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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플러스] 천주교 창조보전축제 새달1일

    천주교환경연대는 환경을 사랑하는 모든 천주교인을 위한 ‘2005 천주교 창조보전축제-보시니 좋았다’행사를 다음달 1∼3일 강원도 평창 성필립보 마을에서 개최한다.가톨릭 환경운동가 등 1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숲·강 체험 및 생태마을 만들기 등 친환경 프로젝트 사례발표 등으로 진행된다.(02)3676-0916.
  • 조해녕 시장등 지도층 31명 대구투명사회협약 체결

    대구지역 공공·지방의회·경제·시민사회 등 4개 부문의 대표 31명은 27일 대구엑스코에서 ‘대구투명사회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공공부문에서 조해녕 대구시장과 신상철 대구시교육감, 홍 철 대구경북연구원장 등 5명이, 지방의회 부문에서 박성태 대구시의회 부의장 등 2명이 각각 서명했다. 또 경제부문에 노희찬 대구상공회의소 회장과 김문기 대구경영자총협회장, 이인중 화성산업㈜ 회장 등 12명이, 시민사회부문에 동화사 주지 지성스님과 원유술 천주교 범어성당 주임신부, 이창기 대구흥사단 회장, 윤귀분 대구YWCA 사무총장 등 12명이 각각 서명했다. 이들은 관주도형 반부패대책에서 민·관이 함께 하는 반부패시스템을 구축하고, 지방의회내 윤리위원회 설치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키로 했다. 이와 함께 기업과 시민단체, 종교계 등은 윤리강령을 제정하고, 사회 전반의 부패문화를 없애는 데 동참키로 했다.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서울이야기] (22) 한옥마을 북촌

    [서울이야기] (22) 한옥마을 북촌

    서울은 지금 문화도시를 꿈꾸고 있다. 문화가 돈이 되고, 문화가 힘이 되는 시대에 서울의 경쟁력을 ‘문화’로 키우겠다는 바람이다. 그런데, 문화도시란 어떤 도시를 말하는가. 문화도시란 우선 기본이 탄탄히 갖추어진 도시를 말한다. 무엇보다 생존 가능한 도시, 안전한 도시여야 한다. 재해로부터, 사고로부터, 그리고 범죄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지켜져야 한다. 문화도시란 지속가능한 도시여야 한다. 차보다는 사람을 중히 여기는, 걷고 싶은 도시여야 하고 약자들도 불편 없이 더불어 살 수 있는 도시여야 한다. 이처럼 시민의 편안한 삶을 담아주는 기초적 어메니티(amenity)를 갖추는 것이 문화도시의 첫 번째 요건이다. 또한 문화도시는 품격 있는 도시, 정체성이 있는 도시를 말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시도 제각기 개성이 있고, 품격이 다르다. 다른 도시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멋과 매력, 다시 말해 자기만의 정체성(identity)을 가진 도시여야 문화도시라 부를 수 있다. 서울은 아주 매력 있는 도시다. 내사산(內四山)과 외사산(外四山)의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구릉과 평지가 어울려 다채로운 경관을 연출한다. 또한 웅장한 규모의 한강과 지천들이 도시를 굽이쳐 흐르는 빼어난 자연을 가진 도시다. 여기에 더해 서울은 600년의 역사를 보유한 역사 도시다. 그래서 농익은 술이나 그윽하게 우러난 차와 같은 서울만의 정취와 냄새, 빛깔을 가지고 있다. 문화도시의 꿈은 그러나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본을 갖추고 정체성을 지키려는 주민과 시민의 의지가 있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정부의 정책과 실천이 요구된다. 지금 서울에는 문화도시를 꿈꾸는 다채로운 노력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 중, 역사도시 서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역사문화공간을 지키고 가꾸려는 실험이 한창인 곳이 있다. 북촌이 바로 그 곳이다. ●도심속 900여채 옹기종기 지하철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오면 그곳이 바로 북촌이다. 북쪽으로 길을 걸어 올라오면 헌법재판소와 재동초등학교를 지난다. 가회로를 따라 계속 걷다가 가회동 천주교회 바로 못 미쳐 돈미약국 골목으로 꺾어 들어오면 100채 이상의 한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회동 31번지에 이른다. 회화나무집을 지나 31번지 골목길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기와를 맞대고 늘어선 한옥들과 골목길이 고층빌딩과 광로(廣路)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을 말갛게 씻어준다. 놀랍다. 현대화된 거대도시 서울의 한복판에 한옥마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니. 그것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정겨운 동네가 아직 있다니…. 서울시민들 중에서도 아직 북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안다고 해도 직접 가서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북촌은 아직도 숨겨진 동네다. 1000채 가까운 한옥이 남아 있는 북촌은 서울의 대표적 한옥마을이다. 물론 인사동을 비롯해 서울의 도심 일부지역에 한옥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주거기능을 유지한 채 군락을 이루며 한옥들이 집단적으로 남아 있는 곳은 북촌이 유일하다. 북촌의 한옥은 대규모 양반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1930년대 이후에 집단적으로 조성되었다. 따라서 북촌의 한옥은 한 채 한 채가 문화재와 같은 가치를 지니지는 않았지만, 범상한 도시형 한옥들이 모여 이루는 골목길과 기와지붕들이 처마를 맞대며 펼치는 마을경관이 더욱 가치가 있다. 또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근대화 이전의 옛 주거형태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점에서도 북촌의 가치는 매우 크다. ●북촌의 새로운 실험, 북촌 가꾸기 북촌에서는 지금 새로운 실험이 한창 진행 중이다.‘북촌 가꾸기’로 불리는 이것은 주민들이 스스로 한옥과 마을을 지키고 가꾼다는 ‘마을 만들기’의 실험이면서,600년 역사도시 서울의 정취를 지닌 도심속 한옥마을을 가장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고자 하는 서울시의 야심찬 역사보전 실험이기도 하다. 이 같은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기까지 북촌은 그동안 적지 않은 몸살을 겪었다. 1960년대 이후 서울 도심부 여러 지역들이 재개발사업으로 크게 변모하는 와중에도 북촌은 한옥마을로서의 원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의 강남개발과 학교 이전은 북촌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학교가 옮겨간 자리에 대형건물들이 세워지면서 북촌의 한옥과 전통경관의 보전 필요성이 크게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후반부터 고도지구, 미관지구 지정과 같은 한옥보존 정책과 규제가 본격화되었으나, 규제 일변도의 동결식 한옥보전방식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1990년대 이후에는 규제가 크게 완화되었다. 이로 인해 한옥을 철거하고 다가구주택을 건설하는 사례가 급증하였고, 한옥마을 북촌의 경관과 분위기 또한 크게 훼손되기에 이른다.1990년대 후반의 IMF사태도 북촌의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9년 9월에 북촌의 주민단체 대표들이 서울시장을 만났다. 과거에 한옥보전에 반대하기 위해 결성되었던 이들 단체 대표로부터 북촌 가꾸기를 요구받은 서울시는 새로운 정책 개발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의뢰하였고, 연구원은 주민과 전문가를 비롯해 서울시의 관련부서 공무원들과 함께 북촌 가꾸기 정책을 입안하여 서울시에 제안하였다. 새로운 정책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전과 같은 행정 주도의 경직된 규제 대신에 주민의 자율의사를 존중하는 ‘한옥등록제’를 도입하여 북촌 한옥을 보전하고 되살린다. 한옥등록제는 주민들이 한옥을 서울시에 등록하면 서울시가 한옥의 수선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둘째, 서울시가 직접 일부 한옥을 매입하여 개·보수한 뒤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 소규모 박물관, 한옥 게스트하우스, 전통공방 등으로 활용한다. 셋째, 북촌을 살기 좋은 마을로 가꾸기 위한 ‘북촌 환경정비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 또한 북촌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문화자원을 정비하고 활용한다. ● 북촌 가꾸기 4년의 성과 북촌 가꾸기는 2001년 상반기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1년 7월부터 한옥 등록제의 시행을 계기로 본격화되었으니, 이제 만 4년이 경과한 셈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새롭게 시작된 북촌 가꾸기는 이제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상태이고 시행초기이긴 하지만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한옥 등록제를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북촌 한옥 924동의 3분의1 이상이 주민들의 자율의사에 따라 등록되었고, 이 가운데 200채 이상의 한옥이 개·보수를 완료하였다. 한옥 매입 및 활용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2000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는 한옥 19채와 비한옥 6채 등 총 25채를 140억원을 들여 매입하였고, 이 가운데 12채의 한옥이 새롭게 고쳐져 북촌문화센터, 게스트하우스, 전통공방, 박물관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환경정비사업 또한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북촌에서도 한옥이 가장 온전하게 집중적으로 보존되어 있는 가회동 31번지와 가회동 11번지의 골목길 정비사업이 2003년에 완료되어 골목길에 어지럽게 세워져 있던 전신주들이 땅속으로 묻혔으며, 콘크리트 도로포장도 황토색을 띤 전통소재의 포장재로 바뀌었다. 골목길 정비사업은 현재 북촌길과 계동길, 화동길과 풍문여고길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북촌의 변화에 따라 많은 국내외 방문객들이 북촌을 찾고 있다. 우리의 옛 주거형태와 문화에 대한 체험을 갈망하는 많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북촌을 찾고 있고, 한국 특유의 문화와 정취를 찾는 외국인들이 북촌방문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국내외 언론들도 북촌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국내 언론들은 주로 새롭게 고쳐진 한옥에서의 편리하고 정취 있는 삶을 소개하고 있고, 영국의 BBC-TV와 일본의 NHK-TV도 뉴스와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북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변화를 흥미롭게 소개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변화는 주민의 신뢰회복과 활발한 주민참여다. 북촌 가꾸기가 시작되기 전 북촌 주민들의 행정에 대한 불신은 아주 심각한 정도였다. 그러나 서울시의 시가 수준의 한옥 매입과 한옥등록제 시행을 통한 개·보수 비용지원이 약속대로 이루어지면서 주민들의 신뢰는 점차 회복되었다. 주민단체와 시민단체의 참여와 활동이 활발해진 것도 주목할 일이다. 주민단체인 한사모(한옥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모임)와 시민단체인 도시연대(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가 함께 주최하는 북촌 문화의 날 행사가 해마다 열리고 있고, 북촌문화포럼을 비롯한 민간단체의 활동이 확산되고 있다. ●문화도시 서울 바람직한 미래모색 시행 4년째를 맞는 북촌 가꾸기는 서울의 바람직한 미래를 모색하는 중요한 실험이다. 역사 도시의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를 지키고 살리는 역사보전의 실험이면서, 문화도시 서울의 성패를 가름하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주민이 스스로의 의지로 동네를 지키고 가꾸는 마을 만들기의 실험이기도 한 북촌 가꾸기에는 문화도시 서울의 꿈과 그 가능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북촌에서 벌어지는 실험의 성패는 아마도 두 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주민의 손, 그리고 시민의 손에. 북촌에 살면서 동네를 지켜온 북촌사람들의 역할이야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겠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시민의 몫이다. 서울의 옛 모습을 간직한 마지막 동네, 북촌은 비단 주민들만의 고향이 아니기에. 옛 동네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시민 모두의 것이기에…. 정석 서울시정개발 연구원 동북아도시연구센터장
  • 수녀님들이 ‘대중가요’ 부른다

