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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티즌 칼럼] 수억원대의 화장실이라니

    10년 전과 비교하여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하게 변화한 것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없이 화장실을 든다. 아직 미흡한 곳이 남아 있긴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역,공공시설 어디를 가봐도 몰라보게 바뀐 모습에 내 스스로가 긍지를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겐 화장실에 얽힌 추억이 있다.90년대 초 국제업무를담당할 때 미국 자매도시 시장 일행과 경주를 가기 위해서울역을 찾은 적이 있다. 그런데 역사 화장실에 들어간 이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모두 돌아 나왔다.악취가 심하고 불결해 도저히 일을 못 보겠다고 해서 결국 일행은 1시간여를 참다 기차에 올라서야일을 보았다. 그런데 이런 화장실의 부끄러운 모습이 몰라보게 변했다. 화장실 환경과 위생이 개선된 속도는,주먹구구의 변태 경영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우리경제와, 발전가능성을 기대하기 힘든 이전투구의 정치현실과 비교해 보면 가히 혁명적 개선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민간단체가 98년부터 화장실 문화개선사업을 벌여 화장실의 위생과 환경 개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단체의 평가결과 아직도 경주를 비롯한 중요 유적지와관광지, 버스터미널의 화장실은 개선이 시급할 정도로 불량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돼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시설주체의 각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범국민적인 화장실문화 개선운동에 재를 뿌리는몇몇 지방자치단체의 ‘황당한 사업내용'을 보면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전북의 한 시는 유원지에 평당 600만원 이상의 초호화 화장실을 신축했고 경기도의 일부 자치단체는 수억원 대의아방궁 화장실을 건립해 시민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또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화장실 환경개선이 이슈로 떠오르자 공부하는 화장실,화장실 놀이공간 등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억지 사업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정책오류는 화장실문화 개선운동이 지향하는 목적을잘못 이해한 ‘목적과 수단의 가치전도', 사치를 숭상하는천박한 ‘천민자본주의',절차와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실적지상주의' 사고에서 비롯된 해프닝이 아닐 수없다. 이대로 가다간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황금화장실',‘다이아몬드 화장실’,‘화장실 카페'까지 등장하지 않을까걱정된다.깨끗한 화장실 만들기가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시설만 갖춘다고 이루어진다면 세계 경제규모로 볼 때 우리나라 화장실은 이미 모두 바꿨을 것이다. 화장실 문화는 시설,관리,이용자의 의식이 삼위일체가 될때 비로소 자리잡을 수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이러한‘엽기적’ 화장실 정책은 ‘전시행정'의 표본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할 일은 호화시설이 아닌 깨끗한 시설설치와 지속적 관리,시민의식 개선운동 바로 그것이다.더 이상 서민들과 화장실을 욕되게 하는 일은 중단되어야 한다. 김광남 안양의왕경실련 지방자치위 korea58@netian.com
  • 시민들 심규철의원 망언 비난 봇물

    한나라당 심규철(沈揆喆·충북 보은옥천영동)의원이 지난16일 국회 문광위 전체회의에서 “(친여 신문인) 대한매일과 또하나의 신문이 (정권을 향해) 처첩간의 사랑싸움을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일반 시민과 네티즌 사이에 비난 여론이 거세다. 국민의 대표로서 입에 담지 못할 표현을 써가며,특정 신문을 악의적으로 왜곡,비난한 점은 ‘소신’으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이다.‘민주화를 위한변호사의 모임’(민변) 대외협력간사 출신의 초선인데다당 청년위원장을 맡고 있는 등 그의 이력을 감안할 때도지극히 실망스럽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衆論)이다. ◆들끓는 네티즌 심 의원의 발언 이후 개인 홈페이지(www. shim114.co.kr) 자유게시판에는 네티즌의 항의성 글이 수십건씩 쏟아지고 있다.대다수 네티즌은 심 의원이 민의의전당인 국회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성숙한 토론문화를 결여한 채,왜곡된 언론관을 여과없이 표출한 것을 질타하고 사과를 요구했다.‘신정동 사는 주부’라고 밝힌 한네티즌은 “두 아이 돌보며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도 언론개혁이라는 대세에 공감하고 있는데,어떻게 그런 천박한표현으로 언론개혁을 왜곡하느냐.현실 인식 수준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영동 사람’이라는 네티즌은 “당신이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당신이 불법으로 사전선거운동을 한 것처럼 나도 당신을 우리 지역에서 몰아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분개하는 글을 올렸다. ‘새강자’,‘조중동 반대’라는 네티즌은 각각 “기존인물과는 다르게 개혁성을 강조하라고 초선을 뽑았는데 앞잡이 노릇을 하다니…”,“조·중·동에게 예쁘게 보이려고견마지로(犬馬之勞)하는 모습이 추악하다”고 질타했다. ◆발언 관련 의혹 정치권 일각에서는 심 의원이 일부 인사나 세력으로부터 모종의 언질을 받고 국회에서 질의하는‘총대’를 메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발언 당일 오전 갑작스럽게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사전보도자료에서 “대한매일보다 H신문이 더 공격적이다.조강지처가 조강지첩에게 이길 수 있겠느냐”고 적었다가,실제발언에서 이 부분을 빠뜨린 대목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 심 의원의 보좌관은 “보도자료가 급히 나가는 바람에 심 의원이 사전에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대한광장] 영도다리를 아시나요

