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천막
    2026-05-01
    검색기록 지우기
  • 피소
    2026-05-0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031
  • 울란바토르 이모저모“양국 밝은미래 확신”

    ?藪餞蜀芼訝? 양승현특파원?瘦兀陸?(金大中)대통령은 31일 몽골 방문 이틀째를 맞아 나차긴 바가반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등 분주한 일정을 소화했다. ●국빈만찬 김대통령 내외는 이날 저녁 바가반디 대통령 내외가 주최한 국빈만찬에 참석했다. 만찬 답사에서 김대통령은 “오늘이 몽골의 역사적 지도자인 칭기즈칸의 생신일이라고 들었다”며 “위대한 역사를 갖는 민족은 위대한 역사를 새로이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어 “몽골에서 의료봉사에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이태준선생을 기리는 마음으로 두 나라가 손을 맞잡으면 놀라운 성과를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몽구(鄭夢九) 현대회장 등 국내 경제사절단 10명도 참석한 만찬에선 몽골전통의 귀빈접대식인 양고기 통구이 절단식도 있었다. 행사는 바가반디 대통령이 통째로 구운 양고기의 한쪽 엉덩이 살을 칼과 포크로 먼저 떼어내고,김대통령이 다른쪽 엉덩이 살을 떼어낸 후 주방에서 잘게 썰어 만찬 참석자들에게 돌리는 순으로 진행됐다. 만찬에 이은 몽골 전통 예술공연 관람때는 공연단이 몽골 민요와 함께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 ●정상환담 양국 정상은 이날 오전 정상회담에 앞서 다른 나라와 달리 독특한 몽골 전통 가옥인 ‘겔’에서 20여분간 환담시간을 가졌다. 정상환담이 열린 천막형의 ‘겔’은 정부종합청사 1층 정원에 설치돼 있었다.김대통령은 청사 3층 정상회담장으로 가기에 앞서 겔에 입장,기념촬영을한 뒤 바가반디 대통령과 마유주 등 몽골 전통차를 들며 환담했다. 몽골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겔의 내부는 중앙 한가운데의 탁자를 중심으로겔을 떠받치는 기둥 4개가 세워져 있고,한쪽은 주인측 공간,반대쪽은 손님측 공간으로 배정돼 있었다. ●정상회담 이어 청사 3층에서 회담에 들어간 김대통령과 바가반디 대통령은 단독회담과 확대회담 순으로 모두 1시간30분 가량 양국 관심사를 협의했다. 단독회담에는 한국측에서 최근 임명된 황원탁(黃源卓)외교안보수석이 배석자로 참석,국제무대에 첫선을 보였다.양국 정상은 회담후 옆방으로 자리를옮겨 양국간 형사사법공조조약,범죄인인도조약 등 조약 서명식을 참관한뒤공동기자회견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김대통령은 회견 서두발언에서 “두 나라 관계를 새 천년의 공동번영을 위한 긴밀한 협력관계로 발전시킬 자신감을 얻었으며,밝은 미래를 확신하게 됐다”며 회담 내용을 설명했다.바가반디 대통령도 “양국간 협력에 새 장을열면서 21세기 상호보완적 협력관계의 발전방향을 구체화했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화답했다. ●공식 환영식 회담에 앞서 김대통령은 정부청사 앞 ‘국민영웅묘’가 있는수흐바타르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했다. 의장대 사열때 몽골 의장대장은 김대통령이 선 단상앞으로 나서 “국빈방문한 존경하는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 몽골 의장대가 도열했습니다”라고 몽골어로 보고했다.김대통령이 사열중 중간지점에서 의장대에 대해 “의장대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고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자 의장대원들은“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답례했다. ●국회 연설 김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빈방문한 외국인사로는 처음으로 몽골국회에서 연설했다. 김대통령은 연설에서 몽골의개혁·개방정책인 ‘신칠렐’ 정책 등을 들며“몽골이 개혁정책으로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박수를 받았다.특히 몽골반점,제기차기,공기놀이,실뜨기 등 양국사이의 공통점을 예시하면서 친밀감을 표시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원(元)제국 당시 통신망을 ‘인터넷보다 700년 앞선 국제통신망 건설’로 받아들이는 일부 평가를 지적한 뒤 “한국이 몽골의 자원개발과 통신시설을 비롯한 각종 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을 바탕으로 몽골의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 서울대, 지하철노조에 피해보상 청구

    서울대(총장 李基俊)는 27일 8일 동안 서울대에서 농성을 하며 학교시설을훼손한 서울지하철노조에 대해 2,350만원의 피해보상을 청구했다. 이 보상액에는 노조원들이 천막을 치고 머물면서 훼손한 노천극장 부근 잔디밭 1,000여평(1,680만원),사수대가 경찰과의 대치과정에서 깨뜨린 학생회관 주변 보도블럭 30여평(240만원)등이 포함돼 있다. 민주노총 산하 공공연맹의 유병홍(兪炳弘)정책팀장은 이날 서울대를 방문,김안중(金安重)학생처장에게 “실사후 피해액을 변상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세계 100여개 구호단체 ‘난민지원’

