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천주교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핵실험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재선 도전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전양자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건의문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102
  • “아들은 난민, 아버지는 아니라니요” 김민혁군 친구들 간절한 호소

    “아들은 난민, 아버지는 아니라니요” 김민혁군 친구들 간절한 호소

    김군 부친 난민 불인정에 조목조목 반박“10년 기다린 꿈이 허망하게 부서졌다”“국민 아니면 아무렇게나 짓밟아도 되나”지난해 이란 출신 김민혁(16)군의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해 나섰던 10대 청소년들이 다시금 실명 호소문을 발표했다. 김군 아버지 A(53)씨가 난민 심사를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김군의 중학교 때 친구들인 이들은 법무부 결정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다시 공정한 판단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지난 8일 김군 아버지 A씨의 난민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김군이 미성년자임을 고려해 일시적인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 인도적 체류 허가자는 1년마다 체류 자격을 심사받아야 하고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박지민(잠일고 1학년)군 등 김군과 함께 아주중학교를 졸업한 학생 30명은 12일 실명을 적은 호소문을 발표했다.이들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의 결정에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아직은 아빠와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민혁이, 불치병 선고를 받은 시한부 환자처럼 얼굴이 어두워지는 민혁이 아버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계시다 휘청이는 선생님을 보며 돌아서야 했던 우리가 가슴에 품었던 입장문”이라고 밝혔다. 김군의 친구들은 지난해 5월부터 김군 부자의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하는 등 꾸준히 활동했다. 이들은 “1년 남짓의 시간, 여유를 낼 수 없던 시간과 싸우고 때로는 부모님의 걱정과 싸우고, 우리의 나약함, 이기심과싸우며 걸어왔다”며 “민혁이와 아버지가 10년을 기다려온 꿈이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부서진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김군 친구들은 출입국당국의 심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가톨릭 개종자로 이란에서 배교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동일한 사유로 난민 신청을 한 아들과 아버지에게 아들은 박해 위험이 있고 아버지는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며 “미성년자인 아들보다 어른인 아버지가 박해 위험이 더 크고 아들이 난민 인정을 받은 지난해보다 지금이 더 (여론의)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나온 정반대의 판정”이라고 주장했다.이들은 “우리 국민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짓밟아도 되는 것인지, 이 불공정을 진정 그대로 두실 것인지 묻고 싶다”고 호소했다. 김군 아버지의 난민 불인정 판정을 받은 뒤 이들은 “다시 싸우자고 격려하고 웃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며 울었다. 집에 가서, 학원에 가다가 울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힘이 많이 부족하지만 끝까지 싸우겠다. 그러니 누가 됐든 우리 슬픔 곁에 함께 해 달라고, 어둠 속에 버려진 이들을 감싸는 빛의 길을 걷자고 다짐하고 호소한다”고 말했다. A씨는 법무부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하기로 했다. A씨의 법률대리인 이탁건 변호사는 “이의신청을 통해 이번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지 타진해 보고 불가능하다면 행정소송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사업차 김군과 함께 입국한 A씨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A씨는 2016년 난민 신청을 했지만 ‘신앙이 확고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인정 처분을 받았다. 김군도 함께 난민 신청을 했다가 불인정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학교 친구들이 힘을 보태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천주교계 등도 지지하고 나서면서 지난해 10월 ‘종교적 박해 가능성’을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이란 난민’ 김민혁군 아빠 또 난민 불인정

