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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해·소통’… 교황 리더십 실천하는 지자체

    ‘화해·소통’… 교황 리더십 실천하는 지자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계기로 화해와 용서는 물론 권위 의식을 벗어 버리고 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가기를 실천하려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늘고 있다. 천주교 신자인 최명희 강원 강릉시장이 대형 관용차 대신 전기차를 이용키로 하는 등 권위 의식에서 벗어나 보다 낮은 자세를 실천하겠다고 19일 밝혔다. 최 시장은 다음달부터 지역에선 시가 보유한 중소형 전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시에는 현재 중소형 전기차 4대가 있다. 현재 타는 3199㏄급 대형 관용차는 관외 출장이나 의전상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할 방침이다. 최 시장은 또 시가 주최하는 공연 등 각종 공연이나 문화 행사 등에도 공짜 표를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좌석도 미리 마련한 귀빈 관람석이 아닌 일반 객석을 이용하는 등 그동안 관례에 따라 해 온 행위들을 돌아보고 낮은 자세로 시민과 소통하기 위한 세부 실천계획을 마련해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서병수 부산시장도 6·4 지방선거에서 격돌했던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찾아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서 시장은 최근 오 전 장관의 집을 찾은 데 이어 호텔에서 만나 사과 표명과 함께 화해했다. 오 전 장관도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흑색선전에 따른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부산 발전을 위해 협조하기로 했다. 서 시장과 오 전 장관은 이날 오전에도 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만나 다시 한번 화해의 포옹을 나누고 기자회견에서 그동안의 모든 앙금을 털어냈다. 서 시장은 “오 전 장관이 시청 방문을 결정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부산 발전이란 대승적인 차원에서 사과를 수용하고 화합으로 화답해 준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오 전 장관도 “서 시장이 집까지 찾아와 먼저 사과하고 화해의 손을 내민 진정성에 선거 과정에서 불거졌던 모든 고소·고발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며 “부산 발전을 위해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밝혔다. 강릉시 관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시민의 공복인 공무원들과 지자체장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권위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실행계획을 마련하려는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가톨릭 문화유산’이라는 개념

    [서동철의 시시콜콜] ‘가톨릭 문화유산’이라는 개념

    ‘불교 문화재’나 ‘불교 문화유산’이라는 표현은 익숙하지만 ‘가톨릭 문화재’나 ‘가톨릭 문화유산’은 왠지 입에 잘 붙지 않는다. 삼국시대에 정착한 불교와 비교해 아무래도 조선 후기에 시작된 가톨릭의 역사가 짧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가 이차돈의 순교 이후 곧바로 불교의 융성기를 맞았듯, 가톨릭도 짧지 않은 금압의 시대를 견뎌낸 이후 교세 확장은 눈부셨다. 그럴수록 가톨릭의 정신 유산은 매우 풍부함에도 문화재라고 부를 수 있는 물질 유산은 흔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공유해야 할 유산이라기보다 종교 내부의 유산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된 가톨릭 성당은 모두 7곳에 이른다. 서울의 명동성당, 약현성당, 예수성심성당, 인천 답동성당, 대구 계산동성당, 전북의 전주 전동성당과 익산 나바위성당이 그것이다. 또 경기 안성 구포동성당 등이 시·도 기념물로, 충북 옥천성당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사적과 시·도 기념물,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가톨릭 성당 및 부속시설이 전국적으로 50곳을 넘으니 적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번듯한 건축물이 아닌 가톨릭 유적은 상황이 다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6일 시복미사를 갖기 직전에 찾은 서소문 성지는 여전히 가톨릭 교인들만의 성지다. 이 같은 상황은 새남터 성지도 마찬가지다. 배교를 거부한 천주교도의 집단 처형지라는 사실만으로도 두 곳을 국가지정문화재로 보호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더구나 천주교 신자들만 처형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공식 사형장이었다는 역사적 의미도 크다. 교황이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한 충남 서산 해미읍성은 사적이기는 하지만, 1963년 지정 당시에는 국방유적으로서의 중요성만 부각됐을 뿐이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로 역시 교황이 방문해 위상이 더욱 높아진 당진의 솔뫼성지도 아직은 충청남도 기념물일 뿐이다. 품위있게 단장하고 정성스럽게 보호한 문화유산은 당연히 가톨릭의 미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아가 이 시대의 미의식을 충실히 반영해 건축하고 제작한 성소(聖所)와 성물(聖物)은 오늘날 불교 문화유산이 그렇듯 미래 한국의 중요한 문화 자산으로 부각될 것이다. 이런 인식을 일깨웠다는 점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뜻깊다. 중요한 가톨릭 문화유산만이라도 서둘러 국가지정문화재급으로 보호의 격(格)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교황 방한 이후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성지의 난개발을 막을 수 있다.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아디오스! 프란치스코] “지도자라면 어떤 태도로 국민들 아픔 대처해야 할지 보여줘”

    [아디오스! 프란치스코] “지도자라면 어떤 태도로 국민들 아픔 대처해야 할지 보여줘”