    “여러분이 내신 26달러로 두명의 코소보 어린이가 따뜻한 담요와 음식으로 몸을 녹일 수 있습니다” 알바니아계 코소보 난민들을 돕고 있는 구호단체 월드비전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기부금 모금 안내문.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의 국경지대,인류 재앙의 현장이라는 이 곳이 국경없는 의사회(MSF),국제적십자(ICRC),‘국제적십자 및 적신월사 연맹’(IFRC),케어(CARE),유엔아동기금(UNICEF)등 세계적인난민구호단체들의 손길로 그나마 온기를 이어가고 있다. 코소보 사태이후 직간접적으로 코소보 난민 구호에 나선 단체는 세계적으로 100여개가 넘는 것으로 구호단체들은 추정하고 있다.미국의 해외구호기금연합기구인 인터액션 회원사 가운데 코소보난민지원에 나선 단체만도 47개에 이른다.이들이 공수한 구호품은 수백억 달러어치. 전세계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국제적십자사와 케어, 월드비전 등은 전문인력과 현지 지부의 자원봉사대를 활용,온 몸으로 난민을 보살피고 있다. 임시천막 설치,구호품 배급, 의료활동 등은 이들의 주임무다. 추가 지원을위해 월드비전의 경우 600만 달러,적신월사의 경우 65만 회원을 대상으로 1억달러의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분쟁과 난민발생의 현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국경없는 의사회의 활약은 대단하다.이 단체는 각종 전문 의사 85명을 현지에 파견했다.비행기 8대 분의의료품을 공수,알바니아로 넘어오는 난민들의 중간 기착지인 크루메 등에 임시 진료소를 설치해놓고 응급진료를 맡고 있다. 아동보호의 대명사 유니셰프는 마케도니아 스코피예 등에 2만5,000명이 석달을 견딜 수 있는 응급 약품을 보냈으며 국제적십자사와 자원봉사자 네트워크를 구축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나토 “베오그라드로 공습 확대”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30일 밀로셰비치의 조건부 협상제의를 일축한 뒤 곧바로 공습확대를 결정했다. 이틀 전인 28일 나토측은 지상 레이더 기지,군수공장등 인프라 시설에 대한 집중 공격 위주로 진행되는 1차 공격을 지상군까지 공격하는 2단계 작전으로 공습 범위를 확대한 바 있다. 3단계 작전이 시작될 경우 나토군의 공격범위는 북위 44도선 이북으로 확대되며 수도 베오그라드 일원이 공격권에 들게 된다. 이러한 공습확대는 30일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19개국 대사들이 모여 장시간 논의한 끝에 결정됐다. 익명의 미 고위관리는 “공습목표 명단이 20%정도 확대됐다”고 전했다.지금까지 나토의 공습은 주로 베오그라드 외곽의 방공 및 군사시설,그리고 코소보주에 주둔하고 있는 세르비아 지상군으로 제한됐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세르바아계의 만행에 “나토와 미국은 공통된 분노를 지니고 있다”면서 “알바니아계에 대한 유고군의 잔혹행위가 중단될 때까지 공습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상군 직접공격으로 확대된 작전에 따라 31일 미국의 대탱크파괴 전문 항공기인 A-10기가 취약해진 유고 방공레이더 망을 뚫고 들어가 공격하는 등 나토군의 공세가 강화됐다.미국은 확대공격 방침에 따라 처음으로 AH-64 아파치 무장헬기를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군은 나토대표들이 밀로셰비치의 협상제의를 거부키로 결정한 직후 베오그라드 외곽의 목표물들에 대한 공습을 재개했다. 유고 베타통신은 31일 새벽 2시 45분과 3시 사이 베오그라드 서쪽과 북쪽의 마을인 야코보 및 보르차에서 4건의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새벽 3시30분께엔 남쪽 및 북동쪽 마을인 아발라 및 판체보에서도 공습이 있었다고베타통신은 보도했다. 한편 미국무부는 피난길에 나선 코소보주민들이 약 100만명선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는데 이들에 대한 국제단체들의 지원방안이 속속 논의되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이날 영국정부가 천막과 담요들을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 공수할 예정이며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아동구호기금도이 지역에 대한 긴급구호에 나섰다고 전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코소보 인근 국가들에 유입난민을 돕기 위해 1,000만 유로(약 128억원)의 예산을 긴급신청했다.
  • 유가협 농성 148일째…의문사 규명 특별법제정 촉구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 달라는 것 뿐입니다” 의문사 규명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 20여명의 ‘천막농성’이 지난달 31일로 148일째가 됐다.오랜 농성에도 여의도국회의사당 건너편 농성장을 눈여겨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회원 7명은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에 항의하는 뜻으로 29일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삭발을했다.삭발한 金鍾旭씨(63)는 86년 6월 부산 송도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아들成洙군(당시 19세·서울대 지리학과 1학년 재학)의 진정한 사인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당국은 ‘성적비관 자살’로 결론냈었다. 金性洙
  • [발언대]양심수 출소자 징집때 정상참작돼야

    우리는 무엇이 제대로 된 삶인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성장’이란 단과자만 먹는 데 매달려 왔다.단과자 한 가지만 30년 이상 먹다 보니 사회정의의 이빨은 썩고 비효율의 군살은 늘고 부정부패의 숙변이 잔뜩 낀 몸이 됐다.우리가 겪는 몸살은 편식의 당연한 결과다. 이제 썩어가는 종기는 수술하고 우리 몸의 구조를 정화해 나가면서 더 세밀한 부분의 영양소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들어 군(軍)관련 인권문제들이 불거져 당사자와 가족을 안타깝게 하고있다.의문사 문제와 양심수 청년들의 입대문제가 그것이다. 양심수 출신 청년 400여명중 일부가 서울 조계사에서 140여일째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이들은 김영삼정부 시절 군사정권 책임자 구속 등 사회정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하다가 수배,구속됐고 아직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채 연이은 징집으로 인해 정상적 사회복귀마저 차단당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이들이 형평성을 고려치 않고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이미 750여명의 교수들과 3,800여 성직자들이 성명서 발표를 통해동의했듯이 이들의 요구는 결코 무조건적인 군면제가 아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어떤 특혜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복귀가 가능한 선에서의 의무수행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시국 관련 수형자들의 사회참여가 어려운 상황이다.더군다나 나이 서른이 넘어서 군 제대를 한다면 이것은 정상적 사회복귀의 원천적인 차단과 다름 아니다.국회와 군 당국자는 이들의 요구에 대한 양식 있는조치를 취해 우리사회의 여러 매듭중 하나를 잘 풀어나갈 것을 기대한다. 정성길 원불교 사회개벽 교무단 부단장
  • 외언내언-諸廷坵의원과 현충원

