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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6)

    ◎소년시절:17/「ㅌ·ㄷ」강령의 출처/30년 결성 「농민총동맹」의 강령 개작/68년부터 「조선노동당 뿌리」로 선전/민족주의 단체에 소속… 공산운동과는 무관 김일성이 날조하여 1968년부터 등장시킨 타도제국주의동맹은 그후 「조선노동당의 역사적 뿌리」를 내린 모체로서 백방으로 선전되어 나간다. ○사이비 공산주의자 필자는 전고에서 그가 을 결성한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그러나 당시의 그의 생활을 보면 그는 동급생이나 학교당국과 고립되어 있었고 김시우의 집에나 가서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그리하여 결국 그는 화성의숙을 그만두고야 말았다.따라서 의 날조는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사생활과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김일성의 당시의 사상은 민족주의가 아니었다.이 때문에 그는 화성의숙을 그만두었다.또 그가 당시 살부회에 속하거나 살부회의 영향하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유치한 극좌적 사고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그리하여 이것은 당시 그가 일종의 사이비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에게는민족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그 어떤 사상적 맹아상태가 이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필자는 이것이 그후 북한에서 유일독재를 실시하는 으로 되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1966년은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김일성 자신의 사상임이 명백히 되어 나가는 시기였다.또 67년은 그가 저지른 일종의 쿠데타인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가 있었다.그는 이 회의를 열어서 보천보전투 때에 중공유격대를 국내에서 도운 박금철등을 숙청하고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라고 전 당원에게 강요하였다. 당의 유일사상체계란 김일성의 말만 들으라는 야만적인 탄압을 당원들과 대중들이 감수하는 것을 요구하는 사상체계인데 이것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와는 다른 사고방식이다.북한에서는 74년에 요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김일성주의는 주체사상을 진수로 하고 그에 의하여 밝혀진 이론과 방법의 체계로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나 「현시대의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 레닌주의들과는 근본 다른 독자적인이론이다」 ○유일사상체계 강요 따라서 주체사상의 맹아로 되는 그 어떤 사상상태를 추정할 때 화성의숙 시절의 김일성의 정신상태는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김일성의이 조선노동당의 조직적 전통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고 있는 부분은 날조로 밝혀졌다.하지만 필자는 지금 「주체사상의 뿌리」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그의 화성의숙 시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의 이른바 「강령」문제에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이께서는 의 목적을 장차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며 당면하게는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는데 있다고 규정하였다」 이것이 68년 전기의 기술인데 물론 결성되지도 않았던 에 이러한 강령이 있었을 리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그러나 없었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것이 김일성 전기연구의 숙명이므로 이 강령의 추처를 알아 본다. 김일성이 화전의 을 날조할 때 그는 1929∼1930년에 남만주에서 사귄 인물들의 사적과 그들이 가담한 사건들을 자기의 업적 날조에 대거 동원하고 있다.최형우의 「소사」도용과 국민부 산하 남한청총 청년들의 맹원 만들기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의 강령도 1930년 3월에 남만주 흥경현에서 있었던 동성조선인농민총동맹의 강령 내용을 개작한 것으로 보인다.그는 남한청총에서는 한번도 간부가 되지 못하였으나 남한청총이 합류하여 결성된 이 농민총동맹에서는 하부말단 임원으로 선발되었다.그는 이 동맹의 강령에 접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강령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일본제국주의를 박멸하고 조선의 절대 독립을 완성함. 2,노동자 농민의 민중정권을 건설함. 3,대지주의 토지를 몰수하고 농민에게 무보상 대여함. 4,청년 부녀의 독자적 발전을 기함. 5,전세계의 무산계급 및 피압박민족과 단결함. 이 농민총동맹의 강령 제1조가 강령의 당면목적이 되고 나머지 조목이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위하여 싸운다고 추상화되었다.당시의 국민부는 공산주의조류의 도도한 흐름에 못 이겨 민족주의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청년층의 좌경화가 촉진되고 있었다. ○재* 번져가던 시절 우리는 이상과 같은 분석으로 조선노동당 강령의 「뿌리」가 된다고 선전되어 있는 이 엉뚱하게도 당시 약간 좌경화된 국민부 산하단체의 강령에 흡사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1920년대의 김일성은 조선공산주의운동과 관계가 거의 없었다.그는 실제로는 민족주의단체 정의부나 국민부의 청소년 단체에 소속해 있었다. 따라서 조선노동당은 조선공산주의운동이 아니라 사실은 민족주의 단체 정의부나 국민부 내에 있었던 김일성 개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①평전 295면 ②「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49면 ③「현대사자료 29」 562면
  • 음악계,새 곡조의 「명곡」창작 주력(북한 이모저모)

    ◎“참신성 없다” 비판따라 ○…최근 북한가요들은 곡조가 비슷비슷해 특징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돼 음악계에서 새로운 곡조의 「명곡」창작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김정일은 지난해 5월 문학예술부문 간부및 창작가와 예술가들을 만난 자리서 최근 북한음악에 대해 보천보 전자악단과 왕재산경음악단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보잘것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최근 가요들이 참신성이 결여돼 있다고 비판한 것으로 평양에서 발행되는 예술잡지 「조선영화」 최근호가 소개했다. 김정일은 이어 가요에 있어서 가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곡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음악부문 종사자들에게 『가요의 운명결정에 가사가 20%,곡이 80%를 차지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세월이 지나도 주민들이 흥겹게 부를 수 있는 「명곡」을 창작할 것을을 지시했다는 것.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 정치범수용소:7)

    ◎생과 사의 경계선:나/“옷 차지하자” 사람 죽으면 쟁탈전/빼돌린 마대로 누더기 옷을 기워/신발은 나무에 쑥깔창 깔아 대용 수용소안에서 날짜 가는게 무슨 상관이랴만 날씨가 추워지면서 추위를 막아줄 옷 걱정이 앞서기에 언제쯤 추위가 올지는 항상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처음 평양에서 이곳에 끌려올 때 정신이 없어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왔기 때문에 갈아 입을 옷이없어 4∼5개월이 지나자 모두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수용소의 의복사정은 말그대로 원시 자급자족 상태라서 자기가 입을 옷은 자기가 해결해야만 한다. 제아무리 누더기를 걸치고 있고 날씨가 춥더라도 수용소에서는 의복이 지급되는 법이없다.옷을 주기는 커녕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도 「당과 수령님의 은총」인 것이다. 때문에 내가 입고있는 옷도 이미 누더기가 다 되었건만 달리 구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 갈아 입을 것은 고사하고 다가올 추위에 더 입을 것조차 없어 덜덜 떨며 사역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북한에서 옷이래봐야 기껏 테토론으로 만든 껄끄러운 질감의 옷이 대부분인데 이것으로 겨울을 난다는 것은 정말 여간 고통이 아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양 팔꿈치는 물론 양무릎과 엉덩이 부분이 이미 다 해져 누덕누덕 기웠으며 그나마 기울 천조각도 못 구해 군데군데는 구멍이나 있었다. 구멍난 곳을 기우는 천이라고는 이곳에서 사역할 때 몰래 빼돌린 마대자루 천이다. 이 마대자루는 오히려 다른 천보다 질겨 안성마춤이지만 너도나도 서로 차지하려는 바람에 쉽게 구할 수도 없었다. 이곳 남한에 와보니 청소년들이 청바지를 즐겨 입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어찌나 그 옷이 부러웠던지 얼른 한벌을 사 입었다.옷 촉감도 좋고 질겨 세상에서 이런 좋은 옷도 있었는가하며 감탄했다. 수용소에서는 사람이 죽어 나갈 때 죽은이가 입고있던 옷을 차지 하는 것 또한 중요한 생존경쟁의 한 부분이다.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눈물 흘릴 겨를도 없이 서로 시체를 매장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죽은 사람의 옷을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이다.물론 그 옷이라야 누더기일 뿐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옷감은 수용소에도착한 뒤 단 한번 지급한 담요이다.매일 지치고 더러운 몸을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감싸고 자던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이 담요도 급할 때 구멍난 곳을 깁는데는 아주 긴요하다. 수용소 사람 치고 담요로 옷을 깁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겉옷조차 이 모양인데 속옷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내가 지칭하는 속옷이란 물론 러닝셔츠와 팬티를 말한다.그러나 그곳에서의 속옷은 팬티 하나만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위에는 아무거나 끼워입고 걸치면 그만이지만 팬티의 경우 입을 지 말지가 항상 고민거리인 것이다. 어떤 이는 아예 마대자루를 칼로 대강 잘라 만든 팬티를 입은 이도 있으며 그나마 안 입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갈아입을 것이 없으니 깨끗하게 빨아 입는 다는 것은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다. 그곳에서 팬티를 입는 일은 일종의 사치에 해당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목욕도 제대로 못하는데 속옷조차 못빨아 입어 많은 이들이 고환염에 걸리거나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니 여자들은 오죽했으랴. 덧붙여서 옷은 또 마대니 담요조각등으로 겨우겨우 때워 간다 하더라도 신발만은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나는 기나긴 수용소 생활에서 나무로 신발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배웠다.이름하여 「지화족」이란 것인데 가루나무와 느릅나무를 도끼로 쪼갠뒤 그것을 불에 잠시 대면 터져서 편편하게 돼 이를 밑창으로해서 쑥을 깔창으로 댄뒤 칡으로 감으면 신발 한켤레가 되는 것이다.
  • 올해 경제기반 조성·사회문화분야 주요동향(오늘의 북한)

