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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환행사 주민참여 불허”

    【북경 AFP 연합】 오는 7월1일 홍콩 주권반환을 축하하기 위해 오는 30일밤 부터 7월1일 새벽까지 천안문 광장에서 진행될 「세기의 파티」에는 초청인사들만 참석하게 되고 나머지 주민들은 집에서 TV를 통해 시청하게 될 것이라고 중국 관리들이 16일 말했다. 주권반환기념식 조직위원회 고위 관리인 용신민은 30일 밤부터 진행될 행사에는 특별 초대된 10만명만 참석할 수 있다며 북경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무절제한 환락의 밤을 보내려 하고 있다면 재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 D­19/현지 분위기(홍콩 주권반환:4)

    ◎“북경어 알아야 산다” 학습 열풍/“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 주민들 평온 유지/경제전망 낙관속 “개인자유 제한될라” 불안 「홍콩귀속 환영」.홍콩의 일부 건물과 아파트등에 걸려있는 이러한 내용의 대형 현수막은 반환을 앞둔 홍콩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반환을 19일 남겨놓은 홍콩은 그러나 아직 크게 들떠 있지는 않다.차분한 가운데 중국으로의 귀속을 준비하고 있다. 홍콩내 중국기업들이 모여있는 차이나 리소스 빌딩의 건물벽에는 이미 대형 오성홍기(중국국기)와 홍콩특별행정구(홍콩특구) 상징물이 설치돼 있다.친중국계 정당인 민건련 등의 「번영을 창조하고 안정을 이뤄내자」라는 구호도 대로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홍콩은 영국지배를 마감하고 중국으로 반환되지만 여전히 세계각지에서 몰려드는 기업가들과 관광객 등으로 활기에 차있다.금융·업무시설이 집중돼 있는 홍콩섬의 중심가와 구용 쇼핑가 침사초이와 몽콕,완차이 등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주식과 부동산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반환이후의 홍콩미래에 대한 낙관론이 압도하고 있는 분위기다. 홍콩시대 일부가게들은 앞으로 돈과 권력을 쥐고 중심적 역할을 할 「북경인」들을 의식해서인지 「대륙동포 환영­인민폐(중국돈)도 받습니다」란 표지판을 내걸고 있다.시내곳곳에 있는 외환환전소 창구에도 오성홍기 그림과 함께 「인민폐도 바꾸어 드립니다」라고 쓰여있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언어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 보통화(북경표준말)가 광동어와 영어를 쓰던 홍콩에서 출세와 사교의 필수언어로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중국계 자본이 운영하는 호텔이나 음식점·상점등 일부장소에서는 이미 영어를 쓰는 것보다 북경어를 쓰는 사람들이 더 우대받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화윤그룹에서 근무하는 북경출신의 진건하씨는 『예전엔 북경말을 쓸 경우 어색하고 주눅이 드는 느낌이었으나 이제는 홍콩에서 북경말도 점차 보편화되려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광동어를 고집하고 북경어를 꺼리던 홍콩인들중 정부관리와 실업가·변호사 등 상류계층은 이미 북경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북경어가 곧 초등학교 등정규 교육과정의 필수과정이 될 예정이며 각종 사회활동에서 광동어의 자리를 조금씩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심천과 구룡을 잇는 국철에선 광동어·영어와 함께 북경어가 안내방송의 공식언어로 등장했다.북경어로 의사소통을 할수 있는 홍콩의 엘리트 지배계층과 북경어를 알지 못하는 일반계층간의 차별이 생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부분의 홍콩인들은 그러나 일상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택시운전사인 왕명(28)씨는 『수요일과 토요일에 경마가 열리고 마권을 사고파는 자키클럽이 계속 문을 열듯 우리생활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홍콩정책연구소의 엽국화 회장은 『오랜기간 시민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불안에 적응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홍콩인들은 경제나 일상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겠지만 개인의 자유가 제한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홍콩정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랭카스터 멈 썸씨는 『경제적인 낙관과는 달리 홍콩인들은 개인의 자유와 행동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약간의 불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미래에 대한 불안속에 시내곳곳에서는 민주당과 인권단체들이 붙여놓은 「육·사물망(6·4 천안문사태를 잊지말자)이라고 쓰여진 검은 바탕의 대형 현수막들을 볼 수 있다.마틴리(이주명) 민주당총재는 『중국측의 입법의회 해산 및 집회·시위에 대한 허가제 등에 맞서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들의 투쟁이 홍콩의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어느정도 보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그만큼 홍콩의 정치적 미래는 불확실하다.홍콩의 미래에는 경제적 낙관과 정치적 불확실성이 공존하고 있다.
  • D­22/중국정부의 홍콩정책(홍콩 주권반환:2)