    ‘이란 난민’ 김민혁군 아빠 또 난민 불인정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 힘입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란 출신 김민혁(16)군의 아버지 A(53)씨에 대해 인도적 체류 허가가 내려졌다. 난민 지위를 인정할 수는 없지만 한국 체류를 일시적으로 허가하겠다는 결정이다.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8일 김군의 아버지인 이란인 A씨에 대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적절한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 (이슬람교 국가인) 이란에 돌아가도 박해 위험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성년자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인도적 체류 허가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2016년 난민 지위를 신청한 후 불인정 처분을 받고 지난 2월 재신청서를 제출했다. 난민 신청자는 ▲난민 인정 ▲인도적 체류 허가 ▲난민 불인정 중 하나의 판정을 받는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난민 인정 요건을 충족하지는 않으나 강제 추방당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인도적 차원에서 임시 체류를 허가하는 제도다. 사회보장 혜택에서 제외되며 1년마다 체류 자격 심사를 받아야 한다. 반면 난민 지위가 인정되면 난민법에 따라 우리 국민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 A씨 측은 법무부의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할 예정이다. 김군은 “부디 난민으로 인정해 줘 더 나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짧게 입장을 밝혔다. 김군 부자와 동행한 오현록 아주중학교 교사는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김군은 난민으로 인정됐는데 아버지는 안 된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법률대리인 이탁건 변호사는 “이의신청을 통해 이번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지 타진해 보고 불가능하다면 행정소송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사업차 김군과 함께 입국한 A씨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A씨는 2016년 난민 신청을 했지만 ‘신앙이 확고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인정 처분을 받았다. 김군도 함께 난민 신청을 했다가 불인정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학교 친구들이 힘을 보태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천주교계 등도 지지하고 나서면서 지난해 10월 ‘종교적 박해 가능성’을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알아도 이재명 의사(李在明 義士)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완용을 처단하려다가 실패한 독립운동가 정도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이 지사는 우연히도 의사의 의거일이 자신의 생일과 같은 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매국노를 죽이려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교수형을 당한 의사에 대한 인식과 대접이 이렇다. 의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지만, 직계 후손이 없어 훈장을 국가보훈처가 보관하고 있었다. 고향도 평북 선천이라 생가나 일가붙이를 찾을 수도 없다. 형이 집행된 후 시신도 수습되지 않아 유골의 행방도 묘연하니 묘소도 있을 리 없다.잊혀진 의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은 종친회였다. 이 의사의 본관은 진안인데 진안 이씨는 전북 진안을 비롯해 의사의 고향인 평북 등지에 집성촌이 있다. 또한, 진안 마이산은 1907년 이석용이 조직한 호남 의병 창의동맹단의 집결지였다. 진안에는 1925년 유림들이 일제에 항거해 순국한 의사와 열사 등 79위를 배향한 사당인 이산묘(耳山廟)도 있다.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 두 봉우리의 서쪽이다. 이산묘 영광사(永光祠)에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과 더불어 이 의사도 모셔져 있다.그런 인연으로 의사의 동상과 기념관이 고향에서 천 리 길이 넘는 먼 곳 진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진안군청에서 마이산도립공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도로 오른쪽에 이재명 의사 기념관이 있다. 2001년 종친회와 정치인들이 이재명 의사 추모사업회를 결성해 진안읍 군하리 6500여㎡ 부지에 조성한 시설이다. 그러나 금요일에 찾아간 기념관과 사업회의 문은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관람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홍살문은 나무가 삭아 홍살이 떨어져 뒹굴고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이러니 방문객은 있을 리도 없고 간혹 지나가다 들러도 관람을 할 수 없다. 몇 해 전 수리를 요청하는 민원이 제기됐지만, 군청에서는 토지보상금 사용 승인이 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뜻을 모아 거액을 들여 지은 기념관이 보상금 갈등과 무관심, 예산 부족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기념관 옆 타향 땅에 세워진 의사의 동상은 더 쓸쓸해 보였다. 이 의사는 1887년 10월 16일 선천에서 태어나 8살 때 평양으로 이사 가서 그곳에서 성장했다. 의사는 평양 일신학교를 졸업하고 1904년 미국 노동 이민회사의 모집에 응해 미국 하와이로 갔다. 1906년 3월에는 공부를 더 할 목적으로 미국 본토로 옮겨가 안창호가 중심이 돼 창립한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이듬해 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에 공립협회는 매국노 처단을 결의하고 실행자를 선발했는데 거기에 지원한 사람이 바로 이 의사다.●이토 암살 실행 무산되자 이완용 죽이기로 의사는 그해 10월 9일 일본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다. 때를 엿보던 의사는 1909년 1월 평안도 순시를 떠난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고 평양역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거사를 실행하지 못했다. 안창호가 이토와 함께 다니던 순종 황제의 안전을 위해 만류했기 때문이었다. 이토는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에게 하얼빈역에서 사살됐다. 의사는 원래 목표대로 을사 5적을 비롯한 매국노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여러 동지와 야학당에 모여 이완용은 이 의사와 김병록· 이동수가, 이용구는 김정익이 죽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이완용이 12월 22일 종현 천주교당(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양심여학교 학생이던 아내 오인성씨와 마지막 작별의 밤을 지냈다. 오씨는 울지 않았고 남편의 거사를 만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날이 새자 김병록, 이동수와 함께 의사는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그날 오전 11시 30분쯤 의사는 성당 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갔다. 의사는 비수를 들고 달려들었다. 인력거꾼 박원문이 제지하려 하자 그를 찔러 숨지게 하고 이어 이완용의 허리 쪽을 공격했다. 혼비백산한 이완용이 달아나려 하자 다시 3곳을 더 찔렀다. 거사 직후 의사는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됐다. “오늘 우리의 공적(公敵)을 죽였으니 정말 기쁘고 통쾌하다”고 외치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이완용은 치명상을 입지는 않고 목숨을 건졌다. 이완용은 자신의 집으로 가서 의사를 불러 응급 치료를 받았다. 일본 경찰은 이 의사를 이완용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와 있던 농상공부대신 조중응이 “네가 흉행(兇行)을 한 자냐”고 물었다. 이에 의사는 눈을 치켜 뜨며 “너 조중응은 귀중한 인사를 이 모양으로 하대하느냐”며 오히려 추상과 같이 꾸짖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일경에게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니 권연초 한 개를 가져오라”고 하여 유유히 피웠다.●“내 목숨 빼앗을 수 있으나 충혼은 못 빼앗아” 경시청에서 조사를 받은 의사는 일경이 “공범이 있느냐?”고 묻자 “이러한 큰 일을 하는데 무슨 공범이 필요하냐. 공범이 있다면 2000만 우리 동포가 모두 나의 공범이다”고 말했다. 이듬해 4월 열린 재판에서도 “도와준 자를 말하라”는 일본인 재판장 스가하라에게 “이완용을 죽이는 것을 찬성한 자는 우리 2000만 동포 모두며 방조자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숙한 목소리로 역적 이완용의 8개 죄목을 거론하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내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으나 나의 충혼, 의혼(義魂)은 절대 빼앗지 못할 것이다. 한번 죽음은 슬프지 않다.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내 결코 죽어서 그 원한을 갚을 것이다.” 의사는 1910년 5월 18일 경성지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고 꼿꼿한 자세로 재판장을 꾸짖으며 이렇게 최후 진술을 했다. 부인 오씨는 ‘국적 이완용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았는데 우리 가부(家夫)는 왜 사형에 처하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의사는 총독부 체제 발족 바로 전날인 1910년 9월 30일 순국했다. 의사는 의거를 공모한 사람들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보호하면서 끝까지 단독 범행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병록 등 동지 10여명도 최고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부인 오씨를 성모여학교 교사인 함마리아의 소개로 만나 1907년 겨울 부부의 연을 맺었다. 오씨도 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변호인을 선임하는 등 남편 뒷바라지에 열성을 다했다. 남편이 죽은 뒤 오씨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중국 길림성과 상해 등지로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오씨는 귀국했다가 일경에 체포됐다. 증거와 단서가 없어 석방되었지만, 미행과 감시를 받았다. 오씨는 다시 망명을 도모하다 병을 얻어 29세에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 외과 의사의 집도로 수술을 받은 이완용은 53일 동안 입원했다. 순종과 고종은 이완용이 퇴원하는 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종을 보내 안부를 묻고 거액의 위로금을 보냈다. 전국의 관찰사와 군수들로부터도 위로금이 답지했다고 한다. 퇴원 후 충남 온양에서 휴양을 한 이완용은 총리직으로 복귀해 데라우치 통감과 한일합방조약에 서명했다. 그 4일 후 순종 황제로부터 대한제국 최고훈장인 금척대수훈장을 받았다. 이완용은 일제의 보호 속에 백작 작위를 받고 호의호식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1926년 68세로 사망했다. 사인은 의사의 칼을 맞아 폐를 다친 후유증이었다고 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구한말 우국지사’ 황현의 벼루·안경, 문화재 된다

