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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지로 엿보는 옛 사람들의 내밀한 삶

    편지로 엿보는 옛 사람들의 내밀한 삶

    휴대전화, 이메일, 모바일까지. 이제 관공서 등 대형 기관 같은 곳에서 일괄 발송하는 것 외에는 우편물 가운데 편지를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됐다. 14~16일 밤 9시 50분 방영되는 EBS 다큐프라임은 역사적 인물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3부작 ‘편지’를 방영한다. 마침 14일이 밸런타인데이니만큼 초콜릿보다는 따뜻한 정을 담은 편지 한 장 건네보는 게 어떨지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1부 ‘내 편지에만 충실하세요’ 편은 지식인들의 편지를 소개한다. 등장인물은 자연을 사랑한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와 실학자 정약용·약전 형제. 루소는 조금 냉소적인 면이 있던 철학자다. 그런데 친구의 4살 꼬마 소녀에게는 한없이 다정해 식물을 설명하는 편지를 보낸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이답게 그 설명들이 구체적이고 친절하다. 정약용 ·약전 형제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천주교 문제 때문에 강진과 흑산도에서 각각 오랜 유배생활을 했다. 그 탓에 그들은 학문적 관심사를 편지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 편지에는 유배생활의 외로움이나 애처로움까지 함께 묻어 나온다. 2부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는 작가들의 편지 세계를 훑어본다. 교회 종지기로 외로운 생활을 했던 ‘강아지똥’의 작가 권정생, 그리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배우를 꿈꿨으나 동화작가로 전향한 안데르센이 주인공이다. 권정생은 당대의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과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고, 안데르센 역시 덴마크의 국민작가 베른하르트 잉에만에게 문학적 성취에 대해 질문했다. 두 대가의 도움 덕분에 권정생과 안데르센은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동화들을 남길 수 이었다. 3부 ‘공교롭고도 요묘하지요’는 재치넘치는 옛 편지를 담았다. 오늘날 인터넷이나 트위터에서는 짧은 답글로 계속 대화가 이어지는데, 조선시대에도 그런게 있었다. 바로 ‘척독’(尺牘). 원래는 한 척 길이의 나무판에다 짧은 글을 써서 주고받던 것인데 종이가 발명된 뒤에도 짧은 서신을 척독이라 불렀다. 당연히 의례나 격식을 갖추는 사이보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오가는 편지다. 그만큼 짧은 리듬감과 유머가 녹아 있다. 조선후기 서화가 조희룡(1789~1866)의 척독 등을 살펴본다. 또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와 후원자 폰 메크 부인 사이의 짧은 편지도 공개된다. 이들 사이에 연애 비슷한 감정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들은 편지만 주고받았을 뿐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들의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신자들이 견제·감시 역할해야”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국내 주요 교단들은 종교가 범죄에 대한 자정 대책을 나름대로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존 대책들이 강제력이 없거나 사후 제재에만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아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한다고 지적했다. 불교계 최대 종단인 조계종은 중앙행정기관인 총무원에 ‘호법부’를 두고 승려 감찰 역할을 맡기고 있다. 호법부는 교구마다 해당 인력을 배치해 상시 감찰를 하고, 큰 사건이 터진 경우는 따로 집중 조사를 벌인다. 감찰 결과에 따라 사법기관인 호계원에 넘겨 재판을 하고 승려직 박탈형인 멸빈(滅擯)이나 제적, 직무정지에 해당하는 공권정지 처분 등을 내린다. 천주교도 추기경-주교-신부로 이어지는 엄격한 체계 내에서 교회법에 따라 신부 등을 처벌한다. 여기에는 종교 범죄 외에, 사회법상의 살인 등은 파면에, 미성년추행은 제명에 처분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한편 개신교는 장로교, 감리교 등 교단별로 윤리위원회를 두고 목회자 범죄를 처벌하고 있다. 문제를 일으킨 목회자는 각 교단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그 결정에 따라 목회자 자격이 박탈되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계 관계자들은 이런 시스템이 공고하게 운영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 원인의 하나로 ‘제 식구 감싸기’를 든다. 각 자정 시스템에서 처벌받는 쪽과 처벌하는 쪽이 모두 같은 교단 동료이다 보니 엄정한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파면·제적 등 강도 높은 제재까지 갈 경우 교단 내 세력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교단 외부 신임도도 문제가 돼 어느 정도 선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회법과 종단법·교회법 사이의 괴리도 있다. 사회법을 위반해도 교단 차원에서는 처벌 근거가 없거나 미약한 경우가 많다. 한 불교계 관계자는 “종법은 세속 사회의 변화를 그렇게까지 따라가지는 못한다.”고 전했다. 실례로 사회법상 공직자는 벌금 100만원형 이상이면 공직을 박탈당하지만, 조계종법상 직무정지는 금고형 이상을 받을 경우에 가능하다. 사회법이 종법보다 더 엄격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종교인 범죄를 줄이고 도덕성을 제고하는 데는 신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사실상 교단을 불문하고 종교인들은 교단 내 견제·감시 세력이 전무한데, 신자들이 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개신교 감리교단의 경우는 담임 목사 등 성직자 인사에 성직자와 평신도의 목소리를 함께 반영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종교 비평가 김선주 목사는 “윤리위원회도 평신자를 포함시키면 종교인 범죄에 대한 자정 효과가 훨씬 커질 것”이라며 “이를 위한 교계 내부 반성과 사회적 압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단체에 대한 당국의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종교에 대해 관리보다는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종교단체 역시 조직이 자유로워 누구라도 단체를 만들어 종교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소위 ‘사이비 종교인’이 생겨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한 천주교 관계자는 “범죄 통계 중에는 실제 성직자라고 하기 힘든 ‘자칭 종교인’이 저지른 범죄가 상당히 많을 것”이라며 통계 자체의 신뢰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이에 당국이 종교단체 난립을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도록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정웅기 실천불교재가연대 사무총장은 “현재 종교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외에도 더 강도 높은 ‘경제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며 “일본, 유럽과 같은 ‘종교법인법’을 통해 교단을 법인으로 관리하고 세금을 징수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종교계 “구제역 살처분 反생명적”

    천도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종교 단체 관계자들이 8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의 구제역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구제역 사태를 바라보는 범종교인의 입장과 기도’라는 주제의 회견문에서 “구제역으로 살처분·매장당한 가축 수가 300만 마리를 넘었는데도 아직도 구제역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지 않고 있다.”면서 “이 엄청난 재앙과 반생명적 현실에서 우리 종교인은 우리 사회의 현실과 우리 자신의 삶, 신앙을 되돌아보면서 생명 존중 문화의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공장식으로 사육된 것이 아니라 방목된 가축의 고기를 소비하는 캠페인인 ‘소박한 생명의 밥상을 위한 범종교 네트워크’ 등을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천도교 한울연대, 원불교 환경연대, 가톨릭환경연대, 우리신학연구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한국가톨릭농민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등 19개 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십계명’ ‘오계’ 무색한 폭력·강간 등 강력범↑