    ◎대만흡수 대비한 1국2체제 실험/자본주의 경제특구 보장… 현지인 미래 약속/외교·국방은 중서 통제… 항인자치 최대 허용 홍콩에 주둔할 중국 인민해방군 선발대가 지난 4월 홍콩에 도착했다.산뜻한 새 군복을 입은 그들은 천안문사태때 민주화운동을 탱크로 진압하던 인민해방군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그들은 지금 홍콩인들에게 상냥한 미소를 보내며 중국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홍콩에 주둔할 군인들을 철저히 교육시켰으며 그들을 위해 신세대에 걸맞는 산뜻한 군복을 새로 만들었다.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새 군복은 재료,색상,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큰 발전을 했다」고 보도했다.홍콩에 주둔할 군대에 대한 이러한 배려는 중국이 홍콩 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예시하는 중요한 단서라 할수 있다. 중국의 이러한 관리방침은 중국정부가 홍콩인들과 세계를 향해 주권회복 이후에도 홍콩의 기존 체제엔 변화가 없을 것임을 강조해온데서 잘 나타나 있다.지난달 홍콩 경제인들이 북경을 찾아왔을 때도 강택민 국가주석은 「1국 2체제,홍콩인에 의한 고도의 자치」를 강조하며 홍콩인들을 안심시켰다. 홍콩의 사회·경제체제를 변화시키지 않고 최소한 50년간 기존체제를 보장하겠다는 「1국 2체제」 정책은 중국의 홍콩 경영 기본원칙이다.홍콩 경영의 또 다른 틀은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항인치행)와 고도의 자치권 허용」이다.등소평이 확립한 1국2체제및 고도의 자치허용 정책은 홍콩미래에 대한 중국의 대외적인 약속이다. 중국정부의 이같은 「배려」 이면에는 홍콩의 번영을 계속 유지시키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배어있다.홍콩의 기존 틀을 흔들지 않으면서 금융·무역중심지로서의 위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자본주의적 경제운영방식과 자유민주주의를 허용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할수 있다. 중국정부는 홍콩의 성공적인 경영을 단지 홍콩만의 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중국은 홍콩의 번영이 계속될 경우 대만을 외교적으로 고사시키며 「1국 2체제」 방식으로 흡수통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성공적인 홍콩경영이 99년 마카오 환수에 이어 대만을 합병할수 있는 모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중국정부는 홍콩특구가 다른 어떤 지역이나 지방에 예속되지 않는 독립된 단위라고 강조한다.세금의 경우,단 1원도 중국정부가 홍콩으로부터 거두어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이붕 총리까지 나서 강조한다.기존의 금융제도와 화폐정책도 그대로 유지되며 홍콩돈도 계속 사용된다. 중국의 이같은 약속에 대해 홍콩인들의 불안과 걱정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홍콩 사람들은 「홍콩이 반중국의 거점이 돼선 안될 것」이란 중국정부의 경고가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중국정부는 이처럼 홍콩이 중국대륙의 민주화기지나 거점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홍콩의 경제적 번영은 계속 유지시켜 중국경제발전에 활용하겠지만 홍콩으로부터의 자유 민주주의 유입은 차단하겠다는 것이다.그러면서 중국은 장기적으로 중국적인 가치질서와 관행을 홍콩에 서서히 정착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중국내에 정치적 소용돌이가 없는 한 홍콩은 지금의 자유스런 모습으로 오래동안 존재할 것으로예상된다.
  • 천안문사태 8돌(외언내언)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1989년 6월 북경의 천안문광장에 진입한 인민해방군 탱크부대를 맨몸으로 막아선 한 청년의 담대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4일은 그 「천안문사태」의 8주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에서는 「천안문사태」하면 1976년 4월에 있었던 민중소요사태를 말한다.그해 1월 주은래 사망을 계기로 주은래를 추모하는 추종자들이 당시의 실권자들이었던 4인방을 주요 표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던 사건이다.따라서 89년 사태를 중국에서는 「6·4동란」혹은 「6·4폭란」이라고 한다. 천안문은 중국 공산정권에겐 영욕이 엇갈린 곳이다.1919년 5·4운동이일어난 곳도 천안문이고 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수립선포식도 천안문광장에서 있었던 반면 두번에 걸친 반혁명사건도 모두 이 천안문광장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어찌됐든 세계는 89년 시위사태를 「천안문사태」라 부른다.4일 북경은 매우 평온했다.홍콩반환을 자축하는 소리만 요란할뿐 천안문사태를 되새긴다거나 기념하는 어떤 행사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번 「천안문사태」8주년은다른 의미가 있다.등소평사망후 처음 맞는 날인 것이다.「천안문사태」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물밑에서나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2월 등소평사망 직후 광동성 광주에 「천안문」을 재론해야 한다는 대자보가 붙은 이래 내외에서 재평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등의 장례식 추도사에서 강택민 주석은 지금까지의 공식표현인 「동란」,「폭란」이란 용어대신 「풍파」라는 표현을 써 작은 변화를 암시했다. 그러나 「천안문사태」의 재평가는 등소평을 재평가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이다.싱가포르의 전설적인 이광요 전 총리는 「천안문사태」에서 등소평이 12억인구의 중국을 재앙에서 구해냈다고 평가한다.그의 그런 결정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중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단정한다. 「천안문사태」 평가는 등소평의 업적과 맛물려 중국현대사에서 하나의 딜레마다.
  • 홍콩회복에 들뜬 중국인들/이석우 북경 특파원(오늘의 눈)

    중국 북경의 천안문 광장.시계추가 5월의 마지막날을 넘기고 6월1일을 알리자 수천명의 중국인들은 거대한 함성을 울렸다.한달 앞으로 다가온 홍콩반환을 환영하는 환호성이었다. 같은 시간 홍콩에서는 주권의 중국반환을 앞두고 천안문사태에 대한 홍콩에서의 「마지막」 대규모 시위를 성공적으로 치러 조금이라도 더 이제까지 누려왔던 민주화체제를 유지해보려는 일단의 홍콩인들이 막바지 준비를 점검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홍콩반환을 한달도 채 못남긴 시점에서 이처럼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북경과 홍콩에서의 분위기 차이는 홍콩반환을 앞두고 중국당국이 안고 있는 고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홍콩반환을 환영하는 것은 홍콩이 누려왔던 번영을 그대로 이어받아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그러나 홍콩의 반환은 또다른 칼날을 숨기고 있다.중국과는 엄연히 달랐던 민주적 체제 운영이 그것이다.중국으로서는 민주체제는 아랑곳없이 경제적 측면만 받아오고 싶겠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천안문사태에대한 재평가 자체를 절대 금기로 만들어놓은 중국은 그래서 민족감정과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영화들을 줄이어 상영한다거나 TV를 통해 홍콩반환 기념프로를 내보내고 거리에는 공산당의 선전판을 부쩍 늘리는 등 민족정신과 애국정신을 최고조로 강조하고 있다. 반면 홍콩인들은 8년전 천안문에서 중국이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든 재부각시켜야만 할 입장이다.89년 천안문 당시의 주역들을 대거 초청했다가 부쩍 늘어난 중국의 입김을 우려,어쩔 수 없이 이들 대부분을 되돌려노내야 했지만 시위를 준비하는 홍콩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민주체제 옹호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홍콩의 경제적 번영만을 받아들이되 민주적 정치체제는 중국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중국.이것이 대만과의 통일에서 중국이 내세우는 일국양제의 본질일지도 모른다.그러나 중국이 동북아의 새 강자로 자리잡고 있는 것 역시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우리로서는 중국이 내세우는 이같은 삶의 질서와 가치관이 동아시아에 미칠 충격과 영향을 주목하고 대비해야겠다.
  • 중,반체제인사 유죄판결 취소/천안문 관련 4명 곧 석방될듯

    【북경 AFP 연합】 중국 사법당국은 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반체제인사 4명에 대해 유죄판결을 취소했다고 한 관련인사가 30일 밝혔다. 현재 신체질환으로 가석방 상태인 렁 완바 오는 AFP와의 인터뷰를 통해 29일 길림성 장춘시 고등인민법원으로부터 자신을 포함한 4명에 대해 반혁명단체를 조직했다는 혐의로 취해진 유죄판결을 취소한다는 공문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길림성 고등법원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반혁명단체 조직 혐의에 대한 유죄판결을 취소한다고 밝혀 수감중인 그의 랭의 동료도 조만간 석방될 전망이다.
  • 시라크 대통령 오늘 북경방문 의미

