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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가톨릭 중고생들이 인권·환경을 말한다

    아시아의 가톨릭 중·고교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권과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뜻깊은 행사가 서울에서 열린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관으로 오는 6∼15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열리는 ‘2012 국제가톨릭학생회 아시아회의’. 한국을 비롯해 타이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아시아 13개국 가톨릭학생회 중·고등학생 대표와 인솔자 등 130여명이 참가한다. 국제가톨릭학생회는 중·고등학생들이 자기반성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교황청 산하 학생자치 운동단체. 전 세계 85개국에 400만 회원을 두고 있으며, 한국이 속한 국제가톨릭학생회 아시아본부는 국제회의와는 별도로 3년마다 모임을 열어오고 있다. 올해 12번째인 서울 아시아회의는 ‘아시아의 빛으로 부름 받은 학생들이여, 신앙 안에서 새로워진 아시아를 향해 나아가자’라는 주제 아래 소주제로 택한 아시아 공동의 인권과 환경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국가별 보고서를 발표하는가 하면 논란이 있는 국내 기관과 단체를 방문해 사회조사 활동을 펼친다. 여기에는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와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을 비롯해 경기도 여주 이포보와 팔당 유기농지 등이 포함돼 있다. 학생들은 이 같은 현장 관찰·조사와 전문가 강의를 통한 교회적 시각을 토대로 아시아 가톨릭 학생들이 지켜나갈 생활 속 실천계획과 결의문을 작성할 예정. 아시아회의에서 확정된 학생들의 결의문은 국제가톨릭학생회 국제사무국을 통해 전 세계 가톨릭학생회로 전달된다. 한편 이번 아시아회의는 대륙별 순환 개최 원칙에 따라 차례가 돌아온 동아시아 가톨릭학생회원국 가운데 가장 활동이 활발한 한국이 적합하다는 판단 아래 아시아본부 측이 한국을 개최지로 최종 선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회의의 총 책임을 맡은 한국가톨릭학생회(KYCS) 담당 김인권 신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아시아지역 가톨릭 학생들이 여러 나라의 회원들과 만나면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다양한 문화체험을 통해 성숙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2)공주 고마나루 명승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2)공주 고마나루 명승길

    비단물결은 깊은 산림을 지나 백제의 옛 도시 공주로 휘감아 돌아간다. 공산성의 깃발, 고마나루의 황포돛은 옛 정취를 자아내고 백제의 옛 숨결을 전해주듯 비단 물결에 나부낀다. ‘잊혀진 왕국’ 백제의 옛 도읍인 공주에 역사의 향취를 느끼며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고마나루 명승길’이 조성됐다. 백제 웅진시대의 숨결과 근현대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어 의미를 더한다. 고마나루길은 공산성~무령왕릉~공주박물관~공주보~연미산자연미술공원~금강교를 돌아보는 코스가 14㎞에 달한다. 단순히 보고 지나칠 수 없는 명승지가 많아 완주하려면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공산성~무령왕릉~공주박물관~고마나루 등 웅진시대와 황새바위~공주보~연미산자연미술공원~금강교를 답사하는 근현대사 코스 설계가 가능하다. 공산성과 고마나루, 무령왕릉은 공주시민이 선정한 ‘공주 10경’에도 포함됐다. ●“공산성은 천혜의 요새” 접근성이 좋은 공산성이 출발점이다. 웅진시대 방어거점이었던 공산성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포곡형(包谷型) 산성으로 길이가 2.66㎞에 달한다. 강 건너편에서 보면 성곽이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모습이다.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 석성으로 개축했다. 성벽은 높이 2.5m, 폭 3m 정도로 보수됐고 성벽을 따라 노란색 바탕에 봉황 등이 그려진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공산성은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로 통일신라시대 김헌창의 난이 일어났고, 조선시대 이괄의 난 당시 인조가 피란한 역사를 품고 있다. 금서루·공북루·영동루·진남루 등 동서남북 4개 누를 비롯한 다양한 유적이 복원됐다. 금서루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공주의 구도심을 한번에 조망할 수 있다. 동성왕의 연회 장소였던 임류각, 조선시대 임금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던 쌍수정, 우물인 연지, 영은사 등을 통해 역사 속에만 있는 ‘웅진’을 만나게 된다. 4~10월(7, 8월은 제외) 매주 토·일요일 오전 11시부터 5시까지 정시마다 수문장 교대식이 열린다. 오인숙 문화관광해설사는 “공산성은 금강과 계룡산, 차령산맥을 품고 있는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면서 “현재 입구는 서문이지만 과거에는 호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남문을 거쳐 북문에서 배를 타고 한양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남문 앞에는 박찬호 선수가 운동을 했던 느티나무가 있어 관심을 끈다. 무령왕릉 가는 길에 황새바위에 들렀다. 황새가 많이 살았다는 설과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목에 씌우는 칼인 ‘항쇄’를 차고 바위 앞에 끌려가 처형돼 황쇄바위로 불렸다는 설이 함께 존재한다. 1801년 2월 28일 김대건 신부의 외조부로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이 서울에서 충청 감영(공주)으로 환송돼 황새바위에서 참수된 후 순교지가 됐다. 사형이 집행될 때면 백성들은 공산성에 올라 그 광경을 구경했다고 한다. 순교자 337위와 순교탑, 명상의 길 등이 조성돼 있으며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순례지가 되고 있다. 송산리고분군의 7호분으로 불리는 ‘무령왕릉’은 묘지석과 최초의 토지거래서인 매지권이 발견돼 피장자를 확인할 수 있는 삼국시대 유일의 왕릉이다. 무덤에서는 다량의 유물이 발굴됐는데 12종목 17건이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절대연대가 확인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백제사 연구의 보고(寶庫)로 평가받는다. 중국의 무덤 형식인 벽돌무덤으로 중국제 도자기와 일본산 금송을 사용한 관재 등을 통해 백제사회의 국제성을 엿볼 수 있다. 지난 1997년 영구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 후 고분의 내부를 직접 볼 수는 없고, 지난 4월 리모델링한 송산리고분재현관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다. ●현대의 공주 속으로 지난해 10월 공주보가 완공됐다. 총연장 280m의 보는 무령왕을 상징하는 봉황을 모티브로 비단수(금강)를 지키는 모습을 상징화했다. 수변공원과 32.4㎞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가 조성돼 수려함을 더한다. 연미산은 연미터널이 건설되기 전까지 공주와 청양을 연결하던 연미치고개로 유명하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입구에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나무, 흙 등 자연 재료를 주로 이용해 만든 작품들이 숲과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정안천생태공원은 공무원과 시민들의 참여로 조성된 상징적인 공원이다. 33만㎡에 연꽃 연못(9만㎡)이 만들어졌고 10만여 송이의 튤립, 100만 포기의 꽃잔디 등이 식재돼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자전거 산책로와 메타세쿼이아길, 앵두나무길 등 테마길이 조성돼 있다. 1만 5000㎡의 자연학습장은 장미동산과 물레방아 연못, 모래놀이터 등을 갖춰 유치원생들의 생태학습 및 체험 장소로 활용된다. 공주시 산성동과 신관동을 연결하는 다리인 금강교는 1933년 만들어졌다. 1986년 공주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던 유일한 ‘통행길’이었다. 6·25 전쟁 당시 교량 대부분이 파괴돼 복구가 이뤄졌다. 현재는 구시가지로 진입하는 차량만 이용 가능한 일방통행로로 공산성과 연계, 명소로 부상했다. 택시기사 김정권씨는 “전에는 다리가 이것밖에 없어 버스 2대가 묘기를 부리듯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녔다.”면서 “추억이 깃든 장소이다 보니 운전할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여행의 즐거움 중에는 맛난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공산성 서문 맞은편에는 대표적 음식거리인 ‘백미고을’이 있다. 공주의 대표음식을 만날 수 있는데 밤의 고장답게 밤국수와 밤피자 등을 내놓는 음식점은 물론 쌈밥, 60년 전통의 따로 국밥집, 칼국수집 등 다양하다. 가까운 거리에 ‘백미백선’(백가지 맛과 백가지 볼거리가 있는)을 지향하는 산성시장에서 장터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고마나루 인근, 공주보에서 시내방향으로 한옥마을이 조성됐다. 한옥 10여채가 모여 있는 이곳은 지자체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성한 숙박촌이다. 공주를 둘러본 뒤 부여에서 숙박, 단순히 지나치는 지역에서 머무는 도시로 변화하는 첫 시도로 전통 한옥의 구들장 체험을 할 수 있다. 숙박객이 직접 나무를 때보고, 공주 밤과 감자 등을 구워 먹을 수 있어 겨울철에 인기가 높다. 공주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13회는 대구 ‘칠성로’와 광주 ‘육판서길’을 소개합니다.
  • [종교플러스] 천주교 28일 ‘세계 평화의 바람’ 행사