    수녀님들이 ‘대중가요’ 부른다

    “밝은 노랫말에 좋은 곡을 붙인 만큼 일반인의 정서를 순화할 수 있는 새로운 ‘대중가요’가 될 겁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성바오로딸수도회.‘노래하는 수녀들’로 유명한 ‘사랑의 이삭줍기 노래팀’이 모여 다음달 말에 열리는 천주교 정동축제때 뽐낼 노래 연습에 여념이 없다. 이들이 연습하는 노래 가사들이 귀에 익다. 시인 이해인 수녀의 ‘풀꽃의 노래’와 도종환 시인의 ‘가을 사랑’, 정채봉 작가의 ‘오늘’ 등 친숙한 명시(名詩)들이 노랫말로 변신했기 때문. 중창단이 최근 발표한 창작 가요음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에 담긴 곡들이다. 작곡은 가수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등을 작곡한 김현성씨와 노래패에서 활동 중인 백자씨, 포크그룹 ‘노래마을’에서 활동한 이수진씨 등이 맡아 친근감을 더한다. 이들이 천편일률적인 대중음악에 ‘메스’를 가해 문화를 순화하자는 취지로 음반을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6년부터. ‘사랑의 이삭줍기’라는 시리즈로 발표한 ‘사랑의 이삭줍기1’(96년)과 ‘행복한 과일가게’(2001년)에 이어 이번이 3번째 앨범이다. 12곡 모든 곡이 일반인에게 친근한 시를 골라 노래로 처음 탄생했다. 발라드에 보사노바, 영가풍이 가미됐다. 중창단 구성원은 정 마리아 수녀와 홍 조반나 수녀, 이 베로니카 수녀, 박 리오바 수녀, 박 에밀리아나 수녀, 박 율리아 수녀 등 모두 30대다. 연령층이 비슷할 뿐더러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겨 대부분 1집때부터 음반 작업에 참여해왔다. 정 마리아 수녀는 “그동안 좋은 시들이 노래로 불러진 경우가 많지 않아 정서적으로 건전한 대중가요를 전파하기 위해 음반을 만들게 됐다.”면서 “노래를 통한 복음·선교의 의미도 있지만 빠르게 변하는 가요와 달리 문화를 순화하고, 정서적으로 각박한 일반인들에게 위안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음반 제작을 맡은 손 다니엘라 수녀는 “밝고 경쾌한 1·2집에 비해 3집은 차분하게 성숙된 음반”이라면서 “상업적인 이윤 추구보다는 좋은 시와 아름다운 선율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음반은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인터넷서점(www.pauline.or.kr)과 일반 대형서점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테이프 5000원,CD 1만 2000원.(02)9440-944∼5.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돋보인 ‘1면 편집’의 다양화/홍의 언론지키기 천주교모임 고문

