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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국영웅 고귀한 희생 잊지 않으리…”

    “호국영웅 고귀한 희생 잊지 않으리…”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9주년 기념식이 시작된 후 김황식 국무총리가 이들의 이름을 부르자 곳곳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들은 한일 월드컵 3·4위전이 있었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북한의 경비정 2척이 서해상 북방한계선(NLL)을 침범, 대응 출동한 참수리 357호 고속정에 선제 기습공격을 가하면서 30여분 간 교전이 벌어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해군 용사들이다. 우리 고속정은 북한 경비정을 응징하고 퇴각시켰으나 윤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기념식은 김 총리와 전사자 유가족, 승조원,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렸다. 김 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적 성공은 제2연평해전 용사들을 비롯한 호국 영웅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정부는 앞으로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확고한 인식 위에 이분들을 예우하고 지원하는 일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행사에선 연평해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 ‘서해 수호관’ 개관식도 열렸다. 2함대 안보공원에 들어선 수호관은 파도 형상을 본떠 건평 866평에 2층 건물로 마련됐다. 1층 수호관에는 ‘NLL과 해전실’, 2층에는 ‘천안함 피격 사건실’이 각각 마련됐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손학규, 日총리에 “평창 지원해달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일본 방문 이틀째인 28일 간 나오토 총리 등 정계 지도자들과 잇따라 만나 한·일 관계 발전 방안을 밝히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당부했다. 손 대표는 간 총리와 만나 “지난해 발표한 담화문과 조선왕실의궤 반환으로 한·일 과거사 문제의 실마리를 풀었다.”고 밝혔다. 이어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원전 안전 대책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면서 “침착하고 의연하게 사태를 수습하는 일본 국민의 저력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남북 문제에 대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직분을 다할 수 있게 지원하지만 인권과 핵, 미사일 개발 문제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면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원칙 있는 포용정책’이라고 표현했다. 전날 이명박 대통령과의 민생회담에 이어 대표 취임 이후 첫 해외 방문에서 외교적 입장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은 차기 대선을 향한 입지 굳히기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대해 간 총리는 담화문 평가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북핵·납치 문제 해결이 동북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요청한 데 대해서는 “일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게 말하겠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손 대표는 전날 도쿄 한 식당에서 수행 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청와대 회담에서 당장의 성과는 없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정책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회담 무용론을 반박했다. 한편 손 대표는 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라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28일 일본 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천안함·연평도 사태와 관련해) 북한이 모든 잘못을 사죄하고 대화하자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하고 “이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라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옹진군-섬, 안개에 잠기다