    천주교 28일 ‘세계 평화의 바람’ 행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최창화 몬시뇰)는 2012년 ‘세계 평화의 바람’ 행사를 오는 28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개최한다. ‘세계 평화의 바람’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평화 통일을 기원하기 위한 순례행사. 서울 명동성당에서 출발해 통일대교-열쇠전망대-월정리역-두타연-비무장지대(DMZ)박물관을 차례로 찾아간다. 행사에는 서류심사를 통과한 초등학교 6학년부터 대학생까지 80명이 참가한다. 참가자들은 구간에 따라 도보, 자전거, 차량, 승마 등 다양한 이동 수단을 이용한다. 조계종 스님 대상 교수법 연찬회 개최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 스님)은 다음달 23∼24일 서울 국제선센터에서 전국 승가대학 및 승가대학원의 교육교역자 스님과 교수아사리 스님을 대상으로 교수법 연찬회를 개최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인 올해 연찬회에서는 토론식 강의 운영 전략과 글쓰기 강좌 등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법을 지도한다. 동국대 신나민(‘성인교육과 원격교육’)·명지전문대 차갑부(‘강의 계획에서 운영 평가까지’)·경희대 허경호(‘토론식 강의 운영 전략’) 교수가 강의에 나선다. 기독교학교교육硏 ‘목회자 콘퍼런스’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는 9월 3∼5일 강원도 평창 켄싱턴플로라호텔에서 ‘100년을 내다보는 목회를 디자인하라’라는 주제로 제1회 목회자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정성진(거룩한빛광성교회)·정태일(사랑방교회) 목사가 강사로 나서며 김동호(높은뜻교회연합)·박은조(은혜샘물교회) 목사가 저녁집회를 인도한다. ▲교회학교 부흥을 위한 새 전략 ▲놀토시대 대안 ▲왜 기독교 대안학교인가 ▲수능 기도회 이렇게 하라 등 선택강의도 있다. 홈페이지(www.cserc.or.kr) 참조.
  • 일손 돕고 체험하고…봉사 여행 떠나요~

    ■산골 가면…감자 캐고 열무 솎고 중랑구 자원봉사센터가 여름방학과 휴가를 맞은 가족들에게 특별한 체험을 선사한다. ●중랑, 새달 25일까지 강원 원주 체험 구는 23일부터 다음 달 25일까지 모두 8회에 걸쳐 강원 원주시 용암2리에 있는 용소막농촌체험마을에서 매회 45명 총 360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농촌체험 봉사활동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김매기, 열무 솎기, 감자 캐기, 옥수수 따기 체험 등을 하게 된다. ‘자원봉사 여행을 떠나요! 즐기자 자원봉사 팜(Farm) 투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고령화와 이농현상 때문에 일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를 찾아가 손길을 건넴으로써 적으나마 시름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성지 등 문화탐방·물고기 잡기도 또한 아파트 숲에서 자란 봉사자들에게는 신토불이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아울러 자원봉사활동 뒤에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인 용소막 성당과 베론성지 등 문화탐방 시간을 갖는다. 냇가에 나가 메기와 송어 등 고기를 잡아 보는 물놀이 시간도 곁들인다. 용소막 성당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둥지를 옮긴 신자들에 의해 지어져 천주교를 전파한 곳이다. 중랑구 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농촌의 현실을 이해하고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가족봉사 프로그램 내용을 한층 알차게 준비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섬에 가면…갯벌 체험 생태 견학 양천구는 여름방학을 맞은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농촌 일손을 돕고, 자연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방학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23일 밝혔다. ●양천 청소년 60명 인천 강화군 찾아 행사는 구 청소년지도협의회 주관으로 자매도시인 인천 강화군에 있는 도래미 마을에서 24일과 25일 진행되며, 각 동에서 추천한 청소년 40명 등 60여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1박 2일 동안 마을 공동작업장에서 제초작업 등 농촌 일손을 돕고, 갯벌 체험과 강화 나들길 제2코스 호국돈대길 걷기, 화문석 공예, 시골밥상 체험, 해양생태 견학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자연생태를 체험한다. 도래미 마을은 ‘섬 도(島), 올 래(來), 아름다울 미(美)’란 이름처럼 빼어난 전원풍경 덕분에 또다시 찾게 되는 섬이란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제초작업 돕고 시골밥상 체험도 강화군은 2008년 우호교류협정을 체결한 뒤 우의를 다진 자매도시로 매년 직거래 장터를 열어 지역 주민에게 질 좋은 농·특산물을 제공하고 있다. 청소년 농촌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한다. 추재엽 구청장은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일손이 부족한 농민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2010년부터 4년째 이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청소년들이 농촌체험과 봉사활동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일깨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환경부 자원봉사단 7년째 나눔 실천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일이라 힘들 때도 있지만 봉사활동을 다녀오면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환경부의 자원봉사단 20명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일정을 비워 둔다.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2005년 7월 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몇몇이 의미 있는 일을 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여가 시간을 이용해 장애인이나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들을 돕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경비는 각자 부담하기로 하고 매월 일정액을 갹출해 적립하고 있다. 적립금은 독거노인이나 지체장애 아동들에 대한 목욕 봉사, 노인 요양시설 수리 등의 비용으로 쓴다. 나기정 사무관(환경보건관리과)을 주축으로 현재 20여명의 직원이 동참하고 있다. 나 사무관은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목욕을 시켜 주는 동료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1일에도 봉사단은 과천청사 인근에 있는 ‘마리아의 집’에 모였다. 휴가철이기 때문에 회원들이 한 주 앞당겨 시설을 방문하자고 제의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는 소문을 전해 들은 송재용 환경정책실장도 참석해 이들을 격려했다. 마리아의 집은 천주교 양로시설로 무의탁 노인 11명이 생활하고 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1)조선 천주교 개척 이벽&황사영

