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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영숙 칼럼] '리비히 법칙’에 묶인 나라

    리비히 법칙의 최소 영양소에 해당하는 국회의원들을 오는 4월 총선에서 축출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계속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기자 초년병 시절,기자라는 직업이 하이에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죽은 동물의 시체를 먹는 하이에나처럼 우울한 사건 사고로 신문이라는 밥상을 차리는 직업의 특성 때문이었다.지금도 기자들은 굵직한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날을 좋아한다.고민할 필요 없이 저절로 밥상이 차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신문 만들기가 힘들더라도 국회와 정치권 주변에서 더이상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선배, 이 나라는 참 하품이 나오는 곳이에요.글쎄 요즘 톱 기사는 모기가 많아졌다는 것이니까요.” 캐나다로 이민 간 후배가 지난여름 들려 준 이야기다.멀리 캐나다까지 갈 것 없이 국회의원의 학력 위조가 지금 톱기사가 되고 있는 이웃 일본의 언론들이 부럽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는 세번씩이나 뒷전으로 미루고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구속된 동료 의원 석방동의안을 기습처리한 다음 정략적인 청문회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국회,천문학적인 비자금으로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인 두 전직 대통령,두달만에 역시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모았다는 현직 대통령 사돈 이야기로 우리 언론은 매일 비명을 질러대는 형국이다.따라서 국가신인도 추락은 물론 국가신용등급 하락 우려까지 제기된다.정치 부패로 ‘리비히 법칙’에 묶인 나라가 돼 버린 것이다. 리비히 법칙이란 식물 생장에 필요한 여러 원소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비록 다른 원소들이 충분해도 그 식물은 부족한 원소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즉 영양소 최소량의 법칙이다.독일의 생물학자 리비히가 발견한 이 원리에 따르면 아무리 다른 좋은 영양소들이 충분히 공급된다 해도 한 부분의 영양소 공급이 부실하면 부실한 영양소만큼만 식물이 자란다.이는 높이가 서로 다른 판자를 엮어 나무 물통을 만들었을 때,물은 가장 키가 작은 판자 높이까지만 차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근 ‘의회의 리비히 법칙’이란 책을 낸 한 여성정치인은 이 법칙이 우리 국회에서 작동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조직과 체제의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조직원 가운데 가장 해악적이고 열등한 의식입니다.뛰어난 사람들은 선동하고 도모하기보다 합의하고 기다릴 줄 알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비슷하게 들떠 있는 의식들을 모아 세력을 얻고 단기간에 총력을 다합니다.그리고 많은 경우 다른 의원들은 가만히 있으면서 어부지리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이것이 의회의 파렴치한 집단이기주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국회의원들이 집단 침묵을 통해 권력과 이익을 하나하나 확보해 가면서 스스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책임을 면하려 하고,튀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꿩이 머리만 처박고 안심하고 있듯이 국민들이 모를 것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회의 행태를 이렇게 분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점잖은 것인지도 모른다.“돈되는 짓거리는 뭐든지 하고,국민들을 스트레스와 울화병으로 몰아가고,칼만 안 들었지 강도보다 더한 것들이 네가 돈을 많이 먹었니, 니가 돈을 많이 먹었니 하면서 서로 싸움이나 해 쌓고,이거 국민이 종들한테 너무 무시당하는 거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원색적인 분노가 사실 지금 국민 정서에 더 와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시적인 분노 표출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리비히 법칙의 최소 영양소에 해당하는 국회의원들을 오는 4월 총선에서 축출하고 꿩처럼 머리를 처박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각성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계속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최소 영양소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면….어쩌랴 그냥 판갈이를 할 수밖에. 임영숙 주필 ysi@˝
  • [서울광장] 집토끼부터 잡아라/우득정 논설위원

    눈에 보이지 않는 산토끼를 쫓기보다는 집토끼를 지키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새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냄비행정’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일자리야말로 최고의 복지이며,가장 효과적인 분배방식”이라고 신호탄을 쏘아올리자 각 부처가 앞다퉈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지난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실업대책을 채근하자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펼쳤던 실업대책 짜내기 홍보전을 연상시킨다.과거 실업대책 때처럼 각 부처의 일자리 창출 대책이 `중복’ ‘재탕’ `남발’을 거듭하다 보니 혼란만 가중시키는 듯한 인상이다. 최근 노사정위원회나 열린우리당이 주최한 일자리 창출 관련 토론회에서 “이렇게 한다고 일자리가 생기느냐.”는 불만이 제기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정부가 쏟아낸 일자리 대책이 6년 전의 실업대책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당장 일자리를 만들어내려면 재정을 통한 공급 확대방식이 가장 용이하다.굶주린 사람에게 한 술의 밥부터 주자는 식이다.하지만 과거 양적인 공급방식의 실업대책이 어떻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는지를 기억한다면 지금의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도 결과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당시 국민의 정부는 출범 첫해에 10조원을 실업대책에 쏟아붓는 등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투입했지만 임시직과 일용직 등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노사정위 토론회에서 김성태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지적했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산토끼를 쫓기보다는 집토끼를 지키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새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집토끼를 먼저 지켜야 할 이유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실업자 82만 5000명 가운데 75.9%인 62만 6000명이 지난 한해 동안 직장을 잃었다.직장인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52.9%가 45세 이전에,30%가 40세 이전에 직장을 떠날 것으로 보고 있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환위기 이후 20대 실업률은 이전의 평균에 비해 1.3배 증가한 반면 30대는 1.9배,40대는 1.8배,50대는 2.2배나 늘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산업공동화로 일자리 감소 위기를 겪었던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과는 달리 ‘세계 경제의 블랙홀’이라는 중국이 곁에 버티고 있다.게다가 중국 뒤에는 인구 10억명의 인도가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다.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고난도의 복합방정식에서 해법을 찾으려 해선 안 된다.오히려 핵심과제에서 공통분모만 도출하면 쉽게 첫 단추를 꿸 수 있다.먼저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의 산업구조를 어떻게 꾸려갈지 청사진부터 마련해야 한다.우리의 첨단 정보기술(IT)과 전통 제조업을 결합하는 방식이 생존 모델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일자리 창출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 노사관계에서도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조남홍 경총 부회장이 “기업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듯이 노조 역시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노사가 서로 상대를 악마로 규정하고 천사이기를 강요해서는 결코 협력적 노사관계를 이룰 수 없다.노사가 그 자체로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대화와 협력이 가능한 것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에서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존 케리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미국내 공장을 유지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물론,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응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참고할 만한 지도자의 인식이라고 판단된다. djwootk@˝
  • [자문위원 칼럼] 독자의 눈, 편집국의 눈/최광범 한국언론재단 제작팀장

    지난주 6일치 서울신문의 1면에 실린 기사는 하루 4건에서 6건꼴이었다.그러나 사고(社告)3건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하루 4건꼴이었다.6일간 전체 26건의 기사가 어떤 유형이었을까? 1면만을 본다면 하루도 우울하지 않은 날이 없다.실제로 7일자 남제주군에서 발견된 ‘구석기人 발자국화석’1건만이 ‘밝은 뉴스’였다.언론의 특성상 잘못되고 기이한 것들이 뉴스가치의 우선순위를 점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의 장전형 수석부대변인은 KBS의 매체 비평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정책대안 10개보다 의원들 간의 몸싸움에 언론은 더 관심을 갖는다.”며 “이런 보도양태에서 정책선거가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사회를 감시하는 것은 언론의 핵심기능이지만 그 방법은 부정적 비판만이 아니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의 소금역할을 하는 기사를 발굴해 보도하는 것도 중요하다.다른 신문과의 차별화에 심혈을 쏟고 있는 서울신문이 시각을 긍정적인 면에 두고 운용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6일자에서는 “홍준표 ‘盧자금 1300억 은닉’논란”이란 기사를 비중 있게 취급했다.홍준표 의원이 “당선 축하금 등 거액의 정치자금과 뇌물로 보이는 1300억원이 시중은행에 은닉돼 있다.”고 폭로한 내용이었다.이 내용은 현직 대통령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폭발력이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 예금증서가 지난해 위조로 판명된 것이라는 하나은행의 증거제시로 홍의원의 폭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났다.서울신문은 다음 날짜 사설에서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 행태를 강하게 질타했지만 정치면에는 2단 기사로 간략하게 처리했다. 이 같은 내용이 폭로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면,또 다른 취재대상인 하나은행을 중심으로 그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했어야 했다.마감시간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면 다음날 지면에라도 보다 비중 있게 다뤘어야 했다. 진실추구라는 언론고유의 사명 외에 예방 저널리즘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접대비 지출의 기록·보관을 담은 ‘접대비 업무관련성 입증에 관한 국세청장 고시’와 관련된 보도도 독자의 시각과 거리가 있었다.이 제도는 50만원 이상 접대비 지출에 대한 실명제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대부분의 신문들은 국세청의 이 같은 조치가 ‘비현실적’이라는 데 초점을 두고 보도했다.서울신문도 3일자 ‘접대비 규제 위스키 직격탄’기사에서 백화점 상품권과 주류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다른 신문의 룸살롱과 나이트클럽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는 기사에 비하면 비교적 차분하게 업계의 소식을 전했다.그러나 이 제도로 기업의 접대문화가 문화공연으로 바뀌는 등 긍정적 효과도 크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데는 미진한 점이 있었다. 상품권을 선물해야 할 곳이 있어 구매한 사람이 누구에게 줬다고 기록해 두는 것이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룸살롱이나 나이트클럽,단란주점 등 유흥업소에서 지출된 접대비용이 2002년 1조 5295억에 달했다.국내에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의 광고매출 총액이 2조 1214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그 천문학적인 액수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정상적인 급여생활자라면 자기 돈으로 룸살롱을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고급술집이나 향락업소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는 기사는 일반 독자들에겐 우울한 소식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대선 복병-부시 ‘병역기피’ 케리 ‘로비자금’

    오는 11월2일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향해 달리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과 민주당의 선두주자 존 케리 메사추세스 주지사가 하루하루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병풍에 시달리는 부시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재선을 낙관하던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상·하원 국정연설 이후 파도처럼 밀려드는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지난달 26일 중앙정보국(CIA)의 데이비드 케이 전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WMD)는 없었다.”고 폭로한 데 이어 이달 초 발표한 올해 예산안은 이라크전 비용을 제외하고도 무려 5210억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적자폭 때문에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주 들어서는 민주당으로부터 병역기피 의혹이 집중 제기되고 있다.부시 대통령이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앞선 신청자들을 제치고 텍사스 공군방위군으로 들어가면서 베트남 참전을 피했다는 것이다.또 소위로 고속 진급한 뒤 자격시험에서 전 문항의 25%밖에 맞추지 못한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도 조종사가 됐다는 것 등이다. 급기야 최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상 최저인 49%로 떨어졌고 케리 후보와의 가상대결에서도 7%나 처졌다.위기감을 느낀 부시 대통령은 8일 NBC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그동안 즐겨하지 않았던 언론접촉을 늘리기 시작했다. ●로비에 발목잡힌 케리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케리 의원도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 등 경합자들은 물론 공화당으로부터의 공격에 노출돼 있다. 경선 후보들은 케리 의원이 보험사와 건설업체로부터 로비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세계최대 보험사인 AIG가 추진하던 대규모 연방 건설공사인 ‘빅 딕(Big Dig)’ 프로젝트에 대한 의회의 예산삭감 움직임을 차단했으며 그 대가로 2001년과 2002년 선거운동 자금,출장 경비 등으로 4만 8000달러를 받았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케리 의원 선거운동본부 대변인 스테파니 커터는 “누군가 케리 의원에게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헌금했다면 그는 헛돈을 쓴 셈”이라고 반박했다.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케리 의원이 받은 로비자금이 전형적인 워싱턴의 부패 정치자금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공화당은 정보예산 삭감,세금 인상안 등에 찬성한 케리 의원의 의회표결 기록을 들추며 그가 국가안보에 관심이 없고 미국 시민의 일상사와 유리된 ‘극단적 자유주의자’라고 색깔론을 제기하고 있다. 케리 의원은 이번 주말에 열리는 미시간,워싱턴,메인 등 3개 주의 당원대회에서도 50% 안팎의 우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는 여전히 “민주당이 추구하는 이상과 정책의 소유자가 아니라 오로지 부시 대통령을 꺾기 위한 후보를 뽑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문제제기가 있다. 스스로를 ‘민주당 내의 민주당’이라고 일컫는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6일 지지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오는 17일 위스콘신에서 패배하면 경선을 포기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도운기자 dawn@˝
  • [반론]기업인들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김효성 대한상의 부회장