    옹진군-섬, 안개에 잠기다

    모처럼의 비가 전국을 촉촉이 적시던 날이었다.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해서도 어깨를 적시는 빗줄기와 흐린 하늘에 심란한 마음이 앞섰지만, 일탈하듯 떠나는 섬 여행에 낭만을 더해 주는 더없이 그럴싸한 날씨라 생각하니 이내 기분이 좋아진다. 모처럼의 비가 전국을 촉촉이 적시던 날이었다.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해서도 어깨를 적시는 빗줄기와 흐린 하늘에 심란한 마음이 앞섰지만, 일탈하듯 떠나는 섬 여행에 낭만을 더해 주는 더없이 그럴싸한 날씨라 생각하니 이내 기분이 좋아진다. 약 4시간 뱃길을 달려 마주한 서해 최북단의 섬들은 포근한 안개와 시원한 절경으로 맞아준다. 그동안의 괜한 걱정과 긴장감일랑 풀어버리라는 듯이.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김명희 취재협조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옹진군청 www.ongjin.go.kr 대청도 모래사막과 푸른 바다의 만남 작은 사하라 사막 여행을 가기 전 검색해 본 대청도 사진에는 예상치 못한 사막 풍경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는지 의아한 마음으로 찾은 모래사막. 바람이 만들어 놓은 물결만 오롯이 있는 순결한 금빛 모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은 새벽녘 밤새 내린 눈 위에 뽀드득 발자국을 만드는 순간만큼이나 비밀스러운 기쁨을 선사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이곳으로 불어올 제, 모래알이 하나둘 쌓여 만들어진 모래 언덕은 날씨가 좋을 때는 저 멀리 청록 빛 바다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이제는 주변에 해송을 심어서 더 이상 모래가 쌓이지는 않고, 단지 바람에 따라 날리며 그 모습을 조금씩 바꾼단다. 이 작은 모래 언덕 아래턱에는 야생 해당화 밭이 펼쳐져 있다. 해변에서 만끽하는 완벽한 휴식 수목이 무성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대청도(大靑島)’는 그 이름만큼이나 푸른 해변을 많이 품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여전히 날은 흐렸지만 안개가 가득 낀 농여 해변은 을씨년스럽기보다는 애수에 차 있었고 발밑으로 느껴지는 단단히 다져진 고운 모래는 아침 산책을 더욱 가뿐하게 만든다. 지두리 해변은 해변이 많은 대청도에서도 최적의 가족 피서지로 손꼽히는 곳. ‘지두리’는 경첩의 이곳 사투리로 기역자 모양의 해변 모습을 딴 정겨운 이름이다. 양쪽으로 산줄기가 바람을 막아주고 완만한 경사와 잔잔한 파도를 지녀 이곳 주민들도 해수욕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추천을 아끼지 않는다. 샤워나 화장실 시설도 완비되어 있어 동해처럼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평온한 가족휴가를 보내기에 이만한 곳이 없을 것 같다. 1km에 걸쳐 고운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해송이 우거져있는 사탄동 해변 또한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여심을 유혹하는 붉은 꽃망울 봄바람은 바다 건너 이 먼 섬에도 찾아와 붉은 꽃망울을 틔웠다. 따뜻한 해안과 인접한 토지에 자생하는 동백꽃. 대청도의 동백이 특별한 것은 이곳이 동백나무가 자생할 수 있는 최북단 한계지라는 이유에서다. 해서 이 동백나무북한자생지는 천연기념물 6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4, 5월에 막 피어나는 요염한 빛깔의 동백을 감상할 수 있다.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더 많았으나 땔감으로 쓰느라 많이 베어그 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근처 언덕에서는 흑염소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다. 대청도에서 만난 청록빛 바다 대청도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보려는 욕심에 강난도 정자각에 올랐다. 저 아래 삼각산은 안개에 묻혀 그 모습을 드러낼 듯 말 듯 시시각각 그 모습을 바꾸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서해 바다에 햇살이 잘게 부서져 내리는 광경이 들어오니, 정자각에 오르는 것은 그 자체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기름아가리 절벽도 대청도의 아름다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나무를 헤치고 시야가 탁 트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손을 담그면 금세라도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초록빛 바다. 이런 바다색이 서해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짧게 내뱉은 탄성은 차라리 감동에 가까웠다. 저 멀리 혼자 고독하게 서 있는 독바위는 그 풍경에 아름다운 소품이 되어 주고, 바다 빛깔에 질세라 새파란 하늘은 색의 다채로움을 더한다. 1 대청도 독바위 해변. 대청도는 조용히 가족 휴가를 보낼 만한 아름다운 청록빛 해변이 많은 섬이다 2 정자각에서 본 삼각산 원나라 순제가 귀향살이를 했다고 전하며 모양이 삼각형 같다고 하여 삼각산이라 이름 붙여졌다. 해발 343m로 2시간 정도의 훌륭한 등산 코스가 되어 준다 3 대청도의 명물 기름아가리 절경 아름다운 바다와 풍부한 수산물이 자랑인 대청도에서 낚시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배 위에서 직접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회로 즐길 수 있는 선상 바다낚시나 여러명이 함께 그물을 잡고 물고기 몰이를 할 수 있는 끌레그물 고기잡이 등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식당이나 민박집에서도 갓 잡은 자연산회를 맛볼 수 있다 소청도 마을 두 개가 전부인 소탈한 섬 달빛처럼 빛나는 분바위 분칠을 한 것처럼 하얀 까닭에 이름 붙여진 분바위의 또 다른 이름은 ‘월띠’다. 마치 달빛이 하얗게 띠를 두른 듯 하다 하여 붙여진, 참으로 낭만적인 이름이다. 그 자태만 고운 게 아니라 그믐밤 배들의 방향잡이까지 되어 주는 고마운 분바위다. 계단을 내려가 가까이서 본 해안은 바닷물에 의해 만들어진 웅덩이와 그 안에서 자라나는 해조류와 굴 등이 만들어낸 작은 세계들로 가득했다. 바다 가까이 가면 해안을 덮듯이 가득한 홍합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묘한 빛을 반사해내는 장관이 펼쳐진다. 하얀 등대의 로망 분바위에서 섬 반대편으로 차를 달리니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등대가 나온다. 마을 두 개가 전부인 아담한 소청도에서 서로 반대편에 위치한 이 두 곳만 보더라도 섬 전체를 한번은 가로지르게 되는 것이다. 소청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설치된 등대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묵묵히 배들의 길잡이가 되어 밤바다를 밝혀 왔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하얀 등대는 그 어떤 피사체보다도 바다에 대한 로망을 가득 품게 해준다. 등대 주변에서는 텐트 야영도 가능하다. 별, 등대, 바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조합이다. 1, 2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설치된 소청등대. 작은 섬에 홀로 서 있는 하얀 등대가 그 운치를 더한다 3 분바위 해변을 가득 메운 자연산 홍합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소청도에서는 자연 친화적인 체험 여행을 해보자. 아이들과 바닷가의 해조류와 홍합을 직접 채취해 삶아먹기도 하고, 유유자적 낚시를 즐길수도 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수묵화 안개가 지닌 신비한 힘은 소청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등대 위에서 바라본 바다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면 언덕배기를 슬금슬금 넘어온 안개가 어느새 풍경을 뿌옇게 가려 버리기 일쑤다. 대청도와 소청도 사이를 가득 메운 해무는 겨우 고개만 삐죽 내민 대청도를 마치 운해 속의 산처럼 보이게도 만들었다. 배가 오가는 포구에서는 한층 더하다. 마침 파도도 없어 잔잔한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안개로 인해 모호해지는 가운데 그 속으로 사라지듯 배가 미끄러져 나가고 있었다. 백령도 현빈이 지키는 어매이징한 그곳 서해 최북단 긴장의 땅에 찾아온 봄 천안함 폭침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백령도 연화리 해안절벽에 세워진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찾았다. 얼마 전 1주기를 맞아 제막식을 가졌던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엄숙한 추모의 묵념뿐, 직접 마주한 현장에서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북한과의 계속되는 긴장은 백령도의 주 산업인 관광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오죽하면 천안함과 함께 이곳의 산업도 침몰했다는 주민들의 한숨 섞인 탄식이 들려왔을까. 그러나 직접 가서 본 그곳에서 백령도를 지키는 흑룡부대는 더욱 증강된 전력과 전술로 다짐을 새로이 하고 있었고 주민들도 활로를 모색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현빈의 백령도 복무 소식은 백령도 주민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화색을 돌게 해준 소식임에 틀림없었다. 많은 이들이 현빈이 지키는 이 어메이징한 섬의 매력에 빠져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1 대청도의‘두무진’은일명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풍광이 뛰어나다 2 두무진의 석양.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다 3, 4 천안함 위령비와 위령탑 5 군부대 비행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던‘사곶해변 신이 만든 기묘한 작품 서해 5도 중 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는 지척에 보이는 북녘땅의 아련함만큼이나 가슴 벅찬 절경을 가진 섬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 ‘서해의 해금강’등의 수식어를 두루 독식한 ‘두무진’이다. 바위들의 모습이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두무진. 바다로 나아가 병풍처럼 펼쳐지는 기묘한 기암괴석들의 모습을 차례로 돌아보는 유람선 관광은 백령도 최고의 관광 상품이지만, 그 바위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자 한다면 직접 그 속으로 들어갈 일이다. 해안으로 내려가 눈앞에 마주한 장대한 선대암의 모습은 바람과 파도,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에 다름 아니었다. 그 장쾌한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적이었지만 두무진의 해넘이를 보기 위해서 몇 차례나 백령도를 찾았다는 이의 말을 들은 후였기에 이곳에 온 이상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백령도 하늘이 붉은 빛으로 젖어들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기암괴석들은 본 모습을 서서히 감추며 검은 실루엣으로 변해 갔다. 해넘이 직후의 짙푸른 하늘에 초승달이 떠오르자 어디선가 갈매기 한 마리도 날아올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해변들 백령도의 해변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독특함을 자랑한다. 먼저 사곶해변은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서 두 곳밖에 없다는 천연 비행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약 3km 길이의 해변은 부드럽지만 단단한 규조토로 이루어져 버스가 지나가도 타이어 자국이 거의 남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군부대 비행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단다. 현재는 부드러운 모래와 완만한 경사로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고 여름철에는 야영도 가능하다. 이름부터 귀여운 콩돌해변은 콩알처럼 작고 동글동글한 돌멩이들로 이루어진 해변이다. 이곳에서는 계절에 상관없이 맨발로 해변을 걷는 이들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발 지압 해변으로 알려진 이유에서다. 돌멩이들이 파도에 쓸려 다니며 내는 독특한 소리 또한 이곳이 가진 매력이다. 콩돌해안이 바라보이는 식당에서 마시는 옥수수막걸리와 홍합탕은 이곳을 잊을 수 없게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 이유. 고백컨대, 이곳에서 맛본 홍합탕은 지금까지 먹었던 그것과 견줄 바가 아니었다. 1 심청각의 심청이 상 2 쫄깃한 자연산 회는 보너스 3 백령도의 홍합탕 4 황해도식 메밀냉면 심청전의 무대를 찾다 익숙한 책이나 이야기의 배경무대를 찾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백령도가 무대가 된 작품은 바로 <심청전>.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바라다보이는 곳에 심청각이 위치하고 있다. 심청각 앞마당에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자 몸을 던지려는 심청의 모습이 조각된 석상이 자리잡고 있고, 1층에는 심청전 판소리 음반을 듣거나 관련 영화 자료, 고서, 모형 등을 볼 수 있게 전시해 놓았다. 2층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북녘의 장산곶을 볼 수 있다. 닿을 듯이 가까운 저 곳이 가장 닿기 힘든 곳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슬프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밤안개 속을 걷다 백령도를 떠나기 아쉬운 맘을 읽은 것일까. 섬을 떠나려던 날, 해무 때문에 배가 결항됐다. 영화에서처럼 꼼짝없이 섬에 갇히게 된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자연의 불가항력, 소설 <무진기행> 속 표현을 빌자면 사람의 힘으로는 헤칠 수 없고 먼 곳에 있는 것들로부터 사람을 떼놓는 안개였다. 선물같이 주어진 하루 저녁은 여유롭게 보낼 참이었다. 섬의 밤은 도심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7시면 불이 꺼지는 고요한 섬에 안개가 내려앉으니 저 앞은 물론, 무심코 돌아보면 걸어온 길도 사라져 있었다. 바다 내음이 섞인 파도소리만 저 멀리 들려올 뿐 완벽한 정적과 어둠이 존재하는 섬에서의 산책, 이곳에서 들리는 것은 사박사박 나와 그의 발걸음과 나지막한 웃음소리뿐. 나 또한 도시에서의 생활이 문득 내 어깨를 짓누를 때, 한적(閑寂)이 그리울 때 이곳을 생각하리라. 어깨 위 촉촉하게 내려앉아 사라지던 밤안개처럼 하룻밤 꿈 같았던 이 밤을 그리면서. ▶ Travie tip. 가격도, 마음도 가볍게 옹진섬 나들이 옹진군에서는 여행객 유치를 위해 연평, 백령(대청), 덕적, 자월(이작, 승봉)으로의 여객선 운임을 지원하는 ‘옹진섬나들이’ 사업을 진행 중이다(7, 8월 제외. 선착순으로 진행). 인천시민은 80%, 타시도민은 50%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옹진군청 홈페이지에서 출발일 3일 전 오후 3시까지 신청해야 한다. 홈페이지 ‘옹진섬 나들이’ 신청→여객선사 전화신청→발권 및 여행 멀미약 챙기기 4~5시간의 뱃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평소 멀미를 하지 않더라도 승선 전 멀미약 복용을 권한다. 바람을 막아 줄 겉옷 준비 육지와 기온이 비슷하더라도 섬에서는 수시로 변하는 날씨나 바닷바람 때문에 더 쌀쌀하게 느껴질 수 있다. 윈드브레이커나 따뜻한 겉옷을 준비하자. 일정은 여유롭게 섬 여행에는 항상 기후에 의한 결항 위험이 존재한다. 일정을 짤 때에는 하루 이틀 정도 여유를 두는 편이 좋다. ▶ Travie info. 찾아가기: 인천여객터미널을 출발해 소청도, 대청도를 경유한 뒤 백령도로 간다. 소요시간 인천~백령도 간 약 4~5시간. 섬간 이동은 2~30분 소요. 왕복요금 백령도 성인 기준 11만3,300원(여름성수기 10% 할증 있음). 운항시간 인천 출발 08:00, 08:50, 13:00, 백령도 출발 08:00, 13:00, 13:50 줈운항시간은 기상 및 선박 사정에 의해 변경될 수 있으므로 확인 필요. (청해진 032-884-8700, 우리고속, 에이스마린 032-887-2891) 대청도 마을 버스 한 대, 택시 두 대(택시투어 약 4~5만원)가 있으며 주민 차 렌트 가능. 여관 한 곳, 펜션 두 곳, 민박 다수 있음. 엘림민박(032-836-5997 www.daechungdo. com) 1박 4만원(3인 기준) 식사 6,000원(회 별도 주문 가능) 싱싱한 자연산 홍어, 광어회가 별미. 소청도 대중교통수단이 없으나 민박집 차량 이용 가능. 민박 집이 약간 있으며 식사도 가능. 백령도 렌터카와 개인택시 이용. 민박과 모텔 등 다수 있음. 아일랜드 캐슬(032-836-6700, www.island castle.kr) 한국관광공사 굿스테이로 지정된 숙박업체로 테니스장, 야외 바베큐장을 갖추었다. 1박 6만원(2인 기준, 비수기), 식사 7,000원 자연산 돌미역, 다시마, 까나리액젓이 유명하다. 특히 액젓은 백령도 청정해역에서 잡은 까나리와 천일염전에서 만든 소금으로 만들어 비린내 없이 담백한 맛으로 알려져 있다. 음식 간도 까나리액젓으로 하는 것이 이채롭다. 황해도식 메밀 냉면과 우럭, 광어, 꽃게 등의 자연산 해산물 옹진군 관광 문의 032-899-221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조건은 뭘까?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조건은 뭘까?