    얼마전 어느 여성작가의 소설에서 부산을 매우 시끄럽고 살벌한 동네로 그려 놓은 걸 보고 기분이 언짢았던 적이 있다. 낯선 도시에서 받는 첫인상은 좋고나쁨의 차원이 아니라 색다른 것에 대한 외경심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산이 도시 전체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부산의 열악한 도로율이나,싸우는 말투와 정감을 표현하는 말투가 잘 구분되지 않는 억센 사투리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부산을, 바다 산 강을 품은 삼포지향이라고들 하지만 그런자연조건이 도시 이미지를 서정적으로 가꾸는 데 큰 도움이된 것 같지는 않다.그보다는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로서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 경험과,국제항구와 산업도시로서의활달한 분위기가 주로 각인되어 있다.그런 조건들 때문에 제대로 도시계획을 세울 겨를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솟아오른도시여서 겉핥기로 보면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느낌을 가질만도 하다. 최근 옛시청 자리에 들어설 부산 제 2롯데월드의 예상되는교통량 때문에 영도다리를 허물고 새 다리를 놓겠다는 부산시의 계획이 발표된 바 있다.거기에 일부 시민단체들이 반발해 주목을 끄는데,개항 백년의 우리나라 제2도시에 걸맞은전통적인 상징물들이 하나하나 자취를 감추어 버린 그간의사정을 감안하면 그들의 주장은 충분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고풍스러운 르네상스식 벽돌건물인 부산역사를 화재로 잃은점이나 적벽돌과 화강암 위로 솟은 뾰족탑이 멋지게 어울린부산세관,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한 벽산상회,영주동 조흥은행과 같이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들이 무차별 철거된 기억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그런 것들을 재고할만한여유가 그동안 어디 있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진정한유산을 남겨두지 못한 개발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황량한마천루만 솟은 도시에서 신세대의 피폐해진 인간성과 몰역사성을 비판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기나 하겠는가. 영도다리가 가진 가치 역시 그런 역사성과 무관하지 않다.1934년 11월에 완공을 본 이 다리는 오전과 오후에 각각 세번씩 육중한 몸을 들어올려 큰 선박들을 지나가게 했다.개통식때는 이 진풍경을 보기 위해 6만명의 구경꾼들이 전국에서몰려들었다고 하는데 그당시 부산 인구가 18만명이었던 점을감안하면 큰 관심이 모아진 셈이다. 또 동란 당시 피란길에오른 사람들은 가족 친지와 이별하며 너나없이 영도다리에서만날 것을 약속했고 타향살이의 막막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투신자살이 이어져 다리 양쪽에는 ‘조금 기다려라’는팻말과 함께 감시 경관이 고정 배치되기도 했다. 동란 직후유행한 여러 편의 유행가 속에서도 영도다리는 자주 등장하는데 ‘굳세어라 금순아’도 그중 하나다.‘일가친척 없는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이네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지만/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 위에초생달만 외로이 떴다’는 가사가 그 시절의 애환과 시련을잘 전해준다. 자갈치시장과 남항동 태종대에 이르는 해변의 낭만을 구가해온 전후세대에게도 영도다리의 의미는 각별하다.거친 해양성 기질을 다독이고 보듬어내는 하나의 가교로서 영도다리가준 서정적 이미지는 단순한 교량의 가치를 뛰어넘는 것이었다.소주 몇 잔에 거나해진 기분으로이 다리 난간을 따라 걷다 보면 답답하고 울적한 심사가 말끔히 가시곤 했다. 오래된 다리가 주는 위안과 사랑의 감정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애수’‘퐁네프의 연인들’과 같은 영화에서도아름답게 표현되는데 영화도시 부산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꾸며서 관광상품으로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아울러 도개교 방식을 복원하여 보행자 전용의 문화 풍물거리를 조성하고 아래로는 해저터널을 뚫어 교통난을 해결하면 후대에 물려줄값진 유산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부산의 문화계 인사와 시민들이 다수 참여한 ‘영도다리를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youngbr)이 펼치는영도다리 보존운동은, 더 이상 부산이 천박한 도시로 대접받지 않기를 바라는 가치 있고 중요한 지역사랑 운동이다.식민지의 수난과 동란의 상처,산업화의 음양을 고스란히 안은 영도다리 관련 자료를 모아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열 준비를 하는 이들의 움직임에 전국적인 관심이 모아졌으면 한다. 최영철 시인
  • [네티즌 칼럼] 서태지를 내버려 둬라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한민국 황색저널리즘의 집중 타깃이 된사람,가수 서태지 씨.빨간색 레게퍼머 머리와 비주류 느낌을 담은 원색 의상,그 옷에 찍힌 주류 의류업계의 브랜드. 그런 서태지의 외형만 봐도 지식인들은 비난의 칼날을 세우며,무국적의 ‘신비주의’라고 서슴치 않고 공박한다. 서태지가 앨범을 내자 대한민국 모든 문화비평가가 한번쯤 입에 올렸다.젊은 서태지 팬들은 서태지를 ‘신화’로 평가한다.하지만 일부에서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통렬히 비난한다.과연 날카롭게 대치한 이 서태지신드롬의 실체는 무엇일까. 지금 대중음악에 영향력을 미치는 10·20대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강하다.서태지의 등장은,개인주의적인 신세대가 본격적으로 문화의주체세력이 됐음을 의미한다. 즉 서태지 모습 하나하나에 새로운 세대의 성장점이 자리잡은 것이다.그 당시 주류 대중음악 시장은 의미적인 측면에서는 사랑·이별 등의 신파 정서가 범람하는 상태였고,형식 면에서는 댄스곡이 대부분이었다. 서태지는 이런 것들과 분명한 선을 긋고 새로운 정서를 보여주었다. 서태지가 신화를 이룩한 데는 ‘현실참여적’인 운동가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서태지는 공연윤리위원회와 교육제도로 대표되는 기성세대나 제도에 대한 훈계와 저항을 담았다.우리사회에서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던 이러한 비주류적인 내용을 가지고 그는 주류의 한가운데에 당당히 선 것이다. 그는 가장 비주류적인 이미지로 주류문화의 흐름을 역류시켰다.하지만 그의 인기도 상업적 시스템에 기반한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실제로 취입곡의 절반은 스타 이미지를 강하게 자극하는 소녀적 취향의 곡으로 구성됐고,다른 어떤 매체보다 TV를 홍보의 주대상으로 삼았다. 현재 문제가 된 것은,대중가요계가 서태지의 놀라운 전위적 곡들과형식은 외면하고 그 마케팅 방식만을 확대재생산해 결국 천박한 상업주의가 득세했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서태지가 연루됐음을 밝히려 하지만 서태지가 그 본령에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황색저널리즘의 공격적이고도 선정적인기사들에 책임이 있다. 단순히 돈만을노려 마구잡이로 선정적인 이슈를 생산하고,무조건 ‘신비주의’라고 뭉뚱그려 비판하는 등 졸속한 언어를 남발한다.이런작태는 서태지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할 수많은 논의를 파괴하고,대중음악의 천박함을 오히려 부채질한다. 일부 권위주의적인 평단이 걸고 넘어지는 대표적인 문제는 “음악적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라는 점이다.맞는 말이다. 서태지가 들고나온 핌프록은 대중에게 생소할 따름이지 새롭지는 않다.그런데 그게 왜 문제되는가.이러한 평단의 권위주의적 의식은 문화제국주의라는 말까지 들먹거리는 데로 끝없이 나아가고 있다. 서태지가 일종의 문화권력인 것은 사실이다.그렇다고 그 문화권력이 서태지가 감당해야 할 비판 자체는 아니다.최근 불붙은 ‘안티 서태지’운동 역시 진정한 방향성을 상실했다고 보인다.비주류든 주류든궁극적으로 봐야할 문제는 무엇인가.바로 기형적인 대중음악 시장의구조이다. 하지만 황색저널리즘은 서태지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봐야할 문제들은 넘어가고 한 개인을 헐뜯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정말 안타까울뿐이다. 영웅은 “영웅이란 존재는 더는 없어”라고 노래하고,노래를 듣는 이들은 영웅을 원하니 말이다.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하는 것은 대중 음악시장의 기형적 구조와 황색 언론이다.제발 영웅을 그냥 내버려 두라. [윤 상 필 웹메거진 모돌넷 기자]freeyouth@korea.com
  • 金槿泰최고위원 ‘大權도전’ 시사

    민주당 김근태(金槿泰)최고위원이 19일 발행된 모 월간지 12월호와의인터뷰에서 “(당내 대선 후보 경선 출마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며 “정치적으로 큰일을 할 수 있는 리더십으로 발전하도록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해 대권에 도전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정부의 리더십과 관련,“각 집단의 이해를 조정하는 능력이 부족하고,정권 교체 이후를 담당하는 민주적 리더십에 공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 “정기국회 뒤 당정에 일대 쇄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여권의 전면적인 지도체제 개편을 요구했다. 또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영남 후보론’에 대해 “영남 출신 후보를 내세우면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정치공학적 계산도 일리는 있다”면서 “그러나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지역주의에 질질 끌려간다면 서글프고 천박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최고위원은 “국민의 지지가 있는데도 대통령 후보가 안되면 모두 불행해질 것”이라는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의 발언을 겨냥,“‘나 아니면 불행해진다’는 인식은 정당민주주의 핵심을 심각하게 부정하는 것으로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과 당원에 대한 협박으로 들릴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 [김삼웅 칼럼] 우리사회 ‘천민성’ 어찌할까

