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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申德均 신동방 명예회장 89세로 재계 최고령/98년 노동경제연감

    ◎원일특강 박성진 전무는 25세… 최연소 임원 ‘1942년생,서울대 출신에 경영학 전공,이사급으로 서울 강남 대치동에 살며 취미는 골프,성은 金씨’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7일 발간한 ‘98년판 노동경제연감’에서 눈에 가장많이 띄는 인사들의 프로필이다. 연감에 수록된 5,100명의 재계인사 중 최고령은 申德均 신동방 명예회장으로 올해 만 89세(1909년생).1915년생인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0번째 고령자였고 최연소자는 朴成鎭 (주)원일특강 전무로 만 25세(1973년생)였다. 연령층은 50대가 57.2%로 가장 많았다.성씨는 金씨가 전체 19.9%로 1위였고 다음이 李씨 16.6%,朴씨 7.5%의 순.葛 唐 施 邢씨 등 희귀성도 있었다. 거주지는 서울이 57.7%로 제일 많았고 경기(13.4%) 대구(6.1%) 부산(5.0%)순이었다.서울에 사는 2,945명 중에는 강남구에 811명이,그 중에서도 대치동에 191명이나 살았다. 92.4%가 대졸 이상이며 고졸과 전문대졸은 각 3.8%,0.6%.출신대는 서울대 24.8%,고려대 12.3%,연세대 11.8%,한양대 9.9%의 순이었다.전공은 경영학이 19.7%,경제학 10.6%,법학 6.8%,기계공학 5.6% 등이었다. 종교를 갖고 있는 인사는 1,883명.기독교가 42%로 가장 많았고 불교 34.5%, 천주교 21.5%였다.취미는 골프(24%)와 등산(23.5%)에 이어 바둑 독서 낚시였다. □재계인사 평균 이력 ·42년생 ·서울대 ·경영학 ·이사급 ·기독교 ·대치동 ·골프 ·金씨
  • 文奎鉉 신부 기소/잠입·탈출 혐의 추가

    서울지검 공안2부(申泰暎 부장검사)는 14일 방북 기간에 통일대축전에 참가하는 등의 혐의로 구속된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文奎鉉 신부(49)에 대해 국가보안법의 찬양 및 이적동조 혐의 외에 잠입·탈출 혐의를 추가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文신부가 정부의 방북승인 조건을 의도적으로 어겨 정치성 행사에 참석,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한 만큼 잠입 및 탈출 혐의를 추가했다”고 밝혔다.
  • 金 대통령,鄭鎭奭 주교 오찬

    金大中 대통령은 31일 낮 청와대에서 천주교 鄭鎭奭 대주교와 오찬을 함께 하며 제2건국을 위한 총체적 개혁에 종교계가 협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 文奎鉉 신부 구속/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서울지검 공안2부(申泰暎 부장검사)는 27일 방북 기간중 통일대축전 행사 등에 참석한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소속 文奎鉉 신부(49)를 국가보안법 위반(찬양 고무 등) 혐의로 구속했다. 서울지법의 崔重現 영장전담판사는 문신부의 영장실질심사에서 “文신부가 입북하기 전 북한측 관계자에게 보낸 팩스전문을 수사기관에 일부 삭제해 제출하는 등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文신부가 방북 하루 전인 지난 10일 북한 조선천주교교인협회 중앙회 회장 장재철 앞으로 ‘북측의 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의 팩스문건을 보내 종교행사로 국한된 방북승인 조건을 어겼다고 밝혔다.
  • 文奎鉉 신부 사전영장/보안법 위반

    ◎법원,구인장 발부… 오늘 실질심사 서울지검 공안2부(申泰暎 부장검사)는 26일 방북 기간중 통일대축전 행사 등에 참석한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소속 文奎鉉 신부(49)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찬양 고무)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지법은 이와 관련,이날 하오 文신부에 대한 구인장을 발부했으며 27일 영장 실질심사를 벌일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文신부가 방북 중 주도적으로 친북활동을 한 사실이 드러난데다 이번 사건이 앞으로 방북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엄중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文신부는 지난 15일 북한 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하고 金日成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방명록에 金의 영생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文신부와 함께 통일대축전에 참가한 전종훈 신부에대해서는 타의에 의해 참가했던 것으로 밝혀져 사법처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나머지 사제단 일행 7명은 통일대축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文신부는 남북 천주교 교류와 평양성당 건립 10주년 기념미사 봉헌 등을 위해 방북하겠다며 통일부의 승인을 얻어 신부 8명과 함께 지난 11일 방북했다가 19일 귀국했다.
  • 24∼29일 ‘아시아… 인권과 교회’ 국제포럼

