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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일 재보선’ 향후 기상도

    #가상 뉴스1 네,여기는 열린우리당입니다.6·5재보선 4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한 열린우리당은 지금 초상집 분위기입니다.경남지사와 부산시장은 물론 전남지사와 제주지사 선거까지 모두 패배한 열린우리당은 당분간 책임론을 둘러싸고 시끄러울 것 같습니다.물론 김부겸 의장비서실장은 “지방선거 결과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비주류를 중심으로 신기남 의장체제 교체론과 함께 전당대회 소집 요구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개혁당 출신 김원웅 의원은 “패배한 책임을 지고 현 지도부는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김혁규 총리 지명을 강행할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청와대는 “재보선 결과와 총리 지명과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지금까지 영등포 열린우리당 공판장 당사에서 KKK뉴스 ○○○입니다. #가상뉴스2 네,한나라당입니다.재보선에서 부산시장을 열린우리당에 빼앗긴 한나라당은 지금 충격에 휩싸여 있습니다.한나라당이 영남지역 광역단체장을 다른 당에 내주기는 처음입니다.4·15총선 때 부산·경남지역에서 일부 타격을 입은 데 이어 부산시장 선거까지 지자 당내에서는 “영남이 더 이상 한나라당의 아성이 아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박근혜 대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게 됐습니다.박 대표는 이번 재보선 승리를 발판 삼아 다음 달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다시 대표로 뽑힌 뒤 당내 기반을 확고히 다진다는 계획이었으나,경선 출마 자체를 재고해야 할지도 모를 곤경에 처했습니다.지금까지 여의도 한나라당 천막당사에서 KKK뉴스 ○○○입니다. #가상뉴스3 네,민주당입니다.전남지사에서 패한 민주당은 한마디로 망연자실한 표정입니다.지난 총선에서 제4당으로 전락한 데 이어 사활을 걸었던 전남지사 선거마저 패배함에 따라 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이 됐습니다.한 당직자는 “당이 증발해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고 털어놨습니다.여의도 민주당사에서 KKK뉴스 ○○○입니다. 5일 치러지는 6·5재보선 결과에 따른 가상뉴스다.열린우리당은 전패(全敗)를,한나라당은 영남지역에서의 패배를,민주당은 전남지사 패배를 최악의 상황으로 우려하고 있다.어느 당이든지 ‘최악’이 현실화한다면 내부적으로 한바탕 홍역이 예상된다. 반면 한나라당이 3승을 거두면 박근혜 대표의 위상 강화와 함께 대여공세가 거세질 전망이다.열린우리당이 3승을 거두면 신기남·천정배 체제가 탄력을 받으면서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민주당이 전남지사 선거에서 이기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이밖에 2승2패 등의 결과는 정국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길섶에서] 백동전 한 닢/심재억 기자

    운동회 날 아침,고무신을 동여맬 새끼줄 두어발을 챙겨 집을 나서는 내게 아버지,“옛다.사이다 사 마셔라.”동전 한 닢을 건넸다.운동회 생각에 밤잠 설친 아이들,하나,둘 만국기 아래 모여 신바람을 주체하지 못했다.횟가루가 선명한 운동장 어름,뒤질세라 호떡집 번철이 달아오르고,천막 주점의 솥단지에서는 순대며,돼지 살코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갔다. 성미 급한 ‘아이스께끼’장사들이 목을 가다듬으며 모여들 무렵,그 대목에서 문제가 생겼다.얕은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동전이 등굣길에서 짓 내고 까부는 통에 어디론가 달아나버린 것이다.서둘러 살 두어바탕쯤 왔던 길 되짚어 가보지만 싸한 바람만 눈가를 스칠 뿐 동전은 흔적이 없다.눈앞이 하얘지며 온 몸에 힘이 쭈욱 빠지는 그 낭패감이란.달리기에서 1등을 하고도 통 흥이 나질 않았다. 낮 무렵,계란말이 도시락을 싸오신 어머니 덕분에 사이다는 마실 수 있었지만,잠자리에서도 그 일이 잊혀지지 않았다.당시 5원으로 쳐주던 액면가 50환짜리 백동전 한 닢.요즘 애들 들으면 “5원 때문에? 거짓말.”할 일이다.이러다 우리 삶이 통째로 인플레되지나 않을는지. 심재억 기자 jeshim@seoul.co.kr˝
  • “청와대가 노래방이냐?” 만찬 뒷말 무성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9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초청해 가진 청와대 만찬을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야당은 “잔치를 벌일 때냐.”고 거센 비판을 해대고,네티즌들은 뜨거운 찬반 논란을 벌이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6·5재보궐 선거에서 쟁점으로 한껏 활용하겠다는 전략이 엿보인다.박근혜 대표는 31일 경남 진주 지원유세를 한 자리에서 이 문제를 짚었다.박 대표는 “400만 신용불량자와 길거리를 헤매는 50만 청년실업자,지금도 끼니를 걱정하는 30만 결식 아동의 배고픔을 생각하면 청와대 만찬이 그런 식으로 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그러면서 “2시간30분 만찬 내내 경제 얘기는 거의 없고,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해도 되는 것이냐.”고 개탄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만찬장에서 샥스핀 수프를 곁들인 7가지 코스요리가 나오는 등 청와대가 파티장이었다.”면서 “청와대가 무슨 노래방이냐.”고 포문을 열었다.전여옥 대변인도 “지금이 ‘만남’,‘부산갈매기’,‘허공’ 같은 노래를 부를 때냐.”면서 “승리에 도취해 기름진 음식에 포도주를 마시는 것에 대해 국민의 원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인터넷 홈페이지도 청와대 만찬에 대한 토론으로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네티즌 ‘7006yj’는 ‘춘향전’의 한 구절을 빌려 “금잔의 아름다운 술은 일천 사람의 피,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고 꼬집었다.네티즌 ‘socoolo1’는 “캐비어와 샴페인으로 만찬을 들 때 납세자는 살길이 막막해 자살하고,30만 어린 새싹은 굶주리며 벽에 ‘배고파’라고 쓴다.”고 성토했다. 반면 야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한 네티즌은 “(한나라당이)세풍·안풍·차떼기 등으로 그동안 먹은 것이나 다 토해내라.”고 나무랐다.네티즌 ‘원조나그네’도 “천막을 지키다 밤에 어슬렁 룸에 들어가 비싼 술을 먹고,집에 들어가 금고에 있는 돈 세는 것보다 오픈된 장소에서 떳떳하게 뷔페 먹는 게 낫다.”고 한나라당을 성토했다.네티즌 ‘malco’는 “코스 요리 먹으면서 그동안 노고와 승리를 자축하겠다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면서 “야당이 평소에는 그거보다 더 비싼 것을 자주 먹지 않았냐.”고 지적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대선자금 수사결과] 정경유착 고리끊은 ‘혁명’