    막스 베버가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란 용어를 쓸 때 염두에 둔 것은 유럽경제사에서 상인·금융업자로서 특이한 지위를 차지해온 유대인들의 생활상이었다.천민(Pariah)이란 인도 카스트제도의가장 밑바닥층인데 유대인들은 종교적 특성으로 외부에 대해 스스로카스트화(化)하고 대부분 상업과 금융업에만 종사했다. 중세 봉건제에서 상업과 고리대금에 사회적 제한이 가해질 때 이들은 거꾸로 여기에 기생하면서 이득을 취했다. 베버는 근대자본주의이전의 영리활동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모두 유대인의 상업활동과공통되는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았다.한마디로 천민자본주의란 비합리적이며 종교나 도덕상 비천하게 여겼던 생산활동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지금 우리는 후기자본주의 과정을 넘고 있다.거듭되는 기업도산과금융사고,재벌기업의 타락상에도 불구하고 ‘생산활동’을 중심으로보면 천민자본주의 시대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천민성이 갈수록 심화되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반세기 전만 해도 유교원리주의 사회로서 인성과 사회윤리가 지나칠 만큼 도덕적이었던 사회가 왜 이렇게 천박해졌을까.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개인은 도덕적일 수가 있지만 사회는 결코 그와 같은 개인적 차원의 도덕적일수가 없다”고 주장했다.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은 도덕적인데 사회는도덕적이지 못한 것인가,아니면 그 반대현상인가. 우리 사회의 천민성은 심각하다.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를 일구고 독재의 압제에서 민주화를 이루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나라인데도 사회 심층에는 비민주성과 집단이기주의 그리고 부패와 타락의 탁류가도도하다. 정실공천과 인물보다 지역성 투표,정의감을 상실한 정치의 무원칙과지역주의가 천민성의 원천이다.여당의 무능과 야당의 근거없는 폭로정치는 개혁과 경제회생의 발목을 잡고 검찰과 공직자들의 무소신과정치권 눈치보기는 국가기강을 흔들고 있다. 재벌의 후계싸움,주가조작,변칙상속,뇌물공여,탈세,기술개발 뒷전등 타락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호화판 생활을 하는, 재벌의 도덕성이 시궁창에 빠진 지 오래이다. 몸을 던져 개혁을 추진하고 분규를 해결하려는 공직자가 없다.“나는 나의 관을 메고 부패추방과 개혁현장에 나간다(附棺臨戰)”는 중국 주룽지 총리와 같은 각료가 보이지 않는다.부작용을 우려해 개혁을 외면하고 책임 회피용 정책에만 매달린다. 지식인·언론계의 천민성은 가관이다.일류대학이란 서울대 교수는모교 출신만 골라 뽑고 연고주의와 동종교배를 통해 끼리끼리 놀고나눠 먹는다.언론계는 천박한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로 여론을 왜곡하고 편협한 지역주의와 극단적 반공논리에 매몰돼 합리적 비판기능을상실했다. 누가 봐도 떳떳하지 못한 정치인과 구시대 공작 전문가들이 정치공작 차원에서 루머를 퍼뜨리고 다시 시중의 ‘설(說)’을 바탕으로 정치 이슈화하고 비슷한 형편의 언론이 이를 증폭시킨다.실체가 드러나지 않으면 ‘국민정서’를 내세워 공격하고 검찰이 숨기고 있다고 매도한다.이리하여 국가 공권력의 권위가 실추되고 국민은 허탈감에 빠져 분노한다. 사회 지도층만 타락하고 부패한 것이 아니다.일반 국민도 별로 다르지 않다.최근 물의를 빚은 러브호텔로 상징되는 성타락 현상이나 걸핏하면 갈라서는 이혼율,제몫찾기에 환자를 외면한 의사,교실보다 광장을 택한 전교조 교사,국가의 명예가 걸린 국제행사에 맞춰 파업한대한항공조종사,부패타락한 경영진과 회사가 망해도 구조조정을 거부하는 극렬노조의 모럴 헤저드(부도덕)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천민성을 대변한다. 마을마다 우뚝 솟은 교회와 성당과 사찰은 우리나라가 종교국가임을보여준다.그러나 종교지도자 중에는 사회정의나 사회봉사보다 교세확장과 기복신앙에 빠지고 더러는 세습까지 자행한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배우면서 청교도정신은 익히지 못하고 민주제도는 실천하면서 민주정신은 배우지 못했다.‘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과자본주의 정신’을 쓴 막스 베버는 △합리적 생활이론 △투철한 직업관 △금욕주의 훈련이 현대 자본주의 정신의 핵심이라 했다. ■김삼웅 주필kimsu@
  • [외언내언] 자선 문화

    [발로 차지는 말아라/네가 언제 남을 위해 그렇게 타오른 적이 있었더냐]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라는 제목의 시다.각박한 세태에 부대끼며 힘겹게 사는 이웃에 대해 뜨거운 가슴을 가지라고 호소하고있다. 만추(晩秋)인데도 어느새 스산한 초겨울이 느껴지는 요즈음이다.성장률이나 무역수지 등 경제지표는 그리 나쁘지 않은데 서민들이 실제로 느끼는 체감 경기지수는 무척 가라앉아 있다고 한다.출근길 지하보도에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잠이 든 노숙자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이럴 때일수록 이웃의 삶에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이라도 많았으면 좋겠다.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같다.서울 강남의 고급 유흥업소는 여전히 불야성이라는데… 지난 한해 미국에서 시민들이 이웃과 공공을 위해 내놓은 기부금 총액이 무려 224조여원(1,900억 달러)에 이른다고 외신은 전한다.미국‘자선신문’이 낸 최근 통계다.기부금 수혜 상위 순위에 구세군,YMCA,적십자사,암재단 등이 오른 걸 보면 빈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주로 쓰여졌음직하다.미국은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허술하지만 우리보다 사회안전망이 잘 짜인 나라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00개 자선단체들의 모금총액이 1998년보다 13%나 늘었다니 부러운 일이다.이는 미국 경제가 전례없는 호황인데다 증권시장의 활황세에 힘입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틀린 얘긴 아니지만 기부문화는 경기 사이클과 무관하게 미국 중산층 이상 계층에 뿌리내린 전통이다.흔히 미국사회의 천박한 상업주의와 높은 범죄율을 비웃는다.그러나 번 만큼 베푸는 자선문화가 있기에 미국사회가 그나름대로 건강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게 아닐까.철강왕 카네기의 이름은 신화로서만이 아니라 3,000개의 구조물로 남아있다.그는 “상속은 자식들의 재능과 에너지를 망친다”며 도서관과문화시설을 짓는데 전재산을 털었다.동물 사회를 연구한 ‘비대칭 이론’이라는 한 연구결과가 있다.즉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동물들의경우 적절한 나눔이 없으면 그 사회가 깨진다”는 것이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물론 극빈자 등 약자는 일차적으로 국가적 시스템으로보호해야 한다.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이를 표방했으나 하향평준화로 치달리다 대부분 붕괴하고 말았지 않은가. 우리처럼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일수록 자선문화가 정착되지않으면 안된다. 미국인의 유전인자가 특별해 자선문화가 자리잡힌 것은 아니다.상류층부터 일정 부분 베풀지 않으면 디디고 선 사회가 발밑부터 무너질수 있다는 두려움도 미국 기부문화의 근저에 깔려 있지 않나 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
  • [대한시론] 아버지가 무너지고 있다

    나야 강남에 가야 할 일이 흔한 것도 아니고 백화점 갈 일도 없지만요즘처럼 험한 세상 살아가자면 가끔 강남에 있는 N-아무개라는 백화점이 생각날 때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화점의 소유자는 김 아무개라는 분이었는데 최근의 신문을 보니 백화점이 부도가 났고 그 회장도 구속됐다는 보도를 보면서 마음이 착잡해지면서 더 생각이 난다. 내가 일면식도 없는 그 분을 못 잊는 이유인즉 이러하다. 요즘같은 온라인 전자시대에 그 김회장이라는 분은 회사가 망할 때까지 현찰을 봉투에 넣어 봉급을 주었다고 한다. 은행이 불평하고 직원들이 불평했지만 회장은 막무가내였다.봉급을현금으로 주는 이유인즉,봉급이란 가장이 현찰로 받아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을 앞에 앉혀놓고 “이것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다”하고 내놓으면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나눠줄 때 가장의 권위가 서는것이지,봉급이 통째로 온라인으로 아내의 통장으로 들어가고 아침마다 용돈을 타 쓰니 아내와 자식들 앞에 가장으로서 권위가 떨어지고결과적으로 사회가 이토록 어른이 없는사회로 타락했다는 것이다. 그같은 그의 전근대적인 경영방식 때문에 회사가 망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 뜻만은 가상해서 나는 가끔 그 분을 회상한다. 아버지의 권위가 실추된 것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IMF이후 남자들의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어 보인다. 이제 우리 가정에는 근엄한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졌으며,시건방진 서구문물이 들어온 후 꼴같잖은 남녀평등은 부부무별(夫婦無別)의 사회를 만들었다. 연속극에 나오는 여자들은 딱 부러지게 남편들에게 반말이고,남편이아내에게 ”야! 너!”하는 것도 다반사가 됐다.우리는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며 TV앞에서 시시덕거리지만,그게 상것들이나 하는 짓이지 어디 어른 모시고 사는 양가댁에서 생각할 수나 있는 일인가? 뿐만 아니라 여자도 돈 좀 만지게 되니까 남편을 우습게 알아,생계가 걱정이 되어 이혼을 못하던 것은 옛날 얘기요,걸핏하면 “당신 없이도 살 수 있다”고 기고만장하다. 직장에 나가면 비정한 생존경쟁과 비인격적인 상사 밑에서 남자들의모습은 무척이나 왜소해지고 움츠러들어 있다. 새벽에 나가 자정에 돌아오니 부모 자식간에 마주앉아 오순도순 얘기할 기회는커녕 눈 한번 맞춰 볼 기회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른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이러한 환경에서자란 요즘 아이들이 교수의 머리채를 붙잡고 차 안 비켜 주었다고 뺨을 때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자식 키우는 일은 뜻대로 안된다는 푸념을 우리는 흔히 듣는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오늘날 이 사회가 이토록 어지러워진것은 나와 내 자식들을 포함해서 일차적으로 아버지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진 탓이다. 학교를 탓할 것도 없고 사회 풍조를 비난할 것도 없다. 집안에서 보고 배운 것이라고는 부부간의 천박한 언행,의롭지 못한돈벌이와 그 씀씀이,그리고 사랑보다는 증오뿐이라면 그 자녀들이 사회에 나와서 무엇이 되고 어떻게 살아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한국인에게 아버지는 축소된 신(miniaturized God)이며 신은 확대된아버지(magnified father)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무너지는 모습은 우상이 무너지는 것과 꼭같은 충격과 좌절을 준다.그러니 지금 이 사회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정치안정,경제발전,노사문제,통일논의보다 먼저 잃어버린 아버지의 권위를 찾고 어른이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부모를 통해 세상을 알며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런데 그 근원이 이미 나약해지고,부패하고,움츠러들어 있다면 이사회의 모든 것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아버지들이여,어깨를 펴자.그리고 자식과 아내 앞에한 아버지로서,한 남편으로서 떳떳이,그리고 당당하게 서자. ◆ 건국대 대학원장·정치학 신복룡
  • [매체비평] 재미없는 방송이 ‘좋은 방송’이다

