서행을 안내하는 교통안내 초소가 설치되는 등 24시간 개방됐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명문학군, 집값도 견인…‘동대신 브라운스톤 하이포레’ 눈길

    명문학군, 집값도 견인…‘동대신 브라운스톤 하이포레’ 눈길

    단지 인근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갖춘 단지는 ‘원스톱 학세권’으로 불리며 인기가 높다. 아파트 수요가 꾸준해 향후 환금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쾌적한 교육여건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군 좋은 아파트는 거래가 활발하고 집값은 꾸준히 오름세다. KB부동산에 따르면 명문 학군으로 유명한 목동의 집값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2017년 1분기 기준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3.3㎡당 745만원으로 지난해 1분기 3.3㎡당 660만원보다 85만원 가까이 상승했다. 또 학교 보건법에서는 학교 경계선으로부터 200m 이내를 상대 정화구역으로 지정해 유해업종의 입점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수한 면학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등하굣길 범죄와 교통사고로부터 안전하다는 이점도 있다. 이렇듯 학세권 아파트는 향후 시세차익을 노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교육여건을 갖춰 분양시장의 스테디셀러 상품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최근 부산 서구에 분양을 앞두고 있는 학세권 단지에도 수요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수건설이 부산 서구 동대신1구역을 재개발하는 ‘동대신 브라운스톤 하이포레’를 올 6월 분양할 예정이다. 단지가 들어서는 부산 서부권역은 명문 학교와 학원가가 밀집해 예전부터 교육 중심지로 유명한 곳이다. 단지 인근으로 구덕초, 부산여중, 경남고 등이 가까워 도보통학이 가능하고 대신중, 부경고, 부산서여고, 동아대학교도 인접해 풍부한 교육 인프라를 자랑한다. ‘동대신 브라운스톤 하이포레’는 개방감을 높인 주동 배치로 쾌적함을 높였으며 단지 바로 앞에 약 209만㎡의 대신공원도 위치해 있다. 일부 세대에서는 바다와 구봉산 조망이 가능하며 등산로 등도 가깝다. 단지가 위치한 동대신·서대신동은 현재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덕운동장도 스포츠파크로 재탄생 되는 등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꾸준하게 이뤄지고 있다. 구덕운동장은 주경기장만 유지되고 노후된 시설을 철거하고 지역민을 위한 생활체육시설과 쉼터 등으로 꾸며진다. ‘동대신 브라운스톤 하이포레’의 모델하우스는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에 위치하며 2020년 상반기 입주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동시장 개고기 판매·유통 금지해야” 민원 연간 1000여건 쏟아져

    “경동시장 개고기 판매·유통 금지해야” 민원 연간 1000여건 쏟아져

    성남시장 자친철거 후 경동시장에 관심 쏠려동물 ‘학대’ 조항 근거로 단속하고 있지만 역부족개고기를 파는 도심 전통시장을 두고 서울시와 자치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개고기 유통업소 폐쇄 요청 등 매년 1000건이 넘는 민원이 쏟아지고 있으나 단속할만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국내 최대 개고기 유통시장인 성남 모란시장 일부 업소가 올해 들어 개 도살 시설 등을 자진 철거한 이후엔 서울 경동시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6일 서울시와 동대문구에 따르면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현재 개고기를 파는 업소는 5곳이다. 과거 모두 6곳이었으나 당국이 폐업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끝에 지난 달 1곳이 문을 닫았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정식 민원 접수를 통해 담당 공무원에게 전자문서 형태로 와서 답변한 것만 올해 200건이고 전화 민원은 1000건을 훌쩍 뛰어넘는다”면서 “민원의 90% 이상이 경동 시장에 개고기를 팔지 못하도록 업소를 폐쇄해달라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구 동물 담당 부서의 주된 업무는 유기동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이지만 동대문구의 경우 경동시장에서 개고기 관련 민원이 쏟아지면서 담당 공무들의 주된 업무가 개고기 유통·판매 관련 업무가 됐다. 구는 대책 마련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관련 법규가 마땅치 않다. 축산물 위생관리법은 개의 도살이나 판매 행위를 규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 관계자는 “동물보호법상 ‘학대’ 관련 조항으로 단속이 가능하긴 하지만 업주들이 동물이 동족의 도살 장면을 볼 수 없도록 하고 전기 도살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 이 조항에 저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법 8조는 ▲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 ▲ 고의로 사료나 물을 주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 수의학적 처치의 필요나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의 피해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구는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1회씩 관내 동대문경찰서 제기파출소와 함께 합동 단속을 펼치고 있다. 동물보호법에서 금지한 도살 행위, 길거리에 개 철장을 쌓아 인도를 불법 점거하거나 분뇨 등을 무단 배출하는 경우 등이 단속 대상이다. 그 결과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에 1건씩 총 2건의 동물 학대를 적발해 업주를 형사고발했다. 구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다른 개가 보는 앞에서 전기충격기도 쓰지 않은 채 잔인한 방식으로 도살하는 업주를 적발했다”며 “이 업주는 이달 초 재판에 넘겨졌다”고 말했다. 구는 현재 경동시장에 남은 개고기 판매 업소 5곳 가운데 가게 밖에 개 철장을 둔 곳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 5곳 가운데 3곳은 개고기만 팔고 있으며, 2곳만 개 도살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 관계자는 “시와 함께 합동 단속을 이어가면서 남은 업소에 대해서도 폐업하거나 업종을 바꾸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靑 앞길 개방을 ‘생떼 멍석’으로 아는 민노총

    청와대 앞길이 오늘부터 시민들에게 24시간 개방된다. 50년 만의 이번 조치는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국정을 보는 곳이 바깥세상과 담 쌓은 별천지여서는 애초에 곤란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상식을 되찾는 작업은 다행스럽다. 그런데 시작부터 찬물을 끼얹는 소식에 많은 국민은 걱정이 앞선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청와대 근처의 인도에 농성 그늘막을 세웠다가 관할 구청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청와대 앞 100m 지점에 농성 텐트를 치고는 “노동계 요구를 들어 달라”고 외쳤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농성 천막을 쳤다가 뜯기면서 몸싸움도 벌였다. 참 딱하다. 힘들게 길 닦아 놨더니 엉뚱한 사람이 지나가 김을 뺀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청와대 앞길이 시민 품으로 온전히 돌아올 수 있을까 벌써 걱정이다. 산책로는커녕 광장의 시위 구호가 청와대 앞으로 옮겨지는 결과라면 반색할 사람은 거의 없다. 청와대 앞길을 지금 이 순간 민노총이 점거하고 있든 않든 그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다. 지금은 새 정부와 국민이 어떻게든 소통의 대의가 담긴 작업에 운을 떼보려는 지점이다. 그런 마당에 노동계의 간판 단체가 작심하고 엇박자를 낸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민노총은 오는 30일 사회적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주 민노총은 일자리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최저임금 1만원 즉각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전교조 합법화를 요구했다. 몰아치기 요구에 문재인 대통령은 “1년 정도는 지켜봐 달라”는 통사정까지 했다. 문 정부가 노조 친화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다만 지금은 국민 염원인 일자리 확대를 위해 노동계의 공감과 양보를 구하고 있는 단계 아닌가. 그런데 노동계의 양보를 요구하는 정부와 여론을 시작부터 눌러 입막음하겠다는 식의 공격 자세는 동의를 얻기 어렵다. 촛불의 수혜를 많이 봤으니 그 빚을 갚으라고 대놓고 새 정부에 요구하고도 있다. 큰 오산이다. 새 정부가 촛불 민심으로 탄생했다고 한들 그 민심을 민노총이 마치 제 것인 양 들먹거릴 자격은 어디에도 없다. 민노총의 말마따나 문 정권의 탄생에 기여한 바 크다면 오히려 지금은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자중하고 자제해 주는 게 도리다. 그런 진정성이 있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 [노주석의 서울살이] 남산 ‘조선신궁 터’에 대한 상념