    ‘신부와 벽돌공’은 지난 9일 타계한 諸廷坵의원의 자서전이다.이 책은 12일 국회장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식 영결사처럼 “가진 자보다 없는 자,강한자보다 약한 자와 늘 함께 있기를 생활철학으로 삼았으며 독재권력에 맞선민주화 운동가였고 낮은 곳을 향해 정의를 추구하면서 도시 영세민들과 동고동락해온 실천적 지식인이자 깨끗한 정치를 지향했던 올곧은 정치인”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 준다.아울러 그가 온 몸을 던진 치열한 삶으로 수행의길을 걸었던 구도자였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서울 청계천 판자촌의 야학교사(72년)로 시작해 양평동 철거민들과 함께 시흥에 ‘복음자리’ 공동체 마을을 건설(77년)하고 목동·상계동 등지의 강제철거에 맞서 도시빈민 운동을 이끈 공로로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로 선정(86년)됐을 때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다.“뭔가 잘못됐습니다.저는 제 일을 통해받을 상을 이미 다 받은 사람입니다”.그가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받았다는상은 “가난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이었다.그는 막사이사이상을 ‘천막사이사이상’으로 받아들였다. 복음자리로 이주했던 겨울,돌도 지나지 않은 첫딸이 급성폐렴에 걸렸을 때그는 가난의 위선(?)을 벗는다.“처의 친구 아버지 병원을 찾아 아름이를 살리고 난 후 나는 결코 가난한 판자촌 주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돈이 없는 것은 그들과 같을지 모르지만 돈 아닌 무형의 자산인 중·고·대학의 친구들,친척들…판자촌 주민들 중에 나처럼 무료로 급성폐렴에 걸린자식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그때까지 나는 내가 똑같은 판자촌 주민이요,도시빈민이라는 허구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그릇된 것을 보면 ‘불같고 송곳같은 성질’로 ‘욕쟁이요 싸움꾼’으로 자신을 내던져 부서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 또한 지녔다. “돈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가난을 넘어 가난하게 살 수 있는 힘… 자신을더 철저히 버림으로써 가난에 접근해 가는 적극적인 방법”을 찾은 그는 “더러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정치판”에 “걸레가 되겠다”는 각오로 들어선 다음에도 현실정치의 더러움과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다 갔다.아내와세 딸에게 18평짜리 슬레이트 집 한채와 빚 7천만원,그리고 ‘가짐 없는 자유’라는 가훈을 남기고. 그런 그가 구차한 규정에 묶여 국립현충원에 눕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諸의원 자신은 현충원보다 빈민들 사이에 묻히고 싶어했을지 모르지만..
  • 한밤 연쇄화재…어제 서울도심 반경 1.5km내 12건

    지난 6일 밤과 7일 새벽 사이 서울 청계천을 중심으로 반경 2㎞ 지역에서방화로 보이는 불이 12차례 일어난 데 이어 8일 밤과 9일 새벽 사이에도 서울 종로구와 서대문구,은평구의 반경 1∼1.5㎞ 지역에서도 12건의 화재가 잇따라 발생,경찰과 소방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9일 새벽 5시쯤 종로구 교남동 17 의류상점의 빈 창고에서 불이 나 집기류등 50만원어치의 물품을 태우고 10분 만에 꺼졌다.5시23분쯤에는 서대문구충정로2가의 목재창고와 근처 노인정 3층 옥상에서 불이 났으며 30분 뒤에는서대문구 북아현1동 가구 골목,마포구 아현동 알루미늄점포,북아현1동 주택가 쓰레기더미 등 모두 7곳에서 불이 났다. 이에 앞서 8일 밤 10시쯤에는 서대문구 북가좌1동 건축자재 야적장에서도불이 났으며 50분쯤 뒤에는 1㎞쯤 떨어진 북가좌2동의 상점창고와 은평구 응암3동 카센터 천막에서 불이 나는 등 5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은 지난 6일 방화사건 이후 서울 도심의 재래시장과 빈터 등 화재 취약지구 654곳에 모두 2,864명의 병력을 배치했으나 용의자를 잡지못했다. 경찰은 화재현장에서 기름냄새가 심하게 난 점 등으로 미뤄 청계천 일대의방화사건과 동일범이거나 모방범죄인 것으로 보고 수사를 펴고 있다.
  • 관심없는 열사 죽음/유가협,국회 주변서 두달째 ‘천막농성’

    ◎진상규명할 법제정 외면/추위보다 견디기 힘들어/민주화투쟁 공로 인정을 “세상이 너무나 무심한 것 같습니다.모두 침묵하고 있을 때 일어섰다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저물어 가는 한해를 지켜보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너 장기신용은행 앞길에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회장 裵恩深) 회원 10여명은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25일로 52일이 됐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사망한 ‘열사’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의문사를 규명할 특별법을 제정해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투쟁해 온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는 어색하기만 하다.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스티로폼 몇 장을 깔고 밤샘농성을 계속해 왔다.이불과 취사도구도 갖다 놓았다.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가 예사다. 천막 안에는 ‘열사력(烈士曆)’이 걸려 있다.그 달에 사망한 이들의 날짜와 얼굴사진을 담은 탁상형 달력이다. 한뎃잠을 오래 자다보니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다.하지만 참기 힘든 것은 무관심이다.국회의원 몇 명이 다녀가긴 했지만 이들의 농성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낮에는 유인물을 돌리며 피켓시위를 하지만 반응은 냉담하다.“명예 때문만은 아닙니다.치열했던 민주화 투쟁을 정리하고 정당성을 재확인하자는 겁니다” 천막농성장에는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고 朴鍾哲씨의 아버지 朴正基씨(69)와 고 李韓烈씨의 어머니로 유가협 회장인 裵恩深씨(58)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이들말고도 86년 간첩 혐의로 경찰서에 잡혀가 7일만에 두개골 함몰상을 입고 의문사한 고 申虎樹씨의 아버지 申正鶴씨(62),지난해 3월 광주에서 시위 도중 사망한 고 柳在乙씨의 아버지 柳成烈씨(52)도 농성중이다. 이들의 요구는 국무총리 산하에 ‘보상심의회’를 설치하고 ‘열사’들의 유죄 판결에 대해 특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명예회복에 관해서는 법안이 상정돼 있지만 진상규명에 대한 입법 움직임은 없다.
  • 2001년부터 주류산업 ‘방목’/제주도에서 포천막걸리 마신다

