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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사이 UFO 다녀갔나?

    경북 봉화군 소천면의 일월산 장군봉 일대 산등성이 하나가 갑자기 땅속으로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 산림당국이 원인 구명에 나섰다. 24일 남부지방 산림관리청 영주국유림관리소에 따르면 일월산 장군봉의 능성 하단이 한달전부터 사라진 것을 송이를 채취하러 갔던 주민이 발견하고 최근 당국에 신고했다. 영주국유림관리소는 “함몰은 지난달 25일 전후해 일어난 것으로 보이며 산 아래가 지름 20∼40m, 깊이 30m 규모로 타원형으로 움푹 꺼졌다.”고 말했다. 마을주민 최모(59·여)씨는 “지난 5일 송이를 채취하러 갔다가 비스듬한 능선을 따라 토사와 수목이 땅속으로 사라진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국유림관리소 관계자는 “함몰지역은 일제 때부터 광산이었으나 수년전 폐광된 점으로 미뤄 함몰 원인이 갱 때문이거나 일시에 상당한 규모로 내려앉았다는 점에서 천연동굴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산림당국은 함몰지점 주변에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인근 공업소와 지질탐사반 등 전문기관의 협조를 받아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봉화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1)양양 동해신묘와 연어잡이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1)양양 동해신묘와 연어잡이

    지극히 좁은 곳에서 산과 바다와 강을 두루 만나는 곳을 고르라면, 서슴없이 양양을 꼽을 만하다. 가을빛이 짙어져 설악산 정상에서부터 단풍이 하산을 시작할 무렵이면 솔냄새 자욱한 산중보배(山中寶貝) 송이가 고개를 내밀어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송이는 영물이어서 아무 산에나 나지 않는다. 단풍이 져서 남대천에 잎을 떨구면 동해에는 본격적으로 연어가 올라온다. 계절의 신호는 분명한 것이어서 한 치의 어김이 없다. 송이와 연어가 자연의 순리를 따라서 순회한다면, 남대천변의 동해신묘에는 동해신이 주석하고 있다. 서울에서 정동(正東) 방향인 정동진이 드라마 ‘모래시계’ 때문에 급작스럽게 각광을 받았던데 비해 정작 동해의 중심인 동해신묘(東海神廟)는 아는 이조차 드물다. 역사교육 부재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해신(海神) 포세이돈 신전에는 뜨거운 감동을 표하는 한국인들이 정작 자신의 조상들이 모시던 동해신묘에는 무감각하니 그 얼마나 자괴스러운 일인가. 그렇듯 자신의 것을 챙길 줄 모르니 일본이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로 명명하고 전세계에 홍보하는 일까지 벌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동해의 문화 상징물 1호 양양 남대천변에 동해신묘의 잔흔이 있다. 건물을 복원하여 명색이나마 구비하여 놓았다. 십여년 전에는 허물어진 터전에 부서진 비석 하나만 달랑 서있던 곳이다. 강원도 양양의 동해신사(東海神祠), 황해도 풍천의 서해신사(西海神祠), 나주(지금의 영암)의 남해신사(南海神祠), 그리고 바다가 없어 해신을 모실 수 없는 북쪽에는 강신(江神)으로 함북 경원의 두만강신사, 평북 의주의 압록강사를 모셨다. 남한에는 동해묘와 남해신사 둘뿐인데, 남해신사는 장소가 불명확한 반면 동해묘는 비석이 남아 있어 터전이 확인이 되는 남한땅의 유일한 곳. 읍치 단위나 개별적으로 용신, 해신 등에 제사지내는 신사 굿당 등은 즐비하지만 국가 제사터는 매우 드물기에 이곳이 더욱 각별하다. 