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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떳다! 빠줌마

    요즘엔 10대보다 30~50대 아줌마 팬들이 스타에게 더 열광한다는데…. 속칭 ‘빠줌마’의 세계를 살짝 엿보았다. 스타의 인기는 새로운 유형의 권력이다.그런데 그 권력을 부여하는 주체인 팬층이 최근 소리없이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오빠부대’로 대변되던 10대 여학생 중심의 팬덤(fandom)문화가 30∼50대 중년여성팬들을 포섭하며 빠르게 영역확장 중이다. ‘팬덤’이란,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의 팬 의식과 현상을 아우르는 용어.팬문화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한눈에 읽어낼 수 있는 곳은 다름아닌 영화촬영 현장이다.극비에 부쳐진 스타의 촬영일정을 귀신같이 알아내 찾아오는 소녀팬들의 열성이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림’.이젠 아줌마팬들(일명 ‘빠줌마’)이 한술 더 뜬다. #누나,엄마처럼…빠줌마들이 작업(?)한다 뭘 해도 열심인 아줌마들의 ‘빠줌마 문화’는 그러나 편견을 깬다.좋아하는 스타에게 극성 제스처를 취할 것 같으나 오히려 반대다.10∼20대 팬들과는 달리 빠줌마들은 묵묵히 실질적인 후원을 해주는 것.영화사 봄의 박혜경 마케팅 팀장은 “아줌마 팬들은 스타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최대한 편안히 배려해 주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10대 팬덤문화와 다르다.”면서 “때로는 누나 같고 때로는 엄마처럼 건강을 챙겨주는 쪽으로 팬활동의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스타를 연호하거나 선물·편지 공세로 촬영을 방해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다. 아줌마팬층이 두꺼운 스타의 촬영장에는 덕분에 김밥도시락,제철 과일들이 넘쳐난다.지난해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촬영때.주인공 배용준의 대구 아줌마팬들이 양수리 세트장에까지 찾아와 추어탕 100인분을 끓여 스태프들까지 다 챙겨먹이고 내려갔다. 스캔들성 기사로 스타가 언론에 노출될라치면 즉각 홈페이지에 우려의 글을 띄우는 것도 아줌마팬이다.“지난해말 배용준이 애인이 생겼다는 고백글을 홈페이지에 올리자 아줌마팬들이 ‘사생활이 언론에 이용당하지 않게 부디 잘 처신하라.’는 등의 충고글이 잇따랐다.”고 그의 측근은 귀띔했다. #빠줌마들을 몰고다니는 스타들 아줌마팬을 움직이는 배우들은 따로 있다.‘배사아모’(배용준을 사랑하는 아줌마들의 모임),‘시티 오브 용준’ 등 별도의 아줌마팬클럽 사이트를 둔 배용준이 동급 최강의 빠줌마 스타.이병헌도 빠줌마들의 ‘우산’을 쓰고 있기로 소문나 있다.차인표,차승원,권상우,조재현 등도 빠질 수 없다.차승원이 거제도에서 촬영중인 영화 ‘귀신이 산다’를 홍보하는 이노기획의 김희정 차장은 “지방촬영 일정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지역 아줌마팬들이 간식거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온다.”고 말했다. #‘모녀(母女)팬’도 뜬다! 빠줌마에 이어 팬덤문화에 새로 명함을 내민 주인공은 ‘모녀팬’.40∼50대 엄마와 10∼20대 딸이 함께 한 스타의 열혈팬이 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영화제작사 기획시대의 오숙현 대리는 “TV드라마에서 인기를 모은 남자배우들을 중심으로 모녀팬층이 빠르게 형성되는 추세”라고 풀이했다.권상우가 단적인 사례.TV드라마 ‘천국의 계단’으로 안방극장을 평정하자,요즘 한창 찍고 있는 로맨틱코미디 ‘신부수업’의 경북 왜관 촬영장으로 30∼50대 아줌마팬들이 딸과 함께 응원을 다녀간다는 것. #마케팅에 입김 불어넣는 아줌마팬들 팬층이 다양해지면 마케팅도 그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일.경제적·시간적 여유를 고루 갖춘 중년여성팬들은 마케팅 업체 쪽에서 보면 특히 매력적인 소비자층이다.한 마케팅 관계자는 “아줌마팬들은 혼자 움직이지 않고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특징”이라면서 “그들이 움직이면 예상밖의 흥행 가속도가 붙게 마련”이라고 말했다.실제로 ‘목포는 항구다’‘맹부삼천지교’ 등으로 조재현이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지난달 말,그가 주연한 연극 ‘에쿠우스’는 아줌마팬들로 번번이 만원사례였다.대중문화의 소비욕구를 부추기는 것도,그 욕구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주체도 팬들이다.그러나 다양하게 세력화하는 팬덤문화가 긍정적인 기능만 한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팬덤이 건강한 문화운동체로 기능하려면 스타 비평자의 역할도 균형있게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들이다. 황수정기자 sjh@˝
  • [사설] 떳떳하지 못한 최도술씨 증언거부

    헌법재판소가 진행중인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의 증인으로 출석한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증언을 거부한 것은 여러모로 잘못된 일이다.최씨가 제4차 공개변론에서 증인선서를 하고서도 증언을 거부한 것은 탄핵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우려를 감안할 때 용납될 수 없다.국정의 불확실성을 빨리 해소하기 위해 탄핵정국이 조속히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뜻이다.그런 점에서 헌재의 심리에 차질을 빚게 한 최씨의 증언 거부는 헌재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듯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마땅할 것이다. 최씨가 주장한 증언거부 이유는 자신이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이므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증언은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물론 헌법에는 자신의 재판에 불리한 진술이나 증언은 거부할 수 있는 진술거부권이 있다.그러나 이 진술거부권은 피고인 신분과 관련된 일부 진술에 해당할 뿐이지 전부 거부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헌재 심리에서 피고인 신분으로서 불리한 증언은 하지 않으면 된다.그러나 탄핵사건에 대해서는 최씨가 증인선서를 했듯이 증언할 책임과 의무가 분명히 있다.따라서 최씨의 진술거부는 피고인 신분과 증인 신분을 망각했거나 혼돈한 법정 모독이다. 최씨는 노 대통령의 측근이며,한때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공인 신분이었다.대통령이 탄핵까지 된 것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증언에 나서야 할 최씨가 이를 거부한 것은 잘못이다.그의 증언거부는 헌재를 업신여기는 오만한 처신으로 보일 뿐더러 측근으로서 대통령에 대한 의무도 저버린 무책임한 행동이다.˝
  • [사설] 김정일 訪中, 북핵해결 전기돼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극비방문해 어제 베이징에서 후진타오(胡錦濤)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방문일정이 극비에 부쳐지고 북·중 당국은 물론 우리 정부도 공식확인을 하지 않아 답답하기 짝이 없다.따라서 정상회담 내용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정상회담 개최는 사실인 것 같다. 북한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이나 북한 내부 사정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의 방중은 북핵문제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핵문제는 지난 2월 제2차 6자회담에서 오는 6월말 이전 후속회담을 열기로 합의해 놓고서도 아직 실무회담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최근까지 북한의 핵보유 여부를 둘러싼 외신보도를 놓고 북·미간 신경전이 계속되는 등 회담재개 분위기 조성이 안 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포기 대신 원하는 안보·경제적 대가가 무엇인지를 소상히 파악하고,이러한 북한의 요구와 우려를 미국 등에 전달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특히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지난주 베이징을 방문,북핵문제에 관한 미국정부의 입장을 중국정부에 상세히 전달한 바 있기 때문에 중국정부의 조정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기대된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지난 2001년 상하이(上海) 발전상을 보고 감탄했듯이 이번에도 중국의 개혁현장을 두루 둘러보고 북한 개혁의 동력으로 삼기 바란다.귀국길에 중국내 여러 개발현장 방문계획도 잡혀있다니 기대된다.다만 이번 방문도 극비 관행을 고집해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김 위원장은 외교무대에서 투명하고 당당한 처신이 북한의 이미지 제고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 극비외유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끝내주기 바란다.˝
  • 인천지법원장 우의형씨 청주지법원장 이광렬씨

