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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윌 스미스 아내, 아들뻘 남자와 불륜”…윌 스미스는 허락했다

    “윌 스미스 아내, 아들뻘 남자와 불륜”…윌 스미스는 허락했다

    “아내 불륜 허용, 당당히 외도 했다”“일부일처제 그만두기로 했다”윌 스미스 부부의 결혼 생활 할리우드 스타 배우 윌 스미스와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남다른 결혼생활이 화제다. 30일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윌 스미스와 제이다가 최악인 이유: 사이언톨로지 아이들 학교, 기묘한 양육과 버려진 연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해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논란이 됐다. 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과거 자신의 아들보다 6살 많고, 21살 연하인 연하 가수 어거스트 알시나와 불륜을 저질렀다. 당시 어거스트 알시나는 불륜 관계를 인정했다. 더 놀라운 점은 남편 윌 스미스가 이 불륜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윌 스미스는 최근 진행한 GQ와의 인터뷰에서 전한 발언을 전했다. 그는 “제이다는 내가 자란 방식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자랐다”며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서로에게 신뢰와 자유를 줬다, 우리에게 결혼은 감옥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윌 스미스는 “제이다는 관습적인 결혼을 결코 믿지 않았다”며 “제이다에게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관계를 가진 가족이 있었고 그래서 그는 내가 자란 방식과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자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부가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토론이 있었다”며 “우리 관계의 대부분에서 일부일처제가 유일한 관계의 완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월 스미스는 “우리는 서로에게 신뢰와 자유를 줬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도 우리의 방식을 제안하거나 추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준 자유와 무조건적인 지지는 사랑에 대한 최고의 정의다”고 주장했다. 한편 윌 스미스와 제이드는 지난 1997년 결혼해 슬하에 딸 윌로와 아들 제이든, 전처 사이에서 낳은 트레이를 두고 있다.
  • 천상의 포장마차 같은… 귀천 시인의 ‘세상 소풍’ 마지막 그곳

    천상의 포장마차 같은… 귀천 시인의 ‘세상 소풍’ 마지막 그곳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본디 하늘의 사람이었으나 잠시 이곳에 왔다 간 이들이 있다. 시인 천상병도 그중의 하나이다. 아니 그 반대의 경우일까. 그렇다면 땅과 하늘 중에 어느 곳이 ‘소풍’의 자리인가. 천상병은 1930년 1월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태어났다. 간사이에서 초등학교까지 졸업하고 해방과 동시에 부모와 함께 귀국했다. 경남 마산에서 중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던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시 ‘강물’이 문예지에 추천돼 등단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국 통역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951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4학년 때 중퇴를 한다. 부산시장의 공보실장으로 일하다가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됐다. 친구인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빌려 썼던 돈 3만 6500원을 중앙정보부에서 정치 공작금의 일부로 과장해 그를 연루시켜 버린 것이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선고 유예로 풀려난 후에도 4년 동안 행려병자로 살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진 뒤에 1970년에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됐다. 지인들은 천상병의 소식을 알 길이 없자 그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시집 ‘새’를 묶었다. 이 소식이 신문에 실려 널리 퍼지자 서울시립정신병원에서 천상병의 입원 소식을 알려왔다. 친구들이 부랴부랴 그를 찾아갔을 때 그들의 손에는 ‘유고시집’인 ‘새’가 매우 고급스러운 양장본으로 나와 있으니 병실에서 피차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천상병은 말없이 그것을 쓰다듬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매우 건강한 목소리로 일갈한다. “내 인세는 어찌 되었노?”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 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천상병, ‘새’) 버젓이 살아 있는데 뜬금없이 유고시집이 생겼지만, 그는 이 시기에 친구 동생인 목순옥씨가 간병을 해 준 인연을 계기로 1972년에 그와 결혼을 했다. 입때껏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아내가 찻집을 해 얻은 수입으로 조금은 생활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래도 고문의 후유증과 술에 의탁하는 습관 때문에 그의 건강은 날로 나빠질 수밖에 없었고, 1988년 간경변으로 춘천의료원에 입원하기에 이른다. 천상병은 1993년에 간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에 부의금으로 800만원이 들어왔는데, 늘 곤궁하게 살아왔던 그들의 생활에서 가장 크게 만져 봤을 그 돈을 장모가 잘 숨겨 둔다고 숨긴 곳이 바로 아궁이. 또 그의 아내가 불을 지핀 곳도 아궁이. 타고 남은 것 중에서 그나마 건진 돈이 절반가량이었다고 한다. 그의 장모는 딸인 목순옥의 장례까지 치르고도 더 살다가 이듬해인 2011년 4월 딸과 사위를 따라 소천했다. 천상병이 평소 장모의 장례비 걱정을 하며 지냈다는데, 그때 장모의 통장에 남아 있던 돈이 꼭 장례비만큼이었다고 한다. 목씨가 운영했던 인사동 카페 ‘귀천’은 2010년 목씨가 죽은 뒤에도 그의 조카가 이어받아 2호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파주 출판도시에 귀천 3호점이 있다. 천상병의 시와 그의 자취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꾸준히 찾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목씨의 모과차 담그는 솜씨가 일품이어서 전국적으로 그 맛과 천상병의 시를 함께 찾는 이들로 늘 문전성시였다.시인은 생전에 의정부 수락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았다. 열 평 남짓한 슬레이트 지붕의 전형적인 도시 빈민 가옥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장모와 처제도 함께 살았다. 고문의 후유증 탓에 자식도 없고, 크게 일군 재산도 없이 세상을 뜬 그가 남긴 것이라고는 시집 몇 권이 전부였다. 그러니 그가 죽었을 때 그를 기리기 위한 어떤 자취도 제대로 남겨지거나 기려진 것이 없었다. 국가적으로나 의정부시에서도 문화적인 행사나 인물을 제때 의미화하지도 않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충남 안면도에 살던 천상병 시인의 오랜 팬인 모종인씨가 발벗고 나섰다. 농사를 짓고 시를 쓰며 살던 그가 아무 인연도 없던 천상병 시인을 위해 의정부까지 찾아가 그의 집에 있던 문틀과 냄비, 남아 있던 수저 하나까지도 가져와 고택을 고스란히 복원했다. 유족의 허락을 받아 생전의 살림살이들을 가져오고, 시인의 사진과 시 ‘귀천’의 액자를 걸어 두어 천상병과 그의 시를 오가는 이들이 느끼게끔 해두었다. 오가던 이들은 천상병의 생전의 일들을 기억하며 1000원, 2000원씩 그 문틈에 꽂아 두고 가기도 한다. 막걸리값, 노잣돈, 하늘 어딘가에 열고 있을 포장마차의 개시 돈이라고도 한다.“허허, 내가 죽으면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있을 테니 오거든 갚을 만큼의 공짜술을 주겠네”(천상병의 ‘유언’) 천상병의 마지막 거처는 안면도가 됐다. 먼저 하늘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포장마차나 열고 공짜술을 주겠다던 시인이 마지막으로 시와 펜을 남긴 곳이 하필이면 아무 연고도 없는 안면도. 시인의 마지막 공간이 그가 그토록 가고자 했던 바다의 곁이라는 것만으로도 안면도가, 그의 뜻을 이어 준 모종인씨가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남편의 사후에도 끊임없이 시인의 고택을 관리하며 무료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모종인씨의 아내 역시도 품이 넉넉한 사람이었다. 얼마든지 취재하라며, 단지 올여름 장맛비에 곰팡이가 슨 벽지를 아직 일꾼을 구하지 못해 새로 바르지 못해서 면구하다며 애써 손사래를 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다. 그마저도 천상병 시의 일부분같이 느껴지는 것은 바다와 시와, 그 시를 사랑하는 독자가 옮겨 온 고택의 정겨움을 닮은 어떤 것이라 여겨졌다.그렇게 이어온 시인과 시의 마음이 있어 더욱 풍요로운 시인의 땅이 되는 것이 아닌가 되짚어 본 안면도행이었다.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한다던 시인은, 지금쯤 어느 포장마차의 천막을 걷고 있을까. 아니 어느 때고 기분에 따라 장사를 접으며 언제고 자신을 위한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있지 않을까. 언제고 열 수 있는 구름 냉장고에 가득 들어 있는 막걸리를 꺼내며 낮밤 상관없이 찾아든 문우에게 ‘자네 이제야 왔는가’ 하며.그 목소리가 참 맑았다는 사람, 눈웃음이 술잔에 채워진 술처럼 휘어 있던 사람, 안면도의 노을진 수평선처럼 둥글게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도 가며 어딘가로 소풍 떠난 그 사람, 내 사람이 아름답다고 말하며 새를 타고 하늘로 가버린 시인 천상병의 마지막 집이다. 소설가 이은선
  • “시급 125만원 받아요”…4살 키즈모델은 행복할까요?[이슈픽]

