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시론] 관용은 민주주의의 기초
인간은 욕구의 존재이며 사회적 존재이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자힘쓰고,이러한 성취 과정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또한 개인이 남에게 양보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집단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집단적 이기주의 때문에양보하기 어렵고 경쟁의 고삐를 늦추기 힘들다.
요즘 국내의 정치판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정보화사회로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웃을 돌아볼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정황은 가정에서도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늘 생활에 쫓겨 진정한 대화의 기회가 줄어들고 인내심이 부족해지며,인정이 점점 메말라가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생활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개인과 개인,계층과 계층,종교들 사이에 갈등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관용의 정신’이 부족한 탓이다.모든 경우에 그렇듯이 이론이 부족해서가 아니고강한 실천 의지와 그에 따른 실행이 못미치기 때문이다.
유엔이 지난 1995년을‘관용의 해’로 정한 취지는 인종이나 종교 혹은 언어의 차이에 기인하여생기는 내란과 국제간의 갈등을 없애고 세계 평화를최소한으로라도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관용’이라는 말은 원래‘참는다’는 소극적 의미를 지녔지만 탁월한 사상가들의 영향과 사회 의식의 변화 덕택으로‘인정한다’는 적극적 의미로바뀌었다.‘인정한다’는 것은 타인의 다른 생각이나 태도,세계관 등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관용은 개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사회·국제적 차원에서 발생하는모든 종류의 갈등과 분쟁을 합리적이고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이념 혹은 덕목이며 전략적 가치이기도 하다.
관용은 특히 우리 사회의 여러 삶의 영역들 예를 들면 정치,경제,사상,노동운동,그리고 가정에서 요청되고 실현되어야 할 덕목이다.한국의 현행 헌법에서도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가 기본권으로서 명시돼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나 국가가 신봉하여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일종의 통치형태이지만 더욱 넓고 근본적인 의미로는 단순히 조직원리에 그치지 않고 특정한 태도,사유 형태,고유한 삶의 형태를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순수하게 기술적인 통치 형태가 아니라 윤리적 가치를담고 있는 삶의 형태이다.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자유롭고,다원적인 제도로서상호 존중,관용,협조,평화,복지를 지향하는 시민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삶에 기여해야 한다.
관용의 정신이 부족하여 유럽에서도 30년,100년에 걸친 종교전쟁이 일어났고 조선조 후기에 천주교가 전래되었을 때도 많은 신도들이 목숨을 잃어 순교자가 되었다.
현대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인 포퍼는 20세기의 역사적 체험을 통하여 관용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그가 예로 든 관용에 위배되는 역사적 사태들은 레닌,무솔리니,히틀러에 의해 자행된 전체주의적 독재,1948년민주적 체코슬로바키아의 붕괴,1968년 소련에 의한 체코 침공 등이다.
적극적인 의미의 관용의 핵심은 사랑이다.그러므로 관용은 생각을 달리하는사람들을 억압하여 점차로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는 계략적 술책이어서도 안되고 사면적(赦免的) 태도이어서도 안된다.
관용은 자신의 것과 다른 견해나 확신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을 나름대로 인정하는 태도이다.그러므로 관용은 무관심과 전적으로 다르다.무관심은 어떤 견해나 확신 사이의 싸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태도이므로 확신의 결핍만을 의미할 뿐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종교나 민족을 초월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예부터세계의 큰 종교들이 가르쳐 왔다.새 천년에도 관용 없이는 인류에 미래가 없을 것이다.
박종대 서강대교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