    낮은 곳에서 상처받고 눈물 흘리고 있는 이들을 기꺼이 보듬어 준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한국을 떠났다.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은 방한 기간 내내 우리 사회에 충격에 가까운 파장을 일으켰다. 자기만의 성벽에 갇혀 국민들의 삶과 떨어져 지내는 종교계는 물론 세월호 사건의 진실 규명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는 정치권, 그리고 신자유주의 성장의 덫에 빠져 더불어 사는 법을 잊어버린 사회 전반에 구체적인 실천의 과제를 던졌다. 각계에서 교황이 남긴 메시지를 곱씹으며 스스로 성찰하고 혁신하지 않는다면 교황에게 보낸 4박 5일간의 국민적 열광과 환호는 한낱 무의미한 거품으로 사그라질 수도 있다.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교황 방한의 성과 및 부문별로 남겨진 과제를 짚어 본다. ■김영주 KNCC 총무 “사회적 갈등·불의에 맞설 종교인의 역할 제시” →오늘 오전 명동성당에서 교황을 직접 만났다. 어땠나. -많은 말씀을 들었다. 기회가 되면 북쪽도 방문해서 한반도에 평화통일 기운이 더욱 북돋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렸다. 확답을 주실 수 없는 부탁이었다. 대신 늘 기도하고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한국 개신교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교황 방한을 보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동안 우리가 흔히 갖고 있던 천주교 교황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말석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다. 종교인이 서야 할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지 직접 몸으로 보여 줬다. 거기는 사회적 약자,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자리다. 권위를 스스로 내세우지 않고,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실천하고 행동해야 함을 알려 줬다. 종교인은 세상의 불의와 맞설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갈등이 있는 곳에서 화해도 시켜야 한다. 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 참 많음을 새삼 느꼈다. →한국 사회에 구체적으로 어떤 울림이 있었나.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전’과 ‘세월호 후’로 나뉜다고. 무한성장, 무한경쟁, 이익 중심 등의 가치가 우리 세상을 지배했고 세월호 참사로 무너졌다. 사람의 가치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교황께서는 그 지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유족들을 가까이 챙겨 위로했다. →우리 종교인의 구체적 역할은 무엇일까. -교황께서는 한국 땅에 왔다 간 것만으로도 그분의 역할을 다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이 남긴 언어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이고, 우리 사회에 남겨진 실천적 과제는 무엇인지 종교인들을 비롯해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 나가야 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이호중 서강대 로스쿨 교수 “복지부동 정부·지도자 향해 비판 목소리 계기” →교황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교황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해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교황이 세월호와 관련해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그저 위로와 격려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교황의 모습과 견줘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세월호와 같은 사안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기본적인 의무다. 그런 의무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정부의 모습은 교황의 모습과 대비된다. 지도자라면 어떤 태도로 국민들의 아픔에 대처해야 하는지 교황이 모범을 보여 줬다. 교황의 방한은 복지부동하는 정부와 지도자를 향해 국민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계기이기도 했다. →교황의 방한이 세월호 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을까. -교황은 유족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는 정부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반드시 그래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 심지어 야당도 가슴을 열고 유족들과 대화를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늦게나마 정치권이 반성하고 유족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특별법 제정과 진상 규명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을 찾은 교황으로부터 한국 사회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세월호와 같은 사안에서 정부, 지도자부터 시민 개개인까지 사회 전체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태도가 변화해야 함은 물론 자본도 변해야 한다. 자본의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황의 메시지처럼 기업과 자본은 무분별한 이윤 추구에 매몰돼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지 말아야 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 “종교·경제적 언어로 사회적 문제 해법 짚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치·경제 관련 발언은 꽤 낯설었다. -그동안 종교인들의 정치 관련 발언은 물에 물 탄 듯 추상적으로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황이 때로는 종교의 언어로, 때로는 경제학 용어로 연대, 더불어 사는 삶 등의 가치를 담은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양극화 반대의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교황이 얘기한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킬까. -외환위기 이후 시장 중심 경제 체제, 시장만능주의가 만연했다. 시장만능주의가 뭔가. 각자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팔아서 먹고사는 형태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시장에서 팔 것이 없는 사람은 굶어 죽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한국 사회의 경제 시스템이 이렇게 굴러갔다. 교황은 이것을 통렬히 지적한 것이다. →구체적인 의미를 꼽는다면. -교황은 방한 이후 세월호를 주목했다. 세월호는 분열과 양극화, 무한경쟁, 시장만능 등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다. 그리고 정치권의 외면을 받고 있다. 교황은 사회적 분열, 정치적 분열의 기저에 바로 경제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 줬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의 어떤 정치적 지도자들도 하지 못한 일을 외국의 종교지도자가 해낸 셈이다. →교황의 방한이 이러한 비인간적 경제모델의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번 교황 방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많이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교황이 얘기하는 비인간적 경제모델의 가장 전형적 모습이 과거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얘기했던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다. 다행히도 직전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얘기했지만 인수위에서부터 슬그머니 폐기하고, 과거 ‘줄·푸·세’로 돌아간 분위기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교황이 얘기한 메시지를 강한 의지로 실천했다면, 그러다가 장벽에 부닥쳤다면 국민들이 환호하며 지지하고 엄호했을 것이다.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아디오스! 프란치스코] 빗속 시민들 “힘든 때 선물처럼 내리셨다”

    [아디오스! 프란치스코] 빗속 시민들 “힘든 때 선물처럼 내리셨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가톨릭회관 앞마당. 인근 명동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초대받지 못한 시민 1000여명은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흩어질 줄 몰랐다. 오전 9시 45분 미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지만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톨릭회관 앞마당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보며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1950년대 이승만 정권 반대 투쟁을 시작으로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지이자 인권 보호를 위한 마지막 보루,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위한 성소로 자리매김한 명동성당은 종교적으로는 서울 대교구 주교좌로 한국 천주교회의 심장이다. 방한 내내 낮은 곳으로 임해 국민에게 큰 감동을 안겼던 교황이 평화와 화해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인 셈이다. 명동성당 바깥에는 미사에 초대받지 못한 시민들이 아침 일찍부터 모여들었다. 교황의 마지막 공식 일정인 만큼 먼발치에서라도 보기 위한 염원을 저마다 가슴에 안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오전 11시 45분쯤 미사를 마친 교황이 검은색 쏘울 승용차에 올라타 명동성당 앞 도로를 지나자 여기저기에서 “비바! 프란치스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 교황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밖에서 미사를 함께 한 심종숙(47·여)씨는 “로마에서도 보기 어려운 교황의 모습을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었던 것은 신도들에게는 큰 선물”이라며 “아침부터 비를 많이 맞았지만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오전 8시부터 교황을 기다렸다는 오연숙(58·여)씨는 “빈부 문제나 청년 실업, 세대 갈등 등 한국이 어려움을 겪는 시점에 방한한 교황이 정신적 지도자로서 큰 감동을 주셨다. 마지막 모습까지 지켜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자원봉사를 한 신자 장지을(30)씨는 “교황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 보람됐다”고 밝혔다. 교황이 명동성당을 떠난 뒤에도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로 붐볐다.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김성원(49)씨는 “민주화 성지인 명동성당을 교황님이 찾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면서 “방한 중 찾은 곳 하나하나에 모두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미사 직후 오직예수선교단 등 10여명이 ‘로마 교황은 적그리스도’ ‘마리아 성령의 승천이 가까웠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 등을 들고 교황을 비방하다가 주변 시민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교황 출국 전세기 안에서 “세월호 유족 고통 앞에서 중립 지킬 수 없었다”

    교황 출국 전세기 안에서 “세월호 유족 고통 앞에서 중립 지킬 수 없었다”

    ‘교황 출국’ ‘교황 세월호 유족’ ‘교황 전세기’ 교황 출국 전세기 안에서 세월호 유족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세월호 유족에 깊은 관심을 보인 이유를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현지시간)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교황은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교황은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는 방한 기간 내내 노란 세월호 리본을 착용한 채 미사 등 각종 행사에 나섰다. 앞서 교황은 지난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직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서 세월호 추모의 의미가 담긴 노란 리본을 선물 받았다. 이날 귀국 길 기자회견에도 세월호 리본은 교황의 왼쪽 가슴에 그대로 달려 있었다. 교황은 이번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유가족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였다. 지난 14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마중 나온 세월호 유족 4명의 손을 잡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도 세월호 생존 학생과 유가족 등 30여 명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자 차에서 내려 이들의 손을 잡아줬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 전 제의실 앞에서 이들 중 10명을 만난 교황은 일일이 얘기를 들어주고 미사 삼종기도 때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 대재난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고 말했다. 16일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 집전에 앞서 광화문 광장에서 카퍼레이드한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 400여 명이 모여 있는 광화문 광장 끝에 다다르자 차를 멈추게 한 뒤 내려 이들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줬다. 교황은 딸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씨의 두 손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고, 김씨가 건네는 노란 봉투에 담긴 편지를 직접 자신의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교황은 방한 나흘째인 17일에는 주한교황청대사관에서 세월호 사고로 숨진 안산 단원고 학생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에게 세례를 줬다. 교황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간적인 고통 앞에 서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면서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정치적인 이유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희생자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를 생각하면 그 고통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라면서 “내 위로의 말이 죽은 이들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없지만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면서 우리는 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추기경이었던 때 발생했던 대형 참사를 예로 들면서 “당시 나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면서 “고통과 슬픔의 순간에 다가서면 정말 많이 돕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교황의 방한 결산 인터뷰는 한 시간 동안 이탈리아어로 진행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 손가락 축복’ 아기 입에 손가락 갖다대더니…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위로 편지·묵주 전달