    대법원은 16일 최근 ‘골프접대’ 파동으로 사임한 김명길 인천지법원장 후임에 우의형 청주지법원장을 전보하고,청주지법원장에는 이광렬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를 승진 발령하는 등 법관 7명에 대한 인사를 오는 19일자로 실시했다. 또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에 이우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승진 발령했으며,골프회동에 참석해 물의를 빚은 김용대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전지법으로 전보시켰다.˝
  • [총선 D-5] 광주남

    광주는 민주당의 생사 여부가 걸려 있는 곳이다.이번 총선에서는 광주시장과 내무부장관 등을 지낸 뒤 16대 때 무소속으로 당선된 민주당 강운태 후보와 전남대 정외과 교수 출신인 열린우리당 지병문 후보,자민련 김균진 후보,민주노동당 황광우 후보,무소속 강도석 후보가 나섰다. 지금까지의 판세는 강 후보와 지 후보 맞대결 양상이다.20∼30대가 전체 유권자의 45%를 넘는 지역적 특성답게 탄핵 역풍이 거세게 일던 곳이다.탄핵정국 초반에는 지 후보가 강 후보를 30% 포인트 이상의 지지율 격차로 앞서기도 했으나,강 후보가 화려한 관직 경력과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맹추격하고 있다. 강 후보 측은 탄핵 역풍이 잦아들면서 지 후보를 추월했다고 판단하고 있다.강 후보 측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과 민주당 추미애 선대위원장의 삼보일배 효과까지 겹치면서 조금씩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서 “선거 막바지에 유권자들이 인물 중심으로 평가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장담했다.반면 지 후보 측은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총선 뒤에도 한나라당·민주당 공조를 계속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정 의장 발언으로 떠났던 민심이 다시 지 후보 쪽으로 돌아오고 있다.”면서 “우위가 꾸준히 지속되는 만큼,당선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강 후보는 ▲월산동 등 달동네 재개발 사업 ▲백운동 우회도로 구축 ▲노인실버타운 완공 등 16대 국회 때 유치한 민생사업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지 후보는 ▲정보 금융부가산업 유치 ▲도심 재래시장 활성화와 서민경제특별지원정책 추진 ▲지역구 상권 활성화 등 지역 경제 살리기를 중점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월간 사회평론 ‘길’을 창간한 민노당 황광우 후보는 ‘노동자 서민의 정치 참여’를 내걸고 거리를 누비고 있다.자민련 김 후보는 도덕성을 홍보하며 표밭갈이에 열중하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 ●지병문 후보가 본 강운태 후보 -장점 전남 순천시장을 시작으로 청와대 행정비서관,광주시장,농림수산부 장관 등을 거쳐 다양한 행정 경험을 쌓은 것이 큰 장점이다.16대 때 처음 국회에 들어왔지만,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고,조직의 생리를 재빨리 파악해 민주당에서 사무총장에 오르는 등 적응력도 돋보였다.부지런한 성격과 타고난 추진력으로 주변에 정평이 나 있다고 들었다. -단점 정치판에서 몸담은 기간은 짧은데 비해 강 후보의 정치 행각은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양지’만 좇는 기회주의적인 처신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강 후보가 스스로 ‘정책 9단’이라고 평가하지만 제가 볼 때는 시대의 흐름과 민의를 읽을 수 있는 정치철학과 역사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 의식의 소유자라는 점도 흠이다. ●강운태 후보가 본 지병문 후보 -장점 현실 정치판에서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후보다.그만큼 지역을 위해 일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 장점이다.10여년 동안 전남대 교수로 지내면서 학구적인 소양을 쌓았다고 들었다.그러면서도 현실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발언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교편을 잡았던 경험으로 젊은 세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단점 지 후보가 날카로운 시각으로 정치판을 비판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 정치에 대안을 제시하거나 행동으로 옮겨본 적이 없다.지방자치단체에서 용역 발주한 논문이 여러 차례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등 도덕성 논란도 있다.이렇다 할 지역개발 정책은 없이 ‘탄핵 심판’만을 외치는 것으로 과연 지역을 위해 뛰는 ‘준비된 일꾼’인지 의심스럽다. ˝
  • 儒林(67)-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67)-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17살 되던 해,스승 한훤당으로부터 직접 전해 들었던 ‘유가선비가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儒行)’에 대한 설법을 되새기던 조광조의 가슴으로 공자의 말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선비는 충정과 신의로서 갑옷과 투구를 삼고,예의와 정의로서 방패를 삼으며,인(仁)을 추대하여 행동하고,비록 폭정이라 하더라도 정의를 안고 처신해야 한다’는 공자의 말은 사자후(獅子吼)가 되어 조광조의 뇌리를 흔들었다. 사자후. 사자가 울부짖으면 뭇짐승들이 엎드려 떨듯이 20여 년 전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선비의 사상’은 하루아침에 반역죄인이 되어 유배를 떠나는 조광조의 가슴에 사자후가 되어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과연 스승 한훤당으로부터 ‘평생 잊지 말고 명심하라.’고 내린 유훈(遺訓)을 잊지 않고 지켜나가고 있었던 것일까. 조광조는 쉴새없이 흔들리는 수레 위에서 지난 세월 자신의 처신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반추하고 있었다.한훤당의 유훈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선비는 좁은 집 허술한 방,사립문에 거적문이 달린 집에 살며,옷을 갈아입어야 나갈 수 있고 이틀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할 형편이라 하더라도,임금이 응낙한 데 대하여는 감히 의심치 아니하며,임금이 응낙지 않는다 하더라도 감히 아첨하지 않습니다.그들의 벼슬하는 태도는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지금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옛 사람들에게 뜻을 두며,지금 세상에서 행동하고 있지만 후세의 모범이 됩니다.마침 좋은 세상을 만나지 못하여,임금이 끌어주지 아니하고 신하들은 밀어주지 아니하며,아첨을 일삼는 백성들 중에 붕당(朋黨)을 이루어 가지고 그를 위협하는 자들이 있다 하더라도,그의 몸을 위태롭게 할 수는 있으나 그의 뜻을 뺏을 수는 없습니다.비록 위태롭다 하더라도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끝내 자기 뜻을 믿으며,백성들의 고통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그들의 걱정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선비는 널리 공부하되 그만두는 일이 없으며,독실한 행동함에 지치지 아니하고,홀로 거처하더라도 그릇된 짓을 하지 않습니다.위로 출세를 한다 하더라도 덕이 부족하여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하며,예로서 사람들을 대하되 조화를 귀중히 여기며,충성과 신의를 찬양하고,온화하고 유순한 것을 법도로 삼으며,현명한 사람을 흠모하되 모든 사람들을 용납하며,자기의 모난 것을 무너뜨림으로써 백성들과 화합하고자 합니다.그들의 관대하고 너그러움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안에서 사람을 천거함에 친한 사람이라 하여 기피하지 않고,밖에서 사람을 천거함에 원수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피하지 않습니다.그의 공로를 드러내고 한 일들을 종합하여 현명한 사람이면 누구나 추천하여 벼슬자리에 나아가게 하되 그 보답을 바라지는 않습니다.임금이 그의 뜻을 이해하여 사람을 씀으로써 진실로 국가를 이롭게 하려고만 하지 부귀를 추구하지는 않습니다.그들이 현명한 이들을 천거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을 추천함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훌륭한 것을 들으면 남에게도 알려주고,훌륭한 것을 보면 남에게도 보여줍니다.벼슬자리에는 서로 남을 앞세우고,환난을 당하면 서로 죽음을 무릅쓰며,오랜 동안라도 남이 먼저 승진(昇進)하기를 기다리고,먼 곳의 사람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서로 불러 벼슬하게 합니다.그들이 벼슬하고 남을 내세움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자신을 깨끗이 건사하고 덕(德)으로 목욕을 하며,임금에게 의견을 아뢰고는 엎드려 하회를 기다리고,고요히 물러나서도 홀로 올바른 길을 지킵니다.임금이 알아주지 않고 소원히 대하더라도 은근히 깨우쳐 드리되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낮은 사람들을 대함에 오만하지 아니하고,자기만 못한 사람들 앞에 뽐내는 법이 없습니다….”