    방송프로그램에서 선정성과 폭력성을 추방하겠다는 강한 정책적 의지를 표명한 문화관광부 장관의 발언을 두고 말이 많았다.방송인들의 반발은 그렇다치더라도,많은 신문들도 장관의 발언을 월권이라고 지적했다.몇몇 신문은 시리즈까지 만들어 방송의 선정성을 공격했으나 그런 신문보도 자체가 선정적인 경우도 있었다.예전부터 신문,특히 스포츠신문의 연예·오락면이나 만화는 방송의 선정성과 폭력성을 선도,조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방송정책은 일차적으로 방송위원회가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포괄적인 문화정책을 관장하는 주무부처 장관이 방송의 문제를 지적했다 해서 문제삼을 수는 없다.방송위원회가 출범한지 6개월이 지나도록유명무실한 반면 방송의 상황은 심각하니 정부라도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이 많다.장관의 선정·폭력프로그램 추방발언에 대하여 방송사 종사자들의 냉엄한 자기반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대신 정치권력의 외압에 의한 방송의 자율성 침해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었다.그러한 항변이 일리가 있긴 하지만 정확한 인식은 아니다. 실로 우리나라의 방송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표현방법이음란하고 폭력적인 내용이 비일비재하다.음란·폭력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오락이나 드라마는 이미 사회적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심지어 뉴스까지도선정과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음란을 고발하는 프로그램도 음란하고,폭력을 고발하는 프로그램도 폭력적이고 오히려 폭력을 가르치기까지 한다. 오늘날 방송의 음란과 폭력은 광고수입 극대화를 위한 프로그램전략이라고보기도 어려울 정도다.그저 말초적인 자극 그 자체를 추구하고,누가 더 자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지를 경쟁하는 ‘천박한’ 수준이다.표현방식은 예술이나 문화라는 어휘로 도저히 포괄할 수 없는 정도이다.이처럼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방송은 국민 전체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사회 전체를 불건전하게 만들며,특히 아직 취약한 상태에 있는 청소년의 건전한 발달에 악영향을 끼친다.방송의 질적 개선을 위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선정·폭력프로그램의 추방을위해 방송위원회 강화를 통한 심의강화,사내심의실의 적정한 운영,프로그램의 공익성을 기준으로 한 광고판매 등 몇가지 개선방안이 제시되었다.내부 심의의 강화는 가장 바람직스럽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정능력을 상실해가는 경향이 있다.방송위원회의 심의는 흔히사후약방문에 머물고,제재도 종이호랑이에 그치고 만다. 한편 프로그램의 공익성을 기준으로 광고판매를 차별화하는 방안도 시장원리에 어긋날 가능성이 높다.방송사들 사이의 시청률 경쟁을 중지한다는 신사협정은 반드시 깨지게 되어 있다.방송은 프로그램을 통해 확보한 시청자를광고주에게 판매하며,따라서 시청자가 많이 확보되면 당연히 광고요금도 올라가게 마련이다.물꼬를 억지로 돌려놓으면 무리가 온다.결국 해결방법은 제도와 인간에 기대는 수 밖에 없다. 제도적으로는 방송위원회가 편성기준을 만들어 6시부터 9시 사이에 가족시청시간대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이 시간대만이라도 가족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만을 방송하고,음란·폭력프로그램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막아야만 한다.더욱 중요한 것은 방송인들 스스로 반성하고,프로그램 제작철학을바꾸는 일이다.방송은 방송인의 것이 아니다.방송은 시민의 것이다.방송에서편집과 편성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은 시민에 봉사할 때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공중파방송을 가지고 있다.그런데 그재미를 위하여 주로 선정,퇴폐,음란,폭력을 일삼는 것이 문제다.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설정한 높은 수준의 윤리기준에 입각하여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진지하고 정교한 프로그램 제작이 필요하다.이같은 자정의지는부끄러운 방송을 좋은 방송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기반이다. 방송을 재미없게 만들자.재미없는 것도 방송이다. 류한호 광주대 교수·언론학
  • 김소연, MBC ‘이브의 모든 것’ 시선 집중

    “사람들 마음 한 구석에는 악이 있어요.어떤 상황에서 못되게 굴고 싶지만차마 못할 뿐이에요.그 마음을 제가 연기하는 거예요.가끔 통쾌하고 짜릿한기분이 들어요.시청자들도 뜨끔할 걸요.그러면서도 ‘쟤,너무 싫어’하는 그런 역이에요”지난 26일부터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에 출연하는 탤런트 김소연의 설명이다.그가 맡은 허영미는 가출한 엄마와 주정뱅이 아버지를가졌다. 불우한 환경이지만 이를 악물고 공부,대학에 진학했고 여기서 선미(채림)를 만난다.선미가 사랑하는 우진(한재석)과 서로 사랑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사랑도 하나의 디딤돌에 불과하다.영미는 메인뉴스 앵커가 되기 위해방송사 이사인 형철(장동건)을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김소연은 지난해 4월 KBS-2TV 미니시리즈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에서도 채림과 호흡을 맞췄다.‘우리는∼’에서는 채림을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역이었다.이번에는 채림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 역할이 바뀐 셈이다.“두번 다 대립관계이긴 하지만 채림언니가 잘해줘서 부담은없어요”언니? 채림은 김소연보다 1살 위다.거기다 ‘키도 1㎝나 큰 언니’란다.김소연은 방송활동 5년간 성숙한 여인의 역을 주로 맡아와 그를 훨씬 어른스럽게느끼게 한다. ‘우리는∼’을 마지막으로 김소연은 1년간 활동을 쉬었다. 그동안 훌쩍 컸다. “쉬는 동안 케이블TV에서 제가 출연했던 드라마를 재방하길래 다 봤죠.‘순풍산부인과’‘도시남녀’‘승부사’ 등이요.근데 나만 동떨어져서 따로 연기하고 있더군요.밥먹는 장면에서도 카메라를 의식해 머리를 만지고 있고…. 그저 예쁘게 보이는 것만 생각한 거죠.”이번 배역을 맡으면서 김소연은 ‘변해야 한다’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연기를 잘해야 예뻐보인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촬영이 시작되면카메라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상대 배역만 보인다. 이런 그의 노력에 일단은 합격점이 주어졌다.지난 24일 시사회에서 탤런트박원숙은 “소연이가 뜰 것 같아”라고 덕담을 해줬다.극에서 그동안 자신이살아왔던 세계로부터 일탈을 꿈꾸며 “상복 벗으면 팬티까지 새 것으로 갈아입을거야! 여기서의 기억은 손톱까지 다 잘라버릴거야!”라는 천박한 대사를 뱉어내며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 김소연은 참 많이 변했다. 전경하기자 lark3@
  • ‘안데르센의 절규’

    ‘안데르센의 절규’(안나 니즈미 지음 황소연 옮김·좋은책만들기)는 불행했던 천재 작가의 슬픈 광기를 파헤친 공포 판타지이다. ‘인어공주’나 ‘미운 오리새끼’ 등을 써,전세계 어린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은 가난한 구두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정신병으로 죽었고,아버지 보다 열다섯살이나 나이가 많은어머니는 천박한 여자였다.안데르센은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네살부터떠돌이 생활을 하며 몇 번인가 절망의 늪에 빠졌었다. 이 책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안데르센의 내면 세계를 좆아 간다.그는 자신의 과거를 노출시키지 않으려 애썼으며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못하게 왜곡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여느 동화와는 다르게 무겁다.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는 사람 곁에 다가가지만 결혼할 수 없거나(인어공주),결혼하기는 하지만 곧죽음을 당한다(얼음공주).마음 속의 할머니 외에는 아무도 돌봐 줄 사람이없고(성냥팔이 소녀),최선의 노력을다하지만 불태워지고 만다(외다리 장난감 병정). 다행히 후원자를 만나 동화작가로 성공하지만 그의 비극은 무의식적인 고통과 실패를 거듭했던 자신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원작과 달리 ‘인어공주’의 마지막 부분을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왕자와 그 신부를 인어공주가 살해하는 것으로 바꾸어 안데르센의속마음을 노출시킨다.물론 그 의식의 흐름 속에는 삶에 대한 분노와 세상에대한 억울함이 배어 있다. 저자는 안데르센 동화와 개인의 삶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제한된 능력을 지닌 천재의 고독한 삶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이 책은 한 인간의 고통이 어떻게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그 흐름을 따라 다시 한번 안데르센동화 속으로 흥미로운 여행을 떠나게 한다. 김명승기자 mskim@
  • [데스크칼럼] 시민의 힘으로

