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천장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 4000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 OECD
    2026-06-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672
  • [서울시장 예비후보 24시] 한나라당 나경원… 운동화끈 조이고 市場으로

    [서울시장 예비후보 24시] 한나라당 나경원… 운동화끈 조이고 市場으로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28일 코디는 빨간색 재킷이었다. 열정을 상징하는 붉은색처럼 이날 나 후보는 젊은 층과의 소통에 주력했다. 마침 오전 한나라당 후보자 추천장을 받았고, 보수 성향 시민단체의 지지를 받았던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사실상 범여권 단일 후보로서의 첫 행보가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AM 6:00 신문을 읽으며 뉴스를 챙기는 걸로 시작한 아침. 라디오 인터뷰를 두 개나 진행했다. 나 후보의 아들은 선거 때문에 아침부터 바쁜 엄마에게 ‘사랑합니다’라는 문자를 남겨 응원했다. “왜 빨리 출마 선언을 안 하느냐.”고 매일같이 졸랐던 큰딸은 “엄마가 서울시장이 꼭 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공천장 받고 “희망의 징검다리 되겠다” AM 10:00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공천장을 받았다.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을 가득 메운 500여명의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홍준표 대표는 나 후보에게 ‘선거 필수품’을 선물했다. 열심히 발로 뛰라는 의미의 운동화와 새벽부터 일어나 유권자들을 만나라는 뜻의 알람시계, 현장에서 듣는 민생의 목소리를 놓치지 말고 기록하라는 의미의 수첩이었다. 나 후보는 곧바로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운동화로 갈아 신은 뒤 신발끈을 힘껏 조였다. 홍 대표는 “나 후보야말로 야권 단일화 쇼를 막을 최강의 에이스”라고 했고 황우여 원내대표는 “우리 당의 또 하나의 선거의 여왕”이라고 치켜세웠다. 나 후보는 후보자 수락 연설에서 “절망이 약한 사람에게는 위기가 되고 강한 사람에게는 희망의 징검다리가 된다.”면서 “우리 패배의식, 절망에서 벗어나서 서울을 책임질 사람은 바로 한나라당 나경원이라는 확신을 갖고 앞으로 가자.”고 밝혔다. ●젊은 디자이너 만나 애로사항 메모 PM 2:00 당의 공식 후보가 된 나 후보는 이날 오전 중앙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는 동시에 국회에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나 후보는 오후 중구 지역사무실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당원들에게 “제 마음 아시죠? 안 떠나는 것 아시죠?”라면서 “(선거에서) 이심전심으로 하고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중구는 워낙 많이 해 봤으니 이제 선수가 다 됐죠.”라며 웃음을 지었다. 이어 오후 2시 30분에는 동대문시장 근처의 신당동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를 찾아 창업에 성공한 10명의 젊은 디자이너들과 만났다. 나 후보는 “젊은 분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많이 드리는 게 중요하다.”면서 “대학생들이 희망이 없다고 하면서 취업 걱정을 많이 하는데 창업 기회가 더 많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오전에 홍 대표에게 받았던 수첩에 디자이너들의 애로사항을 꼼꼼히 적었고 의상 제작 현장을 둘러보면서 “성공하세요.”라고 격려했다. ●‘기부천사’ 故김우수씨 빈소 찾아 눈시울 PM 5:00 ‘기부천사’ 중국집 배달원이었던 고(故) 김우수씨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나 후보는 오후 일정을 조정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나 후보는 “좋은 일을 많이 해 주셨던 분인데 마음이 아프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같은 시간 빈소에 온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와도 인사를 나눴다. 이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뉴시스 창립 기념식에 참석한 나 후보는 박원순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마주쳤다. 박 전 상임이사가 출마를 선언한 뒤 첫 만남이다. 나 후보는 박 전 상임이사와 악수를 하며 “처음이라 많이 어려우실 텐데 힘내서 열심히 하시라.”고 격려했다. 저녁에는 중앙대 앞 호프집에서 대학생들과의 깜짝 만남을 가졌다. 대학생들의 고민이 뭔지를 물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사인을 부탁하는 여학생들에게 “꿈을 이루세요.”라고 적어 줬다. 나 후보는 “공천장을 받은 첫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 일정을 택했다.”면서 “대학생들이 더 많은 꿈과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에게 쏟아지는 의혹의 눈길은 ‘자위대 논란’과 ‘사학재단 문제’ 등 크게 두 가지다. 나 후보는 부친이 사학재단(흥신학원) 이사장이어서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 당시 반대했다는 비판을 듣는다. 나 후보는 “당시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개정을 밀어붙일 때 한나라당은 당론으로 반대했으며, 사학법 개정을 다룬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에 속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버지는 1970년대 사학재단을 만들어 교육에 일생을 바친 분인데 딸이 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 때문에 아버지 인생을 폄하하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2004년 7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 자위대 창립 50주년 행사에 참석한 영상이 최근 인터넷에 공개돼 논란이 됐다. 이에 나 후보는 트위터에 “초선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행사 내용을 모른 채 갔다가 뒤늦게 알고 돌아왔다.”고 해명했다. 이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측이 “당시 참석 예정이었던 의원들에게 참석하지 말라고 미리 항의 팩스까지 보냈다.”고 문제를 추가로 제기하자 나 후보는 “하루에 수십 통씩 들어오는 팩스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26일 중증장애인시설에서 불거진 나 후보의 ‘장애아 알몸 목욕’ 논란 기사에 대해서는 “시설 측에서 부른 자원봉사 사진작가가 준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충남 ‘으뜸 관광자원’ 집중 육성

    충남 ‘으뜸 관광자원’ 집중 육성

    충남의 국내외 으뜸 관광자원이 내년부터 관광상품으로 집중 육성된다. 충남도는 최근 도내 16개 시·군으로부터 최고(最高) 8개, 최고(最古) 7개, 최대(最大) 11개, 최장(最長) 4개, 유일(唯一) 13개, 특이자원 12개 등 모두 55개의 국내외 으뜸 관광자원을 접수받았다며 25일 이같이 밝혔다. 도는 심의를 통해 5개를 ‘우선 관광상품 육성대상 자원’으로 선정한 뒤 내년에 1억원을 들여 스토리텔링 및 새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마케팅을 지원해 경쟁력 있는 관광상품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분야별 주요 관광자원] ●최고(最高) ▲서산 해미읍성:원형보존이 가장 잘된 조선시대 병영성곽 ▲부여 백제금동대향로:국내 최고의 금속공예품 ▲태안 천리포수목원:국제수목학회가 인증한 수목원 ▲당진 함상공원:퇴역함정 활용한 동양 최초의 군함 테마파크 ●최고(最古) ▲아산 온양온천:1300년의 왕실온천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가장 오래된 국내 석탑 ▲부여 궁남지:국내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인공정원 ●최장(最長) ▲천안종합휴양관광지:371m의 유수풀 ▲보령 대천해수욕장:길 3.5㎞ 폭 100m의 최장 해수욕장 ▲청양 천장호 출렁다리:길이 207m ▲태안 이원방조제 희망벽화:길이 2㎞의 세계 최장 벽화 ●최대(最大) ▲천안 태조산 각원사:국내 최대 청동좌불상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동양 최대 기와집 ▲서산 천수만 철새도래지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국내 최대 미륵불 ▲금산 군북면:국내 최대 산벚꽃 군락지 ▲청양 칠갑산 천문대:국내 최대 구경 304㎜ 굴절망원경 ▲예산 예당관광지 ●유일(唯一) ▲천안 우정박물관:국내 유일 체신박물관 ▲공주 무령왕릉:삼국시대 유일하게 주인공이 밝혀진 왕릉 ▲연기 교과서박물관 ▲청양 장곡사 ▲예산 한국고건축박물관 ▲당진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국내 유일의 줄다리기 박물관 ●특이자원 ▲보령 냉풍욕장 ▲서산 황금산 코끼리바위 ▲계룡 국제선원 무상사 ▲금산 군북면 연리목:벚나무와 참나무가 합쳐진 나무 ▲서천 조류생태전시관 ▲당진 왜목마을:한 곳에서 일출·일몰 모두 감상
  • [영화프리뷰] ‘어브덕션’

    [영화프리뷰] ‘어브덕션’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한 여인이 고통스럽게 살해당하는 악몽은 잊을 만하면 꿈자리를 적신다. 여러모로 또래와 다른 고교생 네이슨은 학교 과제를 하기 위해 인터넷 실종자 웹사이트에 접속한다. 웬걸, 거기에서 어린 시절 자신과 꼭 닮은 실종아동 사진을 발견한다. 같이 사는 이들이 친부모가 아니라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던 어느 밤, 의문의 사내들이 들이닥친다. 부모는 몰살당하고, 폭탄에 의해 집은 산산조각난다. 정체불명의 킬러들과 CIA의 추격을 동시에 받게 된 네이슨은 여자친구 캐런과 함께 필살의 탈출을 시도한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시도 때도 없이 웃옷을 벗어젖히던 몸짱 늑대소년 테일러 로트너(왼쪽)가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어브덕션’으로 찾아온다. 1992년생 로트너는 지난해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마지막 편 ‘브레이킹 던-1, 2부’와 ‘어브덕션’ 등 3편의 영화를 계약하면서 3350만 달러(약 386억원)를 벌었다. 할리우드 10대 스타 중 소득 1위. 그만큼 티켓 파워를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톰 크루즈와 맷 데이먼을 잇는 차세대 액션스타를 꿈꾸는 로트너는 가공할 운동 능력을 뽐낸다. 특수효과에 의지하지 않고 허들 선수처럼 장애물을 폴짝 뛰어넘고, 급경사의 유리천장을 훑고 다이빙을 한다. 고교생인 만큼 테크닉은 덜 영글었지만, 조각 몸매에서 뿜어내는 파워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캐런 역의 릴리 콜린스도 두고 볼 기대주다. 팝스타 필 콜린스의 딸이란 이유로 먼저 주목받았지만, 연기력 못지않은 외모로 아버지의 그늘이 필요 없음을 증명했다. 이른바 ‘다양성 영화’를 지향하는 필라멘트픽처스가 배급한 이 영화의 문제는 너무 뻔하고, 많이 본 이야기란 점. 네이슨이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채기까지의 50분 안팎은 심심하다. 이후 55분, 액션은 그럴듯한데 예측 가능한 장면과 반전 같지 않은 반전의 연속이다. 기관에 의해 조작된 개인의 삶, 기억을 잃은 특수요원의 반격 등은 ‘본 시리즈’ 등을 통해 충분히 봤다. 1991년 ‘보이즈 앤 후드’를 통해 최연소(당시 23세)로 아카데미영화제 감독상 후보로 올랐던 존 싱글턴 감독이기에 더 실망스럽다. 로트너의 팬이라면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작품인 만큼 ‘애교’로 볼 여지는 있다. 마지막에 네이슨은 여자친구에게 “첫 데이트치고는 스릴 넘치지 않았어?”라고 묻는다. ‘첫 데이트치고는’에 방점을 찍고 들어달라는 뉘앙스로 들린다. 29일 개봉.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사건 Inside](1) 밀폐공간에세 발견된 3구의 시신, 메모장에는…