    [대선자금 수사결과] 정경유착 고리끊은 ‘혁명’

    9개월 동안 정치권과 재계를 몰아친 불법 대선자금의 수사는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면서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뒀다.지난 4·15 총선의 결과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돈 안드는 선거가 우리 정치에서도 뿌리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하지만 기업인의 처리 등에서는 번득이던 칼날의 빛이 바랬다.때문에 수사 초기 검찰이 보여준 부패척결에 대한 꿋꿋한 의지가 경제 논리에 무뎌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부패의 고리속에 얽히고설킨 정치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지난해 8월 SK 비자금 수사를 시작으로 10대 그룹으로 확대된 대선자금 수사는 이른바 ‘차떼기’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면서 정경유착 근절을 목표로 정치권을 상대로 메스를 들이댔다. 특히 검찰은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통해 노 캠프 주변의 불법자금을 성역없이 파헤쳤다.과거 금기시돼왔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안희정·이광재·여택수·최도술씨 등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잇따라 구속되거나 재판에 회부됐다.정대철·이상수 의원 등 현 정권의 창업공신들도 예외없이 철퇴를 맞았다. 측근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되자 노 대통령은 지난 3월11일 재신임과 4·15총선을 연계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또 이날 기자회견에서 측근들에 대한 옹호성 발언은 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불러일으킨 단초가 됐다. 한나라당은 ‘부패정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지난 대선 직전에 모금한 불법자금 규모가 800억원을 넘어서자 한나라당은 천막 당사로 자리를 옮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비록 불입건 처리됐지만 대선잔금 채권 154억원을 따로 보관하도록 지시한 부분이 수사결과에서 드러났다.대선자금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검찰은 김종필·이인제 의원 등 거물급 정치인이 불법자금 수수 혐의로 전격 사법처리됐다. 검찰은 지금껏 수사의 타깃은 불법 대선자금의 수수 관행과 기업의 본질적인 비리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불법자금 제공 혐의로 형사처벌된 재벌 총수급은 SK 손길승 전 회장과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등 2명에 그쳤다.논란의 불씨를 남긴 셈이다.미국에서 장기체류중인 한화 김승연 회장에 대해서는 기소중지와 함께 입국시통보 조치를 하면서 일단락졌다. 검찰은 한나라당에 100억원 이상을 간넨 삼성,LG,현대차 등의 재벌 총수들을 모두 불입건 조치했다.대신 검찰은 각 기업의 구조조정본부장급 임원을 전원 불구속기소했다.처벌 범위를 최소화한 것이다.기업들이 정치권의 강제적인 요구에 따라 자금을 제공했을 뿐이고 경제가 어렵다는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정치권에 제공한 수백억원대의 자금출처와 관련,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는 못했다.검찰은 실제 기업들이 대주주의 자금이라는 주장을 깰 만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검찰은 이를 증거법상의 한계 탓으로 돌렸다.또 일부 구조조정본부장급에 대해서는 상징적인 차원에서라도 구속수사를 해야한다는 수사팀 내부 의견도 적지 않았으나 검찰은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기업인의 처리 수위와 범위를 낮췄다. 이같은 맥락에서 대선자금 수사는 기업인과 관련한 처벌 수위 및 대상에 있어 오히려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나 지난해 1월 재계에 엄청난 파장을 끼친 SK 수사보다도 미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신기남-박근혜 “선친끼리 친구였네요”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선친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막역한 친구였던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신 의장은 21일 신임인사차 한나라당 천막당사로 박근혜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두 분은 대구사범학교 동기동창”이라며 선친들의 인연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신 의장은 “광복 이후 박 전 대통령은 군문에 들었고,저의 아버님은 경찰이 됐다.”면서 “한국전쟁 때 같이 싸웠고 박 전 대통령이 강원도 춘천에서 사단장을 할 때 아버님도 거기서 근무했다.”고 소개했다.이어 “박 대통령과 육 여사가 결혼하실 때 제 아버님이 청첩인이어서 청첩장에도 이름이 나와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예상 밖의 비화에 “처음 듣는 얘기다.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신 의장은 또 “박 대표와 52살 동갑내기이며 70학번이라는 점도 같다.”며 “박 대표가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다닐 때 제 친구도 같은 학교에 다녀 박 대표의 학창시절 얘기를 듣곤 했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이같은 인연 때문인지 회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뤄졌다.두 사람은 지난 3일 정 전 의장과 박 대표가 합의한 ‘3대 원칙 5대 과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특히 17대 국회에서는 대화와 타협을 최우선으로 하고 민생·경제·안보·남북문제에도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전광삼기자 hisam@˝
  • [대선자금 수사결과] 정경유착 고리끊은 ‘혁명’

    9개월 동안 정치권과 재계를 몰아친 불법 대선자금의 수사는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면서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뒀다.지난 4·15 총선의 결과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돈 안드는 선거가 우리 정치에서도 뿌리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하지만 기업인의 처리 등에서는 번득이던 칼날의 빛이 바랬다.때문에 수사 초기 검찰이 보여준 부패척결에 대한 꿋꿋한 의지가 경제 논리에 무뎌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부패의 고리속에 얽히고설킨 정치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지난해 8월 SK 비자금 수사를 시작으로 10대 그룹으로 확대된 대선자금 수사는 이른바 ‘차떼기’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면서 정경유착 근절을 목표로 정치권을 상대로 메스를 들이댔다. 특히 검찰은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통해 노 캠프 주변의 불법자금을 성역없이 파헤쳤다.과거 금기시돼왔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안희정·이광재·여택수·최도술씨 등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잇따라 구속되거나 재판에 회부됐다.정대철·이상수 의원 등 현 정권의 창업공신들도 예외없이 철퇴를 맞았다. 측근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되자 노 대통령은 지난 3월11일 재신임과 4·15총선을 연계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또 이날 기자회견에서 측근들에 대한 옹호성 발언은 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불러일으킨 단초가 됐다. 한나라당은 ‘부패정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지난 대선 직전에 모금한 불법자금 규모가 800억원을 넘어서자 한나라당은 천막 당사로 자리를 옮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비록 불입건 처리됐지만 대선잔금 채권 154억원을 따로 보관하도록 지시한 부분이 수사결과에서 드러났다.대선자금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검찰은 김종필·이인제 의원 등 거물급 정치인이 불법자금 수수 혐의로 전격 사법처리됐다. 검찰은 지금껏 수사의 타깃은 불법 대선자금의 수수 관행과 기업의 본질적인 비리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불법자금 제공 혐의로 형사처벌된 재벌 총수급은 SK 손길승 전 회장과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등 2명에 그쳤다.논란의 불씨를 남긴 셈이다.미국에서 장기체류중인 한화 김승연 회장에 대해서는 기소중지와 함께 입국시통보 조치를 하면서 일단락졌다. 검찰은 한나라당에 100억원 이상을 간넨 삼성,LG,현대차 등의 재벌 총수들을 모두 불입건 조치했다.대신 검찰은 각 기업의 구조조정본부장급 임원을 전원 불구속기소했다.처벌 범위를 최소화한 것이다.기업들이 정치권의 강제적인 요구에 따라 자금을 제공했을 뿐이고 경제가 어렵다는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정치권에 제공한 수백억원대의 자금출처와 관련,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는 못했다.검찰은 실제 기업들이 대주주의 자금이라는 주장을 깰 만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검찰은 이를 증거법상의 한계 탓으로 돌렸다.또 일부 구조조정본부장급에 대해서는 상징적인 차원에서라도 구속수사를 해야한다는 수사팀 내부 의견도 적지 않았으나 검찰은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기업인의 처리 수위와 범위를 낮췄다. 이같은 맥락에서 대선자금 수사는 기업인과 관련한 처벌 수위 및 대상에 있어 오히려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나 지난해 1월 재계에 엄청난 파장을 끼친 SK 수사보다도 미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폴리시메이커] 이재율 경기도 투자진흥관

