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철거민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윤영주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NBA 파이널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3선 도전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파기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24
  • 용산 철거민 시위진압 중 시너 폭발 5명 사망

    용산 철거민 시위진압 중 시너 폭발 5명 사망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지역 5층 건물 옥상에서 농성 중이던 철거민 6명이 경찰 진압과정에서 시너가 폭발해 숨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경찰은 20일 오전 6시쯤부터 옥상에서 철거반대 농성 중이던 40여명의 주민에게 물대포를 쏘았고 농성 주민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오전 7시쯤 옥상 위에서 갑자기 시너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건물은 화염에 휩싸였다.  이 과정에서 주민 1명은 불길을 피하려다 옥상에서 떨어져 숨졌고 5명은 미처 피하지 못해 불에 타 숨졌다.현재 부상자는 12명에 이르지만 더 늘어날 전망이다.  철거민들은 19일 오전부터 이 건물 옥상에서 농성을 위해 5m 높이의 망루를 설치한채 장기농성 태세를 갖춰 왔다.  철거민들은 19일 새벽 5시부터 철거반원과 경찰에게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소속 주민들은 “이곳에서 장사하며 먹고 살았는데 강제 철거하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며 “철거 전에 생계를 마련해 달라.”고 주장해 왔다.  경찰의 철거민 진압과정을 지켜보던 김모(40)씨는 “경찰이 물대포를 무리하게 건물 옥상에 뿌리는 바람에 불상사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무모한 강경진압 ‘용산 참사’ 불렀다

    20일 오전 경찰이 서울 한강로 2가 용산재개발 지역 4층 건물에서 농성 중이던 이지역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소속 회원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경찰특공대 김모(32) 경장, 철거민 이성수(50)씨 등으로 4명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날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경찰특공대 투입은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19일 오후 대책회의에서 승인한 것으로 밝혀져 책임론이 불거질 전망이다. ●농성25시간만에 특공대 ‘초강수’ 경찰은 이날 새벽 6시45분쯤 현장에 특공대를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철거민들이 농성에 돌입한 지 불과 25시간여 만이다. 경찰은 전날부터 철거민들이 경찰과 행인에게 새총으로 유리구슬과 골프공을 쏘고 화염병을 던져 주변 상가와 건물에 불이 났으며, 채증을 위해 나선 경찰을 폭행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취약계층인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무리하게 병력을 투입해 대형 인명피해를 유발했다는 비난을 면키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전날의 극렬 시위 등으로 철거민들이 극도로 흥분한 새벽에, 그것도 화염병, 80여개의 시너, 염산, LP가스통 등 위험물을 가진 채 저항하는 시위현장에 대한 사전 대처가 부족해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물대포가 유류화재 키워 경비전문가들은 시위에서 망루(구조물, 일명 ‘골리앗’)가 등장하면, 이를 지을 때 진입하지 못하면 장기전으로 가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말한다. 시위대에 물과 음식을 끊고 평화적 해산을 유도하거나 화염병을 다 소진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작전의 정석’이라는 것이다. 또 빌딩의 좁은 옥상과 격렬한 저항을 고려할 때 경찰이 우선 물러났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경찰특공대 출신의 한 경찰은 “옥상이 좁아 사다리로 접근하거나 헬기로 접근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컨테이너를 동원했지만 이는 무리한 시도”라고 말했다. 경찰의 진압작전으로 출근길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가 하면 일부는 위험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돌발상황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많은 사고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진입한 데 대한 분명한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용역업체와 세입자들의 대치상황에 너무 쉽게 개입했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용역업체와 세입자들이 폭력으로 맞설 경우 둘을 떼어놓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렇게 빠른 진입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물대포가 오히려 유류화재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소방관계자는 “시너와 같은 유류화재는 물이 닿으면 오히려 물을 타고 번지게 된다.”면서 “거품이 일어나는 특수약품을 섞어야 하는데 경찰이 진압에만 신경을 쓴 것 같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경찰 주변에서는 김 청장이 신속한 진압작전을 통해 평소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자신의 의중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서울지검은 이번 사건과 관련, 이날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현장에서 연행한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소속 등 25명과 현장에 있던 경찰관을 불러 화재 경위와 진압 상황, 책임 소재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날 현장조사를 벌였다. 글 / 서울신문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용산 철거민들 “사고현장·시신 왜 숨기나?”

    “화재현장과 시신 왜 숨기나” 경찰이 농성 중이던 용산 철거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4명과 경찰 1명 등 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철거민들은 이번 사고가 경찰에 의한 것이라며 분을 토했다. 특히 경찰은 사고 현장을 광범위하게 통제하고 시신을 확인하지 못하게 해 다른 철거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한강대로변 재개발지역 4층짜리 건물에서 전날부터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을 경찰이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4명과 경찰관 1명이 숨지고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현장의 철거민들은 진압하던 경찰측이 건물 상부로 컨테이너 박스를 옮기면서 사고가 났다는 점을 들어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불이 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들은 알려진 것과 달리 철거민들이 농성 중이던 건물 옥상이 아닌 아래층에서 불길이 올라왔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상황을 지켜봤다는 철거민 이모씨는 “경찰이 대거 물대포를 쏘고 컨테이너를 동원해 진압을 하면서 사고가 났다. 철거민들이 있는 밑에서 갑자기 불이 시뻘겋게 올라갔다.”고 전했다. 철거민 정삼예 씨는 “우리에게는 사상자 확인도 안 해주고, 병원 어디에 있다는 것도 안 알려주고 있다.”면서 “철거민들에게 사고 원인이 있다면 왜 현장도 숨기고 사상자나 시신을 숨기겠나?”라고 반문했다. 한편 경찰은 이번 사고에 대해 철거와 무관한 외부세력이 점거농성을 주도했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사고는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만들기 위해 쌓아놓은 시너병 70여통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폭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어떤 과정으로 불이 붙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TV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32)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홍세안 신부

    [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32)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홍세안 신부

