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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지 않는 김추기경 추모열기] “그의 뜻 따라 우리 삶 변할 때”

    [식지 않는 김추기경 추모열기] “그의 뜻 따라 우리 삶 변할 때”

    “김 추기경님이 떠난 자리를 보며 허전함과 아쉬움이 크지만 우리는 슬픔에만 빠져있어서는 안 됩니다. 김 추기경님을 모범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정진석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추모미사가 22일 낮 12시부터 경기 용인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공원묘지와 서울 명동성당 등 전국 성당 1800여곳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교황특사이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이 집전한 명동성당 미사에는 2800여명이, 서울대교구 염수정 총대리 주교가 집전한 공원묘지 미사에는 25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명동성당은 이른 아침부터 신도들과 일반 시민, 취재진으로 붐볐다. 명동성당 종탑의 종이 울리며 미사가 시작되자 한승수 국무총리와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등 대성전 안에 모인 1200여명이 통로까지 가득 메웠다. 대성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마당과 문화관 꼬스트홀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미사를 함께했다. 정 추기경은 강론에서 “한국 사회의 큰 어른을 잃은 지난주 내내 이념과 계층과 세대를 넘어 끝없이 이어진 추모 행렬에서 우리가 얼마나 사랑과 겸손에 목말라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면서 “‘고맙습니다.’라는 추기경님의 유언은 반대로 우리가 추기경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라고 했다. 이어 “이제는 우리가 아집과 이기심과 욕심에서 벗어나 김 추기경님이 전파한 사랑과 나눔의 정신에 눈을 떠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추기경의 사진과 생전 말씀이 담긴 카드와 열쇠고리, 좌우명이 담긴 묵주가 명동성당과 공원묘지를 찾은 신도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주어졌다. 염 주교는 “김 추기경은 언제든지 성당 문을 열라는 의미로 열쇠고리를 선물로 줬다.”고 설명했다. 명동성당 관계자는 “김 추기경님의 통장에 남았던 1000만원이 안 되는 잔고는 묵주 대금 등으로 다 나갔다.”면서 “생전에 가졌던 모든 것을 다 나누고 가신 셈”이라고 전했다. 경남 밀양에서 3시간 동안 차를 달려 묘지를 찾은 황주연(27)씨는 “명동성당을 찾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달려왔다.”면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고민으로 불면증에 시달리셨는데 하늘나라에서는 잘 주무시길 바란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한편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의 뜻을 담은 ‘감사와 사랑’의 운동을 꾸준히 펼쳐나가기로 했다. 우선 이날부터 4월5일(사순절)까지를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라는 김 추기경의 말씀이 적힌 플래카드와 스티커를 제작해 배포한다. 김민희 박성국기자 haru@seoul.co.kr
  • [식지 않는 김추기경 추모열기] 수백억짜리 추모공원 논란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기념사업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김 추기경의 추모공원을 세우는 방안이 나오고 있으나 서울대교구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소박한 추모방식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추기경의 추모미사가 열린 22일 경북 군위군은 300억원을 들여 33만㎡의 땅에 김수환 추기경 추모공원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에는 김 추기경이 4살 무렵부터 8년가량 살던 집이 남아 있다. 군위군은 김 추기경 선종 전부터 이곳에 추모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고 앞으로 5년간 동상, 추모비, 성모동상 등을 세우기로 했다. 이 사업을 위해 김관용 경북도지사도 한승수 국무총리에게 예산 지원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대교구는 “별도의 기념관 건립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허영엽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은 이날 “다른 단체나 개인이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서울대교구에서는 추기경의 이름을 내세우거나 별도의 건물을 짓는 것을 원치 않았던 생전의 유지를 받들어 기념관 건립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현재 교구에서 계획 중인 명동 개발이 이뤄지면 역대 교구장들의 박물관을 건립할 예정인데, 김 추기경은 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여기에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 국장은 “군위군으로부터 사전 협의나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방문한 한승수 국무총리도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계제가 아니지 않으냐.”면서 경북도지사의 추모공원 건립 지원 요청과 관련된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천주교 신자들도 호화판 기념사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모(40·대구)씨는 “추기경께서 평생을 무소유 정신으로 사셨는데 수백억짜리 추모공원이 웬말이냐.”면서 “종교 지도자를 기린다는 취지 아래 자치단체를 홍보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최은정(41·경기 분당)씨도 “선종 직후 열기에 휩쓸리지 말고 추기경님 뜻대로 소박하게 추모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천주교 ‘감사와 사랑’ 캠페인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에 남긴 메시지인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의 뜻을 이어받아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감사와 사랑’의 운동을 펼친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인 허영엽 신부는 22일 명동성당에서 김 추기경 추도 미사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감사와 사랑’ 운동은 일반 단체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신부는 “오는 4월5일까지를 김 추기경의 추모 기간으로 정했다.”면서 “각 성당에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스티커도 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사와 사랑의 운동을 펼쳐나가는 것이 김 추기경의 깊은 뜻을 모든 이에게 잘 전하는 길”이라면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삶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하는 운동이 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허 신부는 서울대교구 내 비슷한 취지의 장학회와 통합하는 등 김 추기경의 아호를 따서 운영하고 있는 ‘옹기장학회’를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정진석 추기경이 적극 주도하는 것으로, 정 추기경도 장학회에 사재를 봉헌하기로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참 자랑스러웠던 아버지 같았던 분”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교황님과 교황청과 각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또 언젠가 “나는 그저 당신 양떼에게 비천한 종일 뿐”이라고 저에게 하신 말씀과는 달리 사제요, 영적 지도자로서 당신에게 맡겨진 양떼에게 충실하고도 선견지명을 갖춘 훌륭한 목자셨습니다. 