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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짓누르는 적폐 뿌리 뽑자… 세상을 바꾸면 내 삶도 바뀐다”

    “짓누르는 적폐 뿌리 뽑자… 세상을 바꾸면 내 삶도 바뀐다”

    #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 그해 6월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도화선이 된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얻어냈지만 그 값진 승리를 노태우 정권이 가져가 ‘미완의 혁명’으로 불린다. 그러나 2016년 겨울~2017년 봄 사이 연 1700만명이 183일 동안 밝힌 촛불은 불의한 권력, 부패한 정치를 탄핵하고 기득권이 세운 낡은 체제를 바꿀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박종철·이한열 열사가 그 겨울 광장의 촛불을 봤다면 뭐라 말했을까. 두 열사의 가상 대담 형식을 빌려 촛불혁명이 바꾼, 그리고 바꿔 갈 민주주의의 모습을 그려 봤다.박종철 촛불의 함성에 눈을 뜨니 30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혁명의 광장 한복판에 작은 촛불로 서 있었어요. 화염병도 아닌 촛불을 들었는데 전율이 흘렀죠. 촛불 시민들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주권자의 존엄으로 증명하며 시대의 대반전을 이뤄내고 있었어요. 이한열 돌아보니 동학농민들이, 독립운동가들이, 4·19의 의인들이, 스무 살 거리에서 함께 싸운 젊은 동지들이 촛불과 한 몸이 돼 마주 걸어가고 있더군요. 3·1운동 이후 100년의 경험과 기억이 이 새로운 혁명을 끌고 가고 있었어요. 박종철 우린 그것을 공동체의 기억이라고 부르지요. 내면에 흐르던 좌절의 기억과 시대의 모순이 만든 상처가 위기의 순간 각자도생으로 분리된 개인을 견고하게 묶어 촛불연대를 만든 것이죠.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똑같은 목소리를 냈던 것은 아니에요. 평화집회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했으니까요. 하지만 광장의 시민들은 그 ‘다름’과도 함께 했죠.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모여 화음을 만들어냈어요. 비정규직, 해고당한 노동자, 장애인 등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그해 겨울 촛불 광장은 민주주의의 현현이었어요. 이한열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가 12차 촛불집회 때 연단에 올라 한 말이 생각나네요. “이제 곧 저는 살아오는 종철이를 만날 겁니다. 시퍼렇게 되살아오는, 살아서 돌아오는 민주주의를 만날 겁니다. 저는 종철이를 부둥켜안고 고맙다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다시는 쓰러지지도 말자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반드시 승리합시다.” 박종철 세월호 아이들, 공권력에 죽임당한 백남기 농민, 용산 철거민 등 작고 힘없는 이들의 혼백이 그날 광장에서 다시 살아난 듯했죠.이한열 30년 전 6월 항쟁 때도 우리는 ‘연대’했는데, 왜 미완의 혁명으로 그쳤을까요. 나와 내 친구들은 최루탄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고, 고향도 출신 학교도 제각각인 직장인들이 ‘넥타이 부대’라는 이름으로 직장이 아닌 거리로 뛰어나왔어요. 시민들은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손수건을 흔들었죠. 박종철 독재를 무너뜨리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확대된 민주주의의 공간을 채울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 내지 못해서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민주화 이후에도 30년 가까이 박정희 시대의 ‘잘살아 보자’는 성장 담론이 한국사회를 지배했죠. ‘잘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과 성찰이 부족했어요. 그러다 보니 분명히 물질적으로는 풍요해졌는데 삶의 내용은 빈약해지고 양극화의 고통이 줄기는커녕 더 커진 것이죠. 내일의 희망이 없는 청년들은 이를 ‘흙수저’,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말로 표현한다지요? 이한열 정치권도 항쟁 정신을 받아안지 못했죠.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단일화하지 못해 결국 대통령 자리가 신군부 출신 여당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돌아갔어요. 박종철 하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스러진 나의 죽음과 시위 도중 최루탄에 머리를 맞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헛된 것은 아니었어요. 6월 항쟁 때 혁명의 시간을 경험한 청년들이 2017년 어머니, 아버지가 되어 자녀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다시 한번 혁명을 이뤄냈으니까요. 이한열 확실히 6월 항쟁 때와 달리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이들이 다양했어요. 영국 로이터 통신도 ‘학생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군중 곳곳에서 보였다. 대규모의 평화적인 행진이었다. 이전 시대의 양상과는 달랐다’고 보도했어요. 외신도 연령대와 계층이 다양해진 새로운 형태의 시위에 관심을 보였죠. 박종철 저는 그것을 직장과 가정의 일상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싶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삶을 망치는 것들과의 분투를 통해 일상에서 민주주의로 훈련된 것이죠. 결국 민주주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간답게 대접받는 세상을 위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없애 가는 과정이거든요. 이한열 예. 30년 전 우리가 독재 정권 하나 타도하자고 거리로 나선 게 아니듯 2017년의 촛불도 낡고 부패한 정권 퇴진을 넘어 새로운 삶, 새로운 시대정신을 원했기에 광장에 모인 것으로 생각해요. 박종철 저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촛불혁명의 도화선이 됐지만 광장을 메운 시민들이 외친 ‘이게 나라냐’라는 절규의 기저에는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폭발할 듯한 분노가 쌓여 있었다고 봐요.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돈도 실력이야, 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말로 가난해서 자식한테 미안한 부모의 마음에, 박탈당한 청춘의 울분에 불을 붙였죠. 이런 마음이 모여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이란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했어요. 이한열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은 민주주의를 일컫는 또 다른 말이기도 해요. 지난 역사가 증명했듯 내 삶의 주도권과 의사 결정권을 극소수 기득권에 빼앗긴다면 민주주의는 길을 잃고 말 거예요. 박종철 촛불혁명이 새로운 시대정신을 잉태했다고는 하나 그것을 완성한 것은 아니에요. 얼마 전 태안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씨가 안전 매뉴얼마저 지켜지지 않은 일터에서 처참하게 숨졌어요. 2016년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고로 숨진 김모군의 가방에도, 김용균씨의 가방에도 컵라면이 들어 있었죠.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을 시간도 없이 하청 노동자란 이유로 위험에 노출된 사업장에서 일해야 했어요.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며칠 전 겨우 국회를 통과했죠. 법 개정까지 28년이 걸렸어요. “우리 용균이와 같이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을 살려 달라”는 김용균씨 어머니의 호소가 법안 통과를 끌어냈어요. 이한열 너무나 참담한 일이에요. 우리 사회 곳곳에는 제2의 김군이, 또 다른 김용균씨가 있어요. 곳곳에서 낡은 구조가 개인의 삶을 짓누르고 무너뜨리고 있어요. 70년간 이 나라를 지배해 온 기득권 동맹체의 뿌리는 너무나 깊고 단단해요. 3·1운동 이후 100년을 마감하고 촛불혁명으로 향후 100년을 열어젖힌 촛불 시민의 삶은 이 적폐의 뿌리를 뽑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나를 짓누르는 게 무엇인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무엇도 바꿀 수 없어요. 박종철 그런 면에서 향후 100년의 민주주의는 안과 밖 동시의 혁명으로 설계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곧 내 삶을 바꾸는 것이니까요. 이한열 정권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개인의 삶에는 당장 큰 변화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우린 촛불 혁명을 경험한 역사적 존재들이에요. 나라를 나라답게 세우는 개혁이 지난하더라도 전환의 계곡을 낙오자 없이 벗어나 함께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다면 굽이치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혁명은 곧 끈질긴 저항이니까요.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인촌 동상 현 상태 유지 여론 높아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된 ‘인촌 김성수’의 고향 전북 고창군 주민들은 동상과 도로명을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일 고창군에 따르면 최근 3주 동안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인촌 동상 철거’와 ‘인촌로 개명’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조사 결과 인촌 동상 철거는 현 상태 유지가 51%로 철거해야 한다 39%, 친일행적 안내판 설치 8% 보다 훨씬 높았다. 인촌로 명칭 변경 역시 현 상태 유지가 54%, 바꿔야 한다 33%, 잘 모르겠다 12%로 집계됐다.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서울시 성북구가 구청장 직권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8%의 찬성을 얻어 ‘인촌로’를 ‘고려대로’로 바꾸기로 한 것과 대조적이다. 고창군은 이번 여론 조사 결과를 참고 자료로 활용하고 군수 직권으로 도로명을 바꿀 지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다. 고창군 관계자는 “앞으로 공론화 위원회를 구성해 인촌 선생뿐 아니라 서정주 시인까지 전반적인 친일 인사들의 문제를 다룰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대해 항일독립운동단체들은 공론화 의미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박해종 항일독립지사선양단체연합 팀장은 “친일 논란은 이미 정부에서부터 대법원까지 결론이 난 상태이기 때문에 공론화까지 될 사항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고창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세계사 유례없는 민중 주도 임정… 3·1운동 뒤 연해주 첫 ‘깃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세계사 유례없는 민중 주도 임정… 3·1운동 뒤 연해주 첫 ‘깃발’

