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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 , 인도주의 군사작전 돌입 검토

    미국과 영국이 리비아에 대한 모든 범위의 제재 마련에 합의하면서 군사개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유럽연합(EU)도 9일(현지시간) 인도주의적 차원의 군사작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본격적인 군사개입을 위한 첫발을 뗄 것으로 보인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맞서 싸울 것”이라면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거듭 불태웠다. 유엔은 카다피 측의 반정부 세력 고문·처형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 8일 전화통화에서 리비아 사태에 대한 모든 범위의 제재 조치를 취하자는 데 합의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카다피는 9일 터키 공영방송 TRT 튀르크와의 인터뷰에서 서방국가들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할 경우 “리비아 국민들이 무기를 들고 싸울 것”이라면서 “이런 제재들은 서구의 진짜 의도가 우리의 석유 자원과 자유를 빼앗아 가기 위한 것임을 보여 준다.”면서 서방 음모론을 다시 끄집어냈다. 미·영 두 정상은 리비아 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유엔의 무기 금수 조치, 정찰기를 통한 리비아 감시, 인도주의적 지원 등 여러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 최고위급 국가안보 보좌관들은 9일 백악관에서 회의를 열고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다른 군사대응의 효과를 검토한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리비아 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미국 주도가 아닌 유엔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날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국가원수가 평화적으로 퇴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국제사회와 함께 나설 것이며, 동의하지 않는 나라들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아닌 유엔이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의 논의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유엔의 승인 없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것이 적법한지를 논의 중이라고 9일 보도했다. 또 미국과 유럽은 카다피 정부에 대한 무기 수송을 막고 구호품을 전달하는 데 해군력을 이용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EU는 지난 8일 리비아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리비아투자청(LIA)과 리비아중앙은행 등에 대한 추가 제재를 내린 데 이어 인도주의 군사작전 수행을 검토, 카다피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대표는 9일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공동안보·국방정책(CSDP)에 근거한 군사작전을 검토 중”이라면서 “EU 회원국 국민의 대피와 구호활동을 지원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후안 멘데즈 유엔 고문 특별조사관은 카다피 정권이 반정부 시위대와 야당을 탄압하기 위해 총격, 고문 등 잔혹한 수단을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광기의 카다피 선택은? “자살로 최후 맞을 듯”

    광기의 카다피 선택은? “자살로 최후 맞을 듯”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광란극이 정점을 향해 치달으면서 그의 명운이 어떻게 흘러갈지 주목된다. ‘독불장군’에다 극도로 자존심이 강한 성격을 감안하면 카다피는 도망치기보다는 자결이나 피살로 최후를 맞을 가능성이 크며, 그것도 며칠 안에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카다피의 광기는 25일(현지시간) 수도 트리폴리의 그린광장에서 가진 연설 때 극에 달했다. 광장을 내려볼 수 있는 요새 ‘레드캐슬’ 위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수백명의 지지자들을 향해 “카다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살아남을 자격이 없다.”며 독설을 쏟아냈다. 또 그는 “우리는 어떤 침략도 물리칠 수 있다.”면서 “적절한 시점에 무기고를 열어 모든 리비아인과 부족들이 무장해 리비아가 총격으로 붉게 물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는 이날 발언을 통해 반정부 시위대를 또 한번 ‘적’으로 규정하며 유혈진압의 의지를 다졌다. 전문가들은 카다피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택했던 길로 접어들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후세인이 1988년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화학가스로 공격, 5000명을 살해했던 것처럼 카다피도 화학무기에 손을 댈 가능성이 있다고 BBC는 내다봤다. 또 1991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에서 후퇴하면서 750개 유정에 불을 질렀던 후세인처럼 카다피도 석유를 무기화하려 한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온다. 결국 스스로를 사지에 몰아넣은 카다피가 재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 망명 등으로 목숨을 부지하기보다는 자살하거나 처형당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6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카다피의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국제법정에서 심판 받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다만, 리비아군의 핵심인 혁명위원회 소속 군부가 아직 동요하지 않아 카다피가 무바라크처럼 군부에 의해 축출될 가능성은 적다고 BBC는 분석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지청천 ‘자유일기’] “외조부는 극우 아닌 민족주의자”

    [지청천 ‘자유일기’] “외조부는 극우 아닌 민족주의자”

    백산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55) 전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위원은 외조부를 “강직한 군인”이라고 회고했다. 해방 이후 대동청년단의 설립에 관여해 극우적인 성향이 강했다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서도 “(외조부는) 넓은 의미에서 사회주의자들과도 생각을 나눌 만큼 열린 민족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이 전 위원은 지난해까지 친일재산조사위 활동을 하며 3대째 나라 바로 세우기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외손자로서 기억하는 지청천 장군의 모습은? -내가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돌아가셔서 직접적으로 기억하는 모습은 없다. 대부분 어머니를 통해 들었는데 강직하고 약속을 중히 여기는 분이셨다. 일본 육사에 들어가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의하면서 육사 내 동지들과 ‘아오야마의 맹세’라는 것을 하셨다고 들었다. 이후 김경천 장군과 외조부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하지만 홍사익이란 분은 일본군 중장까지 지내다 전범으로 처형되기도 했다. →지 장군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겪은 일 가운데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외조부가 항일투쟁을 위해 만주로 가려 했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식음을 전폐해 몸을 초췌하게 해 일제의 감시를 피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뒤 요양을 한다며 귀국했다가 만주로 넘어가셨다. 이후 제일 먼저 찾아가신 곳이 신흥무관학교였다. →외조부가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대동청년단 창립 등에 관여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외조부는 사회주의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분이셨다. 이번에 공개한 자유일기를 봐도 전면적인 자유시장경제보다 계획경제가 1950년대 상황에 더 맞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극우는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어머니 지복영 여사도 독립운동을 하셨는데. -어머니도 광복군에 입대를 하셨다. 초창기 멤버인데, 심순호·오광심 여사 등 5~6명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1930년대 중국 관내로 이동하면서 광복군의 모병업무를 맡으셨다고 들었다. 특히 중국 방송국을 빌려 대적방송을 할 때는 일본군들의 타깃이 돼 경호원을 서너명씩 대동하고 다닐 정도였다고 들었다. →최근 친일 문제가 사회적으로 많이 잊히고 있는데. -걱정이 많다. 특히 올해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이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한·일 군사협정을 추진한다고 하는데도 사회적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에서 논의 과정 없이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세상을 바꾼 말, 말, 말

