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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언대] 향토문화·역사연구 지원 절실하다/신상구 충남 천안북중 교사·향토사학자

    지난 1995년부터 지방자치제도가 다시 부활됐다. 그러나 자치단체들은 경제적인 면에 행정의 무게를 두고 있다. 자칫 향토 문화와 역사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지방자치제도는 마치 사상누각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향토문화는 지역 주민들의 생활양식으로 향토의 가치척도가 되고 지방화의 기반이 되고 있어 연구가 필요하다. 중앙 중심의 일반 사료만 가지고는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잘 알아볼 수가 없다. 한민족은 신라가 서기 676년 삼국통일을 한 이후 1300년 동안 중앙집권의 사회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 문화와 역사 연구는 중앙과 권력자 중심의 일반 문화와 역사 연구에 치우쳐왔다. 그 결과 우리 나라는 향토 문화와 역사가 올바로 정립되지 않은 가운데 민족문화가 형성되고 국사가 편찬돼 국가와 민족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향토문화를 증언해줄 만한 분들도 한분 두분 타계하고 있다. 아쉽게도 향토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향토사학자들에 대한 지원이 유명무실해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향토사 연구의 맥이 서서히 끊어지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다음과 같은 지원 대책을 촉구하고자 한다. 향토 문화와 역사 연구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현직 교사나 공무원이 향토사 관련 우수논문을 발표할 경우 승진 가산점을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 향토사 연구를 초과근무로 인정해주고, 연구공간도 마련해줘야 한다. 연구 관련 전문 도서 구입비도 지원해줘야 한다. 쥐꼬리만한 원고료와 조사연구비를 현실화해 향토 사학자들의 연구 분위기도 조성해줘야 한다. 향토 문화와 역사 연구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역사, 지리, 언어, 민속을 전공한 지역 대학의 교수는 물론 연구소의 연구원과 박물관의 학예연구사들도 전국 문화원에 딸린 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참여하도록 해봄직하다. 신상구 충남 천안북중 교사·향토사학자
  • 23일부터 ‘대한민국 건축제’

    도시의 얼굴인 건축. 잘 지어 놓으면 역사적인 유물로 후대에 남지만 거꾸로 자연·도시 경관을 해치며 흉물로 전락하는 것도 건축이다. 오는 23일부터 5일간 서울 코엑스 태평양홀에서 열리는 ‘2005 대한민국 건축제’는 그런 차원에서 건축을 다시 한번 곱씹어볼 수 있는 자리로 눈길을 끈다. 건축 분야에선 처음으로 열리는 첫 축제인 셈으로, 생활의 터전이자 한 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로서의 건축에 대한 참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행사에는 우선 최근의 건축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 ‘초대 작가전’이 들어있다. 육교 옆으로 물이 흐르는 둥근 분수대 등 독특한 설계로 눈길을 끄는 예술의전당앞 ‘아쿠아 육교’로 유명한 프랑스 건축가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을 비롯해 김개천, 최문규등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 100여점이 전시된다. 또 국내 최고의 건축물이 궁금하다면 이번에 건축가협회상 등을 받은 건물들을 살피면 된다. 평화축전 개최지인 ‘임진각 평화누리’, 영화감독 박찬욱의 자택인 파주 헤이리의 ‘자하재’ 등의 건물 사진들이 선보인다. 특히 예쁜 내 집을 짓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하우스 컨설팅’도 가능하다. 여성건축가 등 3명이 부스에 나와 무료 상담을 할 예정. 부스위주로 운영되던 코엑스행사장은 선으로 연결된 단풍잎 모양의 거대한 튜브 모양으로 꾸며진다.(02)2016-7121.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외국인 보유토지 분당의 8배

    9월 말 현재 외국인이 보유한 토지는 분당 신도시 면적(594만평)의 8.4배인 5016만평이며, 금액(공시지가 기준)으로는 24조 719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건설교통부가 내놓은 3·4분기 외국인 토지보유 현황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올해 3·4분기에 282만㎡(6160억원)를 취득하고 242만㎡(508억원)을 처분, 총 보유 규모가 1억 6584만㎡를 기록했다.2분기 대비 면적은 40만㎡(0.2%), 금액은 5652억원(2.3%) 증가한 것이며 작년 말보다는 면적이 5.1% 늘어났다. 외국인의 국내 제조업 투자 척도인 공업용 토지 취득은 3분기 중 31만㎡(15건)로 2분기 20만㎡보다는 늘었으나 1·4분기(89만㎡)에 비해서는 감소했다. 외국인 보유토지 내역을 보면 외국법인(순수 외국법인+합작법인)이 전체의 56.6%를 공업용으로 소유, 사용중이며 해외교포 42.9%, 외국정부 및 단체 0.5% 순으로 나타났다. 순수 외국인이 보유한 토지는 전체 면적의 18%인 918만평이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사설] 국보1호 교체논란 무슨 실익있나

    국보1호 숭례문을 교체하자는 논란이 10년만에 재연됐다. 김영삼 정부가 ‘역사 바로세우기’를 추진하던 1995년 당시에도 바꾸려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유지 쪽으로 결론난 일이다. 그런데 문화재 업무와 상관없는 감사원이 교체 필요성을 제기했고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생뚱맞기 짝이 없다. 논리 역시 일제 잔재 청산을 빼고는 10년 전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숭례문의 문화재적 가치와 상징성이 10년 전에 비해 더 떨어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보에 매긴 번호는 중요성이나 가치 척도의 우열을 표시하는 게 아니다. 국보1호도 308호도 모두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숭례문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고적 1호가 된 뒤 1955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처음 국보1호로 지정했다. 이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돼 정부가 독자적으로 다시 지정했으니 일제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숭례문은 도성인 한양의 정문으로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목조 건축물이라는 상징성이 강하다. 일제 잔재 청산을 이유로 댄다면 지나치게 우리 스스로를 낮추는 셈이다. 또 현재 진행 중인 과거사 정리의 취지를 희석할 위험성도 있다. 문화재적 가치와 상징성을 내세워 국보의 번호를 바꾼다면 소모적인 논란과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더 중요한 문화재가 발견된다고 다시 변경하겠는가. 차라리 통일됐을 때 한몫에 논의하는 게 옳다. 교체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도 엄청나다. 문화재청은 지금 방치된 문화재의 관리와 보호에 힘쓰고, 빼앗긴 문화재의 환수를 위해 머리를 짜낼 때이다. 기본적인 일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 [열린세상] ‘한국전쟁’의 한반도화/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 언론인

    1980년대 초만 해도 국내에는 한국전쟁에 관한 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컨대 한국전쟁 전황이나 전시의 사회상을 담은 공식 동영상이나 컬러 사진은 전혀 없고 초라한 흑백 사진첩 몇 점 있을 뿐이었다. 마침 80년대 들어 한국 신문들은 너도나도 컬러 윤전기를 들여오며 컬러화보 경쟁에 불을 붙였다. 당시 특파원으로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취재하던 필자는 6월 특집기획을 한국전 컬러 사진화보로 잡고 국방부를 두드렸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공보관실 통신담당 상사의 친절을 만나게 되어 펜타곤에 보관된 한국전 관련 사진과 동영상 필름들을 훑어보는 행운을 얻었었다. 한국관련 자료만도 수십평 사무실에 가득했다. 미군은 1차 세계대전 때부터 통신부대 소속 사진병을 전투 일선에 배속시켜 전투 상황, 후방 민간인들의 참상 등을 흑백과 컬러 사진으로 생생하게 기록해 놓고 있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장면처럼 미군 폭격기의 북한지역 폭격 모습도 동영상으로 담겨 있었다. 큰 건물 대부분이 허물어진 폐허 서울의 모습, 젖먹이 동생을 등에 업고 무너진 집터에 망연자실 서있는 8∼9세 소녀의 가슴 아픈 정경 등 컬러 사진 수십장을 복사해 지면에 보도했었다. 그 후 한국의 방송사 연구소 등이 동영상과 사진자료들을 복사해 서울로 가져갔지만 그때의 느낌은 우리 땅에서 빚어진 전쟁이지만 그것은 미국의 전쟁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문서나 자료는 1차,2차 세계대전에 이어 한국전 순서로 당연히 ‘그들의 전쟁’인 양 정리되어 있었다.81년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한국전쟁의 기원들’을 출간, 수정주의 바람을 일으켰고 한국전쟁은 한·미 양국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전쟁 전문가인 한 교수의 권유로 워싱턴 국립문서고 메릴랜드 분소에서 한국전쟁 중 미군이 북한에서 가져온 ‘압수해온 북한문서’들을 만나게 됐다. 한글로 제목만 정리해 놓은 마이크로 필름과 씨름을 하다 전시 북한 외무성의 미국담당과 업무일지를 발견, 특종기사를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 일지를 샅샅이 뒤져보았다. 하지만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불과 며칠 전까지 직원들은 미국의 행정·금융조직 등에 관한 책을 번역하고 그 진척도를 업무실적으로 적어 놓고 있었다. 흥분만큼의 큰 실망감과 함께 “한글로 된 이 북한 문서들이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군 병사들이 여기저기 북의 관공서에서 쓸어 담아온 잡지등 별 가치 없는 책자들이 많았지만 전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80년대 초 마침 30년 기한이 만료되어 공개된 미 국무부, 국방부의 비밀문서들은 역시 미국 주도의 상세한 한국전 상황을 담고 있다. 한국군은 미군에 예속된 소부대의 모습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수정주의 시각이 바람을 탈 소지를 주었다. 하지만 불과 10년후 90년대 들어 반대편인 러시아와 중국 측 비밀문서들이 공개되며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이 소련, 중국의 합의를 얻어 전쟁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시민전쟁, 혁명전쟁, 미국의 도발 유도 등 수정주의 시각은 수정이 불가피했다. 이제 한국전쟁의 ‘평가’를 놓고 다시 대립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남북 어느 편에 서는 일이 되기 쉽다. 이념적 주장일 뿐 학문적 논쟁이 될 수 없다. 그보다 미국 러시아 중국과 남북한의 수집 가능한 전쟁 양측의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학문적으로 면밀히 재검토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아직도 찾아낼 진실들이 자료 곳곳에, 또 이면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 갈등 대신 좌우를 떠나 한반도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학문적 연구로 한국전쟁을 한반도화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 언론인
  • 한강~서해 뱃길 55년만에 뚫린다