    ◎맥주보다 비싼 막걸리?­주류 판매 가격 신고제도 폐지/소주보다 독한 맥주?­주종별 알코올 도수제한 폐지 2001년부터 탁주의 신규면허가 허용되고 공급구역 제한제도도 폐지된다. 9일 국세청이 발표한 주류산업에 대한 규제개혁방안은 탁주산업에 시장원리를 도입,소비자의 선택폭을 넓혔다.향후 주세법개정을 통해 최종 확정된다. 이 방안에는 술에 관한 여러가지 통념을 깨는 혁신적인 내용이다.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앞으로 제주도에서도 포천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 또 주종별 알코올 도수 제한이 폐지돼 ‘소주는 25도 이하,탁주는 6도 이상’이라는 통념도 사라진다.소비자들의 입맛을 당기는 파격적이고 다양한 제품이 출시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주류판매가격 신고제도도 없어져 판매업자가 마음대로 가격을 결정,‘맥주보다 비싼 막걸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술의 원료가 되는 주정제조도 앞으로 신규제조 면허를 허용,업체간 경쟁촉진을 꾀하기로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주세행정의 중심을 세수확보에 두었으나 앞으로는 업체간 자율경쟁 촉진을 위한 여건마련과 국민건강을 고려하는 쪽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 간사이·덴버공항의 교훈(인천신공항 성공을 위해서:3­1)

    ◎거듭된 개항연기 막대한 경제손실/美 덴버공항 설계과정/관광객 급증 예측 못해/19억弗 이상 추가 지출 【덴버(미 콜로라도주) 崔哲昊 특파원】 하늘에서 내려다본 덴버국제공항(DIA)은 마치 사막의 대상들이 잠시 쉬어가기 위해 쳐놓은 천막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만큼 편안한 쉼터의 모습으로 와닿았다. 덴버의 진짜 위력은 시내에 들어서면서 찾아볼 수 있었다. 80년대 말 불어닥친 오일쇼크로 광산촌인 덴버는 그야말로 찬바람이 일었다. 시내 중심가의 브로드웨이에는 문닫은 상점이 열이면 아홉이었다. 지금은 열에 아홉이 다시 문을 열었다. 덴버공항의 효과가 시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콜로라도주립대 보고서에 따르면 약 9조달러의 상승효과를 가져다 주었다고 돼있다. 이러한 덴버공항에도 ‘수난’은 있었다. 덴버공항의 당초 개항일은 93년 10월. 그러나 무려 16개월이나 늦은 95년 2월28일에야 비로소 문을 열었다. 전반적인 규모의 확대때문이었다. 공항 신축 당시의 이용인구를 기초로 삼은 것이 큰 불찰이었다. 미국경제가 되살아나면서 컴퓨터,전화회사 등 첨단산업이 속속 유치되고 로키산맥을 찾는 관광객도 늘어날 것이란 예측을 못했다. 이용인구 예측이 바뀌면서 가장 먼저,그리고 가장 규모가 확대돼 바뀐 계획은 수하물자동운송장치. 여기에만 무려 2억9,000만달러의 추가 비용이 들어갔다. 회전식 수하물자동운송기계인 ‘캐로셀’의 추가설치가 급선무였다. 또 9월부터 눈 내리는 로키산맥의 밑동네 덴버는 스키족들이 크게 몰리기 때문에 일반 화물과 크기가 구별되는 스키를 처리하는 별도의 화물운송기계가 더 많이 필요했다. 자연히 승강장의 규모도 늘려야 했으며 비행기가 일시정지하거나 움직이는데 필요한 계류장도 확대됐다. 여기에 각각 2억5,000만달러와 3억5,000만달러가 더 들어갔다. 이밖에도 당초 계획했던 전기계기들이 속속 신형으로 바뀌면서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건설비 지출계획은 89년 9월 착공이후 무려 6차례나 수정됐다. 애초 13억4,000만달러로 책정된 공사비는 30억400만달러로 불어났다. 16억6,400만달러가 추가된 것이다. 결국 추가비용에 손실액을 합치면 모두 19억6,400만달러,우리 돈으로 무려 3조원 이상이 더 들어간 셈이다.
  • 명동성당과 농성자들의 시각차/李志運 사회팀(현장)

    29일 낮 서울 중구 명동성당.연이어 미사가 열리고,오가는 신도들 표정이 여전한 것이 여느 일요일과 다름없었다.지난 27일 성당의 평신도 모임인 사목협의회 회원 50여명이 성당에서 농성중이던 노조와 재야단체들의 천막을 강제 철거하면서 빚어진 소동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농성자들의 천막도 성당 입구에 다시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평온의 이면에는 성당측과 농성자들 사이에 생겨난 갈등의 골이 깊이 패어 있었다.천막농성을 해온 건설일용노조연맹 등 6개 농성단의 반발도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이들은 “민주화 성지로 추앙받던 명동성당이 농성자를 강제로 몰아낸 것은 국민과 신도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라면서 “이번 일로 성당의 도덕적 권위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목협의회측 입장도 단호했다.협의회 관계자는 “지난 몇달 동안 농성자들을 관찰해 왔지만 도저히 정당한 시위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농성자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었으며,노숙자들과 다름없는 생활에서는 민주화운동의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시위문화’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협의회측은 “공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위협받고 있거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만한 노동운동이라면 왜 보호하지 않겠느냐”면서 곧 회의를 열어 재철거문제를 다시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노동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서로의 시각 차이를 좁히지 않는 한 이번 소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 민주열사 열전:16/연세대생 李韓烈(정직한 역사 되찾기)