    서울 성북구 보문 전철역 인근의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문노동사목회관.이곳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와 노동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남미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발길과 전화 상담이 끊이지 않는다.자신들의 피곤한 삶을 이해해주고 막힌 길을 뚫어주는 반가운 사람들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프랑스,몽골,태국,베트남,스페인 출신의 신부와 수녀 10명이 그들.이가운데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인 홍세안(62·본명 미카엘 홍세안·프랑스) 신부는 8년째 이곳에서 변함없이 이주노동자들을 맞아 애환을 들어주고 문제를 풀어주며 남미 출신 이주노동자들에게 ‘해결사’로 통하는 푸른 눈의 사제이다. ●페루 등 남미출신 노동자 4000명 남짓 크리스마스 이튿날 오전 보문 노동사목회관.성탄절 시즌인 만큼 조금은 들뜬 분위기를 머릿속에 담아 찾은 노동사목위원회의 사무실 분위기가 예상과는 판이하게 썰렁하다. 숙소인 합정동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를 떠나 막 도착했다는 홍세안 신부가 내막을 들려준다.“영세 공장에서 변변치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여유롭게 보낼 수 있나요.더구나 이곳을 찾거나 상담을 부탁하는 10명 중 8~9명은 불법체류자들인데….” 신부가 “오는 일요일에나 모여 미사를 겸한 조촐한 행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기자에게 커피 잔을 내놓는 순간에도 ‘해결사 신부님’을 찾는 전화 벨이 연방 자지러진다.이런 저런 사연을 담아 걸려오는 전화만 하루 60여통.물론 사연마다 내 일처럼 성의를 다한다. “해결사라니요,당치도 않아요.해결하는 것보다 풀지 못하는 문제들이 더 많아요.당연히 받고 살아야 할 것들을 챙겨주는 것 뿐인데….” ‘해결사’라는 그 유명한 별명을 입에 올리자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친다.아침부터 손 전화를 통해 애타게 사제를 찾아대는 사람들의 사연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 “페루,볼리비아,에콰도르,콜롬비아….남미 출신 이주 노동자 수가 4000명 남짓한데 대부분 불법체류자들입니다.이들은 적법하지 않은 신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하려 하지요.당연히 전화를 통해 사연을 전하고 해결방법을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요.” 밀린 임금을 받아주고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혜택받기 어려운 의료시설이며 주거환경,항공료까지 챙겨주는 신부.이역 만리의 남미 출신 이주 노동자들에게 이보다 더 고마운 사람이 있을까.프랑스 낭트 출신으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이 땅을 밟은 홍 신부의 삶은 철저하게 고달프고 어렵게 살아가는 노동자 돕기에 맞춰졌다. “어릴 적부터 선교사,특히 아시아 지역의 선교사로 살고 싶었어요.사제서품 때 지금처럼 살게 되리란 생각은 전혀 못했지만 후회하지 않아요.다시 인생을 산다고 해도 이 길을 갈 것입니다.” 정동 프란치스코회와 연세대에서 한국어를 2년 배우고 공장지대인 오류동에서 사목하면서 한국 젊은이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알게 된 것이 평생을 노동 사목에 매달려온 계기.“밤잠을 못자고 공장에 매여 살아도 손에 쥐는 임금이 쥐꼬리만한 것이었어요.정말 어려운 시절이었어요.착취는 물론 사람대접도 받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태반이었으니까요.” 파리 외곽의 파리외방전교회 신학대에서 2년을 공부하고 군 생활을 마쳐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생활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사제서품을 받아 곧바로 한국에 들어온 게 1974년.열악한 근로 환경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 넘어가고 분신을 이어갔던 그 무렵이었으니 노동자 출신 눈 푸른 사제의 눈길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류동,상봉동,사당동,대림동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있으면서 가톨릭노동청년회,가톨릭노동장년회를 찾아다니며 생활이 어려운 노동자들의 말을 들어주며 애환을 달래고 밀린 임금을 받아주기 위해 공장 걸음을 계속하는 생활을 한 게 10년.이어서 7년간 미아동 전셋집에 살면서 철거민과 노동자들을 만나며 부대끼던 중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가톨릭노동장년회 국제지도신부 임명을 받아 벨기에 브뤼셀로 옮겨 살게 됐다. 아시아,아프리카,남미 지역 등 전 세계 50개국에 퍼져 있는 가톨릭노동장년회 활동을 연결하며 노동자들의 뒷바라지 생활을 8년 한 끝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평소 소신대로 다시 한국행을 결정해 돌아온 게 2001년.한국 땅을 그토록 고집한 이유는 뭘까. “언제나 한국은 제가 살고 있어야 할 곳이란 생각이었어요.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만나 함께 울고 웃던 이들의 모습이 브뤼셀 사목 중에도 늘상 어른거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브뤼셀에서 돌아온 이후 줄곧 지금의 노동사목회관을 지키며 가난하고 억울한 남미 이주 노동자들 챙기기에 매달려 왔다. 브뤼셀 사목 중 남미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스페인어 공부를 힘겹게 했고 그 때 남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사목을 지금까지 한국에서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노동사목회관은 원래 1992년 명동에서 자그마한 공간으로 시작했는데 2000년 지금의 건물을 마련해 옮겨왔어요.그 때 명동에서 일한 인연으로 지금 이렇게 살고있지요.벌써 8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1970~80년대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었던 어려운 삶을 지금은 이주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살고 있다.”는 홍 신부.떳떳하지 못한 입장과 신분 탓에 세상의 눈을 피해 숨죽인채 그늘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야말로 내가 만나고 곁에서 도와야 할 이들이란다. 체불 임금을 받지 못해 고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순간의 화를 이기지 못해 감옥에 갇힌 이들,불법 체류 사실이 들통나 고향의 혈육들과도 연락을 끊고 살아야 하는 이들….특히 최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환율 탓에 고통받는 이주 노동자들의 숨쉬기가 아주 힘들단다.감원의 최우선 대상도 이들이다. ●공장주와 담판 짓고 노동청에 진정 노동사목회관서 찾아오는 이주 노동자들을 맞고 전화상담을 하는 일 말고도 홍 신부가 할 일은 너무 많다.공장주들을 만나 체불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담판을 짓고 노동청에 진정을 하는 일은 이제 몸에 밴 일상이다.감옥에 수감된 노동자들을 찾아 위로하고 신앙생활을 돕는 일도 그의 몫이다. 노동자들의 하소연을 듣고 막상 공장을 찾아가면 공장주들이 만나주지 않는 게 다반사.며칠을 끈덕지게 찾아가 공장주들을 만나도 딱부러진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하지만 말이 서툰 탓에 불거진 오해를 풀어 이주 노동자들과 공장주의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도 적지 않단다. “이주 노동자들이 항상 옳다고 보진 않아요.게으르고 일에 태만한 이들이 사실 적지 않아요.하지만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하는 억울함은 누가 해결해줍니까.” 지난해부터는 주한 페루대사관의 요청으로 ‘페루의 날’ 행사도 열어오고 있다.남미 출신 이주 노동자의 90%는 페루인들.페루로 건너가 살았던 일본인들의 본국 역류가 심해지자 덩달아 일본으로 이주하던 페루 노동자들의 입국이 제한된 까닭에 그 대안 지역으로 페루인들이 홍수처럼 찾아든 게 한국이란다. “‘페루의 날’ 행사라야 그저 함께 모여 얼굴을 맞대고 미사도 보고 식사를 나누고 가슴에 담았던 사연들을 털어놓는 게 고작이지만 이들에겐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절실한 만남의 자리입니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 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루카복음 4장 18~19절) 사목회관을 나서는 기자에게 들려주는 성경 한 마디.“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힘 있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하고 싶다.”는 사제는 세상의 그늘에서 빛을 찾아주려는 자신의 작은 말,작은 몸짓에 함박 웃음을 짓는 이들을 볼 때마다 사제의 길을 새롭게 발견한다며 손을 흔든다. kimus@seoul.co.kr ■ 홍세안 신부는 ▲1946년 프랑스 낭트 출생 ▲1973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대 졸업,사제서품 ▲1974년 선교사로 한국 파견 ▲1974~83년 오류동,상봉동,사당동,대림동 본당 보좌신부,가톨릭노동청년회,가톨릭노동장년회와 노동 사목 ▲1983~84년 필리핀 마닐라서 사목 재교육 ▲1985~92년 미아동서 철거민,노동자 사목 ▲1992~2000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가톨릭노동장년회 국제지도신부로 사목 ▲2001년 한국 재입국 ▲2001년~ 보문노동사목관서 남미 이주민 노동자 대상 사목
  • [종교 플러스]

    ●25일 뉴타운 철거민 현장 미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25일 오전 11시 서울 왕십리뉴타운 지역(왕십리1동 새마을금고 옆 공터)에서 ‘뉴타운 철거민들과 함께하는 현장 미사’를 봉헌한다.미사에는 뉴타운 지역 영세 가옥주와 세입자 등 철거민들이 참석할 예정이다.(02)777-7261. ●‘기독교 대안학교 교사’ 토론회 기독교대안학교연맹은 내년 1월9~10일 서울여대에서 기독교 대안학교 교사를 위한 콘퍼런스를 개최한다.대안학교 교사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토론하고 해법을 찾는 자리.학생 미디어 교육과 품성훈련 등이 발표된다.희망자는 내년 1월8일까지 홈페이지(www.casak.org)를 통해 등록하면 된다. ●배상문,아름다운 동행 홍보대사 재단법인 아름다운 동행은 최근 불교역사문화기념관서 홍보대사 위촉식을 갖고 홍보대사에 한국프로골퍼 배상문(22) 선수를 위촉했다.위촉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사회부장 세영 스님,사서실장 심경 스님과 배씨의 어머니가 참석했으며,배상문 선수는 지관 스님을 예방하고 아름다운 동행에 기부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다문화 가족 초청 성탄 음악회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다문화 이웃과 함께하는 성탄음악회’를 25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다.다문화가족들을 초청해 세밑 사랑을 나누는 행사.음악회에는 기독교 각 교단의 수장과 천주교 주교단,각 교단 신자 대표,이주민 노동자 국가 대사들이 함께 할 예정이다.(02)929-7247. ●기독교 사상학교 개설 제36기 조계종 행자교육원이 내년 2월14일부터 3월8일까지 김천 직지사에서 개원한다.조계종 행자교육원 운영위원회는 최근 이같은 행자교육원 운영 일정과 교과목을 확정했다.대상은 지난 9월5일 이전 입산해 행자교육을 마친 사람 중 행자교육원 입교명령을 받은 남행자 179명,여행자 76명 등 총255명.오는 29일부터 내년 1월9일까지 해당 교구본사에서 접수.. 현대기독교아카데미는 인문학적 교양과 신학적 소양을 제공하기 위한 기독교사상학교를 개설했다.‘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를 통해 보는 개신교와 가톨릭 사상의 기원’‘본회퍼와 세속화신학’‘해방신학과 종교다원주의’가 소개된다.사도 바울의 서신과 요한계시록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대안적 성경읽기’ 프로그램도 있다.(02)3789-7663.
  • 인천은 ‘주민대책위 공화국’ ?