    ◎신학적 관점서 본 경제위기/노벨상 수상 호르타 개막 강연/국제적 연대 통해 대응방안 모색 전세계 100여 국가에 강요되고 있는 ‘IMF식 구조조정’의 신학적 본질에 대한 논의를 위해 각국의 가톨릭 경제학자와 신학자,사제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우리신학연구소(소장 김항섭)와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팍스 로마나 ICMICA)이 24∼29일 서울 서강대와 용산구 한남동 꼰벤뚜알 성프란치스코회관에서 개최할 ‘아시아 경제위기와 교회의 역할­IMF,인권과 교회’란 주제의 국제포럼이 그것.30여명의 관련 외국인사와 국내학자 및 성직자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이 포럼은 첫날 9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동티모르 인권운동가인 조세 라모스 호르타의 개막강연과 제3세계 네트워크 소장인 마틴 코(말레이시아)의 ‘아시아 경제위기와 교회의 역할’ 강연에 이어 외국인 노동자,실직자 및 해고노동자,여성노동자 등 주제별 현장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이어 둘째날부터는 아시아의 경제위기를 신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며 다즈워드 IMF한국지부장과 조중완 UNDP(유엔개발계획)기획관이 국제기구의 역할에 대해서 설명한다. 또 경제위기에 따른 각국 시민사회와 교회의 대응,외채탕감을 위한 캠페인과 국제 금융기구개혁을 위한 NGO(비정부기구)의 노력,각국 교회및 시민사회의 대안에 대해서도 논의한다.마지막날인 29일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폐막한다. 포럼에는 이밖에 블루엔 만삽주교(태국·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마틴 시투무랑 전 주교회의 사무총장(인도네시아),앙트와네 존탁 정평위 총무(프랑스),엔리케 발렌시아 교수(멕시코),바티칸 정평위 마틴주교 등이 참가한다. 국내 참가자는 오경환 인천교구 총대리신부,광주 환경사제모임 이영선 신부,구미근로자센터 소장 허창수 신부,천주교 인권위원장 김형태 변호사,이철순 여성노동자회장,윤순녀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회장,정재돈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변진흥(인천가톨릭대) 이정옥(효성가톨릭대) 조희연 교수(성공회대) 등이다. 행사를 주관하는 김항섭 우리신학연구소장은 “오늘날 경제위기의 주범은 시장경제에 대한맹신에서 비롯된 물신숭배로 이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도전”이라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논리가 인간과 자연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신학적으로 분석하고 국제적 연대를 통해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 문규현·전종훈 신부 소환/통일대축전 참가 등 확인

    안기부는 20일 방북 기간중 통일대축전 행사 등에 참석한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소속 文奎鉉 신부(49)와 전종훈 신부(42) 등 2명을 소환,북한에서의 행적 등에 대해 조사했다. 안기부는 文신부 등이 방북기간에 북측의 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하고 金日成 묘지를 참배하는 등 종교 교류로 제한한 방북승인 조건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민주열사 열전:3/崔鍾吉 서울 법대 교수(정직한 역사 되찾기)