    지난 3월 8일 정부는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인 FX 사업을 공식화했다. 2002년에 F15K를 두 차례 나눠 도입한 뒤 세 번째 사업이다. 특히, 이번에는 스텔스 성능을 갖춘 첨단 전투기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내년에 기종을 선정하고, 60대를 2016년부터 전력화할 예정인데 사업비가 9조원이 넘어 사상 최대의 국방사업이 될 전망이다. 28일 밤 10시에 방영되는 KBS 1TV의 ‘시사기획 KBS 10’ 차세대 전투기의 조건 편에선 FX 3차 사업에 거론되는 전투기 기종들의 장단점과 개발상의 문제점, 한국형 전투기 사업과의 연관성 등을 집중 취재해 한국 공군이 도입하는 차세대 전투기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심층 조명한다. FX사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외환위기 등을 겪으면서 세 차례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1, 2차 사업을 통해 F15K 60대를 도입했다. FX가 절실한 이유는 공군이 보유한 절반 이상의 전투기들이 30~40년 된 노후 기종이라는 점 때문이다. F4E, F5 전투기는 이미 수명주기를 넘어서, 이르면 2015년부터 퇴역하기 때문에 그 공백을 메워주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제작진은 사업의 필요성을 취재했다. 정부와 군이 스텔스 성능을 강조한 배경에는 지난해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겪으며 우리 국방전략이 적극적 억제전략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또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들이 앞다퉈 스텔스기를 개발하는 동향도 한몫했다. 제작진은 주변국의 동향과 그 파급 효과에 대해서도 짚어본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기종은 더 완전한 의미의 스텔스 성능을 갖춘 기종과 제한적 성능을 갖춘 기종으로 분류된다. 세계 최강의 전투기 F22의 뒤를 잇는 F35는 개발이 지연돼 애초 약속했던 전력화 시기를 맞추지 못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큰 논란이 되고 있다. 다른 기종인 F15 SE나 유로파이터는 성능은 우수하지만, 스텔스 성능이 제한적이다. 제작진은 현지 취재를 통해 각 기종의 장단점과 개발의 문제점 등을 조명했다. 차세대 전투기의 조건은 무엇일까. 스텔스가 아직은 완숙한 기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FX 기종 선정을 앞두고도 논란이 많다. 종심이 짧은 한반도 전장상황에서 꼭 스텔스기를 고집하는 것이 옳으냐는 논쟁이다. KBS 시사기획 10에선 스텔스 성능에 대한 논란과 함께 차세대 전투기가 갖춰야 할 조건을 심층 취재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찰떡’ 한·미 외교장관 ‘균열’ 메웠다

    한국과 미국이 24일(현지시간) ‘찰떡공조’를 재확인했다.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 움직임에 한국이 반대하는 기류와 함께 공조 균열 가능성이 일각에서 제기됐으나 결국 미국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존중하는 쪽으로 정리가 된 형국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재개 가능성도 한층 줄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워싱턴에서 회담을 갖고 북·미 대화와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는 최근 북한이 남북 비밀접촉을 폭로하고 미국의 식량지원 움직임에 적극 호응하는 등 ‘통미봉남’ 전술을 재가동하고 나선 데 대해 한·미가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 장관은 “첫 단계로 건설적인 남북 간 비핵화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면서 “천안함 사건은 남북 간 이슈이고 6자회담은 비핵화를 위한 이슈이지만, 현 상황에서 비핵화를 다루는 이슈에서도 우리와 관련된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진전이 어렵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 사과가 6자회담 재개의 직접적 전제조건은 아니지만,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클린턴 장관 역시 “먼저 북한이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만 한다는 공통된 입장을 우리는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북 식량지원과 관련, “현재 우리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면서도 “북한은 모니터링 문제와 함께 중단됐던 과거 식량지원 당시와 관련된 미해결 문제(2007년 식량지원 중단 당시 북한에 남겨둔 2만여t 에 대한 북한의 전용 의혹)에 대한 우리의 심각한 우려를 해소해야만 한다.”고 강조, 순순히 식량 지원을 할 생각은 없음을 시사했다.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에 대한 향후 조치와 관련, 우리(미국과 한국)는 전략적 목표에서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고 강조, 한·미 공조 균열 관측을 일축했다. 김 장관은 이날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의미에 대해 “북한의 성명 후 남북대화가 생략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일부에서 있었지만, 그래도 미국은 남북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해, 한때 한·미 간 공조 균열 우려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는 한국이 북한에 천안함 사건 사과를 요구하는 데 대한 미국의 입장에 대해 “이는 한국의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며,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다. 또 북한의 비밀접촉 폭로로 현 정부 내 남북관계가 물 건너갔다는 관측에 대해 “북한은 저렇게 하다가도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바뀌곤 하기 때문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서울광장] 양건 감사원장께 드리는 편지/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양건 감사원장께 드리는 편지/최광숙 논설위원

