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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 불륜동영상 자녀에게 보여준 남편, 위자료 감액”

    아내의 불륜 장면이 찍힌 사진을 자녀에게 보여 준 남편에게 법원이 “잘못된 처신을 했다.”며 아내의 이혼 위자료를 감액하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가정법원 1부(부장 손왕석)는 아내 A(49)씨가 남편 B(54)씨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A씨가 B씨에게 주어야 할 위자료를 원심보다 1000만원 줄여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고 6일 밝혔다. 또 B씨는 A씨에게 재산분할로 1억 7000만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재판부는 혼인관계가 파탄된 것에 대해 A씨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며 위자료 지급 의무를 인정했다. 하지만 “피고가 자녀에게 원고의 불륜 장면이 담긴 동영상의 음향을 듣게 하거나, 동영상을 인화한 사진을 보여주는 등 매우 부적절한 행동을 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A씨는 대우교수인 B씨와 1991년 결혼했지만, 신혼 초부터 각방을 쓰기 시작해 점점 대화가 단절됐다.두 사람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게 된 것은 B씨가 지인에게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 관계를 맺는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유포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서부터다. 격분한 B씨는 문제의 동영상을 찾아내 아들(19)과 딸(17)이 함께 있는 거실 앞에서 영상의 소리를 듣게 하고, 부부싸움을 말리는 딸에게는 영상을 사진으로 인화해 보여주기까지 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딸은 A씨와의 만남을 거부하게 됐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신아람 두 번 울렸다

    국제펜싱연맹(FIE)이 ‘멈춰진 1초’에 희생된 신아람(26·계룡시청)에게 특별 메달을 수여하겠다고 나섰다. 대한체육회는 당사자의 의견도 묻지 않고 FIE의 제안을 불쑥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영문을 모르는 신아람을 두 번이나 울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1일 런던올림픽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FIE가 신아람의 스포츠맨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며 특별 메달을 주겠다고 제안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메달의 형태나 수여 방법, 절차 등에 대해서는 FIE와 협의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앞서 FIE 회장과 사무총장을 만나 말썽을 일으킨 시간계측 실수 등을 인정하고 관련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와 함께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FIE는 우리 선수단이 정식으로 제출한 소청을 기각했다. 신아람의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다는 박 회장은 “그 자리에서 FIE 사무총장에게 ‘불공정하다. 어린 선수가 올림픽을 위해 4년을 준비했는데 너희가 판정을 제대로 했다면 이 선수는 최소 은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항의했지만 FIE 쪽은 ‘뭐가 잘못됐는지 알고 있지만 룰에 따라 해석을 해야 한다. 사정을 봐줄 수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FIE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스포츠중재재판소 제소도 포기한다고 밝혔지만 신아람은 영국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메달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마음이 편해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오심이라고 믿기 때문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메달이 아니라 사과를 받고 싶다.”고 답했다. 박 회장의 가벼운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FIE가 코미디를 하고 있다. 특별 메달이 의미하는 것은 오심이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묻고 “이 상을 수용한 대한체육회의 처신은 적절치가 않다.”고 지적했다. 체육회는 급하게 자료를 돌려 “신아람은 선배 최병철의 경기를 보던 중 ‘나는 특별 메달이 뭔지 모른다. 따라서 받는다, 안 받는다 말할 입장이 못 된다’고 답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사설] 중국은 이래도 김영환씨 고문 부인할텐가

    지난 3월 중국 공안에 붙잡혀 4개월 가까이 억류됐던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그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고문 상황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그가 밝힌 내용을 보면 한마디로 중국이 ‘인권야만국’임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고압 전기봉을 가슴·등에 갖다대는 전기고문, 얼굴에 피멍이 생길 때까지 때리는 집중 구타, 6일 연속으로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 등 야만적인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동안 김씨에 대한 고문이 알려지기는 했으나 이번에 본인이 직접 밝혔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21세기에도 이 같은 반문명적인 폭력이 세계 대국인 중국에서 일어났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문제는 ‘오리발’로 일관하고 있는 중국의 후안무치한 태도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김씨 사건을 처리한 관련 부문은 법에 의거해 한국 측 혐의자들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장했다.”고 강변했다. 김씨 스스로 고문의 실체를 밝혔음에도 중국이 전면 부인하는 것은 한마디로 오만의 표시다. 중국이 1988년 가입한 유엔의 고문방지협약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국의 인권 변호사 천광청도 지난 5월 “중국에서는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고문이 횡행하고 있다.”고 폭로했고, 유엔고문방지위원회도 2008년 중국에서 고문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런데도 고문 문제가 제기되기만 하면 ‘근거가 없다.’며 둘러대고 있으니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고문방지 협약에 명시된 대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전기고문에 대해 사과하고 관련 책임자 처벌을 약속해야 한다. 그게 G2(글로벌 대국)의 위상에 걸맞은 처신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세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고문을 묵인·방조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중국의 진정성 있는 조치를 촉구한다. 우리 정부도 좀 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는 그제 하금렬 대통령실장이 국회에 출석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할 생각”이라고 밝힌 점에 주목한다. 정부의 공언대로 모든 노력을 다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 중국의 야만적인 고문행위를 적극 알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고문 재발을 막는 길이다.
  • 9년전 분식회계 최태원 회장 ‘구명운동’ 서명

    9년전 분식회계 최태원 회장 ‘구명운동’ 서명

    재벌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003년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명 운동에 나섰던 사실이 30일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안 원장은 2003년 4월 서울중앙지검에 구속된 최 회장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브이 소사이어티’ 회원들과 함께 탄원서를 제출했다. 브이 소사이어티는 최 회장 주도로 2000년 9월 결성된 대기업·벤처기업 유명 최고경영자(CEO)들의 친목 모임이다. 당시 브이 소사이어티는 안 원장을 포함해 신동빈 현 롯데그룹 회장, 이웅렬 현 코오롱 회장 등 재벌 2, 3세 기업인과 벤처 기업인들이 각각 2억원씩 출자해 설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2003년 2월 1조 5000억원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된 뒤 8·15 특별사면을 받았다. 재벌 총수에 대한 전형적인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은 사례다. 안 원장은 최근 출간한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가벼운 형을 선고하고 쉽게 사면해 주는 관행도 바뀌어야 정의가 선다.”면서 재벌 개혁을 강조한 바 있어 말과 행동이 다른 게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안 원장은 보도가 나온 이날 오후 유민영 대변인을 통해 직접 작성한 글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안 원장은 보도자료에서 당시 최 회장 구명 운동에 참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인정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는 “10년 전의 그 탄원서 서명에 대해 당시에도 부담을 느꼈고, 내내 그 일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왔다.”면서 “이 일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대변인이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논평을 한 적은 있어도 안 원장이 직접 해명을 위해 나선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누리당은 즉각 공세에 나섰다. 박근혜 후보 캠프의 김종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안 원장 정도의 지적 수준이면 10년 전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텐데 모든 게 완벽한 사람처럼 처신해 왔다.”고 비판했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김영환대책위 “中 전기고문 ICC 제소 검토”