    취업난이 부쩍 심해지면서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많다.그런가 하면 대다수 청소년들은 기업이 가장 힘써야 할 일로 ‘사회 공헌’을 꼽는다고 한다.기업에 대한 기대가 커서인지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존재로 치부되는 것 같다.특히 기업인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혐오감마저 곁들여져 삽화에 나타나는 기업인의 이미지는 뚱뚱하고 탐욕스러운 모습 일색이다. 작가 조정래씨가 서울신문 2월2일자 15면 ‘조정래의 세상보기’ 칼럼에 기업인들을 질타하는 글을 썼다.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고,하워드 휴즈와 같은 미국 기업인들을 본받으라는 내용이다.우리 사회의 반기업정서가 세계 1위인 것은 기업인이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러나 불법 정치자금 제공문제로 비난한다면 모르겠지만 사회공헌 활동을 기업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로 들이밀고 이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해 모든 기업인들을 매도하는 점은 동의할 수 없다. 기업인들의 기부문화를 미국과 비교했는데 미국의 부자들도 처음부터 자선사업가는 아니었다.록펠러 가문은 석유독점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듀폰 가문은 화약으로 돈을 벌어 전쟁상인의 악명을 얻기도 했다.이들 기업인이 자선사업이나 육영사업을 시작한 것은 상당한 부를 이룬 뒤였다.그리고 하워드 휴즈를 ‘공수래 공수거’를 실천한 철학가적인 기업인으로 칭송했지만 사실 그는 균이 묻는다고 문고리도 잡지 않을 정도의 극단적인 결벽증에 시달렸다.20억달러의 천문학적 유산을 남기면서도 “무조건 지금보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는 인생관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이다. 우리 기업과 기업인들이 사회적인 기부에 인색하다고 비난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그동안 정치자금을 비롯해 체육성금,수재의연금 등 준조세성 기부금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 많은 기업인들이 종교단체나 자선단체를 통해 기부를 해오고 있다.장학재단 등을 통해 육영사업을 하는 이도 적지 않다.앞으로 기업인들의 부가 더 축적되고 각종 준조세가 줄어들면 순수한 의미의 사회공헌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점은 기업을 기업의 논리로 봐달라는 것이다.사회공헌도를 기준으로 기업과 기업인을 분류하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기업은 이윤을 내지 못하면 망한다.그리고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대신 재투자할 때 기업은 사회에 더 크게 공헌할 수 있다.삼성전자가 반도체 개발 대신 기부금에 대부분의 이익을 썼다면 아마 우리 경제의 현재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못했을 것이다.이윤이야말로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일차적인 방법이다.대학 졸업자를 위한 일자리와 정부의 사회복지재정은 상당부분 기업의 이윤을 바탕으로 창출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조정래씨는 “세상 물건은 모두가 먹고도 남지만 부자들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모자란다.”는 간디의 말을 인용하며 기업인에게 “인간이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충고까지 곁들였다.틀린 말은 아니지만 경제논리는 무시한 채 종교적 신념으로 경영해서 살아남을 기업과 국가는 세상에 없다.왜 인도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못 살게 됐는지,종교와 정치가 일치한 사우디가 세계 제일의 석유 매장량을 가졌음에도 왜 아직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는지 눈여겨 봐야 한다. 그리고 상의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이 중·고교 교사에게 경제교육을 한 데 대해 “기업이 교육계까지 장악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친 기우다.기업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시장경제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일 뿐이다.그의 말대로 만약 교육계를 기업식으로 운영했다면 아마 우리의 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좋은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기업이 잘못된 관행과 행태를 보인 일은 백번 반성해도 부족하지만 기업에 대한 잘못된 편견 역시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학교에서 “기업은 경제활동에서 얻어진 이윤을 근로자와 형평성 있게 나누고,문화활동이나 장학사업 등에 대한 지원을 통해 기업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가르치기에 앞서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해 고용을 늘리는 기업인이 애국자라는 인식을 심어 줄 때다. 김효성 대한상의 부회장˝
  • 경영부실 산하기관 예산 깎는다

    얼마전 정부의 한 고위공직자는 정부부처의 고질적 행태를 이렇게 꼬집었다.“(공무원들이)일하는 패턴이 크게 두가지다.하나는 산하단체를 만들거나,또 하나는 무턱대고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것이다.” 부처들은 낙하산 인사 등으로 산하단체를 주무르는 맛에 산하단체를 우후죽순 격으로 만든다는 말도 덧붙였다.이들 산하기관은 방만경영 등으로 국민의 혈세를 축내는 사례가 적지 않다.천문학적인 적자를 내면서도 고액의 연봉을 챙기는 등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이같은 모럴 해저드에 강력한 제동이 걸리게 됐다.기획예산처는 지난해 말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이 제정됨에 따라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내용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오는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한다고 29일 밝혔다. ●모럴해저드도 강력 제동 예산처는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90여개 정부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올해 사업실적 등을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중 일제히 경영평가를 할 계획이다.정부출연금이나 정부위탁·독점사업 수입금의 최근 3년 평균액이 50억원을 넘는 곳이 대상이다. 해당기관은 오는 4월중에 발표될 예정이다.신용보증기금·기술신용보증기금·한국마사회·수출보험공사·한국방송광고공사·국민체육진흥공단·국립공원관리공단·교통안전공단·한국전산원·국민건강보험공단·한국지역난방공사·대한주택보증 등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기관은 4월말까지 올해 경영목표를 주무부처에 제출해야 하고,주무부처는 6월말까지 산하기관별 경영평가지표 등을 담은 ‘경영평가매뉴얼’을 작성,통보한다.해마다 이뤄지는 경영평가에서 성적이 저조하면 예산 삭감 등 조치가 취해지는 등 사후평가가 엄격하게 실시된다. ●낙하산 인사 어려워진다 산하기관마다 들쑥날쑥했던 기관장 선임방식도 단순화된다.민간위원이 과반수인 기관장추천위원회가 구성되고,공모를 통해 선정된 후보군 가운데 기관장을 뽑아 낙하산 인사의 소지가 사라지게 된다.주무부처 장관은 기관장과,기관장은 나머지 임원과 경영성과계약을 체결하는 ‘책임경영체제’가 구축된다.많은 국민을 고객으로 하는 기관은 매년 한차례 이상 고객만족도 조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이같은 규정은 나머지 400여개 산하기관에도 확대 적용될 전망이다.예산처 관계자는 “법 적용 대상이 아닌 곳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 관리토록 각 부처에 권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490여개 산하기관의 연간 예산은 187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1.4% 규모다.올해 정부예산(118조 1000억원)보다 많다.관계자는 “산하기관 관리방식이 사전통제에서 사후평가로 바뀌면서 경영 효율성과 책임·투명경영 풍토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
  • 책꽂이

    ●하루(한만수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2002년 실천문학 신인상 수상작.농부의 하루생활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황폐한 농촌의 참상과 농민들의 애환을 생동감있게 그렸다.9000원. ●미들섹스(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이화연·송은주 옮김,민음사 펴냄) 2003년 퓰리처상 수상작.14년 동안 여성으로 자란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진단을 받고 겪는 좌절감을 그렸다.성과 젠더,인종 차별 등의 문제도 담겨있다.모두 2권,각권 9000원. ●비만한 이성(이재복 지음,청동거울 펴냄) ‘몸’을 중심틀로 해서 문명과 자연의 상생을 탐색해온 평론가의 비평집.소설가 윤대녕·신경숙,시인 이승훈·이은봉 등의 작가론과 90년대 페미니즘·생태주의 문학론 등을 분석.1만 5000원.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과 탈식민지성 연구>(고인환 지음,청동거울 펴냄) 지난해 타계한 이문구의 작품세계에 대한 본격 연구서.현실과의 관련성과 문체 미학에 중심을 둔 기존 분석과는 달리 이문구 문학의 현재적 의미와 미래 지향성을 고찰.1만원. ●나를 찾아가는 동화여행(레스카 카우프만지음,조경수 옮김,문예출판사 펴냄) 호기심 많은 소녀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 나선 여행을 액자소설 형태로 다룬다.자작나무 앵무새,스라소니 등과의 만남을 통해 삶에 대한 16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8500원. ●연애소설(가네시로 가즈키 지음,김난주 옮김,북폴리오 펴냄) 재일동포로는 처음으로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소설집.표제작 등 3편의 작품에서 지난날의 사랑을 현재형으로 불러오면서 사람 사이의 대화가 중요함을 이야기.8000원.
  • 손잡은 ‘中 - 佛’/‘하나의 중국’ 지지 공동선언 서명 中, 에어버스 21대구매 잠정합의

    |파리 함혜리·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과 프랑스가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선 다극체제 구축에 손을 맞잡은 인상이다.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27일 엘리제궁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양국 정상회담을 갖고 ‘하나의 중국’ 정책,중국의 인권개선 필요성,양국 협력강화 등을 확인하는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중국은 또 에어버스 항공기 21대를 구매하기로 에어버스측과 잠정 합의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중국 정책 지지는 지난 40년간 변하지 않은 프랑스의 입장”이라며 ‘하나의 중국’ 지지 원칙을 확인했다.타이완의 국민투표 실시 계획에 대해서도 “심각한 실수”라고 강조했다. ●다국체제 구축에 심혈 양국 정상회담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선 ‘국제 다자질서’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분석된다.프랑스는 올해를 ‘중국의 해’로 지정하고 후 주석의 방문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후진타오 국가주석도 취임 이후 첫 유럽방문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와 정상회담을 갖는 등의 ‘특별대우’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 외무부는 “국제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지금처럼 수렴한 적이 없었다.”며 “두 나라는 다자질서를 강화하고 개선하는 데 같은 열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 무기금수 해제될 듯 후 주석의 프랑스 방문을 계기로 유럽연합(EU)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지난 15년간 지속해 온 대중(對中) 무기판매 금지 조치가 오는 3월에 해제될 것으로 전망된다.26일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외무장관은 “중국과 유럽간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수조치는 시대착오”라고 밝혀 금수 해제 전망을 밝게했다. 현재 유럽의 강국인 프랑스와 독일은 대중 무기판매 금지조치 해제를 지지하고 있으나 네덜란드,유럽의회,인권 단체들,미국 등은 반대하고 있다.EU는 오는 3월 EU 지도자 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프랑스·독일의 중국 구애 EU의 강대국 프랑스와 독일이 대중 무기판매 금지조치 해제에 열을 올리는 것은 천문학적인 중국의 무기시장 때문이다.개혁·개방 이후 ‘군 현대화’를선언한 중국은 매년 두자리 이상의 국방비 증액을 지속,세계 최대의 무기 수입국가로 떠올랐다. 세계 3대 무기 수출국인 프랑스는 무기 금수가 해제될 경우 미라주 전투기 등 자국 무기를 중국에 대거 판매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독일도 자국 스텔스 잠수함 등의 중국 판매를 희망하고 있다.이외에 프랑스·독일의 베이징∼상하이 구간(총연장 1300㎞,건설비 14조 4000억원)의 고속철도 수주권 경쟁도 치열하다.일본의 고속철 신칸센이 사실상 탈락한 가운데 프랑스의 테제베(TGV),독일의 이체(ICE)간 입찰 경쟁이 가속화된 상황이다. oilman@
  • 용산기지 공원화/시민단체 “이전비 전담 굴욕외교 극치”

    용산 미군기지를 2007년 한강이남으로 완전 이전하되 비용과 대체부지를 한국정부가 부담키로 한 17일 미래한·미동맹 6차회의 결과에 대해 사회단체와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과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등 사회단체 소속 회원 30여명은 18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협상의 백지화와 즉각적인 재협상 실시를 정부측에 요구했다.이들은 “이번 합의가 겉으로는 국민 요구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지만,천문학적 이전비용과 대체부지를 우리 정부가 부담키로 해 사실상 미국의 이익이 그대로 관철됐다.”면서 “더구나 기지이전이 미국의 군사전략에 따른 것임을 알면서도 정부가 비용과 부지를 제공키로 한 것은 굴욕외교의 극치”라고 주장했다. 기지 주변 상인들은 업종에 따라 반응이 엇갈렸다.이태원에서 20년 가까이 옷가게를 해온 박모(44·여)씨는 “옷장사는 미군 의존도가 높지 않아 큰 동요는 없지만 미군 손님이 많은 술집들은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이곳에서 클럽을 운영하는 임성(37)씨는 “가뜩이나 홍대앞 클럽들에 미군 손님을 뺏겨 어렵던 판에 기지마저 이전하면 아예 장사를 접어야할 판”이라고 울상을 지었다.한편 미군기지확장반대 평택대책위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미 500만평의 기지가 있는 평택에 대체부지 제공을 약속한 것은 주민들의 희생과 고통을 외면한 처사”라고 반발했다. 이세영 김효섭기자 sylee@
  • 보너스 650억원 대박

    |런던 AFP 연합|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 소속의 금융 트레이더가 지난해 소속 은행에 막대한 이윤을 안겨준데 대한 보상으로 최소 3000만파운드(650억원)라는 기록적인 보너스를 받을 예정이라고 선데이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드리스 벤 브라임이라는 런던 출신의 이 트레이더는 지난해 혼자서 은행에 수억파운드의 이윤을 안겨줬으며 그에 따른 보상으로 현금과 주식,주식 옵션 등의 형태로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받게 됐다. 골드만 삭스는 그러나 이 직원을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보너스로 지급하는 주식과 옵션을 향후 몇년 동안 매각 처분할 수 없도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벤 브라임이 지난해 혼자서 올린 이익은 영국항공(BA)같은 회사들이 올린 전체 이익을 능가하는 규모이며,그가 받기로 한 보너스는 평균적인 영국인 1100명의 연봉 합계와 맞먹는 액수라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그의 한 친구는 “벤 브라임은 어떤 경우 실로 대단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지난해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면서 “그는 자신의 성과에 대한 인정을 받을만하다.”고 말했다.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5)악어와 악어새에서 반목과 불신의 관계로-농협대해부