    “산업단지 조성에 최대 걸림돌인 분묘 이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2명의 공무원으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분묘연고자를 직접 찾아가 설득했습니다.” 100여만평 규모의 LG필립스 파주 LCD단지는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1년 만인 지난 3월 기공식을 갖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통상적으로 산업단지는 지정절차를 거쳐 첫삽을 뜨기까지 3년 이상 걸린다. 외자유치와 산업단지조성 등 경기도 경제정책의 핵심역할을 맡고 있는 이재율(45·부이사관) 투자진흥관은 17일 “한국과 대만,중국을 놓고 신규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던 LG필립스를 행정력을 총 동원해 유치했는데 그쪽에서 기술 특성상 단지를 하루빨리 조성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겨울에 진행된 문화재 사전 발굴은 봄까지 기다릴수 없어 비닐 천막을 쳐놓고 언 땅을 녹이면서 끝마쳤다.”면서 “이같은 노력의 결과, 개발계획 수립부터 실시 계획 승인까지 모든 행정절차를 1년 만에 초스피드로 끝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LG필립스 파주 유치는 미국의 LCD제조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 필름사 등 외국 LCD관련 업체들의 도내 투자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LG필립스 LCD산업단지 유치후 관련 부품산업 유치로 전략을 바꾼 게 주효한 것이다. 올 들어 도가 유치한 외국자본은 21건에 7억달러.이는 LG필립스를 제외하고 지난해 1년간 도가 유치한 외국자본 10건,2억달러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특히 과거 대형 프로젝트 위주의 외자유치에서 벗어나 LCD를 비롯한 자동차·반도체 등 첨단 부품 업종을 유치해 클러스터(집적화)를 추진한 것도 외국기업을 유치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이 진흥관은 “LCD클러스터 사업의 일환으로 파주 단지에서 10㎞쯤 떨어진 문산 인근에 50만평 규모의 부품협력단지를 조성할 계획으로, 2∼3곳의 후보지를 놓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예정대로 협력단지가 입주하면 휴전선 최인근에 공장이 들어서는 셈이다.개성공단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고 남북관계가 안정이 되면 경기북부 개발도 자연스레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보성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 진흥관은 행정고시 30회로 도 법제계장,교통기획계장,도정혁신담당관,정책기획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경기도의 핵심 브레인이다. 지난 94∼96년과 2000∼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영국 버밍엄 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왔으며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i센터] 어린이 대공원 ‘동춘서커스’

    이번 주는 신나는 나팔소리와 피에로의 익살스러운 광대짓이 흥겨운 서커스 공연을 보러 가자. 오는 30일까지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선 커다란 천막 안에서 ‘동춘서커스’공연이 펼쳐진다.아이들 손을 잡고 천막 한편에 앉아 있노라면 옛 추억이 떠오른다.사자춤의 흥겨움으로 공연은 시작한다.사자의 탈을 쓴 무희들이 관람석으로 내려와 아이들에게 장난치며 분위기를 돋운다. 접시돌리기,외발자전거 묘기,좁은 통속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소녀의 묘기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어나 박수를 친다.12명이 동시에 하는 인간탑 쌓기의 체조 묘기,훌라후프 20개를 한꺼번에 돌리는 묘기에서 유난히 박수 소리가 크다. 어린 소녀가 객석에서 제일 무거워 보이는 아저씨를 무대로 데리고 나온다.“엄마 아빠는 왜 누나랑 무대로 나갔어.”하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엄마는 “글쎄 왜 그러나 한번 볼까?”하며 숨을 죽인다. 이게 웬일인가.아빠를 집어넣은 항아리를 소녀의 가녀린 다리위에 올려 놓는 것이 아닌가.그러더니 항아리를 빙글빙글 돌린다.“야 저 누나는 힘이 진짜 세다.”하며 웃는다. 서커스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공중그네다.까마득하게 높은 천장,긴 줄 끝에 드리워진 두 개의 그네. 둥둥 둥둥….북소리가 긴장감을 더하는 가운데 한 청년이 그네에 거꾸로 매달려 힘차게 그네질을 한다.반대편의 가녀린 소녀는 그네를 타고 청년에게 다가간다.만나는 듯하면 멀어지고,멀어지면 다시 다가가고. 순간 높이 날아올라 공중제비를 도는 소녀.“으아악∼ ”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는다.어느새 소녀는 청년의 팔목을 잡아 쥔 채 여유롭게 하늘하늘 공중을 휘젓고 있다. 서커스장을 나서 어린이대공원의 동물원이나 놀이시설,중국 등축제를 둘러보면 휴일 하루를 알차게 즐길 수 있다.서커스는 매일 오후 1시와 3시,저녁 7시와 9시 모두 네 차례 약 40분간 공연을 한다. 입장료는 대인 8000원,소인 6000원,경로자와 장애인은 4000원이며 4세이하는 무료다.(02)455-5331.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
  • 박근혜·천정배 “민생우선” 합창