    중앙선관위가 총선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한 경실련에 대해 선거법중 사전운동을 금지한 조항에 위배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자 시민사회단체가 일제히잘못된 판단이라고 반발하며 예정대로 부적격자 낙천·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섰다.이같은 선관위의 유권해석은 오히려 시민단체들에게 운동의 논리를 강화하고 전의를 불태우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총선시민연대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내려지기에 앞서 “15일 여야간에 합의한 선거법은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당리당략과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한 야합의 산물”이라면서 개악안을 폐지하지않을 경우 국민불복종운동을 통해 부적격 정치인 청산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여야 정치권은 관련 조항의 삭제,혹은 개정 입장표명 등 다소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거기에는 당리당략적 계산과 함정,알맹이 없는 대책을 내놓을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같다.전열을 흐트러뜨리기 위한 수사(修辭)가 아닌가도 냉철한눈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선거법개정운동과 부적격자 낙천·낙선운동에 500∼600개 시민사회단체가참여하고,17일에는 전국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4개 교수단체도 이들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섰다.전국적으로 시민단체에 성금을 보내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으며,익명의 독지가가 수천만원대의 성금을 기탁하기까지 했다.이로써 이 운동은 국민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며 선거혁명을 이루려는 시대적 조류가 되고있는 듯하다. 이 운동은 단순한 선거법 87조 개폐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그동안 국민을조롱하고 유린한,그리고 정치인들만의 유희거리로 전락한 정치문화와 타락한 정치인 청산을 위한 국민저항운동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다시말해 오늘의 정치를 보는 사회적 태도가 마침내 폭발한 것이며,그 대세는 이제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툭하면 지역감정 조장,폭로 저질발언,명분도 불분명한 제몫챙기기,천박한 정쟁. 이런 행태들에 의해 우리는 사이비 민주주의에 오염,중독되고 말았다.그러나 중독되어 폐인이 되기 직전에 벌떡 일어나 자기 자리를 찾고자 울부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절대빈곤을 해결하고 어느 정도 살만큼 됐을 때는 당연히 삶의 질을 따지게 된다.마찬가지로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주주의 자체만을 갈망했으나그것이 어느 정도 달성됐을 때는 품위있고 격조있는,그래서 지적(知的)인 민주주의를 갈망하게 마련이다.그런데 현실의 정치는 절망감만 증폭시킨다.사람들의 심성을 황폐화하고 지저분한 쓰레기장에서 생선회를 먹는 기분만 들게 한다.혐오와 냉소,비탄과 좌절,울분과 허무주의.이런 모습으로 우리 정치를 바라보아왔던 것이 현실이다. 더러운 정치마당을 제공하기 위해 80년의 5·18과 87년의 6·10항쟁이 들불처럼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한동안 이들 정치인의 현란한 수사에 국민들도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나 돌아서 보니 기만과 허구,제몫 챙기기에 선수가 된그들만의 잔치라는 것을 알고 다시금 6·10항쟁의 정신으로 돌아간 것이 작금의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청산운동이라고 본다.그래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선거법87조 폐지운동은 민주화운동의 연장이라고 평가한다.이들에대한 전폭적인 성원은 올바른 민주화를 이끌어낸다는 희망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기득권 세력은 늘 실정법,준법을 강조한다.실정법,준법의 온실에서 구린내나는 몸을 치장하고 호의호식하기가 편한 탓이다.그러나 그 실정법,준법은시민적 컨센서스가 바탕에 깔려있을 때 설득력이 있고,지킬 가치가 있다.라인홀트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사회불의는 일반적으로 믿고있는 바와 같이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권고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갈등은 불가피하다.이러한 갈등상황에서는 힘에 대해 힘으로 맞서는 수밖에없다”고 했다.세계사를 통해 볼 때 사회변혁운동은 민중의 분노가 폭발해역사적 전기를 마련했다.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다만 한마디 덧붙인다면시민사화단체는 건강한 도덕성과 불퇴전의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자기희생적 이타(利他)행위에 대해서도 교활하고 노회한 기득세력은 사소한 허점만 보이면 결코 놓치지 않고 그것이 핵심이자 본질인 양 호도하며 물고늘어지기 때문이다. 이계홍 편집부국장 honglee@
  • 장신구에 대한 고정관념 허물기「장신구의 역사…」

    목걸이 브로치 반지 팔찌 등 장신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이들 장신구를 생각하면 먼저 화려한 보석과 금붙이 등 귀금속이 떠오른다.이는 전통적인 관념이다.동서양 할 것 없이 장신구는 원시시대에는 부적의 의미가 강했다.당시는 조개껍질,청동 등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회체계가 자리잡으면서 점차 권위와 부 등의 상징으로 활용됐다. 수메르의 금꽃 머리장식(기원전 25세기),미노스기의 벌모양 금 펜던트(기원전 17세기)에서 부터 스웨덴의 루비 브로치(14세기),영국왕실의 에메랄드 귀고리(16세기),러시아의 다이아몬드 부케형 장신구(18세기)까지 근대이전의모든 것이 전부 그렇다.이들 장신구는 금과 다이아몬드 진주 등 희귀한 보석으로 자연과 동식물 등을 본따 신비하고도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같은 장신구의 개념이 현대에 들어 급변하고 있다.최근 서구 미술 패션계에서는 플라스틱,종이,교통표지판 등 실생활에서 쓰이는 소재를 사용해 평등성을 강조한다. 1986년 네덜란드의 게이스 바케르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목걸이는장신구를신체의상에 어울리는,개성을 표출하며 소품화에 성공했으며 넬 린센은 87년종이팔찌를 선보였다.이후 모면사를 매듭지은 목걸이,나일론사 목걸이,재활용품을 이용한 장신구 등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지난 93년 미국의 로이는교통표지판을 잘라내 다이아몬드와 루비를 세팅,‘미국의 꿈’팔찌를 ‘창조’해내기도 했다. 이런 새로운 개념의 장신구들은 기존의 호화찬란한 장신구 개념에 익숙한우리나라의 대부분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이제는 장신구가 단순한 몸치장이나 부 및 권위의 상징에서 벗어나 행위예술 디자인 조각의 단계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모험’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던진다.모피코트의 구입여부를 둘러싸고 빚어진 옷로비사건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라스포사와 미소니 등 고급옷 상표가 여전히 인기를 끄는 요즘 이런 서구사회의 경향은 상큼하다.아울러 우리 예술계의 창조적 노력을 촉구한다. 최근 나온 ‘장신구의 역사,고대에서 현대까지’(클레어 필립스 지음,시공사 펴냄)는 이같은 장신구의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알려준다.특히 과거와현대적인 것을 대비할 수 있어,많은 사람들에게 기존 관념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다만 흑백화보가 많아 아쉬움을 준다. 이 책은 밀레니엄시대의 장신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책을 본 한 주부는 “천박한 배금주의에서 비롯된 사치병을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라면서 “장신구가 개성,인성과 조화를 이루는 패션임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또 다른 여성은 “장신구 개념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장신구가 위화감을 조성하는 소품이 아니라,반짝이는 아이디어의 소산임을 깨닫게 해준다”고 강조한다.장신구 등 패션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곁에 두고 자주 읽어도 질리지않을 책이다.값 1만2,000원. 박재범기자 jaebum@
  • [시론] 갈등 증폭의 지식인군