    한강~서해 뱃길 55년만에 뚫린다

    남북 분단 이후 막혀 있던 한강∼서해 뱃길이 55년 만에 뚫린다. 서울시는 오는 9일부터 14일까지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에 정박해 있는 거북선을 한강∼서해 뱃길을 통해 경남 통영 한산도로 옮길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한강∼서해 뱃길은 세곡 운행 등에 활발히 이용됐으나 한국전쟁 이후로는 사실상 막혀 있었다. 오두산 통일 전망대 앞∼인천 강화군 교동까지 군사분계선이 가운데로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서 한강에 민간 선박을 운행할 경우 유엔군사령부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협약이 맺어졌으나 그 이후 허가를 받아 운행한 배는 한 척도 없었다. 권종수 한강시민공원사업소장은 “군 당국, 통영시, 유엔 사령부과 협의해 55년 만에 처음으로 한강 뱃길 이용 허가를 받아냈다.”고 말했다. 거북선은 9일 한강 이촌 나루터를 출발, 만조시간에 맞춰 신곡수중보를 통과한 뒤 이틀 동안 자체 동력으로 인천항까지 이동한다. 이어 3일 동안 예인선 2척에 끌려 통영까지 옮겨질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정부와 유엔군에 한강 뱃길 이용이 활성화되도록 지원해줄 것을 건의할 것”이라며 “한강 뱃길이 활성화되면 중단된 경인운하의 대체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한강~서해 뱃길 55년만에 뚫린다

    한강~서해 뱃길 55년만에 뚫린다

    남북 분단 이후 막혀 있던 한강∼서해 뱃길이 55년 만에 뚫린다. 서울시는 오는 9일부터 14일까지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에 정박해 있는 거북선을 한강∼서해 뱃길을 통해 경남 통영 한산도로 옮길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한산도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승을 거둔 곳이다. 한강∼서해 뱃길은 세곡 운행 등에 활발히 이용됐으나 한국전쟁 이후로는 사실상 막혀 있었다. 오두산 통일 전망대 앞∼인천 강화군 교동까지 군사분계선이 가운데로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서 한강에 민간 선박을 운행할 경우 유엔군사령부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협약이 맺어졌으나 그 이후 허가를 받아 운행한 배는 한 척도 없었다. 권종수 한강시민공원사업소장은 “군 당국, 통영시, 유엔 사령부과 협의해 55년 만에 처음으로 한강 뱃길 이용 허가를 받아냈다.”고 말했다. 거북선은 9일 한강 이촌 나루터를 출발, 만조시간에 맞춰 신곡수중보를 통과한 뒤 이틀 동안 자체 동력으로 인천항까지 이동한다. 이어 3일 동안 예인선 2척에 끌려 통영까지 옮겨질 예정이다. 1990년 교육용으로 건조된 복원 거북선은 전장 34m, 폭 10m, 높이 6.3m에 무게는 180t이다. 통영으로 옮겨진 뒤 3년 동안 한산도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거북선 이동을 계기로 한강 수로(水路)이용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시 관계자는 “정부와 유엔군에 한강 뱃길 이용이 활성화되도록 지원해줄 것을 건의할 계획”이라며 “한강 뱃길이 활성화되면 중단된 경인운하의 대체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두 남편을 사육하는 아내

    두 남편을 사육하는 아내

      한 여인이 두 남편을 사육하고 있다. 이「남편들」은 정확히, 그리고 의좋게 보름씩 아내를 위해「교대근무」를 한다. 경남 통영군내 외딴 산골의 김춘자(34·가명)씨 일가.「세컨드」남편까지 거느린 이 여인의 행복을 일러「남복」이라 해야 할까. 산골 외딴집에 1처(妻) 2부(夫), 두 남편은 완전한 평등권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산골의 외딴집에 기구한 운명이 갈라놓은 한 여인의 두 줄기 사랑이 침침한「베일」속에 가려진 채 흐느끼고 있다. 한 몸으로 두 남편을 섬겨야 하는 숙명 아닌 숙명이 그를 묶어놓고 있다. 자그마치 10년이란 세월을 두고 두 명의 남편을 변함없이 섬기고 있는 김춘자 여인.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부도덕한 여자라고 욕한다. 그러나 그에겐 사랑과 동정과 책임감이 흐르고 있다. 경남 통영군내 산간 마을 국도변에서 동쪽으로 5리 남짓 가면 나지막한 야산이 나타난다. 멀리까지 인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산중턱 후미진 곳에 황토흙과 돌멩이만으로 쌓아 올린 토담집 한 채가 있다. 바로 여기가 김여인의 순박한 애정이 두 묶음으로 나누어져 2대 1의 가정을 이끌고 있는 1처 2부의 요람. 토담집 방은 둘 뿐, 부엌도 변소도 제대로 없는 야산의 움막이다. 두 명의 남편에겐 김여인을 가질 수 있는 똑 같은 자격과 권리가 부여되어 있다. 김여인 자신도 사랑의 척도를 똑같이 재고 있다. 한 명은 최모(37)씨, 또 한 명은 박모(40)씨라고 했다. 둘 다 뱀잡이로 생활하는 땅꾼들 - . 이들에게도 부부생활의 준칙이 설정되어 있다. 1녀 2남의 3인 구두언약이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김여인은 이 토담집을 하루도 떠나지 못하고 두 남편은 15일간씩 외근(?) 활동을 교대로 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 뱀잡으러 외근을 보름씩, 돌아올 땐 생필품 사들고 최씨가 보름 동안 뱀을 잡아 시장에 갔다 판 수익금을 갖고 식량과 일용품을 사 들어오면 그 동안 부부생활을 하던 박씨는 날짜의「에누리」없이 망태를 둘러메고 뱀을 잡으러 떠나는 것이다. 그사이 최씨는 보름 동안 잊었던 아내를 다시 맞아 부부애를 만끽하면서 보름 후에 다시 돌아올 박씨를 생각한다는 것. 그러나 최씨와 박씨의 방만은 다르다. 두 개의 방 중 오른쪽은 최씨, 왼쪽 방은 박씨 방이다. 결국 아내가 보름마다 한발 건넌방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도 이들 사이엔 아기가 없다. 아내가 잉태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다한 가정처럼 복잡한 가재 도구는 필요없다는 것. 옷과 이불을 얹을 수 있는 낡은 농 하나씩이 양쪽 방에 있고 두 방 사이에 부엌 삼아 솥 하나 걸어놓고 물동이 하나, 밥그릇 몇 개가 뒹굴고 있을 뿐 - . 물론 전깃불이며「라디오」등 문명의 혜택을 입은 기구는 하나도 없다. 등잔불과, 보름간의 날짜를 기록하는「캘린더」가 이들의 중요한 생활도구 - . 그래도 옷들은 누구 못지 않게 깨끗하다. 기자가 찾은 날도 김여인은 자색 털「쉐터」에 양단치마를 입고 예쁘장한 얼굴에 약간의 화장을 하고 있었다. 마침 당번 근무(?)중이던 박씨도 검은 양복에다 약간 낡은「파일」외투를 입고 나왔다. 옷들은 뱀잡아 번 돈으로 보름간의 외근을 마치고 귀가할 때 시장에서 사들고 온다는 것. 박씨는 낯선 손님들이 찾아들자『또 경찰서에서 왔습니까?』라고 당황스럽게 물으면서 무척 꺼려하는 눈치였다. 관할 경찰서에서 너무 외딴집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수상히 여겨 여러 차례 조사를 해갔다는 것. 3년 전엔 갑자기 밤중에 4~5명의 경찰관들이 토담집을 포위, 심한 가택수색까지 한 일이 있는데 그때도 아랫마을 사람들이 이들의 거동이 이상하다고 경찰에 정보를 제공, 출동했다는 이야기다. 쉽사리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 이들의 말을 대충 종합해본 생활동기는 - . 김여인의 고향은 고성군 거류면 - . 아버지가 역시 땅꾼이라 했다. 지금의 두 남편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뱀잡이를 배웠다는 것. 김여인이 스무 살 때 두 사람 중 나이가 많은 박씨에게로 시집을 갔다. 병으로 집나갔던 남편이 개가(改嫁)하자 뜻밖에 돌아와 두 사람은 가난하면서도 단란한 가정을 꾸며 제나름대로의 행복을 누렸다. 결혼 이듬해에 박씨에겐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내려졌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가락이 굽어들고 전신이 험하게 헤지면서 난치의 환자라는 굴레가 씌워진 것이다. 박씨는 말없이 집을 떠나 어디론지 발길을 옮겼다. 아내는 처가에 맡겨두고 - . 3년이 넘어도 남편의 소식은 감감했다. 김여인의 아버지는 지금의 최씨에게 재혼을 시켰다. 최씨도 당시 총각으로 김여인을 극히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지금의 2대 1 가정의 시발점이었다. 최씨와 재혼 생활 2년만인, 그러니까 박씨가 떠난 지 5년 만에 박씨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 멀리 떨어진 섬에 가서 난치의 병을 깨끗이 고치고 아내를 찾아온 것이다. 돌아온 남편 버릴 수 없어, 할 수 없이 가족회의 끝에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나 아내는 첫 남편을 버리지 않았다. 아무리 난치병 환자라 해도 버릴 수는 없다고 나섰다. 사랑보다도 동정이 앞섰고 동정보다도 아내였다는 책임감 때문에 박씨를 붙잡고 용서를 빌었다. 최씨도 김여인을 버릴 수 없다고 버티었다. 어쩔 수없이 가족회의를 열었다. 김여인의 아버지를 참석시키고 두 명의 남편과 아내는 함께 살자고 약속했다. 이웃과 친척들의 눈이 무서워 인가 많은 마을을 피해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산중턱에다 집을 짓고 살자고 - . 이 자리에서 맺어진 언약이 바로 보름간의 교대근무(?).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도 이 언약의 위반행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부부사이에 말이 없다는 것 뿐이다. 침묵으로 남편을 맞고 또 보내는 것이 아내의 변함없는 사랑의 표시였다. <공하종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3/16 제2권 11호 통권 제25호 ]
  • [녹색공간] ‘국민 총행복’의 기수 부탄 王/박은경 환경과 문화 연구소 소장