    “어떤 개혁에 비중을 두실거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3일 천막당사를 예방한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와의 대화도중 이렇게 물었다. 천 원내대표는 박 대표의 ‘의중’을 간파한 듯,“민생이 우선이죠.”라고 받았다.박 대표는 일전에 “민생은 안챙기고,정간법·국보법 개정에만 열을 올린다.”고 여당을 비판한 적이 있다. 천 원내대표는 “민생은 리얼타임으로 챙기고,개혁은 계획을 짜서 하되 잘못되고 낡은 것은 생산적이고 합리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천 원내대표가 나름의 순발력을 과시하며 대화를 국가 경쟁력으로 이끌 무렵,박 대표는 다시 한차례 이 문제를 거론했다.“개혁도 결국은 민생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주자는 것인데,그렇지 않으면 개악이다.개혁의 시금석은 민생”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자 천 원내대표는 “어린아이가 배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생 건강을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오늘 배부른 게 민생이라면,건강은 개혁인 셈”이라고 응수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지나고 천 원내대표와 진영 한나라당 대표비서실장간의 인연이 주제가 된 뒤에도 ‘개혁 논의’는 그치지 않았다. 진 실장이 “천 원내대표는 합리적인 사람으로 내가 남몰래 칭찬을 많이 했다.”고 하자,천 원내대표는 “그렇죠? 합리적이죠?”라며 반겼다.야당을 향해 ‘합리적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식의 제스처를 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개혁이 합리적이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개혁 자체가 합리적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평소와는 다른 박 대표의 ‘집요함’은 17대 국회 개원과 함께 ‘경제난’을 둘러싼 야당의 질타가 거셀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이지운기자˝
  • 점심시간이 용천소학생 피해 줄였다

    지난달 22일 평안북도 용천역 폭발사고로 인근 용천소학교(초등학교)건물이 폐허처럼 무너졌지만,때마침 학생과 교사 대부분이 점심을 먹기 위해 학교 건물을 벗어났기 때문에 그나마 사상자가 적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9월 평양에 부임,최근 용천 사고 현장을 둘러본 유니세프(국제아동기금)평양 사무소의 피에르테 부티(여) 소장은 최병렵 용천소학교 교장 등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유니세프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지난달 30일 부티 소장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용천 어린이들의 모습을 전한 유니세프측은 “폭발사고가 발생한 낮 12시10분쯤 용천소학교의 학생,교사 등 1300명이 대부분 점심을 먹기 위해 이미 건물 밖으로 나가 있었다.”면서 결과적으로 사상자가 덜 발생했음을 시사했다. 부티 소장은 “최 교장이 당시 폭발상황을 전할 때 여전히 슬픔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용천소학교에서는 63명의 어린이와 2명의 교사가 숨졌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통일부 관계자는 3일 “북한의 소학교는 도시락을 함께 먹는 점심시간이 별도로 없다.”면서 “오전 11시40분에 수업을 끝내고 종례식을 한 뒤 헤어진다.”고 말했다. 각종 소조활동이나 복습,생활총화 등을 위해 모이는 오후 1시30분까지 각자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온다는 것이다.이 관계자는 “식량난 때문일 수는 있겠지만 소학교 시스템이 오랫동안 굳어져 있다.”면서 “학교 뒷정리를 위해 남아 있던 학생,교사들이 화를 당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부티 소장은 이와 함께 “신의주의 한 병원을 방문,사흘 만에 혼수상태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난 10살난 여자 어린이를 만났다.”면서 “이 어린이는 폭발 당시 3층 건물에 쓰러져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용천소학교 학생들이 지난주부터 인근 중학교 2곳으로 나뉘어 다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고 전하면서 “이재민중 상당수가 친척들 집에서 지내고,일부는 국제적십자사와 중국측이 제공한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용천 주민들이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이경형칼럼] 의사당이 중앙당 품어라

    한나라당 여의도 천막 중앙당사가 지난 26일 내린 비로 천장이 내려앉았다.다음날 박근혜 대표가 중국 티베트 자치구에서 온 외빈을 당사 대신에 국회 대표실에서 접견했다고 한다.총선 과정에서 ‘차떼기 정당’의 잘못을 반성하는 뜻에서 당사 빌딩을 국민에게 헌납하기로 하고 천막 당사를 사용해온 것이다.차제에 각 당이 중앙당을 초경량화하여 명실상부한 원내 정당으로 탈바꿈했으면 한다. 한국정치는 17대 총선을 기점으로 질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기존 정당들의 원내 정당화 촉진 기류도 이 가운데 하나다.총선 직전,국회는 ‘돈 먹는 하마’격인 지구당을 사실상 없애는 내용으로 정당법을 개정했다.정당의 구성 요건을 종전 ‘국회의원 전 지역구 수의 10분의1에 해당하는 지구당의 설립’에서 ‘5개 시·도당’을 갖추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1987년 6·10항쟁 이후 한국 정치는 민주화를 지향해왔으나,정치 행태는 민주·반민주 구도 아래서 체질화되었던 돈·조직·보스 정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그러나 2004년 4·15총선은 미디어 이용과 네트워크를 통한 ‘돈 안 드는 선거’를 시도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과거 정치가 권위주의에 기반을 둔 수직적 하달체제였다면,새 정치는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수평적 전달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앞으로 선거는 평소 훈련된 조직의 가동과 동원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책을 연결고리로 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이를 확산시켜 나가는 형태가 될 것이다.따라서 선거 때 동원하기 위한 중앙당-시·도지부-지구당-연락사무소의 수직적 조직과 동책,면책의 세포 조직을 평소에 관리할 필요가 없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17대 국회가 개회되면 국회법을 고쳐 여름과 연말 휴가철을 제외하고는 일년 내내 국회를 여는 상시국회제도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한다.그러면 정치의 중심무대는 더더욱 국회가 될 것이며,사무처 중심의 중앙당의 필요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각 정당이 원내 중심으로 정책·선전 활동을 편다면 굳이 거대한 중앙당사를 국회 바깥에 둘 이유가 없다.과거권위주의시대처럼 국회를 더이상 집권 여당의 하향식 당론을 입법화하는 도구로 전락시킬 수는 없다. 최근 열린우리당,한나라당 할 것 없이 당의 정체성에 관해 당내 논쟁이 분분하다.같은 당 소속 의원이라고 해도 이념적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다.이런 상황에서는 무조건 당론 복종이라는 구시대적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보수의 주요 잣대가 되는 국가보안법,대북정책,노동관계법 등을 놓고 보면,같은 당소속이라고 해서 의견이 같지 않다.오히려 당을 달리해도 성향이 같은 의원 그룹이 수시로 형성될 수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여야를 떠나 ‘이념의 동지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노동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전체의 22%나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 가능성을 예고해 준다.중장기적으로 지금의 정당들이 이념별로 재분화될지 모르지만,정당 활동이 국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이런 상황은 정당간 타협을 지금보다 훨씬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당의 축소처럼 하드웨어만 바꾼다고 원내정당화가 이뤄지지 않는다.의원총회가 당론 결정의 실질적인 기구가 되고 의원들의 교차투표(cross voting)활성화를 통해 국회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게 정당 운영의 소프트웨어를 바꾸어야 한다.국회 의사당이 각 정당 활동을 수렴할 수 있을 때,한국의 의회정치는 바로 서게 될 것이다. 편집제작 이사 khlee@˝
  • 朴대표 “保守는 補修다”