    ◎“유신 사죄” 외친 참지식인/법학자답게 ‘정의의 저울’로 독재에 항거/반공주의자… 간첩혐의 조사받다 의문사 崔鍾吉은 서울대 법대 교수였다.그는 70년대초 유신독재를 공공연하게 비판했다.그러던 어느날 그의 비판의 소리가 사라졌다.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 의문 속에 죽었기 때문이었다.공작정치를 자행하던 중앙정보부는 그를 간첩이라고 발표했다.독재권력에 의해 그는 간첩으로 왜곡됐다.그러나 죽은 사람은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유럽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수사중이었던 중앙정보부는 73년 10월25일 “구속수사를 받던 崔鍾吉 교수가 간첩혐의를 자백하고 양심의 가책을 못이겨 화장실 창문을 통해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했다.崔교수가 사망한지 6일 뒤의 발표였다. 그러나 당시 유가족은 물론 崔교수를 아는 사람중 중앙정보부 발표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대부분 고문으로 죽자 자살로 위장했을 것이라고 믿었다.가족들은 검시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장례마저도 소리없이 비밀리에 치러야 했다.그의 죽음은 張俊河 선생의 죽음과 더불어 유신시대 최대 의문사 사건이다.그의 의문사는 독재권력의 인권유린과 민주화 탄압 및 공작정치의 실상을 증언하고 있다. 사건 1년여 뒤인 74년 12월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崔교수가 전기고문 도중 조작 실수로 심장파열을 일으켜 사망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그러한 의혹은 당시 모 신문사 기자가 취재도중 입수해 사제단에 알려온 정보를 바탕으로 제기됐다”고 사건 당시 정보부 직원이었던 P씨가 전한다.P씨는 사제단에 있던 한 신부의 고등학교 1년 선배다.그는 “앞서 열린 1주기 추도식때도 崔교수 죽음의 의혹이 제기됐었으며 몇개 신문의 초판에 실렸던 관련 기사가 밤사이 누락됐었다”고 전했다. 사제단은 88년 10월6일 서울지검 김두희 검사장 앞으로 崔교수 사인 진상규명을 위한 고발장을 제출했다.사제단은 “崔교수 사인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간첩 누명이 씌워졌다”고 주장하고 당시 사건 관련자로 이후락 정보부장 등 22명을 고발했다.崔교수 죽음의 의혹이 사건발생 15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민의 관심사로 등장했다.고발은 사건 당시 정보부 감찰실 직원으로 있던 崔교수 동생 종선씨(미국 거주)가 비밀리에 작성했던 수기가 바탕이 됐다.그는 사건 후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친구가 있던 세브란스 정신병동에 약 1주일간 입원하며 수기를 썼다. 그러나 수사는 겉돌았고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일인 10월18일 “崔교수가 타살됐다는 증거도,자살했다는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유족들과 사제단의 자료,88년 검찰 발표 등을 종합하면 당시 정보부 발표는 의혹 투성이다.먼저 정보부는 “崔교수는 퀼른대학 유학중 중학동창생인 이재원·노봉유(미체포)에게 포섭돼 평양에 가서 간첩교육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라고 발표했다.그러나 유족들은 “주범이 체포되지 않은 상태에서 포섭된 사람이 어떻게 확인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사고이후 시체를 현장에 두지 않고 급히 국립수사연구소로 옮긴 점,가족이나 변호인·의사의 검시 참여를 불허한 점,한장 뿐인 사체사진이 투신 자살(뒷머리가 깨지고,양쪽 손발이 부러졌다는 정보부 발표)을 전혀 입증하지 못한 점 등도 정보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게 했다.떨어진 지점이라는 곳도 종선씨가 그날 새벽 몰래 가본 결과 핏자국이나 이를 씻어낸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崔교수가 뛰어내렸다는 화장실 구조도 투신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지적됐다.162㎝의 작고 뚱뚱한 그가 수사관들을 6m 거리에 둔 채 잠긴 창문을 열고 150㎝ 높이의 창문턱을 잡고 올라 투신한다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이것은 정보부 감찰실에 근무하면서 건물구조를 잘 아는 동생 종선씨가 제기하는 최대 의혹이다. 이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10년전에 지났다.그러나 진상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정부나 국회의 적극적인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국민들은 당시 관련자들이 참회의 ‘양심선언’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다.종선씨는 수기에서 “그들도 언젠가 증언대에 서면 진실을 말할 수 밖에 없는 착한 형제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진실규명에 대한 희망을 나타냈다. ◎외아들 光濬씨/“역사의 진실에 공소시효는 없다” 崔鍾吉 교수의 외아들인 光濬씨(34·부산대 법대 조교수)는 최근 독일에 다녀왔다.학술회의 때문에 갔지만 그의 마음은 다른 데 있었다.부친 행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그러나 이번에도 새로운 것은 얻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부친 모교인 퀼른대 출신인 그는 자라면서 아버지 죽음의 내막을 알게 됐고,그 이후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자라면서 아버지의 억울한 사정을 알게 되면서 답답함만 더해 갔습니다. 자상한 아버지가 왜 돌아가셔야 했는지,왜 간첩누명까지 써야 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독일 유학시절 부친의 은사였던 게르하르트 케겔 교수 등 아버지가 만났던 교수 동료들을 만나 부친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보려 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시절 만났던 코헨,박스터,라이샤워 교수들에게도 전화나 편지로 도움을 청했다.“그들은 한결같이 부친의 결백을 믿었으며 억울한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고 光濬씨는전한다.특히 세계적인 민법학자 케겔 교수는 75년 독일 슈피겔지에서 崔교수 관련 기사를 읽고 당시 법무장관에게 의혹을 조사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光濬씨의 어린시절은 아픈 기억으로 가득하다.“1주기 추도식 때였어요.당시 명동성당에서 갖기로 했는데 정보부에서 막아 어머님이 저와 동생을 끌고 감시의 눈을 피해 사람이 많은 시장거리 등을 몇차례씩 통과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때문에 여러번 이사를 해야 했다. 학교를 옮겨 조금만 있다보면 자신을 보는 친구나 선생님들의 눈치가 이상하게 느껴지곤 했다고.그는 결국 고등학교만 마치고 유학길을 택해야 했다. 사건 이후 미망인 백경자씨(62·의사)는 “오로지 남편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일념으로 평생을 살아 왔다”고 했다.그녀는 당시 열살,여덟살이던 光濬·希晶 남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이사다니기를 반복해야 했고 ‘자랑스런 아버지’였다는 점을 심어주어야 했다.덕분에 光濬씨는 아버지 뒤를 이어 민법학자가 됐다.希晶씨(32)는 성신여대를 나와 출가해 미국에 살고 있다. ◎왜? 촉망받던 그가 죽음을 당했나/권력핵심부 거침없는 비판/독재정권의 ‘눈엣 가시’ 崔鍾吉 교수는 촉망받던 젊은 학자이자 의식있는 지식인이었다.그는 모교인 독일 퀼른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남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그러나 “모국에서 배움의 의지에 불타는 법대생들 앞에 서는 것이 내 소망이요 소명”이라고 뿌리치며 귀국했다고 가족과 당시 동료교수들은 전한다. 하버드 대학의 코헨,라이샤워,박스터 교수 등은 崔교수에 대해 ‘그는 애국자였으며,위대한 학자요,우리들의 친구”였다고 말했다고 한다.코헨 교수는 후일 미국의 한 신문에 ‘우울한 한국(Gloomy Korea)’이란 기고를 통해 崔교수 죽음을 애도하고 한국 공작정치를 비판했다고 아들 광준씨가 전한다. 간첩혐의에 대해서 가족들은 “본인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칠 것”이라고 했다.아들 光焌씨는 “아버님은 학도병 출신입니다.학도병시절 한국전쟁 전선에 투입되기 전 일본에서 몇개월간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한국말을 쓰며접근하는 사람을 매우 조심했다고 당시 친구분들에게서 들었어요.공산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었다고 해요.아버님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崔교수를 비극의 죽음으로 몰고간 시대적 상황은 무엇일까.사건 2달여전인 73년 8월8일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이 미수에 그치자 박정희 정권은 국내외적으로 도덕적인 치명상을 입고 있었다.아울러 조용하던 대학가에서 반 유신시위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서울법대에서도 연이어 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교내에 진입해 시위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연행해 갔다.이에 대해 崔교수는 교수회의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생들을 구타하고 고문하는 무도한 행위에 대해 정의를 가르치는 스승으로서 모른 체하면 안된다”“서울대 총장은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와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정보부는 결국 수사중이던 간첩사건(崔교수 출두전 간첩사건은 거의 수사가 종결돼 있었다고 사제단은 판단)에 崔교수를 엮어 반유신투쟁의 불길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던 것 같다.동생 종선씨는 88년“공공연하게 정권을 비판하는 형님을 손보려고 했으나 뜻하지 않게 조사도중 사망하자 사인을 은폐하기 위해 어거지로 간첩혐의를 씌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崔鍾吉 열사 연보 ▲1931년 충남 공주에서 4남1녀중 차남으로 출생 ▲1950년 인천 제물포고 졸업 ▲1951년 학도병 입대 통역병 근무 ▲1957년 서울 법대 대학원 졸업 ▲1962년 독일 퀼른대학 법학박사 ▲1964년 서울대 법대 전임강사 ▲1970년 2년간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수 ▲1972년 서울대 법대 교수 ▲1973년 11월16일 중앙정보부(남산)에 출두 ▲1973년 11월19일 새벽 1시30분 사망
  • 방북 文奎鉉 신부 귀국/법 위반 확인땐 사법처리