    ‘교황 손가락 축복’ 아기 입에 손가락 갖다대더니…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위로 편지·묵주 전달

    ‘교황 손가락’ ‘교황 출국’ 교황 손가락 장면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충북 음성 꽃동네 희망의 집을 방문해 장애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교황은 장애인 한명 한명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강당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라는 꽃동네 측의 거듭된 권유에도 의자에 앉지 않은 교황은 장애아동이 건넨 화환을 목에 건 채 따뜻한 눈길로 이들을 둘러봤다. 노래와 율동을 선물한 아이들의 공연을 끝까지 서서 관람한 뒤 “교황님 사랑합니다”라는 아이들의 외침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화답했다. 뒤이어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들을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황은 아기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한 명 한 명 이마에 축복의 키스를 하던 도중에 한 아기가 눈앞에 교황이 얼굴을 들이대도 딴 곳을 응시한 채 조그만 자신의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아기의 무뚝뚝한 반응에 주변 사람들이 살짝 당황하고 있던 가운데 교황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재치를 발휘했다. 자신의 손가락을 아기의 입에 갖다 댄 것. 그러자 아기는 그제야 교황을 의식한 듯 교황을 바라보며 교황의 손가락을 마치 엄마의 손가락인 양 빨았다. 교황 손가락을 잡고 입으로 빨려고 놓지 않는 아기를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잠시 그대로 지켜보던 교황은 손가락을 뺀 뒤에도 침 묻은 손가락을 닦지도 않은 채 한동안 아기를 바라봤다. 이 같은 교황의 돌발 행동은 엄마 없이 자란 아기를 위로하고 축복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풀이되며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 밖에도 교황은 장애아동들의 공연에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기도 했다. 두 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김인자(74)씨가 발가락으로 접은 종이학과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는 여성 장애인이 한땀 한땀 떠서 만든 자수 초상화를 선물 받고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교황은 앞서 희망의 집 안내를 맡은 수녀와 수사 신부가 건물 입구에서 무릎을 꿇자 일어나라고 손짓을 한 뒤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교황은 앞서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유가족 400여명이 모인 곳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려 김유민양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47)씨의 두 손을 맞잡고 아픔을 달랬다. 또 가족 시신을 찾지 못해 진도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 편지와 묵주를 선물했다. 교황은 17일 세월호 희생자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 세례식에 배석한 천주교 수원교구 안산대리구장 김건태 신부에게 “실종자 가족에게 전해달라”며 ‘프란치스코’라는 자필 서명이 담긴 한글 편지와 묵주 10개를 전달했다. 교황은 편지에서 10명의 실종자 이름을 한 명씩 모두 열거하고 이들이 부모와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교황은 편지에 서명한 뒤 김 신부의 손을 꼭 잡고 “위로의 마음을 꼭 전달해 달라”며 간곡히 당부했다고 김 신부는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오후 12시 50분쯤 4박 5일간의 한국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서 대한항공 편으로 출국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이 남긴 화해와 평화… 응답하라, 대한민국

    교황이 남긴 화해와 평화… 응답하라, 대한민국

    “이해하고 용서하라.” 지난 4박 5일간 대한민국을 감동으로 물결치게 했던 ‘가난한 자의 벗’ 프란치스코 교황. 때로는 환하게 웃고 때로는 준엄한 얼굴로 꾸짖었던 그의 으뜸 메시지는 역시 화해와 평화였다. 출국 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의 미사는 그 절정의 울림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오전 명동성당에서 마지막 공식 일정인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교황은 휴가를 반납한 채 아시아의 청년들을 보기 위해 지난 14일 한국에 왔다. 4박 5일간 무려 1000㎞의 거리를 이동하며 치른 행사만도 20여개나 된다. 젊은이들을 위해 깨어 있으라고 격려하고 사제들을 향해서는 각성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는 누구도 주지 못했던 위로를 안겼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온정을 나눠 줬다. 거리로 나가라고 사제들의 등을 떠미는 낮은 사목은 가는 곳마다 실천의 증거로 화제가 됐다. “교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가난한 자를 잊는 경향이 있다”는 일갈은 교회와 사제들이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지 깨우쳐 줬다. ‘가난한 자를 잊지 말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난한 사목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소탈과 겸손이었다. 서울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은 순간부터 줄곧 작은 차를 타고 이동한 것이나 손수 들고 다닌 검은 가방, 그리고 광화문 시복식 때 애써 낮춰 세운 제대도 소탈과 겸손의 방증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비바 프란치스코’라는 환호가 뒤따랐다. 고통받는 자를 지나치지 않고 손잡아 주는, 묵묵하고도 진한 사랑의 메시지는 한국 천주교 1번지 명동성당에서 마지막 날 빛을 발했다. “길은 결코 혼자 가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라는 동행의 아름다움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권유했고, 평화와 화해의 실천을 촉구했다. 남북이 갈라졌어도 같은 형제를 거듭 이해하고 용서하라고 말했다. ‘비바 프란치스코’의 울림은 이제 우리 사회와 한국 교회가 떠안아야 할 숙제가 됐다. 명동성당에서 마지막 일정을 큰 울림으로 마무리한 교황은 단출한 환영식을 끝으로 오후 1시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아디오스! 프란치스코] “형제가 죄 지으면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 남북 화해 메시지