    ‘북한 인권 운동가 김영환 석방대책위원회’는 김씨가 중국 국가안전청에 구금된 114일 동안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한 데 대해 29일 성명을 내고, 중국 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대책위는 성명에서 “김씨가 전기고문과 잠 안 재우기 등 가혹행위를 받은 사실을 지난 27일 대책위에 확인해 줬다.”며 “김씨에 대한 가혹행위는 보편적 인권 존중 차원에서도 용납할 수 없고, 우호적인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중국 정부는 중세기적 고문에 대해 깊이 있는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분명하게 약속하라.”고 촉구한 뒤 “우리 정부의 분명하고 책임 있는 노력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또 “중국 정부의 성의 있는 조치와 사과가 없을 경우 국제기구와 인권단체에 이 문제를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며 “중국 정부가 이에 대해 대국답게 처신하지 않으면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인권기구·국제인권단체 등에 호소할 것이고 피해자들과 상의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대책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조치가 없으면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중국 내 소송 등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설] 국회 상임위에 이해 얽힌 의원은 배제하라

    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을 사고 있는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거취에 따라 국회 의사일정마저 춤출 모양이다. 엊그제 그는 법사위에서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우격다짐 식 공세로 질의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그것도 모자란 듯 같은 당 이해찬 대표는 19대 개원 국회가 끝나는 다음 날인 8월 4일 임시국회를 열겠다고 천명했다. 누가 봐도 박 원내대표를 구하려는 ‘방탄국회’를 소집하려는 의도로 비친다. 선진국 의회에서는 특정 직업군 출신 의원의 유관 상임위 진출을 원칙적으로 배제한다. 의원 입법이 본령인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선 말할 것도 없다. 의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팔이 안으로 굽는 입법 및 의정활동을 못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박 원내대표가 법사위에서 공세적 방어에 열을 올린 행위는 분명 기현상이다. 그러나 권재진 법무장관은 “(박 원내대표가 )참고인이 아니라 피의자 신분”이라고 답변해 검찰이 확보한 혐의가 구체적임을 시사했다. 까닭에 박 원내대표가 정말 결백하다면 법사위원이라는 특권으로 법무장관을 닦달할 게 아니라 검찰에 출두해 떳떳하게 소명하는 게 온당한 처신이다. 그러잖아도 19대 국회 원구성 과정에서 법사위는 요주의 상임위로 꼽혔다. 개인 비리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의원들이 다수 포진했기 때문이다. 솔로몬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원내대표 외에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른 의원이 여럿이라고 한다. 이들이 검찰수사를 막거나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법사위를 택했다면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선진화를 표방하는 19대 국회라면 상임위와 이해가 얽힌 의원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전기공사 사업자 출신 다선 의원이 한전이 소관 공기업인 지식경제위에서만 붙박이로 활동하고 있다니 될 말인가. 더욱이 ‘방탄국회’도 모자라 법사위까지 검찰수사에 대한 ‘보호막’으로 활용한다면 국회의 존재 이유 자체가 우습게 된다. 어떤 상임위든 의원들의 사익 추구의 장이나 비리 의원들의 피난처가 되어선 결코 안 될 것이다.
  • [사설] 김병화씨 대법관후보 자진 사퇴하라

    국회가 오늘 대법관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을 위한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지만 김병화 후보를 놓고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김 후보에 대해 절대불가 입장이고 여당 일각에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위장전입과 다운계약서 작성, 아들 공익근무 특혜 배정 의혹 등이 제기됐던 김 후보는 지난주 열린 청문회에서는 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 등이 새롭게 불거져 나왔다. 그는 제기된 의혹에 대해 나름대로 해명했지만 대법관에 대해 거는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 후보가 자신의 거취에 대해 심사숙고해 주기를 당부한다. 김 후보는 위장전입 2건, 다운계약서 3건, 세금 탈루 3건 외에도 제일저축은행 수사와 전 태백시장 수사 무마 의혹 등 제기된 의혹이 10여 가지에 이르러 최악의 대법관 후보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국회 인준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후보는 의정부 지검장으로 있던 지난해 4월 동향의 사채업자이자 브로커인 박모씨의 부탁을 받고 제일저축은행 불법대출 수사를 축소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고양지청은 불법대출을 알선해주고 1억 3000만원의 상품권을 받은 제일저축은행 전무를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뒤이은 대검의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에선 1400억원대의 불법대출을 해줘 구속된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이 박씨에게 2000만원을 주고 수사무마를 청탁한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김 후보는 박씨의 청탁을 들어주지 않고 돈도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지만 전화 통화를 39차례나 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막역했다. 2001년 김 후보가 박씨와 함께 10억원이 넘는 서울 서초동 아파트 A동 401, 601호를 사흘 간격으로 산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 후보는 아내가 한 일이어서 몰랐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없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대법관은 풍부한 법 지식은 물론 행동과 처신도 반듯해야 한다. 도덕적 흠결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김 후보는 이러한 국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국회의 대법관 인준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현명한 처신을 해야 할 것이다.
  • 軍 간부, 술취해 女직원에 무슨 짓 했나 보니…

    軍 간부, 술취해 女직원에 무슨 짓 했나 보니…

    현역 대령이 계약직 채용을 앞둔 여성을 강제 추행한 것으로 드러나 보직 해임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2일 국방부에 따르면 국방부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단의 A대령은 지난 5월 말 평택에서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한 뒤 노래방에 갔다가 여성인 B씨를 강제 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당일은 사무보조 담당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될 예정이었던 B씨가 정식 계약을 하루 앞두고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첫 출근한 날이었다. A대령은 노래방에서 함께 춤을 추자며 B씨를 껴안고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 등 추행했다. 다음 날 B씨는 사업단 인사 관계자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채용 계약 의사를 철회했다. A대령은 “우연히 스쳤을 뿐 일부러 만진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부적절했다는 점을 일부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단은 A대령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1주일간 근신 처분 후 보직 해임하고 본래 소속인 해군으로 복귀시켰다. 지난 4월 현역 육군 장성이 여군 부사관을 성추행한 데 이어 일선 장교가 연루된 성(性) 군기 위반 사건이 또 발생하면서 군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성범죄로 군 검찰에 입건된 장병은 380여명에 이르지만 96명만 기소되는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대법원, 성비 균형 갖춰야” 女후보 배제 ‘일침’

    “대법원, 성비 균형 갖춰야” 女후보 배제 ‘일침’

