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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공화당 吳시장 집 앞 시위, 법·원칙 따라 대응”

    서울시 “공화당 吳시장 집 앞 시위, 법·원칙 따라 대응”

    2019년 광화문광장 천막 설치를 놓고 서울시와 소송전을 벌인 우리공화당이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자택 앞에서도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이에 서울시가 “법과 원칙에 따를 것”이라고 밝혀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23일 서울시에 따르면 우리공화당 ‘천만인 명예회복 운동본부’ 측은 지난 14일부터 오 시장이 거주하는 서울 광진구의 아파트 단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확성기와 마이크, 음악을 동원한 시위가 주말에도 벌어져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우리공화당은 2019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무효 등을 주장하며 광화문광장에 사용 허가를 받지 않고 천막을 설치했다. 서울시는 이를 강제 철거하는 과정에서 쓰인 1억여원에 대한 행정 비용을 청구했다. 우리공화당은 서울시에 이 비용을 자진 납부했다가 얼마 뒤 입장을 바꿔 ‘1억여원을 돌려 달라’며 소송을 제기해 법적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신선종 서울시 미디어콘텐츠 수석은 입장문을 통해 “우리공화당이 시장의 이웃을 볼모 삼아 극심한 소음 시위를 계속해도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대집행과 법정 다툼이 진행된 건 모두 전임 시장 때의 일”이라면서 “우리공화당은 소음과 억지 주장으로 이치에 닿지 않는 요구 사항을 관철하려 하면서 무리하게 박 전 대통령의 명예까지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취임 후 광진구 자택에서 출퇴근했던 오 시장은 이르면 다음달 한남동 ‘서울파트너스하우스’ 공관에 입주할 예정이다.
  • 우리공화당, 오세훈 자택 앞 시위…서울시 “주민 볼모삼지 말라”

    우리공화당, 오세훈 자택 앞 시위…서울시 “주민 볼모삼지 말라”

    지난 2019년 광화문광장 천막 설치를 놓고 서울시와 소송전을 벌인 우리공화당이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 자택 앞에서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서울시가 “법과 원칙에 따를 것”이라고 밝혀 양측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23일 서울시에 따르면 우리공화당 ‘천만인 명예회복 운동본부’ 측은 지난 14일부터 오 시장이 거주하는 서울 광진구의 아파트 단지 앞에서 8일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확성기와 마이크, 음악을 동원한 시위가 주말에도 벌어져 주민들의 민원도 빗발치고 있다. 우리공화당은 지난 2019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무효 등을 주장하며 광화문광장에 사용허가를 받지 않고 천막을 설치했다. 서울시는 이를 강제철거하는 과정에서 쓰인 1억여원에 대한 행정비용을 청구했다. 우리공화당은 서울시에 이 비용을 자진납부했다가 얼마 뒤 입장을 바꿔 ‘1억여원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하며 양측이 법적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신선종 서울시 미디어콘텐츠 수석은 입장문을 통해 “우리공화당이 시장 이웃을 볼모삼아 극심한 소음시위를 계속해도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대집행과 법정 다툼이 진행된 건 모두 전임 시장 때의 일”이라면서 “우리공화당은 소음과 억지 주장으로 이치에 닿지 않는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려 하면서 무리하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예까지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취임 후 광진구 자택에서 출퇴근했던 오 시장은 이르면 다음달 한남동 ‘서울파트너스하우스’ 공관에 입주할 예정이다.
  • 소상공인 점포에 새 옷을 ‘관악형 아트테리어 사업’ 시작

    소상공인 점포에 새 옷을 ‘관악형 아트테리어 사업’ 시작

    서울 관악구가 소상공인 점포개선을 지원하는 ‘2023년 관악형 아트테리어 사업’을 시작한다고 23일 밝혔다. ‘아트테리어’는 예술(Art)과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로 지역예술가와 소상공인이 협업해 가게 내외부의 공간개선부터 상품 브랜딩까지 소상공인 점포를 맞춤형으로 개선하는 사업이다. 구는 지역 문화예술가들의 일자리 창출과 다양한 경험 제공은 물론 가게별 특색을 살려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높이고, 침체된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9년부터 사업을 추진해왔다. 소상공인의 적극적인 참여와 호응으로 구는 해마다 지원 규모를 확대해왔으며, 지난해까지 총 1265개소 점포 지원해 지역예술가 407명이 사업에 참여했다. 지난해 만족도 조사 결과 참여 소상공인의 만족도가 90%에 달할 만큼 선호도가 매우 높았으며, 올해는 소상공인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더욱 새롭게 추진한다. 특히 점포의 일반 환경개선을 원하는 소상공인의 의견을 반영, 지역예술가 매칭 없이도 참여가 가능한 ‘비매칭 유형’을 신설해 수혜 대상을 확대했다. 디자인 개선 없이 기능적 환경개선을 원하는 소상공인까지 사업에 참여할 수 있으며, 디자인 개선에 적극적인 소상공인은 지역예술가와 매칭해 상생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또한 ‘안전관리 방안’을 강화해 지역예술가와 현장 작업자의 재해를 예방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간판, 천막 등 설치된 시설물에 대한 ‘하자보수 기준’을 마련해 사업 종료 후에도 일정 기간 사후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지원 대상은 가게 내‧외부 디자인과 환경개선을 희망하는 상시근로자 5인 미만의 관내 소상공인 매장형 점포 약 300개소이며, 점포당 지원 금액은 최대 150만원이다. 단 유흥주점, 프랜차이즈 및 체인, 동일‧유사사업 참여 점포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 신청 기간은 오는 3월 20일까지이며, 관악구 홈페이지를 확인한 후 신청서를 작성해 구비서류와 함께 방문(구청 4층 지역상권활성화과, 해당 동주민센터) 또는 이메일(hydeloon@ga.go.kr)로 신청하면 된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공고문을 확인하거나, 구 지역상권활성화과(02-879-5746, 5732)로 문의하면 된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올해 새롭게 달라진 아트테리어 사업으로 더 많은 소상공인을 지원하고자 한다”며 “앞으로도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추진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대구지하철참사 20년…생존자들 “눈앞 참혹한 잔상, 아직도 남아 있어”