교구장 지위에서 물러난 후에도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항상 낙천적이고 기쁜 모습을 보여줬던 참 신앙인이셨으며, 당신의 전 생애와 영면을 통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주님의 사랑 안에 영원히 머무르실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주님께서 김 추기경님을 영원히 사랑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강우일 주교 온 국민이 마음으로 의지하던 아버지 같은 분을 잃은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명동만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제주에서조차 조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세상살이가 너무 어렵고 희망은 안 보이고 어디를 봐도 의지할 데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추기경님의 떠나심이 더욱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연세가 많아지신 다음에는 도저히 빚을 갚을 길이 없음을 알고 요모양 요꼴이라고 탄식하며 자신에게 ‘바보야’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바보야. 그만하면 다 이뤘다.’ 편안히 가십시오. 주님 나라 들어가시면 평소 불쌍히 여기시던 백성을 위해 주님께 간구해 주십시오. ●최승룡 전 가톨릭대학 총장 추기경께서 돌아가시면서 각막을 기증하셨습니다. 이 기증으로 누군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빛을 보게 됐다고 합니다. 장기기증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다섯 배 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어떤 장관도 본받아서 기증서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추기경님의 배려와 사랑이 주위 사람들에게 감염돼 기증자와 수혜자가 늘게 되고 5000명이 빛을 보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각막 이식 대기자가 모두 빛을 보려면 5년 9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 기간을 1년 혹은 6개월로 단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 마음의 눈이 멀었습니다. 추기경을 모범으로 이 눈을 열게 되면 이는 더 큰 기적이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홍순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이승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저희 마음은 한없는 슬픔으로, 그러나 동시에 기쁜 희망과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온 국민이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는 것을 보며 저희는 평생을 착한 목자의 삶을 사신 추기경님이 자랑스럽고 고맙고, 그리고 이런 목자를 우리 민족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추기경님은 당신 죽음까지도 도구 삼아 우리와 모든 이를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는 영원한 사제요, 선교사이십니다. 저희도 하느님께, 나아가 추기경님을 다시 뵈올 때까지 가르침을 따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 같은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기로 다짐합니다.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교황청, 세번째 추기경 임명 앞당길 듯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한국 천주교계에 닥쳐올 변화에 교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주교계는 교회 기구와 운용을 비롯한 천주교 내부의 큰 지각 변동은 당장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한국 천주교의 유일한 추기경이 된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의 은퇴가 사실상 얼마 남지 않았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사회활동과 관련한 일반인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천주교 교회가 적지 않은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새 서울대교구장 취임·정진석 추기경 은퇴 임박 만 75세면 주교에서 은퇴하도록 하고 있는 천주교 규정상 78세인 정진석 추기경은 이미 정년을 3년 넘긴 상태. 정 추기경이 로마 교황청에 은퇴 의사를 밝혀 교황청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한국천주교는 가장 상징적이고 높은 자리인 서울대교구장을 새로 맞게 된다. 천주교계에 따르면 정진석 추기경은 정년을 맞은 시점부터 교황청에 사임 의사를 밝혀 왔다. 정 추기경의 은퇴와 그에 따른 새 서울대교구장의 취임 이후 대주교, 주교들의 연쇄 이동이 예상된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에 이은 세번째 추기경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제3의 추기경 탄생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같은 관측은 교황청이 정진석 추기경을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특사로 전격 임명해 김 추기경의 장례를 서울대교구장에서 교황장으로 격을 높여 치르도록 한 것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김 추기경의 선종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과 연일 이어지는 조문행렬을 본 로마 교황청이 한국천주교를 새롭게 인식, 새 추기경 임명 시점을 앞당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사회약자 위한 천주교 나눔·생명운동 탄력 한국천주교 교회의 성격과 관련해선 대(對)사회에 초점을 맞춘 활동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추기경의 생전 활동이 부각되고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가면서 교회의 역할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대전 교구를 비롯한 일부 교구에선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 강조하고 치중했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활동을 높일 것을 천명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김수환 추기경이 1989년 발족시킨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비롯한 천주교 사회복지 단체엔 가입을 원하는 이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본부장인 김용태(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장)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천주교계의 나눔과 생명 운동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그래도 이땅에 계십니다”