    “시급 125만원 받아요”…4살 키즈모델은 행복할까요?[이슈픽]

    시급 125만원 받는 4살 키즈 모델일각에서는 ‘아동학대’ 우려 깜찍한 비주얼과 타고난 연기력으로 톱스타급 인기를 얻은 베트남 출신 4살 키즈 모델이 화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동학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YAN’등 외신은 귀여운 외모와 연기력으로 어린 나이에 높은 출연료를 받는 키즈 모델 겸 아역배우 체리안 닌을 소개했다. 현재 4살인 체리는 2살에 키즈 모델로 데뷔했다. 하얀 피부에 앙증맞은 비주얼 덕분에 단숨에 인기를 얻게 됐다. 모델 활동으로 얼굴을 알린 체리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게 됐다. 체리는 그동안 많은 드라마와 CF,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와 영화 등에 출연했다. 체리는 베트남에서 톱스타급의 고액 출연료를 받고 있다. 그의 출연료는 시간당 2500만동(한화 약 125만원)으로 알려졌다.체리와 함께 촬영했던 배우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도 빠르고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의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비키니 사진 등을 문제 삼았다. 또 2살부터 수 많은 공식행사와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는 체리가 걱정된다는 반응이다. 일부 네티즌은 “4살 아이에게 너무 과한 스케줄인 듯”, “비키니 사진은 좀…”, “너무 어린나이에 힘들겠다”, “엄마도 적당히 돈 욕심 내자”등 반응을 보였다.13살 아역배우 정사신…영화 ‘셋째부인’ 4일만에 상영중단 앞서 베트남에선 미성년 여배우의 정사 장면이 등장해 개봉 4일 만에 상영을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뚜오이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쩐 티 빅 응옥 감독의 독립영화 ‘셋째 부인’이 베트남에서 개봉했다가 4일 만에 상영을 중단했다. 이 작품은 19세기 베트남의 농촌을 배경으로 14살 소녀가 중년인 지주의 셋째 부인이 되는 설정에 조혼과 일부다처제에 따른 여성의 불평등 문제를 다뤘다. 2016년부터 28개 국가 및 지역에서 상영됐고, 지난해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는 최고의 아시아 영화상을 받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그러나 베트남에서는 개봉 직후부터 논란이 일었다. 셋째 부인역을 맡은 응우옌 프엉 짜 미가 제작 당시 만 13살 미만이었음에도 극중 남편과의 정사 장면 등이 다수 등장한다는 이유였다. 현지 네티즌은 어린 여배우가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당시 응옥 감독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과도한 논란으로 짜 미와 그 가족의 사생활까지 영향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상영중단을 결정한 바 있다.
  • 포스코인터, 인니 긴팔원숭이 연구 지원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멸종위기에 처한 ‘긴팔원숭이’ 연구를 지원하고 나섰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3일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팀의 ‘생명다양성을 위한 인도네시아 자바 긴팔원숭이 연구’ 지원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긴팔원숭이는 영장류 중에서도 ‘사람상과’에 속하는 유인원으로 인간과 비슷한 일부일처제 사회를 이루고 있다. 유인원 사회구조의 진화 측면에서 연구 가치가 높은 종으로 알려졌다. 최 석좌교수는 “멸종위기에 처한 긴팔원숭이의 서식처 보호와 개체군 증가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포스코인터, 멸종위기 처한 ‘인도네시아 긴팔원숭이’ 연구 지원한다

    포스코인터, 멸종위기 처한 ‘인도네시아 긴팔원숭이’ 연구 지원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멸종위기에 처한 ‘긴팔원숭이’ 연구를 지원하고 나섰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3일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팀의 ‘생명다양성을 위한 인도네시아 자바 긴팔원숭이 연구’ 지원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앞으로 3년간 이화여대 연구팀의 프로젝트를 지원할 예정이다. 연구팀은 2007년부터 인도네시아 긴팔원숭이의 행동생태 연구 내용을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며 활발하게 연구를 하고 있다. 긴팔원숭이는 영장류 중에서도 ‘사람상과’에 속하는 유인원으로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과는 달리 인간과 비슷한 일부일처제 사회를 이루고 있다. 유인원 사회구조의 진화 측면에서 연구 가치가 높은 종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서식지 파괴와 불법 거래 등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사회적 학습, 주변환경과의 공진화 등 심화 연구로 긴팔원숭이 야생 개체군의 행동 생태를 연구할 계획이다. 최 석좌교수는 “야생 자바 긴팔원숭이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매우 도전적인 일”이라면서 “이번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지원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긴팔원숭이의 서식처 보호와 개체군 증가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시보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면서 회사가 진출한 인도네시아의 생명 다양성 보존 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기쁘다”고 전했다.
  • 공인중개사가 ‘아파트값 띄우기’… 가족 거래 뒤 시세 59% 부풀려

    ‘아파트값 띄위기’로 시세가 54%나 부풀려진 단지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자전거래로 시세를 59% 부풀려 중개한 경우도 드러났다. 국토교통부는 아파트값 띄우기로 시세를 조종한 구체적인 실태를 22일 발표했다. 자전거래는 가격에 영향을 주기 위해 특수관계인(가족)끼리 부동산을 사고 팔거나, 거짓으로 거래가 이뤄진 것처럼 꾸미는 것으로 공인중개사법 위반이다. 공인중개사 A씨는 지난해 6월 시세가 2억 4000만원인 처제의 아파트를 딸 이름으로 3억 1500만원에 사들인 것처럼 신고했다가 해제(9월)하고, 다시 아들이 3억 5000만원에 산 것처럼 신고(11월)했다. A씨는 한 달 만에 이 아파트를 실수요자에게 3억 5000만원에 사도록 중개(12월)했다. A씨는 두 차례 시세를 조종해 처제가 시세보다 46%나 비싼 가격으로 아파트를 처분해 1억 1000만원의 부당 이득을 얻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중개보조원 B씨는 지난해 9월 시세가 5000만원인 아파트를 자신이 7950만원에 사들인 것처럼 신고하고, 즉시 다시 실수요자에게 같은 가격으로 중개해 집주인이 2900만원의 부당 이득을 얻게 했다. 가격 조종으로 아파트 시세를 59%나 올린 경우다. 한 분양대행사는 지난해 7월 시세 2억 2800만원짜리 아파트 2채를 사내 이사 이름으로 2억 9900만원에 판 것처럼 신고하고, 다른 한 채는 대표이사에게 3억 400만원에 판 것처럼 신고해 시세를 조종했다. 이 법인은 같은 달 두 채를 2억 9300만원에 실수요자에게 팔아 1억 3000만원의 부당 이득을 얻었다가 적발됐다. 매도인이 계약 해제를 요청하면서 매수인에게 받은 계약금의 두 배를 반환했으나, 매수인이 이 금액에 대한 기타소득세를 내지 않는 경우도 드러났다. 매수인 C씨는 지난해 11월 계약금 6500만원을 내고 아파트를 사기로 계약을 맺었으나, 한 달 뒤 집주인 사정으로 계약이 깨지면서 계약금의 두 배인 1억 3000만원을 돌려받고도 소득세를 내지 않아 적발됐다.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6건의 자전거래로 시세를 조종해 가격이 54% 올라가기도 했다. 경남 창원에서는 시세가 29% 올랐고, 경기 남양주에서는 자전거래 이후 가격이 약 17% 높아지는 등 시장 교란 행위가 있었다고 국토부는 밝혔다. 국토부는 지난해 하반기 허위신고 의심 사례 2420건을 조사해 이 중 법령 위반 의심 사례로 확인된 69건(자전거래·허위신고 12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고, 탈세 의심 거래는 국세청에 통보했다.
  • 아파트값 띄우기로 시세 54% 부풀려…국토부, 실태 발표