    ◎‘최루탄 희생’ 6월항쟁 시민참여 계기로/대학입학후 사회의식 눈떠 시위 적극 동참/‘뇌사상태’ 알려지자 시민·학생 공감대 확산 1987년 6월9일은 80년대 한국 민주운동사에서 시민 승리의 한 분수령이 됐던 날이다.그날 일어난 연세대생 李韓烈(경영학과 2년)의 최루탄 피격 사건이 민주화 열망이 폭발한 6월항쟁의 중요한 기폭제가 된 것이다.시민들은 신문에 실린 이한열 사진을 보고 분노했다.그는 피를 흘리며 눈의 초점을 잃은 채 힘없이 동료에게 안겨 있었다.외국기자가 찍은 그 한장의 사진은 독재정권의 폭력성을 고발하기에 충분했다.시민들의 분노는 마침내 폭발했다.그 분노의 폭발은 민주화 투쟁의 원동력이 됐다. ○신문사진 보고 시민들 분노 이한열은 그날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6·10대회를 위한 연세인 총 결의대회’를 마치고 교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그리고 오후 5시 쯤 최루탄을 쏘며 달려드는 경찰에 쫓겨 학교 안쪽으로 달리다 SY44 최루탄에 ‘직격’으로 뒤통수를 맞았다.그가 쓰러진 교문 안 3m 지점과 최루탄을발사한 경찰과의 거리는 20m에 지나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쫓겨 들어가던 한 학생에 부축돼 경찰의 손을 피한 그는 동료들에 의해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다음 날 申廷淳 세브란스 병원장이 발표한 이한열의 용태는 거의 절망적이었다.신경외과 중환자실에 산소마스크를 쓴 채 입원해 있던 그는 두개골 골절 및 뇌좌상,뇌출혈,뇌이물질 등으로 의식불명이고 수술은 불가능한 상태였다.그러나 그의 절망은 민주화의 희망으로 승화됐다.그는 입원한지 27일만에 22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입원기간 동안 밖에서는 민주화를 향한 도도한 물결이 온 나라에 넘실대고 있었다. 그 물결은 87년 1월 서울대생 朴鍾哲 물고문 사망사건으로 비롯된 물줄기가 불어난 것이었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점화된 국민의 분노는 정권의 고문사건 축소조작 음모가 만천하에 폭로되면서 뜨겁게 타올랐다.4월 5공정권의 직선제 개헌 유보 발표는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결과를 가져왔다.‘호헌철폐’‘독재타도’로 압축된 외침은 서서히 학교를 빠져나와 도심 곳곳에 울려 퍼졌다.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사건은 독재정권에 결정타가 됐다. 최루탄 추방 국민대회가 전국적으로 열렸으며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메아리쳤다.회사원들이 빌딩 위에서 꽃다발과 휴지다발을 던지는 현상을 보고 외국언론은 ‘충격적’이라고 표현하고 ‘또 다른 형태의 민중의 힘’이라고 보도했다.‘넥타이부대’를 비롯한 중산층이 시위에 적극 가세하면서 부터는 6월항쟁을 단순한 학생시위에서 중산층의 민주화 욕구 분출로 결론짓기도 했다.6월26일 열린 국민평화대행진에는 6월항쟁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인파인 25만여명이 참여했고,결국 정권의 6·29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넥타이부대’ 대거 시위 참여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禹相虎씨(36)는 “한열이의 최루탄 피격은 학생과 시민의 결집력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회고했다.6월9일 이전까지만 해도 민주화투쟁의 승리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했지만 한열이가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공감대가 학생·시민들에 확산됐다는 것.그것은 도심 가두시위에 겁을 내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한열은 당시 학생운동권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8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와 서서히 사회의식에 눈을 뜨면서 1학년 2학기 이후 시위에 적극 참여했는데,이는 운동권 조직원으로서가 아닌,개인적 열정에 의한 것이었다.대학에 들어와 광주항쟁의 참상을 알고 분노한 수많은 학생 중 한명이었으며 고문 추방을 외치며 명동과 을지로 골목을 누비던 ‘보통학생’ 중 하나였다. ‘…그대 왜 갔는가/어딜 갔는가/그대 손목 위에 드리워진 은빛 사슬을/마저 팔찌끼고 갔는가’라며 박종철의 죽음을 목놓아 서러워 했던 여린 마음의 젊은이였다. 특별히 과격하지도 않은 우리의 착한 아들 딸도 정권폭력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 때문이었을까.이한열의 장례식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시민들은 6월29일 당일보다도 오히려 이한열의 장례일인 7월9일 6·29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듯 했다. ○시청앞 1백만 장례 행렬 연세대에서 10만여명으로시작된 추도행렬은 신촌네거리 노제를 지내며 30만,시청 앞에선 100만여명으로 불어났다.대형 태극기와 영정,‘한열이는 부활한다’‘한열아,너의 가슴에 민주를’ 등이 적힌 300여개의 만장을 앞세운 운구행렬을 수십만의 시민·학생이 따랐다.참으로 장엄했다.그것은 이한열을 애도하는 인파였고,민주사회를 갈망하는 국민 염원의 물결이었다.그리고 전두환 정권의 ‘항복’을 받아낸 6월 항쟁은 민주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의 발전이었다. □양력 ·1966년 8월 전남 곡성 출생 ·82년 2월 광주 동성중 졸업 ·85년 2월 광주 진흥고 졸업 ·86년 3월 연세대 경영학과 입학 ·87년 6월9일 연세대 교문 안쪽에서 시위 중 최루탄 피격 ·87년 7월5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사망 ◎이한열 어머니 裵恩心 여사/아들 소망 풀려고 민주화 운동/의문사 진상규명 법 제정해야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어두웠던 시대에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서 자식을 잃은 많은 어머니들.이들의 가슴에는 자식을 잃은 슬픔과 함께 자식이 죽기전 이루고자 했던 소망도 고스란히 묻혀 있다.이한열의 어머니 裵恩心(58) 여사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관심과 100만 추도 인파 속에 ‘성대히’ 아들의 장례를 치뤄 ‘속없는’ 사람들의 ‘부러움’까지 샀던 배여사.하지만 배여사는 오늘도 여의도 국회 앞 차가운 천막속에 있다.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벌써 24일 째다. “민주를 달라고 싸우다 숨진 사람들이 아직도 범법자의 굴레를 쓰고 있어요.암울한 시대에 권력에 의해 숱한 의혹을 남긴 죽음의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고요.이것을 그대로 묻어둔 채 진정한 새출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장례식에서 “이제 다 풀고 가라.엄마가 갚을란다.한열아… 한아 가자,우리 광주로”라고 피끓는 통곡을 토해냈다.그 이후 아들의 소망을 풀기 위해 민주화와 노동운동 현장에 항상 있었고,지금도 아스팔트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배여사는 “대통령도 특별법 제정 검토를 지시했고,국회의원들도 만나는 사람마다 협조하겠다는데 법안은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며 답답해 했다. ◎피격현장 동료 이종창씨/한열이 모습 아직도 생생/항쟁의 정신 잊지 말아야 6월항쟁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한장의 사진이 있다.이한열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힘없이 늘어져 있고,한 학생이 그를 껴안은 채 분노의 눈빛으로 앞을 쏘아보고 있는 사진이다.로이터통신 기자가 극적으로 잡은 이 장면은 세계 곳곳으로 한국 민주화투쟁을 알리는 생생한 기록으로 알려졌다. 그 분노한 눈빛의 주인공인 이종창씨(32·연세대 상경대도서관 사서)는 “‘내일 시청 앞에 가야 하는데’라고 힘없이 말하던 한열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도서관학과 2학년이던 그는 그날 학교 앞 택시정류장 쪽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경찰에 쫓겨 최루가스로 거의 앞이 안보이는 상태에서 뛰어 들어가다 왼쪽에 검은 물체를 느꼈지요. 한열이었습니다. 20여m 앞에 전경들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그를 껴안고 무조건 뒷걸음질 쳤습니다” 그는 이한열을 20m 이상 끌고 가다 먼저 쫓겨갔던 학생들이 달려왔을 때에 야 기진맥진해 주저앉았다.“쓰러진 한열이가 경찰 손에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오싹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씨도 6월항쟁의 대표적 피해자 중 하나다.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은 며칠뒤 그 또한 학교 앞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던진 돌을 머리에 맞았다.2회에 걸친 뇌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회복될 수 있었다. 6월 항쟁의 한 가운데 있던 그는 항쟁의 정신이 너무 쉽게 잊혀지는 것 같다며 못내 아쉬워 했다.언젠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세대 백양로를 지나는 학생들에게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사진을 보이자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라는 것.민주화의 밑거름이 됐던 그때의 뜨거운 열정과 희생의 참뜻은 우리 젊은이들의 가슴에 꼭 살아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 의문사 규명 특별법 제정 절실/任昌龍 기자·특집기획팀(오늘의눈)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은 끝내 어둠의 역사 속에 묻히고 말 것인가. 새정부 들어 의문사 관련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등이 그토록 기대했던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무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金鍾泌 총리는 13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에서 의문사 문제는 시효가 지나 재수사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열린 국민회의 확대간부회의에서도 ‘민주화 관련자 명예회복 및 예우에 관한 법’ 제정은 추진하되,의문사 진상규명 문제는 내년에 설치될 국가인권위원회에 넘기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인권위는 그 지위나 수사권 확보 등을 놓고 법무부,국민회의,시민단체들 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이때문에 수사권이 보장될지 의문인 인권위에 의문사 문제를 넘겨서는 안되며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안기관 전·현직 관계자 조사가 불가피한 작업을 수사권 없이 한다는 것은 ‘진상규명을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의문사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적지않은 사람들의 죽음이 권력에 의해 은폐·조작되며 사회문제화되어 왔다. 지난 70년 이후 유가족들과 인권단체 등이 공식 제기한 의문사만 해도 40건이 넘는다. 그러나 진상이 규명된 것은 거의 없다. 유가족들은 군사독재하에서 숨죽여 살며 여기까지 왔는데 새정부마저 시효가 끝나 조사할 수 없다면 의문의 죽음은 영원히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허탈해하고 있다. 남아공은 수사권을 가진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권력에 의해 자행된 고문·살해범죄의 진상을 낱낱이 밝혔다. 그리고 화해차원에서 범죄자들을 사면해주었다. 이는 진정한 화해는 진실을 바탕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우리에게도 특별법이든,인권위든 의문사 진상규명에는 수사권이 꼭 필요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유가족들은 지난 4일부터 국회앞에 천막을 쳐놓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추위에 떨며 ‘진실의 햇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도 범죄자들을 진정용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 어머니의 한/한충목 열사범추위 집행위원장(굄돌)