    ◎“다핵세계질서 구축” 중·불 악수/항공기 합작생산 등 겉으론 경제행보/속으론 미 견제 전방위 공동전선 탐색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오늘부터 4일간 중국을 방문한다.83년 미테랑 대통령의 방문이후 14년만에 이루어지는 프랑스대통령의 중국방문은 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견제를 모색하는 두 강대국 정상의 만남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양국정상회담은 특히 대만에 대한 미라주 전투기판매,천안문사건,인권문제등의 걸림돌을 극복하고 두나라가 전략적인 협력관계를 향해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번 방문에서 시라크는 강택민과 정상회담을 갖게되며 두나라는 공동성명을 채택,「전방위적 협력관계」(GLOBAL PARTNERSHIP)를 선언할 예정이다.냉전종식후 미국주도의 세계질서에 반대하고 다극화 체제를 추구하는 중국과 프랑스 두나라의 공통된 경제·정치적 이해관계가 배경에 깔려있다.다극화된 경제·정치질서 확립을 위해 프랑스는 「중국카드」를,중국은 「프랑스 및 러시아카드」를 쓰고 있으며 이번 방문은 60년대 드골시대와 같은프랑스의 독자적 외교행보와 중국·프랑스의 전략적 밀월시대 개막을 알린다는 점에서 향후 발전방향이 주목된다. 이번 방문은 외형상 경제방문으로 여겨질 정도로 푸짐한 보따리들이 있다.그간 미국이 독점하던 시장의 상당부분이 프랑스몫으로 돌려졌다는데 의미가 있다.프랑스로선 국제무대에서 친중국적인 색채를 가지면서 중국시장의 이권을 챙겼다.중국은 12억달러상당의 에어버스사 항공기 30대분의 구매협정을 맺을 예정이다.보잉 등 미국항공사를 제치고 프랑스 주축의 유럽합작기업인 에어버스제품을 사기로 한것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력공세에 대한 반격이란게 일반적 견해다. 중형여객기 합작생산 협정,프랑스의 원전기술 및 농업기술의 이전 등도 논의된다.중국시장진출에 있어 미국과 경쟁적 관계인 프랑스는 원전및 은행·보험회사의 진출,천연가스 개발사업,삼협댐 공사수주 등 프랑스기업의 진출 요청을 할 계획이다.이때문에 시에테제네랄등 프랑스 5대 은행장 전부와 60개 대기업 수뇌들이 시라크를 수행하고 중국으로 몰려온다.지난달 유엔인권회의와 유엔의 개혁,북대서양 조약기구의 동진문제 등 적잖은 사안에 걸쳐 미국과 부딪치고 있는 프랑스와 중국이 어떤 관계를 정립해 나갈지 지난 91년 파리시장으로서 북경을 방문한 바 있는 시라크의 이번 중국방문이 주목된다.
  • 팽진 등 건국주역 잇단 사망/중 원로시대 마감

    ◎「8로」중 등·진운 이미 퇴장… 양상곤 등 5명 건재/사실상 막후통치 끝나… 새로운 권력투쟁 가능 팽진의 죽음은 모택동과 함께 신중국을 건설했던 건국 원로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78년 개혁개방 이후 막후에서 중국을 주무르던 8대 원로 가운데 올들어 등소평과 팽진의 잇단 사망으로 양상곤(91),부일파(90) 등만 남게 됐다.이들 원로들은 개국공신이면서 현 지도층을 발탁,양성한 후견세력이란 점에서 은퇴한 고령에도 불구 중국정치에 입김을 행사해 왔다. 이들은 현 지도츨의 구성원들과 인맥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며 집단지도체제의 불안정성과 갈등을 완화시키고 안정시키는 막후 조정역할을 해왔다.이들은 전쟁을 통해 성장한 혁명가·군인이자 중국공산당을 키워온 당지도자며 경제건설을 주도한 행정가들이란 점에서 강한 정치적 장악력을 유지해왔다.이점에서 이들의 퇴장은 공산당과 군대와 정부가 3위 일체의 긴밀성속에서 움직이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중국정치의 안정을 이루는 안전판의 하나가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반면에 인치가 막을 내리고 제도와 법률이 통치하는 시대가 진전됨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의 퇴장은 한편 6·4천안문사태등 중국현대사를 재평가할 수 있는 가능범위를 넓혀준다.이들은 일단 이념 성향상 보수적이다.팽진의 경우 보수파 대부로 불려왔다.경제건설과 함께 이념도 강조하는 강택민체제의 보수색채를 감안할 때 이들의 죽음이 당장 보수이념의 몰락이나 중국정치의 노선 변화를 의미하진 않는다.그러나 불안정한 집단 지도체제 아래 중재자 역할을 해온 원로의 소멸로 권력투쟁이 더욱 격렬해질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팽진 사망으로 가장 유력한 원로가 된 양상곤은 최근까지도 각 지역을 시찰하면서 자신의 건재를 보여주고 있다.그는 올 2월 등소평 장례식에도 청년같은 건강함을 과시했다.그는 팽진보다 한급 아래지만 인민해방군의 대부격이란 점에서 군부내 인맥때문에 주목받는다. 학생지도자 출신으로 부총리를 역임하며 재정금융 및 공업부문의 기초를 닦은 부일파도 관료층과의 인맥관계를 유지하며 여전히 경제정책의 조언자다.지난 70년대말 농촌개혁실험을 실현시킨 만이(82)나 당조직을 도맡아온 송평(81),송임궁 등 정치국 상무위원급 거물 원로들도 당·정·군내 후견 세력들을 거느리며 건재하다.중국관료의 본산인 청화대학출신의 대부인 송평은 차기지도자로 유력시되는 호금도중앙당교 교장의 성장을 지원해 왔다.50대 지도자와도 깊은 연결관계를 갇고 있는 이들이 모두 사라질 때 중국은 더 치열한 권력투쟁의 가능성속으로 빠져들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죽음은 무게를 지닌다. ◎팽진 누구인가/등 개혁 반대한 강경파/문혁때 숙청… 78년 복권 26일 사망한 팽진 전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상무위원회 상임위원장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개혁을 반대해온 강경보수 공산주의 지도자였다.그의 사망으로 12억 중국을 현대국가로 이끄는 추진력이 돼 온 경제개혁에 끈질기게 저항,전통 공산주의를 수호하려는 소수세력은 거의 중국 정치무대에서 퇴장한 셈이됐다.팽은 80년대말 개방 초기 시대에 일찌기 등소평의 후계자로점찍혀 온 호요방과 조자양을 밀어내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는 89년 대학생들의 민주화요구 천안문시위때엔 이를 진압하는 데 군을 동원하는데도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그의 영향력 행사의 극치는 사회악을 뿌리뽑는 전국적 운동을 전개하는데서 발휘됐다.그는 『강타하라』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는데 이는 현재 중국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범죄소탕운동의 표어가 되고있다.대약진운동때 모택동 주석이 객관적 경제발전법칙을 위배했다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문화혁명때 숙청됐으나 1978년 모가 죽고 등이 중국정권을 장악한 뒤 복권됐다.
  • 중국군 오늘 홍콩 첫 진주/선발대 40명