    세상을 바꾼 말, 말, 말

    세치의 혀는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말, 말, 말’(제임스 잉글리스 지음, 강미경 옮김, 작가정신 펴냄)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결국 역사를 움직인 말의 전략을 파헤친다. ●괴테, 프랑스의 혁명 수출 발언 독일의 대문호 볼프강 폰 괴테는 프랑스가 이웃 나라에 혁명을 수출하고자 사용한 방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칼이나 총, 대포로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그보다 훨씬 위험한 무기를 사용했다. 그들은 평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자유와 평등의 기본 원칙을 풀어내서는 그 내용을 종이에 인쇄해 대량으로 유포했다.”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거친 수많은 전쟁과 혁명의 과정에서 말은 종종 무기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저자인 제임스 잉글리스는 호주 멜버른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이자 작가로, 역사를 움직인 군주, 정치가, 혁명가, 군인들의 말을 통해 세계사의 역동적 흐름을 통찰한다. 기원전 399년 시민들로 꾸려진 배심원단은 신에 대한 불경죄와 젊은이들을 오염시킨다는 혐의로 소크라테스를 기소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배심원단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는데 독배를 들이켰던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단 앞에서 법정을 죽음의 본질과 연민의 기능을 철학적으로 명상하는 자리로 이끌면서 평정과 해학을 담은 연설을 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유언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 말을 막지 말고 끝까지 들어 보십시오.…여러분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점은, 나 같은 사람을 죽일 경우 여러분은 나보다도 오히려 여러분 자신에게 더 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만약 나를 죽인다면 나 같은 사람을 또 찾기가 쉽지 않을 터이기 때문입니다.…등에처럼 성가신 나란 사람은 신이 이 나라에 보냈습니다. 나를 죽음으로 내몬다면 신이 여러분을 걱정해 또 다른 등에를 보내지 않는 한, 여러분은 나머지 생을 졸면서 보내게 될 겁니다.” 소크라테스의 긴 연설 외에 짧고 유명한 유언도 많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하인들에게 “왜 울고 있느냐? 내가 영원히 살 줄로 알았더냐?” “하느님께선 내가 당신을 위해 해 온 그 모든 일을 잊으셨던 말인가?”라고 한탄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 올라가다 사형 집행인의 발을 밟자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랍니다.”란 사과를 유언으로 남겼다. 프랑스 정치가 장 실뱅 바이는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직전 왜 떨고 있느냐는 질문에 “추워서 그러는 것뿐일세, 친구.”라고 말했다. 2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北 화폐개혁 후 52명 공개 처형”

    북한이 2009년 말 화폐개혁을 단행한 이후 부작용으로 인한 주민 반발 등 체제 위협 요소가 늘자 적어도 52명을 공개 처형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 내 대북 인권단체인 ‘구출하자, 북한 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RENK)는 15일 한국의 한 대북 관련 기관의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2009년 1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8개월간 박남기 조선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비롯해 52명을 공개 처형했다고 주장했다. RENK에 따르면 북한은 화폐개혁이 실패한 책임을 물어 박 부장과 리태일 부부장을 지난해 3월 공개적으로 처형한 데 이어 같은 달 신권 위조 화폐 37만 6000원어치를 만들어 돌렸다는 죄목으로 리모(당시 38세)씨 등 2명을 ‘본보기 차원’에서 처형했다. 또 화폐개혁 직후인 2009년 12월 함흥과 청진에서 시위 참가자를 각각 2명씩 처형했고, 지난해 4월에는 소매치기 범죄조직을 결성하고 김정일을 비난했다는 죄목으로 평양시에서 17명을 집단 처형했다. 지난해 7월에는 청진에서 불만을 담은 전단을 살포했다며 주민 2명을 처형하고, 동조자 3명을 무기징역형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지난해 1월(함흥)과 2월(청진), 7월(회령)에는 탈북자에게 휴대전화로 내부 정보를 유출했다는 등의 이유로 공장 근로자와 재북 화교가 잇따라 처형됐고, 지난해 5월에는 평남 평성시에서 기독교를 전파했다는 이유로 3명이 처형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보고서에는 국내외 대북 매체들이 전한 북한의 공개 처형 사례 가운데 일부는 포함되지 않았다. 북한은 2009년 11월 30일부터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교환하는 화폐개혁을 실시했다가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주민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등 부작용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해적수사 결과 발표] 해적 혐의·처벌 어떻게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다 우리 군에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 5명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이들이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는 해경이 수사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최고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 중형이 선고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적들에게 적용된 혐의 중 형벌이 가장 무거운 범죄는 ‘해상강도 살인미수’와 ‘인질강도 살인미수’다. 우리 형법은 살인미수범에 대해 최고 사형에서 최저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상강도죄는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이 기본이며, 사람에게 상해를 가한 경우 최소 징역 10년 이상에 처해진다. 해적들이 받는 또 다른 혐의인 ‘선박위해’는 ‘선박 및 해상구조물에 대한 위해행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고 사형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이 밖에 우리 군을 향해 발포한 ‘특수공무집행방해’ 부분은 징역 3년 이상의 선고가 가능하다.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해적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 형법이 일부 ‘보호주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4조와 6조 등은 국외에 있는 우리 선박 등에서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적들은 그러나 가담 정도에 따라 각각 다른 처벌을 받을 수 있고, 미수범은 형을 감경받을 수도 있다. 또 사형이 선고되더라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가 형 집행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예멘은 2009년 아덴만에서 자국 유조선을 납치한 해적 12명을 체포, 6명을 공개 처형하고 나머지는 징역 10년에 처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53) 루쉰 ‘광인일기’

    [고전 톡톡 다시 읽기] (53) 루쉰 ‘광인일기’

    제1차 세계대전(1914~18)이 막바지에 달했을 무렵, 루쉰(迅)이란 필명으로 쓰인 소설이 잡지 ‘신청년’에 발표된다. 이 작품이 중국 최초의 근대소설 ‘광인일기’다.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등의 새로운 사상이 전 세계를 휩쓴 후, 신해혁명(1911)으로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된 지 7년이 되던 해였다. 정치체제도 바뀌고 전쟁도 끝나가는데, 루쉰이 보기에 중국인들의 생활방식이나 태도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혁명은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런 현실에 절망했고, 그 후 침묵한다. ‘광인일기’는 7년이란 긴 침묵의 시간을 깨고 나온 소설이다. ●광인의 공포-‘나는 잡아먹힐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식인종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 “나 역시 인간이다. 놈들은 나를 먹고 싶어진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 이제 이 공포심은 구체적 징후들을 통해 극대화되어간다. 길거리에서 한 여인이 자기 자식을 때리면서 “물어뜯어 버리기 전에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이나, 시체를 먹으면 담보가 커진다는 속설을 믿은 마을 사람들이 사람을 죽여 그 자의 내장을 기름에 튀겨 먹었다는 이야기나,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 등에서 말이다. 심지어 조가(趙家)네 개에게서조차 살기를 느낀다. 그는 식인이 자행되는 세계 속에 놓인 자신을 발견한다. 주변 사람 모두가 그의 적이다. 동시에 그 모두에게 이제 그는 광인이다. 그는 다음 번 식인의 희생자가 자신일 거라고 확신한다.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없애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소름이 오싹하였다. 놈들이 완전 채비를 갖추었구나, 생각하였다.” 자기가 느끼는 공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는 역사책을 뒤진다. 역사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인의도덕’이란 좋은 말과 그 사이에 쓰인 ‘식인’이란 두 글자다! 그는 전통이란 이름으로 4000년 간 지속되어온 식인의 역사가 자신을 꼼짝 없이 제물로 만들 것이라는 위협을 느낀다. 형도, 광증을 치료해준다는 의원도 사실은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식인이었다고 하는 공포 속에서 ‘광인’은 하이에나 같은 이들에 둘러싸여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 가족과 세계, 역사가 모두 광인의 적이다. ●광인의 자각-‘4000년 식인 역사를 가진 나!’ 늙은이는 방을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작은 소리로 형에게 속삭였다. “어서어서 먹어버리는 겁니다.” 형은 끄덕였다. 그렇던가, 형까지도 그렇던가,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대발견은 뜻밖인 것 같았으나 실은 뜻밖이 아니었다. 한패가 되어 나를 먹으려 하는 인간이 나의 형인 것이다. -인간을 먹는 것이 나의 형이다. -나는 인간을 먹는 인간의 동생이다. 나 자신이 먹혀버린다 해도 여전히 나는 인간을 먹는 인간의 동생이다. 광인은 형이 자신을 먹으려는 식인들과 한패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대발견’은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과 연결된다. 그렇다, 나도 식인종의 동생이다! 동생을 잡아먹은 형, 이에 동조한 어머니, 그리고 나. 혈연으로 엮인 관계 속에서 자신도 식인사회의 동조자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의 인식은 전환된다. 나 역시 식인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고 그 사회의 일부일 뿐이라는 철저한 자각과 함께 비로소 그는 광증에서 벗어난다. 나는 피해망상에서 벗어나 이 시대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는 인간을 먹는 인간을 저주함에 있어, 먼저 형부터 저주하리라. 인간을 먹는 인간을 개심(改心)시키는 데 있어 먼저 형부터 개심시키리라.” 그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개심시키고자 한다. 그는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 야만의 역사를 벗어나야 한다고 형을 설득한다. 고대의 요리사 역아(易牙)가 자신의 아들을 삶아서 폭군 걸주(桀紂)에게 먹인 이야기는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다. 처형된 혁명가의 피에 만두를 찍어먹는 자들을 보라. 루쉰은 부모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낸 자를 효자라고, 물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강물에 몸을 던지는 딸을 효녀라고 칭송하는 중국의 전통에서 시대의 절망을 느꼈다. 인의도덕과 같은 덕목은 왜 언제나 가해행위로 증명되어야 하는가. 4000년 동안의 중국역사를 관통하는 것은 ‘식인’의 폭력성과 잔인함이다. 거기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예전부터 내려온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이들에게 루쉰은 광인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이런 식인의 역사와 단절해야 한다고. ●출구의 발견-‘아이를 구하라’ 인간을 먹은 일이 없는 아이가 아직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구하라. 소설은 ‘아이를 구하라’는 광인의 절박한 외침으로 끝난다. 식인의 역사를 단절하기 위해 주인공은 아직 식인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건다. 광인의 희망은 절망 끝에서 발견한 출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이동생의 고기를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아이를 구하라’는 절박한 외침을 낳은 것! 이제 그는 외치기 위해서라도 기어코 살아남아야 한다. ‘광인일기’는 시대의 어둠에 갇혀 있던 한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뚫고 나오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기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병과 자각의 흔적이다. 식인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광인은 자기 한계를 넘어 새로운 길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청년아, 나를 딛고 나아가라!” 시대의 적막을 뚫고 탄생한 ‘광인일기’는 우리들에게 던져진 한 ‘광인’의 외침이다. 어쩌면 우리야말로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 속에서 살기 위해 다른 자들을 잡아먹는 식인이 아닐까? “죽어도 이 한 걸음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는 광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최태람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단편집 ‘눌함’ 무엇을 담고자 했는가