    대구지하철참사 20년…생존자들 “눈앞 참혹한 잔상, 아직도 남아 있어”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0분. 대구지하철참사 생존자 류모(41)씨에게 이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군 입대를 앞두고 “노느니 돈이나 벌자”는 친구의 말에 따라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다. 그날도 지하철로 출근하던 길, 1호선 중앙로역을 지나던 전동차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벌어졌고 그때부터 눈앞엔 지옥도가 펼쳐졌다. 192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151명의 부상자를 낳은 참사는 18일로 꼭 20년을 맞는다. 20대 청년이 가장이 되고, 40대 장년은 어느새 환갑을 훌쩍 넘길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생존자들은 여전히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류씨는 “쾌활하고 밝게 생활하다가도 어느 순간 문득 불안해진다”며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안 좋은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가 수습된 지 몇 년이 지난 뒤에도 지하나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갇혀 있다는 느낌이 두렵고 싫어 지하철이나 버스를 잘 타지 못했고,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바로 폭발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선 상태가 오래 지속됐다. 류씨는 “몸을 다치면 수술하거나 고치면 되는데, 마음을 다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때는 몰랐다”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상을 치유하는 게 낯설고, 모두가 서툴렀다”고 돌아봤다. 어머니 잃은 아들 “유골 수습도 못해…아픔 현재진행형” 다른 생존자 정모(62)씨는 그날, 전동차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이러다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플라스틱이 녹는 냄새, 매캐한 공기와 자욱한 연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뒤에도 참혹한 잔상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정씨에게 그날의 기억은 “소나무의 옹이 같은 것”이다. 그는 “상처가 조금 아물긴 했지만, 완전히 없어지진 않더라.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거나 그 일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며 “아마 옹이처럼 평생 안고 갈 것 같다”고 했다. 20년 전 어머니를 잃은 유족 황모(54)씨에게도 아픔은 생생히 남아 있다. 처음 화재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는 “전동차 그 쇳덩어리가 불에 탈 수가 있겠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절에 간다던 어머니 소식이 그날 밤늦게까지 들려오지 않으면서 불안함은 공포로 변했다.현장이 전소된 탓에 신원 확인 작업은 더디고 지난했다. 사고 후 한 달만에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통해 유류품과 시신을 겨우 인도받았는데, 가족이 수습한 어머니 유골은 두개골과 허벅지뼈 일부뿐이었다. 황씨는 “유골이 남은 게 거의 없다 보니 휴지로 사람 형태를 겨우 갖춰서 관에 모셨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가족들이 다 그랬다”며 “처음 커다란 천막을 친 곳에서 유골을 확인하는데, 옆 천막에서 차례대로 울려퍼지던 오열과 통곡 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것 같다”며 말을 흐렸다. 이런 큰 고통 탓에 수년 간은 제사를 지내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얘기 자체를 꺼내지 못했다. 황씨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며 “그러다가 트라우마 치유 방법 중 대화하거나 글로 적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태원 분향소 갈등, 우리 때와 똑같다” 눈물 특히 생존자와 유족들은 2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고, 시민과 정부와의 갈등이 불거지는 것에 대해선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씨는 “대구지하철참사 이후 세월호, 핼로윈 이태원 등 사회적 참사가 계속 벌어졌는데, 어떻게 20년 전보다 대처가 더 엉망인지 모르겠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고 회피만 하는 게 더 상황을 악화시킨다. 사회가 더 발전하고 선진국이 되려면 시민들과의 신뢰를 쌓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위정자들이 정면 돌파하지 않고 상황을 축소하고,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밝혔다. 최근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서울광장에 설치한 분향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서울시와의 갈등에 대해서도 “우리 때와 똑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황씨는 “대구 참사 때도 참사에 대한 기록이나 백서가 없었고, 6년이 지나 만들어진 추모 공원은 ‘시민안전테마파크’라는 이름만 달았을 뿐”이라며 “사회적 참사를 다루는 정부의 대응이 20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앞서 반성했다면 조금은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 “한국인이세요?” 웃으며 손가락 하트… 아이들 꿈은 무너지지 않았다

