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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사에 관한 조선시대 일반 민중의 기억은 그런 것이다. 대사는 절간에 몸을 매어두고 있었지만 국란을 당하자 창칼을 들고 일어나 왜적을 무찔렀다. 그래서 국왕의 총애를 받아 벼슬이 당상관(堂上官 정3품 이상의 고관)에 이르렀다. 민중이 기억하는 서산대사는 무엇보다도 도술에 능했다. 그는 바람과 비를 마음대로 몰고 다니는,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신승(神僧)이었다. 이런 역사적 기억은 사실에 토대를 둔다. 하지만 기억이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기억은 무척이나 선택적이며 주관적인 것이다. 특히 민중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승돼 온 기억은 더욱 그렇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숨쉬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중의 기억은 역사에 대한 민중의 바람이라고 해야 옳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민중이 기억하는 서산대사는 모르는 것, 못 할 일이 단 하나도 없는 완벽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앞날을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어야 했다. 서산대사에 대한 민중의 기대는 ‘서산대사비결’이란 책자를 낳았다. 비슷한 이유에서 민중은 신라 고승 원효가 지었다는 ‘원효비결’이란 예언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원효비결’은 20세기 후반에야 등장했다. 그와 달리 ‘서산대사비결’은 조선 후기에 출현해 정감록의 일부가 되었다. 서산대사는 왜 서산대사로 불리는가? 그는 오랫동안 관서지방의 묘향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대사의 법명은 휴정(休靜), 속성은 최씨다. 대사는 묘향산에서 멀지 않은 평안도 안주(安州) 출신이었다. ●서산대사는 호국불교의 상징 타고난 운명이 기구했던지 대사는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사춘기엔 방랑을 떠나 멀리 남부지방까지 떠돌았다. 그는 지리산에 매료돼 숭인장로(崇仁長老)란 고승의 문하에 들어갔고, 선승(禪僧)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러던 중 선조 22년(1589)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서산대사는 이 사건에 연루돼 갖은 고초를 당했다. 그러나 결백이 입증돼 국왕의 특명으로 석방된다. 평소 대사는 즐겨 시문을 지었다. 옥사 사건 때 조정 대신들은 그 글들을 세밀히 검토하게 되었다. 대신들은 서산대사의 글이 단아한데다 그 대부분이 국왕을 위한 기도로 가득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 국왕 선조 역시 대사의 충성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선조는 서산대사에게 친필로 시를 써주었다. 아울러 손수 그린 묵죽(墨竹) 한 점을 주어 대사의 마음을 위로했다(실록, 선수 23년4월1일 임신). 얼마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팔도를 유린했고 선조는 의주까지 밀려났다. 국운이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수년 전 서산대사를 깊이 신뢰하게 된 국왕은 대사에게 도움을 부탁한다. 서산대사는 전국 각지의 사찰에 연락해 의승군(義僧軍) 5000명을 조직한다. 서산대사가 이끈 승군은 명나라 군대와 함께 평양성 탈환에 참여한다. 작전은 성공했고 덕분에 국왕은 서울로 환도한다. 서산대사는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승군의 지휘를 맡기고 묘향산으로 돌아간다. 서산대사는 사명당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정을 왜군 진영에 보내 정전회담을 모색하게 했다. 그런데 공식적인 역사기록에 따르면, 서산대사의 승군은 전쟁터에서 직접적인 공적을 별로 쌓지 못했다 한다. 살생을 금기로 삼고 있는 승려들인 만큼 접전(接戰)엔 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군은 성실해서 요새의 경비에 뛰어났다. 성을 보수하거나 새로 축성하는 데도 그만이었다. 승군의 이런 장점은 널리 인정을 받게 돼,“각 도가 모두 승군에 의지하였다”(선수 25년7월1일 무오). 왜란 중 서산대사의 처신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그는 자신의 공을 믿고 교만 방자하여 행궁(行宮) 어문(御門) 밖에서까지 말을 타고 횡행(橫行)하였다. 심지어는 대궐 출입까지 허락받기도 했다.”(선조26년7월19일 신미) 평소 불교계를 배척해온 유학자들로서는 서산대사가 궁궐출입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서산대사가 방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이미 나이가 80에 가까워 도보로 먼 거리를 출입하기란 불가능했다. 왕은 이런 사정을 고려해 대사에게 말을 타고 궁궐을 드나들게 허락했다고 봐야 옳다. 선조가 자신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이자 서산대사는 그 기회에 불교를 중흥할 꿈을 키웠다. 대사는 선종(禪宗)을 중심으로 삼아 분열된 교단을 통합하려 했고, 이를 위해 몇 권의 책자를 저술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선종의 입장에서 모범이 될 만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선교석’(禪敎釋)과 ‘선교결’(禪敎訣)은 선종과 교종을 비교 설명한 것이다. 이밖에 참선수도에 필요한 주문을 모아 ‘운수단’(雲水壇)을 짓기도 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산대사의 뜻대로 불교가 중흥되지는 못했다. 대사는 결국 금강산에서 입적했는데, 자신의 의발(衣鉢 승려의 유품)을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에 두라고 유언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따랐다. 그들은 대흥사 경내에 표충사(表忠祠)를 세워 대사의 은덕을 추모했다. 뒷날 정조는 표충사라는 현판을 사액했다(정조12년7월5일 을축). 대사가 오래 주석했던 묘향산(妙香山)에도 수충사(酬忠祠)라는 사당이 봉헌됐다(정조 18년3월16일 계묘). 정리하면, 서산대사는 고대부터 이어진 호국불교의 전통을 따른 고승이었다. ●서산대사는 만능의 도사 국가가 편찬한 역사기록은 믿을 만한가? 역사상 있었던 구체적인 사실에 관한 기록은 신빙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사실이 다 기록되지는 못한다. 그럴 필요도 없다. 역사책에 기록될 사실은 어차피 선택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의 선택은 이미 역사적 사건에 관한 주관적 해석이다. 심지어는 왜곡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서산대사가 호국불교의 화신이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그걸 확인하는 방편으로 조선시대 민중이 서산대사를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알아볼 수도 있다. 민중의 견해는 민간설화로 남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설화에서 보이는 서산대사의 모습은 도술의 대가였다. 물론 대사가 정말 도술에 능했을 리는 없다. 다만 민중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아 여러 방면에서 활약한 대사의 모습에서 참된 영웅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대사는 그런 영웅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마음대로 도술을 부릴 수 있었을 거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서산대사의 도술 이야기는 임진왜란에 관한 것이 많다. 한 번은 서산대사가 제자 사명당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내면서 부적(符籍) 하나를 건네줬다고 한다. 이 부적 덕택으로 사명당은 일본의 왕성에 있던 병풍에 적힌 시구를 모두 알아 맞힌다. 일본인들은 사명당을 무쇠 방에 집어넣고 불을 때 태워 죽이려 했지만 사명당은 방안에 고드름이 맺히게 해 그들을 놀라게 한다. 