    동화 속의 왕 같이 빼어나게 잘 생긴 지그메 싱예 왕추크왕은 우리 일행을 따뜻이 맞아 주었다. 갈색과 겨자색이 어울린 세련된 디자인으로 단장한 부탄 왕의 집정실에서 만난 국왕은 50살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30대 청년같은 젊음과 정기가 있었다. 소왕국 부탄은 중국의 티베트자치국과 인도 국경사이 히말라야 대간에 자리잡았고, 수도 팀부는 해발 2500m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작은 계곡에 위치하였다. 방콕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 6시부터 서둘러 부탄 국적기 두르크 항공 비행기를 타고, 인도의 콜카타를 거쳐 파로공항에 도착하였다. 골짜기 작은 강가에 위치한 이 공항은 100여명의 승객이 내리기에 적합하였다. 지난 10월초 유엔 환경프로그램(유네프)의 퉤퍼 사무총장과 관련인사 7명은 초청자인 왕을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 예정된 30분의 시간이 1시간으로 길어진 대담시간 동안 왕추크 왕은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정책적 소신을 찬찬히 밝혔다. 이미 전 지구적 관심이 된 ‘국민총생산’이 아닌 ‘국민총행복’에 대하여 왕으로부터 직접 듣는 영광의 자리였다. 특히 동·서남아시아에 대한 왕의 소상한 이해는 방문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필리핀의 환경장관 출신 하비토 교수가 자국으로 돌아가 칼럼을 쓰겠다고 하자 왕은 “당신국가 지도자가 불행해할 걸요?”라고 방문자들을 웃게 하는 재치까지 보였다. 10월4일 뉴욕타임스에 ‘행복한 작은 왕국의 새 행복척도’라는 기사가 실린 후 한국의 일간지들에도 부탄에 대한 기사가 실리면서 부탄의 행복척도에 대하여 묻는 이가 부쩍 많아졌다.3만 8394㎢, 인구 70만명의 소국 부탄은 30여년전부터 왕추크 왕의 영도아래 국가 발전의 철학과 정책을 국민들의 행복에 맞추어 왔다.‘국민총행복’의 개념은 4개 영역을 균형되게 유지하려는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즉 부탄의 문화적 전통의 유지, 교육과 건강에 대한 복지, 친 환경적 노력 및 투명하고 책임있는 거버넌스를 ‘행복만들기’ 정책의 기본으로 잡고 있다. 경제적 발전보다 국민들의 정신적 삶에 초점을 맞추어서 국민들의 행복을 최대화하려는 독특한 의지가 반영된 정책이다. 아시아 태평양지역 환경저명인사 7명만이 참여한 2일간의 유엔환경프로그램 정책 지역협의회는 개회식 의장 틴리 총리가 환경부장관, 문화부장관을 배석하고 스님 세명과 함께 주관하였다. 회의 개회식에 신을 부르는 부탄의 전통의례는 국민 총행복의 문화전통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목축국가의 표상인 우유를 가득 담은 함지박을 가운데 놓고 스님들의 찬송 속에 의례 주례자가 회의장 밖에 우유를 담은 국자 같은 기구를 들고 들락거리며 정중하게 진행하였다. 한국 전통사회의 굿의례에서 첫거리에 등장하는 청신의례와 의미가 같았다. 길에 걸어다니는 부탄인은 누구나 부탄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 무릎길이의 ‘고’라고 하는 남자들의 허리를 묶은 간단한 옷과 ‘기라’라고 하는 여자들의 긴치마이다. 내 평생에 길거리에서 남자들의 다양한 다리를 가장 많이 본 사흘간이었다. 반면에 여성들은 긴치마로 몸을 가리고 있다. 부탄의 모든 교육은 무상이다. 하나밖에 없는 대학까지도 무상교육으로 이루어진다. 병원비도 무료라서 우리 같은 여행객도 부탄에서는 무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루에 한두편의 두르크항공기만으로 제한하는 정책은, 물론 파로공항의 자연적 입지로 인한 운항의 난점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환경을 인간들의 무차별관광으로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비행기 트랩을 내리는 순간 느꼈던 그 짜릿한 강한 햇살과 맑디맑은 공기 속에 순간적으로 지구가 아닌 다른 위성에 온 것 같던 느낌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의 감각속에 살아 있어 다시 맛보고 싶은 강한 열망을 유발한다. ‘국민총행복’의 네 번째 요소인 투명하고 책임있는 거버넌스는 지난 30여년간 왕추크왕이 키워 온 국민총행복의 개념과 정책은 물론 2008년에 의회민주주의를 실현시켜서 왕의 자리를 명예직으로 바꾸려는 왕추크왕의 집념속에 잘 녹아 있다. 네 명의 여자형제를 왕비로 거느린 동화 속 왕추크왕의 모습에 알현 인사하였던 필자는 1시간의 대담 후 부탄사회의 현명한 영도자의 모습에 작별 인사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박은경 환경과 문화 연구소 소장
  •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문방사우(文房四友)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문방사우(文房四友)

    문방(文房)은 원래 중국에서 문학을 연구하던 관직 이름이었다. 뒤에 선비들의 글방 또는 서재라는 뜻으로 정착됐다. 이곳에 갖춰두고 쓰는 종이, 붓, 먹, 벼루를 ‘문방사우(文房四友)’라 칭한다. 중국 진(晋)나라 명필 왕희지는 “종이는 진(陣)이요, 붓은 칼과 방패이며, 먹은 병사의 갑옷이요, 물 담긴 벼루는 성지(城池)이다.”라고 하였다. 사우(四友) 중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는 쓸모가 없게 된다. 우리의 조상들은 예부터 문방사우를 가까이 하며 인격을 쌓으려 노력했다. 전통사회에서 서예는 지성인의 척도였다. 붓글씨는 군자의 덕목이기도 하려니와 심성을 바르게 잡는 수신의 방법이었다. 요즘은 붓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 서예를 하는 이들 말고는 붓을 쓸 일이 거의 없기에 볼펜, 사인펜 등이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이다. 이러한 시류 속에서 이인훈(무형문화재 15호·모필장)씨는 대구에서 전통 붓을 만드는 가업을 4대째 잇고 있다.26평짜리 아파트 안에 마련한 2평 크기의 작업실 벽에는 그에게서 붓을 구입해간 이름난 작가들이 보내준 감사의 글과 그림이 빽빽이 걸려 있다.“내 붓으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어요.” 이씨의 말이다. “붓에는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동양의 붓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쓰이지만 서양의 펜은 강하면서도 약하게 쓰이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붓을 통해 선비들은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문화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그는 정신이 맑아지는 새벽, 작업에 들어간다. 하루에 만드는 붓은 평균 50여자루. 한 자루의 붓이 만들어지기까지 모두 150회가량 손길이 간단다. 한국 전통의 황모필(黃毛筆) 만들기 40년. 이씨는 족제비 털(황모)을 사용한 한국 전통 붓 제작에 있어 국내 독보적인 존재다. 그가 다른 장인들과 다른 점은 미니모형 붓을 사용해서 휴대전화 줄을 만들 정도로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붓은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에 ‘좋은 붓은 효자보다 낫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되뇌이는 이씨는 “좋은 붓이란 모름지기 좋은 재료와 뛰어난 기술로 그리고 붓을 알고 쓰는 사람의 3박자가 맞아야 하며 무엇보다 만드는 사람이 욕심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붓이 사라짐과 함께 글자마다 먹을 찍어 쓰던 여유와 생각의 깊이가 얕아졌다.”면서 “붓에 서려 있던 조상들의 강직한 기개마저 사라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진 글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지자체 국고보조 15兆 특감