    “한국인이세요?” 웃으며 손가락 하트… 아이들 꿈은 무너지지 않았다

    “지진 전에는 ‘아이폰13’을 갖는 게 소원이었지만 지금은 무너지지 않는 집을 갖고 싶어요.” 지난 13일(현지시간) 지진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인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에서 만난 시리아인 압둘라(14)는 “지진으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며 “당장의 꿈은 튼튼하고 안전한 집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란 천막으로 된 텐트 밖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실 차를 끓이고 있던 압둘라는 기자가 다가가자 눈을 반짝이며 “한국 사람이냐”고 먼저 물은 뒤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반갑게 인사했다. 예전에 학교에 한국인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손가락 하트를 가르쳐 줬다고 했다. 갑자기 닥친 지진으로 충격이 컸을 압둘라에게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고 묻자 “군인이 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멋있다고 생각했다”며 “시리아 사람으로서 튀르키예에 살면서 많은 도움과 은혜를 받았다. 저도 군인이 돼 튀르키예를 지켜 주며 튀르키예에 진 빚을 갚고 싶다”고 말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 수가 700만명을 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올 정도로 많은 아이가 부모를 잃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 고통받고 있지만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의연한 자세로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한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네질라(14)의 꿈은 의사다. 네질라 아버지가 지진 이후 이곳저곳을 다니며 구조물 잔해를 치우고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집이 무너지고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네질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텐트촌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모양의 놀이터에서 뛰어놀다가도 부모님이 부르면 자기 몸집만 한 생수 묶음, 기저귀 박스 등을 번쩍 들고 부모를 따라갔다. 친구들과 놀 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던 푸르칸(14)은 축구선수가 꿈이라고 했다. 달리기를 잘한다는 푸르칸은 ‘지진 때문에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지진 첫날에는 이런 큰 재난이 우리에게 닥쳤다는 게 너무 슬프고 믿기지 않아 충격이 컸는데 지금은 잘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셰이드(12)는 군인을 꿈꿨다. 지진 전에도 군인이 되고 싶었던 셰이드는 지진 이후 군인들이 질서를 잡고 대피소에서 이재민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는 모습이 멋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인들은 무서운 것 같으면서도 인사를 다 받아 준다. 나도 그런 군인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셰이드에게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이 그립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연락이 안 되는 친구도 있지만 죽었을 거라고 생각 안 한다. 대피할 때 휴대전화를 미처 못 챙겨 연락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 지진이 아이들 꿈까진 빼앗지 못했다…“군인이 돼 튀르키예에 진 빚을 갚겠다”[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지진이 아이들 꿈까진 빼앗지 못했다…“군인이 돼 튀르키예에 진 빚을 갚겠다”[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 “지진 전에는 ‘아이폰13’을 갖는 게 소원이었지만 지금은 무너지지 않는 집을 갖고 싶어요.” 지난 13일(현지시간) 지진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인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에서 만난 시리아인 압둘라(14)는 “지진으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며 “당장의 꿈은 튼튼하고 안전한 집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란 천막으로 된 텐트 밖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실 차를 끊이고 있던 압둘라는 기자가 다가가자 눈을 반짝이며 “한국 사람이냐”고 먼저 물은 뒤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반갑게 인사했다. 예전에 학교에 한국인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손가락 하트를 가르쳐줬다고 했다. 압둘라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수업이 끝나면 다 같이 컴퓨터 게임을 하며 놀았는데 그게 너무 그립다”면서 “지금은 학교가 더 무너져 언제 다시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갑자기 닥친 지진으로 충격이 컸을 압둘라에게 꿈을 묻자 “군인이 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멋있다고 생각했다”며 “시리아 사람으로서 튀르키예에 살면서 많은 도움과 은혜를 입었다. 저도 군인이 돼서 튀르키예를 지켜주며 튀르키예에 진 빚을 갚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는 시리아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게 압둘라가 그리는 미래다. 압둘라는 “군인이 되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며 “가족 모두가 지난 일주일 동안 물티슈로 몸을 닦으며 생활하고 있는데 얼른 물이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작은 소망을 말했다.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 수가 700만명을 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올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고통 받고 있지만,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의연한 자세로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카라만마라슈의 한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네질라(14)는 이불을 나눠주는 곳에서 혼자 서 있다가 어른을 데려오라는 군인의 제지로 삼촌을 모시고 온 뒤 다시 긴 줄을 서고 삼촌을 도와 이불을 옮겼다. 군인이 네질라에게 “정직하고 착하구나”라며 칭찬을 해주자 네질라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다”며 똑부러지게 답했다. 네질라는 “대피하다가 아버지가 콘크리트 조각에 눈을 다쳤다. 그 상태로 사람들을 구조하러 다니시는데 또 다칠까봐 걱정이 된다”며 부모님부터 걱정했다. 그는 “이 곳에서 얼마나 있어야 할 지 몰라서 그게 가장 힘들다”면서도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나아지면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네질라의 꿈은 의사. 아버지가 지진 이후 이곳 저곳을 다니며 구조물 잔해를 치우고 사람들을 돕는 봉사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지진으로 인해 한순간에 집이 무너지고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네질라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텐트촌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모양의 놀이터에서 뛰어놀다가도 부모님이 부르면 자기 몸집만한 생수 묶음, 기저귀 박스 등을 번쩍 들고 부모를 따라갔다. 친구들과 놀 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던 푸르칸(14)은 축구선수가 꿈이라고 했다. 달리기를 잘 한다는 푸르칸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면 미드필더로 뛰면서 공격을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지진 때문에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가장 친하게 지내던 학교 친구가 사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진 첫 날에는 이런 큰 재난이 우리에게 닥쳤다는 게 너무 슬프고 믿기지 않아 충격이 컸는데 지금은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진 이후 이틀 동안 잔해 근처에서 노숙을 했다는 바르쉬(14)는 “무너진 건물 옆에서 모닥불 켜고 천막 같은 곳에서 잤는데 잔해 사이로 시신이 보였다”며 “무서웠지만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 등 가족이 무사히 빠져나온 것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바르쉬는 ‘지금 가장 바라는 게 뭐냐’는 질문에 “방금 만든 따뜻한 케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걸 마음껏 먹을 수 있었을 때가 그립고 집에서 걱정 없이 잠 들던 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바르쉬의 롤모델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다. 그는 “원하는 걸 가질 수 있으려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학교를 갈 수가 없다. 이렇게 공부를 못하면 나중에 어른이 돼도 직업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그게 가장 불안하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셰이드는 군인을 꿈꿨다. 셰이드는 지진 전에도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지진 이후 군인들이 질서를 잡고 대피소에서 이재민에게 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모습이 멋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인들을 만나면 일부러 인사를 건넨다”며 “군인이 무서운 것 같으면서도 인사를 다 받아준다. 나도 그런 군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셰이드에게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이 그립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연락이 안 되는 친구도 있지만 죽었을 거라고 생각 안 한다. 대피할 때 휴대전화를 미처 못 챙겨서 연락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 참사현장 달려간 한식당 사장님 “정착 때 받은 도움, 돌려줄 때”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참사현장 달려간 한식당 사장님 “정착 때 받은 도움, 돌려줄 때”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튀르키예에서 8년째 한국 음식점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인 김아람솔(31)씨는 지진 발생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짐을 챙겨 지진 피해 지역인 하타이주 안타키아로 갔다. 김씨 아내가 안전을 우려해 만류했지만 “돕고 싶다”는 김씨를 막아서진 못했다. 김씨가 함께 갈 직원을 모집했는데 30명 이상이 자원했다고 한다. 김씨는 음식점 운영과 안전 등을 고려해 11명의 최소 인원을 꾸렸다. 김씨 팀은 매일 1000인분씩 만들어 지진으로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나눠줬다. 주민들은 긴 줄을 서서 따뜻한 한끼를 받아갔다. 경황이 없을텐데도 김씨에게 초콜릿, 과자 등 음식을 주며 감사 인사를 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봉사를 끝내고 이스탄불로 복귀하기 전 아다나 공항 근처에서 만난 김씨는 “튀르키예인 도움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이 감사함을 돌려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돈이 없어 며칠 간 라면으로 한 끼를 떼우던 시절 평소 친하게 지내던 튀르키예 지인 ‘아슬란’이 제 모습을 보고 3000달러를 그냥 주고 갔다. 그 이후 항상 베풀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 하타이주에서 열린 ‘하타이 엑스포’에 참석한 적이 있어 이번 참사가 더욱 가슴 아프다고 했다. 당시 한식 부스를 운영해달라는 초대를 받고 처음 하타이 지역에 방문한 김씨는 시리아 국경과 맞닿아 종교적 색채가 강하고 보수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하타이 주민들이 개방적이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란 걸 깨닫고 애정이 갔다고 한다. 기억 속 하타이는 밝았지만 김씨가 하타이를 다시 찾았을 땐 기억과 정반대로 건물이 파괴돼 있고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돼버렸다.그 중에서도 하타이에서 3㎞ 정도 떨어진 시외에 살다가 남편의 왼발 염증을 치료하러 온 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위급한 병은 아니었지만 아주머니는 빨리 치료를 하자며 하타이의 한 병원에 남편을 입원시켰는데 하필이면 이튿날 지진으로 병원이 가루처럼 무너지면서 남편도 건물에 갇혔다. 남편을 찾지 못해 병원 앞에서 노숙을 하는 아주머니는 자기 자신을 원망하며 “내가 천하의 죄인이다.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지만 사망했을 것 같아 시신이라도 찾아 매장해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하타이의 상황을 직접 본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해도 하타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뒤 “아직 텐트가 없어 밖에서 자는 사람들이 많다. 여전히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다. 한국 돈 1만원이 튀르키예에서는 10만원의 값이니 여유가 되신다면 작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혼자 간 것도 아니고 팀을 꾸린 게 쉽지 않았을텐데. “지진 소식 듣고 곧바로 가려고 했는데 지진 발생한 초기에는 튀르키예 정부가 함부로 민간인이 진입을 못하게 했다. 사방팔방 뛰어다녀 혼자 가는 것까지는 허가를 받았는데 팀을 데려가려고 하니 안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 포기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며칠 지나니 통제가 없어졌다. 그래서 이스탄불 본점 직원 7명과 아다나 점주 3명 그리고 저까지 이렇게 11명으로 팀을 꾸렸다. 하루 1000인분씩 요리하려면 최소 8명이 필요하다. 가서 끓이는 것만 할 수 있게 아다나 식당에서 협조를 해주셨다.” -하타이 도착했을 때 상황은 어땠나. “지진 사흘째인 9일 출발해 이튿날 하타이에 도착했다. 그때는 이재민이 천막도 없었고 음식도 없었다. 지금은 구호물품이 각지에서 오니까 많지만 그때는 없었다. 이재민 중심으로 도우면서 대한민국 구조대에도 불고기, 김치, 밥 위주로 드렸다. 라면이랑 인스턴트 드시는 것 같던데 다들 좋아하셨다.” -현지 배급 어려움은 없었나. “이스탄불에서부터 준비를 많이 해서 갔다. LPG 가스통도 5개 챙기고, 물도 20L짜리 세트로 챙겼다. 모자란 재료는 아다나에서 가져갔다. 막상 하타이에 가니까 다행히 치안은 괜찮았다.” -숙소 구하는 것도 어려웠을텐데 어디서 묵었나. “원래는 하타이에 숙소를 잡을 예정이었다. 이스켄데룬에 있는 호텔에 예약까지 하고 갔는데 ‘오늘 군인들이 묵을 예정이라 여기 묵을 수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결국 아다나를 베이스캠프 삼아 매일 오전 7시쯤 하타이에 갔다가 돌아오는 식으로 진행했다.”-여진 우려도 있는데 가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튀르키예에 8년 있었는데 이렇게 큰 일은 있으면서 처음이다. 저는 튀르키예인들이 도움을 줘서 이만큼 성장했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해야겠다. 그래서 가게 됐다. 직원들도 “동포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 여기서 발 뻗고 자는 게 오히려 편하지 않다”며 가고 싶다고 했다. 내 아내는 튀르키예인인데 처음에 가겠다고 하니 ‘이혼도장 찍고 가라고. 거기 얼마나 위험한데 가냐’고 만류했다. 아내를 설득해서 도장은 안 찍고 왔다(웃음). 어머니는 하타이 봉사 간다고 했을 때 반대는 하지 않으셨고 ‘그냥 조심히 갔다오라’고 하셨다.” -하타이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깜짝 놀랐던 게 여기 사람들은 본인들이 힘들텐데도 잘 베푸신다. 아시다시피 건물 앞에서 가족 못 찾고 불 피우고 앉아 계시는데도 저희한테 차도 끊여 주시고 케이크도 주고 그러셨다.”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을 것 같다. “하타이에서 5~8㎞ 떨어진 곳에 사는 아주머니가 남편이 왼발에 염증에 생겨서 병원에 오셨는데 이튿날 지진이 나서 병원이 형체도 없이 가루가 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계셨다. ‘내가 천하의 죄인이다. 희망을 놓고 싶지 않지만 남편이 살아있을 것 같지 않다며 시신이라도 찾아서 땅에 묻어주고 싶다’고 하셨다.” -이전에도 하타이에 가보셨을 것 같다. 지진 이후 도시가 어떻게 달라졌나. “지난해 하타이 엑스포가 열려서 초대받아 참석한 적이 있다. 도시가 엄청 예쁘고 아기자기했다. 엑스포 가기 전에는 사람들이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색채도 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사람들이 밝고 개방적이고 정이 많아 보였다. 이스켄데룬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건물이 다 부서져서 안타깝다. 하타이 주민들은 애향심이 강해서 나중에 재건되면 5년 뒤, 10년 뒤에는 다시 고향으로 오겠다고 하더라. 어떻게 보면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있는 거 같다.” -튀르키예 상황 바라보는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은. “이 상황이 마음 아프고 안타깝다. 아직도 차에서 지내는 분이 많다. 텐트가 없어서 길에서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 주무시는 분도 계셨다. 밤에 엄청 추운데 지진 피해 입은 주민들은 친지 장례식 치를 때까지는 거기 계속 계실 것 같다. 저 같아도 만약 가족이 잔해에 갇혀 있으면 그 앞에 있을 것 같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한국 분들도 도움을 많이 줬으면 한다. 돈이 아니라도 텐트라도 보내주시면 좋을 것 같다.”
  • 이태원 참사 유가족 “녹사평역 분향소, 서울광장으로 이전”