    [선택! 역사를 갈랐다] (21)조선 천주교 개척 이벽&황사영

    1779년(정조 3) 겨울. 남인의 젊은 학자들이 천진암에서 강학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벽(李蘗)은 눈발이 날리고 호랑이가 출몰하는 100여리의 밤길을 내달려 강학회에 참여했다. 이벽의 등장으로 유학을 강마하던 모임은 대번에 서학과 천주교에 대한 토론장이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784년. 이벽의 권유를 받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하자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천주교(가톨릭)가 싹텄다. 천주교는 지식인을 비롯한 중인, 평민과 천민, 여성 등 각양각색 인물들에게 퍼져갔다. 정조가 승하하고 반 년 정도가 지난 1801년 1월.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정약용의 조카사위 황사영(黃嗣永)은 서울을 빠져나와 충청도 제천의 산골짜기 배론(舟論)에 숨어들었다. 배론의 토굴에 숨어지내며 그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편지는 북경 교구장 구베아(Gouvea) 주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편지 말미에서 황사영은 조선 교회의 재건을 위해 전대미문의 요청을 했다. 편지는 그가 잡히면서 공개되었고 조선 조정은 뒤집어졌다. 이른바 ‘황사영 백서(帛書) 사건’이었다. 한국 천주교는 진리를 찾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택했지만 그 선택은 박해가 예고된 고난의 여정이었다.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은 진정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를 발견했던 것일까. ●18세기 중국 통해 서학·천주교 유입 17세기 초 조선 사람들은 ‘유럽’이란 또 하나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18세기에 접어들자 서양의 천문, 역법, 수리, 의학에 관한 서적과 기물에 더욱 익숙해졌고, 북경에 간 사신들은 으레 선교사가 거주하는 천주당을 방문하였다. 그 결과 저들도 나름의 진리가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당시 서양과 그들의 학문에 대해 가장 해박했던 인물은 이익(李瀷)이었다. 그로 인해 서학(西學)이 일세에 풍미하게 되었고, 그의 문하에서 이른바 ‘친서파’(親西派)로 일컬어지는 이가환, 권철신, 정약전·정약용 형제, 이승훈 등이 배출되었다. 이익 문하의 학자들은 여전히 ‘서학 수용’에 머물러 있었다. 서학은 새로운 지식일 따름이지, 유교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새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런데 홀연 학문에서 신앙, 신념으로 건너뛴 인물이 나왔다. 이벽이었다. 이벽은 어려서부터 ‘하늘의 도리’에 뜻을 두었다. 20세쯤 서학서에 충격받았고, 25세 전후에 서학 서적을 망라해 읽고는 드디어 마음을 바꾸고 천주교를 신봉하였다. 이 시기 전후에 그는 조선 최초의 호교서로 평가받는 ‘성교요지’(聖敎要旨)를 집필한다. 그것은 천지를 주관하는 천주(天主)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의 선언은 성리학의 근본 원리인 천리(天理)에 대한 도전이었다. 성리학에서 하늘은 천리이다. 천리는 우주 질서의 원리, 사물의 물리, 사회의 윤리이다. 천리는, 우리가 ‘하늘’을 들을 때 떠올리는 ‘하느님’, ‘푸른 하늘’ 같은 인격성과 자연성이 약하고, ‘질서·조화·바름’과 같은 추상성과 윤리성이 강한 개념이다. 천리는 유교 왕국 조선에서는 모든 질서의 원천이자 가치의 근원이었다. 이벽은 ‘천리는 현실에서 공허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천리에 비해 천주는 인격적 존재로 현실감이 있고 내세관마저 채워주는 존재였다. 그는 양 개념이 대립적이라고 여기지 않고 서로 보완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대다수 조선인들은 천주 선언을 유교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으로 보았다. ●관대하던 정조 사후, 1801년 대대적 박해 시작 천주교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지식인들은 ‘천리’와 ‘천주’의 대결이 가져올 파장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서로 대결한다면 그것은 문명 사이의 가치관 전쟁이자, 그에 동반한 사유와 많은 개념들을 재조정하는 일이 될 터였다. 16세기 천주교를 동양에 전파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고, 두 문명 사이의 대화와 상호 이해를 도모하였다. 선교사들은 ‘Deus’(God의 라틴어)를 유교 경전에 등장한 상제(上帝)와 유사한 천주로 번역했고, 또 천주를 천지의 대부(大父)·대군(大君)이라고 소개하였다. 천주교 설명에 유교의 텍스트와 개념을 빌린 것이다. 이 같은 설명 방식은 중국에서보다 조선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교적 이상 사회를 가장 진지하게 고민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천주교에서 유학과 일치하거나 때론 유학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았다. 예컨대 한때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용은 인격적 상제관에 기초한 새로운 유학 틀을 구상하였다. 정약용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벽 또한 천주교를 축으로 유학의 미비점을 보완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회, 윤리 측면에서 문제는 매우 복잡하였다. 천주교인들은 천주 공경이 대효(大孝), 대충(大忠)이므로 유교 윤리는 천주교에서 완성되고, 유학자들이 오히려 천지의 군주와 부모를 모른 체한다고 역공했다. 물론 그 논리는 유교 윤리의 소멸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더 위험한 것은 천주 앞에서 군(君)·신(臣), 부(父)·자(子)의 수직적 위계가 사라지는 일이었다. 천주교인들이 자신들은 충성과 효도를 어긴 적 없다고 아무리 강변해도, 대다수 지배층은 ‘천주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논리 속에 잠재한 현실적 파괴력을 알고 있었다. 백성 하나하나가 박해를 감내하면서 자신이 신앙을 결단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유교적 명분 질서가 사라진 무부, 무군의 미래였다. ●“서양군 통해 유교 압박”… 황사영 백서 큰 파장 1785년(정조 9) 형조의 적발로 최초의 천주교 모임이 발각되었다. 신부도 없이, 지식인들이 서로 성직을 맡아 진행한 모임이었는데, 정조의 관대한 처분으로 그럭저럭 무마되었다. 모임의 주동자였던 이벽은 사건 이후 얼마 안 되어 30대 초반의 나이로 요절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전해진다. 본격적 박해를 경험하지 않은 이벽은 차라리 행복했다. 1801년에 터진 대대적 박해는 일부 신자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황사영의 백서 사건이 터졌다. 백서의 내용 대부분은 순교자들의 전기이다.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 논란을 부르는 부분은 후반부이다. 황사영은 교회 재건을 위해 몇 가지 방책을 제시했는데, 그중 ‘조선을 청에 내복(內服)시킴, 서양 군함과 병사를 통해 압박함’이 들어 있었다. 그 방책은 반국가, 반민족적 구상이라고 줄곧 비판받았다. 교회 재건이라는 동기와 박해라는 정황을 인정하더라도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백서의 청원은 너무나 대담하고 몽상적이어서 교인들 사이에도 논란이 있었고, 당시 북경 교회가 그대로 감행하기도 어려웠다. 황사영 역시 실제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정부를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그 방책들을 제시하였다. 그가 반정부, 반국가 의지가 강했다면 가장 쉬운 길은 교인들의 무력 봉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반란에는 분명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황사영은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종교의 보편 진리를 꿈꾼 그는 서양의 도리를 신뢰했던 듯하다. 예수회가 전한 서양은 안정된 생활, 인정이 넘치는 풍속, 약한 자에 대한 배려와 형제애가 실현된 ‘이상적 사회’였다. 현실의 고통이 강할수록 이상적인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과 기대는 증폭되기 마련이다. 기독교적 형제애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전통적인 유교 윤리, 혈통 의식, 국제 관계 등은 무력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였을 법하다. 선교사가 청 황제, 기독교 국가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지나친 기대감은 그의 판단력을 가려버렸다. ●지금도 유교문화 속 기독교 신자 수 동아시아 1위 천주교와 유교의 보완을 꿈꾸었던 이벽의 노력은 정약종, 정하상 등으로 맥을 이어갔다. 일부 교인들은 동서양의 이상적 인간상을 투영하여 그를 되살렸다. 19세기 후반 천주교 공동체의 염원이 담긴 예언서 ‘니벽전’에서 그는 학문에 능통한 선비, 득도한 신선, 승천하는 예언자로 그려졌다. 황사영은 대역부도죄로 체포되어 능지처사되었다. 비극은 그의 개인과 가족, 당대 교인들에게만 끝나지 않았다. 지배층과 일반 백성은 백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인들을 정말로 무부무군의 무리, 나라를 팔아먹는 무리로 여기게 되었다. 두 사람의 선택은 현재의 우리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은 유교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 신자 수가 1위인 동아시아의 특이한 국가이다. 전근대의 보편 가치와 근대의 보편 가치를 상징하는 두 종교 사이에 현재의 우리가 놓여 있다. 예수회 이벽의 선택은 ‘내 안의 가치’와 ‘타인 안의 가치’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서로 대화하는 자세와 통한다. 그리고 종교, 문명,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조화에 힘쓰는 이들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인정과 대화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겸손에서 대화는 출발하지만, 나·우리 혹은 타자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고정해 버리면 성찰과 다양한 해석이 설 자리는 사라져 버린다. 그 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황사영은, 박해라는 정황을 감안하더라도, 외재(外在)하는 기준을 절대화해 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원을 긍정하고 독선에 빠지지 않는 자세야말로 언제나 곰곰이 생각해 볼 덕목이었다. 세계화, 다문화, 정보화가 가속하는 지금에서는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이경구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 [Weekend inside] 美한국계 10명중 7명 기독교도… “보수성향 강할 듯”

    총 1820만여명에 달하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전체적인 종교 성향 조사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됐다. 미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 센터’는 “아시아계는 미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인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5.6%에 달한다.”면서 아시아계 미국인 성인 35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종교 성향 여론조사 결과를 1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조사 결과 아시아계 가운데 42%가 기독교도였고 14%가 불교 신자, 10%가 힌두교 신자로 나타났다. 무교는 26%였다. 한국계 미국인 응답자 504명 가운데 61%가 개신교도로 나타났다. 이어 천주교 신자가 10%, 불교 신자가 6%로 집계됐다. 기독교(개신교+천주교) 신자가 71%에 달하는 셈이다. 무교는 23%였다. 한국계 미국인 기독교 비율은 필리핀계 미국인(89%) 다음으로 높으며 개신교도 비율로만 따지면 한국계가 가장 높다. 중국계는 52%가 무교였고 31%가 기독교 신자였다. 일본계는 기독교 33%, 무교 32%, 불교 25%다. 필리핀계의 65%는 천주교, 인도계의 51%는 힌두교도다. 퓨리서치는 “한국에 초대형 교회가 많이 있다.”는 점과 한국계 미국인 중 개신교도가 많다는 점에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한국계 미국인들은 대체로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을 띨 것으로 추론했다. 한국계의 40%가 보수적인 ‘복음주의(evangelical) 개신교도’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아시아계 복음주의자의 76%가 매주 교회에 간다고 답해 백인 복음주의자(64%)보다 독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힌두교 신자들의 경우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인 고소득자 비율이 48%에 달해 유대교도(34%), 백인 천주교도(24%) 등을 제치고 종교별 소득 수준에서 최고를 기록했다. 인도계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고학력자인 과학자나 엔지니어로 미국에 건너온다는 점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불교 신자의 76%, 힌두교 신자의 73%가 크리스마스를 명절로서 즐긴다고 답한 반면 유대인들의 70% 이상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다고 답해 대조를 보였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52%가 민주당을 선호했으며, 공화당 성향은 32%에 그쳤다. ‘자신을 다른 미국인들과 비교할 때 어떻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아시아계 중 “아주 다르다”는 응답이 53%로, “같다”(39%)보다 높게 나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신자들이 함께한 천주교 ‘성시간’ 자료집 출간