    <1부>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①러시아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우리는 헌법 전문을 통해 우리나라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배웠다. 하지만 임시정부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통해 해방을 맞게 됐는지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대한민국 임정은 1919년 여러 정부가 하나로 합쳐져 세워진 뒤 끝없는 갈등과 내분으로 수차례 해체 위기를 맞았다. ‘식물정부’로 전락해 명맥만 유지하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임정은 우리 역사 최초로 근대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27년간 외교 노력과 전쟁을 병행한 독립 운동의 총괄체였다. 왕족이나 정부 계승자도 아닌 이들이 민중의 뜻으로 임시정부를 세워 30년 가까이 제국주의 국가와 투쟁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에 있는 임시정부 이동 경로를 추적하며 임정의 역사와 인물, 이슈 등을 망라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을 12회에 걸쳐 싣는다. 이번 역사 탐구에는 김원봉(1898~1958년)과 김산(1905∼1938년), 조봉암(1898∼1959년) 평전을 쓴 이원규(72) 작가와 독립운동가 김연방(1881~1919년)의 증손자 김주용(53)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가 함께했다.●신한촌碑, 고려인 독립운동 중심지 일깨워 지난달 초 러시아 프리모르스키(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강추위가 몰려왔다. 서울보다 기온이 10도 가까이 낮았다. 기자를 안내한 교포2세 권세라(27) 가이드는 “그래도 여기는 연해주 다른 도시보다는 따뜻한 편”이라며 “러시아에는 ‘40도 이하 술은 술이 아니다. (영하) 40도가 안 되는 추위는 추위가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며 웃었다. 공항에서 남부 루스키섬 쪽으로 50여분쯤 달리자 시내 외곽 라게르산 비탈에 도착했다. 검은색 철 울타리로 둘러싸인 곳에 직사각형 모양 5m짜리 기둥 3개와 네모난 돌 8개가 놓여 있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묶어 놓은 태극기와 노란 리본도 눈에 들어왔다. 신한촌 기념탑이었다. 3개의 기둥은 우리 민족과 친근한 숫자인 3을 형상화한 것이다. 8개의 돌은 조선 8도를 상징한다.1911년 러시아 당국은 페스트 창궐을 명분 삼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던 고려인 마을 구(舊)개척리를 철거했다. 한인들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한국’이라는 뜻의 신한촌을 세웠다. 1919년 3월 17일 우리 민족이 세운 첫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한때 1만명이 넘는 고려인이 여기에 살았지만 1937년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1878~1953년)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마을을 모두 파괴했다. 지금은 기념비만이 이곳이 연해주 고려인 독립운동의 구심지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3·1운동은 세계 각지에 임시정부 설립을 촉발했다. 독립선언서 첫 구절에 “이제 우리는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다”고 밝히면서 여기저기서 뜻있는 이들이 주권 기관을 세워 이를 정당화하고자 한 것이다. 제대로 된 조직을 갖춘 곳은 러시아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와 중국 대한민국임시정부(상하이 정부), 서울의 한성 임시정부 등 세 곳이었다.●전로한족중앙총회가 대한국민의회로 1917년 3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정부 수립을 위한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다. 300년 넘게 러시아를 지배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졌다.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년)은 열강의 제국주의 책동을 비난하며 “약소 민족의 자결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연해주 고려인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일본이 패배하면 우리도 반제국주의 흐름에 힘입어 독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같은 해 5월 문창범(1870~1938년)과 최재형(1860~1920년)이 중심이 돼 니콜스크우수리스크(현 우수리스크)에서 ‘전로한족중앙총회’를 열었다. 러시아 전역의 한인을 대표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는 의미다.이들은 1919년 3·1운동을 준비하면서 2월 25일 중국 간도 지역 동포들과 함께 총회를 열었다. 이때 이름을 ‘대한국민의회’로 바꾸고 연해주와 간도를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를 선언했다. 의회 의장에 문창범을 선출하고 외교부장 최재형, 군무총장 리동휘(1873~1935년) 등을 임명했다. 공식 선포는 20일쯤 뒤인 3월 17일에 이뤄졌는데, 이는 3·1운동과 궤를 맞추려는 의도였다. 대한국민의회는 ‘노서아(러시아) 영토에 있던 임시정부’라는 뜻으로 ‘노령정부’라고도 한다.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국가 기능을 한 곳에 모아 집행하는 소비에트제를 채택했다. 단시일 내에 일본에 대한 무장투쟁에 나서고자 정부 조직 과정을 다수 생략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대한국민의회는 정부 선포 직후 각국 영사관에 전문을 보내 일본 제국주의와의 혈전(血戰)을 선언했다. 간도 뤄쯔거우(나자구)에 군사 훈련소도 마련했다. 신한촌 옛터에서 이원규 작가는 “전 세계 임시정부의 최종 목표는 독립 전쟁으로 영토를 되찾아 새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노령정부는 이런 임정의 본령을 구현할 최적지에 있었다”고 평했다.다만 이 정부는 상하이·한성 정부와 달리 별도의 헌법을 발표하지 않아 조직 구성이 체계적이지 못했다. 고려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유산계급인 원호인(러시아 귀화자)들이 무산계급인 여호인(미귀화자)들을 차별해 한인 사회가 둘로 쪼개지는 발단이 되기도 했다.●러·韓 어느 곳에도 최재형 추모비 하나 없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우수리스크. 발해성 등 2개의 성터가 있다고 해서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쌍성자’로 부르던 곳이다. 민가가 즐비한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가자 단정히 정돈된 최재형 생가가 나타났다. 추운 날씨에도 러시아 인부들이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하느라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집은 그가 1919년부터 이듬해 4월까지 살던 곳이다. 권 가이드는 “최재형을 빼놓고 러시아 한인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이나 러시아 어느 곳에도 추모비 하나 세워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노령정부 태동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을 들자면 단연 ‘연해주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최재형이 꼽힌다. 안중근(1879~1910년)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1841~1909년)를 저격할 수 있게 8연발 브라우닝식 권총을 건넨 인물이다.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으로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하다.1860년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였던 아버지 최형백과 기생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9살이던 1869년 가족들이 배고픔과 학정을 이기지 못하고 크라스키노(연추)의 한인마을 ‘지신허’로 이주했다. 11살 때 “밥만 축낸다”는 형수의 구박에 집을 뛰쳐나왔다가 포시에트라는 작은 항구에서 러시아 선장 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최재형을 친아들처럼 보살폈다. 그는 이 부부와 전 세계를 항해하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서양문명을 체험했다.1877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온 최재형은 군수업자로 변신해 성공을 거뒀다. 당시 이 지역 노동자 한 사람의 급여가 월 10~15루블 정도였는데, 그는 포시에트항을 근거지로 여러 사업을 벌여 매달 1만루블 이상을 벌었다. 거부가 되자 그는 자신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고국을 돕고자 발벗고 나섰다. 1909년 10월 안 의사의 하얼빈역 저격을 도운 것이 대표적이다. 최재형의 막내딸인 엘리자베트 표트로브나의 회고록에는 “안중근은 아버지와 함께 거사를 준비했고 실행 전 우리 집에 기거하며 사격 연습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연해주 한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페치카’(러시아식 난로)라는 애칭도 얻었다.●전 재산 독립에 쓰고… 日 헌병대에 총살당해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 일본은 1920년 4월 러시아혁명 세력을 제압한다는 명분으로 연해주에 상륙해 대대적인 체포·학살에 나섰다. 조선 독립에 전 재산을 쓰고 어렵게 살던 최재형은 우수리스크 볼로다르스카야의 자택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돼 4월 5일 처형됐다. 63세였다. 당시 막내딸이 아버지에게 “뒷문으로 도망가라”고 여러 차례 애원했지만 가족들이 고초를 겪을까봐 담담히 앞문으로 나갔다고 한다. 죽음을 맞으러 발걸음을 내딛던 그의 마음은 얼마나 무겁고 외로웠을까. 블라디보스토크·바라바시·우수리스크·크라스키노(러시아)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특파원 생생리포트] 캠퍼스 금연했더니 주민들이 켁켁… 고민 빠진 日대학