    “농민이 잘 되면 농협이 잘 되지만,농협이 잘 된다고 농민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16일 농협중앙회 관계자가 농민과 농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는 분명하지만,시·군 단위 지역조합(개별법인)과 농협중앙회의 이원적 조직운영 하에서 농협중앙회가 농민을 직접 도울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한 말이다.1997년,사회구조 전반에 폭풍을 몰고 오다시피했던 외환위기를 고비로 농민과 농협(이하 지역조합)의 ‘악어와 악어새’ 관계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살인금리에 연체이자,논·밭 등 부동산과 농산물값 폭락,사회전반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으로 부실채권에 대한 가압류와 경매가 쏟아지면서 둘 사이는 불신과 반목으로 치닫고 있다. 농민회원이나 농업인들은 내놓고 “농민들은 말라죽는데 조합 임원들은 돈만 챙긴다.”며 불만투성이다.농업인이 주인인 농협은 조합원들의 출자금과 대출이자,예금과 대출마진,판매(경제)사업 등으로 수익을 창출해 되돌려 준다는 게 설립 취지인데,결국 농민에게 돌려준 게 뭐냐는얘기다. ●“조합장 연봉 6천만~8천만원” 박모(46·경북 군위군 효령면)씨는 ‘농협 맨’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농협 이야기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이다.논밭을 담보로 돈을 빌린 뒤 이자를 못갚아 애태우는데 ‘담보물을 경매처분하겠다.’는 독촉을 시도 때도 없이 보내기 때문이다. 청도군 금천면 농민 30여명은 지난해 말 금천농협 앞에서 집단시위를 벌였다.시위에 참여한 한 농업인은 “농민들은 부채에 깔려 죽을 판인데,농협 직원들과 조합장의 연봉이 6000만∼8000만원이나 된다니 말이나 되느냐.그것도 부족해 해마다 임금을 6∼10%씩 올리고 있다.”며 목청을 높였다. 구미 장천농협 대의원들은 조합개혁을 둘러싸고 농협과 한치 양보도 없이 맞서고 있다.대의원들은 최근 전체 조합원 1200여명 중 915명의 일괄 탈퇴서를 조합에 제출,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조합 해산까지 불사하겠다는 태도다.대의원들은 임원 구조조정,경영책임자 문책,인건비 하향,노조 해산 등을 요구하고 있다.특히 장천농협은 올 사업계획서에 임원 급여로 조합장 7100만원,전무 8100만원,상무(3명)6400만∼7800만원,부장(2명)6100만∼6200만원을 반영하고 있다. 전 직원 19명의 평균 연봉이 5700만원이라고 대의원협의회측은 밝혔다. 농업인들이 선호하는 정책자금 대출의 경우 조합원은 1년(일반자금은 6개월)마다,비조합원은 3개월,6개월 단위로 이자를 내야 한다.조합원이 가구당 1명꼴이니 남편이 대출한도를 넘어 집사람 앞으로 받으면 조합원 요건이 안 된다.농협 채권팀은 정해진 기간 안에 이자를 못내면 연체이자 독촉장이 나가고 3개월 동안 유예기간을 주면서 ‘이자에 대한 이자’를 받고,이 기한마저 넘기면 ‘원금에 대한 이자’까지 합쳐서 받는다.연체 이자율은 담보대출이 15%이고 신용대출은 18%나 된다. ●농협만 배불러서야 조합은 지역조합 1246개,품목조합(인삼조합) 89개 등 모두 1355개다.이 중 부실이 우려되는 곳이 농협 48개,축협 53개,인삼협 1개 등 102개(7.4%)로 집계된다. 외환위기 때부터 2000년 말까지 3년 동안 전국 지역조합의 부실채권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조합마다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짧은 시간에 적립하다 보니 당기손실이 커졌다.농협중앙회에 따르면 부실 우려가 있는 조합(169개)의 연체 채권액이 97년 말 3조 8657억원에서 2000년 말 5조 3829억원으로 39.2%나 증가했다.무수익 채권도 같은 기간 대비 59.7%(1조 2609억원)나 늘었다. 지난해 말 전남도내 196개 지역농협은 외관상으로는 흑자 결산했다.하지만 부채 연체율이 6∼20%를 넘고 있다.연체율은 도시권 소재 농협이 낮고 소득원이 없는 농촌으로 갈수록 높아져 곤궁한 농촌 실정을 보여준다. 충남도내에서도 지역조합 167개 가운데 경영부실 등으로 지난해 27개 조합이 문을 닫았다.9개는 통·폐합 위기다.충북도 87개 지역조합 중 2개 조합이 파산절차를 밟고 있다.1년여 만에 4개가 정리됐다. ●부실 원인은 조합장 그동안 농민회는 조합 직원의 체력단련비 등 급여성 경비를 없애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경영능력이 없는 인물이 조합장에 당선되면 조합 부실화율이 높다고도 경고했다.40대 농민은 “많게는 10억원 이상을 쓰고 조합장이 되는데,맘이 콩밭에 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아니냐.”고 반문했다. 한 농민회장은 “수백억원대의 농협 살림살이를 전문가도 아닌 대의원들이 예산·결산 총회를 하루 만에 끝내는 현실에서 어떻게 감시기능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맞서 농협측은 “3개월마다 분기별로 경영실태 등 결산서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어 분식회계 등은 꿈도 못꾼다.”고 말했다.이미 집행된 정책자금은 9조원에 이른다. 특별취재팀 대구 김상화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기자 ■정책자금의 허와 실 문민정부는 1993년 출범 이후 농·어촌 구조개선을 외치며 무려 56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정부는 보조를 구실로 은근히 정책자금을 쓰도록 권했고,이렇게 나간 돈은 몇해 지나자 새끼까지 쳐서 농가부채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정책자금은 영세 농업인이 자금을 필요로 할 때 사업 타당성과 영농능력을 고려해 정부가 빌려주는 돈이다.용도별로 너무나 다양해 줄잡아도 100가지를 넘어 일원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연 이자율이 4.0%로 비교적 낮고 시설투자비의 경우 3년이나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 조건이어서 농·어업인들에게는 단비와도 같다.농·어촌 구조개선자금,농·축산 경영자금,농기계 구입자금 등이 여기에 속한다.양파·마늘 농사를 짓는 박안수(44·전남 무안군 삼향면 평산1구)씨는 “2차례에 걸쳐 퇴비사와 대형 트랙터를 사느라 정책자금 2500만원을 빌려 해결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이같은 자금은 통상 보조액수가 전체 사업비의 절반에도 못미친다.따라서 사업비의 30∼40%는 융자,10∼20%는 자부담이어서 농업인들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쓰려는 사람에 비해 자금이 달려 혜택범위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불평도 많다.게다가 농협창구를 통해 나간 정책자금의 경우,상환기간이 돌아오면 농협이 정부에 3.85% 이자를 쳐서 대신 갚아주고 10% 이상 연체이자를 농민에게 받는다. ●시설투자비만 대출… 운영비 빚으로 50대 한 농민은 “농어촌진흥자금(2400만원)으로 논을 샀는데 이자율(3%)이 싼 데 비해 상환기간(3년 거치,4년 상환)이 너무 짧아 원금과 이자 등 연말에 900만원가량을 갚다 보니 허리가 휜다.”며 짧은 상환기간 문제를 제기했다. 방울토마토 하우스를 하는 송모(47·전남 무안군 삼향면)씨는 “그동안 정책자금을 신청하면 행정기관에서 대출 대상자를 선정하고 이듬해에야 자금이 나오기 때문에 정작 돈되는 작물을 심을 기회를 놓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20년째 딸기농사에 매달린 최모(58·담양군 봉산면)씨는 “정책자금이라는 게 시설할 때 단 한 번에 그쳐 운영자금은 빚을 내는 식이고,1∼2년 값이라도 폭락하면 빚더미에 올라앉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방울토마토를 재배중인 유모(43·충북 옥천군 안남면)씨는 “정책자금을 빌려준 뒤 운영비 지원이라든가 생산량 파악 등 정부의 사후관리가 없어 아쉽다.”고 꼬집었다. ●생산량 파악등 사후관리도 했으면 그래서 2000년부터 이런 단점을 보완해서 연속성을 가진 ‘농업종합자금’이 나왔다.대출 주체도 행정기관이 아닌 농협이다.신청하면 농협이 심사해 한 달 안에 필요자금의 100%까지 대출해준다.시설자금은 물론 개·보수자금,운영자금까지 대출 가능하다. 농협 전남도지부 관계자는 “지금껏 농업종합자금을 쓴 농업인들 가운데 연체자는 단 한 명도 없다.”며 가능성을 강조했다.지난해 전남도내에서 농업종합자금으로 750억원을 대출했고 올해는 1000억원을 빌려준다. 특별취재팀 ■중앙회 어느 간부의 고백 “농민들이 그렇게 된 데는 우리의 책임도 크지요.하지만 하느라고 했는데도 농촌의 현실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할 말이 없네요.” 농협중앙회의 한 간부는 16일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지난 10여년간 수십조원을 농촌에 쓸어붓다시피했는데….”라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그는 농협중앙회로서는 시·군단위의 지역조합에 대해 인사권 등 특별한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아 개별조합의 부실에 적극 개입할 수 없는 애로를 강조했다.농협중앙회가 지역조합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연간 1조 6000억원 정도를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것인데,개별조합에 돌아가는 혜택은 기껏해야 평균 6000만∼7000만원(전국 1300여개 조합이 연간 이자분 700억∼800억원을 나눠갖는 수준) 정도여서 큰 도움은 안 된다는 얘기였다.한마디로 주는 쪽은 ‘큰 돈’인데농민들로서는 도움을 받으나마나 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수십조원’이라는 정책자금도 농민들이 빌려쓰고 갚은 뒤,이 돈이 다시 투·융자로 쓰이면 이를 정책자금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실제 정책자금 규모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적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더미 같은 농가부채에다 급격한 농촌 노령화·공동화,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자유무역협정(FTA) 등 국내외에서 사정없이 몰아치는 파고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져내리는 우리 농촌을 정부 못지않게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는 것은 농협일 것”이라며 “어렵다고 손을 놓을 것이 아니라 각종 사업 성과가 농가소득과 농업인들의 편익증진에 직결될 수 있도록 사업체계를 바꾸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조합육성을 위한 자금지원을 대폭 늘리고 농가소득 증대와 농산물 제값 받기를 위해 규모화된 산지 조합을 적극 육성하며,대량 수요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농촌의 어려움으로 농협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폄하하기보다는 농업인과 농협이 ‘윈·윈’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美 우주개발 계획/장밋빛 청사진… 실현가능성 “글쎄”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4일 밝힌 새로운 우주개발 구상은 대담하면서도 화려하지만 실현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평가다.특히 10억달러의 예산증액만으로 우주개발의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데에 많은 전문가들은 의문을 표시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날 발표한 달 기지 건설과 화성 탐사는 1989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우주개발 계획과 대동소이하다.다르다면 우주왕복선을 폐기하고 ‘우주탐험선(CEV)’을 개발하겠다는 내용과 10억달러의 예산증액만 요구했다는 점이다. 물론 지난해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의 공중 폭발이 새로운 우주개발 계획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컬럼비아호 사건조사위원회(CAIB)'가 우주왕복선에 결함이 있다는 보고서를 내자 부시 행정부는 국가 비전의 제시라는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했다. 특히 백악관은 1961년 케네디 전 대통령이 당시로서는 엄두도 못낼 달 착륙을 위한 ‘아폴로 계획’을 발표,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에 착안했다.이번에는 달 착륙뿐 아니라 달에서 생활할 수 있는 영구기지를 만들고 화성까지 유인탐사선을 보내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부시 대통령은 인류가 워싱턴과 보스턴 사이의 거리에도 못 미치는 고도 762㎞의 궤도에만 머물 수 없음을 강조했다.인류만이 우주를 보고,조사하고,만질 수 있으며 이는 ‘경쟁’이 아닌 ‘여행’이라고 표현했다.냉전시대 무모하게 추진된 우주개발 경쟁과는 차원이 다름을 애써 강조했다. 그러나 계획이 지나치게 원대하고 예산확보의 문제를 간과,또다른 ‘장밋빛 청사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미국인의 달 착륙과 기지 건설의 시기를 2015년과 2020년 사이로,화성 탐사를 2030년 이후로 설정한 것은 너무 막연하다는 얘기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우주정거장 계획을 고안한 한스 마크 전 미 항공우주국(NASA) 부국장은 “우주개발 프로그램이 10년 이상의 장기계획으로 추진되면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NASA의 예산을 포함,향후 5년간 120억달러를 쓰겠다는 다짐도 의문이다.뉴욕 타임스는 화성으로 직접 가는 대신 달을 거치는 계획은 잘못된 목표설정에 따른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표현했다.또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빛을 빨아들이는 ‘블랙 홀’보다 NASA의 예산이 더 빠르게 탕진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우주정거장 예산이 당초 80억달러에서 최고 1000억달러까지 치솟은 것처럼 이번 계획이 실행되려면 수천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분석됐다.부시 대통령은 재선시의 2기 집권을 감안,5년간 120억달러의 예산안만 밝혔지만 그 이후에 들어갈 천문학적 예산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감당하기 버거울 것이라는 정치적 허점이 있다.올해 대선을 앞둔 선거용 공약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mip@
  • 국방 시설본부 창설 논란/“권한집중… 문제 소지” 지적일어

