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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연 한화회장 ‘보복폭행’ 이것이 궁금하다

    김승연 한화회장 ‘보복폭행’ 이것이 궁금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의 구체적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의문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재벌 총수가 아들의 보복을 위해 직접 나선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또 경찰이 첩보를 입수하고도 40일(?) 가까이 사실상 쉬쉬했다는 점도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 회장이 직접 보복 폭행을 했고 총지휘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 재계에서는 김 회장의 저돌적인 성격과 유별난 가족애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김 회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란 것이 주변의 반응이다. 김 회장은 세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둘째 아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들들이 예일대 등 미국 명문대에 입학한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김 회장은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직선적인 성격으로 유명하다.1981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26년 동안 그룹의 자산 규모를 20배 이상 키워낸 것도 그의 과감성과 추진력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1993년에는 외화를 빼돌려 미국에 호화 주택을 구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또 재산 분배를 둘러싼 형제간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2004년에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던 중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하루 전 미국으로 도피해 비난을 받았다. 그는 한화그룹 부회장을 사법처리하는 수준에서 수사가 마무리된 같은 해 8월이 돼서야 돌아왔다. 경찰이 출국 금지를 요청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찰, 알아서 쉬쉬했나? 경찰이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확인돼 ‘덮어주기 수사’ 의혹도 확산되고 있다. 사건 당일인 지난달 9일 ‘한화그룹 회장 자녀가 폭행을 하고 있다.’는 112신고가 들어왔고, 사건 나흘 뒤인 같은 달 12일에는 한화 고문으로 올 초 영입된 최기문 전 경찰청장이 남대문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화그룹 폭행사건을 조사하느냐.”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따라서 경찰의 첩보 입수 시점이 지난달 20일쯤이라는 경찰의 설명도 앞 뒤가 맞지 않는다. 특히 남대문경찰서에 내사 지시가 떨어진 것은 지난달 28일이다. 서울청 광역수사대에 입수된 첩보가 1주일이 넘어서야 남대문서로 내려온 것이다. 대형 사건을 수사해 언론 노출이 빈번한 광역수사대보다는 ‘관할’이라는 명분까지 있는 한산한(?) 일선 경찰서로 떠넘겼다는 의혹이 일기에 충분하다. 이후에도 경찰 수사는 지리멸렬하다가 지난 24일 언론보도가 쏟아지자 뒤늦게 관련자 소환에 나섰다. 하지만 김 회장 부자가 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해외에 체류 중이어서 수사를 못했다.’고 둘러대는 어리숙함을 드러냈다. 경찰이 사건 직후 피해자 진술을 확보해 놓고도 은폐했다는 의혹도 있다. 경찰이 재벌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었거나(?) 외압에 따라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경찰 고위간부는 “초기 대응이 어리숙했다. 재벌총수가 끼었을 뿐 단순한 사건인데 시간만 보내다 경찰 이미지만 먹칠했다.”고 털어놓았다. ●피해자들이 왜 피해사실을 숨길까? 경찰은 피해자들이 피해 진술을 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수사팀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배경에는 신속하게 피해자 진술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피해자들이 김 회장 측으로부터 금전적 회유나 협박을 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종업원들이 사건 직후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다가 갑작스럽게 말을 뒤집은 점, 관련자 중 일부가 지방 등으로 잠적했던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 남은 과제는? 경찰이 밝혀내야 할 핵심 의혹은 김 회장이 직접 폭력에 가담하거나 지시했는지 여부다. 김 회장이 지난달 8∼9일 청담동과 북창동에 경호원을 비롯해 체격이 건장한 남자 여러 명을 데리고 나타났던 사실과 S클럽 종업원들이 다친 사실은 이미 확인됐다. 또 김 회장 일행에 의해 승합차에 태워져 시내 모처로 끌려간 뒤 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주장도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이라면 단순 폭행이나 야간 폭력에 그치지 않고 납치 및 감금까지 저지른 것이 돼 강도 높은 사법처리가 불가피해진다. 아울러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은폐 시도나 수사 지연 등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는지도 파헤쳐야 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아버지의 복수/황성기 논설위원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주의에 기초한 성문법이다. 눈을 멀게 한 자는 눈을 멀게 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면 손을 자른다는 끔찍한 형벌을 세세히 담았다. 인간은 자신이나 가족이 위해를 당하면 응징하고 싶어진다. 복수의 본능이다. 응징할 권리를 신이나 공권력에 맡겨서는 성에 차지 않는 인간은 사적 징벌의 형태로 복수를 한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연작 ‘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가 그렇다. 영화가 갖는 메타포는 논외로 하더라도 한 인간이 겪은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아준다는 게 공통의 줄거리다. 집단화한 보복도 흔하다. 이라크 전쟁은 집단 보복의 악순환을 잘 보여주는 현재진행형 사례다.9·11테러로 촉발된 무자비한 전쟁은 누가 미국에 응징의 권리를 부여했는지 찬찬히 물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지금도 이라크 땅에서 벌어지는 희생의 뒷면을 들추면 문명 대 문명, 종족 대 종족의 복수와 적개심이 이빨을 드러낸다. 유대인 출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뮌헨’도 수천년을 이어내려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유혈 보복의 부조리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현대는 사적인 보복을 허용하지 않는다. 국가가 법이란 이름으로 보복을 대신해 준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폐지하지 않고 있는 사형제는 살인이란 최고의 폭력에 부과하는 최고의 응징이다. 형법상 인신구금, 민법상 배상이 있는데도 살인을 살인으로 징벌하는 것은 21세기 사고로는 용납하기 힘들다. 박찬욱의 복수 연작 속 주인공의 심정에는 공감한다. 그럼에도 꺼림칙한 기분인 것은 공권력에 의한 살인도 그럴진대 사적 살인으로 잔인한 보복을 가해서일 것이다. 대기업 회장이 술집에서 폭행 당한 아들을 위해 사설 경호원을 대동하고 보복 폭행을 했다고 한다. 해당 기업이 부인하고 있어 진위는 경찰 수사에서 가려질 것이다. 놀라운 일은 네티즌 반응이다. 재벌가의 조폭적 행태를 비난하는 한편에 “저런 아빠 둬서 좋겠다.”는 댓글이 눈에 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지만 아들의 처신을 꾸짖지 못할망정 사적인 보복은 안 될 일이었다. 그의 옹호는 더더욱 유치하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6) 군위 인각사 일연의 부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6) 군위 인각사 일연의 부도

    경북 군위에 있는 인각사(麟角寺)는 일연(一然·1206∼1289)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절입니다. 보각국사 일연은 78세에 이곳에 와서 주지로 있다가 84세에 입적했습니다. 인각사에는 일연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보각국사정조지탑(普覺國師靜照之塔)과 생애를 기록한 보각국사비가 남아 있습니다. 비문에는 저서가 100권에 이른다고 적어 놓았지만,‘삼국유사’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국존(國尊)으로 추앙받았지만,‘삼국유사’를 지었기 때문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일연의 부도와 비가 겪은 수난의 역사를 보면 ‘너무’ 좋은 것이 어째서 좋지 않은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부도는 일연이 세상을 떠난 석달 뒤 인각사에서 동남쪽으로 2㎞쯤 떨어진 능선자락에 세워졌습니다. 일연이 봐두었던 대단한 명당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 불교에 대한 유림의 탄압이 극심하던 시절 한 양반집안이 명당을 찾은 끝에 일연의 부도를 무너뜨리고 무덤을 들였습니다. 도진(道晉·1850∼1902)스님 등이 나서 제자리에 세워놓았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양반이 명당값을 쳐서 산을 비싸게 사들인 뒤 일연의 부도를 60m 떨어진 곳에 옮겨놓고는 역시 조상의 산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부도는 한일합병 이후 몇년이 지나지 않아 사리장치를 탐낸 못된 사람들이 다시 무너뜨렸고, 이후 반세기 가까운 동안 방치되고 말았지요. 1958년 3월 현장을 찾은 미술사학자 이홍직은 “나는 이 부도를 냉정한 미술품만으로는 볼 수 없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보살피며 사리가 놓였던 구멍을 응시하였다.…되돌아오는 차중에서 나는 침통한 감상에 묵묵하였다.”고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부도는 1962년 인각사 정문 앞으로 옮겨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사리공이 비어있는 것도 모르는 무지한 도굴꾼이 한차례 더 손을 댔다고 합니다. 1978년에는 명부전 앞으로 이전됐는데, 최근 인각사가 유명세를 떨치면서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가 벌어지는 바람에 임시장소로 옮겨졌습니다. 안식을 얻으려면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지요. 보각국사비는 1295년 8월에 완성됐습니다. 유명한 문인 민지(閔漬)가 왕명으로 지은 비문은 지금 흔적만 드문드문 남았을 뿐 차라리 바위조각이라고 해야 좋은 몰골입니다. 중국의 서성(書聖) 왕희지(307∼365) 글씨를 집자한 까닭에 무절제한 탁본이 계속되면서 크게 닳았습니다. 비석을 갈아마시면 일연의 신통력으로 과거에 급제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벼룻돌로 쓴 작자도 있어 벌써 1760년 이전에 열몇쪽으로 깨졌다고 합니다. 좋은 글씨와 비석으로 추모하려 했던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고대문화가 풍요롭다면 일연의 덕분입니다.‘삼국유사’에 담긴 옛사람의 신비로운 행적에도 고대사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숨겨져 있지요. 그런 일연의 부도와 비가 이 땅에서 갖가지 이유로 횡행한 반달리즘(문화파괴)의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상징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부도가 땅위에 나뒹굴면서 참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고, 높은 자리에서도 낮게 처신한 선사의 높은 뜻마저 나뒹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dcsuh@seoul.co.kr
  • [문화마당] 지조에 대하여/김명인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한 시대가 정신의 지표로 삼았던 말 중에 세대를 격(隔)하면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낱말이 있다면 ‘지조(志操)’도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지조는 꿋꿋한 신념에 따른 바른 처신을 뜻하는 말이니, 개인의 올곧은 마음가짐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때의 유행어가 대를 이어 생명을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다지만, 지조란 그런 범주에도 넣을 수 없어, 말의 변천사로는 급격한 몰락이라 할 만하다. 삶의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탓일까. 이제는 누구도 한결같은 인내가 요구되는 지조 따위는 들먹이지 않게 되었다. 일찍이 시인 윤동주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성찰과 고통 받는 동족에 대한 울분을 노래했다.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또 다른 고향’) 시대가 어두울수록, 삶의 간난신고가 더해질수록 스스로를 일깨우는 일의 소중함을 설파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조지훈 시인은 지조를 내세운 장문의 논설로 무기력해진 시대의 지성을 질타하였다. 그 글(조지훈,‘지조론’ 참조)에 의하면 지조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라 규정된다. 그는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지키고, 국민을 교화시키기 위한 덕목으로 지조를 강조하고, 모름지기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먼저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재의 폭압을 뿌리친 의기의 글인 그의 ‘지조론’이 발표된 것은 1960년 2월이니, 자유당에 의해 3·15 부정선거가 획책되던 그 무렵이었다. 그런데 어느 결에 우리 세대에 지조라는 말조차 사라져 버렸는가. 지조는 한때 선비의 표상이나 지도자의 자격쯤으로 여겨져 숭앙되었지만, 오늘날 어느 지성인도 지도자도 지조를 들먹이지 않는다. 아니 입에 올리기는커녕 바른 규범을 좇아 꿋꿋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가 드물다. 최소한도의 명분도 저버린 채, 이 당 저 당 철새처럼 떠다니며 변절과 배신을 마다않는 정치가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원칙이나 원리에 엄정해야 할 학자들까지 표절과 사기로 연구의 순결을 지키려 들지 않으니, 이제 지조 따위는 개에게나 주어버린 것인가. 삼엄한 도덕적 기준이 요구되는 지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늘에 와선 시세(時勢)를 거역하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인으로서의 본능고(本能苦)가 강조되고, 개인의 자유가 존중받는 시대에 초지일관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 정신의 자존과 자긍을 위해서라지만 자학과도 같은 생활을 견뎌내려는 의지가 없고서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따라서 지조라는 말에서는 엄동을 견디고 꽃피우는 매운 매화향기 같은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지조를 지키는 일이 곤고하다는 것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의지의 정절을 시험받으며 유지해가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우리가 바라는 지조란 이토록 삼엄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변절하지 말고 살아가자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들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스스로의 언행에 책임지려고 애쓰는 올곧은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이라면 믿고서 따르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흔 해 저쪽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조지훈 선생의 ‘지조론’을 읽고서 큰 감동을 받았었다. 그 분이 재직하시는 대학교라서 비록 원하던 전공이 아니었어도 한번 다녀볼 결심을 했었다. 그리고 그 분을 닮은 시인이 되고 싶었다. 지난해 가을, 조지훈 선생이 봉직했던 교정에 그를 기려 시비가 세워졌다. 제자들의 오랜 흠모가 그 학교 출신도 아닌 선생의 시비를 그들의 교정에 세우게 한 것이다. 김명인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 [HAPPY KOREA] (10) 밀양 부북면 ‘밀양 연극촌’