그런가 하면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원병이 오게 된 것도 서산대사 덕분이라 한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중국의 큰 부자에게 살아 움직이는 금강산도(金剛山圖)를 그려 주었다. 그림 값으로 수표 한 장을 받았는데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버린다. 나중에 그 집 딸이 큰 부잣집에 시집가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원병을 보내게 한다. 명나라 장수로 조선에 파견돼 온 이여송이 생떼를 부리자 이를 무마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여송은 용의 간과 소상강 반죽을 내놓으라며 억지를 부렸는데 대사가 개입해 백마의 간과 백두산의 대나무로 대신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진주성에서 기생 논개가 왜장을 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하게 된 것도 실은 서산대사의 지도로 된 일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설화들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사명당의 외교적 수완이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서산대사의 부적 때문에 공을 세웠다곤 볼 수 없다. 명나라가 조선에 이여송을 파견한 것, 이여송이 방자하게 굴었던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산대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논개의 죽음을 서산대사와 연결시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도술시합 민중은 영웅인 서산대사와 그 제자 사명당의 도술 시합도 창안해 냈다. 사제관계였던 두 명의 고승이 도술시합을 벌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를 점쳤던 것이다. 어느 날 사명당이 서산대사를 찾아 금강산 장안사로 갔다. 절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법당문이 열리며 서산대사가 밖으로 나오려는 것이었다. 사명당은 대사에게 말싸움을 건다. 사명당은 마침 공중을 나는 참새 한 마리를 손으로 움켜쥐고 대사에게 묻는다. “지금 제 손아귀에 들어 있는 이 참새가 죽을까요, 살까요?” 사명대사는 이렇게 응수한다.“내 한 쪽 발이 법당 안에 있고, 또 한 발은 법당 밖에 나가 있다. 내가 밖으로 나가겠느냐, 안으로 들어가겠느냐?” “그야 밖으로 나오시겠지요. 애초 나오실 생각이 없으셨다면 문은 왜 열며, 벌써 한 발은 왜 밖으로 딛으셨겠습니까?” “맞다. 네가 손에 쥔 참새도 마찬가지다. 불승이 어찌 살생을 하겠느냐?” 얼핏 막상막하로 뵈지만 서산대사의 판정승이다. 사명당은 고작해야 발의 동작에 주목했다. 하지만 서산대사는 일시적인 몸동작이 아닌 승려 본연의 자세를 논했기 때문이다. 사명당은 등에 졌던 봇짐을 내려 놓는다. 그 안엔 바늘이 가득 담긴 그릇이 있다. 사명당은 잠시 그 바늘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자 바늘이 먹음직한 국수로 변한다. 사명당은 국수를 맛있게 먹으면서 서산대사에게도 함께 먹기를 청한다. 두 사람은 맛있게 바늘국수를 먹는다. 잠시 후 서산대사의 입에선 바늘이 줄줄 흘러나온다. 사명당은 얼른 패배를 인정하기가 싫다. 이 번엔 백 개의 계란을 꺼내어 땅바닥에서부터 한 줄로 차근차근 쌓아 올린다. 신기에 가깝다. 서산대사는 그 모양을 보고 빙긋 웃더니 계란을 공중에서부터 거꾸로 쌓아 내려온다. 마지막 용기를 내어 사명당은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자 여태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모인다. 금방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번개가 친다. 밧줄처럼 굵은 빗줄기가 한참동안 쏟아져 내린다. 서산대사는 한바탕 껄껄 웃고 나서 소낙비를 멎게 한다. 뿐만 아니라 땅바닥을 적신 빗방울까지 몽땅 하늘로 거둬 버린다. 사명당은 패배를 깨끗이 인정한다. 그 순간부터 사명당은 서산대사를 깍듯이 스승으로 모신다. 조선시대 민중은 스승과 제자의 서열을 뒤집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명당도 서산대사 못지않게 뛰어난 고승이었건만 민중의 공론은 명백했다. 감히 제자가 스승을 앞지를 수는 없었다. ●예언가 서산대사의 비결(訣) 절세의 영웅 서산대사는 과거 현재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을 가졌다. 어떤 여인이 광주리에 달걀을 가득 담은 채 손을 팔팔 휘저으며 걸어갔다. 그러자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 본 대사는 광주리 안의 달걀이 64개임을 대번에 알아 맞혔다.“팔팔(八八)” 걸었기 때문이란다. 물론 이것은 민중이 지어낸 익살이다. 그러나 장난끼어린 익살 속에도 서산대사의 투시력에 대한 민중의 기대가 숨어 있다. 실제로 서산대사는 한두 가지 예언을 남겼고 그대로 적중했다고 한다. 그는 임종시 유품(遺品)을 해남 대흥사에 두게 했다. 제자들은 왜 하필 그렇게 멀고 구석진 곳이냐고 물었다. 대사는 그곳이 “천년 병화(兵火)가 미치지 않아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며 “불교의 법통이 돌아갈 곳”이라 말했다. 과연 서산대사의 유품을 보관하게 되자 이 절은 크게 융성했다. 이 절엔 서산대사의 금란가, 옥발, 수저, 신발, 염주, 교지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음은 물론, 초의대사(草衣大師)를 비롯해 많은 고승들이 배출됐다. 조선 후기가 되어 세상이 어수선해지자 많은 사람들은 예언서를 찾게 되었다. 만일 서산대사 같은 분이 살아 계신다면 앞일을 무어라 말씀하실까, 하는 생각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산대사비결’이란 신종 예언서가 탄생했다. 실상 서산대사와는 무관한 예언서였다. 생전에 조선왕실의 안녕을 위해 충성을 다 바친 대사의 이름을 빌려 그 왕실의 패망을 아무렇지도 않게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의 이름을 빌린 이 예언서의 내용은 대개 이렇다.1. 조선 말년에 당목 넷이 지나면 지혜 있는 선비는 반드시 떠나갈 것이다.2. 만일 성스러운 해를 만나면 천척의 배가 갑자기 인천, 부평의 넓은 들에 정박하리라.3.10년 동안 들에서 밥을 먹으니 집 생각하는 마음이 무궁하고, 천리에 곡식을 운반하니 편안하고 한가할 날이 기약이 없다.4. 코가 검은 장군이 여진에서 나와서 오얏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시덤불을 벤다고 큰소리치지만 그는 실상 오얏나무를 베는 도끼다. 첫째는 난을 피해 길지로 숨을 시기를 예언한 것이고, 둘째는 진인이 이끄는 천척의 배가 쳐들어올 시기를 말한 것이다. 셋째는 혼란기에 벌어질 전쟁이 10년 동안이나 지속된다고 본 것, 넷째는 이씨 왕조(‘오얏나무’)를 뒤엎을 세력이 북쪽에서 나온다는 예언이다. 이런 내용은 ‘정감록’에 실린 다른 예언서들과 별로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감결’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넷째 번은 좀 색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전에 살핀 대로 ‘토정비결’에선 요동에서 곽 장군이 나와 진인왕을 돕는다고 했다.‘서산대사비결’에선 바로 그 곽 장군을 ‘코가 검은 장군’으로 바꿔 썼다. 게다가 그 곽 장군이 진인왕을 직접 돕는 것이 아니라 조선왕실의 편을 드는 척하다 결국 왕조를 뒤엎어 버린다고 예언한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여기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예언서들이 자꾸 만들어진 이유는 뭘까?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곧 조선왕조는 망한다. 그 다음엔 진인왕이 새 나라를 세운다. 그러나 왕조교체의 과도기엔 오래 혼란이 지속된다. 그 때 사람들은 길지로 피란가는 것이 상책이다.” 이것이 ‘정감록’의 핵심이다. 조선 후기의 술사들은 민중이 기억하는 역사상의 대 예언가들의 이름을 빌려 이런 메시지를 기정사실로 만들려고 했다. 이를테면 부조(浮彫) 수법이었다. 때론 다른 이유도 작용했다.‘정감록’에 담긴 메시지를 수정하거나 보충할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예언은 미래를 겨냥한 것이고 따라서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던지는 점괘는 늘 달리 풀이될 수 있어야한다. 그런 점에서 대안이 늘 필요했다. 엄밀한 의미로 ‘서산대사비결’은 ‘정감록’의 개정판이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골프 해…말아 ?