    국방부가 일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각종 시설사업을 통합 관리할 국방 시설본부를 창설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는 각 군 등에 분산,운영돼 있던 시설공사 관련기능을 통합·집행·관리할 국방시설본부를 이달 중순 창설할 계획이라고 7일 발표했다. 본부장은 소장급 장성으로 보임할 예정이다.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 대규모 시설사업의 효율적인 집행과 전문화,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우선 1단계로 조달본부 시설부,용산사업단을 통합하고, 2단계로는 2005년 초까지 1500여명 규모의 본부를 운용하면서 각 군의 공병 및 시설감실,각급 부대 공병 등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돼 온 시설업무들을 국방시설본부가 통합,관리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동안 각 군의 반대 등으로 각 군 총장까지 참석하는 군무(軍務)회의를 세 차례 거치는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사안으로 일각에서는 국방부의 지나친 권한 강화를 우려하고 있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그동안 대형 시설관련 비리의 경우 대부분 각 군보다는 국방부쪽에서 발생했는데 현역 장성이 본부장인 국방부로 시설사업을 통합할 경우 권한이 비대해져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면서 “시설업무는 장기적으로 민간쪽에 이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의 지난해 시설관련 예산은 7700여건에 1조 5300억원,올해는 9226건에 2조 1700억원에 이르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호박(琥珀) - 김효동