    지자체 국고보조 15兆 특감

    감사원이 이달부터 연간 10조원이 넘는 ‘국고보조금 운영실태’를 집중 감사한다. 특히 잘사는 지방자치단체에 혜택이 더 돌아가는 현행 국고보조금의 문제점을 바로잡아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감사원은 2일 “지방자치단체 예산의 14%에 달하는 국고보조금에 대한 감사를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를 비롯한 국고보조금 소관부처를 대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국고보조금은 지자체가 수행하는 사업 가운데 공익성이 인정되는 사업에 대해 국가가 일정 비율을 보조하는 지원금으로 올해 국고보조금 확정액은 15조 3502억원에 달한다. 국고보조금은 21개 부처소관의 367개 사업에 지원된다. 하지만 이같은 보조금은 지방비 매칭(matching) 시스템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부작용을 드러내 왔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감사원 고위관계자는 “국고보조금은 지방비 매칭과 사후정산에 따른 문제점을 노출해 왔다.”면서 “이 부분을 중점 조사해 국고보조금 시스템을 재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고보조사업은 일반적으로 국고보조금과 지자체 예산으로 충당하는 지방비를 50대 50의 비율로 투입해 추진하는데, 지방비를 충당하지 못해 사업이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국고보조사업은 특히 지역주민의 복지와 직결되기 때문에 지역간 균형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이는 국고보조금이 일괄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사업진척도에 따라 지원되는 탓에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일수록 지방비를 투입하지 못해 국고보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에 국고보조금이 지원되는 ‘불균형’이 초래되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정부가 올해부터 도입한 ‘국고보조금 정비방안’에 따른 문제점이 속속 제기되고 있어 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주요 국고보조사업의 운영상황을 중점 조사해, 불균형적인 국고보조금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국내 10대 그룹이 대부분 1930∼1940년대 출범한 것과 달리 동부는 이보다 한 세대가량 늦은 산업화시대인 1969년, 대학생인 김준기 회장이 세운 후발기업이었다. 선발 창업 기업은 사업참여 기회가 많았지만 동부는 후발기업이어서 사업참여에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우·율산 등 60년대 말을 전후해 함께 등장했던 기업들이 부실 문제로 몰락한 것과 달리 동부는 성장과 안정을 기치로 삼아 꾸준히 사세를 키워 현재 재계 순위 12위까지 끌어올렸다. ●사우디 최초·최대의 사업단지인 주베일에서 신화를 창조하다 “나는 죽고 싶었다. 아니 죽으려 했다. 공사도 시작하기 전에 나라에 큰 손해를 끼친다는 죄스러운 마음에서 눈앞이 깜깜했다. 중동 진출 꿈은 날아가고 동부건설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양주를 한병이나 마셨다. 이 탑에 올라가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죽으려니 그동안의 고생이 너무 아까웠다. 이탈리아 말도 모르면서 이탈리아 귀신들 속에서 고생할 것 같다는 쓴웃음도 나왔다. 그리고 죽더라도 고국에 돌아가서 죽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죽기로 마음 먹으니 다시 한번 부딪쳐 보자는 각오가 섰다.” 1974년. 동부의 중동 진출 시발탄인 주베일 해군기지 공사를 내정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입찰받자 회사와 국가에 큰 손해를 끼치게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김 회장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유복한 집안에서 고생 없이 자란 덕에 김 회장의 창업은 밥벌이와 무관했지만 그렇다고 그룹을 이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죽는 대신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섰다. 발주처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재입찰을 성사시키면서 동부의 중동시대를 본격 개막했다. 김 회장이 현장 반장이 되어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을 전세 택시로 오가며 말뚝을 박고 공사를 지휘했다. 사우디 최대의 산업단지인 주베일에 한국 건설 업체로서는 최초로 동부건설이 대형 복합공사(4800만달러)를 따냈고, 그 이후 1억달러 이상의 대형 공사를 수주했다. 사우디 제다 해군기지, 사우디 국방부 청사, 리야드 국제공항 등 중동지역 공사를 잇따라 따냈다. 그 때 벌어들인 돈이 오늘날의 동부를 일군 종자돈인 일명 ‘오일 머니’다. 건설사 창업 10년도 안돼 도급 순위가 1978년 6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부강한 미국에서 착안한 기업가의 길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69년. 만 24세의 나이로 직원 셋을 데리고 동부그룹의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했다. 군제대 후 선진국 시찰단의 일원으로 40일간 미국을 돌아보고 그는 자본주의의 위대성과 시장경제체제의 합리성에 눈뜨게 된다. 좋은 기업을 만들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젊은 포부에서 동부의 창업 이념은 ‘좋은 기업’이다. 건설업은 리스크가 크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나 설비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려 창업 업종으로 삼았다. 당시 회사 이름은 아름답게 솟아오른다는 뜻의 ‘미륭’. 오늘날 동부의 전신이다. 창업자금 2500만원은 여러 친지들을 설득해 간신히 꾼 돈이다. 아버지 김진만(87) 전 의원은 대학 재학중인 어린 아들이 사업하는 것을 반대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한 아버지 김 전 의원은 김 회장이 창업한 1960년대 후반, 여당의 당 4역으로 활약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동부의 창업 과정에 아버지의 후광 이야기가 운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7선 의원인 김 전 의원은 지금도 민족중흥동지회장이란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은 동부그룹을 창업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았겠느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정치는 후광으로 가능하지만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평가받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라고 말한다. 김 전 의원은 1972년 항명파동으로 당권의 핵심에서 멀어져 간 인물이고, 오늘날 동부그룹을 이룬 결정적 기반은 1975∼1983년 중동에서 벌어들인 외화였기 때문이다. 1980년 전두환 군부 정권은 권력에 의존해 축재 혐의가 있는 정치인을 조사, 재산을 몰수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의원으로 인해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연루된 적도 있다. 아들인 김 회장은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직면한 일대 위기였지만 결과적으로 동부의 창업 과정과 김 전 의원이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당시 미륭)를 창업한 1969년 당시 이미 600여 선발 업체들이 포진한 상태였고 도급 순위에 따라 수주 한도가 정해졌기 때문에 미륭은 정부 발주 공사는 넘보지도 못했다.”며 후광설을 일축했다. 그는 또 “그래서 요즘 말로 우리만의 틈새시장인 이른바 ‘블루오션’을 개발해 성공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영국대사관·독일문화원·용산미군기지와 같은 주한미군 공사·연세대 이공대 건물 등 외국인 및 민간 발주 공사를 집중 공략했다. 특히 이는 국제적인 공사 표준이 엄격하게 요구되던 사우디 건설시장에서 성공 신화를 이룬 밑거름이 됐다고 덧붙였다. ●계획된 사업다각화로 재계 10위권 진입 5남3녀 가운데 장남인 그는 서울 경기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 회장 일가는 경기고와도 인연이 깊다. 광복후 청년운동을 펼쳤던 그의 숙부 고 김진팔씨가 경기고 27회, 김 회장이 60회, 그의 아들 김남호(30)씨가 90회 졸업생으로 3대가 경기고를 졸업했다. 지난 6월 말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에는 김 회장 재학 당시 화학 선생님이자 남호씨의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했던 송길상씨가 주례를 맡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 중 사업을 가장 크게 하고 있는 사람 역시 김 회장이다. 동창들은 김 회장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도 잘했지만 술·담배는 물론 주먹도 무지 센 친구였다.”고 회고한다. 김 회장의 경기고 동기동창 중에는 고려대학교 어윤대 총장, 포스코 이구택 회장, 최창영 고려아연 회장, 최경원 전 법무장관, 원정일 전 법무차관, 송옥환 전 과학기술부 차관, 양수길 전 OECD 대사, 한남규 전 중앙일보 부사장, 손욱 전 삼성SDI 사장, 이연수 전 외환은행부행장 등 쟁쟁한 유명인사가 많다. 동부그룹에서는 김 회장에 대해 “일밖에 모르는 탁월한 기업가” 라고 정의한다. 일을 위해 그 좋아하던 술·담배도 끊고 걸음걸이까지 바꿨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서를 즐기고 골프는 거의 치지 않는다. 주요 사업현안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얻을 때까지 임직원들과 마라톤 회의를 벌인다. 논리에서 밀리지도 않고 지독하다 싶을 만큼 마음 먹은 일은 꼭 이뤄내고 마는 성격이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건설·운송사업에 머물던 동부가 10위권 그룹으로 거듭난 것도 동부가 중동신화를 창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강한 집념, 탁월한 전략, 추진력, 리더십의 결과라는 평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중동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부실 기업들을 속속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킨 주인공이 바로 김 회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다각화는 초기부터 큰 밑그림을 갖고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예컨대 1984년 ‘장영자 사건’ 여파로 부도가 난 일신제강을 인수,4000여억원을 투입해 민간 최대의 냉연강판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어 1998년 1조 3000억원을 들여 아산만에 제2 냉연공장을 건설, 오늘날 동부제강을 세계적인 냉연철강회사로 탈바꿈시켰다. 80년대에는 울산석유화학·영남화학을 인수, 양사를 합병해 동부화학(현 동부한농화학)으로 출범시켰고,1983년에는 만년 적자인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해 오늘날 손해보험업계 ‘빅3’인 동부화재로 거듭나게 했다.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일에 대한 열정만큼 극진하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에 있는 어머니 고 김숙자씨의 묘소 옆에 별장을 지어놓고 수시로 다녀가고 있다. 사업 구상이나 고민에 빠질 때도 그가 찾는 곳은 늘 어머니 곁이다. 어머니 김씨는 서울 명성여학교에서 유학, 일제시대 삼척 송정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최초의 여교사다.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는 평이다. 동부는 80년대 중동 경기가 악화되기전 이미 중동에서 철수했다. 사우디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로 회사를 속속 설립, 인수하면서 그룹 시대를 열었고 몇 안 되는 친인척들은 이무렵 동부그룹에 들어왔다. 정치인 아버지 슬하에서 이뤄진 혼사들이라 화려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연애 결혼도 이외로 많다. 누나인 김명자(63)씨의 남편인 임주웅(65)씨는 결혼과 함께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해 한국자동차보험 이사, 동부생명보험 사장 등을 지냈다. 