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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바이오 해커’ 등장

    미국 매사추세츠의 한 젊은 여성은 대장균인 E 콜라이균을 유전적으로 변형시키는 데 성공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한 파트타임 DJ는 오염 하수에서 킬러 바이러스를 배양해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집안의 다락이나 벽장을 간이 연구실로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실험장비나 재료들은 모두 이베이 등 온라인으로 구입한다. 정부기관의 지원은 물론 제대로 된 연구실 없이 집안에서 생물학적 연구를 진행하는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은 ‘바이오 해커’(Bio Hacker).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집안의 자투리 공간에 미니 연구실을 만들어 은밀히 생물학 관련 실험을 하는 사례가 최근 미국에서 늘어나고 있다고 집중 보도했다.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작업을 진행하는 특성상 ‘하비스트’(hobbyist·취미생활자)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연구 목표는 놀라울 정도다. 시애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항공우주연구원 덴 헤이델(32)은 작은 창고를 빌려 값싼 바이오 연료를 개발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 사는 여성 캐서린 얼(23)도 자신의 아파트 벽장을 연구실 삼아 암 치료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성공만 하면 당장 지구촌 ‘대박’을 터뜨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WSJ은 바이오 해커들이 사회안전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의 2007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이 손쉽게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인공 DNA 등을 활용해 열대 전염병 에볼라나 천연두 같은 유해 바이러스도 얼마든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 마음만 먹으면 유해 실험재료들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즉시 구입할 수 있는 만큼 사회안전을 위한 규제장치가 서둘러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돼지 인플루엔자 비상] 삼성서울병원 강철인 교수 “환자 발생 가능성 예측 무의미… 국가·사회적 대응지침 마련을”

    [돼지 인플루엔자 비상] 삼성서울병원 강철인 교수 “환자 발생 가능성 예측 무의미… 국가·사회적 대응지침 마련을”

    전염병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했다. 중세의 페스트가 그랬고 천연두가 그랬다. 의학이 비교적 발달한 20세기 초에도 스페인독감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더니 21세기에 들어서는 ‘사스’에 ‘조류인플루엔자’까지 생겨 보건학 분야는 물론 사회·경제적인 부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최근 아시아권에서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는 인간 사회에서의 ‘인플루엔자 대유행’의 가능성을 예견케 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간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결합해 변종 바이러스가 만들어질 경우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의 많은 전문가들은 인간 사회에서 ‘인플루엔자 대유행’이 시작될 수 있는 고위험 지역으로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이런 예측을 비웃듯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양태로 나타나 긴장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바로 멕시코에서 시작된 ‘돼지인플루엔자’가 그것이다. 돼지에게 유행하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인간이 집단 감염되기 시작했고, 이런 인체 감염이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전염병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드물었던 미국으로서는 실로 당혹스러운 현실일 것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돼지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는 확정적인 징후는 없다. 하지만 미국 등 국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교류 실태를 감안하면 돼지인플루엔자 감염 환자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돼지인플루엔자 예방 조치는 국가·의료기관·개인이 역량을 모아 다각도로 수행해야 한다. 특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해외에서 바이러스가 유입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게 검역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기본이다. 또 국내에서도 돼지인플루엔자가 창궐할 수 있으므로 방역 등 수의학적 대책이 속도감 있게 마련돼야 한다. 의료기관도 비상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외래나 응급실을 통해 의심 환자가 방문했을 때 다른 환자에게 확산되지 않도록 감염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병원의 1차적인 역할이다. 돼지인플루엔자 의심 환자 및 감염환자가 발생했을 때 기민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신속대응팀 개념의 대비책을 갖춰야 사람이 밀집한 병원에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돼지인플루엔자가 유행하는 곳은 여행을 피하는 게 현명하다. 특히 동물들과의 접촉을 경계해야 한다. 또 돼지인플루엔자 유행 지역을 여행한 후 독감 증상이 보이면 지체없이 지정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 소홀히 했다가는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돼지인플루엔자이지만 미래에 다시 무슨 전염병이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영원히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음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예고 없이 창궐하는 전염병에 대비해 국가·사회적인 총체적 대응지침을 마련하는 일도 더 늦춰서는 안 된다.
  • 돋보기 안경 낀 다산

    돋보기 안경 낀 다산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초상화를 전남 강진군이 새로 조성해 17일 공개했다. 이 초상화는 한국 화단에서 수묵인물화가로 평가받고 있는 김호석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가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의 고증을 받아 그렸다. 가로 96㎝, 세로 178㎝ 크기이다. 김 화백은 다산이 환갑 때 쓴 ‘자찬묘지명’과 정규영의 ‘사암선생연보’에서 어릴 적 천연두를 앓은 흔적으로 눈썹이 세 갈래였다는 것과 독서와 저술로 시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기록 등을 참고했다. 또 다산의 직계후손 300명의 인상을 자세히 관찰해 얼굴을 묘사했다. 사방관과 쪽빛 도포, 붉은 도포 끈 등은 ‘당상관’ 벼슬을 지낸 품격을 재현하기 위해 도입됐다. 돋보기 안경도 끼고 있는데, 시력 약화와 서방문물에 열린 태도를 보여준 다산의 학문적 자세를 상징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난 다산은 38세에 강진으로 유배돼 18년을 지내는 동안 ‘목민심서’ 등 주요한 저술을 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앞서 1970년대에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다산의 초상화는 경기 남양주시 다산기념관에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러시아 동화·이주정책에 소수민족으로 전락 시베리아 원주민 수난사

    러시아 동화·이주정책에 소수민족으로 전락 시베리아 원주민 수난사

    1492년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는 유럽 또는 서구인의 시각에서 비롯된 서술이다. 그 땅은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존재했고, 아메리카 원주민 쪽에서 보면 콜럼버스는 유럽 침략의 단초를 제공한 불청객이었을 뿐이다. 콜럼버스가 자신이 도착한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한 까닭에 그곳 사람들은 ‘인디언’으로 불려 왔다. 서구의 시각으로 미화된 미국의 서부 개척사나 유럽인의 아프리카 탐험사로 가려졌던 토착민들의 수난사는 시베리아에도 닮은꼴로 존재한다. 1992년 영국에서 출간된 뒤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베리아를 방대하게 고찰한 역작으로 손꼽히는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솔출판사 펴냄)가 우리말로 옮겨졌다. 영국 에버딘 대학 러시아학과장으로 재직했던 제임스 포사이스 교수가 지었다. 언어학자의 저작이지만, 시베리아 지역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자주 인용할 정도로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은 러시아인의 시베리아 정복사가 아니라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피정복·피착취사에 초점을 맞춘다. 번역자인 정재겸 봉우사상연구소 편집위원은 “유럽의 작고 미개한 나라였던 러시아가 어떻게 그 광활한 시베리아, 동아시아, 알래스카의 원주민을 정복하면서 오늘날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이 어떻게 오늘날 이류 국민,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시베리아는 우랄산맥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북아시아 지역으로 넓이가 13억㎢에 이른다. 아시아 대륙의 3분의1, 러시아 영토의 77%를 차지한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터전을 꾸렸던 30여개 민족은 러시아의 동화정책과 이주정책으로 주인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원주민은 시베리아 전체 인구 3200만명(1989년 기준) 가운데 불과 5%인 160만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16세기 코사크 용병인 예마르크 원정대가 비싼 담비 모피를 쫓아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동진하면서 원주민의 수난사는 시작된다. 또 러시아가 19세기 캄차카 반도와 알래스카를 정복하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고르바초프 시대를 거치며 소비에트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400년 동안 러시아인들은 시베리아에 착취와 수탈, 가난, 자연 환경의 파괴, 천연두 등 이전에는 없었던 질병, 보드카 등 알코올, 게으름과 불결함을 몰고 온다. 특히 레닌주의 민족 정책이 시베리아 원주민을 포함한 소수민족 세계를 ‘인도주의’와 ‘정의’로 이끌었다는 옛 소련 역사가들의 주장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도 고스란히 조명된다. 강력한 집단화 정책으로 야기된 전통 문화와 생업의 파괴, 공동체의 붕괴 과정이 원주민과 러시아인이 자연스레 동화되는 과정으로 왜곡됐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 시베리아에 있었던 한민족의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포사이스 교수는 시베리아 원주민들에게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조언한다. 시베리아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시베리아 원주민과 우리 민족의 관계는 유전학적인 혈연 관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유물이나 풍습, 언어, 신앙, 영웅 설화까지도 많이 닮아 있다. 시베리아는 우리 민족의 기원과 연결되는 것이다. 때문에 전통, 종교, 사회, 언어 등 시베리아 원주민에 대한 인류학적인 고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아가는 데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바이칼포럼 공동대표인 이홍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아프리카를 떠나 동아시아로 이동해온 우리 선조의 도정을 알아내기 위해 이 책은 좋은 반려가 되어 줄 것이다. 시베리아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긴밀하게 얽혀 있는 땅이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광활한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540쪽, 3만 5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그래픽 김송원기자 nuvo@seoul.co.kr
  • 조선왕들 한글 얼마나 썼나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뒤쥭박쥭(뒤죽박죽)’ 같은 한글 표현이 들어 있다. 적당한 한문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자 성미 급한 정조가 한글을 그대로 적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글 표현이 익숙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조의 편지첩이 공개된 것을 계기로 조선의 왕과 사대부가 한글을 얼마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얼마나 썼는지 새삼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조선의 역대 왕은 적지 않은 한글편지를 남겼다. 선조가 1603년 딸인 정숙옹주에게 보낸 편지에는 마마(천연두)를 앓고 있는 동생 정안옹주를 걱정하지 말라는 배려가 담겨 있다. 숙종이 1680년경 누이인 명안공주집에 다니러 가 있는 어머니 명성왕후(현종비)에게 보낸 편지에는 완곡하지만 환궁을 재촉하는 내용이 들어 있고,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인 1641년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가 있을 때 장모에게 보낸 편지에는 함께 끌려간 척화파의 거두 청음 김상헌을 걱정하는 대목이 보인다.  정조의 한글편지는 모두 세 통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조가 왕세자의 맏아들인 원손(元孫)시절 숙모에게 보낸 편지와 세손(世孫·왕위를 이을 왕세자의 맏아들)에 책봉된 뒤 숙모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42세 때인 1793년 홍참판댁에 보내 편지(사진)가 그것이다. 특히 8세 이전으로 추정되는 원손 시절 정조의 한글 필적은 글씨가 아직 익숙지 않은 듯 삐뚤빼뚤하지만, 홍참판댁에 보낸 편지를 보면 정조는 한문 이상으로 한글도 명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왕이 쓴 한글편지는 대부분 여성에게 보낸 것이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당연히 한문을 썼지만 가족 같은 사적인 영역이나 여성과는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다.  양반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부인에게 보낸 40통 남짓한 한글편지가 남아 있다. 또 16세기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성균관 유생들이 만든 ‘한글 커닝페이퍼’도 전해진다. 사서삼경의 핵심적인 한자 문구를 작은 종이에 적은 뒤 한글로 뜻을 풀이해 놓은 것이다. 양반들에게도 한문이 일상화되기는 했지만 한글이 훨씬 쓰기에 편했음을 보여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지하철서 만난 불황의 풍경

    지하철서 만난 불황의 풍경

    불황이 깊어지면서 고단한 서민들의 삶을 실어나르는 지하철 풍경도 바뀌고 있다. 승객은 부쩍 늘었고, 열차 지연을 막기 위해 ‘푸시맨’ 대신 ‘커트맨’이 등장했다. 잡상인과 걸인들이 크게 증가했지만 승객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 역무원들은 무임승차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매정하게 단속에 나설 수도 없다고 호소한다. 예전 같으면 찾아가지 않던 우산이나 옷가지를 찾으러 유실물센터로 오는 사람들도 많다. ●푸시맨 대신 커트맨 등장 ‘발차 전쟁´ 24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은 출근하는 승객들로 붐볐다. 최근 도입된 ‘커트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객차 안으로 들어가려는 승객들을 ‘커트’했다. 커트맨은 승객들을 밀어넣던 ‘푸시맨’과 달리 발차 시간 지연을 막기 위해 생겨난 현상이다. 서울대입구·신도림·사당역 등 3개 역은 오전 7시30분~9시30분까지 40여명의 커트맨을 활용한다. 신도림역에 따르면 매해 1~2% 증가하던 승객이 유가급등과 경기불안으로 올해 12%나 늘었다. 신도림역 이진복 역장은 “나이를 속여서 무임승차권을 받거나 노인들이 무임승차권을 받아서 자식이나 손자에게 전해주는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한 달 평균 60~70건의 무임승차가 눈에 띄지만 ,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아는데 예전처럼 경찰에 고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무임승차를 하다가 적발되면 원래 요금의 31배를 내야 한다. ●잡상인 물건값 내려도 승객 지갑 안열어 신도림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윤모(47)씨가 팝송 CD를 팔고 있었다. 승객들은 눈길만 줄 뿐 아무도 사지 않았다.5개 묶음 CD의 가격은 5000원. 올초에 비해 반값이다. 윤씨는 “하루에 10장만 팔아도 감지덕지다. 생활이 어려울수록 시민들이 노래에서 위안을 찾을 것 같아 품목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잡상인 수가 급격히 늘고 있지만 예전처럼 심하게 단속하지는 못한다. 서울역에서 이들을 단속하는 공익근무요원 김모(22)씨는 “한참 CD를 많이 팔더니 요즘에는 털장갑, 밤깎는 칼 등 1000원대 물건을 파는 잡상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시청역에서 갈아탄 2호선에는 맹인 최모(65·여)씨가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4살 때 앓은 천연두로 심하게 일그러졌다. 최씨는 전세 1300만원 짜리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으며 수입은 하루에 2만원 정도다. 예전에는 하루에 10만원도 족히 벌었지만 불황인 데다가 맹인으로 위장한 ‘경쟁자’들이 늘어나면서 수익은 점점 줄고 있다. 최씨는 “오늘 오전에 5000원을 벌어,4000원짜리 점심을 사먹었다.”면서 “기초수급자이지만 정부가 주는 월 60만원으로는 가족생계를 꾸리기 힘들고 일자리도 구할 수 없어 지하철을 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축빼기·들빼기 등 충동범죄 급증 시청역 유실물 센터 두재영 센터장은 “예전에는 싼 물건은 안 찾아갔지만 요즘에는 우산이나 옷가지 등 자질구레한 유실물까지 악착같이 찾아간다.”면서 “물건을 찾으러 오는 시민이 지난해보다 20%는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청역에 접수된 유실물은 3654건(본인인계 1263건)이었고, 올해는 이미 4851건(본인인계 1581건)에 이르렀다. 서울경찰청 지하철수사대도 바빠졌다. 올해 8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불황범죄로 불리는 절도 검거자수가 214명에서 233명으로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조직에 의한 소매치기보다는 충동적인 범죄인 ‘부축빼기’(술취한 취객을 부축하는 척하면서 지갑을 훔치는 범죄)나 ‘들빼기’(선반 위의 짐을 몰래 들고 가는 것)가 급증했다.”면서 “과음 후 밤늦은 귀가를 자제하고 자기 짐은 직접 들고 가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 김찬웅 지음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 김찬웅 지음