    전수안 대법관은 10일 퇴임식에서 여성 후보를 배제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최근 신임 대법관 임명 제청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다. ●“사형제 반대가 다수 의견 되길” 전 대법관은 “전체 법관의 비율과 상관없이 양성 평등하게 성비의 균형을 갖춰야 하는 이유는 대법원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상징이자 심장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양승태 대법원장의 표정은 김능환 대법관의 헌재 비판에 이어 또다시 굳어졌다. 임기 중 진보적인 소수 의견을 자주 내놓았던 전 대법관은 마지막 날에도 ‘소수의견’을 거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악범도 국가가 직접 살인형을 집행할 명분은 없다는 판단,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사는 사회여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다수 의견이 되는 대법원을 보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으며 떠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인 안대희 대법관은 “법관은 한없이 낮은 자세를 유지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고 한없이 높은 도덕성을 유지해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낮은 자세 유지해야 올바른 판단” 중수부장 시절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국민검사’라는 칭호를 받았던 안 대법관은 “법원과 검찰, 국민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일환 대법관은 “포부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공자는 ‘선배에게 편안함을 주고 동료에게 믿음을 주고 후배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며 법관으로서 올바른 처신을 강조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특허청 “비위직원 직무 즉시 정지”

    최근 직원들의 음주 사건으로 도마에 오른 특허청이 공직기강 확립에 고삐를 죄고 나섰다. 정부 부처 최초로 원스트라이크 ‘직무아웃제’를 도입한 것. 공직에서는 뇌물·향응 등 단 한번의 부패 행위를 저질렀다가 적발돼도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특허청도 비공개 특허 관련 문건을 고의로 유출한 경우 이 규정을 적용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도입한 직무아웃제는 어떤 직무든 개인의 처신을 징계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훨씬 더 엄격해진 대책이다. 직무아웃은 중징계 대상자에게 내리는 직위해제와 동일한 효과로, 복무관리와 직무명령을 위임받은 국장이 내리게 된다. 공직자로서 비위를 저지르면 직무를 즉시 정지시키고, 반드시 청렴교육 이수 및 사회봉사 활동을 거친 후 직무에 복귀하게 하는 일종의 자정 과정을 거치게 했다. 또 물의를 일으켜 징계 처분을 받은 공직자는 법령에 정한 승진제한 기간을 2배로 확대 연장하는 등 징계 규정도 강화했다. 감사담당관실을 중심으로 대외활동 모니터링을 통한 감찰 활동에 나설 방침이다. 대선을 앞두고 공무원의 복지부동과 줄서기 행위 등도 중점 점검하기로 했다. 간부들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도 묻는다. 부서장 평가시 범죄발생 및 청렴도를 평가해 반영함으로써 ‘개인 문제’라는 안이한 의식에 경종을 울린다는 취지에서다. 이와 함께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부서장 책임 아래 ‘119운동’과 ‘염치지키기 운동’도 전개한다. 119 운동은 회식 때 ‘1차에서 1가지 술로 오후 9시 이전에 마쳐’ 건전한 음주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의미다. 염치지키기는 공직자로서 스스로 창피함을 알고 부정한 일을 하지 말자는 윤리의식 제고 운동이다. 김호원 특허청장은 “특허청은 업무의 전문성이 반영돼 5급 이상 간부들이 상대적으로 많기에 보다 엄격한 청렴성과 도덕성이 요구된다.”면서 “처벌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며, 공직자로서 스스로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사설] 대법관 후보 왜 하나같이 흠결투성이인가

    오늘부터 13일까지 대법관 후보 4명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국회 동의를 요청한 대법관 후보자의 크고 작은 흠결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신 후보자는 종교 편향이, 김병화 후보자는 위장전입을 통한 부동산 구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야당은 다른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국회 늑장 개원으로 초래된 6일간의 대법관 공백 상태가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하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신 후보자는 기독교 편향 행태가 도마에 올라 대법관 자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대법원이 후보를 제청했을 때 그는 장애인이면서 지역 법관 출신이어서 보수 성향에 관료법관 일색인 대법원의 다양성을 보완해줄 인물로 평가됐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대법관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2009년 부산고법 부장판사 시절 교회 부목사 사택 취득은 과세 대상이라는 대법원의 일관된 판결과 달리 비과세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불공정했다는 것이다. 또 교회 내분을 다루면서 당사자를 불러 화해를 위한 기도를 하도록 하고, 평신도와 원로목사가 예배방해죄로 다툰 형사재판에서 당사자들의 화해·조정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재판할 때 다른 종교인들을 부당하게 대우하거나 특정 종교인들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내린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도 법정에서 기도를 하게 하고, 형사재판에서 화해·조정을 하려 한 것 등은 법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본다. 위장전입해 서울 아파트를 구입한 사실을 시인했던 김병화 후보자는 군복무 중이던 1981년 농지를 소유하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새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 후보자는 문중 농지를 문중 결정에 따라 아버지가 명의이전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철저한 검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대법관 임명동의가 늦어지면 재판부 구성이 안 된다며 국회를 찾아갔던 대법원은 민망하게 됐다. 스스로의 잘못으로 헌법기관 공백이 장기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대상자들에게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 후보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밝혔지만, 취약한 인재풀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국회도 대법원에 수모를 당한 것에 대한 역공세 차원이 아니라 대법관 자질만을 냉철히 가늠하는 청문을 해야 한다.
  • 4억 수수 ‘MB 처남’ 재판장이 호되게 질타하자

    4억 수수 ‘MB 처남’ 재판장이 호되게 질타하자

    “대통령 친·인척으로서 선처를 바라지 말고 속죄하시오.” 유동천(72·구속기소)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청탁 대가로 4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촌처남 김재홍(73) 전 KT&G복지재단 이사장이 항고심 공판에서 재판장으로부터 호된 질타를 당했다. 4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성기문)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재판장은 선처를 요구하는 김씨에게 “피고인은 영부인의 친척으로서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도 경솔하게 처신해 누를 끼치고, 저축은행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많은 국민의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되물었다. 재판장의 질타에 김씨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고 “대단히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재판장은 “건강이 나쁘다고 선처를 바라는 게 떳떳한가.”라고 거듭 따져 물었다. 이에 김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니다.”라고 답하자 재판장은 “교도소에서 속죄해야 할 것 아니냐.”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보석을 신청한 것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주장하는 고혈압·천식 등은 만성질환으로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 같다.”면서 “수감생활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고 불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가 최후 진술에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말하자 재판장은 “물의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마치고 다음 달 17일 오후 2시 선고하기로 했다. 김씨는 유 회장으로부터 로비 청탁과 함께 모두 10차례에 걸쳐 3억 9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3억 9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사설] 국민 눈높이 벗어난 의협회장의 행보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의 잇단 튀는 행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포괄수가제 실시에 반대하며 수술 거부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들고 나와 물의를 빚었던 그는 엊그제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공의의 집단행동을 부추기는 글을 올렸다. 또 올가을까지 의사노조를 결성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의사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의협의 대표인 만큼 그가 회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국민의 눈높이에 턱없이 못 미쳐 실망스럽다. 노 회장의 말처럼 전공의는 주당 100시간 일하는 등 근무여건이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의 근로조건 개선에 나서는 것은 의협회장으로선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공의가 대형병원의 진료 차질을 일으킬 수 있다.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회적 혼란을 단번에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은 전공의’라는 글까지 올린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누가 봐도 집단행동을 선동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의협이라면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1만 7000여 전공의의 근로 여건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또 개업의가 아닌, 급여를 받는 봉직의는 근로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노동자인 만큼 노조를 결성할 수 있다. 그러나 봉직의의 급여는 최고수준이고, 근로조건이 열악하지도 않다. 오히려 병원이나 의원에는 그보다 더 낮은 임금에 장시간 근로하는 사회적 약자 직군이 많다. 의사들이 더 많은 것을 쟁취하겠다며 노조를 결성하는 것은 가진 자의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문 의료지식을 갖추고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존경과 신뢰를 받는 몇 안 되는 직업 중의 하나다. 처우도 상당하다. 그런 만큼 의협은 거기에 걸맞게 처신하고 행동해야 한다.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동을 더 이상 하지 말아주기를 당부한다.
  • 뇌물수수 김재홍 선처요구에 法 “국민들 피눈물 흘려” 질타