    골프 해…말아 ?

    공직자 골프에 대한 ‘찬반’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최근 “장마철에는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김종빈 검찰총장도 검사들에게 ‘골프자제령’을 내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무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계속 골프를 해야 할지, 이참에 골프채를 아예 놓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해외 및 국내연수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골프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하위직에게는 여전히 골프가 멀게만 느껴진다. 최근 들어 관광지를 낀 일부 자치단체장은 지역발전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골프를 권장하는 분위기도 있다. 김 총장은 최근 전국 부동산 투기사범 특별단속 전담 부장검사 회의 직후 가진 오찬 자리에서 ‘골프자제령’을 내린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김 총장은 “개인적으로 골프하는 것은 관여하지 않겠지만 부장이 젊은 검사들을 데리고 골프장에 우르르 다니는 것은 정말 부적절하다.”며 신중한 처사를 강조했다. 중앙부처의 K이사관은 “이럴 바에야 아예 ‘엄금령’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골프를 친다고 밝힌 그는 “아예 못치게 하면 포기하고 다른 취미활동을 할 텐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여서 눈치만 보게 된다.”고 씁쓸해했다. L부이사관은 검찰총장의 지적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골프장에 가보면 검찰총장의 발언을 이해할 정도의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면서 “약간 분위기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취미생활이기 때문에 그래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B서기관은 “주 5일제의 본격 시행과 함께 골프를 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다.”면서 “근무시간이 아니고, 특별한 사안이 없으면 골프를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골프를 하지 않는다고 소개한 N과장도 “공직자이므로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공무원이라고 해서 골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치단체의 C사무관은 “공무원의 급여로 ‘귀족놀음’이라 불리는 골프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면서 “비용을 줄이려다 보면 결국 스폰서를 찾게 되고, 이권에 개입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행정개혁시민연합 서영복 사무처장은 “지도자들은 어려운 경제여건 등을 고려해 솔선수범해 자제하는 것이 옳다.”면서 “적지 않은 공무원들도 접대성 골프로 부패에 감염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조 강순태 언론국장은 “일반 공무원들은 골프를 칠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서 “주로 정무직이나 고위직이 부적절하게 처신을 하다 지탄을 받는데 공무원 노조도 이에 대해 불쾌감을 감출 수 없다.”고 밝혔다. 조덕현 박경호기자 hyoun@seoul.co.kr
  • [사설] 음주운전 검사나, 수갑 채운 경찰이나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가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돼 수갑을 찬 채 경찰서에 연행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어떻게 법을 다루는 검사가 음주운전을 했으며, 더욱이 수갑까지 차게 됐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최근 김종빈 검찰총장은 검찰직원들에게 폭탄주를 마시지 말고 골프를 칠 때도 신중을 기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김 총장의 지시는 검찰의 기강을 세우고, 복무자세의 쇄신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도 검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드러났으니 부끄러운 노릇이다. 검사의 권한과 그에 따르는 사회적 의무는 재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대검 감찰부가 물의를 빚은 검사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고 하니 사실관계를 확실히 밝혀서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검사의 음주운전 사건이 드러난 데는 최근 수사권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간의 갈등이 영향을 미친 것 같아 찜찜한 부분도 없지 않다. 검사의 음주운전은 지난달 23일 새벽에 적발됐지만 외부에 알려진 것은 한달 가까이나 지난 최근이다. 경찰이 검찰에 대한 불만에서 사건을 공개했어도 문제고, 덮어두었다고 해도 문제다. 법의 행사나 집행에 권력기관의 갈등이 개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음주운전 검사가 수갑을 차게 된 경위도 석연치 않다. 경찰은 고성을 지르며 저항했기 때문에 수갑을 채웠다지만 검사는 아무 설명없이 수갑을 채웠다고 주장한다. 검사가 신분을 밝혔든 안 밝혔든 범법행위는 달라질 게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음주단속에서 수갑을 차는 일은 드물다. 검사의 음주운전은 변명할 여지가 없지만 경찰의 단속과정에서 인권침해의 소지는 없었는지도 가려야 할 것이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 (80) 集大成(집대성)