    “손자가 세 돌 되는/윤 3월27일에/학질이라는 병을 얻었다/먼저 몸이 차가워지고 그 후에 열이 난다(…)/소고기와 생과일이/어린아이에게 병을 잘 일으킨다는데(…)/주고 싶지만 먹으면 비장(脾臟)을 상하게 할 것 같고/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울며 보챈다(…)/손자야, 너도 네 아이를 키워봐야/마땅히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시대가 달랐다고 손자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달랐을까.‘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글항아리 펴냄)는 함의가 다채로운 조선시대 육아해설서이다. ●묵재 이문건의 ‘양아록´을 현대감각으로 재구성 글쓴이는 시나리오, 소설 등을 통해 글맛을 다져온 김찬웅 작가. 하지만 그의 텍스트는 조선 최초의 육아기록으로 알려진 ‘양아록(養兒錄)’이다.‘양아록’의 지은이는 묵재 이문건(1494∼1567).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돼 유배됐고 을사사화에 휩쓸려 다시 23년의 기나긴 유배로 생을 마친 비운의 조선 학자였다.‘묵재일기’를 통해 방대한 시대적 사료를 남긴 주인공이기도 한 그의 육아일기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자식들과 부인을 모두 잃고 그 자신 세상을 뜨기까지 무려 17년 동안 유일한 핏줄인 손자를 키우며 남긴 기록이 ‘양아록’이다. 대부분 한시로 쓰여진 원문을 책은 현대감각으로 재구성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양육방법, 자녀훈육에 대한 당대의 시각을 두루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읽을거리가 됐다. 이문건의 유일한 손자 숙길이 ‘양아록’의 주인공.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초년기,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로 구분지어 서술한다. 풍열, 간질, 두창, 홍역, 이질, 학질 등 온갖 병치레를 달고 사는 손자를 보며 할아버지는 애가 끓는다. 달리 손 쓸 방도가 없어 굿을 했던 시대 정황이 생생히 재현된다. 천연두를 앓은 지 13일 전후, 환부에 딱지가 생기며 병이 끝날 즈음 마마신을 공손이 돌려보내는 ‘마마배송굿’을 약 대신 ‘처방’해야 했다. ●“손자 아플 땐 두렵고 겁 나…” 애틋한 사랑 모두 45편의 글 가운데 질병과 관련된 것이 16편이나 된다. 몇 편의 일기에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점쟁이를 만났던 일, 옥황상제에게 축문을 올린 일 등이 상세히 실렸다. 안타까운 마음이 행간에 절절하다.“두렵고 겁이 나서 침이나 약을 쓸 수 없었는데 얼굴이 여위고 누렇게 뜬 모습이 가엾기만 하다. 그 후로 답답함과 근심을 견딜 수 없어 한가로울 때면 한숨이 새어나온다.” 조선시대 어린아이의 돌잔치 풍경을 옮겨놓은 대목 등은 특히 흥미롭다. 돌상에서 붓과 먹, 투환, 활, 쌀, 도장을 집어올릴 때마다 어른들이 아이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축원했는지 넘겨다볼 수 있다. 커가는 손자에게 ‘소학’‘대학’을 직접 가르치고 숙제를 내주며 때론 매를 드는 모습, 책을 읽지 않는다며 그네를 끊어버리겠다고 으름장 놓는 장면 등도 평범한 선비집안의 훈육과정을 가감 없이 대변해 준다. 조선의 출산, 육아문화 전반을 훑어볼 수 있는 시대의 거울로서 자잘한 정보들이 풍성한 읽을거리이다.1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숙종시대 군인 18%가 마맛자국”

    “숙종시대 군인 18%가 마맛자국”

    조선시대에 군역에 동원되는 나이는 ‘경국대전’과 ‘속대전’에 따라 16∼60세로 알려졌다. 특히 지방방어군이라고 할 수 있는 속오군(束伍軍)은 창설 시기인 임진왜란 당시 15∼50세로 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에 작성된 군적(軍籍)에 따르면 평균 나이는 34.4세였지만, 불과 10세의 사내아이 종과 밥짓고 가축을 돌보는 69세의 노(老) 화병(火兵)도 있었다. ●평균 34세… 군 편제 소상히 기록 이런 사실은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조선시대 충청지역 병적기록부인 속오군적에 나타난 병사들의 신상을 전산입력해 분석한 결과 밝혀낼 수 있었다. 이 군적은 충청도 관찰사 휘하 군인들의 개인신상 정보를 수록한 3책으로,2책은 작성 시기는 각각 숙종 5년(1679)과 숙종 23년(1697)이며 나머지 1책은 앞장이 떨어져 나가 작성연대를 알 수 없었다. 명부에 오른 사람은 모두 4213명으로,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던 사람은 3883명이었다. 나이가 기록된 3541명 가운데 16세 미만은 65명이었고,60세가 넘은 병사는 9명이었다. 나이가 가장 적은 직책은 일종의 사환병사인 수솔(隨率)로 26.5세이고, 나이가 가장 많은 직책은 오늘날의 하사관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총(旗摠)으로 41.9세였다. 얼굴의 특징이 기록된 사람은 2260명으로, 천연두를 앓으면 나타나는 마맛자국이 있는 사람이 전체의 17.7%에 이르는 402명이었다. 마맛자국은 대단히 심하게 얽은 박(縛)에서부터 잠박(暫縛), 마(麻), 잠마(暫麻), 철(鐵) 등으로 구분했다. 서애 류성룡 집안에 전하는 1596년의 평안도 군적에는 552명의 병사 가운데 27%인 150명의 얼굴에 마맛자국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만큼 임진왜란 이후 천연두 발병률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다. 혼란스럽게 만든 대목은 4.00척(尺)으로 산출된 평균신장이다. ●천민 24%·상민이 74% 차지 김성갑 토지박물관 주임은 “이 시대는 황종척(34.48㎝)이 통용되었고, 실제 이를 적용해 제주 속오군적에 오른 인물들의 평균신장을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46.54㎝라는 비교적 합리적인 수치가 나온다.”면서 “그러나 똑같은 척도를 적용할 때 충청도의 군인들은 평균키가 137.9㎝밖에 되지 않는 모순이 있다.”고 말했다. 토지박물관은 직접 자를 대고 키를 잰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기입해 넣은 데서 비롯된 문제로 보고 있다. 군적에 나타난 인물을 신분별로 보면 24%인 929명이 사노나 궁노(宮奴), 내노(內奴)와 같은 천민이었고, 양인(良人)과 한량(閑良), 업무(業武) 등 상민이 74%인 2946명을 차지했다. 군적은 임진왜란 이전 조선 전기에는 군대로 징발할 수 있는 명단이라는 실용적인 측면이 강했으나, 조선후기에는 군포(軍布)라고 하는 일종의 국방세금을 거두기 위한 기초자료로 주로 활용됐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역사학자 마이크 데이비스(미국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 역사학과 교수)는 다음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끊임없이 묻는다. 기아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19세기말 평화의 시기 이후에도 상당수의 식민지에서는 기근이 충격적일 정도로 증가했다. 증기기관에 의한 운송수단 발달로 수많은 생명을 구할 근대적 곡물시장이 형성됐다고 평가받는 바로 그 시기, 영국령 인도에서는 수백만 명이 철로 옆과 곡물 저장소 옆에서 굶어 죽었다. 서구 열강들이 근대화시켜 주겠다며 개방을 강요하던 때, 중국이 세워놓은 엄중한 기아구조 대책은 철저히 무력화됐다. ●“기근은 자연재해 아닌 정치비극”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정병선 옮김, 이후 펴냄)는 ‘영예로운 번영’ 뒤에 숨겨진 이면의 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해온 서구 역사학계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1876년부터 1902년 사이에 벌어진 대재앙, 최소 3000만명이 죽은 세 차례에 걸친 가뭄에 초점을 맞춘다. 인도·중국·브라질 등지에서 발생한 1876∼1879년의 1차 대한발은 시작일 뿐이었다.1889∼1891년의 2차 가뭄 땐 에티오피아와 수단에서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 열대 지방 전역과 중국 북부에 3차 가뭄이 밀려든 1896∼1902년엔 말라리아, 이질, 천연두,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수백만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과학자들은 이같은 대가뭄이 엘니뇨 때문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저자는 ‘대기근=기후재앙’이라는 식의 정의는 또 다른 진실 은폐라고 강조한다. 지구 기후체계와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세계경제 사이엔 극단적인 사건들이 운명적으로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엘니뇨라는 기후 현상은 당시 제3세계 빈곤에 끼얹어진 휘발유에 불과하다. 저자의 주장은 ‘기근의 정치생태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대기근을 자연재해가 아닌 정치와 계급의 문제로 접근한다. 혹독한 가뭄은 인간이 개입하는 인재(人災)이고, 식량 지배권의 문제이며, 피할 수 있었던 정치비극이라는 것이다. 아사자가 속출하던 1899∼1902년 인도 봄베이(현 뭄바이)에서 작성된 공식 기근보고서는 “식량 공급은 항상 충분했다.”고 적고 있다. 극단적인 기후사태와 결합한 끔찍한 불황은 식량 접근권의 문제이고, 대규모의 굶주림을 기근으로 규정짓는 데는 사회 내부의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기근이 던지는 가시 같은 질문 국제관계의 냉혹한 역사는 약소국의 불행을 딛고 자국의 호황을 추구한 강대국이 적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저자는 “독일은 1890년대 후반 산둥 반도를 황폐화시킨 홍수와 가뭄을 빌미로 북중국에서 자신의 세력권을 공격적으로 확대했고, 같은 시기 미국도 가뭄과 기근, 질병을 빌미로 필리핀 공화국을 분쇄했다.”고 지적한다. 전 지구적 가뭄은 영토 침탈을 향해 내달리는 열강에게 제국주의적 폭주를 허락하는 ‘녹색 신호등’이었던 셈이다. 가뭄은 조선에도 밀어닥쳤다. 저자는 일본의 식량약탈과 동학농민항쟁도 동일한 관점에서 분석한다. 데이비스는 “이 은둔의 왕국을 착취하려던 일본에 가뭄은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면서 “조선은 가뭄 속에서도 일본에 쌀을 수출해야 했고, 결국 전라도의 굶주린 농민들은 혁명적 불만을 토로한다.”고 썼다. 저자가 보기에 대기근은 늘 ‘자유롭고 공정한 교환체계’ 아래서 발생했다. 그는 “기근이 발생한 실제 원인은 지역의 소득 붕괴와 결합한 곡물의 자유시장 제도였다.”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말을 인용한다. 이론이 아닌 현실 속 시장의 역사엔 정치의 역사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빈곤과 굶주림의 참상을 전하는 데는 피부 가죽이 고스란히 내려 앉아 뼈가 그대로 드러난 아이의 모습, 그 비극적 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부가 역사상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때, 그만큼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빈곤의 세계화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질문은 계속된다. 2만 3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한국인의 질병] (10) 자궁경부암