    [특파원 생생리포트] 캠퍼스 금연했더니 주민들이 켁켁… 고민 빠진 日대학

    일본 주오대 다마캠퍼스(도쿄도 하치오지시)는 13곳에 이르는 교내 흡연실을 모두 없애고 지난 9월부터 ‘전면금연’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계획이 연기됐다. 흡연실을 단계적으로 철거하는 과정에서 전체 학생 2만명의 5.6%에 이르는 흡연자들이 학교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건강 증진과 학교의 위상 제고를 위해 실시하려던 전면금연이 오히려 대학의 이미지 저하를 가져오게 되자 학교 측은 계획을 철회했다. 화장실에서 몰래 피우는 학생들에 대한 비흡연 학생들의 불만도 “차라리 흡연실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요구로 이어졌다.일본 사회 전체적으로 흡연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들이 고민에 빠졌다. 간접흡연 대책을 강화한 건강증진법이 지난 7월 개정되면서 일본 대학들은 내년 7월쯤부터 강의실 등 건물 내 전면금연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건물 외부에는 흡연실을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대학들은 이참을 실내·실외 완전금연을 선언할 기회로 보고 있다. 재학생의 건강 증진은 물론이고 우수한 학생의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30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전국 약 780개 4년제 대학 중 24%인 186개 대학은 이미 ‘모든 캠퍼스 완전금연’을 실시하고 있다. 5%인 37개 대학은 일부 캠퍼스에서만 금연을 시행하고 있다. 대학들의 바람과 달리 완전금연이 생각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주오대 다마캠퍼스처럼 전면금연 이후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학교 이미지를 갉아먹는 학생들’ 때문에 흡연을 부활한 대학이 적지 않다. 야마가타현 야마가타대와 아키타현 아키타대도 비슷한 이유로 몇 년에 걸쳐 시행해 오던 전면금연을 철회하고 ‘흡연 가능’으로 돌아섰다. 강경한 대응을 유지하는 학교들도 있다. 나고야여대(나고야시)는 신입생들에게 ‘재학 중에는 절대로 흡연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요구한다. 소가대(도쿄도 하치오지시)는 담배를 피우는 학생에게 금연보조제 처방까지 해 준다. 내년 여름 학교 흡연규제 강화에 맞춰 어떤 선택을 할지 일본 대학들의 고민은 계속될 전망이다. 글 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쌍용차 71명, 9년 만에 출근길 오른다

    마지막 남은 48명은 내년 상반기 채용 노조 “손배·가압류 취하·책임자 처벌 등 진실을 밝히는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 “복직 신고합니다. 거칠고 투박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보듬고 쓰다듬어 주시고,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해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우 전 지부장은 9년 만의 출근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참된 삶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면서 “그 자양분을 옹이처럼 뇌리에 새기고 잊지 않으면서 실천하는 노동자로 거듭나겠다”고 적었다. 김 전 지부장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분향소 철거를 막았다는 이유만으로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2009년 쌍용자동차의 정리 해고로 일자리를 잃었던 노동자들이 9년여 만인 31일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복직 대상자 71명이 31일 경기 평택공장으로 출근한다고 30일 밝혔다. 정리해고 사태 이후 남아 있던 노동자 119명의 60% 정도 되는 규모다. 명단에는 김 전 지부장을 비롯해 윤충열 수석부지부장, 김정욱 사무국장 등도 포함됐다. 이들은 복직 당일 아침 평택공장 정문에서 기자회견과 축하 카네이션 달아주기, 가족 편지 낭독 등의 간단한 행사를 진행한다. 노사는 지난 9월 14일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중재로 해고 노동자의 복직에 합의했다. 당시 쌍용차지부, 쌍용차노조와 사측은 남은 해고 노동자 60%를 2018년 연말까지 채용하고, 나머지 40%는 2019년 상반기에 단계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앞서 노사는 2013년 무급휴직자 454명을 복직시켰다. 2015년에는 세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자와 해고 노동자들을 단계적으로 복직시켰다. 이번에 71명이 복직하면 48명이 남게 된다. 올해 복직자 명단에서 빠진 김득중 지부장은 “10년 싸움을 책임진 지부장으로서 조합원들이 모두 복직한 후 가장 마지막에 복직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2009년 경영난 등을 이유로 전체 인력의 37%에 달하는 2646명에게 구조 조정을 통보했다. 1666명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고, 980명이 정리 해고됐다. 이에 노조는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 파업을 벌였다. 이명박 정부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노동자들을 강제 진압했다. 이후 해고 노동자 3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한편 쌍용차 지부는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손해배상·가압류 취하가 경찰의 내부 반발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폭력 진압에 대한 책임자 처벌도, 대법원의 재판거래 진상 규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진실을 밝히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성남시-LH, 순환정비방식 재개발사업 협약