    아파트값 띄우기로 시세 54% 부풀려…국토부, 실태 발표

    ‘아파트값 띄우기’로 시세가 54%나 부풀려진 단지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개업자가 자전거래로 시세를 59% 부풀려 중개한 경우도 드러났다. 국토교통부는 21일 발표한 아파트값 띄우기로 시세를 조종한 구체적인 실태를 22일 발표했다. 한 공인중개사 A씨는 지난해 6월 시세가 2억 4000만원인 처제의 아파트를 딸 이름으로 3억 1500만원에 구입한 것처럼 신고했다가 해제(9월)하고, 다시 아들이 3억 5000만원에 산 것처럼 신고(11월)했다. A씨는 한달만에 이 아파트를 실수요자에게 3억 5000만원에 사도록 중개(12월)했다. A씨는 두 차례 시세를 조종해 처제가 시세보다 46%나 비싼가격으로 아파트를 처분, 1억 1000만원 부당이득을 얻을 수 있게 주도적 역할을 했다. 중개보조원 B씨는 지난해 9월 시세가 5000만원인 아파트를 본인이 7950만원에 사들인 것처럼 신고하고, 즉시 다시 실수요자에게 같은 가격으로 중개해 집주인이 2900만원의 부당이득을 얻게 했다. 가격 조종으로 아파트 시세를 59%나 올린 경우다. 한 분양대행회사는 지난해 7월 시세 2억 2800만원짜리 아파트 2채를 사내 이사 명의로 2억 9900만원에 판 것처럼 신고하고, 다른 한 채는 대표이사에게 3억 400만원에 판 것처럼 신고해 시세를 조종했다. 이 법인은 같은 달 두채를 2억 9300만원에 실수요자에게 팔아 1억 3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가 적발됐다. 매도인이 계약해제를 요청하면서 매수인에게 받은 계약금의 2배를 반환했으나, 매수인이 이 금액에 대한 기타소득세를 납부하지 않는 경우도 드러났다. 매수인 C씨는 지난해 11월 계약금 6500만원을 내고 아파트를 사기로 계약을 맺었으나, 한달 뒤 집주인 사정으로 계약을 해제하면서 계약금의 2배인 1억 3000만원을 돌려받고도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아 소득세법을 위반했다. 자전거래로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6건의 가격 띄우기로 시세가 54% 올라가고, 경남 창원에서는 시세가 29% 올라간 단지가 나왔다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하반기 허위신고 의심사례 2420건(자전거� ㅗ是㎧키恣� 12건)을 조사해 이 중 법령 위반 의심 사례로 확인된 69건을 경찰에 수사의뢰하고 탈세 의심 거래는 국세청에 통보했다.
  • 남아공 정부 “일처다부제 허용”에 아내가 넷인 남편이 맹렬히 반대

    남아공 정부 “일처다부제 허용”에 아내가 넷인 남편이 맹렬히 반대

    21세기에 일부다처제(polygamy)를 주장하는 것은 어지간히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일처다부제(polyandry)를 주장하는 것도 정신줄 놓은 일로 비친다.  그런데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일처다부제를 합법화하자고 제안했던 사실이 공개돼 보수 진영을 뒤집어놓았다고 영국 BBC가 27일 전했다. 세상에서 가장 ‘리버럴’ 헌법을 갖고 있는 남아공은 남녀 모두에 동성애를 허용하고 남성에 일부다처제를 허용했으니 당연히 여성에 일처다부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론 수렴을 위해 정부 견해를 담아 발표하는 문서인 녹서(Green Paper)를 통해 1994년 백인 소수 정권이 끝난 뒤로 혼인법과 관련한 가장 큰 개정 움직임을 주장했다.  남아공 정부는 이번 녹서에 일처다부제뿐만 아니라 무슬림(이슬람교도)과 힌두교도, 유대교도, 라스타파리아니즘(성서를 다르게 해석해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1892∼1975년)를 재림한 그리스도로 섬기는 신앙운동) 결혼 역시 법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담았다.  이 주제에 권위자인 콜리스 마초코 교수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반대하는 이들은 통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라며 “아프리카 사회는 진정한 평등을 향유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통제권 밖에 있는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업인이며 네 부인과 어울려 사는 집안 모습을 리얼리티 예능으로 보여줘 얼굴을 알린 무사 음셀레쿠는 일처다부제에 맹렬히 반대한다. “아프리카 문화를 파괴할 것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느냐. 신원 증명을 어떻게 할지도 의문이다. 여성은 남성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들어본 적도 없다. 이제는 여성이 남성에게 로볼라(지참금)를 지불한다는 것인데, 그럼 남자가 여자 성을 따라야 하는 건가?”  마초코 교수는 이웃 짐바브웨 태생으로 그 나라의 일처다부제를 연구했다. 사회적으로 터부이고 법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결혼 방식이지만 20명의 여성이 45명의 공동남편과 어울려 사는 것을 지켜봤다. “일처다부제는 사회 일부로부터 격렬한 반대를 받기 때문에 지하로 숨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 은밀함은 프리메이슨의 그것과 닮았다. 믿지 못하며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 그런 결혼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부정한다. 천대나 박해를 받을까봐 그러는 것이다.”  마초코 교수가 연구한 이들은 모두 따로 살지만 그네들끼리는 매우 열려 있는 공동체였다. “한 아내는 초등학교 6학년(열두 살) 때부터 일처다부제를 받아들이고 준비했다. 여왕벌이 수많은 일벌들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것을 배운 뒤부터였다.”  어른이 돼 여러 짝과 동시에 성관계를 갖기 시작했는데 다들 아는 사이였다. 지금 아홉 명의 공동남편 가운데 넷은 어린시절 남자친구들이었다. 여자가 우선권을 쥐고, 남편들을 불러들인다. 신랑이 지참금을 챙기기도 하고, 가축을 내기도 한다. 다른 남편들과의 관계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판단하면 공동남편을 내쫓기도 한다.  그가 인터뷰한 남성은 남편을 공유하는 것을 용인한 것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아내를 잃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몇몇 남성은 아내를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해 이혼이나 외도를 피하려고 공동남편을 받아들이는 데 동의했다고 했다. 또 아이를 잉태시킬 수 없어 아내가 아이를 갖도록 다른 남편과 잠자리에 들게 한다는 이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남자들은 공적인 체면을 세우고 거세됐다는 낙인이 찍히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마초코 교수는 남아공에도 일처다부제 가정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젠더인권 활동가들은 정부가 평등과 기회의 관점에서 일처다부제를 허용하는지 묻는다. 아프리칸 기독민주당(ACDP)을 이끄는 케네스 메슈 목사는 “사회를 파괴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남자들이 ‘왜 그 남자와 지내고 나랑은 놀아주지 않느냐’고 얘기한다고 생각해보라. 두 남자에 싸움 나는 건 당연하다.”  이슬라믹 알자마 당의 지도자 가니에프 헨드릭스는 “아이가 태어났는데 수많은 남자의 DNA를 채취해 아빠를 가려야 한다고 상상해보라”면서 말도 안된다고 했다. 음셀레쿠는 남아공인들이 평등의 가치를 너무 좇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헌법에 어떤 것이 보장돼 있다고 마냥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왜 당신은 네 명의 아내를 거느려도 되고, 여자들이 그러면 안된다는 거냐고 묻자 “내 결혼 때문에 위선자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침묵하기보다 떠드는 게 낫다”고 동문서답을 한 뒤 “이건 아프리카다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바꾸지 못한다.  마초코 교수는 한 발 나아가 케냐와 콩고민주공화국, 나이지리아 등에서 도입을 검토했으며 가봉에서도 법으로 허용해 계속 도입 실험 중이다. 그는 “더는 평등은 없으며, 결혼은 계층을 나누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일처다부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의 정확한 신원을 둘러싼 걱정 자체가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에 대한 문제는 간단하다. 그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누구에게서 태어났든지 집안의 아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여성 권리를 위한 로펌인 ‘여성의 법 센터’는 “(정부의 이번) 녹서는 인권을 지키기 위한 시작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견해에 도전한다고 해서 법 개정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 순식간에 ‘와르르’…美플로리다 아파트 붕괴, 99명 실종(종합)

    순식간에 ‘와르르’…美플로리다 아파트 붕괴, 99명 실종(종합)