    [사건 Inside](1) 밀폐공간에세 발견된 3구의 시신, 메모장에는…

     아파트 단지 지하실에서 남자 3명이 죽은 채 발견됐다. 2명은 날카로운 흉기에 찔리고, 다른 1명은 목을 맨 상태였다. 단지 주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한달 전 일어난 ‘울산 아파트 지하실 살인사건’은 폐쇄된 근무환경과 동료간 불신이 만들어낸 허무한 참사였다.    ●밀폐된 공간에서 나온 3구의 시신, 이들의 관계는?  지난달 20일 오전 8시 40분.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 비상발전실에 이곳 설비기사 A(46)씨가 출근했다. 3인 3교대로 24시간씩 돌아가는 순환근무에서 이날은 A씨의 근무 차례였다. 그러나 A씨는 이날 일을 하러 나온 게 아니었다. 앞서 근무를 마치고 맞교대자인 A씨를 기다리고 있던 B(65)씨를 보자 그는 다짜고짜 칼을 꺼내들었다. 이어 B씨의 목과 배 등을 무참히 찔러 살해했다. 범행 후 A씨는 B씨의 시신이 있는 비상발전실 문을 걸어잠근 뒤 태연히 근무를 했다.  A씨는 다음날 아침에도 전날과 같은 방법으로 출근한 C(56)씨를 살해했다. 이틀에 걸쳐 동료 2명의 목숨을 빼앗은 A씨는 발전실 천장 배관에 목을 매 자살했다.  3명의 시신은 22일 아침조회에 C씨가 안 나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일단 겉으로만 보면 누가 누구를 살해하고 자살을 했는지가 분명했다. 직장 내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살인의 흔적들. 하지만 제3자 개입에 의한 살인의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되는 게 수사의 기본이다. 또한 그들끼리의 칼부림이었다고 해도 왜 그랬는지 원인은 캐내야 할 터.  숨진 3명이 근무한 아파트는 700여 세대가 사는 중급 규모의 단지였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21~22일은 주말이어서 이들 외에 다른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았다. 또 아파트 관리실 직원들도 이들과는 다른 업체여서 서로 관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3명이 같이 일을 한 기간이 거의 4년이나 되는데도 그들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다툼이 있었는지 등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범행장소인 비상발전실은 단지 안에서도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지하실이었다. 경찰은 “지하 계단이 상당히 높은 데다 구석진 곳에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사망자 3명 외에 다른 사람은 드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탐문수사도 난항을 겪었다. 2명을 살해한 A씨는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가족이래야 1년에 1, 2차례 만나는 정도였다. 그의 형은 동생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B씨와 C씨의 가족들 역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결정적인 증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피살자들이 갖고 있던 수첩이었다.    ●책상에서 발견된 2개의 수첩…“나한테 감정 있나?”  숨진 3명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A씨는 자기가 다른 2명으로부터 심하게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B씨와 C씨는 그런 상황들을 꼼꼼하게 수첩에 기록해 놓고 있었다. 정황을 정리하면 A씨와 C씨는 심각한 갈등관계에 있었다. 3명 가운데 가장 직급이 높은 C씨에 대한 불만을 A씨는 B씨에게 털어 놓았고, 마찬가지로 C씨도 나이가 가장 어린 A씨에 대한 비난을 B씨에게 얘기했다.  다음은 B씨의 수첩에 적힌 내용.  “C가 토요일 당직근무 때 내가 잠을 자는지 확인하러 온다고 하더라.”(A씨)/ “나는 기억이 안나는데.”(B씨) / “A는 자기가 부소장인 것처럼 굴어. 지난번에 소화전 점검하고서 과장한테 고자질한 것 같더라. 나한테 감정 있나봐.” (A씨)  또 다른 메모에는 A씨에 대한 C씨의 불만이 적혀 있었다. “(A는)관리소장과 상담하면서 자기한테 불리한 얘기는 안하고 남들 험담만 한다.”, “근무 교대시간이 너무 늦는다.”, “(젊은 사람이)예의가 없다.” 등 내용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분석에서도 다른 외부인의 침입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났다. B씨와 C씨의 사망시점도 그들의 아침 출근시간과 거의 일치했다. 경찰은 A씨가 두 사람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최종 결론을 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계획된 범죄?  혼자 생활하던 A씨는 모든 것을 계획했던 듯 자기집을 깨끗이 정리한 상태였다. 사건을 담당한 울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피의자 진술을 받을 수 없지만 A씨가 범행 전 살의를 가졌을 수 있다는 추정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세 사람의 갈등은 3구의 시신과 1개의 흉기, 2개의 수첩만을 남긴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경찰은 A씨가 B씨와 C씨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짓고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7)예천 삼강주막 회화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7)예천 삼강주막 회화나무