동해의 문화적 상징물 1호는 두 말할 것 없이 바로 양양의 동해신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길 ‘동해신사’에서 춘추로 제사 지낸다고 하였고,‘여지도서’에는 ‘동해묘’가 정전 6간에 신문 3간, 전사청 2간, 동서재 각 2간 등 대단히 큰 규모였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일찍이 고려사에도 동해신사가 양주(襄州)에 있다고 하였다. 양주는 오늘날의 양양군이니 동해신묘는 최소한 고려시대의 중사(中祠)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국가에서는 강향사(降香使)를 보내 국가에서 내린 향으로 제를 올리게 하였다. 향을 사르면서 국가적인 운명을 걸고 동해 용왕에게 신탁의 말을 듣듯 장엄한 제례를 봉행하였다. 해신에게 국태민안과 풍농·풍어를 기원하고, 큰 격변이 있을 때마다 신의 노여움을 달랬다. 경종2년(1722)과 영조28년(1752)에 양양부사 채팽윤과 이성억에 의해 각각 중수되었으며, 정조24년(1800)에 어사 권준과 강원도관찰사 남공철의 주장으로 재차 중수되었다. 중수 당시인 1800년에 남공철이 지은 ‘동해신묘중수기사비’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비문에는 바다와 왕이 동급(海輿王公同位)이라고 하였으며,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것에 물보다 더함이 없다고 하였다. 담장이 쇠락하고 민가가 제당 가까이 들어차 있어 닭과 개소리가 들리지 않게끔 하여 산천제사를 엄숙하고 공경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서울에서 향과 축을 보내어 제를 모시니, 백성들은 해신 보기를 부모와 같이 한다고도 하였다. 동해신묘에 철퇴가 가해진 것은 일제 통감부 시절인 순종2년(1908년) 12월 26일. 명을 받은 최종락 양양군수가 훼철에 나섰으니, 그가 갑자기 죽은 것은 동해신의 노여움 때문이란 전설도 전해진다. 제사(祭祀)와 건물은 사라졌으나 양양의 민중은 여전히 ‘성전터’라 부르고, 신전 일대의 소나무를 ‘동해금송란’이라 하여 일체 손대지 않았다. 국가제사의 단절과 무관하게 민중의 삶 속에서 장기지속적으로 신성성이 이어졌다는 증거이다. ●신묘 부순 군수 갑자기 숨져 훼철 당시에 동해신묘중수기사비는 동강나 개인집에 보관되어 오다가 근년에 제자리를 찾았다. 동해신묘 폐지는 당연히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기 위한 일제의 전략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동해 명칭이 문제가 되고 있는 작금의 실정에서 동해신묘는 동해를 고유명사를 사용한 국가적 신전의 역사적 증거물로 내세울 만하다. 현재의 동해신묘 앞에는 현대식 콘도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동해신묘 원형 복원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파괴되는 현실을 가슴아파 하는 고경재 양양문화원장은 지형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지금 보는 풍경은 전혀 옛모습이 아니지요. 현재 콘도가 들어찬 동해에서 신전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둥글게 에워쌌습니다. 이곳은 개(바닷가)인지라 글자 그대로 모래를 쌓아서 인공으로 조성한 조산에 신전을 세우고 둘레에는 해자처럼 바닷물을 돌게 하였지요. 장관이었습니다.” 지명도 조산동이다. 규장각에 있는 옛지도에서 신묘를 둥글게 굽이도는 바닷물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 양양시내까지도 바닷물이 들어 왔으니 바뀌어도 엄청 바뀌었다. 동해 바닷물이 넘실대는 신묘가 전승되었다면 동해안 최고의 명소가 되었음직하다. 말하자면 국가적 해상신전이었던 셈인데 문화재청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동해신묘에서 굽어보이는 지근거리가 남대천 하구다. 낙산대교에서 바라보면 바다와 강이 만나는 모래톱이 푸른색과 흰색으로 묘한 대조를 이룬다. 모래톱에서 한창 연어를 낚고 있다. 남대천에는 지금 연어떼가 올라오고 있다. 멀리 태평양을 돌고돌아 험난한 여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연어의 모천회귀는 너무도 많은 이들이 노래한지라 재론이 불필요할 것이다. 