    ◎비무장으로… 주권회복 본격 착수 【홍콩 AFP 연합】 홍콩 주권의 중국 반환을 상징하는 첫번째 구체적인 조치로 중국 인민해방군 선발대가 21일 홍콩에 첫발을 내딛는다고 홍콩정청 대변인이 19일 발표했다. 정청 대변인은 소장급 장성이 지휘하는 40명의 해방군 선발대가 21일 하오 육로를 통해 군복을 입은채 홍콩에 들어오게 되며 무기를 휴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방군 선발대는 7월1일 정식으로 진주할 본진 선발대 2백명중 1진으로 홍콩주둔 영국군사령관 브라이언 더튼 소장의 영접을 받을 예정이다. 해방군은 지난 89년 천안문사태를 유혈진압해 홍콩주민들에게는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돼 왔으며 중국측도 이같은 홍콩주민들의 반감을 의식,무기를 휴대하지 않는 등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중,대EU 강경 비판/인권비난 결의안 유엔 제출 움직임에 경고

    【북경 AFP 연합】 중국은 8일 유엔 인권협정에 대한 서명 방침을 밝힌 가운데 유럽연합(EU)을 강도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심국방 외교부대변인은 이날 주례기자회견을 통해 89년 천안문사태 이후 EU가 중국에 대한 무기판매를 금지해온 것은 잘못된 처사라고 공격했다. 심대변인은 또 EU가 홍콩에 대해 정확하지도 않은 내용의 성명을 유럽의회에 제출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와 함께 덴마크가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할 중국 비난 결의안을 지지하는 국가는 중국과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대변인은 특히 유럽국들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사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길 바란다면서 인권문제로 중국과 계속 마찰을 빚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중 선린 회복 “물꼬트기”/고어 방중에 담긴 뜻

    ◎견제·접촉 오락가락하다 적극외교 전환/경제·인권·대만문제 등 해소 위해 “포옹” 고어 미국 부통령의 중국방문은 21세기를 위한 중·미 관계의 새로운 틀짜기란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고어 부통령은 25일 이붕 총리와의 회담에서 예정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양국관계를 비롯,국제문제 등 광범위한 문제에 대해 깊이있게 논의하며 시각차를 조정했다. 고어 부통령의 방문은 89년 천안문사태 이후 이뤄진 미국 최고위층의 방문이란 점에서 더 상징적이다.냉전종식 이후 중국에 대한 견제와 접촉(ENGAGEMENT)정책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오락가락하던 미국이 처음으로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이는 미국내에서 중국시장과 중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해 재평가가 이뤄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어의 방문을 계기로 또 올 하반기 이뤄질 강택민 주석의 미국 공식방문과 내년으로 예정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국방문에 대한 공식 논의가 있었다.두나라가 천안문사태 및 대만위기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외교적 협조관계를 강화하는 추세에 있음을보여준다.이번 고어의 방문은 문제와 차이점을 강조하기보다는 협력과 상호 이해증진을 목표로 했다.24일 밤 북경공항에서 고어는 중국의 속담을 인용해가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중 관계를 추진할 것을 지적했다. 25일 체결된 중국의 미국 보잉777 비행기 구매및 자동차공장 합작생산계약은 두나라가 대결보다는 실리를 찾아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보다 협조적인 관계를 추구해 나갈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이날 보잉사는 6억8천5백만달러 상당의 보잉777기 5대의 대중 판매계약을 체결했다.또 제너럴 모터스(GM)사는 13억달러를 투자,상해자동차와 현지 합작공장을 만들어 연간 10만대 규모의 뷰익 및 센트리 자동차를 생산해 나갈 계획이다.지난해 4월 대만문제로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중국은 미국에 대한 응징의 표시로 프랑스로부터 항공기를 대량 구매하고 GM사의 프로젝트승인을 거부했었다. 이날 회의에서 고어는 인권문제를 거론했다.중국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양측이 이 문제에 관해 이견을 갖고 있음을 시인했다.그러나 이해를 통해 문제해결이 어렵지 않다고 지적함으로써 이날 심한 대립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또 두나라는 대만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이는 두나라 사이의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지만 중국은 미국의 3개 연합성명에 대한 지지를 중시한다』고 말해 이 문제 역시 기존의 원칙이 강조됐음을 시사했다. 결론적으로 고어 부통령의 이번 방문은 두나라가 상호 필요불가결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협조관계를 확대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 「반체제 문건」파문 조자양 연금완화설/수행원과 상해 공개방문

    【홍콩 연합】 강택민 국가주석 겸 당총서기에 대한 개인숭배에 정면 도전한 내용의 「조자양 담화」 문건으로 북경 정가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조자양 전 당총서기가 지난 22일부터 상해를 방문,그에 대한 연금 완화설이 나돌고 있다고 홍콩 신문 스탠더드가 25일 보도했다. 지난 89년 천안문사태에 대한 책임으로 실각,가택연금중인 조자양은 지난 22일 항주에서 개인 수행원들과 함께 공개리에 특별 열차편으로 상해에 도착,방문일정에 들어갔다고 신문은 전했다. 공안 요원들의 삼엄한 경호를 받고 있는 조자양은 국유기업 개혁방안에 관한 검토를 위해 국유기업을 시찰하고 일부 간부들을 만날 예정이다.
  • 「조자양 담화」 중 정국 파문

    ◎강택민체제 비판·천안문사태 재평가 요구 【홍콩 연합】 강택민 국가주석 겸 당총서기를 핵심으로 하는 현 중국 지도체제를 비판하고 천안문 사태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내용의 문건이 최근 북경정가에 나돌아 향후 중국 정국의 풍향과 관련,주목되고 있다. 17일자 홍콩의 빈과일보에 따르면 천안문 사태로 실각,가택연금중인 조자양 전 당총서기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자양 담화」라는 제목의 문건은 강주석 체제를 상징하는 「강핵심」에 대해 언급,이는 개인숭배 조장으로 당과 국가의 민주적인 발전을 위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중 “10여명 부상” 이례적 신속 발표/버스폭발후 북경 표정