    ◎80개 산업시설 건설… “겉으론 성과”/주석치적 선전하려 생일맞춰 완공/합작회사 17개… 생필품공장은 거의 외화벌이용/「지식인·교육일군·열사가족대회」 잇따라/체제고수 목적,80년대이후 최대규모 행사 김일성이 80회생일을 맞아 대원수로 올라앉으며 「세기와 더불어」라는 자서전을 발표,「김일성통치시대」가 서서히 마감되고 있음을 예고한 올 한해는 북한에 참담한 고통의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세기사적 격랑속에서 부침한 92년 북한 경제건설 및 사회·문화분야의 움직임을 정리해본다. 기간산업부눈과 함께북한경제의 또다른 취약점인 생필품생산을 위해 북한은 올해 약 20개의 생산시설을 건설했다.그러나 이중 절반가량이 의류생산시설이며 특히 이들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한 수출용 피복공장이어서 북한주민들의 실생활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올해 완공된 건설 프로젝트중 합영 또는 합작회사(8개)와 유엔개발계획·조총련 등으로부터의 자금지원으로 건설된 것((개)이 17개나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의 하나다. 8개의 합영공장 또는 합작회사는 의류관련 회사가 4개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관광운수회사·수산물가공회사·광업회사·인쇄회사 등이 각각 1개이다. 그리고 합영대상은 북한의 명예총회사와 일본의 알반가라리주식회사가 합작·운영하는 「명예고급기성복공장」*6·3」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총련을 상대로 한 것이다. ▷경제건설◁ 북한은 92년 한햇동안 약 80개의 건설 프로젝트를 완공함으로써 예년에 비해 비교적 많은 실적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이러한 경제건설 실적은 북한이 김일성의 80회생일과 김정일의 50회생일을 기해 이들의 치적선전을 위해 대부분의 건설대상을 그들 생일에맞춰 완공토록 독려한데 따른 것으로서 북한의 경제사정과는 무관한 것이다. 북한은 올해 총연장 1백70㎞의 평양∼개성간 고속도로를 착공(87·12),5년만에 완공(4·2)한것을 비롯해 평양시 궤도전차 2단계 1구간(문수∼토성·12㎞·4·1일),평남 순천∼북창간 46㎞ 도로포장공사(2·14일),함흥∼주전간 전철화공사(9·8),흥남항부두확장공사(4·28) 등을 완공함으로써 교통운수부문의 기간산업 확충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문화행사◁ 북한은 올해도 예외없이 주민들의 사상교양강화와 노역선동 및 「사회주의체제」를 찬양하는 수단으로 각종 행사를 적극 이용했다. 북한에서 금년에 열린 주요 사회행사는 지난해와 비슷한 50여회 정도이며 그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조선지식인대회」였다. 지난 48년 북한정권이 만들어진 이후 처음으로 12월9·10일 이틀동안 평양서 열린 이 대회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텔리들의 사기진작과 체제고수 및 김일성·김정일체제 보위를 위한 사상결속에 목적을 두었던 것으로 분석됐다.이 대회 개막식에는 김부자를 비롯한 북한의 당·정·군고위간부 전원이 참석,대회의 비중을 실감케 했다. 또 9월20∼22일,10월1∼2일에 각각 열린 「전국교육일군대회」「전국열사가족대회」등도 주목을 받았던 대표적인 사회행사였다.이 대회들도 한중수교 이후 외부로 표출되기 시작한 북한정권 핵심세력들의 사상동요를 방지키 위한 목적으로 열렸는데 이처럼 사회핵심계층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대회가 열린 것은 80년대 이후 처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연례적으로 상·하반기에 한차례씩 열린 「연맹」「여맹」「농근맹」등의 전원회의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조직원들의 사상무장 강화 ▲노역제고 및 증산등이 촉구됐다. 한편 주요 문화행사는 약 20여회 열렸으며 금년으로 10회째를 맞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가장 시선을 모았다.이 축전은 김일성생일 행사의 하나로 82년부터 시작됐고 금년에는 80여개의 외국 및 북한 예술단이 참가한 가운데 4월8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됐다. 이와함께 3회째를 맞는 평양비동맹영화축전도 대내외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 축전에는 41개국에서 98편의 영화가 출품됐고 북한의 다부작 극영화 「민족과 운명」이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또 김정일생일 축하행사로 지난 91년에 만들어져 금년으로 2회째를 맞은 「조선영화축전」(12월12∼19일)에서는 극영화 「음악가 정율성」 전·후편과 기록영화 「일본땅을 뒤흔든 보천보 경음악단」등이 해당분야의 우수영화로 선정돼 축전의 기본상인 「2·16영화상」을 각각 수상했다.
  • 평양에도 청소년대상 노래방(북한 이모저모)

    ◎「금」 획득선수 인민체육인 칭호 ○청년회관에 250석 규모 ○…최근 평양에 「화면반주 음악실」로 불리는 「노래방」이 등장했다고 평양신문이 보도했다.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평양 청년중앙회관에 2백50석 규모로 만들어진 이 노래방은 청년중앙회관 대중정치교양과에서 운영하며 근로청년,대학·전문학교 학생 및 청년들은 대상으로 매주 월 화 수 토 일요일 상오 9∼12시,하오 2∼6시에 문을 연다. 이곳에는 보천보전자악단이 취입한 수십곡의 노래가 준비되어 있어 가창자들이 자신의 키이에 맞게 음정과 박자·음색을 자유롭게 조절해 가며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2중창으로도 부를 수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최철수 등 7명에 수여 ○…북한은 최근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전원과 코치들에게 「인민체육인」칭호를 수여했다고 중앙방송이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달 25일자로 된 「중앙인민위 정령」을 발표,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최철수(권투·김일성대학) 배길수(체조·조선체육대학) 김일 이학선(이상 레슬링·압록강체육선수단) 등 4명과 국가종합체육선수단 책임지도원 염동찬을 비롯한 3명의 경기지도원(코치)들에게 「인민체육인」칭호와 함께 국기훈장1급을 수여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대학수 280개 주장/종합대규모는 2곳뿐 ○…북한은 「전국 지식인대회」를 앞두고 지난 5일 「중앙통신사 보도」를 발표,현재 북한에는 김일성대학을 비롯해 단과대학과 공장·농장·어장대학등을 포함,모두 2백80여개의 대학이 있으며 이를 통해 약 1백60만명의 인텔리들이 배출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은 2백80여개의 대학중에서 종합대학·단과대학·전문대학과 공장·농장·어장대학등 산업체대학의 구성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치 않았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종합대 규모의 대학은 김일성대학과 김책공대 두곳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이 단과대학·전문대학이며 그밖에 부설대학이 1백여개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내외】
  • 장애인 그룹홈/정신지체인들의 “안락한 보금자리”

    ◎서울시,시립정박자복지관 협조로 중계동 등에 4가구 운영/생활보조원 배치… 4명씩 생활/사회·가정생활 자립능력 키워/서구·일 등선 이미 보편화… 제도보완통한 확산 절실 영한사전을 제본하는 문정제책사에서 일하는 성창현씨(23)는 퇴근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22평짜리 임대아파트인 집에 도착하면 같이 사는 이정근(23)·권태우(26)·최규택(18)씨가 먼저 퇴근해 들어와 반겨준다.정근씨는 스피커를 만드는 한국음향에서 일하고 태우·규택씨는 전자제품을 만드는 동해주식회사에서 짐나르는 일을 한다.세면과 세탁을 마친뒤 함께 저녁을 먹고나서 당번인 창현씨는 설겆이를 한다.그동안 정근·태우씨는 TV드라마를 보면서 얘기를 나눈다. 서울 가양동에 보금자리를 튼 한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의 하루 생활모습이다.먹고 자는일외엔 아무것도 못할 것으로 생각되는 IQ80 이하의 정신지체인들이 일반인들처럼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모습인 것이다. 일반인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이들을 도와주는 생활보조원 누나(김순천·29)가 있고 이누나가 퇴근후 집에 돌아온 이들에게 출퇴근길이나 회사에서 있었던 일등을 묻고 제대로 전화하는법,존대말 쓰는법등 원만한 대인관계와 사회생활 요령을 가르쳐 준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에는 중계동과 가양동등에 이같은 4가구의 그룹홈이 있다.서울시가 1억2천여만원의 재원을 투입하고 서울시립정신박약자복지관이 위탁관리를 맡아 지난 10월부터 국내에선 처음 도입·운영되고 있는것.입주자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18세 이상의 장애인등록자로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고 취업하여 일정한 소득이 있는자로 선정됐다.주택비와 일상용품비는 서울시가 부담하고 입주자는 생활비와 공공요금으로 월9만7천원만 내면 된다.또 4명으로 구성된 가구당 한명의 전문생활보조원을 배치,가정생활 건강관리 대인관계등 이들의 사회적응을 돕고있다.김순천보조원은 이들 장애인들이 『그룹홈생활에 적극적이고 이웃과도 잘 지내 사회적응이 빠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장애인공동생활가정제도는 70년대이후 서구 선진제국에서 이미 보편화되어 장애인의 사회자립에큰 성과를 거두어왔다.정신지체인들을 대상으로 전국에서 4백여개의 그룹홈을 실시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도 이제 생활보조원의 도움이 거의 없이 정신지체인들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정도라고. 그룹홈 입주는 장애인 모두의 꿈이다.평생 누만 끼쳐온 부모곁을 떠나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떳떳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아직은 그룹홈이 4가구로 한정돼 있어 장애인들은 안타깝다. 서울시립정신박약자복지관 전익준관장은 『그룹홈을 확산시켜 장애인들도 일반사회인과 더불어 살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 대상에 철도부문 장기홍씨/서울신문사·교통부 공동제정