    ‘십계명’ ‘오계’ 무색한 폭력·강간 등 강력범↑

    기독교(천주교, 개신교 포함)의 ‘십계명’, 불교의 ‘오계’(五戒) 등 각 종교의 계율은 그 성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살인, 도둑질, 거짓말, 간음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종교 계율뿐 아니라 사회법에서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범죄다. 그러나 8일 검찰 등에 따르면 종교인들의 범죄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그 수법도 다양화되고 있다. 특히 폭력, 강간 등의 강력 범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마약, 성매매,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과 같이 도덕적으로 비난의 여지가 큰 범죄들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어 충격적이다. 유형별로 보면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율에 해당하는 ‘사기’가 폭력 관련 범죄와 함께 종교인 범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사기는 전체 종교인 범죄 중 15%가량을 차지한다. 그 방법도 다양하다. 돈을 빌리고 갚지 않거나 개발을 목적으로 투자금을 받아 가로채는 형태는 다반사다. 최근에는 ‘다단계 선교’와 같이 종교적 색채를 가미한 사기 행각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는 선교회에 회원을 가입시킬 때마다 수당을 준다고 속이고 가입비를 가로채는 것으로, 다단계 판매와 교회의 전도행위를 결합한 셈이다. 각 종교들이 공히 금지하고 있는 ‘간음’ 또는 ‘음행’(淫行)과 관련된 범죄도 늘고 있어 흥미롭다. 강간은 적은 수지만 소폭씩 증가 추세에 있으며, 성매매특별법 위반도 매년 20건 가까이 발생하고 있다. 성매매의 경우, 실제 적발되지 않은 건수가 상당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수치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청소년성보호법 위반자 중에도 종교인이 포함돼 있어 충격적이다. 특히 이들은 종교인이라는 자신들의 위치를 이용해 어린 신자들을 꾀어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해 7월 10대 신자들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30대 전도사는 “기타를 치며 찬양 예배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신자들을 유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율에 해당하는 절도나 횡령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절도는 2007년 99건에서 2008년 107건, 2009년 145건으로 늘었으며, 횡령은 2007년 91건, 2008년 109건, 2009년 101건이었다. ‘살인’은 2007년 5건, 2008년 12건, 2009년 2건이 발생했다. 종교인의 범죄는 범죄가 가지는 사회적 악영향 외에도, 종교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종교인들은 통념적으로 일반 신자나 비종교인에 비해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고 있으며, 대다수는 그 기대에 모범적으로 부응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종교인들의 이와 같은 일탈 행위는 각 교단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며, 곧 신자들의 이탈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종교인 범죄 원인의 하나로 자질 문제를 든다. 매년 관련 종사자를 찾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무분별하게 후보자들을 받아들이고 교육·배출한다는 것이다. 천주교는 성직자 수급 구조가 단일화돼 있지만, 개신교만 해도 교단·교파마다 있는 신학교는 물론, 무허가 신학교까지 난립해 목회자를 배출하고 있다. 불교는 조계종 등 중앙 통제가 가능한 몇 개 종단을 제외하고는 역시 제각각의 소수 종단이 난립해 있고, 무속인은 공식 통계를 잡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횡령과 같은 재산 범죄에 대해서는 재산권을 성직자가 가지는 제도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장은 “일부 주지스님이나 교회 담임목사들의 경우 재산 관념이 희박해 교회·사찰 재산을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며 “주지·목사가 행정 전권을 휘두르는 제도는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설 연휴 가족과 역사향기 즐겨요

    설 연휴 가족과 역사향기 즐겨요

    설 연휴 가족들과 두 다리로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 보자. 서울시가 1일 역사문화 탐방길 4곳을 소개했다. ●환구단과 정동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 내 환구단에서 시작한다. 대한제국의 독립을 내외에 알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이다. 이어 정동길에 들어서면 초입에 정동제일교회를 만난다. 이 붉은색 교회당은 1897년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 건축물이다. 정동극장 옆 골목에 있는 경운궁 중명전은 고종의 도서관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 정동길 중간에는 고종과 왕세자가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의 현장 옛 러시아 공사관이 있다. 이 코스는 1.2㎞에 불과해 30분 만에 돌아볼 수 있다. ●서대문 독립공원과 인왕산길 서울성곽길 탐방코스다. 독립문과 독립공원에서 시작해 인왕산 국사당과 선바위, 서울성곽, 안평대군 집터, 석파정, 창의문에 이르는 3.5㎞ 코스로 3시간가량 걸린다. 1896년 독립협회가 한국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사대외교의 표상인 영은문을 헐고 세운 독립문 옆을 아이들과 함께 거닐면 역사적 교훈을 일깨울 수 있는 교육현장으로 좋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로,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 서재필이 스케치했고 전 국민의 성금을 모아 건립했다는 점에서다. 국사당은 무속신을 모신 당집이다. 이어 서울 성곽을 따라 인왕산 정상 치마바위를 넘어 내려오면 안평대군의 집터가 있고, 흥선대원군 별장인 석파정을 지나면 북문이나 자하문으로 불리는 창의문과 맞닥뜨린다. ●세종대왕기념관과 홍릉수목원 청량리역 2번 출구 방향으로 20분쯤 걸으면 고종의 후궁 순헌귀비 엄씨의 묘소인 영휘원이 나온다. 숭인원, 세종대왕기념관, 홍릉수목원으로 이어지는 약 1.7㎞의 코스로 40분 정도 소요된다. 숭인원은 영친왕 아들 이진의 묘소로 망국의 비극적인 역사가 서려 있다. 세종대왕기념관에는 재위 32년의 업적을 담은 그림과 보물급 한글 문헌 100여종이 전시돼 있다. 삼거리를 건너면 홍릉수목원이다. ●망원정과 절두산 순교박물관 지하철 2호선 합정역 8번 출구로 나와 강변북로 쪽으로 걸으면 세종대왕의 둘째 형 효령대군 별장이 있던 망원정이다. 여기에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과 절두산 순교박물관으로 이어지는 2.5㎞ 코스다. 50분 정도 걸린다. 절두산 순교박물관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곳. 맞은편에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등 415명이 안장돼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씨줄날줄] 말의 허물/김성호 논설위원