누나 김명자씨는 김 회장을 대신해 가족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매형인 임 전 사장의 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치약 제조회사였던 동아특산약화학의 창업자인 고 임형복씨다. 임 전 사장의 형인 임주용(71)씨는 동국제강 고 장상태 회장의 막내 동생인 장복혜씨와 결혼했으며 중앙투금 부사장을 지냈다. 임 전 사장의 아들 준석(37)씨의 장인 윤호중씨는 흥아해운 창업주인 고 윤종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큰 동생이자 김진만 옹의 차남인 김택기(55)씨는 90년대 동부화재 사장을 지내면서 만년 적자이던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흑자 전환시켰다. 그러나 정계 진출을 위해 사표를 내고 2000년 4월 16대 민주당 의원(강원 태백 정선)으로 당선됐다.17대 총선에는 낙선했지만 그룹으로 돌아올 계획은 없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요즘은 강원대 초빙교수로 출강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아버지의 정치가 피를 이어받은 사람은 동생 택기씨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부친과 절친했던 이철승(83) 전 의원의 딸인 이양희(49) 성균관대 아동학과 교수와 결혼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김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김무기(52)씨는 80년대 초반 동부그룹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상무, 동부증권 부사장 등을 역임하다 1990년대 말 벤처 창업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지금은 IT전문 경제지인 서울디지털경제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약 중이다. 성격이 호방한 데다 주량이 세고 입담이 뛰어나 그룹 내에서는 일명 ‘핵무기’로 통했다. 자유연애로 만난 부인 이지은(46) 씨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서울대 문리대 학장을 지낸 고 이종진씨의 딸이다. 친구의 소개로 만났으며 금실이 좋기로 유명하다.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재계 정상에 오르다 동부는 창업에서부터 궤도에 오르기까지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사업을 했고, 창업자 단독으로 그룹을 일궈낸 보기 드문 사례다. 그룹을 이루는 과정에서 한때 일했던 매형과 동생들은 모두 각자의 길로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은 김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동서지간인 윤대근 동부아남반도체 부회장과 제조부문 회장을 지낸 외삼촌 김형배(71) 고문 둘뿐이다. 김형배 고문은 상공부(현재의 산업자원부 전신)에서 기획관리실장, 경공업 차관보를 거친 경제관료 출신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등을 거쳐 1994년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동부한농화학, 동부전자 등 동부 주력 제조업체들의 경영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동서인 윤 부회장은 문교부(현재의 교육부 전신) 장관과 서울대 총장을 지낸 고 윤천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부인인 김정희(57) 여사의 여동생 김정림(56)씨의 남편이다.70년대 초반 미국 유학 당시부터 그룹 일을 도와 가장 먼저 그룹에 참여한 친·인척으로 꼽히기도 한다. 측근들은 김준기 회장과 윤대근 부회장은 코드가 통해 지금도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소머리 국밥집에서 냄비에 눌어붙은 누릉지를 긁어먹길 좋아하는 등 두 사람의 소탈함이 닮았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윤 부회장에 대해 “인척관계를 떠나 사업상 고락을 함께 해온 동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정이 돈독하다. 김 회장과 윤 부회장의 장인은 고 김상준 삼양염업사 명예회장이다. 고 김 명예회장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형이다. 고 김 명예회장의 2남3녀 중 둘째 딸과 셋째 딸이 나란히 김 회장과 윤 부회장에게 시집간 것이다. 지난 7월 김 회장의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 당시 식장 맨 앞에 있던 신랑 가족석 옆에 삼양그룹 사람들을 위한 별도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9월 고 김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당시 두 사람이 시종 빈소인 고려대병원을 지키기도 했다. 김 회장의 결혼은 친지의 중매로 이뤄졌다. 동부 관계자는 “창업 이후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던 김 회장에게 중매가 들어왔는데 신부 후보가 알고 보니 김 회장과 중·고등학교 동기인 김병휘(현 한양대 수학과 교수)씨의 동생이었다.”면서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인지 자연스런 만남이 지속됐고 혼사도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연세대 기악과 출신의 김정희(57)씨는 김상준 전 삼양염업 회장의 2남3녀 중 차녀다. 주례는 당시 동아일보 고재욱 사장이 맡았다. 이밖에 다른 형제들은 그룹에 관여한 경험조차 없다. 여동생 김명희(58)씨는 ‘여성의 전화’ 창립맴버로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 등 여성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평우(60) 변호사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김 변호사의 양친 모두 유명한 소설가인 고 김동리 선생과 고 손소희 여사다. 김평우 변호사는 김준기 회장과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김흥기(46)씨는 여동생인 희선(45)씨의 소개로 이화여대 수학과 출신인 오남선(46)씨를 만나 연애 결혼했다. 흥기씨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가방을 만들어 수출하는 무역업에 종사하다 지금은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김희선씨는 농심 신춘호(75) 회장의 둘째 며느리이자 신동윤(47) 율촌화학 사장의 아내다. 이화여대 음대 재학시절 자신이 소개해 오빠의 부인이 된 오남선씨의 주선으로 남편 신 사장을 학교 축제에서 만나 결혼했다. 막내인 김현기(39)씨는 부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상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아직 미혼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현재 동서인 윤 부회장과 외삼촌인 김 고문 이외에 다른 어떤 친인척도 동부그룹에 몸담고 있지 않다.” 면서 “다른 재벌들과 달리 동부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전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핵심경영인들 김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 김준기 회장은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 묘비명에 적힌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부리다가 간 사람, 여기 누웠노라.” (Here lies a man who was able to surround himself with men far cleverer than himself.)를 자주 인용한다. 대학 시절 카네기의 ‘부의 복음’을 읽고 그의 경영철학과 인재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묘비명이 자신처럼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경영자의 참모습을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고 ‘사람’중심의 경영철학 및 인재관에 관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김 회장은 전문경영인들에게도 이를 실천할 것을 독려한다. 2001년 입사한 이명환(61) 현 ㈜동부 부회장의 경우 김 회장이 여러 차례 만나 자신의 기업관 등을 설명하며 동부 합류를 끈질기게 설득해 영입한 케이스. 이 부회장은 67년 삼성에 입사해 삼성전자 종합기획실장, 삼성 비서실 인사담당, 삼성SDS 사장 등을 지냈다. 효성 생활산업 사장, 현대건설이 출자한 인천국제공항철도사업단 사장도 역임했다. 이미 70년대부터 김 회장과 손발을 맞춰 온 백호익(62·건설·물류분야) 부회장, 윤대근(58·소재분야) 부회장은 물론 90년대 말 이후 합류한 장기제(금융분야) 부회장, 신영균(61·화학분야) 부회장 등 오늘날 동부를 이끄는 핵심 전문경영인들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밖에도 2004년 6월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전 삼성화재 부사장), 같은 해 12월 임종성 동부아남반도체 부사장(전 삼성전자 전무), 지난 2월 김홍기 동부정보기술 사장(전 삼성SDS 사장) 등이 삼성에서 영입됐고, 지난 3월 GS건설 출신의 황무성 부사장이 동부의 토목부문 사장으로,4월 GS건설 주택사업본부장을 지낸 김용화씨가 개발부문 사장이 됐다. 이어 5월에는 세계적인 반도체회사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오영환 동부아남반도체 사장, 대림산업 부사장 출신인 하진태 동부건설 부사장, 대림산업 출신인 김용식 동부건설 부사장 등이 영입된 바 있다. jhj@seoul.co.kr ■ ’후계자’ 김남호씨 MBA 유학중 동부의 후계구도는 단순 명확하다.김준기 회장의 승계자가 1남1녀 중 아들인 김남호(30)씨로 일찌감치 정해졌기 때문이다.180㎝나 되는 건장한 체구에 겸손한 태도가 눈에 띈다. 남호씨는 최근 부인 차원영(26)씨와 함게 미국으로 건너갔다.내년 1월부터 뉴욕대학에서 MBA과정을 밟기 위해서다.원영씨는 차경섭(86) 차병원 이사장의 손녀(차광열 포천중문의대 교수 딸)로 지난 6월 남호씨 누나인 주원(32)씨 후배의 소개로 만난지 1년만에 결혼에 골인했다.남호씨는 MBA과정을 끝낸 뒤에도 서울로 돌아오는 대신 한동안 일본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경기고를 졸업한 뒤 미국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귀국해 군복무를 마쳤고 지난 2002년부터 외국계 경영 컨설팅 그룹인 AT커니 한국지사에서 최근까지 근무했다. 서울예고 출신의 원영씨는 영국에서 ‘유니버시티 오브 런던’ 수학과를 나온 재원.그룹의 예비 안주인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향후 남호씨 뒷바라지에 전념중이다. 2,3세에 대한 지분 이양 과정에서 ‘편법 증여’ 등 의혹이 제기되는 일부 재벌들과 달리 동부의 경우 온전히 증여세를 내고 정당하게 지분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지분 이양은 대부분 이뤄졌지만 남호씨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아직 멀었다고 그룹측에선 진단한다. 동부그룹측은 “남호씨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다 김 회장도 평소 남호씨에 대해 국내외 경제 흐름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국제적인 안목을 쌓길 바라고 있다.”면서 “경영 참여는 전혀 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진작에 끝났다.김 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아들 남호씨에게 꾸준히 지분을 넘겼고,그 결과 지난 2002년 10월 남호씨가 동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 최대주주가 됐다.동부화재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들인 동부생명,동부증권,동부저축은행,동부투신운용 등 금융계열사들과 동부건설 및 동부아남반도체의 경영권도 확보하고 있다. 또 2004년 8월 김 회장이 아들 남호씨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증여함으로써 남호씨는 동부정밀화학,동부증권,동부제강 등 주요 계열사에서 개인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 사실상 지분 승계 작업을 마무리했다. 딸 주원씨는 동부화재,동부정밀화학,동부제강 등에 대한 지분을 일부 갖고 있으나 경영 참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룹측 설명이다.친구 소개로 만나 1997년 9월 당시 해동화재 김동만(96) 회장의 손자인 김주한(35)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지금은 미국 애틀랜타에서 두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김주한씨는 메릴린치증권 애틀란타 지사에서 자산운용가로 일하고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강남구, 日 이치카와시와 교류협력