    이태원 참사 유가족 “녹사평역 분향소, 서울광장으로 이전”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자진철거 기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유가족들은 녹사평역에 마련된 분향소를 서울광장으로 이전해 통합 운영하겠다고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159명 희생자를 온전히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서울광장 분향소를 굳건히 지키려 한다”며 2개월간 운영된 녹사평역 분향소 이전 방침을 밝혔다. 이들은 “녹사평역 분향소를 찾아준 많은 시민의 따뜻한 마음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면서 “같은 참사 피해자이자 지금까지 유가족을 위로하고 지지해준 이태원 상인들에게도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종교인 8명이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영정을 내려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분향소 철거를 놓고 서울시와 유가족 간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전날 정례 간담회에서 “서울시가 직원과 용역을 동원해 천막을 철거하면 경찰은 충돌과 공무집행방해 행위 방지, 서울광장으로 시위대 유입 차단 등 임무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날 성명에서 “서울광장 분향소는 헌법과 법률로 보호받아야 할 관혼상제에 해당한다”며 서울시의 행정대집행 방침을 규탄했다. 민변은 노태우 전 대통령 분향소 운영이 관혼상제여서 방역수칙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21년 서울시 유권해석을 언급하며 “적법한 분향소를 불법이라며 철거하겠다는 것은 처분 근거가 없을뿐만 아니라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책회의 측과 이태원 상인은 이태원역 1번출구 앞 공간을 ‘안전과 기억의 거리’로 만들기 위한 논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장하림 이태원 상인 통합대책위원장은 “긴 시간 지속되는 이태원 상권의 침체는 우리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라며 “상생의 마음으로 이전·통합을 결단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 오영훈 지사가 100일째 천막농성하는 노동자를 만난 까닭은