    국가안전기획부는 19일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文奎鉉 신부일행 9명이 일주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이날 하오 귀국함에 따라 사제단측을 통해 文신부 등에게 금명간 자진출두해 줄 것을 통보했다. 안기부는 文신부 등이 방북중 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하고 金日成 묘지를 참배하는 등 종교교류에 국한된 방북승인 조건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집중조사,사실로 확인되면 文신부 등을 국가보안법(고무·찬양) 및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북한방송은 최근 文신부 등이 지난 11일 평양 장충성당 축성 10주년 기념미사 집전 등을 위해 북한을 방문,13일 金日成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고 15일에는 판문각에서 열린 북측의 통일대축전 행사에 참석했다고 보도했었다.
  • 韓·佛 첫 합작영화 ‘이재수의 난’ 제작

    ◎제주민란 소재… 내년 4월 개봉 20세기초 구미 열강의 조선침략 야욕에 저항해 일어난 제주민란을 소재로 한 영화 ‘이재수의 난’(박광수 감독)이 한불합작으로 만들어진다.한국과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합작영화를 만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제작사인 기획시대(대표 유인택)는 이 영화를 프랑스의 ‘레 필름 드 로브제바토와르’사와 공동 제작키로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합작 내용은 프랑스측이 프랑스 배우 2명의 캐스팅과 후반 음향작업을 맡는 조건이며,영화의 지분과 해외배급에 관해서는 유대표와 박감독이 9월 초 프랑스를 방문해 협의키로 했다. 유대표는 “프랑스 영화사의 대표가 로테르담영화제 시네마트에 나온 ‘이재수의 난’시나리오를 읽고 지난달 말 합작을 제의해 왔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1901년 제주도에 사는 20세 청년이 민중봉기를 일으켜 서양의 천주교 세력,부패한 관료층에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다.오는 10월 촬영에 들어가 내년 4월 개봉할 계획이다. 한편 기획시대는 국내에서도 시네마서비스(대표 강우석)와 공동제작에 합의했다.이에 따라 기획시대는 작품 제작과 해외투자 유치를 책임지고 시네마서비스는 나머지 제작비와 국내배급을 맡게 됐다.
  • 아키타縣 지자제/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지난주 일본 혼슈(本州) 북부 아키다켄(秋田縣)을 방문할 수 있었다.한·일 합작 건설회사인 공영그룹 鄭秉勳 회장이 후원하는 ‘아키다성지순례지원본부’(본부장 鄭東柱)의 초청으로 아키다시(秋田市)의 작은 천주교 수녀원인 성체봉사회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그 수녀원에는 지난 75년 1월 4일부터 81년 9월 15일까지 6년 8개월동안 101차례나 눈물을 흘린 높이 68㎝의 조그마한 목각 성모 마리아상이 있어 더욱 유명한 곳이다.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상을 목격한 사람만도 2,000여명에 이르며 아키다대학 법의학부는 이 눈물을 사람의 체액성분과 똑같다는 분석결과를 내놓기도 했다.니가타 교구와 로마 교황청도 다각적인 조사활동을 벌인 끝에 1984년 5월 이 성모상에 관련된 일들을 ‘초자연적인 것’,즉 기적(奇蹟)으로 결론내렸다. 이쯤 되면 프랑스의 루르드나 포르투갈의 파티마처럼 전 세계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성지(聖地)로 명성을 떨칠 법도 하지만 지금까지 한적한 시골지방으로 남아 있다.천주교가 전파된지 500년이나 되는 일본이지만 신자 수는 아직 30만명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신사(神社)의 나라,일본만의 뿌리깊은 토속신앙 때문이다.천주교 전래 200년만에 신자 수가 300만명이 넘고 개신교는 100년 역사에 1,000만 신자를 확보한 우리와 사뭇 다른 풍토다. 독실한 불교신자이며 한국인인 칠순(七旬)의 鄭회장이 이 곳에 순례객들을 위한 호텔을 짓고 서울∼아키다 직항로 개설추진 등 아키다 성지 개발사업에 발벗고 나선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각막장애로 시력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던 지난 96년 서울강남성모병원에서 모두 천주교 신자인 26세의 청년과 19세된 소녀의 안구를 기증받아 시력을 회복했기 때문이다.빛을 다시찾게 된 보은의 뜻을 나타낼 사업을 찾던 중 우연히 이 지방을 지나다 초라한 성모상에 관한 얘기를 듣고 전 재산과 남은 생을 바치기로 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들을 확인하는 우리 일행 22명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아키다켄과 시,그리고 그 지역 상공인들이 보여준 ‘고장 사랑’정신과 실천이었다.언론계 인사들로 구성된 우리 일행을 그들은 놓치지 않고이틀동안이나 식사 대접을 하며 관광명소와 특산품,미인과 인심좋은 지역사람들에 관해 열성적으로 설명했다.반도 구미코(板東久美子) 부지사와 이시카와 렌지로우(石川鍊沿郞) 아키다시장,中田건설 나카다 사장 등을 통해 지방자치제는 민·관이 힘을 하나로 뭉쳐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 8·15 사면 가족·각계 반응/“국민화합·제2 건국 계기로”