    “보수(保守)는 보수(補修)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6일 상임운영위에서 당 정체성의 ‘일보 전진’을 천명했다.“보수는 항상 고치고 스스로 개혁하는 것인데 그러지 못하는 바람에 비판을 받았다.”고 강조했다.당내 비주류 형성 움직임에 맞서 당 조직 장악을 위한 본격 행보에 나서면서 당 노선에 분명한 선을 그은 것이다.그리고는 서울지역 낙선자들을 만나는 것으로 그 첫발을 내디뎠다. 박 대표는 26일 서울 여의도 천막당사 주변의 한 일식집에서 서울지역 낙선자들과 오찬을 갖고 위로했다.낙선자들의 앞으로의 거취와 관련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4·15 총선 후 당 대표로서 첫 공식오찬을 지도부나 당선자들이 아닌 낙선자들과 함께 했다는 점이 관심거리다.이승철 의원(서울 구로을)과 김왕석 교수(서울 동작을) 등 해외출장이나 선약으로 참석하지 못한 4명을 제외한 서울지역 낙선자 대부분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낙선자들에게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런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일정상 늦어진 것을 이해해 달라.”면서 “이번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최선을 다해준 여러분들의 노고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이날 만남에는 낙선자들의 거취에 대한 당 대표의 고민이 담겨 있다.낙선자들은 지구당 조직이 폐지된 데 이어 오는 5월 15일부터 후보자 사무실도 문을 닫아야 한다.일체의 정치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중앙당 차원에서 낙선자들의 정치활동을 합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다.일각에서는 3선그룹을 중심으로 ‘반(反) 박근혜 연대’가 형성될 조짐을 보이는데 대한 대응방안의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와 관련,김형오 사무총장은 “박 대표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고 낙선자들의 상당수가 앞으로의 거취와 관련해 심각한 고민을 얘기한 만큼 박 대표도 중앙당 차원의 지원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오늘 모임은 낙선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고민을 듣는 자리였던 만큼 그렇게 이해해 달라.”고,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전광삼기자 hisam@˝
  • 한국영화계 대부 유현목 감독

    “유현목은 영화다.”“아니다,유현목은 인간이다.” 오발탄(1960년),임꺽정(61년),김약국의 딸들(63년),카인의 후예(68년),나도 인간이 되련다(69년),사람의 아들(80년)….건국 이래 한국영화 최고작으로 인정받은 ‘오발탄’을 비롯,43편의 작품을 통해 한국영화의 미학을 이끌어온 유현목(79) 영화감독.한국영화사의 산증인이자 영화계의 영원한 ‘대부’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삶은 흑백과 컬러필름으로 50년 동안 모질게도 온몸을 친친 감아왔다.까닭에 ‘유현목’하면 덜도 더도 없이 한편의 ‘영화’에 비유된다.평론가들은 현실을 바라보는 형형한 눈빛으로 한국 영화사를 관통했던 용감한 인간이라고 표현한다. 장 콕토는 ‘영화란 영상으로 쓰는 문장’이라고 했다.유 감독은 더 나아가 ‘영상으로 사고한다.’고 했다.일흔아홉의 성상은 그렇게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으며 질그릇에 켜켜이 담아왔다.이같은 그의 ‘시네마인생’을 흐트러짐없이 끄집어낼 수 있을까. 서울 남대문 옆 명지빌딩 20층에 자리잡은 ‘태평관기영회(太平館耆英會)’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태평관기영회는 학교법인 명지학원(이사장 유영규)이 지난 2002년 12월 마련한 최고 원로들의 사랑방이다.명지빌딩 자리에 있던 조선시대 외교공관 ‘태평관’과 중국 송나라 때 은퇴한 현사들의 모임이었던 ‘낙양 기영회’에서 이름을 땄다.참여멤버는 유 감독을 비롯,고병익 전 서울대총장,이영덕 전 국무총리,정원식 전 국무총리,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등 내로라 하는 원로 32명이다.유 감독은 “매월 첫째주 수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이곳에 온다.같이 늙어가는 각계 원로들과 만나 서로의 경험담을 주고받는 일 또한 공부가 아니냐.”고 했다. 근황이 궁금해졌다.그는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 월드메르디앙 아파트에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야트막한 동산을 뒤로 한 노독일처(老獨一處)인 셈이다.뒷산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30평의 주말농장에서 땅을 일구는 일에도 새록새록 재미를 느낀다.시금치,쑥갓,마늘 등 28가지의 채소를 가꾸며 동네사람들에게도 나눠준다. 나들이할 때는 늘 부인 박근자 여사와 동행한다.부인은 서양화가로 현재 여류화가협회 고문이기도 하다.부인은 지금까지 ‘여보’ 대신 ‘감독님’이라고 부른다.그는 부인 얘기가 나오자 ‘무던한 순둥이’라며 웃는다. 그는 지독한 골초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하루도 술을 거른 적이 없다.저녁 식사후 TV 9시 뉴스를 보고나면 반드시 맥주 3∼4병은 마신다.부인이 술을 못하기 때문에 혼자 식탁에 앉아 맥주를 들이켜며 세월을 음미한다.영화 같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는 즐거움에 푹 빠지는 시간이다. 그의 예술가적 역마살은 소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됐다.어느날 지방순회 공연차 온 유랑 신파극에 매료됐다.교회에서 성극대본도 쓰고 연출도 직접 했다.방학때면 동네 창고에 천막을 치고 성냥갑 몇개로 입장시키는 놀이도 했다.그렇게 모인 성냥갑으로 엿을 바꿔먹기도 했다. 1939년 그는 고향을 떠나 서울의 휘문중학에 입학했다.하숙생활이 시작됐다.중학때는 기계조립에 취미가 붙었다.남산의 과학관을 다니며 ‘어린이 과학’이니 ‘학생과학’이니 하는 잡지에 탐닉했다.하루는 ‘에디슨 위인전’을 읽었다.발명왕 에디슨의 학력이 겨우 소학교 4학년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중학2년 때 휴학을 했다.담임 선생한테는 중이염이라고 둘러댔다. 때마침 담임선생 아들이 만성 중이염에 따른 뇌손상으로 사망했던 터여서 휴학계를 선뜻 받아주었다.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고독의 가을을 만나면서 도화지와 수채화 도구를 둘러멨다.이리저리 쏘다녔다.흙을 반죽해 조각품을 만들기도 했다.하루는 바이올린 곡 ‘트로이메라이’를 듣고 폐장을 쥐어짜는 듯한 슬픔의 아름다움에 도취했다.어머니한테 졸라서 ‘스즈키 7호’ 바이올린을 샀다.그걸 끼고 다시 복학의 길을 떠났다. 이 무렵 학교에서 단체로 ‘조택원 무용발표회’를 관람했다.그는 처음 대하는 육체의 선율에 반해 무용가가 되기로 다짐하고 무용연구소를 맴돌았다.그러나 피골이 상접한 모습 때문에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인 1944년 겨울이었다.조선인징병 신체 검사에서 불합격되는 바람에 졸업장을 쥐고 고향에 내려가 세무서 임시고용원으로 취직했다.그러나 숫자놀음이 격에 맞지 않아 곧 그만두고 평양을 드나들면서 헌책방에서 건축잡지를 탐독하기 시작했다.건축미술가의 꿈을 꾸었다. “하마터면 목사가 될 뻔도 했지.어머니의 성화로 인해 서울의 감리교 신학교에 원서를 냈는데 영어시험에서 낙방했어.그런데 외가집 소개로 아펜젤러 박사를 만나 연희전문학교 백남준 교장에게 입학시켜달라는 메모까지 받게 됐지.목사가 다 된 기분이었어.그런데 그만 메모쪽지를 잃어버렸지 뭐야.하나님께서 나를 목사자격 없는 놈으로 계시하신 줄 알고 포기했지.” 1946년 소련군이 진주하자 그는 다시 서울로 왔다.거리 곳곳에는 연극포스터들이 쫙 붙어있었다.그는 빼놓지 않고 관람했다.연극 연습장 한구석에서 하루종일 지켜보는 것이 한없이 즐거웠다. 결국 그 이듬해,희곡공부를 위해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했다.이 무렵 그는 프랑스의 피에르 슈날 감독의 영화 ‘죄와벌’을 관람했는데 너무 감동을 받아 열 네번이나 미친 듯이 봤다.강의가 끝나면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죄없는 전선’ 촬영현장을 찾아다녔다.덕분에 여러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다.무성영화였던 임운학 감독의 ‘홍차기의 일생’에 조감독 겸 출연까지 했다.이때 영화감독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빠졌다.미술,음악,무용,문학,건축,연극이 합쳐진 종합예술이라는 답을 얻었다. 1948년 동국대학교 국문과 재학시절,한국대학에선 처음으로 ‘영화예술연구회’를 창설해 ‘해풍’이란 영화를 만들었다.가난한 어촌을 무대로 풍파에 아버지를 잃고 미치광이가 된 젊은 아들의 이야기이다.이는 배우로서 데뷔작이며 마지막인 셈이다. “납북된 시인 김기림 선생이 지도교수였지.당시 신문기사에는 영화과가 없는 대학에서 이같은 유성(토키)대작을 만든 것은 동양에서 처음이라고 하더군.양주동 선생은 ‘배짱 하나 컸군,내 막걸리 한 잔 사지.’라고 거들기도 했어.돌이켜 보면 선무당이 사람잡는 모험이었으나 오늘날의 길을 굳혀준 출발점이기도 하지.” 그는 50년 영화인생을 뒤돌아볼 때 가장 아끼는 작품은 ‘오발탄’이라고 했다.그도 그럴 것이 ‘오발탄’은 1984년 영화진흥공사의 ‘광복40년 베스트 10’에서 1위,98년 ‘건국50년 영화,영화인50선’에서 1위,99년 ‘21세기에 남을 한국의 명작’에 1위로 뽑힐 정도였다. “다시 영화를 만든다면 인간의 영혼과 마음을 섬세하게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백발홍안’의 노(老)감독.예나 지금이나 술이 얼큰하면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베마리아’를 부른다.집앞 골목에 이르면 정지용의 시에 채동선이 작곡한 ‘고향’을 부른다.그러면 기다리던 ‘무던한 순둥이’가 마중나와 팔짱을 낀다.이렇게 영화같은 그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 ▲1925년 황해도 사리원 출생.45년 휘문고졸.49년 동국대 문과졸.64년 동국대 강사. ▲73년 한국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장.76∼90년 동국대연극영화과 교수.80년 유네스코 문화위원. ▲81년 예술원회원(현).89년 한국영화학회장.90년 동국대예술대학장. ▲97년 부산국제영화제심사위원장,99년 춘사영화제 심사위원장.2000년 영화감독협회 고문(현). ▲주요 수상=서울시문화상,대한민국예술상,예술원상,대종상 등. ▲주요 작품=‘오발탄’‘인생차압’‘잃어버린 청춘’‘막차로 온 손님’‘카인의 후예’‘사람의 아들’‘불꽃’‘장마’ 등 43편. 김문기자 km@seoul.co.kr˝
  • 이헌재부총리 한나라·민노당서 설전