    서울 강남구가 일본 이치카와시와 정보기술(IT) 중심의 교류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강남구(구청장 권문용)는 지난 5일 이치카와시(시장 지바 미쓰유키)에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행정업무 기술을 전수하고, 또한 이치카와 시의 행정운영 전반을 배워 자치행정을 발전시키는 내용의 국제 협정을 체결했다고 21일 밝혔다. 또한 두 자치단체는 앞으로 3년 동안 소속 공무원을 상대 지자체에 상호 파견하는 것을 비롯, 각 행정분야에서 필요한 단체 교류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최근 권 구청장이 이치카와 시의 과장급 이상 공무원 250명에게 직접 IT행정에 관한 교육을 하기도 했다. 이치카와 시는 도쿄도와 인접해 있는 인구 47만여명의 중소도시다. 그러나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닛케이산교소비연구소가 공동으로 일본 전국 4개 도·부·현 및 695개 시, 도쿄 23개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전자화 진척도에서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IT지자체로서의 명성이 높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9·19 공동성명 이후(3)] 한반도 평화체제 가능할까

    “나는 오늘 경기도 북부의 ‘평화동산’에 놀러갔다. 울창한 숲에 사슴과 토끼가 뛰어다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맛있게 김밥을 먹었다. 그런데 엄마는 몇년 전만 해도 ‘DMZ’로 불렸던 이곳엔 지뢰가 묻혀 있었고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했다고 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핵 문제가 해소되고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어 다자간 안보체제가 확립되면, 어린이들의 일기장에서 이런 글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9·19 공동성명은 ‘6자는 동북아에서의 안보 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로 합의했으며,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고 명시, 기대감을 자극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태식 외교부 1차관은 22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한·미간 예비접촉을 개시하는 등 이번 합의의 실천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이란,1953년 유엔군과 북한·중국군 사이에 체결돼 반세기 넘게 유지되고 있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 협상을 6자회담의 하위기구에서 북핵 문제와 병행해 논의하겠다는 구상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남·북·미·중은 1997년부터 2년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을 가동했다가 무위로 그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양자 협상만 고집하거나 무작정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던 북한의 자세가 변화한다면, 극적인 타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북한이 얼마나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느냐에 협상의 진척도가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관측이다. 중앙대 제성호 교수는 “향후 평화체제 협상에서는 비무장지대(DMZ)의 지뢰 제거와 전방병력의 후방 철수 등 현실성 있는 신뢰회복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면서 “북한이 경수로를 얻어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한다면,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체제 논의가 자칫 핵 문제의 심각성을 가리는 부작용을 가져오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핵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난관은 있다. 다자간 안보의 원칙과 전통적 한·미·일 3각 동맹의 위상을 어떻게 재정립하는가의 문제다.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관계에서 이탈해 중립지대로 이동할 경우 중국을 잠재적 경쟁자로 경계하고 있는 미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다자간 안보를 한다면서 과거의 안보구도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북한은 미국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수준의 정상국가로 탈바꿈하고, 남한은 동맹을 배려하면서도 균형을 모색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경주하는 태도가 동시에 모색돼야 성과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주목받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참석하는 이 회의에 북한 지도자가 기꺼이 참석해 한반도 냉전구도의 해체를 만천하에 선언하는 장면이 펼쳐진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중간과정을 성큼 뛰어넘어 바로 결실국면으로 내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인사위 백서로 본 공직사회] 개방형 직위 40%가 민간인