    오영훈 지사가 100일째 천막농성하는 노동자를 만난 까닭은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도청 맞은편에서 100일째 천막 농성을 하는 제주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소각장 근무 노동자들과 만나 고용문제 해결의 첫걸음을 뗐다. 오 지사는 14일 오전 도청 앞 천막 농성현장을 찾아 안용남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노조위원장,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 등 관계자들과 면담하며 아픔을 어루만졌다. 2003년 가동을 시작한 제주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소각시설은 당초 2020년 2월 28일 민간위탁이 종료될 계획이었으나, 압축쓰레기와 폐목재 처리를 위해 봉개동 주민들과 협약을 통해 사용기간을 3년 연장함에 따라 오는 28일 운영이 만료될 예정이다. 소각장 근무 노동자들은 민간위탁 종료를 앞두고 제주도에 고용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지난 2022년 11월 7일부터 도청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이날의 만남은 예상보다 더 차분하고 깊이있는 대화로 이어졌다. 오 지사는 천막 농성 100일째인 이날 현장을 찾아 그간 고충에 위로를 전하며 “올해 연말까지 협의체를 운영해 향후 직업훈련 제공, 실업급여 지급, 재취업 과정에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민간 위탁사업장의 경우 노동 관련 법에 따라 법적 책임의 귀책사유는 위탁기관에 있지만 제도 개선을 통해 지방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앞으로 유사한 문제 발생에 대비해 조례 재․개정 등을 통해 도 차원의 제도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할 수 있도록 노동계의 다양한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임기환 본부장은 “민간위탁 고용위기에 대해 제주도가 책임있게 나선 것에 대해 환영하고 노・정 협의체 운영은 고용위기 해결을 위한 시작점이라 생각한다”며 “노・정 모두 책임있는 자세로 협의체를 통해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고, 무엇보다 향후 지역 내 집단 고용위기 발생 시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고 답했다. 안용남 위원장은 “지난 20년 제주도 환경공익시설에서 청정제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지만, 2월 28일자로 56명 전원에게 정리해고가 통보된 상태다. 가족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앞선다”며 “노동자들의 고용과 가족들의 생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협의체 운영부터 도지사가 직접 챙겨달라”고 요청했다. 도는 이날 만남을 계기로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의 고용위기 문제해결을 위해 노동계와 함께 협력하는 한편, 집단 고용위기 대응 시스템을 마련해나갈 방침이다.
  •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어둠의 도시’가 된 아다나···집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어둠의 도시’가 된 아다나···집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 9일(현지시간) 오후 튀르키예 남부에 위치한 아다나 지역을 둘러봤다. 이 곳은 지진 피해가 발생한 주 가운데 진앙지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다. 낮에는 시민들이 빵도 사먹고 자전거도 탔다. 어느 도시의 풍경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해가 지자 낮에 봤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깜깜했다. 이날 오후 7시쯤 전기가 끊긴 것도 아닌데 불 켜진 집이 거의 없을 정도다. 튀르키예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가 100만명이 넘는 곳인데 주변 아파트와 빌딩에선 적막감이 흘렀다. 이 곳에서 만난 베이사(25)는 “도시가 완전히 죽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여진 위험 때문에 모두 집을 비우고 밖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다나에서 운전 기사로 일하는 사마안띳(67)은 “지진이 났을 당시 중심을 잡기는커녕 걸을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면서 “6층에 사는데 집이 너무 흔들려 아내와 가족들을 깨워 급하게 도망쳐 나온 뒤 지금까지 ‘차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을 떠난 주민들이 머무는 곳을 찾아가 봤다. 이 곳은 원래 재래시장이 있었던 공간이라고 한다. 평소였다면 대형 천막 아래 각종 채소와 고기, 치즈를 파는 좌판이 즐비했을 테지만 지금은 흰색 이재민 텐트 수십개가 들어차 있었다. 텐트촌에는 경찰이 상주했는데 신분 확인을 하겠다며 기자를 20분 남짓 붙잡아두기도 했다.오후 9시쯤 텐트 사이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텐트 하나당 방이 두 개로 나뉘어져 두 가족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방 하나는 두 명이 누우면 꽉 찰 정도다. 텐트 안에는 얇은 카펫과 이불이 깔려 있었고 한켠에 짐가방이 놓여 있었다. 주민들은 모닥불 주위로 6~7명씩 둘러 앉아 있었다. 통나무를 의자 삼아 불을 쬐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주전자에 터키 전통 차를 끊여 마시거나 스프를 먹으며 추위를 달랬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한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종이팩에 든 음료를 마시며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기도 했다. 이재민 아멧(52)은 “담요나 카펫 등 필요한 물품도 정부가 나눠준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급자족하거나 기부해준 것”이라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지 기약이 없어 힘들다”고 토로했다. 텐트촌 인근 도로에는 차량이 늘어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뒷좌석에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가득 쌓아둔 이불에 몸을 기댄 채 몸을 녹이고 있었다. 주유소에는 플라스틱 통에 기름을 넣어두려는 주민들로 북적였다. 주유소 직원은 “어제도 기름 30통을 한 번에 사간 손님이 있었다”며 “하타이 등 피해 지역에 기름이 없어 구호 물자용으로 사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지역에서 구조를 하는 크레인 등 중장비에 넣을 기름을 기부하기 위해 사가는 시민들도 있다고 했다. 시내의 한 대형 케밥 식당은 지진 이후 식당 문을 개방하고 이 곳은 갈 곳 없는 주민들에게 간단한 음식과 차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앉은 주민들은 담요를 몸에 두른 채 아다나 주력 메뉴엔 케밥과 함께 전통 음료 ‘샬감’을 데워 마셨다. 원래 이 식당은 다양한 반찬과 함께 케밥을 코스처럼 제공하지만, 지진 이후 간편식 등 다른 메뉴 제공을 위해 판매용 음식도 간단히 브리또 형식으로 종이에 싸먹게 내놓고 있었다.식당 안의 놀이방에는 10명 넘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놀이방 옆에는 이불, 담요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호텔 등 숙박시설도 이재민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1층 로비에 짐을 풀고 쉬는 중이었다. 한 2성급 호텔에는 집을 떠나온 일가족 7명이 하타이에서 지진을 피해 온 연인과 함께 난로를 켜놓고 몸을 녹였다. 아다나에서 어머니와 딸들, 임신한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는 엘리프누르(29)는 “지진이 났을 때 강도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온가족을 깨워 대피하는데 집에서 나가기 직전 문 앞에서 다시 지진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12층에서 4층까지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내내 건물이 흔들려 공포심에 사로잡혔다는 그는 “밖에 나와보니 바로 앞에 있던 14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졌고, 4살짜리 둘째 딸 친구네 가족이 딸 친구만 살고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울먹였다.둘째 딸 이람은 호텔 로비 바닥에 카펫을 깔고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알록달록하고 튼튼한 집을 그리는 중이었다. 지진은 아다나의 일상을 뺏어갔지만 이람이 그린 그림처럼 주민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무너진 그 곳에 더 튼튼한 집을 세운다면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국회 차원에서 노력하겠다”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국회 차원에서 노력하겠다”

    국회가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이한 5일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한 추모제를 열었다. 대형 참사를 기리기 위한 추모제가 국회 차원에서 열린 것은 처음이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주최하고 국회 연구단체 ‘생명안전포럼’ 주관한 추모제에는 김진표 국회의장을 비롯해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총출동해 유족들의 아픔을 함께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10여명이, 민주당에서는 60여명이 자리했다. 피해자 측에서는 유가족과 생존자, 이태원 상인 등이 참석했다. 개신교·불교·원불교·천주교 등 종교계의 추모 의례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 의장은 “국정조사가 마무리 됐지만 참사를 기억하고 책임을 규명하며 다시 불행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데는 시한이 따로 있지 않다”며 “두번 다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문제 해결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각 당의 지도부도 이태원 참사와 같은 비극이 벌어진 데 안타까움을 표하며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 국회 차원의 노력을 약속했다. 이 대표는 “10월 29일 이후 유가족들에게 온 세상은 까만 잿빛이지만 대통령도, 정부도, 여당도 그날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권력이 아무리 감추고 외면하려 해도 정의는 반드시 회복되고 진실 또한 모습을 드러낸다”며 정부와 여당에 책임을 물었다. 이어 “오늘 이 자리에 대통령께서 직접 오셔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며 “성역 없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 수립을 위해서 민주당은 좌고우면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비대위원장은 “참사 직후 유가족들을 만나 (진상규명 등에)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드렸지만, 유가족 입장에서는 미흡한 점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정부와 집권여당은 사회적 참사에 무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 국민의힘은 유가족과 미래를 바라보며 집권여당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했다. 정 비대위원장이 인사말을 마치자 일부 유가족은 ‘사과하라’, ‘반성하라’고 고함을 질렀다.생존자 대표로 참석한 김초롱씨는 “그동안 보이지 않은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고가 나지 않게 예방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면서 “참사의 유일한 원인은 그동안 했던 일을 하지 않은 것, 즉 ‘군중밀집’ 관리의 실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대표이자 고(故) 이지한 씨의 아버지 이종철씨는 서울시가 서울광장에 위치한 분향소를 6일까지 자진 철거하라고 통보한 데 대해 “저희가 천막은 철거할 테니 대신 정부·서울시·국회에서 많은 국화꽃과 카네이션으로 단장된 합동분향소를 공식적으로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 이태원 참사 유족, 기습 분향소 설치…경찰, 해산 절차 돌입