    ■ 한나라-경제난 추궁에 ‘맞받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21일 정부의 기업관 등을 놓고 가시돋친 설전을 벌였다.박 대표는 이날 여의도 천막당사를 방문한 이 경제부총리에게 참여정부의 시장경제원칙 및 불확실한 기업관이 기업 투자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정부의 시장경제 원칙은 확고하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 부총리는 “국민은 박 대표의 생활정치로 경제가 제대로 자리잡아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며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이어 기업투자 활성화에 근간을 둔 일자리 창출 및 규제 철폐와 미래성장 동력 개발,그리고 이를 위한 전문인력 양성 등 장단기 경제대책을 집중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지난 1년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일자리가 줄고 기업은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볼 때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시장 불확실성 제거 및 정부의 반기업 정서 해소를 촉구했다.이에 이 부총리는 “애는 많이 썼는데 전부터 내려온 신용불량자 문제,가계대출문제 등이 터지면서 애쓰는 것은 감춰지고 문제점만 부각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안 살아나는 것은 정부의 기업관에 대한 믿음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반기업적으로 기우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에 대해 믿음을 줘야 한다.”고 이 부총리를 몰아세웠다.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저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업중심의 시장경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과 원칙이 분명하다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에 이강두 정책위의장이 “주5일 근무제,외국인고용허가제 등 민생법안에 대해 여당이 안하는데도 한나라당이 앞장서 처리했다.”고 가세하자 이 부총리는 “여당이 안한 게 아니라 숫자가 모자라서 그런 것 아닌가요.”라고 일축한 뒤 “(컨테이너박스 안이) 정말 덥군요.”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 대표와 이 정책위의장이 대표실 입구까지 따라나와 배웅하려 했지만 이 부총리는 뒤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빠져나갔다. 전광삼기자 hisam@ ■ 민노당-‘비정규직’ 팽팽한 공방 경제규모의 성장과 자본의 자유 보장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분배’를 중시하는 민주노동당 입장이 반영될 수 있을까. 21일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사 예방을 통해 이뤄진 권영길 대표 등 민주노동당 지도부와의 만남은 향후 정부 경제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타협의 지점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대였다.그리고 앞으로 양측 사이에 어느 부문에서,어떻게 첨예하게 대립할지 분명하게 예고했다. 20여분간 이뤄진 이날 만남은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화기애애했다.하지만 둘 사이 입장의 첨예한 대립을 짐작케 하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특히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가,비정규직 차별 철폐 문제,노동관계법 전반의 개정 등을 놓고 가시돋친 설전을 주고 받는 등 팽팽하게 전개됐다. 먼저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에 대해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거나 방향이 잘못됐다.”고 공격에 나서자,이 부총리는 “그렇지 않다.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응수한 뒤 곧바로 “노사정위에 참여해서 노동관계 논의를 진전시키자.”며 반격에 나섰다.이에 단병호 당선자는 “당이 노사정위에 참여할 수 있느냐.”고 되물으며 은근히 면박을 준 뒤,“그동안 노사정위에서 합의해 놓고 이행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면서 불신을 드러냈다.권 대표는 “노사정위 체계와 성격이 정립되지 않으면 노동계는 기업과 정부의 들러리에 그치게 된다.”고 힘을 실었다. 결국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이 총리는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 계속 얘기를 나누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마무리했다.권 대표는 “설전을 벌이려 준비를 많이 했는데 아쉽다.”면서 “나중에 국민대토론회라도 갖자.”고 제안했다. 이날 만남은 이 부총리가 총선 이후 각 정당을 도는 의례적인 예방이었지만,비정규직 차별 철폐의 제도화와 고용 창출의 방법 등은 정부의 근본적인 경제정책과 배치되는 측면이 강해 17대 국회 4년 내내 본회의와 상임위 등에서 숱하게 부딪칠 ‘전초전’의 성격을 띠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마당] 이미지와 감성정치/유성호 한국교원대 문학평론가 교수