    儒林(378)에는 ‘集大成’(모을 집/큰 대/이룰 성)이 나온다.‘여러 가지를 모아 하나의 體系(체계)를 이루어 完成(완성)함’을 뜻한다. ‘集’자는 ‘모으다.’‘모이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새가 떼를 지어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양을 나타낸 會意字(회의자)에 속한다.用例(용례)에는 ‘離合集散(이합집산:헤어졌다가 모였다가 하는 일),雲集(운집:구름처럼 모인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듦을 이르는 말),集中(집중:한곳을 중심으로 하여 모임, 또는 그렇게 모음)’ 등이 있다. ‘大’자는 ‘어른’을 나타내기 위하여 ‘팔을 벌리고 선 사람’의 모습을 정면에서 그린 것이다. 어른은 아이에 비하여 크다는 데서 ‘커다랗다.’는 뜻이 派生(파생)하였다.‘大團圓(대단원:연극 소설 따위에서,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끝을 내는 마지막 장면),大聲痛哭(대성통곡:큰 소리로 몹시 슬프게 곡을 함) 등에 쓰인다. ‘成’은 ‘戌’(술)과 ‘丁’(정)을 합한 形聲字(형성자)이다.戌(술)은 ‘넓적한 날이 달린 儀典用(의전용) 武器(무기)’의 상형이다.成의 본 뜻은 戌(술)이라는 병기를 든 병사들이 ‘대오를 이루다.’에서 추출한 ‘이루다’.用例에는 ‘落成(낙성:건축물의 완공),成功(성공:목적하는 바를 이룸),守成(수성: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일을 이어서 지킴)’ 등이 있다. 孟子(맹자)는 歷代(역대) 賢哲(현철)들 가운데 ‘伯夷(백이)는 인품이 高潔(고결)하여 淸雅(청아)하고,伊尹(이윤)은 매사에 使命感(사명감)을 갖고 積極的(적극적)으로 임하며,柳下惠(유하혜)는 인품이 너그러워 溫和(온화)하다.’라고 評(평)하였다.孟子의 눈에 비친 이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孔子(공자)처럼 청아해야 할 때는 청아하고, 적극적으로 일할 때는 적극적으로 일을 하며, 온화해야 할 때는 온화하게 처신하는, 이른바 ‘때를 알고 때에 가장 적절하게 대처한 聖人(성인)’은 아니었다. 여기서 孟子는 孔子를 ‘集大成’이라 하였다. 원래 集大成은 모든 악기가 연주하는 노랫가락이 각각의 個性(개성)을 發揮(발휘)하면서 全體的(전체적)인 조화를 演出(연출)하는 오케스트라를 말한다.集大成을 演奏(연주)할 때, 가락을 뗄 때는 각 음의 높낮이를 정확하게 분별하여 각각의 고유의 소리를 정확하게 내야 하므로, 음과 소리를 잘 분별할 수 있는 智慧(지혜)가 필요하지만, 가락을 마무리할 때는 모든 가락이 渾然一體(혼연일체)가 되어 全體的(전체적)인 調和(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남과 하나일 수 있는 仁의 마음이 필요하다. 온갖 逆境(역경) 속에서도 大同輿地圖(대동여지도)를 만들어 朝鮮(조선) 地理學史(지리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金正浩(김정호), 제주도에서의 9년간 귀양살이 동안 不朽(불후)의 명작 歲寒圖(세한도)와 秋史體(추사체)를 完成(완성)한 金正喜(김정희),19년 동안의 流配(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手不釋卷(수불석권)하여 500여권의 저술을 남긴 丁若鏞(정약용),身分(신분)의 한계 속에서 오른 御醫(어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15년간의 執念(집념)으로 東醫寶鑑(동의보감)을 執筆(집필)한 許浚(허준). 우리는 이들의 偉業(위업)을 集大成이라고 표현하기에 머뭇거리지 않는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사설] 또 골프 구설에 오른 국무총리

    이해찬 국무총리가 전국에 집중호우와 경보가 내려진 지난 주말 제주도에서 골프를 친 것으로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국무총리가 휴일에 골프를 친 것을 가지고는 아무런 시빗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 수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해업무를 총괄하는 중앙안전관리위원장인 총리가 자리를 비우고 골프를 쳤다는 것은 직책상 적절한 처신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골프를 같이 쳤던 이기우 총리비서실장은 오래 전에 잡혀있던 일정이고, 각종 기상특보나 긴급사항은 휴대전화로 보고받고 지시를 내릴 수 있다고 해명했다. 물론 장마가 오기 전에 예약된 골프고, 휴대전화로 지시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긴급상황이 발생했다면 총리가 자리를 지키고 지시를 내리는 것과, 전화로 상황을 챙기는 것은 그 무게가 다르다. 설사 골프 약속이 있었더라도 수해 등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취소하는 것이 공직자로서의 도리다. 또 총리가 장관, 비서실장과 함께한 사적인 골프에 여자프로골퍼를 동반한 것도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권위주의 시절의 분위기가 풍긴다. 지난번 강원도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한 식목일에도 총리가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 국회에서 사과한 일이 있고, 반대로 전방 총기사고 희생자 영결식이 있던 지난달 25일에는 총리가 공무원들에게 골프금지령을 내린 일도 있다. 민주사회에서 공직자들의 골프가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골프를 삼가는 것이 옳다. 총리실측은 휴일행사까지 비난한다고 억울해 할 것이 아니라 공직자의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9)

    사연 : 매일「직장술」마시는 남편의「외박불연락」 친애하는 Q여사, 이런 말씀 물으면 어리석은 여인이라고 하실까요? 그렇지만 바가지장이 여편네가 되기보다 Q여사의 현답을 듣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여인이 되겠습니다. 저는 세 살, 한 살의 남매를 키우는 30세 주부입니다. 남편은 모반관반민업체의 주사입니다. 아마 소위 자리가 좋은 데인 모양이에요. 술 산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중의 반만 응해도 매일 밤이 된다는 거예요. 술 마시는 것까지는 저도 이해해요(물론 건강은 걱정되지만). 그러나 철야로 술을 마시고 게다가 전화연락조차 없습니다. 걱정이 되어서 못 살겠습니다. 그렇다고 바가지를 긁어댈 수는 없고 그것이 별 효과도 없을 것 같아요. 저의 양처(良妻)로서의 관록을 유지하면서 남편의「외박불연락」습관을 고치는 법은 없을까요? <서울 제동 준이 엄마> 의견 : 꾀병 공세와 시위를, 애교 있는 보복책도 이제 갓 서른인데 그렇게 현명한 처신을 하시는 것을 보면 준이 아빠가 얼마나 행복한 남편인가 알겠습니다. 그러나 너무 착하디 착한 아내에게는 가끔 싫증을 느끼는 것이 남편들의 고약한 버릇이랍니다. 종종 애교 있는 바가지도 긁고 떼도 써 보는 아내여서 자기가 가부장적인 권위로 군림할 수 있었으면 하는 심리는 준이 아빠에게 없을까요? 요다음 외박하시거든 한 번 시위를 해 보세요. 밤새도록 걱정이 되어 잠을 못잤더니 병이 났다고「링게르」라도 맞는 시늉을 하는 꾀병 정책. 외박한 다음 다음날쯤 이쪽도 아무 말없이 친정으로 가버리는 보복 정책 등. 그러나 물론 남편이 굴복하고 마는 형식이 되게끔 일을 끌어가지는 말고 단지『나도 화낼 줄 아는 사람인 줄 아시죠?』정도의 상냥한 정책이어야 된다는 것은 아시겠죠? <Q>
  • 李총리 호우경보속 주말골프…한나라 맹비난

    李총리 호우경보속 주말골프…한나라 맹비난

    남부 지역에 호우경보가 발령되는 등 장맛비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한 2일 이해찬 국무총리가 제주도에서 골프를 친 것으로 확인돼 한나라당이 맹비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총리는 이날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이기우 총리 비서실장, 여자프로골퍼 송보배 선수 등과 함께 라운딩을 했다. 이 총리는 주5일 근무제 첫 휴무 토요일을 맞아 부인 김정옥 여사, 딸 현주씨와 함께 제주도로 내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3일 논평을 통해 “전국 곳곳에서 수해가 발생하는 등 재해비상 상황에서 재해·재난 업무를 총괄하는 중앙안전관리위원장인 이 총리가 장관 등을 대동하고 ‘굿샷’이나 외치다니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것이냐.”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지난번에 산불이 꺼진 줄 알고 골프를 쳤다는데 이번에는 비가 그칠 줄 알았던 모양”이라며 “그렇게 골프가 치고 싶거든 총리직을 사퇴하고 골프장에 상주하면서 실컷 즐기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리실 관계자는 “이 총리가 제주도에서 골프를 친 것은 사실이지만 (수해상황 등에 관해서는) 즉각 보고를 받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지난 4월5일 대형 산불 때도 골프를 쳤다가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사과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여경 명예 꼭 되찾겠습니다”