    월령 29일,그믐이다. 동쪽 하늘에 그믐달이 비껴 떠 있다.망원경 경통에 입을 맞추고 숨을 길게 내쉰다.경통의 옆면을 스치며 부연 입김이 날아간다.파인더에 눈을 들이댄다.그믐달은 파인더의 십자선 중앙에 꼼짝없이 잡혀 있다.접안렌즈로 눈을 옮기고 핀트를 맞추자,달 표면의 크레이터가 또렷이 나타난다.달의 바다인 습기의 바다가 거친 암영을 채워가고 있다.그 주위를 비에타나 티코와 같은 크레이터들이 점점이 두르고 있다.크게 심호흡한다.내뱉은 입김이 옅은 달무리를 만들어내다간 금세 흩어진다.눈을 떼고 고개를 젖뜨린다.금방이라도 화구를 열 듯한 하늘이지만 아직껏 짙은 어둠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깊은 바다의 잔잔한 침묵을 그려내는 듯하다.꼭 움켜쥐고 있던 액세서리 호박을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온다.로스토크 연안 부두,김 선배는 독일에 가고 싶어 했다.오래 머물진 않을 거야.어디까지나 여행이니까…….호박이야.발트해를 상징한대.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북두칠성 국자의 머리 부분에 머물러 있던 눈동자가 작은곰자리를 거쳐 북극성으로 옮겨간다.호박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발트해,김 선배가 그곳에서 곤충이 박힌 호박을 캐고 있다면,나는 이곳에서 놈들을 낚아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친다.간들거리는 고목 가지가 그믐달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할아버지를 지그시 내려다본다.방한복을 여미는 모습이 어줍다.담배는 안 돼요.할아버지는 담배를 먼저대로 담뱃갑 속에 쑤셔 넣는다.할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방한모를 씌우고 요철(凹凸)형 단추를 채워 드린다. 때각! 할아버지의 어깨가 움찔한다.손전등을 입에 물고 점퍼 속에 손을 넣는다.손바닥만한 관측일지가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9월15일,강원도 횡성,오리온자리가 희미하게 보이다.맨눈 관측,화성이나 황소자리보다는 밝은 편임…….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펜을 꺼내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11월18일,경북 문경새재.그믐달에 가까워 맨눈으로 3,4등성도 확인 가능.사자자리 부근을 향해실험 촬영.바람이 불지만 촬영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듯……. 망원경 앞으로 돌아온다.파인더를 단단히 고정하고 조심스레 미동나사를 조절한다.망원경의 방향이 찬찬히 천정(天頂)으로 향한다.하늘은 자정을 기해 이전까지의 침묵을 깨뜨릴 것이다.삼십 년을 넘게 만삭이었던 하늘이 자궁을 연다? 굉장히 매혹적이야.놈들을 사냥하는 일은 얼마나 더하겠어! 근사한 녀석들 많이 담아 와.플레이트로 고개를 돌린다.넉 대의 카메라가 좁은 플레이트 위에 빽빽이 올려져 있다.많이 잡아오면 괜찮은 놈으로 한 마리 주는 거지? 나도 꼭 찍고 싶었는데…….작년에 소백산에 갔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 놈도 찍지 못했잖아.달이 보름달에 가까워서 큰 놈에게 희망을 걸었는데,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서 그것마저도 물 건너갔지 뭐야.편지하면 그 주소로 보내주는 거 잊지 마.바람에 실려 온 검불이 얼굴을 스친다.망원경의 접안부를 두 손으로 꼭 감싼다.밤하늘 이곳저곳에 빛을 게우고 번뜻 사라질 녀석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은 기필코 대어를낚아야 한다. 문경새재는 초행이다.소백산이나 함백산에서보다 수월한 등반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귀띔이 이곳을 선뜻 결정하게 만들었다.잡광(雜光)이 없고 먼지가 적어 촬영이 용이한 곳이라는 정보는 관련 잡지를 통해 앞서 접한 터였다.산꼬대가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촬영지다.나무가 많지 않은 나지막한 산언덕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또한 썩 마음에 든다.고개를 들어올린다.밤하늘에 지독한 정적이 연출되고 있다.바람이 차다.귓불을 스치는 산바람은 가랑이까지 으스스하게 만들 정도다.할아버지가 으레 신경이 쓰인다.차에 계시는 편이 낫겠어요.내려가시겠어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가벼이 손을 올려본다. “괜찮아요.다 늙어서 한 번 찾아온 감기가 그 무슨 대수라고.”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영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손자를 따라나서야겠다는 얄망궂은 고집을 쉬이 꺾을 수가 없었다.두통 때문에 소다를 댓 수저 퍼먹었거든.어째 머리가 다섯 배는 더 지끈거려요.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지려나…….할아버지를 향한 불안함이 이제는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옮겨간다.온천 관광을 떠나는 부모님이 홀로 집에 계시기 적적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동행을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서릿바람에 아이를 업고 밭에 나온 기분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수안보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내내 말이 없던 할아버지의 입을 트게 한 것이 차가운 기침이었다는 사실을 거슬러 생각하게 된다.화분증 탓에 봄마다 기침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은 없는 분이다.성치 않은 오른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 온다.당장 차로 모셔다드릴게요.얼마 버티기 힘드실 거예요.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니까…….그나저나,등나무집 할머니 말이다.왜,너도 알잖아,얼마 전에 네 엄마가 소개시켜준…….” 낚시용 승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청승궂다.이내 지팡이 끝으로 낙엽 더미를 헤적이기 시작한다.땅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듯도 하다.낙엽을 헤치는 소리가 듣기에 좋지 않다.선영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수치에 매우 민감하겠군.아,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난…….찻잔을 내려놓는 종업원의 행동이 거치적거린 모양이었다.남자는 말을 멈추고 김 선배의 어깨를 두드렸다.영문학과 선배야.우리 동아리 회장이었고…….이 년 전에 졸업했어.둘 다 초면이겠지? 나는 김 선배의 재킷에 박힌 장식용 버클에 시선을 고정했다.반갑네.남자는 내 시선을 밀쳐내듯 손을 내밀었다.손이 형편없이 못생겼군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나는 그가 청하는 악수를 건성으로 받아들였다.형편없기 짝이 없는 그 손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합니까! “성우라고 했지,아마?” 김 선배가 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많이 찍어봤나? 사진 속에 별을 담는 것과 정물을 담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쉽사리 덤비지 말아야 할 것이 천체를 담아내는 일이야.한낱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간 큰 오산이지.듣자하니 소질이 많다던데…….무엇이든 역량이라는 것이 중요하지.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이 녀석이 찾아왔더라고.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볼품이 없더군.난 처음에 반딧불 사진인 줄 알았다니까.농담 삼아,개똥벌레의 일주 사진이네,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그랬지.” 남자는 김 선배를 돌아보며 짐짓 미소를 지었다.김 선배의 얼굴로 미소가 이어졌을 때,그녀의 재킷에 달려 있는 버클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었다.어째서 별을 찍지? 나는 남자의 점잖은 말투가 듣기에 거북했다.글쎄요,뭐든 좋아지기 시작하면 따라가는 법이죠.남자는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물을 하나 할까 하는데,어떤가?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과장된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누군가 카페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놓아두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괜찮아,성우야? 불편해 보여.난 너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나는 김 선배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이 분야에선 알아주는 베테랑이야.물론 지금은 접은 상태지만…….작년엔 외국의 한 천문대가 주최한 천체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어.나이가 많은데도 열정이 대단해.열정이라는 말로 남자의 나이를 짐짓 감추어보려는 그녀의 말투가 왠지 우스꽝스러웠다.저 사람 곧 인도로 떠날 거야.다른 세상을 접해 보고 싶대.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도와줄 거니까,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봐.남자의 구두 소리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 가득 둔탁한 공명을 일으키며 다가왔다.할머니가 마음에 안 드세요,할아버지? “아니,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이내 기침을 토해낸다.기침 소리가 밤하늘에 긴 메아리를 긋는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의 안경알에 그믐달이 갇혀 있다.그믐달이 거듭 요람으로 변하는 착각이 든다.할아버지의 심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산록을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내내 요람 위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무릎을 매만지며 번번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요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의족이 할아버지를 지탱하기엔 무리이지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에 아랑곳없다는 듯 쉬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점점 뒤처지는 할아버지를 이곳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달의 이미지가 전하는 느긋한 안주(安住)가 아니었을까.회답이라도 하듯 북극성 주위를 오르내리던 낙엽이 요람 위에 사붓 내려앉고 있다. “할망구가 은근히 피하더구나.어쩐지 아니다 싶었어.미련일랑 한푼 남길 것도 없다.네 엄마도 그렇지,그리 줏대 없는 할망구를…….” 할아버지는 의각이 끼인 다리를 쭉 뻗는다.아닐 거예요.할머니가 일부러 피하기야 하시겠어요? 할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귓가로 날아온다. 플레이트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 한 대를 집어 든다.애지중지하는 펜탁스67 기종이다.노출을 중단하고 필름을 교체한다.노출 시간을 초과한 감이 들지만 유성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다.다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필름이 아까울 뿐이다.대학에 다닐 때 처음으로 장만했던 카메라야.니콘FM2지.선배로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자! 그믐달을 할퀴면서 한참을 꼬박거리던 나뭇가지가 툭 부러진다.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배낭으로 고개를 돌린다.어서 받아,성우야.내년 가을에 유성을 촬영할 거라면서? 이번에 못 찍었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카메라 한 대 더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면서.어서 받아.나는 김 선배를 바라보다가 남자가 건네는 카메라를 말없이 받아들었다.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별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 끝없이 생기더군.혼자 여행을 선택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가면 갈수록 새로운 걸 찾게 돼.물론 과거가 바탕이 된 새로움이겠지만.인도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나? 힌두교? 일처다부혼? 아니면,마하트마? 남자와 김 선배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아,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야,마하트마란.김 선배는 다시 돌아와 그렇게 몇 마디 던지고는 급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나는 김 선배가 잠시 우주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불안감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힘으로 나타났다.그들이 지나간 카페 홀에 문뜩 간디와 마하트마를 외치는 남자가 부딪쳤다가 분산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종업원은 나의 대답을기다리는 투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무안해하길 바라면서 그녀의 코밑을 계속해서 쏘아보았다.리필해 드리겠습니다.위대한 영혼 좋아하시네!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한달음에 몰려온다.옹그리고 있던 낙엽 더미가 소르르 흩어진다.달빛을 빌려 주위를 둘러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융단이 말리듯 낙엽 더미가 굴러간다.굴러간 낙엽만큼의 양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거년스럽다.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낙엽 한 장이 사부랑삽작 걸터앉는다.아니,어느새 날아간다.할아버지,녹차 드릴까요? “아니,됐다…….애초에 소개를 받는 게 아니었지,여시 같은 할망구!” 배낭에서 녹차 티백과 보온병을 꺼낸다.배낭 옆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힘없이 나동그라져 있다.다만 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웃음이 나온다.플레이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삼각대에 장착한 카메라와 플레이트 위에 올린 넉 대의 카메라가 하늘을 향해 조리개를 가만 열어놓고 있다.적도의 가대에 올린 카메라는 천구의 이동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가져오지 않은 남자의 카메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유성을 담아내기에 카메라가 적은 듯도 하다. 티백을 간닥거리며 망원경의 접안부를 들여다본다.카시오페이아와 페르세우스 사이에 웅그리고 있던 은하단이 어느 틈에 천정(天頂) 부근으로 이동해 있다.별들의 바다를 감상하기에 녹차의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없네,부담이 엔간히 드네,민망해서 자식들 볼 면목이 없네,다 늙어서 주책이 아닌가 싶네…….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더니,뭐 그리 둘러댈 것이 많은지.보험 들으랄 때부터 알아봤지,내가! 참말로 사랑은 아무나 하나네 그려.” 녹차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린다.입술을 훔치며 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나의 시선이 어느새 할아버지의 고개를 따라간다.성도(星圖)를 펴놓은 듯한 밤하늘이다.고개가 각각의 별자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남쪽 하늘에 고래자리가 자오선 위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서쪽 하늘,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말없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달을 품은 동쪽하늘,쌍둥이별의 카스트로와 폴룩스가 드높게 떠 있다.가슴속에 새겨진 성도가 보이지 않는 별마저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아마 잦은 촬영에서 밴 습관일 것이다.멀리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외롭게 반짝인다.별을 본다는 건 말이야…….그건 결코 값싼 센티멘털리즘만으로 되지 않는 거야,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에겐.김 선배의 손가락이 작은개자리에 머물렀다.끝내 그 모습만을 유지하는 별은 없어.나 역시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진 않아.프로키온,다른 별들처럼 모여 있지 않고 외롭게 떠 있지.저 별을 보고 있으면…….아니다,값싼 감상은 내가 찾고 있네…….자,봐봐! 김 선배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큰개자리의 시리우스와 베텔게우스를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다시 시리우스로 돌아오면…….김 선배의 손가락이 내 눈앞에 머물렀다.김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어색한 마음에 멀리 횡성군(郡)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까,그렇게 그려보면 겨울의 대삼각형이 이루어지는 거야.네 손으로 한번 그려볼래?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주머니 속의 호박이 얼굴에까지 느껴진다. “생판 모르는 할망구 만나서 뭔 득을 보겠다고.내가 미쳤지!” 할아버지는 두 손을 비비며 몸을 움츠린다.몸 전체가 굼벵이처럼 오그라든다.정말 안 되겠어요,차로 돌아가요.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치켜뜨고 달 쪽을 올려다볼 뿐이다.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안쓰럽다.달은 달일 뿐,요람은 그저 값싼 감상인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독한 난시 탓에 할아버지에겐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밤하늘이라는 것마저 이곳에 와야 할 명분을 지우는 것 같아 답답하기까지 하다.어느새 할아버지의 발목까지 낙엽 더미가 덮여 있다.의족으로 낙엽을 헤치는 모습이 곰상스럽다.갑자기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의지해 승창에서 일어선다.차로 가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땅을 꾹 찌른다. “칼을 들었으면 두부라도 썰어야지,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산중턱을 엷게 스친다.등나무집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칠순을 넘겨보는 할아버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나에겐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 얼굴을 등나무집 할머니의 얼굴로 대신하겠다는 생각도 없다.다만,물 건너간 사랑을 되돌리지 못할 때 찾아올 슬픔을 고스란히 할아버지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작년 가을에 콤바인 예취날에 바짓부리가 걸려 발목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사랑은 그 후유증마저 낫게 할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각지 못한 섬으로 가로막힐 때가 있다.경우에 따라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쉽사리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등나무집 할머니는 둘러대는 것이 아니다,어쩌면.할머니도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럼 만나지 말자는 게 진심이라는 게냐?” 아니,그런 것이 아니라,뭔가 사정이…….갑자기 눈 속에 번뜩하며 섬광이 스민다.고개를 젖히자 곧 하늘이다.드디어 화구를 벌린 모양이다.그대로 하늘에 눈을 처박는다.이중성단을 관통하며 희미하게나마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단말마와 같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따라 금세 사라진 녀석이지만 잔상으로나마 눈 속에 남는다.보셨어요? 저기…….손가락을 펴 하늘을 가리키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관심도 없는 투다.대인이 또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하고 말하면서 그 사람 이런 말을 꼭 덧붙였어.자신은 타 없어지는 유성이 아니라,우주에 버려진 별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그 말이 무슨 뜻일까? 나는 선배가 말하는 남자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더니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 사람 지금은 인도에 없어.또 다른 낯선 곳을 찾아갔겠지.김 선배는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토해냈다.그러면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이번엔 네 엄마가 아니라,내가 직접 말해야겠어.만나서 담판을 짓든지…….성우야,두유 좀 가져다 다오.목이 다 탄다.” 배낭으로 다가간다.지퍼를 열고 배낭 속에 손을 넣어 두유를 찾는데 다시 유성이 떨어진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큰곰자리 부근으로도 유성이 떨어지고 있다.큰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북극성을 오매불망하는 듯한 눈매가 큰곰으로부터 전해져 온다.거듭 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을 마지막으로 삼십 년 후에나 찾아올 사자자리 유성우다.모(母)혜성의 궤도 문제로 삼십 년의 주기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다.무엇이든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머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봐.무슨 일이 있어도 유성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싼다.김 선배가 일러주었듯,아니,그녀가 전하는 어느 화백의 말처럼 하늘은 곧 오랜 세월 품어온 정한(情恨)을 차가운 땅덩이를 향해 쏘아댈 것이다.정한이란 비타민E 다음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F와 같은 인생의 알 수 없는 영양소일지도 모른다고 천경자 화백이 말했지.그 여자,아니,그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참 재미있게 표현했었어.전시회 작품들이 대부분 오로라와 같은 몽롱한 색채로 표현돼 있었거든.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라를 목격했다는데,글쎄,갓 잡은 등 푸른 생선이 파닥이는 것 같더라나? 화가의 표현치고는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아? 김 선배는 말을 마치자마자 상념에 사로잡힌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김 선배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내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또 그 사람 생각하는군요? 김 선배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망원경에 눈을 들이대는 김 선배의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런 식으로 시치미 떼지 말아요! 내뱉지 못한 말이 가슴속에서 빙빙 돌았다.김 선배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사람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서도 머물지 않으려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상념을 자르려는 듯 의외의 말을 던졌다.성우야,횡성에 가자.너도 태기산에 간 적 있지? 나는 한참 뒤에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렇지 않아도 오리온자리 일주 사진을 찍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요,가요.김 선배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밀황색 호박을 꺼내 코에 가져다 댔다.그래,가.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얘,두유가…….” 느지감치 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린다.옷깃에 달라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버름한 방한복을 여며드린다.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라이트 버튼을 누르자 액정 화면이 흐릿하게 빛을 발한다.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노출 시간을 체크하고 카메라로 다가간다.노출 시간을 또다시 오버한 감이 든다.필름을 새로 갈아끼운다.