    [노주석의 서울살이] 남산 ‘조선신궁 터’에 대한 상념

    베를린에 다녀온 적 있다. “뭐 볼 게 있겠나?”라는 짐작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베를린의 낮은 고색창연했고, 밤은 눈부셨다. 나흘 동안 ‘페라가몬 뮤지엄’이 있는 박물관섬으로 이틀을 출퇴근하면서 약탈 문화재 투어를 했고, 나머지 이틀은 시내를 쏘다녔다. 의도치 않게 찾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2711개의 높낮이가 다른 돌비석 사이 미로를 걸으면서 전쟁과 인종 말살의 참극에 몸서리를 쳤다. 이 강렬함이 다음날도 ‘유대인박물관’으로 걸음을 향하게 했다. 범죄자의 후손들이 남긴 통렬한 참회의 메시지가 평화와 자유의 가치를 자각토록 이끌었다. 우리는 흔히 좋은 곳, 빛나는 것만 찾아다니는 ‘그랜드투어’를 즐긴다. 하지만 어두운 역사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다크투어’도 엄연히 존재한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인간과 자연이 남긴 ‘흑(黑)역사’의 현장을 어지간히 다녔다. 하와이 진주만, 뉴욕 그라운드 제로, 히로시마 원폭돔, 사이판 반자이 절벽, 폼페이 화산 폭발 유적…. 국내의 경우 비무장지대(DMZ)와 서대문형무소, 거제 포로수용소, 제주 4·3평화공원, 용산 전쟁기념관이 나의 다크투어 목록이다. 남산의 조선신궁 터 얘기를 꺼내려고 언저리를 맴돌았다. 서울에는 일제강점기의 흉터가 부지기수다. 근대 건축물로, 터와 표석으로 곳곳에 층층이 주름져 있다. 강점기를 통틀어 두 개의 랜드마크를 꼽는다면 첫째는 조선총독부, 둘째는 조선신궁이다. 총독부가 국권을 지배했다면, 조선신궁은 정신을 지배했다. 아쉬운 점은 일제가 버리고 간 조선총독부는 우리 손으로 허물었지만, 조선신궁은 일본 스스로 철거했다는 점이다. 천황의 항복 다음날 승신식(昇神式)이라는 행사를 갖고, 질서정연하게 폐쇄와 소각 절차를 거행했다. 왜 그랬을까?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허울 아래 조선 사람의 얼을 뺀 신사참배와 황국신민서사의 원흉을 고이 돌려보내다니…. 전국에 산재한 1141개의 신사 중 136곳이 불타고 파괴됐지만 조선신궁은 건재했다. 신궁 입구 초대형 도리이(大鳥居)는 해방 2년이 지난 후에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산은 목멱대왕을 모신 영광의 땅이기도 하지만, 일제 침탈의, 정보기관에 의한 인권유린의 소굴이기도 하다. 영과 욕이 교차하는 국치(國恥)의 현장이다. 조선신궁이 있던 안중근의사기념관 앞 중앙광장터 발굴 현장에서 땅속에 파묻혔던 배전 터가 7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사람 300만명이 일본 신과 천황에게 강제로 숭배의식을 치른 장소다. 조선혼을 말살한 배전 터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서울시가 전전긍긍이다. 쉬쉬하며 파묻을 수도 없고, 드러내 놓고 전시하기도 곤란한 형편이다. 망각이 아니라 자각이다. 이젠 드러내야 한다. 우리도 본격적으로 다크투어에 나설 때가 왔다. ‘국치 투어’면 어떤가. 남산 옛 조선통감 관저 터에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된 게 신호탄이다. 정부의 도움 없이 1만 9611명의 시민이 3억 4000만원의 성금을 내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된 치욕의 통감관저 터에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을 세웠다. 을사늑약을 체결한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 잔존물도 거꾸로 세웠다. 이름하여 ‘홀대 전시’ 기법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히는 것이다”라는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말씀이 검은 돌에 새겨져 있다. 한·영·중·일 4개 국어로 또 이렇게 적혀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History not remembered is repeated)
  • [시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성공하려면/전상현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

    [시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성공하려면/전상현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

    이 땅에서 부동산에 대한 믿음은 종교만큼이나 깨기 어렵다. 이는 지난 몇 년간의 주택시장만 보더라도 쉽게 증명된다. 주택시장에 대한 비관론적 전망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아파트 청약에 열을 올렸다. 떴다방 야시장이 성황을 이룬 이유다. 덕분에 가계 저축률은 바닥을 헤매고 가계 부채는 1300조원을 넘어섰다. 이러한 굳건한 믿음은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 크게 세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주택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상 주택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었다. 둘째, 정부와 기득권 언론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0년이 그랬다. 리먼 위기 이후 정부는 세금을 깎아 주고 대출 규제를 풀어 주면서 집을 사라고 부추겼고 기득권 언론은 늘 집값이 심상치 않다고 부채질했다. 환상의 복식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거권 보장에 대한 정책적 의지가 약했다. 유럽같이 임대료와 임대 기간을 규제하는 장치도 없었고 강제 철거에 대한 법적 보호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주거권 보장 정책이라고는 공공임대주택 공급뿐이었다. 하지만 장기 거주용 공공임대주택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내 집을 내 힘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믿음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인가.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 설명을 빌려 예측해 보자. 첫째, 주택보급률은 곧 안정권에 들어설 것이며 주택시장은 생산인구 감소로 수요 위주의 시장으로 재편될 것이다. 주택 가격이 오르기 힘든 기본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둘째, 정부가 더이상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를 결정한 이유다. 그리고 기득권 언론의 찌라시 같은 부동산 기사도 힘을 잃어 갈 것이다. 국민들이 눈치챘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보수 매체들이 호가가 아닌 진짜 집값으로 기사를 쓰겠다고 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사유재산권에 밀린 주거권의 지위가 높아질 것이다. 시대적 요구 사항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더불어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계약 갱신 청구권 도입을 검토하는 이유다. 종합해 보면 장기적으로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집값이 내려갈지는 미지수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세인 데다 6·19 부동산 대책마저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집값이 하락할 가능성이 큰 이 시점에서 투기 수요에 확실한 메시지를 주지 못한 이번 대책은 그래서 아쉽다. 집값이 더 올라가면 나중에 그만큼 더 큰 충격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은 좀더 단호했어야 한다. 분양권 전매 제한과 LTV, DTI 강화를 선별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대 적용했어야 한다. 과거 반복됐던 풍선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투기 세력에게 단호하면서도 확실한 메시지를 보냈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 놓은 투기 수요부터 제거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집값이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투기 수요 제거로 내려가는 집값이라면 그게 정상 가격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정상으로 돌리는 일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물론 문재인 정부 역시 주택 가격 하락에 대한 부담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향후 국정 운영을 고려할 때 집 가진 중장년층의 지지율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착같이 빚을 내서 집을 산 이들은 집값이 떨어지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택 가격의 하락 압력이 커지는 이 시점에서 적극적인 선제 조취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억울하겠지만 그것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운명이 아닐 수 없다.
  • 中 “북핵 동결과 주한미군 감축 맞교환”…美는 거부