    20년전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절규하며 산화한 청년 전태일이 있었습니다. 87년,‘독재 타도,호헌 철폐’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이한열 군이 직격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이렇게 죽어간 꽃다운 청춘이 430명. 자기 한 몸의 안락보다도 모두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꿈꾸다가 지금 우리와 함께 할 수 없게 된 이들을 우리는 열사라 부릅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 98년 스산한 초겨울,여의도 국민회의 당사앞에선 먼저 간 아들·딸보다 더 오래동안 싸우고 있는 어머님·아버님들이 ‘민족민주유공자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 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셨습니다. “살아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올해 안엔 특별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국민의 정부’의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유가족회장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특별법이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정부와 여당에 적극 협력할 것을 지시하겠다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법안이 아직 국회 법사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가족의 가슴은 한번 더 무너져내립니다. 김대통령은 지금 제2의건국 즉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에 모든 국민이 함께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나라가 바로서려면 민주화를 외치며 스러져간 분들에의 올바른 역사적 평가,의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그리고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분들 가슴에 맺힌 한과 억울함이 법제정으로 씻기리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특별법 제정은 우리 역사와 나라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며 죽은 자식과 살아 있는 어버이들의 한맺힘을 푸는 소중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 50년 분단사 정경분리 이정표 놓을듯/鄭周永씨 방북과 남북관계