    권위는 정권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다.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경직사회,나아가 모든 구조가 교조화할 수 있다.반면 지나치게 물렁하면 질서 유지가 어렵다.법치든 인치든 거기에는 합당한 권위가 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최근 민노총 시위에서 경찰이 시위대에 얻어맞고,또 민노총 간부가 조폐창 파업유도 의혹사건을 맡은 특별검사에게 항의하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국회에서도 국회의원 사이에 험한 말과 행동들이 다반사로 연출되고 있다고 해서 법의 권위,정권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울분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새삼스럽게 운위할 것도 없이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자기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해서 험악한 행동을 보이고 물리적으로 상대방을 제어하겠다는 태도야말로 비열한 폭력배의 행동에 다름이 아니다.이러한 양태는 바로 동물사회의 모습이고,그나마 그것이 한때 불가피하게 통용되었던 것은 군부 폭압정권 시절,그런 행동이 아니고는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기가 어려웠던 때였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분명다르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실천하는정부에 대한 애정이 따라야 할 시점이다.그래서 이성적 논리적 대응이 터를잡아야 할 때인 것이다.폭정 아래서 신음하던 때 도리없이 폭력적으로 나온것에 대한 향수로 다시금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은 스스로 정권교체를 이룬업적을 부정하는 일이 된다. 그런데 근래 일부 식자층과 유력언론이 정권의권위에 흠집을 내는 언동을 서슴지 않는다.그 비판의 강도는 거의 유린에 가깝다.뚜렷한 대안도 없이 비난으로 지면을 도배질한다.고매한 논리를 편다는 논객 역시 사안마다 패대기치면서 기쁨을 맛보는 듯하다.멀지도 않은 지난날 민주투사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다 감옥에 가고 고문당하고 이름없는 풀꽃처럼 끝내 스러져갈 때 입을 닫고 있던 세력들이 민주주의 정체를 신봉하고실천하는 과정에서 다소 속도가 느린 것을 약체정부로 오인,잔인할 정도로윽박지르고 깔아뭉갠다.강자에게는 한없이 나약하고 약자에게는 오만하게 으스대는 꼴을 보노라면 과연 우리가 지성사회를 살고 있는가를 반문케 한다. 현정권과 계층적 기반,연고가 별로 없는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서있으면 서있다고 비난하고 걸어가면 걸어간다고 공격하는 모습은 결코 지적(知的) 풍토가 아니다.그런데 이런 비난을 하는 세력이 이른바 유력언론의 대표적 논객이라는 사람들이다.이들은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현상을 가지고 사악한 논리를 전개하며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정부의 진의를 굴절,왜곡시킨다.마구 할퀴고 짓밟으며 상처와 흠집 투성이의 그로기 직전으로 몰아버린다.그러면서도언론탄압을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문다,그 반사이익은 누가 보는가는 묻지 않아도 자명하다. 사안의 구조적인 내용을 살피기보다 잘려진 도마뱀의 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지는 것같은 모습을 보노라면 이 나라 언론이 과연 특별검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고 비판하는 어느 노동단체 간부의 그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도 묻게 한다. 여론을 과점하고 있다는 힘의 논리로 무책임할 정도로 대안도 별로 없이 정권의 권위를 짓이기는 것이야말로 더 악질적인 폭력이 아니고 무엇인가.그러면서도 이들 언론은 또 현정권을 두고 언론탄압을 하는정권이라고 이죽거린다.마음에 안든다고 못된 계모처럼 행동하는 언론과 식자층이 더 정권의 권위에 흠집을 내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주체가 아닌가를 냉철하게 돌아보아야한다. 센세이셔널리즘과 시니시즘.이것으로 장사를 해먹는 시대는 지났다.벌써부터 국민은 이같은 언론의 천박한 장삿속에 이골이 나있다.지쳐있다. 밀레니엄시대,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있다고 논객들은 너도나도 요란하게 외치고 있다.그러나 낡은 틀에 얽매여 조건반사적으로 비판하고 보자는 이 나라 대표적 논객에게 이 말은 되돌려져야 한다.갈등 마찰 대립 충돌 따위 비생산적 언어들을 양산하며 밥을 벌어먹는 그릇된 구조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그래야 오도된 정치문화 토론문화를 바로잡아 나갈 수가 있다.오늘의 정치가 괜찮다는 것은 아니지만,그러나 정치가 나쁘기 때문에신문지면이 추하게 일그러진다는 논리는 허구다.언론과 지식인이 극단의 사익주의(私益主義)에 매몰되고 타락했기 때문에 건강한 정치문화 토론문화가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국민은 여전히 피곤한 것이다. [李啓弘 편집부국장]
  • [외언내언] 금강산관광 ‘사죄문’

    정부합동조사반은 29일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閔泳美)씨 억류사건에 대한조사결과를 발표했다.합동조사반은 이번 억류사건이 “민씨가 무심코 던진발언을 북측이 문제삼아 의도적인 귀순공작으로 몰고 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민씨는 억류 당시 북측 감시원에게 접근해 먼저 말을 걸었으며 “통일이 돼 우리가 금강산에 오듯이 선생님도 남한에 와서 살았으면 좋겠다.귀순자 전철우와 김용이 TV프로에도 나오고 잘 산다”고 발언한 것이 빌미가 되어 억류됐다고 한다.북측이 민씨의 우발적인 발언을 일방적으로 확대해석해일어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또 민씨는 억류된 상태에서 북측의 회유와 강요를 견디다 못해 자포자기 심정으로 북측 감시원의 귀순을 유도했다는 내용의 사죄문을 북측이 써온 대로베껴 제출한 뒤 석방됐다. 북측의 이번 민씨에 대한 신변억류와 범죄조작은위계에 의한 도발행위라는 점에서 규탄받아 마땅하다.금강산관광사업이 중단된 데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북측은 이번 억류사건을 통해 남측에 책임전가는 물론 서해교전사태에 대한 보복성 의미를 부각시키려는 저의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베이징(北京) 남북차관급회담에서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술책도 숨어 있다. 북측의 숨은 의도가 무엇이든 금강산관광사업에 물의가 빚어지고 중단사태까지 야기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민씨 억류사건을 계기로 북한은 재발방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금강산관광 뱃길이 조속히 재개될수 있도록 책임있는 조치도 취해야 한다.그리고 이번 관광객 억류사건과 사죄문 파문을 계기로 우리 국민들의 선진관광의식과 질서문화의 함양이 절실히 요청된다.이번 억류사건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민씨가 먼저 귀순자문제를 거론해 사건의 발단이 됐다.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불필요한 말을 해서 억류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그래서 민씨에 대한 비난과 함께관광중단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하다. 필자가 지난 3월 금강산관광을 할 때 무척 당혹했던 것은 우리 관광객들의무분별한 언행이었다.북한 감시원을 만날 때마다 “밥은 먹었느냐”며 김밥을 꺼내주는동정과 편견을 보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거지취급 하지 말라는 감시원들의 냉소를 지울 수가 없다.이러한 무분별한 행동이 결국 이번억류사태까지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이러한 천박한 관광의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은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금강산관광 사죄문이 주는 교훈의 하나로 ‘선진관광의식의 제고(提高)’를 꼽을 수있을 것 같다. 장청수 논설위원 csj@
  • 美대학교수 혹평“엘리자베스 英여왕 천박한 영어 쓴다”

    런던 DPA 연합 미국의 한 대학교수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구사하는 영어가 표준영어와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문법도 정확하지 않다고 혹평. 영국 옵서버지는 7일자에서‘윌슨 폴렛의 현대 미국영어 용법’ 개정판 저자인 에릭 웬즈버그의 말을 인용,여왕이 문법이 틀린 영어를 써왔으며,‘천박한’ 영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여왕의 발언들을 분석한 웬즈버그는 여왕이 구사하는 영어는 ‘잘 봐줘야구어체 영어고,최악의 경우 명백히 틀린 것’이라고 비판하며 주격(We)과 목적격(Us)을 혼동해서 쓴 성탄절 메시지를 대표적 실례로 지적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영어학자인 케빈 보팅 순수영어회 전(前) 회장은 여왕이영어를 사용하면서 끔찍한 실수를 해왔다는 웬즈버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런던 대학의 존 웰스 교수(음성학)는 “언어란 항상 변하는 것인 만큼 우리는 여왕이 그 변화를 따라가는 것에 대해 오히려 박수를 보내야 한다”면서 “미국의 소위 지성인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간섭해서는 안될것”이라고 여왕을 옹호했다.
  • 프리뷰-내일 방영 K2TV TV문학관 ‘새’

