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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함미 인양] “조금만 일찍 출동해 구조활동 폈다면…”

    “함께 바다를 지키던 분들이었는데…. 천안함 승조원들이 주검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천안함 침몰 이후 누구보다 앞장서 달려왔던 해경 함정요원, 해군수중폭파팀(UDT) 대원, 전직 UDT대원 등 구조·수색요원들도 천안함 승조원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인양되는 것을 보고는 하루 종일 마음이 아팠다. 최선을 다해 구조활동을 폈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출동해 구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고 직후 천안함 함수에 있던 장병 56명을 구조한 해경 ‘501함’ 고영재(55) 함장은 “실종 승조원들이 무사 귀환하기를 바랐는데 착잡하다.”며 “당시 함미가 이미 가라앉아 이들을 구조할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 함장은 “이들이야말로 국가의 아들이요, 영웅”이라며 “국민들이 이들의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함미 너무 빨리 침몰 안타까워” 해경은 해군이 펼치고 있는 사고 해역 잔해물 수거 및 유품 수거를 돕는 동시에 실종된 금양호 선원을 찾아내는 데도 주력할 방침이다. 장병 2명을 구조한 옹진군 어업지도선 김정석(56) 선장도 “당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승조원들까지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나중에 46명이 가라앉은 함미에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옛 동료들이 시신으로 돌아온 것을 보는 전직 UDT동지회 회원들도 가슴이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사고 4일째부터 실종자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UDT동지회 심현표(57) 회장은 “차가운 바닷속에 전우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철수한 게 아쉬웠다. 고 한주호 준위와 천안함 희생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그는 “늦게나마 함체 인양이 이뤄진 것은 다행이지만 사고 원인을 정확히 밝혀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금양호 인양도 서둘러야” 실종자 구조작업을 폈던 한국구조연합회 정동남(60) 회장은 “실종자들이 주검이 돼 돌아온 것을 보니 구조작업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면서 “시신이 손상되지 않도록 잘 수습해 유가족을 두번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실종자 수색작업을 폈던 중앙119구조대 최정춘(42) 구조반장은 “실종자를 놔둔 채 구조작업을 종료하고 철수할 때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실종자들이 끝내 시신 상태로 돌아와 안타깝다.”고 말했다. 금양98호 실종자 가족대표 이원상(43)씨는 “천안함 함미 인양을 계기로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을 펴고 돌아가다 실종된 금양호 선원들을 인양하는 작업도 하루빨리 펼쳐달라.”고 요구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안타까운 사연들

    20일간의 기다림이 물거품이 된 현실에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주위를 안타깝게 하는 사연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전쟁터에서도 살아온 사람이 왜 이렇게 어이없이….” 제2 연평해전의 용사 박경수 중사의 가족들은 “해전 이후 6년이나 배를 타지 못하다 1년 전에 간신히 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남들이 평생 한번 겪기도 힘든 일을 두 번이나 겪고 가 너무 불쌍하다.”고 애통해했다. 누나를 셋이나 둔 이상민 병장은 집안의 자랑이자 효자였다. 가족들은 제대를 불과 한 달 보름 정도 남긴 채 배에 올랐던 막둥이를 하염없이 불렀다. 누나 상희(28)씨는 “동생이 나이가 스무살이 넘어서도 엄마한테 안기는 걸 좋아했다.”면서 “요즘 젊은 애답지 않게 엄마 디스크 수술비에 보탠다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300만원을 마련해 주고 입대했다.”고 말했다. 이 병장의 생일이었던 지난달 13일에는 가족들이 함께 면회를 왔었다. 2년간 한 번도 면회를 오지 못하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아들을 찾아 평택에 온 것은 사고가 난 다음날이었다. 5월의 신부가 될 뻔했던 강준 중사의 아내 박현주(30)씨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강 중사와 경남 진해에서 함께 일했던 해군 최초의 여성부사관인 박씨는 올 5월3일 결혼할 예정이었다. 정종률 중사의 아들 주환이의 사발면 역시 주인을 잃었다. 주환이는 실종자 가족들이 대기하던 해군 2함대 예비군 훈련장 숙소에서 부대 측이 제공한 사발면을 “아빠가 돌아오면 주겠다.”면서 차곡차곡 모아 왔다. 철 모르는 아들 때문에 계속 눈시울을 붉혔던 정 중사의 부인 정경옥(34)씨는 “진해로 근무지 발령이 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천안함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고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지난해 결혼한 최정환 중사는 자신의 큰 손과 몸집에 지난 1월 태어난 딸이 다칠세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는 여린 아버지였다. 또 딸이 크는 것을 보고 싶어 천안함을 마지막으로 함상 근무를 접고 육상 근무를 자원한 상태여서 가족들의 슬픔은 더했다. 문규석 중사의 사촌형 강석(44)씨는 “규석이가 두 딸이 눈에 밟혀 눈이나 제대로 감았는지 모르겠다.”고 서러워했다. 문 중사는 사고가 나기 5분 전 초등학교 4학년인 큰딸에게 전화를 걸었고, 딸은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했다. 이날 남은 희생자 중 가장 먼저 발견된 서대호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52)씨는 “아들이 ‘남자라면 육군 말고 해병대 정도는 가야죠.’라는 말을 남기고 해군에 입대했는데 이런 일을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동진 하사의 어머니 홍수향(45)씨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사진 속에서 김 하사는 해군 정복을 입은 채 늠름하게 홍씨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홍씨는 “우리 아들은예. 여자도 몰라예. 결혼도예. 엄마가 찍어준 여자하고 한다고 했어예.”라고 말했다. 박건형 김양진기자 kitsch@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인양 4시간만에 첫 시신… 가림막뒤엔 ‘그 순간’ 뚜렷