    [HAPPY KOREA] (10) 밀양 부북면 ‘밀양 연극촌’

    경남 밀양은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된 지역이다. 시에서 ‘발길 닿는 곳마다 관광지’라고 자랑할 정도로 전통 문화가 풍부하다. 관광 자원도 서원이나 향교, 사찰, 고가(古家)등이 많다.KTX가 정차하면서 교통편도 한결 개선돼 외부에서 찾기도 좋아졌다. 하지만 이 지역은 시 단위인데도 개발은 더딘 편이다. 어떤 곳은 수십년 동안 성장이 멈췄다는 생각도 든다. 벼농사와 시설 채소, 과일 등이 주 소득이지만 빠져 나가는 주민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이런 밀양이 최근 ‘연극’이란 새로운 테마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7년 전에 정착한 연극촌을 토대로 ‘테마가 있는 마을’로 업그레이드를 하려는 것이다. 밀양시와 주민들이 추진하고 있는 ‘밀양연극촌 복합테마마을 조성 계획과 한계’ 등을 살폈다. “연극촌예, 처음에는 반대했지예. 연극을 하는 젊은이들이 예의가 없다고….” 부북면 가산리 주민 설상하(51)씨는 1999년 마을에 있는 폐교에 연극단이 처음 들어왔을 때의 분위기를 전했다. 방치돼 있던 폐교인 월산초등학교에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활동하던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들어오면서 젊은이들은 늘게 됐지만,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고령의 원주민들에겐 이들의 자유분망한 행동이 ‘예의없는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한동안 원주민과 연극인간 교류는 없고 냉랭한 기류만 흘렀다. 오히려 마을 주민들 사이엔 불만이 커져갔다. 결국 주민회의까지 열렸고, 주민대표가 하용부(53) 연극촌장에게 마을의 입장을 전달했다. 하 촌장은 처음엔 난감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기꺼이 수용했다. 연극단원들에게 처신에 신중하도록 주문도 했다. 나아가 연극을 할 때 주민들이 공짜로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주민들은 바쁜 농사일 와중에도 공연이 있으면 발길을 공연장으로 돌렸다. 자연히 연극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졌고, 주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자산이 됐다. 하 촌장은 “주민들에게 연극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하면서 많이 친해졌지만 연극촌이 아직 마을에 큰 기여를 못한다.”면서 “이제는 외부에서 들어온 연극촌 주민이나 원주민 할 것 없이 힘을 모아 마을을 발전시킬 때”라고 강조했다. 하 촌장은 “연극촌이 지역 발전으로 승화되지 못한 것은 지역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미친 사람이 그동안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마을에는 젊은 사람이 없고, 연극촌엔 젊은 사람들은 많지만 연극에만 몰두할 뿐 사업에는 문외한이라는 것이다. 주민들의 이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밀양연극촌은 성공 모델로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11월 광주에서 열린 지역혁신박람회에서 ‘예술을 통한 지역사회 개발’의 모범 사례로 발표되기도 했다. 밀양연극촌은 일종의 연극 공장이다.‘신작’을 만들어 발표 준비를 하고 실제로 공연도 한다. 모두 60여명의 연극인들이 살고 있다. 이 중 이윤택 예술감독, 윤대성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등 7가구는 가족 단위로 거주한다. 나머지 50여명은 합숙 형식으로 연극을 하면서 생활한다. 이사장인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은 1주일에 1회 연극촌에 체류한다. 교실은 숙소와 연습장소로 탈바꿈했다. 일본의 연극단들이 서울 공연에 앞서 연습을 하는 등 연습 장소로도 활용된다. 운동장 곳곳에는 연극 자재들이 쌓여 있다. 해마다 연극제를 여는데 운동장이 객석이다. 연극제 때면 3만명이 다녀간다. 평소 주말에도 공연을 하는데 150∼200명이 찾는다. 연간 7만∼8만명이 몰려 온다. 인적이 뜸한 지역에 연극촌이 들어오면서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연극촌의 지역 기여도는 아직 낮다. 관람객은 많지만 먹고, 머물 곳이 없다 보니 대부분 연극만 보고 바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민과 연극인의 고민거리다. 서로가 “이제는 연극이 지역에 도움을 줄 때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추진하는 것이 복합테마마을 조성사업이다. 밀양 조덕현 강원식기자 hyoun@seoul.co.kr ■ 숙박·휴식공간도 조성… 주민들 투자 꺼려 밀양시가 추진하는 복합테마 마을은 연극촌을 활성화해 주민들의 소득과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데 포커스가 맞춰 있다. 하지만 젊은 층을 비롯한 추진 체계가 부족하고 생활 여건이 매우 열악한 등 한계도 많다. 시는 현재의 폐교 부지 5200평과 인근 마을 등 11만평을 사업지구로 정했다. 연극촌과 주변은 ‘테마시설지구’로 묶는다. 공연을 위해 주요 시설을 배치하고 관련 소품과 작품 전시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교육생을 위한 공간과 체험 및 휴식을 위한 공간도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내 가족, 숙박, 교육 등이 복합된 시설을 만들 예정이다. 가급적 연극을 주 테마로 시설을 꾸미되, 지역적 특성을 살릴 방침이다. 관람을 위한 매표소와 휴게실, 지역 특산품 판매장 등도 조성해 관람객을 상대로 주민들이 소득도 올리도록 할 예정이다. 기존 마을과 마을 인접 부지는 ‘정주시설지구’로 묶어 낡은 주택들을 개선할 구상이다. 주변에는 8개 마을 1000여명이 살고 있다. 연극촌을 찾는 사람들의 주민 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도록 진입로 등을 정비하고 주차장도 새로 개설할 예정이다. 아울러 연극촌 주민과 마을의 민박집과 이동이 쉽도록 보행자 전용 연결로도 만든다. 인근의 농경지쪽은 경관보전지구로 정해 부근의 가산저수지까지 연결하는 연극테마길을 꾸밀 예정이다. 특히 가산저수지까지 사업 범위를 확대하면 산책로와 자전거길, 과수원 등 풍부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저수지 뒤편에 자리잡고 있는 고가(古家)를 공연 관람객의 볼거리를 연계해 개발하면 풍부한 지역 자원이 된다. 하지만 주민의 대부분이 고령자들이어서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민의 상당수가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주변에 폐가도 방치돼 있는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투자를 꺼리고 있다. 때문에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가 사업 성공의 관건이 될 듯하다. 가산리 설영주(58)이장은 “살기좋은 지역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겠다.”고 강조했다. 밀양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중앙정부·경남도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도(道)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엄용수 밀양시장은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시범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도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허울만 좋은 것으로 끝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엄 시장은 “국가 지정으로 정해진 뒤 사업 계획을 다시 짜다 보니 규모가 당초보다 커졌다.”면서 “구체적인 사업 추진을 놓고 정부와 협의를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정부와 패키지 사업을 묶는 과정에 시는 당초보다 많은 계획을 세워 요청한 반면 중앙정부에선 부처간 협의 과정에서 규모가 계속 축소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예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계속 줄이라고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필요한 사업이 계속 축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많이 요청했단다. 그런데 부처간 협의과정에서 계속 축소되면서 알맹이가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엄 시장은 “시에 배당된 패키지 사업 가운데도 상당수가 경남도에서 재정을 부담하도록 됐는데, 도에서 재정을 지원해 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남도 역시 재정 부족으로 중앙정부에서 정한 대로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당초보다 사업을 축소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자칫 하면 시범사업만 하고 마는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연극촌을 토대로 인근마을의 소득 창출을 구상했는데 연극촌만 활성화되고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주민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사업을 축소하면 실망 역시 클 것이란 얘기다. 엄 시장은 “도에서 지원이 안될 경우에 대비해 시 예산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극촌과 인근에 있는 저수지, 그리고 저수지 부근 전통마을을 엮으면 공연과 예술을 테마로 한 관광자원으로 키울 수 있다는 기대다. 밀양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날세운 재계’