    “플로리다 아파트 붕괴, 99명 행방불명”실종자 중 파라과이 대통령 처제 있어희망 점점 줄고 있어 나쁜 소식도 대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에 있는 12층 주상복합건물의 일부가 붕괴한 사고에서 최소한 1명이 숨지고 99명이 행방불명됐다고 AFP통신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파트 붕괴 현장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다. 12층짜리 아파트의 북서쪽 절반 가까운 부분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미 당국은 행방불명자들이 모두 사고 당시 아파트에 있었다고 단정 짓지 못한다면서 수색 작업에 주력하고 있지만, 매몰된 희생자가 많을 것으로 우려된다. 대부분 잠들어 있던 시간대…폭파로 철거하듯 ‘폭삭’ CNN 등 미 언론이 보도한 붕괴 순간의 영상에 따르면 마이애미데이드카운티의 12층짜리 챔플레인 타워 사우스 아파트의 중간 부분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후 6∼7초 뒤 그 오른쪽도 뒤따라 붕괴했다. 현장은 폭격을 맞은 듯 먼지가 자욱했다. 붕괴된 시간은 오전 1시 30분쯤으로, 대부분 사람이 잠들어 있던 시간대였다.곳곳 비명 속 대피…“끔찍했다. 최악의 경험” 건물에 있던 사람들은 천둥 같은 소리에 깨어나 건물 밖으로 대피를 시도했다. 가족과 함께 인근 리조트로 대피한 애런 마일스는 “끔찍했다. 아이, 어른 모두 비명을 질렀고 여성과 애들은 울었다”며 “로비로 갔을 때 먼지와 잔해가 가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한 빨리 밖으로 나왔다. 내 인생 최악의 경험”이라고 했다. 24일 오후 현재까지 1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미 경찰은 붕괴한 건물에 사는 99명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아파트 주변에 사는 이들에 따르면 사고 아파트에는 대부분 마이애미에서 일하는 이들이 살고 있고 가족과 노인이 적지 않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파라과이 대통령 부인 가족도 실종된 듯 파라과이 대외관계부는 사고 직후 마리오 압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 부인의 자매와 그 가족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CNN에 밝혔다. 파라과이 정부는 영부인의 자매와 그녀의 남편 및 세 자녀가 이 아파트 10층에 살고 있었다면서 이들이 건물 붕괴 후 실종된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파라과이 정부는 현재까지 총 6명의 자국인이 실종 상태라고 밝혔다. 또 미국 주재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영사관도 이날 붕괴 사고 후 자국민 각 9명, 4명이 실종된 상태라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한국인의 피해 소식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은 24일 오후까지 99명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다고 밝힌 가운데 당국은 사고 현장 인근에 실종자를 찾기 위한 가족상봉센터를 설치했다. 또 행방불명된 친척이나 지인이 있다면 신고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사고원인은 아직…“해당 건물 지붕 공사 중” 보도 나와 건물 붕괴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CNN은 “이 아파트는 지붕 공사를 하던 중”이라며 “하지만 그것이 붕괴의 원인인지는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이 건물은 1981년에 지은 것으로, 만 40년이 된 노후 아파트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사고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연방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다니엘라 레빈 카바 마이애미데이드카운티 책임자는 트위터에 글을 올려 “대통령이 연방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붕괴상황을 다룬바 있는 소방구조대가 온전하거나 붕괴한 건물에서 많은 이들을 구했다”고 했다.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적십자의 도움을 받아 건물 붕괴로 집을 잃은 이재민을 위한 숙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아내와 가족이 가장 많다고 주장한 지오나 차나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아내와 가족이 가장 많다고 주장한 지오나 차나

    세상에서 가장 많은 가족을 거느렸다고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한 명인 인도 미조람주의 76세 남성이 세상을 떠났다.  인도 사람 같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중국인이나 국경을 맞댄 미얀마인의 면모가 엿보이는 지오나 차나(본명은 푸 지온가카)가 화제의 주인공. 가족 수와 관련해 엇갈린 보도가 있다. 아내 38명에 89명의 자녀, 36명의 손주를 뒀다는 기사와 아내 39명에 94명의 자녀, 33명의 손주, 한 명의 증손주를 뒀다는 기사가 있다. 뒤의 숫자에 며느리 14명을 합치면 181명이란 얘기도 있다.  1942년에 할아버지(일부 보도는 아버지) 찰리안 차나가 일부다처제를 신봉하는 기독교의 한 종파로 세운 차나 파울(Chana Pawl)을 지금도 이끌고 있는데 2000명(일부 보도는 4000명) 정도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다. 이 종파는 ‘카 파’로 불리는 교주가 언젠가는 이 세상을 통치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 인도는 일부다처제가 금지돼 있지만 미조람주 등 북동부 일부 주에서는 허용되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13일 당뇨와 고혈압 때문에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고 조람탕가 미조람주 총리가 트위터를 통해 알려 각국에 다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현지 PTI 통신에 따르면 미조람주의 주도 아이자울에서 55㎞ 정도 떨어진 박타웅 틀랑누암에 있는 자택에서 상태가 나빠져 이날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는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차나가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많은 가족을 거느렸는지 실증할 방법은 마땅찮다. 물론 인도 언론과 현지 주민들은 세계 기록 보유자라고 주장하지만 전 세계를 뒤져 확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브루나이 국왕 같은 경우도 이보다 훨씬 많은 혈연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캐나다의 한 남성은 자녀가 15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에 2011년과 2년 뒤 두 차례나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고 또 가족이 드글드글하다는 것이야 부인할 수 없다. 어찌됐든 이들의 집을 보려고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해외 관광객들을 투숙시키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건물까지 들어섰다니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아이들을 세상에 나오게 하고 돌보지 않는 아버지들도 있는데 자손을 낳기만 하고 방임한 것도 아니다. 그의 직업은 건설 인부였다. 모두 ‘추안타르 룬(신세대 가옥)’이란 4층짜리 집에 모여 살고 있다. 방만 100개에 이른다. 주인만 전용 침실에서 자고, 아내들은 그 방 근처의 도미토리(기숙사 방)에 머무르게 했다. 다음부터는 믿기지 않는 얘기다. 남편 침대는 더블베드이며, 아내는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남편과 잠자리를 갖는다. 한 번 퇴짜를 맞으면 참으로 오랫동안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젊은 아내들은 남편과 같은 층에 머무르며, 나이가 든 아내들은 주로 1층에 머무른다. 가장 나이가 많은 아내가 명령하면 다른 아내들과 며느리, 손주며느리까지 절대 복종해 큰 소리 한 번 나오지 않는단다.매일 아침 온 식구가 산에 올라가 손으로 몸을 깨끗이 씻고 하루를 시작한다. 아내들은 집단으로 체조를 한다. 건강해야 주인이자 남편을 잘 섬길 수 있어서라고 한다. 보통 낮에도 7~8명의 아내가 그의 손발을 대신해 거드는 것을 그는 좋아한다. 모두 한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다. 먹거리는 모두 함께 구한다. 자체 학교에다 놀이터, 목공소, 돼지 외양간, 가금류 농장, 무논, 채소밭 등을 갖춰 어느 정도 자급이 가능하다. 한끼 식사에 닭 30마리, 껍질을 벗긴 감자 50㎏, 쌀 100㎏이 들어간단다. 먹거리를 배분하는 모습은 군대 병영을 방불케 한다. 여기까지 믿기지 않는 얘기다.  이 기묘한 가족의 동거 형태를 구경하겠다는 것이 각국 여행객들의 방문 목적이란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1945년에 태어난 고인은 열일곱 살에 세 살 연상의 첫 부인 자티앙기와 결혼한 뒤 가장 많을 때는 한 해에 10번 예식을 올렸다. 마지막 결혼은 2004년에 했는데 신부는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다. 생전에 그는 건강의 비결을 “젊은 아내와의 잠자리”라고 당당히 밝혔다. 영국 일간 더 선과의 인터뷰를 통해선 “하나님의 특별한 자녀인 것처럼 느낀다. 돌봐야 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내게 주셨다. 스스로를 운좋은 남자로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아내 38명, 자녀 89명, 손주는…‘세계 최대 가족’ 인도男 사망 76세

    아내 38명, 자녀 89명, 손주는…‘세계 최대 가족’ 인도男 사망 76세

    일부다처제 허용…덕분에 지역 관광명소‘차나 종파’ 종교집단 수장…17살 첫 결혼100여개 방 있는 4층 건물서 함께 살아손주 33명, 증손자도…현지 언론 181명 보도일부다처제 체제 속에 아내 38명, 자녀 89명, 손주 33명 등을 둬 ‘세계 최대 가족’의 가장으로 불린 인도 남성 시온-아 차나(Zion-a Chana)가 13일 고혈압 등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는 76세. 시온-아의 가족 덕분에 그 마을은 지역 관광명소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 동북부 미조람주의 주총리인 조람탕가는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에 “미조람은 비통한 심정으로 시온-아씨에게 이별을 고했다”고 올렸다. 조람탕가 주총리는 “아내 38명과 자녀 89명을 둔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가족을 이끈 것으로 여겨졌다”며 시온-아 가족 덕분에 그 마을은 중요한 관광 명소가 됐다고 덧붙였다. 인도 언론에 따르면 시온-아는 미조람의 주도 아이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평소 당뇨와 고혈압을 앓아온 시온-아는 최근 상태가 나빠졌고 지난 11일 의식 불명 상태가 됐다고 더힌두는 보도했다. 의사 랄린트루앙가 자하우는 NDTV에 “시온-아는 자택에서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악화돼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으나 도착 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시온-아는 ‘차나 종파’라고 불리는 종교 집단의 우두머리였다. 이 종파는 그의 아버지가 1942년 창시했으며 400여 가족으로 구성된 이 집단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다. 그는 17세 때 3살 연상인 여성과 첫 결혼을 했고 이후 가족의 수가 급속히 늘어났다. 시온-아의 가족은 100여개의 방이 있는 4층짜리 건물에서 살았다. 이 건물의 이름은 ‘신세대 가정’으로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버지가 창시 400여 가족가족구성원이 한 지붕 아래 같이 살아 일부 언론은 시온-아의 가족 수가 조람탕가 주총리가 말한 것보다 더 많다고 보도했다. 더힌두는 “시온-아의 아내와 자녀의 수는 각각 39명과 94명이고 손주와 증손주는 33명과 1명”이라면서 “총 181명의 가족 구성원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았다”고 보도했다. 시온-아의 부인과 자녀들은 각각 다른 방에서 생활했지만, 부엌은 공유했다. 이들이 사는 건물은 미조람주의 주요 관광 명소로도 자리 잡았다. 시온-아의 가족은 방송 프로그램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에도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 소개됐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中 30대 교수 “일부다처제 허용해야” 주장했다가…결국 해임