    [천안함 함미 인양] 인양 4시간만에 첫 시신… 가림막뒤엔 ‘그 순간’ 뚜렷

    천안함을 삼킨 뒤 줄곧 무섭게 일렁이던 바다는 15일에는 다행히 잠잠했다. 취재진을 실은 인천 옹진군 소속 517호 행정선 선장은 “하늘이 이제서야 돕는 모양이야.”라고 말했다. 두 달에 한 차례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갈매기 몇 마리가 작업 현장을 맴돌며 무심하게 울어댔다. 행정선은 18노트(시속 33.3㎞)의 속력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함미(배 뒷부분) 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인양작업 현장 근처에 다다르자 7노트(시속 13㎞)의 최저 속력으로 주변을 시계방향으로 둥글게 돌았다. 실종자 가족들의 타들어 가는 기다림과 전 국민의 염원, 하늘의 보살핌으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양 작업 시작 옹진군 백령도 남방 1370m 지점 해역에 가라앉아 있던 천안함의 함미 인양 작업은 15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됐다. 앞서 8시44분에는 침몰 해역 주변에 있던 독도함에서 유가족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모든 실종자를 무사히 수습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위령제가 열렸다. 주변에 있던 해군의 모든 함정은 15초간 애도의 기적을 울렸다. 2200t급 크레인에 매달린 함미는 1분에 1m씩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 시작 10분 남짓 만에 갑판 위의 사격통제 레이더실과 하푼미사일 등이 보였다. 9시22분부터는 해난구조대(SSU) 요원들이 크레인과 연결된 사다리를 통해 함미 갑판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9시28분부터는 자연배수가 시작됐고, 9시58분부터는 인공배수 작업이 진행됐다. 군(軍)은 “자연배수로 430t, 인공배수로 504t의 물을 뺐다.”고 밝혔다. 함미 곳곳에 설치된 배수펌프는 하얀 바닷물을 쉴 새 없이 토해냈다. 펌프 한 대당 한 시간에 1.5t의 해수를 뿜었다. 다행히 기름유출은 거의 없었다. 유류탱크가 격실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군은 설명했다. 기름이 유출됐다면 주변의 까나리 어장이 큰 피해를 당할 우려가 있었다. 10시쯤부터 바람이 좀 거세지고, 해무가 끼어 보는 이들을 긴장시켰다. 배수 작업이 본 궤도에 오르자 수색작업도 시작됐다. 인양팀 요원들은 10시30분쯤 함미 바닥인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해수를 뺀 함미 무게는 955t으로 추정됐다. 승용차 1000대의 무게다. 선체 무게가 625t이고, 330t은 기름 무게다. 크레인이 늘어뜨린 대형 쇠사슬 한 개가 끌어올릴 수 있는 무게는 최대 400t이다. 안전하게 함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3개의 쇠사슬이 설치됐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공중 부양 10시55분쯤 함미를 올려 놓을 3000t급 바지선이 함미 쪽 가까이 접근해 탑재 작업을 준비했다. 독도함에 있던 실종자 가족들도 바지선에 올랐다. 11시20분쯤 배수 작업은 90% 이상 진행됐고, 11시25분부터는 공중 부양을 위해 함미 주요 부분에 고정 케이블을 설치했다. 함미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로 옮기는 역할을 한 바지선은 자체 추진력이 없어 예인선 2대에 의해 이동했다. 선체가 해수면에서 빠져나올 때는 강력한 표면장력이 작용하고, 부력이 사라져 엄청난 무게가 한꺼번에 쇠사슬에 실리게 된다. 3개의 쇠사슬에 선체 무게가 고루 퍼져 공중에서 수평을 이루는 게 관건이었다. 낮 12시11분. 드디어 함미가 수면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스크루와 추진축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더니 배의 밑바닥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상되지 않은 채 깨끗한 상태였다. 그러나 절단면을 중심으로 오른쪽 부분은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 듯 ‘C자(字)’로 파손됐고, 녹색 그물에 가려진 절단면 쪽 기관조종실, 가스터빈실 등도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보였다. 쇠사슬의 균형을 맞추면서 1분에 1㎝씩 선체를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동안 엔진 냉각수가 들어가는 해수관을 통해 함미 안에 남아 있던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참한 절단면 바지선에 옮긴 함미의 처참한 모습에서 끝내 죽음을 맞아야 했던 장병들의 고독한 시간이 짙게 묻어났다. 절단면이 여러 겹의 녹색그물로 가려 있었지만 당시 상황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절단면의 실루엣은 곳곳에서 뾰족하게 솟은 모습이었다. 절단면에는 세 곳이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가운데는 높이 솟은 왕관과 같았다. 절단면을 정면으로 봤을 때 가운데 날카롭게 솟은 부분이 오른쪽(좌현)으로 밀려 올라가 있어 함미의 우현에서 강한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닌가 짐작하게 했다. 그물망 안쪽으로는 갖가지 색상의 통신선, 배수관 등이 끊어진 채 늘어져 있었다. 척추가 잘려 두 동강 난 천안함의 끊어진 혈관들처럼 보였다. 상갑판 위 마주했던 연돌을 잃은 추적레이더실은 앞쪽 가운데 천장 부근이 움푹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상갑판 곳곳도 출렁이듯 평형을 잃은 채였다. 그래도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처럼 갈갈이 찢긴 절단면과는 달리 함미 상부는 그럭저럭 멀쩡했다. 함미의 뒷부분에는 ‘천안’이라는, 해군을 상징하는 하얀색 글씨가 회색 바탕에 외롭게 새겨져 있었다. 바닷속 21일간은 함미 곳곳의 페인트를 벗겨 냈다. 대신 선체는 서해바다 뻘과 같은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크레인선 주변에 띄운 소형 크레인선인 유성호에서는 민간 인양업체 관계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탑재 차질 부양 작업 시작 15분 정도가 지나자 함미를 탑재할 바지선이 서서히 움직였다. 함미는 그대로 공중에서 균형을 맞춘 채 그 아랫부분으로 바지선이 이동했다. 함미를 탑재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함미는 25m쯤, 건물 10층 높이로 들어올려졌다. 들어올릴 때와 마찬가지로 함미는 평행을 이루며 천천히 바지선 쪽으로 내려갔고, 오후 1시12분 바지선에 착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던 인양 작업이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함미를 바지선의 거치대에 오차 없이 정확하게 탑재하는 마지막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바지선에 안착된 것처럼 보였던 선체가 다시 살짝 들어올려졌다. 선체를 고정시킬 거치대 10여개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파손됐기 때문이다. 함체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으면 바지선 이동이 불가능하다. 결국 거치대를 고치는 작업과 함미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업이 함께 진행됐다. 1시21분쯤 함미 기관조종실에서 서대호 하사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10분 뒤에는 시신 몇 구가 추가로 발견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수색팀이 더욱 분주해졌다. 수색팀은 3시5분쯤 함내 진입을 위한 작업등 설치와 통로개척을 끝냈다. 거의 동시에 과학수사팀 4명이 승조원 식당에 진입했다. 3시14분쯤 무너진 거치대 한 곳의 보수작업이 마무리됐다. 군은 함미 내부의 실종자 신원 확인을 위해 해군 관계자 9명과 수사요원 4명, 실종자 가족 4명을 바지선에 탑승시켰다. 실종자 수색은 4개팀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수사요원 1명, 해군 관계자 2명, 가족대표 1명 등 4명이 한 팀을 이뤘다. ●시신 수습 시신은 15척의 고무보트를 통해 헬기가 배치된 독도함으로 옮겨졌다. 이어 이름표와 군번줄, 소지품 등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알코올 세척을 비롯한 세부 수습을 거쳐 영현함에 안치한 뒤 태극기로 덮어 순직 장병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과정을 거쳤다. 1차로 수습된 시신은 헬기를 이용해 임시 안치소가 있는 제2함대사령부로 운구됐다. 함미를 탑재한 바지선은 실종자 수색을 모두 끝낸 밤늦게 2함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지선의 속도가 시속 5~7노트(9.3~13㎞)여서 평택항에는 17일 새벽에야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허백윤 김양진기자 window2@seoul.co.kr ●특별취재팀 정치부 김상연차장 오이석기자 사회부 김효섭 정현용 백민경 이민영 김양진 윤샘이나기자 사회2부 김병철부장 김학준차장 박건형기자 사진부 이호정차장 정연호기자
  • [천안함 함미 인양] 가족들 “우리측 전문가는 왜 옵서버로만 참여하나”