    [아디오스! 프란치스코] “형제가 죄 지으면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 남북 화해 메시지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출국 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는 교황 방한의 마지막 공식 행사이자 교황의 메시지가 결집된 자리였다. 교황 방한 전부터 나라 안팎의 큰 관심이 쏠린 미사였다. 교황이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실제로 교황은 미사 강론 중 “저의 방문은 이 미사 집전을 통해 정점에 이르게 된다”고 밝혔다. 관심이 쏠렸던 주변국 중국, 일본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대신 형제끼리의 용서와 화해를 거듭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별렀던 것처럼 평화와 화해를 또렷이 주문했다. 그 메시지는 반목 대신 대화에 치중됐으며 화해의 지름길은 형제들을 남김 없이 용서하라는 것으로 집약된다. 교황은 미사 강론을 통해 “주님은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이나 용서해 줘야 하느냐’고 베드로가 묻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이 말씀은 화해와 평화에 관한 예수님 메시지의 깊은 핵심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만일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해 정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게 하는 문임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신다. 우리의 형제들을 남김 없이 용서하라는 명령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근원적인 무언가를 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은총도 우리에게 주신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로 이것이 제가 한국 방문을 마치며 여러분에게 남기는 메시지”라면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고, 화해시키는 은총을 여러분의 마음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은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당부에 그치지 않고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 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미사는 평일 미사 형식으로 진행됐다. 소외된 이웃 1000명과 그들을 위해 일하는 700명이 초청돼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낮은 사목을 그대로 보여줬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7명과 새터민 5명, 납북자 가족 5명, 경남 밀양과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해 미사를 지켜봤으며 교황이 퇴장할 무렵 다가와 감사 인사를 건네자 화답했다. 교황과 휠체어를 타고 입장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만남은 특히 큰 관심을 모았다. 종교 지도자들과 만난 뒤 지팡이를 들고 입장하던 교황은 맨 앞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7명을 발견하자 발걸음을 멈추고 허리 굽혀 일일이 할머니들의 손을 잡았다. 김복동(89)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돼 자유롭게 날기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은 노랑나비 배지를 교황에게 건넸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흰색 제의에 배지를 단 교황은 미사 내내 배지를 달고 있었다. 교황에게 묵주를 받고 사진과 함께 일왕도 사죄하라는 문구가 적힌 명함을 전했다는 이용수(87) 할머니는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평화적 해결에 나서도록 교황님께서 도와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교황방한위원회 위원장 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마감 브리핑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종(교황)은 며칠 안 계셨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평화를 간절히 소망하시며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못 박으셨다”며 “우리 사회가 교황의 마음을 본받아 계층 간 반목과 대립을 극복하고 연민과 존중의 사회로 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교황 방문·순교지 코스 관광상품화 추진

    충북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음성 꽃동네를 활용한 관광상품 개발에 나선다. 충북도는 도내에 있는 천주교 박해 순교지인 제천 배론성지, 진천 배티성지, 1896년 설립된 음성 매괴성당 등과 꽃동네를 둘러보는 1박 2일짜리 관광상품을 개발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도는 조만간 종교전문 여행사들을 초청해 개발안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도는 또 한국관광공사 필리핀 지사와 손을 잡고 현지에서 판매하는 서울과 충북 지역 천주교 성지를 방문하는 4박 5일짜리 관광상품에 꽃동네 일정을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김진석 도 관광산업팀장은 “천주교 성지가 많은 충북에 교황까지 다녀가면서 충북이 성지순례 명소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도는 천주교 청주교구, 꽃동네와 협의해 교황이 꽃동네에서 2시간 30분 동안 머물면서 다녔던 길을 꾸미고 기념비 등을 만들어 명소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음성군은 반기문 유엔사무 총장 생가와 꽃동네를 함께 둘러보는 관광상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원남면에 있는 반 총장 생가는 맹동면 꽃동네에서 차로 20분이면 간다. 반 총장 생가는 연간 10만여명이 방문하고 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교황이 남긴 메시지, ’평화와 치유’

    교황이 남긴 메시지, ’평화와 치유’

    짧다면 짧은 4박 5일의 방한 기간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사회에 보여 준 말과 행동이 남긴 반향은 끝이 없다. 지난 14일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교황은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는 말을 시작으로 방한 내내 평화와 화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평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 준 성품대로 수차례 세월호 유족과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을 만나 따뜻한 손길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아기들에게는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환하게 웃으며 입을 맞추고 축복을 빌어줬고, 급속한 성장으로 혼란을 겪는 젊은이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고 북돋워주면서 동시에 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경계했다. ◇ “평화는 ‘정의의 결과’” 공식 방한 목적은 사목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입국 순간부터 한반도의 평화를 언급하면서 아시아 첫 방문지이자 즉위 후 세 번째 해외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를 분명히 했다. 교황은 방한 첫날 청와대에서 한 연설을 통해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며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또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바탕을 둔다”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한 면담에서는 “한반도는 점차 하나가 될 것이므로 이를 위해 기도하겠다”고도 했다. 교황은 15일 아시아청년대회에서 즉흥 연설을 통해 “한 가족이 둘로 나뉜 건 큰 고통이지만 한국은 하나라는 아름다운 희망이 있다”며 “그중 가장 큰 희망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한 형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남북한이 서로 진심 어린 대화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주님은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이나 용서해줘야 하냐’고 베드로가 묻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죄 지은 형제들을 아무런 남김없이 용서하라”고 조언했다. 방한 기간 교황의 평화를 향한 메시지는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교황은 방한길에 중국 영공을 지나면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인에 대해 축복 메시지를 전한 데 이어 17일 아시아주교단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는 “아직 교황청과 완전한 관계를 맺지 않는 아시아 대륙의 몇몇 국가들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주저 없이 대화를 추진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연설에서 직접 국가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뿐 아니라 북한,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등 교황청과 관계를 맺지 않은 아시아 다른 국가를 포괄하며 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기원한 것이다. ◇ 교황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 프란치스코 교황은 100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 움직이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네 차례에 걸쳐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 이들의 아픔을 달래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한 첫날 성남 서울공항에서 마중나온 세월호 유가족 4명을 소개받고는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며 이들의 아픔에 공감했다.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러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하다 세월호 유가족 30여명이 모인 곳을 지나자 차에서 내린 교황은 울먹이는 이들의 손을 잡아줬으며, 미사 전 제의실 앞에서도 생존학생 2명과 유가족 8명을 만나 이들의 얘기를 경청했다. 앞서 세월호 유가족 등으로 구성된 도보순례단이 전달한 ‘세월호 십자가’는 직접 로마에 가져가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날 미사 삼종기도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 대재난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고 말했다. 당초 명단에는 없었지만 세월호 유가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의 시복식에 유가족 400여명이 함께 하기도 했다. 교황은 시복식 미사에 앞서 광화문 광장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다 세월호 유가족이 모인 곳에 다다르자 차에서 내려 이들에게 다가갔다. 이 역시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딸 김유민양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씨의 두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쥔 교황은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세월호를 절대 잊지 말아달라”는 김씨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씨가 건넨 노란 봉투에 담긴 편지를 직접 자신의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17일에는 세월호 사고로 숨진 안산 단원고 학생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에게 직접 세례를 줬다. 이씨의 세례명은 교황과 똑같은 프란치스코다. 교황은 세례식을 마친 뒤 배석한 수원교구 김건태 신부를 통해 가족의 시신을 찾지 못해 진도 팽목항에 머무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에게 위로 편지와 묵주를 전달했다. 교황은 자필로 직접 서명한 한글 편지에서 “직접 찾아뵙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10명의 실종자 이름도 한 명씩 모두 열거하고 이들이 부모와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가 담긴 ‘노란 리본’은 세월호 유가족이 ‘노란 리본’을 전달한 순간부터 교황이 한국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내 교황의 왼쪽 가슴에 달려 있었다. ◇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벗’ 인간적이고 따뜻한 모습은 방한 기간 내내 모두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낮고 겸손한 자세로 임하는 소탈한 모습은 사회의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췄다. 첫날 성남 서울공항에서 교황을 맞이한 환영단이 세월호 사고 희생자 유가족과 새터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고 상처받은 ‘보통 사람들’로 꾸려진 것을 시작으로 교황의 소탈한 행보는 계속 됐다. 16일 충북 음성군 꽃동네를 방문한 교황은 장애인과 함께하는 50여 분의 시간 내내 의자에 앉지 않았다. 올해 78세로 고령인데다 빡빡한 일정 탓에 지칠 법한데도 전혀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 대신 인자하고 따뜻한 눈길로 그 자리에 참석한 장애인 한명 한명을 바라봤다. 다소 서툴지만 성심을 다해 율동 공연을 준비한 장애 아동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보이고 품 안에 꼭 껴안아줬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그리는 이들에게는 같이 두 팔로 하트 모양을 그려 화답하기도 했다. 손가락을 빨고 있던 갓난아기의 입에는 한동안 자신의 손가락을 대신 물려 주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교황의 모습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지체됐지만 교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앉아있거나 침대에 누워 있는 장애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일일이 어루만지고 축복을 빌어줬다. 아이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교황은 카퍼레이드 도중 아이들만 보이면 차를 멈추게 한 뒤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거나 이마와 볼에 입을 맞추며 강복했다. 그러다 깜짝 놀라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머금기도 했다. 교황의 경호원들은 본업인 경호보다 아이들을 발견해 재빨리 교황에게 데려오고 도로 부모에게 데려다 주는 ‘부업’을 하느라 바빴다. 교황은 방한 내내 교황의 상징인 금제 십자가 목걸이 대신 20년간 착용해 온 낡은 철제 십자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낡은 검은색 구두도 그대로였다. 이동 중에는 한손에 직접 자신의 검은색 가방을 들었다. 방탄 차량 대신 국산 소형차 ‘쏘울’을 의전 차량으로 택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자 지붕이 없는 무개차(오픈카)를 이용했다. ◇ “젊은이여 깨어나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의 주목적이었던 아시아청년대회에 두 차례 참석해 아시아청년들을 만났다. 평소 젊은이에 대한 관심이 많은 교황은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에서 성경 시편 구절을 인용해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특히 청년대회 참석자들을 ‘사랑하는 젊은 친구 여러분’으로 부르며 젊은이들이 교회와 사회의 미래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그들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앞서 15일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아시아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연설문을 읽던 중 갑자기 말을 멈추고 영어로 “피곤하십니까”라고 물은 뒤 즉흥 연설을 통해 청년들의 고민에 답을 하기도 했다. 일반 신자와 젊은이들에게는 더없이 인자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성직자들과의 만남에서는 원칙을 강조하는 엄격함과 근엄함도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한국 수도자들과 만나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수도자)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친다”며 청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도 생활이 교회와 세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또 17일 아시아 주교단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는 “공감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는 자세로,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다”면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갈수록 극으로 치닫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교황은 방한 첫날 청와대 연설에서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공동선과 진보, 발전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방한 후 처음으로 집전한 첫 대중미사에서는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빈다”며 인간 존엄성을 모독하는 문화를 경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비바 파파’ 외침 속 세월호 유족 손 꼭 잡은 ‘감동 드라마’