    성남시-LH, 순환정비방식 재개발사업 협약

    경기 성남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는 27일 오후 시청 상황실에서 은수미 성남시장, 박상우 LH 사장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남시 재개발사업 성공적인 수행을 위한 기본업무 협약’을 맺었다. LH는 협약에 따라 성남시 재개발 사업 시행자로 참여 때 해당 구역 소유주와 세입자가 임시 거주할 수 있는 순환용 주택을 마련한 뒤 정비 공사가 진행된다. 성남시가 내년 상반기 중 수립하는 ‘2030년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에 포함하는 재개발 사업 구역이 추진 대상이다. 전면 철거 후 재개발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 LH가 소유한 임대주택에 사업구역 주민이 거주하도록 해 원래 살던 곳에 재정착할 수 있게 하려는 조처다. 현재 이런 방식의 순환 이주 재개발사업이 추진 중인 곳은 LH가 시행하는 성남시 2단계 재개발사업 구역이다. 신흥2구역(21만350㎡, 6488가구), 중1구역(10만8423㎡, 3113가구), 금광1구역(23만3366㎡, 7499가구)이 해당한다. 4718가구의 소유자·세입자가 위례·여수지구에 마련된 순환용 공동주택으로 2016년 6월부터 2017년 10월 사이에 이주했다. 재개발사업이 완료되는 오는 2022년까지 이곳에 거주하게 된다. 시 관계자는 “대규모 이주 수요 발생으로 원주민들이 재정착하지 못하고 밖으로 내몰리는 전면 철거방식의 재개발 사업 부작용을 해결하려고 이번 협약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한양서 가장 깊은 계곡 삼청동천 물길… 북촌의 힘이었구나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한양서 가장 깊은 계곡 삼청동천 물길… 북촌의 힘이었구나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4회 삼청동(삼청공원의 겨울) 편이 동짓날인 지난 22일 종로구 삼청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경복궁역 5번 출구에 모인 참석자들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국무총리 서울공관~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서울 요새화의 산물, 방호연막탄 지주~제1호 도시계획공원 삼청공원을 차례로 둘러봤다. 청와대 앞 무궁화동산과 왕실에서 길어먹던 복정우물·성제우물, 북창이라고 불렸던 신식무기 제조창 금융연수원 안 번사창, 칠보사의 큰 법당 옆 500년 묵은 느티나무도 구경했다. 종착지인 삼청공원은 덕수궁 돌담길과 함께 한때 연인들의 성지였다. 삼청동천(三淸洞天)에 공원을 만들자는 여론에 따라 1940년 조성됐다.도시에서 물길과 사람길 그리고 건물의 생몰을 살펴보면 도시형태의 변화가 보인다. 삼청동을 이해하려면 물길을 먼저 알아야 한다. 삼청터널 어림에서 발원, 동십자각을 거쳐 청계천까지 2900m를 흐르는 삼청동 계곡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면 삼청동의 역사를 놓칠 공산이 크다. 20세기 역사학의 지평을 연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는 평면이 아니라 피라미드처럼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3차원의 입체이며, 최소 3층짜리 건물의 구조를 띠고 있다고 역설했다. 상층부에는 단기지속의 시간을 나타내는 사건사(事件史)가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삼청동 계곡이 복개돼 집이 들어서고, 용도가 변경되고, 증축이 일어나며, 개축했다가 철거되는, 반세기에 걸친 변화이다. 정치적 시간의 흐름이다. 중간층에는 경제·사회·문화 등 좀더 장기적이며 불변적인 요소를 포함한 문명사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국면사(局面史)로서의 사회적 시간이 흐른다. 유교 논리가 판친 조선사회에서는 의외인 도교의 신전 삼청전(삼청보전)과 도교의 제사의식을 행하는 관청 소격서의 존재가 그것이다. 500여년에 걸친 제도와 문명사가 읽힌다.브로델은 맨 아래를 구조사(構造史)의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사람의 행위에 의해 변하는 사건사와 국면사에 비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지리적 시간을 말한다. 비록 삼청동천이 복개돼 길로 바뀌고, 계곡에 집이 들어섰지만 경복궁의 주산인 백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의 지형적 본질은 바뀌지 않고 장기 지속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백악산이라는 이름은 진국백(鎭國伯)이라는 관직에 봉해진 여신을 모신 백악신사에서 유래했다. 마주 보이는 목멱산(남산)에는 목멱대왕을 모시는 목멱신사를 두고 제사를 올렸다. 왕의 시선이 머무는 남산에 한 등급 위의 신분을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울의 주산 아래 법궁 경복궁을 세운 것은 만고불변의 원칙이었다. 백악산은 세 개의 골짜기를 거느리고 있는데 하나는 서쪽 사면을 흘러내려 경복궁 오른쪽을 휘감아 흐르는 백운동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동쪽 사면을 흘러내려 경복궁의 왼쪽을 흐르는 삼청동천이다. 마지막은 도성 밖 백악의 북서쪽 사면을 돌아가는 백석동천이다. 백운동천은 개천(청계천)의 원류를 이루고 삼청동천은 북창교~소격교~장원서 앞 다리~경복궁 건춘문을 따라 흘렀다. 동십자각을 벗어나면서 서울의 4부 학당 중학을 만나 중학천으로 이름이 바뀐 뒤 교보문고 앞 혜정교에서 개천과 합류했다. 백석동천은 세검정을 거쳐 홍제천과 만났다. 조선시대 백악산 양쪽 삼청동천과 백운동천, 인왕산 아래 옥류동천, 낙산 서쪽 쌍계동천, 남산 아래 청학동천이 한양 5대 계곡으로 꼽혔다. 그중 삼청동천을 으뜸으로 쳤다. 동천(洞天)이나 동천(洞川) 또는 동문(洞門)은 수려한 골짜기를 일컫는 말이다. 같은 물줄기에 기대어 사는 자연부락을 ‘골짜기 동’(洞)이라고 부른 데서 기원했다. 골짜기 동에 ‘하늘 천’(天) 자를 붙여 쓴 것은 신선이 노닐 만큼 풍광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1960년대 말 지금의 모습으로 복개되기 전까지 삼청동천은 서울에서 가장 크고 깊은 계곡이었다.용재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삼청동은 소격서 동쪽에 있다”고 썼고, 손곡 이달도 “삼청보전(삼청전)은 예 모습 그대로인데…”라는 시를 읊었다. 정조는 ‘삼청녹음’(三淸綠陰)을 나라 안 으뜸가는 8개의 경치인 ‘국도팔영’에 꼽았다.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도 ‘유(遊)삼청동기’를 통해 탄복했다. 삼청터널 어림에서 발원한 물길이 칠보사와 삼청공원을 지나 금융연수원 앞에 있던 북창교(금융연수원 안 번사청을 북창이라고 했음)에서 합쳐져 태화궁(국무총리 서울공관) 앞 너른 계곡에서 절정을 이뤘다. 총리공관 앞에 서면 ‘북촌8경’ 중 8경인 삼청동 돌계단이 거대한 병풍바위 절벽 사이에 뚫려 있는 게 보인다.유심히 관찰하면 바위에 새겨진 ‘삼청동문’(三淸洞門)이라는 암각 글씨 중 일부를 발견할 수 있다. 50m가 넘는 바위벽에 가로·세로 70㎝ 크기의 4글자가 새겨져 있다. 서울시등록문화재 제58호이다. 축대를 쌓는 과정에서 콘크리트가 흘러내려 글씨가 일부 훼손됐다. 골목 안 지붕 위에 올라가지 않으면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다. 글씨의 주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숙종 때 명필 김경문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해응이 쓴 ‘동국명산기’에는 김경문, 유본예의 ‘한경지략’에는 이상겸, 장지연의 ‘유삼청동기’에는 송시열의 필적으로 엇갈린다. 총리공관 자리에는 조선시대 태화궁이 있었다. 1970년 삼청동에 흡수되기 전까지 이 동네 이름은 태화동이었다. 국회의장 공관을 거쳐 1961년부터 국무총리 공관으로 사용 중이다. 공관 안에는 서울시 천연기념물 제254호인 900년 묵은 등나무와 255호인 300년 묵은 키 11m의 측백나무가 있다. 등나무는 키 16m, 둘레 1.8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맞은편 삼청동 산35 꼭대기에는 세종 때의 청백리 맹사성이 소를 타고 다니며 피리를 불던 집터가 있다. 맹씨 일가가 살아 ‘맹동산’이라고도 한다.오백 살 넘은 느티나무가 일품인 칠보사 옆 계곡에 운룡정이라는 활터가 있었다. ‘운룡정’(雲龍亭)이라는 바위 각자만 남아 있다. ‘서촌 5사정’은 운룡정을 비롯해 옥인동의 등룡정, 사직동의 대송정과 등과정, 누상동의 백호정을 일컬었다. 칠성당에 제사 지낼 때, 정조의 수라상에 올렸던 성제정(星祭井) 혹은 형제우물, 양푼우물이 칠보사 위 60m 지점에 있다. 우물 옆 벽면에 ‘운룡천’(雲龍泉)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삼청동은 북쪽으로 부암동·성북동, 동쪽으로 가회동·계동·원서동, 남쪽으로 팔판동, 서쪽으로 청운동과 4면을 접하고 있다. 삼청동이라는 동명은 도교 태청(太淸), 상청(上淸), 옥청(玉淸)의 삼청성진(三淸星辰)을 모시는 삼청전이 있던 데서 유래했다. 삼청전의 위치는 삼청공원 서쪽 백련봉 기슭 ‘영월암’이라는 바위 글씨 근처로 추정된다. 스물두 살의 가난한 청년 연암 박지원이 백련봉 아래 이장오의 별장에 세 들어 살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시를 지은 곳이다. 조선 말 장동 김씨 세도가 김조순과 김유근 부자의 별서 터가 삼청동에 있었다. 김조순이 살던 옥호정은 금융연수원 길 건너편에 있고 김유근의 집 백련사는 감사원 아래 국군서울지구병원 안에 있다. 이들의 집 앞에는 인사 청탁을 하러 온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삼청전의 후광이 장동 김씨의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친 전무후무한 세도와 정권교체기 금융연수원 안에 설치되는 새 정부 인수위원회의 권세로 이어졌다는 후문이 있다. 태조는 소격전을 세워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태종 때 삼청동파출소 뒤 소격서 터에 자리잡았다. 세조는 소격서로 개칭했다. 성종 때 도가사상 배격을 요구하는 조광조 등 유학자들의 반대에 못 이겨 산속 깊이 내쫓겼다. 제후국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논리였다. 폐지와 부활을 거듭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관왕묘 신앙에 밀려 빛을 잃었다. 소격동이라는 동명과 소격서 터 푯돌로 남았다. 삼청동은 중국보다 더한 공자의 나라 조선에서 드문 도교의 흔적이다. 삼청동 밑바닥을 흐르는 삼청동천 물길이 ‘북촌의 힘’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서울의 영화2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 ●일시:12월 29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을지로 3가역 12번 출구
  • 상부 지침 어기고 GP철조망 與의원에 선물…군기 빠진 사단장