    ‘구한말 우국지사’ 황현의 벼루·안경, 문화재 된다

    문방구·생활유물 나눠 문화재 등록 예고경술국치에 죽음으로 맞선 우국지사이자 구한말 4대 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린 매천(梅泉) 황현이 남긴 벼루와 안경 등이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황현의 유품을 ‘매천 황현 문방구류’와 ‘매천 황현 생활유물’로 나눠 각각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5일 밝혔다. 문방구류는 벼루, 벼룻집, 벼룻돌, 필통, 연적, 지구의, 도장 등 19점이다. 황현은 20대에 1만권의 책을 읽었노라 자부할 만큼 독서광이었고, 다양한 문방구류를 소장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 남긴 벼루 3점에는 그가 직접 지은 벼루명이 새겨져 있다. 생활유물은 안경과 안경집, 호패, 합죽선, 상투관, 얼레빗, 소쿠리, 표주박, 책장 등 35점으로 구성됐다. 황현은 심한 근시에 오른눈이 사시여서 20대 중반부터 안경을 썼다. 황현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에 한탄해 다음달 8일 ‘절명시’와 유서를 쓰고, 소주에 아편을 타서 마신 뒤 10일 56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1958년 흑산도에 세운 천주교 성당인 ‘신안 흑산성당’을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이날 밝혔다. 흑산성당은 선교뿐 아니라 교육,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펼쳐 낙도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종교 가르침대로 이웃사랑 실천했을 뿐인데 큰 파장”

    “종교 가르침대로 이웃사랑 실천했을 뿐인데 큰 파장”

    “기독교의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는 작은 몸짓일 뿐인데 파장이 크게 확산됐습니다. 한국 교회가 정도를 걷는 작은 발판이 됐으면 합니다.” 2016년 1월 한 개신교 신자의 김천 개운사 법당 훼손을 대신 사과했다가 학교 측으로부터 파면된 손원영(53) 서울기독대 교수. 다음달 6일 결심공판을 앞두고 “덤덤하다”면서도 학교로 빨리 복귀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손 교수는 불교계에 사과하고 지인들과 법당 복구 모금운동을 벌였다가 2017년 2월 파면당했다. 학교 측은 설립 정신과 신학적 정체성 훼손을 이유로 들었지만, 손 교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처사였다고 한다. 그해 6월 초 파면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으니 벌써 2년 2개월째 재판이 진행 중이다. 손 교수는 1심과 1심 가처분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지만 학교 측이 항소해 복직이 이뤄지지 않았다. 실직 상태로 몇몇 학교에서 강의를 이어가며 근근이 해결하는 생계의 어려움도 크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뜻을 폄훼하는 학교 측이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학생들에게 늘상 이론보다 이웃사랑의 실천을 더 강조했어요. 종교, 특히 불교와 개신교 간 갈등이 자주 발생하던 무렵 종교평화의 작은 실천차원에서 대신 사과하고 사찰 측에 복구의 도움을 주려고 나선 것 뿐인데….” 개인적으로 마음 고생이 많았지만 자신의 사건을 계기로 종교계 안팎에서 평화의 연대 움직임이 움트고 자리잡게 돼 고맙단다. 재판 과정에서 교수와 연구자, 일반 시민 2501명이 재판부에 손 교수의 종교 평화를 지지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신학자와 불교학자 20여명은 손 교수 사건을 계기로 종교 간 평화와 공존을 주제로 토론 모임을 시작해 3년째 이어오고 있다. 개신교, 불교, 천주교를 포함한 종교인들은 종교평화연대를 결성해 3·1운동 100주년과 상해 임시정부 탄생 100주년인 올해 공동행사도 진행했다. 손 교수는 얼마 전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한 사찰의 스님이 정중하게 인사하며 고맙다는 말을 전해 와 울컥했다고 한다. 손 교수는 학교 측을 상대로 힘겹게 법정 투쟁을 하고 있지만 서울기독대 재단이 속한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단 한번도 가벼이 여긴 적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 어떤 신학자보다도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의 으뜸 정신인 ‘예수님 사랑으로 돌아가자’는 환원주의를 존중하고 철저히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손 교수는 법정 투쟁의 와중에서도 교회를 뛰쳐나온 ‘가나안 성도’들에게 좋은 신앙처를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목회를 장소를 옮겨가며 잇고 있다. 글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사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부고] 김재선씨 모친상, 김동전씨 장모상, 김은수씨 시부상