    ◎범인에 현상금… 경찰력 5∼6배 증강/소수민족 갈등증폭·후속테러 대비 북경에 테러 비상이 걸렸다.7일 밤 북경 중심가 서단에서 발생한 차량폭발사고로 경찰 등 당국이 북경전역에서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다. 공안경찰은 특히 이례적으로 사고발생 하루만인 8일 중국 국영TV를 통해 이 사건이 사제폭탄 2개에 의한 것으로 10여명이 다쳤으며 범인에 대해 현상금을 건다는 내용의 공식발표를 해 사태에 대한 중국당국의 긴장감을 더해줬다. 특히 동쪽 국제호텔에서 동단,천안문,중남해,서단에 이르는 장안대로변에는 평소보다 5∼6배나 많은 경찰이 배치돼 순찰을 강화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주요 교차로 주위엔 경찰 기동타격대의 중형버스와 순찰차들이 세워져있고 버스 정류장마다 공안경찰들이 배치돼 불심검문하는 등 긴장된 모습이다. 이 사건은 치안 경계령이 내려진 전인대기간중 하루 58만여명의 시민이 드나드는 시내 중심가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중국당국을 경악시켰다.그러나 무엇보다 중국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을 신강·위구르자치구에서 발생한 민족분리운동과 연속선상에서 보기 때문이다.90년대초부터 표면화된 위구르족주도의 신강분리독립운동이 갈수록 고조돼 등소평사후 한족과 55개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중국의 민족단결을 무너뜨리고 사회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게 중국당국의 걱정이다.사고 지점서 1㎞여 남짓 떨어진 청와대격인 중남해주위 경비를 이례적으로 강화하고 주변 통행차량을 일일이 검문하는 것도 요인암살 등 후속 테러에 대한 대비라는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90년초 위구르족과 키르키즈족 지도자 50명이 반혁명역도로 총살당한뒤 92년 우루무치,93년 카시카르의 폭탄테러를 비롯,95년 호탄의 무장폭동,올2월초 카자흐스탄접경의 이닝시 유혈폭동 등으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등사망직후인 지난달 25일 우루무치에서 차량 폭탄테러로 7명 사망,60여명 부상에 이어 1일에도 경찰건물을 겨냥한 폭탄테러가 있었다.지난해엔 3천명의 위구르족 등이 체포되고 수백명이 처형 또는 사살된 것으로 알려진다. 실크로드의 끝부분에해당되는 동과 서의 접경지역인 신강지역의 민족분규가 끊이지 않는 것은 유전개발등 개발붐속에서 한족들의 유입이 확대되고 옛 소련이 분열과 인근 회교국들의 회교근본주의 등의 영향때문이다.
  • 주체철학의 행방/송상용 한림대 사학과 교수(굄돌)

    6년전 나는 한국철학회 소광희회장과 함께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교를 공식 방문했다.한민족철학자대회에 북한 철학자들을 초청하기 위해서였다.우리는 황장엽을 비롯한 북한의 지도급 철학자들에게 서울에 와서 주체철학을 맘껏 소개해 보라는 편지를 보냈다.그뒤 판문점을 통해 북한의 반응이 왔으나 대회 명칭문제로 교섭은 결렬되었다.끈질긴 남쪽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북철학자간의 대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체철학은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라고 한다.사람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매력이 없지 않다.그러나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수령론에 이르면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더구나 주체철학은 대를 이어 수령의 후계자를 받들 것을 요구한다.모든 전체주의에 개인숭배가 있지만 북한같이 철저한 예는 찾을수 없다. 분열되기 전 유고슬라비아에서 티토는 민족의 영웅이었다.그런데 그의 고향 쿰로베치는 민속촌 비슷한 평범한 마을이다.어디를 가나 담배가게,술집에까지 어김없이 티토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정성임을 알 수 있었다. 킴 리엔에 있는 호치민의 생가도 꾸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학자 집안의 소박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호치민은 「박 호」(호 아저씨)라는 애칭이 말해 주듯이 검소한 생활로 일관했다.화장해 달라는 호의 유언을 거슬려 미이라를 만들어 거대한 「랑주틱」(주석릉)에 안치한 것은 그의 후계자들이었다.문화대혁명도 「천안문 학살」도 없었던 베트남에서 호치민은 영원히 인민의 추앙을 받을 것이다. 김일성이 창시했고 김정일에 의해 발전되고 있다는 주체철학은 실은 황장엽의 작품이라고 한다.북한의 원로 철학자이며 김일성왕조를 떠받쳐 온 이데올로그인 그가 서울에 와서 자신이 한 일을 어떻게 정당화할지 궁금하다.
  • 등 이후 중 노선갈등 없을것/리처드 바움(해외논단)