    감사원장님은 기억나지 않겠지만 1980년대 대학생이던 필자가 다니던 대학에 외부 강사로 ‘헌법’을 강의하실 때 한 학기 내내 뵈었습니다. 지금까지 따로 만나 인사드린 적이 없으니 제자라고 내세울 처지도 못 되지요. 예의 없는 제자가 옛 스승께 어쭙잖게 펜을 든 것은 작금의 감사원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입니다. 검은 돈을 받고 감사 무마 청탁에 나선 감사위원(차관급), 구제역 최일선 감사 현장에서 피감기관들과 음주가무를 즐긴 감사관들, 해외출장 간 군 장성을 문책 요구 대상에 넣었다가 뺀 천안함 감사. 국민들 눈에 비친 나사 빠진 감사원의 현주소입니다. 나랏돈이 허투루 쓰이는 걸 제대로 잡아 낼는지,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는 추상같은 영(令)을 세울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여기저기서 “너나 잘하세요.”라는 조롱이나 받는 건 아닌지요. 감사원의 상징이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마패’인 것은 아시지요.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한 은진수 전 감사위원 구속 건은 암행어사가 도적들과 한패가 돼 선량한 백성들을 등친 것과 다를 바 없죠. 나쁜 놈들 잡아들이라 나랏님이 마패까지 내줬더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래도 감사원 맨들은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인사의 일”이라며 선을 그으려 합니다. 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내부 인사라고 그리 큰소리칠 위치에 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원내에서조차 “특정인은 운이 좋아 저축은행 사태에서 비켜난 것 같다.”는 식의 얘기가 흘러나왔던 것을 보면 평소 엄격한 자기관리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감사원 맨들이 없진 않나 봅니다. 앞으로 정당 출신 인사는 감사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한다는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내부 인사, 외부 인사 각 3명씩 땅따먹기 하듯 나눠 먹는 감사위원.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자질 검증 없이 아무나 가서야 되겠습니까. 금명간 은 전 위원의 후임과 오는 11월 퇴임할 하복동 위원 후임 등 감사위원 자리가 두 자리나 비니 그 자리를 노린 이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죠. 이참에 감사위원 인선을 한층 깐깐하게 스크린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조선시대 감사원 역할을 하던 사헌부의 관료인 대관(臺官)만 하더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4대 친족까지 ‘현미경 검증’을 했습니다. 다른 어떤 관직보다 더 엄하고 까다롭게 인선을 했지요.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규찰·탄핵해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인물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죠. 공정과 청빈은 기본이고, 뛰어난 식견과 강직한 성품도 필수였죠. 제약도 많았지요. 첫째, 공금횡령, 부정축재 또는 뇌물을 받은 탐관오리의 아들·후손은 대관에 임명되지 못했지요. 둘째, 정실에 흐르지 않도록 다른 관직보다 훨씬 심한 상피제(친족이 같은 관청·지역에 일하지 못하게 한 제도)의 적용을 받았지요. 셋째, 본인을 비롯해 부모와 처의 4대조(代祖) 허물까지 샅샅이 뒤졌다죠. 오늘날 총리·장관 인사청문회는 저리 가라입니다. 취임 전 일이긴 해도 사실 저축은행 사태 전부터 이미 감사원은 망가져 가고 있었습니다. 과거 정권에서 청와대에 파견 나갔던 감사원 출신들이 체급도 안 되는데 대통령과의 학연·지연으로 사무총장으로 금의환향하면서 감사원은 이미 무너졌습니다. ‘줄 잘 서면 된다.’는 정치 학습으로 감사원 기강은 해이해졌고, 출세의 처세술을 익힌 이들의 벼락 승진은 감사원 문화를 퇴행시켰지요. 실세 사무총장이 감사원장을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희한한 일이 생긴 것도 그리 먼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현재 작금의 사태들이 터진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은 전 위원만 하더라도 맑은 물을 흐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아니라 이미 감사원은 미꾸라지가 놀기 좋은 흙탕물이었던 거죠. 지금 감사원은 개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흐트러진 내부 조직부터 다잡으셔야 합니다. 감사원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bori@seoul.co.kr
  • “61년전 우정 감사합니다”

    “61년전 우정 감사합니다”

    6·25 전쟁 발발 61주년을 앞두고 미국에서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한인연합회(회장 최정범)와 경기 용인의 새에덴교회(담임목사 소강석)는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미 연방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감사보은 행사’를 공동 개최했다. 행사에는 한덕수 주미대사를 비롯해 찰스 랭글, 에드 로이스, 에니 팔레오마베가 등 지한파로 알려진 연방 하원의원들이 참석했다. 상원 외교위원회의 공화당 간사인 리처드 루거 의원 등도 기념 메시지를 보냈다. 초청된 6·25 전쟁 참전용사와 가족 등 200여명은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희생자를 위한 묵념과 기념식에 이어 감사 메시지 영상을 지켜본 뒤 한국 전통음악과 고전무용을 감상하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기념선물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윤순구 워싱턴총영사가 대독한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은 결코 여러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행사가 한·미 간 아름다운 우정의 역사를 기념하고 밝은 미래를 여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6·25 전쟁에 참전한 랭글 의원은 “감사합니다.”라고 한국말로 인사한 뒤 “안보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 생존자뿐 아니라 전사자들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50~100명의 참전 미국인을 한국에 초청해 온 소 목사는 “한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에 대한 은혜도 갚고 미래 한·미동맹 강화에도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행사 후 인근 보훈병원을 찾아 참전용사들을 위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버지니아주 한인회(회장 홍일송)와 한·미교류협회도 24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참전용사 700여명을 초청해 워싱턴DC 한국전 기념공원 등에서 감사 행사와 기념식을 갖는다. 또 워싱턴문화원과 문화체육관광부, 국기원은 오는 25일 버지니아에서 6·25 전쟁 61주년을 되새기는 태권도 시범 공연을 열 예정이다. 주미대사관도 24일 한국 기념공원에서 한 대사와 유엔 13개 참전국 소속 국방무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갖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데스크 시각] 여울목의 물소리/이지운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여울목의 물소리/이지운 정치부 차장