    15일 오후 검정색 상복 차림으로 평택 2함대사령부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이정국 실종자가족협의회 대표는 “TV에 집중한 실종자 가족들은 초조·불안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민·군합동조사단에 참여하는 실종자 가족 측 전문가가 옵서버 자격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희생자들의 장례는 24일로 예정된 함수가 인양된 뒤 본격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산화자 처리 동의는 전부 구했나. -함미 쪽이나 함수 쪽에서 찾지 못하는 시신에 대해서는 산화자로 간주하려고 한다. 오전에 가족들 동의서를 모두 걷었다. 군의 정책상 실종자 수색을 우리가 하라 마라 하지 않아도 일정 기간은 지속될 것이다. 우리의 요청과 상관없이 군의 수색작업은 일정 기간 계속되는 걸로 알고 있다. →함수 인양 후 장례 치르나. -공식 접촉은 아니고 실종자가족측 장례위원회가 군측 행사기획관과 간단한 만남을 가졌다. 전사자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 순직이냐 전사냐에 따라 절차가 달라진다. 해군에서는 최고의 예우를 갖추겠다고 했다. →장례 준비는. -현재는 몇 가지 군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사자들을 모셔 와야 하고, 귀환하지 못하는 전사자에 대해 확인을 하고 그 후에 가족들 재차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 다음 단계에서 장례를 논의할 수 있다. 분향소는 장례를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차릴 계획이 없다. →함미를 보고 좀 더 확신을 갖게 된 점은. -가장 얇은 부분이 11.6㎜인 철판이 은박지처럼 휘어졌다. 철판을 두른 군함이 그렇게 파괴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어뢰밖에 없다. 절단면 봤을 때 군사적 무기에 대한 피습이 확실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백민경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與 “희생자 후속 조치·예우에 온힘” 野 “진상규명 위해 최대한 공개해야”

    천안함 함미가 인양되자 정치권은 이전과는 달리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오후로 예정된 전체회의를 연기했다. 국방위는 “천안함 함미를 인양하고 수습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방부장관을 불러 회의를 갖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서도 여당은 차분함을 강조하고, 야당은 최대한 공개를 요구하는 등 상반된 주문을 내놓았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많은 국민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실종자 가족들께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있는 만큼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 차분하게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는 “인양작업이 완료되면 원인규명을 위한 국내외 합동조사단의 조사작업이 본격화될 것”이라면서 “군과 민간 관계자, 국내외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조사작업을 벌이는 만큼 더이상 불필요한 오해를 확산시키는 일을 자제하고 전문 조사단의 조사 경과를 지켜봐야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천안함 함미에 대한 군 당국의 제한적 공개 방침에 대해 “핵심적으로 지켜야 할 군사기밀은 보호해야겠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꼭 충족시킬 수 있도록 최대한 공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그물로 절단면을 가리고 원거리에서 공개한 것은 군이 보여주는 척하고 끝내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건 초기 한나라당은 사고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조사특위 구성에 응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발뺌하고 있다.”면서 “특위의 국정조사 활동에 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평택시 전체가 ‘초상집’ 생존 장병도 패닉상태

    “동료를 잃은 우리도 피해자.”(해군 2함대 본부 관계자)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죄스러운 것처럼 느껴지는지 아파트 전체가 조용하다.”(평택 주민)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천안함 함미 인양작업이 완료된 15일 해군 2함대사령부는 물론 평택시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나 다름없었다. 해군 2함대 관계자들은 인양된 함미에서 시신들이 속속 발견되자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한 부대원은 “막상 모두 죽어서 돌아오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바로 옆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동료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울먹였다. 부대 옆에 자리잡은 해군 원정아파트에서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하루 종일 TV 앞에 모여 인양 작업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 아파트에는 희생자 가운데 이창기 원사, 남기훈·김태석 상사, 박경수·강준·김경수·정종률 중사 등 7명의 가족이 살고 있다. 한편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12명의 장병들은 이날 자신의 아픔보다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동료들을 보고는 미안한 마음에 차마 TV를 보지 못했다. 희생자들이 한 명 한 명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고 당시 하반신 경련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동료를 업고 구조했던 서보성(21) 하사는 “TV를 통해 인양 작업 등을 처음부터 지켜봤다.”며 생을 달리한 전우들을 부르며 울먹였다. 윤상돈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장례절차 논의 진척없어 장례식 이달말 가능할듯