    中 30대 교수 “일부다처제 허용해야” 주장했다가…결국 해임

    비공식자리에서 국가가 일부다처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중국 유명 대학의 30대 부교수가 결국 해임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13일 보도에 따르면 상하이 화둥이공대학의 국제법 부교수인 바오이난(34)은 최근 법학 전문가들이 모인 SNS 단체 채팅방에서 “중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결혼할 때 ‘평생 수당’과 같은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면서 일부다처제를 거론했다. 바오 부교수의 일부다처제 발언은 대학이 젊은 교수들에게 더 많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주장 중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상하이의 또 다른 명문대인 푸단대학의 39세 수학과 교수가 젊음을 바쳐 일해 온 대학에서 자신을 해임하자, 책임자를 살해한 사건을 예로 들며 나온 이야기였다. 해당 채팅방은 초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제한된 공간이었지만, 같은 채팅방에 있던 누군가가 이를 폭로하면서 바오 부교수에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화둥이공대학 공산당위원회 산하 교사들은 지난 주 성명을 통해 “문제의 부교수가 온라인에 잘못된 견해를 게시했다. 이를 이유로 모든 강의에서 손을 떼도록 지시했다”면서 “향후 추가적인 제재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 측의 강경한 대응은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정책 또는 입장과 맞지 않는 견해에 대한 통제에 따른 것이라 SCMP는 분석했다. 당국의 현재 정책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일부다처제 또는 일처다부제를 찬성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대학교수는 바오 한 명 만은 아니다.말레이시아 출신의 응유쾅 푸단대 경제학 교수는 1년 전 현지의 경제 전문 웹사이트에 “중국 성비는 여성 100명 대 남성 118명“이라면서 중국의 성비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여성이 여러 남편과 결혼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2015년 저장재경대학의 또 다른 교수는 월 수입이 낮은 남성들끼리 똘똘 뭉쳐서 결혼할 만한 여성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발언으로 인권단체의 화살을 맞았다. 한편 일부다처제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중국에서는 경제성장과 함께 공산화 과정에서 일부다처제를 폐지했다. 다만 일부 소수민족 사이에서는 현재까지 일처다부제가 극소수 존재하기도 한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요양병원에 엄마 병문안 가던 딸 참변… 아버지는 버스 앞자리 앉아 목숨 구해

    요양병원에 엄마 병문안 가던 딸 참변… 아버지는 버스 앞자리 앉아 목숨 구해

    ‘가로수’ 아름드리나무가 완충 작용 딸만 찾는 부친에 사망 소식 못 전해 “한두 정거정만 더 가면 집이었는데…”구청 청소 일하던 50대女 유족도 오열“동물을 좋아했어요. 수의사가 되는 것이 꿈인 아이였는데….” 10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 장례식장. 황모(46)씨는 전날 병원 앞 학동4구역 주택 재개발 지역에서 발생한 건물 붕괴 사고로 처제인 김모(30)씨가 사망한 사실이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전날 김씨는 아버지와 함께 ‘운림54번’ 시내버스를 타고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병문안을 가는 길에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참변을 당했다. 함께 버스에 탔던 김씨의 아버지(70)는 중상을 입고 광주기독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버스 뒷자리에, 아버지는 앞자리에 앉으면서 부녀의 생사가 갈렸다. 버스 전면부는 인도에 심어진 아름드리나무가 완충작용을 했지만, 후면부는 콘크리트 더미가 직접 덮쳤다. 병원에 실려 간 아버지는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우리 딸은 괜찮으냐”며 딸의 안위부터 물었고, 내내 딸만 찾았다. 가족들은 차마 김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다섯 자매 중 막내인 김씨는 수의사가 되기 위해 수의과대 편입을 준비하면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바빠도 팥죽집을 운영하는 부모를 돕는 일을 잊지 않았다. 고인의 둘째 형부인 황씨는 “공부도 일도 열심히 하면서 부모를 모신 정말 착한 딸이었다”고 말했다. 김씨 어머니는 지난 4월 말 갑상선암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병문안을 자주 가지 못했던 김씨는 사고 당일 한 달 만에 어머니를 보러 가던 길이었다. 딸 소식을 듣고 요양병원을 나와 장례식장에 달려온 김씨 어머니는 “착하고 예쁜 내 딸을 어떻게 보내나. 내 딸, 내 딸…” 하며 오열했고 장례식장도 울음바다가 됐다. 기독병원에서 만난 박모(60)씨는 올케인 김모(53)씨의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박씨는 “동생(김씨)이 동구청에서 청소 일을 한다. 일을 마치고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사고가 났다”면서 “처음에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동생이 평소 54번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는 걸 알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받지 않았다. 한두 정거장만 가면 집이었는데…”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김씨 유족들은 임택 동구청장이 장례식장을 방문하자 울분을 토했다. 유족들은 동구청장에게 “어떻게 그렇게 공사를 할 수가 있느냐. (구청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백 번도 더 봐야지”라면서 “(건물 붕괴) 영상을 볼 때마다 미쳐 돌아버릴 것 같다”고 토로했다. 조선대병원에서 만난 임모(69)씨는 전날 건물 붕괴 사고로 사망한 임모(64)씨의 작은오빠다. 그는 “큰오빠 집에 다녀온 동생이 연락이 안 돼서 조카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갔더니 동생의 시신이 있었다”면서 “벼락맞은 기분이다. 상상도 못한 일”이라며 울먹였다. 광주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나우뉴스]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 낳은 60대 남성, 17번째 결혼 준비중

    [나우뉴스]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 낳은 60대 남성, 17번째 결혼 준비중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을 둔 짐바브웨 남성이 17번째 결혼식을 준비 중이다. 6일 남부 아프리카 짐바브웨 국영 ‘더 헤럴드’는 죽을 때까지 결혼과 출산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60대 남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수도 하라레 북부에 위치한 마쇼나란드센트럴 음비레 지역에는 전무후무한 대가족을 거느린 이가 산다. 퇴역 군인 미섹 얀도로(66)가 그 주인공이다. 1977년 해방 전쟁에도 참전했던 그는 1983년 첫 번째 결혼 이후 15명의 신부를 추가로 맞이했다. 일부다처제가 만연한 짐바브웨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수준이다. 한 해에 3번 결혼한 적도 있다. 얀도로는 “첫 번째 결혼후 본격적으로 일부다처제 과업에 착수했다. 마지막 결혼은 2015년이었다”고 밝혔다.부인 16명과의 부부 생활을 위해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얀도로는 “아내들은 매일같이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그 중 가장 맛있는 요리만 먹은 뒤 나머지는 버린다. 이를 통해 아내들은 발전의 기회를 얻고, 나는 그날 밤 묵을 방을 정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루 평균 4명의 부인에게 ‘부부관계 권리’를 부여하고, 목표한 침실을 차례로 거치며 내 의무를 다한다. 그게 내 일이다. 다른 하는 일은 없다. 아내들도 행복해한다 정말이다. 나 없을 때 한 번 자유롭게 인터뷰해보라”고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그가 부인 16명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는 모두 151명. 2015년 마지막 결혼 이후 6년간 낳은 자녀만 22명이다. 그 중 한 명은 아버지처럼 일부다처제를 선택했다. 더 헤럴드는 부인 4명을 거느린 얀도로의 아들이 아버지 뒤를 멀찌감치서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얀도로는 이제 17번째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새 신부는 벌써 결혼 준비에 돌입했다. 얀도로는 “올 겨울 17번째 부인을 맞이할 예정이다. 신부는 나중에 공개하겠다”고 우쭐댔다. 16명의 부인을 두고도 결혼을 계속하려는 이유는 뭘까. 얀도로는 “자녀를 더 낳고 싶은데, 나이 든 아내가 많아 젊은 부인을 얻고자 함”이라고 답했다.경제적 부담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참전 용사고, 정부가 아이들 양육비를 보조해준다. 장성한 자녀에게서 받는 지원도 많다. 문제 없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얀도로는 최근 정부에서 대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부지도 할당받았다. 얀도로는 “세계는 아프리카 인구를 줄이지 못해 안달이지만 나는 반대다. 할 수만 있다면 100명의 부인과 1000명의 자녀를 갖고 싶다. 하늘이 허락하는 날까지, 죽는 그날까지 과업 달성 위해 멈추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종교적 이유로 미성년자와 결혼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빈곤률이 높은 짐바브웨에서는 일부다처제와 가난이 복합적으로 작용, 어린 딸을 식량과 맞바꾸는 조혼이 기승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 낳은 60대 남성, 17번째 결혼 준비중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 낳은 60대 남성, 17번째 결혼 준비중