    태백산 황지연못에서 부산 앞바다까지 사람살이의 온갖 애환을 품어 안고 1300리를 흐르는 낙동강 줄기에 이 땅의 마지막 주막이 아직 남아 있다. 세 개의 강물이 하나로 만나는 곳이어서 삼강(三江)이라 불리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다. 안동 하회마을을 돌아 나온 낙동강, 회룡포를 휘감고 뻗어 온 내성천, 죽월산에서 흘러 내려온 금천, 그렇게 세 줄기의 강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삼강주막엔 이제 전설이 된 ‘주모’가 살아 있었다. 마흔 살부터 생을 마친 여든아홉 살까지 ‘주모’라는 이름으로 주막을 지켜온 유옥연 노파는 2005년 시월 초하루에 저세상으로 돌아갔다. 주모가 세상을 떠난 뒤 주막은 크게 바뀌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비스듬히 기울었던 오두막은 헐어내고 기둥을 다시 세우고 지붕도 초가로 바꿨다. 천장도 조금 높였다. 그래 봐야 여전히 앙증맞다. 경북도는 민속문화재 제134호로 지정했다. ●세 줄기 강 만나는 주막 곁에 우뚝 주막 앞으로 펼쳐졌던 공터에는 옛 나루터의 저잣거리를 재현해 누구라도 찾아와 편히 쉴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삼강 나루터의 오래전 기억을 갖고 있는 마을 노인들은 새 저잣거리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주막 곁의 커다란 회화나무가 바라다보이는 둑방 평상에 앉아 강바람 쐬는 걸 더 좋아한다. “주모 살아 있을 때에도 여기에 멍석을 깔아놓고 쉬었어. 강바람이 좋잖아. 얼마 전에 멍석이 못 쓰게 돼서 마을에서 이 평상을 놓았지. 나는 아침에 해 뜨면 곧바로 여기 나와서 저 나무한테 말부터 붙이지.” 노을 지는 삼강주막 옛 나루터 자리의 평상에 앉아 옛날 주막에서 그랬던 것처럼 술 한잔에 목을 축이던 정강섭(80) 노인은 다짜고짜 나무 이야기를 꺼낸다. 나무 빼고 변하지 않은 게 없는 풍경에서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까닭이다. “나무가 무슨 말을 하겠나? 대답을 하긴 하는데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설렁설렁 가지를 흔들어대는 거야. 그게 다 내 말을 알아 들었다는 신호고 대답이지,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게 아니라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흔들흔들 춤추듯 나무 시늉을 내는 노인의 이야기에는 술기운 탓인지 신이 들어 있다. 이어서 누구라도 삼강주막에 오면 먼저 나무에게 말을 붙여 봐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250년 세월 간직한 삼강마을의 쉼터 노인이 바라보는 삼강주막의 나무는 ‘학자수’ 혹은 ‘선비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회화나무다. 나루터 주막의 야단법석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을 듯한 나무다. 250살쯤 된 삼강주막 회화나무는 키가 15m쯤 되는 큰 나무다.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는 5m인데, 그 부분에서 줄기는 7개의 큰 가지로 나눠지면서 넓게 펼쳐졌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게 퍼진 것도 여느 회화나무와 다를 게 없다. 앙증맞은 크기로 오도카니 서 있는 주막은 넉넉하게 펼쳐진 회화나무의 품 안에 쏙 들어갈 듯하다. 주막은 그래서 더 아늑해 보이고 나무는 실제 크기보다 훨씬 우람하고 높아 보인다. 나이도 그렇다. 얼핏 봐서는 300살은 넘어 보인다. 아마도 거의 모든 줄기에 잔뜩 피어오른 초록 이끼에 얹힌 세월의 무게가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지 싶다. 삼강 나루터가 한창이던 시절에 이 나무는 나룻배를 탈 순서를 기다리는 나그네들이 햇볕을 피하며 쉬던 그늘이었을 것이다. 주막이 생긴 뒤로는 주막의 앞마당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던 정자나무이기도 했을 터다. 나무 그늘에는 어김없이 술꾼들의 거방진 술판이 흥겹게 벌어졌을 거다. 그러나 나루터가 사라지고 강변에 둑방을 높이 쌓아 강바람을 막아버린 지금 회화나무는 주막과 함께 그저 ‘오래된 나무’라는 근사한 볼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됐다. “회화나무가 주막보다 훨씬 먼저지. 옛날부터 나루터에 있던 나무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저 나무 그늘에 기대어 주막을 지은 거지. 주막은 한 100년밖에 안 됐거든. 이 나루터가 인근에선 제일 컸어.” 주모 유옥연 노파가 살아 있던 몇 해 전만 해도 나무 아래에는 널찍한 평상이 있었고, 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마을 사람들이 이 평상에 모여들어 흙 묻은 손으로 주모 유 할머니가 내놓는 음식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곤 했다. 음식이래 봐야 고작 막걸리와 소주, 라면과 김치가 전부였지만 잊히기 어려운 살가운 풍경이었다. “여기가 우리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야. 집은 잠자러 가는 안방이지. 이 주막을 마을 사람들이 번을 정해서 매일 밤을 새우며 지키기는 하는데…….” 말꼬리를 흐리는 정 노인은 새로 고쳐 지은 주막 담벼락 안팎의 낙서들이 못마땅하다는 눈치다. 노인의 말대로 주막의 흙담에는 누가 누구와 찾아왔다는 식의 유치한 낙서들이 빽빽하다.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이다. ●주모 살았을 적엔 언제나 흥겨운 술판 나룻배와 주막, 주모와 소금 상인, 모두가 지금은 낯선 낱말이다. 나룻배가 끊긴 건 30년쯤 전이고, 그때 주막 앞으로 불어오던 강바람도 거대한 둑방에 가로막혔다. 나루터 주막의 옛 풍경은 사라지고 삼강주막은 민속문화재이자 관광지로 태어났다. 그러나 주모가 김치 국물 묻은 손으로 건네주던 라면 냄비의 유정한 맛은 사라졌다. 그나마 한 그루의 회화나무가 아니었다면 삼강주막은 철 지난 영화 세트장처럼 더 살풍경했을지 모른다. 그렇다.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어서 삼강주막은 피로하고 지쳤을 때 한번쯤 찾아가 쉬어봄 직한 곳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글 사진 예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을 여행하는 방법은 많다. 특히 어떤 항공사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여정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그려내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은 벨기에의 브뤼셀로 들어가 독일과 룩셈부르크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되돌아오는 일정이다. 자칫 일반적인 유럽 여행이 될 수 있는 동선이지만 여기에 특별한 ‘스톱오버’가 전체 분위기에 변화를 줬다. 중동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광활한 사막 그리고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카타르에서의 ‘스톱오버 투어’는 새로운 느낌의 유럽 여행을 연출하게 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취재협조 카타르항공 www.qatarairways.co.kr 1 벨기에 브뤼셀의 골목길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 2 야경이 더욱 아름다운 그랑플라스는 브뤼셀의 상징과도 같다 3 젊은이들의 낭만으로 가득한 하이델베르크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또 하나의 목적지 Doha도하 늦은 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 시각으로 새벽 5시 즈음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하는 온통 모래빛깔이다. 땅도 건물도 모두 사막을 닮았다. 그 옆으로 넘실거리는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가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 유럽으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 해안에서 바다를 향해 엄지손가락 모양으로 툭 튀어나온 카타르는 작은 나라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경기도 정도이며, 인구는 외국인을 합쳐도 200만 명에 불과하단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카타르를 무시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자그마치 152억 배럴의 원유와 5,700조 배럴의 천연가스를 보유한 ‘부자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 2006년 아시안게임이 개최됐고, 2022년 월드컵이 열릴 예정이다. 도하의 거리로 나서면 이슬람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동시에 감지할 수 있다. 웨스트베이 지역에는 우후죽순처럼 마천루들이 솟아오르고,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은 하나같이 고급 승용차들이다. 건너편 부둣가에서 바라본 웨스트베이 지역은 마치 미래 도시처럼 사막 한가운데 비현실적으로 떠 있는 것만 같다.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이들이 값비싼 스포츠카를 끌고 도하시티센터(도하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쇼핑몰)로 달려와 명품 쇼핑을 하는 풍경은 이국적이라는 표현만으론 부족할 지경이다. 하지만 카타르의 매력은 역시나 가장 카타르다운 것에 있었다. ‘올드 수크Old Souq’라 불리는 재래시장에는 중동의 색채가 담뿍 묻어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그네들의 과거와 현재가 뒤엉킨 채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여유롭게 물담배를 피우거나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시커먼 천으로 온몸을 휘감고 장을 보러 나온 이슬람 여성들이 어우러진다. 이름 모를 향신료가 코를 간질이고, 원색적인 양탄자는 올라앉으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상상력을 자극한다. 일용잡화에서부터 앵무새와 토끼 등 애완동물과 고풍스러운 골동품까지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올드 수크와 함께 도하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바로 ‘사막 사파리 투어’이다. 사륜 구동 SUV를 타고 도하에서 약 1시간 정도 달리면 광활한 모래사막이다. 사막에 진입하기 직전,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타이어에서 바람을 조금 빼면 준비 완료.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사막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사구를 달리는 차는 위아래로 숨 가쁘게 출렁거린다. 차가 뒤집힐 듯한 아찔한 상황을 수도 없이 연출해내면서도 운전기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경사가 80도에 가까운 사구 정상에서 추락하듯 달려가는 데에 이르면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요동치던 차를 멈추고 사막 한가운데 내려서면 작렬하는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이 눈을 아련하게 한다. 그리고 사막 끝에 드러나는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는 사막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붙잡는다. 숨 막히는 사막의 더위를 깜빡 잊을 만큼 장관이 아닐 수 없다. T clip.도하 스톱오버 프로그램 사막 사파리 투어 4륜 구동 SUV를 타고 카타르 남쪽 사막을 달리는 프로그램이다. 요금은 4시간 기준으로 2~3명은 1인당 65달러, 4명은 1인당 55달러이며, 1명의 경우 2명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도하 시티투어 가이드를 겸한 한국인 운전자와 승용차를 타고 올드 수크, 매시장, 웨스트베이 등 도하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요금은 4시간 기준으로 2~3명은 1인당 75달러, 4명은 1인당 63달러이며, 1명의 경우 2명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카타르 비자는 공항에서 신용카드(30달러)로만 결제할 수 있다. 문의 페가수스코리아(도하 스톱오버 프로그램 예약 대행사) 02-733-3441 1 부둣가에서 바라본 웨스트베이는 마치 신기루 같다 2 상상력을 자극하는 올드 수크의 양탄자들 3 이슬람 전통복장을 한 공예품들이 지갑을 열게 한다 4 사막에서 바라본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 카타르항공 카타르의 수도 도하를 기점으로 하는 카타르항공은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낯선 항공사이다. 하지만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한국인 승무원이 배치되어 있어 언어에 따른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 없으며, 쇠고기와 닭고기로 구성된 메인 요리는 한식 스타일로 조리되어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또 여유로운 좌석이 비행의 피로를 덜어주는 것도 큰 장점이다. 카타르항공은 현재 98대의 항공기로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102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특히 도하를 경유하여 유럽 25개 도시를 연결하고 있어 유럽을 여행하려는 한국인들에게 편리하다. 항공 리서치 전문기관인 스카이트랙스Skytrax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6개뿐인 5성급 항공사인 만큼 기내 서비스도 수준급이며, 경쟁력 있는 요금도 매력적이다. 퍼스트클래스나 비즈니스클래스 고객이라면 도하국제공항의 ‘프리미엄 터미널’을 이용할 수 있다. 9,00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지난 2006년 완공한 프리미엄 터미널은 여느 항공사 라운지에서 맛볼 수 없었던 서비스를 제공한다. 줄을 설 필요 없이 별도의 체크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스파, 수면실, 샤워실, 레스토랑 등의 시설을 모두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경유지 도하에서의 스톱오버 프로그램은 덤이다. 문의 카타르항공 02-3708-8571, www.qatarairways.co.kr 유럽연합의 작은 거인 Brussels 브뤼셀 카타르 도하를 뒤로하고 다시 비행기에 올라 도착한 곳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이에 자리한 벨기에는 처음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잠시 스쳐가거나 건너뛰는 작은 나라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카타르가 그랬던 것처럼 벨기에 역시 남다른 저력을 발휘하는 국가이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본부가 브뤼셀에 자리잡고 있어 벨기에의 수도뿐 아니라 유럽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수준에 있어서도 여느 유럽 국가들에 뒤처지지 않는다. 와플, 초콜릿, 맥주 등 벨기에의 먹을거리는 유럽에서도 유명하며, 최근 할리우드 극장판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개구쟁이 스머프>도 벨기에에서 태어나 세계로 뻗어나갔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랑플라스Grand-Place’는 브뤼셀의 상징으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벨기에로 이끈다. 그랑플라스로 이어지는 구시가지의 풍경은 예스러움과 현대인들의 여유로움으로 가득하다. 거리의 악사들은 흥겨운 음악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사람들은 과일과 시럽을 잔뜩 올린 와플을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달콤함이 느껴지는 초콜릿 가게와 거리 곳곳에 세워진 조각들에 한눈을 팔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광장에 다다르게 된다. 1998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대광장, 즉 그랑플라스이다. 직사각형의 그랑플라스를 둘러싸고 있는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은 정교한 조각품을 떠올리게 할 만큼 화려함을 자랑한다. 시청사, 왕의 집, 길드하우스 등 건축물 대부분이 15~17세기에 지어진 것들로 광장 한가운데 서 있으면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96m의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시청사이다. 그랑플라스의 건축물 가운데서도 가장 섬세한 외벽 조각으로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첨탑 꼭대기에는 브뤼셀의 수호천사인 미카엘 대천사가 황금빛으로 조각되어 있다. 시청사 옆길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브뤼셀의 또 다른 상징인 ‘오줌싸개 동상(마네캥-피스Manneken-pis)’을 만날 수 있다. 사진으로 먼저 동상을 본 여행객들이라면 “애걔!”라는 실망스런 감탄사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크기는 60cm에 불과한 데다, 여느 유럽 거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조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거만한 자세로 오줌을 누고 있는 이 꼬마 녀석에 얽힌 이야기는 자못 대단하다. 프랑스 군대가 브뤼셀에 불을 질렀을 때 이 꼬마가 오줌을 누어 불을 껐다고 하며, 14세기에 한 제후의 왕자가 오줌을 누며 적군을 모욕한 것이 모델이 되었다고도 한다.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오줌싸개가 벨기에의 ‘수호 꼬마’인 셈이다. 이 때문에 오줌싸개 동상은 수차례 약탈당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단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벌거벗은 꼬마의 옷이 수백 벌에 달한다는 것. 외국 정상들이 브뤼셀을 방문할 때마다 선물한 옷들로 그랑플라스의 왕의 집에 전시되어 있다. 꼬마의 옷 중에는 한복도 있다고. 1 그랑플라스 시청사의 섬세한 외벽 조각 2 벨기에에 왔다면 와플은 꼭 맛봐야 한다 3 오줌싸개 동상 앞에 모인 여행객들 T clip. 벨기에에 왔다면 꼭 맛봐야 할 것이 바로 ‘와플’이다. 와플이란 이름은 독일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원조는 벨기에이다. 벨기에 와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벨기에 수도 이름을 딴 ‘브뤼셀 와플’과 동부 도시의 이름을 딴 ‘리에주 와플’이 그것이다. 브뤼셀 와플은 바삭바삭하고, 리에주 와플을 부드러운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그랑플라스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와플 가게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바나나, 딸기, 크림, 초콜릿 시럽 등 상상을 초월할 만큼 푸짐한 토핑을 올린 와플은 여행 중 간식거리로 부족함이 없다. 가격은 1~3유로 정도. 1 웅장하다 못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쾰른 대성당 2 쾰른 대성당의 아치형 중앙 회당 3 오리 한 마리가 유유히 흐르는 네카어강을 바라보고 있다 4 담소를 나누는 하이델베르크의 대학생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웅장한 자태에 반하다 Ko”ln 쾰른 벨기에 브뤼셀에서 동쪽 국경을 넘어 독일의 쾰른으로 달려간 이유는 단 하나, ‘쾰른 대성당Cologne Cathedral’ 때문이다. 시내 중심에 157m의 높이로 솟아 있는 두 개의 첨탑은 웅장하다 못해 압도적이다. 건물 외벽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1996년 유네스코는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쾰른 대성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쾰른 대성당이 지어진 것은 1248년부터이다. 1164년 한 대주교가 동방박사 세 명의 유해가 담긴 성물함을 가져왔고, 이를 안치하기 위해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사가 중단된 시기도 있었지만, 1880년 완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650년에 이른다. 이 때문에 건물 외벽의 색깔이나 석질이 조금씩 다른 것도 눈에 띈다. 완공 이후 188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으며, 현재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과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첨탑이 서 있는 서쪽 입구로 들어서면 아치형의 중앙 회랑이 144m의 길이로 소실점을 그리며 뻗어나간다. 바닥부터 천장까지의 높이는 약 43m이며, 기둥에 조각된 석상들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고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다. 좌우 창가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엄숙하고 경건하며 신비롭기까지 한 성당 내부에 서면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게 된다. 젊은 낭만의 도시 Heidelberg 하이델베르크 룩셈부르크로 들어가기 전 들른 도시는 독일 남서부에 자리한 낭만의 도시 하이델베르크이다.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어 강을 따라 달리던 차가 하이델베르크에 들어서자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과 도도히 흐르는 옥빛 강물 그리고 크고 작은 광장을 연결하는 고풍스러운 하우프트 거리 등이 방문객들을 낭만 여행으로 이끈다. 하이델베르크는 인구가 10여 만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이 가운데 대학생이 약 3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1386년에 설립돼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꼽히는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있기 때문. 수백년의 세월 동안 학구열을 불태운 이 도시는 칸트, 괴테, 야스퍼스 등 세계적인 학자와 문학가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네카어강을 건너 독일의 유명 철학자들이 즐겨 걸었다는 ‘철학자의 길’을 걷다 보면 누구나 골똘히 사색에 잠기게 된다. 하이델베르크가 ‘대학도시’로 불리는 까닭이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 중간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눈에 들어온다. 세모꼴에 울긋불긋한 마을 지붕들 너머로 고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고성은 하이델베르크의 상징에 다름 아니다. 13세기에 축조되기 시작한 하이델베르크 고성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군주를 거치며 파괴되고, 복원되고, 증축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형식의 건축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기도 하다. 고성에 오르면 종탑, 성문탑, 루프레히트 궁, 프리드리히 궁 등 여러 건물들이 있는데, 30년 전쟁과 왕위계승전쟁을 거치면서 훼손된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고성의 아름다움은 세월 속에서 더욱 여물어 여행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요새 Luxembourg 룩셈부르크 파리로 향하는 길에 방문한 룩셈부르크는 유럽 지도에서 찾아보기도 힘들 만큼 작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끼여(?) 있는 듯한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부르고뉴가, 합스부르크가, 프랑스, 네덜란드,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아오며 중세 400년 동안 파괴와 복원이 되풀이됐다. 룩셈부르크 독립의 꿈은 1839년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 지금은 유럽재판소, 유럽의회 사무국 등이 룩셈부르크에 자리하고 있어 브뤼셀과 함께 EU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외침에 대항해 단단한 방패를 들듯, 높은 성벽과 포대가 완고하게 도시를 두르고 있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요새와도 같은 형국이다. 가장 유명한 성채는 ‘복포대Casemates Du Bock’이다. 군사적 요충지는 전망 또한 좋기 마련이어서 복포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알제트 운하가 회색지붕들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고, 숲과 마을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룩셈부르크의 지난했던 역사를 잠시 잊게 한다. 1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황금의 여신상이 있는 ‘헌법광장Constitution Square’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장관이다. 페트루세 계곡을 따라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그 중간 즈음에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아돌프다리Pont Adolphe’가 멋들어진 아치를 자랑한다. 1903년에 완공된 아돌프다리는 높이 46m, 길이 153m에 이르는 석조 다리이다.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교로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헌법광장에서 길을 건너면 ‘노트르담대성당Notre Dame Cathedral’이다. 유럽의 여느 성당들과 비교하면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단정하고 간결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성모마리아 조각이 중심에 있는 파사드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단아한 외관과는 달리 화려하고 장중한 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스테인드글라스와 파이프오르간 그리고 벽면과 기둥의 정교한 조각들이 반전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유럽의 문화 수도 Paris 파리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 파리는 유럽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가장 훌륭한 장소였음에 틀림없다. 유럽 여행을 계획한다면 빠질 수 없는 곳일 뿐더러 몇 번을 방문한다고 해도 질릴 리 없고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 완공된 에펠탑은 여전히 파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었고, 세계 최대의 개선문으로 꼽히는 에투알 개선문의 당당한 자태는 변함이 없었다. 세계 각국의 유물과 미술품으로 가득한 루브르박물관과 19세기 인상파 작품들로 유명한 오르세미술관 역시 파리를 방문했다면 놓칠 수 없는 명소이다. 유람선을 타고 센강을 따라 명소들을 둘러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파리 여행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뤽상부르공원Jardin du Luxembourg’과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인 만큼 여유로운 휴식과 느긋한 산책을 즐기기로 했던 것. 뤽상부르공원은 1615년 건축된 뤽상부르 궁전에 딸린 프랑스식 정원이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며, 파리지앵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처로 잘 알려져 있다. 화창한 날씨라면 뤽상부르공원은 온통 일광욕을 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공원 곳곳에 놓인 벤치와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햇볕을 만끽한다. 스케치북에 공원의 모습을 담는 젊은 미술학도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그늘진 숲길과 넓은 잔디밭, 수많은 조각상들과도 조우하게 된다.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을 들고 햇볕 다사로운 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 보자. 짧은 시간이지만 파리지앵이 되어 보는 것이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몽마르트르는 그 이름만으로도 낭만이 흘러넘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꼭대기에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하얗게 빛나고, 계단 옆 잔디밭에는 햇볕에 취한 사람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있다. 언덕의 높이는 130m에 불과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오른편으로 가면 에펠탑까지 조망할 수 있다. 언덕 한쪽에는 거리의 화가들이 예술의 향기를 뿜어낸다. 여행객들과 그들의 초상화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려내는 화가들은 몽마르트르의 고유한 풍경이다.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나 와인을 음미하며 이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술은 한 잔이면 족하다. 몽마르트르의 독특한 분위기에 먼저 취하기 마련이니까. 1 숲과 마을 그리고 알제트운하가 장관을 이루는 복포대 2 마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 3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캐리커처를 그리고 있는 화가 4 룩셈부르크의 노트르담대성당의 외관은 단정하고 간결하다 5 헌법광장에서 바라본 아돌프다리 6 뤽상부르공원은 파리지앵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처다 7 샹젤리제 거리를 오가는 파리지앵들 8 센강에서 바라본 에펠탑과 파리시내의 야경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월드 프리미엄 ‘고효율·친환경·콘셉트카’ 몰려온다