    천안함이 15일 물 밖으로 인양되고 승조원들의 시신이 수습되면서 희생자 가족들은 침통한 마음으로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독도함에서 인식표, 소지품 등으로 신원을 확인한 희생자들의 시신은 임시 안치소가 마련된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로 옮겨졌다. 분향소 설치와 장례절차는 가족협의회 대표 4명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와 군 당국의 협의를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실종자가족협의회 장례위원장을 맡은 나현민 일병의 아버지 나재봉씨는 “분향소 설치나 장례 절차 논의는 현재 진척된 것이 없으며 해군과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신을 찾지 못한 장병들의 처리다. 현행 군 인사 규정(시행규칙 73조)은 전투나 재해로 인한 미발견자(행방불명자)는 1년 뒤 제적(장교) 또는 병적에서 제외(일반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률적으로 사망이 인정돼 장례나 보상이 마무리되기까지 1년 이상 걸릴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희생자 가족들이 천안함 침몰 당시 폭발 여파로 찾지 못하게 된 장병을 ‘산화자’로 처리키로 하면서 장례 절차에 차질은 빚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미발견 장병들에 대한 예우 등도 시신이 수습된 승조원들과 같은 수준으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례식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빨라야 이달 말쯤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정국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는 “함미 인양 후 명확한 사고원인과 장병에 대한 예우가 결정됐을 때 장례절차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생존자 PTSD 치료지원 안된다니…

    국가 유공자로 등록되면 5개 보훈병원에서 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본인은 무료이며 유족은 60% 감면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신분열병·지속성 망상성 장애 등 정신질환만 치료 대상이고 알코올 중독,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등 심리질환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지방 보훈병원은 정신·심리질환자 치료를 위한 전담 병실이나 전문 인력, 상담클리닉조차 없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사진] 진실 간직한채…모습 드러낸 함미 PTSD란 큰 사고나 자연 재해, 전쟁 등 충격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에게 발생하기 쉬운 불안 장애를 뜻한다. 천안함 생존자가 입원해 있는 국군수도병원은 생존자 일부가 극도의 심리적 압박에 시달려 적극적 관찰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치료는 필요한데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국내 재난피해자 심리 전문가인 최남희 서울여자간호대 교수는 “천안함 생존자들에게 가감 없이 말해도 된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난피해자에 대한 심리상담은 2004년 대구 지하철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 도입됐다. 최 교수는 “연구 문헌에 따르면 최소한 5년 이상은 지켜봐야 한다.”며 “머릿속에서 사건을 되풀이해 마음이 굳어져 인식이 왜곡되기 전에 상담에 들어가야 하는 만큼 심리상담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밝혔다. 소방방재청은 PTSD에 대한 자체 교육 등 경찰이나 군인 조직에 비해 열려 있다고 자신한다. PTSD 상담을 민간 재난 피해자까지 포함시키면서 재난피해자 사후관리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만 지원을 담보할 관련 법령은 없다. 반면 미 국방부 산하 PTSD 국립센터는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PTSD에 대해서도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전경하 이재연기자 lark3@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차디찬 바다서 이제서야 돌아오느냐” 가족들 통곡

    [천안함 함미 인양]“차디찬 바다서 이제서야 돌아오느냐” 가족들 통곡

    “아들아~ 내 아들아. 차디찬 물속에서 얼마나 추웠니….” 통곡의 바다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아들의 ‘마지막 신고’에 가슴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15일 오후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시신이 잇따라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오자 경기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 숙소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가족들은 참았던 울음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삼삼오오 모여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가족들은 팽팽했던 20일간의 긴장이 일시에 풀린 듯 허공을 응시하며 눈물을 훔쳤다. 장병들의 시신은 군(軍)이 제공한 헬기에 실려 속속 2함대 영내로 도착했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오후 6시9분 방일민·이상준·서대호 하사의 시신을 운구한 헬기가 2함대 헬기장에 내렸고, 곧 대형 태극기가 덮인 서 하사의 시신이 첫 번째로 의무대에 도착했다. 서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씨는 시신을 향해 손을 뻗으며 “내가 우리 아들을 보면 안다. 아들을 봐야 돼.”라고 절규해 주변의 눈시울을 붉혔다. 안씨는 “우리 애가 기름 속에 있었나봐. 기름 범벅이다. 시신이 왜 새파라냐.”며 흐느꼈다. 곧이어 이상준 하사의 시신이 들어오자 아버지 이용우씨와 어머니 김미영씨도 “상준아!”라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 뒤 얼굴을 감싸고 쓰러져 통곡했다. 오후 7시10분 이상민(88년생)·박동혁 병장, 임재엽 하사 등 3명이 헬기에 실려 2함대로 들어오고 25분 뒤 강현구 병장, 박정훈 상병, 신선준 중사 등 3명을 실은 헬기까지 도착하자 2함대 영내는 거대한 울음바다로 변했다. 오후 11시50분까지 발견된 박석원 중사, 서승원·차균석 하사 등 27명의 시신도 뒤따라 도착했다. 의무대까지 시신을 운구하는 18명의 장병들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동료들을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떨궜다.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나머지 가족들은 애끓는 심정을 토로했다. 박경수 중사의 사촌형 경식씨는 “함미가 물 위로 올라왔을 때 크게 부서진 것을 보고 희망을 잃었다.”면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진 오늘 하루가 지금까지 보낸 시간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일부 가족들 사이에는 대화가 끊겨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시신으로 돌아온 문규석 중사의 사촌형 강석씨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만 흐르고 있다.”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가족들이 더 이상 울지도 못할 정도로 탈진했다.”고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심영빈 하사의 동생 영수씨는 “어머니를 비롯해 누구도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심정을 밝힐 만한 여지조차 없다.”고 슬퍼했다. 2함대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야간 응급진료 서비스가 도입됐다. 경기도립의료원 관계자는 “의료진이 15일부터 야간진료를 시작했다.”면서 “구급차도 5대 보강한 상태”라고 말했다. 정현용 윤샘이나기자 junghy77@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자료가치 높아 폐기 않을 듯