    재계의 ‘쌍포’가 정부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할 말은 한다.”는 기세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노동 정책과 평준화 정책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관료 출신 임원진을 전격 물갈이했다.‘강성 변신’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이날 고려대 경제인회 초청강연에서 “우리나라 노조는 파업강도는 가장 세지만 노조 조직률은 10%로 세계 최하위”라며 “노조가 강성이 된 데는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정부의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고비용 저효율’을 꼽은 뒤 “5∼6년뒤가 정말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손 회장은 “시대의 흐름이 평생 직장 평생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그런데도 정부가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해 노조와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는 법안을 마련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평준화 교육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교육 평준화를 얘기하는데 지금 평준화를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면서 “(평준화로)우리는 오히려 두뇌유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앞서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관료 출신 조건호 부회장과 하동만 전무를 퇴진시켰다. 전무에는 시장주의 색채가 강한 인물을 승진시켰다. 부회장에는 ‘새 피’를 물색중이다. 조 부회장 등이 퇴진한 것은 전경련 회장 선출 과정에서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문책 성격도 있지만 관(官) 출신들로는 재계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신임 이승철 전무는 “출자총액제한제 등 (기업활동을 가로막는)각종 규제를 풀지 않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독이 될 수 있다.”며 벌써부터 예봉을 세웠다. 한 재계 관계자는 “통상 이맘때면 임기말 레임덕(권력 누수) 등으로 분위기가 느슨해지는데 요즘 양상은 정권 초기의 기싸움을 연상시킨다.”고 한마디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2등은 없다?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2등은 없다?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는 드라마틱하게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 유행하는 ‘반전(反轉) 드라마’였다.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김대중(DJ) 후보가 김영삼(YS) 후보를 누르고 박정희 대통령에 맞설 대항마가 된다.1차 투표에서 1위를 해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YS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곧바로 DJ의 당선을 위해 힘껏 돕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는 목포에서, 대구에서, 전국을 돌며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물론 지원유세의 강도에 대해서는 서로의 입장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다르긴 하지만, 여하튼 YS가 DJ를 위해 뛴 것은 사실이다. 1997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2등을 한 이인제 후보는 독자 출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당을 떠난다. 아들의 병역 비리로 지지율이 급전직하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1차적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지만, 이인제 후보의 조급한 대권 욕심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새천년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타고 2002년에 다시 한번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광주 돌풍으로 일약 스타가 된 노무현 후보에 이어 2위로 처지자 DJ측의 ‘음모론’을 제기하며 경선 도중 사퇴해 버린다.‘이인제 학습효과’라는 용어를 낳을 정도로 그는 부정적 이미지의 대명사가 됐다. 두 사례는 대권후보 경선에서 2등을 한 정치인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웅변적으로 설명해 준다. 처신 여하에 따라 절치부심 끝에 대권을 거머쥘 수도 있고, 영영 그 길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끝까지 완주하고 노 후보에 이어 2등을 차지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이후 노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도 발 벗고 나서 결국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것도 2등으로서 처신을 잘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한나라당 경선에서 제왕적 지위의 이회창 후보에 맞선 최병렬 전 대표도 2등으로서의 위치 설정을 잘해 한나라당 대표직에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지금 여의도 정가, 특히 한나라당 주변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선 불참설이다. 논거는 이렇다. 박 전 대표는 선거에서 늘 승리하는 경험만 했기 때문에 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데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 차라리 나중의 ‘정치적 도모(圖謀)’를 위해 아예 경선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전 시장측의 줄 세우기와 금품 살포 등 구태 정치를 강도 높게 재차 비판하면서 이 전 시장에게 타격을 입히는 방안도 강구 중이라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다.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의 박 전 대표 발언과 지금의 발언을 비교하면 이런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허무맹랑한 소설에 그쳐야 한다.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이 2등 되는 것이 두려워 판을 깨서는 안 될 말이다. 지금까지 박 전 대표의 언행을 보더라도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분당까지 점칠 정도로 두 진영이 용호상박의 접전을 펼치다 보니 나오는 얘기이겠거니 하고 넘겨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2등은 없다? 아니다 2등은 있다.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최선을 다해 승부를 겨루되,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자세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범여권의 후보 선정 때도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jthan@seoul.co.kr
  • ‘홍업 출마’ 반기 든 호남시민단체

    6일 낮 12시쯤 전주 전북대 정문앞이 아수라장이 됐다. 특강을 마치고 나오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승용차를 30여명의 시위대가 기습적으로 막아서자, 주위의 전경들이 강제로 해산에 나선 것이다.광주·전남지역 시민단체 소속 시위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 김홍업씨 국회의원 출마를 반대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전경들의 ‘신속한 조치’로 현장은 금세 정리됐지만, 이날 DJ는 적잖이 당황했을 것 같다. 자신의 정치역정 내내 호남은 누구보다 강력한 ‘서포터스’였기 때문이다. 광주YMCA 김호림 기획조정실장은 “DJ가 호남에서 곤욕을 치른 건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DJ의 차남 홍업씨가 4·25 전남 무안·신안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공천을 받았을 때만 해도 당선은 ‘떼어 놓은 당상’으로 여겨졌다. 정치인들은 DJ를 의식, 감히 홍업씨의 처신을 비판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뜻있는’ 호남 시민들이 들고일어나면서 간단치 않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광주·전남지역 62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5일 ‘김홍업 출마반대 대책위원회(위원장 신대운)’를 구성, 본격적인 낙천·낙선운동에 나섰다. 신대운 위원장은 “부정을 저지른 사람을 민주당이 공천한 것은 호남인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라며 공천 철회와 출마 포기를 촉구했다. 대책위는 곧 서울 동교동 DJ 자택을 방문, 항의서한을 전달할 예정이다. 앞서 4일에는 문병란 전 조선대 교수, 일연 스님 등 지역 원로들이 ‘지역자존지키기 100인 선언’을 통해 “DJ가 권력형 범죄를 저지른 둘째 아들의 출마를 자제시키기는커녕 명예회복을 위해 열심히 뛰라고 했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라고 비난했다. 비판적인 민심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광주 무등일보가 지난달 31일 무안·신안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홍업씨는 20.0%의 지지율로 무소속 이재현 전 무안군수(24.2%)에 이어 2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런 기류가 선거 결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재·보선의 경우 투표율이 낮아 조직표를 앞세운 홍업씨가 유리할 것이란 관측이 많기 때문이다.민주당 관계자는 “홍업씨 지지율이 오르는 추세”라며 “공천 철회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광주YMCA 김호림 실장은 “역사의 고비마다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정의를 실천해온 호남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심판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결의를 굽히지 않았다.●“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 가능성” 한편 이날 전북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특강을 통해 “동북아 안보협력을 위한 장관급 회담이 열려야 하고, 나아가 남한과 북한, 미국, 중국 4자의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프로세스를 진행시키는 일도 예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전망’이란 주제의 특강에서 “2007년은 6·15 정상회담에 이은 제2차 해빙의 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나사빠진 경찰’ 원인·대책은

    경찰의 어이없는 처신과 행태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총기 분실과 늑장 수사, 근무지 이탈, 무고한 시민 폭행에 성폭행 사건까지 이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경찰이 뼈를 깎는 반성과 개혁을 통해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인권 의식과 사회적 공복(公僕)으로서의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질타했다. 전문가들로부터 원인과 해법을 들어봤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경찰의 잇단 근무기강 해이의 원인으로 시민사회 변화에 따르지 못하는 경찰의 느린 개혁 속도를 꼽았다. 그는 “이번 사건들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대충 묻히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시민권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인터넷이라는 환경을 통해 공유되기 쉬운 환경으로 변해 조그만 비리라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면서 “하지만 경찰은 이러한 환경 변화는 물론 선진 인권의식을 따라가지 못한 채 옛날 사고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이창무 교수는 “참여정부 초기 경찰 혁신 등을 계속 얘기하며 강조했던 공직사회 개혁과 사정 분위기가 시간이 갈수록 내성이 생기고 임기 말 레임덕으로 느슨해진 탓에 기강 해이가 발생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허준영 전 경찰청장 시절에는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위해 검찰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직 자체에 긴장도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조직 차원의 이슈가 사라져 경계심이 느슨해진 점도 있다.”고 진단했다. 경찰대 행정학과 표창원 교수는 여론 무마에만 급급한 일회성 징계보다는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경찰은 비위가 발생하면 무조건 직속 상관만 징계를 하는 등 여론 무마에만 급급했다.”면서 “이로 인해 경직된 조직 문화를 낳고 정작 원인 분석이나 예방 조치에는 크게 소홀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관리 감독을 맡은 상관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업무 지침을 정해 놓고 그것을 따르지 않았을 때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 교수는 “경찰 업무가 다양하고 폭넓은데 우리는 대민 또는 위험 업무, 여성 대상 업무 등의 특성과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를 판별해 주는 인사 컨설팅 시스템도 갖추지 않은 채 정기 순환 인사만 운영하고 있다.”면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내부에 직무 적성을 점검하고 수시로 면담과 분석을 전문적으로 하는 부서를 두고 있다.”고 조언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Mr. 쓴소리 조순형 민주당 상임고문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Mr. 쓴소리 조순형 민주당 상임고문