    KBS2TV ‘TV문학관’이 1년남짓만에 부활해 30일 밤 10시10분 오정희의 원작소설 ‘새’(극본 박남준 연출 장형일)를 내보낸다. 꿈은 찬란하지만 현실은 처절한 남매의 이야기이다.아빠의 매질에 못이겨달아난 엄마,돌봐주던 외할머니마저 쓰러지자 친척집을 전전하던 남매는 다시 아버지를 만나 바다가 내려보이는 달동네의 단칸 셋방으로 이사온다.그곳에서는 천박한 새엄마 등 인간군상이 남매를 기다리고 있다.살인자인 포장마차 주인 정씨,동성연애중인 여성 부부,새를 키우는 트럭운전수 이씨,밤무대에서 트럼펫을 부는 김씨와 휠체어의 아내…. 새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아버지도 떠나지만 동심을 잃어버린 소녀는 아버지를 붙잡지 않는다.이 소녀는 동생의 엄마이자 선생님.또 동생을 의지하지만 결국 남동생마저 죽고 만다.소녀는 동생이 죽자 “새가 되어 날아다니고 싶다”던 동생의 꿈을 이뤄주려 바닷가로 나가고,누나는 진짜 새가 된 동생의 환영을 만난다. 꿈이란 무엇인가.소중하고 아름다운 삶의 에너지이지만 실제로 꿈을 이루기에는 현실의 벽은너무 높고 가파르다.가난과 고독,소외… 이 드라마는 원작처럼 어둡고 절망적이다.어린 소녀의 무표정한 얼굴이 세상살이의 무게를 새삼 깨닫게 한다.장수혜와 유종원의 아역연기는 화면을 생동감있게 살려낸다.또 인간군상을 연기한 할머니 김지영과 정종준,정동환,방은희도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TV드라마에서는 금기시된 남장여자로나와 동성부부의 남편역을 해낸 연운경의 몸을 던진 연기가 두드러진다. “새가 되고 싶다”는 구체화되지못한 꿈으로 버티지만 갈수록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어린 남매의 삶은 꿈을 잃어버린 오늘의 어른들을 울린다.부산에서 촬영한 어두운 도시와 바다의 영상,희끄무레하게 변해가는 하늘을 담은 화면은 남매의 불행한 삶을 그들의 것으로만 한정짓지 않는다.인생은 슬픔일까.주체할 수 없이 가벼운 여느 드라마와는 다르지만 너무 무겁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등신불’‘바닷가 소년’‘열녀문’‘불새’‘인간과 전장’ 등 옛 ‘TV문학관’을 연출한 장형일감독의 작품이다. 허남주기자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22)-창작과 비평사

    진시황은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파묻었다.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앗은 자들은 늘 그러했다.저항을 부르고 수많은 ‘금지’를 낳았다.우리 현대사에도 ‘지상의 양식’을 지향하다 ‘잉크를 묻힌 죽은 물체’가 돼버린 옥고들이 많다. 시집 ‘신동엽전집’(75),‘국토’(조태일),‘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82)‘대설 남(南)’(〃,82),‘8억인과의 대화’(리영희,77)…등도 그 대열에있다.당국의 붉은 딱지가 붙은 이 책들은 모두 모태가 같다.69년 등록한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다. 저항의 첫 발은 약간 거슬러 올라간다.66년 서울 종로구 공평동 문우출판사에서 발행한 132면의 문예계간지 ‘창작과 비평’이 그것. ‘…대중의 소외가 혹심한 사회일수록 철저한 수준을 고수하는 소수 작가·지식인의 비중이 커지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국토분단과 기성사회의 모순을 유지함으로써만 자신의 특권을 간직할 수 있는 소수를 제한다면,적어도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잠재적으로나마 우리의 이상에 동조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창작과 비평’창간호 권두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자세’의 일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 영문학자 백낙청교수의 의도에 공감한 국악인 황병기씨 등 지인들과 문우출판사 오영근사장 등이 쌈지돈을 모았다.‘비평의 정신’을 싹틔운 주역은 백교수와 소설가 한남철,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조교 김상기,기자이던 임재경·이종구씨 등 5인이었다.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어조는 단호했다. 69년 백낙청교수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면서 염무웅교수(영남대 독문학)가 편집장으로 바통을 이어받아 암울했던 70년대를 버텼다.염교수는 ‘창비의정신’을 이렇게 말한다. “사회과학이나 현실에 발딛고 기본 민주주의 성취,실학·국학시리즈로 민족 전통의 현대적 계승과 분단 극복 지향,기층 민주주의 역량성장에 이바지등 3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학의 고유한 미적 가치를 최대로 추구하면서 이런 과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목적주의 문학이나 천박한 참여문학과는 차별성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이 시기에 발행한 ‘신동엽전집’(창비신서 10,75년)이 긴급조치 9호의 미움을 사면서 창비의 ‘화려한 금서 리스트’가 막을 연다.이어 77년에 ‘8억인과의 대화’(창비신서 18)로 편역자 리영희교수와 발행인 백낙청교수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돼 리교수는 구속되고 백교수는불구속 기소되었다. 수난속에서도 명맥은 유지하던 ‘창비’는 80년에 이르러 ‘절망적인 탄압’에 직면한다.7월말 국가보위입법회의로부터 계간 ‘창비’의 강제 폐간이라는 철퇴를 맞은 것이다. 암중모색하던 ‘창비’는 82년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창비시선 33)로 새벽을 열려고 나섰다.이화여대·연세대 앞에서 불티나게 팔리던시집은 학원사찰팀의 눈에 띄여 판매금지·압수라는 공식적인 과정을 거쳤다.“압수된 책이 작두로 잘렸다”는 ‘창비인’들의 회고는 당시 검열의 상징이다.심지어 국세청 세무사찰로 추징금 1,000만원을 부과하는 비열한 수단도 동원했다.이에 굴하지 않고 ‘대설 남’ 1권을 내놓았으나 문공부가 판매금지하고 전량을 봉인했다. 끊임없이 ‘비판의무기’를 갈던 ‘창비사’는 85년 부정기간행물(무크)로 얼굴을 달리하여 ‘창비’ 57호를 간행했다.이번에는 서울시가 불법으로 정기간행물을 냈다는 꼬투리를 잡아 ‘출판사 등록 취소’로 탄압했다. 그러나 이제 ‘창비’는 혼자가 아니었다.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중문화운동협의회 등의 항의농성 및 성명발표와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등 11개 출판사 대표의 항의성명이 이어졌고 문인·학계 인사가 중심이 돼 등록취소에 항의하는 ‘범지식인 서명운동’을 펼쳐 2,853명의 서명록을 문공부에 전달했다. 당시 발행인이었던 김윤수교수(영남대)는 “회사가 없어져 책임자로서 어깨가 무거웠다”면서 “‘창비’를 살리려고 문공부 담당국장과 10개월의 마라톤 협상에 들어갔다”고 밝힌다.그 과정에 당국은 ‘창비’ 회생조건으로 백교수가 손을 떼고 이름도 바꾸라고 강요했다. 어렵사리 사태를 수습한 김윤수 발행인은 86년 8월5일 ‘창작사’로 신규등록했다.87년 2월6일 부정기간행물 형태로 ‘창비 1987’(통권 58호)을 간행했다.그러나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는 말이 있듯 ‘창작사’는 87년 2월17일 ‘창작과 비평사’라는 출판사 이름을 되찾았고 다음해 계간 ‘창비’도 다시 제 얼굴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평탄한 앞날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89년 겨울호에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실어 다시 수난시대로 접어든다.이시영주간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다. 이시영 상임고문은 “11월 23일 퇴근 길에 남산으로 끌려갔는데 안기부는그동안 저를 통해 최대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문단에 대한 총점검을 하려고했다”면서 “‘창비’ 매호를 낱낱이 분석하고 필자들 성향까지 꿰뚫고 있었다”라고 전한다. 숨가쁜 ‘창비’의 발자취에는 일그러진 현대사의 모습이 오롯이 녹아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기름지게 한 거름이기도 하다.정해렴 김윤수 고세현씨등으로 이어지는 발행인을 중심으로 현대사의 주역들을 일궈냈다. 고은 조태일 김지하 신경림 이성부 이시형 김용택 곽재구 김남주 고정희 김명수 등이 시로 독재자에‘침을 뱉었다’.이문구 황석영 현기영 방영웅 김한수 등이 소설이라는 쟁기로 척박한 땅에서 리얼리즘의 열매를 일구었다.송건호 리영희 박현채 강만길씨 등은 우상을 깨고 이성을 외쳤다.‘창비’는이들의 ‘사상의 거처(居處)’였다. 이제 ‘창비’의 나이 33세.‘잔치를 끝내지 않으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지난 96년 ‘영원한 창비인’ 백낙청교수(하버드대 교환교수로 재미)가 창비 30년을 정리하면서 밝힌 입장에서 ‘창비’의 앞날은 여전히 튼실할 것임을 예고한다. “정말 중요한 일은 시장경제의 논리와 ‘창비’ 고유의 지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혹은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지하는 일이겠습니다”이종수기자 vielee@
  • SBS’임백천의 원더풀 투나잇’ 시청률의식 실망스런 첫 출발