올해에도 10월23일부터 어김없이 연어축제가 열려 호기심을 자아낸다. 동해신묘에서 다리를 건너 연어연구의 메카인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의 연어연구센터를 찾았다. 연구센터의 주 임무는 치어방류. 양양 남대천 앞바다는 물론이고 DMZ 남강에까지 방류, 연어를 통한 통일문화 형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연어는 왕연어 홍연어 은연어 곱사연어 시마연어 등 종류도 다양한데, 우리나라에 회유하는 연어는 아시아 전역과 서부 베링해에 분포하는 아시아계군(Chum salmon)이다. 방류된 치어는 북해도를 거쳐 베링해와 북태평양에서 성장한 뒤 회유해 2∼5년 후에 동해안으로 되돌아와 산란한 뒤 생을 마친다. 연구센터에서는 고성의 명파천으로부터 북천 남대천 연곡천과 남해안의 남강 섬진강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서 어미 포획과 치어 방류사업을 펴고 있다. 이채성 연어연구센터장은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들려준다.“송어와 산천어는 동일종입니다. 하천에만 머무는 놈이 산천어이고, 바다에 나갔다 오면 시마연어가 되지요. 먼 바다를 순회하고 돌아오는 놈은 대부분 암컷인데 강으로 되돌아와서 산천어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다른 놈은 암수가 같이 바다로 나갔다 오는데 유독 시마연어만은 암컷 홀로 회유에 나선다. 이 문제는 일제시대에 수산시험장에서 15년간 어류양식의 초석을 닦은 우치다(內田惠太郞)가 가장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산천어와 연어의 논란 많은 논쟁을 종식시킬 만한 연구 성과다. 서유구의 ‘전어지’에 ‘송어는 주로 동북의 강과 바다에서 나는데, 생긴 모양이 연어와 비슷하며 살이 많고 맛도 일품’이라고 적은 기록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순간이다. ●연어는 선사인들도 즐겨 먹어 붉은 색으로 변한 하천 연어는 맛이 없다. 산란으로 기력이 쇠진한 상태이기 때문. 반면에 은빛의 바다연어는 맛이 좋아 먹을거리로 이용되는 연어는 대부분 정치망으로 잡아올린 것들이다. 수온변화 등으로 회귀량도 당연히 줄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치어방류량을 늘리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닐성 싶다. 국립수산과학관 수자원관리조성센터의 정달상 박사는 어란을 소수의 샘플에서만 채취해 치어를 만듦으로써 빚어지는 ‘연어 근친상간’의 생태적 비극을 경고한다. 돌아오는 연어의 양도 중요하지만, 부모-자식, 언니-동생 같이 같은 종의 ‘인공연어’만이 지배하고, 실제의 자연연어는 내몰려 결국 종다양성이 깨지고 마는 문제까지 예상해야 하는 문제 아니겠는가. 바다에 신이 있다면, 해신의 ‘보이지 않는 손길’은 바로 이러한 종다양성까지 지켜보고 관장하는 것이 아닐까. 연어는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선호한 어류였다. 남대천변에는 이른바 오산리유적이라는 선사시대의 중요한 유적이자 생태환경의 보고인 쌍호가 있다. 이곳에서는 엄청난 선사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 커다란 낚시바늘이 눈에 띈다. 석호(潟湖,lagoon) 인근에서 살던 선사인들이 연어 등을 낚는데 쓰였으리라. 그네들은 연어를 날로 먹고, 구워 먹고, 말려서 갈무리해 두었다가 먹기도 했을 것이다. 오산리 포구를 찾아가니 선사 이후 수천년 뒤의 후예들도 해풍에 연어를 말리느라 정신들이 없다. 북미 인디언들의 연어잡이와 흡사한 삶이 한반도에서도 지금껏 이어지고 있으니, 남대천변의 해양문화적인 삶은 국제 공통문화의 또다른 사례 아닌가. 더 나아가 쌍호의 선사문화가 암시하는 석호의 해양문화적 중요성에 더해 남대천의 연어를 굽어보는 동해신묘까지 있으니, 해중보배(海中寶貝)의 땅이 바로 남대천변의 기수대가 아닐까 싶다.