    “여경의 명예를 꼭 되찾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 최근 허준영 경찰총장에게는 하루 수십 통씩 여경들로부터 문자메시지와 이메일이 날아든다. 여경의 대표주자였던 김인옥 전 제주경찰청장과 강순덕 경위의 부적절한 처신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여경들이 경찰청장에게 “죄송하다.”“도약의 계기로 삼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잇달아 보내고 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1일 “최근 불미스러운 사태이후 일선 여경들이 직접 허 청장에게 자성의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자와 이메일 등은 ‘여경의 날’을 맞은 1일을 기점으로 절정에 달했다. 허 청장이 취임 후 “직위여부를 떠나 열린 경찰을 표방하겠다.”며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일선 경찰관들에게 공개한 것도 문자메시지 등이 이어지는 또 다른 이유다. 한편 이날 오전 경찰청 13층 대청마루에서 약식으로 거행된 제59주년 여경 창설 기념식에서는 “뼈를 깎는 자기성찰과 반성을 통해 청렴과 친절의 여경 이미지를 회복하고 국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도록 노력하겠다.”는 여경들의 다짐이 이어졌다. 지난해까지만해도 경찰은 경찰청 지하 대강당에 여성 국회의원과 여성단체 대표, 여성부 고위인사 등을 초청하는 대규모 행사로 치렀지만, 올해 행사는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한 듯 경찰간부와 경찰청 소속 여경 등 70여명만이 모인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유청장, 北영웅찬양가 뒤탈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등은 16일 평양 6·15 통일대축전 참석차 방북 중인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전날 남북 대표단 만찬에서 북한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의 주제곡을 부른 것과 관련,“납득할 수 없는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강도높게 비난했다.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유 청장이 부른 노래는 6·25 때 남파간첩을 영웅으로 예찬하는 노래”라며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로서 북한 간첩 찬양가를 북한 고위층 앞에서 불러댄 저의가 도대체 뭐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자리에 따라 부를 노래가 있고 못 부를 노래가 있다.”면서 “남북 화해를 위한 자리에서 북측의 영웅은 물론 남측의 ‘구월산 호랑이’와 같은 영웅을 찬양해서는 안 되는 자리였는데 남북 어느 일방의 영웅 찬양가를 부른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고 주제에 어긋한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회장 채명신)도 성명을 내고 “유 청장이 북한 내각 총리 주최 만찬장에서 북한군의 전쟁 승리를 찬양하는 ‘이름없는 영웅들’을 부른 데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주장했다. 조승진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사설] ‘책임지러 귀국했다, 죄송하다’

    어제 새벽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이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또 대검찰청에 압송된 직후 “책임지러 귀국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사죄의 글’에서도 “이제 실패한 기업인으로서 과거의 문제들을 정리하고자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같은 사죄의 변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김 전 회장에게 몇가지 주문을 하고자 한다. 김 전 회장은 그의 귀국을 맞이하는 상반된 두가지 분위기를 실감했을 것이다. 특히 대우피해자대책위원회와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를 비롯해 민주노동당·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즉각 처벌’‘사면 불가’등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인 데 대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본인으로서는 섭섭하고 억울했을지 모르지만 이같은 분위기에서 스스로 말한 ‘책임’의 무게를 다시금 절감했으리라 믿는다. 대우그룹이 무너진 과정과 그 자신의 처신에 관해 김 전 회장이 진실을 털어놓아야 할 부분은 적지 않다. 먼저 분식회계가 41조원, 사기대출이 9조원, 외환유출이 25조원에 이른다는 혐의에 대해 실상을 밝혀야 한다. 비자금 수조원을 조성, 지난 1997년 대선에서 정치자금을 뿌리고 그후 대우 퇴출을 막기 위한 로비 자금으로 썼다는 의혹도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 아울러 본인이 해외로 빼돌렸거나 국내에 은닉한 재산이 있다면 이를 공개하고 국고에 반환해야 한다. 이같은 일이 실행된 다음에야 우리 사회는 김 전 회장이 쌓은 공에 관해서도 새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김 전 회장이 ‘사죄의 글’에 담은 뜻을 그대로 실천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 儒林(367)-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67)-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인산이 끝나기도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 퇴계의 태도에 대해 그 ‘출처대의(出處大義)’가 의심된다고 여론이 들끓자 당시 홍문관의 응교(應敎)로 있던 기대승은 일반여론의 분위기를 편지로 전한다. 이때 퇴계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장을 보내고 있다. “…나의 처신은 참으로 어렵다. 왜냐하면 나는 첫째로 대우(大愚:크게 어리석음)하고, 둘째는 극병(劇病:병이 심함)하며, 셋째로 허명(虛名:빈 이름)만 내었고, 넷째로 오은(誤恩:그릇되게 임금의 은총을 받음)만 받아왔다. 이 네 가지가 한 곳에 몰려 서로 모순되고 방해되니 옛사람에 비춰보아도 나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었고 지금사람에 견주어보아도 나처럼 병이 심한 사람이 없다. 허명을 피하려 하면 허명이 매양 따라오고 오은을 사퇴하려 하면 오은이 오히려 더 가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대우로써 허명을 채우려하나 그것은 망령된 일이요, 극병으로써 오은을 받아 당하려 하니 그것 또한 염치없는 짓이다. 염치없는 자로서 망령된 일을 한다는 것은 덕에 있어서 상서롭지 못하고 사람에게 있어서 길한 것이 아니요, 나라에 있어서도 해가 되는 것이다. 내가 벼슬맡기를 꺼려하고 항상 물러서려 하는 것이 어찌 다른 뜻이 있겠는가. 오직 이 네 가지 결함과 두 가지 걱정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퇴계는 자신이 세운 중요한 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하고 있다. “…. 옛 군자는 진퇴의 명분이 밝아서 조금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맡은 직책을 조금이라도 다하지 못하면 반드시 몸을 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것이다. 그 임금 사랑하는 점에 있어서는 차마 하지 못할 일이지만 그러나 이 때문에 물러감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그 의에 있어서 몸을 그대로 둘 수 없으니 반드시 그 몸을 물러나게 해야 의에 따르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때를 당하면 차마 못하는 정이 있다 하더라도 의에 굴하지 않을 수 없다….” 명종이 승하하였을 때 인산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귀향해버린 자신에 대해 나쁜 여론이 들끓자 퇴계는 변명하기보다는 오히려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다. 퇴계의 편지에 나오는 ‘옛 군자는 진퇴명분이 밝아서 조금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구절 역시 죽령고개를 넘을 때 퇴계가 깨달은 중요한 진리였다. 이는 주자가 편찬한 ‘송명신언행록’이라는 책 속에 나오는 옛 군자들의 진퇴를 퇴계가 심사숙고하고 이들의 태도를 본받은 것이었다.주자가 편찬한 ‘송명신언행록’은 송나라 때의 유명한 신하들의 언행을 기록한 책으로 제왕학의 교재로서 널리 읽힌 책이었다. 여기에는 두범(杜範)이란 명신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두범은 자기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임금 이종(理宗)에게 이를 항의하는 상소문을 쓰고 즉시 물러가기를 청하였다. 임금은 정성껏 만류하였으나 두범은 오히려 더 물러가기를 마지않았기 때문에 임금은 두범을 막기 위해서 성문을 닫을 것을 명령하였던 것이다. 이는 공자의 불사가(不俟駕)정신에 위배되는 불충한 신하로서의 태도였다. 그러나 보다 큰 대의를 위해서는 임금의 어명이라 할지라도 이를 단호히 물리칠 수 있는 용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퇴계는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퇴계의 제자들은 이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제자들은 퇴계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언행록은 기록하고 있다. “벼슬하는 사람으로서 의로써 마땅히 물러나야 할 경우에는 임금이 비록 만류한다고 하더라도 글만 올리고는 그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가 버릴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임금에게 나아가는 것이 옳겠습니까”
  • 與 실용·개혁 갈등 재연 조짐