    이태원 참사 유족, 기습 분향소 설치…경찰, 해산 절차 돌입

    참사 100일 거리 행진 후 서울광장 기습 추모집회이태원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두고 유족들이 추모 행진 중 기습적으로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광장 옆 세종대로에서 추모대회를 열었다. 경찰은 이를 미신고 집회로 판단해 해산 절차에 돌입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는 4일 오전 11시쯤 지하철 4호선 녹사평역 분향소에서부터 추모대회 장소인 세종대로로 행진했다. 그러다가 예고 없이 서울광장에서 발길을 멈추고 분향소 천막 설치를 시작했다. 설치 지점은 서울도서관 앞 인도로, 서울시 관할 구역이다. 유가족들은 애초 행진 후 광화문광장에서 참사 100일 추모대회를 하기로 했으나 서울시의 불허로 장소를 광화문광장 옆 세종대로로 옮긴 상황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이 분향소 설치를 저지하려다 뒤로 밀렸고 이후 서울시 공무원 70여명도 철거를 위해 진입을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양측의 대치·충돌 과정에서 20대 유가족 한 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119구급차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유가족들은 결국 오후 2시10분쯤 분향소를 설치한 뒤 영정사진 159개를 올렸다. 이후 시청역 4번출구 옆에 무대 차량을 설치하고 추모대회를 시작했다. 유가족 150여명을 포함한 5천여명이 운집해 세종대로 왕복 6개차로 중 4개를 점했다. 유가족단체는 집회 신고를 한 장소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행진 신고만 했을 뿐 집회 신고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관할인 남대문경찰서는 오후 3시10분부터 “신고된 범위를 벗어난 집회”라고 안내하며 해산 절차에 들어갔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20조에 따르면 관할경찰서장은 불법 집회에 대해 자진해산할 것을 요청하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해산을 명할 수 있다. 해산 절차는 ‘종결 선언 요청→자진 해산 요청→해산명령·직접해산’ 순으로 이뤄진다. 이날 도로 행진·집회 여파로 오후 3시30분 기준 도심 차량 통행 속도가 시속 14.2㎞까지 떨어지는 등 정체를 빚었다.앞서 유가족과 시민은 이날 오전 가족을 잃은 슬픔을 상징하는 빨간색 목도리와 네 개의 별이 달린 배지를 착용하고 행진했다. 네 개의 별은 각각 희생자·유가족·생존자·구조자를 의미한다. 선두에서 마이크를 든 유가족 단체 관계자는 희생자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행진 시작을 알렸다. 이들은 ‘국가도 대통령도 없지만 유가족분들 곁에는 국민이 있습니다’, ‘유가족분들 힘내세요. 국민이 함께합니다’라는 문구의 팻말을 든 채 시민들은 함께 구호를 외쳤다.
  • [포토] ‘추모공간 기습 설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포토] ‘추모공간 기습 설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가 4일 참사 100일 거리 행진을 하던 중 서울광장에 기습적으로 분향소를 설치해 경찰·서울시 공무원과 대치 중이다. 유가족 150여명을 포함한 1천여명은 지하철 4호선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출발해 추모대회 장소인 세종대로로 행진하던 중 예고 없이 서울광장에서 발길을 멈추고 분향소 설치를 시작했다. 경찰은 이를 저지하다 일단 뒤로 밀린 상태다. 경찰은 집회에 대비해 광화문광장 인근에 있던 기동대 경력 3천여명을 서울광장 인근으로 이동·배치했다. 현재 서울시 공무원 70여명이 분향소 천막 철거를 위해 진입을 시도 중이다. 지금까지 다치거나 입건된 사람은 없다. 이들 단체는 애초 행진 후 광화문광장에서 추모대회를 하기로 했으나 서울시의 불허로 장소를 광장 옆 세종대로로 옮겼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북측에 분향소를 설치하겠다는 유가족 측의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전날 경찰에 “불법 천막 등 설치를 저지해달라”는 시설 보호 요청을 했다. 유가족과 시민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상징하는 빨간색 목도리와 네 개의 별이 달린 배지를 착용하고 행진했다. 네 개의 별은 각각 희생자·유가족·생존자·구조자를 의미한다. 선두에서 마이크를 든 유가족 단체 관계자는 희생자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행진 시작을 알렸다. 이들은 ‘국가도 대통령도 없지만 유가족분들 곁에는 국민이 있습니다’, ‘유가족분들 힘내세요. 국민이 함께합니다’라는 문구의 팻말을 든 채 시민들은 함께 구호를 외쳤다. 충남 아산에서 아내와 2시간 넘게 전철을 타고 온 최모(59)씨는 “뉴스를 보고 찾아왔다. 분향소에 한 번도 오지 못해 오늘은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동안 너무 잊혔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게 많아 힘을 보태야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11살 아들과 함께 행진에 참여한 이정녀(51)씨는 “아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커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데려왔다. 좌우를 떠나 진상규명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지 의문”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서울시의 광장 사용 불허 결정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비판 목소리도 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성명을 통해 “사회적 추모를 가로막는 광화문광장 차벽 설치를 규탄한다”며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보다 (유가족의) 목소리를 막으려는 경찰과 서울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 ‘이태원 참사 100일’ 행진 중 서울광장에 분향소 기습 설치

    ‘이태원 참사 100일’ 행진 중 서울광장에 분향소 기습 설치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가 4일 참사 100일 거리 행진을 하던 중 서울광장에 기습적으로 분향소를 설치해 경찰·서울시 공무원과 대치가 벌어졌다. 유가족 150여명을 포함한 1000여명은 지하철 4호선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출발해 추모대회 장소인 세종대로로 행진하던 중 예고 없이 서울광장에서 발길을 멈추고 분향소 설치를 시작했다. 경찰은 이를 저지하다 일단 뒤로 밀린 상태다. 경찰은 집회에 대비해 광화문광장 인근에 있던 기동대 경력 3000여명을 서울광장 인근으로 이동·배치했다. 현재 서울시 공무원 70여명이 분향소 천막 철거를 위해 진입을 시도 중이다.이들 단체는 애초 행진 후 광화문광장에서 추모대회를 하기로 했으나 서울시의 불허로 장소를 광장 옆 세종대로로 옮겼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북측에 분향소를 설치하겠다는 유가족 측의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전날 경찰에 “불법 천막 등 설치를 저지해달라”는 시설 보호 요청을 했다. 이날 유가족과 시민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상징하는 빨간색 목도리와 네 개의 별이 달린 배지를 착용하고 행진했다. 네 개의 별은 각각 희생자·유가족·생존자·구조자를 의미한다.선두에서 마이크를 든 유가족 단체 관계자는 희생자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행진 시작을 알렸다. 이들은 ‘국가도 대통령도 없지만 유가족분들 곁에는 국민이 있습니다’, ‘유가족분들 힘내세요. 국민이 함께합니다’라는 문구의 팻말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단체는 추모대회에서 ▲이태원참사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윤석열 대통령 공식사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파면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 순천만잡월드 노사 분쟁, 2개월 만에 극적 타결