    “대통령 친·인척으로서 선처를 바라지 말고 속죄하시오.” 유동천(72·구속기소)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청탁 대가로 4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촌처남 김재홍(73) 전 KT&G복지재단 이사장이 항고심 공판에서 재판장으로부터 호된 질타를 당했다. 4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성기문)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재판장은 선처를 요구하는 김씨에게 “피고인은 영부인의 친척으로서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도 경솔하게 처신해 누를 끼치고, 저축은행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많은 국민의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되물었다. 재판장의 질타에 김씨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고 “대단히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재판장은 “건강이 나쁘다고 선처를 바라는 게 떳떳한가.”라고 거듭 따져 물었다. 이에 김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니다.”라고 답하자 재판장은 “교도소에서 속죄해야 할 것 아니냐.”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보석을 신청한 것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주장하는 고혈압·천식 등은 만성질환으로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 같다.”면서 “수감생활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고 불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가 최후 진술에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말하자 재판장은 “물의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마치고 다음 달 17일 오후 2시 선고하기로 했다. 김씨는 유 회장으로부터 로비 청탁과 함께 모두 10차례에 걸쳐 3억 9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3억 9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8)조선 정조의 두 재상 김종수·채제공 ‘살벌한 대립’

    [선택! 역사를 갈랐다] (18)조선 정조의 두 재상 김종수·채제공 ‘살벌한 대립’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왕으로는 단연 정조가 으뜸이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가 구축한 왕권을 이어받은 데 더해, 스스로도 끝없이 학문을 닦아 군사(君師)로서 입지를 강화했다. 또한 당시 조선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해결책을 강구했다. 정조 때 시전상인들의 독점판매권을 상당 부분 폐지해 자유경쟁체제를 도입한 신해통공(辛亥通共·1791)은 미래지향적인 제도의 변화라는 점에서 역사전문용어로서 ‘개혁’으로 부를 만하다. 서얼과 노비를 대상으로 세습신분제의 완화를 시도한 점이나 서학과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한 점도, 거의 성과를 보지 못했지만 조선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당쟁으로 갈래갈래 찢긴 정치지형을 국왕을 중심으로 대승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탕평책도 평가할 수 있다. 정조를 보좌한 대표적인 원로급 인물로는 김종수(1728~1799)와 채제공(1720~1799)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최고의 벼슬인 재상의 반열에 올라 정책결정 과정에 깊이 개입했을 뿐 아니라, 정조의 신임이 남달랐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해 거의 사사건건 대립했다. 둘 다 표면적으로는 정조의 탕평책에 동의했으나, 속으로는 상대방을 제거하지 못해 안달했다. 김종수가 노론집안인 데 비해 채제공은 남인이었다. 또한 김종수가 사도세자를 죄인으로 간주한 벽파의 거두인 데 비해, 채제공은 사도세자의 무고를 주장한 시파의 거두였다. 그런데도 이 둘이 모두 정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정조가 즉위하기 전에 맺은 관계 덕분이었다. ●경제개혁·천주교 반대… 수구적 재상 김종수 먼저, 김종수는 왕세손의 학문을 담당한 시강원에 근무하면서 정조의 스승이라는 각별한 경력을 쌓았다. 그런데 정조가 김종수를 크게 신임한 이유가 이런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종수가 정조에게 설파한 군주론이 정조의 생각과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정통 주자학 신봉자인 김종수는 군주는 통치자이면서 동시에 학문적 스승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군주나 스승 가운데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그 둘을 겸함으로써 이른바 군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한 정조가 품었던 군주론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면 김종수는 정조가 진정한 군사가 되도록 성심으로 돕고 그의 탕평책을 적극 지지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철저한 당론자(黨論者)였기 때문이다. 그는 노론의 강경론자로서 소론과 남인을 역적이자 소인배의 무리로 간주해 공존하기조차 싫어했다. 그는 군자만이 정치를 담당해야 한다고 확신했으나, 그에게 군자는 오직 노론뿐이었다. 따라서 그의 군자정치론은 사실상 노론의 전제를 뜻했다. 말로는 군사를 운운했으나, 그는 정조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탕평책을 불편해했다. 오히려 정파의 보스가 지방에 앉아 중앙의 정치에 대해 훈수하는 산림정치를 지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신해통공과 같은 경제개혁에도 극력 반대했으며, 서학과 천주교에 대해서도 강경일변도였고, 신분제의 완화에도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정조의 조정에 출사한 이유는 권력욕 때문이었다. 어떤 변화에 대해 반대한다면 자기가 고수하려는 것들에 대한 분명한 논리를 세워야 하는데, 김종수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입으로는 군사와 군자를 말했으나, 마음은 언제나 노론의 권력 독점에 있었다. 국왕의 총애를 받아 중책을 담당한 일국의 재상으로서 국가의 현안이나 제반 문제들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없었다. 보수란 변화를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변화의 절박성을 따져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속도를 조절해 서서히 추진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김종수는 보수로서의 정치철학조차 갖고 있지 않은 수구였을 뿐이다. 혹자는 김종수를 보수파로 평가하지만, 솔직히 자격 미달의 보수였다. ●신분제 완화에 우호적… 정조의 돌격대장, 채제공 채제공이 정조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가 사도세자를 극구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그의 정치철학과 국가 현안에 대한 해결책이 정조와 매우 비슷한 덕분에 정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정통주자학에서 벗어나, 국왕의 절대권을 강조하면서 그 바탕으로서 충효를 강조했다. 이런 군주론은 군주의 특성을 최소화해 사대부와 거의 비슷한 급으로 낮추려던 주자학자들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오히려 천자로서 군주의 권력을 절대시한 동중서(董仲舒)의 군주론에 가까웠다. 사대부 문벌을 타파하고 왕의 권위를 높이려던 정조가 이런 채제공을 홀대할 리 없었다. 정책 차원에서도 채제공은 늘 정조의 편에 섰다. 군주를 중심으로 한 탕평책에 적극 동조한 것이나, 신해통공을 적극 추진한 것이나, 주자학과 충돌을 빚는 천주교에 대해서도 일부 포용하려 한 점이나, 신분 차별의 완화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다 그런 예이다. 특히 조선사회에서 거의 진리처럼 굳어져 있던 ‘왕안석=소인’이라는 인식에 맹종하기를 거부하고 왕안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에서도 채제공과 정조는 생각이 비슷했다. 사실, 정조 집권 후반기에 추진한 몇몇 정책에서 정조의 오른팔로서 돌격대장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 바로 채제공이었다. 그렇다면 채제공은 진심으로 정조의 탕평책을 지지했을까?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채제공이 재상이 된 후에 가장 먼저 제기한 문제가 벽파에 대한 전면적인 선전포고였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였던 사도세자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사도세자를 죄인이라 한 벽파에 대해 공격 나팔을 불었던 것이다. 사도세자가 죄를 입어 부왕에게 ‘처형’된 것이라면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 되기에 국왕으로서 권위를 세우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사도세자가 죄가 없음에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이라면, 당시 사도세자를 공격한 자들은 모조리 역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문제이기에, 정조조차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덮고 벽파와 시파를 가리지 않고 등용하는 탕평책을 폈던 것이다. 정조를 보좌하면서 그동안 구상했던 ‘개혁’을 추진하기에도 버거울 지경에, 채제공이 온건파나 중도파까지도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들어 버릴 사도세자 문제를 굳이 끄집어 낸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정조의 왕권을 보다 확실히 하고, 그럼으로써 정국을 주도해 개혁을 추진할 발판을 만들자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채제공을 전격적으로 재상에 임명하면서 정조는 그 등용 이유를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설명했는데, 채제공이 그것을 벽파세력에 대한 공격신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공격에서 정조가 끝내 중립을 지킨 점을 고려할 때, 정조가 의도한 ‘이열치열’이 그런 노골적인 공격이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김종수와 마찬가지로 채제공 또한 벽파와는 한 조정에서 공존할 수 없다고 믿었음이 거의 분명하다. 실제로 그는 벽파를 역적으로 몰아붙였으며, 김종수 또한 채제공을 역적으로 불렀다. ●정조의 김종수·채제공 등용은 탕평책?이열치열? 이렇듯 태생적으로 물과 기름 관계인 노론과 남인 출신인 김종수와 채제공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보는 입장에서도 철천지원수 관계인 벽파와 시파에 속했다. 그 계파의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그 둘은 그런 정치계보에 충실했다. 그렇다는 것은 김종수와 채제공 모두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견원지간인 두 사람을 재상으로 쓴 정조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인사정책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탕평정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고, 그 둘의 적당한 대립을 통해 왕권을 유지하고자 했다면 그 또한 다른 왕들보다 특별히 나을 게 없다. 어쩌면 이런저런 생각은 많으나 과단성이 부족했던 정조 자신의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주자학을 대하는 입장이 다르더라도 김종수와 채제공은 모두 유학자이자, 재상이었다. 그렇다면 그 둘은 모두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에 열심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제반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고 조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중요한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 과거사에서 비롯된 사도세자 문제를 둘러싸고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치는 뒷전이었다. 그 결과, 정조 말년에 그 둘 모두 권력을 잃었고, 같은 해 같은 달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생을 마감했다. 죽어서도 둘 사이의 엎치락뒤치락은 끝나지 않았다. 정조의 죽음으로 노론 벽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이미 죽은 채제공은 관작 추탈이라는 욕을 봤다. 그런데 7년 후 정순왕후의 대리청정이 끝나고 노론 시파가 권력을 장악함에 따라, 이미 죽은 김종수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역적으로 몰려 역시 수모를 당했다. ●권력잡은 노론, 채제공 관작추탈… 죽어서도 혈투 김종수와 채제공이 권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대립하더라도 그것을 ‘시대정신’에 기초한 정책대결로 승화시키면서 정조를 보필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실제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의 선택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우선순위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독점적 권력 그 자체였다. 김종수와 채제공이 보여준 사례는 한시도 잠잠한 날이 없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에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김종수의 처신은 일국의 정치를 책임질 재상이 보일 처신은 전혀 아니었다. 노론 벽파의 우두머리로서 그는 초지일관 ‘당권파’의 이해에 따라 행동했다. 무엇인가 개혁을 추진한 점에서 채제공이 김종수보다 더 나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 또한 200년 이상 이전투구로 벌어진 당쟁구도에 보다 충실했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잠자리, 먹거리