    ‘악어의 눈물’이란 말이 있다.나일 강에 사는 악어가 사람을 잡아먹고 난 후 눈물을 흘린다는 이집트 전설에서 비롯된 말이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도 여러 번 인용하고 있는 이 말은 위선자의 거짓 모습을 비유할 때 흔히 사용된다. 특히 선거에 이긴 정치인이 패배한 정적(政敵) 앞에서 가슴 아픈 표정을 지을 때 많이 쓰인다.실제로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리는데,이는 눈물샘 신경과 입을 움직이는 신경이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악어의 눈물’은 감동이나 참회의 순간에 솟구치는 진실한 눈물이 아니라,전략적이고 계산적인 속내에서 나오는 건조한 물질일 뿐이다. 지난주에 막을 내린 제17대 총선에서 각 정당의 지도자들은 ‘눈물’과 ‘읍소(泣訴)’를 통해 감성과 이미지 중심의 선거운동을 했다.이를 두고 상대방에서는 ‘악어의 눈물’이니까 속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일급 경계령을 내렸다.이러한 감성과 이미지의 정치는 당사를 천막이나 공판장으로 옮겨 부패와의 절연을 상징적으로 보인다든가,삼보일배 장면이나 회초리 맞는 방송 광고를 통해 그동안 민의를 등진 것에 대해 참회하는 모습을 보인다든가,단식이나 전격 사퇴 등을 통해 실언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든가 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따지고 보면 모두 선거의 핵심 장치인 정책과 비전 제시보다는 유권자의 감성과 이미지에 호소하는 것들이었다. 이같은 감성과 이미지 중심의 정치 혹은 선거 문화를 향해 이 나라 주류 언론들은 한결같이 강력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정책과 인물을 통한 승부가 아니라,감성과 이미지 정치로 선거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논지였다. 대중의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고 집단적 최면을 부추기는 ‘눈물’과 ‘읍소’의 포즈에 대한 이러한 경계와 비판은 그 자체로 매우 정당한 것이다.특히 미디어 선거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이번 선거에서 이 같은 이미지 메이킹의 범람은 진정한 대의 민주주의의 정착에 일정한 역기능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이같은 감성과 이미지 중심의 선거문화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확산시킨 것 또한 언론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언론의 확연한 이중성을 발견한다.우리 주류 언론은 ‘탄풍’ ‘박풍’ ‘노풍’ ‘추풍’ 등 온갖 조어(造語)를 만들어가면서 선거 유세 현장의 감성적 이미지 확산과 상징 조작에 공을 들였고,한편으로 각 정당더러는 이미지 정치를 삼가라고 권고하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감성이나 이미지가 합리성과 반드시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감성과 이성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인간의 판단 행위를 상보적으로 규율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미지를 완전히 거세한 순수 객관의 실체는 정치문화에 존재하지 않는다.정책정당임을 자임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대표조차도 지난 대선에서 “여러분 행복하십니까.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감성적 언어로 진보정치를 친숙하게 체험하도록 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감성 속에 담긴 내용일 것이다.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진정한 참회가 없는,정치적 계산만 있는,지역주의의 부활을 호소하는,때늦은 ‘악어의 눈물’만은 철저하게 외면했다.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얻은 또 하나의 성과이다. 유성호 한국교원대 문학평론가 교수 ˝
  • 한나라 ‘국민 속으로’… 헌혈 맹세

    “국민이 주신 마지막 기회입니다.이를 살리지 못하면 우리는 역사에서 소멸될 것입니다.” 20일 열린 한나라당 17대 총선 당선자 대회는 비장감 어린 박근혜 대표의 인사말로 시작했다.박 대표는 “우리는 진짜 야당이 됐다.우리가 서 있는 천막당사가 한나라당이 서 있는 현 위치”라고 거듭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뒤이어 박세일 선대위원장은 “이번 선거는 한국 보수세력의 패배로 기록될 것”이라고 규정했다.그는 “국민은 한나라당에 대해 아직 마음의 반만 열어줬다.나머지는 얼마나 혁신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마지막 기회를 통해 기본으로 돌아가 보수의 혁신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인들은 한결같이 부패하지 않는 의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충청권에서 유일하게 금배지를 단 홍문표(충남 예산·홍성) 당선자는 “우리는 생활정치를 해야 하고,국민을 속이려 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경남 진주갑의 최구식 당선자는 “정치가 그 근본인 국민으로부터 떠난지 오래됐다.”면서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오로지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국리민복에만 몰두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당선자들의 목소리는 다양했다.서울 서대문을의 정두언 당선자는 “관료주의 체질을 벗고 야당다운 야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서울 강남을의 공성진 당선자는 “사회적인 좌경화 추세를 막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례대표 송영선 당선자는 “안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고 편가르기로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데 당이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박 대표를 비롯한 당선자와 당직자는 집단 헌혈식을 가졌다.박 대표는 “정치권은 기득권 세력으로 불려왔는데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에서 헌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당 일부에서는 “헌혈을 정례화하자.”는 말도 나왔다. 이지운기자 jj@˝
  • [낮은 소리] 점자도서관

