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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방방곡곡에 퍼지는 3·1절 숭고한 의미] 3·1운동 발상지 봉황각 정신 나누고

    [서울 방방곡곡에 퍼지는 3·1절 숭고한 의미] 3·1운동 발상지 봉황각 정신 나누고

    “3·1운동의 발상지인 봉황각을 애국교육의 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6일 강북구 봉황각에서 만난 이범창(68) 천도교의창수도원장은 “15년간 이곳을 관리했는데 12년 전 강북구청이 3·1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하기 전까지 정작 발상지가 외면을 받는다는 느낌이 있었다”면서 “봉황각은 1912년부터 1919년까지 483명의 독립지도자를 키워낸 곳이며 3·1 독립혁명을 기획하고 준비한 의미 깊은 곳”이라고 밝혔다. 봉황각은 손병희 천도교 3대 교조가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10년 이내 되찾겠다면서 건축했다. 당시에는 심산유곡이었던 우이동에 땅을 사 봉황각과 여러 건물을 완공했지만 현재는 봉황각과 내실만 남아 있다.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 15명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고 대중화·일원화·비폭력화라는 3·1 운동의 3대 기본원칙도 이곳에서 확산됐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2호이다. 손병희 교조는 이곳에서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한다”는 유명한 설법을 했다. 구는 다음달 1일 ‘제12회 봉황각 3·1독립운동 재현행사’를 개최한다. 오전 10시 흰색 두루마기를 착용한 구청장, 주민대표, 단체대표 등이 민족대표 33인을 추모하는 의미로 도선사에서 타종식을 한다. 이후 길놀이 및 태극기 거리행진을 연다. 흰색 저고리·검정 치마·농민복 등을 입은 학생 자원봉사자 900여명이 우이동 솔밭공원에서 봉황각까지 이동하며, 도선사 타종식에 참여한 주민들은 도선사에서 봉황각까지 태극기를 휘날리며 걷는다. 이들은 봉황각 수련원에서 만나 독립선언서 낭독, 3·1절 노래, 만세삼창 등의 본행사를 하게 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7대 종단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선포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 등 7대 종단 협의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종교인부터 자성하고 참회해 조화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범종단 운동에 돌입했다. KCRP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선포식을 갖고 4월 말까지 종단별 운동본부를 조직, 실천운동을 벌여 나간다고 발표했다. 선포식에는 7대 종단 수장들과 대의원, 평신도 대표 등 300명이 참석했다.
  • 현대차 삼성동 한전부지 땅값 32% 올랐다

    현대차 삼성동 한전부지 땅값 32% 올랐다

    올해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가 4.1% 올랐다. 국토교통부는 1월 1일을 기준으로 조사·평가한 표준지 50만 필지의 공시지가를 24일 발표했다. 올해 상승률은 글로벌 경제위기 직전인 2008년 9.6% 오른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기록이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2009년 1.4% 떨어진 이후 6년 연속 상승했다. 각종 부동산 개발과 공공기관이 새로 들어선 지역의 땅값 오름세가 두드러졌다. 세종시는 정부청사 이전에 따른 토지수요 증가로 15.5% 상승, 시·도별 상승률 1위에 올랐다. 인천은 2.4% 상승하는 데 그쳤다. 시·군·구별 상승률은 전남 나주가 한국전력 등 공기업 이전의 영향을 받아 26.96% 올라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경북 예천도 도청 이전과 인구 유입 증가로 15.41% 상승했다. 울산 동구도 울산대교 건설, 방어택지지구개발 등으로 12.64% 올랐다. 서울에서는 가로수길이 있는 강남 신사동(15.5%), 경리단길이 있는 용산 이태원(10.2%) 등 상권이 활발하게 움직인 곳의 상승률이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는 중심상업지역 침체 등으로 유일하게 0.04% 하락했다. 고양시 일산서구·일산동구, 경기 양주, 전남 목포 등은 상승률이 1%대 미만에 그쳤다. 관심 지역 가운데 서울 삼성동 옛 한전 부지 땅은 ㎡당 2580만원으로 전년(1948만원) 대비 32.4% 뛰었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4.1% 상승했지만 현대차그룹이 감정가의 3배가 넘는 고액에 낙찰받으면서 공시지가도 큰 폭으로 올랐다. 이 땅은 전체 면적의 96%가 주거지역이란 점에서 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될 경우 훨씬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독도는 2006년 이후 관광이 허용되고 접안시설이 설치되면서 꾸준히 오르기 시작, 올해에도 20.64% 상승했다. 표준지 가운데 가장 비싼 땅은 서울 중구 충무로 1가 ‘네이처 리퍼블릭’ 화장품 상가 토지로 ㎡당 8070만원으로 평가됐다. 지난해(㎡당 7700만원)보다 4.8% 상승했다. 가장 싼 땅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 대성리 임야로 ㎡당 145원으로 조사됐다. 권대철 토지정책관은 “지난해 토지 거래가 증가하면서 실제 땅값이 2.0% 정도 올랐고, 지역 간 공시지가 편차를 줄이고 시세 반영률 상향 조정 반영 등으로 표준지 공시지가가 올랐다”고 설명했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전국 3178만 필지의 개별공시지가 산정과 보상평가 등의 기준이 된다. 국토부 홈페이지(www.molit.go.kr) 또는 시·군·구 민원실에서 다음달 27일까지 열람, 이의신청할 수 있다. 개별공시지가는 5월 말 공시된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씨줄날줄] 불화에 담긴 1939년의 사회상/서동철 논설위원

    감로탱(甘露幀)은 외래 종교인 불교를 한국인들이 얼마나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신앙했는지를 보여 주는 그림이다. 전생에 지은 죄에 따라 육도윤회(六道輪廻)에 고통받는 중생이 구제 과정을 거쳐 극락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일반적으로 상·중·하 3단으로 그려졌는데, 아래부터 과거-현재-미래가 인과관계로 연결된다. 윤회 과정의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헤매는 중생도 단이슬(甘露)이 상징하는 맛나고 풍성한 음식이 베풀어진 의식을 거치고 나면 부처가 머물고 있는 세계로 올라설 수 있음을 상징한다. 감로탱은 산천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수륙재나 조상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우란분재에서 쓰였다. 이렇듯 독창적인 그림이 불교가 극심한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에 본격화되어 꽃을 피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감로탱 가운데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 있는 약산사 감로탱(1589)이다. 적지 않게 남아 있는 각각의 감로탱은 하단의 육도윤회상이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기록화이자 풍속화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적 의미가 뚜렷한 감로탱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서울 돈암동의 흥천사 것이다.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무덤 정릉의 원찰 흥천사는 1939년 감로탱을 새로 봉안했다. 공주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계룡산파 화맥(畵脈)의 대표적 화승이라는 보응 문성과 그의 제자인 병문이 제작에 참여했다. 두 화승의 감로탱은 기존의 도상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한 것은 물론 당시 핵심적 사회상을 서양화법으로 놀랍도록 과감하게 담아냈다. 당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었고, 1941년 진주만 공격 직전이었으니 일제의 군국주의 망령이 갈수록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보응 문성과 병문은 비극적 시대상을 먹선으로 분할한 31개의 화면에 담았다. 전투함이 돌진하고 전투기가 날아가는 가운데 엄청난 위력을 가진 포탄이 여기저기서 터지는가 하면, 기세등등한 육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상대 진영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 일제가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과 침략의 본거지인 통감부의 모습도 사실적으로 담았다. 지옥도와 아귀도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광복 이후에는 이런 장면이 충격적이었던지 한동안 일제와 관련된 부분은 가려 놓기도 했다. 물론 자동차 여행, 기차가 다니는 어촌, 코끼리 서커스단, 전당포, 전신주 공사, 전화 거는 모습, 스케이트 타는 모습 등 새로운 문물의 다양한 양상도 보인다. 이 특별한 불화를 지금 서울 견지동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종이를 붙이고 호분칠을 해 놨던 부분도 복구해 놓았다. ‘불화에 담긴 근대의 풍경과 사람들, 흥천사 감로왕도 특별공개전’은 4월 12일까지 열린다. 관람료는 없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인천도 새 학기부터 ‘9시 등교’

    경기도와 서울에 이어 인천에서도 ‘9시 등교’가 다음달부터 시행된다. 11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새 학기부터 지역 내 초·중·고교의 등교시간을 오전 8시 40분부터 9시 사이로 조정한다. 등교시간을 이 시간 사이에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는 권고안을 학교에 전달했다. 학교는 이달 넷째 주 열리는 학교운영위원회의를 거쳐 등교시간을 권고안 범위에서 결정하게 된다. 초등학교의 경우 주로 9시, 중·고등학교는 8시 40분~50분 등교하는 방안이 유력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등교시간 조정에 따라 고교생은 40분 이상, 중학생과 특성화고생은 30분 이상, 초등생은 20분 이상 등교시간이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천 지역 고등학교의 70%는 8시 이전, 중학교·특성화고의 절반은 8시∼8시 20분, 초등학교의 76%는 8시 20분∼40분에 등교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일찍 등교할 수밖에 없는 맞벌이가정 학생을 위해 도서관, 면학실 등을 개방해 독서나 자율학습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조치는 시교육청이 지난해 12월 학생, 학부모, 교원 등 4만 9613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토대로 했다. 조사 결과 모든 대상에서 공통으로 절반 이상이 희망한 등교시간은 8시 40분 이후다. 8시 40분∼9시 이후까지를 희망한 비율이 67.1%이며, 학생들은 71.7%로 더 높게 나타났다. 등교시간 조정의 1차 당사자인 학생들은 9시를 가장 많이 원하고 있어 학교별 차이를 두지 않고 8시 40분∼9시 범위에서 학교 측이 결정하도록 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선거구 개편 정개특위 합의