    미국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외교안보대화에서 ‘북핵 동결’과 ‘주한미군 감축’을 맞교환하자는 중국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제안한 ‘북핵 동결 후 폐기’라는 2단계 북핵 해법도 미국의 강경한 대북기조와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백악관 관리들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또는 경제적 압박을 해제하도록 요구하는 그 어떤 제안에도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고 NYT는 덧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관리들은 북의 ‘핵 동결’ 운운은 ‘함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올해 초 한국 방문 때 북핵 ‘동결’을 위한 협상 제안을 거부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윌리엄 J 페리 전 국방장관은 “동결을 위한 대화는 북한이 미 본토를 강타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성공적으로 발사하기 전까지 시간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핵 동결’ 합의의 실패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북한과 ‘핵 동결’ 골자로 하는 제네바기본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 초기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개발 의혹이 불거지면서 제네바기본합의는 폐기됐다. 그러다 부시 행정부 말기인 2007년 비핵화 조치를 담은 2·13 합의를 도출했지만, 결국 북핵 신고내용을 둘러싼 북·미 간 갈등으로 좌초됐다. 또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2년 2·29 합의(북핵 동결 및 미사일 발사 유예)에 도달했지만, 2개월 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합의가 깨졌다. 틸러슨 장관이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그들이 한반도 긴장이 한층 더 고조되는 것을 막기 원한다면 김정은 정권에 훨씬 더 큰 경제적, 외교적 압력을 가하기 위한 외교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중국에 강조했다”며 ‘대화’보다는 ‘압박’을 강조한 이유다. 이런 가운데 중국 외교부는 이날 홈페이지에 미·중 외교안보대화 결과를 공지하면서 “중국 측은 미국의 사드 배치 반대를 재천명하고 배치 프로세스를 중단하고 철거하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외교부는 회의 결과를 공지하면서 주한미군 축소 및 북한 핵 동결 제안과 이 제안을 미국이 거부했다는 내용도 밝히지 않았다. 대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내 중국 방문 합의 등 우호적인 성과를 부각시켰다. 첫 외교안보대화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원칙을 꺾지 않았으며, 미국의 압박에 밀리지 않으면서도 세컨더리 보이콧과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피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분위기라면 이달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의 분위기도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 대통령이 지난 20일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핵실험 및 미사일 시험 발사 동결을 위한 대화를 통해 ‘북한의 핵 프로그램 완전 해체를 달성’하는 2단계 방안은 미국이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 한 소식통은 “‘웜비어 사망’ 사건 등으로 미국 내 분위기가 험악해져 있는 상황이어서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에 ‘믿음’을 주지 않는 한 대화 카드는 먹히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인터뷰 플러스] 박기철 분당제일교회 담임목사 “종교인 되기 전에 ‘좋은 사람’ 되자”

    [인터뷰 플러스] 박기철 분당제일교회 담임목사 “종교인 되기 전에 ‘좋은 사람’ 되자”

    “우리 신앙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경쟁 과열, 물질 제일주의 등으로 신음하는 세상에서 ‘결국은 교회가 희망’이라고 외치는 교회가 있다. 종교인들의 잘못된 행위와 교회의 타락을 지적하는 여론 속에서 ‘종교인 이전에 올바른 사람들이 되자’고 자성하는 목사가 있다. 경기 용인 분당제일교회와 박기철 담임목사 이야기다. 분당제일교회는 해외 젊은이들의 교육을 지원하고 지역 사회에 봉사하며 교회의 본질을 찾는 데에 집중해 왔다. 박 목사는 ‘교회의 본질’을 “예수의 사랑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교와 영성, 사랑의 실천이라는 가치를 붙잡고 선한 사역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박 목사와 마주해 오늘날 교회의 회복과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열방 선교를 교회 비전 중 하나로 하고 있고, 실제로 해외 선교에 힘을 쏟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어떻게 진행하고 계십니까. -중국에서 15년 가깝게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고 최근 2~3년 사이에 필리핀과 멕시코에서도 시작했습니다. 또 동티모르에 교회를 세우고 현지 선교사에게 후원을 하고 있고요. 저희 교회가 단독적으로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좋은 분들과 뜻을 합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방향성에 맞게 ‘힐미션’이라는 선교단체를 설립하고, 11개 선교분과를 통하여 현지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키우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중국에서 오래 선교를 하셨군요. 현황이 어떻게 됩니까. -중국에서 저희는 사람을 세우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절강성에서 저희가 매년 300명 정도를 집중교육하고 있어요.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그곳, 절강성에서 많이 나옵니다. 저희는 조선족이 아닌 한족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현지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집중교육을 통하여 훈련하고, 한국으로 데려와서 장신대 등에서 전문교육을 받도록 연결시킵니다. 이를 위해 저희는 재정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교에 나서는 이유가 특별히 있는지요. -우리가 복음을 받았으니까요. 그 빚을 갚는 겁니다.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것도, 우리가 사랑의 빚을 져서 일어설 수 있었던 거잖아요. 세계 곳곳에 필요한 것들,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절박하고요. 우리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니 도울 수밖에 없지요. →사실 물질적인 도움보다 기술교육이 더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저희는 사람을 세우는 일에 주력합니다. 필리핀 같은 경우엔 망얀족 100만명 정도 되는 사람 중에 부족에서 한 사람씩 뽑아 아이들 30여 명의 교육을 후원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원하면 대학까지 쭉 공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건 그 아이들 한 명뿐 아니라 그 마을에 희망을 주는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공부하면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게 지도자를 키워나가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역을 섬기는 나눔활동 또한 중점을 두고 실천하고 계십니다. 선교와 나눔에는 아무래도 교인들의 참여가 매우 중요할 것 같은데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교회가 함께 섬겨야 할 수 있어요. 저 또한 목회를 하면서 사람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것이 기본이라는 정신을 가지고 앞장서서 실천해 왔습니다. →목사님은 그런 실천에도 열심이지만 다른 부분에서 영적인 침체와 영성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 오셨습니다. 이 시대 영성을 위기라고 보신다면,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종교를 갖게 되는 이유가 단순히 개인의 기복적인 데에 치우치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정신이 없으면 위기인 것이죠.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를 이용하고자 하고 예수 이름으로 복을 받는 쪽으로 가는 경향이 너무나 많아요. 본질에 충실해야 해요.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인데, 기도와 말씀, 본질로 돌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지적되는 점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실제 종교별 사회적 신뢰도 조사에서 개신교가 가장 낮다는 게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그건 사실이죠.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결과가 이상하지 않아요. ‘예수님은 좋은데 믿는 사람이 싫다’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람을 바르게 지도하려는 마음으로 늘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이 중요하다. 종교인이기 전에 사람이 되어라.’ 종교인이라면 더욱 정신적으로 바른 사람이어야지요. 인격 형성이 잘못된 사람들은 신앙을 가져도 자신의 잘못된 틀로 신앙생활을 해요. 물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고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그것이 개인의 인격수양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려운 현실의 문제 속에서 기독인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세속적인 가치관을 벗어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 세상에서 넓은 길, 편하고 쉬운 길로 가려는 시대에 휩쓸리지 말고 흐름에 거슬러 거꾸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자 몸부림쳐야 합니다. 교회는 결국 세상에 속해 있되, 희망을 노래하고 비전을 보여주는 곳이어야 해요. ‘역시 교회는 다르구나’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세상과 동떨어진 삶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함께하는 삶을 살되 의미 있고, 세상에 변화를 주고, 소망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세상 속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결국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목사가 아무리 많아도 목사 한 사람이 사고를 칠 수도 있는 거고, 반대로 한 명의 목사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바르게 행해서 건강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겁니다. 또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대의 사명감과 책임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정말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부족한 ‘한 사람’을 비난하고 탓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 한국교회를 보는 눈이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누굴 욕하면서 자기만 아닌 척하는 것 또한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 사람의 목사로서 선한 영향력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 받지 않도록 몸부림칠 뿐입니다. →목사님께서 처음 목회자의 길을 가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6대를 이어 온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조부와 부친이 모두 장로님이신데 부친께서 저를 하나님 앞에 목회자로 키우겠다는 기도를 하셨어요. 서원기도라고 하는데 그만큼 열망이 있으셨던 거죠. 그런데 저는 그 길이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목회자가 되는 것보다 다른 방법으로 교회를 섬기겠다고 생각해서 다른 길로 갔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야 깨달았고, 뜨거운 소명감으로 장로회신학대학교에 들어갔죠. 44년 전 일입니다. →신학대에 들어간 이후로는 고민이 없으셨나요.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실하였기에, 내게 주어진 사명 하나 가지고, 뭘 하든지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신대를 들어간 다음 해인 1974년에 저는 ‘내가 목회자로 살아갈 사람이니까 목회자로서 무엇을 할까’라고 묵상했을 때 ‘가장 어려운 이들을 섬기자’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청계천 판자촌 빈민촌을 들어가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이들을 찾아갔죠. 교육 못 받고, 병이 들고, 자녀들 문제와 수많은 아픔을 가진 그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평생 이분들 섬기며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지역이 1975년 말에 철거된 뒤에 그게 성남시가 되고 잠실이 됐지요.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아마 그분들과 일생을 같이하는 목사가 됐을 겁니다. →선교와 나눔 외에 또 어떤 활동에 힘을 쓰고 계십니까. -사람을 세우는 일에 관심이 많은 만큼 젊은이들, 청년들을 리더로 키워내는 일을 힘쓰고 있습니다. 한국리더십학교라는 기관에 청년들을 보내서, 앞으로 한국의 크리스천 리더들로 설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20년 뒤, 30년 뒤 통일한국 시대의 일꾼을 키우는 겁니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토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간 40명을 뽑아서 교육하는데, 거기에서 우리 교회 청년들을 비롯해 인재를 키우고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총회훈련원 원장을 2년 임기로 맡았다가, 다시 2년 임기를 더 받아서 이제 3년차가 됐습니다. 총회훈련원은 우리 교단 내 목회자들과 장로들, 선교사들 등을 재교육하는 기관입니다. 목사와 장로와 선교사가 바르게 살면 엄청난 영향력이 있을 겁니다. 저희 교단에서 이제까지 이러한 재교육 역할을 제대로 못했어요. 그 운동에 뜻 있는 분들과 함께 헌신하고 있는 겁니다. →총회훈련원 이수를 하면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목사 안수 받은 뒤 7년차가 지나면 의무적으로 계속교육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의무사항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와서 피동적이던 사람이, ‘받고 보니까 좋구나’라는 얘기를 하죠,” 바라기는 목사·장로 계속교육을 확대함으로 개인의 변화는 물론 교단과 한국교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시고, 총회훈련원 원장까지 연임을 하시면 분당제일교회에는 시간을 많이 쓰시지 못하시는 것 아닙니까. -대외활동을 하는 부분도 목회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하는 것들이 교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이제는 교인들도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 활동을 하는 사이에 교인들에게 소홀할 수 있다는 우려에 3시30분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어요. 하루에 4~5시간밖에 못 잘 정도로 뛰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며 지역을 섬기는 분당제일교회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분당제일교회를 개척해서 이제 32년 됐습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가 ‘꿈·사랑·영성’이에요. 꿈이라는 건 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생명을 구원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고, 사랑이라는 건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 속에서 녹여내고 실천하여 예수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영성이라는 건 기독교인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예수로서의 삶을 말합니다. 특별히 지금 이 시대는 영성 위기라고 생각하는데, 그 영적인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1993년부터 영성훈련 프로그램인 ‘사랑의동산’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평신도 약 5만 명, 목회자 약 6000명이 훈련을 받았어요. 이런 일들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도록 이끄는 것이 우리 교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섬기려 합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박기철 목사는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 졸업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목회상담 전공) 장신대 목회전문대학원 졸업(목회신학박사) 現 분당제일교회 위임목사 現 총회훈련원 원장 現 장로회신학대학교 법인이사 現 사랑의동산 운영국장 前 총회 회록서기 前 한국장로교출판사 이사장 前 장신대총동문회 회장
  • 자세 낮춘 리셴룽