    도시 개발에 물이 오른 인천시 각 지역마다 주민대책위가 난립해 ‘대책위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책위가 주민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집단이기주의 통로 구실을 해 개발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30일 인천시에 따르면 신도시와 도심 개발을 본격 추진하면서 도시재생사업과 주거환경개선사업, 재건축 등 220여건의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조성계획이 발표된 검단신도시 대상지 일대에는 ‘검단신도시 주민대책위원회’와 ‘검단신도시 아파트연합회’ 등 5개의 주민대책위가 활동하고 있다. 검단지방산업단지 조성을 둘러싸고 대책위들이 구성돼 있어 서구 검단지역에만 주민대책위가 10여개에 이른다. 여기에 세입자, 공장주 등도 대책위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검단신도시 조성이 본격화되면 이름이 비슷한 대책위들이 얼마나 생겨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서구 가정오거리 뉴타운 조성지역도 대책위 천국이다. 뉴타운 건설계획이 발표된 후 아파트마다 대책위가 생겨나 모두 20여개에 달한다. 인천지역에만 500여개의 대책위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토지주와 세입자, 철거민 등 이해관계가 확연히 다른 주체뿐만 아니라 같은 택지에서도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상가 등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낼 때가 잦아 개발 시행자와의 협상이 진척되기 어렵다. 주민들끼리 편이 갈려 대책위에 반대하는 또 다른 대책위가 생겨나기도 한다. 불신과 갈등을 키우다 법적 소송으로 비화되는 일도 빚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진단과 해법도 다양하다. 시민단체인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측은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보려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라며 “경제자유구역 등 인천에 개발 요인이 많은 것은 인정하지만 시가 문어발 식의 동시다발적인 개발을 추진해 통제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발전연구원 최윤경 연구원은 “주민과의 상충요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엄청난 사회비용을 치르게 되므로 예방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환경분야에는 관련 노하우가 상당부분 축적돼 있으므로 일반 개발사업에도 원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건양대 권경주 교수(행정학)는 “지자체가 가이드라인을 정해 일정한 기준을 갖춘 대책위만을 파트너로 인정, 협상 통로를 일원화하고 개발사업자와 주민 간의 입장차를 조율할 수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복지천국’ 영국 왜 여성 노숙자 들끓나

    ‘복지천국’ 영국 왜 여성 노숙자 들끓나

    캄보디아는 지난 4년 동안 연평균 11.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장의 이면에서 누군가는 생계와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빈민촌 사람들이 개발이란 미명 아래 집과 땅을 마구잡이로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W’는 5일 오후 11시50분 이같은 캄보디아 철거민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한다. 국가는 발전하는 반면 철거민들의 삶은 강제철거와 폭력, 협박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철거민들을 프놈펜 외곽으로 이주시키지만, 그곳은 아무 것도 준비돼 있지 않은 채 열악하기만 하다. 허허벌판에 스스로 집을 지어야 하고, 수도나 전기 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다. 정부가 약속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카메라에 담긴 철거민들의 모습은 처절하기만 하다. ‘W’는 또 신종 마약 ‘파코’에 중독된 아르헨티나 아이들도 집중 취재했다. 파코는 마리화나, 코카인보다 더 강력한 중독성을 보이는 마약. 지난 2001∼2005년 사이 아르헨티나에서 파코 중독자는 무려 200%나 급증했으며, 어떤 아이들의 경우, 하룻밤 사이에 파코를 100개나 피우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심각한 병을 앓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정부는 파코 문제에 대해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치안이 불안한 빈민촌에는 경찰들도 출입을 꺼려, 빈민들이 마약상을 고발해도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자녀가 파코에 중독된 경험이 있는 어머니들이 ‘파코의 어머니’란 모임을 만든 것. 이들은 아이들을 설득해 재활센터에 입원시키는가 하면, 밤에는 직접 빈민촌을 돌면서 마약상을 감시하기도 한다. ‘W’는 또 얼마 전 BBC 뉴스가 보도한 영국 보수당 의원 그랜트 셰입의 홈리스 체험을 내보낸다. 그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영국의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홈리스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직접 노숙체험을 했다. 영국은 지난 5년 사이 여성 홈리스들이 43%나 증가했다. 그녀들은 거리에서 마약, 매춘에 무방비 상태로 빠져드는가 하면 취객들의 살해 위협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 위험한 거리로 여성들이 흘러나오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잘못된 주택정책이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부가 운영하는 임시주택의 입주조건이 몹시 까다롭다는 것도 한 원인이다. 사회복지의 천국으로 불리는 영국의 숨겨진 그늘, 여성 홈리스들의 실태를 심층 취재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4) ‘독립문 공동체’ 예수회 박문수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4) ‘독립문 공동체’ 예수회 박문수 신부

    종로구 행촌동, 독립문 전철역 인근 골목의 천주교 ‘무악동 선교본당’. 마당과 툇마루가 달린 아담한 ㄷ자 한옥집의 이 선교본당엔 ‘독립문 공동체’라는 간판이 달려 있다. 천주교 신자들의 미사와 성사가 이뤄지는 신앙공간이기에 앞서 지역주민들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주기 위한, 이 지역 주민 공동체 운동의 중심. 천주교 예수회에 소속된 미국 출신의 박문수(67·본명 프란시스 부크마이어) 신부는 10년간 이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회복음’에 앞장 서온 독특한 사제이다. 예수회 사제로 살기 위해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했고 예수회가 세운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로도 20년간 대학에 몸담았지만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곁을 택해 교수직도 버린 채 소신을 펴고 있는 거리의 사제요, 거리의 사회학자이다. ●공공임대 입주민들에겐 ‘과거사의 산증인´ 선교본당이란 재개발이 한창이던 지난 80∼90년대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재개발 지역의 힘없는 빈민들을 돕기 위해 세운 작은 지역 성당들. 모두 5개의 선교본당이 세워졌고 무악동 선교본당은 그 가운데 가장 작은 본당으로 예수회가 맡아 오고 있다. 박문수 신부가 이 곳 주임신부 발령을 받은 것은 1999년이었으니 햇수로 10년째 주임 소임을 보고 있는 셈. 그동안 청소년 스카우트 운동을 비롯해 지역주민들의 권익 찾기를 위한 자치회와 노인회, 부녀회 결성과 운영을 이끌고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서 이 지역 주민들에겐 아주 유명한 ‘푸른 눈의 신부님’이 되었다. 특히 독립문 일대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과거사의 산 증인이다. 현재 이 선교본당에 적을 두고 있는 신자는 고작 50여명. 보통 성당이라면 응당 천주교 신자 중심의 신앙공간이겠지만 박 신부는 이 선교본당을 말할 때마다 꼬박꼬박 “사회정의가 깃든 지역사회를 일구기 위한 공동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자신있게 목소리를 내고 참여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인 만큼 신자든 아니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일곱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박 신부는 앨라배마 주 스프링힐 대학에서 철학과 생물학을 전공했으면서도 한국에서 사제로 살기 위해 한국의 가톨릭대학 신학과를 졸업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예수회가 운영하는 스프링힐 대학에서 박 신부가 공부하던 무렵 미국 예수회에선 한국에 관구를 설립하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이었다고 한다. 학생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박 신부도 함께 공부하던 한국인 학생들과 사귀면서 주저없이 한국행을 택했다. 사제의 꿈을 키워 한국행을 결심한 그가 번듯한 본당 대신 이른바 ‘도시빈민’들을 위한 작은 선교본당에서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수시절 철거현장 강의로 유명 “원래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유전공학과 생명윤리는 천주교회에서 중요한 전략적 분야였으니까요. 하지만 서품을 받을 당시 군사정권의 암울한 한국 상황은 사제로서 개인적인 관심사에만 머물 수 없다는 생각을 들게 했어요.” 힘없는 지역 주민들의 수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인권, 재갈 물린 언론 등 초창기 한국생활에서 겪은 부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한다. 한국사회를 좀더 알고 파고들기 위해 사제서품을 받은 이듬해 하와이 주립대 대학원으로 유학,5년간 도시사회학을 공부한 끝에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 곧바로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직을 맡아 이 곳 선교본당 주임으로 오기까지 20년간을 강단에 섰다. 서강대 교수 시절 학생들을 이끌고 인근 도화동 재개발 지역을 찾아 다니며 철거현장의 폭력이며 내쫓기는 주민들의 아픔과 투쟁을 직접 체험케한 현장강의는 당시 박 신부에게 배웠던 사회학과 졸업생들에겐 지금도 잊지 못할 수업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한국의 재개발 사업은 정부의 투자를 기업체의 자본으로 충당하는 기본속성상 업체의 이윤창출과 가난한 지역민들의 희생이 따랐지요.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정부·업체의 횡포와 주민 강제철거는 도시사회학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학생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 뛰어들어 가난한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유학까지 다녀온 사제였으니 도시빈민들의 수난에 관심을 가진 건 당연한 일. 제정구(1999년 작고) 의원과 예수회 소속 정일우 신부가 주도했던 천주교 도시빈민회에 가입, 본격적으로 빈민운동에 뛰어 들었다. 먼저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끝까지 한국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에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에 귀화했다.1985년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상계동 재개발 사건이 터졌다. 말로만 듣던 철거현장에 직접 나가 목격한 실상은 “정말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고 한다. “억울하게 내쫓기는 세입자들과 가옥주들을 원수지간으로 만들고 용역회사 직원과 깡패를 동원한 강제 철거, 무자비한 폭력에 수수방관하는 경찰…. 철거현장에서 저질러지는 비인간성의 극치를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함에 눈물을 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정의는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것 ‘나약한 대학교수’로 강단에 선다는 것에 회의를 갖게 되었고 현장으로 파고 들었다. 강제철거가 진행되는 재개발지역을 찾아가 폭력사태를 촬영하고 기록하다가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뭉치게 하는 일에도 나섰다. 1990년 독립문 지역 철거에 앞서 다른 예수회 신부 두명과 전셋방을 얻어 살면서 주민들과 세입자대책위원회를 꾸렸고 결국 200가구에 달하는 세입자들이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도록 이끈 주인공이다. 강단에 서면서도 늘상 “대학교수보다는 빈민들의 옆에서 활동하는 사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중 1999년 서울대교구에서 ‘선교본당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해와 미련없이 교수직을 내놓고 이곳으로 옮겨와 살고 있다.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가장 빠른 길은 가장 나약한 사람들을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하는 박 신부. 이젠 상황이 많이 바뀌어 도시빈민들의 입지도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여전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홀대받기 일쑤라며 안타까워한다. “사제는 교회를 만들어 신자를 모으는 사목과 영성의 매개자로서의 소임도 갖지만 사람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일구는 ‘사회사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난 80∼90년대 도시빈민들의 실상을 알리고 권익을 찾는데 앞장섰다면 이제는 주민들의 눈 높이에 맞춘 또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기쁜 소식, 즉 복음의 가치는 바로 정의와 평화가 흐르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란 소신엔 변함이 없다.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 천주교 사제들과 평신도가 함께 뜻을 모은 도시빈민회에 참여해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박 신부. 내년 2월이면 이 곳 주임신부 근무연한이 다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지만 어디에 있든 ‘한국의 사회 사도’임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웃는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박문수 신부는 ▶1941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출생 ▶1960년 예수회 입회 ▶1966년 스프링힐대학 철학과 졸업 ▶1973년 가톨릭대 성신교정 신학과 졸업, 사제서품 ▶1979년 하와이주립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1979∼1999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1985년 한국 귀화 ▶1999년∼ 무악동 선교본당 주임
  • [Beijijng 2008D-1] 中성화 봉송길 건물 창문까지 ‘꽁꽁’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올림픽 성화가 마침내 베이징 봉송 일정에 들어간 6일 오전 7시부터 톈안먼(天安門) 광장 일대에는 수많은 시민이 몰려 오성홍기를 흔들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러나 당국은 허가된 주민 외에는 참여를 제한했다. 쯔진청(紫禁城) 오문(午門) 앞에서 성화에 불이 붙었다.통제선 맨 앞쪽에 설 수 있는 주민은 사전에 명단을 제출해야만 했다. 베이징 당국은 지난 4일 첸먼(前門) 부근에서 재개발 지역 철거민 20여명이 민생형 돌발 시위를 벌인 뒤, 첸먼 지하철 역사를 전면 폐쇄하는 등 보안을 강화했다. 성화봉송 장면은 외국 취재진에게도 제한됐다. 베이징 당국은 톈안먼 취재에 대해 24시간 전 취재신청을 의무화해 반발을 샀다. 서방 미디어들은 이를 ‘사전 검열’로 받아들였다. 지난 3월 티베트 사태 이후 테러 위협 등으로 성화는 중국내에서도 이처럼 철통보안 속에 봉송됐다.일부 지역에서는 성화 가는 길은 주변 건물 창문도 열지 못하도록 했다. 구간도 최대 10분의1이하로 단축, 당초 250m까지로 설정된 1인당 봉송 구간은 적지 않은 구간에서 10m이하로 줄기도 했다.jj@seoul.co.kr
  • [Zoom in 서울] 거여·마천지구에 9472가구 공급