  • 儒林(67)-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17살 되던 해,스승 한훤당으로부터 직접 전해 들었던 ‘유가선비가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儒行)’에 대한 설법을 되새기던 조광조의 가슴으로 공자의 말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선비는 충정과 신의로서 갑옷과 투구를 삼고,예의와 정의로서 방패를 삼으며,인(仁)을 추대하여 행동하고,비록 폭정이라 하더라도 정의를 안고 처신해야 한다’는 공자의 말은 사자후(獅子吼)가 되어 조광조의 뇌리를 흔들었다. 사자후. 사자가 울부짖으면 뭇짐승들이 엎드려 떨듯이 20여 년 전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선비의 사상’은 하루아침에 반역죄인이 되어 유배를 떠나는 조광조의 가슴에 사자후가 되어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과연 스승 한훤당으로부터 ‘평생 잊지 말고 명심하라.’고 내린 유훈(遺訓)을 잊지 않고 지켜나가고 있었던 것일까. 조광조는 쉴새없이 흔들리는 수레 위에서 지난 세월 자신의 처신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반추하고 있었다.한훤당의 유훈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선비는 좁은 집 허술한 방,사립문에 거적문이 달린 집에 살며,옷을 갈아입어야 나갈 수 있고 이틀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할 형편이라 하더라도,임금이 응낙한 데 대하여는 감히 의심치 아니하며,임금이 응낙지 않는다 하더라도 감히 아첨하지 않습니다.그들의 벼슬하는 태도는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지금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옛 사람들에게 뜻을 두며,지금 세상에서 행동하고 있지만 후세의 모범이 됩니다.마침 좋은 세상을 만나지 못하여,임금이 끌어주지 아니하고 신하들은 밀어주지 아니하며,아첨을 일삼는 백성들 중에 붕당(朋黨)을 이루어 가지고 그를 위협하는 자들이 있다 하더라도,그의 몸을 위태롭게 할 수는 있으나 그의 뜻을 뺏을 수는 없습니다.비록 위태롭다 하더라도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끝내 자기 뜻을 믿으며,백성들의 고통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그들의 걱정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선비는 널리 공부하되 그만두는 일이 없으며,독실한 행동함에 지치지 아니하고,홀로 거처하더라도 그릇된 짓을 하지 않습니다.위로 출세를 한다 하더라도 덕이 부족하여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하며,예로서 사람들을 대하되 조화를 귀중히 여기며,충성과 신의를 찬양하고,온화하고 유순한 것을 법도로 삼으며,현명한 사람을 흠모하되 모든 사람들을 용납하며,자기의 모난 것을 무너뜨림으로써 백성들과 화합하고자 합니다.그들의 관대하고 너그러움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안에서 사람을 천거함에 친한 사람이라 하여 기피하지 않고,밖에서 사람을 천거함에 원수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피하지 않습니다.그의 공로를 드러내고 한 일들을 종합하여 현명한 사람이면 누구나 추천하여 벼슬자리에 나아가게 하되 그 보답을 바라지는 않습니다.임금이 그의 뜻을 이해하여 사람을 씀으로써 진실로 국가를 이롭게 하려고만 하지 부귀를 추구하지는 않습니다.그들이 현명한 이들을 천거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을 추천함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훌륭한 것을 들으면 남에게도 알려주고,훌륭한 것을 보면 남에게도 보여줍니다.벼슬자리에는 서로 남을 앞세우고,환난을 당하면 서로 죽음을 무릅쓰며,오랜 동안라도 남이 먼저 승진(昇進)하기를 기다리고,먼 곳의 사람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서로 불러 벼슬하게 합니다.그들이 벼슬하고 남을 내세움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자신을 깨끗이 건사하고 덕(德)으로 목욕을 하며,임금에게 의견을 아뢰고는 엎드려 하회를 기다리고,고요히 물러나서도 홀로 올바른 길을 지킵니다.임금이 알아주지 않고 소원히 대하더라도 은근히 깨우쳐 드리되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낮은 사람들을 대함에 오만하지 아니하고,자기만 못한 사람들 앞에 뽐내는 법이 없습니다….”˝
  • 儒林(66)-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이때 김굉필은 찾아간 17세의 조광조에게 선비로서의 행동에 대해 먼저 가르치기 시작하였다.이는 노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유가선비로서의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하고 물은 데에 대한 공자의 답변이었던 것이다. “너는 마땅히 공자가 선비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친 내용을 평생 잊지 않고 명심하도록 하여라.” 조광조는 유배 길의 수레위에서 20여년 전 스승 한훤당이 일러준 내용을 묵묵히 처음부터 끝까지 되새겨 보았다. “선비는 보배(옛 성왕의 도)를 벌여 놓고서 초빙되기를 기다리고 부지런히 힘써 학문을 닦아 쓰여지기를 기다리며,충성과 신의를 품고서 등용되기를 기다리고,힘써 실천함으로써 벼슬자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그들이 스스로를 닦고 있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의관(衣冠)이 알맞아야 하며 동작이 신중해야 합니다.그들이 큰 것을 사양할 적에는 태만(怠慢)한 듯하고,작은 것을 사양할 적에는 거짓인 듯하며,크게는 위협을 받고 있는 듯이 하고,작게는 부끄러운 듯이 합니다.그들이 나아가는 일은 어렵게 하며 물러서는 일은 쉽사리 하며,유약(柔弱)하기 무능한 사람과 같습니다.그들의 용모는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기거(起居)에 엄격하고 어려움을 두려워하며,그들의 거동은 공경하고 말은 반드시 신의를 앞세우며 행동은 반드시 알맞고 올바릅니다.길을 나서서는 편리한 길을 다투지 아니하고,여름이나 겨울에는 따스하고 시원한 곳을 다투지 않습니다.그의 목숨을 아끼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며,그의 몸을 보양(保養)하는 것은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그들의 대비(對備)는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금과 옥을 보배로 여기지 아니하고 충성과 신의를 보배로 삼습니다.땅 차지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의로움을 세우는 것으로써 땅을 삼으며,재물을 많이 축적하기를 바라지 않고 학문이 많은 것을 부로 여깁니다.벼슬을 얻는 일은 어렵게 생각하되 녹(祿)은 가벼이 생각하며,녹은 가벼이 생각하되 벼슬자리에 머무는 것은 어렵게 생각합니다.적절한 시기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으니 벼슬 얻는 일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의로움이 아니라면 화합하지 않으니 벼슬자리에 머무는 것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선비사상.비록 공자가 설법함에서 비롯되었으나 전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선비사상을 남긴 우리나라.지금은 퇴색되어 흔적도 보이지 않으나 마땅히 그 명맥을 이어나가야 할 ‘선비의 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선비는 재물을 탐하는 태도를 버리고 즐기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이익을 위하여 의로움을 손상시키지 않고,여럿이서 위협하고 무기로써 협박을 하여 죽음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의 지조를 바꾸지 않습니다.사나운 새나 맹수(猛獸)가 덤벼들면 용기를 생각지 않고 그에 대처하며 무거운 솥(鼎)을 끌 일이 생기면 자기 힘을 헤아리지 않고 그 일에 착수합니다.과거에 대하여 후회하지 아니하고 장래에 대하여 미리 점치지 아니하며,그릇된 말을 두 번 거듭하지 않고 뜬소문을 두고 따지지 않습니다.그의 위엄은 끊이는 일이 없으며,그의 계책을 미리 익히는 법이 없습니다.그들의 행위가 뛰어남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친근히 할 수는 있어도 위협을 할 수는 없고,가까이하게 할 수는 있어도 협박할 수는 없으며,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일 수는 없습니다.그들은 사는데 있어 음락(淫樂)을 추구하지 않으며,음식에 있어 맛을 탐하지 않습니다.그들의 과실은 은밀히 가려줄 수는 있어도 면대(面對)하여 꾸짖을 수는 없습니다.그들의 꿋꿋하고 억셈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충성과 신의로써 갑옷과 투구를 삼고,예의와 정의로써 방패를 삼으며,인(仁)을 추대하여 행동하고 정의를 안고 처신합니다.비록 폭정(暴政)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그들이 스스로 처신함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좁은 집 허술한 방,사립문에 거적문이 달린 집에 살며,옷을 갈아 입어야 나갈 수 있고 이틀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할 형편이라 하더라도,임금이 응낙한 데 대하여는 감히 의심치 아니하며,임금이 응낙지 않는다 하더라도 감히 아첨하지 않습니다.그들의 벼슬하는 태도는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지금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옛 사람들에게 뜻을 두며,지금 세상에서 행동하고 있지만 후세의 모범이 됩니다.마침 좋은 세상을 만나지 못하여,임금이 끌어주지 아니하고 신하들은 밀어주지 아니하며,아첨을 일삼는 백성들 중에 붕당(朋黨)을 이루어 가지고 그를 위협하는 자들이 있다 하더라도,그의 몸을 위태롭게 할 수는 있으나 그의 뜻을 뺏을 수는 없습니다.