    자세 낮춘 리셴룽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아버지인 리콴유 전 총리 자택 처분 문제로 불거진 ‘가족 분쟁’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동생들이 제기한 권력 남용과 3세 권력세습 의혹은 부인하는 대신 의회 조사를 통한 정면 돌파를 택했다.리 총리는 19일 밤 TV 생방송을 통해 “이번 분쟁으로 싱가포르의 명예가 실추된 점을 총리로서 사과한다”면서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어떤 심정일지 생각하니 참담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리 총리는 동생들이 제기한 의혹을 부정하며 “다음달 3일 의회 공개토론을 통해 검증받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사망한 리 전 총리의 맏아들인 리 총리는 아버지에 이어 다수당인 인민행동당(PAP)을 이끌고 있다. 리 총리는 “모든 의원들이 의혹을 조사하고 심문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리 총리는 의회 자유투표까지 제안했다. 다수당인 PAP를 앞세워 의회에서 의혹을 털고 가겠다는 뜻이다. 리 총리의 여동생 리웨이링과 남동생 리셴양은 리 총리가 집을 허물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긴 채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철거를 막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자택을 우상화의 거점으로 삼아 리셴룽의 아들에게까지 권력을 물려주려고 한다는 게 두 동생의 주장이다. 리 전 총리는 자택이 우상화의 장소로 사용될 가능성을 경계해 “내가 죽거든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 버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리 총리는 “리셴양의 부인이자 로펌 대표인 리수엣펀 변호사가 아버지의 유언장 작성에 개입했다”며 자택을 허물라는 유언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서울형 도시재생 공공 디벨로퍼가 이끈다] 마을 주민이 재개발 싱크탱크… 사업성보다 삶의 질 높인다