    “그래도 이땅에 계십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자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느님 앞의 영원한 삶을 시작했다. 20일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 어제 내린 눈, 비는 흔적이 없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환히 밝히기라도 하듯 성당을 감싼 하늘이 청정하기만 하다.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신자와 시민이 성당 정문부터 들머리, 대성당 입구를 가득 메워 발디딜 틈이 없다. 밤사이 손이 시릴 만큼 쌀쌀했던 날씨마저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정성의 물결엔 주눅이 들었다. 입당 성가로 시작된 장례미사에서 김 추기경은 신자석을 향해 누운 채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소박하게 치러달라.’는 김추기경의 뜻을 따라 일상 그대로 진행되는 미사의 의식들. 하느님이 고인을 평화와 빛으로 불러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와 말씀전례. 그리고 이어진 ‘가장 보잘 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베푸는 사랑이 곧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이 된다.’는 복음은 김 추기경이 생전 즐겨 읽고 인용한 말씀. 성당 곳곳에 흐느낌의 파도가 인다. 성찬전례에 이어 주교단과 유족이 일일이 김 추기경을 돌아 올리는 영성체 예식, 그리고 고별사가 이어졌다. “세상살이가 어려운 시기에 추기경님의 떠나심이 더욱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바보 웃음의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떠난 님의 사랑과 나눔의 큰 뜻을 잊지 않겠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마지막 인사들을 고인은 듣고 있을까. 두 시간 만에 미사가 끝나고 성당 북쪽 문을 통해 서울대교구의 가장 젊은 사제 8명이 운구를 시작하자 구름처럼 모여 있던 신자와 수녀들이 일제히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린다. 운구차량이 서서히 성당을 벗어나자 아쉬운 듯 뒤를 따르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울음이 명동을 뒤덮는다. 때마침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33번의 종소리. 추기경은 이제 더 이상 이 종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 성직자 묘역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20분가량. 남산1호터널과 한남대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들기까지 길가 곳곳에서 손을 흔들거나 성호를 긋는 시민들을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는 운구차량 행렬이 매몰차게 느껴진다. 묘역에 다다라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과 성모 마리아상 사이, 첫 한국인 주교이자 서울교구장인 노기남 대주교의 묘 바로 옆에 준비된 추기경의 자리가 눈에 든다. 기다리던 신도들의 찬송과 기도, 산에서 울려퍼지는 정진석 추기경의 축복에 이어 하관이 있자 울음과 기도가 바람에 섞인다. 이제 정말로 추기경을 보내야 한다. 주교단과 수도자, 유족 대표가 관 위에 흙을 덮자 참례자들이 입을 모아 위령 성가를 부른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목마른 사람은 내게 오라. 무거운 짐진 자 멍에 벗겨주고 영원한 생명을 네게 주리.’ 김 추기경의 영원한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세상에 남긴 사랑의 삶 실천운동 펼칠 것”