    ◎대북 포용정책 실천 민간교류 활성화 기대/북측 ‘외화벌이’잇속 일방적 시혜는 경계 27일 현대그룹 鄭周永 명예회장의 재방북이 남북관계의 큰 흐름을 바꾸는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소떼 501마리를 동반하는 그의 판문점 통과는 경제적 차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50년 분단사에서 ‘정경분리’라는 새 흐름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당국간 거래를 중심으로 부침해 왔다.양측 이해가 맞닿을 때 ‘반짝 특수’가 있다가 곧 긴 냉각기로 이어지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金大中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정경분리가 대북 포용정책의 실천 지침이다.민간교류 활성화로라도 남북 접촉면을 넓히는 게 통일기반 조성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현대측이 독점 개발권을 갖고 추진하려는 금강산 종합개발사업이 주목된다.금강산 유람선사업과는 달리 남북한 주민간 접촉빈도가 잦아질 것이라는 점에서다.금강산내 각종 인프라 건설과 운용 과정에서 북한측의 참여가 불가피한 탓이다. 북한도 이사업엔 의욕적이다.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체제 동요 우려를 감수하면서까지다.금강산개발이 죽은 金日成 주석의 ‘유훈사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무엇보다 한푼의 외화가 아쉬운 북한으로서 목돈을 만진다는 것은 뿌리치기 쉽지 않은 유혹일 것이다. 이 사업 계획에 따르면 현대측은 북측에 앞으로 6년간 매년 1억5,700만달러를 지불한다.대신 금강산을 ‘상품’으로 하는 각종 부대사업을 2030년까지 독점한다. 물론 鄭회장 방북으로 당장 남북간 해빙무드가 본격화하는 것은 아니다.당국을 배제한 채 남측으로부터 실리를 극대화하려는 게 북한의 기본 입장이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도 보수적 여론을 설득하는 게 ‘발등의 불’이다.거액 자금의 북한유입에 따른 체제유지 내지 군비 전용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해야 한다는 쉽지않은 과제다. 최근 ‘햇볕정책’ 대신 대북 포용정책 내지 공존공영 정책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도 이를 의식한 결과인 듯하다. 북측에 대한 ‘일방적 시혜’라는 오해를 사지 않겠다는 경계심과 무관치 않은 까닭이다. ◎‘牛公의 행차’/위속 이물질없는 건강한 소만 골라/수송열 대비 백신·항생제 등 주사 소떼를 북한에 출가시키는 현대의 정성이 지극하다.지난 6월16일 보낸 500마리 가운데 71마리가 죽은 원인을 둘러싸고 남북간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터라 신경을 더욱 썼다.현대는 앞으로도 남북교류를 계속 잇는다는 뜻에서 1차 때보다 1마리를 더 보태 501마리를 보낸다. ■알짜만 골랐다=밧줄이나 비닐을 먹은 소는 뺐다.760마리를 놓고 직장과 위장검사를 해 이물질이 없고 건강한 소 501마리를 골랐다. 암소 375마리,수소 126마리.암소 가운데 절반이 새끼를 뱄다.1차때 태어난 송아지는 30여마리.귀에 501∼1001번까지 명찰을 달았다.코뚜레는 하지 않았다.소값만 9억원. ■특별히 관리했다=장시간 이동에 따른 수송열에 걸리지 않게 백신주사를 맞혔다.출발하기 전에는 항생제를 놓았다.새끼를 밴 소에게는 유산예방용 호르몬 주사를 맞히기도 했다.‘특별사양 프로그램’을 짜고 3주 전부터 정성껏 보살폈다.북한에 도착할 때까지 소에게먹일 사료 85t과 소화촉진제,물통 205개,약품 등을 준비해놨다.낯선 땅에 도착해 수송열과 ‘향수병’에 걸려 죽지 않게 북한 도착후 1주일간의 관리요령도 마련했다. ■트럭 타고 간다=이동중 사고를 막기 위해 사양관리자 15명과 수의사 3명이 서산농장부터 판문점까지 동행해 보살핀다.26일 밤 11시 출발해 천안톨게이트∼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와 올림픽대교∼신행주대교∼자유로를 거쳐 27일 새벽 5시쯤 통일대교 입구에 도착한다. ◎방북길 이모저모/“새로운 시작 의미로 1마리 더 추가”/승용차 14대도 새벽녘 임진각 도착 지난 6월16일에 이어 두번째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전달될 소 501마리가 26일 밤 11시 북행길에 올랐다.이번에 북한측에 보낼 소는 1차 때보다 1마리가 늘어난 501마리.이에 대해 현대측은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로 1마리를 추가했다”고 밝혔다. ○…소떼를 실은 트럭들은 서산농고 농악대의 풍물놀이 가락이 펼쳐지는 가운데 서산농장 직원 100여명의 환송을 받으며 장도에 올랐다. 차량행렬은 홍성∼아산을 잇는 국도를 따라 천안까지 간 뒤 10분 가량 휴식을 취하고 다시 천안 톨게이트를 통해 경부고속도로에 진입,상경했다.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뒤에는 올림픽대로와 신행주대교,자유로 등을 거쳐 27일 오전 5시쯤 임진각에 도착.또 소떼와 함께 북한에 전달될 다이너스티등 승용차 14대도 오전 4시가 조금 지나 임진각에 도착했다. ○…이날 북송 소의 출발을 취재하기 위해 취재진 100여명이 서산농장에 몰려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으며 특히 방송사들은 헬기까지 동원해 지상과 공중에서 입체 중계를 실시했다. ○…현대측은 소들이 운송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트럭에 붙들어 매지 않고 천막을 둘러 눈길. 소를 실은 트럭 양쪽에는 ‘정주영 명예회장 방북 소 운반차량’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차량행렬의 출발에 앞서 현대건설 서산 A·B지구 사업소 姜永洛소장(49)을 제주(祭主)로 소들의 무사 북송을 비는 안전수송 기원제가 열렸다.
  • 노숙자 이대로 둘순 없다­천막촌 일가족의 하루

    ◎“아빠 집에 가요” 아이는 보채는데…/바닥에 비닐 깔고 새우잠 “밤새 덜덜”/“가을 가기전 월세라도” 일감은 없고/말수 적어진 아이 “겨울잠 잤으면…” “겨울잠을 자서 따뜻한 봄에 깨면 좋겠어요” 29일 새벽 4시 서울 서소문공원 노숙자 천막촌. 새벽 단잠을 청하던 노숙자 成모씨(41)가 문득 천막을 들추고 나왔다. “얼마나 추웠으면…” 成씨는 며칠전 아들(11·서울 S초등학교 4년)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남대문 새벽 인력시장으로 향했다. “어떻게 해서든 가을이 가기 전에 월세방을 얻어야지” 거듭 다짐해 보지만 일감이 없다. 새벽 6시. 천막으로 되돌아와 아침을 준비했다. 아들을 깨워 공원 화장실에서 세수를 시키고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냈다. 아침 저녁으로 추워지면서 아들이 감기까지 걸려 기침을 많이 한다. 활달했던 아이가 부쩍 말이 줄었다. 成씨는 “지난 91년 아내가 교통사고로 숨진 뒤 아이를 혼자 키워왔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아팠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노숙 생활 4개월째. 천막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길에서 주운비닐 장판을 덮었다. 3장의 담요를 깔고 덮어 추위를 쫓고 있다. 成씨는 지난해 10월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 6개월간 입원했다. 산재 보험비를 받았지만 병원비를 대느라 모아둔 돈까지 다 썼다. 그동안 월세 20만원짜리 방값을 내지 못했다. 주인의 독촉이 심해져 몇 점 되지도 않는 가재도구를 담보로 맡기고 지난 5월말 집을 나왔다. 하지만 되돌아갈 기약이 없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일을 해서 돈을 모아야지요. 그래야 방도 얻고…” 저녁 9시쯤,낮에 일감을 구하지 못해 하루종일 담배만 태웠던 成씨와 李씨는 아이들을 재우고 천막에서 나와 이렇게 말하며 재기의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공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10월 중으로 서소문공원에서 천막을 치지 못하게 한다더라”는 소문에 이들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다.
  • “월드컵 경기장 막구조 지붕 바람직”/조동순(발언대)