    재선거를 통해 국회에 재입성한 조순형(72·서울성북을) 민주당 상임고문의 ‘쓴소리’가 식을 줄 모른다. 작년에 ‘전효숙 파동’을 주도한 데 이어 올들어서는 전남 무안-신안 재·보선 후보자리를 꿰찬 DJ아들의 처신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인터뷰를 하자하니 국회도서관에서 보자고 했다. 지난해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찾아 국회의장상을 탄 의원답다 싶었다. 부인과 두 자녀가 모두 연극계에서 일해서일까. 첨단 패션인 굵은 줄무늬 양복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칠순나이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원칙주의자답게 정계개편 등 예민한 질문에 답변도 거침없었다. ▶김홍업씨 공천을 뒤집는다는 건 비현실적인 얘기 아닐까요.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도리고, 그게 안되면 4·3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새 지도부가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DJ영향력 등 현실적 상황이 있다지만, 공당이라면 원칙을 지켜야죠. 당원, 민주당 지지계층, 언론 등 여론도 부정적이에요.” 동교동 측은 말려봤지만 잘 안됐다며 선거에서 심판을 받아 지역과 국가를 위해 좋은 봉사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내놨었다. 조의원은 “국가와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길이 국회의원밖에 없느냐.”며 “사면복권이라는 국민의 은혜를 입었다면 일정기간 속죄하고 사회공감대를 형성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여권 대통합 논의가 어지럽습니다. 정계개편은 어떻게 추진돼야 한다고 보는지요. “민주당은 2년 전 전당대회에서 열린우리당과 당대당 통합은 안 된다, 민주당의 정통성을 승계해야 한다, 통합은 민주당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을 당론으로 정했습니다. 새 지도부가 선출되면 구체적 논의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세 원칙은 옳다고 봅니다. 추가한다면, 민주당 분당과 우리당 창당 주역은 국민 앞에 정식으로 사과하고, 통합신당 추진 목표는 정권 승계가 아니라 정권교체라는 데에 합의가 있어야 할 겁니다. 또한 통합신당이나 교섭단체를 구성할 땐 주요이념과 노선, 주요 국가정책에 대한 합의서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논의를 보면 통합 대상과 대선후보를 영입하는 문제에만 치중하고 있지 이런 문제의식은 전혀 없는 것 같아요.” ▶민주당 주도라면 민주당 정강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나는 여섯가지 이념, 노선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과 역사적 정체성 확인, 둘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확인, 셋째 반시장적, 반기업적 경제정책 기조 포기, 넷째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유보 및 한미연합사 유지를 통한 한·미동맹 복원, 위헌적 4대입법 재검토, 법치 실천을 통한 국가기강 확립이 그것입니다.” 그는 2002년에 입수한 자료라며 독일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합의문을 보여 주었다. 노선부터 시작해 국가정책 전반, 연립내각 구성, 권력 분배 등에 대해 120쪽에 걸쳐 세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연정이 이 정도니까 통합신당이라면 더 구체적인 것을 규정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런 내용이라면, 한나라당과 뭐가 다릅니까. “사실 이 정도 원칙이라면 대한민국의 합법적 정당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죠. 이것은 DJ시절 민주당도 벗어난 적이 없어요.” ▶전시작전권 문제는 이전 정부 때부터 논의되기 시작했고, 국보법 개정은 DJ도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평시 전작권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전시에 대해서는 구체적 논의가 없었어요.2012년 등 시한을 정해서 논의한 적도 없죠. 국보법도 대체입법 공약은 갖고 있었지만 실제 추진은 안했었어요.” ▶탈당한 손학규 전 지사와 여권이 제휴할 수 있을까요. “좀 어렵다고 봅니다. 명분이 워낙 없고 여론도 부정적이잖아요.14년 동안 한나라당에서 3선의원, 장관 등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며칠 전까지 탈당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했다가 갑자기 뒤집은 입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어요. 정계개편 움직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의 여권후보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지. “지금 상황에선 대선 후보로서 어느정도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본인이 입장을 확고히 한 다음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겠죠. 지금으로선 지명도도 낮고 서울대 총장, 학자로서의 업적이야 국민이 알 수도 없으니까.” ▶그런데도 정 전총장에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아무리 둘러봐도 여권후보 지지도가 5%도 안되잖습니까. 그러니까 정치 신인한테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겠죠. 그동안은 고건 전총리였는데 중도낙마하니까 정 전총장이 그 대상이 된 거죠. 시민사회 제3의 인물들이야 국민들한텐 더 생소하죠.” ▶민주당은 다시 정권 창출할 뜻이 없는 겁니까. “국회의원 11명인 소수정당이지만 대선을 그냥 포기할 순 없죠. 대선에서 별 역할을 못한 정당은 총선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정치사의 교훈입니다. 통합신당 추진 움직임이 있지만, 우리의 세 가지 원칙이 지켜질지는 미지수예요. 그게 실패한다면 독자적인 후보를 내서, 승리는 못하더라도 연합 노선을 구축해보자는 분위기도 강한 편입니다.” ▶직접 대선에 출마해 볼 의향은 없는지요. “어쩌다 그런 얘기 듣기도 하는데, 저는 전혀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요. 우선 역량이 있는지 모르겠고요. 대선주자들이 예비단계에서 겪는 일 지켜보면서 저걸 어떻게 겪나, 소신껏 말하고 실천하며 살아왔는데 대선후보로 나서면 그게 가능할까, 안될 것 같거든요. 입법부에서 좋은 국회의원으로 최선을 다하고 제 인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전효숙 전 헌재소장 내정자를 중도하차시키고 개인적으로 혹시 미안하다는 생각은 안해봤는지. “훌륭한 재판관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분인데, 그렇게 돼서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러나 이건 가장 중요한 헌법적 절차의 문제였기때문에 감내해야 했지요.” ▶국회의원들도 해마다 예산처리 법정기한을 넘기잖아요. 그게 낙마시킬 정도로 큰 문제였나요. “적격성 문제도 컸습니다. 코드인사였지요. 노 대통령과 사시 동기가 사무처장까지 합해 헌재 안에 4명이 될 판이었어요. 동급인 대법원장에 비해 사시기수가 18기나 뒤져 연륜에서 맞지 않는 것도 문제였지요. 처음부터 무리가 많은 인사였습니다.“ ▶탄핵 후 민주당 참패에 책임을 느끼셨는지요. “물론 그래서 당대표도 즉시 물러났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때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이 커집니다.” ‘쓴소리‘때문에 불이익도 많지만 그게 국회의원의 우선적인 역할이라고 믿는다는 ‘미스터 쓴소리’. 정계개편 국면에서 어떤 쓴소리들이 또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yshin@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그는 누구 1935년 유석 조병옥 선생(전 민주당 대표 최고위원)의 3남으로 충남 천안에서 출생(만2세). 서울고,서울대 법대 졸업.1981년 전두환 군부정권에서 정치활동이 금지된 형(고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을 대신하여 서울 성북에서 11대 총선에 출마, 무소속으로 당선.이후 6선을 거듭하며 독자적 노선과 거침없는 언행으로 ‘미스터 쓴소리’란 별명을 얻었다.1985년 다른 무소속 의원 2명과 함께 현역의원으론 처음으로 민추협에 가입했고 1987년에는 후보단일화가 안되자 한겨레민주당을 창당, 낙선하기도 했다.1990년엔 3당합당에 반대,‘꼬마민주당’에 참여.2003년 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역풍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7·26재보선에서 재기.그해 말 전효숙 헌재소장 내정자 인사청문회에서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헌법 조항에 어긋난다고 지적, 결국 지명 철회를 끌어내기도 했다.
  • [[한·미 FTA 협상 시한 D-2]] 정치권 ‘FTA 공방’ 격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단식 의원들의 처신에 대한 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FTA 찬성 의원들은 28일 단식 의원들에 대한 비판에 속속 가세했다. 운동권 출신인 열린우리당 송영길 사무총장은 “국정을 책임지는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정부보고를 분석하고 국민에게 다가가야지, 국민 편가르기에 편승하는 즉자적 대응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경제관료 출신인 통합신당모임의 강봉균 의원도 “대선후보가 되겠다는 분들이 반대를 하려면 개방을 확대하지 않고서도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최고위원도 “참여정부에서 여당 의장과 장관을 지낸 두 사람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무대에 올랐지만 희극이 돼 관객들이 웃고 있다.”며 “너무 배가 불러 잘못된 꿈을 꾼 것 같은데 단식을 계기로 꿈을 깨기 바란다.”고 비꼬았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과 민생정치모임(선도탈당그룹) 천정배 의원은 반박에 나섰다. 김 의원은 “백번 양보해서 ‘대선용 정치쇼’라 해도, 쇼라도 해서 협상력을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박근혜·이명박 두 주자는 ‘마이너스 쇼’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천 의원도 “법무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7월 FTA 관계장관회의에서 대통령에게 투자자-국가 중재제도의 위헌성과 심각성을 제기했고, 당 복귀 후에도 FTA 토론회 등을 통해 마지노선을 제시해왔다.”고 소신 바꾸기란 비판을 반박했다.김상연 김지훈기자 carlos@seoul.co.kr
  • 앵커출신 노나카 산요회장 1년9개월만에 중도 하차

    |도쿄 박홍기특파원| 미모의 앵커 출신으로 일본의 거대 가전업체인 산요전기(三羊電機)의 회장으로 올라 화제를 모았던 노나카 도모요(52) 회장이 19일 사퇴했다. 취임 한 지 불과 1년 9개월만이다. 때문에 ‘얼굴 마담’ 역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나카 회장은 사임과 관련,“일신상의 사정”이라고만 간단하게 밝혔다. 그러나 과거 부적절한 분식결산 문제를 둘러싼 대주주인 금융기관 출신의 이사진과의 의견 대립이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나카 회장은 분식결산을 외부 변호사에 의뢰,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려고 했으나 이사진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게다가 공인회계사 출신인 남편이 운영하는 컨설팅회사와 수억엔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은 데다 지난해 11월 인도 출장 때 남편의 여비를 회사에 부담시킨 사실이 드러나는 등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처신에 대해 강한 비판도 일었었다. NHK방송 등에서 앵커로 이름을 날렸던 노나카 회장은 2002년 사외이사를 거쳐 2005년 6월 회장에 올랐다. 당시 노나카 회장의 발탁에 대해 창업자측이 자신들에게 쏠리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창업자의 장남인 이우에 사토시(75) 대표이사 겸 이사회 회장이 심각한 경영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대신 사장 자리를 장남인 도시마사(44)에게 물려주려는 ‘각본’이었다는 것이다. 노나카 회장은 실제 경영 실무에서는 멀어져 있었다. 특히 미쓰이스미토은행이 지난해 3000억엔의 증자에 참여, 금융기관 출신들로 이사진을 구성해 경영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산요 경영진 9명 중 절반인 5명이 이 금융기관 출신들이다. 노나카 회장은 재임 기간에 경영 정상화보다 뉴스 캐스터로서의 지명도를 활용,‘환경보호를 중시하는 산요’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노나카 회장의 사임에 따른 사토시 전 회장의 임명 책임도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회사측은 당분간 후임 회장을 공석으로 둘 방침으로 전해졌다.hkpark@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12)日·淸도 인정한 역관시인 홍세태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12)日·淸도 인정한 역관시인 홍세태