비록 위태롭다 하더라도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끝내 자기 뜻을 믿으며,백성들의 고통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그들의 걱정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 儒林(66)-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66)-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이때 김굉필은 찾아간 17세의 조광조에게 선비로서의 행동에 대해 먼저 가르치기 시작하였다.이는 노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유가선비로서의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하고 물은 데에 대한 공자의 답변이었던 것이다. “너는 마땅히 공자가 선비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친 내용을 평생 잊지 않고 명심하도록 하여라.” 조광조는 유배 길의 수레위에서 20여년 전 스승 한훤당이 일러준 내용을 묵묵히 처음부터 끝까지 되새겨 보았다. “선비는 보배(옛 성왕의 도)를 벌여 놓고서 초빙되기를 기다리고 부지런히 힘써 학문을 닦아 쓰여지기를 기다리며,충성과 신의를 품고서 등용되기를 기다리고,힘써 실천함으로써 벼슬자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그들이 스스로를 닦고 있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의관(衣冠)이 알맞아야 하며 동작이 신중해야 합니다.그들이 큰 것을 사양할 적에는 태만(怠慢)한 듯하고,작은 것을 사양할 적에는 거짓인 듯하며,크게는 위협을 받고 있는 듯이 하고,작게는 부끄러운 듯이 합니다.그들이 나아가는 일은 어렵게 하며 물러서는 일은 쉽사리 하며,유약(柔弱)하기 무능한 사람과 같습니다.그들의 용모는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기거(起居)에 엄격하고 어려움을 두려워하며,그들의 거동은 공경하고 말은 반드시 신의를 앞세우며 행동은 반드시 알맞고 올바릅니다.길을 나서서는 편리한 길을 다투지 아니하고,여름이나 겨울에는 따스하고 시원한 곳을 다투지 않습니다.그의 목숨을 아끼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며,그의 몸을 보양(保養)하는 것은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그들의 대비(對備)는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금과 옥을 보배로 여기지 아니하고 충성과 신의를 보배로 삼습니다.땅 차지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의로움을 세우는 것으로써 땅을 삼으며,재물을 많이 축적하기를 바라지 않고 학문이 많은 것을 부로 여깁니다.벼슬을 얻는 일은 어렵게 생각하되 녹(祿)은 가벼이 생각하며,녹은 가벼이 생각하되 벼슬자리에 머무는 것은 어렵게 생각합니다.적절한 시기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으니 벼슬 얻는 일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의로움이 아니라면 화합하지 않으니 벼슬자리에 머무는 것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선비사상.비록 공자가 설법함에서 비롯되었으나 전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선비사상을 남긴 우리나라.지금은 퇴색되어 흔적도 보이지 않으나 마땅히 그 명맥을 이어나가야 할 ‘선비의 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선비는 재물을 탐하는 태도를 버리고 즐기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이익을 위하여 의로움을 손상시키지 않고,여럿이서 위협하고 무기로써 협박을 하여 죽음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의 지조를 바꾸지 않습니다.사나운 새나 맹수(猛獸)가 덤벼들면 용기를 생각지 않고 그에 대처하며 무거운 솥(鼎)을 끌 일이 생기면 자기 힘을 헤아리지 않고 그 일에 착수합니다.과거에 대하여 후회하지 아니하고 장래에 대하여 미리 점치지 아니하며,그릇된 말을 두 번 거듭하지 않고 뜬소문을 두고 따지지 않습니다.그의 위엄은 끊이는 일이 없으며,그의 계책을 미리 익히는 법이 없습니다.그들의 행위가 뛰어남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친근히 할 수는 있어도 위협을 할 수는 없고,가까이하게 할 수는 있어도 협박할 수는 없으며,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일 수는 없습니다.그들은 사는데 있어 음락(淫樂)을 추구하지 않으며,음식에 있어 맛을 탐하지 않습니다.그들의 과실은 은밀히 가려줄 수는 있어도 면대(面對)하여 꾸짖을 수는 없습니다.그들의 꿋꿋하고 억셈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충성과 신의로써 갑옷과 투구를 삼고,예의와 정의로써 방패를 삼으며,인(仁)을 추대하여 행동하고 정의를 안고 처신합니다.비록 폭정(暴政)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그들이 스스로 처신함이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좁은 집 허술한 방,사립문에 거적문이 달린 집에 살며,옷을 갈아 입어야 나갈 수 있고 이틀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할 형편이라 하더라도,임금이 응낙한 데 대하여는 감히 의심치 아니하며,임금이 응낙지 않는다 하더라도 감히 아첨하지 않습니다.그들의 벼슬하는 태도는 이와 같습니다. 선비는 지금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옛 사람들에게 뜻을 두며,지금 세상에서 행동하고 있지만 후세의 모범이 됩니다.마침 좋은 세상을 만나지 못하여,임금이 끌어주지 아니하고 신하들은 밀어주지 아니하며,아첨을 일삼는 백성들 중에 붕당(朋黨)을 이루어 가지고 그를 위협하는 자들이 있다 하더라도,그의 몸을 위태롭게 할 수는 있으나 그의 뜻을 뺏을 수는 없습니다.비록 위태롭다 하더라도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끝내 자기 뜻을 믿으며,백성들의 고통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그들의 걱정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 儒林(6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6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하오나.” 갖바치도 웃으며 말하였다. “논어에 이르기를 ‘오직 여인과 소인은 다루기 어려우니 가까이하면 교만하고 멀리하면 원망하게 된다(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하였습니다.나으리께오서는 여인 하나도 이미 못 다뤄 정표로 빼어준 머리 비녀도 벽에 걸어두고 도망쳐 원망을 받으셨는데 어찌 소인으로부터도 원망을 받지 않으시겠나이까.” 갖바치의 말에 조광조는 크게 웃었다.갖바치의 말은 두 사람이 함께 밤을 새우며 나눴던 정담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조광조는 평생동안 한 사람의 부인만을 둔 예외적인 인물이었다.거의 모든 고위대신들뿐 아니라 서경덕 같은 빼어난 성리학자들도 대부분 축첩(蓄妾)을 하고 있었으며,이를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에도 조광조는 시대를 초월하는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듯 정부인 하나만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의 유혹에 대해 조광조가 어떻게 처신하였던가를 말해주는 일화 하나가 지금도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광조가 20살도 안 되었던 젊은 시절,외방을 나갔다가 하룻밤 묵어가려고 숙박할 집을 정하여 들었는데,마침 그때 그 여인숙에 먼저 온 손님으로 젊은 여인이 있었다.기록에 의하면 용모도 무척 예뻤던 여인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이 여인이 준수한 외모의 조광조를 보자 마음이 동하여 은근히 추파를 보내 유혹해 오기 시작하였다.여인의 태도에 부담을 느낀 조광조는 가노(家奴)를 재촉하여 짐을 싣고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겼는데,그날 밤 가노는 조광조에게 물건 하나를 내놓으며 말하였다. “나으리,어떤 사람이 나으리에게 이것을 전해드리라 하였나이다.” “그게 무엇이냐.” 조광조가 받아들고 보니 그것은 비녀였다.비녀란 쪽진 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장신구로서 여인이 자신의 비녀를 보낸다는 것은 풀어헤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암시였던 것이다.특히 쪽진머리는 시집간 여자가 뒤통수를 땋아 틀어올려서 비녀를 꽂은 모습을 말하는데,이는 그 여인이 남편이 있는 아낙네임을 증명하는 것이었고,머리가 풀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몸을 허락하겠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비녀는 꽃과 달의 모습이 새겨진 화월잠(花月簪)이었는데,이를 받아든 조광조는 심히 난처하여 말하였다. “이를 돌려주고 오너라.” 조광조의 명령에 가노가 손을 저으며 말하였다. “비녀는 외간 남자가 돌려줄 수는 없습니다.오직 나으리만이 이를 돌려줄 수 있을 것이나이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아낙네가 비녀를 뽑아주었다면 이는 정표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이를 되돌려줄 수는 없는 것이다.여인의 유혹을 거절한다 하더라도 이를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조광조뿐이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광조는 여인에게 직접 비녀를 돌려주지 아니하고 여인숙의 벽에 이를 걸어놓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고 전하고 있다. “나으리께오서는 죄를 지으셨습니다.” 조광조가 그렇게 고백하였을 때 갖바치는 놀리면서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잔은 채워야 맛이고,계집은 품어야 맛이다.’고 하였습니다.하물며 나으리께서는 화보시(花普施)란 말씀도 모르십니까.정에 굶주린 여인의 풀어헤친 머리를 쓰다듬어 비녀를 다시 꽂아주는 행위도 훌륭한 보시이며,자비행위인 것입니다.”