    지난해 12월 8일부터 부당해고 철회와 전남 순천시의 책임 있는 관리·감독을 요구하며 시청 현관 앞에서 노숙 농성 등을 벌여 온 순천만잡월드 노조와 사측 간의 분쟁이 합의 타결됐다. 국비 등 487억원이 투입돼 2021년 10월 개관한 순천만잡월드는 경기 성남시의 한국잡월드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호남권 최대 어린이·청소년 직업체험센터다. 하지만 개관 1년 만에 위탁사인 드림잡스쿨이 적자를 이유로 20여명에게 해고를 통보하고 6명과 근로계약을 해지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순천만잡월드지회 노조원 30여명은 2개월여 동안 시청 현관 앞에서 회사 측의 부당해고 철회와 순천시의 책임 있는 관리·감독을 요구하며 천막 노숙 농성을 해 왔다. 전남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달 11일 순천만잡월드에서 해고통보를 받은 노조원 2명의 해고는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순천시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해 감사원에서 지난달 27일 감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순천만잡월드 민간 위탁사와 노동자, 순천시청 관계자, 민주노총 공공연대는 지난 1일 마라톤협상 끝에 합의안을 마련했다. 부당 해고자 전원 복직과 4대 보험 부담, 상여금 30%, 노조 사무실 마련 등이다. 이에 따라 부당 해고자 3명을 포함한 노조원 35명은 오는 6일 복직할 예정이다. 두 달여간 진행된 시청 앞 천막 농성도 2일 철수했다. 순천만잡월드 노조는 이날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지하고 응원해 주신 시민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순천시의 대표적인 공공시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직업체험관과 노동 환경이 가장 좋은 직장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 경기 31개 시군 한파경보…수도관 동파 등 신고 잇따라

    경기 31개 시군 한파경보…수도관 동파 등 신고 잇따라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4일 올 겨울 최강 한파와 강풍이 닥치면서 경기·인천 등 수도권 곳곳에서 동파 사고 등 피해가 잇따랐다. 24일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도내에서 전날 오전 9시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한파·강풍 관련 119 신고가 모두 10건 접수됐다. 고드름 제거 요청이 6건으로 가장 많았고, 안전조치 3건, 수도관 동파 1건 등이었다. 지난 23일 오후 10시 13분쯤 오산시 금암동 상가에서 천막이 떨어졌다는 신고가 접수돼,소방대원들이 출동해 안전조치를 했다. 같은 날 오후 5시 26분께 가평군 가평읍 한 아파트 5층에서는 수도관이 얼면서 터져 안전조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날 경기지역 아침 최저기온은 포천 선단 영하 19.8도,연천 영하 19.4도,하남 춘궁 영하 19.2도,양주 백석 영하 19도,평택 청북 영하 17.9도 등이다. 현재 경기도 31개 시군 전역에는 한파경보가 발효돼 있다. 또 안산, 시흥, 김포, 평택, 화성 등 5개 시군에는 강풍주의보도 발령돼 있다. 기상청은 이번 한파가 25일 절정을 이루고, 이달 말까지 추위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이날 경기 내륙지역은 눈발이 날리며, 평택과 화성에는 일부 쌓이는 곳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도는 합동 전담팀을 꾸려 한파 피해에 대한 예방 조치와 함께 피해 발생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인천에서도 밤 사이 매서운 추위와 강풍에 도로 배관이 터지고 오피스텔 간판이 추락하는 등 사고가 잇따랐다. 이날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 강풍 및 한파 피해 신고는 총 4건이 접수됐다. 간판 탈락 1건, 동파 2건, 고드름 제거 1건 등이다. 이날 오전 4시30분쯤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한 도로에는 한파로 인해 도로 배관이 터져 동파 사고가 발생했다. 또 같은날 0시19분 인천 남동구 구월동 한 오피스텔에서는 강한 바람에 간판이 추락하려 한다는 신고가 접수돼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이 안전조치 했다. 인천과 도서지역을 잇는 여객선 운항에 차질이 빚어졌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운항관리실 등에 따르면 이날 서해중부먼바다에는 초속 12~18m의 바람과 함께 3.0~5.0m이 높은 파도가 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인천~백령도, 인천~덕적도, 인천~이작도, 인천~연평도, 인천~육도·풍도를 잇는 5개 항로 여객선 12척의 운항이 모두 통제되면서 귀경길이 막혔다. 다만 이날 오후 8시30분쯤 제주에서 출발해 다음날 오전 10시 인천에 도착할 예정인 비욘드트러스트호의 운항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 ‘2인1조’ 원칙 내팽개친 강북도시공, 눈감은 이순희 구청장

    ‘2인1조’ 원칙 내팽개친 강북도시공, 눈감은 이순희 구청장

    “강북구 전체 26곳의 노외주차장을 직원 1명이 관리합니다. 2m가 넘는 높이의 천장에 있는 전구를 교체하거나 노후 시설을 교체하다 떨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이를 돕거나 알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어요. 안전작업의 기본인 2인 1조 원칙도 지키지 못하는데 구청은 내 일이 아니라고만 합니다.” 19일 서울 강북구청 앞 농성장에서 만난 방상범 강북구도시관리공단 노동조합 투쟁본부장은 답답함을 호소했다. 공단 노조는 이날 기준 52일째 강북구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적정인력 충원과 초과근무수당 지급 등이다. 노조는 가장 시급한 것이 인력 충원이라고 주장한다. 노조에 따르면 현재 공단 직원은 207명으로 2018년 대비 20%가량 감소했다. 노외주차장의 경우 코로나19 당시 무인화가 되면서 관리 인원이 1명으로 줄었다. 오전 9시~오후 6시로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혼자서 일하는 탓에 야간에 주차장에 문제가 생기면 자다가도 뛰어나가기 일쑤라고 노조는 설명했다. 공단이 관리하는 도서관 8곳의 경우 인력배치 규정이 47명이지만 절반이 되지 않는 16명이 근무 중이다. 체력단련장(헬스장)도 체육진흥법 인력 기준의 절반인 인력만으로 운영 중이다. 초과근무 수당 역시 노조의 주요 요구 사항이다. 공단은 2018년 초과근무를 폐지하면서 수당이 기본급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방 본부장은 “현재 인력 구조로는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데 초과근무를 폐지했다는 이유로 수당도 주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단 노사는 2021년 4월부터 25차례 교섭을 벌였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공단 측은 이와 관련해 “구체적 내용은 협상이 진행 중이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방 본부장은 “공단과 대화해도 진전이 없어 공단 이사장 임명권자인 구청장에게 면담을 요구했지만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해 구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29일간 청사 일부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지난해 12월 경찰에 의해 강제 퇴거조치당했다. 강북구청은 이후 지금까지 청사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정문 셔터를 내린 채 쪽문으로 방문객 신원을 확인한 뒤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강북구청은 “노조의 주장은 사측인 공단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강북구도시관리공단 정상화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노조와 함께 강북구 주민 1382명의 문제 해결 요구 서명을 이순희 강북구청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청사 진입을 시도했지만 구청이 고용한 경비용역과 구청 직원들에게 막혀 들어가지 못했다.
  • ‘2인1조’ 안전원칙 내팽개친 강북도시공, 눈감은 강북구청