    ◎全·盧씨 “5·18 12·12 관련자 포함 잘된 일”/朴노해씨 부인 “8년 수발 짐 벗어 기뻐”/민가협 “양심수 360여명 대상 제외 유감” 모두 7,007명의 사면 대상자 명단이 발표된 14일 국민 대다수는 “사면을 계기로 화합을 다지고 제2의 건국을 맞는 계기로 삼자”면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張世東·鄭鎬溶·安賢泰씨 등 12·12 및 5·18 관련자와 全斗煥·盧泰愚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연루자 등 14명이 특사에 포함되자 두 전직 대통령측은 “잘된 일”이라며 환영. ○…權魯甲 전 의원은 복권사실이 발표되자 “대통령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짤막한 소감만 밝혔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얼굴없는 노동자 시인’ 朴노해씨(본명 朴基平)의 부인 金眞珠씨(43)는 사면 소식에 “지난 8년동안 옥바라지를 하면서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벗었다”면서 기뻐했다. 金씨는 “최근 면회 때 朴시인이 ‘그동안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번 국민의 정부는 한번 믿어볼 만한 정부’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친딸과 친인척을 상습적으로 폭행해온 남편을 청부살해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청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林順蘭씨(46)도 형기를 1년4개월 앞두고 15일 가석방된다. 林씨는 “부모 탓에 불행하게 자란 자식들과 따뜻한 가정을 이루겠다”고 석방소감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 사면 대상자 중 93년 5월 살인죄로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아미르 자밀씨(30) 등 파키스탄인 2명이 무기로 감형되는 데는 천주교인권위원회(위원장 金亨泰 변호사)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었다. ○…한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정부가 대화합 차원에서 사면을 단행한다면서 455명의 양심수 가운데 최장기수 등 360여명을 사면대상에서 제외했다”면서 “헌정질서 파괴나 비리사범을 사면·복권한 조치는 광복절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반개혁적 행위”라고 주장.
  • 개혁성향 재야인사 대거 위촉/4기 부정방지대책위 출범

    ◎위원장 李在禎 성공회大 총장 韓勝憲 감사원장서리의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가 12일 출범했다. 이번에 출범한 부정방지대책위원회는 개혁성향이 강한 인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부방위라고 하기보다는 ‘재야인사 연합’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우선 이날 위원장으로 선출된 李在禎 성공회대학교 총장은 기독교회협의회 대표를 역임했고 李啓卿·金聖在 부위원장은 각각 여성사회연구회장,장애인 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또 위원 가운데는 朴元淳 참여연대 사무처장,柳鍾星 경실련 사무총장,尹順女 전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회 회장,李南周 한국 YMCA전국연맹 사무총장,李賢淑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 등이 포함돼 있다. 崔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이나 咸世雄 신부는 이미 일반에게도 잘 알려진 재야출신 인사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눈에 띄는 인물은 ‘농무(農舞)’의 시인 申庚林. 앞선 정권들에서 체제 비판적 성격이 강했던 저항시인 申씨가 정부 관련 기관에서 일하게 된 것이 이채롭다. 韓원장서리와가까운 개혁 인사들로 구성된 이번 부방위는 감사원의 향후 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李在禎 위원장은 취임 회견을 통해 “각 분야의 생생한 민심을 수렴해 감사에 반영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또 “현 시점에서 개혁은 정권의 문제가 아니고 민족의 문제”라고 정의하면서 “金大中 대통령을 지지하든,비판하든 모두가 마음을 열고 토론하며 개혁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韓원장서리는 지난 3월3일 취임한 뒤 넉달 뒤인 지난달 1일 인사에서 감사원 내의 연공서열을 존중했다. 그 대신 이번에 원장 자문기구인 부방위를 구성하면서는 개혁의 색채를 한껏 과시했다. 신임 부방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李在禎 성공회대학교총장 △부위원장=李啓卿 여성신문대표,金星在 한신대교수 △위원=姜玹中 변호사,金鍾喆 전 감사위원,南仲九 동아일보 논설위원,朴元淳 참여연대 사무처장,申庚林 시인,柳鍾星 경실련 사무총장,尹順女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 공동체 회장,李南周 한국 YMCA전국연맹 사무총장,李錫炯 변호사,李賢淑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崔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崔鍾庫 서울법대 교수,咸世雄 가톨릭대 교수,李秀一 감사위원,安繁一 감사원 사무총장
  • 종교계 258곳에 실직자 돕기 시설