    ‘광인일기’가 수록된 ‘눌함’(吶喊·1923)은 루쉰이 1918년부터 1923년까지 쓴 소설들을 모아놓은 작품집이다. 루쉰은 중화민국이 성립된 1912년부터 ‘신청년’에 본격적으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1919년까지 소흥회관에 살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고문서를 베끼는 일에 몰두했다. 이는 군벌정부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존재와 세계를 통찰하는 통과의례의 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루쉰은 자신의 글이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절대적인 수단이나 목적이 아님을 알면서도 문학을 투쟁의 무기로 삼고, 글쓰기에 전 존재를 걸었다. 소설집의 제목 ‘눌함’은 ‘함성’이란 뜻이다. ‘삼국지’나 ‘수호지’에서 중앙으로 나와 싸움을 주고받는 무사를 향해 양진영의 병졸들이 깃발을 흔들고 소리를 내질러 응원하는 것을 ‘요기눌함’(揺旗吶咸)이라 한다. ‘눌함’은 바로 여기서 따온 말이다. 루쉰은 민중을 선동해 앞길을 제시하는 영웅의 존재를 믿지 않았고, 다만 투쟁하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글을 썼다. 이것이 지식인의 한계이지만, 또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눌함’이 나오기까지 루쉰은 이런 한계에 대한 철저한 자각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던 것이다.  ‘눌함’에 실린 작품들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아큐정전’이다. 아큐는 자각과 통찰 없이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간 인물의 전형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모든 상황을 잘못 해석하고 함정에 빠져버리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그러나 소설은 이런 어리석은 아큐를 비판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소설의 맨 마지막, 아큐가 처형당하는 장면을 구경하려고 모인 사람들에게서 아큐는 굶주린 식인의 시선을 본다.  “잔혹을 오락으로 삼고, 남의 고통을 구경하면서 위안”(‘수감록’)하는 자들이야말로 식인의 역사를 계승하는 무기력한 사람들이다! 광인이 본 식인의 잔혹사는 이렇게 ‘아큐정전’에서 반복된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소말리아 해적 국내 이송] 해외 해적 처벌 사례 보니

    전 세계적으로 자국법에 따라 직접 해적 처벌을 진행한 사례는 많지 않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법정은 2009년 아덴만에서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제도에 선적을 둔 화물선을 공격한 해적 5명에 대해 각각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예멘의 경우 2009년 4월 아덴만에서 자국 유조선을 납치한 해적 12명에 대해 지난해 5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체포된 12명 중 6명은 공개 처형을, 나머지 6명은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구출 작전 도중 선원 1명이 사망했고 1명 실종, 4명이 부상당했다. 2009년 머스크 앨라배마호 납치에 가담, 미국 법정에 선 압두카디르 무시의 경우 ▲해적 행위 ▲선박 나포 ▲나포 행위 중 기관총 소지 ▲인질 납치 ▲납치 행위 중 기관총 소지 등의 기소 항목만 10개에 이른다. 무시는 처음에는 가담 사실을 부인했으나 재판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지난해 5월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당초 선고는 지난해 10월 19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해적 행위 등은 최대 종신형을 받을 수 있으나 미국 언론들은 30년형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4월 독일 국적 컨테이너선을 납치하려던 해적 10명을 붙잡아 같은 해 11월 재판을 시작했다. 독일에서 해적에 대한 재판이 이뤄진 것은 400년 만에 처음이다. 현재 함부르크 법정에서 진행 중인 해적들은 해적 행위와 무기 소지 등으로 최대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첫 심리에서 해적 이름의 정확한 철자와 발음을 파악하는 데에만 45분 넘게 걸렸고, 1991년 이후 소말리아가 무정부 상태여서 피고인의 신원을 파악하기 힘든 가운데 변호인단이 대부분의 피고가 18세 미만이라고 주장하며 검찰과 공방을 벌이는 통에 재판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2명중 1명 “배우자 부모 가족 아니다” 제2차 가족실태조사

    2명중 1명 “배우자 부모 가족 아니다” 제2차 가족실태조사

    한국인 둘 가운데 한명은 시부모와 장인, 장모는 가족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형제자매를 가족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비율도 크게 증가했다. 현행 민법 제779조에 따르면 가족의 범위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규정돼 있다. 여성가족부는 24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제2차 가족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0월 대구대학교가 전국 2500가구의 만 15세 이상 47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뤄졌다. 조사에 따르면 가족의 범위에 대한 인식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자신의 부모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77.6%로, 2005년 1차 조사 때의 92.8%에 비해 급감했다. 또 응답자의 50.5%만이 “배우자의 부모도 내 가족”이라고 대답했다. 5년 전인 2005년 1차 가족실태조사 때는 79.2%였다. 형제자매를 가족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는 답변도 5년새 크게 늘었다. 자신의 형제자매를 가족이라고 답한 이는 63.4%(1차 81.2%),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가족으로 보는 경우는 29.6%(1차 54.0%)로 모두 급감했다. 여가부 이복실 청소년가족정책실장은 “핵가족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시동생이나 처형, 처남, 처제를 가족범위에 포함시키지 않는 등 가족의 범위를 좁게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설명했다. 응답자의 72.7%는 노후를 누구와 지내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배우자와 단둘이’라고 답해 노후를 자녀에게 의존하려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배우자와 단둘이 노년을 보내기를 희망하는 쪽은 남성(79.0%)이 여성(66.6%)보다 많았다.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남녀 모두 건강(67.6%)과 돈(47.3%)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반면 세 번째 조건으로는 남성은 일(30.3%), 여성은 자녀(22.5%)라고 답해 가족 내 기존의 성별 역할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전기 고문’으로 살해된 17세 소녀 논란