    인간 뇌 세포의 98%는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말을 하면 뇌에 입력되고 뇌는 척수를 지배해 행동을 좌우한다는 과학적 논리다. ‘말은 행동을 지배한다.’는 사회학적 주장이나 ‘말이 씨가 된다.’는 격언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말의 중요함에 대한 강조다. 중국 당대 인재 등용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둘째 항목도 말 씀씀이의 정교한 관찰이다. 말을 가려 쓰자는 신중함의 당부는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의 시조며, 귀는 두개인데 입은 하나인 까닭도 잘못된 말이 부를 화를 경계해서다. 불교도 인간이 살면서 몸·말·뜻으로 짓게 되는 세 가지 죄업(三業) 가운데 하나로 세치 혀의 잘못된 놀림인 구업을 놓고 있다. 말은 이렇게 끊임없이 경계의 대상으로 신중함이 강조되지만 보통 사람들의 입은 여전히 오염과 허물의 씨앗이다. 우리 사회 속 잘못된 말의 폐해는 심각하다. 지식인은 물론 정치인, 학생 할 것 없이 폭언을 쏟아낸다. 안방극장에 저질 말이 넘치고 공식석상에서 정치인의 시정잡배식 막말도 예사다. ‘헛소리하는 이명박 정권을 확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나.’라는 막말에 이어 성형 안 한 여성을 ‘자연산’이라 빗댄 비하의 후유증이 심하다. ‘두번 감옥간 사람이 세번은 못가겠냐.’며 ‘착각하는 현 정부 한번 붙어보자.’고 했다는 한국노총 위원장의 폭언은 또 어떤가. 그런데 종교계의 막말도 험악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찰 주지 스님이 법회에서 ‘총무원을 찾아가 내 승적을 불태우겠다.’고 하더니 사찰 대웅전을 점령한 개신교 신자들은 ‘이 절이 무너지게 해주십사.’고 소리 높여 기도를 했단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의 극언은 또 어떤가. 기자간담회에서 추기경이 한 발언을 놓고 ‘골수 반공주의자’로 몰아세워 사퇴까지 요구했다니 한국 천주교 초유의 반란이란 비아냥이 무색하지 않다. 세속과 구별되는 사랑·배려의 가치를 외면한 독선의 일탈이 심상치 않다. 엊그제 조계종 총무원장, 한기총 대표회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의 회동이 화제다. 모임에서 한기총 회장은 “가장 큰 허물은 언어의 허물”이라고 했다. 심해져 가는 이웃종교 간 갈등을 의식한 발언일 터. 종교 간 충돌을 저어하는 말의 자제와 신중함에 대한 당부. 그런데 지금 우리 종교의 허물을 인정하는 언사로 비쳐짐은 왜일까. 인류가 가진 최고의 도덕률이라는 종교인데, 말 그대로 말의 허물만이라도 벗겨낼 수 있다면….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불온선물세트’ 강이천 ‘개혁군주’ 정조를 궁지에…

    ‘불온선물세트’ 강이천 ‘개혁군주’ 정조를 궁지에…

    ‘시대를 잘못 타고난 선비’ 강이천이 한 역사학자에 의해 되살아났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백승종 지음, 푸른역사 펴냄)은 ‘조선 후기 르네상스’라 불리는 영·정조 시대에 ‘문화투쟁’을 벌이다 옥중에서 사망한 강이천(1768~1801)을 주인공으로, 조선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다.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등의 책을 쓴 저자 백승종씨는 정감록을 연구하다 강이천을 만나게 된다. 현재 백씨는 충남의 한 시골마을에서 한문고전과 독일어 성경을 가르치며 마을 사람들의 구술생애사를 연구 중이다. 18세기만 해도 천주교는 당시 크게 유행했던 예언서인 ‘정감록’과 밀접한 관계였다. 몇몇 천주교 신자들은 정감록에 담긴 ‘해도진인’(海島眞人·섬에서 진인이라 불리는 영웅이 나와 조선을 멸망시키고 새 나라를 세운다는 설)이란 관념을 빌려 갔다. 정감록 신앙집단은 천주교의 말세관에서 왕조 교체의 심층적 의미를 발견하기도 했다. 일찍이 진사 시험에 합격했고, 소년 시절부터 몇 차례나 정조 앞에 불려 나가 시를 짓기도 했던 강이천은 꽤 유명한 선비였다. 하지만 천주교뿐 아니라 정감록에도 마음을 빼앗겨 결국 정조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꼴이 되고 만다. 흔히 ‘조선 시대의 개혁 군주’라 불리는 정조에 대해 백씨는 “정조처럼 개인적으로 특출한 능력을 갖춘 왕이라면 응당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 성향을 띠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런 믿음은 그릇된 것으로, 정조는 결코 실험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정조는 도교와 불교는 물론 새로 도입되기 시작한 천주교에 대해서도 적대적이었다. 오직 주자의 사상만을 정학(正學)으로 여겼고 양명학은 물론이고 중국에서 나온 신간 서적의 수입도 엄금했다. 이른바 ‘패관소품’(요즘의 단편소설이나 수필에 해당하는, 사람이 느낀 감정을 거짓 없이 기록하는 글.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당시 이런 문체를 대표함)의 문체가 조금이라도 묻어 있는 글이면 무조건 과거시험에서 떨어뜨렸다. 이는 조선의 왕들은 보수 성향을 띨 때만 비로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 게 저자의 분석이다. 조선의 어떤 왕보다 두뇌가 명석했던 정조는 기득권 세력인 양반의 특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조선 국왕의 권위는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서 나왔고, 이를 부정하는 북학이나 실학, 천주교와 서양의 새로운 과학기술을 받아들였다가는 왕의 권위가 추락하는 것은 물론이요, 자칫하면 목숨조차 건지기 어려웠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본 정조는 누구보다 보수적인 왕이었다. 하지만 강이천은 조선 사회가 요구하던 성리학 공부에 묻히기를 거부했다. 조선의 지배층이 이단으로 규정한 천주교와 정감록, 패관소품에 관심을 뒀다가 1797년 불길한 유언비어를 퍼뜨려 혹세무민한 죄로 유배를 갔고 정조 사후 이 사건으로 결국 옥중에서 숨진다. 저자는 강이천이 18세기 불온한 분위기를 한몸에 지닌 ‘종합선물세트’였으며 정조를 궁지에 빠뜨린 공상적 이상주의자였다고 평가한다. 존재 자체가 체제에 대한 위협이었던 강이천의 말로가 결국 옥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1만 65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지난 22일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씨가 멀리 떠나는 날은 매서운 한파도 잠시 멈칫하며 아득한 먼길을 애도했다. 25일 오전 10시 경기 구리시 토평동 성당에서 치러진 장례미사는 신정순 주임신부의 집전으로 열렸다. ●각계 인사 500여명 마지막 길 지켜봐 큰딸인 작가 호원숙씨 등 유가족과 고인에게 세례를 줬던 김자문 신부를 비롯해 김화태 신부, 조광호 신부 등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성직자들이 참석했다. 또한 소설가 박범신,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이근배 시인, 이해인 수녀 등을 비롯해 정과리, 강영숙, 조선희, 정종현, 민병일, 이경자, 심윤경, 임철우, 은희경, 공지영 등 여러 문인들과 양숙진 현대문학 대표,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 김영현 실천문학사 대표와 같은 문학계 인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관계 인사, 독자 등 500여명이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김성길 신부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지만 늘 한 송이 수선화처럼 다소곳하고 겸손의 향기를 풍기신 분”이라면서 “영정 사진 속 웃는 모습 역시 시골장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낙네 같은 소박한 모습”이라고 돌이켰다. 또 “참으로 큰 분이셨음에도 모든 요란하고 화려한 장례를 마다하시고 신앙의 여정을 걸었던 성당에 소박한 영결미사를 맡기셨다.”면서 “책 읽는 즐거움과 독서를 통해 삶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소박하고도 단아했던 고인의 삶과 죽음을 기렸다. ●“쓰셔야 할 소설이 동백처럼 있는데…” 정호승 시인은 조시에서 “선생님께서는 영원히 불혹의 작가이십니다/ 아직도 쓰셔야 할 소설이 흰 눈 속에 피어날 동백처럼 숨죽이고 있습니다/ 못 가본 길이 그토록 아름다우십니까/ 좀 늦게 가보시면 아니 되옵니까.”라고 안타까워했다. 고인과 각별함을 유지했던 문학평론가 유종호 연세대 교수는 조사에서 “선생님이 계셔서 그나마 따뜻했던 겨울이 오늘 이렇게 모질고 춥다.”면서 “이 시대의 어둠과 아픔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표현하셨으며 비상한 재능에도 전혀 거부감을 촉발하지 않는 인품에서 늘 참다운 재능의 깊이를 실감했다.”고 고인의 부재에 대한 공허함을 절감했다. 이어 “사나운 시대의 험한 꼴을 많이 보셨지만 그 아픔과 쓰림이 국민문학이 됐으니 결코 헛되지 않았다.”면서 “이제 하늘에서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조사를 끝맺어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장례미사를 마친 고인의 운구 행렬은 환한 미소의 영정 사진과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을 앞세워 길게 이어졌다. 시신은 경기 용인 천주교 공원 묘지의 남편과 아들 곁에 묻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명민 “변신을 멈추면 배우가 아니다”