    [김수환 추기경 추모] “세상에 남긴 사랑의 삶 실천운동 펼칠 것”

    “평신도를 대표해 김수환 추기경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고별사를 하게 돼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추기경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유지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데 평신도들이 앞장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일 오전 10시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 때 평신도 대표로 추도사를 하는 한홍순(66) 한국천주교평신도협의회(평협) 회장은 19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추기경님은 생전 평신도들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보이셨다.”며 추기경의 큰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을 밝혔다. “추기경님은 누구와도 차별 없이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교회 안팎에서 평신도들이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원해 평신도들의 위상 변화 측면에서도 큰 발전을 낳았다.”며 평협이 결코 그 뜻을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추기경님이 우리 민족을 위해 하신 일들은 추기경 생전에도 충분히 알았지만 선종 뒤 연일 이어지는 추모 행렬을 보면서 더욱 크게 다가온다.”면서 특히 “520만 신도들은 추기경의 큰 일들을 말로만 칭송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 남긴 ’사랑의 삶’을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보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집안의 구성원들이 각각 다른 역할을 하듯이 천주교 교회에서도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의 할 일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최후를 맞기 전 제자들과 함께 밀떡과 포도주를 나누신 것은 공동체의 역할과 일을 당부하신 것입니다. 평신도들도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제 못지않게 교회와 공동체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큰 일들이 있습니다.” 한 회장은 김수환 추기경이 평생 삶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야말로 국장이나 다름없이 온 국민의 추도 속에 진행되는 추기경의 장례를 계기로 모든 이들이 깊이 새겨야 할 큰 뜻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위령기도 창 음률로…영복 비는 토착의식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명동대성당을 찾는 조문객들은 성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잔잔하게 울려펴지는 독특한 노랫소리에 묘한 느낌을 갖는다. 천주교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일반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겐 낯설기만 한 이 노래는 바로 ‘연도(煉禱)’라고 부르는 기도노래이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천주교의 장례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연도’는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바치는 위령기도(慰靈祈禱)를 창((唱) 음률에 얹어 부르는 소리. 전통의 우리 창과 그리스도교의 기도문을 절묘하게 융합한 것으로, 천주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토착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천주교회가 채택해 쓰고 있는 대표적인 산물이다. 전통적으로 천주교 교회에선 초대교회부터 죽은 이를 위해 기도를 바쳐왔으며, 지금도 각국 천주교계는 지상의 삶을 마친 영혼이 하느님 품에서 영복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전통 의식을 전례에 포함시키고 있다. 천주교 교리상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사도신경의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 교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기도형태인 우리 ‘연도’도 시편 129·50편, 성인 호칭 기도 및 찬미기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허영엽 신부는 “교회는 지금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뿐 아니라 천국의 성인들, 연옥에서 단련받는 이들까지 포함하는 공동체인 만큼 하느님 백성이 서로 공을 나누고 통교(通交)할 필요성을 갖는다.”며 “우리 고유의 전례인 연도는 비단 천주교 교회의 보편적인 기도뿐 아니라 희생과 사랑에 바탕한 토속적인 문화를 담은 특이한 전례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장례식에 앞서 19일 있은 입관식도 한국 천주교회만의 독특한 의식. 시신을 씻고 옷을 입히는 ‘염습’이 한국의 장례 양식과 동일한 형태로 진행돼 외국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성철스님 장례와 비교해보니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는 1993년 11월3일 입적한 성철 스님의 장례와 비슷한 점이 많다. 천주교와 불교가 서로 다른 장례의식을 갖고 있지만 한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큰어른을 보내는 국민들의 슬픔과 아쉬움은 두 장례식에 똑같이 배어 있다. 성철 스님의 장례식 때는 고통을 떠나 열반에 들어 영생을 얻는다는 거화(솜방망이 불을 높이 치켜듦) 및 하화(시신이 안치된 연화대에 불을 붙임) 의식이 있었다. 김 추기경의 장례에도 향을 피우고 성수를 뿌리면서 성인들이 고인의 영혼을 영접해주기를 바라는 고별식이 있다. 김 추기경은 입관예절 직전인 19일 오후 4시20분에 염습된 뒤 관에 모셔졌다. 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는 김 추기경을 목욕시키고 의복으로 갈아입힌 후, 입관 때 머리카락과 손톱 등을 함께 넣었다. 7일간 해인사 퇴설당에 모셔졌던 성철 스님 역시 1993년 11월10일 삭발, 목욕, 세수, 수의를 입는 착군, 승복을 입는 착의, 모자를 쓰는 착관 등의 입관절차를 거쳤다. 성철 스님의 영결식에 맞춰 전국 조계종 본·말사 1만 2000여곳은 일제히 다섯번씩 타종했다. 김 추기경의 장례식도 전국민의 추모식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두 분이 남기고 간 유품도 비슷하다. 성철 스님은 누더기가 된 염의(染衣) 한 벌과 검은 고무신 한 켤레, 돋보기 안경 하나만 남겼다. 김 추기경 역시 낡은 의복과 신발 그리고 안경 정도만 남겼다. 박성국 안석기자 psk@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영면하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자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느님 앞의 영원한 삶을 시작했다. 20일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 어제 내린 눈, 비는 흔적이 없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환히 밝히기라도 하듯 성당을 감싼 하늘이 청정하기만 하다.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신자와 시민이 성당 정문부터 들머리, 대성당 입구를 가득 메워 발디딜 틈이 없다. 밤사이 손이 시릴 만큼 쌀쌀했던 날씨마저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정성의 물결엔 주눅이 들었다. 입당 성가로 시작된 장례미사에서 김 추기경은 신자석을 향해 누운 채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소박하게 치러달라.’는 김추기경의 뜻을 따라 일상 그대로 진행되는 미사의 의식들. 하느님이 고인을 평화와 빛으로 불러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와 말씀전례. 그리고 이어진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베푸는 사랑이 곧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이 된다.’는 복음은 김 추기경이 생전 즐겨 읽고 인용한 말씀. 성당 곳곳에 흐느낌의 파도가 인다. 성찬전례에 이어 주교단과 유족이 일일이 김 추기경을 돌아 올리는 영성체 예식, 그리고 고별사가 이어졌다. “세상살이가 어려운 시기에 추기경님의 떠나심이 더욱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바보 웃음의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떠난 님의 사랑과 나눔의 큰 뜻을 잊지 않겠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마지막 인사들을 고인은 듣고 있을까. 두 시간 만에 미사가 끝나고 성당 북쪽 문을 통해 서울대교구의 가장 젊은 사제 8명이 운구를 시작하자 구름처럼 모여 있던 신자와 수녀들이 일제히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린다. 운구차량이 서서히 성당을 벗어나자 아쉬운 듯 뒤를 따르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울음이 명동을 뒤덮는다. 때마침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33번의 종소리. 추기경은 이제 더 이상 이 종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 성직자 묘역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20분가량. 남산1호터널과 한남대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들기까지 길가 곳곳에서 손을 흔들거나 성호를 긋는 시민들을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는 운구차량 행렬이 매몰차게 느껴진다. 묘역에 다다라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과 성모 마리아상 사이, 첫 한국인 주교이자 서울교구장인 노기남 대주교의 묘 바로 옆에 준비된 추기경의 자리가 눈에 든다. 기다리던 신도들의 찬송과 기도, 산에서 울려퍼지는 정진석 추기경의 축복에 이어 하관이 있자 울음과 기도가 바람에 섞인다. 이제 정말로 추기경을 보내야 한다. 주교단과 수도자, 유족 대표가 관 위에 흙을 덮자 참례자들이 입을 모아 위령 성가를 부른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목마른 사람은 내게 오라. 무거운 짐진 자 멍에 벗겨주고 영원한 생명을 네게 주리.’ 김 추기경의 영원한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글 / 서울신문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세대초월 ‘웰다잉’ 바람