    파키스탄의 한 10대 소녀가 가족의 허락을 받지 못한 남성과 사랑에 빠졌다가 ‘전기 고문’이라는 끔찍한 형벌을 받고 사망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인도통신사 PTI는 “파키스탄 바하왈푸르에서 가족들이 인정하지 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소녀(17)가 전기 고문을 당해 살해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현지 경찰 관계자는 “살해된 사이마 비비의 가족과 마을 장로들은 회의를 통해 그녀를 사형하기로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면서 “시신에서 고문의 흔적 뿐만 아니라 목과 등, 양손에 화상이 발견됐다. 대부분 감전에 의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이마 비비의 죽음은 ‘명예 살인’으로 알려졌다. ‘명예 살인’은 이슬람권 국가 등의 일부 지역에서 순결이나 정조를 잃은 여성을 상대로 가족구성원이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죽이는 악습이다. 파키스탄에서는 매년 ‘명예’라는 이름으로 대부분 여성인 수백 명의 사람이 살해되는데 대다수 피해자는 가난한 농촌 가정에 속해 있다. 여성이 혼외정사 혐의를 받게 되면 ‘카리’ 또는 ‘나쁜 여성’으로 낙인 찍히며 그녀의 처벌은 부족의 관습에 따라 결정된다. 현지 독립 인권위원회는 “약 650명의 여성이 지난 2009년에만 명예 살인이란 이유로 처형됐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인도주의자’ 위고 사형폐지를 논하다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인도주의자’ 위고 사형폐지를 논하다

    ‘파리의 노트르담’은 인간의 숙명에 대한 고찰이며, 파리시와 그곳의 아름다운 건축물에 대한 송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프랑스의 부조리한 사법제도에 대한 맹렬한 비판이기도 했다. 자유를 부르짖는 낭만주의자, 인도주의자였던 빅토르 위고(그림)에게 사형제도는 도덕을 후퇴시키고, 민중의 미덕을 해치는 악습으로 여겨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루이 11세는 위고에 의해 비쩍 마르고 성질 급한 노인네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 왕의 경악스러운 지점은 다름 아니라 여기다. 왕의 일행이 감옥을 시찰하던 중 창살 저 너머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보이지 않는 죄수는 자신이 무고하다며 제발 자비를 베풀길 간청하지만, 왕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신하들이 모두 그 소리에 소름이 끼쳐 얼어붙어 있는데도 왕은 하던 말만 계속 하고, 신하들에게 질문하고, 문서를 읽으며 감옥 안을 거닌다. 아름다운 노트르담 대성당과 루브르궁이 있는 이곳 프랑스에는 비세트르 성과 그레브 광장이 함께 존재한다. 강도와 살인자들은 비세트르 성에 감금되었고, 사형수들은 마차를 타고 그레브 광장에 도착해 처형된다. 비정한 왕과 재판관들은 가난한 민중들이 못 배우고 굶주려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15세기로 날아간 위고가 열여섯 살의 가녀린 소녀 에스메랄다를 목매달게 한 것은 그의 나이 29세 때의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2년 전 이미 ‘사형수 최후의 날’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통해 사형 및 사법제도의 기만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 짧은 소설에서 위고는 사형을 언도받은 한 남자의 고독과 상념을 그린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단두대의 붉은 받침대 아래 흥건히 고인 피 속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죽은 자의 영혼을 읽어보길 독자에게 권한다. 사형 당하기 1분 전까지도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고 숨 쉬는 젊은 남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 글은 다른 어떤 호소문보다 강렬하고 소름 끼친다.
  • [연평도사태 한 달] 연평주민 김영길씨 끝나지 않은 피란기

    [연평도사태 한 달] 연평주민 김영길씨 끝나지 않은 피란기

    연평도에서 빠져나오고 한달 동안 김영길(48)씨 가족은 이삿짐을 네 번 쌌다. 연평도 중부리 방 두칸짜리 단독주택에서 행복하게 살던 네 식구는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른 채 기약 없는 피란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김영길씨의 목소리로 지난 한달을 되돌아봤다. 찜질방에서 여관으로, 친척집으로, 임시 거주지로 옮겨 오는 동안 김씨의 가족은 만신창이가 됐다. 김씨의 피란 생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1월 23일 오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바닷가에 나가 굴·조개를 캤다. 일이 없을 땐 육지로 나가 막일도 한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이 한달에 150만~200만원. 네 식구 살기에는 빠듯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있으니 행복하다. 폭격으로 지붕이 내려앉고, 유리창이 다 깨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11월 26일 10살 난 딸아이와 8살 난 아들 녀석이 유난히 힘들어한다. “아빠, 집에 가요.”, “아빠, (연평도) 학교 가고 싶어요.” 찜질방에서 생활한 지 3일째인데 나도,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감기에 걸렸다. 아내와 상의 끝에 내일은 여관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12월 11일 인천 용현동에 있는 하루 3만원짜리 작고 허름한 여관. 벌써 15일째다. 소음이나 먼지 걱정은 없지만 돈이 문제다. 벌써 45만원…. 그동안 저금해 놓은 돈을 쓰고 있는데 거의 바닥이 났다. 주안동에 사는 처형이 선뜻 오라고 해 줘서 고마울 뿐이다. -12월 16일 친척네 집이니 아이들이 마음 편해하는 것 같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더할 나위 없이 잘해 주지만 마냥 신세 지는 것도 미안하다. 아내와 다시 의논했다. 결국 찜질방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12월 17일 찜질방에 오자마자 아이들은 다시 기침을 시작했다. 병원에 가도 차도가 없다. “뛰지 마, 얌전히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면 안 돼.”라고 꾸짖으면 “왜 못 돌아다니게 해요? 우리 집으로 가요.”라고 보채며 운다. 아이들이 점점 말수가 없어지고 울적해한다. 먹고 싶은 걸 사줄 수 없는 미안함도 크다. 치킨, 피자가 먹고 싶단다. -12월 19일 김포 임시 거주지인 LH 아파트로 들어왔다. 나는 낯선데, 아내와 아이들은 좋은 눈치다. 애들은 오자마자 신이 나서 뻥튀기 과자를 먹으면서 놀고 있다. 이웃들의 배려로 방 세칸짜리 아파트에서 가장 큰 방을 우리 가족이 쓰게 됐다. 욕실도 따로 딸려 있어 아내도 맘에 들어한다. 걸레를 들고 방을 닦는 모습을 보니 살짝 미소가 걸려 있다. -12월 21일 김포로 온 지 벌써 이틀째다. 하룻밤 자고 나니 익숙해졌다. 찜질방, 여관이랑 다르게 일단 ‘집’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든다. 공기가 좋아서 아이들 감기도 조금씩 낫는 것 같다. 두 달 후면 연평도로 돌아가야 하는데 당장 벌이가 걱정이다. 집은 어떻게 될지…. 막막하다. 인천 이민영·김소라기자 min@seoul.co.kr
  • [데스크 시각] 무엇이 부동산 개발정보인가/김경운 산업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무엇이 부동산 개발정보인가/김경운 산업부 부장급