    부인 16명과 자녀 151명을 둔 짐바브웨 남성이 17번째 결혼식을 준비 중이다. 6일 남부 아프리카 짐바브웨 국영 ‘더 헤럴드’는 죽을 때까지 결혼과 출산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60대 남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수도 하라레 북부에 위치한 마쇼나란드센트럴 음비레 지역에는 전무후무한 대가족을 거느린 이가 산다. 퇴역 군인 미셱 얀도로(66)가 그 주인공이다. 1977년 해방 전쟁에도 참전했던 그는 1983년 첫 번째 결혼 이후 15명의 신부를 추가로 맞이했다. 일부다처제가 만연한 짐바브웨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수준이다. 한 해에 3번 결혼한 적도 있다. 얀도로는 “첫 번째 결혼후 본격적으로 일부다처제 과업에 착수했다. 마지막 결혼은 2015년이었다”고 밝혔다.부인 16명과의 부부 생활을 위해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얀도로는 “아내들은 매일같이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그 중 가장 맛있는 요리만 먹은 뒤 나머지는 버린다. 이를 통해 아내들은 발전의 기회를 얻고, 나는 그날 밤 묵을 방을 정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루 평균 4명의 부인에게 ‘부부관계 권리’를 부여하고, 목표한 침실을 차례로 거치며 내 의무를 다한다. 그게 내 일이다. 다른 하는 일은 없다. 아내들도 행복해한다 정말이다. 나 없을 때 한 번 자유롭게 인터뷰해보라”고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그가 부인 16명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는 모두 151명. 2015년 마지막 결혼 이후 6년간 낳은 자녀만 22명이다. 그 중 한 명은 아버지처럼 일부다처제를 선택했다. 더 헤럴드는 부인 4명을 거느린 얀도로의 아들이 아버지 뒤를 멀찌감치서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얀도로는 이제 17번째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새 신부는 벌써 결혼 준비에 돌입했다. 얀도로는 “올 겨울 17번째 부인을 맞이할 예정이다. 신부는 나중에 공개하겠다”고 우쭐댔다. 16명의 부인을 두고도 결혼을 계속하려는 이유는 뭘까. 얀도로는 “자녀를 더 낳고 싶은데, 나이 든 아내가 많아 젊은 부인을 얻고자 함”이라고 답했다.경제적 부담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참전 용사고, 정부가 아이들 양육비를 보조해준다. 장성한 자녀에게서 받는 지원도 많다. 문제 없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얀도로는 최근 정부에서 대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부지도 할당받았다. 얀도로는 “세계는 아프리카 인구를 줄이지 못해 안달이지만 나는 반대다. 할 수만 있다면 100명의 부인과 1000명의 자녀를 갖고 싶다. 하늘이 허락하는 날까지, 죽는 그날까지 과업 달성 위해 멈추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종교적 이유로 미성년자와 결혼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빈곤률이 높은 짐바브웨에서는 일부다처제와 가난이 복합적으로 작용, 어린 딸을 식량과 맞바꾸는 조혼이 기승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아빠 어딨는지 말해” 4살 딸까지 구금해 심문한 미얀마 군경

    “아빠 어딨는지 말해” 4살 딸까지 구금해 심문한 미얀마 군경

    미얀마군이 반군부 활동을 하는 남성을 찾으려 일가족을 구금한 채 네살배기 딸에게까지 아빠의 소재를 캐묻는 등 시위 무력화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7일 미얀마 현지 매체에 따르면 미얀마 군경은 이틀 전 바고 지역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공보책임자 자 레이의 가족 및 친지 6명을 15시간가량 구금했다. NLD는 아웅 산 수 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문민정부의 집권당이었다. 자 레이는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반대 시위를 이끌고 있다. 이에 군부는 코로나19 예방 조치를 어겼다는 이유로 자 레이를 기소했고, 그는 집을 떠나 도주 중이다. 군부는 가족들에게 자 레이의 자수를 종용하며 압박했다고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전했다. 자 레이에 따르면 군경은 6차례 이상 집을 찾아와 그의 행방을 묻고 자수를 권유하라고 종용했다. 군경의 압박에 두려움이 커진 아내는 4살 딸을 친정에 맡기고 다른 곳에 몸을 숨겼다. 그런데 5일 새벽 일찍 자 레이의 장모와 처제 등이 그의 딸을 다시 엄마에게 데려가던 중 군경에 붙잡히고 말았다. 붙잡힌 일행 중에는 자 레이의 4살 딸 외에도 두살배기 조카딸, 그리고 그의 13살 오빠 등 아이 3명이 포함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이들은 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은 뒤 다시 군부대로 옮겨졌다. 한 친척은 매체에 “아이들이 겁에 질린 와중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자 레이가 어디 있는지를 캐물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자 레이가 어딨는지 진짜로 모른다는 걸 알고 나서야 우리를 풀어줬다”고 했다. 이 친척은 “자 레이의 딸은 이미 부모와 떨어지는 바람에 정신적 외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이번에 군경에 체포되면서 더 큰 트라우마를 겪을 것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딸의 소식을 전해들은 자 레이는 또다른 매체 미얀마 나우에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을 체포하거나 어디론가 데려갈 이유가 없다”면서 “내 딸은 너무나 어리다. 이는 국제법과 아동인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프랑스 하원, 인종차별 논란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방지법 통과

    프랑스 하원, 인종차별 논란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방지법 통과

    무슬림 관습을 금지·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프랑스의 ‘공화국 원칙 강화 법안’이 인종차별 논란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표차로 프랑스 하원에서 16일(현지시간) 가결됐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행정부가 강하게 추진하는 법안이다. 프랑스 하원은 이날 찬성 347명 대 반대 151명, 기권 65명으로 법안을 가결해 상원으로 넘겼다. 법안에는 ‘무슬림’이나 ‘이슬람’ 같은 단어가 명시되어 쓰이지 않았지만, 조항마다 무슬림의 교육 방식이나 종교시설 운영 방식을 통제하는 내용이 망라됐다. 법안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예배시설로 등록해 교육 등 다른 목적으로 쓰는 활동을 제한했다. 모스크가 1만 유로(약 1340만원) 이상 기부 받으면 관계 당국에 신고토록 했다. 또 만 3세가 되면 프랑스 정규교육을 받도록 규정, 유아기에 극단주의 교육에 노출될 가능성을 차단했다. 의사에게 혼전 성관계가 없었다는 ‘처녀 증명서’ 발급을 금지하고, 일부다처제나 강제결혼을 단속할 수 있는 근거도 법안에 마련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 풍자 만화를 교재로 활용한 중학교 역사 교사가 파리에서 10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피살당한 사건이 벌어진 이후 강경 대응을 예고한 뒤 법안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법안 표결을 이틀 앞둔 지난 14일 파리에 모인 시위대는 “한 사람의 끔찍한 행동 때문에 전체 커뮤니티를 공격하는 법”이라거나 “무슬림에 대해 낙인을 찍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은 마크롱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우파 유권자에게 구애하기 위해 무슬림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안 초안을 작성한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엄격한 법이다. 그러나 공화국을 위해 필요한 법안이다”라고 강조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들어가며