    ◎2회 교통봉사상 수상자 15명 발표 서울신문사가 교통업무에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숨은 일꾼을 찾아내 사기를 높여주고 올바른 교통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교통부와 공동으로 제정한 제2회 교통봉사상 수상자가 25일 결정됐다. 철도·공로(공로)·항공·해운등 4개 부문에 걸쳐 대상·본상·장려상·특별상 수상자 15명을 선정한 이번 교통봉사상에서 영예의 대상은 철도부문의 장기홍씨(57·서울지방철도청 서울객화차사무소 기술계장)에게 돌아갔다. 또 본상은 김영근씨(57·철도청운수국 기계기사)등 4명이,장려상은 이광주씨(57·조양상선 선장)등 8명이,그리고 특별상은 남옥희씨(53·대구합동운수공사소장)등 2명이 각각 차지했다. 대상에는 상금 3백만원,본상에는 2백만원,장려상과 특별상에는 각1백만원씩의 상금이 주어진다. ◎4일 시상식 시상식은 12월4일 상오11시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가질 예정이다.대상수상자 장씨는 31년7개월동안 철도 객·화차의 정비·검수·기술원으로 일하면서 열차의 안전운행에 기여했다. 수상자들은교통부,철도청,해운항만청,각 시·도 교통관련단체에서 추천한 59명 가운데 1차로 교통부 교통봉사상 추천위원회(위원장 장상현교통부차관)에서 24명을 가려 추천한 것을 심사위원들이 엄정한 심사끝에 선정했다. △장기홍 △김영근 △박홍섭(54·광주고속운전기사) △이택금(43·대한항공객실승원실) △안상만(57·부산지방해운항만청등대장) △이광주 △김성규(50·영주지방철도청 제천 조차장역) △이성웅(50·순천〃 순천보선사무소) △장태봉(49·광주시 모범운전자회) △김흥기(40·부산교통공단정비과장) △강우주(42·부산지방항공청 제주항공관리사무소) △김병태(46·아시아나공항 기능감독) △안을수(58·한국해운조합군산지부) △남옥희 △김봉근(56·아메리카타운)
  • 노후 아파트/다양한 개량 방안 시급

    ◎대한건축학회 주택위원회 세미나 발표내용을 보면/물량급증… 재개발식 대책 미봉책 불과/70년대 건설주택 내부설비 등 유리한 조건 구비/도시건축 고려한 광의접근 필요 노후화된 일부 아파트를 중심으로 재건축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무절제한 철거와 재건축은 자원낭비이므로 기존아파트를 개량해 쓰는 방안이 보다 다양하게 강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달 30일 서울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대한건축학회(회장 송종석)주택위원회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대규모단지의 변천상황과 노후주거단지의 처리방식」에 대해 발표한 문홍길 당건축연구소장은 『노후아파트가 현재의 경제사회적 추세에 의해 재건축 일변도로 처리됨으로써 자원낭비가 심각하다』며 『앞으로 각기 다른 특성의 노후주거단지의 수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현재의 재개발식 노후아파트단지 대책은 많은 문제에 봉착하게 될것』이라고 지적했다.따라서 그는 보다 체계적인 노후아파트 관리대책으로 노후아파트의 적극적인 개량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노후화된 아파트가 외관이나 공동설비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나 재건축만을 기대해 보수와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문제점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날 세미나에서 「독일의 노후주거단지 개량화 접근방법과 국내에서의 수용방향」에 대해 발표한 오덕성(충남대교수)·박천보(독일 하노버대 박사과정)씨는 『독일의 경우 80년대부터 50∼60년대에 건설된 노후아파트를 대상으로 건축물차원과 단지적측면에서의 개량이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소개하고 『우리나라도 70년대에 건설된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개량화의 필요성이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7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아직 노후도가 심각하지 않고 비교적 좋은 입지조건과 내부설비를 갖추고 있어 개량화의 유리한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아파트 개량사례는 적으며 그것도 사안에 따른 부분적 해결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대부분 입주민의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을뿐 아파트단지차원에서의 개량은 매우 미흡한 실정.내부 개조와 수선,녹지대의 주차장화 등으로 건축구조상 또는 생태환경상의 나쁜 영향을 가져오는 것도 개량상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노후아파트단지를 개량함에 있어 도시·단지·건축사항까지 폭넓게 고려하는 포괄적인 접근이 요구된다는 점이 이날 세미나에서 부각됐다.이와함께 ▲노후아파트의 설정과 노후도의 정도를 판단할수 있는 준거를 시급히 마련하고 ▲건축물차원의 개보수에서 진일보하여 단지의 이미지개선과 녹지공간및 편익시설 확보도 고려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들도 활발히 제시됐다.
  • 새 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

    ◎김형직 우상화에 조선국민회 이용/회원명단에 포함된 사실 뒤늦게 알아/68년판 전기부터 정치·군사 투쟁가로/단체성격도 임정과 관계 없는듯이 기술 김일성은 그의 부친 김형직이 조선국민회 회원이었다는 사실을 50세가 넘도록 모르고 있었다.이 점은 부친이 조선국민회의 「지도자」였다는 대대적인 선전이 행하여지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김일성은 조선국민회 뿐 아니라 그것보다 더 기초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많았던 인물이다.예를 하나만 들면 그는 52년 전기에서는 부친이 1928년에 36세로 사망하였다고 말하고 있다.그후 사망한 해는 26년으로 시정되었으나 사망당시의 부친의 나이는 1964년에 나온 박상혁의 「조선민족의 위대한 령도자」까지 32세로 시정된 일이 없었다.이러한 전기들에는 조선국민회 같은 것은 단 한줄도 기술되지 않았었다. 조선국민회는 1917년에 평양에서 결성된 비밀결사이다.이 결사의 회원명단에 김형직의 이름이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당시 일본에서 조총련의영향하에 있었던 재일사학자 강덕상교수이다. 강교수는 지금은 조총련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지만 1960년대까지는 북한을 지지하고 있었다.그런 관계로 그는 60년대에 김형직과 관련된 자료들을 조총련을 통하여 북한에 보냈다. ○재일사학자 발견 그런데 이 자료를 입수한 무렵의 북한은 김일성의 유일지도체제를 세우는 와중에 있었다.그는 1967년에,해방전 보천보전투 때 이 전투를 국내에서 도운 박금철 이효순 등을 숙청하고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서두르게 되었다.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이란 북한주민이 오직 김일성의 사상만으로 사고하고 그의명령지시 대로만 움직이며 과업수행 과정에서 언제나 김일성에게 충성을 바쳐야 하는 체제를 확립한다는 말이다. 김일성은 이 책동의 일환으로 1968년에 백봉이라는 가명을 쓴 저자이름의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을 출판하게 하였다.종전의 김일성전기와는 내용이 판이한 이 전기에서 비로소 「조선국민회」를 김형직 우상화의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김형직을 우상화하는데 단순히 그를 과대선전하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역사적인 존재인 국민회 자체를 북한체제의 「정통성」에 부합되도록 그 활동내용을 뜯어 고쳐버렸다. 1917년에 실제로 평양에서 조직된 조선국민회는 1919년에 대한민국회로 개편되어 상해임시정부의 지도를 받게되는 조직이었다.이 국민회가 19년 10월에 상해임정에 보낸 규칙초안을 보면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립목적이 있다. 「대한정을 관민상화하고 자순하며 신의 공보를 유종함을 목적으로 함」 당시의 대한국민회는 일제식민지하에서 대한이란 국호를 사용하고 관민이 서로 화합하여 자문을 주고 받는 정치를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그러나 이 단체는 동시에 신에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기독교단체이기도 하였다.훌륭한 독립단체이기는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종교결사이기도 하였던 것이다.대한민국회의 전신이 조선국민회이므로 조선국민회도 이상과 거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한편 68년 백봉이 쓴 전기에 나오는 「조선국민회」는 그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있다. 「이조직은 우리 나라에서 과학적 마르크스­레닌주의사상이 보급되기 이전에 벌써 반제민족해방의 과업을 정확히 내세웠으며 조국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방도로서 외국세력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인 힘에 의거하며 청원이나 개량의 방법이 아니라 정치적활동과 군사적 활동을 적절히 배합할 것을 내세웠다」 북한에서는 이상과같이 원래의 조선국민회나 대한국민회의 설립목적에서 신과 종교를 빼고 이 결사가 마치 무신론자의 단체인 것처럼 만들었다.또 외세의존이나 「청원이나 개량의 방법」같은 것을 부정하여 상해임정과의 연계를 끊어버렸다.이 국민회의 성원들 속에는 미국이나 재미교포와의 연계를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 많았는데 이러한 연계마저 끊어서 「반제민족해방의 과업」을 수행하는 「자주적인」정치비밀결사였던 것처럼 그 목적을 바꾸어버린 것이다. 김일성은 50세 무렵까지 부친 김형직의 정치활동 중에 조선국민회원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그러나 이 점에 대하여 알게 된 순간부터 조선국민회의 활동을 그대로 두는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존재인 조선국민회가 설정한 목적 자체를 이상과 같이 변경하게 하였다. ○50세 넘도록 몰라 그러나 백봉의 전기가 나오는 무렵은 아직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책동이 초기단계에 있었다.이 때문에 북한이 설정한 목적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사상이 보급되기 이전」시기에 국민회가 결성되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이것은 조선국민회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이 아니며 김형직도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의미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또 백봉은 「이 조직은… 3·1운동 이전의 가장 큰 반일운동조직이었다」라고 하였다.3·1운동 이전의 가장 큰 반일조직은 따로 있지만 이러한 표현은 김형직이 3·1운동 이전 밖에 조선국민회에 있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백봉은 3·1운동 이후 조선국민회가 대한국민회로 발전하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이 때문에 그는 독재자인 아들의 뜻과는 정반대로 이승만이 설립한 상해임정에 김형직이 붙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조선국민회는 3·1운동 이전의 조직이라고 그 활동을 중도에서잘라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은 김형직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조선국민회에서의 그의 활동은 3·1운동 이전이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점에서 그후의 전기들과 구별되는 전기이다. 현대사자료25,강덕상론,일본 미스즈서방간,544면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백봉저,1968년 평양 인문과학출판사간,14면 같은책 동면
  • 삼고초려에 “국가가 부른다면 수락”