    2300여년 전 알렉산더 대왕은 실로 바람과 같은 속도로 제국을 만들어 나갔다.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오3세와 최후의 일전에서 승리하고 서쪽으로는 고향 마케도니아에서부터 동쪽으로 인더스강 동편에 걸쳐 ‘헬라’라는 이름의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후 8년이 못되어 그는 죽고 제국은 나뉘고 사라진다. 헬라제국을 전후해 200~300년, 중동은 대격변기였다.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헬라에 로마까지 수천년 인류사에 족적이 뚜렷한 대제국이 세워지고 쓰러졌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많은 약소국가들이 제국들의 수레바퀴에 깔려 뭉개졌다. 시리아 지방에 ‘유다’라는 나라도 마찬가지다. 기원전 1050년 왕정국가 체제를 갖추었으나 120년이 지난 기원전 930년부터 남북으로 나뉘어 분단국가로 지냈다. 북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멸망당했다.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2세의 침공 때 망했다. ‘느부갓네살’은 이라크전 때 사용됐던 이라크 미사일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라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남유다 요시야왕은 아시리아의 쇠퇴기를 잘 활용해 국력을 다졌고 잃었던 영토를 회복했다. 이 무렵 신바빌로니아가 신흥 강국으로 등장했는데, 이집트가 이 바빌로니아를 견제해 아시리아를 도우려 했다. 요시야는 아시리아의 회복을 원치 않았다.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자국을 괴롭혀온 나라의 재기를 원치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집트를 막아선다. 이집트의 파라오 느고는 “내 목표는 바빌로니아”라며 비켜설 것을 종용했지만 요시야왕은 ‘므깃도’라는 곳에서 일전을 감행했다가 전사하고 만다. 바빌로니아의 발흥은 역사의 숙명이었다. 그러나 남유다는 아시리아,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했다. 바빌로니아가 기원전 608년 아시리아를 무너뜨리고 기원전 605년 ‘갈그미스 전투’를 통해 이집트까지 제압, 중근동의 패권을 장악한 뒤에도 남유다는 쓰러져 가는 옛 강호 이집트에 의지하려 했다. 상황을 오판한 대가는 3차에 걸친 침공과 식민이주, 포로생활이었다. ‘역사의 여울목’에서 약소국은 판단도, 결정도, 처세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쟁쟁한 대제국들이 맞서는 상황, 여울목이 만들어 내는 빠른 물살에 휩쓸려 유다는 저만치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스 아테네에 서서 뜬금없이 2500년 전의 유다를 떠올린 것은,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여울목 때문이다. 다 쓰러져 가던 옆집 중국이 다시 거대 제국의 모습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고, 수십년 경제 대국으로 주름잡던 이웃 일본은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를 경영하던 미국은 정치, 외교, 군사 등 각 분야에서 하락세가 분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러시아의 꿈틀거림도 신경을 자극한다. 한 지붕 다른 집 북한은 그 가는 곳을 알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2년 우리를 둘러싼 주요 국가가 대부분 리더십의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각국은 내부의 긴장감이 한껏 높아질 것이고, 자국의 형편이나 다른 이웃나라와의 관계 등으로 주변에 대한 배려는 소홀해지기 쉽다. 천안함 사건·연평도 포격 등에서 중국이 우리에게 보여준 태도는 그 대표적인 예표다. 이해가 겹쳐 맞물리고, 긴장이 쌓여 가면 ‘관리’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도 새 대통령을 뽑는다는 사실이다. ‘국력’이 선거에 몰리다 보면 이 관리는 부실해질 수 있다. 다른 나라들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2012년 저쪽 너머로 물살 빨라지는 소리를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는 요즘이다. 대권주자들도 이 소리를 충분히 듣고 있으리라 본다. 대통령 특사로 지난 5월 유럽을 다녀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얼마 전 사석에서 “그리스에 다녀오니 (그리스 경제위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더라.”고 했다. 박 전 대표도, 다른 후보들도 가급적 더 자주 나가서 그 물살의 소리를 더욱 실감하기 바란다. 아테네를 다녀와서 jj@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톨스토이가 쓴 명작 ‘전쟁과 평화’를 잠시 기억해본다. 마지막 부분이다. 주인공 안드레이 청년이 죽어가면서 ‘시베리아의 하늘도 파랗구나’라고 읊었다. 평화로운 파란 하늘을 진작 봤으면 전쟁을 할 일도 없을 텐데 죽어갈 때 누워서 하늘을 보니 ‘왜 피 흘리면서 전쟁을 했을까’라는 물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6·25전쟁은 왜 했을까. 평화를 위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했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눈물겹도록 아프게 하는 역사를 왜 만들어야 했을까. 참으로 비통하고 영원히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큰 상처이기에 해마다 6월이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7시였다. 젊은 장교의 일성은 이랬다. “사단장 각하, 전방에서 적이 전면적으로 침공해 왔습니다. 개성이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개성은 벌써 점령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서울과 개성 등 전방을 지키는 보병 제1사단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의 숨가쁜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알리는 제1보였다. 백선엽 장군은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에서 10일 전부터 3개월 과정의 고급간부교육을 받고 있던 중 급거 귀대하여 1사단을 지휘했다. 이후 낙동강까지 후퇴한 1사단은 한국군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미1군단에 배속돼 지원 나온 미군 2개 연대와 함께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전투 중 한국군 병력의 후퇴와 무단이탈이 심해지자 함께 다부동을 지키던 미군 27연대장 마이켈리스(Michaelis) 대령이 “전선 좌측의 한국군 부대가 무단 이탈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전황을 알려왔다. 백선엽 장군은 후퇴하는 국군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이후 1사단은 평양 입성을 가장 먼저 했다. 백선엽 장군은 최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6·25 전쟁 당시 1128일의 기억을 책으로 펴냈다. 6·25전쟁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여긴다. 6·25전쟁 61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6월이어서 그런지 강의를 해 달라는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뒤에야 자리에 마주 앉았다. 192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92살. 그런데도 전쟁의 기억은 분명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백 장군이 “고향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제주도라고 답을 드렸다. 그러자마자 나오는 얘기는 이러했다. “제주도 무척 많이 갔지. 6·25때 모슬포에 보충대가 있었어. 16주 동안 교육을 시키고 전쟁터에 보냈거든, 그래 육군 제1 훈련소야. 20살 전후의 청년들 10만명 정도가 훈련을 받았어, 내 동생(백인엽 장군)이 훈련소장도 했고. 태풍도 많이 왔어. 미군부대에서 지원 받은 천막을 치고 훈련했지. 하루에 상륙함정(LST) 두 척이 오고 가면서 훈련병들을 실어 날랐어. 그 병사들이 전쟁터에 많이 죽었어.” 백 장군의 눈이 잠시 감긴다.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상황에서 지금의 5~6주 교육보다 더 긴 16주 교육을 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 “미군의 2차대전 방식을 그대로 따랐거든. 미군은 100개 사단이 있었는데 대부분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보내졌어. 2차대전때…. 제주도 훈련소는 일제때 썼던 비행장이야, 그러니까 일본군들이 중국의 난징(南京) 폭격을 위한 중간 기지였지. 훈련소에는 미군 고문관들이 많았어.” 백 장군은 왜 제주에 자주 갔을까. “내가 육군참모총장을 했었거든. 훈련소에 물이 부족했어. 그걸 해결하기 위해 LST나 미군 비행기를 이용해서 여러 번 갔어. 아마 수십 차례 될걸. 또 동생이 1년동안 훈련소장으로 있었거든. 장도영 장군도 훈련소장을 했었지.” 백 장군은 잠시 4·3사건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1948년 4월 3일이야. 내가 부산 3여단 참모장을 했어. 제주 관할이니까 부대 시찰차 갔었지. 그때는 제주읍이야. 4월3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김익열 연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어. 김달삼(金達三)이 이끄는 폭도들이 제주지역 11군데 지서를 습격했다고 말야.” 잠시 관련 자료을 들여다본다. 김달삼은 사회주의 혁명가로 제주 4·3 사건을 주도한 남조선로동당원이다.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며, 고향은 대구. 일본에서 중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1945년 1월 일본에서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했으며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강문석이 쓰던 가명이다. 1946년 말 제주도 대정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에 남로당 대정면 조직부장을 맡았으며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책이자 군사부 책임자가 됐다. 화제를 다시 돌려 6·25 전쟁때 제1보를 보고한 김덕준 소령에 대해 물었다. “그날 아침 7시였어. 지금도 그 목소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전화를 받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북한이 탱크와 전투기를 갖고 있는거 알았거든.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수차례 얘기했고…” 백 장군은 이 대목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미군에게 북한의 남침 예상을 얘기했고 나도 미군 고문단과 만날 때마다 전투기와 탱크, 대포를 달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술회했다. “우리야 그때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 미군에게 그렇게 여러번 얘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말야. 북한군은, 나중에 노획문서를 보니 깨소금까지 준비할 정도로 매우 치밀하게 전쟁을 계획했어.” 백 장군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군이 왜 6월 25일을 택했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북한군은 남한에서 먹을 것이 많은 계절인 6월부터 9월까지를 정했지. 3개월이면 부산까지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어. 이 시기는 들판에 가면 먹을 것들이 많거든. 전쟁에서 먹거리는 매우 중요해. 북한은 추수때까지 전쟁을 끝낼 계획을 짰어.” 그렇다면 우리 군사들은 무엇을 먹고 싸웠을까. “낙동강까지 후퇴하면서 농협창고에서 쌀을 얻었고 밭에 가면 파와 배추가 있었지. 그걸 먹었어. 또 우리 선량한 아주머니들, 국민들이 갖다주는 음식도 먹었어. 아주 훌륭한 분들이야. 다부동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주민들이 갖다주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할 때는 어땠을까. “김일성 군대는 낙동강에서 완전히 녹았어. 북진을 하면서는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 왔고 군에서 나오는 건빵을 먹었지. 고지 전투에서는 배가 고파 이탈하는 군인들도 더러 있었어. 북진할 때는 하복을 입었는데 나중에 동복으로 갈아 입었고….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보더니 많이 환영했어. 먹을 것도 주고….” 백 장군은 평북 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과 맞닥뜨린다. “중공군은 장개석 군대 출신들의 최정예 부대야. 일본군과 10년을 싸운 군사들이었지. 전쟁경험이 아주 많아. 그런 군사 100만명이 압록강을 넘어와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 군이 당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우리 1사단을 덜 당했어. 운산 일대에 중공군 30만명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전에 알 수 있었지. 하루 밤새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더라구. 결국 후퇴하고 말았지만….” 그러면서 백 장군은 북한군의 변화상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남북한은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120만명의 지상군과 20만명의 특공대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61년 동안 북한은 청와대도 습격하고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등 별 장난을 다했다.”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계를 잘해야 돼.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출신들이 군대를 가잖아. 자원이 아주 훌륭해요” 백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전체 110명이었는데 지금 만나는 동기들은 겨우 15명 내외에 불과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다. “아픈 데 없어. 병원도 안 가. 동기들과 만나 옛날 얘기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 맥아더 장군이 얘기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백 장군은 “너무 오래 살았어.”하면서 껄껄 웃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백선엽 그는 누구인가 1920년 평안북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3월 평양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다가 만주 봉천(奉天) 군관학교에 진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42년 12월 제9기로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1943년 4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해방 직후에는 잠시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45년 2월 월남했다. 이후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고, 1946년 2월에 임관했다. 그해 1월 창설된 국방경비대에서 제5연대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경비대가 정식으로 국군으로 재편되면서 제5연대장과 육본 정보국장을 거쳐 1950년 4월에 개성을 관할하는 국군 1 보병사단 사단장(당시 계급 대령)으로 부임했다. 1951년 겨울에는 지리산의 빨치산 소탕을 위한 ‘백(白) 야전사령부’를 구성했으며 이 사령부를 모태로 이듬해 4월에는 한국군 최초로 근대화된 2군단을 창설했다.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군 훈련체계의 개혁, 보급체계 개편, 상이군인들에 대한 복지 향상 등에 힘썼다. 이때 10개 상비사단 창설(11~20사단), 10개 예비사단 창설 등을 추진했다. 퇴역 후에는 외교관 생활을 한 뒤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대한민국 최초의 원수계급에 해당하는 예우를 받고 있다.
  • 백선엽 “깨소금까지 준비한 북한군 6월 25일 도발한 것은”