    [한국인의 질병] (10) 자궁경부암

    2003년 홍콩의 인기 여배우 메이옌팡(梅艶芳)이 40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장궈룽(張國榮)과 더불어 홍콩 영화계의 ‘무적 3인방’으로 불렸던 그도 말기 자궁경부암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멀지 않은 미래에 이 질환의 정복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천연두를 퇴치했듯이 자궁경부암 발병을 원천적으로 억제하는 백신이 속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07 국제 인간유두종바이러스 콘퍼런스(IPC)’에서 세계적인 자궁경부암 전문가들을 만났다. |베이징 정현용특파원|자궁경부암은 여성암 가운데 발생건수가 매년 상위 5위권에 드는 등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여성암이다.2002년 기준으로 한 해 치료비로 사용되는 금액만 3300억원에 이르렀을 정도다. 국립암센터 국가암통계 자료에 따르면 1999∼2002년 기준으로 국내 연평균 자궁경부암 발생건수는 4394건으로 위암(7464건), 유방암(6610건), 대장암(4914건)에 이어 여성암 4위를 차지했다. 또 2005년 기준으로 매년 1067명이 사망해 여성암 사망률 8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2002년 기준으로 한해 49만 3100명이 자궁경부암에 걸려 여성암 가운데 유방암(115만 2161명)에 이어 발생률 2위를 기록했다. ●바이러스로 감염되는 유일한 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율리우스병원 중앙연구소장인 티노 슈워츠(Tino Schwarz) 박사는 “자궁경부암은 세계적으로 여성암 중 두번째로 많이 발생해 여성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암입니다. 누구나 성 접촉을 통해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죠. 금욕적인 성생활을 한다 해도 피부를 통해 감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발병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자궁경부암 환자가 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티노 박사의 설명처럼 자궁경부암은 암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라고 불리는 이 바이러스는 99% 성 접촉에 의해 전파, 감염된다. 그는 또 “관련 학계에서는 현재 여성의 50∼80%가 성생활 과정에서 각종 HPV에 감염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HPV의 유형은 200가지가 넘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무해하지만 이 가운데 약 40종은 성 접촉을 통해 생식기 점막을 감염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중 발암 유형은 15가지인데, 특히 16형과 18형 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 발생 원인의 70% 이상을 차지하지요. 전문가들은 100만명을 기준으로 이 바이러스에 노출된 여성 중 1∼2% 수준인 1600여명에게서 자궁경부암이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여러 파트너와 성관계를 맺거나 어린 나이에 성관계를 시작한 여성은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높아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클라미디아 등 성병에 감염됐거나 면역력이 낮아진 여성도 감염 가능성이 높아진다. 흡연도 자궁경부암을 발병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자궁경부 안 질 출혈이나 분비물, 성관계를 할 때 느끼는 통증 등의 증상은 병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을 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이 단계에서는 치료도 어렵다. 백신 등을 이용한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궁경부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조기진단이 중요하다. 이 조기진단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바로 ‘자궁경부암 선별검사법’이다. 정기적으로 자궁경부암 선별검사를 받지 않는 여성은 자궁경부암에 걸릴 위험이 정상인에 비해 2∼10배나 높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선별검사도 정확도가 100%에는 못미치기 때문에 맹신해서는 안 된다. 티노 박사의 설명이다.“자궁경부암을 치료하는 데 드는 수술비나 입원비, 약물치료비를 모두 합하면 정기적으로 받는 선별검사비와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선별검사도 정확도가 80%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죠. 역시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최근 개발된 자궁경부암 백신입니다.” 지금까지 개발된 자궁경부암 백신은 2종이 있다. 특히 내년 출시 예정인 ‘서바릭스는’는 5년 6개월간의 임상시험에서 자궁경부암의 주요 발병 요인인 HPV 16형과 18형을 100% 억제하는 효과를 나타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사실상 자궁경부암을 정복하기 위한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상피생물학과 마거릿 스탠리 교수는 “21세기의 가장 획기적인 발명”이라는 말로 백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자궁경부암 백신은 바이러스와 유사한 물질을 몸 안에 주입해 스스로 면역력을 높이는 기능을 하지요. 아직 더 많은 임상시험이 필요하지만 바이러스 16형과 18형의 감염을 5년 이상 완벽하게 억제했다는 것은 자궁경부암 퇴치 가능성을 열어준 개가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백신으로 자궁암 정복 가능성 열었다.” 그러나 자궁경부암 선별검사의 정확도가 100%에 이르지 않는 것처럼 자궁경부암 백신에만 의지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스탠리 교수는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했다고 하더라도 정기적인 선별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자궁경부암 백신이 바이러스의 감염을 획기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궁경부암을 완벽하게 억제하기 위해서는 선별검사도 병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만 잘 이용하면 자궁경부암의 완벽한 예방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junghy77@seoul.co.kr ■항원보강제로 인체 면역력↑ |베이징 정현용특파원|자궁경부암 백신의 핵심적인 효과는 HPV(인간유두종 바이러스)의 감염을 억제하는 데 있다. 백신 접종이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抗體)를 만들어내기 위해 몸 속에 힘이 약한 항원(抗原), 즉 ‘유사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과정을 뜻한다. 그러나 항원만 주입하는 것보다 항원의 기능을 높여주는 항원보강제를 함께 주입하면 몸 속 면역 기능이 훨씬 더 높아진다. 이와 관련, 전통적으로 사용돼왔던 ‘알루미늄염’ 형태의 항원보강제 대신 최근 들어 면역 효과를 촉진하고 면역 유지기간을 늘리는 새로운 항원보강제가 개발돼 의료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B형 간염 백신에 사용된 항원보강제 ‘AS04’가 한 사례. 면역력이 저하된 혈액투석 환자에게 AS04가 함유된 백신을 투여한 결과 B형 간염 항체가 생기는 효과도 입증됐다. 미국 다트머스의대 산부인과 다이앤 하퍼 교수는 “3만여명의 혈액투석 환자를 대상으로 AS04가 함유된 백신을 10여년간 투여해 높은 항체 생성효과를 확인했다.”며 “이 항원보강제를 자궁경부암 백신에 적용한 임상시험 결과 HPV 16형과 18형을 100% 억제하는 효과가 5년 이상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특성을 활용해 만든 자궁경부암 백신이 바로 다국적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서바릭스’로 이미 개발을 끝내고 내년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서바릭스는 올해 5월 호주에서 최초로 10∼45세의 여성들에게 접종하도록 허가됐으며, 국내에서도 식약청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백신 접종은 횟수는 3회가 기본이다. junghy77@seoul.co.kr
  • 곰보 색시 보조개는 많기도 하지

    곰보 색시 보조개는 많기도 하지

    「한 여자에 두 남자」인 3각관계쯤 세상엔 흔한 일. 그런데 그 두남자가 형제사이이고 여자가 양귀비같은 미인이 아닌 곰보아가씨라면 얘기가 좀 재미있어진다. 사랑에 미치면 곰보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아뭏든 동생의 아이를 가졌던 아가씨가 형에게 다시 시집을 갔다는데-. 소꿉친구 자라서 「남(男)과 여(女)」 곰보면 어때, 동생이 먼저 유원지로 이름난 경춘(京春)가도를 달리다 마석에서 오른쪽으로 10리쯤 들어간 경기(京畿)도 양주(楊州)군의 한마을. 여기가 바로 「아더메치」한 형제지간 3각관계 치정극이 벌어진 곳. 20여호 남짓한 작은 마을에 문제의 세 남녀 집이 약 1백m 거리를 두고 마치 3각관계라도 상징하듯 3각형으로 떨어져 있다. 풍수지리로 보아도 숙명적으로 3각관계를 맺을 운명인가? 말썽난 신부 유덕자양(兪德子·26·가명)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았기 때문에 얼굴 전면에 지독한 마마자국이 있는 속칭 곰보 아가씨. 말짱한 정신으로 본다면 결코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아가씨다. 이 아가씨를 사이에 놓고 고종 사촌 간인 이(李)원서씨(25·가명)와 박(朴)종운씨(24·가명)가 치사찬란한 역사를 엮은 것. 먼저 관계를 맺은 것은 유양과 박씨. 그러니까 먼저 동생과 역사가 엮어진 셈인데 지금으로부터 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마을에 살고 있으니 서로 왔다 갔다 하며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 더구나 박씨의 어머니와 유양의 어머니는 자매를 맺은 사이. 박씨는 유양의 집을 제집처럼 자주 드나들었고 유양과는 소꿉친구이기 때문에 다정하게 지냈다. 그런데 나이가 20세쯤 되고 보면 남녀 사이란 결코 소꿉친구만일 수는 없는 모양. 이게 일이 벌어진 근원이다. 박씨와 유양은 어느덧 서로를 그리는 「남과여」가 되었고 부모들과 마을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밀회(密會)를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의 씨앗·눈물의 씨앗 약혼준비중 이번엔 형이 2살연상의 여인이고 게다가 지독히 얽은 얼굴이지만 한번 정이 들고 보니 물불을 분간못하게 사랑에 빠졌다. 유양 방에서, 또는 박씨의 방에서, 마을 뒷산에서 사랑을 나누고 살을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사랑의 씨앗」이 잉태됐을 것은 당연한 순서. 유양의 배가 점점 불러갈 즈음에는 벌써 마을에 소문이 파다해졌다. 처녀의 몸으로 배가 불렀으니 창피하고 부끄러운 집안 망신이지만 딸의 못난 얼굴 때문에 항상 시집보낼 걱정을 해온 유양의 어머니는 차라리 잘된 일이려니 생각하고 두사람을 결혼시키기로 작정, 혼인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유양의 어머니에게는 그때 수양아들을 삼은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박씨의 고종사촌형인 이원서씨. 하나 있는 아들은 서울에 살림나서 살고 있고, 유양 위로 딸 둘은 출가, 오로지 유양 하나만 데리고 단촐하게 사는 처지가 외롭고 쓸쓸해서 이씨를 수양아들로 삼고 가까이 지낸 것. 이씨는 유양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잔심부름도 해주고 아들처럼 다정히 지내며 한살위인 유양을 「누나」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게 또 말썽일줄이야…. 수양아들을 삼아서 맺어진 누나 동생 관계라지만 처녀 총각이 만났으니 미묘한 움직임이 싹틀 수 있고 소문도 올바르게 날리가 만무하다. 이러쿵 짝짜쿵 소문이 나고보니 박씨의 마음이 고와질 턱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곰보 며느리를 얻는다는 것을 탐탁찮게 생각하던 박씨의 부모들에게는 더욱 못마땅한 일이었다. 그것도 남이 아닌 바로 친고종 사촌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창피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기가 찰 밖에. 판정승 형이 동생 각서받고 화촉 켜는데… 하지만 유양은 임신 6개월의 몸. 이제 와선 이도저도 못할 딱한 처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두 집안 어른들은 구수회의를 열고 이씨와 소문은 덮어두기로 결정, 그대로 박씨와 유양을 짝지어 주기로 했다. 그래 우선 약혼날을 받아 놓고 사주를 쓰고 혼인절차를 진행시켰다. 그런데 그때 뜻밖에도 신부 유양이 행방불명이 된 것. 하도 말도 많고 창피한 생각에서 유양의 어머니가 『왜 어미 속을 썩히느냐』면서 한대 쥐어박았더니 그길로 어디론지 사라져버린 것이다. 약혼날까지 받아놓았는데 신부가 증발을 해버렸으니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박씨는 유양과 고종형 이씨와의 관계를 더욱 의심했다. 『오냐! 너희 둘이 붙었구나』고 확신을 한 그는 유양과의 약혼을 취소하기로 결심했다. 사랑이 가셔버린 마음엔 증오심만 끓어 올랐다. 혼인이 취소되자 유양은 서울에서 낙태수술을 해버렸다. 여기서 일이 끝났다면 청춘남녀가 한때 철모르고 저지른 「잊고 싶은 사연」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그로부터 3년남짓의 세월이 흐른 지난해 가을 이씨와 유양이 결혼을 했기 때문에 말썽은 또 꼬리를 문 것이다. 과거야 어떻든 간에 그동안 유양과 이씨가 누이-동생 사이를 넘어 연인이 된 것. 어차피 얼굴도 그런데다가 과거까지 가진 딸을 둔 유양의 어머니는 아예 이번에는 짝을 지어주기로 다짐하고 이씨의 부모와 만났다. 그때 이씨에게는 여러 곳에서 청혼이 들어오고 한군데 혼담은 꽤 구체적인 데까지 진전되고 있었는데, 본인들이 좋아한다니 모든 청혼을 물리치기로하고 둘을 맺어주는데 동의했다. 단 과거 박씨와의 석연치 않은 문제를 완전히 씻어버리기 위해 박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래서 유양의 집에서는 박씨의 집을 찾아가 딸과 이씨와의 결혼을 양해해달라고 사정, 동의를 얻는데 성공했다. 형제간이라지만 박씨와 이씨는 성(姓)이 다르고 또 박씨는 유양을 깨끗이 잊었으니 두사람의 결혼에 이의가 없음을 밝히고 각서까지 써주었다. 곰곰 생각하니 울화터져 동생은 잔치집 쳐들어가 약혼을 하고 택일을 했다. 결혼날이 닥치자 신랑 신부 집에서는 잔치 준비를 하고 친척들이 모여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잊어버린 사람이라지만 조금쯤 미련이 남는 것이 사랑의 피인가. 결혼식을 이틀 앞 둔 날 박씨가 유양을 찾아갔다. 막상 만나고 보니 오가는 말이 고울수만은 없었다. 『XX같은 놈』『XX새끼』욕설이 오갔다. 여기서 박씨의 울화통이 터졌다. 신랑 신부가 식을 올리기 위해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기로 돼있었는데 새벽같이 박씨는 유양의 집을 습격, 잔치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손님들이 흩어져 도망가고 잔치는 엉망. 그러나 신랑과 신부는 무사히 박씨의 감시를 뚫고 서울에 가서 다음날 식을 올리고 유양은 머리를 얹을 수가 있었다. 3일 동안의 「허니문」을 즐긴 신혼부부가 마을로 돌아왔다. 신부는 이제까지 시댁에 들어가지 않고 친정에 살면서 시댁엘 왔다갔다 한다. 점장이의 점괘에 『돼지해가 되기전에(음력으로) 시집에 들어가면 큰 화가 있을 것』이라고 나왔기 때문에 기다렸던 것. 날짜를 잡아서 지난 가을에 하다 만 잔치를 하고 들어갈 것이란다. <영(英)> [선데이서울 71년 2월 21일호 제4권 7호 통권 제 124호]
  • [책꽂이]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장 피에르 카르티에 등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조화로운 삶 펴냄) ‘생명농업의 선구자’ ‘미래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 ‘현실적인 신비주의자’ 등으로 불리는 알제리 태생의 환경운동가 피에르 라비의 사상을 소개.1960년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남부 시골마을 아르데슈로 귀농해 살고 있는 라비는 평생 ‘생명농업’을 일구고 친환경 운동을 펼쳐 왔다.“인간은 지구의 절대적인 주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라비는 우주의 생명현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산제일주의의 폐해를 꼬집은 그의 저서 ‘대지의 말’은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9800원.●주변에서 글쓰기, 상처와 선택(김인환 등 지음, 민음사 펴냄) 1906년에 태어난 이하윤, 이주홍, 강경애, 최정희, 유진오, 엄흥섭, 김오남, 이정호 등 근대문학의 여명기를 개척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론.1931년 만주사변을 전후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들의 문학적 업적과 생애를 통해 우리 문학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2만 2000원.●정열의 수난(문광훈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국내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소설가 장정일의 정신세계와 작품세계를 다룬 에세이 모음집. 장정일에게 ‘세계관적 친화력’을 느낀다고 말하는 저자(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장정일 문학이 “권력의 작동과 담론 구성에서의 폭력성을 문제시하고 그에 대한 반성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1만 5000원.●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최석민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 광우병은 소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동물성 사료를 먹인 데서 비롯된 질병이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은 인간은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린다. 사스는 사향고양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바이러스로 사향고양에겐 별다른 해를 입히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괴물 바이러스다. 로마제국 멸망의 복병이었던 말라리아, 유럽역사를 바꾼 나폴레옹의 앞길을 가로막은 발진티푸스, 신대륙 정복의 첨병이었던 천연두 등에 관한 이야기가 실렸다.9000원.●영원과 사랑의 대화(김형석 지음, 한우리북스 펴냄) 일본의 종교가 우치무라(內村鑑三)는 “신에게는 무인론이 없으나 인간에게는 무신론이 있어서….”라고 탄식한 적이 있다.저자(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한다.“신앙인들이 신의 존재나 본질을 논하는 것은 마치 자식들이 방에 들어앉아 아버지의 존재와 본질을 논하는 것 같이 쑥스러운 일이다. 아버지는 바로 옆방에 계시는데…” 1만 2000원.●넥타이와 암브로시아(클라우스 뮐러 지음, 조경수 옮김, 안티쿠스 펴냄) 전통적인 자급자족경제에서는 채집 곤충이 식품으로서 매우 중요했다.고대에는 애벌레를 별미라는 이유로 밀을 먹여 키우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통통한 굼벵이 섭취를 찬미했다. 성서 시편의 작자는 만나를 ‘하늘양식’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천사의 음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나는 이스라엘인들이 황야 행군을 버텨내고 결국 그들에게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왔다. 인류의 먹고 마시는 문화를 다룬 책.1만 2000원.
  • “北 생화학무기시설 49곳”