    오래전에 받은 아버지의 편지가 생각납니다. 자식을 홀로 도회에 보내놓고도 편지를 보낸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객지라지만 주말이면 후딱 다녀올 거리니 그랬을 수도 있고, 우체국까지 십리길을 걸어 나가 편지를 부쳐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편지를 보내도 사흘 후에나 받아볼 수 있으니 편지 쓸 일 있으면 때맞춰 도회로 나가는 마을 사람을 수소문해 인편에 기별하는 게 훨씬 빨랐습니다. 아버지 말씀마따나 국민학교를 갓 졸업한 ‘거미새끼’ 같은 자식을 유학이랍시고 도회에 보내 놓고 꽤나 불안하셨던 모양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평소 자식들에게 자분자분 속을 드러내시지도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지 앞가림은 지가 하겠지.”라며 엔간하면 말을 아끼는 분이어서 긴가민가 뜯어 봤습니다. 양면지 절반도 못 채운 편지글에서 아버지는 특히 연탄가스를 조심하라 당부하시며 이런 ‘지침’을 주셨지요. ‘사람이 잘자리는 가려야 하지만 먹거리는 가리는 게 아니다. ’배 곯던 시절이니 집에서처럼 입 짧은 짓 하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잘자리’에 방점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잘자리란 곧 처신을 뜻하는 말일 테니, 매사에 바로 처신하라는 교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딱히 입신양명할 일도 없이 갑남을녀로 사는 세상이니 처신 따위가 그렇게 중요할까만 그날 이후 그 융통성 없는 처신의 중압감이 족쇄처럼 저를 옥죄었던 게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 ‘죽도 밥도 아닌’ 삶이 되고 말았는데, 그 교시를 이제 두 딸들에게 물려줍니다. 갈수록 성적으로 개방되는 세상이어서 딸들에게 잘자리 가리라는 말이 결코 허튼 소리만은 아닐 터이지만, 그보다는 항상 혀끝으로만 먹거리를 감별하려 드는 요즘 아이들의 대책 없는 ‘음식 낯가림’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이 나이쯤 되어 생각해 보니 음식은 혀로 먹을 게 아니라 몸으로 먹어야 함을 알겠는데, 그걸 딸들에게 말하면서도 제풀에 힘이 빠지곤 합니다. 그때와는 이미 세상이 다른데, 저만 그 세상 언저리를 서성이는 것 같아섭니다. jeshim@seoul.co.kr
  • [서울광장] 경찰청장님, 믿어도 됩니까?/주병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경찰청장님, 믿어도 됩니까?/주병철 논설위원