    신문의 1면은 그 신문의 얼굴이다. 그날그날의 가장 비중 있는 기사와 사진이 1면에 실린다. 레이아웃(지면구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고 편집 관계자 모두가 애쓴다. 일반적으로 1면에서는 정치·경제 관련 주요 기사나 이슈, 그리고 관심 있는 외신을 다룬다. 그러다 보니 자칫 지면이 너무 무거울 수 있다. 신문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면 편집’의 다양화를 모색해 왔다. 서울신문은 이러한 지면변화에 앞장서 온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지난주 서울신문 1면에는 추석을 앞두어서인지 미담성 기사 몇 개가 눈길을 끌었다. 또 화젯거리 기사를 과감하게 1면으로 끌어내기도 했다. 9월16일자의 “내 찐빵은 희망의 보름달” 기사는 내용도 흐뭇했지만 제목이 참 좋았다. 동그란 찐빵과 둥그런 보름달이 멋있게 어울리는 제목이었다.10여년간 신용불량자라는 올가미를 쓰고 살아온 40대 가장이 찐빵장수로 재기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부부가 환하게 웃는 사진까지 곁들인 이날의 1면 톱기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찐빵’을 선물해주었다. “박물관이 왔어요”를 머리기사로 다룬 9월14일자 1면 역시 색다른 감동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2년여의 준비 끝에 완성한 ‘찾아가는 민속박물관 전시버스’가 처음 운행하여 방문한 곳은 경기 가평군 북면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목동초등교였다. 본교생 135명과 명지분교생 15명, 교사 10여명이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이들은 서울에서 온 이동박물관 구경과 함께 봉산탈춤 공연, 한지 공예품 체험행사를 즐겼다. “너무 너무 재미있어요. 서울에서 박물관 버스가 자주 왔으면 좋겠어요.”라며 즐거워하는 산골의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은 구경거리가 찾아갔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기사였다. 지난 4월의 강원도 양양 산불로부터 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서울신문 9월12일자 1면은 현지의 복구현장을 담았다. 당시 피해주택 163채 중 108채가 복구되고, 산림의 식생도 빨리 회복되고 있음을 전해주고 있다. 피해주택의 34%(55채)는 아직도 복구를 마치지 못한 상황이긴 하지만 관광지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양양군민의 노력도 한창이다. 이들은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열리는 ‘송이축제’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산불당시 화염에 휩싸여 무너지는 모습이 보도된 뒤 낙산사를 찾는 발길은 오히려 더 늘었다고 한다. 특히 그 일대 30여만평이 소실됐는데도 서까래 하나 그슬리지 않은 바닷가 절벽 위 홍련암은 “부처님의 능력을 보여준 것” 이라는 입소문으로 복원성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도 전하고 있다. 9월13일자 1면 왼쪽 머리기사 ‘안동환 기자의 현장 플러스’는 ‘집행관 통해본 압류인생들’을 소개하고 있다. 상보를 사회면(8면)에 게재한 장문의 현장기사였다. 빚에 몰려 집을 내놓아야 하고, 세간을 압류당하는 채무자들의 실상을 르포로 보여준 이 기사는 우리를 매우 우울하게 한다. 저마다의 사연들이 눈물겹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거기에 담겨있다. 민사법원의 집행관을 전엔 ‘집달리’라 불렀다. 공무를 수행하는 입장이면서도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명칭을 ‘집행관’으로 바꿨지만 그전의 이미지가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있다. 안동환 기자가 이틀간 이들 집행관과 동행 취재한 이 기사는 채무자들의 실상 못지않게 집행관들의 애환도 잘 전해주고 있다. 잊혀질 만하면 재발하는 방송사고에 대한 기사가 9월15일자 1면에 실렸다. 방송·연예면이나 사회면에서 보는 것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를 서울신문은 과감히 1면으로 빼냈다. 최근 개그우먼 정정아씨가 KBS 2TV ‘도전 지구탐험대’의 콜롬비아 야르보 부족 체험촬영중 대형 뱀 아나콘다에게 물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방송사의 안전불감증이 다시 문제가 되자 이를 1면 톱으로 보도한 것이다. 1999년 탤런트 김성찬씨의 말라리아 감염 사망, 지난해 성우 장정진씨의 떡 질식사 등 KBS의 연이은 안전사고에 대해 경종을 울린 셈이다. 서울신문의 1면이 앞으로 더욱 다양해지길 기대한다. 홍의 언론지키기 천주교모임 고문
  • [종교플러스] 현직경찰·가족 대상 심리치료 봉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위원장 강혁준 신부)는 서울지방경찰청과 함께 서울대교구 산하 총 37개 경찰서와 5개 기동대에서 운영되고 있는 경찰사목 현장에 심리치료 지도사들을 투입, 전·의경은 물론 경찰과 그 가족, 은퇴경찰 등을 대상으로 상담 및 심리치료 활동을 펼친다. 심리치료 지도사들은 김지영(미아3동 본당 주임) 신부가 최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 개설한 ‘다솜 표현예술 치유연구소’의 ‘표현예술심리상담지도사’ 과정을 통해 양성된다. (02)727-2479.
  • [학술·종교플러스] 북한 인권·민주화 위한 기도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평신도 사도직협의회(회장 한홍순 한국외대 교수)는 오는 15일 오후 2시 명동성당에서 제10회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월례 기도회’를 갖는다. 국방연구원 김태우 박사가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6자회담 전망’을, 탈북자 김태산씨가 ‘북한경제 개방과 체제 유지 사이의 갈등’을 주제로 발표한다.(02)727-2513.
  • [토요일 아침에] ‘장외인간’과 ‘방외지사’/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사실 무엇이건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그 글을 쓰는 것만큼의 품과 시간이 들기 마련이다. 글을 읽게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상 내용보다는 제목인 까닭이다. 주변에 글줄깨나 써대고 저서라도 가진 안면 있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 탈고 이후 제목을 다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긴 뭔가 있어 보이려면 제목이 그럴 듯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제목에 사상성과 시류성까지 반영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고 하겠다. 얼마 전에 ‘방외지사(方外之士)’라는 책이 인구에 회자되더니 이즈음은 ‘장외인간(場外人間)’이란 소설이 신문의 광고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내용은 그만두고서라도 두 제목이 주는 공통적 메시지가 더없이 시선을 끌어당기는지라 나 역시 서평도 열심히 읽고 광고문마저도 통독했다. 방외지사의 가장 큰 매력은 현장의 이해관계에서 한발 비켜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날 수밖에 없다. 인기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책사(策士)인 요시라(要時羅)라는 인물은 방외지사의 또다른 모습이다. 그는 전쟁터에서 장수가 흥분할 때마다 사태를 차분하게 보라고 조언한다. 따지고 보면 고니시는 천주교인인 까닭에 종군 선교사 프로이스가 따라다녔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뤄볼 때 요시라가 승려였는지는 불확실하다. 더구나 그는 조선말을 잘했다는 것 말고 신분에 대해 별로 알려진게 없다. 그럼에도 작가적 상상력은 이 프로이스와 요시라라는 인물을 함께 묶어 장외인간이라는 동일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또다른 새로운 인물을 창조한 것이라고 본다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지혜에는 영역이 없다. 그리고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외환위기 시절의 일이다. 어느 승려한테 지인이 상의를 해왔다. 부도로 인해 이것저것 다 정리하고 나니 이 정도의 금액이 남았는데 무슨 주식을 사면 가장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자포자기 상태로 반쯤은 도박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 회사 주식을 사라고 권했다. 그 승려 역시 보통사람들처럼 경제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마저 망한다면 우리나라 자체가 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즉석에서 추천했다는 것이다. 몇 년 뒤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그 지인에게 ‘진짜 도인’ 소리를 들으며 지금도 귀의와 존경을 받고 있다. 그 승려가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와는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장외인간인 까닭에 주변을 상식적으로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방외지사를 제대로 표현한 말은 ‘축성여석(築城餘石)’일 것이다. 성을 쌓고도 남은 돌이라는 의미이다. 사실 성을 쌓자면 큰 돌과 작은 돌 모두 각각 쓰이는 위치가 있다. 하지만 막상 다 쌓고나서도 남은 돌은 여전히 있기 마련이다. 거대한 성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조차 필요치 않는 돌이라는 말이다. 해방 이후 한국불교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선지식들이 나이가 들어 소일거리 삼아 이야기나 나누면서 지내고자 몇 번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임의 이름이 되었다. 모두 뒷방으로, 그리고 승단마저 떠나 진짜 장외인간의 안목으로 살고 싶다는 그 마음은 ‘남은 돌’이라는 이 한마디에서 묻어난다. ‘방외지사’와 ‘장외인간’이라는 말은 다람쥐 쳇바퀴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틀을 깨고 뭔가 일탈된 삶이면서 동시에 내면적 자유를 추구하려는 시대적 욕구의 또다른 경향을 반영한 외마디 언어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추구한다고 해서 구름을 타고 다니면서 이슬만 먹고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발은 땅을 딛고 살지만 마음만큼은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또다른 욕구가 ‘방외지사’ 내지는 ‘장외인간’이란 말로 등장한 까닭에 모두에게 잔잔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나 보다. 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 [친일 3090명 명단공개] “이사람도…”