    국방부 “잔해물 보존” 지시 불구 7사단, 방문한 7명에 액자 기념물 자의적 활용한 軍 ‘기강 해이’ 비판 관련 의원들 논란 일자 “즉각 반납” ‘9·19 남북 군사합의서’에 따라 완전파괴된 비무장지대(DMZ) 내 10개 전방 감시초소(GP) 잔해물을 보존하라는 상부 지침에도 육군 7사단(사단장 박원호 소장)이 철조망 일부를 잘라 GP를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선물해 ‘기강 해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의원들은 논란이 벌어지자 즉각 반납 의사를 밝혔다. 군 관계자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과 김두관 참좋은지방정부 위원장, 권미혁 원내대변인 등 의원 7명이 남북 군 당국 간 긴장 완화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7사단 상승칠성부대를 방문했다. 윤 사무총장 등은 7사단 칠성전망대에서 장병들을 격려한 뒤 059 GP 현장을 찾았다. 059 GP는 북측 GP로부터 900m 떨어진 곳으로,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지난달 26일 완전 파괴된 곳이다. 7사단은 시범 철수 작업 때 철거한 059 GP 안쪽 철조망을 잘라 12월 부대 방문자에게 주려고 11개의 기념품을 미리 만들어 놨다. 한반도 지도 중앙에 7㎝ 크기의 폐철조망을 놓고 액자에 담긴 형태다. 이들 기념품은 부대를 방문한 민주당 의원들을 비롯해 군인공제회 간부와 대형은행 간부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미 지난 4일 GP 시범 철수와 연관된 육군 전 부대에 ‘철수 GP의 잔해물 처리 지침’이라는 공문을 하달해 잔해물의 문화적 활용이 검토되고 있어 별도의 지침이 있을 때까지 GP 잔해물을 훼손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일선 부대가 잔해물을 임의로 처리해 의원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육군 관계자는 26일 “관련 계통을 통해 하달한 잔해물 처리 지침 공문을 지휘관이 미처 인지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대한 정부의 지침을 해당 부대의 지휘관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거나 부대 내 소통 미숙으로 이를 임의로 처리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에서도 정부 간 협의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GP 잔해물 일부를 군 당국이 자의적으로 활용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논란이 일자 선물받은 잔해물 기념품을 즉각 반납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앞으로는 철조망 액자 제작을 더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명예기자가 간다] 철책 없어진 해변은 ‘숨겨뒀던 보석’… 오래 볼 수 있게 체계적 개발 힘써야

    [명예기자가 간다] 철책 없어진 해변은 ‘숨겨뒀던 보석’… 오래 볼 수 있게 체계적 개발 힘써야

    강원 강릉시에 사는 김모(54)씨는 주말마다 정동진 나들이에 재미를 붙였다. 정동진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바다부채길’을 산책하는 재미에 흠뻑 빠진 것이다. 이 지역은 2016년 9월까지만해도 군(軍)이 해안 경비를 위해 철조망과 경계초소를 설치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막은 곳이었다. 하지만 군과 지방자치단체가 철책을 철거하고 정동진과 심곡항 사이의 2.5㎞에 해안산책로를 조성하자 경관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처럼 그간 군부대의 통제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전국 해안지역 상당수가 국민에게 개방된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방부는 최근 공동으로 이런 내용의 ‘유휴 국방 군사시설 관련 국민 불편을 해소 방안’을 마련해 실행에 들어갔다. 개선안에 따르면 2021년까지 작전 수행에 필요한 시설을 제외하고 해·강안 철책과 초소 등 유휴시설을 3522억원을 투입해 정리한다. 더이상 국방 업무 수행에 필요 없다고 판단한 시설을 철거해 주민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선 해·강안 지역에 설치됐던 경계철책 284㎞를 2021년까지 철거해 주민에게 개방한다. 부대 내외 시설 중 노후했거나 안전상의 이유로 사용하지 않은 시설물 8299개(120만㎡)도 철거된다. 군 초소 483개도 포함됐다. 정부가 유휴 국방군사시설을 정비하는 것은 주택가와 해안지역에 방치된 군 시설을 정비해 달라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권익위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국방·군사시설 관련 민원을 분석한 결과 1172건이 접수됐는데 이 가운데 57%(676건)가 국유지 환매, 사유지 무단 점유, 시설 철거 등이었다. 사업이 본격화되면 주민 민원과 불편이 줄어들고 지역 경제와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기대 이면에는 부작용도 우려돼 지자체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우선 환경 오염에 대한 걱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간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은 상대적으로 환경 오염이 덜 된 측면이 있다. 또 무분별한 난개발로 빼어난 자연경관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어 지자체의 체계적인 개발계획 수립과 주민 참여를 통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아울러 시설 철거 과정에 환경 오염이 우려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 한다. 정부가 국민들의 고충 해소를 위해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국방·군사시설을 정비하는 만큼 국민들의 권익 증진과 지역 발전의 좋은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조덕현 명예기자 (국민권익위 국방보훈민원과장)
  • 관악, 하수관로 새 정비공법 특허… 매년 2000만~5000만원 수입 기대

    관악, 하수관로 새 정비공법 특허… 매년 2000만~5000만원 수입 기대

    서울 관악구가 국내 최초로 공사기간 단축은 물론 예산도 절감하는 노후 하수관로 부분 굴착 개량 공법을 개발해 지난달 특허청으로부터 특허를 취득했다고 24일 밝혔다. 관악구는 민간 개발업체나 전문 건설기술연구원에서나 주도할 것으로 여겨지는 하수관 부분 굴착 개량공법을 개발, 상용화에 성공해 특허증을 교부받는 쾌거를 이뤄냈다.최근 도로 함몰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구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신속하게 불량 하수관로를 조사하고 정비에 나섰다. 이번에 특허받은 새 공법은 파손된 하수관로 일부만 철거하고 새 관을 설치한 뒤 이음부에 보강용 거푸집을 장착, 모르타르(시멘트와 모래를 일정한 비율로 섞어 반죽해 놓은 것)를 주입해 필요한 구간만 개량할 수 있다. 이번 특허 등록으로 관악구는 출원일로부터 20년간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돼 매년 2000만~5000만원의 재정 수입도 얻게 됐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이번 특허 등록은 더욱 안전하고 살기 좋은 관악구를 만들기 위해 관련 부서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맺은 아름다운 결실”이라며 “범국가적으로 추진 중인 도로 함몰 방지 사업에 기여할 수 있게 돼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울시 “故김용균 광화문분향소 자진철거” 공문

    노동계 반발… “박원순 조문입장과 배치” 市 “무단점유 따른 일상적 행정절차 불과” 서울시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광화문 분향소를 철거해달라고 요청해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4일 서울시와 민주노총에 따르면 시는 이날 오후 민주노총에 ‘광화문광장 무단 시설물(고 김용균 분향소) 자진철거 요청’ 공문을 보냈다. 시는 공문에서 “귀 단체는 광화문광장을 무단 점유하고 시설물을 설치해 광장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주변 미관을 해치고 있다”며 “자진철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광화문광장 무단 점유에 따른 변상금은 12월 17일부터 철거 시까지 부과될 것”이라며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제83조 및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행정대집행 등의 조치를 당할 수 있음을 알려 드리니 꼭 유념해달라”고 했다. 분향소는 지난 1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들어섰다. 광장을 쓰려면 사용 예정일로부터 6∼7일 전까지 허가 신청서를 시장에게 내야 한다. 분향소는 이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전 국민적 추모 물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대책위는 보도자료를 내고 “서울시의 공문은 박원순 시장이 분향소에 조문 와 밝힌 입장과 배치되는 이중적인 태도”라며 “당장 공문 발송을 철회하고 유족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조문 후 페이스북에 “다시는 ‘죽음의 외주화’ 앞에 우리의 청춘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 다만 서울시 측은 자진철거 요청은 광장 무단 점유 시설물에 대한 일상적 행정 절차에 불과하며 구두로 같은 내용을 설명했음에도 대책위 측이 과도한 반응을 보인다는 입장이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시장이 조문까지 해놓고는…서울시, 故 김용균 광화문분향소 자진철거 요청