    이른바 ‘부적절한 재테크’로 구설에 시달리던 4성 장군이 결국 사표를 던졌다. 황의돈 육군참모총장이 8년 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근처에 부지를 매입해 6층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일대의 고도제한이 완화되면서 건물값이 3.8배나 뛰었다고 한다. 이게 정권 내부에서 눈총을 받은 모양이다. 과연 그렇다면 천안함 침몰, 연평도 피격 등으로 어수선한 군 분위기를 쇄신하려고 사람만 바꿀 일이 아니다. 군사기밀에 속하던 군 시설물 고도제한 관련 정보유출 혐의로 수사를 할 사안이다.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황 총장이 국방부 대변인 시절에 문제의 건물을 매입했다는 2002년에 필자는 국방부 출입기자였다. 매일 아침 황 대변인과 인사를 나누던 사이다. 물론 기자라는 속성상 그리 먼 관계도, 그렇다고 가까운 관계도 아니었다. 초점은 용산 일대의 부동산값이 앞으로 크게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 국방부 공무원은 물론 출입기자들도 능히 짐작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근처의 미군 기지가 이전하고 국방부가 새 청사와 직원용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니 “우리 기자들도 함께 투자 좀 합시다.”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한쪽에서 “그럴 여윳돈이 있어야 투자를 하지.”라는 쇳소리도 들렸다. 고도제한 완화라는 것도 그렇다. 서울시에서 고도제한 관련 업무는 고집과 관록이 엿보이는 공무원이 수십년째 담당하고 있다. 고도제한 완화는 장기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언젠가 필자가 “김포공항 주변의 고도제한 완화는 주민들 숙원인데, 좀 풉시다.”라고 말을 건넸더니,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된다.”라는 외마디가 돌아왔다. 아뿔싸, 이것도 뒤집어 보면 고도제한 관련 정보를 유출한 것인가. 부동산 담당 기자라면 누구나 김포신도시, 일산 식사지구 일대 아파트값이 장기적으로 오른다는 사실을 안다. 합정동과 당산동, 자양동 등이 투자유망 지역이라는 말을 주변에 귀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처음 들었다면 혹할지 몰라도 그 동네 부동산중개업소에 가서 떠들면 사람들이 웃는다. 필자가 새삼 고백을 하자면, 이게 진짜 부동산 개발정보일 것이다. 서울시가 둔촌동 보훈병원 앞에 지하철 9호선 역사를 짓기로 결정한 것에는 당시 이해식 강동구청장의 하소연을 들은 필자가 이 계획의 책임자에게 부탁한 점이 반영됐다고 감히 생각한다. 서울시에선 지하철 역사의 추가 지정을 놓고 후보지들을 검토하고 있었고 마침 정부도 보훈병원을 최신식으로 리모델링할 계획이 있었으니, 이때가 투자의 적기였을 것이다. 사실 이것도 “오를 대로 올랐다.”는 핀잔만 들었다. 서울시에 출입하던 모 신문사 기자는 신혼집을 고르며 도심의 전세아파트로 갈지, 번동의 옛 드림랜드 앞에 값싼 아파트를 하나 살지 고민을 했다. 그 기자는 주변의 충고를 듣지 않고 번동의 낡은 아파트를 샀는데, 불과 몇 달 후 공원부지 매입 계획이 갑자기 확정되면서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다고 좋아했다. 운 좋은 그 젊은 기자가 훗날 “당시 출입기자로서 개발정보를 빼내 투기를 했다.”고 의심을 받는 게 마땅한가. 에르빈 로멜(1891~1944)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침공과 아프리카 사막전, 노르망디 방어작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나치 독일군의 육군 원수였다. 그는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광적으로 변한 아돌프 히틀러를 불신했지만 일부 장교들의 히틀러 암살 계획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히틀러의 의심을 샀고 자동차 사고를 가장한 처형을 당하고 만다. 역전의 용사는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전사하거나 작전 실패에 책임이 있다면 스스로 총살형을 각오하고 있다. 그럼에도 거친 사막에서 전차대를 귀신처럼 지휘하며 적을 곤경에 빠뜨렸던 백전노장에게 한낱 교통사고가 뭔가. 모두 한심한 일이다. kkwoon@seoul.co.kr
  • 북한 인권개선 3단계 로드맵 구축

    북한 인권개선 3단계 로드맵 구축

    북한 주민과 국군포로, 이산가족 문제 등 주요 이슈별로 북한 인권을 개선하려는 중·장기 정책과 로드맵이 마련됐다. 국가 차원에서 북한 인권과 관련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과 로드맵을 마련한 것은 처음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중장기 정책 및 로드맵 구축’ 용역연구 결과를 13일 발표했다. 연구는 인권위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 의뢰해 지난 5월부터 6개월간 진행됐다. 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정책과 실천계획을 행위자, 이슈별로 제시했다. 인권위는 북한 인권 범위를 북한지역 내 주민, 탈북자, 이산가족·납북자·국군포로 등으로 설정했다. 단기·중기·장기 등 3단계별로 목표를 정해 주요 전략과 정책도 제안했다. 단기적으로는 정치범수용소, 공개 처형 등 북한 당국의 인권 침해 행위 방지에 주력하기로 했다. 남북한 통합과 북한 인권의 본질적 개선을 위해서다. 아울러 이산가족과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이산가족 상시 상봉 체계, 사회적 합의 기반, 좌우를 막론한 국내 시민사회단체·국제인권단체와 네트워크 구축 등을 정책 목표로 세웠다. 인권위는 또 국무총리실 산하에 대북인권 종합전략을 담당하는 ‘북한인권정책협의회’를 구성하고, ‘북한인권법’ 시행 및 인권위 내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운영하는 방안을 담았다. 또 한·미·일 3국이 공동으로 ‘북한인권대사 협의체’를 구성하고 주한 외국대사관을 대상으로 ‘북한인권구락부’를 만들어 개별 국가 차원에서 북한 인권실태와 인권개선 전략을 공유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북한인권구락부에는 스웨덴 등 과거 북한과 인권문제를 직접 논의한 사례가 있는 국가를 적극 포함시킬 방침이다. 이와 함께 인권위는 비공개 형태의 국제기구인 ‘북한인권 국제협의체’를 스위스 제네바에 마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유엔의 ‘북한인권외교기본계획’ 수립 등 국제기구 차원의 대응방안도 제안했다. 비정부기구(NGO) 차원에서는 정부가 북한인권단체와 ‘북한 인권개선 민관정책협의회’를 구성하고, 각 시민단체들이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특별협의지위’를 받고 대북 인권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중기적으로는 북한 내 인프라 구축 여건을 조성하고 인권 개념 변화를 유도한다. 장기적으로는 인권친화적 정권으로 변화를 유도하고 자유권과 정보 접근권도 대폭 확대한다. 이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는 북한 주민에 대한 정보접근권과 관련해 대북방송 등 구체적인 실행안이 마련되지 않아 실효성이 낮다고 비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대북방송 등의 방안은 인권위가 추진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통일부 등 직접 관련된 기관이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돼 로드맵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폭로로 드러난 ‘외교의 두얼굴’