    ●김재선(전 동국대 의료원 일산행정처장)·김재안 씨 모친상, 25일 오전 11시 30분,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장례식장 8호실, 발인 27일 오전 7시. 031-810-5478 ●양여선·수선·희선(제주세무서)·희영·희정·희숙·수산나씨 모친상, 김문택·정영교·이창윤(제주대학교)·김동전(제주연구원장, 제주대 교수)·장진규(한길내과의원 원장)씨 장모상, 25일 오후 10시, 제주 부민장례식장, 발인 29일 오전 9시, 장지 천주교 황사평 공원묘지. 010-2689-0405(이창윤) 010-3119-1854(김동전) ●김은수(삼성 라이온즈 구장운영팀)씨 시부상, 26일 오전, 대구 수성요양병원 장례식장 201호, 발인 28일 오전. 053-766-4444
  • 김호평 서울시의원, 한국종교계사회복지협의회 토론회 참석

    김호평 서울시의원, 한국종교계사회복지협의회 토론회 참석

    김호평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광진3)은 2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2019 한국종교계사회복지협의회(이하 협의회) 정책토론회」에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으로 참석했다. 한국종교계사회복지협의회는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 등으로부터 10개 종교단이 함께 사회복지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돼 운영 중이며, 교단의 법인은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서울시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권을 위해 ‘사회복지시설 종교행위 강요 특별 신고센터’를 지난 6월부터 2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종교행위 강요에 따른 인권침해를 주제로 개최됐다. 이날 토론주제로는 정성환 신부(한종사협 증경회장)의 ‘종교와 사회복지의 관계’, 김종선 사관(구세군가회복지연수소 선임연구원)의 ‘선진국가 사례와 서울시사회복지시설 사례’, 오수길 교수(고려사이버대 교수)의 ‘협치 방식의 문제 해결과 종교사회복지의 발전방안’이라는 내용으로 시작됐다. 토론에 나선 김 의원은 “서울시 인권위원으로서 사회복지시설에서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잘 인지하고 있다”며 “이들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사례나 또 다른 피해자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 한다”고 표했다. 이어 “토론회에서 청취한 여러 의견과 느낀점을 안고 일터로 돌아가 서울시에 잘 전달해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는 것”이라며 “서울시와 종교계 및 사회복지시설이 상생의 관계 속에서 협치를 통한 해결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능소화 흐드러진 골목…현진건의 비석은 표석만…

    [흥미진진 견문기] 능소화 흐드러진 골목…현진건의 비석은 표석만…

    윤동주문학관 뒤쪽 ‘시인의 언덕’은 구불구불했지만 햇볕이 나지 않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생각보다 별 어려움 없이 거닐 수 있었다. 부암동 골목길에서 멀리 보이는 석파정은 별서로 유명한 곳으로 안동 김씨 중의 권세가인 김흥근이 머물다가 이후 고종이 머물게 됐고 한국전쟁 이후엔 천주교의 고아원으로, 그 후엔 결핵원으로도 이용됐다고 한다. 무계원으로 들어섰는데 조용하면서도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투어 일행들은 이를 여러 각도로 사진에 담았다. 현진건의 집터는 표석으로만 볼 수 있었다. 그의 대표작 ‘운수 좋은 날’의 비극처럼 항일 운동 끝에 옥사를 겪고 그 후 부암동에 터를 잡았으나 사업도 망하고 광복 전에 사망했다는 한스러운 일생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다음으로 이른 환기미술관이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계속 발걸음을 이어 가며 예전 드라마의 촬영지들이기도 했던 카페나 집들을 구경했다. 능금마을에 들어서니 백사실계곡이 있고 물줄기를 한참 동안 따라가다 보니 이곳이 과연 서울 한복판 도심지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계곡과 숲의 모습이 이어졌다. 그 한쪽 끝에 다다르니 추사 김정희의 별서 터가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바위에 ‘백석동천’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 ‘동천’이란 신선이 노닐다 갈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곳을 의미한다고 하니 머물며 시화라도 쓰고 그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자하문로까지 가파르게 내려오면서 발걸음은 조심조심 잰걸음이었지만 곳곳에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이 자연스레 보이는 집들이나 능소화가 흐드러진 담장들을 보면서 눈 호강을 했다.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석파랑이었다. 아담했지만 흥선대원군이 사랑채로 썼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고 언덕 밑의 소전 손재형 별서와 어우러져 조화로웠다. 역사 속에서 우리 것을 소중하게 지켜낸 개인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 문화도 없을 것이란 생각에 감사한 마음으로 투어를 마쳤다. 김윤정 책마루독서교육연구회 연구원
  • [부고] 김산호씨 모친상, 예덕화씨 부친상, 한준희씨 별세, 박서진씨 부친상

    ●김산호(안양시청 교통정책과장)씨 모친상, 22일 낮 12시, 천주교 안양 중앙성당 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8시. 010-8651-4411 ●예덕화(매일신문 윤전제작국 부장)·덕승·정희·덕구씨 부친상, 최동희·최명가·도현정씨 시부상, 김순덕씨 장인상, 23일, 대구가톨릭대병원 장례식장 103호, 발인 25일 오전 8시. 010-7506-1486 ●한준희(한국어린이선교회 총재·한국선교몬테소리 회장)씨 별세, 이성재(성민교회 담임목사)씨 모친상, 23일 낮 12시께,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 25일 오전 4시30분. 02-2227-7566 ●박순홍·박순찬·박은희·박윤희·박은찬·박서진(㈜디앤아이플러스 대표이사)·박선희씨 부친상, 전은미씨 시부상, 김재록·길유찬(㈜지앤케이팩 대표이사)·윤동학씨 장인상, 23일 오후 7시,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 22호실, 발인 26일 오전 11시, 장지 분당 휴 추모공원. 02-440-8922
  • [부고]