때마침 희미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연속 촬영을 한다. 다시 한 마리가 떨어진다.제법 모양을 갖춘 놈이다.운이 좋으면 긴 유성흔을 잡은 사진을 현상할 수 있을 듯하다. “땃땃하게 데운 베지밀이 최곤데 말씀이야.그,병에 든 거 말이다.” 카메라의 구도를 바꾸어본다.이번엔 복사점을 중심으로 앵글을 잡지 않고 주변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을 생각이다.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놈들이기 때문에 천구가 모두 피사체다.사진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깨알과 같이 작다 하더라도 사진을 현상하는 동안만큼은 현장에서 느꼈던 흥분이 다시 살아나 그야말로 황홀하다.마지막이라는 말이 얼마나유혹적인지 알아?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놈들을 잡을 수 있는 해는 아마도 네가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거나 손자도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다 겪고 나서야 올 거야.군침이 돌지 않니?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유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거의가 떨어져서 그다지 훌륭한 사진은 찍을 수 없을 거야.운이지,뭐.노벨이 태어난 해엔 한 시간 동안 무려 만 개 이상이 떨어졌다는데…….성우야? 김 선배가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꼭 갈 건가요? 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를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성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선배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인도에 갈까?” 그 사람 인도에 없다면서요? 아직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김 선배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물음에 뜬금없이,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나는 그녀의 얼굴빛에서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나는 내가 말했어야 하는 부분을 모욕적으로 도난당한 느낌이 들었다.널 좋아하는 것 같아.그녀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땐 수치심마저 치밀었다. “젊었을적엔 참 고왔을 얼굴인데…….에이,모르겄다.늙을수록 애가 돼 간다는데 남사시럽게…….이놈의 나이도 이냥저냥 시들어갈 판인가?” 시계를 들여다본다.12시30분.유성은 카메라를 향해 간헐적인 입김만 뿜을 뿐 탄성을 자아낼 만한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있다.어쨌든 물고 늘어져야 한다.새벽 1시에서 2시 사이가 녀석들이 한꺼번에 태어나는 극대 시각이라는 정보를 굳이 믿으라면 아직 3,40분 정도의 터울이 있는 셈이다.그때에 대비해 아껴두었던 커트필름을 꺼낸다. 갑작스레 휴대전화기가 엉덩이를 간질인다.어머니의 전화다.걱정이 되는 모양이다.할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이미 내 목소리에서 할아버지의 안전을 확인했을 것이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가 나를 따라나선 것에 대한 불만이 가신 것일까.할아버지는 세상을 관조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다리를 절단하고 병원에 누워 계실 때,이제는 바라만 보며 살란다,하면서 관조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뭐든 간섭하고 살았는데,이젠 좀 앉아서 쉬어야지.늙어서 다리 쓸 일이 뭐가 있겠어.방바닥에 앉아서 창 밖이나 구경하면 됐지.그걸 관조라고 해도 될 거야.할아버지가 관조라는 말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 말했을 때,사실 너무 우스웠다.세상에는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일보다 시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법이니까.사학년생들끼리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작년 선배들처럼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지고 전시하지는 않을 거야.그만큼 작품이 적다는 얘기겠지.그러고 보면 선배들은 참 대단해.별을 잡아온다는 게 어디 쉬워?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김 선배는 밖을 바라보며 전면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뽀드득뽀드득 듣기 싫은 소리가 귓전에 머물렀다.선배는 사진 많이 찍으러 다녔잖아요. “주문하시겠어요?”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여자가 테이블 앞에 섰다. “고작해야 일주 사진이 전부야…….커피 두 잔 주세요…….다른 사람들은 은하며 성단이며 그림 같은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탁자 밑에서 자꾸만 나의 구두코가 그녀의 발을 차고 있었다.그런데도 김 선배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내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그녀는 그녀의 생각 속에 머물고 말 듯했다.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말이야.아,계획은 세웠니? 유성우 말이야.할아버지 사고 때문에 작년에 찍지 못했잖아.맞다,할아버지는 괜찮으시지?” 플레이트를 돌아본다.아무래도 좁은 플레이트 위에 넉 대의 카메라는 무리이지 싶다.사진 주변에 수차(收差)가 나올 것을 감안해야 할 듯하다.옆 카메라의 릴리즈가 들어올 것도 예상해야 할 판이다.사진 표면에 검은 줄이 생길 것이 뻔하다.필름을 스캔하고 이미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작품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망원경과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한다.카메라 한 대를 들어 망원경 앞으로 가져온다.신발 끈을 끄른다.망원경의 접안부와 카메라의 렌즈를 맞대고 신발 끈을 감는다.왜요,필요한 거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요 좀 보련다.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요.” 할아버지는 배낭을 걸어 놓았던 나무로 절뚝절뚝 다가간다.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크다.늦었구나! 지도교수가 내 어깨를 치고 홀을 빠져나갔다.몇 작품 전시하지 않은 전시회 치고는 꽤나 엄숙한 분위기였다.선배들의 사진전은 ‘우주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열렸다.‘끝의 향연’이었던 작년의 제목에 비하면 꽤나 성의가 없어 보이는 제목이긴 했다.사진전은 학교 도서관 입구의 홀에서 개방적으로 열렸다.얼마 안 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안드로메다은하나 플라아데스 성단 사진은 그 몇 안 되는 작품들까지 빛내기에 충분했다. “겸연쩍긴 하지만,그래도 차지 않은 달이 더 정이 간다니까.” 달은 고개를 젖힌 할아버지의 코끝에 붙어 있지만 바람에 끄덕이는 나뭇가지 탓에 자꾸만 명멸한다.‘달과 금성의 일주,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올림푸스 OM-1,45㎜ 광각렌즈…….’ 공책 크기만한 사진 속에 지평선을 향해 사선을 내리긋는 달과 금성의 일주가 힘차게 다가왔다.개똥벌레 일주 사진,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 “성우야.” 어느 결에 김 선배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나는 사진 속의 달과 금성을 머릿속에 그려진 반딧불과 견주어 보았다.미친놈!“늦었구나?” 김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선배는 자신의 사진을 한번 훑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횡성에 가본 적이 있군요? 나는 물으려다 말았다.실망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인화할 때도 온통 딴생각이었으니…….괜찮아요.개똥벌레 같지 않은데요,뭘.정말 괜찮아요.나는 김 선배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입아귀를 부풀렸다. “괜찮으면,너 가질래? 지금 가져가도 돼.” 김 선배가 조용히 물었지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때부터 김 선배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그녀는 홀 주위를 돌기만 할 뿐이었다.나는 김 선배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김 선배는 ‘개똥벌레의 일주’가 놓인 이젤을 무려 다섯 번이나 거치면서도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나는 그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고 되뇌기만 했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어!” 김 선배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돌연 도서관을 빠져나갔을 때에도 내 입 속에선,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바다뱀자리와 큰개자리의경계선 부근에 섬광이 스친다.지평선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한참 만에 나타난 녀석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다.기대를 많이 한 탓이다.플레이트 앞에 선다.50㎜ 표준렌즈를 광각렌즈로 교체한다.필름을 빼내면서 웬일인지 작품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46도 화각으로 유성을 잡는다는 것이 무리이지 싶었다.새 필름으로 갈아끼운다.이번엔 초점비에 따라 4분에서 8분씩 노출을 주기로 한다.버름했던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망원경으로 다가간다.경통에 키스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카메라로 눈을 가져다댄다.잘 보여? 힘없는 목소리로 김 선배가 물었다.오늘따라 잘 잡히지 않네요.횡성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불안했다.달의 상을 또렷하게 끌어오는 것마저 힘에 부칠 정도로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잘 안 되니? 김 선배는 까치발을 하면서 재킷 주머니에 손을 꼭 찔러 넣었다.천문학도 아닌데 왜 그렇게 쩔쩔매? 천문학이면 괜찮게요? 이건 완전히 막노동이니…….안 되겠어요.카메라 좀 가져다 줄래요? 그냥 찍어야 할 것 같아요. “왜,내가 있어서 그래?” 카메라를 받아들려고 했지만 김 선배는 잠시 악력을 썼다.카메라가 중요해,내가 중요해? 나는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장난스레 되물었다.선배는 아빠가 좋아요,엄마가 좋아요? 김 선배가 갑자기 카메라를 놓아 버리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렸다.두 시간 동안 노출할 거니까 지겨워도 참아요.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셔터를 누르자,김 선배가 대뜸 딸꾹질을 토해냈다.나 몰래 뭐 훔쳐 먹었어요? 나는 배낭으로 다가가 보온병과 녹차 티백을 꺼냈다.자,마셔요. “자연현상이라는 게 그 자체로 인간에게 많은 감상을 주는 거 같아.” 김 선배에게 녹차가 담긴 잔을 건넸다.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때론 인간을 징벌하기도 한다는 점이죠.김 선배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래,맞아.때론 징벌하기도 하지.그걸 피하는 방법은 뭘까? 나는 김 선배를 돌아보았다.피할 수 없어요.다만,치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답일 뿐이죠.감상만 쫓아가지 말아요,제발! 그러다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징벌을 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뱉어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긴 한숨으로 대신했다.프로키온,외로운 별이야.김 선배는 감상에 빠지고 있었다.그녀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연거푸 그려댔다. 김 선배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그녀가 대뜸 일어섰다.우리 그만 내려가자.나 너무 피곤해.나도 모르게 김 선배를 쏘아보고 있었다.피곤하다니요? 올라온 지 고작해야 한 시간 지났는데.노출 끝내려면 적어도…….김 선배는 기필코 가야 한다는 표정이었다.그녀의 눈을 다시 한 번 뚫어지게 쏘아보았다.일단 내려가자.김 선배는 무턱대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선배님,지금! 김 선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선배,이건 반칙이에요.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간다는 건…….저따위 별들이야 언제라도 볼 수 있어! 그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 미안해,그냥 내려가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성우야,넌 여기가 어디 같니? 아까부터 유심히 살펴봤는데,아무래도 이상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할아버지가 묻는다.주위를 둘러본다.내 눈엔 그저 낮은 산언덕으로만 보인다.무슨 겁을 주시려구요? “모르겠니? 난 아무리 봐도…….” 안 갈 거예요? 김 선배는 ‘횡성여관’ 앞에 섰다.그녀는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여관이라는 글자에서 ‘관’자의 네온사인이 끔벅이며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돼요.빨리 가요,선배! “나…….나,여기 예약했어.” 예약요? 여관도 예약이 돼요? 응,오래 전에…….할아버지 손끝에서 라이터 불꽃이 번뜩인다.깊은 고랑이 팬 이마 위에 돌연 플라아데스 성단이 나타난다.영묘한 빛을 산란하는 산개성단.할아버지는 담배를 문다.성단이 단박 사라진다.담배! 손전등을 켜고 할아버지를 향해 불빛을 겨눈다.담배요!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소리가 맞은편 산허리에 부딪힌다.어이없이 큰 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툭 불거진다.죄송해요,전 다만……. “다시 한 번 비춰보거라…….아무래도 무덤자리 같은데.”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펴고 팔을 뻗어 허공에 둥그런 원을 그린다.손전등 불빛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간다.어느새 이슬이 맺힌 언덕 주위가 불빛에 번뜩인다. “그래,맞다.무덤자리가 확실해.둔덕이 좀 진 곳이 있잖니? 오래 돼서 다 깎여 내려갔지만 그것이 봉분이고…….” 할아버지는 이번에 두 팔로 허공을 감싸는 시늉을 한다. “양쪽의 활이 엉성하게나마 살아 있잖니.저 봐라,가지가 이리저리 벌어지긴 했지만 묘목도 있잖아.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다시 주위를 비추어본다.엉성한 이팝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그루씩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을 좀 쓰지,죽어서도 한이겠구먼.” 네,그런 것 같네요.할아버지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고개를 든다.때를 맞추어 북두칠성의 국자 옆으로 상당히 밝은 유성이 떨어진다.준비해 두었던 커트필름으로 모든 카메라의 필름을 교체한다.하늘은 등갓이 손톱에 찢긴 순간처럼 번쩍 발한다.긴 유성의 꼬리가 눈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긴 궤적을 남긴 유성은 할아버지가 등진 산의 허리춤에 박히면서 소리 없이 부서진다. 망원경 접안부에 맞댄 카메라의 필름도 커트필름으로 교체한다.망원경과 카메라가 불안하게 맞대어져 있다.상이 선명하지 않잖아! 자,다시 해보자.김 선배가 내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처음엔 다 그런 거야.심호흡하고 다시 해봐! 천천히! 여자 다루어본 적 있을 거 아니야! 그래,천천히 렌즈를 돌리면서…….상을 잡아야 사진이든 뭐든 나올 거 아니야! 다시,다시! 신발 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 상이 선명해지도록 접안렌즈를 천천히 조정한다.무한대를 응시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피하려면 파인더를 보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그래,그래야 한다.파인더에 들이댄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아랫입술을 꼭 깨문다.다시 상이 가능한 한 선명할 때까지 망원경 접안렌즈의 초점을 맞춘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댄다.전망이 별로 감동적이지 못하다.다시 망원경의 초점을 정밀하게 맞춘다.들어온다.선명해진다.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고 최대한의 노출을 유도한다.긴장이 밀려온다.검지에 힘을 주고 셔터를 누른다.순간 내 행동에 대한 반감 섞인 생각이 스친다.우주는 가만히 있어도 가슴에 소지할 수 있다는.그것 봐,하면 되잖아.어,언제 왔어요? 김 선배가 남자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나는 스스로 거역하고 있었다. “가만,그러고 보니,내가 죽은 이 위에 버릇없이 앉아 있었네 그려.” 할아버지는 승창을 들고 망원경 쪽으로 다가와 앉는다.배낭으로 다가가 녹차 티백과 두유를 꺼낸다.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간다.꼭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좋으신 할머니 같던데.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차갑지만 폭신한 낙엽방석이다.녹차가 담긴 컵을 가볍게 감싸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영묘하게 빛나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동쪽 하늘을 호령하면서 지평선 위에 드높이 떠 있다.궁수자리의 남은 마지막 밝은 별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켄타우루스와 남십자가자리의 별들 그리고 에라다누스강자리의 아케르나르가 남쪽 하늘에 깊이 박혀 있다.할아버지,돌아가는 길에 온천욕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니다.온천은 무슨…….” 들추어진 할아버지의 바짓부리를 정리해드린다.차갑고 딱딱한 의족이 손끝에 느껴진다.할아버지가 내 어깨 위에 천천히 손을 얹는다. “힘들여서 만나봐야 게 잡아 물에 넣는 꼬락서니지.안 그러냐,성우야?” 죄송하지만,삼백이호실로 방 하나 더 주세요.돈을 지불하고 김 선배의 뒤를 따랐다.층계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벌건 융단을 뒤덮고 지루하게 이어졌다.관측장비가 무거운 탓인지도 몰랐다.삼층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김 선배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냈다.미안해,괜찮아질 거야.나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나는 그녀가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선배와 나는 삼백일호와 삼백이호 앞에 나란히 섰다.선배의 옆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그녀는 문을 향해 다시 한 번 딸꾹질을 토해냈다.괜찮아,정말이야.그녀에게 열쇠를 건네고 문손잡이를 돌렸다.꼭 자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요.더군다나 차도 있는데…….김 선배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목에 걸린 호박을 떼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짐짓 어색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미안해…….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아.무엇이든 오래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기억이든뭐든…….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호박을 얹어놓고 꼭 쥐어주었다.호박이야.발트해의 상징이래.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직접 가서 캐보려구…….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해 연안 도시라는데.주 이름이…….아주 긴 이름이었는데……. 무척이나 밝은 대화구가 눈에 들어온다.사방이 일순 밝아진다.느낌이 좋다.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으로 다시 여러 개의 유성이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곧 큰곰의 머리 부분으로도 유성이 떨어진다.유영하는 연어의 등지느러미처럼 은빛을 산란하며 하늘을 가른다.제법 공격적이다.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쾌감이 전해진다.맞아,포어포메른주였어.독일의 북동부,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망원경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대자 동전 크기의 유성이 망원경 안으로 날아온다.몸이 반사적으로 꺾인다.조금만 참으세요,할아버지.이것만 찍으면 다 되니까.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카메라에 키스한다.너만 믿으마.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할아버지 등뒤로 다가간다. “그놈의 미련이 문제라지…….성우야,등나무집 할머니가 만나는 주겠지?” 나는 할아버지 등뒤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때마침 유성의 꼬리가 할아버지의 긴 하품 소리를 따라 하늘에 은회색 칼날을 하늘에 긋는다.뒤이어 서너 개가 더 떨어진다.지평선 어딘가에 떨어졌을 유성의 잔상이 오래도록 눈 속에 남는다.무덤 주위를 둘러본다.하필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호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곳이 한때는 슬라브족의 요새였다는 거야.맞아,슬라브족의 요새.한자동맹이란 것도 그곳에서…….엉터리 수작 말아요! 입이 열릴 뻔했지만 참았다.내 손으로 호박을 채취하고 싶은 게 꿈이야.고대 생물이 들어 있는 호박 말이야.난…….김 선배는 말을 멈추고 문손잡이를 잡았다.잠깐만요! 김 선배는 여관 복도가 울릴 만큼의 내 부름에도 놀라지 않은 듯했다.김 선배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눈망울에 작은 프로키온이 나타났다.우는 거예요,지금? 그녀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이거요,잘 구경했어요.아무리 찾아도 개똥벌레는 없던데요.나는 돌돌 만 ‘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을 점퍼에서 빼내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나,잠깐 약국에 좀 다녀올게.기다리지 말고 자.” 김 선배는 사진을 받지 않았다.나는 호박과 돌돌 만 사진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말해줘요! 아니야,내가 갔다 올게.먼저 자고 있어.그녀는 이미 층계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나는 슬라브족도 한자동맹도 아닌,김 선배가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만을 알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이 다시 시작이다.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낙엽 더미가 굴러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흡사 융단이 말리는 듯하다.굴러간 양만큼의 낙엽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할아버지의 발 아래 펼쳐진다.그믐달로 날아간 낙엽들이 한점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다.주머니에 손을 넣는다.호박이 느껴진다.호박 속에 갇혀버린 것은 나일지 모른다.손님,삼백일호 손님,안에 있어요? 복도 끝,창유리를 통해 어슷하게 비쳐든 새벽의 푸른 기운이 물 위에 떠가고 있었다.발트해,삼백일호 문 아래로 차가운 해수가 밀려나오고,나는 그 위에 밤새 쥐고 있던 호박을 떨어뜨렸다.점벙! 발끝으로 밀려온 해수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김 선배는 결국 호박을 캐러 떠났다.손님,손님! 이봐요! 하늘을 올려다본다.동쪽 끝에 겨우 고개를 내민 시리우스에 손가락을 찍는다.천천히 베텔게우스와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 옮긴다.다시 시리우스로 손가락이 이동하지만 그만 손가락은 가던 길을 멈추고 만다.나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 없는 모양이다.곧 겨울이 찾아올 테지만 그때에도 삼각형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관측일지를 꺼내든다.11월19일,사자자리 감마성 부근을 복사점으로 20여 개의 유성 출현.30년 후에는…….호박을 꺼내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간다.로스토크,그녀는 결국 그곳에 가고 없다.
  • [오픈 코리아-소통하는 사회 만들자]1부 건강정치 원년으로 (1)KSDC 총선관련 여론조사