    ◎「중립내각」 이끌 현승종총리 스토리/교단46년 학생사랑·직언 일관/정도 어긋날땐 단호하게 질책/평남 개천출신… 2개대학총장 역임 14시간의 대장고끝에 내린 결정이었다.「국가와 국민이 부르므로…」.하오10시에 춘천집에 도착한 「신임총리」는 밖의 수많은 보도진이 몰려있음에도 아랑곳없이 이튿날 낮12시가 되어서야 대문을 나섰다. 현승종교총회장에 대한 국무총리 지명과정은 삼고초로의 고사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헌정사상 신기원인 중립내각을 출범시키려는 노태우대통령의 의지와 46년간 교직을 떠나본적이 없는 원로교육자 현회장의 총리직 수락에 대한 번민은 결국 역사의 소명앞에 하나가 됐다. ○“역사적 소명” 번민 현회장은 총리직 수락을 여러차례 고사했다.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던 교직생활과 역사적책임 사이에서 신임총리는 번민했다. 그러나 결국 『국가의 부름이라면 기꺼이 나서겠다』고 결정했다. 국가는 「학생사랑과 직언」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노교육자를 세상에 나오도록 강요한 것이다. 현신임총리는 역시 교육자출신 총리이다. 6공들어 이현재·강영훈·노재봉·정원식 전임총리도 모두 교단에 섰었다. 항간에는 이번 중립내각의 총리가 단명할것이라느니 잘해야 본전일것이라는 얘기들도 나돈다.물론 과도기의 중립내각임에는 틀림없다.그러나 60년 4·19이후 허정총리의 과도내각이 불과 3개월여기간이었지만 당시 총선을 훌륭히 치러냈던 역사적 경험이 우리에게는 있다. 따라서 이번 「현승종 내각」에 거는 기대도 여느때와는 다르다. 그는 일제치하인 43년 경성대법과를 졸업한뒤 고려대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고대교수·학생처장·성균관대총장·한림대총장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교직을 떠나본 적이 없다. ○강직한 선비 품성 성균관대총장이던 80년 「서울의 봄」당시 총장실복도에서 농성하던 제자들의 모습에 실망,즉각 사표를 제출해 선비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제자들은 스승을 생각할 때면 항상 깐깐하고 소신있는 선비의 모습과 함께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을 아끼지않는 자상한 모습을 떠올린다. 4·19당시 팔을 뿌리치며 달려나가는 제자들의 옷자락을 잡고 『제발 몸조심하라』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두고두고 고대 4·18세대의 화제로,「눈물교수」의 추억으로 간직된다. ○주말등산 노익장 3·1운동직전인 1919년 평남 개천에서 출생,항일의병장이었던 조부가 개설한 서당(삼수재)에서 한문을,개천보통학교에서는 신학문을 공부했다.평양고보시절 그의 성적은 뛰어났고 특히 수학·자연과학분야에서는 「독불장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학졸업후 학병에 징집당한 그는 견습사관시절 중국 남경에서 해방을 맞았다.그러나 그의 귀국은 해방 이듬해인 5월이었다.귀국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으나 병든 동포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이들 뒷바라지 때문에 늦어졌던 것이다. 현총리는 올해 73세의 고령이면서도 비상한 기억력과 등산으로 다진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부인 홍영표여사(70)와의 사이에 3남1녀를 두고있으며 한림대총장 취임후부터 춘천의 32평아파트에서 부인과 단둘이 생활해왔다. 「다시 한번 태어난다해도 학원에서 한평생 일하고 싶다」는 현총리의 학자적 소신과 교육행정경력,강직한 성품은 새역사 현장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기대와 겹쳐 내일을 궁금하게 하는것이다.
  • 새 전기 「세기와 더불어」를 보고(신고 김일성 자서전연구:1)

    ◎연재를 시작하며/역사의 고비마다 갈이입은 「사상의 옷」/통일 앞두고 그의 정체 정통하게 알아야/52년 40세때 초간후 수없이 개작/이번엔 “이민위천이 좌우명” 주장 김일성은 이번 80회 생일에 「세기와 더불어」란 회고록을 냈다.그가 태어난 1912년 무렵부터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는 1932년까지를 2권으로 나누어 회고한 자서전이다. 따라서 이 회고록은 앞으로 1932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또 해방후 1992년까지를 구분해 합계 십몇권 정도 나올 것이 예상된다.제1권이 3백61페이지이므로 적어도 5천페이지 정도되는 방대한 김일성 일대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은 여느 공산국가 독재자들과는 달리 자기의 「전기」를 즐겨 출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출판하기만 하면 그것을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보급하는데도 열심이다. 그는 또 유달리 꺾어지는 해의 생일을 중시하여 이 때 공식전기를 출판한다.이 전기들은 다음과 같이 시대가 내려 올수록 그 분량이 방대하게 되는 특성도 있다. ○62년엔 중공계 숙청 1952년(40세 생일)「김일성장군의 전기」1권 68면.1972년(60세 생일)「김일성동지 작전」1권 8백60페이지.1982년(70세 생일)「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전기」3권 합계 1천5백페이지. 이상을 보면 그가 50세 생일을 맞은 1962년에는 공식전기가 나오지 않았다.52년의 전기가 나온 후 북한에서는 남로당파·소련파·연안파·국내파들이 모두 숙청되었으므로 김일성은 62년에는 중공계 항일빨치산이었던 그와 그 일당만을 「진정한 공산주의자」로 둔갑시키는 「공식전기」를 출판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일당조차 진정한 공산주의자로 취급하는 아량은 없었다.그는 1967년에는 식민지시대 보천보전투에 참가한 박금철 등을,그리고 69년에 그와 가장 가까운 빨치산시대의 전우인 최광등을 숙청하였다. 이 숙청과정인 1968년 그는 자기만을 진정한 공산주의자로 둔갑시킨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을 출판하였는데 이 두권짜리 책이 또 대폭적으로 내용이 바뀌어 나온 것이 72년 전기인 것이다. 김일성유일독재는 1980년 제6차당대회에서 김일성부자 독재체제로 굳어졌다.김일성자신뿐이 아니라 김정일의 「충성」과 「효성」도 반영된 것이 82년 전기로 된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전기들이 출판되는 이유의 하나는 이것이 그의 우상화작업이기 때문이다.그는 자신의 우상화를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얼마든지 은폐하고 왜곡하며 날조한다.그는 해방직후부터 일관되게 그렇게 해왔다.46년 김일성의 기요과장이었던 연안파의 고봉기는 그로부터 이러한 명령을 받은 일이 있었다. 「보고문이나 회의록 같은 건 다 앞으루 역사적 문건으로 남겨야 할 거니까…이제라두 늦지 않았으니…없는 건 만들어 놓구 또 있다 하더라두 기록이 잘못됐거나 한 건…다 고쳐 놓을 필요가 있단 말이요.해방전의 자료들두 그렇지,필요한 것만 남겨두구 필요찮은 건 다 없애치우는게 좋잖을까?」 이와같은 은폐·왜곡·날조 같은 행위는 그의 전기가 새로 나올 때마다 첨가되어 현재의 우상화된 김일성이 생겨 났다.실상을 제쳐두고 허상만 요란하게 선전하는 이러한 우상을 위하여 북한의 당원들과 대중들은 갖은 「충성」을 다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전기들이 출판되는 또하나의 이유는 그 유일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주민들에게 강요하는 김일성의 사상정신적 억압수단이 바로 「주체사상」과 「혁명전통」이기 때문이다.그의 전기는 혁명전통의 핵심자료로 되어 있다. 1986년 5월31일 김일성은 「조선로동당건설의 역사적경험」이란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의 위업을 계승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당이 이룩한 혁명전통을 옳게 계승해나가는 것입니다.우리 당이 계승하여야 할 혁명전통은 주체의 혁명전통입니다….혁명전통을 계승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혁명전통의 순결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오직 우리 당이 이룩한 주체의 혁명전통만을 인정하고 그것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며 이 밖에는 그 어떤 다른 「전통」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민정신 개조 수단 한때 우리 당안에 기어들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항일빨치산의 전통만이 혁명전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느니,혁명전통의 폭을 상하좌우로 넓혀야 한다느니 하면서 우리 당의 혁명전통에 오가잡탕을 섞어 넣으려고 하였습니다.그들이 우리 당의 혁명전통과 인연이 없는 것을 들고 나와 혁명전통과 뒤섞어 놓으려고 한 것은 혁명전통을 거세하고 자기들의 종파적야욕을 실현하기 위한 책동이었습니다.앞으로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흐리게 하거나 말살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순결하게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김일성이 「주체의 혁명전통」이니,「혁명전통의 순결성」이니 하고 있는 것은 모두 그의 사상과 그 자신의 행적을 말하고 있다.「주체」란 다른 중공계 항일빨치산이 갖고 있었던 사상은 아니며 「순결성」이란 김일성 이외에는 아무도 지닐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10년에 한번씩 나오는 김일성의 공식전기란 그의 사상과 행적을 서술한 책이다.따라서 김일성이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순결하게 계승해」나가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이 전기에 실린 자신의 사상과 행적을 철저히 옹호하고 그 내용대로 알아서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식전기들에 반영된 그의 사상과 행동이란 전기마다 달라서 거기에는 일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예를 들어 52년 전기에서의 그의 사상이란 마르크스·레닌주의사상에서도 최악의 사상인 스탈린주의였다.72년 전기의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라는 그가 창시했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이었다.그런데 82년 전기의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근본이 다른 사상이 주체사상인 것처럼 되어 있다.김일성은 역사의 고비고비에서 자신의 사상을 바꾸어 나가는데 그것이 그대로 이러한 전기들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세기와 더불어」도 그 사상은 다시 달라지고 있다.머리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이는 것이다. 「이민위천,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었다.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한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 신앙이며…생활의 본령이었다」 그는 이번에는 주체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비교하는 대신 「이민위천」사상을 가져와서 이와 동일시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주체의 원리를 자신의 「정치적신앙」이라고까지 하였다. 세계의 마르크스·레닌주의국가들이 붕괴되어 가는 길위에서 그는 이제 사상을 「신앙」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그는 현재 주체의 원리와 혁명전통으로 북한주민을 세뇌시킨데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세뇌된 사고를 김일성부자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의 차원으로 유도하고 있다.이러한 현실이 김일성의 입으로 나온 것이 앞의 말이 아닌가 싶다. 사상 뿐 아니라 김일성의 행적도 전기마다 다른 것이 얼마든지 있다. 현재 한반도에는 통일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통일은 몇년 후에 현실로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압도적 다수가 내다보는 근미래이다. ○“정치적 신앙” 강조 그런데 한국국민은 지금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북한체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채로 지내고 있다.김일성만을 알고 따르는 북한주민과 김일성의 정체를 거의 모르는 한국국민이 다같이 통일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북 양측 주민이 서로 상대방의 사상과 행동에 정통하여야 할 것이다.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국민의 책임이 무겁다.한국에서는 국민들이 북한체제와 김일성부자의 정체및 북한주민의 정신상태를 알아야만 그들과 대화를 하여 사상적으로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할 시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본지에서 시작되는 「세기와 더불어」의 분석비판은 한국국민과 앞으로의 북한주민에게 다같이 김일성과 그 독재체제의 진상을 알리는 공통의 장을 제공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필자는 1987년에 김일성평전과 그 속편을 출판한 일이 있는데,연구를 시작한 1983년부터 이 무렵까지는 근본자료와 연구서적들이 태부족하였다.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는데 이 어려운 작업에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진실을 위해서는 과거의 자신의 학설도 버릴 부문은 대담하게 버릴 작정이다.다만 버릴 때는 일일이 그 이유를 열거하겠다. □주 해 ①「김일성의 비서실장」고봉기의 유서 1989년 천마사간,17면 ②「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경험」김일성,1986년 단행본,조선로동당출판사간(이하 「당간」이라고 함)1백12∼1백13면 ③「세기와 더불어 1」.1992년 4월9일 당간 2면 ④「김일성평전」 「김일성평전 속」,1987년 북한연구소간(이하 평전,혹은 평전(속)이라고 함)
  • 변우형특파원 총리회담 취재기/1992·가을·평양:중