    [서울형 도시재생 공공 디벨로퍼가 이끈다] 마을 주민이 재개발 싱크탱크… 사업성보다 삶의 질 높인다

    낡은 주택가를 포크레인으로 밀고, 아파트나 주상복합시설 등을 짓는 재개발·재건축은 지역을 한순간에 드라마틱하게 바꾼다. 하지만 한계 또한 명확하다. 이호철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재개발이 분양물을 파는 사업처럼 변질됐다. 사업성이 없는 지역은 추진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업성은 없지만 너무 낙후해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곳을 위한 정비사업 방식이 필요하다. 주거지 중심(근린)형 도시재생 사업은 전면철거식 도시정비사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방식이다. 허름한 단독주택이나 다가구·다세대주택을 무작정 허무는 대신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성을 살리면서 도로·주차장 등 생활 인프라를 개선해 주거지를 새로 단장하는 사업이다. ‘서울형 도시재생 공공 디벨로퍼가 이끈다’ 시리즈 8회에서는 지역민이 직접 사는 마을의 미래상을 설계하고 동네를 조금씩 바꿔 가는 근린형 도시재생사업의 현황에 대해 살펴본다.“허름해 보여도 이곳이 1만 5000명이 모여 사는 창3동의 개발 전략을 짜는 싱크탱크예요.” 20일 서울 도봉구 창동 골목시장 옆 건물의 작은 사무실. 최범린(60)씨가 지역 지도를 펴 놓고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사무실 이름은 주민사랑방 ‘알콩달콩’이다. 지난 2월 2단계 서울시 근린일반형 도시재생사업지로 확정된 창3동의 주민들이 모여 각종 회의를 하고, 도시재생 등에 대한 수업도 듣는 아지트다. 마을에서 40여년을 산 최씨가 도시재생을 위한 주민 모임의 총무를 맡았다.●뉴타운 무산 등 낡은 동네 많아 최씨는 “우리 동네는 낡은 단독주택 등의 비율이 높아 재개발을 추진하다가 상가 감정가 등이 일부 주민의 기대치에 못 미쳐 2015년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곳”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개발 지연 탓에 마을이 점점 낙후해 갈 때 서울시의 근린일반형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시 예산을 지원받아 좁은 도로 등 주거 인프라를 정비하고 우이천·초안산 등 자연 자원을 활용해 동네를 아기자기하게 꾸미면 마을이 활기를 되찾겠다’ 싶었다. 곧바로 지역민을 설득해 재생사업을 추진했다. 최씨와 활동가 등 70여명은 학부모 모임과 민방위 훈련장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주민을 상대로 도시재생의 필요성을 알렸고 공감을 이끌어 냈다. 서울시는 지역민 설득 과정 등을 높이 평가해 창3동의 도시재생을 위해 4년간 1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창3동은 서울시가 2014년 이후 지정한 근린재생 사업지 14곳 중 하나다. 근린재생은 주거지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지역 특색을 살려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 도시재생의 한 유형이다. 사업지 중에는 종로구 창신·숭인동처럼 뉴타운사업 추진 중 무산됐거나 재개발사업 지역에서 해제된 낡은 동네가 많다. 시는 2014년 1단계 근린재생 사업지로 종로구 창신·숭인, 용산구 해방촌, 구로구 가리봉동, 강동구 암사동, 성동구 성수동, 성북구 장위동, 동작구 상도4동, 서대문구 신촌을 지정했다. 또 올 2월에는 2단계 사업지로 도봉구 창3동, 강북구 수유1동, 중랑구 묵2동, 은평구 불광2동, 관악구 난곡·난향동, 서대문구 천연·충현동 등을 뽑았다. 서울의 근린재생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가시적 성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2014년 5월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의 ‘전국 1호’ 근린재생 사업지로 선정된 창신·숭인 구역이 대표적이다. 2013년 뉴타운 지구 해제 이후 더 쇠퇴했던 이곳은 도시재생사업 추진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어둑한 골목길에 고보라이트(사람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바닥에 이미지가 투사되는 조명)를 설치하고, 바닥 포장을 다시 했다. 또 들쭉날쭉하던 낡은 계단의 높이를 맞추는 등 해가 져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옛 백남준 가옥 터에 ‘백남준 기념관’이 세워졌다. 올해 12월까지는 봉제역사관을 만들어 봉제 인력과 신진 디자이너의 협업 공간, 봉제 산업 관련 아카이브 등으로 채운다. 창신·숭인 구역 도시재생을 돕는 코디네이터 서유림씨는 “마을 분위기가 밝아지고 청년층 취향에 맞는 맥줏집 등도 생겨 젊은이들이 점점 많이 찾고 있다”면서 “지역 내 문화 자원을 엮어 마을 탐방로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초기자금 1억 2000만원 지원 서울시의 근린재생사업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특별한 건 ‘희망지’ 제도 때문이다. 근린재생사업은 낙후 지역 주민 10명이 뜻을 모아 “도시재생사업으로 마을을 바꿔 보겠다”고 서울시에 신청하면 시작된다. 시는 대상지 여부를 바로 가리는 대신 예비 사업지 성격인 ‘희망지’ 신분을 준다. 또 초기자금을 1억 2000만원까지 지원한 뒤 8개월간 지켜본다. 도시재생이 주민 주도로 마을을 바꾸는 사업인 만큼 주민 스스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준비 기간을 주겠다는 취지다. 주민들은 이 기간 거점 사무실을 마련하고 이웃을 설득한다. 시 관계자는 “낯선 개념의 정비 사업인 도시재생을 일방 추진하면 주민들이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면서 “도시재생이 뭔지, 우리 마을에 왜 필요한지 등을 주민끼리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공감대를 쌓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는 희망지 사업 기간 중 주민들이 도시재생의 필요성을 폭넓게 공감하고, 사업 추진을 위한 자체 역량도 충분히 쌓은 곳을 사업지로 선정한다. 이 지역에는 마중물 자금 격으로 4년간 100억원을 지원한다. 주민들은 마을 사람들이 가진 욕구나 동네에 있는 경제·문화 자원 등을 조사·발굴한다. 이를 토대로 마을 발전의 청사진을 그리고 변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설도 짓는다. ●“마을 공부하며 생활민주주의 배워” 근린재생사업의 핵심은 주민 주도로 마을 변화 계획을 세운다는 점이다. 능력·시간을 모두 갖춘 주민이 있어야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 먹고살기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이는 한국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적 모델로 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신중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통념과 다르게 대부분 마을에는 낮에 상주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면서 “소상공인이나 주부 외에도 회사를 일찍 퇴직한 30대 등 젊은 주민도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인구·사회적 배경의 주민이 얼마든지 마을 정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주민들은 마을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고의 지역 전문가다. 이들은 지역 정비를 위해 마을 실태를 조사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동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애정이 커진다. 사업 초기에 마을 정비 방향에 대해 물으면 “우리 집 앞에 폐쇄회로(CC)TV나 설치해 달라”고 말하던 주민들도 지역에 대해 알아가면서 ‘큰 그림’을 보고 의견을 내게 된다.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생사업이 뭔지 잘 모른 채 지원금을 받으려 신청하는 사례도 있지만 1년 가까이 마을 실태를 조사하다 보면 시야가 넓어진다”면서 “동네 역사부터 탐방길까지 자발적으로 마을에 대해 열정적으로 조사하다 보면 스스로 역량이 쑥쑥 자라는 걸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창3동 근린재생 사업을 돕는 활동가 임은경(47)씨의 말은 곱씹어 볼 만하다. “도시재생은 단순히 마을의 모양새를 바꾸는 물리적 사업이 아니에요. 그 종착점은 사람이 변하는 것이죠. 내게 필요한 것부터 생각하던 사람들이 마을과 이웃에 대해 공부하고 이견을 조율하면서 생활민주주의도 익히고 이타성도 키워 가게 됩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서울시의회 한명희의원 “한강 복원, 자연성 회복이 관광보다 우선”

    서울시의회 한명희의원 “한강 복원, 자연성 회복이 관광보다 우선”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한명희 의원(더불어민주당·강서 4선거구)은 지난 15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강, 복원과 개발의 기로에 서다’는 주제로 개최된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신곡수중보 철거가 주요 주제였으나 서울시의 통합선착장 설계작 발표가 나오면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최용 정의당 서울시당 정책위원장은 “여의도 통합선착장 건설 부지는 람사르습지이면서, 철새 도래지인 밤섬에 인접한 곳인데도 시는 경제편익 타당성만 조사하고 바로 공사를 결정했다”며 “콘크리트 인공호안에 관광시설을 더 늘리기보다는 미뤄졌던 재자연화 계획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종필 정의당 정책연구위원은 “기존 선착장을 유지하면서 새로 선착장을 건설하는 것은 중복투자로 볼 수 있는데도 시가 이용자들의 여가비용이나 편익은 과다하게 계산했다”며 선착장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함상 전시관 조성 계획에 대해 “대형 선박을 들여오기 위해서는 수심을 인위적으로 늘리기 위한 강 준설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한명희 의원은 “최근 4대강에 설치된 보의 개방을 보면서도 한강이나마 우리가 잘 보전하고 지켜야 될 곳이구나 하는 것들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데, 최근에 서울시와 중앙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강사업 계획들을 살펴보면 예전에 한강르네상스계획이 그대로 되살아 나려고 한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한 의원은 “한강자연성회복 및 관광자원화 사업을 살펴보면, 한강르네상스 계획과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전체 예산 3,981억중 자연성회복과 관련이 있는 사업은 130억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토건예산이 대부분” 이라면서 “자연성회복이 관광자원화보다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 의원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수륙양용버스를 예를 들면서, “오세훈 시장시절에 사업이 무산됐고, 경인운하쪽에서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중단된 사업을 서울시에서 도입을 재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재 타당성 용역이 진행중인데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관점에서 진행상황을 지켜보겠다“고 약속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시의회 전철수의원, 철거민 보상 규칙 개정 강력 요구