    김명민 “변신을 멈추면 배우가 아니다”

    ‘연기 본좌’ 김명민(39)이 돌아왔다. ‘내사랑 내곁에’(2009), ‘파괴된 사나이’(2010)에서 온몸을 내던졌던 그가 오는 27일 개봉하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는 ‘천재 허당 명탐정’ 역을 맡았다. 정조에게 정 5품 탐정(探正:올바름을 밝혀내라는 뜻) 벼슬을 명 받고 나라 곳간이 줄줄 새는 ‘공납 비리’를 파헤친다. 셜록 홈스와 왓슨처럼, 명탐정은 개장수 서필(오달수)과 호흡을 맞춰 노론의 영수 오판서(이재용), 팜므파탈 한객주(한지민)가 얽히고설킨 사건의 본질에 조금씩 접근해 간다. 몇 차례 시사회 이후 작품 완성도에 관한 의견은 엇갈린다. 하지만 김명민이 또 한 번 흥미로운 캐릭터를 낚아챈 것만은 분명한 듯싶다. “한편으로 끝내기에는 명탐정 캐릭터가 너무 아깝다.”는 김석윤 감독의 말처럼 한국영화에 드문 입체적인 캐릭터를 창조했다. 피살자의 뒤통수에서 대침을 뽑아 사인을 밝힐 때는 홈스 뺨치는 추리력을 발휘하다가도 ‘김상궁의 은밀한 매력’(음란서적 제목)이나 한객주의 가슴골을 보면 사족을 못 쓴다.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 ‘탐정’ 사내를 ‘정탐’(偵探)해 봤다. →왜 안 하던 코믹 연기인가. -영화 장르는 코미디·스릴러·멜로로 나눌 수 있지만, 연기는 코믹·스릴러·정극 연기가 따로 없다. 코믹스러워 보이는 대목도 명탐정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한 설정일 뿐이다. →설정이라지만 한지민에게 ‘쭉쭉빵빵’, ‘완전 예쁘십니다’라는 대사를 치는 게 어색하지 않았나. -지금 이 자리에서 해 보라 하면 절대 못 한다. 조선명탐정 탈을 썼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처음 시나리오 받고 2~3일 만에 결정했다던데. -우리나라에 이런 캐릭터 무비가 없었다. 어린 시절 ‘인디아나 존스’나 007 시리즈, ‘맥가이버’를 보면서 스트레스 날려버린 기억이 남아 있다. 명탐정 대본을 보는 순간 그 영화들이 떠올랐다. 이 영화가 잘돼 시리즈물의 새 지평을 열었으면 좋겠다. 그 안에 내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 →연기에 종류가 없다고 했지만 확실히 이 작품에서 배우 김명민은 또 한번 변신했다. 배우는 꼭 변신해야만 하나. -농담으로 그런 얘기 한다. 우리가 변신 로봇도 아닌데 기차, 비행기가 될 수 있나. 이순재 선생님이 배우는 끊임없이 창조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신다. 그 자리에 멈추면 배우가 아니다. 배우(俳優)의 ‘배’자는 사람 인(人) 변에 아닐 비(非), 즉 나를 버리고 뛰어넘어 창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역할을 맡으면 (김명민이 아닌) 정말 그렇게 보여야 하는 거다. 대학에서 배운 게 메서드(자신이 맡은 역에 동화되어 감정을 느끼는 연기법)였고. 그외 다른 연기는 몰랐다. →드라마는 대박이 났지만, 그동안 영화에서는 그다지 재미를 못 봤는데. -신파 멜로(‘내사랑 내곁에’)가 200만(215만명)이면 성공이다. 18세 이상 관람가(‘파괴된 사나이’)도 100만명을 넘겼다. “또 망했다”, “(김명민은) 영화에서는 안 된다”는 분들이 많은데 어떤 기자가 지금껏 손익분기점을 못 넘긴 영화는 없다고 하더라. 좀 억울하기도 하다(웃음). →‘베토벤 바이러스’(200 8) 이후 드라마를 안 하는 까닭은. -드라마를 하면서 수명이 짧아진다는 걸 느낀다. 서너달은 잠을 못 잔다. ‘베토벤 바이러스’ 땐 평균 1시간 잤다. 대본은 급박하게 나오는데 잠을 1시간이라도 덜 자고 연습하면 고스란히 다음날 TV에 (더 나은 모습이) 비쳐진다. 그러니 잘 수가 없다. 근데 스트레스 받고 예민해진다. 그렇게 (힘들게) 드라마를 하는데 잠시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감수성을 톡톡 건드려서 인기를 얻고 곧 잊힐 작품은 하고 싶지 않다. →연기 본좌라는 별명, 어떻게 생각하나. -잘 알지 않나. 손발이 오그라든다. 나 혼자 ‘어휴~’하고 한숨 쉴 때가 정말 많다. →배우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분수를 알고 주제 파악을 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이 바닥을 떠나야 하는 것 같다. 발전이 없을 테니까. 다음 작품을 하기 위한 위로와 격려 정도로 받아들여야지 ‘자뻑’으로 넘어가면 끝이다. →한국 나이로 마흔인데 특별한 느낌은 없나. -이제 뭔가를 만들어야 하고, 변화를 줘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마흔이라고 본다면 예전부터 마흔이었다. 늘 지금 일을 못 해내면 그 다음은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배역에 격하게 몰입하기로 유명한데. -배우란 다 똑같지 않을까. 다만 ‘내 사랑 내곁에’ 때 좀 심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내 사랑’ 이후 정상의 육체와 정신으로 돌아오는 데 1년 걸렸다. 역할에 따라 다르겠지만, 배우들은 그런 정신병을 앓는다. →그렇다면 ‘조선명탐정’은 정신 건강에 좋았다는 얘긴데. -솔직히 난 못 느낀다. 밝고 유쾌한 캐릭터라도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끊임없이 세뇌한다. 생각부터 손동작, 발동작, 성장 배경과 인간관계까지 설정하고 수천 수만번을 스스로 되뇐다. 그래야 40년 살아온 김명민을 버리고 온전하게 배역을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집안 분위기는 달라진 게 확연하다. ‘파괴된 사나이’ 때는 집사람이 3~4개월 동안 말도 못 걸었다. 예민해지고 날카로운 걸 느끼니까 마루에서 만나도 피할 정도다. 그런데 이번 영화 찍을 때는 (집사람이) 굉장히 편했다고 하더라. 인터뷰 이전 그에 대한 이미지는 ‘까다로울 것 같은 배우’. 하지만 70분 남짓 진행된 인터뷰 내내 진솔했고, 의외로 편안했다. 배우로서는 조심스러운 완벽주의자인 게 틀림없지만 인간 김명민은 언뜻 매력적인 빈틈도 있어 보였다. 극장에 걸릴 ‘조선명탐정’은 시사회 버전보다 1분 40초쯤 줄어든다. 천주교, 노비에 대한 묘사 등 극 후반부를 산만하게 만든 장면을 걷어냈단다. 김명민과 관객수 맞히기 내기를 했다. 결과에 따라 2차 ‘정탐’ 기회가 당겨질지도 모르겠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문학의 기둥 사라졌다” 각계 애도… 인터넷도 추모 물결