    ◎바깥세계와 단절속 개방 흉내만/중국공연 뿐인 악단을 “세계적” 자랑/지난 4월 완공 고속도에 통행은 한산 고속도로를 따라 들어선 평양은 언뜻 보기에 모스크바시내를 연상케 했다.모스크바에 울창한 베리오스카(백양나무의 일종)가 이곳에는 없을 뿐 건물의 모양이나 크기,둥그런 지붕의 지하철역사등이 흡사 모스크바로 착각될 정도로 비슷하다. 건물은 모두 대형으로 잿빛의 인민대학습당,역사박물관,만수대예술극장과 같은 기념상징건물하며 거리의 궤도전차,곳곳의 기념탑,동상등이 그러했다.단지 붉은 색깔의 선동적인 우리말 구호가 이곳이 평양임을 알게하는 것이었다. 고속도로는 개성·평양간 1백70㎞의 왕복4차선.5년동안의 공사끝에 지난4월 완공됐다.도로상태는 조잡했다.종전 기차로 3시간반이나 걸리던 것이 2시간으로 단축돼 고속도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셈. 평양까지 가는 동안 버스차창에 비친 농촌의 모습이나 평양에서 만난 북한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한마디로 우리와 「시간대」를 너무나 달리하고 있었다. 우선 고속도로를달리는 동안 이곳을 지나는 차량 1대를 볼수 없었다.그것은 평양시내에서도 비슷해 버스나 궤도전차뿐 승용차는 드물었다. 농촌주택은 1층과 2층짜리로 1주택 2가구,1가구가 방 2개로 같은 모양의 조그만 집들이 곳곳에 마을을 이루고 있다.평양까지 2시간동안 이들 마을에서 한사람의 모습을 볼수 없어 마치 빈집이 모여있는 듯했다. 안내원은 「모두 국가에서 지어 공급한 것」「문화주택」이라고 자랑하며 『낮에는 모두 공장이나 사물실에 나가 일하고 있어 마을에 사람은 없다』고 전한다. 평양시내에서 만난 북한사람들의 옷차림은 어떤 스타일이라고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우선 남루했다.생활에 쪼들린듯한 모습이 이들의 어려움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심각하게 여겨지는 것은 어떤 활동이 정지된 듯한 정적의 도시,무기력하게만 보이는 북한사람들의 모습에서 읽게 된다. 「왜 그럴까」「그 이유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가 무척 궁금한 북한 3박4일이었다.체제논쟁에는 끝없이 논쟁을 벌이며 반발하는 이들이 어째서 이렇게 무기력하고 무표정한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남북회담취재를 위해 서울을 자주 왕래한다는 북한기자는 『경쟁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동료에 비해 진급이 늦다』고 불평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어떤 자극이나 보람이 없다는 것도 큰 이유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곳이 너무나 낙후돼 있고 폐쇄적인 사회라는 데서 가장 큰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으면서 그저 주체사상만 주장하고 있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방도 필요에 따라 흉내만 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외적으로 개방 제스처를 쓰고 대내적으로는 약간의 숨통을 터주어 결속을 시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좋은 실례를 개방의 본보기로 얘기되고 있는 「경음악단」에서 보게 된다.이곳의 경음악단은 2개.보천보악단과 왕재단악단으로 보천보는 일본,왕재단악단은 중국을 순회공연하고 돌아왔다.이들 악단은 무용의 경우 치마의 길이가 조금 짧아졌을뿐 공연내용이나 수준은 우리 시골을 돌아다니는 지방악단과 비슷한데도 이곳에서는 소문이 무성하다.「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국제적이다」「공연초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공연에서 마지막 프로인 「우리의 소원」노래합창이 분명한 대내결속용임은 이미 알려진 그대로이다.출연자 모두가 함께 노래부르고 관중들은 박수로 호응함으로써 통일열기를 부추기고 있다. 이번에도 17일의 동평양극장공연에서나 18일의 양형섭최고인민회의의장이 베푼 만찬장에서 「우리의 소원」합창때 이들은 곧 통일이 닥쳐오기나 하는듯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다시 이곳이 통제사회이고 그래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북한이 개방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에 북한 3박4일을 마치고 고속도로를 따라 돌아오는 길목은 너무나 우울했다.
  • 「기쁨조」는 김 부자 등 “고위층의 노리개”

    ◎「만족」「행복」「가무조」로 구분… 별장 등에 배치/사상 투철하고 미모갖춘 20대여성 선발 ○…북한의 「기쁨조」 운영실태가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기쁨조」는 김일성·김정일을 비롯,당·정 고위층 간부들의 엽색행각및 피로회복을 위한 봉사활동,그리고 각종 주연의 여흥을 돋우기 위한 가무요원 등으로 동원되고 있는 여성들이 소속돼 있는 조직을 말한다. 최근의 귀순자및 입수된 관계자료에 따르면 이 「기쁨조」는 크게 「만족조」「행복조」「가무조」등으로 구분돼 김일성·김정일 별장및 각 초대소 등에 배치돼 있는데 전체 구성원은 약 2천명 정도이다. 그 가운데 「만족조」의 임무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며 따라서 특별히 몸매가 좋고 성적매력이 풍부한 여성이 선발되고 있다. 「행복조」는 안마·마사지 등을 통해 피로회복을 시켜주는 것을,「가무조」는 반라무용·노래·악기연주 등을 통해 술좌석의 여흥을 돋우어주는 것을 주임무로 하고 있다. 「행복조」에는 평양적십자병원의 1년과정 특별반에서 안마·마사지 등의 교육을받은 여성들이 선발되고 있는데 매년 배출되는 인원은 20∼30명 정도이다. 이 20∼30명에 달하는 여성들은 1백% 각 시·도 예술전문학교 출신이며 때로는 평양적십자병원대신 동유럽이나 옛 소련서 3개월간 교육을 받고 오고도 있다. 「가무조」에는 보천보전자악단 등 각 예술단체나 대학생중 노래·무용·기악 등에 재질이 있는 여성이 선발되고 있고 이들은 외국에서 율동을 배워온 뒤 김일성·김정일 또는 당·정간부들이 갖는 파티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 91년말의 일본공연과 가요 「휘파람」으로 외부에 얼굴이 알려진 보천보전자악단 소속의 여자가수 전혜영,그리고 역시 같은 보천보전자악단소속으로 일본순회공연을 했던 김광숙·이분이·이경숙·조금화 등이 바로 「가무조」의 일원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이 3개팀으로 대별되는 「기쁨조」구성원 선발은 호위총국 주관 아래 「당간부과」산하 도·시위원회에서 맡고 있는데 선발기준은 ▲미모에 키 1m60cm 이상 ▲사상성분 투철 ▲질병 전무 등이다. 이 「기쁨조」구성원들에 대한 대우를 보면 거주지는 평양시 보통강구역의 호화아파트이고 일용품으로는 일제가 무상으로 지급되고 있다. 이 「기쁨조」구성원들은 25세가 넘으면 당간부과에서 소개하는 호위총국 소속의 군관이나 국가 공훈자와 결혼,「과업」을 마치고 있다.
  • 난 기르기/자생란 20분이면 사철 꽃 감상