  • 儒林(6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하오나.” 갖바치도 웃으며 말하였다. “논어에 이르기를 ‘오직 여인과 소인은 다루기 어려우니 가까이하면 교만하고 멀리하면 원망하게 된다(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하였습니다.나으리께오서는 여인 하나도 이미 못 다뤄 정표로 빼어준 머리 비녀도 벽에 걸어두고 도망쳐 원망을 받으셨는데 어찌 소인으로부터도 원망을 받지 않으시겠나이까.” 갖바치의 말에 조광조는 크게 웃었다.갖바치의 말은 두 사람이 함께 밤을 새우며 나눴던 정담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조광조는 평생동안 한 사람의 부인만을 둔 예외적인 인물이었다.거의 모든 고위대신들뿐 아니라 서경덕 같은 빼어난 성리학자들도 대부분 축첩(蓄妾)을 하고 있었으며,이를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에도 조광조는 시대를 초월하는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듯 정부인 하나만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의 유혹에 대해 조광조가 어떻게 처신하였던가를 말해주는 일화 하나가 지금도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광조가 20살도 안 되었던 젊은 시절,외방을 나갔다가 하룻밤 묵어가려고 숙박할 집을 정하여 들었는데,마침 그때 그 여인숙에 먼저 온 손님으로 젊은 여인이 있었다.기록에 의하면 용모도 무척 예뻤던 여인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이 여인이 준수한 외모의 조광조를 보자 마음이 동하여 은근히 추파를 보내 유혹해 오기 시작하였다.여인의 태도에 부담을 느낀 조광조는 가노(家奴)를 재촉하여 짐을 싣고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겼는데,그날 밤 가노는 조광조에게 물건 하나를 내놓으며 말하였다. “나으리,어떤 사람이 나으리에게 이것을 전해드리라 하였나이다.” “그게 무엇이냐.” 조광조가 받아들고 보니 그것은 비녀였다.비녀란 쪽진 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장신구로서 여인이 자신의 비녀를 보낸다는 것은 풀어헤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암시였던 것이다.특히 쪽진머리는 시집간 여자가 뒤통수를 땋아 틀어올려서 비녀를 꽂은 모습을 말하는데,이는 그 여인이 남편이 있는 아낙네임을 증명하는 것이었고,머리가 풀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몸을 허락하겠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비녀는 꽃과 달의 모습이 새겨진 화월잠(花月簪)이었는데,이를 받아든 조광조는 심히 난처하여 말하였다. “이를 돌려주고 오너라.” 조광조의 명령에 가노가 손을 저으며 말하였다. “비녀는 외간 남자가 돌려줄 수는 없습니다.오직 나으리만이 이를 돌려줄 수 있을 것이나이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아낙네가 비녀를 뽑아주었다면 이는 정표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이를 되돌려줄 수는 없는 것이다.여인의 유혹을 거절한다 하더라도 이를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조광조뿐이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광조는 여인에게 직접 비녀를 돌려주지 아니하고 여인숙의 벽에 이를 걸어놓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고 전하고 있다. “나으리께오서는 죄를 지으셨습니다.” 조광조가 그렇게 고백하였을 때 갖바치는 놀리면서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잔은 채워야 맛이고,계집은 품어야 맛이다.’고 하였습니다.하물며 나으리께서는 화보시(花普施)란 말씀도 모르십니까.정에 굶주린 여인의 풀어헤친 머리를 쓰다듬어 비녀를 다시 꽂아주는 행위도 훌륭한 보시이며,자비행위인 것입니다.”˝
  • [서울광장] 촛불이 남긴 것/이기동 논설위원

    제발 법을 지켜달라고 외치는 공권력의 호소는 거리의 판관들 앞에 무력하다.만인이 스스로 지켜야 할 법과 지키지 않아도 될 법의 준거를 결정한다면 국가는 설 자리가 없다. 잔치는 끝났다.보름에 걸쳐 이땅의 도심을 메운 촛불의식은 썰물이 빠지듯 깨끗이 자취를 감췄다.연인의 손을 잡고,어린아이를 목말 태우고 거리로 몰려나온 수많은 시민들은 6·29선언을 연상케 하는 평화시위의 새 장을 열어보였다.하지만 서울 광화문 지하도 계단 군데군데 검회색 자국을 남긴 촛불은 우리의 의식에도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을 남겼다. 누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간에 총선은 대통령의 재신임과 연계된 제2의 대선이 돼버렸다.두주일만에 두배씩 뛴 열린우리당 후보들의 지지율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그 짧은 시간에 후보들의 인품이,능력이 두배씩 뛰었을 리 만무한데.재신임의 연장선에 놓이게 된 이번 총선은 분란의 씨를 잉태하고 있다.촛불군중들이 요구한 것은 순수 민주주의였다.절대선을 추구하는 구도자들처럼 촛불의 밝음을 조금이라도 헤살놓는 불순물은 용납하지 않는다.‘사망선고를 받은 16대 국회’,‘차떼기 한나라당’,‘지역주의 민주당’은 이들의 눈에 불순물일 뿐이다.그 야당의 지지율은 두주만에 모두 반토막이 났다. 민심의 대전환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거대 야당의 상상력 빈곤이 낳은 결과다.야당은 60% 이상의 탄핵반대 여론이 잉태한 대지각변동을 차마 상상치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촛불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첫번째는 법치의 영역이다.우리도 한때는 ‘법대로’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다.추상같은 법의 잣대앞에 추풍낙옆처럼 쓰러지는 철밥통 공무원조직,재벌,하나회의 장성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그래 이게 바로 개혁의 참맛이야.’하며 환호했다.그 법대로의 대명사이던 사람이 차떼기로 만신창이가 된 탓인가.법대로는 지금 국민의 함성을 외면하는,시대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이들의 처신으로 폄하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향해,전교조를 향해,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향해 제발 법을 지켜달라고 외치는 공권력의 호소는 거리의 판관들 앞에 무력하다.만인이 스스로 지켜야 할 법과 지키지 않아도 될 법의 준거를 결정한다면 국가는 설 자리가 없다.그럼에도 그게 민주주의의 힘이라고,민주주의는 참여하는 것이라고,민중들이여 거리로 나가라고 외치는 지식인,법률가들이 이땅에는 무수하다.하지만 환희는 찰나이고 군중은 야속하다.십수년 전 동유럽 도시들,소피아,부쿠레슈티,프라하,바르샤바,부다페스트의 도심을 밝힌 반공산 촛불을 우리는 기억한다.하지만 지금 그곳의 군중들은 그때의 촛불시위를 주도한 민주 지도자들을 기억하지 않는다.짧게는 한두해,길게는 5년안에 민심은 경제난,민생고에 무능한 그들을 버렸다.개혁의 대명사 고르바초프는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보수 쿠데타군에 맞서 사자후를 토하던 옐친은 병약한 술주정뱅이로 물러났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명실상부한 주류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스스로를 족벌언론,거대 야당,재벌에 둘러싸인 조각배로 칭하는 비주류의 언행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중국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데 한국경제는 터널로 진입중이라는 전경련 부회장의 고언을 새겨들어야 하고,한국의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나라밖 보수인사들의 발언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발상전환이 없다면 “이러자고 공무원들이 처벌을 각오한 탄핵반대 성명을 내고,선생님들은 학부모들에게 욕먹어가며 총선수업을 감행했던가.”하는 배신과 허탈감의 소리가 금방 들려온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혹자는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이 땅의 보수세력이 재건축을 거쳐 다시 물줄기를 되돌리는 데 몇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말한다.하지만 촛불군중들이 지금의 행복감을 불만으로 바꾸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눈앞의 승리감에 도취되기에는 촛불의 밝음 뒤에 드리운 그림자가 너무 짙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