    서울 남동지역의 대표적 저소득층 밀집지역인 송파구 거여동 202 일대가 2016년까지 9472가구가 입주하는 친환경 뉴타운으로 변신한다. 1인 세입자의 거주비율이 높은 지역 특성을 반영해 한 채의 아파트 안에 전용 현관과 부엌·화장실을 갖춘 독립 생활공간을 마련, 세입자에게 임대할 수 있게 하는 ‘부분임대 아파트’ 458가구가 공급된다. ●서울시 재정비 촉진계획안 발표 22일 서울시가 발표한 거여·마천 재정비 촉진계획안에 따르면 부분임대 아파트는 전용면적 85㎡ 이상의 조합원 분양주택에 조성되며, 국민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없는 1∼2인가구 세입자들이 집주인에게 임대료를 내고 입주하게 된다. 서울지역 뉴타운 가운데 부분임대 아파트가 조성되는 것은 북아현 뉴타운에 이어 두 번째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관계자는 “1인 세입자의 재정착을 유도하고 전·월세를 주수입원으로 하는 노령 가구의 소득원을 확보해 줌으로써 재정착률을 30%대까지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부분임대 아파트 입주자에겐 기존의 임대주택 입주자들에게 적용되던 임대료 상한이나 임대보증금 보전 등의 보호장치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서울시가 재정착률 수치를 높이기 위해 임대주택법의 적용을 받는 임대주택 대신 ‘부분임대’라는 편법을 동원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일부에선 제기된다. ●천마산∼성내천∼청량산 잇는 ‘녹지-수경축’ 거여·마천 뉴타운에 적용되는 용적률은 230∼250%로 테라스하우스와 연립주택, 아파트 등 4∼35층 규모의 다양한 주택이 들어선다. 임대주택은 1720가구다. 주변에 천마산과 청량산이 위치해 녹지가 많고 대기가 깨끗한 것이 장점이다. 또 송파신도시와 마천임대주택단지가 건설될 예정이어서 주변과 연계된 대규모 신도시 조성효과도 기대된다. 지구내 1.7㎞에 달하는 성내천 복개도로를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며 2곳뿐인 공원도 14곳으로 확대해 ‘그린 시티’의 면모를 갖춘다는 복안이다. 성내천 복원에 따른 대체 우회도로와 남북 연결도로도 신설돼 송파신도시·마천임대단지와의 연결도 원활해진다. 또 천마산∼성내천∼청량산을 잇는 ‘그린-블루 네트워크(녹지-수경축)’를 구축해 마천역·마천시장 등 생활권 가로와 역세권 등과의 연계도 강화할 방침이다. ●서울시, 달동네 역사관 설립 지원 거여·마천지구가 들어설 거여동 202 일대는 1970년대 도심 철거민이 집단 이주하면서 형성된 빈민촌으로 일부에선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기반시설이 열악하다. 시는 뉴타운 개발로 사라져가는 도시민의 생활사를 기록·보존하기 위해 민속 조사사업을 지원, 지구 안에 조성될 역사관에 거여·마천지역과 성내천 주변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담아낼 계획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차상위계층에 주택특별공급 추진

    소득이 낮은 ‘차상위계층’도 앞으로 주택 특별공급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차상위계층은 국민임대주택 입주 대상에는 포함돼 있지만 일반 주택 특별공급 대상은 아니다. 13일 국회와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은 차상위계층을 주택 특별공급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차상위계층은 소득수준이 국민기초생활수급자보다는 다소 높지만 소득 10분위 분류 때 1.5분위 정도에 해당한다. 소득 10분위 중 1분위가 소득이 가장 낮다. 국민임대주택 입주권은 소득 1∼4분위까지 주고 있어 차상위계층도 입주시 우대를 받지만 일반 주택 분양에서는 우대를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현재 국가유공자, 장애인, 철거민 등에게 10%를 공급하도록 하고 있는 특별공급대상에 차상위계층을 포함시켜 이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제출됐다.개정안은 이를 위해 특별공급 비율도 전체 분양물량의 10%에서 15%로 늘리도록 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공공주택에 대해서만 이를 적용하도록 했다. 민간이 짓는 주택에까지 특별공급을 하도록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개정안에 대해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는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유도하자는 취지인 만큼 원칙적으로는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특별공급비율 확대는 다른 청약대기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8) ‘빈자의 등불’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안광훈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8) ‘빈자의 등불’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안광훈 신부