    “문학의 기둥 사라졌다” 각계 애도… 인터넷도 추모 물결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는 전날에 이어 23일에도 추모객들이 줄을 이었다. 특히 50~70대 여성 조문객들이 많았다. 그들은 방명록에 “4년 전 작은 찻집에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도란도란 말씀 나누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학생’이었던 저의 꿈 많던 시절, 선생님과 함께했던 그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라고 적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빈소에는 이명박 대통령,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각계에서 보낸 조화가 가득했다. 빈소를 찾은 시인 황동규(73) 서울대 명예교수는 “선생님은 글과 삶이 일치했다. 그분의 글은 정직했고 트릭이 없었다.”면서 “문학의 기둥이 사라졌다.”고 애통해했다. 고인의 조카며느리인 김모(56)씨는 고인이 생전에 “온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을 맞은 사람들의 심경을 알겠다.”면서 방사선 치료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트위터, 블로그 등 인터넷 공간에서도 추모 물결이 넘쳤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선생님께서 이 세상 소풍을 끝내시고,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했다. 소설가 은희경씨는 “봄이 오면, 영화 보고 맛있는 거 사주신다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강한 분이 앓을 때 얼마나 두려울까 하면서도 오지 말란다고 안 갔던 게 후회되어 눈물 흐른다.”고 그리움과 자책감을 드러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고인의 유해는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른 뒤 25일 오전 경기 용인 천주교 묘지에 안장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박완서(세례명 정혜 엘리사벳) 작가님은 가톨릭 신앙인으로서도 훌륭한 모범을 보이신 분이셨다.”고 애도를 표했다. 고인과 함께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한 영화배우 안성기씨는 “에티오피아에 함께 갔을 때 앙상한 영양실조 아이들을 본 뒤 식사조차 못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회고했다. 유족으로는 장녀 호원숙(작가)·차녀 원순·삼녀 원경(서울대 의대 교수)·사녀 원균씨와 사위 황창윤(신라대 교수)·김광하(도이상사 대표)·권오정(성균관대 의대 학장)·김장섭(대구대 교수)씨가 있다. 박록삼·이영준·김소라기자 apple@seoul.co.kr
  •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 위로… 문단 보듬은 ‘큰 나목’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 위로… 문단 보듬은 ‘큰 나목’

    늘 수줍어하던 문학소녀였다. 가까운 후배들에게조차 제대로 곁을 주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탔다. 하지만 후배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늘 그를 찾곤 했다. 친정 어머니 같고, 큰누이 같던 그의 마음 씀씀이 한 자락을 살며시 내비친 것이 빈소 입구에 붙여진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글귀다. 생전에 했다는 “나 죽으면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말이 뒤늦게 전해지며 후배들을 더욱 사무치게 했다.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들을 위로해 주던 ‘영원한 현역 작가’ 박완서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80세. 지난해 뒤늦게 발견된 담낭암으로 투병해 오던 그는 지난 22일 새벽 서울삼성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뒤 꼬박 40년을 한결같이 써온 글쓰기도 함께 끝냈다. 지난해 여름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 같은 박완서 특유의 넉넉한 성찰과 위안의 글은 이제 활자로만 남게 됐다. ☞[포토]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박완서 타계●“6·25 없었으면 선생님 됐을 수도” 한국현대사의 굴곡은 그 시대 누구에게나 그러했듯 그에게도 굵직한 생채기를 남겼다.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그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져 곧바로 중퇴해야 했다. 의용군으로 나간 오빠는 부상을 입고 돌아온 지 여덟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학교 중퇴 이후 미8군 PX에서 일하다 박수근 화백을 만나 등단작 ‘나목’(裸木)의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 상처는 쉬 가시지 않았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는 일관되게 한국전쟁을 들여다봤다. 전쟁이 보통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어떻게 억압이자 상처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탐구였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지난해 계간문예지 ‘문학의문학’과 나눈 대담에서 그는 “6·25가 없었으면 글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전쟁·참척의 고통까지 관조 1980년대에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의 작품을 통해 작가 입지를 굳혔다. 특유의 부드럽고 다독이는 문체 속에 급속한 산업화 속에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문단으로 본격 호출한 것이다. 1988년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다. 석달 뒤 외아들마저 떠나보내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었다.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을 통해 개인적 상처마저 관조하는 힘을 보여 줬다. “경인년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 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깊은 상처 속에서도 늘 글 속에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는 가장 최근에 쓴 ‘내 식의 귀향’이란 글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남편과 아들이 잠들어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를 다녀왔다.…비석엔 내 이름도 생년월일과 함께 새겨져 있다. 다만 몰(沒)한 날짜만 빠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김수환 추기경의 묘소가 있는 게 저승의 큰 ‘빽’이다.” 이어지는 글. “다만 차도에서 묘지까지 내려가는 길이 가파른 것이 걱정스럽다. 운구하다가 관을 놓쳐 굴러떨어지면 늙은이가 살아날까 봐 조문객들이 혼비백산(하겠지)…실 없는 농담 말고 후대에 남길 행적이 뭐가 있겠는가.” ●유니세프 활동 ‘한국의 오드리 헵번’ 그는 소설 바깥의 활동도 소홀하지 않았다. 1993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를 맡은 이래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몽골, 인도네시아 등을 찾아다녔다. 암을 발견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에도 부산까지 내려가 유니세프 후원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유니세프 한국위 직원들은 “한국의 오드리 헵번 모습을 발견했다.”며 그 웅숭깊은 속내를 기렸다. 이제 지상에서 글쓰기는 끝났다. 그는 천상으로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소통과 위로의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의금 받지 마라” 가는 길까지 ‘서민과 시대의 작가’