    시장이 조문까지 해놓고는…서울시, 故 김용균 광화문분향소 자진철거 요청

    공문엔 “17일부터 철거시까지 변상금 부과할 것”시민대책위 반발…서울시 “일상적인 행정 절차에 불과”서울시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광화문 분향소를 철거해달라고 요청해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철거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변상금을 부과하겠다고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조문까지 해놓고는 철거하라는 건 이중적 태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서울시와 민주노총에 따르면 시는 이날 오후 민주노총 앞으로 ‘광화문광장 무단 시설물(고 김용균 분향소) 자진철거 요청’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서 시는 “귀 단체는 광화문광장을 무단 점유하고 시설물을 설치해 광장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주변 미관을 해치고 있다”며 “무단 설치시설물의 자진철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광화문광장 무단 점유에 따른 변상금은 12월 17일부터 철거 시까지 부과될 것”이라며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제83조 및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행정대집행 등의 조치를 당할 수 있음을 알려드리니 꼭 유념해달라”고 했다. 분향소는 지난 1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들어섰다. 광장을 이용하기 위해선 사용 예정일로부터 6∼7일 전까지 사용허가 신청서를 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분향소는 이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서울시의 공문을 받은 직후 “전 국민적 추모 물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격렬한 반응을 내놨다. 대책위는 보도자료를 내고 “서울시의 공문은 박원순 시장이 분향소에 조문 와 밝힌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중적인 태도”라며 “진심으로 고인을 추모하고 시장의 발언처럼 죽음의 외주화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당장 자진철거 공문 발송을 철회하고 유족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박 시장이 조문 후 페이스북에 “이 참담한 죽음 앞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차마 입조차 떨어지지 않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다시는 ‘죽음의 외주화’ 앞에 우리의 청춘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쓴 바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서울시 측은 자진철거 요청은 광장 무단 점유 시설물에 대한 일상적인 행정 절차에 불과하며 앞서 구두로 같은 내용을 설명했음에도 대책위 측이 과도한 반응을 보인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광장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향후 절차를 안내하려는 취지에서 공문을 보낸 것”이라며 “대책위 말처럼 실제 강제철거 등을 염두에 뒀다면 특정일까지 자진철거를 요구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주거환경·통학로 개선 집중… ‘살고 싶은 영등포’로

    주거환경·통학로 개선 집중… ‘살고 싶은 영등포’로

    환경 정비가 주민 제안의 56% 차지 교육 때문에 영등포 떠나는 일 없게 43곳 통학로 안전 향상… 금연거리로소통 창구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소통 과정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이 정책으로 실현돼야 한다. 서울 영등포구는 쓰레기, 청소, 주차 문제 등 주거환경 관련 정책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주민 정책 제안의 56% 정도가 관련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23일 영등포구에 따르면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 속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살고 싶은 영등포’가 된다는 채현일 구청장의 의지도 한몫했다. 영등포구는 당산역, 구청사거리, 영등포 청과물시장 등 주요 도로 7곳에 재활용품 분리수거함 28개를 설치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을 대상으로 재활용품 배출 시 주민 편의를 증진하고, 재활용품 수거 회수율을 높이려는 조치다. 일반 주택가에도 재활용품 배출이 상시로 가능한 장소를 마련해 고정식 재활용 정거장 51곳을 운영하고 있다. 쓰레기 무단투기 지역에는 폐쇄회로(CC)TV를 추가로 설치하고 화분을 설치하는 방안도 시행했다. 주차 문제와 관련해서는 도로폭이 5m 이상인 곳은 일방통행으로 지정해 차량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주차구역을 확보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당산공원 인근 이면도로에서는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해 주차공간을 공유하는 서비스가 시범 시행 중이다. 학부모들과 만남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제안인 ‘통학로 안전 개선’도 구가 집중하는 정책 가운데 하나다. 채 구청장은 “교육과 주거환경의 첫 번째 조건은 안전”이라며 “아이들이 교육 때문에 영등포구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교육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구는 지역 내 초·중·고 43곳을 대상으로 통학로 안전 개선사업을 추진 중이다. 학교 주변에 어린이보호구역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교통안전표지를 46개, 속도제한 표지 100개를 설치했으며, 전국 최초로 초·중·고 통학로를 금연거리로 지정하기도 했다. 주거환경 개선은 단순히 생활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달에는 서울시가 문래동의 대선제분 공장을 전시와 공연 공간, 상점 등이 들어서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도시재생 구상 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내년 8월이면 밀가루 공장이 있던 이 자리에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서게 된다. 영등포 고가차도 철거와 타임스퀘어 등 영중로 일대를 보행자 친화거리로 조성하는 대형 프로젝트도 시동을 걸었다. 채 구청장은 “구민을 비롯해 내부 직원, 서울시, 구의회 등과 탁 트인 소통으로 구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담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수십년 된 건물 다닥다닥… 화마에 속수무책 집창촌

    불법 성매매가 이뤄지는 집창촌이 화재 취약지대로 떠올랐다. 건물이 노후화되고 소방시설까지 미비해 화재가 났다 하면 사망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2일 오전 11시 4분쯤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2층짜리 성매매 업소 건물의 1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16분 만에 꺼졌으나 2층에 있던 업주 박모(50)씨와 최모(46·여)씨 등 2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지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박씨는 “불이야”를 외치며 2층 숙소에서 자고 있던 여성들을 깨워 대피시켰지만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생명을 구한 A(27·여)씨는 “박씨의 외침을 듣고 창문으로 탈출했다”고 진술했다. 화재가 난 건물은 25일 철거를 앞두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경찰은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해 24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력 등과 함께 합동 감식을 벌인다. 건물의 건축법 위반 여부도 함께 들여다볼 예정이다. 불이 난 건물은 1968년 7월에 준공됐다.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이 전무하고 별도의 비상구도 없는 상태에서 1층에서 화재가 발생하다 보니 2층에 있던 피해자들이 고립돼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노후화된 건물에 자리잡은 성매매 업소가 아직도 전국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으로 운영 중인 성매매 집결지는 모두 22곳으로 파악됐다. 정미례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대표는 “성매매 업소 위에 숙소를 둔 건물 형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면서 “이런 비극은 전국 어디에서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천호동 성매매업소 화재로 2명 사망·2명 중태…철거 직전 노후 건물

    천호동 성매매업소 화재로 2명 사망·2명 중태…철거 직전 노후 건물

    22일 오전 11시쯤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업소 건물에서 불이 나 건물 2층에 있던 여성 6명 중 5명이 연기를 들이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들 중 업주를 포함한 2명은 숨졌다. 나머지 2명은 위독한 상태이며, 또다른 1명은 경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불은 1층에서 발생해 업소 내부를 완전히 태우고 16분 만에 진화됐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2층은 여성들의 합숙소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망한 박씨 외에 병원으로 옮겨진 여성들은 20~30대로 파악됐다. ‘천호동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이 일대 성매매 집결지는 재개발구역에 포함돼 철거를 앞두고 있다.불이 난 건물은 지어진 지 50년이 지난 노후 건물인데다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도 아니라 화재에 취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할 구청이 지난 7월 안전점검을 했으나 건축법 위반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고, 지난달 27일 소방점검에서도 특이사항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 당시 ‘펑’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는 신고자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전담팀을 꾸려 화재 원인을 규명할 예정이며 건축법 등 관련법 위반 여부도 철저히 수사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8 가장 중요한 환경뉴스 “미세먼지”

    2018 가장 중요한 환경뉴스 “미세먼지”