    종교가 없는 배성숙(65·여·서울 서초동)씨는 18일 명동성당을 찾았다. 김수환 추기경의 평화로운 죽음을 느끼기 위해 긴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젊은 날에는 돈에만 얽매였고, 나이 들어서는 오래 살 궁리만 했는데 이제 욕심을 버리고 현명한 죽음을 준비해야겠어요.” ●선종의 의미 속세에 투영 김 추기경의 선종(善終)이 ‘웰다잉(well-dying)’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한 추기경의 모습에서 ‘웰빙(well-being)’만 좇던 우리시대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 것이다. 웰다잉은 정신적·육체적으로 품위 있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지다. ‘선하게 살다 복되게 마친다.’(善生福終)는 천주교식 선종의 의미가 속세에 투영된 개념이다. 명동성당을 찾은 15만여명의 추모객들은 유리관 속에 안치된 김 추기경의 평화로운 모습에 많은 감화를 받았다. 이모(33)씨는 “그의 온화한 정신과 육체를 보면서 삶과 죽음,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면서 “불현듯 끝날지도 모르는 생을 위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말했다. 유서쓰기, 입관체험, 자서전 집필, 나눔알기 등 웰다잉을 체험하는 기관들에는 문의 전화가 급증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은 “추기경이 선종한 뒤 웰다잉 프로그램을 문의하는 전화가 평소보다 40% 이상 늘었다.”면서 “20~30대들의 문의 증가가 특히 눈에 띈다.”고 말했다. ●‘죽음준비학교’ 수강생 급증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죽음준비학교’는 3월 중순 개강이지만 벌써 20명 모집인원 중 절반이나 찼다. 관계자는 “추기경을 추모하며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아 정원을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마련한 웰다잉 프로그램도 신청자가 지난해보다 2배로 늘어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상태다. 한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서혜경 교수는 “동네 할아버지처럼 친근했던 김 추기경의 감동적인 삶과 죽음은 그를 본받고 싶어 하는 국민들에게 선종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대근 조은지기자 dynamic@seoul.co.kr
  • [길섶에서] ‘내 탓이오’/박정현 논설위원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승용차에 ‘내탓이오’라는 스티커를 직접 붙이던 모습이다.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한때는 승용차마다 달고 거리를 누볐던 낯익은 스티커다. 내탓이오 스티커는 천주교평신도협의회가 1989년에 벌였던 사회참여캠페인이다. 남 탓을 많이 하는 우리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다. 대표적인 진보학자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도 어제 관훈클럽 초청 강연에서 ‘내탓이오’를 강조했다. 백 교수는 현 시국이 경제위기를 넘어 비상시국이라고 전제하면서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남 탓만 하다가는 통합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주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기 잘못은 외면하고 남의 탓만 하는 것이고, 대통령더러 반성하라고만 다그친다면 통합에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의 탓하기를 한국인의 국민성이나 민족성에 돌리는 것은, 또 다른 남 탓하기라고 했다. 백 교수의 강연과 김 추기경의 사진을 보면서 제2의 ‘내탓이오’ 캠페인을 생각해 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각막 이식 받은 70대 2명

    “다시 세상을 보게 해 준 추기경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을 이식받은 A(73·서울)씨와 B(70·경북)씨는 놀라운 기색이 역력했다. 수술 후 ‘김 추기경의 각막을 이식받았다.’는 말이 돌아 ‘혹시’하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그러다 김 추기경의 각막 적출 수술 당일 자신들 외에는 다른 이들의 수술이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혹시’가 ‘확신’으로 굳어졌다. A씨는 “추기경처럼 훌륭하신 분의 각막을 이식받다니 너무나 놀랍고 황송하다.”며 감격해했다. B씨는 “기증자가 누구이든 고마울 뿐이지만 추기경의 각막이라니 더 없이 각별하고 소중하다.”고 말했다. A씨는 19살 때 고향에서 과일을 따다 나뭇가지에 오른쪽 눈이 찔려 시력을 잃었다. 왼쪽 눈도 백내장(수정체가 회백색으로 흐려지는 질병)에 걸려 시력이 떨어졌다. 2006, 2007년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경과가 좋지 않아 시력을 되찾지 못했다. B씨는 30년 전 일하던 기계공장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로 왼쪽 눈의 각막이 파열됐다. 2005년 외국인의 각막을 이식받았지만 주변 조직이 거부 반응을 일으켜 시력 회복에 실패했다. A씨는 “죽기 전에 아이들과 손자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 그 꿈을 이루게 됐다.”면서 “앞으로 추기경의 삶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살겠다.”고 했다. B씨는 “시력을 회복하면 스무 살에 시집와 50년간 고생만 한 아내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것 같다.”면서 “아직 종교가 없는데, 추기경의 뜻을 기리기 위해 천주교를 믿겠다.”고 했다. 이들은 “시력을 되찾으면 추기경의 묘소를 꼭 찾겠다.”고 입을 모았다. A씨와 B씨는 지난 17일 오후 8시쯤 서울성모병원 김만수 교수와 주천기 교수의 집도 아래 각각 수술을 받았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 경과가 좋아 2~3일 뒤면 퇴원이 가능하다. 일주일쯤 뒤엔 흐릿하게 사물을 볼 수 있고, 두 달이 지나면 시력을 완전히 되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이제 영이별입니까”… 마지막 날까지 나눔다짐 행렬

    그의 빈 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그의 성스러운 삶의 행적을 닮기 위한 마음의 다짐일까. 김 추기경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인 19일에도 서울 명동성당의 조문객 행렬은 계속됐다. 지난 3일간 24만 9000여명이 빈소를 다녀갔는데도 새벽 4시부터 몰려든 인파로 명동 성당 일대는 북새통을 이뤘다. 오스왈도 파딜랴 주한 교황 대사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도 조문했다. 시민들은 개방 시간인 오전 6시 이전부터 성당 너머 1㎞가량 줄을 섰다. 오전 4시30분에 집을 나섰다는 이시몬(66·서울 구파발)씨는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도착해보니 이미 줄이 늘어져 있어 1시간 20분을 기다려 겨우 조문했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못 오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아 왔다.”고 말했다. 오전 9시40분쯤 빈소를 방문한 파딜랴 교황 대사는 “김 추기경의 선종은 사제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외롭고 괴로운 국민들과 함께하는 정치를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송구스럽다.”며 애도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온 시민들은 ‘오늘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다급한 마음이 역력해 보였다. 2001년 김 추기경의 백내장 수술을 집도한 김재호 원장은 “수술 전에 추기경께서 상담을 하며 각막을 기증할 예정인데 늙고 난시도 있어 기증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면서 각막 기증의 뒷이야기를 밝히기도 했다. 백발의 민경봉(76)씨는 “이렇게 큰 규모의 자발적인 조문 행렬은 김구 선생 서거 이후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추기경의 입관예식은 이날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시신은 오후 5시부터 25분간 얼굴만 공개된 뒤 관 속에 담겼다. 시민들은 더 이상 추기경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의 예식을 지켜봤다. 김 추기경의 시신은 20일 오전 10시부터 한 시간 동안 장례미사를 마친 후 장지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로 운구된다. 추도미사는 22일 낮 12시부터 명동대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열리며 같은 시간 용인 성직자 묘역에서도 염수정 주교의 주례로 진행될 예정이다. 글 / 서울신문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장지 용인 천주교묘역