    ‘비바 파파’ 외침 속 세월호 유족 손 꼭 잡은 ‘감동 드라마’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역사적인 초기 순교자 124위의 시복식에 앞서 광화문 일대에서 30분간 펼쳐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카퍼레이드는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서소문 순교성지를 참배한 교황이 국산 준중형차에 몸을 싣고 서울광장 끝자락에 도착한 오전 8시 42분, 새벽부터 자리 잡고 앉아 교황을 기다리던 천주교 신자 17만여명과 방호벽 밖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교황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9시 8분, 덮개 없는 흰색 차로 갈아타고 광화문 바로 앞 시복식 제단 쪽으로 차가 움직이자 여기저기서 ‘비바 파파’라는 외침이 퍼져 나갔다. “교황님 고맙습니다.” “환영합니다.” “사랑합니다.”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신자들이 건네는 간절한 인사에 교황은 환한 표정으로 일일이 손을 들어 화답했다. 지척에서 교황의 모습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어대는 휴대전화 물결들 사이로 중간중간 차를 멈춰 교황이 어린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쓰다듬기를 십여 차례 거듭하며 광화문 앞 제단을 지나쳐 세월호 참사 유가족 400명이 모여 있는 광화문광장 끝 자락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무거운 표정으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린 교황이 차에서 내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47)씨의 손을 꼭 잡았다. “교황님,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교황의 손등에 입을 맞춘 김씨가 “저희가 쓴 편지를 드려도 되겠느냐”며 노란색 봉투에 담긴 편지를 보이자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를 받아 주머니에 넣는 교황의 왼쪽 가슴에 보이는 노란 리본 배지. 전날 대전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직전 세월호 참사 유족과 생존 학생들이 잠깐 만나 선물한 그 리본이다. 살짝 비뚤어진 노란 리본을 바로잡으며 건네는 진심 어린 인사에 여기저기의 흐느낌이 얹혀진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뒤로한 채 다시 차에 올라탄 교황. 차에 올라서도 유족들을 한참 쳐다보며 퍼레이드를 이어 간 교황이 제단 앞에 도착해 사제단의 영접을 받은 시간은 9시 38분. 교황은 이날 시복식 내내 그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신답니다… 우리 정치권도 바뀔까요”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신답니다… 우리 정치권도 바뀔까요”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방한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연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 주고 있다. 방한 첫날인 지난 14일 서울공항에 마중 나온 유족들에게 “기억하고 있다”며 위로한 그는 이후 나흘 내내 가슴 한편에 ‘노란 리본’을 달고 참사를 점차 잊어가는 우리 사회에 울림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7일 오전 서울 종로의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56)씨에게 세례성사(천주교 신자가 되는 의식)를 베풀었다. 이씨의 세례명은 교황과 같은 프란치스코로 정해졌고 교황으로부터 단독 세례를 받은 첫 번째 한국인이 됐다. 1989년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청년 12명의 세례를 집전했었다. 교황은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가톨릭 순교자를 성인 전단계인 복자로 추대하는 예식) 때도 세월호 유족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참사로 딸을 잃고 광화문광장에서 34일째 단식 중이던 김영오(47)씨는 이날 교황의 차량이 광장 끝에 다다르자 연방 “파파”(‘교황’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를 외쳤고 교황은 차에서 내려 김씨의 앙상해진 손을 잡았다. 시복식 현장에는 다른 세월호 유족 400명도 자리했다. 김씨는 1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참사 100일이 넘도록 특별법 하나 만들지 못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어 교황님만 기다렸다”면서 “직접 만나서 위로받고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는 말씀을 전하니 내 할 일을 다 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시복식에서 교황에게 ‘세월호 유가족은 가장 가난하고 보잘것없으니 보살펴 주시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도와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건넸다. 김씨는 “교황님 덕에 전 세계에 유족들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게 됐다”면서 “교황의 진심 어린 메시지에 정부가 압박받겠지만 그래도 변화가 없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시복식에 참가해 교황을 만난 고 최윤민양의 아버지 최성룡(62)씨는 “멀리서 온 교황님도 마음을 열고 우리 얘기를 들어주시는데 정작 같은 나라의 높으신 분들은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 문제가 내부적으로 해결 안 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며 한숨지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교황, 北·中과 대화 의지… “관계 개선 희망”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나흘째인 17일 헬기로 충남 서산 해미성지와 해미읍성을 방문해 아시아 주교와 청년들을 잇따라 만나며 숨가쁜 사목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복 미사를 집전하며 한국 순교자 124위를 복자로 선포한 교황은 이날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행사장과 연도에 몰린 천주교 신자들과 시민들에게 변함없이 환한 웃음으로 축복을 전했다. 해미로 내려가기 전 숙소인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경기 안산 단원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57)씨에게 세례성사를 베풀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미성지에서 먼저 한국 천주교 주교단 15명, 아시아 각국 추기경·주교 50명을 만나 공동기도를 하며 교회의 방향과 사목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교황은 특히 연설에서 “아직 교황청과 완전한 관계를 맺지 않은 아시아 대륙의 몇몇 국가들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주저없이 대화를 추진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혀 북한,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교황청 미수교 국가와의 대화 의지를 드러냈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이 발언과 관련해 “교황이 구체적인 국가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교황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과 선의의 대화를 나누고 수교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미읍성으로 이동한 교황은 아시아청년대회 폐막식에 참석해 청년 참가자 6000여명과 아시아 주교단 50명, 일반 시민 4만 5000여명과 격의 없는 만남을 가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종교 지도자들을 잠깐 만난 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3명을 포함한 각계 인사 1500여명이 참석하는 미사에서 아시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교황은 서울공항에서 간단한 환송식을 끝으로 4박 5일간의 한국방문을 마무리하고 오후 1시쯤 로마로 출국할 예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iul.co.kr
  • [사설] 교황의 치유 메시지,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의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오늘 바티칸으로 돌아간다. 그는 방한 기간 동안 가톨릭교회가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만큼 의미 있는 족적(足跡)을 곳곳에 남겼다. 교황은 당초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한 124위 순교자의 시복(諡福)과 제6회 아시아가톨릭청년대회 참석을 방한 이유로 내걸었다. 실제로 17만명의 가톨릭 신자를 포함해 모두 100만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은 뜻깊은 종교적 축제였다. 시복식은 한반도의 국가적 정통성을 이은 대한민국과 가톨릭교회의 해원(解寃)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선포하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도 갖는다. 광화문 일대는 조선시대 병조와 의금부, 포도청이 모여 있던 천주교 탄압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교황은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서 열린 아시아가톨릭청년대회 마지막 날 행사에서도 ‘가톨릭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직접 폐막미사를 집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 가톨릭의 수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한편으로 상처받은 우리 사회를 어루만지면서 던진 메시지는 종교 지도자의 역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메시지는 어떤 종교지도자의 그것과 비교해도 쉽고 명료했다. 지난 15일 아시아가톨릭청년대회의 발언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평화와 우정을 나누며 사는 세상, 장벽을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하며 폭력과 편견을 거부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라고 했다. 또한 ‘나’보다는 ‘우리’, 개인적인 행복보다는 공동체의 행복을 앞세우는 그의 가르침은 어느 종교지도자의 그것보다 구체적이었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떤 종교지도자의 그것보다도 실천을 강조하는 교황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엄청난 물질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빈곤과 외로움, 남모를 절망감에 고통받고 있는 세상에는 하느님의 자리가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이런 현실 인식을 갖고 있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이 전한 노란 리본을 은 방한 일정 내내 왼쪽 가슴에 단 채 아픔을 겪고 있는 희생자 가족을 어루만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우리에겐 결코 작지 않은 과제가 남겨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한 치유의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해 아픔 없는 나라로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그것이다. 교황은 아시아가톨릭청년대회에서 “수녀로서 살 것인지, 공부를 더 해서 다른 사람을 도울 것인지”를 묻는 젊은이에게 “주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기도하다 보면 응답을 주실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대치하고 있는 정치권은 오늘도 교황의 진의가 무엇인지 고심하고 있는 듯하다. 교황은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이 국가적 대재난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정치권의 몫이다. 하지만 정답은 이미 제시돼 있다고 본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양보다.
  • 교황이 탔던 기아車 ‘쏘울’ 어떻게 됐나 보니…