    ●박덕주(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전 운영팀장)씨 부친상 22일 경북 경산시 경산옥산 장례식장, 발인 24일 (053)801-4444 ●정주일·재구·주영·경구(HDC현대산업개발 전무)·성구씨 모친상 23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경남 산청 호국원 (02)2650-2742 ●김산호(안양시청 교통정책과장)씨 모친상 22일 천주교 안양 중앙성당 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8시 010-8651-4411 ●한준희(한국어린이선교회 총재·한국선교몬테소리 회장)씨 별세 이성재(성민교회 담임목사)씨 모친상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 25일 오전 4시 30분. (02)2227-7566
  • [부고]

    ●박덕주(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전 운영팀장)씨 부친상 22일 경북 경산시 경산옥산 장례식장, 발인 24일 (053)801-4444 ●정주일·재구·주영·경구(HDC현대산업개발 전무)·성구씨 모친상 23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경남 산청 호국원 (02)2650-2742 ●김산호(안양시청 교통정책과장)씨 모친상 22일 천주교 안양 중앙성당 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8시 010-8651-4411
  • ‘서울스럽지 않은’ 경계의 땅에 내려앉은 한옥… 항일 숨결 속으로

    ‘서울스럽지 않은’ 경계의 땅에 내려앉은 한옥… 항일 숨결 속으로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2회 불광동과 은평한옥마을’ 편이 지난 13일 은평구 불광동과 진관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더위를 피해 불광역 구내에 집결한 참가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불광대장간과 천주교 불광동성당을 찬찬히 둘러봤다. 참가자들이 독일제 쌍둥이 칼보다 한 수 위라는 ‘불광’ 부엌칼을 사려고 줄을 서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됐다. 김수근이 설계한 붉은 벽돌 성당은 “왜 굳이 유럽까지 성당 순례를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행은 701번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진관사와 은평한옥마을까지 한걸음에 내달렸다. 답사 축지법(縮地法)이다.북촌 한옥마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층짜리 한옥마을길을 요리조리 걷는 기분이 삼삼했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수려한 조선 성종의 후궁 숙용 심씨 묘표는 압권이었다. 대리석 비석의 자태가 눈을 홀렸다. 걸레스님이자 화가 중광과 ‘소풍’의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 등 ‘도적놈 셋이서’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3명의 기인이사(奇人異士)를 모은 ‘셋이서 문학관’이 흥미진진했다. 백초월 스님의 얼을 느끼게 하는 진관사 태극기 비석을 거쳐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옥상 전망대 정자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초복 바로 다음날의 폭염도 북한산 바람 숲 아래에선 기를 펴지 못했다. 맵시 있는 개량 한복 차림으로 참가자들을 이끈 베테랑 정순희 해설사는 은평구의 중심 불광동과 문화예술촌으로 거듭나는 진관동에 서린 역사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냈다. 은평구는 ‘서울스럽지 않은’ 옛 풍광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했던 서울의 서북쪽 가장자리 고을이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가장 늦게 편입된 막내 자치구이기도 하다. 아파트의 물결로 뒤덮이기 전까지 5000기가 넘는 무덤이 산재한 땅이었다.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언급한 대사찰 청담사의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나오고 서울에서 처음 통일신라시대 기와 가마터가 발견된 곳이다. 무덤과 유물은 조선시대 장례문화와 매장 풍습을 밝혀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해발고도 132m의 나지막한 진관동 이말산 기슭에는 역관과 내시, 궁녀의 무덤이 수두룩했다. 중국으로 가는 의주로(통일로)의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이리라. 의주로는 서울 서대문에서 의주까지 1080리 길에 이르는 조선의 제1대로였다. 중국과의 조공무역에서는 역관의 역할이 컸다. 지금은 전문직인 동시통역사이지만 조선시대 역관은 중인 신분의 대물림 직업이었다. 인동 장씨, 연주 현씨, 남양 홍씨, 우봉 김씨가 역관가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역관은 단순 통역관이 아니라 외교전문가였고, 무역상이었으며, 외국어 교육가였다. 때론 스파이 노릇도 마다치 않았다. 천주교와 실학이 이들의 손과 입을 통해 국내에 전파됐다. ‘실학파의 아버지’ 유대치, 오경석도 역관 출신이었다. 이말산은 역관을 93명이나 배출한 우봉 김씨의 선산이기도 했다. 조선 말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국제인’ 김득련의 묘가 남아 있다.내시와 궁녀의 무덤이 대거 발굴돼 이목을 끌었다. 