    김수환 추기경이 20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곳은 경기 용인시 모현면 용인 천주교공원묘원이다. 18일 장례위원회가 김 추기경의 시신을 안장할 위치를 확정하자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주변의 풀과 나무를 다듬고 하관 의식에 사용할 삽을 흰색 천으로 감는 등 장례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김 추기경은 1984년 선종한 노기남 대주교의 바로 곁에 안장된다. 성직자 묘역의 맨 앞자리에 해당한다. 소박하고 간략하게 해달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묘소는 가로 1.2m, 세로 2m, 높이 0.6m인 다른 성직자의 묘소와 비슷한 크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관(추기경의 긴 모자) 때문에 관 길이가 30㎝가량 늘어남에 묘소의 크기도 그만큼은 길어진다. 0.8평 남짓한 2.76㎡ 넓이다. 용인 무등치 산자락에 있는 천주교공원묘원은 1967년 4월 조성됐다. 71만㎡ 부지에 묘역 면적은 34만 2745㎡에 이른다. 성직자 묘역은 공원 중심부에 동쪽을 향해 탁 트인 위치에 있다. 입구에 7m 높이의 예수상이 있고, 그 왼쪽에 기도하는 성모마리아상이 묘역을 바라 보고 있다. 길이 60m의 중앙 통로 양쪽에 64명의 역대 천주교 성직자가 잠들어 있다. 20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와 강론으로 열리는 장례 미사는 김 추기경의 뜻에 따라 일반적인 형식으로 이뤄진다. 다만 고별사를 5명이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지방에서… 출근前에… 끊이지 않는 행렬

    김수환 추기경 선종 3일째인 18일 서울 명동은 거대한 조문 행렬 그 자체로 변해 버렸다. 5㎞를 훌쩍 넘는 조문객 행렬은 남산 터미널 방면으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명동 일대를 꽉 메웠다. 장례위원회는 오후 11시30분 현재 조문객이 14만 2450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성당 밖 인파를 감안하면 이날 조문객은 15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각계 인사들도 속속 빈소를 방문했다. 오전 11시쯤 빈소를 방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라의 경제·안보가 어려워 김 추기경이 더 조언해 주셨어야 하는데 애석하다.”고 말했다. 조용기 여의도 순복음교회 목사는 “교파는 달랐지만 평소 존경하고 사랑해 온 어른”이라며 애도했다. 성당 안은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로 큰 혼란 없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됐다. 대구에 사는 안성희(50)씨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큰 어르신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드리고 싶어 달려 왔다. 2시간 넘게 기다려 겨우 조문했다.”고 말했다.이날 오후2시에는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에 남아 있던 김 추기경의 유품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사제복과 제구, 각종 임명장 등과 함께 김 추기경이 사용하던 안경, 파이프 담뱃대 등이 눈에 띄었다.한편 장례위원회는 입관예식과 장례식에 대한 세부 일정을 발표했다. 19일 오후 4시 명동성당 대성전 안에서 염습이 비공개로 진행된다. 오후 5시부터는 유리관에 안치됐던 김 추기경의 시신을 관에 넣는 입관예식이 시작되는데, 약 10분간 추기경의 얼굴을 공개한 뒤에는 시신을 직접 볼 수 없게 된다. 시민들의 조문은 19일 자정까지 허용된다. 20일 오전 10시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진행될 장례미사는 주교단과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봉헌된다. 시민들은 마당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장례미사를 볼 수 있다. 미사가 끝나면 장지인 경기 용인 성직자묘지로 시신이 운구된다.박성국 최재헌기자 psk@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남한산성 서문~동문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남한산성 서문~동문