    등소평사후 중국지도부내의 노선갈등 가능성을 놓고 여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중국문제의 권위자인 리처드 바움 미국 UCLA대학교수는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 최근호에 기고한 「실용주의자들의 등장」이라는 글에서 등이후 지도자들이 대부분 개혁지향의 실용주의자들이기 때문에 그들간에 심각한 노선갈등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다음은 이 기고문의 요지. 등소평 사망 이후 중국지도부 내에 후계 문제를 놓고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북경은 평상시와 다름없다.홍콩에서는 여러해 동안 등의 건강악화에 관한 가벼운 소문만 나도 곤두박질쳤던 항셍주식지수는 등이 사망하자 300포인트(2.3%)나 올랐다.그밖의 아시아지역에서도 정치지도자들이나 보통시민들은 한결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권력이양 순조롭게 진행 일부인사들은 등소평이 병상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의 사망에 대한 충격을 줄였다고 주장한다.등이 좀더 일찍 93년이나 94년에 사망했더라면 중국은 강력한 중국지도자들이 사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정파간 권력투쟁이라는 도식에 빠져들었을 것이라는 뜻이다.등이 연장된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가 선택한 후계자 강택민은 그의 권력기반을 확장하고 공고히 할 귀중한 시간을 벌었다.혁명적 영웅주의와 개인적 카리스마가 없는 무색의 테크노크래트인 강은 등의 오랜 투병생활이 제공한 여분의 시간을 이용,공산당 내의 추종자들을 길러내고 그의 공적인 이미지를 유능하고 곧은 지도자로 고양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인 중국군 주류와 일련의 밀접한 연계를 진행시키는 작업을 해낼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등사후의 권력 이양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근본적인 이념갈등이나 현 지도자들간에 깊은 개인적 원한이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76년 모택동사후 중국 전역이 화해할 수 없는 두 적대적인 진영으로 양극화되었을때와 달리 오늘날의 제3세대 중국 정치지도자들은 근본적으로 개혁을 지지하는 실용주의자들이다.경제적으로 지속적인 시장경제화와 외부세계에 대한 개방의 최적 범위와 속도에 대한 지도자들간의 주요한 의견 차이는 끝났다.정치적으로도 중도우파와 중도좌파에 이르는 의견의 차이만 보이고 있을 뿐이다.아무도 진정한 모택동주의자가 아니고 아무도 진정한 민주주의자도 아니다.그들의 내적인 차이는 기본적으로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북경에 여전히 불안과 불안정의 요소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1989년 천안문 사태 직후 등소평의 개인적 권위가 중국을 결속시켜 89∼91년사이에 대부분의 다른 공산주의 체제에서 발생한 운명을 피할 수 있게 했다.시간이 지나고 지속적 경제발전 덕분에 천안문사태의 고통스런 상처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게 했다.등은 마지막 순간까지 천안문사태에 대한 판결을 뒤집으려고 하지 않았다.천안문사태를 해결키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라는 명령을 개인적으로 내렸기에 등은 그의 위신 손상을 감내해야 했다.등이 사망함에 따라 그 당시 결정을 번복하라는 압력이 표출될 것 같다.이것은 다음 차례로 등사후 지도력의 통일성과 지속성을 시험할 것 같다.강택민이 89년 유혈사태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이 없지만 이붕 총리는 그렇지 않다.이붕은 당시 계엄령을 열렬히 이행한 장본인이다.제15차 중국공산당대회는 68세의 이붕이 정치국원으로 남아있느냐 또는 현역에서 은퇴해 다른 자리로 가느냐를 결정해야만 한다.만약 후자의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화해의 징후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그런 화해의 한 징후는 89년 강경파의 희생양이 된 조자양의 복권 결정이 될 것이다. 강택민은 당내에 불만을 가진 보수파들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 공산당중앙위 의장직의 부활을 시도할지 모른다.강이 그 직위를 부활해 자신이 취임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와 있다.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것은 집단지도체제를 해치고 지도력 통합과 단결이라는 공적인 주장을 배신하는 것이다. ○이붕·조자양 진로 변수로 마지막으로 등의 사망은 북경정치의 미묘한 민·관 균형을 바꿀수도 있다.인민해방군 장성들로부터의 개인적 지지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강은 때때로 그의 정책 우선순위를 장성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했다.특히 95∼96년 대만과의 양안간 위기때 강경노선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받았을때 그랬다.등이 사라진 지금 비토그룹으로서 역할을 하는 인민해방군은 자기들의 정책 우선순위와 견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더욱 대담해질수도 있다.만약 중국이 대만통일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천명한다면 이는 군사적 영향력이 증가한 한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이다.지도력의 안정과 정책의 계속성 등 지금까지의 징후는 길조이다.공산주의 나라치고 순조로운 권력이양을 이룬 예가 드물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성급한 낙관과 자만심은 금물이다.만약 중국이 순조로운 권력이양에 성공한다면 이는 「제2의 중국혁명」이라는 대과업을 이끌어온 등이 이룩한 최고의 업적이 될 것이다.〈미 UCLA 교수/정리=유상덕 기자〉
  • 「등」이후 중국­동북아­세계:Ⅰ(지구촌 칼럼)