    월드 프리미엄 ‘고효율·친환경·콘셉트카’ 몰려온다

    자동차 마니아들이 기다리던 제64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모터쇼(IAA)가 오는 13일(현지시간) 프랑크푸르트 메세에서 막이 오른다. 올해 주제는 ‘보편화된 미래’(Future comes as standard)로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줄이는 친환경 전기차가 대세이다. 또 유럽 경제위기를 말해주듯 작지만 강한 소형차나 경량화 디자인이 돋보이는 콘셉트카들이 대거 선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13일 언론 사전 공개를 시작으로 25일까지 열리는 이번 모터쇼에는 전 세계 32개국에서 총 1007개의 완성차 및 관련 업체가 참가한다.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차만 89종에 달하는 등 최신 기술의 각축장이 될 전망이다. ●현대차 i30 후속, 기아차 UB 3도어 공개 먼저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신차 2종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차는 유럽 전략병기인 i30의 후속모델(프로젝트명 GD)을 세계 최초로 공개한다. ‘뉴 i30’은 준중형 해치백(뒷좌석과 트렁크가 합쳐진 형태)으로 현대의 새 디자인 테마가 적용됐다. 흐르는 듯한 선과 루프 라인(자동차 천장 양쪽 선)이 독특하다. 기본적인 디자인은 2009년 선보였던 익소닉의 요소와 비슷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기아차는 프라이드 후속 모델인 소형차 ‘UB’의 3도어 모델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후륜구동 4도어의 고급 스포츠 세단인 ‘KED-8’(프로젝트명)도 처음 선보인다. 콘셉트카인 KED-8는 라디에이터 그릴에 기아차 고유의 패밀리룩 디자인을 도입해 기아차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담았다. 고급스럽고 역동적인 외관으로 시선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도 모든 좌석이 탑승자 의도대로 움직이는 크로스오버차량(CUV) 콘셉트카 ‘XIV-1’을 처음 공개한다. ‘XIV-1’은 정보기술(IT) 기반 사용자 환경으로 실내의 모든 기능을 모바일 기기로 조절할 수 있는 첨단 자동차다. ●유럽 브랜드, 첨단 소형차로 승부 걸어 BMW는 신세대 시티카인 전기차 ‘i3’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i8’의 콘셉트카를 공개한다. 두 차 모두 4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13년 하반기 양산을 앞두고 있다. ‘i3’는 170마력의 힘을 발휘하는 고성능 전기모터를 장착, 0~60㎞를 4초 이내에, 0~100㎞는 8초 이내에 도달하는 첨단 시티카이다. ‘i8’는 개조된 전기 드라이브 시스템과 220마력 3기통 내연 엔진을 결합한 고성능 하이브리드카이다. 하체를 대부분 알루미늄으로 제작하고 동승자 탑승 공간은 초경량 탄소섬유강화 플라스틱(CFRP)을 적용해 꾸몄다.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소형차의 고급화 바람을 이끌 ‘B클래스 신형 모델’뿐 아니라 2억 5000만원이 넘는 슈퍼 스포츠카 SLS AMG를 개조한 ‘SLS AMG 로드스터 모델’을 처음 소개할 예정이어서 마니아들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아우디의 ‘어반’은 발광다이오드(LED)와 21인치 휠이 장착된 외관 디자인, 카본 재질의 섬유가 사용된 시트가 돋보인다. 전기 모터와 리튬이온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차로 개발됐다. ‘A2’는 1150㎏ 미만의 초경량 차체 기술과 편리한 충전을 위한 무선충전 기술을 고려해 설계한 소형 전기차 콘셉트카이다. 가격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저렴하게 책정할 방침이다. 푸조도 디젤-하이브리드 508 RXH와 다목적 콘셉트카 HX1을 공개한다. 다목적 콘셉트카 HX1은 스타일과 친환경을 고루 갖춘 다목적 차량으로 6명이 편하게 탑승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편의 장비와 활동적인 스타일링, 친환경 파워트레인을 갖췄다. 신차 508 RXH는 디젤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HYbrid4시스템이 장착됐다. 4륜구동(4WD)과 전기차 모드가 지원되며 200마력에 연비는 25㎞/ℓ에 달한다. 폴크스바겐은 연말부터 유럽에서 판매될 초저가 소형차 ‘업’(UP)을 무대에 올린다. ‘업’은 도심 생활에 최적화된 시티카로 동급 최초로 응급 제동 기능도 갖췄다. GM은 캐딜락 브랜드의 4인승 컨버터블 콘셉트 ‘씨엘’을 공개한다. 3.6ℓ 트윈터보 V6 직분사 엔진과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스포츠카이다. 도요타 렉서스는 뉴 GS 450h를 야심작으로 내세우며 대지진의 악몽에서 탈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 차는 2세대 렉서스 하이브리드 드라이브 시스템이 적용돼 기존 모델보다 더 친환경적이면서 가속력 등이 강화됐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테크노마트 안전성 이상 없다”

    지난 7월 건물 흔들림 현상과 천장 마감재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던 서울 광진구 구의동 테크노마트의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최종 진단 결과가 나왔다. 대한건축학회는 7일 “국토해양부 등록기관인 센구조연구소가 2개월간 테크노마트 건물의 주요 골조에 대한 정밀진단을 실시한 결과 국토해양부 기준 종합평가 B등급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토해양부의 ‘정밀안전진단 종합평가 기준’에 따르면 B등급은 ‘보조 부재에 경미한 결함이 발생했으나 건축구조 기능에는 지장이 없으며, 내구성 증진을 위해 일부 보수가 필요한 상태’를 뜻한다. 여의도 63빌딩과 삼성동 무역센터도 B등급에 해당한다. 대한건축학회는 “준공 후 10년차에 실시하는 건물 정밀안전진단에서 A등급을 받은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 센구조연구소는 흔들림 현상이 나타났던 7월 5일 이후 두 달간 테크노마트 건물의 주요 골조에 대한 비파괴검사와 기초지반 탐사조사 등 정밀안전진단을 했다. 조사를 담당한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테크노마트 진동은 최대 진폭 0.5㎜ 이하로, 어떤 고층 건물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앞서 건물 흔들림 현상의 원인 규명에 나섰던 대한건축학회도 7월 19일 “건물 12층 피트니스센터에서 집단 태보운동으로 발생한 흔들림이 ‘공진현상’을 일으킨 것이 원인”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었다. 테크노마트 측은 “진동 원인이었던 피트니스센터에 방진 장치를 추가로 설치하고 장기적으로는 이전하거나 폐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MACAU-축제예감, 마카오 산책

    MACAU-축제예감, 마카오 산책

    축제예감, 마카오 산책 마카오가 좋았던 건 오랜 세월, 정치와 종교와 문화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뒤섞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불뚝거리지 않고 조화롭게 자리잡은 그 흔적들이 유독 돋보였기 때문이다. 미묘한 세월의 색감으로 채색된 마카오의 길 위에서 고집스럽게 내 것만을 고집하던 강퍅한 마음이 여유로운 축제 예감에 절로 들썩거렸다. 글·사진 한윤경 기자 취재협조 마카오정부관광청 kr.macautourism.gov.mo 2, 3 마카오 콜로안섬은 바다와 어우러진 파스텔톤의 길과 건물들이 밤낮으로 아름다운 감흥을 자아낸다. 콜로안의 거리 풍경은 채색 그림동화, 그 자체다 4 마카오의 파란 하늘 위로 축제의 흥을 돋우는 색색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5 세나도 광장 맞은편에는 중국풍 느낌이 물씬한 ‘펠리시다데 거리’가 자리한다. 일명 ‘행복 거리’인 이곳은 과거 홍등가였던 것을 특별한 관광명소로 재구성하였다. 현재는 음식점과 숍 등이 들어와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street 걸어서 만나는 즐거움 마카오는 유독 즐길거리가 많기로 유명한 여행지다. 여러 나라의 음식문화가 유입되어 특유의 맛으로 더욱 맛깔나게 업그레이드되었다는 먹거리에, 하룻밤 대박을 꿈꾸게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휘황한 카지노, 갖가지 테마로 치장한 화려한 호텔과 다채로운 쇼까지, 힘들이지 않고 여행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대표 관광지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마카오의 진수를 맛보려면 먼저 편한 신발을 신고 거리로 나서 보아야 한다. 어수선한 듯 묵직하게 자리한 오래된 거리 속을 여유롭게 걸어서 돌아다녀 보자. 천천히 걸어 다니며 감흥을 얻기에 이만한 도시가 없다. 마카오 거리로 나서면 먼저 시간이 스며든 회색톤의 건물들과 물결치는 광장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을 만날 수 있다. 무채색 건물 위로 밝게 떠오르는 희고 노란 파스텔톤의 색감과 종종 강렬함을 드러내는 원색의 배치는 그림인 듯 어우러지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크고 작은 호텔들 주변의 길 한 켠에는 어김없이 전당포들이 즐비하고 복닥복닥 어둑한 어느 골목으로 스며들면 먹고 사는 풍경과 소리만으로도 신명나는 재래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 거리에 현지인들이 바쁘게 오가고 호기심 어린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켜켜이 가볍게 섞여든다. 마카오가 포르투갈의 통치에서 벗어나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특별행정구로 도시 형태를 바꾼 것이 1999년. 포르투갈이 동양 진출의 교두보로 마카오에 진출한 지 400여 년 만의 일이다. 홍콩을 통해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서양문화가 들어오는 통로 역할을 한 마카오는 서양의 문물과 문화가 요동치듯 뒤섞이고 들썩거리는 현장이었을 것. 그 결과, 오늘의 마카오 거리는 유럽 속의 동양인 듯, 동양 속의 유럽인 듯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1 아름다운 색감과 동화 같은 구성이 매력적인 <자이아> 2, 6, 8 파티마 성모 축제의 행렬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카오 구석구석에 자리한 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함께 염원하는 지향에 귀기울이는 기회도 갖게 된다 3, 7 콜로안섬의 탐쿵 축제는 탐쿵신을 기리는 행사로 동네 단합과 화합의 장이 된다 4 빗속의 공중곡예뿐 아니라 고난이도 다이빙에 오토바이 묘기까지 <더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는 관람 내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5 세나도 광장은 아침부터 술 취한 용의 축제 참가자들이 품어대는 술 세례에 취기가 가득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festival 흥겹게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 지역에 따라 모양새를 달리할지언정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마음의 바탕은 대동소이하다. 매일매일이 똑같아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을 때도, 힘든 노동의 결과로 즐거움을 맞았을 때도, 미약하고 어려운 시작에 도움을 청하고 마음을 다잡을 때도, 심지어 죽은 이를 보내는 순간이나 믿음을 고백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또 ‘축제’를 준비한다. 이채로운 축제를 엿볼 때면 흥미롭고 신나는 한편, 그들 또한 내가 품고 있는 그 바람을 품고, 내가 사는 바로 그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어찌 보면 거리를 걷다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그 순간도, 오래 벼르던 공연을 관람하며 색다른 기쁨을 맛보는 그 순간도 실은 축제의 씨앗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상의 발걸음 속에 고비고비 축제의 순간들을 끼워 넣으며 잠시 잠깐씩 호흡을 고르는 것일 터이다. 따지고 보면 축제는 하루하루의 삶과 다름 아니다. 가을로 접어드는 마카오에는 봄 축제만큼이나 다채로운 계절 축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9월의 국제불꽃놀이대회와 10월의 마카오 음악축제부터, 11월의 마카오그랑프리, 12월의 국제마라톤대회까지 연중 다양한 축제로 들썩이는 마카오를 만날 수 있다. 술 취한 용의 축제 세나도 광장 분수대 주변은 아침 일찍부터 축제의 설렘이 그득하다. 골목 안 콴 타이 사원에서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매캐하게 향을 태워 올리며 신 앞에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한편 벌써부터 얼굴이 불콰해진 축제 참가자들은 나무로 만든 용을 들고 한껏 흥을 돋운다. 입에 머금었다 뿜어대는 술 세례에 용도 취하고 넋 놓고 구경하던 빳빳했던 일상들도 함께 취해 돌아간다. 광장에서 시작된 행렬은 부두로 이어지며 늦게까지 마시고 취해 거나한 저녁으로 마무리된다. 애초에 용에게 술을 올리며 바라 마지않던 고기잡이 뱃사람들의 안녕과 수확, 그리고 역병 퇴치의 염원은 굽이굽이 흥겨운 몸짓으로 휘청휘청 완성되어 간다. 부처님 오신 날 열린다. 탐쿵 축제 콜로안섬 골목 안쪽에서는 잘 익은 통돼지 한 마리를 바닥에 놓고 사람들이 수런거린다. 알록달록 퍼레이드 옷을 맞춰 입은 동네 아주머니들은 깃발을 흔들며 흥을 내고 2층 높이의 건물 사이에 쳐놓은 줄에는 지나갈 용을 위해 간식으로 걸어놓은 배추쪼가리가 앞뒤로 흔들거린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사자 한 마리가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로드 스토우 가게 안으로 꿈틀꿈틀 머리를 들이밀며 축복을 해주고 곱게 차려입은 어린아이 둘이 가마에 기웃하니 올라서서 행진을 준비한다. 콜로안섬에서는 병자를 치유해 주고 날씨를 관장한다는 아기 신 ‘탐쿵’의 탄생을 기념해 해마다 5월8일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벌인다. 이 기간 중 밤이면 탐쿵 사원에서는 경극도 올리고 각종 전통놀이와 폭죽놀이 등도 펼쳐 뱃사람들의 수호신 탐쿵신을 기리는 축제에 신명을 다한다. 파티마 성모 축제 성도미니크성당 주변은 미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인파로 번잡하다. 저녁 6시 무렵 성당을 나와 거리로 나선 행렬의 맨 앞에는 깨끗하게 차려입은 화동 세 명이 붉은 꽃을 뿌리며 길을 열고 흰 옷에 미사포를 쓴 여인들이 옮기는 꽃가마 위에 성모님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 뒤를 사제와 신자들이 줄지어 따라간다. 촛불을 손에 든 행렬은 기도를 올리며 마카오대성당을 지나 약 2km에 이르는 거리를 1시간30분가량 행진하는데 펜하 성당에 이르러 다시 미사를 올리고 마무리하게 된다. 파티마 성모 축제는, 가톨릭이 동양에 들어올 때 그 출발지가 되었던 마카오에서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세 명의 어린아이들에게 발현했다는 성모의 기적을 기념하는 축제로 해마다 5월13일에 열린다. 환호로 함께하는 축제, 서커스 서커스를 보는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들쭉날쭉이다. 급격하게 흥분되고 짜릿하다가도 애잔한 감성으로 뚝 떨어지는 것이, 짧은 시간에 다양한 빛깔의 감흥을 체험할 수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100% ‘몰아의 순간’을 체험할 수 있다. 대형 서커스 공연으로 유명한 마카오에서 대표적인 공연을 꼽으라면 역시 <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The House of Dancing Water>와 <자이아ZAIA>일 것. 그동안 베네치안 마카오의 세계적인 서커스 <자이아>가 몽환적이고 동화 같은 스토리와 구성으로 큰 평가를 받았다면 지난해 시티 오브 드림즈가 새롭게 선보인 <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는 무대를 구성하는 놀라운 규모와 박진감으로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특히 맨바닥 무대 위로 장대비가 쏟아지다가 한순간에 10여 미터 높이에서 다이빙을 선보이는 등, 다이내믹한 무대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 관람요금 | VIP석 HKD1,380 A석 어른 HKD880, 어린이 HKD620 B석 어른 HKD680, 어린이 HKD480 C석 어른 HKD480, 어린이 HKD340 문의 | 시티 오브 드림즈 853-8868-6688 www.thehouseofdancingwater.com 자이아 | 관람요금 | VIP석 HKD1,288 일반석 어른 HKD388~788 어린이 HKD194~394 문의 | 베네치안 마카오 853-2882-8818 www.venetianmacao.com 나차 사원과 성 바오로 성당 유적은 오랜 세월 서로 사이좋게 이웃해 있다. 나차 사원 안에서 바라본 성 바오로 성당 유적 heritages 평화로운 공존의 가치 마카오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30곳에 이른다. 하나하나의 장소를 떠나 동서양 문화교류의 흔적을 가장 넓은 지역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 자체가 그 가치를 그대로 인정받고 있다. 그에 더해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혼재되어 이루어진 사회임에도 오랜 시간 서로 대립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해 온 그 조화로움이 큰 점수를 얻은 것. 내 것 아닌 것, 나와 다른 것에 유난히 배타적인 우리네와 비교해 보면 이상할 정도의 관대함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양한 축제의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문화유산들은 축제의 감흥까지 얹어져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더구나 대부분의 문화유산들이 마카오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자리해 있어 하루 정도면 걸어서 돌아볼 만하니 환상의 도보여행 코스라 할 만하다. 01 성 바오로 성당 유적 1580년 지어진 성 바오로 성당은 1835년 화재로 모두 불타고 정문과 정면계단, 건물 토대만 남았다. 전면부의 조각과 건축 양식 등에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롭게 드러나 있어 마카오에서만 볼 수 있는 소중한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마카오의 대표 이미지. 02 기아 요새 마카오에서 가장 높은 송산松山에 자리한 기아 요새는 1622년에 건축되었다. 요새에는 기아 등대와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서양의 양식이 혼재된 건축 양식과 은은한 색감의 예배당 프레스코 벽화가 유명하다. 개방시간 | 요새 오전 9시~오후 5시30분, 예배당 오전 10시~오후 5시(등대는 내부 관람 불가) 03 아마사원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유교, 도교, 불교뿐 아니라 토착 신앙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는 사원. 마카오라는 이름도 이 사원 이름에서 나왔다고. 개방시간 | 오전 7시~오후 6시 04 나차 사원+구시가지 성벽 1888년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나차신에게 바쳐진 사원으로 작지만 우아하고 섬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불어 나차 사원 옆에 자리한 구시가지 성벽은 1569년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쌓은 성벽으로 현재는 성벽 잔해 일부만 남아 있다. 개방시간 | 오전 8시~오후 5시 05 마카오대성당 1622년 건축된 가톨릭 성당으로 제단 아래 16, 17세기 주교의 유품들이 매장되어 있다. 마카오 반환 전까지 새로 부임하는 마카오 총독은 이 대성당 성모 마리아 앞에서 의식을 치루는 것이 전통이었다. 개방시간 | 오전 7시30분~오후 6시30분 06 만다린하우스 1869년 건축물로 중국의 사상가 정관잉의 고택이었다. 창과 지붕 등 중국 전통방식으로 설계되었으며, 인도풍의 천장과 문틀 등, 이국적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눈길을 끈다. 개방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화, 수요일 휴관) 07 성도미니크성당 1587년 도미니크회 사제들이 지은 성당으로 중국에 지어진 첫 번째 성당. 성당 내부는 화려하고 바로크풍 제단이 아름답다. 성당 앞 광장은 볼거리 많은 세나도 광장으로 이어진다. 개방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08 릴 세나도 빌딩+세나도 광장 릴 세나도 빌딩은 1784년 마카오 정부청사로 건축된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의 건물로 고가구로 장식한 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포르투갈풍의 도기 타일 ‘아줄레조Ajulejo’로 꾸민 인테리어와 내부 정원이 눈에 띈다. 릴 세나도 빌딩에서 내려다보면 세나도 광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장 주변으로 19~20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특유의 물결무늬 광장은 1993년 조성한 것. 개방시간 | 전시관 오전 9시~오후 9시(월요일 휴관), 정원 오전 9시~오후 9시 09 무어리시배럭 1874년 건축된 건물로 무굴제국의 영향을 받은 디자인이 돋보인다. 마카오 치안을 맡았던 인도인 용병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은 마카오 해상행정국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개방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T clip. 마카오 가는 길 인천과 마카오를 에어마카오가 매일, 진에어가 주 3회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 3시간30분 정도. 홍콩을 거쳐 페리로 들어갈 수도 있다. 화폐 마카오 공식 화폐는 파타카MOP로 1파타카는 150원 정도. 파타카와 더불어 홍콩달러가 통용된다. 시차 한국보다 1시간 늦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300m절벽서 추락 포르쉐…탑승자는 ‘기적생존’