    ◎동호인 10만명… 종류·구입법·여름철관리요령 총가이드/풍란등 7만종 자생… 값은 천차만별/“뿌리 하얗고 잎에 윤기돌면 건강체”/실내돈도 30℃ 안넘게… 물은 2∼3일에 한번 “흠뻑” 고고한 기품과 은은한 향기로 집안의 격조를 높여주는 난.그런 멋에 난을 취미로 기르고 감상하는 애호가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자생란보존회에 따르면 50분 이상의 난을 키우며 취미활동을 하는 전국 애란인수는 10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난재배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 갖는 동호인 모임도 전국적으로 1백70여개에 이르며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도 1천5백여명에 달한다.한국자생란보존회의 경우 전국 25개지회에 6백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전문판매점 360곳 산재 이에따라 난을 전문적으로 재배 분양하는 난재배농가와 전문판매점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애란인모임들이 파악하고 있는 전국 난전문재배농가는 70여가구.난전문점은 3백60여개소에 이른다. ▷난의 종류와 가격◁ 지구상에 번식하고 있는 난과식물은 7만종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우리나라에는 소란·춘란·한란·풍란·사철란·제비란·복주머니란·새우란 등 1백10여종이 자생하고 있다.그중에서도 제주도의 한란과 남해도서지방에서 자라는 풍란·석곡 등은 세계적인 명품으로 꼽힌다. 특히 여천 백도와 신안 홍도의 풍란은 향기가 요란해 10리길 짙은 안개속에서도 향기를 맡고 섬을 찾을 수 있을 정도라고 칭송이 대단하다. 춘란은 북쪽 백령도에서 제주도 최남단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다.춘란 중에서는 욱·영주도·탐라도·제주도·유향·진도자·옥녀아리랑­품·진해·홍도·내산등이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0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꽃을 피우는 한란은 춘란·소심란과 함께 동양란 중에서 가장 깨끗한 청향(맑고 은은한 향기)을 자랑한다. 한란은 잎새가 비교적 풍성해 보이는 춘란과는 달리 가늘고 긴 모양새를 가져 마치 깊은 산속에 숨어사는 은자와도 같은 고고한 멋을 풍긴다.한란은 보통 제주계 대만계 일본계의 3종류로 대별되지만 품질로는 제주한란이 단연 으뜸이다.제주한란은 천연기념물(제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촉당 1만∼3만원선 값은 난의 품종과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싼것은 촉당 2천원짜리가 있고 비싼 것은 수백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그러나 1만∼3만원안팎이 보통이다.극히 적은 양이기는 하지만 자생춘란의 경우 1천만원을 호가하는 예도 있다. 이에대해 한국자생란보존회의 이성보전무이사는 『투기목적이 아니라면 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의견이다. 『왜냐면 수억원짜리 외국산 난이 엄연히 유통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것만 싸구려로 인식되는 것은 국가간 상거래 도덕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난을 구입할때는 잎이 윤기가 돌아 신선한 느낌을 주고 뿌리가 하얗고 실한것,줄기와 뿌리가 연결되는 부위의 벌브(의구경)가 통통하게 살찐 것을 고르는 것이 일반적인 요령이다. 난의 건강상태를 잘 알수 없을 때는 경험이 풍부한 애란가 또는 믿을 수 있는 난전문업자를 찾아서 입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그럴 경우 혹시 품종이 틀렸거나 난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교환 받을수 있도록 사전에 약속을 받아두는 것이 좋다.특히 꽃란은 꽃을 보고 입수하도록 한다.난은 동호인회를 통해서도 구입할 수 있다. ▷초보자에 맞는 품종◁ 초보자가 가장 쉽게 난을 구입할수 있는 경로는 생산자로부터 직접 구입하는 방법이다.서울의 난전문상가는 고양군 신도읍 동산리의 통일로를 따라 10여개가 밀집해 있으며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에도 6개 난전문점이 문을 열고 있다.이곳에서는 시중보다 10∼30%까지 싼값에 난을 판매하고 있다. ○전문점이 최고 30% 싸 이성보한국자생란보존회전무이사는 화분 20개 정도면 1년 내내 계속해서 난꽃을 감상할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초보자가 가꾸기 쉬운 춘란으로는 송매·집원용자·장하소·노분단소등 중국춘란을 추천한다.또 여름용으로는 풍란·옥화·건란을 들었으며 가을용은 관음소심·겨울난은 제주한란·일본한란·산천보세등이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키우기쉬운 양란도 많이 보급되고 있는데 신디비디움·덴드로비움·온시디움·파피오페딜룸·팔레놉시스·카틀레야등이 인기있는 품종으로 꼽힌다. ▷여름철 관리요령◁ 우선 실내온도가 섭씨 30도를 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때때로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돌려서 환기를 시켜주며 물은 보통 2∼3일에 한번씩 서늘한 저녁에 흠뻑 주도록 한다. ○열흘마다 살균제 뿌려야 또 열흘에 한번꼴로 살균제(다이젠·벤레이트·톱신서등)와 살충제(스미치온·스프라사이드등)를 뿌려주고 달팽이가 뿌리를 갉아먹기 쉬우므로 달팽이가 좋아하는 오이를 잘게 썰어서 화분주위에 놓아두었다가 달팽이가 몰려들면 없애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하다.이달은 특히 춘란의 꽃눈 틔우기를 하는 시기.이달말까지 비료시비를 삼가고 중순까지 일주일 정도 물주기를 중단하면 꽃눈이 올라온다.꽃눈틔우기는 내년에 꽃을 볼수 있는 분을 골라서 하되 3촉이상의 건강한 난을 골라야 한다.
  • 마을·농가별 신청받아 「일손」 지원/정부선 농촌지원 어떻게 하나

    ◎「지원센터」서 봄·가을 2회 인원배분/경운기·트랙터등 전면순회 정비도 정부와 서울신문사가 영농철을 맞아 농촌일손돕기를 범국민적으로 펼치게 된 것은 현재 농촌을 농민들에게만 맡기고 방치할 경우 농업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높은데 따른 것이다. 농촌의 노령·부녀화의 심화로 인한 일손부족현상,노임폭등,각종 영농자재값의 급등 등으로 본격적인 영농철인데도 노는 농지가 널려있고 잡초가 무성한 문전옥답도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농촌을 등지는 사람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어 농촌의 일손부족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한햇동안에만 농촌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던 농민 10명중 1명꼴로 농촌을 떠났다. 농가수 역시 지난해말 현재 1백70만2천가구로 1년전의 1백76만7천가구에 비해 4%인 6만5천가구가 감소,지난 5년간 연평균 감소율 2.2%를 웃돌았다. 정부는 이에따라 13일부터 연말까지 농촌일손돕기운동을 서울신문사와 함께 펼치기로 한 것이다.이 운동은 크게 개인이나 단체가 직접 농촌현장에 나가 농민을 도와주는 「농촌일손돕기운동」과 「농기계보내기운동」및 「농기계 수리봉사운동」등 세갈래로 나누어 전개된다. ▷농촌일손돕기운동◁ 내무부·농림수산부 주관으로 봄철 영농기인 11일부터 6월30일까지 51일동안과 가을철 영농기인 10월1일부터 11월30일까지 전개된다. 지원하는 농사종류는 모내기·보리베기·벼베기는 물론 일손이 많이 드는 콩심기·감자심기·고추모 등 농작물의 이식 또는 정식·제초작업·과일따기·감자와 고구마캐기등 농작업과 도로·하천보수등 농가가 원하는 모든 작업이다.일손지원을 받고 싶어하는 농가는 지난 11일 농림수산부와 각 시·도·읍·면에 설치된 「일손지원센터」에 신청을 하면 된다. 마을단위로 신청할 때는 이장·단지회장이 농가별 지원받기를 원하는 작업종류·면적·소요인력에 관한 신청을 하면 해당지역의 기관장이 실정에 맞게 적정인력을 마을에 배치,지원을 받게 된다. ▷농기계보내기운동◁ 농림수산부 주관으로 13일부터 연말까지 펼쳐진다. 고향에 농기계를 보내려거나 농촌일손돕기에 참여하고 싶지만 거리·시간등의 문제로 여의치 못한 단체·기업체·개인의 성금이나 현품을 기탁받는 방법으로 전개된다. 접수처는 농림수산부와 각 시·도·군의 일손지원센터및 서울신문사·한국방송공사 등이다. 기증자가 지역을 지정할 때는 기증자 이름으로 그 지역에 전달하되 가능한한 지역에서 필요한 기종이 공급될 수 있도록 「일손지원센터」가 해당지역과 협의하게 된다. 기증된 농기계는 마을영농회에서 공동이용규정에 따라 운영관리해야 한다. ▷농기계수리봉사◁ 봄철에는 13일부터 6월10일까지 1개월,가을철에는 9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2개월등 3개월간 전국에서 순회실시된다. 수리대상 기종은 봄철에는 이앙기·경운기·트랙터,가을철에는 수확기·트랙터·건조기 등이다.
  • 급변하는 북녘의 관광정책과 현황(오늘의 북한)