    여야가 선거 제도 개편 등을 위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구성안을 다음달 3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후보 3인도 같은 날 추천될 예정이다. 여야 원내 지도부는 10일 주례회동을 통해 이같이 합의했다.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는 “정개특위를 여야 동수 20인으로 구성하되 선거구 변경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 의원은 특위에서 배제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구성되는 정개특위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및 선거제도 개편 등을 논의한다. 이해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의원들은 특위 구성에서 제외된다. 여야는 또 지난달에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가 막판에 무산된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여야가 각각 1인을 추천하고 나머지 1인은 대한변호사협회에 추천을 의뢰한다. 특별감찰관은 국회에서 후보 3인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인을 선택한 뒤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에서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영유아보육법을 처리하기로 했다. 경제활성화, 민생 살리기 관련법도 최대한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법안을 처리할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조해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상임위원회 별로 쟁점 없는 법안부터 최대한 파악해 처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동에서 여당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자고 주장했으나 야당은 박 후보자에 대해 ‘부적합’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처리는 야당 내부의 논의를 거친 뒤 다음 주례회동에서 다시 논의될 방침이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21·끝) 문학 작품 속 서울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21·끝) 문학 작품 속 서울

    ●문학작품 속의 서울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문학은 픽션이지만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망원경이거나 현미경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현실을 우화처럼 보여 주는 만화경(萬華鏡)이 되기도 한다. 역사가 서울에 관한 공식적이고 근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문학작품에는 역사에 나오지 않는 서울사람들의 내밀한 희로애락이 실려 있다. 공룡 같은 도시, ‘서울공화국’을 상징하는 거대한 빌딩과 아파트 숲에 가려진 서울사람들의 진면목은 역사보다 오히려 문학 속에 살아 숨 쉰다. 우리 문학작품 속의 서울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파리의 에펠탑이나 몽마르트르 언덕, 센강처럼 낭만적이고 생동감 있는 모습일까. 한번쯤 가 봐야 하는 버킷리스트에 올라가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시와 소설 속 서울은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로 넘친다. 내 집 마련의 꿈과 전세살이의 고달픔, 실직과 타향살이의 애환,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투성이다. 노동운동과 민주화 과정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천민자본주의의 욕망이 꿈틀댄다. 한때 프랑스 도시사회학자들이 유행시킨 ‘Seoulization’이라는 용어가 서울을 상징하는 단어로 회자된 적이 있다. 미국 뉴욕의 고층건물 집적화를 꼬집을 때 쓰였던 ‘Manhattanization’처럼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 ‘Seoulization’이란 초거대도시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유형의 현상 중 하나로 흔히 ‘서울형’이라고 설명됐다. 환경오염과 파괴, 무질서, 범죄가 판치는 쓰레기통 같은 도시라는 뜻으로 쓰였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공화국’이라는 책을 펴내 서울을 아파트의 나라로 특징지었다. 한국과 프랑스는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을 대표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였다.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였고, 서울이 곧 한국이었다. 그런 공통점 때문에 보존으로 한발 앞서간 파리사람들이 개발에 목을 매는 서울사람들을 비하한 것인지도 모른다. ●20세기 이전 서울을 그린 시가와 산문 작품들 어떤 문학작품이 단순히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만으로 서울을 다룬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나라 문학과 예술작품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생산되고 서울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당대 서울의 의미 있는 특성을 부각한 작품만을 대상으로 가려 살펴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의 문학은 시가 문학과 산문 문학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시가 문학은 조선의 개국과 한양천도를 알린 정도전의 ‘신도가’와 ‘신도팔경시’가 대표적이다. 신도가는 “아으 다롱디리 앞은 한강수여 뒤는 삼각산이여”라는 대목으로 유명하다. 권근의 ‘신경지리’, 정이오의 ‘남산팔영’, 변계량의 ‘화산별곡’, 윤회의 ‘경회루시’ 등 한결같이 한양을 찬탄하는 내용이었다. 서거정 등의 ‘한도십영’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석형의 ‘호야가’에서 한양도성 축성에 동원된 백성의 참상을 묘사했으며 임진, 병자 양란 이후 비판적 작품들이 나왔다. 박제가가 ‘성시전도’에서 근대지향적인 실사구시를 선보였으며 한산거사의 ‘한양가’와 작자 미상의 ‘장안걸식가’에서는 서울거리의 풍물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이동하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문학·국어학과 서울연구’ 논문에서 “조선 전기의 산문 문학은 성현의 ‘용재총화’, 허균의 ‘장생전’ 등 잡록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후기로 접어들면서 전(傳), 야담, 소설 등 다양한 산문 장르가 경쟁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서울에 관한 자료가 여럿 발견됐다”고 말했다. 정내교의 ‘김성기전’과 ‘임준원전’, 박지원의 ‘마장전’과 ‘광문자전’, 유득공의 ‘유우춘전’, 이옥의 ‘시간기’(市奸記), 조수삼의 ‘육서조생전’ 등이 대표적이다. 이옥은 시간기에서 “서울에 세 군데 큰 장이 서는데 동편은 배오개, 서편은 소의문, 중앙은 운종가다. 모두 좌우양편으로 전이 늘어서 은하수처럼 벌여 있다.…”라고 19세기 초 서울의 시장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20세기 시와 소설… 근대문학 작품들 일제 강점기와 전쟁·분단의 비극과 참상 그리고 서울로의 미친 듯한 집중과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무자비한 개발이 낳은 인간성 상실과 사회 병리현상의 실체를 문학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진에 찍히지 않는 실체적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이동하 교수는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 김광균의 ‘장곡천정에 오는 눈’, 오장환의 ‘수부’(首府), 서정주의 ‘광화문’, 정회성의 ‘어두운 지하도 입구에 서서’, 박노해의 ‘가리봉시장’, 유하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연작 등 7편의 시가 1920~1990년대까지 서울을 특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소설은 시대순으로 염상섭의 ‘사랑과 죄’, 이상의 ‘날개’, 박태원의 ‘천변풍경’과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박태순의 ‘밤길의 사람들’, 윤대녕의 ‘January 9, 1993 미아리통신’ 등을 꼽았다. 서울은 물질적으로는 유토피아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디스토피아이다. 빛과 그림자의 도시인 셈이다. 문학작품 속에서 서울을 읽는 코드는 다양하지만 몇 가지 특징을 추출해 낼 수 있다. 근대화와 개발에 의해 소외된 군상, 아파트와 달동네로 대변되는 주거를 둘러싼 소시민 군상, 전쟁과 민주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저항의 군상 등이 그것이다. 개발시대 인간군상을 다룬 시 중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는 1960년대 개발에 의해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인간의 애절함을 비둘기에 비유했다. 신동엽도 시 ‘종로오가’에서 이농과 도시빈민, 매매춘 같은 개발연대 희생자들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 준다. 조선작의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의 여주인공 영자는 70년대 우리의 딸들이 겪은 인생유전의 자화상이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서울 변두리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무허가 주택 마을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 줬다. 박완서의 소설 ‘이별의 김포공항’은 당대를 휩쓴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그렸다. 신경림, 정희성, 장정일은 1970~80년대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의 무기력한 삶을 시로 읊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2000년대 서울은 구원이 필요한 도시다. 서울은 소돔과 고모라로 그려진다. 주거를 둘러싼 인간군상을 본격적으로 다룬 김광식의 소설 ‘213호 주택’은 1950년대 서울의 대규모 공영주택단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상도동을 중심으로 정릉, 안암동, 청량리, 약수동 등 벽돌처럼 찍어낸 교외 단지주택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풍경이다. 1970년대 접어들면서 소설가 최인호는 ‘타인의 방’에서 아파트 생활에서 발생하는 현대인의 미묘한 정서를 다뤘고 조세희는 ‘민들레는 없다’에서 “잠실은 모래로 만들어진 동네이다. 모래땅에 모래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 서 있다”며 요즘 잠실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 양귀자는 연작소설집 ‘원미동사람들’에 수록된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에서 1980년대 서울을 떠난 서울사람이 아닌 서울사람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었다. 이문열의 ‘서늘한 여름’, 박영한의 ‘지상의 방 한 칸’, 신상웅의 ‘도시의 자전’, 최수철의 ‘소리에 대한 몽상’, 이창동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 박상우의 ‘내 마음의 옥탑방’ 등도 집을 매개체로 서울과 서울 언저리를 떠도는 서울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황지우의 시 ‘徐伐 셔, 셔발, 서울 SEOUL’이 제5공화국의 서울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허위성을 나타냈다면 1980년대 강남을 그린 박완서의 ‘꽃을 찾아서’에서는 의외의 장면과 마주친다. “가락동, 오금동, 방이동…다 싫어요. 혜화동, 안국동, 경운동하는 동네이름 좀 좋아요, 품위도 있고…” 그 시절 강남은 강북 콤플렉스를 가진 그렇고 그런 동네였다. 반면에 김원일의 ‘깨끗한 몸’, 이남희의 ‘플라스틱 섹스’, 이순원의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등 일련의 소설들은 1990~2000년대 강남을 무대로 펼쳐지는 퇴폐와 향략상을 담았다. 강남은 서울의 시원지였으나 이천년 가까이 잊혀졌다가 다시 새로운 서울의 원천으로 떠오른 땅이다. 인생역전이요 세상은 돌고 도는 것임을 소설은 가르쳐 준다. 저항의 군상을 대표하는 작품은 김지하의 ‘오적’(五賊)이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독재정권의 부도덕성과 오적의 소굴이라고 불렸던 동빙고동, 성북동, 수유동, 장충동, 약수동에 사는 재벌, 국회의원,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계층을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1960~7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은 왜곡된 노동구조와 비인간성이 판치는 자본주의의 하수구였다. ‘전태일평전’을 쓴 조영래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윤정모의 ‘신발’, 강석경의 ‘숲속의 방’,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은 어쩌면 당대를 산 문인들의 참회록이다. 이균영은 “서울은 원주민이 없는 낯선 도시”라고 선언했다. 우리 문학사에서는 ‘소설가 구보씨’가 세 번 등장한다. 1930년대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 식민도시 경성의 거리를 거닐던 지식인의 상실과 자조를 보여 주었다면 1970년대에는 최인훈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통해 서울을 관찰했고 1990년대에는 주인석이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라는 거의 동명의 작품을 통해 서울의 하루를 정밀스케치했다. 2003년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김종은의 ‘서울특별시’와 이혜경 등 여성 작가 9명의 서울에 관한 단편을 모은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도 소설가의 눈에 포착된 서울의 일상이자 기록으로 남았다. 소설과 시는 어쩌면 역사보다 위대하다. 선임 기자 joo@seoul.co.kr 서울의 생성과 소멸의 궤적을 추적한 ‘노주석의 서울택리지’는 이번 회로 끝을 맺습니다. 2012년 6월 연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41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서울택리지’ 1권이 지난해 10월 책으로 출간됐고, 2권이 올 봄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 [새정치연 당 대표 후보 인터뷰] (하)박지원·문재인