    인왕산 호걸 임준원의 집에 가장 오래 얹혀 살았던 위항시인은 홍세태(洪世泰·1653∼1725)이다. 중인들은 대대로 같은 직업을 물려받았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우들까지 무인으로 활동하던 집안에 태어나 역관이 되었다.23세에 역과에 합격하고 30세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가면서 문단에 이름이 알려졌다. 이에쓰나(家綱)가 1680년에 죽고 그의 아들 쓰나요시(綱吉)가 쇼군(將軍)직을 계승한 뒤에, 통신사를 보내 축하해 달라고 조선에 청하였다. 조정에서는 경상도관찰사 윤지완을 정사에, 홍문관 교리 이언강을 부사에 임명하여 474명의 사절단을 구성했다. 일본어 소통에 필요한 역관은 물론이고, 글을 짓는 제술관, 글씨를 잘 쓰는 사자관(寫字官), 그림을 잘 그리는 화원(畵員), 음악을 맡은 전악(典樂), 치료를 맡은 양의(良醫), 마술 곡예를 보여주는 마상재(馬上才)와 광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었다. ●에도시민들 비싼 자릿세 내고 통신사행렬 구경 정사나 부사는 자제군관(子弟軍官)이라는 명목으로 개인 수행원을 데려갈 수 있었다. 이언강은 홍세태를 데리고 갔다. 홍세태는 일본어 역관이 아니었으므로, 통역이 아니라 일본 구경을 하기 위해 따라간 것이다. 개인적인 자격으로는 일본에 갈 수 없어 일본을 구경하려면 사신의 수행원 신분을 얻어야 했다. 통신사 일행이 귀국한 뒤에 사신과 역관들에게 상을 주었지만, 그는 공식적으로 한 일이 없어 상을 받지 못했다. 대신 조선과는 아주 다른 일본의 산천문물을 구경하고 시인들에게 시를 지어주며 국제적으로 평가받았다. 중국과 외교를 단절하고 있었던 에도막부는 조선을 통해 중국 중심의 세계 문물을 받아들였다. 쇼군 일생의 가장 성대한 의식인 조선통신사 행렬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며 권위를 확고히 했다. 무사 중심의 다이묘(大名) 행렬은 자주 구경했지만, 조선통신사 행렬은 쇼군이 즉위할 때만 구경할 수 있었다. 에도(江戶·지금의 도쿄) 시민들은 비싼 자릿세를 지불하고 음식을 먹어가며 질서있게 줄지어 기다렸다. 일본의 수행원까지 포함한 몇 천명의 행렬이 중심가를 지나려면 한나절이나 걸렸다. 1636년의 행렬을 구경한 네덜란드 상관장 니콜라스 쿠케바켈은 그날 일기에 “이 행렬이 전부 지나가는 데 약 5시간이나 걸렸다.”고 기록했다. 조선에서는 중인을 하찮게 여겼지만,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오히려 말이 통하는 역관을 더 친근하게 대했다. 쉴 틈 없이 손님들이 찾아와 시를 지어 달라고 청했다. 몇 백리 멀리서 음식을 싸들고 며칠 걸려 찾아온 손님들이기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림에도 소질… 조선 선진문물 전도사 역할도 홍세태는 시만 지어준 것이 아니라 그림도 그려 주었다. 조선에 없는 그의 그림이 일본에 전하는 것도 조선 문화를 얻어보고 싶어 했던 일본인들의 염원 덕분이다. 첫기착지인 쓰시마부터 홍세태는 인기가 대단했다. 수석역관 홍우재가 기록한 ‘동사일록(東 日錄)’ 6월28일자에서 “서승(書僧) 조삼(朝三)과 진사 성완, 진사 이재령, 첨정 홍세태가 반나절 동안 시를 주고받았다.”고 적었다. 사무라이가 지배하던 일본의 지식층은 승려와 의원,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유관(儒官)이었다. 조삼이라는 승려는 쓰시마에서 에도까지 안내하며 틈만 나면 홍세태와 시를 지었다.9월1일 일기에는 에도에서 받은 윤필료(潤筆料) 가운데 홍세태 몫으로 ‘30금’이 적혀 있다. 화원 함재린의 윤필료도 30금이었으니, 홍세태가 일본인들에게 시를 지어주고 받은 원고료가 화원의 그림값과 같았던 셈이다. 정내교는 홍세태가 일본에서 활약한 모습을 묘지명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섬나라 오랑캐들이 종이나 비단을 가지고 와서 시와 글씨를 얻어 갔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그들이 담처럼 죽 늘어서면, 그는 말에 기대선 채로 마치 비바람이라도 치는 것처럼 써갈겨 댔다. 그의 글을 얻은 자들은 모두 깊이 간직하여 보배로 삼았는데, 심지어는 문에다 그의 모습을 그리는 자까지 있었다.” 에도에서 공식적인 행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일정에 쫓기지 않아 더 많은 손님들을 만났다. 쓰시마에서 윤필료를 청산할 때에 홍세태는 많은 돈을 받았을 것이다.1711년 통신사 때에 일본측 접반 책임자였던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는 정사 조태억과 환담하면서 홍세태의 안부를 물었다. 30년이 지난 뒤에도 기억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 돌아온 홍세태는 다시 천대를 받으며 가난한 생활을 했다. 역관시인 홍세태의 이름은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1695년에 청나라 한림학사 상수(尙壽)가 사신으로 왔다. 그는 ‘동문선(東文選)’과 ‘난설헌집(蘭雪軒集)’, 그리고 최치원(崔致遠)·김생(金生)·안평대군의 글씨를 구해 달라고 했다. 아울러 홍세태에게 시를 짓게 하여 가지고 갔다. ‘연려실기술’ ‘사대전고(事大典故)’에 실린 이 기록은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 최고의 작품집, 명필의 필적과 홍세태의 시를 같은 수준에 놓고 보았음을 뜻한다. 청나라에서 온 사신들은 으레 뇌물을 요구했으며, 요구하지 않더라도 우리 조정에서 온갖 방법으로 뇌물을 주었다. 그런데 1723년에 사신으로 왔던 도란(圖蘭) 일행은 아무런 뇌물도 요구하지 않고, 작은 부채 하나를 내놓으며 시 한 편만 지어 달라고 하였다. ●문집 출판비 은전 70냥 베갯속 저축 경종 3년 7월11일 실록에 의하면 “시인 홍세태로 하여금 율시 1수를 지어주게 하였다.(이들이 뇌물을 받지 않고 돌아간 적은)근래에 없었다.”고 했다. 우리 조정에서도 홍세태를 국제적인 시인으로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경종은 몸에 종기가 나서 왕세제(王世弟·뒷날의 영조)가 여러 행사를 대신 치렀다. 영조는 30여년 뒤에 홍세태에 관해 예조판서 홍상한에게 이렇게 말했다. “홍세태는 노예라는 이름이 있었으나 문장이 고귀하다고 내가 어렸을 때에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그의 시를 받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내가 일찍이 몸을 삼가고 조심하여 여항(閭巷)의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알지는 못한다.”(영조실록 34년-1758 10월7일 기록) 영조가 왕세제 시절에 몸을 삼가고 조심했다는 것은 장희빈의 아들인 이복형 경종의 후사가 없어 왕세제로 책봉돼 남인과 노론, 소론의 삼각관계 속에서 처신을 조심했다는 뜻이다. 또한 홍세태의 ‘노예’라는 신분 때문에 만나기를 꺼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왕권이 확고해진 뒤에야 홍세태를 기억했지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로부터 12년이 더 지난 뒤에야 홍세태의 아들 홍서광을 불러보고 벼슬을 주었다. 홍세태는 자신의 작품에 자부심이 컸다. 문집의 머리말을 미리 써놓을 정도였다. 간행할 비용까지 미리 저축해 두었다. 역시 가난하게 살았던 서얼 시인 이덕무는 그러한 사실을 마음 아파하며 ‘이목구심서’에 이렇게 적었다. “홍세태가 늙은 뒤에 자신의 시를 손질하고, 베갯속에 백은(白銀) 70냥을 저축해 두었다. 여러 문하생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면서 ‘이것은 훗날 내 문집을 발간할 자본이니, 너희들은 알고 있으라.’하였다. 아! 문인들이 명예를 좋아함이 예부터 이와 같았다. 지금 사람들이 비록 그의 시를 익숙하게 낭송하지만, 유하는 이미 죽어 그의 귀가 썩었으니 어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줄임)어찌하여 살아 있을 적에 은전 70냥으로 돼지고기와 좋은 술을 사서 70일 동안 즐기면서 일생 동안 주린 창자나 채우지 않았는가.” ●뛰어난 재주로도 신분 벽 못넘어 이덕무의 집에서 좋은 물건이라곤 ‘맹자’뿐이었는데, 굶주림을 견딜 수 없어 200전에 팔아 식구들과 밥을 지어 먹었다. 친구 이서구에게 편지를 보내 “맹자가 밥을 지어 나를 먹였다.”고 자랑한 이덕무였기에 은전 70냥으로 시집을 출판하는 것보다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70일 동안 즐기는 게 낫지 않으냐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이덕무의 속마음이었으랴. 서얼과 중인의 벽을 넘어, 재주와 능력이 있으면 인정받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를 염원한 것이 아니었을까. 홍세태가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시집을 출판한 덕분에 우리는 그의 시를 읽고 그 시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데스크시각] 의원 한명숙,장관 유시민/박대출 공공정책 부장