    20일 만에 인양된 함미는 일단 경기도 평택 2함대 사령부로 옮겨진다. 바지선을 이용해서다. 바지선에 탑재된 함미는 15일 밤 백령도를 떠났다. 17일 오전 2함대 사령부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함대사 부두에 도착한 함미는 다시 크레인으로 들어올려져 육상 거치대로 옮겨진 뒤 함대사 내의 격리된 곳으로 옮겨진다. 이곳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하는 합동조사단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의 출입이 통제된다. 함미가 이번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만큼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된 환경에서 조사에 임하겠다는 취지다. 함미는 함수가 올라올 때까지 기본적인 조사를 받는다. 함수가 올려져 이동되면 선체 전체를 두고 포괄적인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조사는 최소 한 달, 길면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조사 이후 선체의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해군 관계자는 “조사가 시작도 되지 않아 선체에 대한 보존 유무를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천안함 선체가 이번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데다 군사적 자료로 가치가 높아 폐기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합동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조사가 끝난 뒤에 전시 또는 군사적 자료로 보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씨줄날줄] 천안함과 거북선/박대출 논설위원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의 해사 생도들은 경남 통영을 찾았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제승당에서 진혼제를 올렸다. 방문 시기는 매년 7월. 1592년 7월6일 한산대첩을 기념해서다. 일본은 패전의 수치를 교훈으로 삼았다. 1905년 5월27일 러·일 해전이 벌어졌다. 러시아 발틱함대는 무적 신화가 깨졌다. 함정 38척 중 21척이 격침됐다. 순양함 1척과 구축함 2척만 블라디보스토크로 도주했다. 장병 5000명이 전사하고 6106명이 포로가 됐다. 일본 연합함대는 어뢰정 3척 손실과 사상자 700명에 그쳤다. 결국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일본은 이날을 해군의 날로 삼는다. 일본 해군의 총사령관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일본에서 군신(軍神)으로 불린다. 영국 해군협회의 넬슨상을 받은 단 두 명 중 한 명이다. 도고는 충무공의 제자를 자처했다. “넬슨과는 비교돼도 이순신에 견줄 수 없다.”는 어록은 널리 알려져 있다. 도고는 정(丁)자 병법을 썼다. 충무공의 학익진(鶴翊陣)을 본떴다. 일본 군사학회가 인정한 이론이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은 학익진을 펼쳤다. 적장 와키자카 야쓰하루는 곡식을 까부르는 키 모양이라고 업신여겼다. 그러나 왜선은 73척 중 14척만 남았다. 조선 수군은 한 척도 잃지 않았다. 세계 해전사에 일획을 그은 한산도대첩이다. 학익진은 원래 육군의 병법이었다. 해전에 처음 도입한 것은 충무공이었다. 313년 뒤 도고가 승계했다. 이후 학익진은 현대 해전에서도 교본(敎本)이 됐다. 영국 해군은 일본 해군의 학익진 전법을 배워 갔다. 1차 세계대전에서 이 전법으로 독일 해군을 패퇴시켰다. 2차 세계대전 때 미 해군은 일본 태평양함대를 함몰시켰다. 미국은 레이테만에서 학익진을 원용한 T자진을 사용했다. 그저께 순천향대에서 ‘이순신 리더십과 충무공 정신’이란 주제로 강좌가 열렸다. 학익진 하나만을 보자면 ‘변화와 혁신의 리더십’으로 요약된다. 이날 강의한 해군 대령 출신 임원빈 박사의 분석이다. 공감이 간다. 그러나 한두 마디로 평하기는 모자란다. 오는 28일은 충무공 탄신 465주년이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지하에 ‘충무공 이야기’가 개관된다. 도전, 혜안, 충, 지혜, 창의,애국, 사색, 애민, 사랑, 신뢰, 헌신, 열정 등 12가지 이야기로 꾸며진다. 이 정도는 돼야 할 것같다. 어제 일부 실종 장병들의 시신을 찾았다. 충무공 어록이 와 닿는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사설]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영원한 해군입니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천안함 침몰과 함께 사라져 어제 함미 부분이 인양될 때까지 존재를 놓고 온 국민의 애를 태웠던 실종 승조원들에게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 걸까. ‘살아서 돌아오는 게 국가가 내린 마지막 임무’라는 절절한 호소도 그들에겐 들리지 않았는가 보다. 차례로 확인되는 희생자들 앞에 우리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침몰 순간 산화한 군인들, 침몰 후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을 떠돌거나 선체에 갇혀 죽음을 맞았던 승조원들을 향한 추측과 낭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억울한 죽음과는 멀게, 철없는 비방과 폄하 또한 적지 않았다. 이제 죽은 자를 위한 예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 어찌됐건 개인의 안위보다는 나라를 지킨다는 국가방위와 수호의 임무에 더 충실했던 군인들이다. 군과 당국이 거듭 밝혔듯이 합당한 예우를 차려 장례와 보상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천안함 승조원 중 사고 직후 함수 부분에서 구조된 장병들이나 실종자들은 피해자이고 희생자이긴 마찬가지다. 침몰 원인을 둘러싼 내부폭발이나 외부 피격설의 소용돌이 속에 그들이 감수했던 고통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불의의 최후를 맞은 이들과 살아남은 자를 향한 눈총과 비방은 온당치 못한 것이었다. 후배 장병의 목숨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차가운 바닷속에 몸을 던지다 목숨을 잃은 한주호 준위, 쌍끌이 어선을 몰아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침몰한 금양호 선원들의 희생을 헛되이해선 안 될 것이다. 실종자 수색작업의 중단과, 배 인양작업 종료 후 더 이상의 수색작업을 원치 않는다는 유족들의 뼈저린 아픔은 제3자의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철저하게 밝혀져야 하고 희생자들의 죽음 또한 온당히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제 천안함 함미가 인양된 마당에 영웅 격으로 떠받들거나 섣부르게 패배로 폄하하는 건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된 희생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금전적 가치에 우선한 보상을 넘어 희생자와 유족의 정신적 보상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그들은 단지 침몰된 천안함의 승조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 [길섶에서] 금양호의 아픔/이춘규 논설위원