    ‘그리스도의 대리인’, 즉 사제들은 분명 범인(凡人)들과는 다른 차원의 고통과 번민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극기와, 사회정의를 위한 복례(復禮)를 사제가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이라 여긴다. 많은 사제들은 실제로 교회 안에서 그렇게 자신을 속박한 채 애써 덕목을 지켜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에는 교회속 ‘그리스도의 대리인’에 안주하지 않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향해 교회 밖으로 밖으로 뛰어나가는 ‘길 위의 사제’가 적지 않다.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서울지부 안광훈(67·본명 로버트 브레넌·뉴질랜드) 신부도 ‘빈자의 등불’이 되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어 살아가는,‘거리의 신학자’중 한 사람이다. ●“나는야 점퍼때기 거리의 신학자”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서울지부 접견실.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한국의 사제 17명이 살고 있지만 존재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적막한 사제관의 맨 앞쪽 방이다.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신부가 나타나지 않는다. 견디기 힘든 적막에 걱정이 겹쳐 목이 탄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점퍼 차림의 신부가 불쑥 방으로 든다. 예상했던, 목에 빳빳한 로만 칼라를 두른 말쑥한 사제복 차림이 아니다.“미아동 성당 오전 미사를 주례하느라….” 미사 집전도 점퍼 차림으로 하고 내쳐 달려왔다는 말과 함께 신부가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작은 방으로 이끈다. 대면부터가 여느 사제들과는 다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전화 기술자 아버지와 독실한 천주교 신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3남2녀 중 장남. 어릴 적부터 집으로 배달되는 골롬반 선교지를 받아보며 자랐다. 별 다른 진로 걱정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골롬반 외방전교회에 입회해 신학교를 졸업한 사제. 그것이 안광훈 신부가 한국에 오기까지의 이력이다. ●30년간 한국의 달동네 전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개인사를 갖고 있는 사제. 그런 그가 30여년간 교회 대신 한국의 달동네를 전전하며 삶의 터전을 빼앗긴 철거민들이며 빈민들의 입과 발이 되어 울타리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택한 길이니 뚜렷한 이유와 방향이 있지 않을까. 대뜸 첫 부임지 강원도 삼척 사직동성당에서 만난 지학순 주교 이야기를 꺼낸다. “저를 가난한 탄광지대인 삼척 사직동성당으로 파견한 게 바로 당시 원주교구장이었던 지학순 주교였어요. 아주 활달하면서도 따뜻한 사람이었지요. 처음엔 어디서 그의 그런 열정과 사랑이 나오는지 몰랐는데….” 지학순 주교였다.30여년을 한결같이 달동네 전셋방을 옮겨다니며 철거민들과 함께 울고 웃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며 부대끼는 험한 길의 처음에는 지학순이란 인물이 있었다. 삼척에서 1년을 살고 정선본당 주임으로 산 게 무려 11년.30명이 100원씩 출연한 3000원으로 1973년 설립한 정선 신협은 지금 300억 규모로 성장해 전 강원은행 건물을 살 정도가 됐다. 지금의 정선 본당도 안 신부가 세운 성당. 초대 춘천교구장 구(具)토마스 주교가 미8군에서 얻어쓰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헐고 교인 바자회와 교구청, 본국 뉴질랜드 주교들의 도움을 받아 세운 ‘1000만원짜리’성당이란다. 그러나 무엇보다 온 몸을 던져 군사정권과 독재에 맞서다 구속된 지학순 주교와 함께 했던 정선의 세월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원주 시내의 주교좌성당인 원동 성당과 공소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가며 열었던 시국관련 기도회며 미사 중 주교회의 선언문 발표 때 어김없이 지 주교의 옆에 있었다고 한다. “그때 교회를 위한 교회는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교회는 세상 사람과 지역주민 전체를 위한 도구나 제도,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교회를 위한 교회는 쓸모없다” 본격적으로 교회 밖 세상에 몸과 마음을 둔 것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다음해인 1981년 안양천변의 목동 철거민 투쟁 때부터. 목동 본당 주임으로 있으면서 신시가지 계획에 따라 쫓겨난 안양천변 철거민들의 아픔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부임할 때만 해도 목동성당 앞은 거의 논밭이었어요. 구로공단에서 흘러드는 폐수에 오염된 물로 길러낸 곡식으로 연명하는 철거민들이 가진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어요. 주거권이란 말도, 보상이란 말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한 푼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내쫓긴 사람들에게 아무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 사제로서 무엇이든 해야만 했지요.” 여기저기서 모금한 돈으로 철거민 100여가구가 모여살 만한 목화마을을 시흥에 마련한 것은 작지만 큰 보람.5년간의 목동성당 주임신부 생활 중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보람 때문일까. 그의 ‘길 위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성신여대 입구 부근의 골롬반 신학원 원장을 6년간 맡은 뒤 당시 서울대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고 한다.“빈민사목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뜻을 간곡히 전해, 받아들여졌다. 곧바로 미아6동 산동네에 전셋방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개발 바람이 불어 1992년부터 지금까지 살던 집에서 세번을 쫓겨났고 집도 모두 헐렸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미아8동의, 네 번째 셋방인 셈이다. 집은 물론 자기 소유의 손전화도, 자동차도 단 한번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서울의 대표적 재개발지역인 달동네 미아동 지역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다. 아니 해결해놓았다. 재개발이 되면서 쫓겨났던 미아 1·6·7동, 정릉4동 주민들의 생존을 위해 앞장선 끝에 미아6·7동 주민들을 위한 가이주단지 기금 확보를 이끌어냈다. 안 신부의 전셋방은 늘상 세입자 대책위원회가 열리는 투쟁의 중심이었다. 철거될 동네의 주민들을 위해 지금이라도 어느 곳으로든 옮겨살겠단다. ●지금은 미아동 전셋방서 빈민운동 서울에서 제일 먼저 도시빈민 사목을 위해 세워진 선교본당인 미아1동 성당(솔샘공동체)의 초대 주임을 맡아 5년을 지낸 뒤 한국인 신부에게 자리를 물렸다. 지금은 주임 신부를 돕는, 일종의 보좌신부이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미아동 주민들과 어울려 살고있다. 이런 저런 직책을 갖고 있다 보니 일주일 내내 회의의 연속이다. 하루 3∼4번씩 회의에 참석할 때도 있다고 한다. 골롬반 서울지부 재정담당, 강북구 실업자사업단·주거복지센터 대표, 삼양 주민연대 대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 서슴없이 입에 담는 타이틀만 해도 10여가지가 넘는다. 여기에 가끔 본당 미사 집전도 해야 하고 주민들을 위한 성경공부도 가르쳐야 하고…. “외국인인 데도 이렇게 많은 일을 믿고 맡기는 주민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현재 골롬반 외방전교회에 소속된 한국인 신부 6명은 모두 안 신부의 제자. 골롬반 신학원 초대원장 시절 안 신부에게 배운 사제들이다.“골롬반 사제들은 성직주의, 관료주의, 권위주의에서 멀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만을 끝까지 생각하기를….” ●“빈민대출은행 꼭 성사시켜야죠” 신부가 아니라면 고고학자, 특히 성서고고학자가 됐을 것이라는 안 신부.“예수는 하루종일 성전에 앉아 기도하지 않았다.”며 봉사의 정신을 새겨야 할 신부들이라면 응당 교회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아픈 사람, 슬퍼하는 사람, 배고픈 사람을 찾아가 고쳐주고 먹을 것을 주고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잘못된 정치와 경제 때문에 희생되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봉사.“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가장 변두리에 처져 있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의 가치관”이라고 거듭 말한다. 지금 안 신부가 가장 신경쓰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액대출은행.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같은 성공사례들을 벤치마킹하며 가난한 주민들의 돈 걱정 줄일 생각에 흠뻑 빠져 있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안광훈 신부는 ▲194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출생 ▲1959년 고교졸업,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입회 ▲1965년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소속 시드니 신학대 졸업, 사제 수품 ▲1966년 한국 입국 ▲1968년 원주교구 삼척 사직동 주임신부 ▲1969∼79년 정선본당 주임 ▲1981년 서울 목동성당 주임, 철거민들과 투쟁 시작 ▲1985∼91년 골롬반 신학원 원장 ▲1992년 미아5동 성당 부임, 달동네 전입 ▲현재 미아동 전셋방에 살며 빈민운동
  • 10만 촛불에 물대포·특공대 ‘초강수’

    31일부터 1일까지 전국에서 10만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촛불문화제와 거리행진이 이어졌다. 지난달 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시작된 이후 최대 규모다. 일부 참가자들은 2일 새벽까지 2박3일 간 집회를 이어가기도 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민주노총 등은 ‘6월항쟁’ 21주년과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묶어 오는 10일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13일은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미선·효순양의 6주기여서 집회 열기는 계속 달아오를 전망이다. 경찰은 1일 새벽 강제진압 과정에서 228명을 연행해 3명은 훈방하고 나머지 225명은 서울시내 20개 경찰서에서 조사하고 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도 연행됐다. 특히 경찰은 비폭력 평화시위에 나선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경찰 특공대까지 투입해 ‘과잉진압’ 논란을 일으켰다. 시민 100여명이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고, 경찰 41명도 다쳤다. 경찰이 시위대의 머리 위로 직접 물을 쏜 건 지난달 2일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특히 경찰특공대가 투입된 것은 2006년 4월 전남 순천의 현대하이스코 공장 내 크레인 고공 농성과 2005년 6월 오산 세교택지개발지구 철거민 장기농성 정도였다. 경찰특공대는 주로 쇠파이프나 죽창 등을 동원한 폭력시위 등 ‘특수상황’에 마지막 카드로 투입된다. 물대포와 경찰특공대의 등장은 일단 시위대가 청와대 입구까지 밀고 들어온 데 따른 다급한 조치로 해석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그쪽(청와대)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국가 의사결정기관의 정점이자 상징 아니겠나.”라면서 “경찰도 인내할 만큼 했고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더 이상은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광우병 쇠고기 국민대책회의는 기자회견을 갖고 “평화적인 시위와 행진을 하던 시민들에게 경찰은 물대포와 소화기를 동원한 과잉진압을 자행했다.”면서 “이명박 정부는 폭력 과잉진압을 사과하고 연행자를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화염병 등 과격한 시위 도구의 등장 우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기우’라는 지적이다. 물대포가 사용된 현장에서도 시민들은 “경찰이 폭력시위를 유도하는 것이니 침착해야 한다.”며 흥분을 가라앉히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은 “촛불집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노동자와 대학생들이 과거에 경찰에 폭력시위를 유도당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 국민들의 외면을 당하는 실수를 범할 만큼 어리석진 않다.”면서 “폭력시위는 일부의 바람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경찰의 진압과정을 지켜본 김모(33)씨는 “평화적으로 시위를 했고 한두 명이 전경버스 위에서 구호를 외쳤지만 버스를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면서 “노약자·어린이뿐 아니라 장애인도 있는 상황에서 강경대응은 시위만 더 거세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경주 이재훈 김승훈기자 kdlrudwn@seoul.co.kr
  • [Metro] SH공사, 철거민 특별 공급분 접수