    [새정치연 당 대표 후보 인터뷰] (하)박지원·문재인

    “강한 야당 만들기 위해 여의도 정치 관록 필수” “야당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느슨한 당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노련한 장악력이 필요하다. 박지원은 장악력이 강해 제왕적 대표가 될 것이다? 비상 상황에서 장악력이 강하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2·8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박지원 당 대표 후보는 상반된 평가가 자연스럽게 겹치는 정치인이다. 대중은 박 후보를 노회하다고 할 정도로 노련함을 갖춘 정치인으로 보는 동시에 현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에게서 참신한 측면을 찾아냈다. ‘국회 최고령 저격수’로 불리는 공격성과 함께 여당 의원들과 전화 통화를 하며 줄 것 주고 받을 것 챙기는 협상 능력을 발견했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신문이 지난 8~9일 실시한 대표 후보 설문 조사에서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박 후보를 ‘당 장악력을 발휘할 후보’로 꼽았다. 역으로 동료들은 박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 2016년 4월 총선에서 ‘공정 공천’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한 바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28일 만난 박 후보는 유쾌한 농담을 던지며 동료들의 의구심을 해소시켰다. →공정한 공천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저에겐 챙길 계파가 없다. 제가 김대중계라고 권노갑 고문이나 박양수 전 의원을 공천하겠나.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2012년 총선 당시 어느 계파가 전횡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장악력 때문에 공정한 공천이 의심된다지만 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인 만큼 빠르게 당을 추스르는 능력인 장악력은 저의 장점이다. 차기 당 대표의 협상 상대는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 등 관록의 정치인이다. 보통 노련한 분들이 아니다. 여의도 정치 경험이 일천한 문 후보가 이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까. 축구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처럼 용인술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불안한 측면도 있다. →경선 초반 네거티브 선거전을 펼친다는 비판을 받았다. -통합진보당과의 단일화 여부를 물어보는 게 네거티브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저를 호남의 지역 구도 안에 가두는 이야기를 먼저 꺼낸 쪽이 문재인 후보 측이다. 문 후보 쪽에서 네거티브를 하면 안 된다면서 먼저 네거티브를 한 것이다. →대권 후보를 키울 적임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경선 경쟁자 문재인’이 아닌 ‘대권 후보 문재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 -문 후보는 맑고 심성이 고운 분이지만 답답하고 어딘가 불안한 측면이 있다. 종합편성채널 출연 결정에 2년 반이 걸렸다. 이번에 친노(친노무현)계에 공천 불이익을 주겠다고 선언했는데, 2012년 대선에서 친노계의 청와대 입성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선언은 왜 하지 않았던 것인가. 전 세계 갈등은 유엔으로 가고, 대한민국의 갈등은 여의도로 온다. 싸우고 대화하면서 조정하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수적이다. 제가 대표가 된다면 문 후보가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 결정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도록 전폭적으로 협력하겠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당심’에 비해 ‘민심’에서 밀리는 느낌이다. -전당대회는 대통령 후보가 아닌 당 대표를 뽑는 선거다. 민심 지지가 높다면 대통령 후보가 되면 된다. 비대위가 구성된 상태에서 당이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전대이기 때문에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지금은 강한 야당이 필요하고, 강한 야당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당이 바로 서야 한다. 싸울 때는 싸우고 할 말은 하면서 감동적인 협상을 이뤄내는 정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저는 18대 국회 원내대표 시절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다룰 때 처음으로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했다. 야당은 FTA를 받아들이고, 여당과 정부는 소상공인을 위한 유통산업발전법과 농민을 위한 피해보전법 마련에 합의했다. 저는 이렇게 감동적인 협상을 해 봤고, 그 경험을 살려 당을 이끌겠다. →야권 재편, 이른바 신당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진단하나. -저는 ‘통합의 대표’를 꿈꾼다. 집권을 위해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은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다. 제가 당 대표가 된다고 해서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겠다거나 대통령 후보를 못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갈수록 당내에 저를 돕는 연합군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씀드린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전국 정당 기반 강화…다른 후보들은 못 해” “문재인 한 명 더 보탠다고 부산·경남(PK) 정치의 지역 구도가 달라지지는 않지요. 제가 당 대표가 되면 ‘여러 명의 문재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문재인 후보는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 대표가 되면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선언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정치연합의 전국 정당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자평했다. 문 후보는 당내 친노(친노무현)·비노 계파 다툼에 대해 “정치적 목적으로 당내에서 친노·비노 프레임을 이용하는 분들이 있다”고 우려하며 “계파 논란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대표와 계파가 손대지 못하게 투명 공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는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는 반성과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며 “고성장 시대와 낙수효과의 신화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제 중성장이라는 현실에 맞는 적절한 국민 부담과 복지(중부담, 중복지)가 필요하다”며 적정 증세와 적정 복지를 목표로 하는 ‘3중(中) 경제론’이라는 모델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는 예전보다 애드리브도 많고 자기 자랑에도 쑥스러워하지 않는 등 당 안팎에서 달라졌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하자 “이제 깔때기가 돼 가나요. 경쟁하고 있으니 할 수 없다”며 웃었다. 다음은 문 후보와의 일문일답.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가 재정 계획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 이제 고성장 시대는 끝났다. 연평균 3~4%가 적정 성장일 수 있다. 고성장을 목표로 재정 계획을 세우니 당연히 세수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동안 세금은 적게 부담하고 복지도 적은, 이른바 ‘저부담, 저복지’의 시대를 살았다. 당장 유럽처럼 고부담, 고복지는 아니더라도 적정 증세를 통한 ‘중부담, 중복지’ 시대로 가야 한다. 증세에도 순서가 있다. 첫째는 대기업, 부자의 조세 부담을 정상화해 조세 형평성부터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 동의를 얻어 보편적 증세를 해야 한다. →당 대표가 돼 총선에 불출마한다고 해서 PK 지역 구도 변화에 기여할까. -2012년 총선의 경우 부산에서만 5% 이내로 석패한 곳이 6곳이다. 일부는 출구조사에서 이겼지만 최종 개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역전됐다. 그만큼 PK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조경태(부산 사하구을)에 문재인(부산 사상) 하나 보탠다고 PK 지역 구도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제가 대통령 후보가 된 후 새정치연합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다. 당 대표가 되면 장벽을 더 낮출 수 있다. 여러 명의 문재인이 나올 수 있다. 대구·경북(TK), 강원도 마찬가지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보수 우위 경쟁 구도를 바꿀 수 있다. →서울신문의 최근 새정치연합 의원 조사를 보면 최우선 의제로 ‘전국 정당 기반 강화’를 꼽더라.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임무다. 다른 후보들은 하기 힘든 역할이다. →당 대표가 될 경우 친노 불이익을 얘기했는데 어떻게 불이익을 준다는 말인가. -이른바 친노로 분류된 분들은 이번 전대에 최고위원으로 출마하지 않았다. ‘우리가 희생하자’는 나름의 공감대가 있었다. 친노·비노 프레임을 떨쳐내지 못하면 차기 대선 때도 공격받는다.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투명 공천’이 좋은 공천이 될 수 있다. 내년 총선 1년 전 공론을 모아 공천 규칙을 확정하고,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할 것이다. 당의 주요 보직도 원외에 대폭 개방하고 당 홍보위원장도 외부 인사에게 맡길 수 있다. 여의도를 넘어 원내외 ‘융합 정당’으로 가야 한다. →투명한 공천을 주장하는데 ‘노·장·청’이 두루 안배될 수 있을까. -내년 총선 공천에서 상징성이 큰 비례 1번과 2번 등 비례대표는 상향식으로 선출해야 한다. 예를 들면 ‘비례대표 국민추천제’ 방식이 될 수 있다. 지역구 공천도 지도부나 계파가 사사로이 하는 게 아니라 투명하고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게 범국민추천위원회 등으로 공론화할 수 있다. →전당대회가 종반전으로 향하는데 판세를 어떻게 보나. -어디를 가나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를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광주·전남에서 후보 간 네거티브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 정치 의식이 높다는 생각을 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씨줄날줄] 혜음령/서동철 논설위원