    침몰 20일 만에 천안함 함미가 인양된 15일. 천안함 실종자들을 수색하러 백령도에 갔다가 지난 2일 침몰한 금양 98호는 수심 78m 서해에 가라앉아 말이 없었다. 선원 9명 중 사망자 2명을 제외한 7명의 실종자들은 대부분 배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아서 외로웠던 그들. 선원들은 보상을 바라고 수색작업에 나선 것이 아니었다. 의무도 없었다. 조국이 부르자 두 말 없이 갔다. 같은 뱃사람인 실종 수병들을 찾기 위한 일념이 사나이 가슴에 불을 댕겼다. 대부분 살붙이도 없는 그들이다. 당연히 조국이, 국민이 장하고 고마운 그들을 보듬어야 한다. 금양호 사망자 빈소는 처음 썰렁하다 언론의 질타에 지도층이 조문하고 있다. 실종자 수색도 비용 논란 끝에 뒤늦게 본궤도에 올랐다. 이러면 누가 조국을 위해 몸을 던지겠는가. 악을 써줄 사람도, 슬피 울어줄 사람도 거의 없는 현실이 금양호 선원들의 서러움이요, 아픔이다. 이제 그들에게도 따뜻한 관심을 쏟자. 그들이 보여준 의로움에 보답하자. 최대한 예우하자.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4명 탄 해군 헬기 진도 해상서 추락

    15일 밤 8시58분쯤 전남 진도 동남쪽 14.5㎞ 해상에서 초계 중이던 해군 3함대 소속 링스헬기 1대가 추락했다. 헬기에는 조종사인 권모 대위와 부조종사, 부사관 등 4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해군은 추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속정 2척과 해경정 등을 동원해 수색에 나선 결과 16일 0시30분 조종사 권 대위의 시신을 발견했다. 군 관계자는 “실종된 헬기는 11년 된 신형으로 계기비행이 가능하고 날씨도 좋았다.”고 말했다. 링스헬기는 대(對) 잠수함 작전용이어서 천안함 침몰 이후 초계 강화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는지 주목된다. 링스헬기는 천안함이 침몰한 지난달 26일 오후 9시47분 백령도에 급파돼 음파탐지기(소나)로 잠수함 의심 물체를 추적하기도 했다. 합동참모본부는 그러나 “이번 링스헬기의 실종은 천안함 침몰 사건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데스크 시각] 상고재와 삼호당/안미현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상고재와 삼호당/안미현 문화부장

    꽃남 이민호와 손예진이 주연을 맡아 관심을 끈 MBC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이 초반 고전 중이다. 이민호는 너무 뻣뻣하고 손예진은 다소 넘친다. 네티즌들의 ‘옥에 티’ 훈수도 잇따른다. 그중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상고재(相 材)다. 졸지에 게이로 낙인 찍힌 이민호가 손예진이 사는 집에 세를 얻어 들어간다는 게 드라마의 출발점이다. 유명 건축가인 손예진의 아버지가 지은 한옥, 그러니까 손예진이 사는 집 이름이 바로 상고재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서 ‘대문’과 ‘골목길’만 빌려온 상고재 앞에는 ‘서로 연모하는 곳’이라는 뜻의 택호(宅號)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무심코 넘겼는데, 세계 최강의 눈썰미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누리꾼들은 이를 놓치지 않는다. 상고재의 ‘재’가 흔히 집이나 장소에 붙이는 재(齋)가 아닌, 재목 재(材)라고 꼬집는다. 지적이 있고 나서 유심히 드라마를 봤다. 제작진의 대응이 궁금해서였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고친 뒤 시치미 뚝 떼고 넘어갈까, 아니면 등장인물 누군가의 대사를 통해 실수를 환기시키고 바로잡을까, 그도 아니면 이러이러한 뜻이 있어 일부러 재(齋)가 아닌 재(材)를 쓴 것이라고 해명할까. 별게 다 궁금하다는 주위의 핀잔을 들어가며 TV를 봤지만 기대는 어긋났다.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상고재는 여전히 상고재(相材)였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한 TV 광고문구가 히트한 이후,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시험문제에 많은 초등학생들이 침대에 동그라미를 쳤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데, 실수라면 바로잡고 의도라면 설명해야 할 것을, 다소 실없는 생각을 하던 차에 삼호당 얘기를 들었다. 우리나라 고미술을 시장으로 끌어낸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우찬규 학고재 갤러리 사장이 집을 개방한다는 소식이었다. 마당과 뒤뜰에 매화를 심었는데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며, 술 한 잔 기울이며 ‘수상한 세월’을 논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한옥 짓고 사는 게 꿈인지라, 오로지 한옥 구경 욕심에 물색없이 그 자리에 끼었다. 이름도 생소한, 삼청동 옆 팔판동이라는 동네의 좁은 골목을 따라 대문을 밀고 들어서니 ㅁ자형의 독특한 구조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안채와 사랑채가 한가운데 마당을 빙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비움의 미학’을 강조하는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를 했다더니, 승효상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좁은 서울 땅에서 비우라는 게 말이 돼? 미친 놈이지!”하던, 한 건축가의 걸죽한 입담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성급한 웃음이었다. 애초 집을 사들일 때부터 ㅁ자 구조였다는, 우리나라 한옥에서도 매우 드문 구조라는 집주인의 설명이 이어진다. 승효상은 한옥 내부설계만 맡았다고 한다. 과연…. 매화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추위를 이겨내고 맨 먼저 피는 꽃이 매화인지라 도도함과 고고함의 상징으로 회자되지만 달빛 때문인지, 서해바다의 통곡 때문인지, 밤 하늘과 함께 올려다본 앞마당 매화는 왠지 처연하게 느껴졌다. 시선을 돌렸다. 삼호당(三乎堂) 문패가 눈에 들어온다. 설명을 청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乎·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라 할 만하지 아니한가).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세 가지 되물음, 즉 삼호(三乎)를 따와 지었다고 한다. 밤은 깊어 가는데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른다. 집 주인도, 객(客)들도, 그 시각 어느 하늘 아래서 삶과 분투하고 있을 이름 모를 사람들도, 삼호는 제각각 다르리라. 천안함 희생자들에게 삼가 조의를 보낸다. hyun@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李대통령 “국가는 희생장병 영원히 기억해야”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천안함 인양 상황을 보고 받고 “그동안 한 명의 생존자라도 남아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안보 관련 수석회의를 긴급 소집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이동관 홍보수석이 전했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이 대통령은 “가족들의 애통한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국민들도 나와 똑같은 심정일 것”이라며 “무엇보다 희생자 가족들이 애통함 속에서도 실종자 수색중단과 함미 조기 인양 등 어려운 결단을 내림으로써 무엇이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길인지를 보여 줬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희생장병과 가족들의 헌신과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국가는 이들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전날 밤 귀국한 이 대통령은 오전 청와대에서 제55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며 국내 일정을 시작했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 지하벙커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는 동안 같은 건물 내 국가위기상황센터에서는 대형 모니터 등으로 인양 작업을 지켜보면서 상황을 실시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밝히는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정부 차원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방부는 지난 1일에서 오는 21일로 미뤘던 장성급 인사를 다시 연기하기로 했다. 천안함 함수가 인양되는 등 관련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는 다음달 중순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지휘책임을 묻는 문책성 인사를 포함해 장성급 인사가 대폭 이뤄질 전망이다. 김성수 오이석기자 sskim@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부유물·전선 뒤엉켜 아비규환… 곳곳에 싸늘한 시신