    신자들이 함께한 천주교 ‘성시간’ 자료집 출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강우일 주교)가 ‘성시간’(聖時間) 자료집을 펴냈다. 이 자료집은 다른 예식서나 전례서와 달리 신자들이 직접 참여해 제작한 것이어서 천주교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천주교에서 ‘성시간’이란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겪은 고통을 묵상하면서 예수의 성심(聖心)을 특별히 공경하는 기도 시간이다. 그동안 천주교계는 본당에서 거행하는 성시간·성체조배에 공식적인 양식과 기도문이 없어 제각각의 전례를 거행해 왔다. 이번 자료집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일선 사목현장과 신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펴낸 ‘성시간’ 지침서인 셈이다. 2011년 1월부터 4월까지 ‘성시간 자료집 시안’을 공모해 그 가운데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장신호 신부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만들었다. 자료집에는 공모 당선작 9편을 비롯해 성시간 예식(시작 안내, 지향, 찬미가, 묵상, 청원기도) 등이 담겨 있다. 신자들이 직접 제출한 기도문에 더해 ‘미사 밖에서 하는 영성체와 성체 신비 공경 예식’ 지침, 전례위원회가 마련한 기본양식이 함께 수록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강우일 주교는 “거룩한 관습인 성시간이 점점 의미를 잃어 가는 요즘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의 감수를 받아 성시간 자료집을 발행하게 돼 기쁘다.”면서 “전국 신자들에게 공모한 풍부한 자료를 함께 수록해 성시간 동안 신자들이 주님과 더욱 일치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고 자료집 발간의 의미를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0) 다산 정약용과 풍석 서유구

    [선택! 역사를 갈랐다} (20) 다산 정약용과 풍석 서유구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최고의 스타다. 풍석 서유구(1764~1845)는 조선의 무명스타다. 서로 두 살 터울. 다산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조명했다. 풍석은 너무했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고,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고, 18년이라는 정치적 유폐기를 거쳤고, 유폐기에 대작을 저술했고, 조선의 융성을 위해 노심초사했고, 남양주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사후 많은 사대부가 추앙했다. 다산만의 얘기라 생각하는가. 풍석도 꼭 그랬다. 그럼에도, 두 위인의 학문적 지향은 전혀 달랐다. 후생들은 결국 다산에게 마음을 기울였고, 풍석은 거의 뒷전이었다. 다산은 풍석의 과거 선배다. 요샛말로 다산은 1789년에 급제한 89학번으로 60명 중 2등, 풍석은 1790년에 급제한 90학번으로 46명 중 24등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직부전시(直赴殿試) 명을 받았다. 이는 여러 절차를 생략하고 곧장 최종 과거에 응시하라는 왕명이다. 이러면 급제는 따 놓은 당상이다. 급제 후 곧장 초계문신이 되었다는 점도 같다. 초계문신은 정조의 최측근 문신 집단이다. 다산의 승진 속도는 풍석보다 빨랐다. 고위직인 정3품 당상관 품계를 5년 먼저 받은 것이다. 정조가 군주이자 학문적 스승을 자처하며 왕권을 강고하게 행사할 때까지, 둘은 겉으로 보기에 같은 쪽을 향하는 듯했다. 다산은 한미한 집안 출신이다.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정조의 두터운 신임은 여전했다. 이에 반해 풍석은 최대 문벌 중 하나인 대구(달성) 서씨의 후예다. 게다가 진퇴에 신중했기에 큰 반대에 부딪힌 적이 없다. 다산이 ‘문제적 범생’이라면 풍석은 ‘범생’ 그 자체다. ●정약용·서유구 정치적 공백기 18년 정조는 집권 초부터 젊은 문신 양성의 일환으로 ‘경사강의’(經史講義)라는 재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 중 시경(詩經)을 분석하는 ‘시경강의’에 두 사람이 동시에 참여한다. 이 시경강의는 16년 동안 25회에 걸쳐 실시했던 경사강의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정조는 590문제를 출제했고, 초계문신에게 40일이 주어졌다. 이로도 모자라 20일을 연장했다는 다산의 고백에서 얼마나 힘든 테스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에는 이 중 579개의 문제와 답을 적어두었다. 수험자가 18명이니, 1인당 32문제꼴로 답안이 채택되어야 평균이다. 누구 답변이 가장 많이 채택되었겠는가. 우리의 영웅 다산일 거라 짐작한 독자에게는 미안하다. 풍석이 독보적이다. 풍석의 답안은 총 181개로, 전체의 31.3%다. 시작과 끝 문제의 답안 역시 풍석의 것이었다. 다산의 답안은 117개가 실렸으며 총 20.2%를 차지한다. 다산의 것도 결코 적은 비중은 아니나 풍석의 월등함에 빛이 바랬다. 시경강의는 두 사람에게 큰 이력이었다. 다산은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의 추억으로 이 시경강의를 들었다. 다음과 같은 정조의 어평(御評)을 두고두고 써먹었다. “백가(百家)의 말을 두루 인용하여 그 출처가 무궁하니, 진실로 평소의 온축이 깊고 넓지 않다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으랴.” 자신이 남긴 ‘시경강의’ 서문에는 물론이고, 스스로 쓴 묘지명에도, 가장 존경했던 형 정약전에게도, 아들에게도 그날의 기억을 되풀이했다. 또 자신의 답안이 최고였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압도적 수석인 풍석은 이 기억을 되새기지 않았다. “책을 열자 바로 개안하는 느낌이다.”라거나 “근거가 분명하고 충분하며 언어가 알맞고 정연하여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이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는 등 총 6군데서 어평을 받았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 풍석은 분명히 경학의 당대 최고 실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다산은 정조 사후 천주학 타도 바람에 휘말려 귀양살이를 시작한다(1801년). 풍석은 이 바람과 무관하게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5년 뒤 김달순 옥사를 계기로 풍석의 탄탄대로에 탈이 났다. 작은아버지 경기감사 서형수는 유배형을 받고, 재종숙부 영의정 서매수가 정계에서 축출되면서 가세는 급격히 쇠락한다. 연좌의 공포에 휩싸인 풍석의 선택은 귀향이었다. ●정약용, 이상적 통치 목표 ´경학·경세학´ 몰두 억울하게 유배지에 갇힌 다산과 죄 없이 죄인을 자처하며 낙향한 풍석. 과정이 어쨌든 불우한 처지이기는 피차일반이었다. 정치적 공백기 18년. 그러나 여기서부터 이들의 길은 판이하게 갈린다. 다산은 유학의 정통 분야인 경학과 경세학(經世學)에 몰두했다. 조선 유자의 지향점을 요약하면 수기(修己)와 치인(治人). 수기는 자신의 몸과 덕성을 수양하는 일이요, 치인은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다. 수기는 치인을 위한 인문학적 토양이고, 치인은 자기 수양의 경세론적 확장이다. 다산은 61세에 자신의 학문을 이렇게 정리했다. “육경(六經)과 사서(四書)로 자기 몸을 닦고 1표(表)와 2서(書)로 천하·국가를 다스리니, 본말을 갖추었다.” 육경과 사서는 경학이고, 수기의 세계다.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심서는 경세학이고, 치인의 영역이다. 저술은 경집(經集) 232권, 1표2서를 포함한 문집 260여 권으로 총 500권이 다 된다. 다산의 지향은 조선 제도를 개혁하는 일이었다. 반면 풍석은 파주 장단으로 귀농하고서 경학과 경세학을 철저히 외면했다. 경학을 해봐야 옛 사람의 중언부언이고, 경세학을 해봐야 결국 ‘흙 국’이나 ‘종이 떡’처럼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잡학’ 마니아가 된다. 풍석의 잡학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에 질서 있게 배열되었다. 농학, 천문학, 공학, 수학, 요리학, 의학, 어업, 예술, 상업 등 총 16분야다. 경학과 경세학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서 113권으로 마무리했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주제는 하나다. 시골에서의 자립적인 삶을 위한 지식 체계. 풍석의 지향은 사대부 일상을 개혁하는 일이었다. 풍석은 18년 공백 후 정계에 복귀해 15년간 고위직을 두루 거쳤다. 그 와중에도 시골생활 백과사전 정리를 그치지 않았다. 임원 생활을 대비했고 임원을 동경하기도 했다. 반면 다산은 해배 후 야인으로 머물러야 했다. 그래도 여전히 경학, 경세학 정리와 심화에 몰두했다. 국정 참여의 뜻을 꺾지 않은 듯하다. 묘한 대비가 아닐 수 없다. 다산과 풍석은 일생을 어떻게 정리했을까. 다산은 ‘자찬 묘지명’(1822년, 61세)을, 풍석은 ‘오비거사 생광 자표’(1842년, 79세)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자신의 묘지명을 썼다. 환갑 때 쓴 다산의 묘지명은 분량이 아주 많다. 주요 개인사를 모두 적었고 저술 체계도 매우 상세히 서술했다. 글자 수가 자그마치 1만 2316자! 내가 아는 자기 묘지명 중 가장 길다. 1000자 내외가 대부분이다. 가슴에 묻어둔 한이 많았던 걸까. 이와 대조적으로 풍석은 평생을 다섯 시기로 구분하여, 그 시기를 모두 허비했다며 반성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40년 가까이 공 들인 ‘임원경제지’ 저술도 인쇄할 뒷심이 없어 낭비였다고 회고한다. 자신을 오비거사(五費居士)로 칭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산의 묘지명은 828자인 풍석의 것보다 무려 15배나 많다. 파란만장으로 말하면 누군들 할 말이 없을까마는, 다산은 거의 회고록 콘셉트이었고, 풍석은 반성문 콘셉트였다. ●서유구,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 지식 외면 다산은 농사를 짓지 않고 농업 원론만 얘기했다. 풍석은 논두렁 밭두렁을 돌아다닌 체험으로 구체적인 농사 기술을 제안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여기서 비롯된다. 풍석은 입으로만 농사를 짓지 않았고, 글로만 물고기를 잡지 않았다. 그리고 온갖 정보를 조직적으로 정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실행되거나 실행되어야 할 선진 기술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다산은 스스로 말한다. 자신의 경세학은 “지금의 쓰임에 구애되지 않고 기준을 제시해 우리나라를 새롭게 하려는 연구다.”라고. 당대의 활용보다는 이상적 통치 기준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풍석이 흙으로 끓인 국 즉 토갱(土羹)이요, 종이로 만든 떡 즉 지병(紙餠)이라 비판했던 저술은 바로 이런 거였다. 풍석은 이상을 추구하되 반드시 이 땅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의 철저한 현실론을 견지했다. 실현할 수 없는 지식은 ‘토갱지병’이다! 이상적 기준을 제시하고서 현실을 이상으로 밀고가려 했던 다산의 방법론과는 대조적이다. 풍석의 이용후생론은 바로 이런 실용학이었다. 다산 탄신 250주기를 맞아 여기저기서 다산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조선의 다빈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그의 위대성을 유학사상과 정치철학에서 찾으려는 경향은 여전하다. 다산의 저작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없다. 그러나 다산에게서 조선의 모든 잠재성과 가능성을 찾으려는 경향은 지나치다. 풍석의 평생 역작 ‘임원경제지’는 제도적 개혁을 주장하지 않는다. 개혁은 일상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게 풍석의 신념이었다. 풍석은 ‘놈팡이 선비’를 제일 혐오했다. “곡식만 축내며 보탬이 안 되는 자 중에 저술하는 선비가 으뜸이다!” 선비들이여, 농업·공업·상업 알기를 똥으로 아는 그 엘리트 의식부터 싹 뜯어고쳐라. 버러지처럼 놀고먹지 마라. 경서를 공부하되 제 식구 먹을거리, 입을거리, 살 곳은 유지하면서 하라. 방 안에 틀어 앉아 공맹과 성리를 논할 시간에 밖에서 바지 걷어붙이고 쟁기질하라! 그물 던져 물고기 잡아라! 짐 지고 나가 장사하라! 몸놀림을 혁신하라. 땀 흘려 일해서 벌어먹는 일을 점점 기피하고, 종일 컴퓨터로 하루를 보내는 일이 사람다운 노동이라고 여기는 우리가 여기서 얻을 힌트는 과연 없는 것일까. 정명현(임원경제연구소 소장)
  • [생명의 窓] 심전 계발/손흥도 원불교 교무