  • 儒林(59)-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59)-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갖바치의 말에 두사람은 단숨에 의기투합되었다.만난 후 불과 서너마디의 문답으로 두 사람은 이심전심이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오셨냐는 갖바치의 질문에 대해 ‘피리’,즉 ‘가죽의 마음’을 보러 왔다는 조광조의 대답과,껄껄 웃으며 ‘양춘을 보러 오셨군요.’라고 대답한 두 사람의 선문답을 합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되는 것이다. 피리양추(皮裏陽秋). 원래는 ‘피리춘추(皮裏春秋)’지만 진(晉)의 간문후(簡文后)의 휘가 ‘춘(春)’이었으므로 이를 피해 ‘양(陽)’자를 사용하였던 것이다.이 문장의 뜻을 직역하면 ‘가죽의 속에는 춘추,즉 역사가 있다’는 뜻인 것이다.그러므로 이 문장의 의미는 ‘모든 사람은 비록 말은 하지 않더라도 저마다의 마음 속에는 속셈과 분별력이 있다’는 뜻인 것이다. 이 선문답을 통해 조광조는 갖바치가 소문대로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꿰뚫게 되었으며 갖바치 또한 변복을 하고 찾아온 조광조가 불세출의 정치가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이때부터 조광조는 이 갖바치를 찾아와 시국에 관한 대화도 나누고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묻기도 했던 것이다.그러기를 수차례,어떤 때는 기록에 나와 있는 대로 갖바치의 전방에서 함께 자면서 밤을 새우며 토론하기도 하였던 것이다.특히 조광조의 주된 관심은 난세를 타파하는 개혁에 대한 방안이었다.이에 갖바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나으리,이 전방에는 모든 가죽이란 가죽은 다 걸려 있습니다.쇠가죽은 물론 돼지,뱀,거북이 할 것 없이 다 걸려 있습니다.그러나 단 한가지의 가죽만은 걸려 있지 않습니다.그것이 무엇인 줄 아시나이까.” 잠시 숙고하던 조광조가 대답하였다. “인피(人皮),즉 사람의 가죽이 아닐 것인가.” 조광조가 대답하자 갖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나으리.이곳에는 사람의 가죽만은 걸려 있지 않습니다.하오나 나으리,옛말에 이르기를 ‘모든 가죽의 심중에는 이를 분별하는 올바른 속셈이 들어 있다’하였습니다.동물의 심중에도 이러한 분별력이 들어 있으매 하물며 사람의 심중에는 천성이 깃들어 있지 않겠습니까.나으리,나으리께오서는 난세(亂世)를 걱정하셨습니다마는 당의 선승 조주(趙洲)는 한 사람이 와서 ‘난세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난세야말로 호시절이다.’ 그러므로 나으리,난세를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오히려 사람의 가죽,즉 인피 속에 깃들어 있는 백성들의 분별력을 키우고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는 호시절임에 틀림없을 것이나이다.그러므로 나으리,난세를 바로잡을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은 첫째도 사람이고,둘째도 사람이며,셋째도 사람인 것입니다.” 갖바치는 가죽을 깎는 칼을 들어 가죽위에 사람 인(人)자를 새기며 힘주어 말하였다. “쇤네는 쇠가죽의 겉을 다루어 신발을 만들고 있습니다마는 나으리께오서는 사람의 가죽을 다루어 정치를 바로잡는 갖바치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갖바치는 형형한 눈빛으로 조광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람을 바꿔야 하실 것입니다.고인 물은 반드시 썩게 마련입니다.따라서 썩은 정치를 바꾸는 일은 결국 사람을 바꾸어 새물로 갈아 채우는 일입니다.” 갖바치의 ‘인적청산론’은 조광조의 정국(靖國)공신의 개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연산군을 몰아세우는 데 공을 세웠다 하여서 훈작(勳爵)을 받은 정국공신들을 훈구파라 하였는데,이 무렵 이 정국공신들의 숫자는 무려 103명에 이르고 있었다.한번 공신에 오르면 자손대대로 영화를 누릴 수 있고 토지와 노비를 받아 경제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일부에서는 뇌물이나 로비로 공신에 책봉되었던 것이다.
  • 儒林(59)-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갖바치의 말에 두사람은 단숨에 의기투합되었다.만난 후 불과 서너마디의 문답으로 두 사람은 이심전심이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오셨냐는 갖바치의 질문에 대해 ‘피리’,즉 ‘가죽의 마음’을 보러 왔다는 조광조의 대답과,껄껄 웃으며 ‘양춘을 보러 오셨군요.’라고 대답한 두 사람의 선문답을 합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되는 것이다. 피리양추(皮裏陽秋). 원래는 ‘피리춘추(皮裏春秋)’지만 진(晉)의 간문후(簡文后)의 휘가 ‘춘(春)’이었으므로 이를 피해 ‘양(陽)’자를 사용하였던 것이다.이 문장의 뜻을 직역하면 ‘가죽의 속에는 춘추,즉 역사가 있다’는 뜻인 것이다.그러므로 이 문장의 의미는 ‘모든 사람은 비록 말은 하지 않더라도 저마다의 마음 속에는 속셈과 분별력이 있다’는 뜻인 것이다. 이 선문답을 통해 조광조는 갖바치가 소문대로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꿰뚫게 되었으며 갖바치 또한 변복을 하고 찾아온 조광조가 불세출의 정치가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이때부터 조광조는 이 갖바치를 찾아와 시국에 관한 대화도 나누고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묻기도 했던 것이다.그러기를 수차례,어떤 때는 기록에 나와 있는 대로 갖바치의 전방에서 함께 자면서 밤을 새우며 토론하기도 하였던 것이다.특히 조광조의 주된 관심은 난세를 타파하는 개혁에 대한 방안이었다.이에 갖바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나으리,이 전방에는 모든 가죽이란 가죽은 다 걸려 있습니다.쇠가죽은 물론 돼지,뱀,거북이 할 것 없이 다 걸려 있습니다.그러나 단 한가지의 가죽만은 걸려 있지 않습니다.그것이 무엇인 줄 아시나이까.” 잠시 숙고하던 조광조가 대답하였다. “인피(人皮),즉 사람의 가죽이 아닐 것인가.” 조광조가 대답하자 갖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나으리.이곳에는 사람의 가죽만은 걸려 있지 않습니다.하오나 나으리,옛말에 이르기를 ‘모든 가죽의 심중에는 이를 분별하는 올바른 속셈이 들어 있다’하였습니다.동물의 심중에도 이러한 분별력이 들어 있으매 하물며 사람의 심중에는 천성이 깃들어 있지 않겠습니까.나으리,나으리께오서는 난세(亂世)를 걱정하셨습니다마는 당의 선승 조주(趙洲)는 한 사람이 와서 ‘난세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난세야말로 호시절이다.’ 그러므로 나으리,난세를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오히려 사람의 가죽,즉 인피 속에 깃들어 있는 백성들의 분별력을 키우고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는 호시절임에 틀림없을 것이나이다.그러므로 나으리,난세를 바로잡을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은 첫째도 사람이고,둘째도 사람이며,셋째도 사람인 것입니다.” 갖바치는 가죽을 깎는 칼을 들어 가죽위에 사람 인(人)자를 새기며 힘주어 말하였다. “쇤네는 쇠가죽의 겉을 다루어 신발을 만들고 있습니다마는 나으리께오서는 사람의 가죽을 다루어 정치를 바로잡는 갖바치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갖바치는 형형한 눈빛으로 조광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람을 바꿔야 하실 것입니다.고인 물은 반드시 썩게 마련입니다.따라서 썩은 정치를 바꾸는 일은 결국 사람을 바꾸어 새물로 갈아 채우는 일입니다.” 갖바치의 ‘인적청산론’은 조광조의 정국(靖國)공신의 개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연산군을 몰아세우는 데 공을 세웠다 하여서 훈작(勳爵)을 받은 정국공신들을 훈구파라 하였는데,이 무렵 이 정국공신들의 숫자는 무려 103명에 이르고 있었다.한번 공신에 오르면 자손대대로 영화를 누릴 수 있고 토지와 노비를 받아 경제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일부에서는 뇌물이나 로비로 공신에 책봉되었던 것이다.˝
  • [열린세상] 찍을 사람이 없어 기권하겠다고?/강형기 충북대 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 명예회장

    공중목욕탕의 탕 속에서 목만 내밀고 앉아 있는데 옆에 있던 낯선 사람이 대뜸 말을 걸어왔다.탄핵정국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것이었다.요사이 유행하는 소위 반신욕이라는 것을 하고 있던 그는 애초에 내 말은 들어볼 생각도 없었다는 듯 내가 말할 틈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쏟아 놓았다.온탕의 열기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정치요,탄핵이다. 나는 그 숨막히는 상황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지겹고도 시끄러운 정치변설로부터 벗어나려고 일어났지만 곧장 다시 붙들리고 말았다.탕을 나오면서 “총선에서 찍어줄 사람은 결정했느냐.”고 물어본 것이 그만 화근이 되었다.그는 뭔가 좀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냐는 듯 얄궂은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왜 헛수고하러 가느냐.”며 또다시 앞뒤도 없는 장광설을 시작했다.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좀 전에 내가 이야기하던 사람은 어디 가고 또다시 처음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그렇게도 정치 때문에 나라가 어쩌고 경제가 어쩌고 하던 그가 투표를 하지 않겠다니 말이다. 우리 주위에는 앉는 자리마다 정치와 정치가를 논하면서도 정작 때가 되면 투표마저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모처럼 만나는 친구와 술집에서도,심지어는 목욕탕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도,그리고 온통 무엇이 잘못되면 무조건 정치부터 찾던 사람들 중에서도 왜 기권자가 나오는 것일까. 우리 국민들은 지도자의 선택 행위와 처신에 대하여 그 인과관계를 따져가면서 평가하기보다는 단순히 감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많다.또한 정치를 그저 관객의 입장에서 즐기려 하는 ‘관객화’ 현상도 노골화되고 있다.