    서울 상암동 월드컵축구경기장의 지붕구조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월드컵축구경기장의 지붕은 막구조물이 돼야 한다. 일부에서는 강판구조를 주장하지만 막구조물이 내구성과 경제성에서 훨씬 뛰어나다는 점은 세계적으로 이미 입증됐다. 특히 지난 6월18일자 서울신문을 통해 포철이 밝힌 대로 호주의 시드니 축구장처럼 ‘철골구조에 막구조 지붕’은 세계적 추세에 부응한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막구조란 국내에선 시중의 천막이나 잔칫집의 차일 같은 간단한 임시구조물을 연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막구조는 지난 70년 일본 오사카박람회 이후 세계 도처에서 대형 공간의 지붕구조 방식으로 채택됐고 다른 어느 구조나 재료보다 우수한 지붕 재질로 인정받고 있다. 막을 덮는 방식으로는 일본 도쿄돔야구장이 대표적이다. 또 국내에선 서울 여의도의 중소기업관도 같은 공기막구조이다. 기둥과 케이블에 의한 본격적인 막구조 건축은 서울올림픽공원의 체조경기장 및 펜싱경기장,시공중인 부산의 사직운동장과 설계가 확정된문학경기장,대구의 주경기장,시드니경기장 등이 있으며 이런 방식은 아직 국내 기술만으로는 설계와 시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철골 트러스 사이에 막을 팽팽히 당겨 씌우는 공법은 가장 단순한 막구조로 국내에서도 충분히 제작,시공이 가능하다. 내구성이 25년 이상으로 사실상 영구 재료인 테플론은 현재는 수입을 해야 하지만 최근 국내 개발이 가능해져 연말이면 가격·인장력·자정능력·내구성 등에서 충분히 국제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할 전망이라는 점도 다행한 일이다.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와 결과를 기원하며 상암동주경기장이 막구조로 건설되어 월드컵을 기념하는 건축물로 길이 남게 되길 기대한다.
  • 라인점검·주변청소 분주/현대自 조업준비 안팎

    ◎협력업체 직원도 정상 출근… 시설 시험가동/정리해고 식당종업원 항의에 노조 대책 부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빠른 속도로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휴업이 해제된 25일 1만5,000여명의 직원들이 출근,조업준비로 구슬땀을 흘렸다. ○…생산직 사원 1만여명과 관리직 사원 5,000여명은 이날 회사안 300여개의 농성 천막과 3개정문에 설치됐던 바리케이드를 모두 걷어내고 생산라인과 장비를 점검하며 녹을 닦아내는 등 조업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오 3시부터 5시까지 두시간 동안 수출물량 확보가 시급한 2공장 아토스라인 시험가동에 들어가 30여대의 아토스를 지난달 20일 조업중단 후 37일만에 처음으로 생산.26일에는 전사원을 정상출근시켜 1·2·3·4공장 모두 조업을 재개하기로 결정. 회사측은 구조조정으로 인력이 빠져나간 생산라인마다 인력 재배치를 했지만 실제현장에서 손발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조업이 완전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며칠이 걸릴 것으로 예상. ○…노조는 이번 노사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오는 29일실시하기로 하고 조합원 설득과 총회 준비,회사측과의 합의내용 이행을 위한 협의준비 작업을 진행.노조는 우선 정리해고 대상자에 포함될 식당종업원 1백60여명의 항의가 이날도 계속되자 외주화될 때까지 한달간 정상 근무하는 것은 물론 외주업체에 확실한 고용보장을 약속받겠다며 설득. ○…현대자동차의 1,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도 정상출근해 조업 채비를 갖췄다.시트를 생산하는 울산시 북구 효문동 한일이화는 이날 4백80여명의 직원들이 출근해 자재 및 생산시설 점검을 완료하는 등 대부분의 협력업체들이 가동준비에 분주.
  • 현대自 오늘 조업 재개/분규 완전 타결

    ◎“新노사문화 정착 앞장 설것”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노사분규를 거듭해왔던 현대자동차 사태가 24일 완전 타결됐다. 회사측은 무기한 휴업조치를 철회하고 25일 상오 8시부터 정상조업에 들어간다. 鄭夢奎 현대자동차 회장과 金光植 노조위원장은 이날 상오 李起浩 노동부장관과 중재단장인 盧武鉉 국민회의부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회사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사가 고용조정안에 최종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노사대표는 이어 대국민 사과성명을 통해 “장기간 조업중단으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데 깊이 사과하며 협력업체와 정부 및 관계기관에도 죄송하다”면서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신노사문화 정착과 제2의 건국운동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대형사업장에서 상징적인 정리해고가 단행됨으로써 향후 다른 사업체에도 적지않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노사 합의문의 주내용은 ▲277명 정리해고 ▲정리 해고자에게 근속기간에 따라 7∼9개월분의 위로금 지급 ▲정리해고 구제인원 1,261명은 1년6개월 무급휴직 실시(1년 경과후 6개월은 교육훈련) ▲노사화합 및 무분규 선언 추진과 향후 2년간 고용조정 금지 등이다. 노사는 또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 기준이 합리적이고 공정하지 않을 경우 법적 절차에 의한 결정을 따르고,정리해고자 재취업 문제는 회사가 적극 노력하며,고소 고발 취하는 조업정상화 뒤 선처토록 하되 노조활동에서 벗어난 심각한 인명·재산상 피해는 제외하기로 했다. 이번 사태는 노조가 23일 새로운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한때 결렬위기에 봉착했으나 李장관이 24일 새벽까지 노사 양측을 설득해 극적인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한편 이날 회사 주변에 배치됐던 경찰은 모두 철수했으며 회사안 천막에서 철야 농성했던 조합원들 또한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노조는 조만간 비상대의원대회를 열어 잠정합의안을 추인할 계획이다. 일부 노조원들이 반발해 다소 진통이 예상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