    11월7일(1997년)→5월6일(2002년)→2월28일(2007년). 문민 대통령 3인이 탈당한 날들이다.5년마다 반복되고 있다. 시기는 점점 앞당겨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선 한달 전 탈당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7개월 전 떠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10개월 전이다. 임기 5분의 1이 무당적(無黨籍)이다. 대통령의 탈당은 책임정치의 반감(半減)이다. 노 대통령의 탈당은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여당이 사라졌다. 당정(黨政)·당청(黨靑)은 이젠 없다. 여기까진 양김 때와 비슷하다. 다른 것들도 꽤 있다. 여당은 제2당으로 밀려났다. 위장 이혼, 거자필반(去者必返) 논란도 생겨났다. 노 대통령은 중립내각을 안한다고 했다. 기만적이라는 것이다. 정치인 각료들의 재신임 문제로 연결됐다. 당사자는 5명이다. 한명숙 전 총리와 이재정 통일, 유시민 보건복지, 이상수 노동, 박홍수 농림부 장관 등이다.5인의 처신은 3색(色)이다. 유시민 장관의 색깔이 가장 튄다. 비교해 보자. 첫째, 자리 선택의 차이다. 한 전 총리는 당으로 복귀했다. 이 통일, 박 농림장관은 당적을 내놨다. 떠나고, 남고, 상반된 길이다. 그러나 한쪽을 정리했다. 중립내각 논란에서 자유롭다. 이 점에선 깔끔하다. 적임 시비는 별개 문제다. 유 장관은 의원·장관을 붙들고 있다. 이상수 장관은 당원·장관을 고수하고 있다. 대통령은 ‘둘 다’를 허용했다. 대통령 탈당·총리 복귀로 충분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깔끔하지 않다. 집안 조차도 이의를 달고 있다. 유 장관은 열린우리당측과 티격태격이다. 최재성 대변인과 연일 설전이다.“내각에 있는 것은 맞지 않다.”(최)→“당이 공식 요청하면 나간다.”(유)→“판단의 주체가 알아서 할 일”(최)→“일반적인 말을 한 것”(유). 여러 동료 의원들까지 가세했다. 유 장관을 압박하는 강도는 더 세졌다. 둘째, 선택 과정의 차이다.‘의원 한명숙’으로 가는 과정은 시끄럽진 않았다. 정치성 발언을 다소 자제했다. 논란거리를 댄다면 ‘개헌 추진 총대’‘선심정책’ 정도다. 대신 열린우리당의 환영사가 쏟아졌다.“대선전에 뛰어들면 1차 붐업”(민병두 의원),“통합의 리더십”(최 대변인) 등. ‘장관 유시민’으로 남는 과정은 시끌벅적하다. 곳곳에서 부딪친다. 행정자치부 장관과는 여러 차례 충돌했다. 야당의 대선 주자도 공격 대상이다. 국회와 정당, 언론인과 지식인들까지 깡그리 비판했다.‘국민사기극’의 장본인들이라는 주장도 했다. 셋째, 논란 소재의 차이다. 이재정 장관은 ‘이면합의설’로 시끄럽다. 남북 장관급회담 브리핑을 번복했다가 호되게 당했다. 정체성 논란은 진행형이다. 이상수 장관은 비정규직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행정 문제, 정책 논란들이다. 유 장관은 혼재형이다. 논란의 경계가 없다. 행자부 장관과는 연금문제로 부딪쳤다. 정책 논란에 속한다. 꽤 뜨겁게 맞붙었다. 그는 연금 개혁 전도사로 기용됐다.‘공무원의 철밥통’을 깨는 적임자로 꼽혔다. 이 분야에서 치고받는다면 시비할 일만은 아니다. 결론이 좋다면 칭찬해 줄 일이다. 그러나 마찰음의 대부분은 정치 논란이다.“한나라당 집권 가능성 99%”“한나라당 집권해도 장관 하고 싶어”“경부운하는 정치운하”“1% 집권 가능성” 등. 한나라당의 반발은 물론이다. 동료 의원의 출당 요구까지 자초했다. 한동안 “달라졌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젠 본색(本色)으로 돌아간 것 같다.‘의원 한명숙’은 ‘덜 정치적’인데 ‘장관 유시민’은 ‘더 정치적’이다. 노 대통령은 새 총리로 행정형·실무형을 선택한다고 했다. 정치형·정무형은 청와대 새 비서진으로 보완하려는 모양새다. 임기 말 ‘수레 양바퀴’의 컨셉트다. 부품들은 바퀴에 맞아야 한다. 행정형은 부처로, 정치형은 정당으로 가면 된다.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박대출 공공정책 부장 dcpark@seoul.co.kr
  • [열린세상] 고유가의 축복/ 이성형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작년에 텃밭에 심었던 배추 몇 포기를 뽑지 않고 두었더니 1월 초순까지 푸른 이파리가 변하지 않았다. 하긴 외투 한번 꺼내 입지도 않고 이번 겨울은 지나가 버렸다. 기후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지구 온난화와 해수면의 상승이 화석연료를 과다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업계와 정치인들은 이런 주장을 건성으로 받아 넘겼다. 화석연료에 기초한 에너지 체계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더 많은 석유와 가스전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조차 불사하는 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최근 들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두 고유가 덕분이다. 이라크 전쟁 이후 유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중국과 인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에너지의 수급과 가격체계에 균형이 깨졌다. 최근까지 OECD 국가들의 경우 GDP 성장률이 1% 증가하면 석유 소비는 0.4% 정도 증가했다. 덕분에 1990년대까지 세계 소비량의 증가율은 연간 1%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중국의 급성장 이후, 더욱이 인도까지 가세하면서 석유 수요는 급증하고 있고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특히 2002년을 기점으로 석유 소비량 증가율은 연간 3%에 달하고 있다.2006년의 경우 배럴당 가격도 60달러에 육박했다. 이제 중국과 인도 사람들도 자동차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이런 최근의 소비 경향을 2015년까지 늘려보면 석유의 일일 수요량은 2500만배럴까지 증가하는 반면, 공급량은 1500만배럴에 머문다고 한다. 공급 부족은 곧바로 지속적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2015년이면 유가는 배럴당 150달러 수준에서 안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제학자들은 추산한다. 고유가 시대가 되면서, 지구온난화를 피부로 체험하면서 비로소 사람들은 에너지와 대기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걱정한다. 우선 에너지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기술개발이 한창이다. 무엇보다 수소와 연료전지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선점하려는 자동차 메이저 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아울러 온실가스를 줄이는 청정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에탄올을 정제하는 기술도 경제성을 입증 받고 있으며,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각종 프로젝트도 유가가 상승할수록 경제성을 얻게 될 전망이다. 또 에어컨에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가스 대신 탄소를 냉매로 사용해야 하는 시대가 곧 우리에게도 닥쳐올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에너지와 기술 레짐의 변화를 얼마나 잘 인지하고 있으며 잘 대처하고 있을까? 정부와 업계, 그리고 국민 일반이 이러한 변화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대처하고 있을까? 우선 기업의 기술력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정부의 인식도 안이하다. 이제까지 우리는 화석연료 포드주의의 성공사례로 각광을 받았다. 그랬기에 국제사회의 새로운 흐름에 적당히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해 왔다. 교토의정서에 대한 태도도 그랬고, 국내의 기술개발 사업도 그랬다. 하지만 ‘포스트-교토의정서’ 시대는 다를 것이다.‘지속가능한 개발’은 이제 수많은 국정의제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대단히 중요한 하나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에너지 관련 기술은 차세대 성장의 동력이 될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 방지란 지구적 공공재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시대이다. 차기 대선주자들은 더 이상 성장률이나 토건사업 논쟁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정초하는 에너지 체제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한다. 이성형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 [사설] 정말 충격적인 ‘학사모’의 기부금 요구

    교복값 거품없애기 운동을 주도해 온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학사모)’이 교복업체에 상당액의 기부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업체들 주장으로는 수십억원대에 이른다. 학사모는 업체들이 부당하게 취한 이득을 사회환원금 명목으로 내놓으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단체가 쓸 돈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교육청 등에 기부하라고 한 것이므로 떳떳하다는 뜻이다. 명분이야 어찌 됐든 시민단체가 감시 대상인 기업에 후원이나 기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시민의 권익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단체가 압력을 가하고 돈을 내라고 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단체는 순수성과 존재이유를 잃게 된다. 학사모는 개학을 앞둔 시점에서 교복값 현실화 운동을 벌여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교복물려주기 운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일부 업체들의 자발적인 교복값 인하도 유도해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교복착용 시기를 5월로 늦추도록 권고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업체들의 교복값 담합 조사를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런 학사모가 교복업체의 계열회사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뒤편에서 사회환원금을 요구한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교복값을 내리겠다는 활동이, 업체들에 기부를 요구함으로써 가격 인하를 못하도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옳지 않은 처신이었다. 그래서야 시민단체의 우월적이고 특권적 지위를 오남용했다는 지적을 면할 길이 없다. 경실련·흥사단 등 4개 시민단체가 그제 시민단체의 책임성을 높이겠다고 나섰다. 민주화를 증진하고 사회를 감시해 온 시민단체가 영향력은 커진 반면 권력화됐다는 안팎의 비판을 수용한 결과이다. 모처럼 자성하겠다는 마당에 드러난 학사모의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시민단체의 도덕성을 의심하게 하고 고립을 가속화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 [서울시교육청 ‘통합논술 교실’ 지상중계] (7) 주제별강의 및 첨삭 Ⅲ