    SH공사는 29일 도시계획사업이나 시민아파트 정리 등으로 철거되는 주택 소유자를 대상으로 특별공급분 신청을 일괄 접수한다고 밝혔다. 대상자는 서울시의 ‘철거민에 대한 국민주택 특별공급 규칙’이 개정되기 이전인 지난달 17일까지 보상 계획이 공고된 4672가구다. 특별공급분 신청은 다음달 16일부터 10월31일까지 관할 구청에 특별공급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지구별 입주자 추첨은 11월11일 오후 3시에 실시된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음악인생 40년 국민가수 현철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음악인생 40년 국민가수 현철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 없어라∼’ 35년 결혼생활, 부부싸움 한번 없었다.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없었다. 그야말로 사랑의 콩깍지 속에서 알콩달콩 살기에 바빴다. 강상수·송애경 부부. 결혼 초기 10여년 동안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생활이었다.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갔을 법도 한데 잔소리조차 안한 부인, 이에 늘 따뜻한 말로 위로해준 남편. 사랑의 힘으로 모든 역경을 극복했고 이제는 남 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최근에는 새 식구인 예쁜 며느리를 얻었고, 올가을에는 듬직한 사위까지 생긴다. 살아갈수록 새록새록 행복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남편 강상수는 다름 아닌 가수 현철(63)의 본명이다.‘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사랑의 이름표’‘봉선화 연정’‘사랑은 나비인가 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불러 국민가수로 사랑받는다.6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오빠’ 소리를 듣는다.‘사랑의 이름표’는 초등학생들까지 따라 부를 정도다. 대중가수의 인기라는 것이 오르락내리락, 또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다르다. 지난 20년 동안 흔들림없이 국민적 인기를 유지하면서 ‘트로트계 황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집에서 손자의 재롱을 볼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기를 끄는 비결은 뭘까. 토종 된장 같은 구수한 목소리, 사투리가 짙게 묻어나는 입담, 민요풍이 가미된 독특한 꺾기 창법은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다. 일본의 어떤 학자는 그의 목소리를 연구해 보겠다며 특별주문(?)까지 했단다. 현철은 1968년 ‘무정한 그대’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음악인생 40년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무명생활 20년이 포함된다. 대기만성, 나이 40대 중반에 ‘쨍’하고 햇빛을 본 그는 평소 “부인의 내조가 없었다면 오늘의 성공은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지난 주 그를 만났을 때에도 “우리 아내와는 한번도 부부싸움을 안 했어예, 어린 나이에 나한테 시집와 고생을 무척 많이 했지예.”라고 자랑하기 바빴다. 그는 가정의 달을 맞아 서울 장충체육관(8일)과 대전 컨벤션 센터에서 카네이션 효 콘서트(11일)를 개최했다. 또 최근 MBC ‘쇼 뮤지컬 판타지’ 전국 공연과 미국 LA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으며 신곡 ‘아미새’로 인기의 온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모 방송국 ‘현철 룸’에서 문을 꼭 걸어잠그고 1시간 동안 인터뷰를 가졌다. ▶‘아미새’가 요즘 최고 히트입니다. 아미새는 어떤 뜻인가요. “사랑하는 사람은 때론 꼬집고 싶고 또 얄미울 때도 있잖아요. 아름답고 얄밉기도 한 사랑, 바로 그 뜻이 담긴 ‘아름답고 미운 새’를 말합니다. 감정이 흠뻑 담긴 가사에 흥겨운 가락의 국악창법을 접목시켰더니 대박이 터졌습니다. 주부들이 설거지하다가도 ‘아미새’ 노래가 나오면 TV 앞으로 달려나온다고 하데예.” ▶그 매력이 독특한 꺾기 창법에 있다고 합니다. “저는 노래 부를 때 ‘도레미’ 중 높은 ‘미’에서 꼭 꺾어집니다. 민요가락 중 ‘닐리아 닐리아 니나노∼’라고 할 때 끝에 음이 올라가는 식의 창법을 응용했지요.” ▶꾸준하게 인기를 얻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우리나라의 토종 김치와 된장 냄새가 담겨진 노래라는 얘길 많이 들어요. 또한 전철 탈 때도 있고, 동네 대중 목욕탕에도 자주 갑니다. 아마 촌스럽고 편한 느낌의 아저씨 같아서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많은 히트곡이 있습니다. 이들 중 가장 애착을 느끼는 곡이라면. “무명가수 시절은 정말 돈도 못 벌고 셋방살이로 전전긍긍하며 아내를 너무 고생시켰습니다. 고민 끝에 가요계를 떠나려고 마지막 곡으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만든 것이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었지요. 평소 알고 지내던 부산 모 방송국의 김양화씨가 작사를 하고 제가 곡을 붙였습니다.1985년도인가 그랬죠. 정말 출세곡이 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갑니다. 이후 ‘사랑은 나비인가 봐’와 ‘내마음 별과 같이’‘들국화여인’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1988년부터 3년 연속 KBS가요대상과 MBC10대가수상을 수상했지요.” ▶무명 때는 어디에서 지냈나요. “주로 부산에서 헤맸습니다. 처음에는 솔로였다가 1974년에는 ‘현철과 벌떼’를 결성, 팝송을 리메이크하며 열심히 불렀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그때 13번이나 이사를 했는데 주로 월세 1만∼2만원짜라 단칸방에서 생활했습니다. 친구집에서 셋방을 살면서 봉지쌀 사다 먹고 연탄 낱장으로 사다가 추위를 달래기도 했지요. 마지막 이사 할 때에는 철거민 딱지를 사서 12평짜리 주택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무명시절의 일화 한토막.1987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에 공연을 갈 때였다. 당시 리비아에 파견된 근로자들은 고국의 부인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부른 가수를 공연단에 꼭 포함시켜 달라고 사전에 요청했다.KBS방송팀은 주현미 현숙 조용필 김연자 김세환 백남봉 나미 등 당시 내로라하는 인기스타들과 함께 현철을 합류시켰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얼굴이 안 알려진 현철을 보더니 다들 리비아로 떠나는 근로자로 알았던 것. 그뒤 현철은 보란듯이 가요대상 등을 휩쓸어버려 동료 가수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1989년 KBS가요대상을 받을 때 무명시절의 설움이 한꺼번에 묵받쳐 시상식에서 ‘사나이 눈물’을 왈칵 쏟아내 전국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현재 그는 서울 구의동 집에서 23년째 살고 있다. 그동안 번 돈으로 4층 건물을 구입해 식재료가게와 세탁소 등에 세를 내주고 그의 식구들은 4층에 산다. ▶다니던 대학 경영학과를 그만두고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리 어머님이 ‘울고 넘는 박달재’를 무척 잘 불렀어요. 제가 그 소질을 이어받았습니다. 콩쿠르대회에도 많이 나갔지요. 그런데 아버님은 제가 장차 은행원이 되기를 원했어요.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결국 아버님의 고집에 못이겨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끼를 못버렸던 것이지요. 또 동료나 주변 사람들이 목소리가 정말 독특하니 그 방면으로 한우물을 파라고 권하더군요.” ▶‘현철과 벌떼들’의 멤버는 지금도 만나는지요. “요즘 트로트계의 유명한 작곡가로 활동 중인 박성훈씨가 벌떼들 멤버였습니다. 박씨는 제 노래 ‘싫다 싫어’로 가요대상을 받기도 했지요. 당시 모두 7명이었는데 나머지는 만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현철이라는 이름이 뜨는 바람에 박성훈·박현진(봉선화 연정 작곡)씨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그는 작곡가 외에 ‘정정정’을 부른 가수 한영주 등 후배 양성에도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트로트란 무엇입니까. “평양 공연을 갔을 때나 외국 공연 갔을 때나 트로트를 부르면 한마음 한뜻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 가요의 힘이지요. 기쁨과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고상한 대학교수도 술자리에서 트로트를 부르지 않습니까. 일생 동안 오직 트로트의 길만 갈 것입니다.” 현철 부부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현철은 지방공연을 갈 때마다 주변에 사찰이 있으면 꼭 들러 부처님께 기도를 한다. 부인의 안부를 물었더니 “무명시절에는 옷가게도 하고 카세트 장사도 하면서 아이도 키우고 집안을 이끌어갔다.”면서 지금도 방송 모니터를 하는 등 남편 내조에 열심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대저중학교와 동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부친은 종묘장사를 했으며 모친은 5일시장에서 좌판 깔고 씨앗을 팔곤 했다. 그는 “말없이 꿋꿋하게 사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아내가 도망도 안 가고 잘 견딘 것 같다.”고 했다. 부인과 결혼할 때는 집안형편이 어려워 물 한그릇 달랑 떠놓고 식을 올렸다고 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아들하고 테니스도 친다.“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면 젊어지지 않겠어예.”라며 활짝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부산 출생(본명 강상수). ▲1964년 부산 동성고 졸업. ▲1966년 동아대 경영학과 중퇴. ▲1968년 데뷔곡 ‘무정한 그대’ 발표. ▲1974년 록밴드 ‘현철과 벌떼들’ 결성. ▲1988년 KBS 가요대상,MBC 10대가수상. ▲1989년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1990년 KBS 가요대상,MBC 10대가수상, 고복수 가요제 대상, 제1회 서울가요대상 7대가수상. ▲1997년 국무총리표창(선행 연예인). ▲1999년 제36회 저축의 날 국민포장,KBS 올해의 가수상. ▲2002년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 특별공로상(대통령 표창). ▲2006년 목관문화훈장. ●주요 히트곡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내 마음 별과 같이, 사랑은 나비인가 봐, 들국화 여인, 봉선화 연정, 사랑의 이름표, 아미새 등.
  • ‘빈민의 아버지’ 3년째 투병중