    절벽에서 추락한 포르쉐가 차체는 휴지조각처럼 찌그러졌지만 탑승자 가운데 한명이 기적적으로 생존한 것으로 전해져 화제가 되고 있다. 스위스 언론매체들에 따르면 시튼에서 최근 로엘 그레니어(54)란 남성이 몰던 검은색 포르쉐가 난간을 들이받고 300m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포르쉐가 앞에 차량을 추월하려고 속도를 내다가 중심을 잃고 난간을 들이받고 절벽 아래로 튕겨 나갔고 세바퀴를 구르다가 멈췄다. 차량은 천장이 완전히 내려앉는 등 대부분이 부서져 사고 당시의 충격을 가늠케 했다. 당시 이 차량에는 운전자와 14세 딸 새비네가 타고 있었다.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숨졌지만 새비네는 부상만 입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현재 루체른 대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담당 경찰은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무리하게 속도를 내다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사고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인사]

    ■감사원 ◇고위감사공무원 <전보> [국장]△재정·경제감사 왕정홍△공공기관감사 조규호△사회·복지감사 김병석△행정·문화감사 이세도△지방행정감사 김충환△감사청구조사 김진해[실·단장]△심의실 문호승△전략과제감사단 이재덕<승진>△감사품질관리관 박찬석△감사교육원 교육운영부장 이해인△감사원(파견) 원성희[단장]△교육감사 진유조△국방감사 정경순△지방건설감사 최대선△감찰정보 유희상△공공감사운영 김성홍◇3급 승진△건설·환경감사국 제4과장 유인재△교육감사단 제1과장 유병호△국방감사단 제2과장 마광열△지방건설감사단 제1과장 이영웅△감사청구조사국 조사1과장 이영△심의실 법무담당관 윤승기<금융·기금감사국>△제2과장 조성은△제3〃 박재신△제4〃 이영하<사회·복지감사국>△제2과장 백복수△제4〃 남주성<지방행정감사국>△제1과장 이남구△제2〃 이상욱△제4〃 김현국<특별조사국>△조사1과장 박동균△조사4〃 이관직◇과장 <신규보임(승진)>△교육감사단 제3과장 최정운△특별조사국 조사2과장 정규섭△감사청구조사국 대전사무소장 나제방△기획관리실 성과·제도담당관 박완기△감찰관실 감찰담당관 김용범△공보관실 공보담당관 유병호△감사교육원 교육운영부 교육운영1과장 이윤재△감사연구원 연구부 연구1팀장 김성준△감사원(파견 등) 김상문 김영신 구경렬 김동섭[공공감사운영단]△제1과장 김영관△제2〃 이수연[심의실]△심사1담당관 안상문△심사2〃 박승준<전보>△금융·기금감사국 제1과장 김명운△공공기관감사국 제4과장 홍영남△전략과제감사단 제1과장 정상우△교육감사단 제2과장 전광춘△지방건설감사단 제2과장 김계중△기획관리실 기획담당관 김경호△감사원(파견) 박재용[재정·경제감사국]△제1과장 최성호△제2〃 이재호△제5〃 김광영[건설·환경감사국]△제2과장 황장호△제3〃 이도승[사회·복지감사국]△제1과장 김시관△제3〃 장난주[행정·문화감사국]△제1과장 최기정△제2〃 최채우△제3〃 이철진△제4〃 이준재[지방행정감사국]△제3과장 유병찬△제5〃 조웅길△제6〃 한남희[국방감사단]△제1과장 정상복△제3〃 송윤근[특별조사국]△총괄과장 현완교△조사3〃 정항면[감찰정보단]△제1과장 박성익△제2〃 박종풍[감사교육원]△교육운영부 교육운영2과장 김경혜△교육지원과장 정경중◇4급 <전보>△건설·환경감사국 제1과 백맹기△감찰정보단 제1과 김두식△공공감사운영단 제2과 이정순△행정지원실(서무행정팀) 장병원△감사원(파견 등) 신치환 백철우 신상모[재정·경제감사국]△제1과 정광명△제4과 이동수△제5과 김용천 이세열[금융·기금감사국]△제1과 남수환△제4과 김병수[공공기관감사국]△제1과 김수종△제4과 전형철[전략과제감사단]△제1과 박준홍△제3과 이영회[사회·복지감사국]△제1과 황진연 전우승△제2과 황하승 한태진△제3과 이상철△제4과 이영갑[행정·문화감사국]△제1과 안무열 박용준△제2과 도대성 박석진△제3과 김창식△제4과 이광우[지방행정감사국]△제1과 장양국 강승원△제2과 황광돈 남상진△제3과 임서수 김석중△제4과 신능식△제5과 김병림△제6과 이희두[교육감사단]△제1과 김종운 이우종△제2과 박경수 권태경△제3과 박기우 김태성[국방감사단]△제1과 강민호 이진종△제1과(방산비리TF) 엄광섭△제2과 전영진 박상용△제3과 박영철 윤종식[지방건설감사단]△제1과 김영석 이재홍△제2과 조철환[특별조사국]△조사3과 이진완△조사4과 구현모[감사청구조사국]△조사1과 정진석△조사2과 어원△대전사무소 양주석 박시석△서울 국민·기업불편신고센터 남기철△광주 국민·기업불편신고센터 조승현△부산 국민·기업불편신고센터 정재종[기획관리실]△기획담당관실 황해식△결산담당관실(재정분석TF) 강성덕△성과·제도담당관실(전산운영팀) 송영소△국제협력담당관실(ASOSAI사무처) 이주형[심의실]△법무담당관실 이진열△심사1담당관실 이종각 남가영[감사품질관리관실]△조정1팀 유종남 오준석 이성훈 최익성△조정2팀 홍성모 한영욱 이상혁 김하석[감사교육원 교육운영부]△교육운영1과 배정량 홍성재△교육운영2과 김학순 김태석 ■방송통신위원회 ◇과장급 전보 △정책관리담당관 곽진희△국제기구〃 유대선<과장>△융합정책 오승곤△디지털방송정책 송상훈△방송정책기획 이정구△지상파방송정책 장봉진△방송채널정책 오광혁△통신정책기획 이상학△통신경쟁정책 이창희△통신자원정책 이재범△조사기획총괄 최영진△시장조사 전영만△이용자보호 박철순△시청자권익증진 박준선<팀장>△방송통신녹색기술 최우혁△네트워크정보보호 이상훈△홍보기획 이승원△공보 정성환 ■국무총리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 고기석 ■특허청 ◇부이사관 승진 △정보기획국 정보기획과장 최종인◇부이사관 전보△국가지식재산위원회 지식재산진흥관 파견 박성준◇과장급 전보△고객협력국 국제협력과장 권규우 ■우정사업본부 △새주소우편전략팀장 천장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책기획실장 차두원△성과확산〃 손석호 ■중소기업중앙회 ◇상근이사 승진 △경영기획본부장 김철기△인재교육〃 강성근 ■부산항만공사 ◇전보 △선진경영팀장 김찬규△전략기획실장 차민식△감사팀장 이채복△홍보실장 최철희 ■서울대 ◇서기관 △기획과장 정봉문 ■포스텍(포항공대) △부총장(대학원장 겸임) 장태현<처장>△기획 김무환△교무 이진수△입학(학생처장 겸임) 한성호△연구(산학협력단장 겸임) 김승환△학술정보 박찬익 ■고려대 △교무부총장 강선보△교무처장 명순구△법과대학장(법무대학원장·법학전문대학원장 겸임) 박노형 ■건국대 <서울캠퍼스>△사범대학장 최은식△교육대학원 행정실장 강대용<글로컬캠퍼스>△입학처장 강흥중△중원도서관장 백우진<건국대의료원>△원장 양정현 ■홍익대 △공과대학장 김병주△산학협력단장 박상주△교학관리처장 장인식△입학관리본부장 이정해△중앙도서관장 김철중△문정〃 권석기△공학교육혁신센터소장 이호경 ■경북대 △부총장(대학원장 겸임) 임지룡△교무처장 김규원△학생〃 김장억△기획〃 최평△대외협력〃 서정해△산학협력단장 김화중△입학관리본부장 유기영△국제교류원장 이광목△교무부처장 박환배△학생〃 채연숙△대외협력〃 김정철△입학관리본부 부본부장 김판수△신문방송사 주간 왕태웅△출판부장 홍순상△농업생명과학대학부속실험실습장 박순기△산학협력지원단 분단장 김재수△평생교육원 분원장 강우원△기초교육원 부원장 류승필△보건진료소장 이종명<관장>△도서 장태원△생활 이원희△공동실험실습 김영호△자연사박물 김교원<원장>△정보전산 김상욱△어학교육 이예식△국제농업훈련 신동현△평생교육 김효신△과학영재교육 이광필△정보영재교육 한욱신△사회과학연구 배양일△반도체융합기술연구 신장규△한국어문화 남길임△교육연수 성위석<센터장>△체육진흥 강호율△실험동물자원관리 류재웅△IT융복합글로벌인재양성 조진호△중소기업산학협력 박재경<단장>△테크노파크 김광태△산학협력중심대학산업 이상룡△노화극복웰빙을위한의료기술개발사업 김정철 ■숙명여대 △대학원장 조무석△교육대학원장 송기창△연구처장 강명욱△박물관장 임중혁△아태여성정보통신원장 최동주△창업보육센터장 김규동△숙명역사관장 목은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학처장 설원기△기획〃 김수기△음악원장 박광서△영상〃 장윤희 ■국민일보 △경영전략실장(이사대우) 최삼규△판매국장 직대 박문수 ■한국일보 ◇승진 △경영지원국 국장 최성범△재무관리국 〃 김경순 ■동부증권 ◇보임 △영업추진팀장 김찬구△경영혁신파트장 인태욱△업무개발〃 정재균△모바일TF팀장 박상열△명일지점장 김성수 ■신영증권 ◇이사 선임 △IB본부 김성택 ■유진투자증권 ◇상무 승진 △채권금융본부장 차장훈△파생법인영업파트장 최현 ■한화증권 △리스크관리본부장 문철호 ■동양그룹 ◇승진 △동양/매직 이사대우 김삼열 ■서울대병원 △대외정책실장 이종구
  • [그린경영] 현대건설