    [인사위 백서로 본 공직사회] 개방형 직위 40%가 민간인

    2기 중앙인사위원회(2002년 5월24일∼2005년 5월 23일)가 출범한 이후 공직사회의 개방속도가 크게 빨라졌다. 하지만 고위직을 포함한 공무원 수가 크게 늘어나 ‘작은 정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는 19일 중앙인사위 백서에서 드러난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자화상이다. ●공직 민간 개방 크게 늘어 개방형 직위로 공직개방의 폭이 넓어졌다.‘국장급’ 직위의 임용범위를 민간까지 확대해 공무원과 민간인이 경쟁토록 하는 ‘개방형 직위’는 1999년 처음 도입됐다. 시행 당시에는 38개 부처에서 129개 직위를 지정했다. 현재는 이를 확대해 43개 부처 152개로 늘었다. 국장급 직위 1개를 과장급 2개 직위로 바꿀 수 있도록 제도도 보완했다. 현재 152개 직위 가운데 135개 직위에 임용이 이뤄져 88.8%의 충원율을 보였다.135개 직위에 모두 733명이 응모해 한 직위당 평균 5.7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 중 민간인 526명(68%), 공무원 247명(32%)이 지원해 민간인이 2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실제 임용된 것은 공무원이 훨씬 많다. 개방형으로 공직에 진입한 사람들의 경력을 분석한 결과 내부임용 74명(54.8%), 타 부처 7명(5.2%), 민간인 54명(40%)이었다. 응모는 민간인이 많고 합격은 공무원이 많은 셈이다. 민간인 진출 비율은 국민의 정부 당시 15.9%에 비하면 증가한 편이지만 여전히 공무원 숫자가 많아 ‘그들만의 잔치’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계약직으로 임용된 개방형 70명의 급여 수준을 보면, 평균 보수는 6565만 2000원이다.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1억 1909만 2000원으로 장관급(8539만 2000원)보다 많다. 최소 급여는 4136만 4000원이다. 이밖에 민간근무휴직제도와 직위공모제도, 고위직 인사교류 등 다양한 공직개방제도가 도입됐다. ●여성·장애인 진출도 늘어 균형 인사의 척도인 여성과 장애인의 공직 진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1995년 여성 공무원 비율이 27.3%였으나,29.8%(1999년),32.9%(2002년),34%(2003년)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5급 행정고시 합격자 가운데도 여성비율이 2000년 25.1%에서 지난해 38.4%로 껑충 뛰었다. 여성의 진출확대로 여성관리자도 늘고 있지만 아직도 미미하다.5급 이상 여성 관리자 비율이 4.8%(2001년)에서 5.5%(2002년),7.4%(2004년) 등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여성 관리자를 올해 8.7%, 내년엔 1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표 참조) 정부의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도 1991년 0.52%에서 1.08%(1997년),1.87%(2003년),2.04%(2004년)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02년보다 공무원 4만여명 증가 조직운영은 행정자치부의 일이지만, 공직사회가 계속 비대해진 점은 논란거리다. 백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공무원 수는 모두 91만 4880명이다. 지난해 말 철도공사가 신설되면서 철도 공무원이 공사 직원이 돼 정원에서 2만여명 줄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의 정부 출범 때인 1998년보다 2만 6663명, 참여정부 출범 직전인 2002년보다 4만 869명 늘어난 수치다. 특히 장·차관 등 정무직의 증가가 가파르다. 참여정부 출범 직전인 2002년 말엔 장관급이 33명, 차관급이 73명이었다. 하지만 올 7월말 현재로는 장관급이 3개 늘어난 36명, 차관급은 무려 16명이나 늘어나 89명이 됐다. 국민의 정부 때보다 정무직이 18%나 증가한 것이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혁신 공기업탐방] 진철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혁신 공기업탐방] 진철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주말마다 제주도에 진풍경이 벌어진다. 대규모 아웃렛 매장에는 세계 유명 메이커 제품과 제주도 특산품을 싸게 사려는 내·외국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제주도 생태·신화·역사공원과 중문관광단지를 1박2일 일정으로 돌아보는 관광상품은 제주 첨단과학단지에 입주해 있는 정보기술(IT) 기업 직원들이 꼽는 최고의 주말 여행상품이다. 진철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이 추구하는 2011년 제주도의 청사진이다. 이를 입증하듯 얼마 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대도시 직장인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제주도의 휴양형 주거단지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남은 인생의 목표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진 이사장은 19일 “제주도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요충지일 뿐 아니라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으로 국제자유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서 “7대 선도프로젝트가 1차적으로 마무리되는 2011년에는 제주도가 꿈의 도시로 발전할 기틀이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제주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JDC 이사장에 취임해 의욕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진 이사장을 만났다. ▶JDC의 설립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설립됐나. -DJ 정부 시절,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도를 관광·휴양 중심지로 개발하면서 비즈니스·첨단지식산업 등의 기능을 갖춘 국제자유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가 마련됐다. 이에 따라 2001년 12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인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제정됐고, 이듬해인 2002년 4월부터 이 법이 시행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제자유도시 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는 7개 선도프로젝트를 선정해 이 중 5개 프로젝트를 전담할 전문성과 자율성을 갖춘 기관으로 JDC가 설립된 것이다. ▶JDC가 맡고 있는 주요 업무는 무엇인가. -제주국제자유도시 선도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제주국제자유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토지를 매입해 관리하는 것이다. 또 과학기술단지와 투자진흥지구를 조성·관리할 뿐만 아니라 제주국제자유도시와 관련된 국내외 투자유치와 이를 위한 마케팅 및 홍보, 제주도민의 소득 향상을 위한 지원사업도 맡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재원조달을 위해서 내국인 면세점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JDC가 주력하고 있는 5대 선도프로젝트는 무엇인가. -5대 선도프로젝트는 첨단과학기술단지 조성사업, 생태·신화·역사공원 조성, 서귀포관광미항개발, 휴양주거단지 조성사업, 쇼핑아웃렛사업 등이다. ▶5대 선도프로젝트의 사업진척도는 어떤가. -첨단과학기술단지는 지난 6월 기공식을 거행했다. 현재는 전체사업 면적 중 55% 정도의 부지를 확보했다. 휴양형주거단지 조성사업은 현재 부지 매입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이 사업에는 홍콩 투자회사인 AL사가 오는 2009년까지 14억 8000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국제자유도시 출범이후 최초의 외자유치 성공사례가 될 것이다. 또 생태·신화·역사공원 조성사업은 전체 123만평 가운데 66.7%인 83만평의 부지를 이미 확보해 놓고 있다. 연말까지 투자자들의 사업계획을 반영한 마스터플랜을 완성시킴과 동시에 사업에 대한 통합영향평가 협의도 끝낼 계획이다. 쇼핑아웃렛사업은 사업자 공모를 한 결과 1개 업체가 신청을 했으나 부적격업체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앞으로 민간사업자 공모의 평가결과를 건설교통부와 제주도, 지역상권과 긴밀히 협의한 뒤 쇼핑아웃렛 사업의 추진상황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나갈 예정이다. 서귀포관광미항 개발사업은 해양수산부나 문화재청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가 완료된 후에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5개 선도프로젝트에 대한 총 투자금액은 어느 정도이고 조달계획은 어떤가. -총 투자규모는 3조 2000억원이다. 공공부문에서 7900억원, 민간부문에서 2조 4000억원을 투자하도록 돼 있다. 사업의 성패는 얼마나 성공적으로 국내·외 민간자본을 유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업들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자금이 차질 없이 조달될 수 있도록 중·장기 재원조달 로드맵을 조속히 만들어 실행해 나갈 것이다. 로드맵에 따라 국비 및 지방비 확보, 내국인 면세점 수익확대를 위한 제도개선 등 공공부문에서의 재원조달에 힘쓰는 한편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수익모델을 제시해 민자자본 유치에도 최선을 다하겠다. ▶사업을 진행할 때 부지 확보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애로사항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부지확보는 개발사업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항이다. 제주발전이라는 총론에서 보면 지주들도 사업추진에 공감을 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이해문제인 보상가 때문에 사업을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사익과 공익을 조화시켜 나가는 것은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그렇다고 공익을 앞세워 과거처럼 강제적으로 수용해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익을 중시하면서도 사익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주들과 대화하고 협의하며 용지보상 문제를 해결해 나갈 예정이다. ▶5대 선도프로젝트 사업이 완료되면 제주도가 어떻게 달라지나. -선도프로젝트가 1차적으로 완료되는 2011년쯤이면 제주로 향하는 국·내외 관광객은 1000만명 정도로 늘어나게 돼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것이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가 크게 해소될 것으로 본다. 결과적으로 제주도민 개인 소득이 올라가게 돼 지역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또 공항이나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도 개선돼 제주를 기점으로 한 항공노선과 크루즈 노선이 발달돼 세계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제주도가 명실상부한 관광·휴양의 국제자유도시로서 대한민국 경제의 한 몫을 담당해 나갈 것이다. ▶제주개발사업의 모델이 있나. -제주도는 앞으로 ‘평화의 섬’ 이미지를 구현하면서 국제자유도시의 비전을 실현시키는 특별자치도를 지향해야 한다. 이 세가지가 조화를 이뤄 발전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경쟁력이 없는 부분은 과감히 포기하고 제주도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들, 즉 관광·휴양을 중심으로 교육, 의료 등의 분야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서 관광, 휴양, 교육, 의료분야에 대해서는 규제완화, 세제혜택, 인센티브 제공 등 다른 지역이나 외국과는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도록 관련 법이나 제도 등을 개선해 나갈 것이다.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조건들을 제시해 나가야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로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것을 종합한다면 홍콩이나 싱가포르, 아일랜드 같은 국가들이 제주도의 모델이 될 것으로 본다. 제주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진철훈 이사장은 진철훈 이사장은 도시개발전문가로 통한다. 서울시에서 25년 동안 건설·개발업무만 맡았다. 서울시 신청사 기획단장, 서울월드컵 주경기장 건설단장, 도시계획국장, 주택국장 등이 그가 맡았던 보직이다. 서울시 공무원이 선정하는 ‘가장 일 잘하는 간부’와 ‘함께 일하고 싶은 간부’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제주지사 재선거에 나와 분루를 삼켰다. 진 이사장은 지역밀착경영을 강조한다.‘제주도민과의 공감대 형성’,‘사익과 공익의 조화’,‘친환경 정책’이 바로 그가 말하는 지역밀착경영이다.JDC 사업의 성패는 부지매입에 달려 있다.JDC가 민간인들로부터 부지를 원활하게 매입하지 못하면 사업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 이사장은 제주도 출신이라는 점과 지역밀착경영을 최대환 활용, 부지매입을 속속 성사시키고 있다. 지주들을 ‘삼촌’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면서 설득한 것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진 이사장의 노력으로 JDC는 휴양형 주거단지는 54%, 생태·신화·역사공원 조성사업은 67%의 부지매입을 끝냈다. ▲제주시(51) ▲제주오현고·한양대 건축공학과 ▲기술고시 14회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시설관리과장 ▲서울시 신청사기획단장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주택국장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첨단과학단지 사업은 첨단과학기술단지 조성사업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추진하고 있는 5대 선도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 중 하나다. 지난 6월11일 기공식을 가진 첨단과학기술단지는 제주시 아라동 33만평에 조성될 예정이다. 현재 JDC는 33만평의 55%인 17만평에 대해 토지매입을 끝냈다. 투입되는 예산은 4001억원에 달한다. 제주도의 다양한 생물자원과 청정환경을 활용해 연구·교육·주거·창업기능이 결합된 친 환경적인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것이 JDC의 복안이다. 때문에 JDC가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유치할 업종은 전자부품, 영상, 음향, 컴퓨터, 정보처리, 섬유제품, 식음료 제조업 등 정보기술(IT)·생명기술(BT)·환경기술(ET) 업종 등이다.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입주하는 기업에는 엄청난 혜택이 뒤따른다. 우선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취득세·등록세가 면제되고,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는 5년 동안 50%가 감면된다. 또 국가균형발전정책에 따라 공장 및 본사를 이전한 기업에 대해서는 기존의 부동산 양도차익에 대해 특별혜택을 받는다. 법인세는 향후 5년 동안은 100%, 그 후 2년 동안은 50% 감면받는다. 산학협동 등 주변시설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첨단과학기술산업단지에 입주하는 기업은 인근 제주대와 제주정보산업대, 제주대 부속병원 등의 각종 시설을 공동으로 활용하도록 할 예정이다. 다음달 산업시설 용지를 분양할 예정이지만 벌써부터 상당수 기업들이 입주를 희망하고 있다. 최근까지 IT업종 29곳,BT업종 14곳, 교육 관련업종 4곳,ET업종 3곳과 국책기관 1곳 등 모두 61개 업체가 입주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에는 국내를 대표하는 IT 업체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JDC 관계자는 “오는 11월 중순쯤에는 서울에서 사업설명회도 열 예정”이라면서 “2011년에는 국제적 수준의 관광인프라와 첨단기술이 결합된 휴양형과학기술단지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Zoom in 서울] ‘매장 대안’ 樹木葬공원 생긴다

    [Zoom in 서울] ‘매장 대안’ 樹木葬공원 생긴다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 시립묘지에 수목장(樹木葬)을 할 수 있는 대규모 산골(散骨)공원이 조성된다. 수목장은 화장한 유골을 나무 뿌리 주변에 묻는 자연친화적인 장례 방식으로 매장(埋葬)·납골(納骨) 등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19일 “2007년까지 24억원의 예산을 들여 용미리 시립묘지에 3만평 규모의 산골공원을 조성할 방침”이라면서 “산골공원은 수목장 중심으로 운영되며 휴양림·산책로·캠핑장 등도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꾸며진다.”고 밝혔다. 이는 시가 시범 운영중인 산골공원인 ‘추모의 숲(6800여평)’의 산골률(벽제승화원의 화장건수 대비 산골건수)이 2002년 9.4%에서 2005년 22.5%로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시는 납골당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2003년부터 시립 납골당 이용 자격을 국민기초생활수급자와 국가유공자로 제한했다. 수목장은 화장한 유골을 나무 뿌리 주변에 묻는 자연친화적인 장례방식으로 1999년 스위스 우엘리 자우터가 창안해 독일·영국·일본 등으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주택가에 조성되는 납골당이 주민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는 반면 산골공원은 교외의 녹지공간에 조성돼 선호도가 높다. 시는 수목장을 한 뒤 나무에 고인의 이름을 부착, 후손들이 나무를 일정기간 돌보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산림청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전국 20세 이상 성인 1269명을 대상으로 7점(매우 바람직함) 만점 척도 방식으로 수목장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평균 4.88점을 보였다고 밝혔다. 수목장에 대한 선호 이유로는 ▲자연 및 국토훼손이 없음(29.7%) ▲나무의 성장을 통해 고인을 느낄 수 있음(24.5%) ▲유골과 자연의 완벽한 동화(22.3%) 등이 꼽혔다. 반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로는 ▲음지와 나무뿌리를 꺼리는 전통(25.6%) ▲조상을 모신 곳이란 느낌이 없음(21.7%) ▲유골을 소홀히 취급함(21.7%) 등이 거론돼 국민정서상 산골에 대한 논란은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서울광장] ‘사람’이 빠진 집값 전쟁/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사람’이 빠진 집값 전쟁/우득정 논설위원