    남한산(522m)은 남한산성이 될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밖에서는 험준하지만 안으로는 부드러운 산세, 북쪽으로 한강과 접해 있는 등 전략적 중요성을 두루 갖추었다. 삼국시대부터 축조된 산성은 인조 2년(1624) 대대적으로 증축되었다. 우리 역사에서 남한산성만큼 치욕의 상처를 간직한 곳도 드물다. 1637년 병자호란의 굴욕을 겪었고, 조선 후기에는 천주교인 박해 사건이 있었으며, 군사정권 시절엔 육군교도소가 들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한산성은 원형 그대로 말끔하게 복원되어 노송이 우거진 서울 근교의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다. 주말이면 역사 공부하는 아이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그리고 걷는 맛이 좋아 찾아온 산꾼들로 북적북적하다. ●작은 암문을 통해 은밀하게 성 안으로 남한산성은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하남시, 광주시, 성남시 등 4개 지역에 걸쳐 있어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많다. 그 중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서 수어장대(守禦將臺)에 올라 산성을 타고 서문~북문~동장대암문에 이르고, 여기서 조망이 좋은 벌봉(봉암·515m)을 다녀와 동문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아 보자. 이 길은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산성에 서린 역사의 흔적도 반추할 수 있다. 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로 나와 10여 분 가면 남한산성 입구에 이른다. 여기서 남한천약수터까지는 미로 같은 골목과 작은 고개를 넘어 40분쯤 걸린다. 약수터는 넓은 평지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시원하게 약수 한 잔을 들이켜고 제법 가파른 경사를 30여 분 오르면 울창한 소나무숲을 통과해 청량산(482.6m) 정상아래 산성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산성을 자세히 보면 개구멍처럼 작은 암문이 보인다. 암문(暗門)은 대문을 달지 않고 정찰병들을 내보냈던 문이다. 옛날에는 돌로 막아 뒀다고 한다. 허리를 굽혀 기다시피 통과하면 그 옛날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막상 들어서면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로 왁자지껄하고 널찍한 포장도로가 기다리고 있다. ●고기 비늘처럼 잘 짜여진 산성의 미학 본격적으로 산성길을 따르자마자 청량산 정상에 자리잡은 수어장대를 만난다. 본래 단층으로 지은 것인데 영조 27년(1751)에 2층 누각을 증축했다. 층간 높이는 낮지만, 야무지게 버티고 선 남한산성의 총지휘부다. 수어장대에서 서문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와 성곽의 오묘한 굴곡이 수평과 수직으로 어우러져 있어 발걸음을 즐겁게 한다. 남한산성은 본성의 길이가 9㎞, 옹성은 2.7㎞로 고기 비늘처럼 잘 쌓았다. 18세기 복원 기록인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를 따라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서문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러 나갔던 문이다. 성문이 낮아 머리를 숙여야 했고, 길이 가팔라 말에서조차 내려야 했다고 전해진다. 서문을 지나면 다시 암문이 나오는데, 그곳으로 나가면 연주봉옹성이 이어진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벽을 기어 오르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한 돌출된 방어시설이다. 보통 평지 읍성에 주로 설치하는데, 산성으로는 남한산성이 유일하다고 한다. 연주봉옹성 정상에 서니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청 태종이 깨뜨린 벌봉 언덕에 자리 잡은 북장대지(北將臺址)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장관이다. 산성 안의 나무들은 마을 주민들이 ‘금림조합’을 만들어 순산원을 두고 도벌을 막아 보호한 덕택에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아 남았다고 한다. 동장대암문에서 벌봉으로 이어진 길은 남한산성 최고의 걸작이다. 인적이 뜸한 길은 순하면서 호젓하고, 길섶 양쪽으로 허물어진 봉암산성이 쓸쓸한 분위기를 돋운다. 다시 동장대암문으로 돌아와 15분쯤 내려가면 작은 암문이 보일 듯 말 듯 숨겨져 있다. 이 암문 밖이 장경사신지옹성이다. 유장하게 곡선을 그리는 옹성 너머로 잘 생긴 광주의 산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제법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면 장경사를 지나고, 동문 아래에서 도로를 만나면서 산행이 끝난다. 송파구 마천동 남한산성 입구~남한천약수~수어장대~동문 코스 약 11㎞, 5시간가량 걸린다. 산악전문작가 >>> 가는길· 맛집 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로 나와 남한산성 입구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이 끝나는 동문에서 도로를 따라 5분 오르면 산성 종로 로터리다. 음식점은 이 일대에 몰려 있다. 오복손두부(031-746-3567)는 주먹두부가 독특하고, 백제장(031-743-6551) 은 산채정식, 함지박(031-744-7462) 은 엄나무백숙을 잘한다. 종로 로터리에서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으로 나가는 9번 버스가 수시로 있다. 남한산성 관리사무소 (031)743-6610.
  • [김수환 추기경 추모] 허영엽 신부 문답

    김수환 추기경 장례위원회의 홍보담당인 허영엽 신부는 17일 “추기경께서는 병상에서도 당신의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르도록 신신당부했다.”면서 “그래서 화환을 받지 않기로 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허 신부는 “20일 장례미사도 일반 신자와 다르지 않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 신부는 이날 구성된 장례위원회 첫 회의를 마친 뒤 명동성당내 임시 프레스센터에서 이렇게 브리핑했다. 장례위는 정진석 추기경을 위원장으로 부위원장은 염수정 주교, 김운회 주교, 조규만 주교 등 3명이 각각 맡으며 한국천주교주교단이 고문역할을 담당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추기경의 시신 옆에 놓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둘러싼 얘기들이 분분한데. -추기경께서 군사독재에 반대해 거부한 훈장을 정부가 갖다 놓아 갈등이 빚어졌다는 식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됐는데 잘못 알려진 것이다. 추기경께서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1970년 8월15일에 이미 받았다. 유신 선포전이다. 어제 정부가 유인촌 장관을 통해 이 훈장을 다시 갖다 놓은 이유는 국민의 사랑의 표시로 다시 제작,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장례미사는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나. -미사 끝에 몇분의 조사가 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신자의 장례미사와 기본적으로 같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진행된다. 여기에 마지막 기도를 바치는 고별 예식이 따른다. →안구 적출 수술을 받았는데 안구 상태는. -감염이 없는, 일반적인 각막으로 판정됐다. →유리관은 특별한 장치가 돼 있나. -냉장 장치가 돼 있다. →19일 입관되면 더 이상 얼굴을 못 보나. -그렇다. 정식 관에 모시는 것이다. →추기경의 재산은 어떻게 되나. -재산도 많지 않다. 교구 사무처에 맡겨 놓은 유언장에 모든 것을 교구에 넣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교황청의 조문 일정은. -일단 조전이 와 있다. 일반적으로는 교황청이 조문 대표를 선임해 조문하고 미사에 참여하도록 한다. 그게 일반적인 관례다. →후임 추기경은 누가 되나. -전 세계에 추기경은 150명가량이다. 교황청이 임명에 대한 전권을 갖는다. 특정한 나라에 배당하는 게 아니다. 후임이 누구인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바보’의 나눔 바이러스 온 세상에 번지나