    ‘빈민의 아버지’ 3년째 투병중

    빈민운동의 대부이자 ‘파란눈의 신부’로 유명한 정일우(본명 존 V 댈리·73) 신부가 3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 투병 중인 사실이 4일 뒤늦게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정 신부는 현재 부축 없이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고 숨이 차서 10분 이상 말하기도 힘든 것으로 전해졌다. 서강대 설립 주역인 프라이스 신부는 1966년 국내 최초로 노동문제 연구소를 열어 34년 동안 노동자들에게 노동법과 노조 활동, 단체교섭 방법 등을 가르친 국내 노동 운동의 선구자. 프라이스 신부와 함께 서강대에서 강의를 하던 정 신부는 1972년 학생들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잡혀 들어간 것을 계기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정 신부는 학생들 석방을 요구하며 8일 동안 단식했다. 이후 빈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뒤 학교를 그만두고 청계천과 양평동 판자촌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빈민운동에 투신했다. 빈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의식 교육을 하고 판자촌 철거 반대 시위를 주도하며 빈민의 ‘정신적 아버지’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시내 곳곳에서 철거작업이 진행되자 상계동과 목동 등지에서 철거민을 도왔고 이들의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잼’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정 신부 곁에는 항상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이라는 든든한 동지가 있었고 이들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아시아의 노벨상’인 막사이사이상을 공동 수상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Metro] 성남, 재개발 여파 전셋값 올라

    성남 구시가지 전셋값이 크게 올랐다. 재개발 여파로 인근 지역 전세 물건이 동이 났기 때문이다.25일 성남시와 부동산 중계업소들에 따르면 중원구 중동3구역과 은행2구역, 수정구 단대구역 등 1단계 재개발 원주민들이 한꺼번에 전셋집을 찾아 나서면서 단대동과 하대원동, 금광동, 신흥동 일대 주택 전셋값이 한 달 새 1000만∼2000만원 상승했다. 대한주택공사가 도촌지구에 철거민용 순환이주단지(국민임대주택)를 마련했지만 이주대상 세입자들이 이주단지보다는 인근 구시가지 일대 전셋집을 선호하면서 전셋값 폭등현상이 빚어졌다.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박정희 비판 잣대로 민주화세력을 비판하라”

    “박정희 비판 잣대로 민주화세력을 비판하라”

    박정희를 비판하는 동일한 논리로 민주화세력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내 진보진영의 대표적 이론가인 조희연(52)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가 주장의 발원지다. 지금까지 민주화세력이 비판 대상엔 가혹한 기준을, 자신에겐 관대한 ‘이중잣대’를 적용해온 측면이 있다는 조 교수의 문제의식은 그 자체로 논쟁적이다. 민주화세력에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조 교수는 최근 발간된 ‘마르크스주의 연구’ 2008년 봄호에 게재한 ‘헤게모니 균열의 문제설정에서 본 현대 한국 정치변동의 재해석’이란 논문에서 박정희의 몰락과 민주화세력의 지리멸렬을 동일한 틀거리로 분석했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흔히 민주세력은 적대자에 대한 기준과 자기편에 대한 기준을 이중적으로 적용해 왔으나, 박정희를 비판하는 방법론으로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다면 성찰의 폭이 훨씬 넓어질 것”이라고 논문 취지를 설명했다. 조 교수가 양측에 공통적으로 적용한 잣대는 ‘헤게모니 구축’과 ‘헤게모니 균열’이란 관점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과 산업화를 시대적 과제로 부각시킨 ‘조국근대화’ 담론, 개개인의 다양한 차이를 주변화시키고 하나로 통일시키는 ‘국민화 프로젝트’, 고도성장을 향한 ‘개발동원체제’ 등을 통해 대중의 동의기반을 확보하며 헤게모니를 구축할 수 있었다. 반면 현대아파트 분양과 와우아파트 붕괴로 대변되는 부동산투기와 부실공사,‘광주대단지 사건’으로 이미지화된 도시재개발과 철거민 양산, 전태일 분신으로 기억되는 피폐한 노동환경 등 고도성장의 환희가 사라지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국민으로서의 일체감은 붕괴됐고, 계급·계층간 불평등은 확산됐으며,‘민중’이란 저항적 주체가 출현해 헤게모니는 균열됐다. ●헤게모니 구축과 헤게모니 균열 분석 조 교수는 민주화세력도 동일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본다. 민주화세력은 반독재라는 대의 하에 ‘시민’이란 ‘민주개혁동맹’의 헤게모니 집단성을 형성했다. 그는 “국민의 집단성이 근대화의 주체로서 개발독재에 호명된 것이라면, 시민의 집단성은 반독재란 과제에 동의하는 민주개혁동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란 말로 민주화세력의 헤게모니 구축을 정의했다. 반면 지구화의 속도가 심화되면서 민주화세력 또한 피할 수 없는 헤게모니 균열에 직면했다는 게 조 교수 진단이다. 그는 “이제 시민은 없다.”고 단언한다. 이미 다른 종족이 돼버린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공통의 시민성을 공유하기 어렵게 됐고,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정주 외국인 사이의 차별적 대우는 시민의 인종적·종족적·민족적 분화를 촉진했다. 상류층은 일국적 엘리트를 넘어 글로벌 엘리트를 지향하고, 민주개혁을 지향하는 시민적 동질성은 깨졌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민주화의 성공적 진전으로 민주성과 투명성은 높아졌지만, 계급적으로 양극화된 대중은 삶의 고통이 증대되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됐다.”면서 “반독재 민주정부의 출현을 지지했던 여러 개인, 집단, 계급·계층조차도 배제와 소외를 느끼면서 지지를 철회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이 ‘국민’으로 포섭했던 사람들의 균열을 막지 못한 결과인 것처럼, 민주화세력의 지리멸렬 또한 ‘시민’으로 포섭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의 이탈과 균열 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 ●박정희와 민주세력의 다르면서 같은 점 박정희와 민주화세력은 속살은 다르나 유사한 외투를 입었다. 개발동맹과 민주개혁동맹,‘동원된 국민’과 ‘저항적 시민’이란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본질적으로 집단적 특성을 띤다. 집단은 배제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경제적 배제를 토대로 체제를 공고화했다. 민주화세력은 반독재라는 단일 의제 아래 여성, 환경, 성평등, 인권 등 소수자 문제를 배제했고, 지구화는 배제의 폐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조 교수가 보기에 한국 현대사에서 헤게모니 구축과 균열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 박정희가 구축해낸 ‘국민’은 반독재세력이 구성해낸 ‘민중’으로 분열·변화했다.1987년 이후엔 시민운동이 구성해낸 ‘시민’으로 바뀌었고,97년 이후 외환위기와 민주정부 집권기를 거치면서는 ‘시민의 분열’ 과정을 겪고 있다. 서로 매우 다르면서도 흡사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박정희 헤게모니의 붕괴 과정을 고찰하면 반독재 민주세력 헤게모니 붕괴의 전후가 보일 뿐 아니라 폭넓은 성찰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한다. 진보개혁진영의 자기성찰을 거듭 촉구해온 조 교수의 새 논문이 침체 국면을 맞고 있는 민주화세력에 어떤 울림을 줄지 관심을 모은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Seoul In] 용강아파트 녹지조성계획 공람