    [천안함 함미 인양] 부유물·전선 뒤엉켜 아비규환… 곳곳에 싸늘한 시신

    15일 천안함 함미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미귀환’ 승조원들의 주검은 생존 동료들이 앞서 풀어 놓은 사고 순간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그들은 오랜 시간 물속에 있었던 터라 부은 모습이었지만 특별한 외상은 없어 보였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전했다. 폭발과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암흑 속에서 갑작스레 들이닥친 물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충격 때 생겼을 것으로 보이는 타박상은 그것을 강력히 방증한다. 온기 하나 없이, 말 한마디 없는 시신들이었지만 그들이 머무른 장소와 입고 있던 복장은 폭발 직전까지 평온했던 ‘지난달 26일 오후 9시22분’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이기식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처장은 이날 실종자 수색작업 진행 중 기자실을 찾아 “해저에서 볼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선체 내부의 모습을 설명했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을 위해 들어섰던 함미 내부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라고 했다. 차가운 금속 파편들이 복도를 가리고 있고 을씨년스러운 부유물들과 각종 전깃줄이 뒤엉켜 통로 개척조차 쉽지 않았다. 어두운 내부에 불을 밝히기 위해 실내 작업등을 설치했지만 어둠의 그림자를 쫓아내기엔 부족했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아무 장비도 없이 들어간 SSU 대원들은 부서지고 넘어진 초계함 장비들 사이를 비스듬히 눕다시피 몸을 숙여 움직여야 했다. 우리 해군의 주력 초계함인 천안함은 그렇게 부서져 있었다. 이날 밤늦게까지 SSU 대원들과 해군 수중폭파팀(UDT) 대원들은 불을 밝혀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찾아 헤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오고 들어가길 반복했다. 처음 발견된 서대호 하사는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채 자신의 근무지로 연결되는 사병식당 입구 쪽에서 발견됐다. ‘그날’ 늦은 저녁밥을 먹으며 동료들과 담소를 나눴을 이상준·방일민 하사, 이상민(1988년생) 병장은 승조원 식당에서 사선(死線)을 넘은 전우애를 남겨 두고 떠났다. 서승원 하사도 자신의 근무지인 디젤기관실에서 창백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근무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천안함의 유도무기를 관리하는 유도장 안경환 중사, 전투 능력을 담보하는 병기 담당 박석원 중사, 디젤기관 담당 정종률 중사, 병기병 이상민(1989년생) 병장, 보건대학에서 의약학을 전공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주던 이재민 병장, 그리고 나현민 일병, 동료들의 깨끗한 머리 정돈을 맡았던 이발병 안동엽 상병, 기관부 소속인 박정훈·김선명 상병은 기관부 침실에 삶의 마지막 모습을 남겼다. 천안함의 ‘막둥이’로 모든 승조원들의 동생으로 기억되고 있는 장철희 이병도 함께였다. 특별한 점호시간이 없는 함선에서 근무를 마쳤거나 또는 근무를 앞두고 취침하거나 쉬던 박 중사 등은 순식간에 발생한 침몰로 탈출의 기회도 없었던 모양이다. 침대보가 어지럽게 엉켜 있던 기관부 침실에서 그들은 그렇게 세상에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기관부 침실과 후타실 사이에는 탄약고가 있다. 혹시 모를 폭발의 위험 때문에 SSU 대원들도 최대한 조심스레 문을 열고 진입했다. 바닷물 탓인지 충격 때문인지 문은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하지만 평소 관리가 잘돼 있던 터라 폭발의 위험은 없었다. 대신 2명의 장병들이 왜 이리 늦었냐고 원망하듯 대원들을 향해 누워 있었다. 중사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던 임재엽 중사와 신선준 중사였다. 탄약고는 중간에 76㎜ 함포의 탄약이 장전되는 원형의 약실이 있고 그 주변으로 넓은 방처럼 돼 있다. 평소 이곳은 종교활동을 하거나 바둑을 두고 전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 활용됐다. 그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서로의 고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승조원 104명에게 어머니 같은 손맛을 전해 주던 조리병 강현구 병장은 기관실에서 발견됐다. 갑판 담당인 차균석 하사는 유도 행정실에서, 가스터빈 담당인 김종헌 중사, 전기하사 김동진 하사, 이용상 병장, 김선호 상병은 체력단련실로 이용되던 후타실에서 각각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생존 장병들이 예측했던 장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통신담당 문영욱 하사는 제독소에서 발견됐다. 또 전자전병 정범구 상병은 전기창고 입구에서 발견됐다. 정 상병은 평소에도 전자전과 관련된 조언을 함정 장교들에게도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기관부 침실 뒷부분의 승조원 화장실에서는 민평기·최정환 중사, 김경수·심영빈·손수민 하사, 조지훈 일병 등이 운동복 등 편한 차림으로 발견됐다. 몇몇은 옷도 제대로 걸치고 있지 못했다. 승조원 화장실이 샤워실과 세탁실을 겸하고 있어 이들은 근무를 준비 중이거나 마치고 들어와 개인정비를 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였다. 침몰 당시 생존한 장병들 중 샤워를 하다 선임병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고 말했던 상황대로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이들에겐 작은 기회조차 없었던 셈이다. 세탁실과 침실, 식당, 휴게실에서 발견된 천안함 승조원들의 마지막 모습은 평온했던 사고 직전 모습 그대로였다. 순식간에 밀어닥친 대규모 폭발로 튕겨진 이들은 생사의 갈림길을 채 알아채지도 못하고 선체에 부딪혀 생의 마지막을 흘려보냈을 것이라고 해군은 추측했다. 지난 4일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함미에서 발견된 고(故) 남기훈 상사, 지난 7일 역시 주검으로 돌아온 김태석 상사가 익사 흔적 없이 몸 전체에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고 있었다는 것도 급박했던 함미 상황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침몰 당시 선체가 뒤집히고 물이 거꾸로 역류해 들어오면서 실종됐던 승조원들이 순식간에 선체 아래쪽 디젤기관실 쪽으로 쏠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간을 정하지 않고 수색을 벌여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우리의 임무이자 먼저 보낸 승조원들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홍성규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해군2함대·평택시 ‘초상집’