  • 고덕 한강둔치·청계산 원터골…생태계 보전지역 추가 지정

    서울시는 고덕동 한강둔치와 서초구 청계산 원터골 낙엽활엽수 군락지를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추가 지정한다고 20일 고시했다. 보전지역은 고덕동 10만 5609㎡(3만 2000평), 원터골 14만 6281㎡(4만 4328평)이다. 이에 따라 두 지역에는 자유로운 출입이 제한되며 야생 동식물을 포획하거나 채취, 이식, 훼손하거나, 고사시킬 경우 처벌을 받는다. ●말똥가리·왜가리등 물새서식지 고덕동 한강둔치는 콘크리트 블록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자연형 호안으로 도루박이, 골풀, 참나리 등 다양한 자생종들이 번성해 서울시계 한강 가운데 밤섬과 함께 자연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말똥가리나 왜가리, 쇠오리 등 각종 물새가 서식하는 등 생물다양성도 높은 곳으로 추정됐다. ●피나무·다릅나무등 희소성군집 형성 청계산 원터골 낙엽활엽수 군락지는 돌이 많은 지역으로 물을 좋아하는 갈참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피나무, 다릅나무 등도 분포하고 있는 희소성이 큰 군집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시는 앞서 한강 밤섬과 둔촌동, 방이동, 탄천, 진관내동, 암사동 등 6개 지역 184만 5684㎡를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단풍여행-남설악 곰배령

    단풍여행-남설악 곰배령

    10월의 곰배령을 오르려면 두 번의 멀미를 겪는다.첫번째는 뱀 똬리처럼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을 오르는 차안에서의 차멀미요,두번째는 마치 계곡에 불을 놓은 듯 타오르는 단풍멀미다. 곰배령(1100m)은 흔히 남설악으로 불리는 강원도 인제 점봉산(1424m)의 남쪽자락에 있다.곰배령까지 오르는 계곡길은 단풍이 가장 빨리 들면서 빨강·노랑이 섞인 오색단풍이 곱기로 유명한 곳.진동계곡을 거쳐 강선골을 따라 이어지는 이 코스는 태고의 신비가 느껴질 만큼 청정하다. 단풍철마다 인파에 치이는 한계령쪽과 달리 인적 드문 호젓한 계곡을 오르며 여유롭게 단풍을 즐길 수 있다.표고차가 낮고 등산로가 거의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완만해 노약자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에도 안성맞춤이다. 등산 기점은 일명 설피밭으로 불리는 오지마을.겨울에 눈이 워낙 많이 쌓여 나무를 넓적하게 엮은 설피를 신고 다닌다고 해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최근 이곳까지 난 도로가 깨끗이 포장돼 접근이 한결 쉬워졌다.그래도 기린면 소재지인 현리에서 차로 족히 40분은 걸린다. 진동계곡을 가로지르는 방태천 상류에선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 공사가 진행중이다.그러다 보니 가끔씩 트럭이 오가며 일으키는 먼지가 오지마을의 청정분위기를 해친다.도로 포장에다 댐 건설까지.이래저래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이곳도 머지않아 그렇고 그런 단풍유원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진동계곡 끄트머리에 있는 설피산장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해발 800m 지점인 이곳에서 직진해 단목령을 지나면 양양땅,죄회전해 곰배령을 넘으면 인제 현리다.차를 공터 한쪽에 세워놓고 왼쪽 오솔길을 택했다.강선골로 이어지는 길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활엽수중 7할은 단풍나무다.등산로 왼쪽으로 흐르는 계류소리가 청아하다.지금부터 적어도 달포간은 이렇게 쉼없이 노랗고 붉게 물든 가을을 계곡 아래로 실어나를 것이다. 30분쯤 올라가자 계곡이 펑퍼짐하게 열리며 드문드문 인가가 나타난다.오지중의 오지,강선마을이다.예전엔 화전을 일구던 이들이 지금은 곰취 등을 재배하며 산다고 한다. 그중 일부는 집은 없고 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약삭빠른 외지인이 매입해 펜션이라도 지으려는지,터닦기 공사 흔적이 뚜렷하다. 마지막 집인 암자를 지나자 계곡이 다시 좁아지며 가을의 향기에 휩싸인다.자그마한 폭포와 담,소가 이어지는 강선골은 계류 주변으로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전나무와 활엽수들이 적절히 어우러져 한층 운치를 자아낸다. 