    친일인명사전 등재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의 명단 포함 여부를 놓고 적잖은 진통이 있었다. 항일과 친일 행적이 동시에 나타나는 인사가 상당수 있고 적극적 친일과 소극적 친일, 정상참작의 여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위암 장지연. 을사늑약 직후 황성신문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통해 일제의 국권 찬탈을 규탄했지만 1910년 이후에는 변절했다는 게 여러 자료들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친일인명사전편찬위는 장지연을 포함시킬지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뚜렷한 초기 항일 행적 때문이었다. 장면 전 총리는 일제시절 천주교 사제양성기관인 동성학교 교장을 지낸 이유로 이번 명단에 포함됐다. 일본 육사 출신으로 만주군에서 복무하다 광복 후 육군 참모총장을 두 차례 역임한 백선엽씨도 독립군 토벌활동을 한 간도특설대에 몸담은 점 때문에 명단에 포함됐지만, 일각에서는 한국전쟁이 났을 때 최일선에서 국가 수호에 매진한 점을 들어 ‘친일반민족 인사’라는 분류에 이견을 제시하고 있다. 문학가인 청마 유치환씨의 경우 진통을 겪다가 이번에는 빠졌지만 내년 2차 발표에는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명단에 오른 반면, 최근 친일전력 시비가 불거진 신기남·김희선 의원 등 여당 의원의 부친은 명단에서 빠진 것도 정치권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편찬위측은 박 전 대통령은 교사를 마다하고 적극적인 노력으로 일본군 장교가 됐지만, 신 의원과 김 의원의 부친은 각각 오장(하사관급)과 순사(특무경찰)로 직위가 낮았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가톨릭신문 사장에 이창영신부

    천주교 대구교구는 최근 이창영 신부를 가톨릭신문사 제20대 사장으로 임명했다.1991년 대구가톨릭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해 사제 서품을 받은 이 신임 사장은 대구가톨릭대 윤리신학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2000년 2월부터 주교회의 사무국장,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 등으로 봉직해 왔다.
  • [학술·종교플러스]

    ●멕시코 한인 이주 100주년을 기념해 재외동포재단과 단국대 아시아아메리카문제연구소가 주최하는 ‘멕시코이민 100주년, 회고와 향후전망’이 29∼30일 이틀 동안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다.1905년 일군의 조선인들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 끝에 있는 에네켄 농장에 첫발을 디디면서 시작된 멕시코 이민의 배경과 한인들의 독립운동, 그리고 후손들의 생활에 대한 한·멕시코 양국 학자들의 발표가 이어진다.(02)709-2350.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여성위원회와 한국여신학자협의회 등 기독교 여성단체들이 구성한 ‘주기도 새번역안 여성연구특별위원회’는 오는 30일 서울 명동 기독교회관에서 ‘주기도 새번역안 공청회’를 개최한다. 발제자로 최영실 성공회대 교수, 송순열 한신대 교수, 박혜숙 새문안교회 집사, 이근복 새민족교회 목사 등이 나선다. 앞서 KNCC 여성위는 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새 번역을 추진 중인 주기도문에서 가부장적인 이미지인 ‘아버지’라는 호칭을 빼자고 제안한 바 있다.(02)745-4943.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는 다음달 3일 서울 동성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제2회 청소년을 위한 순교자 현양 문화축제’를 개최한다. 사회와 교회의 미래인 청소년들을 위해 교회의 전통인 순교 신심을 신앙 유산으로 계승하고자 마련한 행사로,‘자 일어나 가자! 그대들도 순교자처럼’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공연과 애니메이션 발표, 콘서트 등으로 구성된다.(02)2269-0413∼4.
  • X파일 ‘떡값 검사’ 검·경 또 신경전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검찰과 경찰이 X파일 관련 ‘떡값 검사’에 대한 수사 주체를 놓고 한 차례 신경전을 펼쳤다. 서울중앙지검은 23일 삼성으로부터 이른바 ‘명절 떡값’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전·현직 검사 고발 사건을 도청수사팀으로 송치하라는 지휘서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내려보냈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이날 오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이 도청테이프에 거론된 전현직 검사들을 고발했고, 최근 고발인 조사를 마쳤다.”면서 “전·현직 검사들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검찰에 건의했다. 서울중앙지검 황교안 2차장은 이날 “동일한 사안에 대해 참여연대가 이미 고발장을 접수했기 때문에 병합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원칙에 따라 관련 기록을 송치하도록 경찰에 지휘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관련 기록이 송치되면 도청수사팀에 사건을 배당,X파일에 거론된 것으로 알려진 전·현직 검사들을 상대로 1997년 추석을 앞두고 삼성으로부터 500만∼2000만원의 ‘떡값’을 받았는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이번 고발건을 경찰에서 해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쉽고 답답하다.”고 전했다. 앞서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네티즌 연대 준비모임’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각각 지난달 28일과 지난 3일 X파일에 등장하는 전·현직 검사들을 뇌물수수 등 혐의로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고발한 바 있다. 유영규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평화통일 염원안고 금강산에

    “종교간 벽 허물고 평화통일 염원하러 떠납니다.” 개신교와 불교·천주교 등 6개 종단 청년들이 하나로 뭉쳤다.17일 서울을 떠나 파주·철원·속초를 거쳐 북한 금강산까지 3박4일간의 일정으로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평화캠프-다름이 아름다운 기행’을 떠난 것. 종교연합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와 KCRP 청년위원회가 주최·주관하는 ‘종교 청년 평화캠프’는 올해로 8회째를 맞는다. 그러나 파주와 철원 민통선을 둘러보고 금강산까지 체험하는 ‘평화통일 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KCRP 청년위원회 관계자는 “서로 다른 종교 청년들의 화합과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캠프에는 개신교·민족종교협의회·불교·원불교·천도교·천주교 등 6개 종단 청년 5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17일 서울 안국동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개막식을 개최한 뒤 버스를 타고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로 달려갔다. 통일전망대와 민통선을 체험한 뒤 임진각에서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상징의식’을 엄숙히 치렀다. 이 자리에서는 종단별로 기도와 의식을 한 뒤 통일의 소망을 담은 손수건을 한 줄로 연결해 철조망에 붙이며 통일을 염원했다. 이어 18일에는 철원 일대 민통선 현장과 ‘평화의 댐’을 체험한 뒤 속초에서 하루 머물 계획이다.19일에는 우리 민족의 노력이 배어있는 현장인 금강산으로 떠나 둘러본 뒤 20일 돌아온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마카오 유럽인가 중국인가