    “부의금 받지 마라” 가는 길까지 ‘서민과 시대의 작가’

      늘 수줍어하던 문학소녀였다. 가까운 후배들에게조차 제대로 곁을 주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탔다. 하지만 마음 속엔 살가움 한가득임을 알기에 후배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늘 그를 찾곤 했다. 친정 어머니같고, 큰 누이같던 그의 마음 씀씀이 한 자락을 살며시 내비친 것이 빈소 입구에 붙여진 ‘부의금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글귀다. 생전에 했다는 “나 죽으면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말이 뒤늦게 전해지며 후배들을 더욱 사무치게 했다.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들을 위로해주던 ‘영원한 현역 작가’ 박완서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80세. 지난해 뒤늦게 발견된 담낭암으로 투병해오던 그는 지난 22일 새벽 서울삼성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뒤 꼬박 40년을 한결같이 써온 글쓰기도 함께 끝냈다. 지난해 여름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 같은 박완서 특유의 넉넉한 성찰과 위안의 글은 이제 활자로만 남게 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고인의 유해는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른 뒤 25일 오전 경기 용인 천주교 묘지에 안장된다.    ● 분열의 문단 어머니처럼 보듬어 안던 ‘큰 나목’  한국현대사의 굴곡은 그 시대 누구에게나 그러했듯 그에게도 굵직한 생채기를 남겼다.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그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져 곧바로 중퇴해야 했다. 의용군으로 나간 오빠는 부상을 입고 돌아온지 여덟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학교 중퇴 이후 미8군 PX에서 일하다 박수근 화백을 만나 등단작 ‘나목’(裸木)의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  상처는 쉬 가셔지지 않았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는 일관되게 한국전쟁을 들여다 봤다. 전쟁이 보통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어떻게 억압이자 상처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탐구였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지난해 계간문예지 ‘문학의문학’과 나눈 대담에서 그는 “6·25가 없었으면 글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의 작품을 통해 여성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특유의 부드럽고 다독이는 문체 속에 급속한 산업화 속에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문단으로 본격 호출한 것이다.  ● 전쟁·참척 고통까지 관조“내 나이 새삼 징그럽다”  1988년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다. 석달 뒤 외아들마저 떠나보내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었다.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을 통해 개인적 상처마저 관조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  “경인년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 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늘 내면의 상처에 주목해왔기에 그의 문장은 섬세한 감정의 결을 놓치지 않았다.    ● 암 발견 직전까지 유니세프 한국위 친선대사 활동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호암상 예술상, 보관문화훈장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은 소설가로서 삶에 내려진 작은 상일 뿐이다. 소설 바깥의 활동도 소홀하지 않았다.  1993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를 맡은 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몽골, 인도네시아 등 곤경에 처한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몸 속의 깊은 병을 확인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에도 부산까지 내려가 유니세프 후원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유니세프한국위 평직원들은 ‘한국의 오드리 헵번 모습을 발견했다. 고귀한 이상을 가지신 분임을 새삼 확인했다.’라며 그 웅숭깊은 속내를 기렸다.  이제 지상에서 글쓰기는 끝났다. 그는 천상으로 자리를 옮겨 밤하늘 별로 반짝거리며 또 다른 소통과 위로의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 카리타스 재단법인 됐다

    한국 카리타스 재단법인 됐다

    긴급 구호, 대북 지원 등 해외 원조에 주력해온 종교 민간단체가 외교통상부 소관 재단법인으로 새로 출범했다. ‘국제 카리타스’의 한국 지부인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이하 한국카리타스)은 18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단법인으로 재출범했음을 밝힌 뒤, 남북 관계 악화에 따라 난관에 봉착한 인도적 대북 지원 사업의 새 물꼬를 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국 카리타스가 국제 카리타스의 대북지원사업 실무추진기구를 맡는 데 따라 대북지원사업을 국제적인 방식으로 풀어 나가겠다는 의지다. 한국 카리타스의 이사장을 맡은 안명옥 주교(마산교구장)는 “재단법인으로 바뀜에 따라 과거 가톨릭 산하 단체로서, 혹은 종교법인으로서 활동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종교와 국가, 이념 등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더욱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와 함께 북한 사회의 빈곤을 줄이고 지역개발을 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에 효율성과 투명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재단법인 전환 의의를 설명했다. 한국카리타스는 1975년 ‘인성회’(仁成會)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로 개편돼 국내 복지 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1993년부터 해외 원조 담당기구로 활동해 왔다. 지난해 긴급구호사업으로 12억원, 개발협력 사업에 8억원을 지원하는 등 최근 19년 동안 84개국 이상의 나라에 약 234억 원을 지원했다. 국제 카리타스는 가톨릭교회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165개 회원 기구들의 국제 구호기구다. 100년 전 독일에서 출발해 로마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유엔 협의기구 지위를 갖고 있다. ‘카리타스’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50대 “난 죽지 않았어”… 위기에 강했다

    50대 “난 죽지 않았어”… 위기에 강했다

    K기업에 다니던 이모(54)씨는 2009년 12월 말 회사로부터 명예 퇴직을 권고받았다. 나올 때는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쓰는 것도 막막했다. 지난해 8월부터 기업체에 이력서를 내기 시작해 합격 통보를 받았다. A중소기업에서 30여년간 직장생활을 하던 황모(58)씨는 2009년 5월 초 정년 퇴직을 했다. 퇴직 뒤 한달간 공백기 동안 재취업을 하고자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나이 제한에 걸려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받아주는 곳조차 없었다. 지난해 1월 그는 천주교 재단에 지원서를 냈다. 경쟁률이 6대1이나 됐지만 합격통보를 받았다. 50대의 고용률이 올라가고 있다. 은퇴를 시작하는 베이비부머(1955~1965년생)들을 대상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기업도 채용에 있어 신참자보다는 경력자를 우대하기 때문이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50대(50~59세)의 지난해 고용률은 70.6%로 2008년 이후 3년 연속 70%대를 기록했다. 50대 고용률은 1989년 71.0%로 70%대로 올라선 뒤 1997년까지 70%대를 유지하다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66.4%로 떨어졌다. 이후 2007년까지 계속 60%대 후반의 고용률을 보여 왔다. 반면 취업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연령대인 20대(20~29세)의 고용률은 세계적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59.1%로 떨어진 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50%대에 머물고 있다. 정동원 취업포털 커리어 팀장은 “요즘은 퇴직 후에도 파트타임이나 임시직이라도 꾸준히 일하려는 의지가 높으며 지원자의 경력을 인정해 연령에 관계없이 채용하는 고용주들의 인식 개선이 고용률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50대 취업 증가는 (베이비부머에 따른)인구효과가 크지만 50대에 대한 기업의 수요도 적지 않다.”면서 “재취업 시장에서 일정 영역을 만들고 사회 경제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의 질은 낮은 편이다. 지난해(8월 기준) 50대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9.3%로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 33.3%보다 6% 포인트가 높다. 2008년(5.6% 포인트), 2009년(5.7% 포인트)보다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50세 이상 고령자의 약 24%가 근로시간이 일정한 임금근로자다. 50세 이전에 정규직 임금근로로 일하던 사람들의 절반이 정규직으로 남고 나머지는 자영업이나 기타 근로 상태로 전환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즉 50대 퇴직자의 절반만이 정규직으로 남는 것이다. 전경하·황비웅기자 lark3@seoul.co.kr
  • [인사]