    북한이 2500∼5000t 규모의 각종 화학무기를 갖고 있으며 생화학무기 관련 시설 49곳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은 17일 국회 과기정위의 정부출연연에 대한 국감에서 배포한 자료를 통해 “북한은 최고 5000t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군사기지 등 관련 시설이 화학무기 28곳, 생물무기 21곳 등 모두 49곳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화학무기는 사린가스, 시안화수소가스 등 인체에 치명적인 것들”이라며 “북한은 세계 3위의 화학무기 보유국일 뿐 아니라 이같은 화학무기를 최근 개발한 미사일에 탑재할 경우 가공할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이 화학무기금지협정에 가입하지 않아 위험이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그는 “북한이 현재 직접적으로 화학무기를 생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중용도 목적의 생산기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필요하다.”며 “일반 화학공장도 여차하면 화학무기 생산공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김 의원은 특히 “북한은 1960년대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탄저, 콜레라, 역병, 천연두 등 10여개의 병원균 개발을 시도했으며 독성가스 및 박테리아는 전쟁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북의 생물무기 개발도 상당 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밝힌 북의 화학무기 시설은 관련 군사기지 4곳, 생산 및 저장기지 11곳, 연구개발기지 13곳이며 생물무기 시설은 기지 5곳, 생물공학 및 이중용도 기반시설기지 16곳 등이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책꽂이]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들(브린 바너드 지음, 김율희 옮김, 다른 펴냄) 사스 바이러스보다 수천배나 파괴력을 지닌 흑사병, 천연두, 콜레라, 황열병 등 전염병에 대한 입문서. 흑사병은 어떻게 봉건제도를 강타했을까.1331년 몽골 군대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흑사병은 4년도 채 안돼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1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중세 유럽의 지배계급은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세계사를 바꾼 보이지 않는 손, 전염병의 기원과 확산 과정 등을 알기 쉽게 설명.1만 2000원.●우주는 안녕한가요?(셜리 앤 존스 엮음, 도솔 옮김, 황매 펴냄) “용기만 있다면, 쥐가 코끼리를 들어올릴 수도 있다.”(티베트 속담) “자기 자신, 지는 태양, 홍수에 쓰러진 나무를 존경하라.”(마오리족 속담) 이 책에는 지도 밖 소수민족들의 삶의 지혜가 가득 담겼다. 호피족, 마오리족, 가리후나족, 키카푸족, 히바로족, 위네바고족 등 200여 종족의 삶의 이야기를 자신들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제4세계 원주민들을 위한 단체인 ‘세계원주민연구소’와 ‘위기에 처한 원주민을 위한 프로젝트(EPP)’ 등에 관한 정보도 실렸다.9800원.●뭐라고, 이게 다 유전자 때문이라고?(리사 시크라이스트 치우 지음, 김소정 옮김, 한얼미디어 펴냄) 희귀 질환을 유발하는 우리 몸속 유전자 이야기. 메노파나 아미시 교도들처럼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유전병에 단풍당뇨증이란 게 있다. 단내를 풍기는 유전자 때문에 소변과 땀과 눈물에서도 단풍당밀의 냄새가 난다. 시조들이 갖고 있던 유전자가 자손들에게 많이 발현된다는 점에서 ‘창시자 효과(founder effet)’란 말도 생겼다. 포르피린증을 앓은 조지 3세의 광기,‘켈트인의 저주’로 불리는 혈색소증, 키다리 유전자를 지닌 링컨·라흐마니노프·파가니니·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마르팡 증후군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1만 2000원.●로버트 카파-그는 너무 많은 걸 보았다(알렉스 커쇼 지음, 윤미경 옮김, 강 펴냄)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충분히 가까이에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토 저널리즘의 신화를 만들어낸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본명 앙드레 에르노 프리드만)는 한 시대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잡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썼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진 오마하 해변에서 쏟아지는 총탄 사이로 들어올린 카메라. 헝가리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41세에 베트남 전장에서 죽기까지 사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가였다.1만 6000원.●21세기 한중일 삼국지(우수근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 한·중·일 3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비교 고찰. 일본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가지지 못한 자도 무엇인가는 가졌고, 가진 자도 무엇인가를 가지지 못한 나라’라고 말한다. 그만큼 일본은 엄격한 조세정책과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사회적 부의 불평등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일본보다 빈부격차가 더 심하다. 중국의 빈부격차 또한 심각한 상태. 빈부차, 실업, 부패 문제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제2의 톈안먼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1만 5000원.
  • [심상덕의 서울야화](16)거지들이 사랑했던 스타 차홍녀

    [심상덕의 서울야화](16)거지들이 사랑했던 스타 차홍녀

    ‘대종상 영화제’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영화의 발전과 함께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도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고요. 그런데 옛날 영화 중 1965년 ‘김지미’와 ‘신영균’이 주연했던 전택이 감독의 ‘홍도야 우지마라’를 알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해도 그동안 연극으로 많이 공연이 됐고, 지난 1950년대에도 같은 제목의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거든요. 또 1930년대 후반에도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였습니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지금으로부터 꼭 70년 전인 1936년 동양극장에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제목으로 연극으로 공연됐던 작품이었습니다. 이 연극에서 홍도 역을 맡았던 배우가 ‘차홍녀’였습니다. 홍도의 오빠역인 경찰관은 그 시절 첫손에 꼽히던 배우 ‘황철’이 맡았고요. 이 작품을 쓴 극작가 ‘임선규’는 처음부터 여자 주인공엔 차홍녀를 생각했었기에 ‘홍도’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 거고, 또 오빠인 경찰관 역엔 황철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철수’라는 등장 인물을 만들어 냈던 겁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의지할데 없는 두 남매. 홍도는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뒤, 오빠의 동창생 청년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 청년은 이미 약혼녀가 있는데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거죠. 그러나 홍도는 남편이 유학을 떠나자 소박을 맞고 쫓겨나게 되는 겁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은 집안 식구들의 모함만 듣고 홍도를 마치 부정한 여자로 치부하면서, 전 약혼자와 결혼할 생각을 갖게 되고 이성을 잃은 홍도는 본의 아니게 전 약혼녀를 살해하게 돼 경찰관이 된 오빠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런데 ‘대종상 영화제’가 있는 오늘.‘서울야화’에서 왜 ‘홍도야 우지마라’라는 연극과 영화 얘기를 하느냐고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홍도야 우지마라’의 주인공 ‘차홍녀’가 인기절정의 여배우였지만 너무나 아까운 나이 25살에 꽃잎을 떨구게 됐던 겁니다. 그 이유가 뭐였는가 하면요. 당시 극단 ‘아랑’에서 지방 순회공연을 돌던 1940년 겨울. 강원도 철원에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기차역에 나갔는데 그날 따라 기차가 한 40분 정도 연착이 되는 바람에 기차역 주변을 서성이고 있을 때, 그 추운 날씨에 역 앞에서 온몸을 웅크리고 덜덜덜덜 떨면서 구걸하는 거지를 발견하게 됐던 거죠. 바로 이 순간 차홍녀가 그 거지 앞을 그냥 지나쳤다면 아무런 탈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평소 인정이 많던 차홍녀는 그 거지에게 적선을 했던 겁니다. 거지는 그 인정이 고마워 손을 내밀었는데 차홍녀가 따스하게 거지의 손을 꼭 붙잡아 줬던 거죠.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 거지와의 접촉에서 그 당시 한창 유행하고 있던 ‘천연두’에 걸려 지방공연을 다녀온 지 며칠 만에 죽어버린 겁니다. 그 당시 ‘천연두’에 걸리면 전염병치료소인 ‘순화병원’에 강제로 수용돼 비참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들은 이같은 사실을 숨기고 한약을 먹이면서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는 겁니다. 차홍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원인에 대해 서울시내에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 당시 동양극장 앞에서 관객들을 상대로 구걸하던 거지들은 물론 서울시내 다른 지역 거지들에게도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차홍녀의 장례식이 있던 그날, 거지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겁니다. 그리고 당시 화장터가 있었던 홍제동까지 거지들이 상여의 뒤를 길게 따라가면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우리에게는 ‘홍도야 우지마라’로 더 잘 알려진 연극을 통해 인기 정상에 올랐던 차홍녀. 그녀는 비록 스물다섯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차홍녀’의 사진을 들여다 볼 때마다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엔 마음씨 고왔던 그 시절의 스타 ‘차홍녀’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 ‘5·31’ 전체 후보등록 분석