그러나 중요한 변화는 먼 곳이 아닌 내 자신과 이웃에서 비롯된다.이웃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방관하고 현실의 정치행위를 관람하듯 보고 있는 사이,우리의 정치는 아무 말 없이 관람만 해야하는 ‘극장화’의 길을 걷게 된다. 하나의 사회에서 그 대표자를 뽑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원시사회에서는 주먹이나 완력으로 대표자가 선발되었고,정치후진국에서는 총알이나 대포라는 무력행사를 통해서 지도자가 등장하기도 한다.선거는 정치지도자의 교체 수단으로써 탄환(彈丸) 대신 투표용지를 사용하는 제도이다.그러나 이러한 선거의 의미를 결정짓는 핵심은 유권자의 참여의식이다.바람직한 선거풍토를 위해서는 후보자의 준법정신도,당국의 공명선거 의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권들의 성숙한 주인의식이다. 주인으로서 유권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는 투표를 하는 것이다.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많은 유권자들이 자신의 권한행사를 포기한다는 것이다.기권을 하는 이유도 다양하다.내가 찍어 줄 만한 적당한 인물이 없어서라는 이유를 대는 사람도 있다.자신이 투표를 하지 않더라도 대세는 마찬가지라는 정치적 무력감이나 투표를 한다고 해도 정치가 더 좋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정치불신도 한몫을 한다.최근에는 투표보다도 더 급한 용무가 있다며 휴가를 떠나는 사람,그리고 정치나 선거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는 무관심층도 적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권도 하나의 정치비판이요,정치적 선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그러나 우리는 기권이라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선거는 우리의 생활방식과 정치의 존재방식을 결정짓는 것이다. 따라서 기권이란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생활이나 정치의 존재양식에 대하여 백지위임을 하는 행위이다. 물론 우리 시대의 선거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가장 좋은 사람을 뽑는 제도가 아닌지도 모른다.사실 오늘날 선거는 출마한 사람 중에서 덜 나쁜 사람을 뽑는 제도가 되어버렸다.그러나 확실한 사실은,기권이란 출마한 사람 중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뽑히게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그래서 기권은 공동체에 죄를 짓는 것이다. 강형기 충북대 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 명예회장˝
  • [길섶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우득정 논설위원

    60세가 넘어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여성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헤밍웨이의 아들 그레고리,술과 여자에 빠져 아버지의 다비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간디의 아들 할리랄,경박한 처신과 무절제한 생활로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된 처칠의 아들 랜돌프….아버지는 생전에 이미 ‘살아있는 신화’의 반열에 올랐으나 아들은 한결같이 범부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위대한 남자들도 자식 때문에 울었다.’는 책을 쓴 모리시타 겐지(森下賢二)는 자식의 빗나간 인생을 아버지의 탓으로 돌렸다.아버지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웠던 탓에,아버지의 잣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했던 탓에 자식의 삶이 일그러졌다는 것이다.따라서 자식의 막돼먹은 삶은 따지고 보면 바로 위대한 남자들의 뒷모습이라는 것이다. 요즘 아침마다 큰 녀석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나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큰 녀석은 고개를 잔뜩 기울이고 그날 하루 학교에서 펼칠 무용담을 미리 얘기한다.내 키가 아침 햇살을 가리지 않듯이 내 말과 생각이 녀석에게 그늘을 드리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 [사설] 康법무의 본분 벗어난 처신

    강금실 법무장관이 지난 19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의 법률대리인단 간사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만난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법무부 관계자는 문 전 수석이 민정수석을 그만둔 이후 강 장관이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어 인사차 만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그러나 야당측은 법무장관이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위배한 것이라며 문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우리는 강 장관이 노 대통령의 대리인을 만난 것이 개인적 이유라고 하더라도 탄핵정국에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었다고 생각한다.우선 강 장관은 선거 주무부처인 법무부 장관이다.선거 주무장관인 강 장관이 어떤 형태로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대통령 탄핵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측 인사와 접촉한 것은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의 본분에 어긋나는 것이다.또 헌법재판소에서 심리중인 탄핵사건에 대해 정부측 의견서를 내야 하는 법무장관이 대통령의 대리인을 만난 것은 정부와 개인 변호인단의 협조 차원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지금 헌재의 대통령 탄핵사건 심리에서 노 대통령은 개인자격으로 대응하고 있다.법무부는 정부의 법해석 기관으로 23일 헌재에 정부측 의견서를 제출해야 한다.그런데 정부측 주무장관이 탄핵사건 일방 당사자의 대리인을 만났다면,탄핵에 대한 조율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중립성은 훼손되는 것이다.또 지금 총선을 앞두고 탄핵과 관련해 정치·시민사회가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 주무장관인 강 장관의 행동은 선거중립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정의 안정관리와 총선의 엄정중립을 거듭 공직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강 장관의 직분은 국정안정과 선거중립을 실천하고 책임져야 하는 국무위원이다.강 장관은 이제 어떤 경우라도 재판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거나 오해를 살 만한 처신은 삼가야 할 것이다.˝
  • [이경형칼럼] 高대행, 행동반경 넓혀라

    탄핵 정국이 유동적인 가운데 고건(高建)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 행사 범위를 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헌법학자들은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에 관해 “긴급 비상사태가 아니라면,‘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이 비록 탄핵 소추를 받아 직무가 정지되었다고 하나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에 따라서는 권한 복귀가 언제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국정 현안을 놓고 볼 때, ‘관리자로서 책무’의 한계를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대행의 직무 범위를 재는 잣대는 그에게 부과된 임무를 꼼꼼히 생각해보면 어림잡을 수 있다. 첫째는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둘째,탄핵 소추에서 오는 정치·경제·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며 셋째,국회의원 총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일일 것이다.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는 무엇보다 행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민생을 다독거리며 외교·안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권한 행사의 범위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는 문제는 고위 공무원 및 공기업 사장 등 인사 문제와 국회를 통과한 사면법의 재의 요구 여부 등이다.이 가운데 1∼3급 공무원의 승진·전보 인사와 일부 직제 개편에 의해 공석이 된 차관급 인사는 행정 공백을 메운다는 의미에서 시행해야 할 것이다.