    ■기획재정부 △성과관리과장 이상원 ■법무부 ◇서기관 전보 △범죄예방정책국 소년과 김용운△법무부 박재봉△의정부보호관찰소 고양지소장 김정식△수원보호관찰소 안산지소장 황진규△대전보호관찰소 관찰과장 윤태영△부산보호관찰소 동부지소장 송영구△울산보호관찰소장 윤광원△광주보호관찰소 관찰과장 김행석△서울소년원 교무과장 오한표△〃 교육정보관리과장 김철호△대구소년원장 이경호△광주소년원 서무과장 장인기△〃 분류보호과장 박영주△전주소년원 〃 정택현△대덕소년원 〃 김임화△청주소년원장 김동은△서울소년분류심사원 서무과장 하민복△〃 분류심사과장 배종상 ■국민권익위원회 ◇과장급 △비서관 김남두<담당관>△홍보 김덕만△제도개선총괄 임윤주△경제제도개선 황호윤△사회제도개선 허재우△기획재정 박계옥△행정관리 임진홍△법무감사 최영균△국제교류 한삼석△국민신문고 윤성용△상담안내 한종산△민간협력 김상년<과장>△운영지원 김종윤△민원조사기획 박세기△행정문화교육민원 정상석△국방보훈민원 황운광△경찰민원 최창우△복지노동민원 박순홍△재정세무민원 민성심△산업농림환경민원 제갈창무△주택건축민원 박용택△도시수자원민원 정혜영△교통도로민원 김태재△청렴총괄 곽형석△청렴조사평가 양종삼△청렴교육 임원택△부패영향분석 김인종△심사기획 안준호△부패심사 최철호△행동강령 이상범△보호보상 김준배△행정심판총괄 김태응△행정교육심판 배문규△재정경제심판 김응서△국토해양심판 백승수△사회복지심판 임규홍△환경문화심판 김세신<센터장>△민원정보분석 최상근△110콜 김안태<파견>△교육 강성출 김승조 박민주 ■광주광역시 ◇3급 승진 △동구 부구청장 김상호△공보관 노희용△종합건설본부 건축설비부장 송영한◇4급 승진(행정직)△문화수도정책담당 김준영△규제개혁법무담당 신상식△창조기획담당 오순철◇4급 승진(기술직)△도시개발담당 박정식△토지관리담당 이영로△도시계획담당 최만욱◇직위 승진△농업기술센터소장 김정동 ■한국가스안전공사 ◇승진 △인사행정처장 박재복△기준〃 정연학△사고점검〃 권종택△해외사업지원〃 장현동△서울지역본부장 박희서◇전보△가스안전교육원장 조희래△가스안전연구〃 강태연△안전연구실장 김영대△대구경북지역본부장 김진준△경남〃 김윤철△울산〃 권정락 ■교통안전공단 ◇상임이사 임명 △철도항공안전본부장 김찬수△검사운영〃 신기선◇전보△자동차성능연구소장 김만웅 ■에너지관리공단 ◇승진 △1급 임대준 차재호 노상양△2급 김영래 최창기 서백호 이종배 오석범 박병춘 이종섭△3급 이재용 유영선 윤영상 최순발 우영만 전헌정 임상국 이두봉 한윤철 김준호 김규식 김종호 임경돌(2월 1일자)◇전보 <실장>△경영기획 김태영△녹색성장정책 김인수△정보통계 노병욱△효율표준 강희수△ESCO자금 우재학△탄소시장등록 차재호△해외사업 이재훈△녹색에너지협력 서백호<원·단장>△온실가스검증원 나용환△RPS 사업단 박병춘<에너지기후변화센터장>△부산울산 이상홍△광주전남 이종배△인천 박경빈△강원 강태구△충북 이재우△전북 김인택△제주 김동수(1월 17일자) ■건설공제조합 ◇1급 승진·전보 <지점장>△안양 송성영△춘천 문태희△창원 이권노◇1급 전보△공제사업부장 신정식◇지점장 전보△중앙 정창섭△삼성 이주병△광주 권헌양△대구 정용준△예산 최창순△포항 정해영△울산 권혁△제주 이일양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이정주 ■스포츠한국 ◇이사대우△경영기획실장(광고국장 겸임) 김원식 ■기술보증기금 ◇1급 승진 △지식창업부장 조문연△고객지원〃 이흥우◇전보△인사부장 황철호△홍보실장 류선열<기술평가센터 지점장>△종로 박덕수△서초 황한규△인천 송재욱△화성 이중호△대전동 김영환△익산 장재홍△광주서 이영철△목포 강영구△구미 박기표△진주 김인△용인 이명도△마산 박병규<기술평가센터 RM지점장>△서울중앙 정태환△강남 권오주△구로 김홍기 ■수협은행 △사업본부장 임동홍
  • [부고] ‘인권운동 대부’ 이돈명 변호사

    유신 시절 시국 사건의 변론을 도맡아 한국 인권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이돈명 변호사가 11일 오후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89세. 고인은 조선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사법과(3회)에 합격해 판사로 근무하다 1963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1974년 4월 발생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부터 시국 사건의 단골 변호인이 됐다. 이어 인혁당사건,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청계피복 노조사건,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 광주 민주화운동 등 1970년대 이후 주요한 시국 사건에 빠지지 않고 활약해 황인철·조준희·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 4인방’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86년에는 인권 변호의 취지에 공감하는 인사들과 함께 ‘정의 실현 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는데 이 모임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으로 이어졌다. 고인은 조선대 총장, 상지학원 이사장,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장 등을 지냈고 최근까지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로 재직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영일(전 한국은행 국장), 동헌(전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장), 사헌(미국 거주)씨와 딸 영심, 영희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8시다. (02)3410-6914.
  • [씨줄날줄] 목구멍이 포도청/주병철 논설위원