    4박 5일에 걸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두고 경제계 일각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나온다. 교황에게 제공됐던 각 업체의 제품은 ‘교황이 사용했다’는 입소문만으로도 상당한 마케팅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수혜를 입은 곳은 현대·기아차다. ‘가장 작은 한국 차를 이용하고 싶다’는 교황에 바람에 배기량 1600㏄급인 기아차 ‘쏘울’이 전용 차량으로 제공된 데 이어 이후 교황은 이동 과정에서 카니발과 현대차 싼타페 차량을 이용했다. 현대·기아차는 이 밖에 자사 대형버스 등 모두 30여대를 제공했다. 업계는 교황 방문과 관련해 국내 업체들이 상당한 직간접 홍보 효과를 누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교황이 국내 차량을 타고 내리는 모습이 전 세계에 중계돼 ‘교황의 차’라는 상징성까지 갖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교황이 탔던 차를 일단 돌려받기로 한 현대차그룹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현대차그룹은 “차량의 상징성을 고려해 내부적으로 전시하는 방법과 한국 천주교에 기증하는 방법 등을 놓고 고민 중”이라면서 “과거 주요 20개국(G20) 회의 때 각국 정상들에게 제공했던 차량처럼 일반에 판매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음료 역시 생수 브랜드 ‘석수’가 교황 방한 기간 사용되는 공식 물로 선정됐다는 점에서 특수가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음료는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미사에서 무려 22만명 분량(350㎖ 제품 12만병과 18.9ℓ 제품 2000통)의 석수를 제공했다. 당시 광화문 행사에 공식 초대된 인원만 약 17만명에 이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집전하는 미사전례에 사용될 와인을 공급할 롯데주류 역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연구 사례를 통해 교황의 방한에 따른 경제 효과가 5500억원 이상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브라질 관광공사는 지난해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우데자네이루 세계청년대회 참가에 따른 경제 효과가 12억 헤알(5380억원)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교황 손가락 축복’ 무관심한 아기에 교황이 손가락 대자…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위로 편지·묵주 전달

    ‘교황 손가락 축복’ 무관심한 아기에 교황이 손가락 대자…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위로 편지·묵주 전달