    마카오 유럽인가 중국인가

    홍콩에서 서쪽으로 64㎞쯤 떨어진 마카오(澳門)는 면적이 23.8㎢에 불과한 조그만 땅이다. 중국 대륙의 주하이(珠海)시와 접한 마카오 시구와 타이파섬, 콜로안섬의 면적을 모두 합해도 홍콩의 5분의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마카오의 인구는 약 45만명. 이중 95%가 중국인이며 수천명의 포르투갈인이 살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지배 아래서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중계무역항이었으며 기독교 포교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오늘날 세계화는 마카오가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간의 무역중심지였던 18세기 후반 마카오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들도 있다. 지금은 영향력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지만 마카오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향수의 도시’로 사랑받고 있다. 마카오까지는 지난해 인천∼마카오간 마카오항공 직항노선이 개설돼 한층 편리하게 갈 수 있다. 글 사진 마카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Fusion City (1) 유럽의 문화재 ●돌에 새긴 대자연의 교훈 마카오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 행정특별자치구다. 마카오는 ‘도박의 도시’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카오야말로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유서 깊은 문화의 고장임을 알 수 있다. 수백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마카오에는 아직도 유럽의 정취가 남아 있다. 마카오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면 단연 성바울 성당 유적이다. 이곳은 원래 중국의 첫번째 교회이자 예수회의 대학이었다.17세기 초 이탈리아 예수회 신부인 카를로 스피놀라가 디자인한 이 성당은 일본의 종교박해를 피해 나가사키에서 건너온 일본인 기독교 석공들의 도움으로 완성됐다. 1835년 태풍 때 화재로 소실돼 지금은 건물 정면과 계단, 지하실 등만 남아 있다. 유럽과 아시아 예술양식이 결합된 건물 정면에는 성직자들의 청동상이 안치돼 있다. 성당 벽면에는 성모 마리아가 발로 뱀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 형상이 있는가 하면 ‘죽을 때를 생각해 죄를 짓지 말라.’는 구절도 새겨져 있다. 이것들은 종종 ‘자연물에 숨은 교훈(sermons in stones)’이라 불린다. 성당 지하에는 1996년 문을 연 천주교예술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예수회 신부의 묘와 일본인 선교사 등의 유골,17세기 종교예술 작품 등이 진열돼 있다. 유리 케이스에 담긴 순교자의 뼈가 주위를 숙연하게 만든다.1600년대 마카오에는 종교박해를 피해 건너온 일본 기독교인들이 특히 많았다. ●네덜란드 공격 막아낸 요새 성 바울 성당 터 동쪽의 꾸불꾸불한 ‘포트리스 힐’(요새 언덕)을 올라가면 구릉 모양의 ‘몬테 요새’에 이른다. 원래 성 바울 성당과 같은 시기인 1617년 예수회의 의식용으로 세워진 것으로 1626년 요새로 바뀌었다. 몬테 요새는 네덜란드의 공격으로부터 마카오를 지켜낸 곳으로 유명하다.1622년 세례자 성 요한의 축일인 6월24일 예수회 신부가 네덜란드 화약고에 대포를 발사해 적으로부터 마카오를 구해낸 곳이 바로 이곳이다. 몬테 요새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카오의 도시 풍경과 이웃 주하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요새는 훗날 총독의 관저로 사용됐다. 현재는 마카오박물관이 들어서 있어 지난 4세기 동안의 마카오 역사를 웅변해 준다. ●한국천주교의 상징 김대건 동상 성 바울 성당에서 골동품·재활용 가구 거리인 루아 데 산토 안토니오거리를 지나면 카모에스 공원이 나온다.1557년 한때 마카오에서 살았던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카모에스를 기려 만든 곳이다.‘흰비둘기 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카모에스 공원에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1837년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도착해 신학수업을 받았다. 김대건 신부 동상은 1985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제막한 것. 홍콩과 마카오의 한국인 가톨릭 신자들이 이를 다시 보수해 1997년 새로 봉헌했다. ●마카오 시내의 세나도 광장 세나도 광장은 분수와 나무, 벤치, 카페와 공공행사를 위한 공간을 갖춘 보행자 전용 광장이다. 물결무늬가 인상적인 이 광장은 수세기에 걸쳐 도시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1999년 12월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될 때 포르투갈에서 돌을 가져와 새로 깔았다. 포르투갈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광장의 물결무늬는 세나도에서 성 바울 성당까지 이어진다. 광장 한쪽 편에는 시의회 건물이 있으며 반대편에는 16세기에 지어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선시설 인자당(仁慈堂)이 있다. 광장 끝 쪽에는 17세기 도미니크회에서 지은 바로크 양식의 성 도미니크 성당이 웅장하게 서 있다. ●유럽풍의 콜로니얼 건축물 세나도 광장에서 택시로 15분 거리에 있는 타이파 주거박물관에서는 20세기 초엽 마카오에 살던 포르투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콜로안 섬을 바라보고 있는 박물관 주변에는 400년 전 포르투갈인이 가져와 심었다는 가(假)보리수가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다. 박물관 안에는 초기 포르투갈 정착민과 ‘토생포인(土生葡人·마카오에서 태어난 포르투갈인) 등의 주거생활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마카오의 또 다른 상징은 마카오 타워다.2001년 개장한 마카오 타워는 높이가 338m로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초고층 건물이다. 마카오 전경과 주강 삼각주의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마카오 타워에서는 안전벨트를 맨채 타워 바깥 수백m 고공을 걷는 스카이워크(skywalk)라는 프로그램도 있어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참가자로선 스릴을 느낄 수 있지만 전망대에서 시내를 조용하게 조망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 Fusion City (2) 중국의 전통문화 ●마카오 최고(最古)의 사원 신앙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마카오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를 믿는다.7% 정도는 가톨릭 신자다. 아마 사원은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가운데 하나다. 배를 타는 사람들의 수호신인 도교 여신 아마(阿)와 불교의 여신인 쿤람을 모신 사원이다. 입구에는 마조각(祖閣)이라는 글자가 걸려 있다. 사원 안에는 늘 향 냄새가 진동한다. 마카오 사람들은 현재와 과거, 미래를 상징하는 뜻에서 보통 향을 세 개씩 피운다. 아마신은 특히 푸젠성 사람들과 타이완인들이 많이 섬기는 신이다. 아마 사원은 마카오라는 지명의 발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인이 마카오에 처음 상륙해 지명을 묻자 원주민이 현지어로 ‘아마카오’라고 대답했는데, 그때부터 마카오가 되었다는 것이다. ●부끄러움 막아주는 나무 마카오 시내에서 또 하나 들를 만한 곳이 전당포박물관이다. 박물관 직원은 1994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실제로 영업을 했다고 말한다. 입구에는 ‘차수판(遮羞板)’이라는 붉은 색 칸막이가 설치돼 있어 눈길을 끈다. 부끄러움을 막아주는 나무라는 뜻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는 말도 있는데…. 하지만 남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은 중국인에게도 역시 수치스러운 일인가 보다. 전당포에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따로 돼 있는 점도 특이하다. 박물관 나무기둥 아래에는 물이 담긴 돌받침이 깔려 있다. 마카오에는 개미가 유난히 많아 이런 장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장대한 스케일의 민속공연 중국의 민속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원명신원(圓明新園)도 주하이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청나라 황제의 정원인 원명원이 열강의 침략으로 불탄 뒤 주하이에 이를 그대로 옮겨 지었다는 곳이다. 원명신원은 황제의 정원답게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중국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야외쇼가 하루 한차례 열린다. 무도사극 ‘대청(大淸)황조’도 그중 한 레퍼토리다. 드럼 위에서 춤추는 고상무(鼓上舞), 방패춤인 순패무(盾牌舞), 청나라 병사의 위용을 그린 팔기병무(八旗兵舞) 등 20여개의 춤이 중국인의 웅대한 스케일을 느끼게 한다. ■ Fusion City (3) 휴식: 라스베이거스+온천 마카오의 문화유적과 카지노를 즐겼다면 휴식을 위해 하루쯤 마카오와 이웃한 주하이에서 머무르는 것도 괜찮다. 주하이 사람들은 “주하이는 공기가 깨끗해 깡통 포장을 해 수출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남중국의 진주’라 불리는 주하이는 주강삼각주(Pearl River Delta)의 한 축을 이루는 경제특구. 중국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이 곳은 쑨원의 정치활동 무대이자 국민당 혁명의 근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주하이는 14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백도지시(百島之市)´라 불린다. 북쪽으로는 중산시, 남쪽으로는 마카오와 연결돼 있다. ●꿈꾸는 ‘동방의 라스베이거스’ 마카오의 밤은 화려한 카지노 전광판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마카오에는 처음으로 지어진 리스보아 카지노를 비롯, 지난 5월 문을 연 미국 ‘라스베이거스식’ 진사(金沙)오락장(일명 샌즈 카지노) 등 모두 19개의 카지노가 있다. 특히 샌즈 카지노는 카지노 겸 엔터테인먼트의 복합시설로 100만평방피트의 규모를 자랑한다. 카지노는 크게 미국식과 유럽식, 그리고 동양식으로 나눌 수 있다. 미국식은 대규모 테마파크 같은 유희시설을 갖춘 가족 단위 개념이 강하다. 반면 유럽식은 멤버십 개념으로 상류사회의 사교클럽 형식을 띤다. 동양식 카지노는 게임 위주의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는 게 보통이다. ●주하이 최고의 웰빙온천 주하이에서 무엇보다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히는 곳은 온천이다. 특히 광둥성 지역에서 최고·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어온천(御溫泉)은 홍콩자본으로 지어진 일본식 노천탕으로 꽃탕, 삼합탕, 화흥탕, 명주탕, 성신탕, 명목탕, 감무탕, 광피탕, 폭포탕, 지열탕, 망경탕, 욕족탕, 육복탕, 커피탕 등 다양한 온천탕을 갖추고 있다. 어온천은 당나라 시대의 독특한 건축 양식과 우아한 모습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입장객에게는 전통차와 음료, 샌드위치 등이 무료로 제공된다. ●발의 즐거움을 안다 주하이 여행의 피로는 주하이의 유서깊은 발마사지로 풀 수 있다. 이곳에서 누구나 아는 발마사지 가게는 ‘지족락(知足樂)’이다. 발의 즐거움을 안다는 제목이 운치가 있다. 이곳의 발마사지사들은 3개월 길게는 6개월의 교육을 받은 뒤 자격증을 딴다. 그렇게 천하지도 흔하지도 않은 직업이다. 피부미용사 정도다. 이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1일 3교대로 하루 24시간 영업한다. 값은 한국돈으로 5000원 정도니 별 부담은 없다. ●이렇게 가세요 마카오항공에서 주 5회 마카오 직항편을 운행한다. 목요일과 일요일은 부산에서, 나머지 요일은 인천에서 출발한다. 단 9월부터 매일 인천에서만 출발한다. 마카오는 홍콩에서는 배로 한 시간, 헬기로는 15분 걸린다. 마카오를 통해 주하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카오 반도 북쪽의 궁베이세관이나 타이파와 콜로안 섬 사이 매립지에 만들어진 연화대교를 건너 횡금도에 있는 횡금(橫琴)출입국장을 거쳐야 한다. 마카오관광청 서울사무소(02)778-4402, 자유여행사 (02)3455-8888, 에어마카오 (02)3455-9900.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월급 0원’ 대학 CEO 손병두 서강대총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월급 0원’ 대학 CEO 손병두 서강대총장