    백선엽 “깨소금까지 준비한 북한군 6월 25일 도발한 것은”

    지금도 눈물겹도록 아프게 하는 역사를 왜 만들어야 했을까. 참으로 비통하고 영원히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큰 상처이기에 해마다 6월이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7시였다. 젊은 장교의 일성은 이랬다. “사단장 각하, 전방에서 적이 전면적으로 침공해 왔습니다. 개성이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개성은 벌써 점령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서울과 개성 등 전방를 지키는 보병 제1사단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의 숨가쁜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알리는 제1보였다. 백선엽 장군은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에서 10일 전부터 3개월 과정의 고급간부교육을 받고 있던 중 급거 귀대하여 1사단을 지휘했다. 이후 낙동강까지 후퇴한 1사단은 한국군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미1군단에 배속돼 지원 나온 미군 2개 연대와 함께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전투 중 한국군 병력의 후퇴와 무단이탈이 심해지자 함께 다부동을 지키던 미군 27연대장 마이켈리스(Michaelis) 대령이 “전선 좌측의 한국군 부대가 무단 이탈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전황을 알려왔다. 백선엽 장군은 후퇴하는 국군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이후 1사단은 평양 입성을 가장 먼저 했다. 백선엽 장군은 최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6·25 전쟁 당시 1128일의 기억을 책으로 펴냈다. 6·25전쟁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여긴다. 6·25전쟁 61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6월이어서 그런지 강의를 해 달라는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뒤에야 자리에 마주 앉았다. 192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92살. 그런데도 전쟁의 기억은 분명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백 장군이 “고향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제주도라고 답을 드렸다. 그러자마자 나오는 얘기는 이러했다. “제주도 무척 많이 갔지. 6·25때 모슬포에 보충대가 있었어. 16주 동안 교육을 시키고 전쟁터에 보냈거든, 그래 육군 제1 훈련소야. 20살 전후의 청년들 10만명 정도가 훈련을 받았어, 내 동생(백인엽 장군)이 훈련소장도 했고. 태풍도 많이 왔어. 미군부대에서 지원 받은 천막을 치고 훈련했지. 하루에 상륙함정(LST) 두 척이 오고 가면서 훈련병들을 실어 날랐어. 그 병사들이 전쟁터에 많이 죽었어.” 백 장군의 눈이 잠시 감긴다.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상황에서 지금의 5~6주 교육보다 더 긴 16주 교육을 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 “미군의 2차대전 방식을 그대로 따랐거든. 미군은 100개 사단이 있었는데 대부분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보내졌어. 2차대전때?. 제주도 훈련소는 일제때 썼던 비행장이야, 그러니까 일본군들이 중국의 난징(南京) 폭격을 위한 중간 기지였지. 훈련소에는 미군 고문관들이 많았어.” 백 장군은 왜 제주에 자주 갔을까. “내가 육군참모총장을 했었거든. 훈련소에 물이 부족했어. 그걸 해결하기 위해 LST나 미군 비행기를 이용해서 여러 번 갔어. 아마 수십 차례 될 걸. 또 동생이 1년동안 훈련소장으로 있었거든. 장도영 장군도 훈련소장을 했었지.” 백 장군은 잠시 4·3사건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1948년 4월 3일이야. 내가 부산 3여단 참모장을 했어. 제주 관할이니까 부대 시찰차 갔었지. 그때는 제주읍이야. 4월3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김익열 연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어. 김달삼(金達三)이 이끄는 폭도들이 제주지역 11군데 지서를 습격했다고 말야.” 잠시 관련 자료을 들여다본다. 김달삼은 사회주의 혁명가로 제주 4·3 사건을 주도한 남조선로동당원이다.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며, 고향은 대구. 일본에서 중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1945년 1월 일본에서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했으며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강문석이 쓰던 가명이다. 1946년 말 제주도 대정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에 남로당 대정면 조직부장을 맡았으며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책이자 군사부 책임자가 됐다. 화제를 다시 돌려 6·25 전쟁때 제1보를 보고한 김덕준 소령에 대해 물었다. “그날 아침 7시였어. 지금도 그 목소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전화를 받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북한이 탱크와 전투기를 갖고 있는거 알았거든.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수차례 얘기했고?” 백 장군은 이 대목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미군에게 북한의 남침 예상을 얘기했고 나도 미군 고문단과 만날 때마다 전투기와 탱크, 대포를 달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술회했다. “우리야 그때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 미군에게 그렇게 여러번 얘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말야. 북한군은, 나중에 노획문서를 보니 깨소금까지 준비할 정도로 매우 치밀하게 전쟁을 계획했어.” 백 장군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군이 왜 6월 25일을 택했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북한군은 남한에서 먹을 것이 많은 계절인 6월부터 9월까지를 정했지. 3개월이면 부산까지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어. 이 시기는 들판에 가면 먹을 것들이 많거든. 전쟁에서 먹거리는 매우 중요해. 북한은 추수때까지 전쟁을 끝낼 계획을 짰어.” 그렇다면 우리 군사들은 무엇을 먹고 싸웠을까. “낙동강까지 후퇴하면서 농협창고에서 쌀을 얻었고 밭에 가면 파와 배추가 있었지. 그걸 먹었어. 또 우리 선량한 아주머니들, 국민들이 갖다주는 음식도 먹었어. 아주 훌륭한 분들이야. 다부동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주민들이 갖다주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할 때는 어땠을까. “김일성 군대는 낙동강에서 완전히 녹았어. 북진을 하면서는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 왔고 군에서 나오는 건빵을 먹었지. 고지 전투에서는 배가 고파 이탈하는 군인들도 더러 있었어. 북진할 때는 하복을 입었는데 나중에 동복으로 갈아 입었고?.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보더니 많이 환영했어. 먹을 것도 주고?.” 백 장군은 평북 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과 맞닥뜨린다. “중공군은 장개석 군대 출신들의 최정예 부대야. 일본군과 10년을 싸운 군사들이었지. 전쟁경험이 아주 많아. 그런 군사 100만명이 압록강을 넘어와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 군이 당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우리 1사단을 덜 당했어. 운산 일대에 중공군 30만명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전에 알 수 있었지. 하루 밤새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더라구. 결국 후퇴하고 말았지만?.” 그러면서 백 장군은 북한군의 변화상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남북한은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120만명의 지상군과 20만명의 특공대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61년 동안 북한은 청와대도 습격하고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별 장난을 다했다.”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계를 잘해야 돼.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출신들이 군대를 가잖아. 자원이 아주 훌륭해요” 백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전체 110명이었는데 지금 만나는 동기들은 겨우 15명 내외에 불과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다. “아픈 데 없어. 병원도 안 가. 동기들과 만나 옛날 얘기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 맥아더 장군이 얘기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백 장군은 “너무 오래 살았어.”하면서 껄껄 웃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李대통령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

    李대통령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아마 대한민국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현욱 수석부의장 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신임 간부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다과회를 함께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통일은) 한밤중에 그렇게 올 수 있다.”면서 “항상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오는 것이 아니고, 뜻밖에 올 수 있고, 한참 뒤에 올 수도 있다.”면서 “확실한 것은 통일은 분명히 온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통일이 가까워졌다고 말하고 싶다. 오해를 살까 봐 말을 안 하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국력이 합해졌을 때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으며, 남북이 협력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베트남 외무장관회의 때 북한 박의춘 외무상이 천안함은 미국과 한국이 조작을 해서 만든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뭐냐. 대한민국에 그걸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100% 믿고 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며,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 5000만 국민, 700만 동포들이 통일에 대한 신뢰와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전국 시·군 농업기술센터 소장, 수산사무소장 등 220여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면서 “앞으로 10년 안에 대한민국은 4만 달러 소득까지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인천시 “서해5도 공무원 처우개선”