    [생명의 窓] 심전 계발/손흥도 원불교 교무

    주요 일간지 기자를 하다가, 나라의 중요 요직을 오래 담당했던 한 분이 얼마 전 자신이 쓴 ‘세상, 어떻게 돌아갑니까’라는 풍자화문집 한 권을 보내 왔다. 그림을 곁들여 출판한 내용이라 눈에 띄었다. 그 책의 머리말에 저자의 진솔한 소회가 나타나 있었다. 그간 여러 권의 저서를 내면서 느낀 것은 우리 국민들이 놀고, 노래 부르고 하는 것은 잘하지만 책 읽는 호흡은 짧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독자가 쉽게 볼 수 있는 그림과 글을 함께 묶어 ‘화문집’을 펴내기 위해 뒤늦게 그림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 칠순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문화센터’에 등록해 스스로 스케치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부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이런저런 집안 이야기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었음도 진솔하게 고백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 것은 건강이었고, 건강관리를 위해 최근에는 수영을 배우러 다닌다고 근황을 밝혔다. 칠순이 넘은 연세인지라, 그냥 건강관리하며 편히 쉰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인데, 그분은 이러한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노년기에 들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관심 있는 분야를 꾸준히 배우는 것으로 자신을 가꾸며, 새로움을 향해 도전해 가는 삶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워 절로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개척해 가는 것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원불교의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가 당시 전주에 사는 교도 한 사람이 조물주에 대해 천주교인과 문답한 내용을 들으시고, 말씀하신 내용 중에 ‘너의 조물주는 곧 너이며, 나의 조물주는 곧 나이며, 일체생령이 자기가 자기의 조물주’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천주를 조물주라 하나 천주를 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지 않으냐는 뜻을 담아 전한 법문이다.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근원적인 요소, 나에 대해 죄를 주고 복을 주는 것은 근본적으로 추구해 보면 나 자신이라는 말씀이다. 곧 조물주란 만물을 초월해 있는 절대자가 아니라, 각자의 조물주는 원력과 정성 여하에 따라 운명을 결정짓는 각자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근래 주말농장을 관리하는 손길이 산책길 주위에 돋보인다. 바쁜 도시인들이 분양받아 주로 주말에 텃밭처럼 가꾸는 모습이 참 생산적이고 보기에도 좋다. 이런 일은 크건 작건 일을 해야 하니 좀 부지런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건강관리에도 제격이어서 거기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은 한번 시작하면 계속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가꾸는 사람에 따라 밭의 모양새가 다르다. 어떤 사람의 밭은 참 가지런하게 정돈되고, 채소 또한 무성해 길가는 우리의 발길을 머무르게 하는데, 어떤 밭은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것이 어찌 주말농장의 밭뿐이겠는가. 예로부터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혜복의 근원처를 마음 밭 곧 심전(心田)이라고 했다. 밭에서 온갖 식물이 자라나듯이, 사람의 마음에서도 온갖 선악의 싹이 난다고 해 이를 비유하는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 받고 복 받는 것이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자신의 심전 계발을 잘하고 못 하는 데 있는 것이다. 부지런한 농부는 묵은 밭을 잘 개척해 좋은 밭을 만들듯 우리의 마음바탕을 잘 단련해 혜복을 갖춰 얻어가는 것이 자기 자신 조물주로서의 가장 우선되는 책임이자 의무요, 자기관리의 가장 요긴한 길로 보인다. 지금 나는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들 것인가 박토로 만들 것인가. 건강도, 행복도 자기 마음을 가꾸어 가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지금의 이 모습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 성심껏 가꾸어 가는 자신의 모습이 지금 이후의 모습이요, 나아가 1년 뒤 아니 미래의 자기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 시대에 찾아온 고령화시대를 맞아 우리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자기를 만들어 갈 것인가. 이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몫이다.
  • ‘中 천주교 직책 거부’ 상하이 주교 실종

    상하이(上海)의 한 주교가 중국 정부의 천주교 단체 직책을 거부한 뒤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해 파문이 일고 있다. 10일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상하이의 마다친(馬達欽) 주교는 지난 7일 중국 정부의 천주교 단체인 천주교애국회(天主敎愛國會)가 그를 상하이 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하는 서품식에서 자신은 바티칸 교황청으로부터 보좌주교로 승인받은 몸이어서 향후 천주교애국회가 부여한 어떠한 직책도 맡을 수 없다고 공개 선언했다. 직후 그는 한 무리의 남성들에 의해 끌려갔으며 사흘째 행방불명 상태다. 당시 상하이 쉬자후이(徐家匯)에 있는 성(聖) 이그나시우스 성당에는 그의 서품을 축하하기 위해 1000여명의 신도들은 물론 중국 국가종교국 인사들도 함께 자리했으며, 때문에 마 주교의 이 같은 돌발 발언은 용기 있는 일로 받아들여져 신도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중국 천주교애국회는 중국 정부가 천주교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교황청으로부터 사제 및 주교 서품 승인권을 인정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서품 활동을 강행해 교황청과 장기간 갈등을 빚어 왔다. 마 주교는 교황청과 천주교애국회의 승인을 모두 받은 주교로, 2008년에는 상하이 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베네딕도 벗들 캠프’ 새달 10일 개최