    폭로로 드러난 ‘외교의 두얼굴’

    평등한 세상을 외치던 미국의 전직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뒤로 유대인과 흑인을 폄하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시대의 멘토’로 불렸던 백악관 보좌관 헨리 키신저는 같은 민족인 소련 내 유대인의 죽음을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는 냉혈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선린’과 ‘우의’를 입에 달고 사는 미국 외교관들은 주재국 정부와 주요인사에 대한 ‘뒷담화’를 일삼았다. 위키리크스가 불 붙인 폭로전은 미소 뒤에 담긴 치열한 각국 외교전의 두 얼굴을 낱낱이 내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린다에 있는 ‘닉슨 도서관 겸 박물관’이 공개한 녹음파일 내용을 인용, 닉슨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일삼았다고 보도했다. 265시간 분량의 이 녹음파일 내용은 닉슨 재임 시절 백악관에 비밀리에 설치됐던 녹음장치에 담긴 것이다. 녹음에는 닉슨이 퇴임하기 전 주변인들과 대화하면서 유대인·흑인은 물론 이탈리아계·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을 비하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닉슨은 1973년 2월 13일 찰스 컬슨 법률고문에게 “유대인들은 공격적이며, 거친 성향이 있고 아일랜드인들은 술만 먹으면 심술 궂게 된다. 이탈리아계는 머리가 나쁘다.”고 말했다. 또 개인비서인 로즈 메리 우즈와의 대화에서는 “흑인들은 좀 더 격조 있는 시민이 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닉슨은 1973년 골다 메이어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열렬히 환영했지만, 그가 떠난 직후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 당시 메이어 총리가 닉슨과 키신저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소련이 유대인들의 이민을 허용하고 처형이 이뤄지지 않도록 미국이 힘써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를 일축했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닉슨에게 “소련 내 유대인의 이민문제는 미국 외교정책의 목표가 아니며,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가더라도 이는 미국이 우려할 문제가 못 되고 단지 인도주의 차원의 우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전 종전을 이끌어내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실제로는 ‘협상의 달인’이자 “국제사회에는 이익관계만이 존재한다.”는 말을 남긴 키신저다운 조언이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닉슨은 “잘 알고 있으며 그 문제로 세계를 폭파시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 나치 독일 정권에 극도의 혐오감을 나타내온 미국이 실제로는 나치 관련 인사들을 보호하고 이용했다는 자료도 공개됐다. AP통신은 이날 미국 의회자료를 토대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냉전시기에 구소련을 교란하기 위해 나치 관련 인사들을 우크라이나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인종청소를 주도한 전범 미콜라 레베드도 포함돼 있었다. AP통신은 또 “나치 비밀경찰 조직인 게슈타포의 고위 간부였던 루돌프 밀트너를 미국이 빼돌렸고, 밀트너는 아르헨티나로 도주해 유대인 학살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과 만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각국 정상과 지도자, 정치인들에 대한 미국 외교관들의 비판도 꼬리를 물고 공개되고 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이날 추가 폭로한 미 국무부 비밀 외교전문에는 미얀마 주재 미국 대사관이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에 대해 “관리 능력이 빈약해서 미얀마와 민주화의 희망이 될 수 없으며, 당내 지도자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을 뿐”이라고 평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밖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멕시코 사태에 대한 정부 역할을 비판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에르도안 총리가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을 숨겨두고 있다는 정보와 터키의 정치적 리더십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과 멕시코 마약 조직이 급성장하면서 멕시코 정부가 일부 영토의 통제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멕시코 관리의 언급도 공개됐다. 외교전문 가운데에는 마약 카르텔 조직의 준동으로 멕시코 정부가 일부 영토의 통제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멕시코 관리의 언급도 담겨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날 에르도안 총리와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유감을 표명하는 등 파문 진화에 부심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사형수들이 주문한 ‘마지막 식사’ 메뉴는…

    미국의 사형수들은 전통적으로 사형 집행 전 마지막 식사를 통해 요청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금까지 사형수들이 교도소에 제출한 이상하고 특이한 요청 중 일부 내용을 소개했다. 85세의 할머니를 크리스마스트리 조명줄로 목 졸라 살해한 토마스 J 그라쏘는 지난 1995년에 처형됐다. 그의 마지막 식사 요청은 무려 8개가 넘는 음식 종류였다. 스무 개 이상의 찐 홍합과 대합, 버거킹 더블 치즈버거, 바비큐 돼지 갈비 6조각, 밀크셰이크 라지 2컵, 미트볼 파스타인 ‘스파게티오스’ 통조림 한 캔, 호박파이 반 조각, 크림 올린 딸기까지 그의 주문은 길고 복잡했다. 이에 주방직원은 중요한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그는 집행 중 마지막 말로 “스파게티오스 대신 스파게티를 먹었다. 언론이 이 사실을 알길 바란다.”고 말했다. 1982년 처형된 로버트 뷰엘은 11살짜리 소녀 크리스타 해리슨을 성폭행하고 살해했으며 다른 강간 혐의로 121년 형을 선고 받았음에도 계속 무죄를 주장했다. 그의 마지막 요청은 씨를 뺀 검은색 올리브 한 조각 뿐이었다. 제럴드 리 미첼은 자신이 원하던 목걸이를 넘기지 않은 남성을 죽이고 마약거래에서 두 남성을 총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녀의 마지막 식사는 영양이 풍부하지 않지만 여러가지 맛과 향이 나는 ‘졸리 런처’ 캔디 한 봉지였다. 1990년 6월 휴스턴에서 살인 강도 혐의로 처형된 제임스 에드워드 스미스는 부두교 의식 수행을 위해 흙 덩어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교도소 규칙 상 흙은 식품 목록에 포함되지 않아 그의 요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요거트로 만족해야 했다. 최후의 만찬 중 가장 어려웠던 요청은 1989년 자신의 집에서 여자를 흉기로 찌르고 금품을 훔친 오델 반즈 주니어라는 사람이 했다. 그는 전 세계의 정의와 평등 그리고 평화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했지만 세계를 위해 그의 요청은 거절될 수 밖에 없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타임, 美 격동 10년의 사건 선정

    타임, 美 격동 10년의 사건 선정

    Y2K, 9·11 테러, 이라크 전쟁, 지구 온난화,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시사주간 타임 최신호가 25일(현지시간) 인터넷판을 통해 21세기가 시작된 지난 2000년부터 올해까지 미국의 ‘격동 10년’을 주요 이슈 중심으로 되짚었다. 2000년 11월 실시된 미 대선에서 플로리다 주 재검표 사태를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백악관에 입성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2000년 컴퓨터 인식 오류로 예고됐던 디지털 재앙 ‘Y2K’, 황금 산업으로 떠올랐던 세계의 닷컴기업들이 일시에 쓰러진 ‘닷컴 버블 붕괴’도 21세기 초입의 키워드로 정리됐다. 10년 내내 미국을 뒤흔든 최고 이슈들의 시발점은 9·11 테러였다. 2001년 9·11 테러에 이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 사담 후세인 처형, 뉴욕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재건 사업 등이 지난 10년을 대변하는 대사건으로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10년 새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급성장 면모에도 주목했다. 지난 10년을 장식한 상징적 인물들도 함께 선정됐다. 미국과 쿠바 간 외교 분쟁의 도화선이 됐던 6세 쿠바 소년 엘리안 곤잘레스, 이라크 주둔 미군이 만든 영화의 주인공으로 화제에 올랐으나 이후 미군의 과대 포장을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던 전쟁 포로 제시카 린치 일병 등이 꼽혔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경북 봉화 청량산 황풍속으로