    ■여론조사 총평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민주주의가 시민에 의한 정치(by the people)라면,선거는 바로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따라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질을 결정짓는 척도가 된다. 선거를 통해 정부의 정당성이 부여되고,적법성(legitimacy)이 부여된다.선거는 정치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선거는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의 주인이 되게 한다.선거가 다가오면 정치의 객체였던 유권자가 정치의 주인자리를 되찾게 된다. 지난 16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우리 국민은 정치의 주체에서 다시 객체로 전락했다.그동안 각종 정치적인 부정과 정치가들의 말장난과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한숨도 쉬어 보고,분통도 터트리고,울분도 삭여 왔다.이제 이러한 정치가와 정당을 심판할 수 있는 순간이 다가 오고 있다. ●우리당 지지도 따라 결정적 영향 그러면 우리 유권자들은 어떻게 이러한 정치적 주권을 행사해야 하는가? 이번 17대 총선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노무현 정권이 수립된 후 1년 반이 지나서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중간 평가의 성격을 지닌다.소수정권으로 출발하여 야당이 지배하는 의회와 마찰을 빚어 왔으며,대통령은 자신의 신임투표를 제기했고,불법선거 자금문제로 정계은퇴까지 제기한 상태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에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중대한 선거이다. 또 역대선거와 달리 오는 총선에서는 유권자가 두 표를 행사하게 된다.한 표는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에게,한 표는 비례대표를 선출하기 위해 정당에 투표하게 된다.열린우리당이 소선거구에서 받는 표보다 전국선거구에서 받는 표가 적을 경우 노 정권은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같이 중대한 의미를 지닌 선거이기 때문에 17대 총선은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선거가 되어야 한다.우리 국민은 현재 정당과 정치가에 대해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우왕좌왕 갈지자를 걷는 정책,불법선거 자금으로 만신창이가 된 정당과 정치가.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대통령의 발언,위축된 경기로 고달파진 삶으로 보통사람은 선거에 불신감을 표시하고 있다. 또 선거 때마다 천문학적인 불법 선거자금 수수와 살포로 국민은 선거자체에 대해 혐오감을 나타내 이번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10%가 다가오는 국회의원선거에 절대로 투표하지 않겠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2000년 총선 투표율 57.2%나 2002년 지방선거 투표율 48.8%보다 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을 가중시키는 작태가 또 하나 있다.선거가 다가오는데 선거의 규칙을 정하는 선거법조차 정해진 기일내에 만들지 못하고 정당끼리 고성과 육탄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는 국민들의 심경은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러한 한탄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하여서는 이번 총선만큼은 가장 깨끗한 선거가 되어야 한다.타락과 불법을 추방하는 선거가 되도록 국민 모두가 나서야겠다. ●불법행위 고발 이어져아 법을 어길 때는 가차 없이 선관위에 고발하도록 해야 한다.유권자도 후보로부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수준 높은 시민이 되어야 한다.법을 어기는 후보,돈을많이 쓰는 후보는 선거에서 단호히 추방해야 한다. 선거가 선거로서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정당이 유권자들에게 정책을 택하도록 차별화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그런데 우리의 정당들은 아직까지 차별화된 정책을 유권자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무엇을 보고 정당이 공천한 후보와 정당을 선택하라고 하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각 당이 차별화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유권자들은 또다시 지역을 보고 투표하게 되며,지역감정을 없애겠다는 정당의 구호는 공염불이 될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미래와 질 높은 민주주의 수립의 문제는 결국 우리 유권자들이 어떻게 정치적 주권인 표를 행사 하느냐에 달려 있다.냉소주의와 비탄과 울분에만 머물지 말고 법을 어기는 후보,깨끗하지 못한 후보,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후보,철새정치인 모두를 주인의식을 갖고 내 한 표로 심판하자. ■공명선거 어떻게 우리 사회는 지금 대선자금,측근비리 등으로 총체적 혼란에 빠져 있다.우리가 선거 때마다 겪어온 심각한 선거후유증은 비정상적인 선거자금의 조성과 유통을 둘러싸고 야기됐다.이러한 반복적인 현상은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불신을 증대시키고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져들게 한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흥미로운 사실의 하나는 응답자들이 공명선거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유권자의 의식변화를 지적하고 있는 점이다(41.1%). ‘유권자의 의식변화’란 불법선거 운동을 단호히 거부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신고,고발하는 행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또한 불법선거운동을 하는 후보자나 정당에 대해 표로서 응징할 수 있는 행태이기도 하다.많은 응답자들이 유권자의 의식변화를 지적하고 있다는 것은 공명선거가 선거법만을 가지고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행태변화가 보완적으로 작용할 때만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권자 변화없이 공명선거 불가능 공명선거를 위해 유권자의 의식변화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은 1992년 26.6%,1996년 52.1%,2000년 40.2%로 나타났다.문민정부 출범 이후 유권자들의 의식변화가 공명선거를 위해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급상승하고 있다.이는 국민 스스로가 변하지 않고서는 민주적 정치과정을 완성할 수 없다는 성숙된 시민의식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유권자의 의식변화 다음으로 많은 응답자들이 후보 및 정당의 선거법 준수(30.7%)를 들고 있다.이는 한국의 선거풍토가 불법·탈법으로 만연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아무리 좋은 법일지라도 그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사문화되어 공정한 규칙으로서의 실효성을 잃게 된다. 불법·탈법 선거에 의한 승리는 참다운 승리가 될 수 없다.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고 승리했다는 것은 정권차원의 정통성이 없음을 의미한다.선거에서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지키지 않고서는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정치적 혼란을 비켜가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사범의 단속과 처벌 강화를 지적한 응답자는 약 7%에 이른다.선거범죄의 공소시효는 6개월이다.그리고 선거범의 재판기간은 2000년의 선거법개정에서 강행규정으로 제1심은 6개월,제2·제3심이 각각 3개월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사법부가 선거범죄의 폐해가 지대함을 인식하여 재판기간을 엄수하고 엄정한 처벌을 하여야만 선거법을 준수하는 풍토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중앙선관위의 활발한 활동(4.9%),언론의 감시활동 강화(4.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최근 선거법 개정에서 선관위의 예방 및 감시활동을 무력화시키려는 정치권의 시도가 있었다.이는 국민의 의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위험한 발상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당 선호도 한나라당이 총선 과정에서 현역 의원들을 대폭 물갈이한 뒤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당명을 바꾸는 등 제 2의 창당작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민주당도 최근 새로운 지도체제를 선보였으며,열린우리당은 1월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를 경선한다. 이같은 일련의 정치 이벤트는 정당 이미지와 정당 선호를 대폭적으로 강화하여 총선에 승리하기 위한 전략이다. ●한나라당 좋아하는 비율보다 싫어하는 비율 높아 이번 조사에서는 기존의 여론조사에서는 없었던 일반 국민의 정당 선호도를 심층분석하였다.“현재 어느 정당을 가장 좋아하십니까?”라는질문에 대해 한나라당 15.9%,민주당 12.1%,열린우리당 11.6%,자민련 1.1%,민주노동당 1.5%로 나왔다.“좋아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가장 많아 51.3%였다. 한편,“현재 어느 정당을 가장 싫어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26.0%,민주당 6.7%,열린우리당 11.4%,자민련 2.5%,민주노동당 0.5%순이었다.“싫어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도 42.1%였다. 한나라당의 경우 싫어하는 비율이 좋아하는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반면,민주당은 좋아하는 비율이 싫어하는 비율보다는 훨씬 높았다.한편,열린우리당은 좋아하는 비율과 싫어하는 비율이 거의 비슷했다.이러한 수치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혐오하는 정당으로 한나라당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연합공천을 통해 선거 연합을 구축할 경우,반(反) 한나라당 결집효과가 증폭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열린우리당 좋아하는 비율 및 싫어하는 비율 비슷 한나라당을 선호한 사람 중 58.5%가 가장 싫어하는 정당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적했고,34.9%가 민주당을 지적했다.반면,열린우리당을 선호한 사람중 83.0%가 가장 싫어하는 정당으로 한나라당을 지적했고,9.6%만이 민주당을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내년 총선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대결구도가 될 것”이라는 돌출 발언을 했는데,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양자구도를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민주당을 선호한 사람 중 79.5%가 가장 싫어하는 정당으로 한나라당을 지적했지만,약 16%는 열린우리당을 지적했다.이러한 결과는 민주당을 선호하는 사람 중 민주당을 탈당한 열린우리당의 배신 이미지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유권자 새정치 갈망 이번 조사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이 다시 출마한다면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43.1%가 투표하지 않겠다고 응답,현역의원에 대한 유권자의 높은 불만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투표하겠다고 응답한 유권자는 19.6%에 불과하며,나머지 37.3%는 응답하지 않았다.특히 이러한 현역의원에 대한 불만은 남녀·세대·학력·지역에 상관없이 사회 전반에 골고루 확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역의원에 대한 유권자의 높은 불만은 예상했던 결과이다.대선자금을 둘러싼 각종 비리가 폭로되는 한편,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과 국회가 서로 팽팽히 맞서 국정운영이 순탄치 못했기 때문이다.이러한 조사 결과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기존 정당들이 17대 총선에서 대폭적인 공천 물갈이를 추진하고 있는 분위기가 무관하지 않다. ■지역주의 사라질까 정당 지지율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지역 변수였다.한나라당의 경우 서울(14.2%),인천·경기(14.5%),대구·경북(20.5%)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그리고 광주·전라에서는 매우 낮은 지지율(1.8%)을 기록하고 있다.민주당의 경우는 예상대로 광주·전라에서 무려 23.9%라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대구·경북(4.9%) 및 부산·울산·경남(3.8%)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열린우리당은 대전·충청(13.5%)과 부산·울산·경남(13.8%)에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반면 서울(5.3%),대구·경북(5.7%)에서 약세를 보였다. 한나라당이 영남에서,그리고 민주당이 호남에서 강세를 나타낸 것은 과거의 지역주의 선거와 관련,충분히 예상돼 왔다.또한 열린우리당이 대전·충청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은 것도 신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설명이 가능하다.특기할 만한 발견은 서울에서의 한나라당의 강세와 열린우리당의 약세,그리고 부산·울산·경남에서의 한나라당의 약세와 열린우리당의 놀라운 약진이다. ■노무현 투표자 향방 16대 대선에서 이회창에게 투표한 유권자 중에서 61.1%가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응답했다.민주당(4.3%),열린우리당(8.6%)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응답자는 매우 적었으며,표를 던질 정당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도 24.1%나 되었다. 반면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는 17대 총선에서는 민주당(30.9%)과 열린우리당(28.1%)으로 거의 반반으로 나누어질 것으로 보인다.둘을 합하면 59%로 이회창 투표자의 한나라당 지지율인 61.1%와 비슷한 수치이다.반면,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응답한 유권자는 6.8%에 불과했으며,투표할 정당이 없다는 응답자도 28.9%에 달했다. ■후보 평가기준 변화 다가오는 17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후보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고 답한 것은 이념과 정책(48.5%),인물(30.0%),소속정당(9.5%),그리고 지역연고(5.3%)의 순이었다.이념과 정책을 지적한 유권자가 많은 것은 다분히 모범답안을 제시하려는 응답자의 경향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마찬가지로,지역연고를 지적한 응답자가 적은 것도 지역연고가 담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보다 의미 있는 발견은 인물을 기준으로 투표하겠다는 응답자가 상당수 있었으며,그 중에 절반은 인물됨에서도 도덕성의 측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인물을 기준으로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유권자 중에서 46.7%가 도덕성을,21.7%가 경륜 및 경험을,17.7%가 참신성을,그리고 11.7%가 개혁성을 인물됨의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생각하였다.도덕성이 다른 요인보다 두배 이상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는 것은각종 비리 및 정치 부패 척결에 대한 유권자의 강력한 요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느당에 투표할까 “17대 총선에서 어느 정당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13%가 한나라당,9.5%가 민주당,그리고 9.6%가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답했다.자민련은 0.6%,민주노동당은 0.8%,기타 정당은 1.2%를 기록했다.또 조사대상자의 15%가 ‘없다’라고 응답,기존 정당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한편 50.3%는 응답을 하지 않아,아직도 많은 유권자가 부동층으로 남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요인별로 정당 지지율을 분석해 보면,먼저 여성보다 남성이 상대적으로 열린우리당을 많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연령별로는 40대와 50대에서 한나라당 지지가 높은 반면,20대와 30대에서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았다.민주당은 세대별로 별 차이 없는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선거 판세 전망 정당태도의 선거 효과를 보다 심층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정당에 대한 선호와 혐오를 두 축으로 하여 4가지 ‘정당 태도 유형’을 분류했다. 제1유형은 좋아하는 정당과 싫어하는 정당을 모두 갖고 있는 ‘정당 차별 인식형’(30.3%)이다.이 유형에는 속하는 사람들은 정당에 대한 분명한 선호(preference order)가 있으며 20대(38.1%),광주·전라(33.6%),대전·충청(33.7%) 등 특정 지역과 특정 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2유형은 좋아하는 정당은 있지만 싫어하는 정당은 갖고 있지 않는 ‘일방적 정당 선호형’(12.4%)이다.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은 특정 정당에 대한 순응주의 투표를 보이는 경향이 많다. 충청(12.4%)과 호남(13.3%)보다 대구·경북(16.4%)과 부산·울산·경남(15.1%) 등 영남권에서의 비율이 높은 것이 특색이다.이 지역에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중 어느 정당에 순응투표가 이루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제3유형은 싫어하는 정당은 있지만 좋아하는 정당은 갖고 있지 않는 ‘일방적 정당 혐오형’(17.5%)이다.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은 특정 정당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 경향이 강하다.서울(20.45),경기·인천(20.6%)등 수도권지역에서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제4유형은 좋아하는 정당도 없고,싫어하는 정당도 없는 ‘정당 무관심형’(39.8%)이다.이 계층은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적은 편이다.서울(41.3%)과 강원(56.7%)지역에서 높게 나타났다. 특히 광주·전라(40.7%)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여 정권창출에 성공했지만 민주당이 제2야당으로 전락한데 따른 심리적 충격과 허탈감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수도권에서 제3유형과 제4유형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과 연계해 볼 때 어느 정당이 이 지역에서 돌풍을 일으켜 이 유형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낼지가 최대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열린우리당,민주당 3강구도 가능성 높아 중요한 것은 정당태도 유형과 투표율간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제1유형과 제2유형의 경우,‘꼭 투표할 것’이라는 비율이 각각 71.4%와 72.2%로 높았지만 제3유형은 55.3%,제4유형은 46.1%로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제1유형의 경우,제17대 총선예상투표정당이 한나라당(35.0%),민주당(23.5%),열린우리당(29.6%),자민련(2.2%),민주노동당(2.2%),지지정당없음이 6.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러한 조사결과는 기존의 예상과는 달리 다가오는 17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열린우리당,그리고 민주당 세 정당 간에 치열한 접전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 방법·필진 이번 조사는 서울신문사가 한국선거학회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공동으로 실시했다.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전국의 만 20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전화통화로 이뤄졌으며,95% 신뢰수준에 오차는 ±3.1%이다.조사에 참여하고,기사를 집필한 학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어수영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선거학회 회장,미국 미시간대 정치학박사 ●이영란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한국선거학회 부회장,서울대 법학박사 ●이남영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KSDC 소장,미국 아이오와대 정치학박사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KSDC 부소장,미국 아이오와대 정치학박사 ●김욱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선거학회 연구이사,미국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이명진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한국선거학회 연구이사,미국 아이오와대 사회학 박사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선거학회 이사,미국 미시간주립대 정치학박사
  • 피구만 와 준다면/맨체스터 Utd·첼시 영입 경쟁