    ◎개신교 99곳/천주교 73곳/불교계 69곳 ‘IMF한파’가 불어닥친 이후 지금까지 실직자를 위해 개설한 종교계 구제시설 및 모금단체는 모두 258개소인 것으로 집계됐다. 문화관광부 종무실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개신교가 구세군의 ‘정동다일사(다시 일어서는 사람)’를 비롯한 모두 99개 구호시설과 4개 구제기금 모금단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천주교는 명동성당 ‘평화의 집’ 등 73개 시설의 문을 열었다. 또 불교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종로 보현의 집’ 등 모두 69개 시설을,원불교는 서울봉공회의 ‘은혜의 쉼터’ 등 13개 시설을 운영하며 실직자에게 취업정보와 무료급식,숙소 등을 제공하고 있다. 수혜인원을 각 교단별로 보면 불교계가 1만1천4백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개신교 1만2백명,천주교 9천9백30명,원불교 980명 순이다. 이밖에 불교 조계종이 지난 4월 탁발행사를 통해 2억원의 실직자돕기 기금을 모금한 것을 비롯,대한기독교 성결교회 2억원,사랑나누기운동본부 8억6천9백만원,국가조찬기도준비위원회 5천만원,그리고불교 천태종이 2천만원을 모금했다.
  • 종교인 30여명 11일 방북 예정

    8·15 통일 대축전과 때를 맞춰 남한의 개신교와 불교,천주교 등 각 종교단체 저명인사 약 30명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위원장 박태호)과 조선종교인협의회(회장 장재철) 등이 지난 7월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회장인 金蒙恩신부와 개신교계 원로 姜元龍 목사,조계종의 法陀 은해사 주지 등을 초청했으며,정부는 이들의 방북 승인을 긍정 검토하고 있다. 오는 11일부터 18일까지 방북하는 이들 종교인들은 북한 종교단체들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참석한 뒤 일부는 고향을 방문해 이산가족과도 만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남한 종교인들을 초청한 것은 14∼15일로 예정된 ‘통일대축전’과 때를 맞춰 남한 종교인들이 동참하는 대규모 종교집회를 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 KAL機 괌추락 참사 1년­현지 추모행사 표정