    ◎외국관광객 유치 안간힘/체제손상 안받는 범위서 변신을 모색/개성을 문화도시로… 외국사진출 “손짓”/국토 40%가 출입제한 구역… 「관광입국」실현은 미지수 북한은 최근 해외동포 및 외국관광객들의 주요 관광코스에 들어있는 개성시를 「현대적 문화도시」로 조성한다는 방침아래 도로와 주택 건설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북한의 「관광개발」움직임과 관련,관심을 모으고 있다. ○도로·주택건설 현장 북한은 지난 6일 중앙방송을 통해 최근 몇년 동안 개성시의 운학·송전·통일거리 등 7개소에 현대적 도로를 신설하고 매년 1천2백가구분의 주택을 신축하는 등 수많은 상점과 편의시설,교육문화 보건기관을 신설해 도시의 변모를 일신했다고 선전했다. 북한은 이와함께 개성시가 고려의 수도였다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 남대문으로부터 만월대까지의 1㎞구간에 수백채의 한옥을 복원하고 통일관 민속여관 등 한옥여관들도 새로 건설할 것이라고 중앙방송이 전했다. 북한이 이처럼 관광쪽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사정이 비슷한 중국이 외국관광객 유치를 통해 외화수입을 늘려나가고 있는데 크게 자극을 받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말 국영관광회사인 조선국제여행사의 조직을 일본담당의 1사,동남아 담당의 2사,기타 3사로 확대개편했으며 일본교통공사(JTB)가 개발한 평양∼개성∼판문점 연결 패키지 상품판매를 허용하기도 했다. 또 오는 4월부터는 남포∼원산∼백두산∼김강산을 연결하는 새로운 상품판매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최근 북한의 대남·대일·대미관계개선 움직임과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큰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북한이 개방에 따른 체제붕괴위험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관광사업개발에 역점을 두는 것은 2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는 밑천없이도 당장 외화벌이가 가능한 관광사업을 통해 악화일로의 외화사정을 타개하자는 것이며 둘째는 「주체사상」의 선전과 함께 외국인들에게 그들의 「개방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대외관계개선과 경협추진에 도움을 받고자 해서이다. 북한은 종래 관광에 대해 「낭비적이고 안일한 생활을 추구케하는 비생산적인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그러나 경제침체로 외화사정이 악화되자 84년 9월 제정된 합영법이 규정하고 있는 외국과의 합작사업 5개분야에 관광사업을 포함시켜 이를 적극 추진해왔으며 86년 5월에는 정무원에 「국가관광지도총국(약칭 관광총국)」을 설치,이때부터 호주·홍콩등지의 여행알선기관을 통한 외국관광단 유치에 발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이어 북한은 세계관광기구(WTO)에도 가입,외국과의 관광교류에도 힘써왔고 제3차 7개년계획(1985∼92)의 주요사업에 관광지개발계획(백두산·묘향산·명사십리해수욕장·몽금포해수욕장·금강산종합개발)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북한의 대외관광사업실무는 관광총국이 맡고 있으며 그아래 여행알선업을 전담하는 조선국제여행사와 청년여행사 조교여행사를 두고 있으나 조선국제여행사가 모든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서 입국심사 외국관광객에 대한 입국심사는 외교부의 통제 아래 실시되며 실무를 맡고있는 조선 국제여행사에서 외국관광객으로부터 신청서를 받아 1차심사한 후 외교부의 2차심사를 거친다.문제가 없을 경우 해외공관을 통해 비자를 발급해 주고 있다. 북한과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의 사람들이 북한을 여행하고자 할 때에는 국경검문소에서 비자를 발급해주며 이 경우에도 조선국제여행사로부터 미리 승인을 얻어야 한다. 북한은 90년도부터 관광객 1인당 미화50∼1백달러의 입국세를 징수,이를 주요 관광외화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해외에 소개되고 있는 북한의 관광호텔은 22개이며 수용능력은 8천실 정도로 추정된다.특급호텔로는 고려호텔(5백실)과 현재 건설중인 유경호텔(3천실·미준공),국제호텔을 들 수 있는데 모두 평양에 위치해 있다.이외에 향산호텔(묘향산),금강산호텔(금강산)등 1∼2급 호텔을 전국의 관광명소에 세워놓았다. 북한의 관광자원은 대략 6가지로 분류된다. 김일성­김정일찬양 및 정치선전용 관광코스로는 김일성생가인 만경대,보천보,왕재산,백두산 밀영,삼지연등에 있는 항일투쟁기념물(혁명박물관·동상·전적지등)및 서해갑문(혁명치적물)등이 있으며 북한에서 가장 중시되는 관광자원이다.최근에는 2월16일로 50회 생일을 맞는 김정일의 이름을 딴 「김정일화」온실까지도 그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외 사찰·성문 등 유물·유적을 일컫는 문화사적지와 대안중기계공장·청산리 협동농장 등 산업시설이 있으며 백두산·칠보산·묘향산·금강산 등 7개 명산의 명승지와 모란봉·백령굴등 60개 지정명승지·복장노루·풍산개(견)등 30여종의 천연기념물을 관광자원으로 지정,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관광개발사업 노력과 관광자원이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에도 불구,북한의 관광사업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북한이 군사지역,주요공업지대,생활이 낙후된 지역 등 전체 면적의 40%정도를 외국인 출입 제한구역으로 설정해 놓고 있는데다 자동차로 여행할 수 있는 구간도 6개 도로망에 한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같은 규제와 엄격한 주민통제등이 완화되지 않는한 북한의 「관광입국」꿈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잇단 탈당·시위… 흔들리는 민주호/공천몸살로 어수선한 야당

    ◎노 의원 탈당선언에 DJ측 “바라던 일”/총선대책 당회의가 「계파싸움터」 돌변 민주당이 14대 공천후유증으로 극심한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승환 전국회부의장이 9일 공천에 불만을 품고 탈당을 발표한데 이어 공천에서 떨어진 조윤형국회부의장도 같은 현역의원 6명과 함께 탈당,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나서 이해찬의원 재공천으로 수습되는 듯하던 당내 공천후유증이 재연되고 있다. ○계파대변에만 골몰 ○…공천자 임명식을 치른뒤 공천후유증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민주당은 10일 상오 국회에서 최고위원회를 열었으나 어수선한 분위기. 이날 국회 조윤형국회부의장실에서는 조부의장·손주항(전주 완산)·정웅(광주 북구)·박형오(신안)·이형배(전국구)·조희철의원(전국구)등 6명의 현역의원이 회동,예상했던대로 민주당 탈당을 결정,총선체제를 다짐하기 위한 원래의 회의자리가 무색. 최고위원회에서는 초반에 아직 확정되지 않은 총선일정에 대해 『이는 정부·여당이 정치적 불안을 남북문제와 연결,총선시기를 유동적으로 남겨둔 처사』라면서 『4월 하순이 옳다고 본다』는 의견 등이 제시돼 일견 대여공세로 순항하는 듯하다 결국 이기택공동대표 거취문제와 이해찬의원 복당후 공천방침에서 설왕설래. 이와함께 노승환의원도 당에 불만을 토로하며 탈당의도를 밝혔다는 악재가 더해진 당내분위기는 이정표마저 잃은 듯한 분위기. 이때부터 최고위원회의를 중심으로 국회에 모인 민주당의 각 의원 및 당직자들은 사무실 곳곳에 모여 각자의 입장과 견해를 나누거나 구수모임을 갖는 등 회의장밖 분위기는 「계파대변장」으로 돌변. ○“조영모개식” 맹공 ○…조윤형국회부의장을 비롯한 6명의 의원이 탈당하고 노승환의원 역시 탈당의사를 밝힌데 대해 동교동측근들은 오히려 반색하는 표정을 나타내 총선체제 출발부터 계파간의 알력이 노골적으로 표출. 조부의장등 6명이 탈당한데 대해 이들은 『당연한 일 아니냐』며 즉답하는가 하면 조승형 김대중대표비서실장은 『조부의장의 공천탈락은 「정발연」활동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당선가능성이 없기 때문이었다』며 다른 공천탈락자에게는 언급하지 않던 노골적인 표현으로 흠집. 노의원 탈당표명에 대해서는 『바라던 일』이라고 말해 떠난 것이 오히려 후련하다는 식의 반응. 또 이해찬의원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조실장은 『이의원을 재공천하면 내가 탈당할 것』이라면서 『당지도부가 해당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조령모개식으로 바꾼다면 이 당에 더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의원 공천보류를 둘러싼 평민계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 이에대해 노무현대변인은 사견임을 전제로 『그렇다면 조실장이 탈당하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대응. ○탈당자 더 늘어날 듯 ○…조윤형국회부의장이 이날 손주환·정웅·박형오·이형배·조희철의원 등과 함께 탈당하고 노승환의원 역시 탈당의사를 밝힘으로써 민주당의 현역의원 탈당자 수는 더욱 늘어날 분위기. 박종태의원(광주서을)도 이와는 별도로 이날 『파행으로 치닫는 민주당과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민헌연소속 당원들과 탈당하기로 했으며 이미 공천에서 탈락한 이재근(나주)이돈만(광양·동광양)의원등 호남출신의원도 무소속출마를 위해 탈당할 예정. 여기에다 김득수·이찬구의원 등을 합치면 이번 공천후유증으로 인한 현역의원탈당자는 모두 12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 대표 거취에 이견 ○…총선체제 출범을 위한 이날 민주당최고위원회에서 그동안 계속 추측돼 오던 이기택공동대표의 전국구출마설이 제기되자 이대표는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전국구 출마설은 전혀 나의 의지와는 다른 것이며 지역선거구를 계속 고수하겠다는게 내 입장』이라고 단언. 회의에서는 조순형최고위원이 『전국구 후보선출문제도 민주적인 원칙과 절차에 따라 당의 공식기구를 통해 다루는 것이 옳지 않는가』라고 이의를 제기했는데 이를 받아 김대중대표는 『당무위가 공천자를 심사하고 최고위가 심의해 두 대표가 결정하도록된 당헌에 따르면 될 것』이라고 말해 이대표전국구출마는 이미 상당한 논의가 된 것임을 시사. 이어 이날 낮12시 63빌딩에서는 이대표를 제외한 모든 최고위원들이 모여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오찬간담회를 개최. 이 자리에 참석했던 허경만의원은 『이대표를 전국구에 출마하도록 권유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해 조만간 이대표의 거취문제가 매듭될 것임을 시사.
  • 민자,내일 공천자대회/민주는 오늘 30개지역 추가 인선