    ‘5·31’ 전체 후보등록 분석

    ● 재산 221억 ‘1위’…진대제 165억 ‘3위’ 첫날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이 신고한 재산을 보면 200억원 이상의 ‘거부’가 있는 반면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은 마이너스 신고자도 적지 않아 공직후보들도 심각한 재산 양극화 현상을 보였다. 전체 등록 후보자 가운데 최대 자산가는 국민중심당 진태구 태안군수 후보로 221억 5327만원을 신고했다. 무소속의 박인원 문경시장 후보가 200억 8807만원의 재산을 신고해 뒤를 이었다. 3위는 165억 7814만원을 신고한 열린우리당 진대제 경기지사 후보다. 광역·기초의원 후보 가운데 최고 재력가는 부산 동래구 제1선거구에 출마한 한나라당 현영희 후보로 126억 4400만원을 신고했다. 광역단체장 후보 가운데 재력가들의 주요 재산증식 수단은 부동산과 주식 투자 등 고전적인 방법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열린우리당의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와 오영교 충남지사 후보 등 참여정부에서 고위 공직에 있다가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대부분은 주식·부동산 평가 기준이 바뀌면서 신고액이 수억원씩 늘어났다. 반면 한나라당 이갑선 경북 구미시의원 후보는 마이너스 39억 9173만원을 신고,전체 후보자 가운데 ‘최빈(最貧)’ 후보로 기록됐다. 기초단체장 가운데 재산을 마이너스로 신고한 이는 무소속 김진억 임실군수 후보(-24억 2972만원), 우리당 최용환 거창군수 후보(-2억 4155만원) 등 15명이다. 또 광역·기초의원 551명도 재산 상태가 마이너스로 나타났다. ●전과-최다 전과기록 보유자는 ‘14건’ 우리·민노 집시법등 위반 주류 광역 단체장에서 기초의원에 이르기까지 6개 공직에 후보등록을 마친 후보자 6863명 가운데 전과 기록을 제출한 후보는 10.5%인 724명에 달했다. 남에게 숨기고 싶은 전과가 있는 후보는 등록시점을 늦추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4건 이상 전과자의 경우 무소속이 5명, 민노당과 열린우리당 후보가 각각 3명, 민주당과 한나라당 후보가 각각 2명이었다. 민노당·열린우리당의 경우 집시법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주를 이뤘다. 최다 전과 보유자는 충남 논산시 의원 후보로 나선 민주당의 고기채후보로 무려 14건이나 됐다. 다음 순위는 민노당의 경남도 의원(창원시 제4선거구)후보에 등록한 이승필(48)씨로 7건으로 신고했다. 문성현(민노당) 경남도지사 후보, 함운경(열린우리당) 전북 군산시장 후보, 장병길(민노당) 경남 창녕군수 후보, 그리고 강원 정선군의회 의원 후보로 함께 등록한 남조영(한나라당)·이형조(무소속)씨가 5건이라고 신고했다. 4건이라고 신고한 경우는 이창복(열린우리당) 강원도지사·추윤구(민주당) 서울 광진구의원·박두수(무소속) 부산 동구의원·김용환(무소속) 대구시의원·김용환(무소속) 울산 울주군의원·박종룡(한나라당) 충북 청주시의원·황명성(열린우리당) 경북 포항시의원·박진철(무소속) 경남 거창군의원 등 8명으로 나타났다. 전과 3건도 23명이었으며 2건은 145명,1건은 541명이었다. ●병역-13% 897명 수형·질병등 면제 수형 면제 대부분 민주화시위 후보 등록을 마친 6863명 가운데 병역대상이 아닌 여성 371명을 제외하고 군복무를 하지 않은 후보는 13.8%인 897명이었다. 병역 면제 사유로는 질병 및 장애, 생계곤란, 수형 등 다양했다. 수형생활을 사유로 든 후보의 상당수는 민주화 시위전력을 꼽았다. 열린우리당 김생기 전북 정읍시장 후보와 한나라당 가기산 대전 서구청장 후보는 질병 및 장애를 이유로 ‘제2국민역’ 처분을 받았다고 각각 신고했다. 민주노동당 이상구 인천 서구청장 후보는 ‘생계곤란’으로 소집 면제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무소속 박경철 전북 익산시장 후보와 열린우리당 정현태 경남 남해군수 후보, 민주노동당 하정우 경남 진주시장 후보, 민주당 김성 전남 나주시장 후보 등은 각각 ‘수형’을 이유로 ‘소집면제’ 조치를 받았다. 서울시 광역의원 선거에 나선 열린우리당 정세환 후보도 지난 87년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형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광역의원 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이종필 후보는 한쪽 눈이 약시판정을 받아 ‘제2국민역’ 처분을 받은 것으로 신고했다. 대전 서구 기초의원 후보자인 국민중심당 김동윤 후보는 어릴 적 앓은 천연두로 왼쪽 눈이 실명돼 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소명했다. 이종수 박지연기자 vielee@seoul.co.kr ●납세-1위 우리당 진대제 39억원 충남 가대현 체납 24억 1위 16일 후보등록을 한 광역 및 기초단체장, 시·도·구의원 등 후보들의 납세액은 39억 300만원에서부터 0원까지 큰 차이를 보였다. 심지어 충남 서산시의원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가대현 후보는 체납액이 무려 24억 3406만 6000원에 달해 체납 1위를 기록했다. 전체 후보 가운데 납세 실적 1위는 39억 387만 7000원을 낸 열린우리당 진대제 경기지사 후보,2위는 18억 7477만 7000원의 무소속 박인원 경북 문경시장 후보,3위는 8억 4475만 9000원의 한나라당 최찬기 부산 동래구청장 후보였다. 기초단체장 후보 536명 중 납세액 1억원을 넘긴 후보는 7.6%인 41명이며, 정당별로는 한나라당 15명, 무소속 11명, 열린우리당 7명, 민주당 4명, 국민중심당 4명이다.100만원 미만 소액 납세자도 14.4%인 77명이다. 기초단체장 중 충북 음성군수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이원배 후보는 2억 6424만원을 체납하는 등 6명의 후보가 세금을 제때 내지 않았다. 등록한 광역의원 후보 1232명 가운데 열린우리당 윤석우 충남 공주시 제1선거구 후보가 7억 3200만원을 체납하는 등 19명이 세금을 내지 않았다. 전북 전주시 제3선거구의 민주당 유병철 후보는 40억원대의 재산 신고에도 불구,5년간 납부한 세금은 700만원에 그쳤다.
  • 다시 찾은 청계천의 봄