    ‘베네딕도 벗들 캠프’ 새달 10일 개최

    천주교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원장 이형우 아빠스)이 ‘수도생활 체험학교’ 운영 10주년을 맞아 특별 행사를 마련한다. 오는 26∼29일 만 32세 미만 미혼 남녀 대상의 ‘제34차 수도생활 체험학교’를 여는 데 이어 8월 10∼12일 역대 참가자 및 가족을 초청해 ‘베네딕도의 벗들 캠프’ 행사를 갖는다. 왜관수도원 ‘수도생활 체험학교’는 국내 가톨릭교회 수도회 중 처음으로 2002년 마련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수도원 체험행사. 침묵과 기도, 엄격한 규율과 봉쇄쯤으로 인식됐던 수도자의 삶을 일반인이 직접 경험하는 색다른 기회를 처음 제공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기본적인 생활과 왜관수도원 소개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특징. 학교에 참가하는 이들은 수도자들과 함께 매일 다섯 번씩 성당에서 기도와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아침·저녁 명상 시간 말고도 오전·저녁에 수도생활과 관련된 특별 강의도 듣는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 그대로 작업장에서 노동체험을 하고, 조별 공동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거룩한 독서)에도 참여한다. 매년 여름과 겨울 한 차례씩 열린 이 체험학교는 천주교에서 특히 젊은 신앙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행사로 평가받는다. 지난 10년간 체험학교를 다녀간 참가자만도 2600여명에 달한다고 왜관수도회 측은 집계했다. 수도생활 체험학교는 고등학생 이상 만 32세 이하의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하며 매회 선착순 50명에 한해 신청받는다. 체험학교에 참가했던 일반인을 중심으로 매월 한 차례 1박 2일간 열어온 ‘베네딕도의 벗들 기도모임’은 영적 체험을 일상에서 이어가는 연결행사. 다음 달 ‘베네딕도의 벗들 캠프’는 지난 10년간의 학교와 기도모임을 돌아보고 기념하는 자리. 왜관수도원 박진형(비오) 수사 신부는 “젊은 신앙인들의 성소 회복과 영적 체험 차원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며 “이번 행사는 종전과 조금 다르게 화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캠프 형식의 기념행사로 진행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세제개편안 3원칙… 새달 8일 발표

    세제개편안 3원칙… 새달 8일 발표

    소득세 과세표준(과표) 구간이 5년 만에 조정될 전망이다. 법에 종교인(성직자) 과세 규정이 명확해지고 주식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의 범위가 확대되는 등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가 강화될 계획이다.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 같은 세 가지 원칙이 담긴 세제개편안을 마련, 다음 달 8일 발표할 예정이다. 현행 과표 구간은 1200만원, 4600만원, 8800만원, 3억원을 기준으로 나뉜다. 정부는 1200만원·4600만원·8800만원은 올리고 3억원은 내리는 방안을 고민중이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한국형 버핏세’가 논란이 되면서 3억원 초과 구간이 신설, 과표구간이 흐트러진 것이 계기가 됐다. 세율의 변동은 있었지만 현행 과표구간은 2008년부터 적용된 것이며 이번에 과표구간이 조정되면 2013년부터 적용되게 된다. 8800만원 이하의 3개 과표구간을 올릴 경우 세수가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는 세수에는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세액공제와 소득공제를 줄이거나 세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고민중이다. 변수가 많다 보니 검토대상 개편안이 17개다. 근로소득자의 40%가 면세점 이하인 현실도 개선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성직자 과세도 구체화된다. 정부는 지난달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등 5개 종교 대표자들과 만나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간담회에서 근로소득세 납부에는 동의하는 만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주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소득세법이나 시행령 등에 명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금융소득과세는 전방위로 진행될 전망이다. 우선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 대주주의 범위를 ‘지분율 3% 또는 지분총액 100억원(코스닥은 지분율 5% 이상 또는 지분총액 50억원) 이상’에서 지분율을 2%로 내리는 방안을 협의중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은 4000만원 초과에서 2000만~3000만원으로 내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금융소득이 4000만원이라면 이자율 등을 감안할 때 은행권에 10억원 이상의 예·적금을 갖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과세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거래세 부과는 다시 추진된다. 지난해 선물·옵션 등의 장내 파생상품에 0.01%의 거래세를 부과하는 안을 추진하는 방안이 거론됐으나 업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세율을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하얼빈 주교 서품 놓고 中-바티칸 해묵은 갈등

    오랫동안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던 중국과 바티칸이 새 주교 서품을 놓고 또다시 충돌하고 있다. 중국 국가종교사무국은 4일 바티칸 교황청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새 주교 서품에 대한 ‘파문’ 위협과 관련, “바티칸 측의 질책과 위협적 태도는 극도로 야만적이고 충격적인 것으로 중국 가톨릭 교무 활동에 대한 간섭과 질책은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비관용적 태도”라고 반발하며 ‘파문’ 위협 철회를 요구했다고 인민일보 계열의 환구시보가 5일 보도했다. 앞서 교황청은 중국이 하얼빈 주교로 지명한 웨푸성(岳福生·48) 신부가 교황의 승인을 얻지 못한 만큼 만약 서품된다면 파문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공지문을 보낸 바 있다. 웨 주교의 서품식은 6일 예정돼 있다. 바티칸과 중국은 교황청이 1951년 타이완 정부를 중국의 합법정부로 승인, 마오쩌둥(毛澤東) 정권의 거센 반감을 산 이래 공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중국의 가톨릭 신자는 공식적으로 중국천주교애국회 교회에서만 미사를 볼 수 있으며 교황을 영적인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황의 사제와 주교 서품권이 거부돼 교황청의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지금까지 190여명의 주교를 서품하면서 교황청과 갈등을 빚어왔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알며… 머물며… 느끼며 이웃종교와 화합 꿈꿔요

    종교인들이 한국 종교의 대표적 성지와 수도원 등을 돌며 이웃종교를 체험하는 독특한 행사가 열린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를 비롯한 7대 종교로 구성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지난 5월부터 진행 중인 ‘2012 이웃종교 화합주간’행사의 하나인 ‘이웃종교 스테이’. 일반인을 포함한 신자들이 6∼8일 천주교 면형의집을 시작으로 9월 2일까지 2박3일 일정의 이웃종교 체험을 이어간다. ‘2012 이웃종교 화합주간’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종교화합주간’의 하나. 국내 7대 종교가 종교 간 화합과 평화를 다지자는 뜻을 모아 지난 5월 5일 개막식(서울 광화문광장)을 시작으로 체험마당(이웃종교 스테이), 소통마당(전국 종교인 화합대회), 화합마당 등 4개 섹션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이웃종교 스테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 행사로 참가자들이 각 종교의 핵심 성지를 찾아가는 흔치 않은 자리다. 개막일인 지난 5월 5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중구·종로구 일대에서 열린 ‘이웃종교 스탬프 투어’는 그 사전행사. 종교인들이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서울 지역 종교시설 7곳을 방문해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고 도장을 받는 체험을 마쳤다. ‘이웃종교 스테이’의 첫 체험처인 천주교 면형의집(제주도 서귀포시 서흥동)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골을 모신 곳으로 유명하다. 참가자들은 제주도의 천주교 주요 성지를 방문해 아침 미사며 성직자 대화 등에도 참여한다. 13∼15일 대전 수운교 본부에선 민족종교 스테이 행사가 있을 예정. 이 수운교 본부에 들어있는 수운교 상징 건물인 도솔천을 비롯해 봉령각, 용호당, 법회당 등은 모두 지정 문화재들이다. 이어서 20∼22일 경주 용담성지에서는 천도교 스테이가, 27∼29일 영주 한국선비문화수련원에서는 유교 스테이가 각각 진행된다. 개신교가 다음 달 17∼19일 수도권 근대문화 순례프로그램을 갖는데 이어 원불교는 다음 달 24∼26일 영광 영산성지에서, 불교는 다음달 31일∼9월 2일 구례 화엄사에서 각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스테이 행사에는 앞서 진행했던 행사를 통해 신청받은 28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변진흥 KCRP 사무총장은 “종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 해소에 기여할 부분이 많다.”며 특히 이번 ‘이웃종교 스테이’는 시민 참여행사의 형태로 종교의 역할을 고민하고 되새기는 자리여서 더욱 뜻깊다.”고 밝혔다. 한편 KCRP는 하반기 경기, 부산, 광주 등 전국 6개 지역에서 ‘지역 종교인 화합행사’를 열며 10월 13일 과천 관문체육공원에서 전국의 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화합대회를 열 계획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염수정 서울대교구장 착좌 축하 음악회