    ‘낮은 소리’는 사회의 그늘진 곳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다수의 큰 목소리에 가려,외면되고 있는 소외층의 목소리를 드러내 보이려는 것입니다.방치할 경우 사회의 대형 갈등요인으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을 미리 공론화함으로써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것입니다.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제보를 기다립니다.서울신문 편집국 사회교육부(02)2000-9173,www.seoul.co.kr 또는 www.kdaily.com으로 연락 주십시오. “시각장애인들은 아무래도 활동성이 떨어지다 보니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일주일에 1∼2번 점자도서관에 가서 점자 및 음성도서를 빌려보는데 전문서적은 별로 없고 주로 소설 등 베스트셀러나 안마,지압 등과 관련된 책들이 많아요.”박종태(서울·60)씨는 국어교사 출신으로 시각장애인이다.은퇴한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독서가 유일한 소일거리다.그렇지만 그의 독서범위는 제한을 받는다.인문과학 서적 등을 구해서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전문서적은 가격이 비싸 구입하기가 무척 힘들다. 또 신간서적을 대하기도 ‘하늘에 별따기’다.신간서적을 구하지는 못하더라도,하다 못해 어떤 신간이 나왔는지 출판계 동향이라도 궁금하지만 신간안내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박씨는 “점자도서관 홈페이지에 신간안내 코너가 있긴 하지만,몇달씩 늦다.”고 아쉬워했다. ●묵은 정보 알려주는 수준에 불과 김민숙(서울·62)씨는 매달 점자잡지를 즐겨 읽는다.무료인 데다 여러 잡지에서 나온 내용을 발췌한 것이어서 읽을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러나 “점자잡지 내용이 2,3개월 전에 나온 기사를 점역한 탓에 시각장애인에게는 새로운 정보라기 보다는 묵은 정보를 알려주는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시각장애인은 정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까닭에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인쇄매체’보다는 TV나 라디오 등 ‘방송매체’를 통해 뉴스나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하지만 적지 않은 시각장애인들은 “방송매체는 한계가 있다.”면서 “책을 읽어야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며 ‘책 사랑’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관은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등원하는 등 사회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점자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이 ‘업그레이드’돼야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여전히 느리다는 평가다. ●“있는 책도 버려야 할 판” 현재 전국에는 32개 점자도서관과 43개의 공공도서관내 장애인열람실이 있다. 국어사전 1권을 점자도서로 만들면 80권이 될 정도의 양으로 점자도서는 부피가 크다. 그만큼 대부분의 점자도서관은 ‘공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지난 69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점자도서관인 한국점자도서관은 현재 서울 강동구 암사동 구립 ‘햇볕도서관’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280여평 규모의 공간에 2만여권의 책과 CD,카세트테이프 1만여개 등이 소장돼 있다.그것도 1990년 이전의 도서들은 공간이 협소한 관계로 대부분 폐기처분했지만 일부 점자도서들은 여전히 계단과 복도에 쌓여 있다. 장순이(70·여) 관장은 “35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지만 독립 공간을 확보하기는커녕 공간 부족으로 ‘신간 점자도서를 제작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참한’ 얘기까지 나올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경기도 유일의 부천 점자도서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6000여권의 도서를 도서관 서고에 비치하기가 어려워,마당에 임시 천막창고 2동을 지어 여기에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부천시 심곡 2동에 자리한 이 도서관은 균열이 가는 등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어서 재건축을 추진했지만,인근 주민들이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다.’고 하는 바람에 난관에 봉착했다.어렵사리 국고 등으로부터 20억원을 지원받아 시유지인 중2동에 새 도서관을 신축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부천 점자도서관을 운영하는 강학섭(43) 목사는 “다음달 착공하는 새 도서관도 결국 우리가 독자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청소년도서관 등과 함께 활용하게 됐다.”면서 “도서관 완공 후 2년이 지나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공간 부족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원 손길 아쉬워 한국 점자도서관은 올해 예산이 7억원에 달하지만 국가 등으로부터의 지원은 불과 6000만원(문화관광부 3000만원,서울시 3000만원)에 불과하다.후원금이라고 해봐야 4000만∼5000만원선이다.이같은 규모의 지원으로는 각종 서적들을 점자도서·디지털 녹음도서로 제작하는 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책 한권을 점역하는 데는 인건비를 포함해,100만원가량 들어간다.이런 상황이어서 시각장애인들이 강력히 요구하는 ‘점자 전화번호부’처럼 생활에 꼭 필요한 정보책자는 2년째 발간을 못하고 있다. 장 관장은 “예산 지원이 늦어지거나 후원이 적을 경우 직원들이 몇달씩 월급을 못받는 등 갈수록 점자도서관의 운영이 어렵다.”고 말했다. 부천 점자도서관도 예산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각 지자체의 민원업무 및 점자 시정홍보지 등을 점역하고 있지만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강 목사는 “김포·화성시 등의 시각장애인과 복지관 및 안마시술소 등 시각장애인 시설로부터 이동도서관 방문 요청을 받고 있지만 인력과 예산부족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만 찾아 무료로 도서를 열람·대출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점자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보는 곳이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의 각종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각종 사업을 해야 한다.”면서 “독서토론회,역사기행 행사 등을 하고는 있지만,예산 부족 등으로 내실있게 운영하지 못해 정말 아쉽다.”고 털어놨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한나라 여의도당사 420억원에 팔린다

    한나라당의 여의도 당사가 420억원에 영국계 회사에 팔린다. 한나라당은 최근 영국계 투자회사인 W사와 양해각서를 체결,실사를 벌인 뒤 곧 본계약을 맺기로 했다.이를 위해 김형오 사무총장이 16일 이 회사측 관계자와 만나 구체적인 매각 조건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대금은 당의 빚을 갚고,당직자에게 퇴직금을 주는데 주로 쓸 계획이다.새 당사도 임차한다.이로써 지난 1997년 신한국당 시절에 입주한 여의도당사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새 당사와 관련,박근혜 대표는 “대형 빌딩은 안 되고 3∼4층짜리 조그만 건물을 임대하면 족하다.”고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한 당직자는 “민주당이 입주한 여의도 H빌딩의 6층부터 9층까지 임차하자는 의견이 있다.”면서도 “이게 쉽지 않으면 도심 외곽의 공장 등을 개조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임차료가 싼 강서구 지역의 음식점 건물 두세 군데도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사 이전과 함께 500명이나 되는 사무처 직원을 구조조정해 100명 안팎으로 줄이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새 당사는 여의도연구소 등 정책개발·연구 기능을 주로 하는 곳으로 바뀐다.정책정당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다.당 지도부 등 주요 당직자는 국회 원내 사무실을 이용할 계획이다. 한나라당은 또 다음주 초 서울시와 천막당사터 사용계약을 연장한다.지난달 23일 4200여만원에 40일 동안 임차한 계약이 곧 끝나기 때문이다.이번에는 주차장터도 추가로 계약한다. 박지연기자 anne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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