    잉글랜드 프로축구(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가 세계적인 미드필더인 포르투갈 국가대표 루이스 피구(사진·30·레알 마드리드) 영입에 발벗고 나서 화제다. 축구전문 사이트 ‘사커리지’는 스포츠신문 마르카 등 다양한 소식통을 종합한 결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가 프리미어리그에 관심을 보인 피구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올해 들어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 특급스타들을 끌어모은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피구를 내년 여름 영입한다는 목표 아래 레알 마드리드에 일찌감치 이적료까지 제시하며 적극 공세를 펼치고 있다.간판스타 데이비드 베컴(레알 마드리드)의 공백이 아쉬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피구 쟁탈전’에 가세할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플로렌티노 페레스 구단주는 피구가 엄청난 팬들을 몰고 다니는 등 인기가 높아 다른 팀에 보낼 의향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피구는 움베르투 코엘류 한국대표팀 감독도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는 선수.피구는 최근 인터뷰에서 고국인 포르투갈로 돌아가 선수생활을 끝내기에 앞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 책꽂이

    ●한민족문화권의 문학(김종회 편,국학자료원 펴냄)미 일 중 러 등 해외 동포문학에 대한 연구 논문집.경희대 국문학과교수인 편자의 대학원 강의에 참가한 연구자들이 작성했다.지역별 한인문학 개관에 이어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2만8000원 ●황토 마당의 집(김태수 지음,실천문학사 펴냄)울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꾸준하게 시를 써온 시인의 네번째 작품집.거창 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장시 ‘그 골짜기의 진달래’를 비롯,역사의식이 담긴 작품들을 이야기하듯 술술 풀어낸다.6000원 ●콩깍지 사랑(추둘란 지음,소나무 펴냄)다운 증후군에 걸린 아들을 키우며 맛본 좌절과 희망,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발견하는 구수한 시골의 인정과 자연의 소중함을 담은 이야기 모음집.‘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실려 네티즌들의 호응을 받았다.8000원 ●옛 로망스(우선덕 지음,민음사 펴냄)76년 등단한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이혼한 뒤 자식을 키우는 주인공의 신산한 삶을 주제로 한 연작 5편과 중단편을 모았다.시점은 달리하지만 등장인물은 맞물리는 연작에서는 일상의 고단함을 들려준다.9000원 ●신원 미상 여자(파트릭 모디아노 지음,조용희 옮김,문학동네 펴냄)1978년 공쿠르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쓴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표작가가 99년 발표한 장편.막 성인이 된 세 여성의 암울한 이야기를 절망적 분위기에서 들려준다.8500원 ●베테랑(프레더릭 포사이드 지음,이옥용 옮김,동방미디어 펴냄)‘자칼의 날’을 쓴 국제적 스릴러 작가의 작품집.퇴역 군인의 살해범을 기소하려는 형사와 풀어주려는 변호사의 대립 구도를 다룬 표제작 등 3편의 중편에서 혼란한 세계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9500원 ●메디쿠스(노아 고든 지음,김소영 옮김,해나무 펴냄)의학담당 기자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낸 신작 장편.런던 빈민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이 온갖 역격을 극복하면서 진정한 의사가 되는 과정을 다루었다.모두 3권,각 8800원
  • 책/마법사의 책

    나폴레옹은 1807년 조세핀의 요구에 못이겨 ‘카드점의 대가’ 노르망에게 자신의 손금을 보여줬다.노르망은 나폴레옹의 면전에서 그의 취향과 성향,가장 은밀한 성격상의 특징까지 낱낱이 밝혀냈다.나폴레옹과 조세핀의 유명한 이혼도 예언했다.나폴레옹은 조세핀에게 노르망의 예언을 모두 문서로 기록하도록 했고,그 문서는 경시청에 보관돼 있다.나폴레옹은 점쟁이의 말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그러나 나폴레옹은 이 예리한 통찰력의 여성이 마음대로 떠들고 다닐 경우 겪게 될 곤란을 우려해 그녀를 잡아 가뒀다.노르망은 나폴레옹 부부가 이혼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나폴레옹은 카드점과 점성학에 심취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컬티즘' 서구 문명의 원류중 하나 이러한 비학(秘學)의 유행은 오늘의 미국과 같은 첨단국가에서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미국인의 95%가 ‘과학문맹’이라고 주장한다.여전히 심령술과 강신술을 믿으며,점성술로 하루 운을 따지는 미국 사회의 비과학적인 삶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그렇다면비학은 오늘날 전혀 소용이 닿지 않는 사악한 학문인가.서구 문명의 사상적 원류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있지만,그 이면에는 마법ㆍ마술ㆍ연금술 등으로 대표되는 오컬티즘(occultism),즉 비학의 세계관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370여점 이미지 이용, 신비학 쉽게 풀어내 ‘마법사의 책’(그리오 드 지브리 지음,임산·김희정 옮김,루비박스 펴냄)은 그러한 비학의 유혹과 숭고한 두려움을 다룬 책이다.유럽 오컬티즘 운동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저자는 서구 신비학의 전통을 370여점의 이미지 자료들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유대교의 신화적 기원과 중세 유대학자들이 제창한 신비설인 ‘카발라’,비학과 현대과학과의 연관성을 살핀다. 비학은 19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이단시됐다.기독교는 신비스럽고 초자연적인 마술의 세계를 지칭하는 오컬트의 교의와 비법을 ‘저주의 주술’로 여겼다.하지만 많은 지식인들은 필수 교양으로 점성학을 공부했고 연금술을 논했다.템플기사단·장미십자회·프리메이슨 등의 비밀결사가그러한 비학을 전승했다.그 영향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단테·레오나르도 다 빈치·괴테·윌리엄 블레이크·조지 워싱턴·칸딘스키·토스토예프스키·T.S 엘리엇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쳤다.이쯤되면 비학은 우리의 무속신앙이나 도가사상처럼 서구인들의 무의식과 생활 속에 깊숙이 배어 있는 유구한 문화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마법사 이미지 즐겨 사용 비학에서 악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중세 문학에 종종 등장하는 악마는 인간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악마는 인간의 간절한 소망을 이뤄주는 대신 반드시 파멸적인 대가를 요구한다.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비롯해 서구 팬터지 소설의 주요한 모티프가 됐다.오늘날에도 마법사들이 즐겨 사용한 이미지를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예컨대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로고의 주인공은,머리는 여자이고 몸통은 새인 여신 ‘사이렌’을 나타낸 것이다.‘오디세이아’ 속의 사이렌처럼 사람들을 홀려 커피를 많이 사먹도록 하겠다는 뜻이 담긴 게 아닐까.반지의 제왕,해리포터,드라큘라같은 소설과 영화에서 보듯 마법의 세계는 현대 서구인들의 무의식과 생활 깊숙이 배어 있다.저자는 강신술,관상학,수상학,연금술,인체의 비례를 통해 본 점성학 등 마법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풀어놓는다.이 책은 기독교와 오컬티즘,고대와 중세,그리고 종교와 역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오컬트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시론] 증권집단소송법 환영

    그동안 미뤄왔던 모든 것을 터뜨리려는 듯이 연말이 되면서 연일 대형사건이 불거지고 있다.그 와중에 한가지 희소식이 눈에 띈다.증권집단소송법이 숱한 진통을 겪더니 마침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이 법의 통과가 반가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우선 우리나라에서도 주식투자를 통해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구제할 실질적인 수단이 생겼다는 점이다.SK글로벌의 대규모 분식회계,대형 주가조작,정치권으로 흘러드는 천문학적 숫자의 비자금 등 각종 사건에서 그 관련자들은 형사처벌을 받고,관련 기업은 행정제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형사처벌과 행정처벌이 그같은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를 본 소액주주들의 손해까지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주주들이 자신의 손해를 배상받으려면 주식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사람(주로 지배주주와 경영진들)들을 상대로 직접 별도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개별 주주들의 손해배상소송은 지금까지는 뾰족한 구제수단이 되어주질 못했다.대부분의 소액주주들은 보유주식 규모가 적고,소송을 하려 해도 혼자서 막대한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 그냥 체념하고 포기하기 때문이다.증권 불법행위로 조성된 수백억,수천억원의 자금은 결국 이와 같은 소규모 주식보유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의 총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그냥 체념하고 말 일이 아님에도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증권 집단소송법은 이런 다수 소액주주들의 고충을 해결할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현행 손해배상소송 제도에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모든 피해자가 직접 소송에 참여해야만 한다. 그러나 집단소송은 피해자 모두가 참여하지 않고 그 중 대표자만 소송에 나서고,나머지는 가만히 있더라도 자기는 빠지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한 그 소송결과를 모든 피해자와 골고루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획기적인 제도인 것이다.그리고 이런 종류의 집단소송제도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되는 것이다.이로써 증권불법행위로 인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소액 다수 주주들은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않고 집단소송을 통해 그 손해를 배상받으려 할 것이고,그런 소송을당하지 않기 위해 기업의 경영진과 대주주는 주가조작·분식회계 등 증권 불법행위를 함부로 하려들지는 않을 것이다.구호가 되어버린 기업의 투명한 경영은 그런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증권집단소송법의 제정을 그저 반기기만 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집단소송제도는 만들어졌지만 이를 실효성있게 활용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제약요건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자산 2조원 미만의 기업에서 불법행위가 가장 심한데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 시행시기를 2년이나 연장시킨 것은 큰 문제다. 과도한 소송비용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방안도 미흡하고,소송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주가가 비싼 대기업에 대해서는 사실상 소송제기를 어렵게 한 대목도 아쉽다.동일 소송대리인이 1년에 3회 이상 이 소송을 수행할 수 없도록 정한 규정은 위헌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증권집단소송법의 제정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힘없고 돈없는 다수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집단소송제도의 물꼬가 처음 트인 만큼 두 손 들어 환영할 만하다.새로운 질서는 바로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그동안 이 법의 제정을 위해 무수히 뛰어다닌 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송 호 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 군납업자 경찰조사중 자해 소동/‘TNT급 비밀’ 묻으려?

    군납비리의 추악한 이면이 드러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차관급인 국방부 산하의 현직 연구기관장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되는 등 혐의가 속속 드러났다.수사를 받던 군납업자가 경찰서에서 자해를 시도해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차관급 2명 추가 영장 22일 오전 10시쯤 서울 미근동 경찰청 특수수사과 2층 사무실에서 군납업체 M사 대표 최모(53·구속)씨가 필기도구로 왼쪽 눈 부위를 찌르고 책상에 머리를 들이받았다.최씨는 근처 적십자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자백할 것이 있다.’며 필기도구를 요구,건네주자마자 자해를 했다.”고 밝혔다.병원측은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날 오전 유치장에서 자신의 진술 때문에 국방과학연구소(ADD) 박용득(62·예비역 중장) 소장과 한국국방연구원(KIDA) 황동준(58·예비역 대령) 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는 소식을 듣고 자책감 때문에 자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밝혔다.최씨는 병원에서 “회식비로 돈을 준 것인데 두 사람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된다는 것을 알고 괴로워서 자결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씨가 다른 군 관계자에게 추가로 돈을 건넸는지를 강하게 추궁받는 과정에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해를 시도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차관급 인사 2명 영장 구속영장이 신청된 박씨와 황씨는 국방부 산하 대표적인 두 연구기관의 수장으로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박씨는 육사 22기로 11군단장,교육사령관,지상군작전사령부 창설 준비위원장 등을 거쳐 지난해 2월 국방과학연구소장으로 임명됐다.황씨는 육사 24기로 대령으로 예편했으며 국방연구원 부원장을 세 차례나 지냈을 정도로 군 무기체계에 정통한 전문가다. 이들이 돈을 받은 단서는 최씨의 회계장부와 비망록에서 발견됐다.최씨는 서류를 담아 정리하는 비닐 재질의 ‘클리어 홀더’속에 1만원짜리 신권을 100장씩 묶은 돈다발 10개를 넣은 뒤 서류봉투에 담아 건넸다고 경찰은 밝혔다.최씨는 M사 이사로 영입한 예비역 장성 두 명과 함께 박씨와 황씨를 만나 돈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지금까지 사법처리 선상에 오른 사람은 10명으로 늘어났다.이원형(57) 전 국방품질관리소장 등 6명이 구속됐고,2명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됐으며,1명은 불구속 입건,천용택 의원에게는 2차례 소환장이 발부됐다. ●어디까지 수사하나 경찰은 입건된 군납업자들의 출금계좌를 추적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전 한국레이컴 회장 정호영(49·구속)씨의 계좌 10개를 집중 추적하고 있다.이미 전·현직 군 간부 2,3명에게 금품을 준 단서가 포착됐다. 앞으로 남은 수사의 초점은 크게 두 갈래.밝혀진 군납 관련 뇌물은 ‘빙산의 일각’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천문학적 액수로 추정되는 무기도입 커미션의 본체는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인사비리와 허술한 감시체계 등 군 내부 문제의 수사도 병행될 전망이다. 장택동기자 tae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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