    북한의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서해5도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이직률이 높아지자 인천시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일 시에 따르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연평·백령·대청면사무소 등에 근무하는 공무원 115명 가운데 9명이 사직(의원면직)하고 1명이 휴직을 신청했다. 특히 사직 후에 신규로 임용된 공무원이 4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서해5도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잇따르자 이들이 심리적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사직한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서해5도는 주거·교통이 불편하고 문화복지 혜택이 전혀 없는 등 여건이 열악해 근무 기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서해5도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특수지 근무수당 월 3만∼6만원을 받고 있으며, 근무평점은 0.013∼0.025점을 추가로 받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는 최근 행정안전부 주재로 열린 16개 시·도 부단체장 회의에서 ‘서해5도 지방공무원 처우개선 건의안’을 제출했다. 특수업무수당을 신설하고 특수지 근무수당 증액, 근무평점 가점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시는 우선 서해5도의 공공기관이나 시설에 근무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특수업무수당을 지급하고 액수는 인천시 조례로 제정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 근무지 위험도에 따라 3만∼6만원을 지급하고 있는 특수지 근무수당도 많게는 20만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요청했다.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근무평점 가점도 현실화해야 한다는 게 인천시 방침이다. 현재 0.013∼0.025점인 가점을 0.015∼0.04점으로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점 최대한도는 0.63∼1.0점이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샤프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할 필요 없어”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일각에서 한반도에 전술핵무기를 다시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월터 샤프 한·미 연합군 사령관은 20일 “전술핵무기가 다시 한반도에 배치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샤프 사령관은 육군협회가 주최한 고별 조찬 강연을 통해 ‘북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할 필요가 없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미국은 한국에 확장된 억지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전 세계의 자산으로 충분히 북한의 핵 공격이나 핵 능력을 억지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며 “우리가 제공하는 핵우산을 통해 북한을 억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샤프 사령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부임 기간 많은 어려움과 도전 과제가 있었다.”며 “이는 군이 더욱 강해지고 한·미 동맹과 양국 관계가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북한의 도발은 압박 전략에 의한 반복된 위협”이라며 “김정일 정권은 원하는 바를 얻고자 지속적으로 도발의 수위를 높여 가겠지만, 한·미 동맹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샤프 사령관은 또 “전략동맹 2015의 이행을 위해 우리가 전진하는 이 즈음 한국의 국방개혁은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국방개혁 계획과 함께 추진되고 있는 전략동맹 2015는 한국군 합동 지휘구조가 굳건히 자리매김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또는 전 세계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여러 갈등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합동참모본부가 임무 수행 절차상 필요 충분 조건을 충족하는 데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과정과 이후에도 연합사와 주한미군은 필요한 능력과 시스템을 갖추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한·미 간 지속적인 협력을 강조했다. 백선엽 육군협회 회장은 강연에 앞서 한국에서 37년 동안 군 생활을 마치는 샤프 사령관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샤프 사령관은 오는 7월 14일 이임식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9월쯤 퇴역할 예정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나와 통일] (20) 박종철 신경정신과 원장

    [나와 통일] (20) 박종철 신경정신과 원장

    14년 전 처음으로 북한에 의약품을 전달하기 위해 나진을 방문했을 때는 지금과 상황이 많이 달랐다. 당시에는 두만강을 건너기 위해 양쪽에서 짐 검사를 받는 데만 6시간이 걸렸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민들은 “영삼이가 보냅디까, 대중이가 보냅디까.”라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에게 참 잘해준 친구들이 있었다. 안심할 수 있게 평양에서 나진까지 이틀에 걸쳐 차를 몰고 온 사람들이었다. 서로를 돕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미운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평양에서 지하철을 타면 “남쪽에서 왔죠?”라고 묻는 학생들이 있다. 젊은이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유분방하다. 처음 북한을 돕게 된 계기는 1997년 북한에 큰 홍수가 났을 때 한 재미교포 의사의 요청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 교포들을 돕고 있었는데, 나한테 자문을 구하러 왔다. 처음에는 기생충약·소화제·아스피린 등 기본적인 의약품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다음엔 대학병원팀과 함께 의료 장비를 보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이희호 여사가 찾았던 평양산원(산부인과)에는 남측이 보낸 인큐베이터가 놓여 있다. 북한의 의료기술은 우리나라의 1970년대 수준이다. 그들은 의대를 졸업한 후 한 곳에서 평생을 연구, 진료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수준은 상당히 높다. 다만 다른 분야와는 협력이 안 돼 응용이 잘 안 된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러나 작은 것이라도 배우려고 하는 열의는 정말 대단하다. 남한의 안과팀, 위암수술팀 등이 가면 밤 새워서 공부를 하고 다음날 찾아와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열의를 보인다. 처음엔 우리가 시술을 해서 보여주고, 두 번째는 같이 하고, 세 번째는 단독 수술하는 것을 감독하는 방식으로 의료기술을 전수해 주곤 했다. 지금도 평양의대에서는 우리가 전해준 장비와 의술을 활용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북한을 돕는 이유는 별다른 게 없다. 북한에 친·인척이 있거나, 그곳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연세의대 재학시절부터 해왔던 간질환자 돕기에서 시작된 의료 봉사가 네팔·몽골·중국·베트남 등으로 확대돼 왔는데, 북한이라고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다면 어디든 간다는 생각일 뿐이다. 북한을 도울 때는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북한 어린이들을 보면 너무 불쌍하고 안됐지만, 아이들의 사진을 공개하거나 눈물 뽑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다.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후원금을 걷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돕느니 차라리 돕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5월 말 북한 취약계층 지원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방북을 했다. 나의 원칙은 “너희도 좋고 우리도 좋은 것만 하자.”는 것이다. 잡음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북쪽 사람들을 미움을 가지고 봐선 안 된다. 집단 통제하에서 움직일 때는 경계해야겠지만, 개별적으로 한 명씩 만나 보면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적어도 남북이 통일됐을 때 남쪽 사람들이 온정을 가지고 자신들을 도왔구나라는 얘기를 들어야지, 미워하거나 굶어죽기를 바랐다는 얘기를 들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통일은 꼭 해야 한다. 민족이 서로 왕래하고 협력하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쟁은 절대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정권이 여러번 바뀌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여러 번 바뀌었다. 남쪽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듯 북한도 하나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천안함 사건의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은 그럴 권리가 있는 반면, 북한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는 사람 역시 그럴 권리가 있다. 남한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정부의 통제하에서는 북한을 돕거나 교류, 협력하는 데에 있어선 다양성을 인정해 주었으면 한다. 최근 밝혀진 비밀접촉에 대해서도, 민간이 대화의 통로를 먼저 열어놓고 시작했더라면 정부 간 대화도 보다 부드럽게 진행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박종철 원장은 광화문 네거리에 병원을 두고 있는 박종철(78) 신경정신과 원장의 또 다른 직함은 대북협력민간단체 협의회 회장이다. 1997년 북한 수해를 계기로 의료지원을 시작해 지금까지 20회 방북했다. 대북 의료지원사업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질환자 봉사단체인 사단법인 장미회의 회장이기도 한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 대북협력자금을 지원받아 북한의 간질환자를 돕기도 했다.
  • 전 통일부 장관 3명 ‘남북관계 해법’ 좌담

    전 통일부 장관 3명 ‘남북관계 해법’ 좌담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각각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원로 3명이 18일 한자리에 모였다. 2006년 작고한 여해 강원룡 목사가 이끌던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여해포럼’이 주최한 ‘남북관계의 의미 있는 변화와 모색’이라는 좌담회에서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축사를 하고 1시간 20분간 진행된 좌담을 끝까지 경청했다. 좌담회는 시종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남북관계 ●이홍구 전 총리 남북관계의 제일 큰 책임은 북한에 있다. 북한이 세계적 변화 흐름에 잘 맞춰 갔으면 큰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책임을 논한다면 남북문제와 관련해 대화하고 논의하는 민주화의 제도화가 지난 20년간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한 점이다. 기본 바탕이 취약한 상황에서 (남북)문제를 다루는 게 취약점이다. 남북관계가 궤도에 오르려면 한국의 민주정치 궤도를 정상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임동원 전 장관 핵무기보다 더 급한 것은 전쟁 방지다. 많은 사람들이 군사적 충돌을 우려한다. 지금 시점에서 (남북)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천안함·연평도 문제와 6자회담을 분리해야 한다. ●김덕 전 장관 햇볕정책은 접촉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남북관계의 장기적 전략이다. 긍정적으로 본다. 그런데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보다 북한의 요구에 대해 이쪽이 먼저 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북한 비핵화 ●이 전 총리 비핵화 문제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북에 호소하고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임 전 장관 북한은 핵무기 개발단계 중 3단계인 핵실험까지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4단계인 핵무기 미사일 장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김 전 장관 북한 지도자 입장에서는 핵 없는 북한을 생각할 수 없다. 핵 폐기는 한계가 있다. 북핵을 겨냥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비책을 세워야 하고, 구체적인 협력 분위기 조성에 역점을 둬야 한다. ▲북한 붕괴설 ●김 전 장관 북한의 3대 세습 시도는 상당히 어려운 고비를 맞을 수 있지만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는 계속 남을 것이다. 동구의 교회와 같이 민주화 혁명의 기반이 될 만한 ‘외딴섬’이 없다. 나쁜 정권은 개혁으로 위기를 맞지만, 김정일은 전혀 개혁다운 개혁을 하지 않았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한·미·중 차기정권 최대부담 될 것”