    ◎본사 지구촌칼럼 필진4명 국내전문가 1명 공동진단 중국 현대사의 「작은 거인」 등소평옹이 타계했다.등의 개혁·개방정책 덕분에 중국은 세계적인 공산체제 붕괴에도 아랑곳없이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거듭,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주도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하지만 등의 사거는 중국대륙에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가져다줄 것이며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에도 영향을 미칠게 분명하다.서울신문사의 지구촌 칼럼니스트들과 유세희 한양대 아·태 지역학대학원장의 진단을 통해 「등사후의 중국·동북아,그리고 세계」를 조망해본다.◎한·중 관계/유세희 한양대 아태지역학대학원장/한반도정책 변화엇을듯/남북한­주변국 관계따라 유동적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의 설계사이며 오늘의 중국에 있어서 실질적 구심점이었던 등소평이 사망함으로써 세계의 관심은 그가 없는 중국의 향방에 쏠리고 있다.즉,그의 사망이 중국의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갖가지 추측이 일고 있다.특히 우리와는 사귄지 얼마 안되고 북한과는 오랫동안 친구인 중국이 그의 사망으로 인해 우리와 북한에 대한 태도에 있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인가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갖게됨은 당연한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등의 사망으로 인해 중국의 국내 정치와 한반도 정책이 입을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그 주요 이유는 우선 중국의 국내정치 측면부터 보자면 강택민을 중심으로한 현재의 권력구조는 등의 사후에 대비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가동되어온 체제라는 것이다.즉 89년의 천안문사태 이후 강택민은 중국의 최고의 실무자였으며 특히 1994년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등이 실무에서 거의 완전히 손을 뗌으로써 강택민은 명실 공히 국가 운영의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일각에서는 강이 등소평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이제부터 홀로서기를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실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즉,집단지도제를 종용해온 등이 사라짐으로써 이제부터 권력은 오히려 강택민에게 점차로 집중될 수 있으며,이는 사회주의체제 권력의 속성상 더욱 그러하다. 한편 강택민은 앞으로 개혁개방정책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역간,계층간의 소득격차,당정 간부들의 부패문제,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 약호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등소평이 살아있더라도 어차피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다시 말해서 앞으로 중국이 중국식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장기적으로 볼 때 정치적 기복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등소평의 사망으로 야기되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다음,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등의 사망이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별로 영향을 못 미칠 것으로 보는 첫째 이유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실용주의에 의한 개혁개방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개혁개방정책이 지속되는 한 중국의 한국정책 기조는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그들의 국가목표인 경제발전을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추진하지 않을수 없다.중국이 한국과 관계개선을 하지 않을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관계개선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이익을 얻을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그리고 이러한 요소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우리에 대한 정책기조에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는 두번째 이유는 설령 등소평의 사망으로 내부적인 권력구조에 커다란 변동이 생긴다 하더라도 국가간의 관계는 국가 이익의 추구라는 현실주의가 대체로 그 바탕을 이루기 때문에 누가 권력을 장악하든 대외정책의 변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하물며 앞에서 지적하였다시피 등소평의 후계체제인 강택민을 중심으로한 현재의 체제가 지속할 가능성이 큰 이상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조는 지금의 그것에서 별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등소평의 사망이 지금까지의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별로 영향을 안줄 것이라는 말이지 중국의 우리에 대한 태도에 있어 앞으로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왜냐하면 우리와 중국과의 관계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조가 변하지 않는다고만 해서 안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다시말해서 한중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무척이나 많다.북한의 내부상황,북한과 미국관계,북한과 일본관계,남북한 관계,그리고 중국의 미국과의 관계 등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실제로 북한이 개혁개방을 늦추고 남한관계의 개선을 기피하고 정전체제의 일방적인 파기와 잠수함사건에서 보여주듯이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는 현재와 같은 경직된 태도를 지속하는 한편,남한은 모든 주변국가들과 평화와 선린의 관계를 추구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합리적인 정책을 계속 추구해 나아갈때,중국은 앞으로 더욱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보다 소원해질 것으로 보인다.여기에는 남한이 앞으로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더욱 내실을 이루어갈수 있음이 전제됨을 물론이다. ◎중국의 미래/여신 중 사회과학원 부원장/“정치안정”… 개방개혁 가속/올 홍콩 인수·전당대회 “분수령” 등소평의 서거는 중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등의 서거에 대해 세계 각국에선 깊은 애도와 함께 그의 공백이 중국에 미칠 영향과 변화방향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그의 죽음은 다시 한번 중국의 최고지도층으로부터 일반국민들에까지 그의 유지를 계승하자는 국가적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국내외 중국전문가들이 확인했듯 그의 죽음에도 모든 국가업무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정치도 안정돼 있다.그가 시작한 현대화 건설사업도 차질없이 진행중이다. 이같은 흔들림없는 안정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그것은 이미 8년여전 권력승계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한 덕택이다.차기지도자의 선택 및 권력승계의 조기해결은 등소평의 심원한 탁견에서 이뤄진 것이었다.그는 국가운명이 한 두사람 개인의 권위에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종신집권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지도체제를 확립했다.89년 11월 그는 모든 직무에서 사임하고 자신이 핵심이던 「노인집단지도체제」에서 강택민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집단지도체제를 출범시켰다.권력을 이어받은 강택민은 등소평의 지도방향에 따라 국가사업을 순조롭게 처리하고 국민의 신뢰와 권위를 쌓아왔다.그는 등소평 퇴직이후에 단단한 기반을 쌓아왔다.이는 등의 서거가 「권력진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이는 또 앞으로 중국이 안정속에 순조로운 발전을 이룩할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시기를 앞당겨 권력교체를 이룩한 것은 등소평의 마지막 대업이다. 소위 「권력진공」으로 표현되는 정치혼란 우려와 함께 등 사후 대두되는 또하나의 관심사는 중국이 등소평 생전에 확립한 노선과 정책을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할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 18년동안 개혁개방 실천과정을 이해한다면 중국이 앞으로도 등소평의 노선과 이론을 변함없이 밀고 나갈 것이라는데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만약 어떤 변화가 온다면 그것은 개혁개방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의 변화일 것이다. 등소평은 문화대혁명의 재난으로부터 중국을 개혁개방으로,현대화 건설로 매진시켰다.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생활이 나아지고 중국의 국제지위가 올라가고….개혁개방 성과를 중국인들은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이같은 경험은 개혁개방정책이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어떤 힘도,어떤세력도 이같은 흐름의 방향을 막을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등소평의 추도사 등 이미 여러차례 기회를 통해 강택민도 등소평노선과 개혁개방정책이 계승,추진될 것임을 강조했다.이는 중국국민의 바람이며 굳건한 의지다. 이같은 입장에서 안으로 법치주의 확립,사회주의 민주제도 정착,부정부패일소,정치제도 개혁 등 정치분야의 개혁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시장경제에 맞게 경제구조를 조정하는 시장개혁,경제체제개혁 심화도 계속될 것이다.밖으로는 주변국가와의 우호관계 등 「독립자주,평화외교정책」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중국은 세계평화유지 노력과 함께 국제정치·경제의 신질서 확립을 추구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이같은 정책방향은 등소평이 창안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이론의 실천방향이며 등소평 이후 정책기조이기도 하다. 국내적으로 중국은 올해 두가지 대사를 앞두고 있다.그 하나는 7월1일 홍콩에 대한 주권 회복이다.국가적 치욕을 씻는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평화통일,일국양제」라는 등소평의 통일구상을 실현하는 계기다.특히 대만을 포괄하는 중국의 통일정책을 실천하는 첫걸음이란 점에서 무게를 더한다.다른 하나는 하반기(9월말로 예정)로 예정된 중국공산당 15차 전당대회다.이 대회는 21세기 중국의 정책방향결정과 지도부 선발이란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이 대회에선 등소평이 창시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이론의 기치를 높이 들고 그의 이론과 노선의 더욱 확고한 집행을 결의할 것이다. 등소평은 세상을 떠났다.그러나 이 두가지 대사는 그의 사상,이론의 지도 아래 진행될 것이다.등소평은 없지만 그의 사상과 이론은 중국의 미래를 이끄는
  • 인민대회당 오성홍기 “애도 물결”/등소평 추도식 스케치

    ◎강택민 추도사 내내 감정받쳐 울먹여/등 차남 등질방 모습 안보여 추측만발 ○…25일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거행된 등소평 추도식은 등의 대형사진과 오성홍기로 감싸여진 유골함이 단상에 꽃으로 둘러싸인채 배치되고 그밑에 정치국원 등 핵심지도자들과 유족들이 도열한 가운데 진행.2시간전부터 입장한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된 추도식장의 2층 난간에는 『강택민 동지를 중심으로 한 당의 영도하에 등소평 동지의 유지를 계승하자』는 내용의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3분간의 애도묵념에 이어 50여분 동안 계속된 강택민 국가주석의 추도사는 등소평 지도노선의 방향 등과 관련,기존의 대내외정책을 재확인하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뤘다.강주석은 추도사를 낭독하기 시작한지 1분도 안돼 『등소평동지의 서거에 무한한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는 구절에서 눈에 물기가 돌기 시작,『등소평이 문화대혁명후 복권돼서도 아무런 사심없이 국가에 어떻게 헌신할 것인가만 생각했다』는 대목에 가서는 감동에 복받쳐 울먹이기도. ○…천안문 광장에는상오 7시30분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삼엄한 분위기.상오 10시 추도대회에서의 3분간 묵념시간에 중국 방방곡곡을 달리는 기차 선박 군함 공장 등에서는 경적이 일제히 울려 추도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홍콩에서도 이 시간에 맞춰 지하철등에선 장송곡조의 경건한 음악이 울려퍼졌고 거의 모든 차량들이 1∼10분간 경적을 울리며 등 사망에 애도를 표시. ○…등의 생가가 있는 사천성 광안현 패방에는 10만여명의 조문객들이 몰려 등을 추도.조문객들은 생가앞에 설치된 대형 TV 스크린을 통해 눈물을 흘리면서 추도대회 진행을 시청. ○…24일은 중국 대학생들이 춘절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온 날이어서 당국은 각 대학에 대해 학생들을 등소평 추도집회에 참석하거나 자체적으로 추도회를 열지 못하도록 지시,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소요사태에 대비. ○…여러 차례 수뢰혐의 연루설이 나돈 뒤 지난해 공직에서 물러난 등의 차남 등질방이 이날 추도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여러 억측을 낳고있다.일부에서는 이를 등사후 예상되는 등가족들에대한 처벌의 신호탄과 관련지어 해석하기도.
  • 10만 인파 운집… 영별 애도/등소평 영결식 표정