    마포구(구청장 신영섭) 용강동 시범아파트 철거와 연결녹지 조성을 위한 사업실시계획을 26일까지 공람한다. 철거민에 대한 서울시의 특별분양제도가 적용되는 마지막 사업으로 보상계획은 다음달 12일 공고된다. 늦어도 6월까지 보상협의를 추진하되 협의가 끝난 소유자부터 SH공사에 통보해 특별공급을 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 [도시재생 업그레이드] (중) 주민·자치단체 윈윈 순환재개발

    [도시재생 업그레이드] (중) 주민·자치단체 윈윈 순환재개발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 도촌지구에서는 뜻있는 행사가 열렸다. 성남 구 시가지 단대·중3동 재개발지구 주민들이 임시 거처할 ‘순환이주용 주택’에 보금자리를 트느라 부산했다. 재개발 공사가 끝나면 그동안 정 붙이고 살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입주 행사는 축제 분위기였다. 성남시에서 추진되는 26곳 재개발 사업지구 주민들은 이들처럼 이주할 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2000년 성남시와 대한주택공사가 순환재개발 방식의 도시정비사업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순환재개발 방식은 사업지구 인근에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거나 기존 주택을 활용해 재개발·재건축과 같은 도시정비사업으로 주택이 철거되는 주민을 이주용 주택으로 이주시킨 뒤 개발이 완료되면 현지에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방식을 말한다. 서울 신림동 재개발사업에서 시범 적용했다. 도시 전체를 순환재개발 방식으로 도시정비사업을 진행하는 곳이 있다.5일 성남시에 따르면 수정·중원구 일대 도시재정비 대상은 26개 지구 303.9㏊(92만평)에 이른다. 주거환경개선사업 6곳, 재개발사업 15곳, 재건축사업 3곳, 도시환경정비사업 2곳으로 구 도심 대부분이 정비 대상이다. 이곳에는 2020년까지 판교 신도시의 배에 이르는 6만여가구의 아파트가 새로 들어선다. 그런데 사업 방식이 일반 재정비사업과 다르다. 개별 지구마다 민간업체를 끌어들여 사업을 벌이지 않고 성남시와 주택공사가 공동 개발한다. 사업 속도도 주택시장·자금 동원 등을 감안해 순차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공사 착공에 앞서 가구주와 세입자가 임시 거처할 수 있는 이주 단지를 먼저 마련한 뒤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다른 지역과 다르다. 성남시가 순환재개발 방식을 선택한 것은 이유가 있다. 성남시는 1970년대 서울 청계천 철거민들이 이주 정착하면서 형성된 도시다. 많은 이주민들이 급하게 집을 짓다 보니 대지 지분이 60∼70㎡로 코딱지만하다. 산을 깎아 주택단지를 조성해 도로나 집터의 기울기가 심하고 교통·주차·공원과 같은 도시편익시설도 형편없을 정도로 부족하다. 재개발 대상 면적에 비해 조합원 수가 많아 사업 수익성도 떨어진다. 세입자 비율은 가옥주의 3배 가까이 된다. 이주 비용이 많이 들고 세입자용 임대주택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민간업체들이 사업 참여를 꺼릴 수밖에 없고 설령 뛰어들더라도 수익성 위주의 재개발사업 추진으로 주민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성남시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0성남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마련하면서 순환재개발 방식을 추진할 수 있는 공공기관과 손을 잡았다. 이도현 성남시 도시개발과장은 “비리와 사업 지연 등을 막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기관과 손을 잡게 됐다.”면서 “순환재개발 방식을 추진하는 데 선결조건인 이주용 주택을 확보한 주공을 파트너로 골랐다.”고 말했다. 주공은 성남시 도시정비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앞서 이주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순환재개발 사업 1단계(단대·중동3구역) 이주대상 가옥주 및 세입자를 위해 성남 도촌지구에 순환이주용 주택 2225가구를 지었다. 이주단지 입주를 희망하는 단대구역 550가구, 중동3구역 362가구 등 1082가구가 입주했다. 판교지구에도 1990가구를 추가로 짓고 있으며, 여수지구 등에도 추가 건설할 방침이다. 모두 9000여가구에 이르는 이주용 주택을 확보, 단계별로 추진되는 도시정비사업의 보상과 이주가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성남 구 도심은 다시 살아난다. 남한산성 일대는 여가기능 활성화구역으로 지정돼 유원지를 중심으로 휴식공간이 조성된다.2·3산업단지 주변은 생산기능 활성화구역으로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기술집약형 벤처기업단지로 탈바꿈한다. 단대오거리나 모란사거리는 교통 요충지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랜드마크를 조성하고 업무·상업지구로 변모한다. 정윤희 주택공사 도시재생사업처장은 “성남시 2∼3단계 재개발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순환이주용 주택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성남시와 협의해 위례(송파)신도시에도 이주용 주택을 충분히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순환재개발 확대 어떻게 최근 서울 강북의 서대문구 일대는 전세난을 겪고 있다. 대규모 뉴타운사업이 추진되면서 이사를 가야 하는 주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주변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순환재개발 사업으로 추진하면 이런 부작용이 줄어든다. 순환재개발 방식의 이점은 대규모 이주에 따른 전세 수요 급증과 전셋값 폭등을 막을 수 있다. 순환이주용 주택의 임대료는 인근 전셋값의 60∼70% 수준이라서 부담도 적다. 세입자는 최장 30년까지 장기 거주도 가능하다. 흔히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는 세입자 문제. 이주를 앞두고 집단 반발이나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나 사업이 지연되기 일쑤다. 그러나 순환재개발 사업으로 추진하면 조합원이나 세입자들의 이주 가옥이 미리 준비됐기 때문에 이주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자금과 전문 인력 투입으로 신속한 사업 추진도 가능해진다. 사업비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주 아파트가 제공돼 이주비와 이주비 지급에 따른 이자를 줄일 수 있어 사업비 절감으로 이어진다. 사업성이 커져 원활한 도시정비사업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주거생활 안정도 기대된다. 이주용 주택이 들어선 곳이 먼저 살던 곳과 같은 생활권역이라서 통근·통학도 가능하다. 조합원들이 같은 곳으로 이사를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정들었던 생활공동체를 깨뜨리지 않아도 된다. 단대지구 변상환 위원장은 “다시 원 거주지로 돌아와 정착하는 비율이 높아져 재개발 사업이 투기 일색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효과도 기대된다.”며 반겼다. 큰 차원의 도시계획으로 접근하고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업 추진이 쉽다고 작은 단위로 쪼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지 말고 재정비 지역을 넓게 포함시켜 순차적으로 개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야 수익성이 낮아 개발이 지연되고 저소득 주민의 주거환경이 열악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순환이주용 주택을 상설 운영할 수 있도록 도심에 일정 분량의 주택을 확보해야 늘어나는 도시 재생사업 추진에 애를 먹지 않는다. 순환이주 수요에 대응하는 한편 빈 집이 발생하면 다른 공공사업에서 나오는 철거민 임시 이주 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순환이주 주택을 필요로 하는 계층은 저소득층이다. 주거복지 차원에서 순환이주용 주택 건립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순환이주용 주택을 짓는 도시정비·택지개발·도시개발사업지구 등에는 용적률 완화,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필요하다. 순환이주용 주택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 사업지 인근의 국·공유지나 군부대 이전지 등을 우선 사용하거나 무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법 개정도 고려해볼 수 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신림1지구 순환재개발 이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관악산 아래 신림2의1지구와 신림1지구 재개발사업은 대한주택공사(주공)가 순환재개발을 도입한 시범 지역이다. 주공은 1994년 신림2의1지구 사업 시행자로 지정된 이후 인근에 주민들이 사업기간 동안 거처할 이주단지 아파트 960가구를 먼저 지었다. 원주민 802가구는 먼 곳으로 이사하지 않고 인근 이주단지로 옮겨 미래의 보금자리가 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기다렸다.2000년 8월 2의1지구 재개발 사업이 완료됨과 동시에 주민들은 이주단지에서 나와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주공은 이미 확보한 이주단지를 활용키로 하고 2000년 6월 인근 신림1지구 사업시행자로 나섰다.2002년 신림1지구 원주민 886가구는 신림이주단지 및 신림2의1지구 임대아파트로 이주시켰다. 신림1지구 관악산 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된 것은 2006년. 주민들은 이주단지에서 나와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신림1지구 원주민 1342가구 중 886가구(66%)가 신림이주단지 및 신림2의1지구에 다시 정착하는 효과를 보았다. 개발기간뿐만 아니라 개발이 끝난 뒤에도 주민들의 생활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다. 또 2개 지구 1688가구에 이르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진행됐지만 순차적 시행으로 대규모 이주에 따른 주변 전셋값 파동도 무사히 넘겼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