    1번은 제시문에 나온 내용으로 풀 수 있다. 쉬운 문제다. 답에는 ‘혁신’이라는 어휘만 들어가면 된다.(가)에 있는 예들이 혁신의 어느 분야에 해당하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만 알면 쉽게 풀 수 있다.(가)에 나오는 혁신은 무엇인가. 공급의 측면에서 볼 때 생산자 중심, 생산성 증대, 기업의 이익, 즉 들어가는 것보다 나오는 게 더 많으면 그 관계가 성립된다. 수요 측면에서는 소비자의 가치와 만족도를 높이는 것을 들 수 있다. 공통점은 이런 식으로 보여주면 된다. 그럼 이 제시문에서 수요 측면인지 공급 측면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 답이 있다. 스타벅스에서 혁신이라고 한 부분은 고급문화를 제공하고 소비자의 만족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익이 된다는 등의 얘기는 공급 측면으로 보면 된다. 혁신은 자원의 생산성을 높이는 활동이다. 공급 측면에서 혁신의 정의를 내린 곳은 어디인가. 똑같은 자원을 투자하고도 다른 결과를 얻는 것이 혁신이다. 그럼 생각해 보자. 스타벅스에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커피라는 생산물에 새로운 문화를 더한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얻은 것이다. 스타벅스가 성공했던 이유는 이들의 기법이 수요 측면에만 해당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서울시교육청 논술강의 녹취록&논술교재(7회) 바로가기 델을 보자. 어디가 핵심인가. 다이렉트 판매방식이다. 또한 소비자 중심이다. 맞춤형 PC를 직접 판매하는 모델을 창조한 곳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객의 만족도를 높여주기 위해서다. 이 또한 수요의 측면이다. 이것은 스타벅스의 예와 다르게 제품에 서비스를 얹은 것이다. 결론은 쉽게 내려질 수 있다. 결국 이 두 가지가 수요 측면임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공급 측면으로는 이익 창출이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에 수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더 빛을 보는 것이다.(가)에서 여기에 속하는 것만 말하면 된다. 글의 순서는 상관없다. 중점을 두고 쓸 부분은 소비자들의 가치와 만족도를 높여주는 예이다. 요즘 기업들은 여기에 중점을 두고 나아가고 있다. 두번째 단락에서는 혁신에 대한 얘기 가운데 공급 측면에 한계에 부딪쳐 수요 측면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쓰면 된다. 혁신에 대한 설명이 여러 개 나오는데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 알아보자. 혁신은 무엇인가. 학교 수업시간에 나오는 것이 논술의 배경 지식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내신 공부를 하고 시험 끝나면 다 잊어버린다. 그러고 나서 수능 공부를 한다. 학원 열심히 다닌다. 수능이라고 내신과 동떨어져 있느냐. 기본적으로 수능의 배경지식도 내신 공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여러분은 한 번에 할 수 있는 공부를 따로 따로 하면서 시간과 노력을 버리고 있다. 학원은 기본적으로 이익 추구를 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내신, 수능, 논술등을) 쓸데없이 다 나눠서 가르친다. 수능은 암기적 사고,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를 요구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별개의 문제로 생각한다. 논술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글쓰기가 들어갈 뿐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것이 논술이다.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학교에서 배경 지식을 잘 안 가르쳐 주는 이유는 교과 시간에 배우는 배경지식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집중해라. 집에 가서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돌을 밀어보지도 않고 (해결책을)찾는 식의 공부는 안된다. 스스로 길을 찾는 식의 공부 방법을 찾아야 한다. 2번 문제를 보자. 박지원은 잘 알 것이고, 장자와 박지원은 연습문제에 자주 나온다. 이유는 지금 시대에 적용되는 사상을 당시에 미리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잘 맞는 한자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같은 말이 하나 더 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옛것을 알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라는 뜻이다. 논술에서 배경지식을 왜 강조할까. 배경지식은 단순히 글의 자료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한 귀한 재물이 된다. 이 문제에서도 여러분은 두 글에 나타난 삶의 태도나 사유 방식을 찾아야 한다. 둘의 평균을 찾아야 한다. 한 쪽에 치우치면 안된다. 두 가지를 다 아우를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두번째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사례를 논하는 것이다. 주장이 있고, 추출해 낸 사유방식으로 이어지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사례다. 논술하고 싶은 내용은 많이 알지만 쉬운 것을 위주로 왜 그런지 설명해야 한다. 구체적인 설명은 예만 들어주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설명이 필요하다. 왜 설명하지 않을까. 이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것은 다른 사람이 모두 안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실수다. 설명이 충분히 되어야 한다. 추측성 주장이거나 혹은 어느 한 쪽의 주장을 몰아갈 때 더욱 더 설명을 보장해 줘야 한다. 그러나 찬반 논의형 진행일 때 반박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즉 한정을 지어준다. 예를 들어 사람은 누구나 군대를 가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면 몸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혹은 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하는 식으로 한정을 지어야 한다. 진도를 나가 보자. 두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나)를 보면 선귤자가 엄행수를 바라보는 태도, 예적 선생이라고 부르는 이유에서 삶의 방식이나 그의 사유 방식을 추론할 수 있다.(나)에서는 선귤자나 제자가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가)에서도 혜자와 장자가 바라보는 방식이 상반된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장자와 선귤자이다. 이제 결정지어 주면 된다. 삶의 태도라고 할지 사유방식이라고 할지. 즉 남들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두번째 질문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구체적인 예를 통해 말하라고 하고 있다. 설명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해줘야 한다. 불친절하면 점수를 잘 받지 못한다. 정리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2007 서강대 수시 1차 논술문제 ●경제 문항 1: 30%,500~600자 다음 제시문 (나)는 오늘날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어떤 공통된 경영 활동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제시문 (나)를 근거로 하여 제시문 (가)가 담고 있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라. (가) 스타벅스는 커피와 문화를 결합하여 커피에 관한 경험을 재창조한 회사이다. 스타벅스의 최고 경영자가 된 하워드 슐츠는 1982년 스타벅스에 합류했다가 1987년에 스타벅스를 인수했다. 그는 단순히 최고급 커피원두를 소매로 파는 가게였던 스타벅스를 ‘고객이 바리스타(barista)라 불리는 매장 점원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오늘의 스타벅스를 일구어냈다. 또한 존경과 품위, 다양성의 존중, 사회와 환경에 대한 공헌 등의 원칙을 공유하는 문화를 키워나감과 동시에 직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프라프치노 등 고객의 새로운 요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상품을 적시에 선보였다. 그 결과 1987년 당시 6개 스토어에 100여명의 사원이 있던 수준의 회사를 10년만에 2,000여 개의 스토어에 25,000명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켰다.1992년에는 커피 판매 기업으로는 최초로 상장기업이 되었으며 2004년에는 5조 3천억 원의 매출과 6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델은 1984년 창업과 함께 컴퓨터업계 최초로 제조업체가 제작한 컴퓨터를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다이렉트 판매’ 방식을 도입했다. 기존의 PC 판매는 생산자 중심의 관점에서 고객의 새로운 요구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 없이 생산하고 중간유통을 거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델은 이러한 방식을 뛰어넘어 고객과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PC를 파악하고 맞춤형 PC를 직접 판매하는 모델을 창조한 것이다. 그 결과 1994년부터 7년간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 37%를 기록하며 2001년에 세계 시장 1위의 사업자로 등극했다.2004년에 델은 42조 6천억 원의 매출과 3조 5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 AT 커니, 매일경제 Creative Korea 팀, ‘창조혁명 보고서´ (나) 인간이 자연 그대로의 자원에서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고 그것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자원’이라고 불릴 만한 것은 없다. 경제적 가치가 생기기 전까지는 모든 식물은 식물 그 자체이고, 모든 광석은 돌덩어리 일 뿐이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땅에서 스며 나오는 원유도, 알루미늄 원광인 보크사이트도 자원이 아니었다. 귀찮은 존재로서 토양을 망치기만 했다. 페니실린 곰팡이도 한때는 자원이 아니라 병균일 뿐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 영국의 미생물학자인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 곰팡이 ‘병균’이야말로 세균학자들이 찾던, 바로 그 박테리아를 죽이는 물질임을 확인함으로써 페니실린 곰팡이는 가치 있는 자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부를 창출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혁신인 것처럼 기존 자원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높여 더 많은 부를 창출하도록 하는 활동도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J.B. 세이는 “기업가는 경제적 자원을 생산성과 수익성이 낮은 곳으로부터 좀 더 높은 곳으로 이동시킨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혁신은 ‘자원의 생산성을 높이는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혁신은 기업가정신의 구체적인 기능인 것이다. 똑같은 자원을 투입하고도 더 많은 양을 산출할 수 있는 활동이 곧 혁신이라는 뜻으로 공급측면에서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에 적합한 구체적 사례를 들어보면, 제철산업의 경우 종합제철공장에서 미니밀(mini-mill: 전기로)로 이동한 것은 공급측면에서의 혁신이다. 미니밀은 철광석을 녹이는 용광로 설비가 필요 없다. 고철을 녹여 철강 빔이나 철근 같은 소비제품을 만들어낸다. 최종 제품도, 용도도, 고객도 똑같다. 그러나 생산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추었기 때문에, 즉 같은 자원을 투입하고도 더 많은 양을 산출할 수 있도록 한 혁신인 것이다. 한편 혁신을 수요측면을 강조해 정의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혁신은 소비자들이 이제까지 느껴온 가치와 만족에 변화를 일으키는 활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아이포드(i-Pod) 또는 디지털 카메라는 기술혁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와 만족도를 높인 혁신사례라고 할 수 있다. 헨리 루스가 1920년대에 ‘타임´,‘라이프´,‘포천´ 등을 창간하여 보여준 사회적 혁신이나,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에 개발된 머니마켓펀드(money market fund), 유니버설보험상품(universal life insurance product) 같은 금융상품의 성공적 혁신도 공급측면보다는 가치와 만족도라는 측면에서 훨씬 설명하기 쉽다. ― 피터 드러커,‘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혁신‘ ●인문 문항 2: 30%,500~600자 다음 두 제시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태도 또는 사유방식을 추출하고, 그것이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술하라. (가)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말했다.“위(魏)나라 왕이 나에게 큰 박씨를 하나 보내주므로 이것을 심었더니 닷 섬짜리 박이 열렸네. 그 속에다 장을 채워 두었더니 들 수가 없었네. 다시 두 쪽으로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으나 너무 넓어서 쓸 수가 있어야지. 텅 비어 크기는 했지만 나는 아무 소용없어 그것을 부수어버렸네.”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자네는 참으로 큰 것을 쓸 줄 모르는군.…중략… 지금 자네는 닷 섬짜리 바가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그것으로 큰 통을 만들어 강호(江湖)에 띄울 것을 생각지 못하고, 그것이 넓어서 쓸데가 없다고만 근심하는가? 자네야말로 아직도 몹시 옹졸한 생각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군.” 혜자는 장자에게 말했다.“우리 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나무라 부르네. 그 밑동은 혹투성이라 먹줄을 댈 수가 없고, 그 작은 가지들도 꼬불꼬불해서 자에 맞지를 않네. 그것이 길가에 서 있으나 목수가 돌아보지도 않네. 지금 자네의 말은 이 나무와 같아 커도 소용이 없네. 따라서 여러 사람들이 돌보지도 않을 것일세.”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중략… 자네는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쓸데가 없는 것을 걱정하지만, 왜 그것을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인 광막한 들에다 심어 놓고 그 곁을 방황하면서 무위(無爲)로 날을 보내고 소요하다가 그 밑에 드러눕지를 않는가? 그러면 그 나무는 도끼에 베어지지도 않을 것이고 아무에게도 해를 입을 염려가 없네. 쓰일 데가 없으니 또 무슨 괴로움이 있겠는가?” ― ‘장자´ (나) 선귤자(蟬橘子)에게 예덕선생(穢德先生)이라 부르는 벗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마을 안의 똥을 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지냈다. 선귤자의 제자가 자기 스승이 그 비천한 막일꾼의 덕을 칭송하여 선생이라 부르는 동시에 장차 그와 교분을 맺고 벗하기를 청하려고 하자, 제자로서 부끄러워 그의 문하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선귤자가 말했다.“앉아라. 내가 너에게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해 말해주마.…중략… 모든 사람들이 엄씨의 똥을 가져다 써야 땅이 비옥해지고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다네. 하지만 그는 아침에 밥 한 사발이면 의기가 흡족해지고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한 사발 먹을 뿐이지. 남들이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였더니 목구멍에 넘어가면 푸성귀나 고기나 배를 채우기는 마찬가지인데 맛을 따져 무엇하겠느냐고 대꾸하고, 반반한 옷이나 좀 입으라고 권하였더니 넓은 소매를 입으면 몸에 익숙하지 않고 새 옷을 입으면 더러운 흙을 짊어질 수 없다고 하더군.…중략… 엄행수는 지저분한 똥을 날라다 주고 먹고살고 있으니 지극히 불결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가 먹고사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지극히 지저분하지만 의리를 지키는 점에 있어서는 지극히 높다 할 것이니, 그 뜻을 미루어보면 비록 만종의 녹을 준다 해도 그가 어떻게 처신할는지는 알 만하다네.…중략… 선비로서 곤궁하게 산다고 하여 얼굴에까지 그 티를 나타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요, 출세했다 하여 몸짓에까지 나타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니, 엄행수와 비교하여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는 거의 드물 걸세. 그래서 나는 엄행수에 대하여 스승으로 모신다고 한 것이네. 어찌 감히 벗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엄행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예덕선생이라 부르는 것일세.” ― 박지원,‘예덕선생전´ ●다음주에는 ‘주제별 강의 및 첨삭4’ 강의가 이어집니다.
  • 선행 검사들 ‘인사 특전’