    다시 찾은 청계천의 봄

    청계천에 성(性)이 있다면 아마도 ‘여성’일 것이다. 청계천에는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포근함과 넉넉함이 살아 있다. 또 크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여성미도 느낄 수 있다. 청계천 복원 이후 처음 맞는 봄. 청계천에 화사한 봄 옷을 입혀 놓고 보니 영락없는 ‘봄 처녀’의 자태를 닮았다. 수줍은 듯 하얀 꽃향기를 뿜어내는 조팝나무와 연분홍 진달래, 노란 개나리, 조만간 꽃망울을 터뜨릴 노랑꽃창포 등에서도 ‘여심’(女心)이 느껴진다. 그녀는 품속에서 수많은 꽃과 나무와 풀과 곤충과 새들이 어우러져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어려웠던 지난 시절 서민들과 희로애락도 함께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넉넉함을 잊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 곳에는 역사가 있고, 추억이 있고, 생명이 있고, 문화가 있고, 삶이 있다. 주변의 ‘맛과 멋과 쉼’에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30년만에 찾아 온 청계천의 봄. 가족들에게는 봄나들이 명소로, 주머니가 가벼운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코스로 이보다 좋은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길이 5.84㎞. 나이 7개월 20일. 새롭게 태어난 청계천, 그녀의 봄 속으로 들어가 봤다. 글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걸어서 한바퀴 30년 만에 찾아온 청계천의 봄 풍경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컷던 것일까. 아니면 콘크리트로 뒤덮인 청계고가를 넘어다니던 학창시절 읽었던 박태준의 ‘천변풍경’의 잔영들이 갑자기 되살아난 것일까. 청계천을 찾기도 전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청계천변에 모여 살았던 서민들의 모습들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판자촌이 늘어섰던 개천변의 모습과 아낙네들이 수다를 떨던 빨래터, 개천변에 모여살던 민 주사와 한약국집 가족, 이쁜이, 점룡이, 여급 하나코’. 이런 상상에 빠져 지난 14일 봄의 새싹이 움트고 있는 청계천을 찾았다. 봄을 만끽하기에는 이른 느낌이었지만 그 곳에는 봄이 있었다. 조팝나무에 하얀 눈송이가 달려 있고, 진달래는 제철을 만났다. 개나리 꽃은 잎사귀에 둘러싸여 내년 봄을 기약한다. 창포와 버들가지에도 봄이 가득하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과 오리가 자맥질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30년 만에 되찾은 청계천의 봄 풍경이다. #10:00-청계광장 출발 청계천 시작지점인 ‘청계광장’(청계1경)을 내려와 모전교를 출발했다. 천변은 번잡하던 도로 위와는 전혀 딴 세상이 펼쳐졌다. 개천은 지상에서 불과 2∼3m 아래지만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의 시끄러운 소음 대신 물 흐르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상쾌하게 파고드는 공기도 지상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모전교는 청계천 22개 다리 중 첫 다리로 근처에 과일을 팔던 모전(毛廛·과일가게)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 먼저 만난 곳은 다리 아래 ‘팔석담’. 팔도의 화합과 정기를 담은 이 곳에서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수거된 동전은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한다고 하니 소원도 빌고, 좋은 일도 할 겸 과감하게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물속에 던졌다.‘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동전을 줍는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한다. 던질 수는 있지만 줍지는 말아야 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계천의 석교인 ‘광통교’(청계 2경) 아래를 지나자 완연한 봄 세상이다. 버들가지에서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돋아나고, 천변에 줄지어 늘어선 창포가 푸르름을 자랑한다. 인공미가 물씬 풍기던 지난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청계천의 돌과 나무, 꽃 모두는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로 자연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청계천의 새역사를 써 갈 꽃과 나무는 따사로운 봄볕에 새싹을 틔우고 있었다. 광통교는 청계천 다리중 가장 큰 다리로 원래는 광교 사거리에 있었지만 1958년 복개공사로 땅속에 묻혔다가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10시20분-광교∼관수교 물의 흐름이 걷는 속도보다 빠르다. 봄을 즐기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탓도 있지만 유속이 어른의 빠른걸음 정도다. 그러나 강바닥에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오물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광교 다리를 지나 ‘정조반차도’(청계 3경)에 이르렀다. 정조가 모친의 회갑을 기념해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이 있던 화성(현재 수원)에 행차하는 모습으로 김홍도 등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합작해 그린 작품이다. 규모는 폭 2.4m, 길이 192m에 이르는 거대한 도자벽화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자벽화라고 한다. 자원봉사자가 반차도의 내용을 설명해 준다. 장통교를 지나자 ‘삼각동 워터 스크린’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어 삼일교를 지나 수표교터에 도착했다. 수표교는 청계천을 복개할 때 장춘단 공원으로 옮겨졌고 이 곳에는 터만 남아 있다. 청계천의 수심을 측정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수표(水標)라는 이름이 붙었다. #10:40-관수교∼나래교 관수교에 이르자 개천 바닥에 녹색 그물들이 눈에 들어온다.‘뭘까?’라는 궁금증을 품기도 전에 자원봉사자들이 먼저와 다가와 “물고기들의 쉼터”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꽃이며 나무들의 이름을 물어봤다. “하얀 꽃을 예쁘게 피운 것이 장미과 조팝나무고, 붉은 것은 진달래, 개천변의 파란 풀들은 창포”라며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관수교를 지나자 시원한 ‘고사분수’의 물줄기가 개천에서 하늘로 솟구친다. 새벽다리에 이르자 물흐름이 느려진다. 곳곳에 물고기 산란장이 많다. 개천 위의 돌다리를 건너 다니며 개천 속을 들여보기로 했다. 바닥에는 푸른 이끼들이 끼어 있고, 한무리의 송사리떼가 노닌다. 개천 바닥의 흙색과 닮아 한참을 들여다봐야 송사리떼를 찾을 수 있다. 엄마와 봄 나들이를 나온 아이는 “엄마, 송사리가 어디 있어, 안 보여.”라며 칭얼댄다. 엄마의 손끝을 한참 들여다본 뒤에야 “야, 물고기가 많다.”며 즐거워했다. #11:00-나래교∼오간수교 출발한 지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청계광장에서 나래교까지는 2.5㎞ 남짓. 산책이 즐거운 탓인지 전혀 지루하지 않다. 버들다리를 지나자 천변 담장을 타고 담쟁이덩굴이 올라간다. 시골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개나리도 반갑게 반긴다. 오리 한 마리가 물위를 거닐며 먹이를 찾느라 여념없다. 먹이를 발견한 오리는 자맥질을 한다.“아이고 몇 마리 없는 물고기 다 잡아먹네…”라며 지나가던 한 할머니의 한숨 섞인 탄성도 들린다. 청계천 산책에 동행한 동료가 복원 전과 복원 직후의 청계천은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거든다. 버들다리를 지나자 ‘패턴천변’(청계 4경)에 이르자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주제로 제작됐다는 ‘문화의 벽’과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패턴 분수, 그리고 그 주위로 조성된 수변 무대가 발길을 사로잡았다. 엄마 손을 잡고 돌다리를 건너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가 정겹게 들려와 산책길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준다. #11:20-오간수교∼비우당교 오간수교 아래에는 오간수문터의 옛모습이 걸려 있다. 도성안의 물줄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지점에 있었던 다섯개의 수문이다. 다리 아래에 청계천에서 빨래하는 아낙네와 그 앞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의 흑백 사진은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산교를 지나자 흑백사진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빨래터’(청계 5경)에 도착했다. 시멘트로 만든 대여섯개의 빨래판은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빨래터는 소설 천변풍경이 시작되는 곳. ‘…간간이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 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 인근에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촌 사이로 빨간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빨래 방망이를 겨드랑이에 끼고 아이들을 데리고 청계천을 찾던 사람들의 모습들이 오버랩된다. 인근 다리 아래에 당시 천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몇 점의 사진이 걸려 있다. #11:50분-비우당교∼두물다리 점점 다리가 아파 온다. 쉬지 않고 걸은 탓이다. 밤이면 물줄기와 형형색색의 조명이 아름답다는 ‘리듬 벽천’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맞은편에는 소망의 벽(청계 6경)이 눈에 들어온다.2만여개의 예쁜 타일에 시민들의 소망이 적혀 있다. 선생님을 따라 봄 나들이를 온 유치원생들의 재잘거림이 정겹다. 길게 줄지어 가는 산책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 아이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벽에서 시원스레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하늘물터’(청계 7경)의 터널분수. 마치 커다란 물줄기 사이를 지나는 듯하다. 바람에 물이 날려 옷을 젖을 수 있어 안경을 썼거나 카메라를 지닌 사람은 돌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피해 가는 것이 좋다. 밤에는 화려한 조명과 어우러져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개천 가운데 우뚝 솟은 3개의 거대한 기둥이 눈길을 끈다.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으로 후대에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일부러 남겨둔 것이라고 한다. #12:20-두물다리 도착 ‘구경 한번 잘했다∼.’무학교와 두물다리를 지나 청계천이 끝나는 청계문화관에 이르렀다.2시간 남짓을 걸어서야 5.8㎞의 산책로 끝에 이르렀다. 너무 빨리 걸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볼거리와 화려함은 덜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더욱 정겹다. 체력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다시 청계광장까지 거슬러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다. 고산자교를 지나면 청계천에서 가장 자연적이고 생태적인 ‘버들습지’(청계 8경)을 만난다. 어류, 양서류, 조류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주변에 갯버들과 매자기, 꽃창포 등 수생식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힘에 부치는 사람은 두물다리 위로 올라와 ‘청계천문화관’에 들러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본 뒤 버스를 타고 돌아가면 된다. 두물다리 위에 있는 성북상수도사업소(청계주차장) 앞에 가면 노란색 1번 버스를 타면 청계광장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노선은 이곳에서 청계8가∼평화시장∼세운상가∼청계 3가∼종로3가∼무교동까지다. 버스는 30∼35분 간격이며, 요금은 현금 550원, 카드 500원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숨은 맛집 완연한 봄이다. 청계천에도 이곳 저곳을 거니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친구끼리…. 청계천엔 수경시설과 금붕어, 청둥오리, 꽃, 전태일 동상까지 많은 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청계천 주변을 둘러보면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렇지만 성큼 발길이 옮겨지지 않는다. 눈여겨 보면 청계천 주변의 뒷 골목엔 숨은 맛집들이 적지 않다. 한 장소에서 고집스럽게 단일 메뉴만을 수십년 동안 만든 요리사도 많다. 빠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청계천의 맛집을 소개한다. ●북한토속음식 청계천 광장 인근에 북한 토속음식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 ‘리북손만두’(776-7350)사장 박혜숙(65)씨는 평양 태생으로 한국전쟁 때 남하해 그동안 줄곧 북한 음식을 했다. 청계천 인근 지금의 장소에서 시작한 지는 17년. 이 가게의 주요 메뉴는 리북손만두와 김치마리밥, 빈대떡, 제육보쌈 등이다. 특히 리북손만두가 맛있다. 김치마리밥은 김치국물에 찬 밥을 말아먹는 북한에선 한겨울 음식. 하지만 손님들은 주로 여름에 이 음식을 찾는다. 빈대떡은 평양식 빈대떡이다. 제육보쌈은 일반적인 보쌈과 달리 삽겹살로 한다. 보통 목살로 하는 경우가 많다. 돼지고기는 북한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가격은 만둣국과 접시만두는 7000원, 김치마리밥은 6000원, 빈대떡은 1만 2000원. ●70년 이상 추어탕만 파는집 1972년 남북조절위 제3차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북한의 박성철 대표는 “지금도 무교동 그 자리에 용금옥이 있는거요?”라고 물어 용금옥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용금옥(777-1689)은 전통을 사랑한다. 용금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찾는 사람들도 전통을 사랑한다. 아무리 장사가 잘 돼도 사장은 함부로 객장을 넓히려 들지 않고 젊은 시절에 친구들과 추어탕 한 그릇에 소주를 기울이던 손님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옛모습 그대로인 이곳을 ‘마음의 고향’인양 찾는다. 위치도 무교동 골목길을 헤매야만 찾을 수 있는 그 자리 그대로이다. 용금옥은 1932년 홍기녀(작고)씨가 열었다. 현재 3대째인 신동민(45)씨가 9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에서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미꾸라지들은 살아있는 것으로 소금에 씻어 얼른 뚝배기 육수 속으로 집어넣기 때문에 연하고 신선하다. 미꾸라지를 넣기 전에 느타리와 목이, 표고버섯, 두부, 양파, 유부 등 갖은 양념이 먼저 육수에 들어간다. 고춧가루를 듬뿍 쳐 내놓는다. 가격은 8000원. ●피아노로 프러포즈를 미리 피아노를 배우지 못 한 걸 후회하는 남성들이 더러 있다. 피아노 프러포즈만큼 낭만적인 게 있을까. 하지만 피아노 프로포즈를 할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고민이라면 청계천 장통교에서 종로쪽에 자리잡고 있는 티포투(735-5437)를 추천한다. 홍차와 우롱차, 커피 등을 파는 차 전문점 티포투의 2∼3층엔 피아노가 있다. 간혹 실력을 뽐내는 손님이 더러 있다고 한다. 또한 매주 두 차례 오후 9시 하프 공연도 잡혀 있다. 일정은 매주 월요일 저녁 때 나온다. 티포투는 메뉴를 선택하기 전 찻잎이 담긴 작은 샘플병에서 향을 먼저 맡아보고 원하는 차를 고를 수 있다. 4층은 공연장으로 쓰인다. 극단들이 종종 대관해 공연을 한다. 티포투는 인테리어가 전반적으로 부드러워 여성들이 선호한다. 차 가격은 6000∼8000원 ●주문진산 골뱅이 수표교에서 나와 중부경찰서 앞에 오면 골뱅이 집이 10여개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집은 풍남원조골뱅이(2265-2336).1971년 이원희(81)씨가 시작,1981년 방종숙(50)씨가 시집을 온 뒤 요리를 맡고 남편 송병희(54)씨가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좋은 재료를 쓴다. 골뱅이는 주문진산으로 육질이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게 비결이다. 송씨는 “일반적으로 골뱅이는 북한산을 써 딱딱한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주문진산을 써 많은 손님들이 온다.”고 말했다. 이 집은 모든 게 푸짐하다. 대접에 골뱅이 무침이 산처럼 쌓여 나온다. 반찬으로 나오는 계란말이도 풍성하다. 또한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인심도 좋다. 골뱅이는 산지에서 잡아 냉동 전 바로 가공된다. 따라서 산 채로 운반되는 것보다 위생적이고 영양 상태도 오래 간다. 젓가락에 돌돌 말아 먹는 맛도 별미. 가격 1만 9000원. ●굴보쌈집 골목 청계천의 관수교에서 나와 서울극장 뒷골목에 가면 굴보쌈집이 6∼7개 있다. 이곳에서 10년 이상 굴보쌈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가게들이있다. 또한 대부분 맛이 좋기로 언론에도 소개된 만큼 믿을만하다. 손님이 많이 찾는 가게 가운데 한 곳이 전주집. 돼지고기와 김치를 말아 김치보쌈을 만들고 여기에 굴을 올리면 굴보쌈이 된다. 맛은 달콤해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함께 나오는 국도 맛이 일품이다. 가격은 굴보쌈 큰 게 2만 5000원. 중간 크기는 2만원. 정식은 1만원이다. ●대한민국 원조 함흥냉면 동네마다 함흥냉면 가게가 있다. 함흥냉면을 안 먹어본 사람은 드물다. 함흥냉면 가게는 많지만 원조는 오로지 하나. 바로 ‘함흥곰보냉면’(2267-6922). 한국전쟁 때 함흥에서 온 곰보부부가 여기서 냉면집을 시작했다. 당시엔 가게는 없었고 길 구석에 탁자를 놓고 장사를 했다고 한다. 부부는 둘 다 얼굴에 천연두 흉터가 많았고 사람들은 “곰보네 냉면 먹으러 가자.”면서 찾았다고 한다. 그 뒤 이들 부부는 수십년 동안 8명의 주방장에게 요리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현재 모든 함흥냉면 집은 모두 이들 주방장한테 전수받은 것. 부부는 장사가 잘 돼 1968년 가게를 열었고 1987년 배정지(63)씨가 인수,3층 건물에 260석을 갖춘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함흥냉면 특유의 새콤달콤한 양념장 맛이 난다. 육수는 누린내가 완전히 제거됐다. 회냉면은 가장 인기다. 물·회·비빔냉면 모두 6000원. ●4계절 문전성시인 닭집 동대문 종합시장 뒷골목엔 1년 동안 손님이 끊이지 않는 가게가 있다. 바로 진할매원조닭집(2275-9666). 진옥화 할머니는 25년 동안 여기서 오로지 한 메뉴 닭한마리만을 고집했다. 닭이 통째로 대야에 담겨 나온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손님들은 집게와 가위로 닭을 자른다. 대야 안엔 대파와 큰 감자도 있다. 아무리 가위질이 서툴러도 종업원들은 절대 돕지 않는다. 종업원들과 눈 한 번 마주치기 힘들다. 닭은 자란지 35일쯤 된 것으로 냉동하지 않은 걸 쓴다. 영계이기 때문에 부드럽고 맛이 담백하다. 김치도 고랭지 배추만을 쓰며 3일 이상 된 것은 없다. 닭을 모두 건져먹으면 국수를 넣고 국수 대신 흰떡을 넣어 먹어도 된다. 닭한마리 가격은 1만 2000원. ●원할머니 보쌈집 본가 김보배(84)씨가 1965년 청계천 8가에 허름한 판잣집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사위인 박천희(49)씨가 1991년 맡아 운영한 뒤 현재 프랜차이즈점으로 커졌는데 원래 본가는 바로 이곳이다. 많은 프랜차이즈점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데 이종구 홍보과장은 “본가 맛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개성식 보쌈으로 보쌈김치의 매콤한 맛을 줄이고 담백한 맛을 높였다. 해산물을 많이 넣는다. 현재 유명한 보쌈 프랜차이즈점이 이곳에서 배웠다는 설이 있다. 한 손님은 “36년 동안 왔다.”면서 “맛에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손긍익씨도 “서울에서 맛을 본 뒤 잊을 수 없어 대구에서 다시 와 먹는다.”고 말했다. ●황학동 곱창골목 연탄불로 곱창을 구우면 기름이 쭉 빠지고 잘 익는다고 한다. 철판에 곱창을 굽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연탄불로 곱창을 굽는 음식점이 모인 골목이 있다. 청계천 황학교에서 황학동 사거리로 가면 곱창 골목이 모여 있다. 대부분 음식점은 10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곱창을 팔았다. 1991년까진 이곳은 곱창을 파는 포장마차가 많았다. 당시엔 심야단속이 있었는데 몰래 장사를 했다고 한다. 당시 정부가 포장마차 규제 정책을 펴면서 하나 둘씩 구멍가게로 전환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업소 주인들은 손님들이 요즘도 곱창을 밖에서 먹는 걸 좋아한다고 전했다. 날이 더워지면 손님들이 밖에서 먹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가격은 가게마다 좀 다르지만 연탄불 곱창은 9000원. 야채곱창은 8000원이다. 원조왕곱창은 유일하게 4년 전부터 메뉴에 껍데기를 추가했다고 한다. 껍데기는 다이어트와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글 사진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어떻게 변했나 ‘청계천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청계천 하류 끝지점인 성동구 마장동에 위치한 ‘청계천문화관’에 가면 이런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준다. 청계천 물길을 상징하는 긴 유리 튜브 형태의 건물에는 한국전쟁 전후 혼돈과 가난을 담아냈던 청계천의 삶에서부터 도심을 관통했던 청계고가의 모습 등 복원공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청계천문화관은 오전 9시부터 밤 10까지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상설전시장은 무료로 개방된다. 건물 외벽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 전시장에 올라가자 상설 전시관이 나타난다. 관람은 4층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관람 동선을 따라 관람하면 자연스럽게 1층으로 내려올 수 있다. ●“엄마, 정말로 저렇게 끔찍한 집에서 살았어?” 가장 먼저 만난 곳은 6·25 한국전쟁 전후인 1950년대 청계천의 모습. 청계천 복개관에 들어서자 개천변으로 늘어선 판잣집의 모형과 영상물이 반겼다. 마치 성냥곽을 붙여 놓은 듯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과 난간에 내걸린 빨래, 천변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당시 서민들의 어려웠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모형물 뒤로 대형 스크린에서는 청계천의 실제 모습이 담긴 영상물이 연신 돌아간다. 관람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어떻게 저런 집에서 살았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다. 김인숙(42·동작구 사당동)씨는 함께 온 딸아이가 “엄마, 어떻게 저런 집에 사람이 살아?”라고 묻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다 저렇게 어렵게 사셨단다.”라고 얼버무린다. ●주변 찍은 대형 항공사진 바닥 ‘장식´ 코너를 돌자 어두컴컴한 터널이 눈에 들어왔다.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하다.‘이게 뭘까.’라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니 청계천 복원 전 복개도로 아래 지하를 체험하는 곳이란다.1967년 복개 공사로 인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청계천 아래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5∼6m 정도의 길이에 불과하지만 마치 어두컴컴한 복개도로 아래 지하로 들어온 듯했다. 이어 10㎞에 이르는 복원공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그래픽 패널과 영상, 모형을 통해 볼 수 있다. 또 돌아온 청계천 코너에 들어서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계천의 모습을 애니메이션 동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3층에는 청계천 주변을 촬영한 대형 항공사진이 바닥에 깔려 있어 하늘에서 청계천을 내려다 보는 느낌을 준다. 2층에서는 조선시대의 청계천 모습도 가늠할 수 있다. 조선시대 청계천의 본류와 지천, 청계천에 얽힌 역대 왕들의 이야기,17·18·19세기 청계천 고지도 등 다양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또 청계천 복개 논의가 시작됐던 일제시대의 관련자료도 볼 수 있다. 태조과 태종, 영조, 정조로 분장한 배우들이 영상을 통해 청계천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한다. ‘청계천 투어’코너에서는 청계광장∼신답철교까지 복원된 청계천의 모든 구간을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잠시 쉬며 합성사진 찍어 볼까 인공 연못과 인터넷 시설을 갖춘 휴식코너인 ‘에코 청계천’의 ‘포토존’은 인기 코너. 청계천 다리를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을 합성해 찍을 수 있다. 사진은 곧바로 프린트를 해주며 1장당 1000원이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23일까지 1970년대 청계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노무라 할아버지의 청계천 이야기’ 사진전이 열린다. 사진전에서는 1968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청계천 하류 판자촌에서 구호활동을 했던 일본인 사회운동가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75)가 기증한 사진과 스크랩북, 한국지도 등 826점의 자료가 전시된다. 사진에 등장하는 지역은 현재 성동구 마장동과 사근동, 용답동, 송정동 일대로 청계천 하류의 모습과 판자촌 거주민들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옛날엔 저 구정물에서 수영도 했다네” 사진전은 세 가지 테마로 나뉘어지는데,‘청계천의 하류 스케치’에서는 1970년대 청계천 하류에 늘어서 있는 판자촌의 모습을,‘판자촌의 하루’에서는 군복 염색과 벽에 폐휴지를 붙이는 모습 등 판자촌 거주민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마지막 테마인 ‘어린 회상과 증언’에서는 당시 노무라의 어린 자녀들이 판자촌에서 느낀 감회를 적은 글을 사진과 함께 정리한 스크랩북이 전시된다. 관람료는 무료. 사진전을 꼼꼼하게 관람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50∼70대가 대부분이다. 옛날 청계천 인근에 살았다는 한 70대 관람객은 한 사진을 가리킨 뒤 “옛날에는 저기에서 수영도 하고 그랬어. 우리 집은 저기 저쪽이야.”라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문의는 569-0696.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쇼핑·풍물시장 제일평화시장(2252-3633)은 ‘오전에 밀라노 컬렉션에서 소개된 옷이 저녁에 제일평화에 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품을 본뜬 옷들이 시시각각 선보인다.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직장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평화시장(2265-3531)은 중년 여성복, 스포츠 용품, 아동복, 운동복, 양말, 모자 등이 두루 있는 가장 큰 도매 시장 중 하나다. 신평화시장(2253-0714) 1층에는 속옷 가게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2000∼3000원대부터 유명브랜드까지 다양하다. 동평화시장(2238-1833)은 국내 유명 브랜드 위주의 덤핑 매장이 많다. 동대문의 다른 의류 상가에서도 이곳에서 물건을 떼어 갈 정도로 소매 시장이 잘 형성돼 있다. 남평화시장(2237-0622) 지하 1층·1층은 가방을,2·3층은 청바지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청평화시장(2252-8036)은 가격이 싼 재고 상품들이 많다. 동대문종합시장(2262-0114)은 연면적 2만평으로 1970년 개장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단일 시장으로 기록됐다. 원단류, 의류 부자재, 침구·커튼, 생활용품, 액세서리 등을 취급하는 우리나라 대표 원자재 시장. 인테리어 소품을 직접 만드는 등 아기자기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동대문신발상가에는 1000개가 넘는 신발 도매상이 모여있다.A동은 운동화,B·C동은 숙녀화를 주로 취급한다. 물론 신사화도 있다.광희시장(2238-4352)은 가죽·모피 전문 상가로 일본인 관광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성수기에는 시중가보다 40∼50% 싸고, 비수기에는 여기서 10% 더 싸다. 광장시장(2267-0291)은 한복, 주단, 직물, 폐백용품, 나전칠기, 제수용품을 판다. 덕운상가(2252-5835) 지하1층에는 벨트·가방·지갑 등 피혁 제품 도매 상가가 모여 있다. 아동복이 품질도 괜찮다.우노꼬레(2250-7829)에는 남성복 매장이 많다. 청대문(옛 프레야타운·2048-2000)은 30대 이상 여성복들이 많다. 광장시장(275-3674)은 1905년 7월 5일 대한제국 한성부 개설허가를 받아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근대적 시장.2층은 일본·홍콩 등에서 들여온 구제 의류가 많다.‘빈티지 룩’을 연출할 수 있는 구제의류가 잘 갖춰져 있다. 독특한 디자인과 1만∼2만원의 저렴한 가격. 한복, 침구, 의류, 나전칠기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지만 최근에는 빈티지 패션을 이끌고있다. 밀리오레(3393-0001)는 두산타워와 함께 동대문 패션몰 전성시대를 이끈 곳. 두산타워에 비해 의류 디자인이 평범하지만 가격이 저렴하다. 꼭대기층 식당가에서는 동대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식당 아주머니들의 ‘호객행위’만 아니라면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다. 두산타워(3398-3333)는 상인의 30%가 공장·하청 공장을 소유한 디자이너 출신일 정도로 감각적인 디자인의 의류가 많다. 대신 값도 다소 비싸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교환·환불도 가능하지만 현금아니면 잘 안깎아줘 동대문에서도 원칙적으로 교환·환불까지 할 수 있다. 상인들이 환불을 거부하면 상가측 상담센터나 상인연합회 등에 문의하면 도와준다. 가능한 한 현금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원칙적으로 신용카드는 받지만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면 가격을 깎아주지 않는다. 설사 가격을 흥정한 뒤라도 신용카드를 내밀면 원래 가격을 받으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평화시장 등은 소매시장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낮에 문을 닫는다. 시장별로 운영시간을 확인해보고 가야 한다. ■ 만원이면 즐기는 ‘보물찾기’ 동대문 풍물시장 ‘추억여행’ “탱크 말고는 다 있어요.” 낡은 구두, 곰방대, 화폐, 중고 바이올린골동품, 헌옷,LP판, 중고 가전, 성인용비디오까지.동대문 풍물시장(2238-4709)은 그야말로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어야 할 건 없는 벼룩시장이다. 가로 2m, 세로 1.2m의 좌판 1000개가 모여 있다.2003년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되자 청계천·황학동 일대 노점상이 동대문야구장 자리에 터를 잡았다. 입소문이 나서인지 평일에도 손님들이 제법 많다. 물건 가격은 대부분 1만원 이하.‘보물찾기’하는 기분으로 물건을 골라보자. 물건값을 흥정하는 재미도 있다. 물론 시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시장 체험이, 어른들에게는 추억으로 떠나는 여행이 될 것이다. 시장 한쪽에 마련된 먹자골목에서는 튀김·어묵·잔치국수 등으로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상인들이 저마다 문 열고 닫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지만, 대개 오전 8∼9에 장사를 시작해 오후 6∼7시면 문을 닫는다. ■ 서점·극장가 반디앤루니스(종로타워점·2198-3000)는 가장 최근 지어진 서점. 교보·영풍문고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실내에 의자가 많아서 서점에 있는 책들을 몇시간이고 볼 수 있다. 특히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다. 서가 사이에서 카페트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진 손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재즈 등 조용하면서도 감미로운 음악이 적당한 크기로 흘러나온다. 서점 입구에는 계단이 있어서 쉬어가기 좋으며, 간이무대에서는 간간이 문화공연이 열린다. 교보문고(광화문점·1544-1900)는 명실공히 업계 1위 서점인만큼 책이 가장 많다. 저자와의 팬사인회도 수시로 열린다. 음반판매점(핫트랙)은 웬만한 음반 전문점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음반들을 구비해놓고 있다. 문구점 역시 문구백화점으로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규모가 크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문구·소품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유명한 만큼 붐비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영풍문고(종로점·399-5600)는 청계천을 걷다가 광교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보인다. 지하 매장에는 커피 전문점, 아이스크림점, 샌드위치점이 있어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미국의 대형 서점인 반즈 앤 노블 한편에서 스타벅스가 성장한 것을 떠오르게 한다. 북스리브로(을지점·757-8100)는 영풍문고에서 명동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다. 다른 대형 서점에 비해 아담하지만 서점 곳곳에 4인용 테이블을 마련,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100평)의 만화책 전문매장이 있다. 대형 서점으로서는 유일하게 와인가게도 갖췄다.OK캐시백과 연계돼 있어 적립금 할인혜택이 15%나 되는 점도 장점이다. 청계천을 떠올리면 헌책방 거리를 빠뜨릴 수 없다. 청계천6가 평화시장 대로변(버들다리∼오간수교)에 있다. 한참 잘 나가던 1970년대에는 200여곳이나 됐지만 지금은 40여곳 정도 남아 있다.3평 안팎 되는 가게에 책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다. 책 고르기는 힘들지만, 괜찮은 책을 발견할 때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마냥 신난다. 가격은 정가의 절반 정도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영화관·공연장 옹기종기 마니아들 발길 북적북적 관수교 북쪽 방향으로 ‘원조 개봉관 삼총사’인 서울극장·단성사·피카디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1907년 개장해 국내 최고(最古) 영화관으로 기록된 단성사(764-3745),1958년 개관한 피카디리(3676-7942)는 지난해 리모델링을 했다. 시설은 깔끔하지만 예전 극장의 낭만은 사라졌다. 영화 ‘접속’에서 주인공이 서로를 기다리던 피카디리 극장 앞 커피숍도 사라졌다. 삼일교 북쪽(인사동) 방향으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극장전’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시네코아(2285-2090)가 있다. 여기서 더 걸어가면 예술영화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741-9782)가 연인들을 기다린다. 옛 허리우드 극장 자리의 아트선재센터에 있던 시네마 테크 전용관을 옮겨왔다. 삼일교 남쪽(명동) 방향에는 개봉작과 단편영화를 두루 볼 수 있는 중앙시네마(776-8866)가 있다. 직진하면 우리나라 소극장 공연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삼일로 창고극장(319-8020)도 보인다.1975년 개관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멘트를 펴바른 담벼락 아래로 연극인들의 추억들이 느껴진다.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도 있다. 광교를 기준으로 명동을 바라보면 애비뉴엘 건물에 롯데시네마(1644-8855)와 아바타 건물에 명동 CGV(1544-1122)가 있다. 마전교를 건너 종로쪽으로는 연강홀(708-5001)이, 지하철 2호선 동대문운동장역과 신당역 사이에는 충무아트홀(2230-6600)이 있다. 모두 뮤지컬·연극·클래식 등이 펼쳐지는 종합 공연장이다. 동대문 시장의 청대문(옛 프레야타운) 건물에는 MMC(2268-01111)가 있다. 씨네큐브 광화문(2002-7770)은 청계광장에서 충정로 방향 쪽의 흥국생명 지하에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 건물 외관에서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반긴다. 로비에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지하에 푸드코트가 갖춰져 있다. 로비에서 팝콘을 팔지 않아 영화 관람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 버들치·조팝나무 “날 보러 와요” ‘반갑다. 봄!’ 30년만에 찾아온 청계천의 봄을 가장 반기는 이들은 아마도 청계천의 나무와 꽃들과 물고기, 철새 등일 것이다. 콘크리트 더미에 떠밀려 도시를 등졌던 이들은 화사한 청계천의 봄을 만끽하고 있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심은 100여종의 나무와 꽃 이외에 바람을 타고 천변에 날아든 156종의 식물들이 청계천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인다. 맑은 물 아래에는 각종 물고기가, 수면 위에는 긴 겨울을 지낸 새들이 날아와 따스한 봄볕을 즐긴다. ●봄꽃들의 현란한 꽃잔치 요즘 청계천에 가면 조팝나무에 하얀 꽃들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여기에 활짝 핀 빨간 진달래와 영산홍, 노란 개나리가 관람객을 맞는다. 키 1∼2m의 조팝나무는 꽃 핀 모양이 튀긴 좁쌀을 붙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조팝나무라 불린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한다. 조만간 청계천 가로변 5.5㎞구간에서는 900여그루의 이팝나무와 물가에 심은 노랑 꽃창포가 만개해 장관을 이룰 전망이다. 지난 연말 루미나리에 축제 때 화려한 전등이 내걸렸던 이팝나무들은 파란 잎과 하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물가에 심어진 백합목 붓꽃과 식물인 노랑 꽃창포의 꽃망울이 개천을 화려하게 장식할 전망이다. 담쟁이덩굴들은 가로변 담장을 타고 오른다. 덩굴손에 흡착근이 있어 담벽이나 암벽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아 회색빛 담장을 푸르게 바꾸어 놓는다. 마장2교에서 용답육교에는 매화거리가 330m 조성돼 있으며, 시점부에서 새벽다리 사이에서는 산수유와 산철쭉, 자산홍, 개나리를 볼 수 있다. 고산자교에서 신답철교 사이의 사과나무와 감나무도 이달 말부터 꽃망울을 터뜨린다. 하류인 고산자교 일대에는 바람을 타고 온 이름 모를 풀들의 현란한 잔치가 벌어졌다. 마디풀과 고들빼기 등 종수는 156종에 이르지만 일반인들이 이름을 알기란 쉽지 않다. 식물 중에는 다른 식물들에 해를 끼치는 위해식물들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돼지풀과 서양등록나무 등은 사람들에게 알레르기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청둥오리등 동물 160여종 관찰 청계천은 정수된 한강물과 지하수가 흐르는 2급수 자연하천으로 1급수 어종인 버들치와 2급수 어종인 붕어, 참붕어, 메기 등 다양한 어종들이 살고 있다. 모전교에서 다산교까지 3.26㎞구간에 물고기 인공산란장 5개소와 물고기 쉼터인 거석 16개소, 거석수제 16개소, 목재방틀 20개소가 설치돼 있다. 이것들은 물고기들이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올 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고 홍수 때에는 물고기들의 피난처로 쓰이게 된다. 버들치는 몸길이 8∼15㎝로 몸 한가운데 황갈색 세로띠가 있다. 몸은 길고 옆으로 납작하며, 주둥이가 길고 위턱 끝에서 앞쪽으로 튀어나온 육질돌기가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송사리는 몸길이가 5㎝정도로 몸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다. 몸빛깔은 담회갈색을 띤다. 이 밖에 하류에 가면 메기와 잉어, 피라미, 미꾸라지, 갈견이, 버들치, 돌고기 등도 볼 수 있다. 찾아드는 철새들도 다양하다. 지난해 청계천에서는 황조롱이와 고방오리, 중대백로, 왜가리 등 34종의 조류를 포함해 족제비등 동물 160여종이 관찰됐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청둥오리. 몸길이는 50∼60㎝로 수컷은 머리와 목이 광택 있는 짙은 녹색이고 암컷은 갈색 얼룩이 있다. 집오리의 원종이기도 하다. 청계천관리센터 윤소원과장은 “청계천에는 다양한 동·식물들 서식처로 많은 생태가 점차 복원되고 있다.”면서 “이달 말부터 복원 뒤 처음 찾아온 봄 식물 등에 대한 모니터링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지역 명물’ 多 있네! ‘지방 명물들이 다모였네’ 청계천에는 전국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기증받은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북 상주시와 충북 충주시 등 12개 자치단체에서는 각 지역을 상징하는 나무와 꽃을 청계천에 기증했다. ‘곶감’으로 널리 알려진 상주시는 감나무 90그루를 기증, 신답펌프장∼마장 2교 제방에 심었고,‘사과’의 고장 충주시는 사과나무 120그루를 고산자교∼신답철교 제방에 심었다.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의 명소 충남 천안시는 능수버들 16그루를 다산교 하류 빨래터 양측 둔치에 심었으며, 창녕군은 청계천·중랑천 합류지점 호안습지에 갈대 3만포기를 기증했다. 경북 영주시는 산철쭉 5400그루를 오간수교간 둔치에, 경기 포천시는 구절초 2만포기를 살곶이공원 둔치에,‘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군은 대나무 260그루를,‘매화의 본고장’경남 하동군은 매화나무 250그루를 신답철교∼용답육교에 각각 심었다. 경북 성주군은 노랑꽃창포 39종 8430그루포기를 지난 15일 기증, 신답철교 하류 생태교육장 부근에 심었으며, 충남 부여군은 이달 말 차집관거∼세월교에 연꽃 300평을 기증할 예정이다. 이밖에 황학교 하류 소망의 벽 주변에 있는 돌하르방은 제주도에서 기증한 것이며, 두물다리 아래에 있는 경관석은 남해군에서 기증한 것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주차장·화장실 못찾아 불편하셨죠? 청계천을 찾을 땐 미리 주변 편의시설을 확인해두면 편리하다. 특히 화장실과 주차시설은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놓자.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라 청계천과 인접한 무료 주차시설은 거의 없다. 멀리 떨어진 공영 주차장이나 주변 건물의 부설 주차장, 사설 주차장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도심이다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한국관광공사 옆 노상주차장은 무료인데 자리가 9개 뿐이라 서둘러야 한다. 서울신문사 등 부설주차장은 24시간 운영하며 최초 30분은 2000원, 초과 10분당 1000원을 받는다. 오히려 성동구 마장동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주변에 주차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시설관리공단, 성북수도사업소, 동대문우체국 등이 모두 무료이기 때문이다. 청계천 주차장도 10분당 350원에 불과하다. ●무인 자동화화장실을 찾아라 청계천을 거닐다 보면 화장실 찾기가 녹록지 않다. 청계천변에서 올라와 표지판을 살펴보면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지정한 화장실이 눈에 띈다. 공단과 협약을 맺은 곳이라 화장실 이용을 거부하면 신고할 수 있다. 건물에 들어가기 껄끄러우면 무인 자동화화장실을 이용하자. 삼일빌딩, 한국전력변전소, 구 홍보관, 황학교, 고산자교, 성북천 등 7곳에 설치돼 있다. 이용료는 10분당 100원. 남녀공용이란 점이 불편하다. ●청계천 순환버스를 타자 청계광장에서 의욕적으로 출발해도 동대문운동장을 지날 때면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청계천 순환 2층버스를 이용하면 관광이 한결 편안하다. 다음달 4일부터 하루 5차례씩 왕복 14.6㎞를 오간다. 원하는 곳에 내려 구경하고, 다음 버스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다.2층에 앉으면 청계천 물길도 보인다. 관광 안내원이 청계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차내에서 관광영상을 보여줄 계획이다. 요금은 3000∼5000원선이 될 전망이다.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를 비치하고 있다. 청계광장 안내소와 청계천 2가 안내센터, 오간수교 등 3곳이다. 청계천 편의시설은 청계천 종합안내도(cheonggye.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열린세상] 조선시대 초상화의 얼을 되새기며/이성낙 가천의대 총장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한 형태로 깊숙이 자리잡은 이른바 ‘거짓말하는 풍토병’으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는 날로 심화되어 가는 ‘가난한 자’와 ‘가진 자’간의 경제적 양극화 현상보다 더 심각하며,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거짓 언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크고 작은 사기꾼은 물론 온갖 거짓말을 해대는 정치인을 많이 보아와서인지, 이제 우리는 거짓말을 정치인의 ‘직업병’ 정도로 생각하고 너그러이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타인의 사기 행각도 비교적 너그러이 넘어가고,‘내 자신’의 잘못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염려스럽다. 요즈음 끊임없이 회자되는 황우석 사건에 얽히고 설킨 ‘거짓말 신드롬’을 보면서 더욱 그러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크고 작은 거짓 행태나 각종 부정부패가 정치·경제계만의 ‘특산물’이 아니라 종교계나 교육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 전반에 일고 있어 참으로 부끄럽다. 도대체 이러한 현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과연 우리는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있다면 그 해법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터일까? 조선시대 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역사 기록물만 보더라도 그 시대에는 거짓 행위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절대적으로 금기시되었던 사회 풍토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초상화 관련 기록물은 그러한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 제작에 따른 몇 가지 공통점을 보면, 왕가나 양반 계층에서만 보편화되었다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연구 대상으로서의 비교군으로 볼 때 장점이 많다. 또한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일관된 화법에 의해 초상화가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조선 숙종 14년(1688년) 3월7일자 승정원일기에 화인(畵人)이 초상화를 그리면서 “옛 선비가 이르대, 털 하나 머리카락 하나가 조금이라도 혹 차이가 나고 다르면 곧 다른 사람이라 함은 바꿀 수 없는 정론입니다.”라고 기술된 사실에서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은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낙향하여 보내다 타계 직전 조정에서 보낸 화인이 조정의 하사품으로 초상화 즉 영정을 제작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죽음의 병리 증상과 함께 여러 피부 증상들을 초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피부과학을 전공하는 본인으로서는 실로 연구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 그 한 예가 숙종·영조 때 높은 관직을 지낸 오명항(1673∼1729) 선생의 초상화이다. 선생의 피부색이 누런 황달을 넘어 말기 간암 증상인 흑달 단계로 검게 그려져 있어 사인으로 간암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당시 만연된 천연두를 앓은 ‘곰보’ 자국도 선명히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초상화가 한두 점이 아니다. 초상화 작업이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 아버님을 조금 예쁘게 그려달라.”는 후손들의 청이 있었을 법도 한데 수많은 조선시대 초상화에서는 분식(粉飾)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조선시대 초상화는 예쁘지도 않으며, 일본이나 중국의 것에 비해 권위적이지도 않으면서 그저 정직 담백하기만 하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오늘날의 부정부패 현상은 적어도 조선시대 이후 나타난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민족정신 유전자’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읽을 수 있는 정직 담백함이 당시 선비 정신이라면, 우리가 그 거울을 보면서 오늘의 문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성낙 가천의대 총장
  • 증산도 교리 바탕 한반도 미래 예언