    당·정·청 갈등이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 이해찬 국무총리를 한 때 겨냥하더니 이번에는 열린우리당 지도부로 옮겨갔다. 당 지도부는 의원들의 ‘언행 신중’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유시민 상임중앙위원이 지도부의 책임론을 들고나오면서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정세균 원내대표는 7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은 자중자애하고, 언행에 각별힌 신중해야 할 때이다.”면서 신중한 처신을 거듭 당부했다. 이는 노 대통령의 정책을 ‘이상주의적’이라며 정면 비판한 정장선 제4정조위원장을 겨냥한 경고성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도 “근래 몇몇 발언이 있었는데 원칙에도 맞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문희상 의장도 이날 상임중앙위원 간담회에서 “현재는 예민한 시기이므로 입장이나 얘기들이 왜곡되거나 곡해될 소지가 있는 만큼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겠다.”고 ‘입조심’을 당부했다. 그러나 유 상중위원은 실용주의 지도부를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해 당내 노선논쟁 재점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유 상중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지도부의 혁신의지 부족을 질타한 뒤 “대통령과 총리를 욕한다고 당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며 “생각과 지향이 달라도 공동의 목표 아래 움직이도록 하는 게 리더십의 요체인데 저를 포함해 지도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도부 일원인 유 위원이 언급한 ‘혁신 의지가 부족한 지도부’는 결국 문 의장 등 실용주의파를 겨냥한 것으로 보여 노선경쟁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사설] 한나라당의 열린 실용주의 선언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가 그동안 당이 내세운 ‘개혁적 보수’라는 노선을 폐기하고 ‘열린 실용주의’ 또는 ‘유연한 실용주의’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 아니할 수 없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개혁노선인가, 보수노선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이념투쟁과 관념정치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조짐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나라당이 내세운 개혁적 보수라는 노선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개혁이면 개혁이지, 개혁적 보수란 말은 말장난일 뿐이었다.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개혁의 본류인 양 처신하면서 개혁과 실제 정치를 접합시키지 못하기는 한나라당과 진배없다. 우리 정당의 차이점을 개혁과 보수로 나누기는 아직 덜 성숙한 상황이다. 그래서 여당은 개혁을 독점한 양, 야당은 개혁의 모순을 찾아내 공격일변도로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정말 국민이 뭘 원하는지는 뒷전이기 일쑤였다. 여야가 민생정치니, 상생정치니 외쳤지만 참여정부 출범이후 이뤄논 개혁은 별로 없다. 집권여당은 아직도 아무 실익없는 실용과 개혁노선을 놓고 당내갈등을 빚고 있다. 이제 여야 가릴 것 없이 개혁이니 보수니 하면서 편을 가르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양극정치를 지양해야 한다. 개혁이든 보수든 국민의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다. 개혁이니 보수니 편을 가르는 것 자체가 정치혐오를 부추긴다. 국민들은 개혁피로증과 보수피로증을 함께 느끼고 있다. 민생을 챙기는 실용정치가 진정한 정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이념의 공허함을 인정하고, 늦게나마 실용으로 전환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 정세균대표 일 속에 야망감춘 ‘워커홀릭’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에게 ‘야망’을 물었다. 여당 투톱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정치인답지 않게, 여운을 남기지 않았다.“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타고난 ‘무욕(無慾)’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정 대표는 고등학교를 3차례나 옮겼다. 무주 안성고에 입학, 전주공고를 거쳐 전주 신흥고를 졸업했다. 넉넉지 않았던 시절, 취업과 대학진학 사이에서 고민하며, 도전한 흔적이다. 고려대 71학번으로 스승이 유신헌법 관련 저술을 거부해 중앙정보부로 끌려간 뒤 충격 끝에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총학생회장까지 지낸 이력에서도 치열한 현실인식이 엿보인다. 그는 종합무역회사인 쌍용상사 간부와 경영학 박사 출신으로 1996년 당시 국민회의 공천으로 배지를 달았다.3선을 거치는 동안 그에겐 늘 ‘멀티태스킹(multi-tasking)’,‘워커홀릭’이라는 수식어가 따랐다. 일을 달고 다니는 스타일 때문이었다. 정 대표가 굳이 ‘야망’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정책전문가로서 몸에 벤 ‘처신’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도중 정 대표에게서는 ‘숨겨진’ 결기가 언뜻언뜻 내비쳤다. 지난 3월 경제부총리 인사 당시 발탁 가능성이 점쳐진 것도 단순히 정책통이라는 점만 작용한 것은 아닌 듯싶었다. 지난 1월 소속 의원 만장일치로 1년 임기의 원내 사령탑을 맡은 정 대표는 중대한 정치적 시험대를 밟고 있다. 정 대표가 ‘전문가 정치인’의 벽을 넘어 ‘대중 정치인’,‘정치 지도자’로서 파괴력과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지금 대전청사에선] 철도공사 사장 공모까지 ‘쉬쉬’