    ‘바보’의 나눔 바이러스 온 세상에 번지나

    “추기경 김수환은 바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 생전에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을 ‘바보’라고 불렀다. “바보같이 남을 도와야 세상을 구원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김 추기경이 세상에 던진 ‘바보의 사랑’이 우리 사회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다. 2002년 아호인 ‘옹기(甕器)’에서 이름을 따 만든 옹기장학회는 그가 몸소 실천해온 사랑과 나눔의 결정체다. 옹기는 김 추기경의 부모가 옹기 장사를 하며 당시 박해 받던 천주교를 전파한 데서 연유한다. 옹기장학회는 사제들이 특별히 마련된 옹기에 십시일반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가정형편이 어려운 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설립 이후 지난해 8월까지 87명의 학생에게 1억 8000만원의 장학금이 전달됐다. 지난해 가을 장학금을 받은 권오영(28·가톨릭대 6학년)씨는 “장학금을 주시면서 ‘옹기는 보잘것 없고 쓸모 없어 보이지만 사실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옹기 같은 사제가 돼 달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의 각막 기증을 계기로 자신도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김 추기경이 초대 이사장을 지낸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는 17일 장기기증과 후원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장기기증 운동 단체인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는 하루 평균 30명 내외인 장기기증 서명자가 이날 오후 7시 현재 100명을 넘어섰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김수환 추기경 추모 특별 생방송’에 출연해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김 추기경이 직접 설립해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서울 성북동의 미혼모 자녀 입양기관인 ‘성가정입양원’에도 이날 입양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입양원 관계자는 “입양 문의가 평소 일주일에 열 통 정도였는데 오늘은 하루에만 대여섯 통이 왔다.”면서 “추기경님의 선종 때문에 입양을 생각한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는 “공동체가 파괴된 우리 사회에서 추기경은 바보같이 남을 도운 사람들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떠났다.”면서 “우리 사회에 바보들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도 “김 추기경은 자화상으로 바보를 그렸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약삭빠른 계산을 떠나 진심으로 돌아가는 바보스러운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면서 “그분처럼 우리도 바보가 되자.”고 했다. 박성국 최재헌기자 haru@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끝없는 조문행렬… 9만여명 애도 발길

    [김수환 추기경 추모] 끝없는 조문행렬… 9만여명 애도 발길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틀째인 17일 서울 명동성당은 본격적인 조문 행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김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시민들은 명동성당을 넘어 계성여고 쪽으로 1㎞가량 길게 줄을 섰다. 볼이 에일 듯한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시민들은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조문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등 각계 인사 50여명의 조문도 아침부터 계속됐다. 김 추기경의 시신이 놓인 명동성당 대성전에는 오전 6시부터 신도와 일반인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와는 별도로 명동성당 지하 성당에서는 추모미사가 오전 5시3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진행됐다. 대성전과 꼬스트홀 2층에서는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도(煉禱·천주교식 위령기도)도 계속됐다. 이날 명동성당을 방문한 조문객은 9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유명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천주교 신자로 김 추기경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전 11시쯤 방문해 “김 추기경은 야당 시절부터 나의 정신적 지도자였다.”면서 “성직자로서뿐 아니라 독재 치하에서 신음하는 국민들을 위해 광야의 소리 같은 말씀을 하신 위대한 신앙가”라고 말했다. 오전 10시쯤 빈소를 방문한 불교방송 이사장 영담 스님은 “종교는 다르지만 국민의 성직자로서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돌아가신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명동성당은 일체의 조의금이나 조화를 사절했다.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되돌려보냈다. 허영엽 서울대교구 문화공보국장은 “장례식이 간소하게 진행됐으면 했던 김 추기경의 유지를 받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여든 조문객들은 김 추기경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척추장애로 다리를 저는 김윤식(80·경기 산본)씨는 “개신교 신자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40년 동안 존경해온 분의 마지막을 보고 싶어 불편한 몸을 이끌고 3시간이 걸려 이곳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40년간 천주교 신자로 지내온 김방지거(81·서울 청량리)씨는 개종의 이유가 김 추기경이라고 했다. 김씨는 “사진사로 1968년 피정(종교 수련회)에 참여했는데 그때 김 추기경이 피곤하겠다며 집까지 차를 태워주셨다. 그 은혜를 잊지 못해 결국 천주교로 개종하게 됐다.”면서 “천국에서도 다시 뵈었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한편 김 추기경이 입원했던 서울 강남성모병원은 이날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추기경은 마지막까지 의미없는 생명 연장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황태곤 병원장은 “마지막까지 진통제나 다른 처치를 하지 않고 영면하셨다.”고 말했다. 또 김 추기경에게서 적출된 각막은 이식이 가능하며 대상자가 이미 정해졌지만, 누가 추기경의 두 눈을 받을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병원측은 밝혔다. 김민희 이영준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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