진관내동 중골마을 백화사 옆에 이사문(李似文)을 시조로 모시는 이사문공파의 내시 분묘 45기가 실재했다. 국내 최대의 내시묘역으로 ‘내시들의 정원’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다. 광해군 13년(1621)에 세워진 정2품 자헌대부 김충영의 묘가 가장 오래됐다. 왕과 왕비의 명령을 전하는 최고의 요직 대전 승전색을 지냈다.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14기 중에는 종1품 숭록대부 2기, 종2품 상선의 묘 5기를 비롯해 정경부인에 오른 내시부부 합장묘도 7기가 있었다. 2003년 내시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뒤 4억 8000만원에 조경업자 손에 넘어가 파헤쳐졌다. 석물도 사라지고 상선 노윤천의 묘 등이 봉분도 없이 남았다. 현종의 유모였던 상궁 옥구 임씨, 임실 이씨의 묘도 마찬가지다. 사후 고향에 갈 수 없었던 내시와 궁녀가 묻히기에 딱 좋은 땅이었다. 이말산은 한양 사대문을 둘러싼 그린벨트지역인 사산금표(四山禁표)를 막 벗어난 지역이다. 궁에서 가까운 거리였다. 살아서 권력이 있던 자가 죽으면 묻힐 수 있는 공간이었다. 북한산 둘레길 내시묘역길에는 아쉽게도 내시묘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은평은 경계의 땅이다. 개성에서 서울로 들어서는 경계이자 서울과 고양, 양주 세 지방이 만나는 접경이다. 옛 조선 한성부 북부의 상평방, 연은방, 연희방이 도성의 서북경계였는데 이 중 연은방(홍제원계, 양철리계, 불광산계, 신사동계 등)과 연희방(수색리계, 증산리계, 성산리계, 망원정계 등)의 일부가 오늘의 은평구에 속한다. 18세기작 ‘해동지도’나 19세기작 ‘광여도’ 등을 보면 진관내동과 진관외동은 서울의 서북 외곽인 은평구의 가장 끝에 북쪽을 향해 돌아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수봉에서 비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내려가다가 서오릉이 안겨 있는 효경봉에서 북으로 한 갈래가 갈라져 나가 창릉천을 맞는다. 이 줄기가 진관내동과 진관외동의 경계를 이룬다. 비봉에서 나지막한 산줄기 하나가 서북으로 길게 뻗어나가 한복판에 낮은 봉우리를 만들었는데 이게 이말산이다. 북쪽 창릉천의 낮은 지대가 진관내동이고 남쪽의 비봉에서 박석고개로 이어지는 큰 산자락 쪽이 진관외동이다. 1949년 고양군 일부가 서울시에 편입됐으나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 진관내리, 진관외리는 1973년까지 이어졌다. 서대문구 은평출장소를 거쳐 1979년에야 은평구로 승격됐다. 신라의 청담사, 고려의 신혈사·삼천사와 조선의 진관사는 천년고찰이다. 진관사는 1011년 고려 현종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진관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터에 큰 절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 세웠다. 태조 이성계도 물과 육지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에게 제사 지내는 수륙재(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26호)를 진관사에서 봉행토록 했다. 진관사의 신미대사가 첫 한글서적 중 하나인 ‘석보상절’을 펴낸 점과 세종이 성삼문·신숙주·박팽년·이개 등 집현전 학사들이 머물면서 훈민정음을 연구토록 경내에 독서당을 세워줬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진관사가 한글창제 비밀 작업 공간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민족대표 33인에 서명한 만해 한용운, 대각사의 백용성 스님과 함께 조선 불교계의 독립운동 선봉 백초월 스님의 본거지였다. 백초월 스님은 진관사와 진관사의 포교원인 마포 극락암을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내 비밀조직인 연통부의 불교계 연락본부로 사용했다고 한다. 2009년 진관사 칠성각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진관사 태극기와 인쇄물은 백초월 스님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태극기 보자기는 인쇄물을 싸고 있었는데 일장기 위에 먹물로 태극과 4괘를 그려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삼일운동 당시 사용된 태극기 대부분이 일장기에 덧칠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양식과 동일한 점 등이 인정돼 등록문화재 제458호로 지정됐다. 인쇄물은 삼일운동 직후 국내외 독립운동 현장에서 발간된 상하이판 독립신문, 신대한,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등 6종 16점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발간한 신대한 2호와 3호는 유일본이다. 학계에서는 진관사의 태극기와 자료는 백초월 스님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백초월이 일본에서 체포돼 압송된 1920년 3월 이전 급히 숨겼다는 것이다. 1944년 청주형무소에서 순국하기 전까지 24년 세월은 체포와 옥고로 점철됐다. 진관사 태극기가 90년 만에 빛을 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진관사 진입로는 ‘백초월길’이라고 명명됐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13회 부암동 능금나무길 ■일시 및 집결장소:7월 20일(토) 오전 10시 윤동주문학관 앞(창의문)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부고] 박원용씨 모친상, 차재순씨 부친상, 정우득씨 별세