    ●공모결과 직원들에게조차 비공개 한국철도공사가 지난 30일 마감된 사장 공모결과를 내부에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함구하자 빈축이 쇄도. 철도공사는 사장추천위원회의 비공개 원칙과 지원자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다른 공기업이 공개하는 것과 비교할 때 설득력이 없다고. 이에 따라 공정심사 명분으로 비상임이사(4명)와 외부전문가(3명)로 구성된 추천위 무용론도 제기. 한 직원은 “사단이 벌어진 유전사업도 일부의 정보독점과 밀실추진으로 빚어진 사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일갈. 한편 이번 사장 공모에는 전직 철도청 출신과 일부 추천인사 등 10여명이 응모했다는 전언. ●연이은 악재에 처신 ‘경계령’ 대전청사 공무원들이 부적절한 처신으로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에 잇따라 연루되자 자성의 목소리가 가득. 철도공사의 유전 게이트에 이어 모청 직원의 국적 포기, 거래 업체로부터 향응을 받은 공무원 사퇴 등 부정적 사건이 불거지면서 어수선한 분위기. 해당 기관들은 사실 확인에 난색을 표하며 ‘쉬쉬’하고 있으나 내부 고발에 의해 사건이 불거진 것으로 알려지자 곤혹스러운 표정. 한 공무원은 “감춰지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매사 조심하고 자중하는 길만이 살길”이라고 뼈 있는 한 마디. ●산림청·산림조합 “새술은 새부대에” 개혁을 둘러싸고 긴장관계를 보였던 산림청과 산림조합중앙회가 새 출발을 다짐. 산림청이 사업방식 변화와 조합장 자격요건 완화 등 조합법에 손을 대면서 대립각을 세웠던 이들은 개청 이후 처음 대전청사 운동장에서 화합 한 마당을 갖고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 참석자들은 “산림조합중앙회장이 새로 선출되면서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면서 “앞으로 두 기관이 협력관계로 함께 발전하는 전기로 승화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하기도.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문정인위원장·정태인차장 사표 수리

    문정인위원장·정태인차장 사표 수리

    청와대가 27일 동북아시대위원회의 행담도 개발사업 지원행위를 ‘부적절한 직무행위’로 규정짓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정태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전 동북아시대위 비서관)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청와대는 또 이날 싱가포르로부터 외자를 유치해 서남해안을 개발하는 S프로젝트와 서남해안 개발사업을 구분지음으로써 S프로젝트는 사실상 불투명해졌다.S프로젝트는 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문 위원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같은 해 11월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과 올 1월 친서교환 등에서 서남해안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던 계획이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김우식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의 건의를 받아들여 사표를 수리했다.”면서 “이번 사안이 법을 위반했거나 부당한 행위로 밝혀진 것은 아니나 적절하지 못한 직무행위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당초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한다던 청와대가 방침을 바꾼 것은 민정수석실의 자체 조사결과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변인은 “당사자들의 적절하지 못한 직무행위에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편견이나 축소나 과장 없이 냉정하게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라고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사태의 조기진화에 나섰다. 청와대가 문 위원장과 정 비서관의 부적절한 직무행위로 지적한 내용은 ▲행담도 개발을 S프로젝트로 잘못 인식하고 ▲특정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했으며 ▲집행기구가 아닌 자문기구가 민간기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개별기업을 지원했고 ▲아들을 해당 기업에 취직시킨 처신 등이다. 김 대변인은 “행담도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고,S프로젝트의 선도사업으로 볼 수 없다.”면서 “서남해안개발계획과 싱가포르 외자유치계획인 S프로젝트, 행담도개발 사업은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말했다. 그는 “S프로젝트는 동북아시대위원회에서 검토하고 있던 사안으로 서남해안개발사업으로 채택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씨줄날줄] 문희상·강금원/김경홍 논설위원

    최근 몇몇 대통령 측근들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광재 의원이 ‘유전개발 의혹’과 관련해 수사선상에 올라 있고, 열린우리당의 문희상 의장이 출처가 불투명한 5억원의 돈으로 채무를 갚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강금원씨는 배임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뒤 6개월 만에 특별사면을 받았다. 문 의장이나 이 의원, 강씨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 공신들이다.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쏟는 것이나 이들이 자부심을 갖는 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당연하다. 하지만 국가운영이 개입된다면 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보여주는 의리나 측근들의 처신은 과거시절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최근 한 월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문 의장은 대통령 비서실장 재임 때 2000만원을 준 한 사업가의 아들을 청와대 직원으로 취직시켰고, 비서실장에서 물러났을 때는 고급승용차까지 제공받았다고 한다. 살고 있는 집도 지인의 것으로, 무상으로 살고 있다 한다. 문 의장측은 사업가의 아들은 경력이 충분해서 데려다 쓴 것이고, 승용차도 나중에 4000만원을 주고 인수했다고 해명했다. 집도 부도가 나서 경매에 넘어가자 친구들이 모금해서 경매낙찰을 받아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인이 많은 것은 문 의장이 살아오면서 베푼 덕이 많았거나 인간적인 매력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비서실장의 직위에 있었다면 오히려 거절했어야 할 문제였다. 강금원씨는 특별사면 후 “맹장수술한다고 배를 쨌다가 맹장이 이상하지 않으니까 여드름을 짠 격”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문 의장도 “그 사람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라고 옹호하다가 최근에는 “강씨는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하는 사람중에서는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그래도 자기네들끼리 북치고 장구친다는 지적을 받는 판에 다른 중소기업가들은 깨끗하지 않다는 얘기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정권이 내세우는 개혁은 주도세력들의 도덕성과 엄격한 자기관리가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 주변인사들의 구설은 “빚이 많으면 무덤덤하고, 이가 많으면 가려운 줄 모른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한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서울광장] ‘선진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선진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육철수 논설위원

    요즘 북핵이다 경제다, 하도 뒤숭숭해서 이 정부의 국정목표는 뭐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며칠전 이런 걸 잘 설명해 줄 만한 정부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물어봤더니 “국민이 식상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아 출범 초기에는 일부러 국가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참여정부의 탄생 배경에는 사실 연극적 요소가 많고, 정권창출의 주요 지지층이 인터넷세대와 386세대이다 보니 과거 정부처럼 아날로그식 구호 같은 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년쯤 지나서 보니 아날로그와 디지털세대의 접점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선진한국’이란 국가비전을 올해 초부터 내놓았다는 얘기였다. 과거 정부의 경우 국가비전이 한낱 구호에만 그쳤다는 것은 다 알려진 일이다.3공화국부터 유신까지는 ‘조국 근대화’를 어느 정도 이뤘지만 압축성장에 따른 인권침해도 만만찮았다.5공화국은 아군에게 총질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수천명을 살상한 뒤 등장했는데, 국정목표는 어울리지 않게도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이어 들어선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는 최고 지도자가 수천억원을 챙겨 대담한 보통사람의 면모를 보여주었다.‘신한국 건설’과 ‘제2건국’도 대통령의 아들들과 측근의 농단으로 국민의 시름만 더 깊게 만들었을 뿐이다. 윗물이 탁한데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가 쉬웠을 리 없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에 뭘 바라지 말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 기여할 것을 요구했는데, 꿇리는 게 많은 우리의 역대 정권들은 국민에게 당당하게 무얼 요구할 수가 없었던 거다. ‘선진한국’은 과거 정부의 그것과는 달라야 하는데 조짐을 보면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대통령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원칙을 훼손시키고 여론의 비난을 감내하면서 경제인 사면복권 때 한 측근을 기껏 살려놨더니,“맹장수술하려다 아니니까 여드름만 짠 꼴”이라며 억울함을 강변하는 당사자의 태도는 해괴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검찰과 법원이 없는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것인지. 그러잖아도 대통령은 사사건건 공격을 받아 어려운 처지인데, 개인적으로 속이 상해도 자숙해야지 대통령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게 측근의 도리는 진정 아닐 터이다. 무대 뒤에서 무대 위로 일단 올라섰다면 관객의 시야를 벗어날 수 없다. 무대에서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각본에 없는 대사는 구설을 부를 수 있다. 대통령의 고충을 생각한다면 조용히 있거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주변을 떠나 있는 게 옳은 처신이다. 이 정부는 혁신 혁신하면서도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지면 보답용으로 으레 자리 하나씩 나눠주고, 공기업을 전리품인 양 낙하산 인사를 해놓고도 국민의 이목은 안중에도 없다. 유한(有限) 정권의 국가 개조 한계를 무시하는 과욕에다, 아래 위가 분명해서 연공서열이 더 효율적일 수 있는 조직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일도 다반사다. 국민은 어떤가. 위법과 탈법과 투기로 말썽피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부동산 투기를 이쪽에서 단속하면 저쪽에서 툭 불거지고, 신생아의 콧구멍에 볼펜을 꽂아 장난을 치는 간호종사자가 없나, 도덕성이 무기라던 노조간부들의 잇따른 비리, 군대 안 가려고 국적을 포기하는 사회지도층 자녀들….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참으로 골치 아픈 사람들이다. 이게 선진국을 꿈꾸는 나라의 앞과 뒤에서 벌어지는 일상사다. 대열의 앞에 서 있는 지도자들은 방향감각이 없고, 뒷줄에서는 썩어가는 형국이다. 중간에서 오(伍)와 열(列)을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들만 죽을 지경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앞에서 잘 이끌고 뒤에서 제대로 따라가도 넘을까 말까 한 문턱이다. 국민소득도 높아야 하지만 국민의식도 그에 걸맞게 뒷받침돼야 한다. 과거 정부의 실패가 성공적인 ‘선진한국’의 길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69) 雅號(아호)