    서울시의회 전철수의원, 철거민 보상 규칙 개정 강력 요구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전철수 의원(더불어민주당, 동대문1)은 지난 6월 14일(수) 개최된 제274회 정례회 시정질문을 통해「서울시 철거민 등에 대한 국민주택 특별공급규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책을 마련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서울시 철거민 등에 대한 국민주택 특별공급규칙」은 지난 1999년 서울시 및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시행하는 도시계획사업 및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철거되는 주민의 주거권과 재산권 보호를 위해 제정됐다. 이후 특별분양권을 악용한 부동산투기가 발생하는 등 제도 악용의 부작용과 신규택지 부족을 이유로 2008년 4월 18일 규칙을 개정하여, 철거민에게 제공하던 특별분양권을 없애고 장기전세주택인 시프트 입주권만을 제공하도록 이주대책을 ‘소유’에서 ‘거주중심’으로 전환했다. 지금까지 전철수 의원은 지난 제271회 정례회 5분 발언과 상임위원회 회의를 통해서도 규칙 개정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전 의원은 “과거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이 빈번하던 시기에는 투기행위를 막기 위해 특별분양권 폐지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막상 시프트 입주권으로 전환한 이후에도 입주권 취득을 위해 철거예정 주택의 소유권을 주민열람공고 이전에 매매거래하는 편법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결국 투기방지를 위해 철거민 이주대책을 ‘거주중심’으로 전환했던 서울시의 노력은 무의미해지고, 이로 인해 선량한 철거민의 재산권만 침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강도 높여 비판했다. 또한, “투기목적으로 토지나 건축물을 소유한 것도 아닌데 재산권을 빼앗기고, 임대주택을 받아야 하는 철거민의 억울한 상황은 개선되어야 한다”며 “철거민에게 아파트 특별분양권과 임대주택 입주권 중 선택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전 의원은 “공익사업을 이유로 주택을 강제수용당한 철거민들이 그동안 겪어야 했던 특별한 희생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도록 서울시는 철거민의 입장에서 「서울시 철거민 등에 대한 국민주택 특별공급규칙」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철거민의 재산권 침해문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규칙개정에 나서 줄 것”을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리 1호기 40년 生을 멈추다…해체 비용 1조원 들 듯

    고리 1호기 40년 生을 멈추다…해체 비용 1조원 들 듯

    정지버튼 누르자 출력 ‘0㎿’로 섭씨 300도 이르는 원자로 온도 냉각재 붓자 93도까지 뚝 떨어져 지난 17일 오후 6시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 주제어실. 이관섭 사장 등 한수원 임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담당 직원이 빨간색 ‘터빈 정지 버튼’을 눌렀다.불과 몇 분 만에 계기판의 발전기 출력이 ‘0㎿’로 떨어졌고 가동 중임을 표시하던 제어판의 빨간색 등이 일제히 정지를 의미하는 녹색 등으로 바뀌었다. 오후 6시 38분에는 제어봉을 넣어 원자로까지 정지시켰다.이어 냉각재를 부어 섭씨 300도인 원자로의 온도를 19일 0시 영구 정지까지 93도로 떨어뜨렸다. 전날까지 발전기 602㎿, 원자로 99.1%의 출력을 보이던 고리 1호기였다.고리 1호기가 40년의 수명을 마쳤다. 고리 1호기는 1977년 6월 18일 원자로에 처음 불을 붙인 이후 1978년 4월 29일 본격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당시 고리 1호기의 총공사비는 3억 달러(약 3400억원)로 1970년 우리나라 1년 국가 예산의 4분의1에 달하는 돈이 투입됐다.막대한 비용 때문에 무모한 사업이라는 비판도 많았지만, 우리 정부는 영국과 미국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 공사를 진행했다. 고리 1호기는 산업화 과정에서 급격히 늘어난 전력수요를 뒷받침하고 중화학 공업시대를 이끌었으며 원전을 수출하는 세계 6위(설비용량) 원전 선진국이 되는 기술의 초석을 닦았다. 고리 1호기는 2007년 설계수명인 30년이 만료됐고 10년간 수명 연장이 결정돼 추가로 전력을 생산했다. 이후 지난 9일 원자력안전위가 한수원의 ‘영구 정지 운영변경’ 허가 신청을 의결하면서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고리 1호기는 지난해 350만명이 사는 부산시 주택에 1년간 공급할 수 있는 전기(477만㎿h)를 생산했다. 고리 1호기가 40년간 만들어낸 전력량은 총 1억 5526만㎿h다. 고리 1호기는 앞으로 5년간 주민공청회와 사용후핵연료의 냉각, 안전성 여부 점검 등 해체계획서 인허가를 거쳐 2022년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박지태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장은 “오는 26일 폐기 상태의 원자로 내부 연료다발(562다발)을 물로 채워진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습식저장시설)로 이동시켜 냉각시키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용후핵연료는 향후 건식 저장시설이 만들어지면 최종적으로 바깥에 옮겨진다. 건물은 방사성물질 제염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된다. 박 소장은 “해체 승인이 내려지면 터빈 건물을 즉시 철거해 폐기물 처리시설로 사용하고 사용핵연료 저장조가 있는 연료건물은 맨 마지막에 철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전기의 영구 보존은 불가능하다. 노기경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장은 “방사능 수치가 떨어지고 출입제한이 완화되면 고리 1호기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개방하겠다”면서도 “부지는 잔디, 공장부지 등으로 복원될 예정이며 지속적인 설비 관리 문제가 있어 일반인 견학 등을 위한 박물관 형태 영구 보관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한수원은 부지를 자연 상태로 복원하기까지 약 1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고리 1호기 해체에는 약 1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박 소장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13년 원자로와 배관을 뺀 나머지를 모두 리모델링해 설비면에서 아까운 점이 있지만 원전 해체를 통해 더 넓은 시장에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본부장은 “원전 해체 및 부지원상복원 기술 58개 가운데 아직 17개를 확보하지 못했는데 연말에 개발에 착수해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탈원전’ 에너지 정책의 전환점이 될지도 주목된다. 부산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올해 첫 한강 녹조 성산대교 아래서 발생…“수중보 개방해야”

    올해 첫 한강 녹조 성산대교 아래서 발생…“수중보 개방해야”

    한강에서 올해 첫 녹조가 확인됐다고 환경단체가 16일 밝혔다.서울환경운동연합은 이날 “한강 홍제천 합류부에서 올해 첫 한강 녹조를 확인했다”면서 “녹조가 강바닥에 포자 형태로 존재하다 띠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녹조가 현재 성산대교 아래 한강 본류까지 확산한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녹조를 해결하려면 물 흐름을 개선해야 한다. 정부와 서울시는 녹조가 악화하기 전에 신곡수중보를 즉시 개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한강 물 흐름을 막는 수중보는 철거돼야 하지만, 당장은 신곡수중보의 가동보를 즉각 개방하는 게 최선”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5일 서울, 고양, 김포 시민 10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747명에 해당하는 70%가 신곡수중보를 즉시 철거(8.5%)하거나, 수문 개방 후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61.5%)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요나라 박근혜’ 그라피티 홍승희 2심서 벌금형…1심은 무죄였는데