    ◎헌화 등 금지… 장례절차 간소화/대학생 추도집회 참석 금지령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유해는 현지시간으로 24일 상오 10시 연도에 늘어선 10여만명의 추모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흑·황색 리번으로 장식된 흰색 미니버스에 실려 화장장이 있는 팔보산으로 떠났다.등과의 영원한 이별을 아쉬워하는 추모객들의 행렬이 유해가 실린 미니버스의 뒤를 이었다. ○…등의 화장식에는 강택민 국가주석과 이붕 총리를 비롯한 고위관리들이 참석.등의 유해는 301병원에서 8명으로 구성된 인민해방군 의장대에 의해영구차로 옮겨져 화장장으로 향했으며 유족과 고위관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5분간에 걸쳐 화장됐다. 이에앞서 강택민 주석과 이붕 총리,교석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이서환 정협제팔기 전국위원회 주석,주용기 부총리 등이 301 군병원에마련된 특별실에 안치돼 있던 등에게 헌화. ○…중국당국은 대규모 추모행사와 조화 헌화를 금지하는 등 등의 죽음에 대한 국민의 슬픔 분출을 극도로 억제시키고 장례식도 조촐하게 치를 예정이어서중국공산당 창시자인 모택동장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게 중론. 한편 지난 89년 천안문 민주화시위의 주역을 담당했던 북경대학 학생들은 민주화시위를 강경 진압한 등을 찬양하는 대형기를 제작해 내걸어 눈길. 크기 20m인 이 추모기는 흑백 바탕에 「소평,다시 작별을 고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으며 화장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내걸렸다. ○…중국당국은 등 추모대회가 열리는 동안 대학생들의 추모집회 참석을 금지시켰다고 북경대학의 한 고위관계자가 이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국으로부터 대학생들의 추모집회 참가 금지령이 내려졌다면서 이에 따라 학생들은 대학과 과별로 나뉘어 TV를 통해 등소평의 추도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 이와 관련,다른 관계자는 대학생들이 등의 추도식을 TV를 통해 시청토록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확인하면서 이번 조치는 전국의 모든 대학에 적용된다고 부연.
  • 대형서점 등소평사후 분석 서적 각광

    ◎「포스트 등」은 누구? 중국의 앞날은?/새로운 황제들­모택동의 신임과 박해 등 두거물 초점/등소평 문선­75년 첫 정치활동이후의 연설·담화문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이 사망함에 따라 그의 삶과 사상 혹은 「포스트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이 독자들의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다.이를 반영하듯 교보문고·종로서적·을지서적 등 서울시내 대형서점들은 등소평 관련서적 특설코너를 이미 마련,독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현재 서점에 나와있는 등소평 관련 책은 그를 직접 다룬 것만 10여종.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만한 것으로는 「새로운 황제들」(해리슨 E.솔즈베리 지음,다섯수레),「등소평 문선」(등소평 지음,범우사),「나의 아버지 등소평」(전2권,등용 지음,삼문),「등소평 리더십과 중국의 미래」(김영화 지음,문원),「등소평 사후의 중국」(하빈 지음,연암) 등이 꼽힌다.앞의 3권이 등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뒤의 2권은 「등이후」 정치·사회 등 예측에 비중을 두고있는 것이 특징이다. 「새로운 황제들」은 국공내전,백화제방,대약진운동,문화혁명,천안문광장 대학살 등 현대중국을 주조해낸 큰 사건들을 모택동·등소평 두 거물에 초점을 맞춰 살핀다.등소평이 어떻게 모택동의 비밀사업인 「3선 건설」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그의 신임을 얻어 권좌에 올랐으며 문화혁명시기에 모택동으로부터 어떤 박해를 받았는가,등소평이 모택동의 부름을 받고 복권된 뒤 어떻게 강청에 의해 다시 숙청당했으며 엽검영 원수는 어떻게 강청과 사인방을 타도하고 등을 「새로운 황제」로 등극시켰는가….지은이는 이 모든 과정을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보여주듯 생생하게 재구성해 그린다. 「등소평 문선」은 등소평이 문화혁명에서 축출된 뒤 재차 복권돼 당부주석·당정치국상임위원·중앙군총참모장을 맡아 처음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1975년 1월 중공당 제10기 2중전회부터 최근까지의 연설·담화·회견 등을 모은 것.이를 통해 독자들은 등소평의 국가경영철학과 신념을 어렵잖게 엿볼수 있다.「나의 아버지 등소평」은 등소평의 셋째딸인 등용이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일생을 서술한 책이다.등소평이 어린 시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고학하는 과정과 중국의 위대한 혁명가로 변모해간 전후사정을 상세하게 다루며 등소평의 가정과 혼인,성격,취미 등도 충실히 소개한다. 「등소평 리더십과 중국의 미래」는 등소평의 정치적 리더십의 형성과정과 그의 사후 중국정치 전망을 담은 국내 학자의 연구서.등소평은 『방법상의 타협은 있을수 있지만 원칙상의 타협은 결코 있을수 없다』고 했다.그는 정치적 원칙과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삼하를 겪게 됐지만,그가 다시 삼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의 인간적 포용성과 아량 때문이었다.하나의 예로 등소평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할 때도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지 않고 언제든 재기할 가능성을 남겨두는 정치적 금도를 보였다.요컨대 등소평은 정치권력보다는 정치권위를 통해 지도력을 발휘했다고 할수 있다.이런 관점에서 지은이는 등소평의 지도력을 「탄력적 리더십」으로 규정한다.이 책은 등소평 이후 중국정치에 관해서는 『강택민 중심의 주류파와 조자양 중심의 비주류파가 대립구도를 이루겠지만 개혁개방의 흐름은 완급을 조절하며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등소평 사후의 중국」은 「중국 태자당」「주용기전」의 저자인 중국의 정치분석가 하빈이 천체물리학자 방려지 등 세계석학 43명의 중국정세 진단을 토대로 쓴 책.「등이후」 양안관계에 대해 이 책은 대만이 독립을 선포하지만 않는다면 북경이 대만에 강경정책을 취할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밖에 「문혁수익자」 화국봉과 「문혁수해자」 등소평을 비교분석한 「중국을 움직이는 사람들」(김소중 지음,종로서적),등소평의 내면세계와 외부활동을 아울러 소개한 「태상황제 등소평전」(비라치 디네스 지음,신서원),등소평 사후의 문제를 폭넓게 다룬 「등소평 이후의 중국」(왕조군 등 지음,조선일보사) 등도 눈길을 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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