    염수정 서울대교구장 착좌 축하 음악회

    지난달 25일 정진석 추기경의 뒤를 이어 제14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한 염수정 대주교의 착좌 축하음악회가 9일 오후 8시 명동대성당에서 열린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서울평협)가 공동주최하는 음악회에는 염수정 대주교를 비롯해 사제단과 서울평협 관계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궁중무용·뮤지컬도 선보여 음악회에서는 무레의 팡파르 심포니 중 ‘론도’, 궁중무용 ‘춘앵전’,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중 ‘지금 이 순간’ 등 다채로운 음악이 연주된다. 발산동성당 임마누엘 성가대가 이 음악회를 위해 마련한 창작곡 ‘우리 염수정 대주교님은 최고야’도 소개된다. 음악회는 전석 무료로 진행되며, 누구나 참석 가능하다. 서울평협 최홍준 회장은 “목자는 자기 양들을 알고 양들은 자기 목자를 알아보는 이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에 경사가 났다.”며 “염수정 대주교님을 이곳 지역교회에 목자로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대주교님의 서울대교구장 착좌를 경축하는 의미에서 마련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교황 알현… 亞·北 선교 당부 한편 지난달 25일 명동성당에서 착좌미사를 봉헌한 염 대주교는 지난달 29일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베네딕도 16세로부터 주교임무의 충실성과 교황권위에 참여함을 상징하는 팔리움을 받은데 이어 30일 바티칸 교황청내 바오로 6세홀에서 교황을 알현했다. 염 대주교는 교황을 알현한 자리에서 “앞으로 아시아 선교에 더욱 노력하겠다.”며 특히 교황에게 “북한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주문했다고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전했다. 염 대주교는 5일 귀국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8)조선 정조의 두 재상 김종수·채제공 ‘살벌한 대립’

    [선택! 역사를 갈랐다] (18)조선 정조의 두 재상 김종수·채제공 ‘살벌한 대립’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왕으로는 단연 정조가 으뜸이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가 구축한 왕권을 이어받은 데 더해, 스스로도 끝없이 학문을 닦아 군사(君師)로서 입지를 강화했다. 또한 당시 조선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해결책을 강구했다. 정조 때 시전상인들의 독점판매권을 상당 부분 폐지해 자유경쟁체제를 도입한 신해통공(辛亥通共·1791)은 미래지향적인 제도의 변화라는 점에서 역사전문용어로서 ‘개혁’으로 부를 만하다. 서얼과 노비를 대상으로 세습신분제의 완화를 시도한 점이나 서학과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한 점도, 거의 성과를 보지 못했지만 조선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당쟁으로 갈래갈래 찢긴 정치지형을 국왕을 중심으로 대승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탕평책도 평가할 수 있다. 정조를 보좌한 대표적인 원로급 인물로는 김종수(1728~1799)와 채제공(1720~1799)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최고의 벼슬인 재상의 반열에 올라 정책결정 과정에 깊이 개입했을 뿐 아니라, 정조의 신임이 남달랐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해 거의 사사건건 대립했다. 둘 다 표면적으로는 정조의 탕평책에 동의했으나, 속으로는 상대방을 제거하지 못해 안달했다. 김종수가 노론집안인 데 비해 채제공은 남인이었다. 또한 김종수가 사도세자를 죄인으로 간주한 벽파의 거두인 데 비해, 채제공은 사도세자의 무고를 주장한 시파의 거두였다. 그런데도 이 둘이 모두 정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정조가 즉위하기 전에 맺은 관계 덕분이었다. ●경제개혁·천주교 반대… 수구적 재상 김종수 먼저, 김종수는 왕세손의 학문을 담당한 시강원에 근무하면서 정조의 스승이라는 각별한 경력을 쌓았다. 그런데 정조가 김종수를 크게 신임한 이유가 이런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종수가 정조에게 설파한 군주론이 정조의 생각과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정통 주자학 신봉자인 김종수는 군주는 통치자이면서 동시에 학문적 스승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군주나 스승 가운데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그 둘을 겸함으로써 이른바 군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한 정조가 품었던 군주론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면 김종수는 정조가 진정한 군사가 되도록 성심으로 돕고 그의 탕평책을 적극 지지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철저한 당론자(黨論者)였기 때문이다. 그는 노론의 강경론자로서 소론과 남인을 역적이자 소인배의 무리로 간주해 공존하기조차 싫어했다. 그는 군자만이 정치를 담당해야 한다고 확신했으나, 그에게 군자는 오직 노론뿐이었다. 따라서 그의 군자정치론은 사실상 노론의 전제를 뜻했다. 말로는 군사를 운운했으나, 그는 정조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탕평책을 불편해했다. 오히려 정파의 보스가 지방에 앉아 중앙의 정치에 대해 훈수하는 산림정치를 지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신해통공과 같은 경제개혁에도 극력 반대했으며, 서학과 천주교에 대해서도 강경일변도였고, 신분제의 완화에도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정조의 조정에 출사한 이유는 권력욕 때문이었다. 어떤 변화에 대해 반대한다면 자기가 고수하려는 것들에 대한 분명한 논리를 세워야 하는데, 김종수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입으로는 군사와 군자를 말했으나, 마음은 언제나 노론의 권력 독점에 있었다. 국왕의 총애를 받아 중책을 담당한 일국의 재상으로서 국가의 현안이나 제반 문제들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없었다. 보수란 변화를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변화의 절박성을 따져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속도를 조절해 서서히 추진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김종수는 보수로서의 정치철학조차 갖고 있지 않은 수구였을 뿐이다. 혹자는 김종수를 보수파로 평가하지만, 솔직히 자격 미달의 보수였다. ●신분제 완화에 우호적… 정조의 돌격대장, 채제공 채제공이 정조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가 사도세자를 극구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그의 정치철학과 국가 현안에 대한 해결책이 정조와 매우 비슷한 덕분에 정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정통주자학에서 벗어나, 국왕의 절대권을 강조하면서 그 바탕으로서 충효를 강조했다. 이런 군주론은 군주의 특성을 최소화해 사대부와 거의 비슷한 급으로 낮추려던 주자학자들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오히려 천자로서 군주의 권력을 절대시한 동중서(董仲舒)의 군주론에 가까웠다. 사대부 문벌을 타파하고 왕의 권위를 높이려던 정조가 이런 채제공을 홀대할 리 없었다. 정책 차원에서도 채제공은 늘 정조의 편에 섰다. 군주를 중심으로 한 탕평책에 적극 동조한 것이나, 신해통공을 적극 추진한 것이나, 주자학과 충돌을 빚는 천주교에 대해서도 일부 포용하려 한 점이나, 신분 차별의 완화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다 그런 예이다. 특히 조선사회에서 거의 진리처럼 굳어져 있던 ‘왕안석=소인’이라는 인식에 맹종하기를 거부하고 왕안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에서도 채제공과 정조는 생각이 비슷했다. 사실, 정조 집권 후반기에 추진한 몇몇 정책에서 정조의 오른팔로서 돌격대장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 바로 채제공이었다. 그렇다면 채제공은 진심으로 정조의 탕평책을 지지했을까?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채제공이 재상이 된 후에 가장 먼저 제기한 문제가 벽파에 대한 전면적인 선전포고였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였던 사도세자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사도세자를 죄인이라 한 벽파에 대해 공격 나팔을 불었던 것이다. 사도세자가 죄를 입어 부왕에게 ‘처형’된 것이라면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 되기에 국왕으로서 권위를 세우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사도세자가 죄가 없음에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이라면, 당시 사도세자를 공격한 자들은 모조리 역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문제이기에, 정조조차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덮고 벽파와 시파를 가리지 않고 등용하는 탕평책을 폈던 것이다. 정조를 보좌하면서 그동안 구상했던 ‘개혁’을 추진하기에도 버거울 지경에, 채제공이 온건파나 중도파까지도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들어 버릴 사도세자 문제를 굳이 끄집어 낸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정조의 왕권을 보다 확실히 하고, 그럼으로써 정국을 주도해 개혁을 추진할 발판을 만들자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채제공을 전격적으로 재상에 임명하면서 정조는 그 등용 이유를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설명했는데, 채제공이 그것을 벽파세력에 대한 공격신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공격에서 정조가 끝내 중립을 지킨 점을 고려할 때, 정조가 의도한 ‘이열치열’이 그런 노골적인 공격이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김종수와 마찬가지로 채제공 또한 벽파와는 한 조정에서 공존할 수 없다고 믿었음이 거의 분명하다. 실제로 그는 벽파를 역적으로 몰아붙였으며, 김종수 또한 채제공을 역적으로 불렀다. ●정조의 김종수·채제공 등용은 탕평책?이열치열? 이렇듯 태생적으로 물과 기름 관계인 노론과 남인 출신인 김종수와 채제공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보는 입장에서도 철천지원수 관계인 벽파와 시파에 속했다. 그 계파의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그 둘은 그런 정치계보에 충실했다. 그렇다는 것은 김종수와 채제공 모두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견원지간인 두 사람을 재상으로 쓴 정조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인사정책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탕평정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고, 그 둘의 적당한 대립을 통해 왕권을 유지하고자 했다면 그 또한 다른 왕들보다 특별히 나을 게 없다. 어쩌면 이런저런 생각은 많으나 과단성이 부족했던 정조 자신의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주자학을 대하는 입장이 다르더라도 김종수와 채제공은 모두 유학자이자, 재상이었다. 그렇다면 그 둘은 모두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에 열심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제반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고 조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중요한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 과거사에서 비롯된 사도세자 문제를 둘러싸고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치는 뒷전이었다. 그 결과, 정조 말년에 그 둘 모두 권력을 잃었고, 같은 해 같은 달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생을 마감했다. 죽어서도 둘 사이의 엎치락뒤치락은 끝나지 않았다. 정조의 죽음으로 노론 벽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이미 죽은 채제공은 관작 추탈이라는 욕을 봤다. 그런데 7년 후 정순왕후의 대리청정이 끝나고 노론 시파가 권력을 장악함에 따라, 이미 죽은 김종수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역적으로 몰려 역시 수모를 당했다. ●권력잡은 노론, 채제공 관작추탈… 죽어서도 혈투 김종수와 채제공이 권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대립하더라도 그것을 ‘시대정신’에 기초한 정책대결로 승화시키면서 정조를 보필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실제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의 선택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우선순위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독점적 권력 그 자체였다. 김종수와 채제공이 보여준 사례는 한시도 잠잠한 날이 없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에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김종수의 처신은 일국의 정치를 책임질 재상이 보일 처신은 전혀 아니었다. 노론 벽파의 우두머리로서 그는 초지일관 ‘당권파’의 이해에 따라 행동했다. 무엇인가 개혁을 추진한 점에서 채제공이 김종수보다 더 나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 또한 200년 이상 이전투구로 벌어진 당쟁구도에 보다 충실했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 “4대강 사업, 가뭄에 취약… 홍수피해 우려”