    혜음령은 경기 고양시 고양동과 파주시 광탄면을 잇는 고갯길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의주를 잇는 의주대로의 일부였다. 혜음령은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임진각으로 달리다 보면 나타나는 벽제에서 의정부 쪽으로 길을 갈아탄 뒤 고양향교가 있는 고양동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만날 수 있다. 고개를 넘으면 서울시립 용미리공원묘원이다. 의주대로는 지금 고양시와 파주시의 협력으로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정비되어 있다. 삼송동에서 임진강과 만나는 임진나루까지 걸어서 탐방할 수 있다. 조선 왕조는 개성에서 개창해 한양으로 천도했으니 혜음령은 ‘두 서울을 잇는 고개’였다. 고려 왕조도 지금의 서울인 남경(南京)을 새로운 수도로 삼을 것을 고민했다. 고려가 혜음령 일대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는 용미4리의 혜음원(惠陰院) 터에서도 드러난다. 혜음원은 개성과 남경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1122년(고려 예종 17) 세운 국립 숙박시설이다. 왕의 행차를 위한 별원(別院)과 사찰도 있었다. 발굴 조사에서는 ‘혜음원’이라고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출토됐고, 27개에 이르는 건물터, 연못터, 배수로 등 대규모 유구가 확인됐다. 고려시대 혜음원과 이웃한 장지산 기슭에 높이 17.4m의 용미리석불입상이 세워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거대한 석불은 의주대로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국가의 위세를 보여 주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먼 길에 나선 사람들도 두 분 부처의 자비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혜음령은 중요한 간선도로였지만 도적이 출몰하는 위험한 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세기가 목전이었던 1891년(고종 28)에도 ‘도적의 무리가 자주 출몰해 백성이 안심하고 터 잡을 수 없으니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는 장계(狀啓)가 경기감사로부터 올라오기도 했다. 값나가는 물건이 아무래도 많았을 여행자는 더욱 도적의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서울과 의주를 잇는 길은 일제강점기 벽제에서 금촌과 문산을 거치도록 바뀌었다. 이후 이 길을 넓힌 것이 통일로, 조선시대에는 완전치 않았을 한강과 임진강의 강둑을 이은 길이 자유로다. 과거 혜음령처럼 높은 고개를 지나는 길을 이용한 것은 하천 때문이다. 광탄(廣灘)이라는 땅 이름부터가 ‘넓은 여울’이라는 뜻이다. 양주에서 흘러내려온 두 개의 물길이 합류해 넒어진 문산천은 난코스였다. 의주대로가 임진나루로 이어지는 것도 강폭이 좁고 수심이 얕기 때문이다. 산과 하천은 이제 터널과 교량으로 극복한다. 통일로와 자유로도 수많은 다리로 이어졌다. 혜음령에서도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745m짜리 터널이 올해 완공되면 희미해진 옛 의주대로의 존재도 다시 부각될 것이다. 주변에 ‘혜음원 박물관’이나 ‘의주대로 박물관’이라도 세운다면 그 효과는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중산층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1호 인천 도화지구에 1960가구 건설

    중산층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1호 인천 도화지구에 1960가구 건설

    중산층을 겨냥한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1호가 인천 도화지구에 들어선다. 국토교통부는 인천 남구 도화지구에 1960가구 규모로 기업형 임대주택 1호를 짓는다고 22일 밝혔다. 이 사업은 인천도시공사가 보유한 택지에 주택기금, 인천도시공사, 대림산업이 공동 출자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주택기금은 우선주로 참여해 보통주 출자자와 타인 자본을 연결해주고 인천도시공사는 토지를 매각해 보통주로 참여한다. 대림산업은 건설투자자로 참여해 시공과 임대주택의 관리·운영을 맡기로 했다. 대림산업은 오는 3월쯤 리츠(부동산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주택기금 출자를 받아 부지를 매입한 뒤 오는 9월 착공과 입주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주택 규모는 59∼89㎡이며, 임대료는 면적에 따라 보증금 5000만∼9000만원에 월 40만∼60만원으로 결정될 전망이다. 국토부는 도화지구 외에도 서울 중구 신당동과 경기 화성 동탄2지구 등에서 추가 사업을 검토 중이다. 신당동 민간임대주택은 오는 9월 이전을 앞두고 있는 도로교통공단 터에 들어선다. 동탄2신도시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보유한 분양용지로 2100여 가구가 들어설 수 있는 땅으로 5월 중 사업자를 공모하고 연내 착공할 계획이다. 단기간에 주택 공급이 가능한 연립·단독주택 용지를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 밖에도 민간 사업자와 임대 리츠 사업을 협의 중에 있어 올해 안으로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1만 가구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이날 도화지구 현장을 찾아 “기업형 임대주택은 대형 건설사들이 사업 전반을 책임지고 관리한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며 “금융권에서도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에 적극 투자해달라”고 말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중산층용 기업형 임대주택 예상 月임대료는…전국 40만원대 중반·서울 80만원 안팎

    기업형 임대주택 정책 발표 이후 중산층에 대한 개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산층에 대한 정의는 소득수준, 생활수준, 삶의 질, 사회인식 등에 따라 다양하지만 우리나라 통계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위 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규정하고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2012년) 기준으로 중산층(4인가족 기준) 중위소득은 354만원(5분위)이다. 이를 기준으로 ±50%를 적용하면 중산층 소득범위는 월 177만~531만원쯤 된다. 소득분위로 기준하면 3~9분위에 해당된다. 기업형 임대주택 상품은 중산층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기업형 임대주택의 예상 월 임대료 지불가능 수준은 중산층 소득범위, RIR(가구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 20~30%를 적용하면 40만~150만원 수준으로 나온다. 전국은 40만원 중반, 수도권은 60만원 안팎, 서울은 80만원 안팎 수준이다. 지방은 3분위 이상, 수도권은 5분위 이상, 서울은 8분위 이상이 기업형 임대주택 월 임대료를 지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에서 공급되는 기업형 임대주택은 상층(9~10분위)에 가까운 소득을 올리는 가구가 입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실제 공급된 민간 임대아파트 월 임대료 수준도 비슷하다. 대림산업이 짓는 인천도화 임대 아파트(59~74㎡)는 보증금 3700만~4400만원에 월 임대료 41만~50만원으로 책정됐다. 동탄2신도시 임대아파트(74~84㎡)는 보증금 6100만~7400만원, 월 임대료 61만~69만원에 분양이 끝났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3~8분위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전국 주택의 중위 전셋값을 기준으로 예상 임대료를 예시한 것이다. 입지별로 아파트 뿐 아니라 다세대, 연립 등 다양한 주택유형이 공급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지역별, 주택 유형별로 임대료는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기업형 임대주택은 최근 상황과 비교, 2년마다 가격 변동성이 큰 전세보다 최소 8년간 큰 폭의 가격인상 없이(연 5% 이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최초 임대료 책정, 주택 보유 여부 등에 대한 청역제한 등이 없기 때문에 완전한 시장경쟁에 따라 사업이 추진된다. 3년 정도 지나 본격적으로 상품이 나오는 시기의 금리, 수요공급 등에 따라 최초 임대료 책정과 월 임대료가 달라질 수 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홍석천도 신경 쓰이는 이채영 몸매 ‘이런 드레스 처음이지?’