    경북 봉화 청량산 황풍속으로

    청량산은 그리 크지 않은 산입니다. 경북 봉화와 안동 땅에 걸쳐 있지요. 봉화의 험준한 산들 대개가 1000m를 넘는 것에 비해 청량산은 최고봉이 870m에 그칩니다. 하지만 산속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은 것에 대한 경시는 곧 찬탄으로 바뀝니다. 그리 높지는 않아도, 낙동강과 몸을 섞으며 천길단애를 이룬 12개 기암절벽은 결코 뭇사람들에게 쉬 자리를 내주지 않습니다. 주왕산, 월출산과 함께 내 나라 안 ‘3대 기악’(奇嶽)의 하나로 꼽히는 까닭입니다. 예부터 당대의 학자와 예술가들이 자주 드나들기도 했지요. 원효·최치원·이황 등 고승과 석학이 줄을 이었고, 명필 김생은 토굴을 파고 밤낮으로 먹을 갈았다고 역사는 전합니다. 선비들은 청량을 소재로 100편이 넘은 기행문과 1000여수에 달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청량은 노란 단풍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달포 가까이 이어진 가을 가뭄으로 어쩌면 예전과 같은 단풍의 자태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마저 어찌나 감동적인 풍경이던지요. 가슴이 벌렁거릴 지경이었습니다. ●풍경 밖에서 풍경이 되다 비록 작은 산이지만, 청량산을 대하는 방법만큼은 여럿이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사뭇 다른 청량산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풍경의 깊이는 여느 명산에 견줘 결코 얕지 않다. 따라서 하루에 이산 저산 오를 만한 혈기 방장한 젊은이라면 모르되, 산 하나 오르기 쉽지 않은 연령의 사람이라면 자신이 풍경 속에 있을 건가, 혹은 풍경 밖에서 풍경을 볼 것인가를 우선 결정한 뒤 산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산 밖에서 청량산 전체를 온전히 볼 수 있기로는 축융봉(845m)이 가장 앞줄에 선다. 청량산의 중심부인 청량사 맞은편에 우뚝 솟은 봉우리로, ‘육육봉’(六六峯)이라 일컫는 청량산 12봉 중 스스로를 제외한 나머지 11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청량산 소개 책자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진들이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보면 틀림없다. 청량산도립공원 끝자락, 산성입구 팻말이 세워진 곳이 산행 들머리다. 이곳에서 축융봉까지는 대략 2㎞, 잰걸음으로 돌아본다 해도 왕복 2~3시간은 족히 걸린다. 축융봉은 청량산 쪽보다 해마다 단풍이 일찍 찾아든다. 응달이어서 볕이 드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아침해가 단풍을 일깨우는 시간도 당연히 청량산 쪽보다 늦다. 축융봉 코스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밀성대다. 봉화군이 예전 흔적을 바탕으로 새로 산성을 축조해 놓았다. 산성이 밀집돼 있다는 뜻에서 한자로는 ‘密城臺’라 적지만, 1361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왔던 고려 공민왕이 군율을 어긴 부하들을 처형하는 장소로 주로 썼다고 설화는 전한다. 산성 바로 아래, 조그만 바위 너머로 강원도 영월의 선바위처럼 기암절벽이 솟아 있다. 거리는 2~3m에 불과한데, 깊이는 천길단애다. 가까이 서면 울렁증이 일 정도다. 김덕호 청량산도립공원 관리담당은 “양쪽을 잇는 철제 다리를 놓아 군율을 어긴 군사를 선바위까지 보낸 뒤, 다리를 거둬들이는 방법으로 형을 집행했다.”고 설명했다. 밀성대부터 축융봉까지는 산성길을 따른다. 박석을 따라 자박자박 걷는 맛이 각별하다. 금탑봉, 자소봉 등 청량산의 봉우리들이 발걸음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산행의 엑스터시는 역시 축융봉. 동쪽으로 영양 일월산과 멀리 영덕의 풍력발전단지, 서쪽으로는 문경 새재, 남쪽으로는 안동의 학가산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되짚어 올 때는 공민왕당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다. 축융봉의 좀 더 내밀한 자태와 마주할 수 있다. 청량산 풍경을 말할 때 만리산(萬里山)을 빼놓을 수 없다. 청량산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산으로, 이름처럼 ‘1만리’에 달하는 주변 풍경을 내다볼 수 있다. 무엇보다 승용차로 오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청량산에서 봉화 방향으로 가다 오마교(五馬橋)에서 좌회전해 들어간다. 산자락 8부 능선쯤의 사과밭 갈림길에서 우회전해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펜션 이정표를 따라 가거나, 직진한 뒤 송신탑까지 곧장 간다. 어디서든 고랭지 사과밭 너머 걸개그림처럼 매달린 청량산과 마주할 수 있다. ‘오렌지꽃’ 펜션(010-6558-4857)에서 청량산과 눈높이를 마주하고 차 한잔 마셔도 좋겠다. ●노란 물결 뒤덮인 단풍숲에 들다 단풍(丹楓) 하면 퍼뜩 떠오르는 게 붉게 물든 나뭇잎이라면, 청량산의 가을은 황풍(黃楓)으로 물든다고 해야 옳겠다. 피처럼 붉은 단풍나무보다 생강나무 등 노란 빛깔을 띠는 나무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김덕호 관리담당의 해석이 멋들어지다. “멀리서 함 보소. 가을만 되마 청량산은 노란 물결이 친다 아입니까. 노란 비단에 점을 찍듯 드문드문 박혀 있는 단풍나무들은 화룡점정이지를. 산 전체가 참기름을 바른 듯 노란 윤기가 자르르 흐르지예.” 다시 보니 꼭 그대로다. 햇빛이 들면 나뭇잎들이 제 빛깔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밥사발을 뒤집어 놓은 듯한 청량의 암벽들은 그때마다 어깨에 노란 비단 숄을 두른다. 청량산 등반은 입석을 들머리 삼는다. 공원 초입에 청량폭포와 선학정에서 시작되는 두개의 코스가 있으나, 급경사인 데다 볼거리도 많지 않아 대부분 입석 코스를 따른다. 생강나무가 노란 빛깔로 한껏 멋을 낸 입석을 지나 30~40분쯤 오르면 갈림길이다. 아래는 청량정사를 거쳐 청량사로 향하는 길로, 산책로라 할 만큼 평탄하다. 위는 금탑봉을 거쳐 자소봉 등으로 향하는 등산로다. 다소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볼거리가 몰려 있어, 대부분 등산객들은 윗길을 선호한다. 갈림길에서 윗길을 따라 된비알을 오르면 청량의 첫 번째 봉우리 금탑봉과 만난다. 응진전과 총명수, 어풍대 등 풍경의 보고가 몰려 있는 곳이다. 기골이 장대한 금탑봉 암벽 아래,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응진전이 매달리듯 서 있다. 암자 뒤편으로는 홍조를 띤 담쟁이덩굴이 암벽을 따라 길게 뻗어 있다. 이 계절, 청량산의 명물로 꼽히는 풍경이다. 조심스레 길을 재촉하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선 어풍대를 만난다. ‘육육봉’이 만든 ‘12폭 병풍’에 암벽과 단풍이 새겨지며 묵향 그윽한 진경산수화를 펼쳐내고 있다. 청량산 중심에 터를 잡은 절집 청량사 위로 자소봉과 탁필봉, 그리고 멀리 하늘다리 너머 청량의 최고봉인 장인봉 등이 자못 엄정한 자세로 도열해 있다. 과연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란 이름에 걸맞은 풍경이다. 어풍대를 지나 갈림길 앞에 서면 등산객들은 다시 고민에 빠진다. 청량사로 향하는 왼쪽 길을 따르면 채 두 시간이 못돼 청량의 ‘핵심 코스’를 돌아볼 수 있다. 반면 오른쪽 길은 ‘코가 땅에 닿을 만큼’ 된비알을 타고 올라야 한다. 자소봉, 하늘다리 등 ‘필수 코스’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위안거리.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거주했다는 암자터와 명필 김생이 글씨를 연마했다는 김생굴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밭은 숨결을 내뱉으며 가파른 산길을 타고 오르면 자소봉(840m)이 나온다. 여기부터는 탁필봉과 연적봉을 거쳐 청량의 주봉인 장인봉(870m)에 이르는 능선길이 시작된다. 각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절경이 이어지고 굽이굽이 청량산을 끼고 도는 낙동강 줄기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당대의 거유(巨儒) 주세붕이 청량을 일러 ‘작은 금강산’이라 부른 까닭을 능히 짐작할 만한 풍광이다. 글 사진 봉화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 영주 나들목→36번 국도→봉화읍→봉성면 봉성리→918번 지방도→35번 국도→명호면 북곡리→청량산도립공원 순으로 간다. 풍기 나들목에서 5번 국도를 타는 방법도 있다. 청량산도립공원 679-6321. 봉화공용버스터미널 673-4400. ▲주변 볼거리 닭실마을 청암정 단풍이 절정이다. 붉고 노란 단풍들이 고색창연한 건물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봉화읍 유곡리에 있다. 봉화를 찾는 여행객들은 대부분 영주 부석사를 빼놓지 않고 들른다. 요즘 절집 초입 회전문 공사로 다소 어수선하긴 해도, 넉넉한 자태는 여전하다. ▲맛집 송이버섯으로 이름난 고장인 만큼 송이전문식당이 많다. 용두식당(673-3144), 옥류관(672-6666) 등이 유명하다. 송이돌솥밥 1인분 1만 5000원선. 36번 국도변 봉화한약우프라자(674-3400)는 한약재를 먹여 키운 질좋은 한약우로 입소문이 났다. 봉성면 소재지에는 돼지숯불구이촌이 형성돼 있다. 봉성숯불식당(672-9130)이 많이 알려졌다. ▲잘 곳 다덕약수탕 인근 다덕파크모텔이 비교적 깨끗하다. 3만 5000원. 봉화 읍내 궁전파크(674-0300) 등은 3만원.
  • “난 수도원의 마당쇠… 기도가 삶”