    국민들이 2018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환경 관련 뉴스는 ‘미세먼지 대기오염 문제’인 것으로 조사됐다.환경보건시민센터는 서울대 보건대학원과 함께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17일부터 3일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올해 국내와 국제 환경 문제 가운데 중요한 사건을 조사한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56.6%가 미세먼지 대기오염 문제를 꼽았다. 올해 4월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에 포함해야한다는 논란이 나올 정도로 미세먼지가 극심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일회용 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16.1%,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7.9% 순으로 뒤를 이었다. 국제환경뉴스 역시 ‘미세먼지 문제’(40.4%)와 ‘해양생물 위협하는 플라스틱 쓰레기’(33.5%)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역시 플라스틱 컵 금지 정책과 불법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 논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시민센터 관계자는 “국내와 국제분야에서 모두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1∼2위를 차지해 최근 지구촌 전체에서 가장 골치 아프고 해결이 어려운 환경 문제임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한편 ‘환경시민상’에는 불법적인 학교 석면철거현장을 내부고발한 임경호·임준호 씨가 선정됐다. 시민센터는 “이들은 대전지역 학교 석면철거현장의 문제점을 고발해 석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고 설명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문학 속 서울공화국… 욕망으로 지은 도시

    문학 속 서울공화국… 욕망으로 지은 도시

    정부가 19일 발표한 3기 신도시 조성 계획은 ‘서울로의 접근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는 신도시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새로 깔고 지하철을 연장하며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신설해 “30분 내 서울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계획은 서울의 위상을 다시금 보여 준다. 서울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유인책으로 서울에 가기 쉽다는 점을 강조하니 말이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 도대체 서울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위상을 갖게 된 것일까.신간 ‘서울 탄생기’는 1960~70년대 서울의 변화상을 추적하며 해답을 내놓는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도구가 문학작품인 점이 독특하다. 저자인 송은영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이호철 ‘서울은 만원이다’, 김승옥 ‘무진기행’, 최일남 ‘서울의 초상’, 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순 ‘정든 땅 언덕 위’, 박완서 ‘낙토의 아이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작가 16명의 작품 110편으로 서울의 변화를 분석한다. 저자는 1960년대 초반 이후 경제성장과 도시개발이 본격화하면서 과거와의 ‘단절’과 ‘망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빠른 변화가 지금 서울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우선 1960년대 초반은 혼란을 거쳐 현대 도시 서울을 형성한 법적·행정적 토대가 마련된 시기였다. ‘무진기행’에서 하인숙은 당시 젊은이들의 서울 열망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에서 여주인공이 보여 주는 서울 생활은 혼란 그 자체다. 사기꾼이 득실거리고, 내 몸 하나 제대로 누일 곳도 없다.1962년 1월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에 이어 서울은 1966년 현대 도시로 나아간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1~1966년)의 효과가 슬슬 나타난 지점이기도 했다. 1965년 한·일회담 결과로 한국에 돈이 풀리며 경기가 살아났고, 같은 해 베트남 전투부대 파병과 건설사업 참여 등으로 서울은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한다. 이를 진두지휘한 이는 1966년 4월 부임한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다. 군인 출신인 그는 서울을 현대 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시개발을 무자비하게 밀어붙인다. ‘서울은 만원이다’는 그를 가리켜 ‘부산 거리를 의욕적으로 밀어버리고 계속 두 눈을 부릅뜨고 서울로 전임해 온 젊은 시장’으로 묘사한다. 그는 400여동의 시민아파트를 짓고, 봉천·신림·상계동 등지에 거대한 불량지구를 만든다. 판자촌을 쓸어버리려 서울 외곽 변두리 지역인 경기도 광주로 철거민을 강제 이주한다. 결과적으로 사대문 안에 머물러 있던 서울의 실질적 경계는 확장됐고, 현재 서울 전체의 모습도 이때쯤 형성된다. 그러나 이런 급작스런 도시 개발은 부작용을 부른다. 1970년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1971년 광주 대단지 소요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건에 관해 박태순은 ‘정든 땅 언덕 위’의 ‘외촌동’이라는 가상 마을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김 시장은 물러났지만, 서울 개발은 강남으로 이어진다. 포화 상태에 이른 강북 인구를 분산시킬 신시가지인 강남은 전쟁이 나면 또다시 한강을 건너지 못하는 시민들이 생길까 하는 걱정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부동산 투기를 통해 개발자금과 정치자금 등을 마련해야 했던 권력층의 탐욕이 있었다. 특히나 1972년과 1973년은 강남과 강북을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다. 1972년 4월 서울시가 강남을 발전시키고자 강북을 특정시설 제한구역으로 설정하며 강남은 뜨고 강북은 쇠락한다. 당시 서울시는 도심부 인구 분산계획의 일환으로 종로구와 중구 전역은 물론 용산구와 마포구의 기존 시가지 전역 등에 백화점, 도매시장, 공장 등 신규 시설을 불허했다. 이듬해에는 강남 지역을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한다. 수많은 상업시설이 규제도 받지 않고 특별법 혜택으로 취득세, 재산세 등을 면제해 주는 강남으로 옮겨갔다. 와우아파트 사고 이후 침체했던 아파트 붐이 살아났고, 명문 고교들이 강남에 터를 잡으며 명실상부한 서울의 또 다른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박완서의 ‘낙토의 아이들’에서는 강을 경계로 생겨나는 강남과 강북의 거리감을 탁월하게 짚어낸다. 1960~70년대 서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을 향한 사람들의 거대한 욕망은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 지금의 서울을 만든 근원적인 힘이다. 서울은 주택, 교육, 취업, 여성의 권리 등 현재의 문제가 집약된 곳이자, 제대로 된 자기성찰 없이 근대화에 매진해 온 한국 현대사 현장 자체이기도 하다. 꿈틀거리는 욕망으로 가득한 서울에서 우리는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은평, 관리형 주거환경개선 후보 선정

    서울 은평구는 응암동 675 일대가 관리형 주거환경개선사업 새 후보지로 선정됐다고 20일 밝혔다. 기존의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서의 전면 철거 대신 주민들 요구를 반영한 새로운 주거 형태를 만들고 주민들 정주권도 보장하는 사업이다. 주거 환경 개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지역공동체를 공고히 다질 수 있다. 응암동 675 일대는 지난해 3월 재건축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지역과 인근 학교 주변을 포함한 지역으로 오래된 저층 주거지가 많다. 구는 50% 이상 주민 동의를 얻어 사업 대상지로 확정되면 보행 환경 개선, 공원, 마을회관, 폐쇄회로(CC)TV 등 기반시설 확충 등으로 지역을 쾌적하고 살기 좋게 바꿔 나간다. 총괄계획가, 지역 재생 활동가가 파견되고 주택 개량 상담 창구도 운영된다. 구 관계자는 “주민이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를 형성해 마을 발전을 구상하고 실현해 가는 관리형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주민이 마을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자영업 역량 강화… 2022년까지 구도심 상권 30곳 육성