    SBS가 ‘데이트라인’의 후속으로 지난 4일 밤 첫방송한 ‘임백천의 원더풀 투나잇’의 출발이 실망스럽다.주병진의 중도하차 이후 3주만에 선보인 이프로는 한주간 화제가 된 뉴스를 누가(WHO) 무엇을(WHAT) 왜(WHY) 등으로 나눠 집중분석하는 시사정보토크쇼.‘데이트라인’에 비해 시사정보의 성격을줄이고 토크쇼에 무게를 실었다고는 하나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첫회는 기대 이하 였다. 제작진은 이날 화제의 인물을 다루는 ‘WHO’코너에 속칭 ‘O양 비디오’의 남자상대 H씨와의 인터뷰를 내보냈다.이미 세간에 알려질대로 알려진 사안을 본인과의 전격인터뷰라는 ‘포장’아래 새삼 거론한 것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려는 의도 외에 다른 의미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더욱이 제작진은시청자들이 이 부분을 놓칠까봐 다른 내용이 나가는 동안 ‘친절하게도’ 몇차례나 자막을 내보냈다.한 네티즌(ID 달새울음)은 “일단락돼가는 O양문제를 또다시 방송에서 다룬 것은 시청률을 올리려는 얕은 수법”이라고 꼬집었다. MC 임백천의 진행도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를 생방송으로 이끌어갈 만한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방송에 부적절한 단어를 함부로 사용해 방송인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의심하게 했다.허정무 감독부부를 앞에 두고 ‘개판’‘우라질’등의 욕설을 내뱉는 장면은 불쾌감을 넘어 시청자들을 아연실색케 했다.방송진행에 좀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시사정보토크쇼를 표방한 이 프로가 또하나의 천박한 오락토크쇼로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 ‘99학년도 고려대 논술고사 문제

    다음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뽑은 글이다.이글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논제:예시문에 나타난 사제와 갈릴레이의 견해를 밝히고,이러한 견해가 현대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작성요령 1)논제와 성명은 쓰지 말 것. 2)분량은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안팎(321100자)이 되게 할 것. (갈릴레이와 사제는 교황청의 지원 아래 천문학을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이다.목성의 위성과 금성의 위상에 관한 새로운 지식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당시의 통념을 깨뜨리는 것이었다)사제:갈릴레이 선생님,사흘밤 동안 저는 한잠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제가 읽어온 교황청의 법령과 제 눈으로 본 목성의 위성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오늘 아침 일찍 미사를 드리고 선생님을 방문하기로 결심했지요.갈릴레이:목성에는 위성이 없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인가요?사제:아닙니다.저는 법령의 지혜를 알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법령은 억제를모르는 지나친 연구 안에 도사린,인류에 대한위험을 드러내 보여주었지요.그래서 저는 천문학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그러나 한 천문학자로 하여금 특정한 이론을 확장하는 일에서 등을 돌리게 만든 동기만은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갈릴레이:그런 동기야 나도 익히 알고 있다고 말씀드려야겠소.사제:선생님의 노여움은 이해합니다.교회의 저 엄청난 권력수단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 것이겠죠.갈릴레이:맘 놓고 고문기구라고 말하시오.사제:그렇지만 저는 다른 이유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죄송하지만 제 개인 얘기를 해야겠습니다.저는 캄파냐에 있는 농부의 아들로 자라났지요.그 곳농부들은 소박한 사람들입니다.그들은 올리브 나무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지만 그 밖에는 아는 게 별로 없지요.금성의 위성을 관측하면서 저는 누이동생들이랑 난롯가에 앉아 치즈 요리를 먹는 저의 부모님을 눈앞에 떠올렸습니다.수백년 동안 연기로 새까맣게 그을린 그들 머리 위의 대들보며 밭일로 쭈글쭈글해진 그들의 손,그 손에 쥐어진 숟가락까지 똑똑히 그릴 수 있습니다.그들이 비록 복된 삶을 누리진 못하지만,그들의 불행 속에도 일정한 질서가감추어져 있습니다.땀방울을 떨어뜨리며 바구니를 끌고 돌길을 올라가는 힘,어린애를 낳는 힘,그리고 먹는 기운까지,그들은 어디서 그런 힘을 길러내는지 아십니까?땅을 볼때 해마다 새로이 푸르러지는 나무들과 작은 교회를 볼때 성경 말씀에 귀기울일 때,그들은 이 세계가 영원하고 필연적임을 느끼면서 힘을 얻습니다.배려하면서 걱정스러운 듯 보살피는 하나님의 시선이 머리 위에 머물러 있다는 확신이 그들에게 있는 겁니다.또한 그들은 세계극장이그들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어서 크든작든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만일 제가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허공에서 다른 별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한낱 작은 돌덩위 위라고,수많은 별들 중의 하나,실로 아무 것도 아닌 별 위라고 말한다면,저의 가족들은 뭐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우리를 굽어보는 눈길은 없구나’하고 그들은 말하겠지요.‘우리는 무식하고 늙고 착취당한,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인가! 주위를 도는 별을 갖지도 못하고 전혀 홀로 서 있지 못한 작은 별 위에서 비참하고 세속적인 일 외에는 아무도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부과하지 않았단 말인가! 우리의 곤궁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렇게 말하겠지요? 제가 교황청의 법령에서 일종의 어머니 같은 고귀한 긍휼을,위대한 자비심을 읽어낸연유를 이제 아시겠습니까?갈릴레이:자비심이라! 보아하니 당신은,‘그들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포도주는 떨어졌고 그들의 입술은 말랐다’ 그런데도 그들더러는 ‘신부의법의에 입맞춤이나 해라’ 이런 생각이시군요.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들에겐아무 것도 없습니까? 왜 이 땅의 질서는 텅 빈 금고(金庫)의 질서 뿐이며,이 땅의 필연성은 죽도록 일하는 것 뿐이오? 무성한 포도원 사이에서,밀밭을바로 옆에 두고서! 자비심 깊은 예수님의 대리인이 스페인과 독일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비용은 당신의 캄파냐 농부들이 치르고 있습니다.왜 그 대리인이 지구를 우주의 중심점에다 갖다놓을까요? 베드로의 교권이 지구의 중심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문제는 베드로의 교권이오.역시 당신 말도 옳아요.문제는 별들이 아니라 캄파냐의 농부들이니까.그런데 당신은 시대가 모금해 놓은 그럴 듯한 현상을 들고 내게 온 것이오.진주조개가 어떻게 진주를 만드는지 아시오? 목숨을 위협하는 병을 앓으면서 참을 수 없는 이물질,이를테면모래알 같은 것을 점액낭 속에 품고 있으면서 진주를 만드는 것이라오.진주가 형성되는 동안 진주조개는 거의 죽어간단 말입니다.빌어먹을 놈의 진주같으니라구.나는 차라리 건강한 굴조개를 택하겠어요.이것 보시오.미덕이란곤궁과 묶여있는 게 아니오.당신의 농부들이 유복하고 행복하다면,유복과 행복의 미덕을 펼칠 수 있을 것이오.피폐한 자들의 이러한 미덕은 바로 황폐한 밭에서 나오는 것이지요.나는 그런 미덕을 사양하겠소.보시오,내가 만들어낸 새로운 양수기가 농부들의 우스꽝스럽고 초인적인 고통보다는 더 많은 기적을 행할 수있단 말이오.내가 당신의 농부들을 속여야 하겠소?사제:(매우 흥분하며)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더 없이 숭고한 동기가 있습니다.그것은 불행한 자들의 영혼의 평안이지요.갈릴레이:벨라르민 추기경의 마부가 오늘 아침 선물로 여기에 갖다놓은 첼리니의 시계를 좀 보시겠소? 여보시오,예를 들어 내가 당신의 선량한 부모님께 영혼의 평안을 드리는 값으로 교황청에서는 내게 포도주를 제공하고 있어요.그것은 당신의 부모님이,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과 같은 형상대로 만들어진그 얼굴에 땀을 흘리며 짜낸 바로 그 포도주란 말이오.혹시나 내가 침묵할각오가 되어 있다면,그것은 확실히 천박한 동기 때문일거요.나 자신의 안락한 생활,박해를 받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 말이오.사제:갈릴레이 선생님,저는 성직자입니다.갈릴레이:과학자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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