    윤석보(尹石輔)는 연산조(燕山朝) 때 사람으로 풍기 군수가 되었는데, 처자를 고향에 두고 부임했다. 부인은 살림살이가 어려워 선대부터 내려오던 몇 가지 물건을 팔아 밭 한 뙈기를 샀다. 이 말을 들은 석보는 편지를 보내 아내를 나무랐다. “옛말에 임금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한 것은 국록 이외에 탐을 내지 말라는 말인데, 내가 관직에 올라 임금의 녹을 받으면서 전에 없던 밭을 장만했다 하면 세상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겠소. 빨리 밭을 물려 버리시오.” 청렴한 벼슬아치의 결기가 느껴진다. “판중추(判中樞) 조오(趙吾)가 합천(陜川) 원(員)이 되었을 때다. 여름에 농어가 넘쳐나는데 썩어도 집안 식구에게는 조금도 맛보지 못하게 해 사람들이 그 청렴함에 탄복했다. 그가 예조정랑(禮曹政郞)이 되었을 때는 살림살이를 걱정한 동료가 쌀 세 말을 보냈는데 받지 않았다. 나중에 공좌(公座)에서 이 일을 자랑하니 흉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청탁을 하는 이가 없었다. 늙어서 시골집에 물러나와서도 청렴하고 삼가는 독실한 군자(君子)였다.” 조선 전기 학자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에 나오는 얘기다. 옛날 얘기를 꺼낸 건 얼마 전 김기용 경찰청장이 경찰 내 ‘부패·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게 생각나서다. 김 청장의 경찰 쇄신안은 역대 청장들이 취임 때마다 들고 나온 단골 메뉴다. 경찰이 비리 경찰 소탕에 아직도 골머리를 썩고 있다니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김 청장이 결국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김 청장이 성공하려면? 우선 김 청장은 ‘부패·비리와의 전쟁’ 선언이 앞뒤가 바뀐 점부터 깨달아야 한다.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청렴은 윗사람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적어도 내부 전쟁에 돌입하려면 경무관급 이상 수뇌부는 누가 보더라도 청렴의 표상이 돼야 한다. 이들의 직속 라인에 있는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옷을 벗겠다는 서약이라도 해야 한다. 전·현직 고위 간부가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조직에 누를 끼치고, 비리 혐의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전쟁을 치러야 할 대상을 ‘전국의 경찰관’으로 특정한 건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부패·비리 근절을 위해 전국적으로 10년 이상된 경찰관을 모조리 뒤바꾸겠다는 김 청장의 호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자칫 부작용만 적잖이 초래할 수 있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곳을 골라 본때를 보여야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부패·비리와의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소위 ‘물 좋은’ 강남 권역으로 가지 못해 안달하는 경찰관들이 득실거리는 게 현실이다. 서울 지역 경무관·총경 승진자 중 강남지역 서장이나 과장 출신이 얼마나 되는지를 먼저 따져보라. 구조적인 문제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찰 부패·비리는 ‘인사 양극화’와 직결돼 있다. 수장이 바뀔 때마다 조직을 신설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이강덕 전 서울청장은 취임 후 실종팀을, 김용판 서울청장은 주폭팀을 신설했다. 사회적 관심에 따른 대처로 보이지만 수장의 업적이나 치적용이란 비아냥도 있다. 기존의 팀에서 인원을 차출해 새 팀을 만드는 건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메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왕 팀을 만든다면 근원적인 대안 찾기에 초점을 맞춰 접근해야 한다. 주폭팀을 예로 들면 술 먹고 행패 부린다고 무작정 잡아넣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들을 둘러싼 주변 환경을 좀 더 분석해 사회적 범죄 유발을 막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국세청장 대행을 지낸 한 인사는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내가 그만두고 나간 뒤에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고 판단된다면 하지 말라.” 필요한 일, 해야 할 일을 시키고 이를 앞장서 실천할 때 리더는 빛난다. ‘부패·비리와의 전쟁’은 김 청장 이후 더 이상 신임 청장의 과제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bcjoo@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6) 연산군과 김일손