    2021년 신축년, ‘하얀 소의 해’가 본격적으로 밝았습니다. 예로부터 흰 소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올 연휴에는 고향 가는 길이 여의치 않지만, 천연두를 막아낸 백신이 소를 이용한 ‘우두법’에서 유래했듯이 올해는 코로나19를 이겨내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지속된 ‘집콕’ 생활로 우울해진 독자 여러분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자 올해에도 단편소설 6편을 담아 봤습니다. 명절마다 고심해서 넣는 작품은 가족에 관한 소설입니다. 명절엔 그 어느 때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송지현 작가의 ‘오늘의 가족’은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시골 장례식장에 모인 다양한 가족·친지들과의 옛 추억을 담았습니다. 미주는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빈소에 늦게 도착합니다. 평소에는 보기 어렵던,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이모들과 사촌 형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는 친한 사촌도, 얄미운 사촌도 있습니다. 한기가 느껴지는 입관식, 장례를 치른 뒤 모여 앉아 치는 고스톱 등 요즘엔 사라져 가는 듯한 정겨운 풍경에서 정을 느낍니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공부 잘하니?” “직장은 구하고 있니?” “결혼은 언제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죠. 김세희 작가의 ‘프리랜서의 자부심’은 직업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입니다.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앞둔 민용은 진취적이고 본인의 일을 사랑하는 여성입니다. 엄마는 민용이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프리랜서로 일하는 현실이 못마땅합니다. 거대 조직에 속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아성찰과 발전을 할 수 있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민용의 생각을 공유해 봅니다. 김병운 작가의 ‘한밤에 두고 온 것’은 성소수자인 연극배우의 삶과 고민을 담았습니다. ‘나’는 부업으로 하던 희곡 낭독 수업에서 만난 곱창집 여주인으로부터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앞에서 아들인 것처럼 연기해 달라는 부탁을 듣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친구 앞에서 남들처럼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절실함과 묘한 질투감, 과거 사연이 드러나면서 소설에 흠뻑 빠져든 우리들의 밤도 깊어집니다. 편혜영 작가의 ‘미래의 끝’은 열 살 소녀의 눈으로 본, 어린 시절 ‘보험 아줌마’에 얽힌 추억 이야기입니다. ‘아모레 언니’(화장품 외판원)와 ‘동방생명 아줌마’(보험 설계사)는 인터넷과 온라인 쇼핑이 없던 1980년대 유년기를 보냈던 이들의 추억을 자극합니다. 대학 문턱에 가보지 못한 엄마는 한참 어린 딸의 대학 학비가 무료라는 말을 듣고 보험에 가입합니다. 외로운 소녀에게 정기적으로 집에 찾아오는 동방생명 아줌마는 가족이나 친구처럼 다정다감합니다. 하지만 집안에 닥친 갑작스런 사건으로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장면엔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위수정 작가의 ‘은의 세계’와 임선우 작가의 ‘여름은 물빛처럼’은 현재 코로나19를 배경으로 해 신선한 매력이 있습니다. ‘은의 세계’는 신혼부부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하지 못하게 된 남편 지환이 코로나19로 일터를 잃게 된 처제에게 청소 서비스를 맡기면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아내와 처제의 관계, 죽은 아내의 오빠에 대한 사연 등이 드러나면서 모호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여름은 물빛처럼’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영화관 여성 직원의 이야기지만, 사람이 나무로 변해 버린다는 독특한 상상력이 흥미롭습니다. 여자친구 선영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은 남자 ‘산’이 선영이 사는 집에 찾아왔지만, 선영은 한 달 전에 계약만료로 나가고 룸메이트였던 ‘나’만 집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산은 발이 바닥에 붙어 뿌리를 내린 나무가 돼 집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산과 함께 지내는 나의 심경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과거와 현재, 가족과 친구, 현실과 상상이 두루 어우러진 소설과 함께 신선한 즐거움과 포근한 정감 가득한 설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춘재 누명 쓴 동생 매질 또 매질… 결국 암 생겨 27세에 떠나”

    “이춘재 누명 쓴 동생 매질 또 매질… 결국 암 생겨 27세에 떠나”

    1990년 1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악기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던 동생이 갑자기 사라졌다. 일주일 뒤 동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 벌어진 화성 여중생 살인사건(이춘재 9차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뉴스에서였다. 영상 속 윤모(당시 20세)군은 모자이크 된 채였지만 영락없는 동생이었다. “그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일주일 동안 사라졌던 동생이 TV에 살인범으로 나오고 있었었으니까. 부모님이나 저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죠.” 지난 2일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난 윤씨의 형 윤동기(57)씨에겐 30년 전 그날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가족들이 동생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명백했다. 동생을 범인으로 지목한 경찰이 5일 동안 동생을 감금한 채 거짓 조서를 쓰게 했기 때문이다. “수사관들이 여럿 붙어서 겁박하고 마대자루에 넣어 때리는데 무슨 수로 버티겠어요. 가족한테서도 아무 연락이 없으니 ‘가족마저 나를 버렸구나’ 싶어 자포자기한 거였죠.” 동생은 밤낮없이 이어진 경찰의 가혹행위에 27차례나 거짓 진술서를 썼다. 남은 건 경찰이 불러준 대로 현장 검증을 하는 것뿐이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윤씨는 곧장 변호사를 선임해 현장 검증이 이뤄지던 곳으로 향했다. “동생을 처음 딱 봤는데 덩치도 있던 녀석이 잔뜩 주눅이 들어선 고개를 들질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동생한테 가서 말했어요. “○○아 형이 왔다. 변호사도 사서 왔다. 담임선생님, 친구들, 동네 사람들 아무도 네가 했다고 생각 안 한다. 그러니까 이제 바른 대로 말해라”라고요. 그제서야 동생이 저를 보면서 “나는 범인 아닙니다” 하는 거예요. 그대로 검증이고 뭐고 전부 철수했죠.” 이튿날 동생은 전날보다 부은 얼굴에 반질반질한 연고를 잔뜩 바른 모습으로 면회실에 나타났다. ‘혐의를 부인한다며 경찰들이 또 매질을 한 거구나’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동생은 수사기관이 일본에 의뢰한 유전자 검사 결과가 도착해서야 겨우 살인 혐의를 벗었다. 그러나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기까지 3개월 동안 독방에 구금됐다. ●강제 추행 누명 씌워 집유… 3개월 독방 수감 윤씨는 경찰이 동생을 흉악범으로 만들기 위해 강제추행이라는 ‘누명’을 씌웠다고 보고 있다. 당시 피해자의 아버지였던 이발소 주인은 10여년 뒤 윤씨에게 ‘그땐 미안했다. 증거도 없고 범인이 누구라고 지목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도와 달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동생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을 시간에 일어난 여러 건의 강제추행 혐의를 뚜렷한 증거 없이 엮으려 한 정황도 훗날 드러났다고 윤씨는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지만 평범한 삶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범인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탓일까. 동생의 몸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 첫 수술에서만 4개의 갈비뼈를 제거했다. 가장 역할을 하던 윤씨는 동생과 부모님이 충격을 받을까 봐 암이란 단어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얼마 뒤 동생의 병이 재발하면서 그마저도 소용없게 됐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는 생전 땅을 사기 위해 모아 뒀던 돈을 5000원짜리 뭉치로 보자기에 고이 싸뒀었는데, 그 돈마저 동생의 변호사 선임비나 병원비에 전부 들어갔다. 강력한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게 된 동생을 집으로 데려온 것도 입원비를 댈 형편이 못 돼서였다. “몸에 주먹보다 커다란 욕창까지 생겨 매분 매초가 고통스러웠을 텐데 어떻게 집에서 버티겠습니까. 견디기 어려웠던 동생이 어머니한테 ‘뭐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해 어머니가 자릴 비웠을 때 직접 119에 연락해서 병원에 갔을 정도니까요.” 7살 터울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1997년 결국 스물일곱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재발 이후 5년간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동생은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서 당한 일들에 대해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범의 혈액형으로 알려졌던 B형(실제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기만 해도 잡혀 가던 시절이어서였는지, 가족들 모두 이미 고통 속에 살고 있어서였는지 윤씨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직 진범이 잡히지 않은 때였고, 사람들의 관심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당시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나왔다. 감독은 이듬해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에 용의자로 등장한 박현규(배우 박해일 분)의 모델이 1997년 병으로 사망한 공장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언급했다. 경찰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점, 외국(미국)에서 온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 결국 풀려 났다는 점 등 동생과 닮은 점이 많았다. 정작 윤씨는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동생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한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을 그린 건데 어떻게 그걸 보겠습니까. 개봉 전에 동생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었고, 거기 용의자로 나온 사람은 다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진범이 잡히기 전에 개봉한 영화라 당시엔 박현규가 진범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른 출연 배우도 시나리오상 박현규가 범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9년 사건 발생 30여년 만에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이춘재를 지목했다. 1994년 처제를 강간한 후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그는 그해 10월 자신이 처제 살해 외에도 14건의 살인과 34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윤씨, 진범 이춘재 중학교 급우로 기억해 윤씨는 ‘이춘재’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중학교를 함께 다니며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급우였다. “설마설마했어요. 같은 중학교에 남학생이 120명밖에 없었는데 그중 하나였으니까.” 이춘재로 인해 억울한 일을 겪은 동생을 안타까워하던 윤씨는 동시에 과거 어머니가 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1980년대 중반 동네에서 칼에 13차례나 찔린 채로 발견됐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범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윤씨는 해당 범행이 이춘재의 소위 1차 연쇄 강간 사건(1986)보다 앞서 벌어진 것이긴 하나 이춘재의 범행 수법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봤다. “당시 어머니가 40대였는데 이춘재는 나이를 가리지 않았잖아요. 범행 도중에 입에 흙을 집어넣고 ‘서방은 뭘 하냐, 아들은 뭘 하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어머니를 공격한 범인이 만일 이춘재라면, 그때 이춘재가 잡혔다면 가족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어머니 동네서 13차례 칼에 찔려… 수법 유사 윤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윤씨는 진범이 드러나자 동생이 입은 피해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사기관에 동생의 수사 자료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도 했다. A4 용지 6상자에 달하는 서류가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 받은 건 일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조사관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달 25일엔 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이나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 ‘초등생 살인사건’ 피해자 고 김현정양의 아버지 김용복씨와 함께 ‘이춘재 피해자들’을 대표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찾았다. 과거 공권력의 반인권적인 행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춘재가 자백한 살인 범죄는 모두 그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성폭행·강도 범행 34건 중 25건은 증거 부족이나 피해자 진술 부족 등을 이유로 범죄 혐의에서 빠진 상태다. 이춘재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다. 그때 당시 진범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던 피해자 외에도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의 가족도 그만큼 고통받았다. “사람들이 물어봐요. 소송 생각은 안 해봤냐고. 지금까진 정말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럴 여력이 없었어요.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였고요. 근데 이제 저희를 돕겠다고 나서 준 변호사들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동생의 억울한 마음도 풀고, 어머니 사건의 진상도 캤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혈안이 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던 나쁜 사람들 전부 책임을 져야지요.”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이춘재 대신 범인으로 몰려 고초 겪은 동생…암으로 27살에 세상 떠나”