다만 참여정부 국정의 연속성을 해칠 수 있는 내각 개편 등은 ‘선량한 관리자의 책무’범위를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 국회가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한 사면법에 대해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이 법이 권력분립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하면 거부권을 통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일각에선 고 대행이 ‘너무 나가지 않게’ 대행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정해주는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고 대행이 누구인가.약관에 전남지사·대통령 정무비서관을 거쳐 교통·농수산·내무 등 3개 부처 장관을 역임했다.거기에 관선·민선 서울시장을 두 차례나 했고,국무총리직도 두 번이나 하고 있는 ‘행정의 달인’이다. 그가 헌정사의 위기와 변혁의 고비를 헤쳐나온 것도 따지고 보면 주어진 권한을 더도,덜도 쓰지 않을 뿐 아니라,중요한 결정을 좀체 내리지 않는 타고난 신중한 처신 때문일 것이다.그의 단점은 오히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적극적인 행정을 펴지 않을까 우려되는 점이다. 촛불시위에 관한 지시만 해도 그렇다.고 대행은 “불법집회·시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라.”고 지시한 반면,행자부 장관은 “해가 진 뒤 촛불행사는 불법이지만 문화 행사로 치르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고 했으며,하루 전날 경찰청장은 “탄핵 규탄 촛불집회는 불법이므로 해산시키겠다.”고 했다. 국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가.‘무해무득한 원론적인 지시’는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눈치보기 행정이 되기 쉽다. 고 대행은 대통령 비서실 수석·보좌관회의는 종전대로 시행하되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회의 내용을 보고토록 하고,노 대통령에게도 비공식 보고를 하도록 교통정리했다고 한다.그의 치밀하고도 사려깊은 행정 수완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앞으로 고 대행이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그것은 자신의 의사보다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더 실린 조치로 보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지금 고 대행에게 요청되는 것은 행동반경을 과감히 넓히고,좀더 분명한 목소리를 내달라는 것이다. 편집제작 이사 khlee@˝
  • [씨줄날줄] 권한대행/이상일 논설위원

    부기관장은 먼저 입을 다스려야 한다.부(副)를 파자(破字)하면 의미가 분명하다.칼(-)아래 입(口)이 있고 입안에 칼(口안에 十)이 있으며 칼을 옆에 두고 서 있다는 뜻이다.국무총리는 행정부 권력 2인자이지만 입단속과 처신을 잘못하면 단칼에 목이 날아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이회창 당시 국무총리의 경질이유를 설명했다.“내(대통령)가 외유중인데 총리가 안기부장(현 국정원장)에게 업무를 보고하도록 하고 장관들에게 대통령과의 독대내용도 보고토록 요구했다.…이 총리는 대통령의 지휘를 받기 꺼려했다.” 민주적 표류형(장면 대통령)이나 소극적 적응형(노태우)보다 특히 가부장형(이승만) 야수형(박정희),승부사적 대통령(김영삼)하에서 총리의 위치는 더욱 약할 수밖에 없다.실제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총리는 국정 실패의 책임을 대통령 대신 지는 ‘방탄총리’,연설문을 대신 읽는 ‘대독총리’,신선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얼굴마담 총리’에 그쳤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 등은 ‘대통령의 성공조건’에서 “우리나라 총리의 권한은 대통령이 위임한 것이지 총리 자신의 공식 권한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DJ정권 초기 김종필 총리는 예외적으로 힘을 갖고 있었다.지난 1999년 7월 청와대에 압력을 넣어, 특검제를 놓고 이견을 빚은 여당인 국민회의 김영배 총재 권한대행(權限代行)을 연임 5시간만에 전격 퇴임시켰다.김 총리의 권력은 총리 파워라기보다 당시 공동여당 지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른 데서 부여받거나 차입한 권력은 취약하기 마련인 것이다.법상 기관이나 그 구성원의 권한을 다른 기관과 사람이 대신 행사하는 ‘권한대행’의 한계가 거기에 있다.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이후 고건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국정이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적으로 권한대행자는 대통령의 권한을 모두 대신 행사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정책이나 장관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 법학계의 다수 의견이다.그렇지 않아도 권력기반이 약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들 힘을 쓸 수 있을까.아무리 총리가 적극 나서도 대통령의 빈 자리가 깊어보이고 국정이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 [盧탄핵안가결-각계반응] “정치 신물 난다” 냉소적

    시민과 시민단체,네티즌들은 탄핵가결 소식이 전해지자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찬반이 엇갈렸지만,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냉소는 한결같았다.빨리 혼란을 마무리하고 냉철하게 대책을 마련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의회 쿠데타’ vs ‘합당한 결과’ 시민단체의 의견은 진보·보수 성격에 따라 크게 갈렸다.참여연대 홍석인(37)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정치적 판단에 의해 탄핵소추한 것은 민의에 정면 도전한 것”이라면서 “법의 탈을 쓴 쿠데타”라고 말했다.함께하는 시민행동 정선애 정책실장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대통령 공백상황에 따른 사회적 혼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반면 보수성향의 자유시민연대측은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도 대국민사과를 사실상 거부,탄핵을 가속화시켰다.”고 밝혔다.바른선택국민행동의 신혜식 사무총장은 “국민의 편에 서지 않고 비리를 저지른다면 어떤 대통령도 물러날 수 있다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시민들,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 표시 시민들은 혼란을 우려하면서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과 무관심을 표시했다.이창연(24·고려대 교육학과)씨는 “취임한 지 1년인데 너무 성급했다.”면서 “환란위기에 비견할 만한 국치”라고 꼬집었다.주부 오현희(52)씨는 “대통령이 탄핵정국을 타개할 만한 조정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반면 회사원 이지영(25·여)씨는 “신중하게 처신하지 못해 이같은 일을 자초한 대통령이나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지는 정치권에 모두 질렸다.”고 말했다.김정인(32·회사원)씨도 “이제 정치는 쳐다보기도 싫고 외국으로 이민이나 갔으면 좋겠다.”고 씁쓸해했다. ●네티즌,“속히 혼란 수습해야” 포털사이트 ‘다음’에 글을 올린 ‘눈송이’는 “눈물도 나고 분노가 끓어오른다.”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타락한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떠나는 것”이라고 적었다.‘네이버’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오후 3시 현재 참가자 5만 7961명 가운데 ‘인정할 수 없다.’가 83.1%로 ‘인정한다.’(16.9%)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네티즌 ‘바이올렛’은 “대통령이 사과하고 한발짝 물러났으면 탄핵 가결까지 안 갔을 것”이라고 썼다. ●봉하마을,영호남 표정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은 침통한 분위기였다.주민들이 들로 나가 인적마저 끊긴 봉하마을에서는 노인들조차 말문을 닫았다.노 대통령 생가에 살고 있는 하모씨는 “한마디로 쿠데타”라며 분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으며 “도둑X들이 무슨 심판을 하냐.”고 불만을 드러냈다.경남도민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정국안정에는 한목소리를 냈다.황태진 변호사는 “아직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아 있으므로 국민들은 냉정하게 후속절차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기업인 박기한(55·김해시 안동)씨는 “노 대통령과 야당이 서로 양보하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면서 “정부는 국민들의 역량을 결집해 위기를 무사히 극복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북지역 민심은 ‘합법을 가장한 의회 쿠데타’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그러나 민주당 골수세력과 장년·노년층 일부는 대통령의 잘못도 크다는 반응이다. 장택동 유지혜기자 tae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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