    [선택! 역사를 갈랐다] (16) 연산군과 김일손

    세조의 치세가 열리는 길목은 가파르고 무서웠다. 많은 죽음이 널렸고, 한때의 임금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목숨을 빼앗기고 제사도 받지 못하였다. 또한 문종의 현덕왕후까지 ‘왕이 아닌 자의 어미’라는 이유로 폐출되었다. 문종에 앞서 소릉에 묻혔기 때문에 ‘소릉폐치사건’이라고 한다. 공포와 쇠락의 시대, 김종직의 ‘조의제문’은 일탈과 분노의 서사였다. 세조의 공신들은 정변과 찬탈의 전리품을 즐겼다. 유학의 수기치인과 의리명분을 벗어난 화려한 외도였다. 역사의 상흔을 감추고 기억을 억압하였다. ‘사관의 이름을 적으면 바른 사초가 어렵다.’라고 말하는 관료들도 죽였다. 또한 남이의 옥사와 성종 즉위를 빌미로 공훈을 보탰다. 이들에게 세조는 ‘불세출의 중흥주’였다. 1478년(성종 9) 4월 이심원이 세조 공신의 퇴진을 상소하고, 이레 후 남효온은 소릉복위를 주장하였다. 철벽같은 권력에 대한 도전이며, 누구도 말하지 못한 금기를 들춘 것이다. 이심원은 성리학에 조예가 깊은 종친이며, 남효온은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개국공신 남재의 후예였다. 이 둘은 평소 친분이 깊었고, 논지는 서로 연속하였다. 새 정치 질서를 모색하자면 진실을 밝히고 상흔을 치유하자는 바람을 담았다. 기억운동, 역사운동의 시작이었다. ●왕실의 분란,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하다 남효온이 세조의 최대 흠결을 적시하며 국가의 도덕성 회복을 주장할 즈음 왕실은 원자를 낳은 중전 윤씨 문제로 분란에 휩싸였다. 중전 윤씨는 결국 폐서인되어 사저로 쫓겨났다가 3년 후 환란의 싹을 자른다는 포고문과 함께 사약을 받았다. 원자가 7살이던 1482년 8월 세자 책봉이 있기 반년 전이었다. 폐비의 묘는 버려지고 제사도 없었다. 1489년 5월 수호와 제사에 관한 방침이 처음으로 정해졌다. 수령이 주관하였으며, 기일제(忌日祭)가 아닌 명절의 속절제(俗節祭)였다. 물론 묘호나 사당도 없었다. 다만 제례의 물품만은 ‘죽은 왕비’의 예로 하였다. 세자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미래의 국왕을 배려한 고육책이었다. 폐비 윤씨를 제사지냈던 그해 겨울 남효온이 경상도 의령에서 ‘육신전’을 탈고하였다. ‘사육신충신론’이었다. 이듬해(1490) 3월 김일손은 경연에서 “노산군은 유약하여 책무를 이기지 못하였을 뿐이지 종사에 죄를 짓지 않았음”을 이유로 입후치제(立後致祭)를 건의하였다. 이때 무오사화로 밝혀진 사초를 작성하였다. “노산군의 시체를 숲 속에 버려서 한 달이 지나도 거두는 자가 없자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 쪼았는데, 한 동자가 밤에 짊어지고 달아나서 물에 던졌는지 불에 던졌는지 알 수 없다.” ‘세조실록’의 ‘예로서 장사 지냈다.’는 사론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김종직이 과거 들기 전에 꿈속에서 보고 느낀 바가 있어 충분(忠憤)을 부쳤다.’는 평가와 더불어 ‘조의제문’ 전문을 옮겨 놓았다. 또한 현덕왕후의 복위를 상소하고는 사초에 “소릉의 관을 바닷가에 버렸다.”고 적었다. 몰래 살폈던 길 위의 노래, 억압된 기억과 기록을 사초에 담았던 것이다. 왕조실록에 실리면 노래는 불멸의 증언이 되고 야사는 국가의 정사가 된다. ●치유와 화해로 미래를 열어야 김일손은 일찍부터 문명이 높았다. 1486년 식년문과에 제출한 ‘중흥대책’(中興對策)은 인구에 비장하였다. 여기에 역대 왕조의 일치일란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하면서 당대를 ‘중쇠’(中衰)로 규정하였다. 중쇠에서 중흥의 기회로 삼는 길은 간명하였다. “천지의 억울함을 풀고 일월의 어둠을 걷어내야 비로소 기강과 법도가 찬연하게 수복되고 예악문물이 가지런히 거행되고 마침내 중흥할 수 있다.” 즉 과거의 상흔을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한 것이다. 재야의 역사운동이 조정에 점화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한편 역사운동은 과거로 돌아가기가 아니라 과거에서 교훈 찾기였다. 김일손은 심온 일가를 멸문시키고도 중궁 심씨는 끝까지 보전한 태종의 도량을 새삼 되살렸다. 또한 두 왕자를 부왕에게 희생된 방번ㆍ방석의 후사로 삼아 제사 지내게 하였던 세종의 인정과 고려 왕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숭의전을 세운 문종의 관용을 추앙하였다. 그만큼 좋은 정치, 어진 임금을 향한 바람이 컸던 것이다. 남효온도 사육신을 희생시킨 세조를 광명의 군주로 리메이크하고 싶은 염원이 강렬하였다. “육신으로 하여금 금석 같은 단심을 지키며 강호에 물러나 살게 하였다면, 상왕의 수명도 연장할 수 있었고 세조의 치세는 더욱 빛났을 것이다.” 이렇듯 역사운동은 증오와 분열을 마감하고 화해와 미래를 향한 소망을 담았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수 없다. 세자는 처음부터 국왕 수업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공부를 싫어하고 환관들과 희롱하기 일쑤였다. 장성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부왕의 훈계가 두려워 시강원에 나가더라도 건성이었고, 관료가 공부라도 독려할라치면 얼굴을 찌푸리며 배척하였다. 기본경전 ‘사서’를 멀리했다. 읽지 않는 것보다 낫겠지만 방대한 ‘명신언행록’을 뒤적일 따름이었다. 날이 지날수록 유희는 심해졌다. 성종도 걱정이 많았다. 인정전 연회에서 우찬성 손순효가 반쯤 술에 취하여 용상 아래 엎드려 무언가를 아뢰고 임금도 몸을 굽혀 화답한 적이 있었다. ‘성종실록’ 21년 8월 22일 기사인데, 너무 소리가 작아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폭군의 맨얼굴 신왕은 경연에 소홀하고 국정에도 별반 관심이 없었다. 대신 생모의 추복에 적극적이었다. 먼저 영사전(永思殿)에서 기일제를 지내고 분묘를 천장하고 ‘회묘’(懷墓)라 하고 ‘효사묘’(孝思廟)를 지었다. 신왕 즉위 6개월, 김일손은 시무개혁안 26조를 올렸다. 이때 국왕의 마음 공부를 기본으로 ‘내수사 혁파’ ‘공물 감액과 공안 개정’ ‘사관제도 확대’ ‘제조제의 혁파’ ‘천거제의 확대’ ‘어진 종친의 발탁’ 등을 제안하였다. ‘경국대전’을 보완하는 구상으로 차세대 기묘사림도 개혁과제로 삼았다. 물론 소릉 복위도 포함하였다. 신왕의 반응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김일손은 멈추지 않았다. 왕실 전래의 불교의식인 수륙재 반대에 앞장섰다. 이단을 반대한다는 것보다는 백성을 위한 일이 아니면 복을 빌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외척을 우대하는 인사방침이나 폐비 제사도 반대하였다. 신왕은 싸늘했다. “총명을 조작하며 옛 법을 어지럽히지 말라.” 또한 “김일손은 나를 용렬하다고 여겨서 섬기려 하지 않을뿐더러 임금을 아끼는 마음도 없다.”고 비난했다. 결국 김일손은 소릉복위소를 마지막으로 조정을 떠났다. 1498년 봄 모친상을 끝낸 김일손은 고향 청도를 떠나 함양 남계로 옮겼다. 정여창이 살던 마을에서 멀지 않게 정사를 마련하고 서로 강론하고자 함이었다. 김일손은 여기에서 한성으로 압송되었다. 국왕은 모질었다. 처음에는 사초에 나오는 궁중 비사의 출처와 이유를 캤다. 그러다가 추국 3일 만에 유자광이 ‘조의제문’을 풀이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김일손 등은 능지처사되고 김종직은 부관참시였다. 또한 수기철학을 실천하던 도학자까지 난언과 붕당죄로 걸렸다. 무오사화는 왕실과 훈구세력의 비판 언론과 실천 도학에 대한 국가폭력이었다. 정국은 일순 얼어붙었고 국왕은 정국주도권을 틀어쥐었다. 그래도 뜻대로 폐비 복위는 쉽지 않았다. 많은 신료가 성종의 유지를 내세워 반대한 것이다. 겁박으로 제헌(齊憲)란 시호를 얻어내고 회묘는 회릉(懷陵)으로 높였다. 그리고 폐비사건에 직간접으로 연관된 신료에게 보복하였다. 그동안 무오사화를 처결하고 폐비 추숭을 진행한 윤필상 등 훈구원로나 이미 세상 떠난 세조의 으뜸 공신 한명회까지 참화를 입었다. 또한 국왕의 뜻을 거슬렀던 삼사언론을 ‘능상’(上)으로 처벌하였다. 국왕은 스스로 공도(公道)의 주인임을 포기하였다. 과거로 인재 뽑듯 ‘흥청망청’ 각처 기생을 끌어오는 ‘도가니’ 세상을 연출한 것이다. 민심이반은 심각하고, 군신관계는 결딴났다. 신하들은 묵언패를 걸고 전전긍긍, 생존게임이 벌어졌다. ●자신을 세우지 않고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없다 국왕 재위 12년 여름 전라도에서 유배객 김준손·이과·유빈 그리고 옥과현감 김개 등이 반정의병을 준비하였다. 9월 15일 남원 광한루에 출정하기로 하였다. 도성의 성희안·유순정에게도 알렸다. 반정과 반란의 길목에서 혼선을 막고 경중 호응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9월 1일 김개가 격문을 가지고 도성으로 향하였다. 여의치 않으면 진성대군을 호위하여 내전에 대비할 요량이었다. 바로 이날 밤, 도성의 반정세력이 궁궐을 장악하였다. 인심을 잃으면 임금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일대 사변, 중종반정이었다. 국왕은 연산군으로 강등되어 쫓겨났다. 그런데 전라도의 거사에 앞장선 김준손은 김일손의 백형이었다. 연산군과 김일손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과 방향이 정반대였다. 선택과 방식도 천양지차였다. 김일손이 진실을 통하여 상흔을 치유하고 미래가치를 지향하였다면, 연산군은 개인적 분노와 욕심으로 엄청난 폭력을 동원하며 보복하였다. 한편은 관용의 진보이며 다른 한편은 파괴의 퇴행이었다. 이렇게 갈리는 근본은 무엇이며, 교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극기복례, 수기처신(修己處身)의 마음 공부가 아닐까? 이종범(조선대 사학과 교수)
  • [사설] 임혜경 교육감은 ‘부패의 옷’ 스스로 벗어라