    올초 경기도 분당의 40평형대 아파트로 이사한 A씨는 요즘 심사가 몹시 불편하다. 남들은 집값이 폭등하기 직전 넓은 평형으로 이사해 떼돈을 벌었다고 부러워하지만 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행복의 척도에 대해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방 4칸짜리 아파트를 가지면서 비로소 자신만의 공간인 방 한칸을 챙겼다. 결혼 이후 줄곧 갈망했던 나만의 공간이다. 게다가 홀로 사시는 장모님이 딸집에 왔다가 머무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장모님의 유일한 소일 도구인 TV를 따로 설치한 탓이다. 이사 전에는 장모님의 딸집 방문은 대개 하룻밤을 넘기지 못했다. 밤이면 안방을 내주고 아들 방으로 흩어지는 딸 부부가 부담이 됐고,TV채널권을 두고 손자들과 다투기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장모 취향에 맞춰 꾸민 사위방에서 다리를 쭉 뻗고 TV를 보다가 졸리면 언제든지 자면 된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부동산 종합대책 ‘완결편’을 내놓았다. 미니 신도시 건설이라는 공급 확대책도 있지만 대책의 핵심은 2003년 ‘10·29대책’ 이래 일관되게 추진해온 수요억제책이다.1가구 다주택 소유자뿐 아니라 중대형 평형 주택 보유자는 모두 투기적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세금을 대폭 올렸다. 세금이 부담되면 작은 집으로 옮겨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생활하다 보면 자녀의 성장 단계에 따라 필요한 방 수는 달라진다. 엄마의 품에 있을 때, 친구들과 어울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때에는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교에 진학하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자녀를 위한 별도의 공간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안방이 있는데 남편을 위한 방이 따로 필요하냐는 지적이 있을지 모르나 안방은 어디까지나 아내의 공간이다. 직장 사무실 역시 경쟁의 공간이지 나만을 위한 공간은 아닌 것이다. 중산층이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 결혼 초에는 20평형대 아파트에서 시작했다가 30대 후반 또는 40대 초반에는 30평형대,40대 후반에는 40평형대로 집을 넓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별도의 공간 필요성과 맥을 같이한다. 자녀들이 군에 가거나 출가하면 다시 주택 규모가 줄어드는 것도 같은 이치다. 특히 사회보장제도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과거에는 집 규모 축소는 바로 노후 생계수단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집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행복척도가 ‘배부른’ 푸념처럼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고시한 최저 주거기준은 4인가족 기준으로 37㎡(11.2평)다. 생계비로 따진다면 최저생계비인 셈이다. 반면 일본은 44㎡(13.3평), 프랑스는 56㎡(17평)다. 시민단체들은 신세대의 체형 확대 및 컴퓨터 등 사이버기기 구비율 증가 등을 감안할 때 최저 주거기준이 너무 낮다고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했다. 따라서 이러한 최저 주거기준을 놓고 볼 때 중산층이 꿈꾸는 주거공간 행복척도는 결코 과도한 욕심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집을 투기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세력에게는 반드시 철퇴를 가해야 한다. 세금 융단폭격을 통해서라도 이들의 불로소득은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 하지만 집에서 나만의 공간을 가지려는 욕망까지 투기로 몰아선 곤란하다. 주5일제가 확산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가장이든 맞벌이 부부든 홀로 있고픈 욕구도 커지고 있다. 자산가치로만 평가되는 주거공간 개념에 행복지수도 제목소리를 낼 날을 기대해 본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질문 공세·부담스런 청탁에 진땀

    |웨양 이석우특파원| 중국을 방문중인 김두관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이 ‘곤욕’을 치렀다. 후난(湖南)성 웨양(岳陽)과 즈장(芷江)에서 ‘21세기 한·중교류협회’와 중국인민외교학회 주최로 5∼8일 열린 한·중 지도자포럼 및 국제평화문화축전에 참석중인 김 특보가 중국 정부 관계자들과 외교계 인사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쉴새없는 질문 공세와 ‘청탁’에 시달린 까닭이다.6일 즈장에선 후난성 등 지방지도자들로부터, 앞선 5일 포럼에선 전·현직 대사 등 외교전문가들과 오피니언 리더들로부터 집중적인 ‘질문 포화’를 당했다. 차이바이팡 전 프랑스대사, 션줴런 국제무역학회 명예회장 등 중국 외교계의 주요 인사들이 포럼과 사석에서 직설적으로 “미국이 동북아의 냉전을 즐기고 있다고 보는데 어떤 입장인가.”라며 몰아세웠다. 독일대사를 지낸 루추톈 외교학회 회장도 “동북아공동체 형성에서 미국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민감한 문제를 건드렸다. 이에 김 특보는 과거 대미종속적 한·미관계를 극복하고 수평적 관계를 설정해 나가려는 한국 시민사회와 정부 노력을 설명하면서 “균형자론이 장기적인 참여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의 지향점”이란 답변으로 예봉을 피해 나갔다. 이와 함께 후난성 몇몇 지역 시장과 당 서기들로부터 “우리 시의 고문을 맡아달라.”는 청탁이 쏟아졌다. 경제고문 등을 맡아 한국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 달라는 주문이다.김 특보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현직”임을 강조하며 사양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중국의 한 외교관은 “그의 답변이 참여정부 입장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지고 있고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정치외교 전반에 걸쳐 조언하는 자리란 점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지난해 8월부터 6개월 동안 역사과 연구과정으로 베이징대에 머물며 중국현대사를 연구하는 동안에도 그를 찾는 공산당 대외연락부, 외교부 차관, 차관보급 인사와 실무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란 설명이다. 김 특보는 7일 이수성 전 총리, 김한규 전 총무처장관 등과 함께 리톄잉 전인대 부위원장(국회 부의장격)과 환담을 나눴다.jun88@seoul.co.kr
  • [열린세상] 여성고용률 제고 없인 선진국 못된다/조준모 숭실대 경제학 교수

    고용률은 취업자를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로 나눈 퍼센티지를 의미한다. 이에 반하여 실업률은 실업자를 경제활동인구로 나눈 퍼센티지로서 2005년 기준으로 고용률은 63.6%이고 실업률은 3.7%(7월 기준)이다. 실업률 기준으로 보면 3%대의 실업률을 유지하는 국가는 OECD 30개국 가운데 한국과 아이슬란드·멕시코 3개국뿐으로, 낮은 실업률은 고용의 건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비경제활동인구가 많아서 실업률이 낮게 포착되는 통계적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63.6%의 고용률은 OECD 국가들을 고용률에 따라 5개국 그룹으로 나눌 때 하위 네번째 그룹에 해당되며, 최하위 그룹이 슬로바키아·헝가리·폴란드 등 전환기형 경제들을 포함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고용률은 실질적으로 OECD 최하위 그룹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여성고용률은 52.2%로 남성의 75.2%보다 23% 정도 낮고 이는 주로 경제활동참가율의 성별 격차에서 비롯된다. 특히 한창 일할 연령대인 25∼54세의 연령구간에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여성 고용률 격차는 더욱 크며 이는 출산·육아가 여성의 직장생활을 어렵게 하고 경력 단절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대졸 여성의 고용률은 고졸 여성의 고용률보다 낮으며 OECD 평균 78%보다 무려 22%나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선 가족친화적 근로형태를 늘리고 직장에서 적극적 조치를 통하여 여성 노동에 대한 편견을 줄여나가는 정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가족친화적 근로형태를 늘리기 위해서는 맞춤식 근로시간제, 탄력적 근무시간제, 직무공유제, 압축근무시간제 외에도 단축근무-삭감임금 방식(V-시간제도)으로 여성노동으로 하여금 본인이 희망할 경우, 정규직은 유지하면서 파트타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있다. 직무설계 노하우 공유를 위해 중소기업 중심으로 공공컨설팅 서비스를 확산시켜나갈 수 있고 세제 변화를 통해 두번째 가정 소득원에 강한 근로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을 택한 아일랜드의 경우 고용률이 1984년의 32.7%에서 2004년의 55.8%까지 개선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외에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여성의 보육인프라를 확산하고 출산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도모해갈 수 있다. 또 다른 여성고용률 제고 정책으로서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s)는 여성의 고용을 적극적으로 유인하기 위한 정책으로, 우리나라에서 ‘적극적 조치’는 아직 걸음마 단계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공기업 및 1000인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여성고용에서 우수한 기업에 대해 행정·재정적 지원 내용을 담고 있는, 입법 예고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은 초기단계의 ‘적극적 조치’로 볼 수 있다. 항간에 ‘적극적 조치’가 경제효율성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가 과장되어 논의되는 측면이 있다.‘적극적 조치’가 경제비효율성을 야기한다는 논리로서, 이는 기업의 입장에서 규제이며 직무능력이 낮은 여성근로자를 숙련직에 배치하게 하여 비효율성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 조치’로 인하여 사용자의 여성 노동에 대한 편견을 개선하고 ‘여성스러움’이 더 생산적일 수 있는 직무를 개발케 하며, 여성의 인적자본을 육성할 동기를 제공하는 등 경제효율성에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적극적 조치’에 관한 국외 연구들을 살펴보면 인사관리 담당자가 ‘적극적 조치’를 선용의 기회로 활용한다면 도리어 경제효율성을 개선하는 풍부한 사례들을 보고한다. 우리는 여성 고용률 제고로 저성장 시대의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 이를 위해 근로자-기업-정부의 미래지향적 발상과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준모 숭실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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