    배가 너무 고파 못할 짓까지 할 때 쓰는 말이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포도청만큼이나 무서운 곳이 먹고 사는 것, 배고픔이란 얘기를 빗댄 말이다. 포도청은 조선 중종 무렵 범죄자를 잡거나 다스리는 일을 하던 관아로, 요즘의 경찰서쯤 된다. 1878년 천주교 선교활동을 위해 우리나라를 다녀간 프랑스 선교사 리델이 포도청에 체포돼 적어둔 포도청의 이미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포도청 관속들은 죄수들을 함부로 대하고 맹수적이라고 적고 있다. 죄수를 뭉둥이로 때려 죽여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남들이 밥을 먹든 말든 포도청 내에서 교수형을 간단히 집행하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는 포도청 관속들이 저지르는 편법이나 비리 등도 상세히 적혀 있다. 한성부 등 큰 도시에는 관속들이 상습적으로 돈을 주고 도둑들을 매수해 꾸준히 관리했다고 한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거나 수령이 범죄 단속에 대한 성과를 독촉할 때 이들에게 가벼운 범죄행위를 적용해 체포한 뒤 다시 풀어주곤 했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검거 실적주의, 유흥업소와의 유착, 부적절한 뒷돈 거래 등의 단어가 연상된다. 순조 때 관직을 역임한 송지양이 남긴 한문 단편 다모전(茶母傳)에는 포도청 다모의 애틋한 미담이 있다. 다모는 한성부나 포도청에 소속돼 아전이나 포졸의 업무를 보조하는 여자 수사관을 말하는데, 다모전에서 다모가 남산골 양반집에 밀주를 담그는 현장을 덮쳤는데 몸져 누운 남편을 위해 부인이 밀주를 담갔다는 사연을 듣고 눈감아 줬다는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양반들의 포도청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했던 것 같다.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에서 “다른 벼슬은 몰라도 백성들을 심판하는 포도청 직원들은 꼭 청렴한 인물로 뽑아야 한다. 포도청 직원이 청렴하지 못하면 가장 먼저 백성들이 피해를 보고 고통으로 쓰러지며 재앙이 후손까지 미친다.”며 포도청의 폐해를 강하게 지적했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 전직 경찰총수들이 ‘함바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1992년 이인섭 청장(2대)부터 강 청장(15대)까지 역대 청장 14명 가운데 절반인 7명이 수뢰 혐의 등에 휘말려 들었다고 한다. 낯 부끄럽고 몰염치하다. 상습범 같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몸에 666 문신’ 사탄교회에 활동금지 명령

    신체에 악마의 숫자라는 ‘666’ 문신을 새겨넣던 종교단체가 퇴출명령을 받았다. 천주교와 개신교 등 기독교는 “이단종교의 시설이 폐쇄돼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있지만 활동이 금지된 종교는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논란이 일고 있는 곳은 남미 온두라스공화국. 현지 종교당국은 최근 ‘은혜 가운데 성장하며’ 교회에 종교활동금지 명령을 내렸다. 당국은 “종교청에 등록이 안 된 종교가 포교활동을 금지한 것”이라며 “한시적으로 활동을 금지할 것인지, 영구적으로 금지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제의 종교단체가 사회의 관심을 끌게 된 건 신자들에게 ‘666’ 문신을 새겨넣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단체는 영아, 어린이, 청년, 노인등 성별이나 나이를 가리지 않고 신자들에게 문신을 새기게 했다. 종교에 빠진 신자들은 이마, 어깨, 허리, 가슴, 뒤통수 등에 숫자문자를 그려넣었다. 최근 교회를 폐쇄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은 건물 안에서 숫자문신을 한 영아와 어린이의 사진을 다수 발견했다. 이 종교 신자들이 ‘666’ 문신에 집착하는 건 교주의 ‘가르침’ 때문. 호세 루이스 미란다라는 이름을 가진 이 종교 교주는 팔에 ‘666’ 문신을 새기고 자신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도미니카공화국,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지에 교회를 세워 ‘666’ 문신을 보급하는 한편 성경을 불태우는 의식을 행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런 종교가 온두라스에 상륙하자 온두라스 기독교 측은 “문제의 교회는 완전한 이단”이라며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 잘못된 교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신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출소 앞둔 수형자에게 창업교육

    “출소 후 다섯살배기 딸과 생활하기가 막막했으나 일자리플러스센터의 도움으로 식당을 차렸어요.” 사기에 휘말려 경제사범으로 5년간 구치소에 수감됐던 김지영(38·가명)씨가 3일 새 삶을 열게 된 계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서울시가 출소를 앞둔 수형자에게 편견 대신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창업교육을 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가 직업전문학교, 신용회복위원회 등 일자리 전문가와 함께 성동구치소를 방문해 매일 4시간씩 월 3일 동안 창업 아이템, 상권분석, 직업훈련, 마케팅 등 창업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다. 출소자에게 자신감과 자립심을 심어줄 뿐 아니라 취업알선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고 있다. 창업자금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소속 사회복지기관 ‘기쁨과 희망은행’을 통해 1인당 최고 2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출소자들이 2주간 창업교육을 받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선발한다. 창업 6개월이 지나 매출이 발생하면 2000만원까지 추가 지원도 해 준다. 지난 한해 404명의 성동구치소 수형자가 창업교육을 받았으며 이 중 11명은 음식, 제조, 서비스 업종에서 ‘사장님’ 반열에 올랐다. 또 수료자에겐 일자리도 추천, 6명이 경비·운수회사 등에 취업했다. 이홍상 일자리지원과장은 “전과자라는 이유로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설령 했더라도 적응을 못해 재범, 재수감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사회에 나가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관심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남북화해 증진 계기되길” 교황 성탄절 메시지

    “남북화해 증진 계기되길” 교황 성탄절 메시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성탄절 메시지를 통해 남북한의 화해를 비롯해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 평화가 깃들기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독 중국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쳐 눈길을 끌었다. 교황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정오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서 발표한 성탄 축하 메시지에서 “구세주의 탄생이 한반도에서의 화해를 증진하는 계기가 되길 빈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는 2007년 10월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 준비가 한창이던 그 해 9월에도 남북 대화의 발전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고 한반도 상황을 위해 기도하자는 메시지를 내 놓기도 했다. 교황은 이 밖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공존도 기원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 본토에 있는 교인들이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부과된 제약에 낙심하지 않으면서 희망의 불꽃을 계속 태우게 해 달라.”는 ‘뼈있는’ 기도를 올렸다. 중국은 이달 초 교황청 승인 없이 관제 가톨릭 단체인 ‘중국천주교 애국회’ 지도부 선출을 위한 주교단 회의를 강행해 팡싱야오(房興耀) 신부를 애국회 주석으로, 마잉린(馬英林) 신부를 천주교주교단 주석으로 각각 선출하면서 교황청과 마찰을 빚고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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