    법무부는 15일 부부장급 이하 평검사 502명에 대한 승진·전보, 신규 임용 인사를 23일자로 단행했다. 부부장 승진 및 전보 58명, 일반검사 전보 328명, 신규 검사 임용 92명 등이다. 법무부는 근속 기간에 따른 순환 교류를 통해 검찰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능력과 실적이 탁월하거나 서민들의 억울한 사정을 자상하게 듣고 무고하게 모함당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한 검사를 최대한 발탁해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의 병든 노모 등에게 동사무소를 통해 경제적 도움을 준 청주지검 정연헌(39)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에 배치됐다.법을 몰라 법원에 항소취하서를 제출해 징역 6월의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피고인을 도와준 수원지검 정희도(41) 검사도 서울중앙지검에 발탁됐다. 또 절도 혐의를 받는 14살 소년을 매월 검사실에서 만나는 등 후견인이 되어준 대구지검 김연실(32·여) 검사는 본인의 의견대로 부산지검으로 발령받았다. 법무부는 검사 부부나 판·검사 부부들이 순환근무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출산·양육·부모봉양 등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고 보고 이번 인사 대상자 16쌍이 가급적 인접한 곳에서 근무하도록 했다.반면 부적절한 언행과 처신으로 품위를 손상하거나 사건 처리 및 업무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검사에게는 불이익을 줬다. 또 앞으로 검사 적격심사 제도를 강화해 부적합한 검사는 조기 퇴출시키기로 했다. 한편 제이유사건과 관련, 허위진술 강요의혹으로 춘천지검으로 전보 조치됐던 백용하 검사는 창원지검으로 재발령났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인사내용 29면
  • [열린세상] 제3후보,밥상을 기다리지 말라/김종배 시사평론가

    고민스럽게 됐다. 작심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처신을 수동태에서 능동태로, 위치를 ‘통합 대상’에서 ‘통합 중심’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여권 구도가 얼추 정리돼 간다. 혼란상을 거듭하던 열린우리당이 지난 14일 전당대회를 열어 대통합 신당 추진을 결의했다. 김한길, 강봉균 의원이 주도하는 ‘실용 탈당파’도 자신들의 원내교섭단체 명칭을 ‘중도개혁 통합신당 추진모임’으로 정했다. 천정배 의원이 주도하는 ‘개혁 탈당파’도 ‘민생 정치’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가 영입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외부 인사, 제3후보가 ‘등쌀’에 시달리는 건 불가피하다. 통합의 중심에 서 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당사자들의 태도는 느긋하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연말까지는 한참 남았다.”고 했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달다 쓰다 말이 없다. 얼핏 봐서는 당연한 처신 같다. 여권이 3분 구도로 정리돼 가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도기적 질서다. 대선 막판에 다시 합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판에 섣불리 나서서 위험등급을 올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니다.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잔류파가 탈당파를 향해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특정 의원의 과거 처신까지 들춰내는 정도다. 감정이 쌓여가고 있다. 통합 주도권을 놓고 경쟁이 격화되면 감정의 골은 더 벌어진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외부 인사, 제3후보는 ‘단일 추대’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과도기적 질서가 재정립된다 해도 범탈당파와 범잔류파의 양분 구도를 극복하긴 어렵다. 때마침 열린우리당의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통합’이 아니라 ‘선거 연합’을 거론하고 나섰다.‘똑같이’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 가자는 말이다.‘따로 또 같이’ 구도가 짜이면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어부지리를 노리면서 계속 살피기만 하다가는 누구처럼 좌고우면한다는 비난을 사면서 고립될 수 있다. 도리도 아니다. 최종 선택권은 탈당파나 잔류파가 아니라 국민이 갖고 있다. 국민에게 이미지가 아니라 실체를 보여주는 건 도리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실용 탈당파’의 일원인 이강래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을 평한 바 있다.“훌륭한 후보감이었지만 훌륭한 대통령감은 아니었다.”면서 15가지 잘못을 나열했다. 잦은 말실수, 코드인사,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 고집, 오만, 독선, 정책의 일관성 부족 등이다. 대개가 정책 역량이 아니라 정치 역량이다. 국민도 훌륭한 대통령을 뽑고 싶다. 그래서 정책 역량 못잖게 정치 역량을 검증하고 싶다. 말실수는 안 하는지, 고집, 오만, 독선은 보이지 않는지, 일관된 정책 집행 역량이 있는지를 재고 싶다. 쉬운 과정이 아니다. 행정의 달인이라던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치권 밖에서 맴맴 돌다가 대선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서너 달 만의 일이다.‘정치 달인’이 정치 역량 부족을 질타당하고,‘행정 달인’이 정치적 도전에 무릎 꿇는 게 작금의 정치판이요 대선판이다. 어부지리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픈 프라이머리에 나서서 검증 받는 절차가 있지 않으냐고 하지만 ‘특수한 승부’에서 이기는 것과 ‘일상적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르다. 전자의 경우엔 앞만 보고 가면서 상대를 내치면 되지만 후자는 전후좌우를 두루 살피면서 모두를 안아야 한다. 양반 다리하고 앉아 밥상 들어오기를 기다릴 때가 아니다. 직접 나서서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다. 대선에 나설 마음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하는 게 도리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 “日사과 안하면 직접 가서 설득”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지 않는다면 내가 일본으로 날아가 의원들과 토론을 벌이겠습니다.” 일본 정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사실을 사과하라는 내용의 촉구 결의안을 제출한 미국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 의원은 8일(현지시간) 전화 회견을 통해 “동료 의원 대부분이 결의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오는 3월 말까지는 위안부 결의안이 본회의에서 채택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의 본회의 상정권을 쥐고 있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개인적으로 결의안을 지지할 뿐 아니라 과거 제출됐던 결의안에 공동서명한 일도 있다.”고 전했다. ●日정부 ‘반대 로비´ 공식 진행중 일본계 3세인 그는 결의안 제출 취지를 묻는 질문에 “10년 전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 위안부 할머니들이 점점 연로해지고 돌아가시기 시작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이제는 정리가 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이미 사과했고 보상도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혼다 의원은 “일본 정부가 진정한 사과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진정한 사과를 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잘못에 대해 화해하는 것은 아무리 늦어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면서 “그것은 일본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가 해야 할 아주 성숙한 일”이라고 말했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이 하원을 통과해도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내 자신이 기꺼이 일본에 가서 의원들과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면서 “우리는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나 과거의 실책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압도적 지지로 결의안 통과될 것 일본측의 결의안 반대 로비와 관련해서는 “일본이 매우 공식적인 로비를 통해 일본측 입장을 의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면서 “일부 의원은 일본측의 반대 논리와 같은 우려를 갖고 있으나, 전체적으론 초당적으로 결의안을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위안부 결의안과 관련해 일본계 미국인들로부터는 어떤 반응이 있느냐는 질문에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지해주는 이들도 있다.”면서 “21세기는 화해의 시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미·일 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일본측 논리에 대해 “정의를 확립하지 않고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없다.”면서 “일본같은 민주주의 국가라면 인정할 것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처신”이라고 강조했다. 또 일본의 사과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이 화해하면 미래에 더 강한 양자 및 다자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며 “흉터 조직이 다른 조직보다 강한 것처럼 일본의 사과를 통한 화해가 미·일간은 물론 동북아 3국간에 훨씬 강한 유대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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