    최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4대강 사업이 가뭄 극복은 물론 홍수 예방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학계와 환경 전문가들은 “지금의 극심한 가뭄 해소에 4대강이 별 도움을 주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올해 예상되는 여름 폭우로 4대강 주변 홍수 피해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2009년 11월에 착공한 4대강 사업에는 지금까지 14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26일 오후 2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는 ‘4대강 사업 진단과 안전문제’를 주제로 2012 대한하천학회 하계 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대회에는 대한하천학회 소속 교수들을 비롯해 천주교연대, 환경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등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기조연설에 나선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영산강의 승촌댐 지역만 보더라도 댐 건설 후에 댐의 수위가 마을의 도로보다 높아 만약 홍수가 나면 인근 지역의 모든 집이 지붕까지 잠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면서 “반면 댐에 물을 채우면 일부 하천 구간의 물이 말라 버린다.”고 말했다. 정민걸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4대강 사업은 홍수 때 물을 저장한 뒤 가뭄 때 이를 이용하는 이수(利水)가 불가능한 구조라서 가뭄 피해를 더욱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4대강 댐은 가뭄 때도 하천 수위 조절을 위해 인공저수지에서 물을 계속 방류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가뭄에 더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안전성 문제도 제기됐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8월 경남 창녕 함안보 하류와 상류에서 ‘세굴현상’(흐르는 물에 의해 강바닥이 파이는 현상)이 발생해 대대적인 보강공사를 했지만 문제가 더욱 심해진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세굴현상은 강바닥 보호공에 영향을 끼쳐 보 구조물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지만 수자원공사가 이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수문이 고장나 보수한 보도 합천보, 달성보, 세종보 등 확인된 곳만 4곳”이라면서 “지난 5월 11일 함안보에서도 차수벽(수문 보수공사 때 물을 차단하는 구조물)을 설치해 수문 보수공사를 했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청춘이여! 영혼의 피서 ‘피정’ 떠나자

    청춘이여! 영혼의 피서 ‘피정’ 떠나자

    꿈과 이상을 갖고 사는 청년이라면 현실에서 부닥치고 겪는 고난과 좌절도 많게 마련. 그래서인지 휴가철 천주교 피정(避靜·일상생활을 벗어나 묵상과 침묵기도를 하는 종교적 수련)에 참가하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현실의 아픔과 난관을 내면의 성찰과 관조를 통해 극복하고 내려놓으려는 잠깐의 종교적 침잠. 올여름 휴가철에도 천주교 수도회와 교회 단체들이 다양한 피정을 마련, 청년들을 맞는다. 특히 각 단체의 고유 영성을 세워 청년들을 부르는 피정들이 늘어 눈길을 모은다. 이 같은 청년 피정은 종전 재충전을 위한 단순 휴식이나 종교 체험과는 구별되는 게 특징. 잠깐 동안 성직자와 공유하는 공동체 생활이라는 친교적 성향의 수련이나 맛보기식 체험에서 벗어나 영성과 내면의 성찰을 철저히 강조한다. 예수회의 ‘랑데뷰 피정’(7월 21∼22일 서울 신수동 예수회센터)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사랑이 사랑을 위하여’(29일∼7월 1일, 7월 27∼29일, 8월 17∼19일 서울 성북동 피정의집 복자사랑), 세계복음화선교회의 ‘청년을 위한 부르심 알아듣기’(29일∼7월 1일 서울 장충동 성베네딕도 피정의집)는 대표적인 피정이다. 모두 영성을 바탕으로 나의 존재와 공동체의 삶, 하느님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되돌아보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가운데 예수회 ‘랑데뷰 피정’은 예수회 영성에 바탕한 ‘양심성찰’ 프로그램. 영신 수련 초보단계에서 철저하게 나를 되돌아보는 그룹활동과 체험 나눔이 특징이다. 침묵 수행이나 엄격한 제약이 없으면서도 ‘식별’과 관련된 질문을 던져 청년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면서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하는 ‘랑데뷰’의 속성이 짙다. 잠시의 체험이지만 ‘영성의 끈’을 일상에서도 이어가도록 만드는 독특한 피정으로 꼽힌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사랑이 사랑을 위하여’는 이 수도회의 ‘완덕오계’(完德五誡) 영성을 활용한 피정. 불교의 방하착(放下着)처럼 자신을 비우고 비우는 겸손의 미덕을 다져 마음속의 인격적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참회예절과 면담을 통해 일상생활의 벅찬 일과 사건들을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욕심과 욕구를 내려놓는 속 깊은 피정 중 하나이다. 그런가 하면 세계복음화선교회의 ‘청년을 위한 부르심 알아듣기’는 내 삶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꼼꼼히 따져 삶의 근원적인 의미를 찾아보는 자리. 하느님의 참된 부르심을 알아간다는 성소(聖召)의 깨달음이 바탕이다. 이 밖에 기도, 묵상을 기본으로 하는 렉시오 디비나(성독·聖讀)와 향심기도, 이냐시오 영신 수련, 예수마음기도 등 전통의 가톨릭 수련을 배울 수 있는 피정도 적지 않다. 마리아니스트 수도회의 ‘자연과 함께 하는 젊은이 침묵피정’(7월 7∼8일)은 성소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피정. 여기에 예수회가 공동체 생활을 통한 영성 찾기인 ‘마지스-이냐시오 영성에 따른 캠프 피정’(7월 5∼8일)을 준비하고 있고, 한국순교복자수도회도 수도자와 함께 지리산·섬진강 둘레길을 함께 도는 ‘나는 너를 친구라 불렀다’(7월 27∼29일)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존엄성 지킬 것”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존엄성 지킬 것”

    지난달 10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제14대 한국천주교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된 염수정 대주교의 착좌 미사가 25일 오후 2시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오스발도 파딜랴 교황대사와 전임 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 주교단, 서울대교구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 미사에는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고흥길 특임장관, 박인주 청와대 사회통합수석 등 정부 관계자와 정당 대표 및 타 종교 대표, 각국 주한 대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양떼들 제때 돌봐주도록 헌신” 염 대주교는 이날 미사를 시작으로 전임 정진석 추기경의 뒤를 이어 한국 천주교의 얼굴인 서울대교구를 이끌어 나간다. 염 대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저는 다만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만을 믿고 이 자리에 섰다.”며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저에게 맡겨진 양 떼들을 제때 돌봐주고, 먹을 것을 주고, 가르치며, 다스리도록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염 대주교는 특히 “우리 교회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죽음의 문화에 맞서 용감하게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해야 할 교구의 모든 신부님들이 함께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착좌식은 전임 교구장 인사에 이어 염 대주교의 주교좌 착좌, 착좌록 서명 순으로 진행됐으며 염 대주교의 미사 강론이 끝난 뒤에는 서울대교구 사제단이 새 교구장에게 존경과 순명을 서약하는 ‘순명 서약’이 이어졌다. ●29일 교황으로부터 ‘팔리움’ 받아 경기 안성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염 대주교는 1970년 사제서품을 받아 서울 이태원·장위동·영등포·목동성당 주임을 거쳐 2002년 주교 서품을 받았다. 교구 총대리 주교로 임명된 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 교구 매스컴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고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김 추기경의 유지를 잇는 용기장학회와 (재)바보의나눔 이사장을 맡아 왔다. 한편 염 대주교는 오는 29일 로마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주교 임무의 충실성과 교황 권위에 참여함을 상징하는 ‘팔리움’을 받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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