    증산도의 교리서인 도전(道典)에는 한반도와 국제 정세의 과거 현재 미래상황을 암시하는 대목이 곳곳에 담겨 있다. 증산도의 창시자인 강증산(1871∼1909) 상제가 상극의 세계에서 상생의 세계로 바뀌는 ‘후천개벽’을 설명하면서 그 일련의 과정인, 이른바 ‘천지공사’와 ‘도수’를 일반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일종의 예언들인 셈이다. 예를 들어 “일본사람이 미국과 싸우는 것은 배사율을 범하는 것이므로 장광(長廣) 팔십리가 불바다가 되어 참혹히 망하리라.”(도전 5편 119장) 대목을 보자.여기서 장광은 나가사키(長崎)와 히로시마(廣島)의 줄임말로 1941년 미국 진주만을 침략하였던 일본이 1945년 8월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어 패망한 사건을 설명한 것으로 흔히 받아들여진다.또 중국-일본의 전쟁과 관련해 “장차 일청전쟁이 두 번 일어나리니 첫 번째에는 청국이 패하고 말 것이요. 두 번째 일어나는 싸움이 10년을 가리니 그 끝에 일본은 패하여 쫓겨 들어가고 호병(胡兵)이 침노하리라. 그러나 한강 이남은 범치 못하리라.”라고 한 대목도 1931년 일본의 만주침략과 1937년의 중일전쟁을 예언한 것으로 특히 ‘한강이남은 범치 못하리라’부분은 6·25전쟁중 투입된 중공군이 한강선에서 진격을 멈춘 사실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증산도가 최근 펴낸 ‘개벽-실제상황’(안경전 종정 지음, 대원출판 펴냄)은 이처럼 증산도에서 중심사상으로 강조하는 ‘개벽’에 얽힌 여러가지 실제상황들을 현실과 미래에 연결해 풀어낸, 증산도 교리와 후천개벽 사상의 완결판이다.증산도의 ‘개벽’과 ‘상생’을 사회담론의 형태로 발전시킨 ‘이것이 개벽이다’(상·하)와 ‘도전’을 집약한 것으로 안경전 종정의 부친과 조부 등 안 종정 3대에 걸친 구도과정을 중심으로 증산도의 교리와 사상을 종교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과학 역사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한 점이 두드러진다. 평이한 문체로 서술하면서 동서양의 문헌을 각주로 붙이고 관련사진 일러스트를 곁들여 흔히 어렵다고 인식되는 증산도 교리를 일반론적으로 풀어내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엮였다. 무엇보다 행정수도의 대전 이전과 연결되는“내가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대전)에 꽂았느니라.”(본문 505쪽), 천연두의 재발과 법정 전염병 재지정 상황과 부합하는 “앞으로 시두(천연두)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본문 150쪽)같은 민감한 예언 부분이 학계와 일반인들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1만8000원.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자연의 소리와 치료/최미숙 증산도 부산당리도장 수호사