    ‘사요나라 박근혜’ 그라피티 홍승희 2심서 벌금형…1심은 무죄였는데

    ‘사요나라 박근혜’라는 그라피티(건물 외벽에 스프레이 페인트 등으로 그린 그림)를 그려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예술가 홍승희(26)씨가 2심에서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다른 사람 소유의 담장을 훼손해 담장의 재물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판단했다.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박평균)는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예술가 홍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철제 담장에 스프레이를 이용해 문제가 된 그림을 그렸다”면서 “한진중공업 직원 진술에 의하면 사전에 그림 그리는 것을 허락한 사실이 없고 그림이 물로 지워지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몰래 와서 그리고 갔으므로 이를 용인한 것이 아니고, (그림이 그려진 철제 담장을) 철거하고 다시 사용할 때 재물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1심은 홍씨에 대해 “재물손괴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담장의 효용을 해쳤다고 볼 수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검찰은 홍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이에 검찰의 기소 및 구형이 예술 활동에 대한 검열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이 됐다. 홍씨는 이날 재판 후 “너무 황당하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홍대 그라피티 벽’이라고 유명한 곳인데 제 그림만 지워져 있다. 정권도 바뀌었으니 무죄가 나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홍씨는 2014년 8월 15일 세월호 집회의 도로 불법 점거 행진에 참가한 혐의(일반교통방해)로도 기소된 상태여서 사건이 병합됐다. 1심 법원은 일반교통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홍씨는 이번 항소심 결과에 따라 벌금 100만원을 더 물게 됐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현미 국토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나도 집 때문에 서러움 겪어”

    김현미 국토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나도 집 때문에 서러움 겪어”

    “장관 취임하면 서민 주거안정에 정책 역량 집중” 김현미 국토부장관 후보자가 1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김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 모두발언을 통해 “과거 집 때문에 많은 서러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며 “서민 주거안정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자는 “주택 매매·전세가격 상승, 월세시장 확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하고 주거급여 수혜의 폭을 넓혀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특히 청년, 신혼부부에 대한 주거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주택가격의 안정화를 위해 시장을 적극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저 역시 결혼 11년 만에야 겨우 경기도에 작은 집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나마 전세값 인상요구 때문에 여섯 번을 이사한 후였다”며 “전세금 인상이라는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내려앉고 무수한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키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아직도 아파트 융자금을 갚고 있다. 아파트 한 채를 온전히 보유하지 못한 장관 후보자는 국토부 역사상 처음이라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정책은 숫자 이전에 마음”이라고 강조한 뒤 “고통받는 국민과의 공감을 통한 현실감과 절박감이 지금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무위원이 갖춰야 할 제1 소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토균형발전 방안에 대해서는 “지방과 수도권은 함께 살아야 한다”며 “세종시, 혁신도시가 명실상부 지역의 성장거점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새만금의 잠재력이 조기에 가시화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도시재생 뉴딜과 관련 “과거의 전면 철거방식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주민이 더 좋은 여건 속에서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첫 여성 국토부 장관으로 내정된 김 후보자는 “남성들과 똑같이 국가와 사회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일 해왔다”며 “제가 더욱 많은 여성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서울사방 서촌, 사람을 품다’ 편이 지난 3일 서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투어 참가자 30여명은 이날 10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를 출발, 통의동 백송터-동양척식주식회사 관사-겸재 정선 생가터-청와대 무궁화동산-우당기념관-벽수산장터-노천명 가옥-윤동주 하숙집-수성동 계곡-이상의 집-통인시장-이상범 가옥-배화여대 캠벨기념관-필운대 등 순으로 2시간 30분에 걸쳐 서촌의 골목 골목을 누볐다. 이번 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은 청와대 무궁화동산, 우당 이회영선생기념관, 노천명 가옥, 이상의 집, 통인시장, 캠벨기념관 등 모두 6곳이다.초여름의 햇살이 따가운지 서울미래유산 로고가 찍힌 빨간색 스카프를 머리에 뒤집어쓴 참가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햇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이나 손목, 가방에 스카프를 맵시 있게 장식하며 멋을 냈다. 해설자 한세화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구수한 입담에 탄성을 내뱉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코스는 길고 시간은 짧다 보니, 한 해설자는 지름길을 찾아 꼬불꼬불한 서촌 골목길을 내질렀고, 일행은 선두에 따라붙느라 잰걸음을 놓아야 했다. 부부, 친구, 자매 등 젊은층이 주를 이뤘고, 일본인 여성도 동행해 ‘장안의 핫플레이스’ 서촌의 인기를 실감 나게 했다.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함으로써 장소에 새겨진다”고 갈파했다. 사람이 사는 장소와 집이 그 사람을 존재케 한다는 뜻이다. 거주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집에 대한 관념이 이전처럼 그리 절대적이진 않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서촌의 형성사를 알면 애정도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서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울을 좀 아는 사람은 ‘북촌보다 서촌’이라는 주장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작위적인 북촌에 비해 격은 좀 떨어지지만 서촌의 편안함에 점수를 더 얹는 식이다. 서촌에는 서울말을 사용하는 중류사회의 서울토박이들이 많이 살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해봐도 화려한 삼청동, 가회동보다 소박한 옥인동, 통인동에서 오히려 ‘한국을 더 많이 느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골목마다 만갈래 사연과 곡절 숨어 서촌의 이 같은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투어 참가자들에게 물어보니 북촌은 사대부와 벼슬아치 같은 지배층이 살았고, 남촌에는 퇴락한 선비들이 산 반면, 인왕산 아래 서촌에는 궁이나 관청일을 보는 아전(衙前)계층이나 고관대작의 일을 봐주는 겸인(?人)같은 중인 이하 서민층이 산 동네로 알고 있었다. 서울 걷기 열풍이 불면서 해설자들이 알려준 판에 박힌 답변이기도 하다. ‘오래 묵은 도시’서울의 정체성을 단숨에 설명하기 쉽지 않고, 뾰족한 답도 없는 게 사실이다. 서울의 역사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가치는 거대한 랜드마크가 주는 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 녹아있는 이야기에 있다고 한다. 도시가 안고 있는 기억이 도시의 주인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촌은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거대한 실타래’ 같다. 골목골목마다 천 갈래 만 갈래의 사연과 곡절이 숨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서촌의 모습 바뀌어 인왕산 기슭 서촌에 대대로 서울의 서민층이 살았을 것이라고 알았다면 그것은 오해다. 조선 초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최고 권력의 핵심 배후지였다. 북촌보다 한 수 위였다. 지금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의 부산물이다. 월남한 피란민과 일거리와 학교를 찾아 고향을 떠나온 지방민이 무작정 정착한 결과 반세기 만에 오늘의 모습으로 변했다. 서촌의 또 다른 지명인 웃대(상촌·上村)는 경복궁 서쪽 인왕산에서 흘러내린 백운동과 청풍계의 물줄기가 수성동천, 옥류천과 합류하는 위쪽을 말한다. 경복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역으로 임진왜란 이전까지 왕족 이외엔 거주가 불가했다. 태종의 셋째 아들 세종대왕의 잠저가 통인동(옛 준수방)에 있었다는 얘기는, 태조의 다섯째 아들 태종의 집도 그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방원과 왕위를 다툰 배다른 동생 무안대군 방번의 옛집도 자수궁터(옥인동 군인아파트)였다. 퇴위한 정종은 사직단 근처 인덕궁에서 머물렀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비해당이 수성동 계곡에 있었고, 효령대군이 비운에 간 조카의 집을 이어받았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 버린 뒤 세도가와 중인층이 야금야금 틈입했다. 서촌은 광해군의 잊혀진 영토이기도 하다. 광해군은 ‘왕기가 있다’며 경덕궁(경희궁), 인경궁(사직동과 내자동 일대), 자수궁 등 인왕산 아래 3곳에 3개의 왕궁을 짓느라 민가 수천채를 허물고 공사를 일으키는 바람에 인조반정의 원인을 제공했다. 누각동, 누상동, 누하동이라는 지명은 이때 지은 궁궐의 누각에서 비롯됐다. 답사단이 처음 찾아간 통의동 백송터는 영조가 태어난 창의궁이었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영조는 재위 52년간 무려 247번 이곳을 참배, 바느질 무수리였던 어머니 숙빈 최씨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영조의 부마집에 입양돼 창의궁에서 자란 추사 김정희는 서촌에 흘러들어온 서당 훈장 천수경이 결성한 문학동인 송석원 시사(詩社)와 인연을 맺어 ‘송석원’이라는 바위각자를 썼다. 인왕산이 백악산과 이어지는 기슭인 지금의 청운동과 효자동, 궁정동은 장동 김씨의 옛 터이다. 안동 김씨 서울파인 장동 김씨가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쳐 누린 세도정치의 산실이다. 답사단은 경복고등학교 교정 안에 있는 겸재 정선의 옛 집터와 그 집터에 세워진 자화상 ‘독서여가도’ 동판비를 둘러보고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는 사치를 누렸다. 300여년전 겸재가 인왕산을 바라보던 바로 그 앵글이다. 한 지도사는 인쇄해 온 한성부 지도와 인왕제색도를 일행에게 나눠줘 이해를 도왔다. 장동 김씨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장동팔경첩도, 인왕제색도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다음 코스 궁정동 무궁화동산은 장동 김씨의 영화를 있게 한 김상용·김상헌 형제의 집터이다. 척화파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가 새겨진 시비와 궁정동 안가, 효자동에 살았던 시인 박목월의 연애담으로 귀가 즐거웠다.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 터에 세워진 국립 농학교와 맹학교를 지나 우당 이회영기념관을 만났다. 인왕산의 또 다른 이름 필운대의 주인 백사 이항복의 직계 11대손이다. 전 재산을 팔아 간도로 독립운동을 떠난 우당과 육형제를 기리는 기념관이 서촌 신교동에 자리잡은 것은 사필귀정이다.서촌 분위기를 깨는 유리건물 GS남촌리더십센터 고갯길을 내려가면 옥인동47번지 옛 벽수산장이 나타난다. 한때 이 땅의 주인이 서촌의 주인인 시절이 있었다. 장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고종 대의 외척 여흥 민씨에 이어 순종 대의 외척 해평 윤씨 등 조선 말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의 권력 각축장이었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정하려던 무학대사를 물리친 정도전의 후예들이 지향한 신권(臣權)정치의 무대였다. 왕의 산, 인왕산을 차지한 신하들이 왕권을 윽박질러 당파정치, 외척정치, 세도정치를 일삼는 바람에 사화(士禍)와 반정(反正)이 되풀이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조선 권력의 배후지, 매국노가 삼켜 인왕산 기슭에서 사직단 북쪽을 일컫는 서촌은 조선초기부터 권력의 배후지이자 왕족의 세거지로 금역이었다. 장차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잠룡들의 사저이자 왕위에서 배척당한 왕족의 도피처였다. 성종 이후 사대부 세력이 조금씩 틈입해오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전소되면서 법궁이 창덕궁으로 옮겨가자 통제가 풀렸다. 장동 김씨, 남양 홍씨, 기계 유씨를 비롯한 경화사족들이 청풍계와 백운동, 옥류천을 중심으로 자리잡았으며 이들의 뒤를 따라 천수경을 위시한 중인들이 필운대와 인왕산동을 오가며 송석원시사를 열었다. 이들이 이룬 중인문화가 서촌의 한 축을 형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는 친일 매국노들의 독무대였다. 옥인동의 절반인 2만평이 윤덕영의 차지였고, 이완용도 옥인동 19번지 4000평을 매집해 못지않은 저택을 지었다. 둘 다 팔지 못할 것(나라)을 팔아서 갖지 못할 것(서촌)을 차지하고 아방궁을 지었다. 옥인동 윗동네는 윤덕영, 아랫동네는 이완용이 나눠 지배했다. 중인문화가 꽃피었던 옥류동 계곡 전체가 개인 사유지가 됐다. 지금의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 이후 두 집의 필지를 분할한 수많은 작은 집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것이다.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다. 송석원의 역사는 곧 서촌의 역사요, 서울의 역사이자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3대 세도정치를 편 장동 김씨에게서 명성황후를 등에 업은 여흥 민씨에게 넘어갔다가, 순종효황후의 큰아버지 해평 윤씨 윤덕영이 벽수산장을 지어 소유했다. 한국전쟁 시기 서울을 점령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청사로 사용됐고, 미군과 유엔청사로 차례로 쓰였다. 프랑스풍 조선 최대의 건물, 벽수산장은 1966년 화재로 불탔고, 1973년 철거됐다. 유일한 증거가 박노수미술관이다. 청전 이상범의 제자 박노수는 집과 작품, 소장품 1000여 점을 종로구청에 기증했다. 진정한 서촌사람이다. 노주석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단독] 왜군 순절비가 경북 고령中 교훈비로 둔갑됐다