    홍석천도 신경 쓰이는 이채영 몸매 ‘이런 드레스 처음이지?’

    홍석천이 배우 이채영의 볼륨 몸매에 신경을 써 폭소를 자아냈다. 지난 16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마녀사냥’의 ‘그린라이트를 꺼줘’에 이채영은 게스트로 출연, 흰색 블라우스로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드러냈다. 특히 이채영은 움직일 때마다 옷깃사이로 노출이 이뤄졌다. 이채영의 옆 라인에 앉은 홍석천은 이를 목격, 한 마디를 해 눈길을 모았다. 홍석천은 “이채영도 그렇고 예전에 출연한 한고도도 그렇고 뭔지 모르게 신경 쓰인다”고 답답한 마음을 드러내며 “자리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홍석천 발언에 신동엽은 “그래! 너 게이 아니야”라고 지적했고, 홍석천은 “그런 거야?”라고 긍정해 웃음을 유발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이채영 몸매) 연예팀 chkim@seoul.co.kr
  • 목타는 강원… 41년 만에 최악 겨울 가뭄

    목타는 강원… 41년 만에 최악 겨울 가뭄

    강원지역이 41년 만에 겪는 최악의 겨울 가뭄으로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있다. 강원도와 강원지방기상청 등은 14일 지역의 강수량이 예년의 1%에 그치는 등 극심한 겨울 가뭄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먹는 물이 부족해 비상 급수에 나서는가 하면 산불비상, 겨울축제 무산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저수율은 예년보다 크게 밑돌고 가뭄이 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속에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강원 동해안 지역의 평균 강수량은 0.3㎜로 평년(38.3㎜)의 1% 수준에 그쳤다. 이는 1973년 이후 41년 만에 최저 기록이다. 이 기간 동해안에는 비나 눈이 내리지 않았고 강수량도 속초 0.2㎜, 강릉 0.4㎜, 태백 4.5㎜, 대관령 11.7㎜ 등에 그쳤다. 내륙 지역도 마찬가지로 지난해 1년 동안 철원의 강수량은 684.4㎜로 평년의 49.1%(1391.2㎜)에 그쳤고 춘천과 홍천도 각각 674.4㎜, 703.5㎜의 강수량을 기록하며 평년의 50.1%에 머물렀다. 올 들어서도 강원지역 강수량은 ‘0’에 가깝다. 이 같은 겨울 가뭄으로 긴급 급수 지역이 늘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소방차가 지원한 급수 지원은 136건(538t)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올 들어서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 마을에 12t의 급수가 지원됐고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 주택가에도 식수 3t이 공급되는 등 급수 대상지역이 갈수록 늘고 있다. 춘천 강촌지역 주민들은 “물이 많은 고장이지만 벌써부터 식수를 공급받고 있는데 겨울 가뭄이 길어지면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하루 3만 6000t의 물이 필요한 속초시는 가뭄 대책 매뉴얼에 따라 시민 절수 홍보와 비상취수원 가동에 들어갈 채비를 서두르고있다. 속초지역 취수원인 쌍천의 수압이 낮아지면 바닷물 유입이 예상됨에 따라 매일 염소농도 측정을 실시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염소농도 측정은 쌍천 4곳의 취수정 가운데 해안과 인접한 1개의 취수정에 바닷물 유입 영향으로 염소농도가 높아지면 학사평 집수정이 비상 가동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산불에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고성~삼척에 이르는 동해안지역은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건조주의보와 경보가 반복 발효되며 산불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가뭄으로 소양호 상류가 말라 인제군은 빙어축제를 열지 못했고 저수지마다 저수량이 부족해지면서 벌써부터 영농철 가뭄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봉걸 강원도 농촌정책계장은 “강원 최대 벼 생산지인 토교, 잠곡, 동송 등 철원 지역 8개 저수지의 저수율도 현재 64.8%로 지난해 같은 기간(95.2%)보다 30% 포인트 이상이 떨어졌고 반계, 흥업, 신리 등 원주와 평창 지역 18개 저수지의 저수율도 85.9%로 지난해 98.7%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감소해 영농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매립지 사실상 연장… 쓰레기 대란 막았다

    매립지 사실상 연장… 쓰레기 대란 막았다

    수도권 쓰레기매립지 사용 연장 여부를 둘러싼 환경부와 서울시·인천시·경기도 등 수도권 광역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환경부와 3개 시·도는 9일 4자 협의체 회의를 열어 수도권매립지 관련 ‘선제적 조치’에 합의했다. 선제적 조치는 지난달 3일 유정복 인천시장이 제안한 것으로 수도권매립지 소유권과 면허권의 인천시 이양,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인천시 이관, 수도권매립지 주변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정책 추진을 말한다. 수도권매립지는 인천에 위치했지만 서울·경기 지역의 쓰레기까지 처리하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2016년 사용 종료를 앞두고 그동안 대체부지 검토와 시·도별 자체 처리시설 확충 등을 추진했지만 대안을 찾지 못해 쓰레기 대란 우려가 대두됐고 사용 연장 방안을 놓고 갈등이 불거졌다. 4자 협의체는 이날 20여년간 수도권매립지 운영으로 환경·경제적 피해를 감내한 인천시민과 주변 지역 주민의 고통과 아픔에 인식을 같이하고 정책의 합리적 개선에 공감을 표했다. 이날 합의로 인천은 수도권매립지 매립면허권과 파생되는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된다. 환경부 산하인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관할권도 인천시로 이관된다. 매립지 폐기물의 반입수수료 50%를 가산금으로 징수, 인천시 특별회계로 전입해 매립지 주변 지역 환경 개선과 주민 지원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또 인천도시철도 1호선과 서울도시철도 7호선 연장 및 조기 착공, 검단산업단지 환경산업 활성화 등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선제적 조치에 합의하면서 수도권매립지 사용 연장을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인천시는 실리를 챙겼다는 분위기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를 넘겨받은 데다 매립지 주변 지역 개발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협력도 이끌어 냈다. 매립지 1541만㎡의 자산가치만 1조 5000억원에 이른다. 인천시 관계자는 “주민 불만을 해소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당장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인천시가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역 개발 문제를 해결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서울시도 2016년 종료 예정이던 매립지의 사용 기한이 연장되면서 일단 쓰레기 대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의 경제적 부담이 느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면서도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서울시가 약속한 생활쓰레기 20% 감축과 자체 처리량의 하루 700t 확대를 이행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게 됐다. 서울시와 인천시에는 ‘나쁘지 않은 거래’가 성사된 것이지만 매립지 인근 주민과 지역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매립지 인근 주민 사이에서는 2016년 매립지 사용이 종료되면 수십년간 겪어 온 악취 피해를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주민들은 “서울 쓰레기는 서울에서, 경기 쓰레기는 경기에서 처리하라”며 연일 수도권매립지 연장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는 등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4자 협의체 관계자는 “선제적 조치가 연장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평가와 그간 고통에 대한 보상이라는 해석이 엇갈린다”면서도 “(사용 연장이) 4자 협의체에서 논의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은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서울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교황 방한·세번째 추기경 탄생 ‘경사’… 조계종 분열 ‘눈살’

    교황 방한·세번째 추기경 탄생 ‘경사’… 조계종 분열 ‘눈살’