    월급 0원, 비신부 출신 첫 총장 등으로 신선한 화제를 모은 손병두(65) 서강대 신임 총장. 최근 취임 한달을 맞아 ‘손병두호’ 새 진용을 짜고 ‘대학 CEO’로서의 본격 출발을 했다. 주변에서는 격려의 행진곡을 불러주는 등 많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어 또 한번 관심을 모은다. 지난 12일 오전 강원도 설악산 기슭의 한 호텔. 흔치 않은 하계수련회가 열렸다. 다름 아닌 손 신임 총장과 교직원간의 허심탄회한 만남의 자리. 손 총장은 동행한 130여 교직원들을 상대로 지나온 인생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어릴 적 여동생을 조산한 뒤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안타까운 모습, 그래서 의사가 되려고 가톨릭의대 시험에 합격했으나 가난 때문에 등록금을 내지 못했던 일, 이미 숨이 멎었던 아버지가 막내인 자신을 보자 잠시 눈을 떴던 일, 고학으로 눈물의 빵을 먹으며 고교와 대학을 다닌 일 등등… 이날 교직원들은 처음에는 딱딱한 강의를 예상했으나 손 총장의 인간드라마가 계속되자 고개를 끄덕이며 적지 않게 감명을 받는 모습이었다. 손 총장은 강의 직후 보직교수들과 등산도 했고, 여러 차례의 분임토의 등을 거치며 학교의 발전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열정을 과시했다. ●명함엔 귀하를 “서강대후원회원으로…” 잠시 짬을 내 손 총장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명함을 내민다.‘요한 돈보스코’라는 세례명이 적혀 있고 ‘귀하를 서강대 후원회원으로 모시고 싶다.’는 글귀가 여느 명함 같지 않았다. 순간 손 총장이 “아마, 그런 명함 못봤을 거요.” 하면서 껄껄 웃는다. 40여년 동안 경제계에 몸담았었는데 대학총장으로서의 한 달이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먼저 “부총장 둘과 단과대학장 일곱, 그리고 각 처장 등 스태프 인선을 이제야 마무리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려고 무척 신중을 기했다.”면서 이제는 본격적인 세일즈에 나서는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부총장등 인선 마무리… 시스템 통한 조직문화 개선이 경영핵심 “회사나 대학 조직이나 시스템을 통해 문화를 어떻게 바꾸느냐가 (경영의)핵심”이라면서 “기업은 수직적인 반면 대학은 교수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연결된 수평조직”이라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꾸준한 대화를 통해 ‘서강 인더월드(In The World)’로 거듭나기 위한 공감대가 많이 형성돼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하계수련회도 그런 차원에서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비신부이자 경제계 출신이 서강대 총장에 임명된 것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선도 있지 않느냐고 하자 “미국의 조지타운대학 총장이 평신도 출신으로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자신 역시 그런 총장이고 싶다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교직원이나 학생들을 섬기는 자세로 기도해 나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손 총장 취임 후 서강대 안팎에서는 모처럼 감동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경남 진해에 사는 한 주부는 얼마 전 60만원을 서강대로 보내 왔다. 서강대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주부는 ‘손 총장이 임기 동안 봉사하며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인터뷰 기사에 감동받았다는 것이 송금 이유였다. 지난 8일 서강대총동창회(회장 김호연)는 대학발전기금으로 20억원을 선뜻 내놓았다. ●후원 밀물… ‘1000억 세일즈´ 성공적 출발 앞서 손 총장의 취임식이 열린 지난달 18일 김명렬 연일화섬 회장이 10억원을 내놓았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지난달 13일 서강대 초빙교수로 출강하면서 받은 급여 3600만원과 개인돈 1400만원을 합쳐 인성교육원 건립기금 명목으로 학교측에 전달했다. 동문인 김상수 밸류리서치 대표도 최근 1억원을 기부했다. 서강대 여교수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재활용품점 ‘서강나눔터’는 이례적으로 수익금 2500만원을 모아 학교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강대 직원노동조합은 최근 총회를 열어 임금·단체 협상을 학교측에 전부 일임하기로 결의했다. 손 총장의 희생과 봉사정신 의지에 보답하고 학교발전에 조건없이 동참하자는 뜻에서 이같은 결단을 내렸다. 특히 최근 수시모집 지원율이 지난해보다 83%나 증가해 교직원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이처럼 지난 한 달은 ‘느낌표의 연속’ 그 자체였다며 미소 지었다. 손 총장은 임기 동안 1000억원 이상의 기금을 모금해 서강대를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한 상태. 이와 관련,“현안 중 서강대의 국제화가 우선이다.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이 머물 수 있는 기숙사가 당장 필요하며 여기에 2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 가평군 현리에 5만평 규모의 인성교육원을 짓기 위해 300억원, 서강대 50주년(2010년)기념관과 국제인문관 건립을 위해 각각 300억원과 100억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美시카고학파와 교류 모색 특히 손 총장은 전통적으로 서강대는 문(文)·사(史)·철(哲)이 강하다면서 ‘서강학파’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미국 ‘시카고학파’와의 교류방법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또 한번 시장경제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것. 원래 ‘서강학파’는 서강대 경제학과 출신 주축으로 지난 60∼70년대 개발 연대의 한국경제를 견인했다. 초기의 남덕우 이승윤 김병국 교수와 70년대의 이승윤 조성환 황일청 교수 등이 주요 멤버였다. 화제를 돌려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입시제도, 즉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등 정부의 ‘3불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정부의 원칙을 되도록 따라가는 것이 좋지만 대학에 자율권을 많이 줘야 한다.”고 전제한 뒤 기여입학은 다소 이른 감이 있으며, 본고사는 변별력이 보완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아울러 사립학교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주지스님 집서 자취… 등록금없어 의사길 포기 손 총장은 경남 진양에서 평범한 농가의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여동생을 조산한 후유증을 견디지 못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버지는 진주시내에서 포목장사를 했다. 그러나 손 총장이 경복고에 다닐 무렵 사업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북한산 자락의 승가사 주지 스님 집에서 자취를 하며 고학으로 학교를 다녔다. 배가 고파 친구의 도시락으로 하루 끼니를 대신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의사가 되려고 가톨릭의대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포기했다. 결국 담임 교사와 논의 끝에 서울대 상대에 진학했다. 대학 2학년때 세례를 받으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가.’라는 물음과 함께 독실한 신앙심을 쌓는다. 학군단(ROTC) 2기로 27사단에서 소대장을 마친 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역(공채 2기)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중앙일보 기획실과 광고국을 거쳐 삼성그룹 비서실로 옮겼다가 이른바 ‘왕자의 난’에 휘말려 직장에서 쫓겨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자식한테 등록금을 대주는 부모가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대학 2학년때 돌아가셨는데 저를 보자 감았던 눈을 잠시 뜨는 불가사의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마 등록금을 대주지 못했던 한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할머니는 제가 약혼식하는 전날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눈을 감으셨지요.” 슬하에는 연년생 2남2녀를 두었다. 바쁜 생활 때문에 부인이 빵집을 운영하며 자식 넷을 훌륭하게 키웠다는 평을 듣는다. 장남 웅기(36)씨는 재경부 사무관, 장녀 영기(34)씨는 이화여대에서 박사과정을 끝내고 미국 로스쿨 유학 중이며, 현대건설에 다니는 차남 석기(33)씨는 다음달 9일 결혼한다. 막내 사위는 검사로 재직 중이다. 설악산에서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41년 경남 진양 출생 ▲ 59년 경복고 졸업 ▲ 64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66년 학군(ROTC) 2기 중위 전역 ▲ 66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역 공채 2기 ▲ 70년 중앙일보·동양방송 기획실 및 광고국 차장 ▲ 72∼81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과장, 차장, 부장, 이사 ▲ 81∼82년 재무부 정책자문위원 ▲ 84년 미국 조지타운대, 조지워싱턴대, 메릴랜드대 수학 ▲ 85∼88년 생산성본부 상무이사 ▲ 86∼90년 한양대 경영학박사 ▲ 87년 동서경제연구소 소장 ▲ 93년 카네기클럽 초대회장 ▲ 97년 금융개혁위원회 위원 ▲ 97∼2003년 전경련 부회장 ▲ 97년 한국광고주협의회 상임고문 ▲ 2000년 ROTC2기 동기회장 ▲ 03∼04년 전경련 상임고문 ▲ 04년 4월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협의회 회장 ▲ 05년 7월 서강대 12대 총장 ■ 상훈 데일카네기 리더십상(98년), 동탑산업훈장(99년), 자랑스러운 가톨릭경제인상(02년) 등 ■ 저서 ‘뉴밀레니엄 생존전략’ ‘경제상식의 허와 실’ ‘중간관리자의 리더십과 노사관계’ 등
  • “절벽서 떨어졌다 하기엔 몸이 너무 깨끗했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생의 몸은 깨끗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재야 운동가인 고 장준하 선생의 변사체가 발견된 장소에 처음 도착했던 전직 경찰관 이수기(59)씨는 “당시 장 선생이 추락사했다는 당국의 조사 결과는 믿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장 선생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변사체로 발견됐으며, 이씨는 당시 포천경찰서 이동지서에 근무했었다. 이씨는 “당직 근무 중 경기도경으로부터 ‘장준하씨가 추락사했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에 처음 출동했다.”며 “지서로 첫 신고가 들어오기 전 상급기관인 도경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은 장 선생의 집이 도청당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장 선생의 변사체 상태는 14m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며 “귀 뒷부분에 조그만 핏자국 말고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으며 머리는 비스듬히 동쪽을, 다리는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의료진으로 보이는 군인 2∼3명이 먼저 와 있었다.”며 “목격자 확보차원에서 동행자가 있었는지를 물었고 그들로부터 김모씨가 동행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를 찾지는 목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사고 직후 각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할 때마다 길 안내를 맡았고,26년 후인 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첫 현장조사에도 동행했다. 또 의문사위의 조사과정에서 목격자인 김씨와 대질신문도 했다. 그는 대질 신문에서 “김씨는 당시 자신이 현장에 있었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거짓말을 하는 데 당황했다.”며 “현장에서 목격자를 찾았을 때 김씨는 없었고, 지서에 신고를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의문사위로부터 9차례의 조사를 받으면서 장 선생의 죽음과 관련, 보고 들은 것은 다 얘기했다.”며 “당국이 발표했던 대로 장 선생이 추락사했다고 믿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장 선생 의문사 사건은 의문사진상규명위 1기와 2기에서 모두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받았으며 최근 국정원의 과거사 진상 우선조사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장 선생의 30주기 추모제는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광탄리의 천주교 나자렛묘지에서 열린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희귀조류 전문가 김수일교수 별세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이던 희귀 조류학자 한국교원대 김수일 교수가 8일 오후 4시30분 별세했다.50세. 김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초빙연구원으로 일하다 지난 5월말 국내에서 열린 ‘저어새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지난달 26일 뇌출혈로 쓰러졌다.건국대 생물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5년부터 교원대 생물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다. 따오기, 저어새, 황새 등의 복원과 보전에 힘써 세계적으로 희귀조류 연구에 권위를 인정받았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 종 보전위원회 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유족은 부인 전영미(50)씨와 2남1녀. 빈소는 청주 참사랑병원 장례식장(043-286-9525). 발인은 10일, 장지는 경기도 의정부시 샘내 청량리천주교 묘지다.청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X파일’과 언론/홍의 언론지키기 천주교모임 고문