    “이춘재 대신 범인으로 몰려 고초 겪은 동생…암으로 27살에 세상 떠나”

    이춘재 사건 범인으로 몰린 동생경찰 가혹행위에 27차례 거짓 진술유전자 불일치로 결국 무혐의 판정석방 후 원인불명 악성 종양 발견중학교 동창이던 이춘재 자백에피습 당한 어머니 사연 떠올라1990년 1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악기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던 동생이 갑자기 사라졌다. 일주일 뒤, 동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 벌어진 화성 여중생 살인사건(이춘재 9차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뉴스에서였다. 영상 속 윤모군(당시 20세)은 모자이크 된 채였지만 영락 없는 동생이었다. “그 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일주일 동안 사라졌던 동생이 TV에 살인범으로 나오고 있었었으니까. 부모님이나 저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죠.” 지난 2일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난 윤씨의 형 윤동기(57)씨에겐 30년 전 그날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가족들이 동생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명백했다. 동생을 범인으로 지목한 경찰이 5일 동안 동생을 감금한 채 거짓 조서를 쓰게 했기 때문이다. “수사관들이 여럿 붙어서 겁박하고 마대자루에 넣어 때리는데 무슨 수로 버티겠어요. 가족한테서도 아무 연락이 없으니 ‘가족마저 나를 버렸구나’ 싶어 자포자기 한 거였죠.” 동생은 밤낮없이 이어진 경찰의 가혹행위에 27차례나 거짓 진술서를 썼다. 남은 건 경찰이 불러준 대로 현장 검증을 하는 것 뿐이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윤씨는 곧장 변호사를 선임해 현장 검증이 이뤄지던 곳으로 향했다. “동생을 처음 딱 봤는데 덩치도 있던 녀석이 잔뜩 주눅이 들어선 고개를 들질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동생한테 가서 말했어요. “○○아 형이 왔다. 변호사도 사서 왔다. 담임 선생님, 친구들, 동네 사람들 아무도 네가 했다고 생각 안 한다. 그러니까 이제 바른대로 말해라”라고요. 그제서야 동생이 저를 보면서 “나는 범인 아닙니다”하는 거에요. 그대로 검증이고 뭐고 전부 철수했죠.” 이튿날 동생은 전날보다 부은 얼굴에 반질반질한 연고를 잔뜩 바른 모습으로 면회실에 나타났다. ‘혐의를 부인한다며 경찰들이 또 매질을 한 거구나’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동생은 수사기관이 일본에 의뢰한 유전자 검사 결과가 도착해서야 겨우 살인 혐의를 벗었다. 그러나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기까지 3개월 동안 독방에 구금됐다. 윤씨는 경찰이 동생을 흉악범으로 만들기 위해 강제추행이라는 ‘누명’을 씌웠다고 보고 있다. 당시 피해자의 아버지였던 이발소 주인은 10여년 뒤 윤씨에게 ‘그 땐 미안했다. 증거도 없고 범인이 누구라고 지목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도와달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동생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을 시간에 일어난 여러 건의 강제추행 혐의를 뚜렷한 증거 없이 엮으려 한 정황도 훗날 드러났다고 윤씨는 말했다. “억울하게 죽어 간 하나뿐인 동생”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지만 평범한 삶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범인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탓일까. 동생의 몸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 첫 수술에서만 4개의 갈비뼈를 제거했다. 가장 역할을 하던 윤씨는 동생과 부모님이 충격을 받을까봐 암이란 단어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얼마 뒤 동생의 병이 재발하면서 그마저도 소용없게 됐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는 생전 땅을 사기 위해 모아뒀던 돈을 5000원짜리 뭉치로 보자기에 고이 싸뒀었는데, 그 돈마저 동생의 변호사 선임비나 병원비에 전부 들어갔다. 강력한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게 된 동생을 집으로 데려온 것도 입원비를 댈 형편이 못 돼서였다. “몸에 주먹보다 커다란 욕창까지 생겨 매분 매초가 고통스러웠을텐데 어떻게 집에서 버티겠습니까. 견디기 어려웠던 동생이 어머니한테 ‘뭐 좀 사다달라’고 부탁해 어머니가 자릴 비웠을 때 직접 119에 연락해서 병원에 갔을 정도니까요.” 7살 터울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1997년 결국 스물 일곱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재발 이후 5년간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동생은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서 당한 일들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범의 혈액형으로 알려졌던 B형(실제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기만 해도 잡혀가던 시절이어서였는지, 가족들 모두 이미 고통 속에 살고있어서였는지 윤씨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직 진범이 잡히지 않은 때였고, 사람들의 관심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살인의 추억, 어떻게 보겠나” 그로부터 5년 뒤,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당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나왔다. 감독은 이듬해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에 용의자로 등장한 박현규(배우 박해일)의 모델이 1997년 병으로 사망한 공장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언급했다. 경찰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점, 외국(미국)에서 온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 결국 풀려났다는 점 등 동생과 닮은 점이 많았다. 정작 윤씨는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동생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한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을 그린 건데 어떻게 그걸 보겠습니까. 개봉 전에 동생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었고, 거기 용의자로 나온 사람은 다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진범이 잡히기 전에 개봉한 영화라 당시엔 박현규가 진범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른 출연 배우도 시나리오 상 박현규가 범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9년, 사건 발생 30여년 만에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이춘재를 지목했다. 1994년 처제를 강간 후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중이던 그는 그해 10월 자신이 처제 살해 외에도 14건의 살인과 34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피습 당한 어머니 사건 해결됐더라면” 윤씨는 ‘이춘재’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중학교를 함께 다니며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급우였다. “설마설마 했어요. 같은 중학교에 남학생이 120명 밖에 없었는데 그 중 하나였으니까.” 이춘재로 인해 억울한 일을 겪은 동생을 안타까워하던 윤씨는 동시에 과거 어머니가 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1980년대 중반 동네에서 칼에 13차례나 찔린 채로 발견됐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범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윤씨는 해당 범행이 이춘재의 소위 1차 연쇄 강간 사건(1986)보다 앞서 벌어진 것이긴 하나 이춘재의 범행 수법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봤다. “당시 어머니가 40대였는데 이춘재는 나이를 가리지 않았잖아요. 범행 도중에 입에 흙을 집어 넣고 ‘서방은 뭘 하냐, 아들은 뭘 하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어머니를 공격한 범인이 만일 이춘재라면, 그 때 이춘재가 잡혔다면 가족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윤씨는 생각했다. 윤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윤씨는 진범이 드러나자 동생이 입은 피해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사기관에 동생의 수사자료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도 했다. A4용지 6상자에 달하는 서류가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 받은 건 일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조사관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달 25일엔 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이나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 ‘초등생 살인 사건’ 피해자 고 김현정 양의 아버지 김용복씨와 함께 ‘이춘재 피해자들’을 대표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찾았다. 과거 공권력의 반인권적인 행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춘재가 자백한 살인 범죄는 모두 그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성폭행·강도 범행 34건 중 25건은 증거 부족이나 피해자 진술 부족 등을 이유로 범죄 혐의에서 빠진 상태다. 이춘재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다. 그 때 당시 진범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던 피해자 외에도 수사 기관의 무리한 수사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의 가족도 그만큼 고통받았다. “사람들이 물어봐요. 소송 생각은 안해봤냐고. 지금까진 정말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럴 여력이 없었어요.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였고요. 근데 이제 저희를 돕겠다고 나서준 변호사들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동생의 억울한 마음도 풀고, 어머니 사건의 진상도 캤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 혈안이 되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던 나쁜 사람들 전부 책임을 져야지요.” 화성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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