    인류 최초의 의학의 아버지는 히포크라테스 이전에 동방 한민족의 선조이신 염제 신농씨라고 한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몸을 실험삼아 온갖 약초를 맛봄으로써 사선을 넘나들며 후세 인류를 위해 의학과 약학의 기본 틀을 세웠다. 신농씨 이후 5000년간 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갈수록 질병의 올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산업화·기계화되어 가는 사회구조 속에서 빚어지는 스트레스가 주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체에는 면역체계라는 것이 있는데, 이 면역체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이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지금 인류의 스트레스 수치가 원시인과 비교하였을 때 무려 400배에 이른다고 한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면역체계에 이상을 초래한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스트레스로 인해 자극을 받으면 우리 몸의 군·경찰 병력이라 할 수 있는 T림프구를 비롯한 백혈구 또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몸의 면역체계와 신경조직이 연결돼 있기 때문인데, 이때 각종 유해한 바이러스나 균으로부터 세포들이 공격을 받아 결국 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같이 치명적인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현대인들은 나름의 고민을 하고 사는데, 필자는 이에 관한 해법으로 소리와 음악 치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동양의 문화권에서는 일찍부터 소리의 중요성을 깨달아 음악을 발전시켜왔다. 서양의 피타고라스 또한 음정을 근거로 수학을 발전시켜온 것은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소리가 사람과 문화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을 깊이 인식하여 악(樂)을 정치와 교화에 적극 적용해왔다. 근래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소리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다양한 치유 방법을 개발해가고 있다. 물 흐르는 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원초적인 자연의 소리와 함께 국악, 클래식, 뉴에이지 등 다양한 음악 장르에 이르기까지 소리로 질병을 치유하는 예는 이제 거의 보편화돼 가고 있는 실정이다. 소리비료라는 것도 있다 한다. 중국에서 1998년에 개발해 미국 특허를 받은 것으로, 농작물에 적합한 소리의 파장을 쏘아주면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도 40% 이상 수확의 증가를 거둔다는 것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음악 효과를 이용한 제빵 기술도 국내에서 선보이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있는 대부분 병의원에서 소리치료 센터를 운영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소리 치료효과 중에서 무엇보다도 강력한 치유의 효과를 지닌 소리는 바로 주문이다. 주문은 소리의 결정체인데, 그중에서도 필자는 수천년의 시간을 거쳐 완성된 태을주(太乙呪)라는 주문의 효력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태을주는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의 23자로 되어 있다. 여기서 각각의 음절 하나하나를 일컬어 시드 만트라(seed mantra) 즉, 소리의 씨앗이라고 한다. 여기서 훔이라는 씨앗 소리의 의미는 바로 우주의 마음자리 즉, 생명의 근원 자리를 소리로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훔’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원시 우주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치는 바로 그 우주의 생명 자리와 하나 되는 소리이다. 즉 ‘훔∼치’라고 읽는 순간, 우리는 불멸의 이 우주 생명과 하나가 됨으로써 몸과 마음이 함께 치유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태을주의 많은 기적적인 체험사례가 있지만, 태을주를 읽기 전후의 적혈구실험·물의 실험·몸의 파장 실험 등을 통해 얻은 결과는 태을주가 매우 강한 면역 증가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에서도 천연두의 치료법으로 약 처방 외에 태을주 읽기에 관한 기록이 있다. 태을주의 ‘태을천상원군’의 다른 이름인 ‘태을구고천존(太乙救苦天尊)’이란 주문을 100독 읽을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근래 조류독감이니 사스니 하는 신종 전염병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질병과 그로 인한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적인 것은 모름지기 모든 병에는 약이 있다는 사실이다. 공기만큼이나 밀접하게 우리는 소리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소리의 순수 정수(精髓)인 주문, 그중에서도 태을주가 우리의 생명을 활성화시키는 신비로운 힘이 있음을 깨우친다면 우리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최미숙 증산도 부산당리도장 수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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