    “난 수도원의 마당쇠… 기도가 삶”

    가을의 깊이란 것이 어떤 느낌일까. 지난 25일 오전 경기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에 위치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에 들어섰다. 건물 담장이 고색창연했다. 붉게 물든 넝쿨들이 그윽하고 심오한 느낌을 연출했다. 마당의 잔디는 시골 황구처럼 누런색으로 변해간다. 담장 넝쿨 사이로, 이팔종(70·토마스) 수사가 검은 수도복을 입고 천천히 걸어나온다. 웃는 모습이 해맑다. 세상과 멀고도 깊은 수도원에서 ‘정결’ ‘청빈’ ‘순명’이라는 세 가지 서원을 오롯하게 수행하며 살아온 내공의 표정이었다. 이 수사는 아마 늘 그렇게 지내왔으리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한국전쟁 직후 1953년 방유룡(1900~1986년·안드레아) 신부에 의해 국내 처음으로 설립된 남자수도회. 당시에는 경북 왜관의 성베네딕도수도회, 대전의 성프란치스코 수도회 등 외국계 수도회만 몇 곳 있었다. 때문에 한국에서 자생한 첫번째 남자수도회라는 점에서 오는 30일 큰 경사를 맞는다. 국내 설립 방인(傍人) 수도회 소속 수도자인 이팔종 수사가 서원 50년을 맞아 이날 오전 서울 성북동 복지사랑 피정의 집에서 ‘금경축’ 미사를 봉헌한다. “나는 이 수도회 신학원의 마당쇠일 뿐인데요(웃음).” 이 수사는 낯선 이방인을 그렇게 맞이했다. 수도회 앞마당에서 잠시 서서 마주했다. 뒤에는 김대건 신부의 석상이 서 있었다. 건물의 설계는 건축가 이일훈씨가 맡았고 1994년에 지었다. 생활의 편의성보다는 ‘수도자의 길’에 맞게 설계를 했다고 설명한다. 생활동 안 복도의 너비를 한 사람만 걸어다닐 수 있도록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복도에서 서로 마주치면 누군가는 뒷걸음으로 걸어나와야 한다. 양보와 사랑의 수행을 익히게 하자는 것이다. 건축 얘기가 나오자 이 수사는 성당 짓는 목수 일을 떠올린다. 군대를 제대한 후 1964년 종신서원과 함께 받은 소임이 목공이다. 1965년 인천 고잔성당을 시작으로 덕적도성당(66년), 덕적도병원(67년), 금호동성당(68년), 이문동성당(69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청량리수녀원(70년)에 이어 서귀포 피정의 집(72~75년) 등 대패와 끌, 망치를 들고 다니면서 성당을 지었다. “어떻게 해서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까.” “제 고향이 경기도 일죽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그곳에서 어머니 따라 장로교회에 다녔지요. 그때만 해도 목사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그런데 하루는 어머니가 동네에 이사온 천주교 신자 부인을 만나고 오시더니 ‘얘야, 천주교가 큰집이다’라고 하시더군요. 이후 어머니와 저는 천주교로 개종했습니다. 라틴어 미사에다 멋진 제의를 보고 감동 받아 신부가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왜 신부가 아닌 수사의 길을 택하셨는지요.” “6·25 때 우리 집안이 공산당과 관련됐다는 이유로 가족이 처형당하기도 하고 6촌형 둘은 월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이 자연스럽게 몰락했지요. 집안이 가난했고 또 사상적으로 몰리면서 중학교에 다닐 형편이 못 됐습니다. 게다가 옹기장사를 하던 큰형을 따라 일을 도우면서 신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큰형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아마 중학교 졸업장이 있었다면 신부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1957년 입회 당시 명동성당 내 사도회관(현 교구청) 옆 천막수도원에서 수도의 길을 걸었다. 여기에서 양철을 덧댄 트렁크를 만들었고 주방 일을 맡기도 했다. 힘들 때마다 방유룡 신부가 “수도원은 성인이 되는 곳이다.”라고 격려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 그가 신학원에 들어온 지 2년. 늘 그래왔듯이 어디에서든지 세월이 지날수록 기도의 맛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수도자란 기도하는 사람이다.’는 가르침의 길을 걸으며 면형무아(麵形無我)로 나아간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저야 뭐 기도하는 일밖에 없죠. 혹시 여건이 된다면 말년에 수도원 내에서 늙은이끼리 기도 중심으로 관상부 생활을 하고 싶어요.” 수도자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하느님만 찾아야 하고 ▲ 자기자신과 싸우는 사람이어야 하고 ▲수도자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세 가지를 강조한다. 그는 10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고 해서 ‘팔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절에 가끔 다닌다고 하자 “석가모니의 가르침도 훌륭하니 열심히 하세요.”라며 웃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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