    민자당은 공천작업이 마무리됨에 따라 공천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중이며 본격적인 총선채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자당은 7일 상오 청와대에서 노태우대통령주재로 공천장 수여식을 갖고 하오에는 중앙정치교육원에서 공천자연수회를 통해 총선에서의 조직및 선거전략·홍보계획 등을 시달한다. 또 10일부터 지구당위원장이 교체된 전국 38곳과 신설 및 사고지구당 17곳 등 전국 55개 지구당의 개편 및 창당대회를 갖는다. 김영삼대표는 오는 12일 대구 동갑 지구당창당대회(위원장 김복동)에 직접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부산 경남 등 전국 각지의 창당·개편대회에 참석,총선승리를 다짐할 계획이다. 박태준최고위원은 14일 대구 수성갑 창당대회(위원장 박철언)에 참석하는 것을 비롯,대구 경기 호남지역 등의 대회에,김종필최고위원은 대전과 충·남북지역에 대회에 참석한다. 한편 민주당은 지난 제1차 공천에서 제외된 59개 지역구중 서울 종로등 30개 지역의 공천자를 6일 발표할 예정이다. 민주당의 김대중·이기택대표는 5일 상·하오 두차례의 회동을 갖고 현역의원 공천보류 9개지역 및 23개 경합지역의 인선작업을 계속했다. 이날 회동에서 김·이대표는 신민계가 강력히 교체를 요구한 조윤형국회부의장과 민주계가 요구한 김봉욱의원을 공천탈락시키고 김봉호·김 현·양성우의원 등은 구제키로 했으며 이해찬의원은 공천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합지역중 서울은 민주계측에서는 김현규(마포을)김희완(송파갑)박계동(강서갑),신민계에서는 김수일(영등포을)정진길(강동을)씨 등이 확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정교한 묘사에 치중/미술(북한문화실상:3)

    ◎민족형식에 혁명이념 담은 「조선화」 주류/전통적 수묵담채서 벗어나 강렬한 채색/서양화 위축… 판화·조각·선전화등 선동기능 강조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치밀한 전통기법의 북한미술은 정교한 묘사에 의존하여 재현적 양식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 예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은 조선화에 대한 양식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조선화는 북한측의 사전적 풀이에 따르면 『오랜 세월을 두고 조선인민의 생활과 사상,감정을 반영하고 인민의 창조적 재능에 의해 창조 발전된 전통적인 민족회화』이다. 1966년 국가미술전람회(북한의 부정기적인 최대 규모의 종합미술전)에서 『우리의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혁명적 미술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 한마디로 조선화는 일약 북한 미술의 가장 비중있는 장르가 됐다.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비과학적인 것」으로 취급,제대로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던 조선화는 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선명성과 간결성으로 대변되는 화법이 정식화되면서 독자적 영역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통적 수묵기법에서 벗어나 채색이 강조되는 것이 북한의 현대 조선화인데 이른바 「힘있고 아름답고 고상하되 생동성과 형상의 진실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조형적 특징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뚜렷한 선과 산뜻한 색조로 경쾌한 화면효과를 추구하면서 칙칙한 무채색 계열의 물감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마티에르(질감효과)기법도 배제한다. 그림내용면에서는 『인간의 성격을 개성적으로 보이게 하고 심리를 깊이있게 파고드는 데에 작용하며 인물의 운동을 단순한 인체상의 움직임으로써가 아니라 피가 뛰고 살아 움직이는 산 동작으로 보여주고 주위환경이나 자연지물도 화폭위에 펼쳐진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실경을 감상하는 듯한 감정을 자아 내도록 하는데 이바지한다』는 것으로 되어있다. 대표적인 조선화로 평가되는 작품은 「몸소 기관총을 잡으시고」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락동강 할아버지」 「남강마을의 녀성들」 「남진하는 길에서」 「강철의 전사들」 등으로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는것 들이다. 조선화와 또다른 측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출판화이다. 주체사상의 고양을 위해 주체미술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70년대에 들어 쓰임새가 커진 출판화는 판화·포스터·삽화를 일컫는 개념이다. 이중 판화의 경우 근로자들이 직접 작품제작에 참여하는 집체화의 인민예술로 크게 부각되고 있으며 목판화 기법은 놀랄 정도로 발달됐다. 반면 북한미술속의 유화(서양화)는 조선화와 출판화에 밀려 위축되어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체제 순응적이며 관제적 미술에 그치고 있다. 풍경화 정물화 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것들이 작가의 창조성을 결여하고 있다. 북한의 조각은 작품의 추상성이나 형식위주의 경향을 떠나 인물표현에 큰 비중을 두는 게 특징이다. 특히 주인공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주어진 생활의 미적 본질을 나타내고 인간의 성격을 구체적이며 역사적으로 반영하는데 맞춰져 있다. 북한조각을 대표하는 것들은 대규모 집체작품인 「만수대 대기념비」 「천리마 동상」 등인데 간결하고도 치밀한 기법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평이다. 북한 미술에는 또 한가지 특이한 형태로 선전화가 있다. 장르에 관계없이 선전뿐아니라 선동의 강력한 힘을 가진 독특한 미술형식으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관한 내용 ▲당의 정책과 요구를 반영한 작품 등이 주류를 이룬다. 한편 북한의 모든 작가는 「조선미술가 동맹」의 회원으로 등록돼 있으며 등록회원은 그곳에서 월급을 받고 일정량의 작품을 제작,제출하며 산업현장에서 미술관계 일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미술 40년사에서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인물은 북한 최대 걸작품인 「보천보의 횃불」을 그린 정관철(1983년 사망)로 꼽힌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독특한 교조적 아카데미즘 미술로 변질된 북한미술에서 개인전이나 남한에서 통용되는 「현대미술」의 개념 또는 새로운 예술의 창조적 시도,혹은 실험행위 등은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북한미술의 중요한 변화로 국제적인 미술조류를 의식하고 현대적이며 과학기술 문명과 관련된 작품이 증가한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어쨌든 북한미술이 통제되고 획일화된 상태에서도 작가 개개인의 기량이 중요시되고 그에 따른 훈련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그리고 예술의 성과를 공동체의 삶과 역사에서 취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는 관점에서 그 가치를 새롭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 겉도는 환경교육… 체계화 시급/환경처 분석

    ◎241개 대학중 교양강좌 4곳뿐/초·중·고교,38개 과목 1백권에 분산/전담교사 없고 교재도 “학교당 1권”/“독립과목 지정… 교재등 개선 시급”/전문가 우리나라 학교환경교육이 학년간에 연계성이 부족하고 실천보다는 원론적인 내용에 치우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학년마다 여러개과목에 환경관련내용이 분산돼 있고 교재개발과 보급이 미흡한데다 전담환경교사도 거의 없어 전반적인 환경교육개편이 시급한 실정이다. 26일 환경처에 따르면 현재 국민학교는 국어 사회등 6개과목 26권에,중학교는 과학등 10개과목 29권에,고등학교는 한국지리등 무려 22개과목45권에 「환경」내용이 분산,체계적인 교육이 어렵다는 것이다. 환경처가 지난 6개월동안 조사한「초·중·고 교과서에 반영된 환경교육현황조사」에서는 또 학년별로 난이도가 뒤바뀌고 학년간 중복되는 내용이 많은데다 생활쓰레기·자동차공해문제등 환경오염원인이나 오염원별 설명이 소홀히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환경처가 전문대학이상 전국 2백41개대학의 교양강좌에 환경강좌를 개설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번조사결과 서울대 사범대등 불과 4개학교에서만 이 강좌가 개설된것으로 밝혀져 환경교육에 대한 질적개선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우수교사 확보를 위해 41개교원연수원에도 같은 요청을 했으나 이가운데 9개교원연수원에서만 관련 강좌를 개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는 또 환경교육정책을 담당하고있는 환경처에 교육전담기구가 없으며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고 교육부도 전담부서없이 일부 사회·과학과의 편수관이 담당하는 것도 환경교육이 겉도는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환경처의 경우 환경교육을 맡고있는 홍보지도과의 연간예산이 5억원정도에 그쳐 지난 86년부터 교육개발원이 개발한 국민학교용 환경교과서인 「사람과 환경」 중학교용 「인간과 환경」 고교용 「생존과 환경」과 각각의 교사지침서는 전국의 각 학교당 1∼2권정도만 배부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교육개발원 최석진수석연구원(47)은 『지금이라도 의무교육과정에 환경과목을 독립과목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그러나 환경교육에 대한 우리나라 교사들의 이해가 부족하고 교육부등에 전담부서가 없는 등 환경교육을 제대로 시킬수 있는 뒷받침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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