    [천안함 함미 인양] 해군2함대·평택시 ‘초상집’

    “동료를 잃은 우리도 피해자”(해군 2함대 본부 관계자)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죄스러운 것처럼 느껴지는지 아파트 전체가 조용하다.”(평택 주민)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천안함 함미 인양작업이 완료된 15일, 해군 2함대사령부는 물론 평택시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나 다름없었다. 해군 2함대 관계자들은 인양된 함미에서 시신들이 속속 발견되자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한 부대원은 “막상 모두 죽어서 돌아오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바로 옆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동료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울먹였다. 부대 옆에 자리잡은 해군 원정아파트에서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하루 종일 TV 앞에 모여 인양 작업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단지 안의 상가는 대부분 문을 걸어 잠갔고 오가는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아파트에는 희생자 가운데 이창기 원사, 남기훈·김태석 상사, 박경수·강준·김경수·정종률 중사 등 7명의 가족이 살고 있다. 바로 옆에 위치한 원정초등학교 역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교사, 학생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철없는 저학년생들조차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짝이 웃자 옆구리를 찌르는 모습도 보였다. 이 학교에서만 6명의 학생들이 이번 사건으로 아빠를 잃었다. 한 1학년 담임은 “한 학생이 ‘○○네 아빠 죽었다는데, 우리 아빠 배 꼭 타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하는데 대답을 못하겠더라.”며 눈물을 훔쳤다. 한편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12명의 장병들은 이날 자신의 아픔보다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동료들을 보고는 미안한 마음에 차마 TV를 보지 못했다. 희생자들이 한명 한명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저려와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사고 당시 하반신 경련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동료를 업고 구조했던 서보성 하사(21)는 “TV를 통해 인양 작업 등을 처음부터 지켜봤다.”며 생을 달리한 전우들을 부르며 울먹였다. 국군수도병원에는 아직 12명이 입원 중이다. 이 가운데 6명은 외과진료를, 나머지 6명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윤상돈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무기 어떻게 처리하나

    [천안함 함미 인양] 무기 어떻게 처리하나

    천안함 함미 인양이 끝나면서 유실된 무기와 처리 방법을 놓고 관심이 모아진다. 초계함인 천안함 함수와 함미에는 이탈리아 오토브레다사의 76㎜ 함포, 40㎜ 쌍열포가 각 2문씩 탑재돼 있었다. 대(對)잠수함용 MK32 3연장 어뢰발사기 6문과 MK9 대형폭뢰 12발도 탑재하고 있다. 사정거리 130㎞의 하푼 대함정 미사일 4기와 대항공기 미스트랄 미사일 4기 등도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해군 관계자는 “무기고에 무리하게 진입할 경우 폭발 위험이 있어 진입과 무기 점검은 경기 평택의 2함대사령부로 옮긴 뒤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인양과정에서 사격통제실 뒤쪽의 하푼미사일 2기와 우현 쪽에 있어야 할 어뢰발사관 1문이 유실된 사실이 확인됐다. 폭뢰 유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군은 기뢰탐색함 4척이 보유한 음파탐지기(소나) 등을 이용해 유실된 무기 위치를 확인하고, 해군 해난구조대(SSU)와 수중폭파팀(UDT) 잠수요원과 무인 잠수정을 이용해 수거할 계획이다. 한편 수거된 무기들은 전량 폐기 처분될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정밀 해체 작업을 거쳐 TNT 등은 폐기 처분하고 외관은 전시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업체관계자 “암반 있어 작업에 어려움”

    천안함 함미 인양을 계기로 함수의 인양 시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고 발생 20일 만인 15일 함미는 바닷속에서 건져 올려져 모습을 드러냈지만 사고 해역에는 함수가 아직 가라앉아 있는 탓이다. 함수는 함미가 인양된 곳으로부터 동남쪽으로 2.54㎞ 떨어진 해심 25m의 해역에서 인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민간 인양전문업체들은 천안함의 실종자 수색·구조작업이 함체 인양작업으로 전환된 지난 4일 사고 해역에 본격적으로 투입됐다. 함수 인양팀은 직경 90mm 인양용 체인을 연결하기 전 유도용 3인치 와이어 2개를 거는 데 성공하면서 작업에 속도를 냈다. 그러나 강한 바람과 거센 조류 등 기상 악화로 대청도로 3차례 피항하는 등 작업에 차질을 빚었다. 인양팀은 함수 인양에 필요한 체인 4개 중 1개를 연결하는 데 성공했지만 12일 피항을 하면서 체인에 연결된 함체가 거센 조류에 변형될 것을 우려해 체인과 크레인의 연결줄을 풀었다. 함수 인양팀은 14일 사고 해역으로 복귀해 체인을 다시 크레인과 연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인양업체 관계자는 “함체 밑바닥에는 주먹 같은 자갈과 모래밭 암반이 있다. 함체에도 날카로운 부분들이 있어 잠수사들이 작업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함수가 침몰한 해역은 밀물 때 해심이 35m까지 높아지고 거센 조류에 물속이 탁해 인양 작업이 쉽지 않다. 특히 17일까지 조수간만의 차가 커져 유속이 빠른 ‘사리’ 기간이라 작업 속도를 내는데 더욱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업체 관계자는 “너울성 파도가 높게 일어 작업에 어려움이 있지만, 유속이 약해지는 ‘조금’ 이후인 24일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이겠다.”라고 설명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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