    0%대 수수료 ‘제로페이’ 내년 본격 시행 정부가 2022년까지 자영업이 밀집한 구도심 상권 30곳을 혁신 거점으로 집중 육성하고, 자영업·소상공인 전용 상품권 18조원어치를 발행한다. 정부는 여당, 업계 등과 협의를 거쳐 이 같은 내용의 8대 핵심 정책과제를 담은 ‘자영업 성장과 혁신 종합대책’을 20일 발표했다. 내년부터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액을 올해보다 5배 이상 늘린 2조원으로 확대해 2022년까지 8조원어치를 발행한다. 같은 기간 온누리상품권도 총 10조원어치 발행한다. 자영업 역량 강화를 위한 ‘상권 르네상스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정부는 2022년까지 구도심 상권 30곳을 지정해 쇼핑·커뮤니티·청년창업·지역문화가 어우러진 복합공간으로 키운다. 또 전통시장의 주차장 보급률을 100%로 끌어올리고, 주요 상권에 공영주차장 설치도 확대한다. 0%대 결제수수료 실현을 위해 ‘제로페이’도 내년에 본격 시행하기로 하고, 이날 서울, 부산 등에서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제로페이의 안착을 위해 자영업 점포에서 쓸 수 있는 국민포인트제도 내년에 도입한다. 폐업 연착륙과 재기를 돕도록 지난해 말 기준 지역신용보증기금이 보유한 부실 채권 8800억원에 대한 조기 정리를 진행하고, 이를 돕기 위한 ‘맞춤형 채무조정제도’를 도입한다. 상가임대차법 적용의 기준이 되는 환산보증금을 2020년까지 없애고, 철거·재건축 시 우선입주요구권 및 퇴거보상도 인정해 줄 방침이다. 이 밖에 ‘소상공인·자영업 기본법’을 제정, 중앙과 지방에 자영업정책 컨트롤타워를 구축한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과밀화, 양극화, 정보화, 세계화 등의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가 성장하고 혁신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恨 서린 서대문형무소, 달동네 각박한 삶… 그해 겨울은 스산했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恨 서린 서대문형무소, 달동네 각박한 삶… 그해 겨울은 스산했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3회 서대문(안산 아랫동네)편이 지난 15일 서대문구 현저동과 영천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서대문역 8번 출구에 집결한 참석자들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대문 통술집~석교교회~영천시장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어 서대문역사공원에서 서울미래유산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해설을 통해 엄혹했던 경성교도소(서대문형무소) 시절 행해졌던 옥살이와 옥바라지의 고통을 되새겼다. 자락길을 따라 봉수대에 올라 안산 아랫동네의 고즈넉한 겨울 풍경을 내려다봤다.서대문(돈의문)은 행정적으로 한성부 서부 반석방에 속하는 성 밖 십리지역이다. 그러나 서대문은 행정지리학적으로 사대문 안 새문안과 진배없는 특수지역이기도 했다. 서울~개성~평양~의주를 오가는 조선 제1대로인 의주대로와 영은문·모화관 그리고 경기감영의 존재가 조선 수도 한성부 서대문 도시 공간의 핵심 코드이다. 서대문은 1915년 서대문~청량리 간 전차궤도 부설로 말미암아 강제 철거될 때까지 종각~남대문 간 남북대로와 함께 동대문~서대문 간 동서대로의 종착점이었다. 의주로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조선 초(1393년)부터 수원으로 옮겨간 1896년까지 경기감영이 자리잡았다. 조선시대 1번 국도는 중국 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연행로(燕行路) 혹은 사행로(使行路)라는 별칭이 따랐다. 조선 제일의 무역로이기도 했다.영천시장 앞 석교교회 앞은 말 그대로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모두 6개의 다리 중 북쪽에서 첫 번째 다리가 석교이다. 다리 아래에는 1967년 복개 이전까지 서대문~홍제동~고양~파주~장단~개성~의주를 잇는 의주로를 끼고 무악천이 철철 흘렀다. 다리의 남쪽은 교남동, 북쪽은 교북동이었다. 무악천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욱천(旭川)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붙으면서 본명을 잃었고 지금은 만초천이라고 불린다. 기봉·기산·봉우재·봉화뚝·모악산·무악재 같은 다채로운 이름을 가졌던 무악산 또한 길마재의 한자표기인 안산(鞍山)으로 개명됐다. 무악은 동봉과 서봉 두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두 봉우리 사이가 움푹하므로 길마(소에 짐을 실을 때 그 등에 얹는 기구)와 같다 해 길마재라고 불렸다. 안산이란 말의 안장같이 생긴 산이란 뜻이다. 무악(毋岳)이라는 산 이름의 유래는 풍수지리상 서울의 진산(鎭山)인 삼각산(북한산)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어서 이를 달래려고 ‘어미의 산’이란 뜻에서 모악(母岳)이라고 칭했던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무악이라는 신령스런 지명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내 탓도, 네 탓도 아니고 나라를 잃은 탓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어쨌거나 안산에 오르려면 지하철 무악재역에서 내려야 하는 게 우리의 지명현실이다.무악과 인왕산은 북방으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방어선이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도성에서 서쪽으로 5리를 가면 사현(무악재)이 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녹번현이 있다. 당(唐)나라 장수가 여기를 지나면서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사람이라도 열 수 없겠다’고 했다”고 한다. 또 “서쪽으로 40리를 가면 벽제령인데 임진년 왜란 때 이여송이 패한 곳이다. 고개 두 곳과 벽제령은 모두 관문을 설치할 만한 곳이다”라면서 외침 때마다 지키지도 못한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남한산성을 쌓는다고 백성을 달달 볶는 왕조를 비판했다. 한성부 서부 반송방은 오늘의 인천처럼 서울을 드나드는 제일 관문이었다. 반송방은 고려 남경 때부터 소반처럼 생긴 반송(盤松)이 많아서 붙은 지명이다. 서지(西池)라는 학교운동장만 한 큰 연못이 지금의 금화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이를 반송지, 반송정, 천연정이라고도 지칭했다. 정조는 국도팔영(國都八詠), 서거정은 한성십경(漢城十景)에 속하는 명소로 꼽았다. 도성대지도, 경조오부도 등 옛 지도에 나타나는 서대문 밖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1407년 태종이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려고 세운 모화관과 영은문이다. 연못 자리에는 개화기 일본 공사관(청수관)과 죽첨공립소학교(동명여중)가 들어섰다. 하필이면 경기감영을 한성부 관할 지역인 반송방에 뒀을까. 경기감영의 설치 연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경기도를 다스리는 경기관찰사는 반송방에 본영, 영평(포천)에 신영을 두고 왕래하면서 업무를 봤다. 지금도 수원에 경기도청, 의정부에 경기 제2청(경기북부청)을 따로 두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예나 지금이나 경기도는 수도방위의 중책을 맡고 있으므로 중앙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유지가 필요한 때문이다. 김종서 장군의 집이 서대문 밖 지금의 농업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일행이 일흔 살 노장군의 집에서 철퇴를 휘둘러 즉사시킨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죽지 않았다. 왕에게 반역을 고하려고 부인의 가마를 타고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기감영과 사대문을 장악한 한명회의 수하들이 서대문과 남대문의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바람에 주저앉았다. 수양은 다음날 새벽 자객을 보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이방원에 의해 척살당한 정도전의 수송동 집이 마구간으로 변한 것처럼 김종서의 서대문 집은 여행객에게 말을 대여해 주는 고마청으로 둔갑했다. 역사의 가설은 성립하지 않지만 김종서의 집이 사대문 안에 있었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노릇이다.경기감영 터는 1896년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군부대로 사용되다가 1903년 한성부 청사, 죽첨공립소학교 사택, 고양군청을 거쳐 경성적십자병원(서울적십자병원)이 들어서는 독특한 장소 변화를 겪었다. 또 서부 경찰분서, 경성감옥 분감, 경성측후소(서울기상청) 등도 들어서 이후 변화상을 예감케 한다. 사대주의의 상징 모화관과 영은문을 헐어내는 대신 독립관과 독립문이 세워졌다. 일본의 자본과 부추김에 의해 세워진 독립문과 독립관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다. 현저동이란 말 그대로 고개(峴) 아래(底) 동네를 말한다. 인왕산과 무악산이 이어지는 무악재 아래에 형성된 마을이다. 1975년 대통령령에 따라 현저동 절반이 종로구로 편입돼 의주로 동쪽 인왕산 자락은 무악동으로 바뀌었다. 의주로를 중심으로 안산 쪽은 서대문구, 인왕산 쪽은 종로구로 각각 나뉜 것이다. 서대문 밖은 지배세력의 교체에 따른 공간 변화가 두드러진 곳이다. 점유주체가 바뀌면서 공간의 이력도 덩달아 달라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적산가옥이 많았던 인왕산 아래 대로변 평동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빈민층이 스며들었다. 염상섭은 ‘삼대’에서 “전차에서 내려서 몇 번이나 물어 홍파동에까지 와가지고 수첩을 꺼내보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꼬불꼬불 뺑뺑 돌아야 양의 창자다. 서울서 이십여 년을 자랐건만 이런 동네에는 처음 와 보았다”고 묘사할 정도였다. 박경리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영천시장엔 한 귀퉁이에 제법 시장까지 선다고 했다. 아무리 공화국의 하늘 아래라 해도 사람 사는 세상인 이상 먹어야 사는 것 다음으로 참을 수 없는 것이 사고파는 일…”이라고 한국전쟁 와중에도 열린 영천시장을 그렸다. 현저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도 현저동 달동네의 각박한 삶이 절절히 펼쳐진다. “여기가 서울이야?” 나의 한 섞인 물음에 엄마는 뜻밖에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여기는 서울의 문밖이란다. 느이 오래비가 이담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면 우리도 그때 가선 버젓이 문안에 살아 보자꾸나.”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삼청동(삼청공원의 겨울)●일시: 12월 22일(토) 오전 10시~낮 12시●집결장소: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신청·안내: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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