    ‘교황 손가락’ ‘교황 출국’ 교황 손가락 장면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충북 음성 꽃동네 희망의 집을 방문해 장애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교황은 장애인 한명 한명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강당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라는 꽃동네 측의 거듭된 권유에도 의자에 앉지 않은 교황은 장애아동이 건넨 화환을 목에 건 채 따뜻한 눈길로 이들을 둘러봤다. 노래와 율동을 선물한 아이들의 공연을 끝까지 서서 관람한 뒤 “교황님 사랑합니다”라는 아이들의 외침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화답했다. 뒤이어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들을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황은 아기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한 명 한 명 이마에 축복의 키스를 하던 도중에 한 아기가 눈앞에 교황이 얼굴을 들이대도 딴 곳을 응시한 채 조그만 자신의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아기의 무뚝뚝한 반응에 주변 사람들이 살짝 당황하고 있던 가운데 교황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재치를 발휘했다. 자신의 손가락을 아기의 입에 갖다 댄 것. 그러자 아기는 그제야 교황을 의식한 듯 교황을 바라보며 교황의 손가락을 마치 엄마의 손가락인 양 빨았다. 교황 손가락을 잡고 입으로 빨려고 놓지 않는 아기를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잠시 그대로 지켜보던 교황은 손가락을 뺀 뒤에도 침 묻은 손가락을 닦지도 않은 채 한동안 아기를 바라봤다. 이 같은 교황의 돌발 행동은 엄마 없이 자란 아기를 위로하고 축복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풀이되며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 밖에도 교황은 장애아동들의 공연에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기도 했다. 두 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김인자(74)씨가 발가락으로 접은 종이학과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는 여성 장애인이 한땀 한땀 떠서 만든 자수 초상화를 선물 받고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교황은 앞서 희망의 집 안내를 맡은 수녀와 수사 신부가 건물 입구에서 무릎을 꿇자 일어나라고 손짓을 한 뒤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교황은 앞서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유가족 400여명이 모인 곳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려 김유민양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47)씨의 두 손을 맞잡고 아픔을 달랬다. 또 가족 시신을 찾지 못해 진도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 편지와 묵주를 선물했다. 교황은 17일 세월호 희생자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 세례식에 배석한 천주교 수원교구 안산대리구장 김건태 신부에게 “실종자 가족에게 전해달라”며 ‘프란치스코’라는 자필 서명이 담긴 한글 편지와 묵주 10개를 전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오후 12시 50분쯤 4박 5일간의 한국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서 대한항공 편으로 출국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현장 블로그] 사람들은 왜 비바 파파를 외쳤을까

    [현장 블로그] 사람들은 왜 비바 파파를 외쳤을까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수십만명이 몰렸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를 복자로 추대하는 시복식을 거행했기 때문입니다. ‘베로니카’라는 세례명의 가톨릭 신자인 저는 취재 기자가 아닌 17만명의 신자 중 한명으로 시복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정해진 인원만 참석할 수 있었기에 주변에서는 부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사실 야외 시복식은 맨바닥에 앉아 한여름 뙤약볕을 온몸으로 견디며 한나절을 보내야 하는 고생스러운 행사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먼발치에서라도 교황을 보겠다며 밤새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일반 시민도 광화문과 시청 인근에 모여들었습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며 교황을 찾아왔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방한은 천주교인은 물론 우리 국민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교황이 이례적으로 한국을 직접 방문해 순교자 124위를 복자로 인정하면서 선교사 없이 자생적으로 뿌리내린 우리 천주교의 자부심을 다시 한번 되새겼습니다. 어렵게 터 잡은 한국 천주교는 어두운 근현대사에서 민주주의에 앞장서며 사회 정의를 밝히는 횃불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종교가 일상생활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신자 수가 늘어나는 동시에 냉담자도 조금씩 늘어났지요. 종교가 세속화 논란에 휩싸이고, 종교인이 비리에 연루되는 등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요. 이런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종교인들이 잊고 지냈던 ‘종교 본연의 책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말한 교황은 작은 차를 타고 작은 방을 선호하며 노숙인들을 불러 함께 식사를 하는 등 낮은 데로 임하는 자세를 몸소 보여줬습니다.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 행사 때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꼭 잡는 모습을 보며 많은 신자들은 저절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벌어진 단식 농성이 30일을 넘어가면서 “교황님이 오시는데 어떡하나” 하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교황은 이들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았습니다. 한 유가족은 “처음으로 존중받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복미사 강론에서 “막대한 부요함 속에서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순교자들의 삶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형제 자매들을 도움으로써 당신을 사랑하라고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에 무관심하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크게 다가옵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한복 차림 성모상·4괘 새긴 의자… 한국색 물씬

    한복 차림 성모상·4괘 새긴 의자… 한국색 물씬

    지난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124위 시복미사에서는 한복 차림의 성모마리아상과 4괘가 새겨진 의자, 무궁화가 그려진 걸개그림 등 한국색을 가득 담은 상징물들이 곳곳에서 눈길을 끌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한복 차림의 성모마리아상이다. 한복을 입고 비녀를 꽂은 성모가 복건을 쓴 아기 예수를 안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다. 정식 명칭은 ‘한국 사도의 모후상’이다.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소속으로 임마쿨라타라는 세례명을 쓰는 한 수녀가 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주는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제단 오른쪽에 놓여 시복식 내내 눈길을 끌었다. 교황이 앉은 의자에도 태극 무늬가 숨어 있었다. 시복식에서 교황은 태극기 네 모서리에 그려진 ‘건, 곤, 감, 이’ 4괘를 새긴 의자를 사용했다. 천주교 측은 “건, 곤, 감, 이가 의미하는 하늘, 땅, 물, 불이 모두 하나님의 조화라는 뜻에서 이를 새겨 넣었다”고 밝혔다. 교황을 비롯한 주교단이 입던 제의에도 한국적 아름다움이 담겼다. 제의 속 십자가는 모두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표현됐는데 이는 고통의 십자가가 아닌 영광과 찬미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순교자 124명을 복자로 선포한 순간 공개된 대형 걸개그림은 이날 행사의 백미였다. 수채물감과 연필, 파스텔 재료 등으로 그려진 그림은 순교자들을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든 한국적 모습으로 풀어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순교한 이봉금 복자는 가장 앞에서 무궁화와 백합 꽃다발을 든 모습으로 그려졌고, 어느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뜻에서 원근법을 무시하고 동일한 크기로 표현됐다. 순교자들과 관련된 문헌 자료 등을 바탕으로 가톨릭미술가협회 회원들이 그린 작품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젊은이여, 깨어 있으라… 잠들어 있는 사람은 춤출 수 없다”