    “한·미·중 차기정권 최대부담 될 것”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차기 미국 대통령 임기 중 사망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북한의 불안정이 한국, 미국, 중국에 최대 도전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15일(현지시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아시아의 새로운 냉전’ 보고서에서 “내년에 등장할 한·미·중의 새 지도자들이 맞을 최대 위기는 북한의 불안정”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는 김 위원장의 사망과 권력승계 실패가 유발할 수도 있고, 북한의 지속적인 무력 도발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을 지낸 차 교수는 “이런 위기를 피하는 열쇠는 한·미·중 3국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핵실험,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대응하는 중국의 태도로 미뤄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그는 “중국은 1992년 한국과 관계를 정상화한 이후 남북한과 등거리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면서 “북한과는 오랜 공산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한국과는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또 “중국은 김 위원장이 막내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 일본과 동맹관계를 맺을 ‘통일한국’이 중국으로서는 이롭지 않고, 경제를 위해 당분간 안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이 차기 미국 대통령 임기 중 사망할 가능성이 50% 이상”이라면서 “그의 사망은 최대의 비상 상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미국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으나 중국은 여전히 소극적”이라면서 “중국이 한반도에서 입지를 확보하길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한국, 미국과 공조하는 게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玄통일 “北이 먼저 비공개접촉 제안”

    玄통일 “北이 먼저 비공개접촉 제안”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15일 북한의 ‘남북 비공개 접촉’ 폭로와 관련, “비공개 접촉을 먼저 제안한 것은 북한”이라며 “북한의 폭로는 우리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남남 갈등을 부추기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현 장관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최재성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말한 뒤 “비공개 접촉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사과받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북한이 이런 폭로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이 어렵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 아니냐.”는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의 질문에 “포괄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본다.”며 사실상 시인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지난 5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때 중국 정부가 후계자 김정은의 동행을 요청했으나 북한의 복잡한 내부 사정 때문에 김 위원장 혼자 방문했다.”면서 “중국 최고위층에게서 직접 들은 정보”라고 주장했다.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양건 감사원장은 “정치인 출신은 일정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감사위원 후보로서 부적합하지 않으냐는 방향에서 법률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의 감사위원 자격 제한은 은진수 전 감사위원이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뒤 감사원이 쇄신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정치인 출신 감사위원 제한” 양 원장은 또 대학 등록금 감사에 대해 “감사가 등록금 문제뿐만 아니라 대학 정책 전반에 대해 재검토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제공토록 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 직원 ‘술자리 접대’ 질타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국토해양부 하천 분야 공무원들이 수자원공사 및 용역업체 직원과 어울려 술자리 등 접대를 받다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에 적발된 것을 집중 질타했다.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은 “천인공노할 일”이라면서 “국토부가 정권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일을 했다.”고 질타했다. ●황우여 “이달말 사법개혁 재검토” 사법개혁 핵심 쟁점들이 대부분 무산된 가운데 사법제도개혁특위는 영장항고제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영장항고제란 법원이 검찰에서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을 때 검찰이 이에 불복해 새로운 사실이나 증거와 함께 상급법원에 항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한편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KBS1라디오 ‘100분 토론’에 출연해 “이달 말 여야 원내대표가 (사개특위 문제를) 다시 검토하려고 한다. 그냥 둔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국군 모범용사 독립기념관·포스코 방문

    국군 모범용사 독립기념관·포스코 방문

    서울신문과 국방부가 선정한 국군 모범용사 60명과 배우자들이 초청 행사 3일째인 15일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방문했다. 모범용사 부부들은 오전 10시 독립기념관에 도착해 2시간 동안 전시관 곳곳을 둘러보면서 조국수호의 의지를 다졌다.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의 충격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듯 진지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전사,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 등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꼼꼼히 살펴봤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서수석(55) 주임 원사는 “군생활 중에 이런 기회가 없었는데 우리나라 역사를 다시 새기는 계기가 됐다.”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군생활에 다시 한 번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오찬은 안희정 충남지사가 함께했다. 안 지사는 “고향이 논산 연무대라 어릴 적 연무대 기상 나팔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면서 “안보에 여야, 좌우가 있을 수 없고 국방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범용사들은 오찬이 끝난 뒤 경북 포항으로 가 포스코를 견학하고 저녁을 먹은 뒤 경주에서 숙박했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6·15 공동선언 11주년… 안팎으로 편가르기 심화

    6·15 공동선언 11주년… 안팎으로 편가르기 심화

    6·15 남북공동선언 11주년을 맞은 15일 한반도에는 6·15선언의 기본정신인 ‘남북 간의 신뢰’를 무색하게 할 만큼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남한에서는 통일부의 방북 불허로 파주 임진각에서 반쪽짜리 기념행사가 열린 데다, 북한은 남북관계 파국을 남한의 탓으로 돌리며 6·15 정신을 되살릴 것을 촉구했다. 특히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이어 최근 북한의 잇단 비밀접촉 폭로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평화통일민족대회’에는 시민사회단체와 야당 측 의원들만 참석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남북은 작은 문제들을 뒤로하고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주저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는 민간차원의 교류, 비정치적·인도적 사업은 남북관계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해야 한다.”며 대북 식량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재개도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남북 간은 비밀 접촉도 공개될 정도로 신뢰가 떨어졌다.”면서 “6·15 공동선언이 유일한 길이며 통합진보정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뤄 내겠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전 매체를 동원해 대대적으로 6·15 공동선언을 선전하는 한편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민족끼리 자주 통일’을 강조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6·15선언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이나 논평도 내지 않은 채 거의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15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현 장관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출석해 “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정상적인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의 바람직한 태도변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원론적 수준의 견해만 밝혔을 뿐이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최근 북한이 남북 비밀접촉을 공개하고 “남한과 상종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악화된 관계의 고착이 심화된 상태다. 북한의 두 차례에 걸친 비밀접촉 폭로는 한국은 물론, 미국·중국 측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관련국들의 한반도 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종잡을 수 없게 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이후 북·중경제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남한은 북한의 돌발 행동에 미국·일본을 대상으로 ‘3단계 대화론’을 지속하기 위한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 북·중과 한·미·일의 한반도 대결 구도가 강화되는 양상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비밀접촉 내용 폭로로 향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사전접촉도 어려워져 돌파구 마련조차 쉽지 않다.”면서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북한의 대남 강경대응이 장기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개성공단 활성화와 남북경협 재개 등 전향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설영·강주리기자 snow0@seoul.co.kr
  • 고려항공, 평양~상하이 직항노선 새달 1일 개통

    북한 평양과 중국 상하이(上海) 간 직항노선이 다음 달 1일 개통된다. 북한 고려항공은 14일 AFP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오는 7월1일부터 일주일에 두 차례 상하이 푸둥과 평양 순안공항을 연결하는 직항 노선을 운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상하이~평양 노선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운항되며 첫날 항공편은 이미 전석 매진됐다고 중국 언론매체인 항저우망(杭州網)이 전했다. 이 노선이 개통되면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항공노선은 현재 베이징~평양, 선양~평양에 이어 세 개가 된다. 열차로는 단둥~평양 노선이 하나 있다. 북한은 이 노선을 통해 소득 수준이 높은 상하이 등 중국 남부에 사는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시작된 상하이∼북한 단체관광은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중단됐으나 7월 직항노선 개설과 함께 재개된다. 상하이에서 출발해 평양, 개성, 묘향산과 금강산 등을 둘러보는 관광 상품 가격은 4박5일 기준으로 5399~5999위안(약 90만∼100만원)으로 책정됐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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