이따금씩 쓰러진 고목이 길을 가로막는다.고목을 덮은 새파란 이끼들이 붉디 붉은 단풍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숲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계류에 반사되고,그 빛은 다시 노랑·빨강 단풍에 반사돼 보석처럼 반짝인다. 여기까지는 거의 외길이지만 이후로 갈래길이 몇번 나타난다.인근 주민들이 약초 채취를 위해 다닌 길이지만 곰배령으로 이어지는 길이 워낙 뚜렷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곰배령에 닿기 전 20분 정도는 경사가 약간 가파르기는 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전나무 등 큼직한 나무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사람 키에도 못미치는 잡목만 무성하다.이어 그마저 사라지고,너른 들판에 잡풀만 가득 깔린 초원이 나타난다.곰배령 정상이다. 능선마루의 초원은 4월부터 8월까지 갖가지 야생화들이 깔려 ‘한국 야생화의 보고’로 불리는 곳이지만 지금은 모두 져 썰렁하다.그러나 발 아래 사방으로 펼쳐진 조망이 일품이다.북동쪽 오색 건너편에 우뚝 솟은 대청봉엔 새하얀 구름이 걸려 있고,북쪽 정면에 작은 점봉산(1293m)이 동네 뒷동산처럼 가깝다.보이지는 않지만 작은 점봉산 뒤로 점봉산이 있고,그 뒤로 한계령이 이어진다. 설피산장부터 곰배령 정상까지는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왕복 3시간 30분쯤 잡으면 된다. ●가는 길 수도권에서 가려면 44번 국도를 타고 양평,홍천을 거쳐 인제에서 우회전해 31번 국도를 탄다.기린면 소재지인 현리를 지나자마자 좌회전해 418번 도로로 갈아탄다.굴곡이 심한 고갯길을 서너번 넘으면 널따란 들판이 나오는데,이곳이 쇠나드리다.여기서 4㎞쯤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왼쪽길로 가면 진동분교,설피산장으로 이어진다.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현리까지 직행버스가 1일 12회,현리에서 방동리까지 하루 7회 버스가 운행된다. ●숙박,맛집 방동리에서 진동리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방태산 자연휴양림(033-461-8590) 가는 길이 나온다.이곳의 통나무집이 묵을만 하다.또 진동계곡 주변으로 ‘언덕위에 하얀집’(463-2161),‘갈터민박’(463-1029) 등 민박집이 10여곳 있다.인제군청 관광과(460-2366)에 문의하면 민박정보를 서비스받을 수 있다. 현리에서 좌회전해 진동리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고향집’(461-7391)이란 식당이 나온다.두부 전문집이다.두부부터 나물,장아찌 등 밑반찬 하나까지 모두 직접 재배하는 것만 재료로 쓴다. 두부는 매일 새벽 그날 쓸 만큼만 만든다.두부전골,두부구이,손두부 등이 주요 메뉴인데,전골과 두부구이가 특히 맛있다.두 가지를 모두 시키니 먼저 들기름을 두른 불판에 두껍게 썬 두부를 얹어 낸다.가스불을 켜자 이내 두부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노랗게 익는다.두부가 얼마나 고소하고 부드러운지 입안에서 목구멍으로 절로 녹아드는 듯하다. 특이한 것은 전골에도 들기름을 넣는 것.고소함이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 시원함까지 느껴진다.전골과 두부구이 각각 5000원. ●여행상품 국토문화회(02-953-1313) 등 몇몇 답사단체들이 곰배령 단풍 상품을 운영한다.곰배령 트레킹,쇠나드리 억새 산책,방동약수,점심식사를 포함 해 4만 3000원. ■ 이곳도 가보세요 ●쇠나드리,양양수력발전소 차를 타고 진동리에 들어서 설피밭쪽으로 올라가다보면 광활한 억새밭이 나타난다.쇠나드리다.바람이 워낙 거칠어 한겨울에도 눈이 쌓이지 않는다고 하니,위쪽의 설피밭과는 대조적이다.바람의 등살을 이기지 못한 잡목들은 키가 자라지 못해 난쟁이 같고,방향도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이곳엔 억새뿐 아니라 갈대도 많다.아직 억새와 갈대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쇠나들이에 한번 와보라.하얗게 핀 억새가 예쁘게 보송보송한 아기의 솜털 같다면 갈대는 시커멓게 자라 엉킨 더벅머리쯤 될 것이다. 억새와 갈대가 핀 들판은 수만평에 달하지만 설피밭 방향으로 길 왼쪽에 특히 많다.거센 바람이 불 때마다 절반쯤은 누웠다 일어나는 모습이 마치 해변에서 파도가 겹겹이 하얀 거품을 쓰고 몰려드는 것 같다. ‘쇠나드리’란 마을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마을에 원래 다리가 세 개 있어 ‘세나드리’라고 불리다가 차츰 쇠나드리로 바뀌었다고 한다.