    임혜경 부산시교육감이 유치원 원장으로부터 200만원 상당의 옷을 선물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부산시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누가 봐도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임 교육감은 평소 청렴을 강조해 왔던 터라 더욱 충격적이다. 경찰에 따르면 그가 유치원 원장 2명으로부터 고급 옷을 받은 곳은 광주의 최고급 의상실이다. 부산과 광주가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그 먼 곳까지 간 걸로 봐서는 이미 옷을 공짜로 챙길 준비를 단단히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무슨 사유인지 임 교육감이 지난해 4월 스웨덴 출장을 갈 때 옷값을 대신 카드 결제한 그들도 따라갔다. 그는 ‘옷로비’ 의혹만 받고 있는 게 아니다. 스웨덴 출장 길에는 유아용 교구업체 사장 부부도 함께 갔다고 한다. 지난해 4월 부산시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창의력 신장 지도역량 강화 교사 및 학부모 연수’에 대한 공문을 보내면서 특정 교구업체의 물품을 구입하도록 했는데, 그 업체가 바로 스웨덴 출장에 같이 간 사장의 회사라는 것이다. 유치원 원장도 그렇고 업체 사장도 그렇고, 출장 길에 동행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결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임 교육감은 대가성을 부인하면서도 무엇이 켕겼는지 입은 지 1년이나 된 문제의 옷을 유치원 원장에게 돌려줬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교육청 감사관실이 이미 임 교육감의 비리 의혹에 대한 조사 요청을 받고도 임 교육감 말만 듣고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일선 학교의 작은 비위 첩보에도 자료를 샅샅이 뒤지며 날카로운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면서 조직의 수장 비리에는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임 교육감은 경찰의 수사와 관계없이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도덕성을 잃은 교육감이 어찌 학생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으며, 조직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겠는가.
  • [서울광장] 우리 군은 강해지고 있나/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우리 군은 강해지고 있나/임태순 논설위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를 읽다 로마병사의 병영생활이 나의 군생활과 너무나 비슷해 깜짝 놀랐다. 초병근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병사들에게 사역을 시키는 대목이었다. 로마군은 경계근무를 소홀히 해 적의 공격을 받자 문제의 병사를 2열 종대의 대열 속으로 걸어가게 해 동료들의 곤봉세례를 받아 죽게 했다. 군에서 들었던 ‘전투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근무에 소홀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새삼 기억났다. 로마군은 또 평시에 병사들을 그대로 놀려두지 않았다. 진지를 보수하고 외곽을 정비하는 등 부지런히 움직이게 했다. 졸병 시절 달콤한 휴식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도 사역병 집합이었다. 최근 군에서 병영문화 개선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는 신세대 장병들의 취향에 맞추려면 병영에도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친구끼리 입대하고 희망하면 형제끼리 같은 부대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군에 대한 거부감·부정적 인식을 씻어내는 데 일조를 했다. 부모와 함께 입대하고 훈련소를 마치면 면회를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핵가족 시대의 추세와 보폭을 같이한다. 그러나 동기 내무반과 사역 금지 검토 등의 조치는 아무리 눈높이를 신세대에 맞춰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지금 일부 부대에선 내무반 공사가 한창이다. 고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동기끼리 자유롭게 내무반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범실시 결과 동기 내무반은 장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노출하고 있다. 선임병이 없으니 편하게 지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동기 내무반에도 나이나 적응력, 완력 등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또 행군, 완전군장 등 선임병으로부터 군생활의 노하우가 전수되지 않고 계급별 내무반에 비해 인내심,복종심도 훨씬 덜하다. 얼마 전에는 병사들을 사역의 부담에서 덜어주겠다는 보도도 나왔다. 부대 보수, 환경 개선 등 사역은 민간에 맡기고 병사들은 훈련에만 전념토록 해 전투력을 증강시키겠다는 취지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국방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 여건에서는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 야전에선 부대원 스스로 각종 돌발상황에 대처하고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주둔지 주변의 진지를 보수하고 울타리나 배수구 등을 정비하는 것은 병사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협동심, 단결력도 길러지는 만큼 작업도 전투력의 중요한 요소다. 놀려주지 않기 위한 불요불급하고 과다한 사역은 정비해야겠지만 부대 유지·운영을 위한 사역까지 외부에 맡겨선 곤란하다. 장병들 대부분이 독자로 태어나 부모들의 사랑 속에 귀하게 자라온 현실을 감안하면 연성 병영문화는 불가피하다. 이에 더해 자식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병영생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즉시 부대에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요즘의 부모들이다. 이러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학부모들보다 더 센 것이 군부모라는 말도 나온다. 부모로서 자식의 안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세진 군부모는 군을 위축시키고 있다. 지휘관들을 전투력 강화보다는 안전사고 없이, 말썽 없이 부대를 운영하도록 소극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초급간부와 부사관들의 가벼운 처신도 군 특유의 견고한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들은 과거 같으면 병사들의 고충을 보듬어 주는 형님이고 어른이었지만 함부로 내뱉는 불평불만과 가벼운 언행으로 인해 간부와 병사 간의 가교 역할도 약해지고 있다. 군대는 첨단무기 등 화력의 우위가 중요하지만 정신력과 의지 또한 이에 못지않다. 무기를 정비하고 작동하는 것은 결국은 병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첨단무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군기와 규율이 뒷받침된 병사들과 그러지 않은 병사들 사이에선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역과 계급사회에서 배우는 인내력, 협동심, 단결력 등의 덕목도 결코 소홀히 해선 안 된다.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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