    지난달 21일부터 일부 언론을 통해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안기부 X파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신문들마다 다각적인 분석과 수사 방향, 전망 등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9일에는 불법도청 녹음테이프 274개와 녹취보고서 13권이 쏟아져 나왔다. 옛 안기부의 비밀도청 조직인 ‘미림’의 당시 팀장 공운영씨 집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 녹음테이프는 각 120분 분량이고 녹취보고서는 권당 A4용지 200∼300쪽이라 하니 실로 방대한 분량이다. 이 테이프와 녹취보고서에는 옛 안기부 미림팀이 재가동된 1994년부터 1998년 사이의 국내 정치, 관(官), 재계, 언론, 법조, 학계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위층 인사들의 결정적인 치부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검찰은 그 내용의 ‘공개 불가’ 방침을 밝혔지만, 테이프 등의 분석작업과 제작 및 보관경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수사하여 진상을 명백하게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 같은 검찰의 입장과는 달리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할 수 없다는 소리에 특별법제정 방안이 나오고, 이미 내용이 알려진 ‘X파일’과의 형평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X파일’ 보도와 관련하여 MBC 이상호 기자가 지난 5일 검찰에 소환되어 녹음테이프 등의 입수 및 보도 경위 등에 대해 조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MBC기자회와 시민단체들은 이날 이상호 기자의 소환이 사법처리를 위한 수순이라며 항의했다.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는 가운데, 삼성은 이미 언론들을 통신비밀보호법 등을 걸어 고발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서울신문 7월28일자 31면 ‘신연숙 칼럼’은 이와 관련, 적절한 예를 제시했다. “미국은 ‘취재원이 불법으로 정보를 얻었더라도 언론사가 이를 합법적으로 입수했다면 이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연방대법원 판결을 받아놓았다.”는 것이다. 칼럼은 “우리 언론도 보다 적극적인 보도와 법적 대응을 통해 ‘제자리’를 확보할 때가 되었다.”며 “어느 언론도 선정적, 추측성 보도는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언론자유의 영역을 확대하는 몸싸움에는 당당히 나서기를 소망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서울신문은 사설을 통해 여러 차례 이 불법도청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사건보도 초기에는 ‘X파일 진실 검찰 수사로 규명을’(7월25일자),‘X파일 수사, 검찰 의지를 주목한다’(7월26일자)등 사건의 전반적인 수사를 검찰이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다가 파문이 갈수록 번지자 ‘X파일 처리 특별법 검토할 만하다’(8월1일자)는 사설이 나왔고,8월8일자에서는 ‘문의장·국정원 말 왜 다른가’를 통해 대검 중심으로 수사진용을 새로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 5일에는 국가정보원이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 김영삼정부는 물론 김대중정부 때도 불법도청이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공식 확인하고,‘미림팀’으로 불렸던 도청팀의 실태를 발표하면서 공식 사과성명도 냈다.1961년 6월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최초의 자기고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신문은 이를 8월6일 1면 톱으로 싣고,3면부터 5면까지 3개면에 걸쳐 관련기사를 보도했다. 같은 날 사설 ‘역대 정권 도·감청 행각, 지금은 없나’를 통해 국가권력기관의 불법도청 행위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이제는 국가정보원의 개편론까지 거론될 정도로 사태는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공정한 수사를 이끌어내기 위해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판도라의 상자’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직시하여, 올바른 보도를 위한 정도(正道)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홍의 언론지키기 천주교모임 고문
  • [씨줄날줄] 새와 쥐/진경호 논설위원