    雅號(아호) 儒林 (322)에는 ‘雅號’(바를아/부를 호)가 나오는데,‘문인이나 예술가 등의 號(호)나 別號(별호)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雅’자는 아래위가 맞물려 있는 ‘짐승의 이빨’을 뜻하는 ‘牙’(어금니 아)가 音符(음부)로, 새의 象形(상형) ‘ ’(새 추)가 意符(의부)인 形聲字(형성자)이다.許愼(허신)에 의하면 雅는 원래 ‘까마귀’의 일종을 뜻하는 글자였다. 그런데 점차 ‘고상하다, 너그럽다’는 뜻이 일반화되면서 ‘鴉’(갈까마귀 아)자를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用例(용례)로는 ‘雅量(아량:너그럽고 속이 깊은 마음씨),雅拙(아졸:성품이 단아하나 융통성이 없음),端雅(단아:단정하고 아담함) 등이 있다. ‘號’자는 ‘ ’(신음소리 호)와 ‘虎’(범 호)가 결합된 글자이다.字意(자의)는 막대기로 두들겨 맞을 때 너무 긴장되어 소리를 지르고자 해도 낼 수 없는 ‘처절한 울부짖음’이다.‘號令(호령:부하나 동물 따위를 지휘하여 명령함),號外(호외: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임시로 발행하는 신문이나 잡지),諡號(시호:제왕이나 재상, 유현들의 사후에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등에 쓰인다. 우리의 先賢(선현)들은 자신의 상징인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뜻을 생각하며 이에 부합하도록 처신하고자 노력하였다. 나의 인격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인격도 소중한 것으로 여겨 상대방을 상징하는 이름마저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따라서 孔孟(공맹) 같은 성현은 물론 조상이나 존장자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고, 자신의 이름도 낮춰야 할 경우가 아니면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게 ‘字’(자)와 ‘號’이다. 字는 오늘날의 성년식인 冠禮(관례)를 행할 때 짓는 호칭이다.字의 사용이 名(명)보다는 자유롭다 하나 아랫사람이 웃어른의 字를 함부로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와 같은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누구나 허물없이 부를 수 있는 稱號(칭호)가 號인데, 이 號는 雅號(아호)와 堂號(당호)로 나눌 수 있다.雅號는 優雅(우아)한 號라는 뜻으로 예술가들이 詩文(시문)이나 書畵(서화) 등에 쓰는 것이고 堂號는 본래 堂(집 당)의 명칭이지만 이 것이 그 堂의 주인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쓰였다. 그러나 후세에는 號,雅號,堂號 등이 모두 같은 의미로 쓰였다. 名과 字는 부모나 존장자, 스승이 지어준 것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어진 것이다. 반면 號는 자신의 理想(이상),性情(성정),別號(별호),居處(거처),處地(처지)를 상징하는 명칭으로 자신이 지을 수도 있고 타인이 지어줄 수도 있다. 호를 짓는데 절대적 규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緣故地(연고지)를 號로 정하는 所處以號(소처이호), 인생 목표와 의지를 號로 삼는 所志以號(소지이호), 처한 環境(환경)이나 여건을 가지고 號를 짓는 所遇以號(소우이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가운데 특히 아끼고 좋아하는 것으로 號를 짓는 所玩以號(소완이호) 등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號를 雅號라고도 한다. 아호란 우아한 호라는 뜻이므로 他人의 호를 雅號라 하는 것은 穩當(온당)하나 자신의 호를 스스로 아호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사설] 경찰 저질공세론 수사권 못 갖는다

    수사권 문제를 싸고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대(對)검찰 공세가 도를 넘고 있다. 최근 경찰관련 사이트에는 일선 경찰관들이 검찰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띄우거나, 대중가요 ‘독도는 우리땅’ 가락에 가사만 바꾼 ‘수찾사(수사권을 찾는 사람들)’란 노래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가사는 검찰을 ‘무소불위 독재자 권력의 고향’이라고 비난하고,‘대검찰청 나오면 한강다리 왜 갈까’라며 인권보호에 소홀한 점을 꼬집고 있다. 일반인들이 만들어 퍼뜨린 노래라면 한번쯤 웃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권 조정의 핵심 당사자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으로 풀어도 어려운 판에 이렇듯 상대의 감정을 건드려서 무슨 효과를 거두겠는가. 노래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글을 통해서도 검찰을 폄하하는 발언이 다수 발견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다. 지난 19일에는 허준영 경찰청장을 ‘수사권독립장군’이라고 한 패러디가 경찰전문 포털사이트인 ‘폴네띠앙’에 등장했는데, 허 청장이 직접 이를 언론에 자랑삼아 소개한 점도 경솔한 처사다. 이래가지고는 본질은 사라지고 감정만 돋울 뿐이다. 모든 수사에서 검찰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수사권 논란에서 경찰이 ‘약자’로 비쳐지는 것은 사실이다. 시일은 촉박한데 검찰의 이기주의로 인해 조정이 답보상태라서 그랬겠지만, 국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려고 한다면 실망스럽다. 우리는 검찰이 경찰보다 수사능력이 탁월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두 기관 모두 국가와 국민에게 중요하며, 독자적으로 해야 할 일과 협력해야 할 일이 있다. 법 집행과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기관답게 모범적으로 처신해 주기를 당부한다. 검경의 일거일동을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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