    [그린경영] 현대건설

    최근 주거문화 트렌드는 ‘친환경’이다. 현대건설도 친환경·저에너지 주택 건설을 앞세워 친환경 그린 힐스테이트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 주택시장을 지배해 온 살기 편한 집과 브랜드 아파트 구축에서 탈피해 한발 앞서나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2012년 표준 주택 대비 가구 총 에너지의 50% 절감이 가능한 아파트 공급을 목표로 설정했다. 고효율 단열재와 친환경 마감재를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과 에너지 사용을 줄인 것은 물론 자체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 태양광·소형 풍력발전 시스템 등 힐스테이트 현장에 적용된 친환경 아이템은 다양하다. 우선 국내 처음으로 ‘탄소 저감(Carbon-Free)’ 디자인을 채택했다. 제품 설계 단계부터 생산, 관리까지 친환경 시스템과 재료를 활용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발생을 억제하고 에너지를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예컨대 태양광을 활용하면 태양광 발전을 통해 화석연료량을 줄일 수 있고, 지하주차장의 천장을 통해 빛을 통과시켜 전력 소비량도 획기적으로 절감한다. 단지의 지형을 활용해 소형 풍력 발전시스템을 가동할 수도 있다. 벽체에는 고단열재와 친환경 마감재를 사용하고, 인테리어 아이템으로는 절수형 변기, 부엌 쓰레기 건조대, 실별 온도조절 장치 등을 적용해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단지 안에선 태양광 뮤직 파고라와 빗물 집수·정화 기능을 갖춘 생태 연못과 옥상, 옹벽 녹화를 통해 생태단지를 추구하고 있다. 이 중 태양광 뮤직 파고라의 경우 이미 힐스테이트 건설 현장에 적용됐다. 정자 형태의 단지 내 쉼터로, 기존 벤치 기능만 있던 것과 달리 사람이 접근하면 센서가 작동해 조명과 음악이 제공된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구미 ‘TK케미칼’ 공장 폭발… 5명 사망

    경북 구미공단에 있는 ‘TK케미칼’ 합섬1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 5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지난 27일 오후 1시 35분쯤 구미시 공단동 섬유 원사를 생산하는 TK케미칼 공장의 기술연구소에서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폭발로 3층짜리 기술연구소 건물의 2층에서 일어난 불이 2, 3층 전체로 옮겨붙었다. 당시 연구소에서 있던 직원 7명 중 부소장 홍명혁(49)씨 등 4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1명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이들은 샌드위치 패널 재질의 3층 건물인 기술연구소의 2층 시제품 생산시설이 있는 곳에서 근무하던 중에 변을 당했다. 중상을 입은 연구소 차장 권기석(45)씨 등 2명은 대구의 화상전문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다. 불은 철구조물인 건물 2, 3층 5000여㎡를 모두 태우고 1시간 50여분 만에 꺼졌다. 사고가 나자 소방당국은 소방차 26대와 소방관 110명을 투입해 오후 3시 30분쯤 불길을 잡았으나 폭발에 따른 유독가스와 연기 등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장에 들어간 소방관과 경찰관은 건물 2층 바닥에 숨진 4명의 시신이 쓰러져 있고 2, 3층을 잇는 천장과 벽면에서 무너진 건자재와 패널 등이 나뒹구는 등 처참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실험실에서 직원들이 화공약품을 이용해 폴리에스테르 신제품 개발실험을 하던 중 폭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경찰은 연구소장 등을 소환해 안전관리 소홀 여부를 조사한 뒤 결과에 따라 처벌하기로 했다. 한편 폭발 사고가 난 TK케미칼은 1965년 설립해 섬유산업을 해온 동국무역의 후신으로 2008년 2월 SM그룹에 인수됐으며, 자사 홈페이지에 ‘연간 7억 달러 이상의 폴리에스테르·스판덱스 원사와 PET 칩을 수출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회사 측이 사고 발생 이틀째까지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유족 등으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 한 유족은 “언론매체에서 소식을 접하고서 달려왔다.”면서 “회사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며 분노했다. 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사망자 ▲홍명혁(49) ▲이승복(47) ▲김승배(46) ▲서옥권(44) ▲남영현(45)
  • [新 베트남 기행] (하) 끝없는 남진정책이 낳은 사회상

    [新 베트남 기행] (하) 끝없는 남진정책이 낳은 사회상

    여정의 첫 기착지인 수도 하노이의 날씨는 무덥고 습했다. 중부의 고도 후에의 햇살은 모든 것을 숨 막힐 듯한 무시간의 정적 속으로 몰아넣는 강렬한 것이었다. 그러나 옛 월남의 수도 호찌민의 밤은 예상 밖으로 서늘했다. 상하의 나라 베트남의 날씨는 이렇게 지역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안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까지 장장 1750㎞에 걸쳐 길게 뻗쳐 있는 나라이니 이와 같은 기후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기후 차이가 서로 다른 물리적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또한 역사적으로 독특한 지역 문화와 전통을 일구어 낸 중요한 변인으로 작용했다. 10세기 경, 천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을 때 베트남의 영토는 홍하(紅河) 델타를 중심으로 한 북부에 국한되어 있었다. 중부에는 문화 전통이 다른 참파 왕국이 약 천년 동안 존속해 왔고, 남부는 앙코르와트에 수도를 두었던 캄보디아에 속해 있었다. 독립 왕조를 세운 이후 베트남은 남쪽으로 영토를 넓혀 나가는 남진 정책에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15세기 무렵 중부를 병합하고 이어 300년 뒤인 18세기에는 마침내 남쪽 기름진 메콩 강 델타를 영토에 편입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북·중·남부를 포괄하는 베트남 최초의 통일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가장 큰 과제는 지방 분권화의 줄기찬 요구를 다독거리는 것이었다. “남북은 일가”라는 명제는 호찌민의 정치적 구호이기에 앞서 19세기 응우옌 왕조가 통치 이념으로 이미 강조했던 것이다. 응우옌 왕족의 건국이 1802년이고, 왕국이 프랑스의 식민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이 1859년이니, 전통시대 베트남의 통일된 역사는 실제로 반세기에 불과했다. 정치적 통일을 이룬 오늘의 베트남을 말하면서 사회문화적 혼종성(hybridity)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적으로는 ‘일가’를 이루었지만 북·중·남부 지역은 여전히 독자적인 지역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서 중부 후에와 호이안을 거쳐 남부의 호찌민까지 종주하는 이번 여정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유교문화가, 참파 왕국과 푸난(扶南)왕국이 있었던 중남부는 인도의 영향이 짙은 불교문화가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특히 남방문화에는 힌두교의 색채도 가미되어 에로틱한 힌두교의 비슈누와 가네슈의 신상도 호찌민의 역사박물관에서는 찾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혼재하는 서로 다른 문화 전통에 식민지 시대에 유입된 프랑스 문화가 뒤섞이면서 베트남은 한층 다채로운 하이브리드 문화를 창출해 냈다. 베트남의 건축물에서도 이 점을 엿볼 수 있었다.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에서는 폭이 좁고 긴 세장형의 토지 위에 3~4층으로 쌓아올린 튜브 하우스 스타일의 집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중부의 후에나 남부의 호찌민에는 그런 양식의 집은 그렇게 많지 않고 오히려 주황색 오지기와를 얹은 유럽풍의 집들이 종종 눈에 띈다. 중부의 고도 후에에 자리한 응우옌 왕조의 황궁 태화전은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한 것이지만, 궁성의 외곽에는 유럽의 성채를 모방한 해자가 설치되어 있다. 후에를 가로지르는 향강(香江)의 북안에 산재해 있는 왕릉에서도 토착 양식과 외래 양식이 동거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응우옌 왕조의 2대 황제였던 민망 황제의 장중한 왕릉의 경우 건물은 중국식이지만 내정의 정원은 서양식이었다. 이 기묘한 절충과 조화는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가 선황제를 기려 건설한 화려한 카이 딩 왕릉에서는 독특한 예술미로 표출된다. 묘소로 오르는 109개의 계단 양편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용의 형상에 압도된 관람객의 눈앞에 펼쳐지는 왕릉의 내부는 서양의 성당에서나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타일, 유리 및 녹색의 옥으로 장식된 화려한 벽면, 그 사이사이를 수놓고 있는 다양한 주제의 벽화, 그리고 거대한 천장화로 한 편의 만화경을 이루고 있다. 이런 독특한 혼성 양식의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는 후에는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후에에서 다낭을 거쳐 호이안에 이르는 해안에는 백사장이 줄곧 이어진다. 넘실대는 짙푸른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과 야자수 그늘이 피곤한 여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해안을 따라 곳곳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리조트, 콘도, 호텔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특히 다낭의 해변에 건설되고 있는 휴양단지는 엄청난 규모여서 사회주의 체제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자본주의의 거센 물결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념과 실용주의의 이와 같은 절충 또한 하이브리드 문화의 한 단면이다. 글 사진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수상록’의 미셸 드 몽테뉴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수상록’의 미셸 드 몽테뉴