    ‘2인1조’ 안전원칙 내팽개친 강북도시공, 눈감은 강북구청

    “강북구 전체 26곳의 노외주차장을 직원 1명이 관리합니다. 2m가 넘는 높이의 천장에 있는 전구를 교체하거나 노후 시설을 교체하다 떨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이를 돕거나 알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어요. 안전작업의 기본인 2인 1조 원칙도 지키지 못하는데 구청은 내 일이 아니라고만 합니다.” 19일 서울 강북구청 앞 농성장에서 만난 방상범 강북구도시관리공단 노동조합 투쟁본부장은 답답함을 호소했다. 공단 노조는 이날 기준 52일째 강북구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적정인력 충원과 초과근무수당 지급 등이다. 노조는 가장 시급한 것이 인력 충원이라고 주장한다. 노조에 따르면 현재 공단 직원은 207명으로 2018년 대비 20%가량 감소했다. 노외주차장의 경우 코로나19 당시 무인화가 되면서 관리 인원이 1명으로 줄었다. 오전 9시~오후 6시로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혼자서 일하는 탓에 야간에 주차장에 문제가 생기면 자다가도 뛰어나가기 일쑤라고 노조는 설명했다. 공단이 관리하는 도서관 8곳의 경우 인력배치 규정이 47명이지만 절반이 되지 않는 16명이 근무 중이다. 체력단련장(헬스장)도 체육진흥법 인력 기준의 절반인 인력만으로 운영 중이다. 초과근무 수당 역시 노조의 주요 요구 사항이다. 공단은 2018년 초과근무를 폐지하면서 초과근무 수당이 기본급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방 본부장은 “현재 인력 구조로는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데 초과근무를 폐지했다는 이유로 수당도 주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단 노사는 2021년 4월부터 25차례 교섭을 벌였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공단 측은 이와 관련해 “구체적 내용은 협상이 진행 중이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방 본부장은 “공단과 대화해도 진전이 없어 공단 이사장 임명권자인 구청장에게 면담을 요구했지만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해 구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29일간 청사 일부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지난해 12월 27일 경찰에 의해 강제 퇴거조치당했다. 강북구청은 이후 지금까지 청사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정문 셔터를 내린 채 쪽문으로 방문객 신원을 확인한 뒤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강북구청은 “노조의 주장은 사측인 공단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노조의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강북구도시관리공단 정상화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노조와 함께 강북구 주민 1382명의 문제 해결 요구 서명을 이순희 강북구청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청사 진입을 시도했지만 구청이 고용한 경비용역과 구청 직원들에게 막혀 들어가지 못했다.
  • 박경귀 아산시장, “공공기관 통폐합 민주당 정치공세 개탄스럽다”

    박경귀 아산시장, “공공기관 통폐합 민주당 정치공세 개탄스럽다”

    박경귀 충남 아산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기초 의원들이 지역 내 4개 공공기관이 내포신도시로의 이전 계획에 반발하는 천막농성에 나선 것과 관련해 17일 “아산시가 대응을 못해 모두 내포로 이전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며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 17일 12면 보도) 박 시장은 이날 긴급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은 4개 기관이 모두 내포로 이전하며 이를 아산시가 외면한다 선동하고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충남도는 최근 충남 출자·출연기관 경영효율화를 위해 25개(공기업 1개, 출연기관 21개, 공직유관단체 3개) 기관을 18개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민주당 소속 광역·기초의원들은 본부가 있는 충남경제진흥원과 충남신용보증재단, 충남과학기술진흥원,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 등 4개 출연기관이 다른 기관과 통폐합한 뒤 내포로 이전될 전망이라며 지난 12일부터 온양온천역 광장에서 이전 반대를 촉구하며 천막농성과 시민 서명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이어 박경귀 시장을 겨냥해 “박 시장의 안일한 대처에 유감을 표한다”며 “이 문제에 입장을 표명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주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박 시장은 “정보문화산업진흥원은 천안의 본점을 내포로 이전할 계획이며 과학기술진흥원은 애초 천안의 충남지식산업센터로의 이전을 앞둔 기관으로 아산시 소재 공공기관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충남도는 경제진흥원과 신용보증재단은 본점이 내포로 이전하고 아산에 지점을 유지하는 방안이 검토중으로 알고 있다”며 “아산시는 경제진흥원에 대해 본원 수준의 본부설치를, 신용보증재단은 아산 잔류를 각각 건의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산시 민주당은 정치적 의도만으로 시민들의 반목과 갈등을 부추기는 행태를 벌이고 있다”며 “설 명절 밥상머리까지 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민주당의 오만함이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박 시장은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은 정치공세와 정략적 이용으로 공공기관 통폐합에 도민과 시민을 오도하고 아산시장을 몰아세우고 있다”며 “아산시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아직 이전되지 않은 수도권 대형 공공기관 유치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 충남 산하기관 25→18곳으로 축소 “이전 반대” vs “운영 효율성” 공방

    충남도가 산하 공공기관을 통폐합하고 일부 기관을 도청사가 있는 내포신도시로 이전하는 방안을 담은 ‘충남 출자·출연기관 경영효율화’ 정책이 정쟁으로 치닫고 있다. 충남도는 최근 충남 출자·출연기관 경영 효율화를 위해 25개(공기업 1개, 출연기관 21개, 공직유관단체 3개) 기관을 18개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지금의 공공기관 수는 2018년 대비 5개가 늘었고 출연금 지원은 39.3%, 인력은 37.1% 증가해 조직과 인력에 낀 거품을 통폐합으로 빼겠다는 것이다. 아산에 본부가 있는 충남경제진흥원과 충남신용보증재단, 충남과학기술진흥원,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 등 4곳은 다른 기관과 통폐합한 뒤 내포로 이전될 전망이다. 이에 아산의 민주당 소속 시도의원 12명은 “도민의 불편함을 초래하는 충남도의 일방적 행정에 반대한다”며 지난 12일부터 온양온천역 광장에서 천막농성과 시민 서명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일자리 감소는 물론 행정서비스 질의 악화와 지역경제 타격이 불가피하다. 도민을 이간질해 불필요한 지역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며 “1999년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한 충남경제진흥원의 토지매각 대금도 아산시와의 협의 없이 도로 귀속시킨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충남도의회 국민의힘 소속 원내대표단은 16일 성명을 통해 “충남 북부권(천안·아산·당진·서산)에 전체 인구의 62.9%가 집중돼 있다.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 추진 계획에 따라 공공기관의 기능 중심 이전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아산시민을 거짓 선동하는 행태를 비판한다”고 밝혔다. 조례안은 다음달 8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충남도의회 342회 임시회에 상정된다. 아산 이종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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