    [단독] 왜군 순절비가 경북 고령中 교훈비로 둔갑됐다

    경북 고령의 한 공립학교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이 제작한 왜군(倭軍)의 충절을 기린 순절비를 그 학교의 교훈비로 세워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순절비는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내용을 담은 ‘일본서기’를 출처로 한다. 이에 고령군의 향토사학자들은 “교육 현장에 일제 침략 잔재가 버젓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면서 조속한 철거를 요구하고, 역사교훈의 도구로 쓰자고 제안했다.14일 고령의 원로 향토사학자 등에 따르면 고령군 대가야읍의 고령중학교의 교훈비에는 원래 대가야 멸망 당시 왜군 장수였던 쓰키노기시 이키나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비 앞면의 ‘조이기난순절지(調伊企難殉節址) 남차랑(南次) 서’에서 알 수 있다. 뒷면에는 쓰끼노기시 아내 오오바코의 하이쿠(일본 고유시)가 새겨졌다고 한다. 쓰끼노기시는 일본 학계에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드는 ‘일본서기’(日本書記)에 등장하는 왜군 장수로, 562년 대가야가 신라의 침략으로 멸망할 당시 출병했다가 전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순절비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미나미 지로(南次) 제7대 조선 총독(1936~41)이 고령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 인근 옛 대가야 왕궁터에 ‘임나대가야국성지비’(任那大伽倻國城址碑)와 함께 세웠다. <서울신문 6월 13일자 13면 참조> 이런 기념물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과거에 경영했으니 일제의 침략이 당연하다고 강조한 것이다.그러다 순절비는 광복이 되자 고령초교 내 대가야시대 우물터 인근으로 옮겨져 돌다리로 사용되었다. 고령중학교의 관계자가 1947년 11월 개교하면서 이 순절비의 앞면을 모두 깍아내고 교훈을 새겨 교정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에 ‘굳세고 참되고 부지런하자’라는 교훈을 새겼으나 뒷면의 하이쿠는 대충 지운 탓에 일부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향토사학자들은 “비록 비석의 앞면 글씨는 모두 지워 없어졌지만, 근대기 일제 침략의 흔적을 담고 있는 비석”이라며 “새정 부에서 가야사를 연구한다니, 이 비석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일제 침략과 역사 왜곡의 교육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제강점기에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정한론(征韓論)의 역사적 근거로 활용됐지만, 일본 역사학자들은 한·일공동역사연구를 하던 2010년부터 이런 주장을 폐기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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