    1560년, 수년간 ‘진짜’ 마르탱 게르 행세를 한 ‘가짜’ 마르탱 게르에 대한 재판이 파리 고등법원에서 진행되었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책과 영화로도 잘 알려진 이 희대의 사건은, 재판 말미에 진짜 마르탱 게르가 출현하는 대반전을 거쳐 가짜 마르탱 게르가 처형당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당시 보르도 고등법원에서 근무하면서 이 사건을 전해들은 몽테뉴는, 이 사건의 진실을 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가짜 마르탱 게르는 최선을 다해 진짜 마르탱 게르로 살았고, 진짜의 죽마고우도 아내도 모두 가짜 마르탱 게르를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진실은 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법이 진실을 판단할 권리와 능력이 있는가. 몽테뉴가 보기에 마르탱 게르 사건은 법이나 지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모순성과 삶의 불가해함, 사실을 넘어선 진실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 루터파냐 칼뱅파냐를 기준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가짜 마르탱 게르’처럼 온전히 자신의 행위와 말과 정신으로 자립(自立)하기를 갈망했던 자. 삶의 진실을 신에게 묻지 않고 자신의 걸음 속에 담고자 했던 자. 스스로 미친 자가 되어 길을 떠난 돈키호테보다 조금 앞서, 여기, 자신을 탐색함으로써 광기의 시대를 온전히 살아낸 자, 몽테뉴가 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네 힘을 다해서 하여라. 네가 장차 들어갈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 몽테뉴는 ‘전도서’의 구절을 12개나 발췌하여 서재 천장에 명문으로 새겨 놓았다고 한다. 몽테뉴가 인용한 유일한 성서 구절이다. 살벌한 ‘종교의 시대’에 몽테뉴는 대담하게도,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그는 고전 속에서 자기 시대와 인간을 읽었으며, 고전을 통해 전란의 늪에서 재생(Re-naissance)할 수 있었다. 흔히 르네상스를 찬란한 빛과 색의 시대로 상상하지만, 정작 16세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전쟁과 죽음이다. 1598년에 낭트칙령이 공포됨으로써 기나긴 종교전쟁이 막을 내리기 전까지, 가톨릭과 이에 ‘항의’하는 프로테스탄트, 종교를 내세운 왕과 귀족들의 대규모 살육경쟁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거기에 기근과 페스트까지, 16세기는 흡사 태피스트리처럼, 화려한 문예부흥의 뒷면에 상상할 수도 없는 상처와 모순을 깔고 있었다. 휴머니즘? 그런 건 헛되고 헛된 이상에 불과했고, ‘그리스도의 이름’은 살육에 필요한 명분일 뿐이었다. “기독교의 적개심만큼 격렬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신앙심은 우리의 증오심, 잔혹함, 야심, 탐혹, 중상모략, 반역의 성향을 조장할 때는 참으로 놀랄 만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의 종교는 악덕을 근절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오히려 악덕을 감추고 키우고 부추기고 있다.” 전란의 한복판에서 몽테뉴는 그리스, 로마인들의 절제된 태도를 견지한 채 광신의 결과를 묵묵히 응시했다. 에라스무스의 자유주의 교육을 신봉하고, 칼 대신 펜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간파한 부친은 몽테뉴에게 두 살 때부터 라틴어를 교육시킨다. 우리로 치면, 모두가 한글을 쓰는 시대에 한문으로만 말하고 쓰게 하는, 기이한 조기교육을 실행한 셈이다. 몽테뉴가 어떤 종교나 정파와도 거리를 두며 보신(保身)할 수 있었던 데는 부친의 이런 ‘반시대적’ 조기교육이 공헌한 바가 크다. 청년기에 파리 왕립교수단에서 그리스 철학을 공부한 몽테뉴는 유학을 마치고 고향 보르도로 돌아온 1557년부터 고등법원에서 조세심의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어떤 절차로 법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법관이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법률이 신뢰를 얻는 것은 공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법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법률이 가진 권위의 불가사의한 근거이고, 그 밖에는 아무 근거도 없다. 어쨌든 늘 공허하고 판단이 불안정한 인간이 법률을 만든다.” 몽테뉴의 ‘몽테뉴다움’이 여기 있다. 그는 한번도 자신이 서 있는 지반을 확신한 적이 없다. 법관으로 근무할 때는 법의 판단력을, 파리 궁정에서 왕의 시종무관으로 근무할 때는 국가와 군주권력의 토대를 의심했다. 가톨릭이었지만 프로테스탄트에 적대적이지 않았고, 또 한편으로는 ‘새것’을 만들려는 일체의 개혁주의에 진저리를 쳤다. 확신으로 움직이는 제도와 권력에 대한 주의 깊은 거리감 때문인지, 후대는 그를 비겁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몽테뉴는, 모든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유토피아’를 상상한 대가로 처형된 토머스 모어보다는, “우리 인간은 얻어맞거나 걷어차이면서도 왜 이처럼 참을성 있게 폭군의 굴레와 족쇄를 감수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했던 에티엔 드 라 보에시에 주목한다. 나는, 인간은 왜 이토록 무력한가. 인간이란 모순으로 가득 찬 존재고, “자신에 대해 절대적으로, 단순하게, 결정적으로, 혼란이나 혼동 없이, 단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자신을 끔찍하게 미워했던 어머니와, 동생과 바람난 아내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음경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을 동반한 신장결석증을 앓으면서도 병원 한번 찾지 않고 고통을 감내한 것도, 어떤 것도(그것이 심지어 병이나 죽음일지라도) 함부로 판단하거나 내쳐서는 안 된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일생의 화두는 이런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13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마흔 살이 된 몽테뉴는 고향으로 내려가 이 문제에 대한 탐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에세’, 전장에서의 산책 “무언가를 찾는 사람은 누구나 ‘찾아냈다’, ‘찾을 수 없다’, ‘아직 찾고 있다’ 가운데 어느 하나로 귀착한다.” 몽테뉴가 주목한 것은 ‘아직 찾고 있는 중’이었던 회의론자들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도 입증될 수 없다. 판단의 주체도, 판단의 대상도 끊임없는 변화와 동요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성을 필요로 하는 건, 결정하고 선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전제를 의심하기 위해서다. “회의론자는 온갖 의견들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반대되는 판단은 나를 분개시키지도 흥분시키지도 않고, 오히려 나를 눈뜨게 하고 단련할 뿐이다.” 이것이 몽테뉴 식의 회의였고, 때문에 그의 회의는 가볍고 명랑하다. 1572년부터 거의 죽기 직전까지 수정과 첨삭을 거듭하며 집필한 ‘에세’는 그의 명랑하고도 예리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흔히 ‘수상록’으로 번역되는 ‘에세’(Les Essais)는 몽테뉴 자신의 말을 빌리면 “정신의 잡동사니”이자 사유 시험(essai)이라고 할 수 있다. 몽테뉴는 “평화가 그 온전한 모습을 보여준 일이 전혀 없던” 전쟁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즉흥적 사유를 기록하는 일에 몰두한다. “여기에 쓰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내 타고난 능력의 시험(essai)일 뿐, 후천적으로 얻은 능력의 시험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남들이 내 무지를 공격해도 별로 곤란할 건 없다. 무지의 자각이야말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는 가장 아름답고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리 흐트러진 걸음걸이라도 평소의 자연스러운 내 걸음걸이를 보여주고 싶다.” 문체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침착함과 단순함, 종종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명랑한 어조 때문에 ‘에세’를 읽으며 화약냄새와 총포 소리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몽테뉴는 평가하고 판단하기보다는, 판단을 중지한 채 의심하고 회의한다. 그는 신 앞에서 맹세의 언어를 남발하는 권력자보다는 시장의 언어로 삶의 지혜를 기록하는 은자(隱者)가 되길 꿈꿨다. 무도한 세상이 종종 그의 판단과 능력을 필요로 하기도 했지만, 그때도 그는 중심을 잃지 않고 나아갔다가 침착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펜으로 걸었다”. “인생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대가 인생에 마련해 주는 자리의 좋고 나쁨에 따른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서 인간과 자연과 이성을 사유한 몽테뉴가 터득한 지혜다. ●니체·푸코가 회의주의 본받아 세상을 편히 사는 법을 알아내라는 과제가 주어진다면 몽테뉴와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던 니체는, 손을 떨게 하거나 눈물을 글썽거리게 하지 않는, 겸허하면서도 용기 있는 그의 사상을 예찬했다. 우리는 인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만 말할 수 있을 뿐, 인간의 본질이라든가 의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푸코 역시 몽테뉴의 회의주의를 한편에 늘 품고 있었다. 우리 자신의 최고 걸작품은 “떳떳하게 살아가는 일”이라며, 과(過)도 부족도 없이 “분수에 맞는 평이하고 건강한 지혜”를 최고의 지혜로 삼았던 몽테뉴. 이 죽음과 불안의 시대에, 나 역시 그의 가르침을 본받고 싶다. “나는 그날그날을 살고 있다. 그리고 실례인 줄 알면서도, 단지 나만을 위해 살고 있다. 내 목적은 그것뿐이다.” 채운 남산강학원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9) 두려움이 만든 ‘복합자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9) 두려움이 만든 ‘복합자살’

    “형제님, 안에 계신가요?” 2003년 2월 16일 오전 10시 경기 OO시 OO읍 철물점 뒤 단칸방. 인근 개척교회의 유모(당시 45세) 목사는 신도 A씨를 깨우려고 문을 열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3평 남짓한 작은 방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온통 피칠갑이 돼 있고, 40대인 A씨는 방 한가운데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뒤통수와 목, 복부 등 상처도 한두 곳에 난 게 아니었다. 방 한 구석에는 파이프렌치와 망치가, 또 다른 쪽에는 깨진 박카스 병과 액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A씨의 머리를 때린 것은 바로 그 파이프렌치와 망치였다. 머리 위쪽과 뒤통수에 여러 차례 둔기로 맞은 흔적이 있었다. 턱 아래쪽 목에는 모두 3개의 자상이 있었다. 복부에도 각각 7㎝와 4㎝의 자상이 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타살의 현장이 분명했다. #알코올중독자 둔기 자해로 안 죽자 유리로 자살 경찰 감식반은 애를 먹었다. 이 작은 방 어디에서도 살인범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천장에 피가 튈 정도로 범행 수법이 잔혹했다면 분명히 범인 몸에도 피가 튀었을 테지만 출입구는 나간 흔적이 없었다. 현장에서 수많은 족적과 지문이 나왔지만 모두 숨진 A씨의 것이었다. 혈흔도 의문을 던졌다. 혈흔이 그려 낸 죽은 이의 최후는 결코 탈출하려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감식반은 마지막으로 DNA와 지문에 기대를 걸었다. 그 결과 또한 실망스러웠다. 어렵게 채취해 의뢰한 11개의 증거 자료 어디에서도 침입자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몸이 크게 훼손돼 있으면 통상 사람들은 타살을 떠올린다. 피범벅 등 현장이 잔혹할수록 이런 생각은 짙어진다. 이건 수사관들도 예외가 아니다. A씨 사건은 한 달여의 수사 끝에 자살로 결론 났다. 경찰이 판단한 사건 정황은 이러했다. 이혼 후 심한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이며 삶을 비관해 오던 A씨는 자살할 결심을 했다. “못 박을 게 있다.”며 철물점 주인집에서 망치와 파이프렌치를 빌렸다. 그는 이것들로 여러 차례 자기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날카로운 것을 찾아 부엌으로 갔다(이런 동선은 문지방과 부엌에서 나온 적하혈흔 등을 통해 추론된 것). 마땅한 것이 없자 그는 유리를 떠올렸다. 그는 깨진 박카스 병과 액자 유리를 차례로 이용해 자기 몸을 찌르고 베었다. 결국 그는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목과 배에 나타난 상처는 A씨가 오른손에 거머쥐었던 유리 조각에 의한 것으로 결론 났다. 현장에서 타인의 DNA나 지문이 전혀 나오지 않은 점도 자살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했다. 정황 증거도 참고됐다. 그는 불과 6개월 사이 네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었다. 손목을 긋고, 차에 뛰어들고, 돌로 스스로 머리를 내리쳤다. 그때마다 유 목사 등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나곤 했다. #70대 자살 노인, 급소 못 찾아 ‘주저흔’ 남겨 현장의 참혹함은 때론 검안의마저 혼란에 빠뜨린다. 다음은 검안의까지 타살로 규정했다가 나중에 뒤집어진 경우다. 2003년 12월 10일 오후 5시 경기 OO시 한 주택가. 방안에는 70대 노인 B씨가 벽을 향한 채 숨져 있었다. 목에 감긴 전깃줄은 벽 위쪽 못에 걸려 있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B씨였다. 이마와 머리 곳곳에 각각 칼에 베이고 망치에 찍힌 듯한 상처들이 나타났다. 방 한쪽에서는 피가 엉겨붙은 망치와 칼이 발견됐다. 시신을 검안한 인근 병원 의사는 “목에 있는 끈 자국은 누군가 전기선 등으로 잡아당긴 교사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마와 얼굴에 난 칼과 망치 자국은 각각 열상과 좌상으로 중풍에 걸린 노인이 자해해 생긴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진 부검과 경찰 조사에서 이 말이 뒤집혔다. B씨는 최종적으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났다. 부검의는 “이마와 얼굴에 출혈을 동반한 상처가 여럿 있긴 하지만 뇌 등 주요 장기를 다치게 할 만큼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면서 “목을 구성하는 방패연골이나 목뿔뼈 등이 부러지지 않았고 목 주위 물렁뼈 등에도 손상이 없는 것으로 봐서 죽음의 원인은 타인의 목 누름에 의한 질식사가 아니다.”고 밝혔다. 가족과 건강문제 등을 비관한 노인은 자기 집에서 망치와 칼, 한복끈과 전깃줄 등으로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다는 게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수사진의 결론이었다. 이렇게 두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자살을 하는 것을 법의학적으로 복합자살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자 2차, 3차 계속해서 자살을 이어가는 것이다. 전체 자살의 5%가 이런 복합자살이라는 외국 통계도 있다. 여기서 드는 깊은 의문 한 가지. ‘기왕 죽을 작정을 했다면 왜 그토록 자신에게 가혹하게 굴까.’ 하는 점이다. 법의학자들은 자살하는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흉기로 자살하려는 사람은 고통 없이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겁을 낸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국과수 관계자는 “영화를 보면 타살의 흔적은 무조건 잔혹하게, 자살의 흔적은 평안하게 그려지지만 실제는 이와 반대인 경우가 상당수”라면서 “때론 자살자의 몸에서도 수십 개의 자상(베이는 것)이나 창상(찔리는 것)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상처의 개수만으로 자살, 타살을 구분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스스로 치명적인 곳을 한 번에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처를 모두 법의학적으론 주저흔이라고 부른다. A씨와 B씨의 몸에 난 여러 개의 상처 역시 주저흔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이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고민한다. 생(生)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부고]