억새는 소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다.그래서 예전엔 이 마을에 소가 수백마리에 달했다고 한다. 진동계곡을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골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 공사에 들어갈 재료다.양양 양수발전소는 양양군 서면 영덕리 하부댐과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상부댐을 연결해 전기를 생산하는 대형수력발전소.상부댐의 물을 산중턱을 뚫어 만든 수로를 통해 하부댐으로 흘려보내며 전기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25만 용량의 발전기 4대를 돌려 하루 평균 100만의 전기를 생산하게 되는데,현재 공정률이 70% 넘어 오는 2006년 6월 완공될 예정이다. ●방동약수 방태산휴양림쪽으로 가다보면 방동약수 입구가 나온다.차를 세워두고 이정표를 따라 100m쯤 가니 약수터가 있다. 이 약수는 1670년 심마니에 의해 발견됐다고 한다.수령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고목인 엄나무 뿌리 아래서 약수가 나온다.엄나무 껍질은 허리병에 좋다는 민간약재.그 뿌리 밑에서 샘이 나니 신비한 느낌마저 든다. 방동약수는 무색투명한 광천수로 다른 곳보다 쏘는 맛이 강하다.탄산과 철,불소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위장병 및 신경쇠약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여름엔 더위 먹은 데 좋다고 찾는 이들이 많다.철분 성분 때문에 밥을 지으면 푸른색을 띤다. 약수터 바로 밑에 ‘방동약수산장’(033-463-0488)이 있다.민박도 치고 음식도 판다.약수로 지은 밥에 산나물 반찬을 곁들인 ‘약수백반’이 별미다.5000원.
  • 반월공단 악취단속 겉돈다

    경기도 반월·시화공단 인근 주민들이 수년째 악취공해에 시달리고 있으나 올들어 단속 실적은 1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12일 도가 열린우리당 제종길의원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도는 올해 반월·시화공단내 7485개소를 대상으로 악취단속에 나섰으나 행정처분을 받은 업체는 단 1곳에 불과했다.제 의원은 “그동안 공단내 전체 사업장 가운데 316개소의 악취배출업체를 중심으로 시료를 채취했으나 악취발생업체로 판정돼 행정처분을 받은 업체는 반월공단내 P업체 1곳뿐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악취측정 항목인 8개 물질 가운데 아세트알데히드와 트리메틸아민 등 2개 물질의 경우는 장비가 없어 측정이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단속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시료채취 방법 및 기술 등 교육실적이 단 한건도 없는 등 단속반의 전문성도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 의원측은 “악취발생의 경우 신속하게 시료를 채취·측정해야만 제대로 된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데 장비 및 전문성 부족 등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시료 측정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도 보건환경연구원의 공단 대기팀 인력도 6명에 불과해 반월·시화공단 등 도내 11개 산업단지를 관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2월 시행 예정인 한층 강화된 ‘악취방지법’에서는 악취기준물질 12개 항목의 측정장비를 갖추도록 하고 있으나 도의 늑장 대처로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해 악취판정업무의 공백이 우려된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웰빙 메모지

    웰빙 메모지

    ●㈜사라토가 H&B(www.saratoga.co.kr)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채취한 자연산 상황버섯 수입판매를 시작했다.세계 2대 청정지역의 하나인 우즈베키스탄의 야생 뽕나무에서 채취한 순수 자연산을 2년 동안의 연구·분석 끝에 들여오는 것이다.문의 080-360-3311.