    ●박원용(부경대 사학과 교수)·박원빈(약수교회 담임목사)·박경희(한국번역문화원 출판본부장)·박경원씨 모친상, 4일 오전 8시35분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2호실, 발인 6일 오전 7시40분, 장지 청량리 천주교회 공원묘지. 02-3010-2262 ●윤은숙씨 남편상, 차재순(전 한국노바티스 부장)·차재빈(강남문화재단 사원)씨 부친상, 4일 낮 12시40분께,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8호실(5일 오전 8시부터 2호실), 발인 6일 오전 7시30분. 02-3410-6908(5일 오전 8시부터. 02-3410-6902) ●정우득(포항동지재단 설립·장로)씨 별세, 영식(계명의대 석좌교수) 씨 부친상, 김인수(계명대 영문과 명예교수)·전진만(파이버-테크닉 대표) 씨 장인상, 4일, 대구 동산병원, 발인 6일 오전 8시. 053-250-8452
  • [부고] 홍인기씨 부친상, 현홍근씨 부친상, 이용호씨 모친상

    ●홍인기(한국증권금융 상무)·홍명희(애니휘트니스 대표)·홍춘기(대전시 노동권익센터장)씨 부친상, 4일, 아산충무병원장례식장 102호(충남 아산시 문화로 381), 발인 6일 오전 7시, 장지 천주교 성환공원묘원. 041-541-4448 ●현홍근(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 서울대치과병원 의료정보빅데이터센터장)·현본(강사)씨 부친상, 4일 오전 5시 44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 6일 오전 9시, 영락동산. 02-2072-2018 ●이용호(창원시 시민소통특보)씨 모친상,4일 오전 5시 10분, 경남 창원시 창원시립상복공원 2호실, 발인 6일 오전 08시 30분. 055-712-0892
  • [세종로의 아침] 조계종 패싱/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조계종 패싱/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절집에 가면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문구를 자주 만나게 된다. 절절한 사연이 담긴 고사이지만 대체로 ‘발밑을 잘 살피라’는 경구로 통한다. 법당이나 선방 앞에 널려 있는 신발과 포개지지 않게 내 신발부터 잘 정리하라는 당부 말이다. 출가자들도 속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질서와 현실의 직시가 중요함을 보여 주는 경구가 아닐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나부터 신중히 처신하자는 마음 다잡이의 경구로 이 말을 자주 쓴다. 한국 불교 맏형 격인 조계종이 정부를 향해 연신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불교문화유산 정책이 잘못됐다며 ‘심하게’ 분통을 터뜨린다. 문화재위원 스님 축소에 볼멘소리를 내더니 며칠 전엔 문화재 관람료 논란을 해결하라는 폭탄선언을 내놓았다. 문화재위원의 경우 분과별로 1명씩 위촉했던 문화재위원 스님 8명을 갑자기 5명으로 줄인 데 대한 불만이다. 조계종 측에서 추천하면 위촉할 준비가 돼 있다는 문화재청의 해명에도 원성이 가라앉지 않는다. 문화재 관람료 사태에 대한 반발은 더 강도가 높다. 국립공원에 편입된 사찰 소유 부지에 대한 보상을 하라는 요구다. 정부가 보상을 거부하면 국립공원 지정 해제를 포함한 헌법소원까지 불사하겠단다. 최근 연발한 조계종의 불만은 불교계의 지분과 권리의 박탈에 대한 항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불교와 관련된 우리 문화유산은 상당하다. 국가 지정 국보·보물의 60% 이상이 불교문화재인 상황에서 불교계의 문화유산 관리·보존 노력과 공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정부가 불교계를 폄훼하고 무시하려 든다는 반발인 것이다. 이른바 ‘불교계 패싱’이다. 따져 보면 새 정부 들어 ‘불교계 패싱’에 대한 불만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주요 참모진과 내각의 천주교 인사 편중이며 자연공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과정의 조계종 배제, 남북 회담 당시 천주교 인사들만 북측 인사 접촉…. 지난 25일 시작된 조계종 중앙종회 임시회도 그 연장선에 있다. 종회 개회 전부터 종단에선 ‘불교계 패싱’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실제로 첫날 회의에선 대정부 성토가 이어졌다. “불교문화재와 불교문화유산이 일반 사회에서조차 문화재 주요 정책에서 배제되고 소외되고 있다는 불편함이 점점 커져 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불교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향후 제대로 된 불교문화 정책이 수립, 집행되는지 분명하게 지켜볼 것”…. 불교계의 불만과 성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항변과 권리 주장이어야 한다. 점차 줄어드는 불교 신자와 출가자 수는 불교계의 위기로까지 여겨지는 추세다. 그 축소의 원인으로 일탈과 본분 망각을 꼽는 이들이 많다. 조계종 안팎의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이다. 문화재 관람료와 관련한 종단 부지 보상 요구에도 비판이 쏟아졌다. 불교·시민사회 단체들은 오히려 조계종단을 향해 사과할 것을 주문했다. ‘줄탁동기’(?啄同機).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선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선종의 공안이다. 일반의 보편 인식과 발밑을 조심스레 살피는 종교의 신중함이 어울릴 때 권리 주장과 요구도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kimus@seoul.co.kr
  • “한반도 평화기원” 2만명 임진각 미사

    “한반도 평화기원” 2만명 임진각 미사

    25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대규모 미사가 열렸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가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을 주제로 봉헌한 미사에선 성직자와 신도 등 2만여명이 성가와 평화 기도를 바쳤다. 전국 규모의 한반도 평화기원 미사가 열리기는 2011년 이후 8년 만이다. 미사는 서예가 국당 조성주씨의 대붓 서예 퍼포먼스에 이어 파티마 성모상을 앞세운 주교단의 입장으로 시작됐다. 파티마 성모상은 금관을 쓰고 묵주를 든 모습으로 평화를 위한 기도의 상징, ‘평화의 모후’라 불린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추기경이 미사를 주례하고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와 한국천주교 주교단이 공동 집전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김용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차관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한반도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한 날이 꼭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한반도 평화가 완성되는 날까지 국민들과 함께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만나고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이기헌 주교는 호소문을 통해 “남북 정상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조속한 시일 내에 무조건 대화를 재개하길 바란다”며 북미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둘러싼 견해차를 극복하도록 촉구했다. 미사에선 평화 상징물로 특별 제작된 한반도기가 봉헌돼 눈길을 모았다. 원주를 비롯해 8개 교구 신자들은 한반도기를 게양하고 입을 모아 ‘우리의 소원’을 합창했다. 이날 모인 봉헌금은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이번 평화기원 미사에 북한 조선가톨릭교협회, 평양 장충성당 관계자의 초청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박미경의 사진 산문] 공소와 공소