    2014 갑오년은 종교계에도 굵은 일이 다발한 해였다. 세 번째 추기경 탄생과 교황 방한이란 겹경사로 천주교계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불교계에선 탈종과 분리의 메가톤급 불협화음이 잇따랐고 개신교계 역시 연합과 일치보다는 분열과 일탈이 우세했다. 그런 한편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반성, 회개하자는 참회의 움직임이 종교계 곳곳에서 잇따랐다. ●겹경사로 주목받고 큰 과제 안은 천주교 ‘한국천주교의 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천주교계엔 경사가 이어졌다. 8월 4박 5일간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 ‘아시아청년대회와 125위 한국순교자 시복식 참가’를 위한 사목방문에서 교황이 보여준 낮은 사목과 소통 행보는 감동의 물결을 자아냈다. 세월호 유족들이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장애인 등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을 만나 눈을 맞춰 위로하고 전한 사랑의 메시지는 ‘지도자 부재’의 한국에 교황신드롬까지 일게 했다. 방한 마지막 날 출국 직전 집전한 명동성당 ‘화해와 평화를 위한 미사’에선 한반도 화해와 통일을 위해 이해하고 용서하라는 굵은 메시지를 만방에 전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1월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의 추기경 서임은 한국 세 번째 추기경 탄생으로 관심이 쏠렸다. 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19명의 추기경 중 한 명으로 교황 선출권을 갖는다. 교황청을 비롯한 세계 천주교의 개혁에 앞장서고 있는 교황이 첫 아시아 단독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했고 오랫동안 세 번째 추기경을 기다려왔던 한국에 큰 선물을 안긴 만큼 한국 천주교계도 개혁과 역할 측면에서 화답해야 하는 적지 않은 과제를 안게 됐고 고민 중이다. ●탈종과 이탈로 이타의 보살행 가려진 불교 천주교와는 달리 불교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악재의 연속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중에서도 한국불교 선지식인 송담 스님(법보선원 이사장)의 조계종 탈종과 선학원의 조계종 이탈은 불교계 전체를 뒤흔들 만큼 여파가 큰 사태이다. 특히 조계종의 정신적 지주라는 송담 스님 탈종은 종단 초유의 일. ‘법보선원과 조계종의 수행전통이 맞지 않아 승려로서 의무와 권한을 내려놓는다’는 충격 선언을 한 스님의 탈종은 공양(시주)거부와 부패·도박·은처승·정치승을 스님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재가불자 선언까지 부르는 등 논란이 계속 중이다. 법인관리법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선학원은 결국 조계종이 선학원 이사장인 법진 스님을 승적 박탈하는 멸빈 조치해 파국을 맞았다. 선학원은 ‘제2의 정화운동’을 선포하며 맞서 선학원 소유권을 둘러싼 다툼이 계속될 전망이다. 그런 가운데 연임에 성공한 자승 총무원장 체제의 조계종은 ‘승려 도박사건’이후 종단 차원에서 추진해온 자성과 쇄신의 한편에서 ‘10·27법난 기념관’이 포함된 조계사 성역화를 강하게 밀어붙여 눈길을 끌었다. ●일치와 연합 구호만 무성했던 개신교 김영주 목사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재임과 이영훈 순복음교회 목사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취임, 양병희 목사의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대표회장 취임…. 연합기관 대표들의 연임과 경질을 둘러싼 잡음이 적지 않았다. 특히 연초부터 교회연합과 일치에의 기대가 컸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NCCK는 김영주 총무의 재선 과정에 문제를 제기한 최대교단 예장통합의 반발로 정의와 에큐메니컬(교회일치)에 바탕한 진보적 연합기구 위상에 적지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동안 NCCK에 속했던 여의도순복음교회(기하성)의 이영훈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으로 옮긴 것도 관심 사안. 이 목사는 한기총에서 분리된 한교연의 새 대표회장과 긴밀한 접촉을 갖고 교회연합을 거듭 천명했지만 좀처럼 감정의 골을 메우지 못했다. 한편 세월호 참사 이후 ‘나 부터 반성해 종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회개 운동이 잇따랐고 NCCK와 진보 성향 목회자 단체들은 ‘세월호 백서’ 발간사업 등 재발방지와 사태해결 측면의 목소리를 높였다. ●차분히 내실 닦기에 매진한 민족종교 천도교·원불교·유교 등 민족종교는 종단 자체의 기념사업에 충실한 채 조용히 한 해를 보냈다. 천도교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사업을 다양하게 벌였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유족회와 손잡고 농민혁명 정신선양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원불교는 3대 종법사 대산 종산의 탄생 100주년 사업에 주력하는 한편 원불교 창교 100주년을 맞기 위한 준비를 차분히 벌였다. 유교는 최근덕 관장 구속 이후 취임한 서정기 관장이 유림사회의 화합과 친목에 바탕한 개혁작업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지난달 서 관장이 행사 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비상 체제에 돌입한 상태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서울학(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서울학(중)

    ●서울학과 서울정치학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시기 한국에서 문관으로 근무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서울은 단순히 한국의 최대 도시가 아니라 서울이 곧 한국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67년 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을 상상하면서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라고 표현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두 도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에 이르는 한국정치를 분석한 그레고리 헨더슨은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한국정치의 본질을 정치권력을 향해 상승기류를 타고 몰려드는 소용돌이 현상으로 파악했다. 그는 한국인이 단일민족이라는 동질성 때문에 오히려 원자처럼 분열돼 있으며 원자화된 한국인이 모두 정치권력을 향해 소용돌이처럼 몰려들기 때문에 중앙집중화가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한국정치는 당파성과 개인 중심의 기회주의를 보이면서 합리적 타협이나 응집을 배양할 수 있는 토양이 황폐화됐으며, 이런 소용돌이 정치패턴에 대한 처방은 다원주의와 분권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동질성과 중앙집중화 현상을 무리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도 있으나 해방 후 혼란으로 점철된 한국 정치의 현상을 꿰뚫은 통찰력 있는 해석으로 평가받는다. 결국 두 도시는 시장 출신 대통령을 배출했다. 중앙집권화의 한 극단을 달린 프랑스 파리시장 시라크가 1995년 삼수 끝에 최초의 파리시장 출신 대통령에 올랐다. 이어 2007년 이명박 서울시장 역시 삼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중앙정치가 모든 것을 녹이는 특성 아래서 서울과 파리의 정치가 살아남는 데 성공한 셈이다.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를 따질 때 서울은 중앙과 지방의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서울정치란 본래 중앙정치와 한 몸이었으나 오랜 관선 시장 시대를 거치면서 서울정치는 중앙정치에 무대를 빼앗긴 채 실체를 잃었다. 서울정치는 고유의 특성을 상실하고 일개 지방정치로 전락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정치의 상실은 서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서울은 2000년 이상의 생성사를 가진 기원전의 고도(古都)이며,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전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도시이다. 지속적으로 한반도의 심장부 노릇을 한 지도 620년을 훌쩍 넘겼다. 서울을 떠나 대한민국을 논할 수 없듯이 우리나라 정치는 서울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서울정치의 제 역할 찾기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서울정치의 기본요소가 서울시장과 서울시 의회, 시민사회와 언론 등으로 구성된다고 보면 그중에서도 서울정치의 주 연구대상은 서울시장이다. 서울시장과 서울정치학은 분리할 수 없다. 서울시장의 위상은 이른바 서울정치학의 정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서울시장의 존재가치와 위상은 홀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울정치학과 더불어 성립하기 때문이다. 서울학 연구가 본격화된 지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서울학과 서울학에 바탕을 둔 서울정치학은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1957년부터 펴낸 ‘항토서울’ 등 2009년까지 발간된 서울학 관련 논저 682편을 바탕으로 서울학 연구의 대상을 분류하면 기초연구, 서울과 공간, 서울과 정치, 서울과 사회, 서울과 경제, 도시문화와 표상, 기타 등 크게 7개로 구분할 수 있다. 기초연구는 다시 역사개설, 방법론, 사료 및 자료로 세분화되며 공간연구는 도시계획과 제 개발, 도시건축물, 주거지 및 도시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분야는 사회집단 및 사회문제, 도시민의 일상생활, 인구문제, 교통과 통신이 포함된다. 경제분야는 공업 및 상업, 무역, 노동 등이다. 도시문화와 표상 속에는 문화 및 교육, 종교와 사상, 도시의 정체성과 이미지 등이 들어 있다. 이 중 서울과 정치는 도시와 국가, 지역정치, 도시행정 및 정책으로 작게 분류할 수 있다. 도시와 국가는 천도, 안보, 정치동향, 대외관계, 군사, 치안 등이 포함된다. 지역정치는 의회와 지방자치이다. 도시행정 및 정책 속에는 도시 관련 각종 제도와 정책, 행정이 망라된다고 할 수 있다. 682건 중 2000년 이후 발표된 논저 33건이 정치 편에 속했는데 서울정치의 핵심을 벗어난 채 행정제도에 관련된 내용을 맴돌았다. 올해로 민선 서울시장을 시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지 20년을 맞는다. 그동안 6기에 걸쳐 5명의 민선시장이 배출됐지만 그 정치적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정치권력론, 정치과정론, 정치리더십론, 정치문화론, 정치기구론 등 정치학의 분류를 서울학에 적용해 서울의 정치과정론, 서울의 리더십론, 서울의 정치문화론, 서울의 행정기구론 등으로 분류하는 등 서울정치학의 본격적 입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도의 입지와 의미 서울정치학은 1394년 조선 태조의 한양천도에서 비롯됐다. 천도와 안보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립과 존망을 다루는 서울정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양의 도시입지는 국토의 중앙에 있다는 점, 군사적 요충지라는 점, 교통과 수운이 편리하다는 점 등 지정학적 요인이 작용했다. 여기에 풍수도참적 측면이 강하게 두드러졌다. 유교적인 동양의 우주론과 풍수 조영 원리가 절충되어 한양 입지의 주요한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수도(首都·Capital)란 국가의 통치를 위한 여러 기관과 기능이 집중된 곳으로 다른 도시와 차별성을 갖는 도시이다. 수도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형성 이후에 사용된 것으로 근대 이후에 출현한 개념이다. 즉 수도는 정치의 일원화를 특징으로 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정치권력 소재도시를 일컫는다. 수도에 있는 국가기관을 중앙정부, 그 외의 지역에 있는 행정기관들을 지방정부라고 부르는 식이다. 서울을 다스리는 한성부와 한성부의 우두머리인 한성판윤은 중앙정부에 속한 중앙직 관리였다. 조선시대에는 중앙과 지방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고 그와 비슷한 개념어로 경향(京鄕), 중외(中外), 내외(內外), 경외(京外)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유럽에서는 16,17세기부터 수도라는 용어가 등장했지만 수도 개념이 일반화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였다. 동아시아는 중앙집권체제가 일찍부터 형성되었고 지금의 수도와 유사한 개념 역시 일찍부터 실재하였다. 중국 중심의 국가별 위계가 존재하였고, 동일 국가의 지역 간에도 정치적, 신분적, 문화적 질서가 있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사전에서 수도 항목을 찾아보면 한국은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도시’, 중국은 ‘국가 최고의 정권기관 소재지로 전국의 정치 중심’, 일본은 ‘ 그 나라의 중앙정부가 있는 도시’라고 각각 정의하고 있다. 세 나라 모두 국가를 단위로 수도를 사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영미권에서 수도를 나타내는 단어인 Capital에 대한 정의를 보면 ‘한 국가 혹은 지역의 정치행정 중심도시’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근대 이후 수도는 더는 신성한 장소가 아니게 되었고, 수도를 상징하는 성곽의 의미도 축소되었다. 또 제도상 특별한 지위를 갖지도 않으며, 교화의 기준으로 작용하지도 않았다. 대신 수도는 근대 국민국가의 정치·행정·권력의 중심지라는 의미와 함께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보편화의 기준이 되었다. 수도 그 자체로서 국가를 대표하기도 하며, 국민이나 국가의 형성에 필수적인 국어(표준어)도 수도의 말과 글을 기준 삼아 탄생하였다. 계서화된 국제질서가 만국 공법적인 국제관계로 재편되었듯이 차별적인 지역 간의 위상도 보편화를 지향하는 국민국가와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일원화되었다. 한국에서 수도란 용어가 사용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였다. 19세기 중반 Capital을 일본에서 번역한 이 용어는 1890년대 처음 들어왔지만, 서울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외국의 수도를 지칭하는 용어로 주로 쓰였다. 교과서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근대 초기 통상조약을 맺을 때도 수도라는 용어 대신 도성이나 경사(京師), 한양, 경성, 경도(京都), 도읍, 수부(首府), 수선(首善), 경조(京兆), 황성, 경화(京華) 등이 쓰였다. 수도 서울은 전제군주와 독재자의 희생양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임금은 수도를 등졌으며, 구한말 고종은 신변보호를 위해 러시아공사관에 숨어들어 1년 동안 머물렀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 사수 거짓부렁으로 피란을 떠나려던 서울시민들이 한강을 건너지 못하게 했다. 이때 생긴 트라우마가 한강 너머 강남 땅에 대한 부동산투기의 실마리를 제공했는지도 모른다. 1960~70년대 남북한 간 안보경쟁의 산물인 ‘서울 요새화 계획’이 또 한번 서울을 멍들게 했다. 북한 장사정포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고자 정부를 과천청사와 대전청사로 분리했고, 끊임없는 수도 이전 시도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세종시 정부 이전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공습 때 서울시민 30만~40만명용 대피소를 만들 목적으로 남산에 1, 2호 터널을 뚫었고, 남산타워 또한 북한에서 보내는 전파를 방해할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을지로 지하보도 등 서울 곳곳의 지하보도도 대피용으로 만들었다.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어김없이 대전차 방어벽이 구축됐다. 홍은동 네거리 유진상가도 시가전용 엄폐물이었다. 여의도 광장과 북악스카이웨이, 한강 잠수교도 안보용이었다. 국가안보는 수도 서울에 숱한 생채기를 남겼다. 선임 기자 joo@seoul.co.kr
  • 해외여행 | 아프리카의 꽃 에티오피아①Addis Ababa 아디스 아바바