    ◎不歸의 넋 위로… 위령제 준비 분주/오늘 유족 352명 참가 추모비 제막/사고뒤 심야노선 폐지… 관광객 격감 6일은 대한항공 801편이 괌에 추락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희생자 229명의 유족 대부분은 아직도 당시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괌 현지에서는 5일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린다. 유족들의 지난 1년과 보상 문제,지금까지 드러난 사고 원인과 문제점 등을 짚어본다. 대한항공기 괌 추락사고 1주기 추모위령제가 5일 상오 괌 현지에서 열린다. 추모식에서는 희생자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비 제막식도 갖는다. 추모비는 괌 한인회가 괌 주정부의 일부 지원을 받아 모두 19만달러를 들여 건립했다. 추모비에는 희생자와 부상자 명단,추모시,추모비 제작에 기부한 괌 한인회의 기부자 명단 등이 새겨졌다. 추모식은 추모사에 이어 기독교,불교,천주교식의 종교 행사와 함께 헌화 및 분향 순서로 진행된다. 이에 앞서 4일 하오 유족 352명과 건설교통부 관계자,대한항공 직원 등 승객 396명을 태운 대한항공 특별기가 괌 현지에 도착했다. 이들은 2박3일간의 행사를 마치고 6일 하오 서울로 돌아온다. 한편 지난해 8월6일 사고 이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대한항공측은 세계 70개 취약 공항을 집중 점검,이 가운데 심야에 도착하는 항공노선을 폐지했다. 괌의 아가나 공항을 비롯,중국 삼아(三亞) 공항,몽고 울란바토르 공항,튀니지 제르바 공항,마카오 공항 등 심야에 도착하는 5곳이다. 또 미국 연방항공국(FAA)의 기준에 따라 조종사들의 야간 비행에 따른 업무 부담도 대폭 줄였다. 대한항공은 또 현재 A­300,F­100 두 기종에만 적용하던 비행분석관리시스템(AIMS)을 연말까지 B­747을 비롯한 전 기종으로 확대,안전도를 높일 계획이다. 사고 항공기처럼 기령이 20년 이상된 항공기 12대의 매각도 추진중이다. 사고 이후 괌으로 떠나는 관광객도 크게 줄었다. 괌정부 관광청 한국사무소에 따르면 사고 전 한달 평균 1만5,000∼2만명에 달하던 여행객이 사고 이후 90% 이상 줄었다. 이에 따라 괌현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운영됐던 50여개의 여행사도 3∼4개로 줄어든 것으로알려졌다.
  • 사랑의 쌀통/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길어 내어도 길어 내어도 마르지 않는 우물물처럼 날마다 새록 새록 새로운 우물가의 아침 싱싱한 아침 시인 朴敬用은 ‘우물가의 아침’을 통해 이렇게 넉넉하고 싱그러운 풍경을 그리고 있다. 목 마른 사람,누구든지 그곳에 가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으니 온 세상이 새롭게 보일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우물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필요해서 팠기 때문에 생겼고 주변의 수분이 흘러들어 우물물이 된다고 한다. 어머니의 젖과도 같다고 했다. 아이가 어머니의 젖꼭지를 빨아야만 유방 안의 영양분이 젖으로 변해 나온다는 이치다. 생명의 원천이다. 아이가 자라나 어머니의 품을 떠나면 젖은 마르게 마련이다. 우물 역시 찾는 사람이 없을 때 새로운 물이 솟아나지 않아 더러워지고 결국 우물로서의 수명을 다하게 된다. 우리 시대에 ‘길어 내어도 길어 내어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우물’이 생겼다. 누군가 목말라 퍼가고 나면 금방 새로운 물이 솟구치는 기적의 샘이다. 인천지역에서 최근 등장한 ‘사랑의 쌀통’이 그것이다. 지난 3월인천시 남동구 간석 2동 천주교회에 처음 생기더니 얼마전에는 이를 본떠 소사 3동 성당에도 등장했다. 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지 가서 얼마든지 퍼 갈 수 있고 그러면 또 채워진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평소 밥을 지으면서 조금씩 모아두었던 쌀을 갖다 붓기 때문이다. 퍼 가는 사람도,보충해 놓는 사람도 한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도 누가 퍼가고 누가 붓는지 모르며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그 쌀통을 두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가르침의 실천이다. 이 ‘쌀통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간석 2동 천주교회 扈寅秀 신부는 “요즘처럼 어려운 때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도와 줄 방법을 생각하다 이 쌀통생각이 났다”고 했다. 쌀이 떨어질 때 쯤이면 미사 강론 때 “쌀이 거의 바닥났다”고 한마디만 하면 금방 채워진다고 한다. 이 쌀통은 전국 1,000여 성당은 물론 5만여 개신교회당,전국 방방곡곡의 사찰에도 설치되면 좋겠다. 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 “물질노예서 벗어나자”/鄭鎭奭 서울대교구장 착좌 회견

    ◎경제위기를 ‘잊혀진 인정’ 회복 계기로 “IMF시대를 맞아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배금주의 사상을 버려야 합니다. 70년대만 해도 돈과 물질이 없어도 행복했는데 지금은 가정이 부유해졌는데도 이혼율이 높고 부모와 자식,형제와 자매사이에 싸움이 많아졌습니다. 과거 우리사회의 미덕인 인정사회로 바꾸어 생활해야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한 鄭鎭奭 대주교(67)는 1일 상오 명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신적으로 경제난을 극복,이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鄭대주교는 이어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되어 있는데 현대인들은 물질 만능주의와 기계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다”지적하고 “가정에서 TV를 끄고 가족과의 대화를 늘려 적게 가지고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정신생활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9일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한뒤 명동성당에서 이틀을 보낸 鄭대주교는 “참으로 큰 짐을 졌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지난 30년간 이자리를 지켜온 金추기경의 뒤를 따라 그분에게 누가되지 않는 사목을 펴겠다”고 말했다. 鄭대주교는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나 37년간 서울에서 산뒤 68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면서 서울을 떠나 30년만에 서울에 돌아왔는데 서울이 너무 변해 고향에 온 느낌이 아니고 생소한 느낌”이라며 “배울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 ‘사랑아 길을 묻는다’/‘분단의 작가’김원일씨 연애소설로 외도?