    [박미경의 사진 산문] 공소와 공소

    ‘작은 성당’이라 불리는 공소(公所)는 본당보다 작은 천주교회를 뜻한다.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일 년에 두 번 본당에서 신부가 찾아와 미사를 집전한다. 공소의 대부분이 농촌 지역, 그것도 산간지대에 위치한 만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당 건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소박한 공간이 대다수다. 그러나 역사 이래 마을 주민들, 즉 공소 교우들이 스스로 힘을 합쳐 유지해 온 것이니만큼 그 신실함과 경건성은 크고 웅장한 성당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공소는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첫 모습으로, 한국 천주교회 200년 역사에서 반 이상이 공소 시대였다. 천주교회의 모태이자 민초들의 삶이나 신앙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간직된 곳으로서 보존되고 기록돼야 할 가치가 있는 대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공소들이 농촌 인구가 줄고 재정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다 세상의 무관심까지 더해지면서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다. 사진가 김주희는 어느 해 자신이 사는 전라북도 땅에 전국에서 공소가 가장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천주교전주교구사 연구자료집’(호남교회사연구소ㆍ1986년)에 따르면 1911년까지 전라북도에 위치한 공소 수는 473개였다. 신해박해,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등 네 번의 큰 박해가 이어질 때, 전라도ㆍ충청도와 같은 이웃 지방에서 비교적 평온한 전라북도 지역으로 수많은 신자가 유입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모임을 이어 갔던 작은 신앙공동체들이 박해의 폭풍이 잦아든 이후 공소의 형태로 이어진 것이다. 사진가는 멀지 않은 역사에 그렇게나 많았던 공소들이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100여개 남짓 남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세례명이 가브리엘라인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그녀는 이 공소들을 사진으로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신조차 기록하지 않으면 공소들이 모두 공소(空所)가 돼 가뭇없이 스러져 갈 것만 같았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안의 ‘덕림공소’였다. 그 작고 소박한 공소에서 사진가는 모진 박해에도 배교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던 사람들을 떠올렸고, 먹은 마음을 다시금 단단히 다졌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니, 스스로 당위가 없으면 해나가기 어려운 일이었다.덕림공소를 시작으로 3년여 동안 진안 ‘어은동공소’, 장수 ‘수분공소’, 정읍 ‘신성공소’ 등 이미 폐허가 된 공소를 포함해 전북의 96개 공소 중 70여 공소를 사진에 담았다. 오롯이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건물 외관들을 아카이빙으로 차곡차곡 기록하고, 허물어져 가고 있는 공소들은 간신히 남아 있는 형체나마 사진으로 ‘남겼다’. 내부에 깃드는 빛, 그 안의 성물과 사물들을 찍었다. 농사일로 그을린 얼굴 위에 씌어져 그 흰빛이 유난한, 미사포를 쓴 신자들의 초상도 담았다. 복식으로 드러나는 현재의 시간성이 아니라면, 옛 시절의 민초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빛의 예술인 사진으로 빛의 공동체를 기록하는 일이 사진가에게는 하느님의 섭리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도의 시간이었으리라”고 한 최연하 평론가의 말처럼 아마도 이 작업은 사진가에게 ‘순례’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 스스로 사진들에 붙인 제목이 ‘공소순례’다. 이 사진들은 또한 보는 것만으로도 공감(共感)을 일게 하는 사진의 오랜 순기능을 통해 보는 이들까지도 고요히 ‘순례’의 길로 이끈다.
  •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주 4·3’ 첫 행사 눈길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4·3’의 아픔을 되새기고 인권적 의미를 조명하는 행사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다. 20일(현지시간) 오후 유엔본부에서는 ‘제주4·3의 진실, 책임 그리고 화해’라는 제목의 인권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200명에 가까운 참석자들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유엔주재 한국대표부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 강창일 국회의원실,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주관했다. 자료 영상과 기조 발제, 패널 토론, 유족 증언 순으로 3시간가량 진행됐다. 올해로 71년째인 제주4·3을 다루는 토론회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만큼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당시 미군정 공동 책임론이 잇따라 거론됐다.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가 기조 발제를 맡았다. 강 주교는 “제주4·3은 미국과 한국의 정부 당국 이 저지른 인권과 인간 생명에 대한 대대적인 위반이자 범죄였다”면서 “이번 심포지엄의 목적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 희생의 역사를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퓰리처상 수상자인 찰스 헨리 전 AP통신 편집부국장, 유엔인권이사회 강제실종위원인 백태웅 하와이대 교수 등이 패널토론에 참여했다. 커밍스 교수는 “잔혹한 대학살이 어떻게 제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 미국은 답변해야 한다”며 당시 미군정의 책임론을 비중 있게 거론했다. 헨리 전 부국장은 “당시 서울에 특파원을 뒀던 AP통신과 뉴욕타임스는 4월 3일부터 몇 달간 총 30~40차례 보도했지만 철저하게 냉전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면서 “특히 미군과 전혀 무관하다는 식으로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백태웅 교수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미군 작전 당사자들이 어떤 형태로든 포괄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광범위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4·3 당시 조천읍 북촌 학살사건 유족인 고완순씨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눈부시게 반짝거렸던 붉은 피가 너무나 선명하다.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지금도 눈을 감으면 지옥 같던 그 날이 마치 어제처럼 떠오른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세 살배기 남동생 등 일가족 6명을 잃은 고씨는 “제주4·3은 미군정 기간 제주 주민들에게 가해진 인권유린·학살 사건”이라며 “평화와 인권이라는 유엔의 설립 취지에 맞게 미국이 진실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3대 종교 사회적 경제 활성화 기원 공동행사

    3대 종교 사회적 경제 활성화 기원 공동행사

    20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2019년 3대 종교(가톨릭·기독교·불교) 공동행사 ‘자비와 나눔 행, 사회적경제 문화축제’에서 이재갑(왼쪽 세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과 참석자들이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기원하는 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최혁진 청와대 사회적경제 비서관, 이 장관, 림형석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교단 총회장, 원행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유경촌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3대 종교 사회적 경제 활성화 기원 공동행사

    3대 종교 사회적 경제 활성화 기원 공동행사

    2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19년 3대 종교 공동행사 ‘자비와 나눔 행, 사회적경제 문화축제’에서 이재갑(왼쪽 세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과 원행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유경촌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 림형석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교단 총회장 등이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기원하는 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