    해외여행 | 아프리카의 꽃 에티오피아①Addis Ababa 아디스 아바바

    ETHIOPIA 아프리카의 동쪽 끝, 검은 땅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 기아와 분쟁으로 기억되는 그곳은 장엄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위대하고도 성스러운 땅이었다. 낮은 자리에서도 강인한 걸음을 이어 온 그들의 삶에 고개가 숙여졌다. ●Addis Ababa 아디스 아바바 고원 위에 선 아프리카의 심장 해발 2,300m. 우기의 끝을 알리는 비가 간간이 적실 뿐 10월의 아디스 아바바는 쾌청했다. 이곳 사람들은 아디스 아바바를 아디스라고 부른다. 아디스의 시내 중심가는 중국이 투자했다는 경전철 공사가 한창이다. 아프리카의 정치·외교 수도답게 시내 북쪽에는 세계 각국 대사관과 유엔 아프리카경제총회본부 그리고 호텔 등이 밀집해 있지만 주변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에티오피아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아디스 아바바대학을 스치듯 지나쳐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의 규모. 그러나 이곳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인류 시조의 화석 ‘루시Lucy’ 때문이다. 3,000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자부심은 이 인류의 기원까지 닿아 있다. 학자들은 에티오피아가 속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부터 아시아와 유럽으로 인류가 퍼져 나갔다고 주장한다.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약 320만년 전의 것이다. 1m 정도의 키에 20세 전후의 여성으로 알려진 ‘루시’는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화석이 발견될 당시 발굴단의 캠프에서 이 음악이 흘러나왔단다. 박물관 정원에는 메넬리크 2세MenelikⅡ, 1844~1913가 1896년 아두와 전투에서 이탈리아에 맞서 승리하는 데 사용했다는 대포도 전시되어 있다. 그는 에티오피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부족간의 대립으로 분열된 에티오피아를 통일하고 근대국가로서의 에티오피아의 기초를 다진 한편, 1887년에 수도를 엔토토로부터 아디스 아바바로 천도했다. 해발 3,000m의 엔토토산Mt. Entoto까지는 찻길이 잘 나 있어 어렵지 않게 올랐다. 길목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빽빽했다. 메넬리크 2세가 고산지대에 잘 적응하는 유칼립투스 나무를 호주로부터 가져와 심었다는데, 바람을 타고 그 향기가 무척이나 싱그러웠다. 자동차 매연으로 답답했던 시내 중심과는 사뭇 공기가 달랐다. 예라루산, 즈콸라산, 사파타산이 도시를 두르고 호위무사처럼 솟아있는 아디스 아바바. 높은 탁상지인 엔토토는 군사적인 요지로는 이상적이었지만 기온이 낮고 땔감용 나무가 부족해 수도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귀족들에게 엔토토산 기슭의 땅을 나눠 주고 그들이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꽃’이라는 뜻의 아디스 아바바가 새로운 수도로 탄생된 것이다. 메넬리크 2세의 개혁을 이어 간 것은 1930년부터 40여 년간 재위에 오른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Ⅰ, 1892~1975다. 쿠데타로 즉위한 그는 1974년, 또 다른 쿠데타로 실권하기까지 아프리카통일기구(AU)를 세우고 에티오피아를 국제연맹과 UN에 가입시키는 등 에티오피아의 근대화를 다졌다. 1960년대까지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끌어 올렸는데,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던 시절이다. 셀라시에 국왕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왕실 근위대였던 강뉴 부대Kangnew Battalions 6,037명을 우리나라에 파병한 장본인이다. 당시 철원, 춘천, 화천, 양구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한 에티오피아 용사들이 657명에 달한다. 셀라시에 국왕이 1931년에 세운 트리니티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121명 용사들의 유해와 함께 그 자신도 묻혀 있다. 하일레 셀라이시에라는 이름은 암하라어로 ‘삼위일체의 힘’이라는 뜻이다. ‘성삼위일체 성당’으로도 불리는 트리니티 대성당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총본산이다. 총대주교의 즉위식과 그가 집전하는 미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조각상이 배치된 유럽 스타일의 외관은 무척 아름답다. 내부에는 성서의 주인공들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빛나고, 셀라시아 황제와 왕비가 미사를 드릴 때 앉았던 화려한 왕좌도 그대로다. 에티오피아 정교회Ethiopian Orthodox Tewahedo Church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의 기도시간에만 개방하지만 트리니티 대성당은 하루 종일 열려 있다. 트리니티 대성당 P.O.Box 3137, Addis Ababa 251-11-1233518 www.trinity.eotc.org.et 입장료 100비르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에티오피아항공 02-733-0325 www.ethiopianairlines.co.kr
  • [오늘의 경기]

    ■프로농구 ●LG-모비스(오후 7시 창원체)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KGC인삼공사(오후 5시) ●남자부 대한항공-삼성화재(오후 7시 이상 인천 계양체) ■여자농구 ●신한은행-삼성(오후 7시 인천도원체) ■농구 ●농구대잔치(낮 12시 김천체)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어머니 죽자 1년간 승려 생활… 9번 장원급제 ‘천재 관료’