    조선시대 하인들 가운데 ‘규비(糾婢)’가 있었다. 힘깨나 쓰는 양반가를 기웃거리며 그들의 은밀한 얘기들을 엿듣는 계집종들을 일컫는다. 오늘로 말하면 첩보원이자, 도청 전문가들이다. 나라가 새삼 시끄럽지만, 우리를 포함해 인류 역사로 보면 도청(盜聽)은 이처럼 매춘(賣春)과 더불어 가장 오랜 기원을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역(聖域)이 없기로는 더 윗길일지도 모를 일이다. 독재자 스탈린이나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국왕, 브라질의 페르난두 카르도수 대통령 같은 수많은 절대권력자들조차 도청에 시달렸다. 안기부 도청팀 ‘미림’도 성역을 두지 않기로는 남 못지않았던 듯하다. 한 문헌에 따르면 김수환 추기경도 1990년대 중반 도청을 당했다. 당시 안기부장이던 모 인사가 천주교 고위인사에게 “추기경님을 도청 대상에서 빼주겠다.”고 했고, 곧바로 사제관에는 도청 탐지기가 설치됐다고 한다. 김 추기경을 들여다보신 분이 하나님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미림팀의 활약은 당시 야권의 중심이던 김대중(DJ)씨에 대한 감시로 정점을 이룬다. 김 추기경이 도청받던 이 무렵 DJ의 동교동 자택 주변은 사실상 첨단 도청설비로 채워져 있었다.DJ 자택 양 옆의 178의 16호와 177의 6호는 전체가 안기부의 도청시설이었다고 한다. 특히 178의 16호에 있던 가건물은 DJ 집 지하서재 환풍구로 흘러나오는 얘기들을 도청하던 시설로 알려졌다. 당시는 92년 대선 패배와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온 DJ가 아태재단을 만들어 정계복귀를 검토하던 때였다. 물론 DJ는 이런 도·감청에 익숙해 있었다. 전화를 하다 중요한 얘기가 나오면 DJ는 “이 사람아, 이거 도청되는 거 알지?”라고 물어 상대방 말을 끊었고 은밀한 얘기는 필담(筆談)으로 나눴다. 도청과 사찰에 치를 떨던 DJ였건만 도청은 그가 집권한 기간에도 계속돼 온 사실이 드러났다. 마약보다도 강하다는 중독성을 다시 한번 내보인 셈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이제 세상은 ‘에셜론’이라는 국제적 도·감청망이 지구촌 전체를 감시하고, 휴대전화마저 도청당하는 시대가 됐다.‘낮말은 새가,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예언이었던 게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족구에도 자비 베푸시다니” “신부님들께서 잘 하셨지요”

    스님과 신부님들이 족구 실력을 겨뤘다. 경기는 신부님들이 이겼지만 양팀 모두 승패에는 연연하지 않았다. 6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천 둔치에서 열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오대산 월정사 주최 ‘제2회 오대산 월정사 주지배 평창군 족구대회’에서 월정사 스님들과 천주교 춘천교구 소속 신부님들이 시범 경기를 치렀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4명이 한팀을 이뤄 3세트 경기로 자웅을 겨룬 족구경기는 종교간의 벽을 넘는 친교의 장이 됐다. 스님들은 승복을, 신부님들은 사제복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와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여 응원나온 양쪽 신도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번도 연습하지 않았다는 신부님들이 1세트를 이겨 이변을 일으켰다. 이어 딱 한번 연습했다는 스님들이 자세를 바로잡아 2세트를 이겼고 마지막 3세트는 접전끝에 16대 14로 신부님들이 승리했다. 선수로 출전한 천주교 춘천교구 교육국장인 오세민 신부는 “갑자기 시합이 준비돼 연습하지 못했지만 매우 유쾌하고 즐거웠다. 스님들이 자비를 베풀어 사정을 봐 준 것 같다.”며 겸손해 했다. 하지만 경기결과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경기 중에도 서로 재미있는 표정으로 웃음을 자아냈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서로 뜨거운 악수를 하고 시원한 얼음 물을 건네 주며 즐거운 시합 이야기를 나눴다. 경기 후 스님과 신부님들이 같은 팀이 돼서 평창지역 유지들과 친선 게임을 갖기도 했다. 월정사 재무국장인 법상 스님도 “신부님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너무 더웠지만 정말 기분 좋은 하루였으며 아주 오래까지 기억에 남을 시합”이라고 말했다. 이번 월정사 주지배 족구대회에는 평창지역 30개 족구팀이 나와 이웃의 정을 나누는 화합의 장이 됐다.평창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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