    ◎혼돈·질곡의 구한말 몰락양반·참봉 후실 운명적 사랑이야기/유창한 우리말 구사 토속미 가득한 묘사 중진작가 김원일이 처음으로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사랑아 길을 묻는다’(문이당 간)를 내놓았다. 민족 분단의 아픔과 줄곧 씨름해온 작가가 사랑으로 잠깐 곁눈질 한 이유가 궁금하다. “작년 ‘불의 제전’을 끝내고 통일될 때까지 분단문제는 소설로 다루지 않기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종류의 작품을 찾던 중 지금까지 한번도 쓰지 않은 연애소설로 변신을 시도하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역사의 정도라는 큰 줄기에서 불륜이라는 지류로의 외도에 대한 변 치고는 밋밋하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몇가지 실타래가 얽혀 있다. 먼저 몰락한 양반 서한중과 김참봉의 후실 사리댁이 엮어가는 금지된 사랑 혹은 (주인공에게는)거역할 수 없는 사랑이 있다. 또 혼돈과 질곡의 구한말(舊韓末)이라는 현실과 그 옆에 작가가 “통속소설로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장치로 천주교라는 초현실의 영역이 있다. 두 사람은 운명적인 사랑을 완성하려고현실의 굴레인 집에서 야반도주,화전생활을 한다. 꿈같은 행복은 잠시,김참봉이 풀어놓은 추적의 손길이 미치자 가시밭길 떠돌이 삶에 접어든다. 이리저리 떠돌던 ‘운명적 사랑’의 주인공의 마지막 운명은 사리댁의 실명과 서한중의 죽음이다. 그 모습은 불륜의 덧없음을 담고 있지 않고 현실의 냉소를 이겨낸 당당함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신이 내린 구원의 길을 외면한 인간의 편을 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눈에는 엄연히 용서받지 못하는 사련(邪戀)이다. 더구나 공소(公所·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카톨릭교회)라는 만남의 첫 다리를 놓아준 천주교의 눈으로 볼 때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서한중과 사리댁을 불륜의 덫에서 구해주는 작가의 시선은 영원한 사랑을 그리는데 머무르고 있다. “삶에는 세속의 부나 성공에 비중을 두는 시민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예술성의 영역이 있지요. 세속의 잣대를 넘어서는 곳에 있는 예술성은 운명처럼 다가오지요”. 작가는 시민성과 예술성의 비유로 의중을 에두른다. 예컨대 두 사람의 도피행위를 이해못하는 서한중의 식구들 등이 시민성을 구현하고 있다면 서한중과 사리댁은 방황과 고난 속에서도 예술성의 삶에 속해 있는 인물들이다. 어쩌면 ‘밑바닥까지 내려가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예술의 운명을 시대를 초월한 사랑에 담아 그린 것인 지도 모른다. 유창한 우리 말(모으면 어휘책 1권 분량이라고 작가가 자랑한)구사,동양화를 떠오르게 하는 토속미가 물씬 배인 장면묘사 등에 힘입어 소설은 막힘이 없다. 발빠른 감성보다는 꾸준한 노력으로 일관해온 이제까지의 자세가 여실히 드러난다. 마치 국적없는 감각을 자랑하는 신세대에 대해 한 중진이 뚝심어린 도전장을 던진 품이다. 그런데 감각적인 작품들에 입맛이 익은 요즘의 독서풍토에 같은 주제를 점잖게 요리한 이번 작품이 어떻게 읽힐까. 이 호기심은 우리 소설의 앞길을 되새겨 보는 하나의 풍향계처럼 보인다. 해서 ‘사랑아 길을 묻는다’는 우리 소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묻는다.
  • 추기경의 歸去來/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천주교에서 사제(司祭)를 양성하는 신학교를 ‘못자리’라고 표현한다. 라틴어로는 SEMINARIUM이다. 이 못자리에서 다 자란 ‘모들’은 이 세상 곳곳으로 흩어져 신앙의 씨앗을 옮겨 심으며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된다. 한국 최초의 못자리는 프랑스인 신부 푸르티에가 1855년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 베론에 세운 성요셉신학당이다. 이 학교는 1866년 대원군의 병인대박해 때 폐교되고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1885년 10월 28일 강원도 원주시 부흥골에 예수성심신학교로 재탄생된다. 이 학교가 이듬해,오늘의 성심여고 자리인 서울 용산구 원효로로 옮겼다가 1942년 일제의 탄압으로 다시 폐교된 뒤 해방이 되던 1945년 오늘의 동성중·고교 뒤편 낙산 기슭에 가톨릭대학 교의 전신인 경성천주공교신학교 즉,성신신학교로 모습을 드러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던 金壽煥 추기경이 28일 바로 이곳,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사제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제 13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된 鄭鎭奭 대주교의 착좌식이 있기 하루 전의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 교구장으로 재직하며 기거하던 명동성당 구내 교구청 사제관을 떠나는 마음이야 이루말할 수 없이 섭섭하겠지만 새로운 기대와 설레임이 가득할 것으로 여겨진다. 金추기경으로서는 실로 48년만에 되돌아가는 못자리며 본가(本家)이기 때문이다. 이 곳을 떠나 그야말로 할 일을 다하고 귀가하는 노사제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 지,궁금하기만 하다. 金 추기경은 지난 41년 소신학교 과정인 동성상업학교 을반을 졸업하고 일본 상지대 철학과에 재학중 학도병으로 끌려가 동남아전선에서 여러 차례 사선(死線)을 넘기도 했다. 해방이 되자 이 곳 성신대신학교에서 6·25전쟁이 나던 50년까지 사제수업을 받은 뒤 피란 길에 올랐다가 51년 9월 15일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에서 사제로 서품됐다. 그러니까 金 추기경에게 혜화동 성신교정은 자신을 사제로 키워준 못자리며 언제나 변함없는 고향 집인 셈이다. 金 추기경은 지난 19일부터 교구사제와 수도자,평신도들과의 송별 감사미사를 잇따라 올리며 명동을 떠날 채비를 했다. 추기경은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저는 점점 작아지고 제 뒤에 오시는 분은 점점 더 커지길 기원한다”고 했다. 후임자에 대한 깊은 애정의 표현이다. 비록 현직에서는 떠났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남아있을 큰 어른의 모습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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