    ●송하식(국방일보 편집인·전 문화일보 기자)씨 부친상 2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8일 오전 4시 (02)2227-7560 ●정의훈(국방일보 사진기자)씨 장모상 26일 경기 부천장례식장, 발인 28일 오전 7시 (032)654-7188 ●김종천(경북도의회 의원)종식(대원개발 대표)씨 모친상 26일 경북 영주기독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54)630-6401 ●허승재(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과 교수)윤재(에스제이씨 상무)씨 부친상 이호성(석영엔터프라이즈)안봉선(대전보건대 교수)씨 장인상 박애자(중앙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씨 시부상 2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8일 오전 7시 (02)3410-6914 ●김수란(전남일보 기자)씨 조모상 26일 전남 나주 영산포제일병원, 발인 28일 오전 9시 (061)334-1444 ●유지향(KBS 기자)씨 조모상 25일 전남 여수 제일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61)692-4445 ●강건국(가일미술관 관장)씨 모친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11시 (02)3010-2295 ●김영수(롯데카드 동부채권지역 총괄지역장)씨 장인상 26일 경기 평택 중앙장례식장, 발인 28일 오전 10시 (031)668-4493 ●김병규(교육과학기술부 지방교육재정과장)씨 부친상 26일 경남 진주의료원, 발인 28일 오전 9시 (055)771-7926 ●송찬호(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씨 별세 계훈(연구원)계욱(정형외과 의사)씨 부친상 2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8일 오전 7시 (02)2227-7580
  • 사연따라 연예 반세기(演藝 半世紀)…그시절 그노래(4)

    사연따라 연예 반세기(演藝 半世紀)…그시절 그노래(4)

    31년도의「삼천리(三千里)」가 지적했듯이 윤심덕(尹心悳)은 관부(關釜) 연락선의 갑판 위에 신발을 벗어 놓은채 현해탄(玄海灘) 투신이 아닌「이탈리아」행을 한 것일까? 그가 1897년생이니까 올해 나이 76살. 설혹 정사설(情死說)이 사실이 아니라 해도 이제 고인이 됐을 가능성이 많다. 어쨌든 그녀는『사(死)의 찬미(讚美)』가「히트」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대중 가요계의 첫「달러·복스」역을 했다. 물론 돈을 번 것은 가수가 아니고「레코드」사다. 일부 부유층의 장식품 정도로 희귀했던 축음기가『사(死)의 찬미(讚美)』이후 무섭게 보급되었다.「소리판(레코드)」의 위력이 처음으로 방방곡곡에 과시된 것이다.  그 때의 취입료는 한판 1곡에 2백원, 7곡이면 1천4백원이다. 1천4백원이면 10여간자리 기와집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부호의 아들이면서 집 한채 없이 셋방을 전전하던 김우진(金祐鎭)과 그의 애인 윤심덕(尹心悳). 윤심덕(尹心悳)은 취입료로 받은 1천4백원의 거금을 마지막 사랑의 향연에 아낌없이 던져버린 것일까? 그리고「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면서 세상을 떠난 것일까?   사실 윤심덕(尹心悳)이 창가조의 가요를 부른 건 위대한 성악가의 꿈을 지녔던 그녀로서는 마지막 자포자기 같은 거였다. 그 때 대중가요 가수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그러했다.  창기(唱妓)들까지도『광대는 안한다』고 했다. 신극 무대의 막간 가수를「스카우트」하려고 창기(唱妓)한테 여가수가 되기를 권유했을 때 한 기생은『비록 팔자가 기구해서 이 짓을 하고 있지만 어찌 광대노릇까지 하겠느냐』고 한마디로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  가수가 하나의 직업인으로 독립할 수 있는가도 문제였다.  여가수의 선구자가 단연 기생이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양가집 규수가 가수가 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손쉬운 게 기생이었다.  1920년~30년대는 가위 기생의 전성시대였다. 서울에만도 조선권번(朝鮮卷番), 한성권번(漢城卷番) 등 많은 권번에 2천여명의 기생이 집결하고 있었다. 가무의 본고장이 바로 기생방이고 기생의 노래가 바로 대중가요「신민요」였다. 이래서「레코드」사는 우선 손쉬운 기생들 가운데서 가수를 찾았던 것이다.  기생 출신의 가수로 이름을 날린 건 선우일선(鮮于一扇), 왕수복(王壽福), 이은파(李銀波), 이화자(李花子), 김복희(金福姬), 김운선(金雲仙), 손금홍(孫錦紅).  특히 평양명기 선우일선(鮮于一扇)과 경기도 부평(富平) 태생의 이화자(李花子)의 인기는 대단했다.  선우일선(鮮于一扇)은『꽃을 잡고』『능수버들』(모두 金敎聲 작곡), 그리고 형석기(刑奭基) 작곡의『조선팔경』을 「히트」시켰다.  <에, 금강산 일만이천 봉마다 기암이요. 한라산 높아 높아, 속세를 떠났구나. 에헤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다. 명승의 이 강산아 자랑로구나>  선우일선(鮮于一扇)의 이『조선팔경(朝鮮八景)』은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으니까 반세기를 내려오는 고전급 유행가라 할까? 아름다운 조국에의 찬가이자 그 때의 망국한(亡國恨)을 달랜 구성진 노래다.  또 한사람 인기 기생가수에 왕수복(王壽福)이 있다. 왕(王)도 선우일선(鮮于一扇)과 마찬가지로 평양기생이었다. 선우일선(鮮于一扇)은 목소리가 곱고 절대적이었지만 얌전하고 수동적이어서 끝내 기생의 자리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왕수복(王壽福)은 달랐다. 그는 야심이 있고 활동적이었다. 수완이 좋아서 부호, 한량들은 마음대로 움직였다.『능수버들』(金敎聲 작곡)이「히트」하자 그는 당시의 재벌 박(朴)모씨를 움직여 동경(東京) 유학까지도 할 수 있었다.  비슷한 경우가 손금홍(孫錦紅)이다.  그는「포리돌·레코드」에서『무정(無情)』(全壽麟 작사·작곡)을 취입,「히트」시켜 명성을 날렸다.『오락가락 무심타, 쓸쓸한 세상. 누굴 믿고 산단 말이오, 누굴 믿고 살아요』라는 짤막한 가사. 기생들의 외로운 신세를 한탄하는 이 노래는 당시 장안기생의 주제가쯤 되었다.  그런데 이 노래의「히트」이면엔 재미있는「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화신(和信) 자리에 있던 한창(韓昌)「빌딩」의 주인 한(韓)모씨가 이『무정(無情)』의「레코드」가 나오는대로 매점(買占)했다는 것. 수천장씩 나오는대로 한(韓)씨는 사들여 창고에 넣고「레코드」사는 좋아라고 자꾸 찍어내어 결국 한 사람 상대의「베스트·셀러」가 된 셈이다.  어리석은 장사 속셈이었다는 설도 있고 한(韓)씨가 손금홍(孫錦紅)을 밀어주는 방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그 인연으로 손(孫)은 한(韓)씨의 애인이 됐다.  그러나 기생 출신 가수로 노래, 염문 양면에서 가장 화창하게 이름을 날린 게 이화자(李花子)다.  이화자(李花子)는 19살 되던 해 부평(富平)의 어느 술집에서 작곡가 가수 겸 배우였던 김용환(金龍煥)에게 발탁되었다. OK「레코드」에서 첫 취입을 한 것이『어머님 전상서』. 가냘픈 목소리, 색정적인 용모의 이화자(李花子)는 이 노래 하나로 하루 아침에 가요계의 여왕이 됐다. 그리고 이어서 나온『꼴망태 목동』『화유춘몽(花柳春夢)』『초립동(草笠童)』등이 그의 인기를 계속 굳혀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적(妓籍)을 버리지 않았다. 그를 만나려고 한량들은 은쟁반에 돈을 수북이 담아 명함과 함께 바쳐야 했다.  그때 돈이면 큰 돈인 2백원은 바쳐야 간신히 며칠 뒤에 한자리에 앉는 영광을 차지했다는 것.  인기에 못지않게 염문도 많았다. 가요계에「데뷔」할 무렵에는 김용환(金龍煥)과 염문을 날렸고 그 뒤엔 모 부호의 애첩이 되었다. 그러면서 남인수(南仁樹) 김해송(金海松)과 사랑놀이를 계속했다. 김해송(金海松)은 이난영(李蘭影)의 전 남편. 인기와 돈과 사랑을 마음껏 누린 이화자(李花子)는 뒤에 술과 아편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해방 다음 해인 46년 가을 그는 아무도 돌봐 주는 사람없이 혼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노래들은 뒤에 황금심(黃琴心)의 목소리로「리바이벌」이 되었지만 이화자(李花子)의 이름은 거의 잊혀져 가고 있다.<조관희(趙觀熙)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1월28일 제6권 30호 통권 제224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北 “재산파손 말라” 경고 왜

    북한이 22일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재산권을 처분한다고 통보하자 현대아산은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대아산은 “긴급회의를 열었으나 일단 북측으로부터 재산권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받고 정부와 협의해 봐야 대응방안을 밝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금강산지구 내 남측 자산은 투자액 기준으로 4841억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와 한국관광공사 소유 시설은 2008년 7월 완공한 이산가족면회소와 소방서, 문화회관, 온천장, 면세점 등 5개로 투자액은 1242억여원이다. 이산가족면회소의 경우 현 정부 들어 3차례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현대아산의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 현대아산과 한국관광공사가 공동소유한 온정각 동·서관, 에머슨퍼시픽의 금강산 아난티 골프·스파리조트, 일연인베스트먼트의 금강산패밀리비치호텔 등 민간시설은 동결조치됐다. 또 전력 공급을 위한 현대아산의 발전차량(1700㎾급 발전기 탑재) 3대도 고성항 부두에 있다. 북한이 남측에 대해 ‘재산파손 엄중처리’ 경고를 내린 것은 발전기를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 발전기가 없으면 전력 공급이 안 돼 북측의 법적 처분 이후에도 금강산지구 시설을 활용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남측 인원이 출경하면서 발전기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경고로 풀이된다. 북측은 통지문에서 “이 시각부터 관광지구의 모든 남측 시설물을 봉쇄하고 남측 인원들의 접근과 출입을 차단한다.”는 강경 조치를 취했다. 정부나 현대아산 측이 향후 발전기 반출이나 북측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불능화’를 시도할 경우 남북 간 물리적 충돌뿐 아니라 남측 인원의 신변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구 의정 탐방] 종로구의회

    [구 의정 탐방] 종로구의회

    “주민 불편이 있는 곳엔 우리가 먼저 간다.” 종로구의회 의원 11명은 유별나게 현장을 좋아한다. 의정활동 직후인 지난해 8월 북악팔각정을 찾아 지하주차장 방수 및 지상 녹지 조성 공사를 둘러봤다. 지하주차장 천장 균열로 녹슨 물이 차량을 더럽히고, 화장실에선 악취를 풍긴다는 말을 듣자마자 점검에 나섰다. 이렇게 똘똘 뭉친 덕분에 6대 구의원 전부가 지난 1년 동안 20차례나 현장을 함께 방문했다. 같은 기간 5대와 비교하면 3배를 웃돈다. 오금남 의장을 필두로 최경애·안재홍·현택정·박노섭·이숙연·김복동·이상근·정인훈·강민경·경점순 의원 등 11명은 취임 초부터 앉아서 주민을 기다리기보다 현장 확인을 통해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생산적인 의회상을 마련하는 데 뜻을 모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원들 스스로 각오를 되새겼다. 구 집행부의 주요 정책이나 사업도 현장에서 직접 설명을 듣고 주민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사직로 8차로에 횡단보도를 설치한 게 대표적이다. 그 전에는 사직로를 남북으로 건너려면 200m 떨어진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이나 사직공원 앞 지하보도를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 어린이와 노약자는 물론 비장애 주민들도 불편이 컸다. 그동안 의회를 중심으로 정부와 경찰청에 두 차례나 건의문을 보내 횡단보도 설치를 요구했지만 서울경찰청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에서 번번이 부결됐다. 하지만 구의원들은 굽히지 않았다. 경찰청에 주민들의 진정서를 내고, 경찰 관계자들과 꾸준히 협의해 결국 과속·신호위반 단속 카메라 설치를 조건으로 서울경찰청 최종 승인을 이끌어 냈다. 지난 4월에는 경기 고양시에 있는 음식물류 폐기물 자원화 시설을 찾아 처리 현황과 사업효과 등을 파악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설로, 고양시에서 철거를 요구하며 행정대집행을 통보하는 등 갈등의 불씨였다. 하루에 음식물 쓰레기 85t을 이곳에서 처리하는 종로구로서는 ‘발등의 불’이었다.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문제였지만 의원들은 고양시의회 의장 등을 만나 문제 해결을 꾀했다. 집행부끼리 날 선 신경전과 공방이 끊이지 않았지만, 논의의 공간을 만들고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데 구의원들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의회는 앞으로 고궁과 문화재 등이 밀집한 지역 특성을 고려해 문화·관광 산업을 진흥하고, 종로를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만드는 데도 힘을 쏟기로 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