    조선 중기 학자이자 정치가, 철학자인 율곡 이이(1536~1584, 중종 31~선조 17)는 아버지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4남 3녀 중 3남으로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다. 이이의 집안은 요절했던 조부를 제외하면 대대로 관직에 나갔다. 그의 호 율곡(栗谷)은 집안의 농장이 있는 경기 파주 파평면 율곡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이의 생애는 사상 형성과 관련해 성장기, 수련기, 모색기, 정립기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장기는 이이가 19세에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기까지의 시기이다. 이이는 어려서 외가에서 살다가 6세 이후에는 한양과 파주를 오가며 산다. 그는 13세 때 진사 초시에 합격함으로써 일찌감치 신동으로 불렸다. 그러나 16세에 어머니가 죽자 충격을 받고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된다. 승려로 지낸 기간은 1년 정도였지만, 이 일은 평생 그를 괴롭히는 이력으로 따라다닌다. 수련기는 29세 때 과거에 급제하기까지의 시기이다. 이때는 이이가 관직 진출을 준비하던 시기다. 절에서 나온 후 이이는 20세인 1555년에 자경문을 지어 승려가 되었던 일을 반성하고 과거 공부에 전념해 벼슬길에 나아갈 것을 결심한다. 이이는 1558년 도산에 들러 당시 58세였던 이황(李滉)과 이틀 동안 강론을 한다. 이 만남을 계기로 이이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황의 철학적 입장을 확인하게 된다. 26세에는 아버지의 상을 당한다. 삼년상을 마친 이이는 1564년 7월에 생원과 진사에, 8월에는 명경과에 급제해 호조좌랑을 제수받는다.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으로 합격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불렸다. 모색기는 36세 때까지로 이이가 청년 관료로 활약하면서 사상적으로는 방향을 찾던 시기다. 이이는 이때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를 얻어 철학적 탐구에 몰두해 자신의 입장을 확립하게 된 듯하다. 정립기는 이이가 37세에 성혼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비로소 자신의 철학을 정립한 이후부터 49세로 죽기까지다. 이때 이이는 철학자로서, 정치가로서 눈부신 활약을 보인다. 저술로는 ‘성학집요’, ‘동호문답’, ‘경연일기’, ‘천도책’, ‘격몽요결’, ‘만언봉사’, ‘육조계’, ‘시폐칠조책’ 등이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30) 이이 ‘율곡문선’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30) 이이 ‘율곡문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조선시대 인물은 누구일까. 그 인물과 한 가족이 현재 유통 중인 우리나라 지폐 4종에 얼굴이 나오고 있다면? 흔히 지폐의 인물은 가장 교훈적이며 시대가 지나도 역사적 평가가 변하지 않을 중요한 사람으로 선정되는데, 가족 두 명이 동시에 지폐의 얼굴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물음의 정답은 율곡 이이다. 율곡은 어머니 신사임당과 함께 5000원과 오만원 권을 장식하고 있다. 왕족을 제외하고 모자가 동시에 선정된 사례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다. 율곡은 1536년에 태어났으며 신사임당의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일찌감치 영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는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뒤 무려 아홉 번이나 장원을 하였다. 16세에 어머니가 별세하자 불교에 귀의하였으나 다시 속세로 돌아와 ‘자경문’(自警文)을 써서 일생을 학문에 정진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이후 ‘천도책’(天道策)에 천인합일설을 주장하여 장원급제하였다. 선조가 즉위하자 어린 왕을 위해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써서 국정현안과 시무를 논하였고 조선 최대의 학자 이황과 ‘성학십도’(聖學十圖)에 관해 토론하였다. 39세에는 상소문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올려 시대적 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고 제왕학의 교재로 유교 정치 이념을 간추려서 정리한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선조에게 올렸다. 율곡은 동서 붕당의 대립이 심화되자 중립의 자세를 견지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해주로 내려가 유교사회 지식인의 기본 교양을 정리한 ‘격몽요결’을 완성하였다. 그곳에서 해주향약을 결성하고 사창(社倉)을 세웠다. 49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끊임없이 조선사회의 폐단을 혁신하고 관료사회의 기강을 정화하고 민폐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율곡은 16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선비로 사회의 모순을 개혁하는 데 일생을 바쳤으며 군주를 교육함으로써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하였다. 붕당을 화합하고 민생을 안정시키고 향촌사회를 인륜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조직하려고 하였다. 또 이황과 함께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조선 성리학을 토착화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이러한 율곡의 사상과 활동은 그의 저술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다. 1742년 이재가 율곡의 시집, 문집, 속집, 외집, 별집을 합하고 ‘성학집요’와 ‘격몽요결’(擊蒙要訣) 등을 보태어 1749년 ‘율곡전서’(栗谷全書)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총 23권 38책으로 되어 있다. 국역본으로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발간한 ‘국역 율곡집’1~2(1968) 등이 있는데 최근에는 한국고전번역원이 ‘율곡집’을 간행하여 율곡의 생애와 저작을 연결하여 보다 쉽게 풀어내었다. 그럼 율곡의 대표적인 저술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진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와 참 스승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는 저작으로는 자경문이 있다. 이것은 율곡이 20세에 학문을 닦고 인격완성을 지향하겠다는 각오를 적은 글이다. 율곡은 올바른 학문을 하기 위해서 우선 큰 뜻을 세운 뒤 성현을 기준으로 삼아 항상 정신을 가다듬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말을 조심하고 경계하며 덕성을 자각하여 사악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독서를 통해 옳고 그름을 변별하여 적용해야 하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공부는 죽은 뒤에 끝나는 것이므로 효과를 얻으려고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은 결과와 경쟁 중심의 공부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독서와 공부법이다. 또한 격몽요결에서 학문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예학사상에 근거한 바른 몸가짐과 올바른 생각을 하기 위한 방법을 말하였는데, 특히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글을 읽을 때는 정사함영(情思涵泳·자세히 생각하고 푹 잠겨 들어서 숙독하고 깊이 사색하는 것)하여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하며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방법으로 “늘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생각을 간직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유용한 처세의 방법이 많이 나온다. 성학집요는 선조의 학문을 위해서 유학의 핵심을 간략하게 정리한 글이다. 제왕의 도학정치는 독서를 통해 이치를 정확하게 살핀 뒤 실천해야 하며 제왕이 학문과 정치를 할 때 해야 할 일과 덕을 밝힘으로써 백성을 새롭게 하는 자취의 얼개를 드러내었다. “제왕의 학문은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절실한 것은 없고 제왕의 정치는 정성을 다하여 현명한 이를 등용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현명한 군주가 되기 위해서 독서를 중요시하고 현자를 등용하기를 원하는 충심을 통해 율곡의 참다운 스승으로서의 면모도 살펴볼 수 있다. 율곡의 성리학적 사상을 알 수 있는 저작으로는 ‘성혼에게’(答成浩原)가 있다. 율곡이 성혼(성리학의 대가로 기호학파의 이론적 근거를 닦음)과 토론한 편지인데 여기서 사단(四端)이란 감정의 일부로 선한 감정이며 칠정(七情)은 감정의 전체로 보았으며 칠정이 사단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심과 도심은 감정과 의지를 포함한 것으로 서로 대립적이며 기에 가린 것은 인심이고 기에 가리지 않은 것은 도심이다. 또한 ‘인심도심에 관한 그림과 설명’(人心道心圖說)에서는 도심이나 인심이나 모두 작용한 뒤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며 사단과 칠정은 기가 발동하여 이가 타는 것이라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였고 이발과 기발을 선과 악으로 삼아 이와 기를 나누는 것을 비판하였다. 이와 같이 율곡은 사단을 이(理)에, 칠정을 기(氣)에 배속시킨 이황의 연구를 심화 보완하여 우주의 근본원리는 이이며 원인인 능동적 기가 작용할 때 원리가 되는 부동의 이는 항상 내재되어 있다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주장했다. 율곡의 학설은 이를 표현하는 수단인 기를 현실에 바탕을 두고서 순수한 이념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이념과 현실의 화해를 지향하는 것이었으며 실천적 행동 철학으로 발전했다. 율곡을 중심으로 기호 지방에 확산된 사림을 기호학파라고 지칭한다. 중국 성리학을 능가하는 것으로 조선 성리학으로의 발전이라고 평가된다. 그의 현실정치 경장론과 통찰력이 담겨 있는 저작에는 ‘동호문답’이 있다. 왕도정치를 위한 철인 정치 사상과 당대의 폐법을 혁신하고 부국안민을 위해 대개혁의 경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만언봉사’는 만 글자로 된, 임금이 직접 읽어 보도록 올린 상소문인데 정사란 때를 아는 것이 귀하고, 일은 실질에 힘쓰는 것이 중요하므로 이것이 맞지 않는다면 성스러운 왕과 현명한 신하를 만났다 하더라도 다스림의 효과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시대 상황에 맞는 제도와 법을 만들어 백성의 삶을 돌보라고 주장한 시의론과 변통론이 핵심이다. 그는 48세인 1583년 ‘시무육조계’(時務六條啓)를 저술하면서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율곡은 당시 조선의 구조적인 문제를 통찰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잘못된 시대를 바로잡고자 한 유학자였다. 이는 모두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보여준 학문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와 독서법,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열정, 유교적 대동사회의 건설, 미래를 예견하고 준비하는 자세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역사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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