    “젊은이여, 깨어 있으라… 잠들어 있는 사람은 춤출 수 없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습니다.” 17일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에서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에서 성경의 시편 구절을 인용해 젊은이들에게 사회 참여를 당부했다. 그는 또 “아시아의 젊은이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고귀한 증언, 위대한 증거의 상속자들”이라며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의 승리에 우리도 동참한다는 확신으로, 이 시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려는 도전에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말했다. 교황은 “여러분은 사회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 시대 문화의 어떤 측면들이 사악하고 타락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지도 알아볼 수 있다”며 항상 깨어 있을 것을 주문했다. 이어 “젊은 시절의 특징인 낙관주의와 선의, 에너지는 여러분의 삶과 문화에서 희망과 사랑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하는 길”이라고 확신을 심어줬다. 특히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언제나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라”며 “주교, 신부들과 함께 외로운 이들, 아픈 이들, 소외된 이들을 찾아 섬기며 사랑하는 교회를 일으켜 달라”고 했다. “우리에게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을 밀쳐 내지 말라”면서 “도움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간청에 연민과 자비와 사랑으로 응답해 주신 그리스도처럼 살라”고도 당부했다. 또 “복음의 기쁨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죄와 유혹, 압력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하면 많은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황은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시작된 폐막 미사에서 강론하면서 “잠자면 안 된다”며 ‘깨어나라’를 수차례 외쳤다. 그럴 때마다 청년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교황은 중간에 둥근 모자인 흰색 ‘주케토’가 바람에 날아갔지만 그대로 강론을 이어 갔다. 이날 폐막 미사가 열린 해미읍성 안에는 청년대회 참가자 등 2만여명이 들어찼고, 읍성에 들어가지 못한 시민 등 2만여명은 해미읍성 앞에 서서 벽에 설치된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으로 미사를 지켜봤다. 내내 비가 내리다 미사 2시간 전부터 멈췄지만 읍성 안이나 밖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들고 있었다. 푸른 기와지붕 모양으로 꾸며진 무대의 반대편 문으로 교황이 무개차를 타고 들어오자 읍성 안 청년대회 참가자들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유 아 마이 라이프’(예수, 당신은 내 인생)라고 합창했다. 환호도 쏟아졌다. 비옷을 입고 교황을 맞은 청년들은 “교황과 같은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교황은 무대까지 가면서 수차례 무개차를 멈춘 뒤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는 등 변함없는 아이 사랑을 보여줬다. 인근 홍성에 사는 개신교 신자 이경주(35·여)씨는 “교황은 종교나 정파를 초월한 분이 아니냐”며 환영했다. 강원 속초에서 온 박형순(75·여)씨는 “교황을 만나려고 인천에 사는 딸과 함께 어제 서산에 왔다”면서 “모든 교황이 훌륭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서민적인 분이라서 더 존경한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에서 일가족 6명이 출동한 천주교 신자 양혜선(49)씨는 “진솔한 교황을 직접 보니 믿음이 더 굳건해진다”면서 “아시아청년대회에 참가한 마카오 청년 2명을 홈스테이하면서 도산서원도 구경시켜 줬다”고 자랑했다. 해미면 시가지 곳곳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우리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와 교황의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내걸려 환영 분위기를 북돋웠다. 해미성지에서 폐막 미사가 열리는 해미읍성까지 교황이 무개차를 타고 1.3㎞ 옮길 때도 길가에 늘어선 신자와 시민들은 박수를 치고 ‘비바 파파’(교황 만세)를 외쳤다. 교황은 앞서 해미성지에서 아시아 주교들과 만남을 가진 뒤 성지 구내식당에서 주교 등과 함께 해미 꽃게찜, 서산낙지어죽, 한우 등심구이와 생강한과 등으로 점심을 했다. 서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서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수십만 인파 새벽부터 집결… 무질서·쓰레기·사고 없는 ‘3無 행사’

    수십만 인파 새벽부터 집결… 무질서·쓰레기·사고 없는 ‘3無 행사’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지난 16일 오전 11시 46분. 사회자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시복미사의 마침을 알리는 성호경을 그었지만 광화문광장 일대를 메운 천주교 신자 17만여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개별적으로 행사장을 찾은 신자와 일반 시민들까지 더해 20만명 넘게 몰렸지만 별다른 불상사 없이 행사가 마무리됐다. “제단 앞 성직자와 장애인들이 먼저 움직이고 이어 지역별 순서대로 퇴장해 달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따라 신자들은 성당별로 깃발과 피켓을 들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교구별로 단체 구매한 지하철 승차권을 가지고 인근 을지로역으로 신속하게 이동했고, 일부는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까지 걸어갔다. 경찰의 안내로 주차돼 있던 관광버스들이 신자들을 태우자 1시간 남짓 만에 주변은 대부분 정리됐다. 질서 정연한 퇴장 뒤 행사장 주위에서는 굴러다니는 휴지 한장 찾아보기 힘들었다. 신자들은 미리 준비한 봉투에 쓰레기를 담았고 뒷정리를 자처하는 훈훈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경찰과 구급대는 곳곳에 설치된 검색대와 구호대를 미사 종료와 함께 곧바로 해체했다. 서울시와 소방당국은 이날 2500명 넘는 환자가 발생했으나 대부분 가벼운 경증 환자라서 현장 응급조치로 해결됐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열린 시복미사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신자들로 이른 새벽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역 등 인근 기차역은 특별열차 편으로 단체 상경한 신자들이 몰려 북적였다. 부산에서 온 신자 최종철(55)씨는 “새벽부터 집을 나섰는데 조금도 힘들지 않다”며 한껏 상기된 표정이었다. 지방에서 온 다른 신자들도 “요즘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이 너무 많아 함께 기도하고 싶어 왔다”고 입을 모았다. 오전 10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고 부르고, 축일을 거행하도록 허락한다”는 교황의 시복 선언과 함께 광화문 일대에는 “와” 하는 탄성이 울려 퍼졌다. 순교자 시복식이 한국에서 처음 열린 것을 기념하는 환호성이기도 했다. 시복식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400여명도 함께 자리해 교황이 전한 평화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시복미사 덕분에 인근 상권은 활황을 맞았다.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시복미사가 열린 광화문 인근 3대 편의점의 매출은 지난주보다 최소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중 GS25의 광화문 6개 점포 매출은 이날 낮까지 지난주 대비 최고 19배까지 치솟았다. 기념품 또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가톨릭 출판사에서 설치한 기념품 판매대에선 교황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비롯해 묵주, 십자가 등이 판매됐다. 한 생수회사는 350㎖ 제품 12만병과 18.9ℓ 제품 2000통을 12곳의 급수대에서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 중 휴대용 생수는 30분 만에 동났다. 한편 이날 시복미사가 열리는 동안 기독교계의 ‘로마가톨릭&교황정체알리기운동연대’와 ‘교황방한대책협의회’는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8·16 기도 대성회’를 열어 교황 방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용어 클릭] ■시복식(諡福式) 가톨릭에서 성덕이 높은 이가 선종(善終)하면 일정 기간 심사를 거쳐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올리는 행사. 통상 선종 뒤 5년의 유예 기간을 갖는다. 생애와 저술, 연설 외에 의학적 판단이 포함된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교황이 최종 승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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