  • [구정 이삭]

    [구정 이삭]

    ●서울 송파구는 6일(수) 오전 10시 구보건소 3층 보건교육실에서 식품제조업소 및 식품위생관리인을 대상으로 ‘식품안전 및 위생수준 발전방향 세미나’를 개최한다.주제발표와 토론,현장견학 등이 진행된다.(02)410-3422.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는 6일(수) 오후 2∼4시 대신동 분회경로당에서 무료 순회진료를 실시한다.진료내용은 혈당·간이치매검사,건강상담 및 보건교육 등이다.(02)330-1823. ●서울 양천·성북·은평·강동구는 ‘가로수 은행열매 줍기행사’를 연다.행사에 참여하면 채취한 은행열매를 가져갈 수 있다.행사시간과 장소는 다음과 같다. ●서울 종로구는 8일(금) 오전 10시 30분 창신동 동부진료소 보건교육실에서 ‘당뇨인의 생활요법’ 강의를 개최한다.(02)731-0626. ●경기 과천시는 9일(토)까지 2005년도 사이버시정모니터 50명을 모집한다.15세 이상의 과천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응모신청서와 자기소개서를 직접 또는 우편으로 제출해야 한다.(02)3677-2485∼7. ●서울 광진구는 15일(금)까지 ‘제6회 아름다운 미소사진 공모전’에 참가할 작품을 모집한다.남녀노소 전국민 누구나 웃는 모습의 사진이면 출품가능하다.규격은 흑백,컬러 11″×14″이다.(02)450-1320. ●서울 서대문구는 16일(토)까지 “서대문구 여성백일장” 참가자를 모집한다.서대문구에 거주하는 18세이상 여성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시·수필 두 부문으로 나뉘어 개최된다.(02)330-1492∼3. ●서울 성북구는 17일(일) ‘가을맞이 농촌체험’에 참가할 초등학생 40명을 구 홈페이지(www.seongbuk.go.kr)를 통해 선착순 모집한다.경기 여주군 주록마을에서 밤줍기,허수아비 만들기,딱지 만들기,떡메치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참가비 무료.(02)920-3288. ●서울 강서구는 17일(일) 오전 10시 30분 구암공원에서 개최되는 “강서 주부백일장”의 참가신청을 받는다.참가부문은 시와 수필이다.선착순 250명.(02)2607-4233. ●서울 서초구는 31일(일)까지 서초구민을 대상으로 ‘제2회 서초문학상’작품을 모집한다.분량은 시는 5편까지,수필·평론은 1편(200자 원고지 15매),소설은 1편 (200자 원고지 70매)이며 주제에는 제한이 없다.우편 또는 방문접수.(02)570-6410.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는 만20세이상 관악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체력검사를 실시한다.5일(화) 오전11시,6일(수) 오후1시,7일(목) 오후1시 중 하루를 택해 서울대 체육관으로 가면 된다.사전에 전화로 신청해야 한다.(02)880-7617∼8.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25일(월)까지 인천소재 초·중·고등학생 및 인천시민을 대상으로 제1회 물 체험 글짓기 공모전을 실시한다.물과 관련한 시나 산문을 제출하면 된다.산문은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시는 분량제한이 없다.(032)870-9225.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6) 영원한 이상향,‘우산민국’ 울릉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6) 영원한 이상향,‘우산민국’ 울릉도

    조선 영조 연간에 대역사건이 터졌는데,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삼봉도가 동해 가운데 있으며,둘레가 심히 크고 사람도 많으나 예부터 나라의 교화를 벗어나 도망친 사람들이 만든 섬이다.빈한하고 미천한 자를 위하여 망명 역적인 황진기가 장군이 되어 정 진인을 모시고 울릉도에서 나오고 있다.청주와 문의가 먼저 함락되고,서울이 함락될 것이매,이씨 대신에 정씨가 들어서서 가난없고 귀천없는 새 세상을 만들 것이다.’ 이씨 왕조가 무너진다는 이런 내용의 유언비어는 괘서와 투서로 널리 퍼져서 당시 경기·충청도의 백성들을 동요시켰다.삼봉도는 이미 15세기 말인 성종 연간에도 운위된다.도망친 무리가 1000명이 넘게 살고 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토지가 비옥하고 풍요로우며,청명한 날이면 경흥에서 바라보이며 회령으로부터 동쪽으로 7주야를 가면 도달한다고 하였다. 조정에서는 수차례나 이 무리를 뿌리뽑으려고 노력했으나 뱃길이 험하고 위치도 불명확하여 실패한다.세금을 내지 않는 자유스러운 땅으로 회자되어 민심을 유혹하므로 그곳에 다녀왔다는 자는 극형에 처하여 백성들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삼봉도는 유토피아의 땅이니,실제의 울릉도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랴.성종실록에는 영흥 사람 김자주가 삼봉도를 발견한 대목이 나오는데,그는 아마 독도를 삼봉도로 간주한 듯하다.실존 여부와 무관하게 민중들에게 오랜 이상향으로 알려져 왔으며,그만큼 먹고 살기에 요족한 섬이 동해에 있다는 믿음의 증거다.오죽하면 고려 현종 9년(1018) 동북 여진이 먼 울릉도까지 침범했을까. ●3만 헤아리던 인구 8000명으로 줄어 “참으로 살 만한 곳이지요?”“무슨 말입니까? 먹고 살 길이 막막해요.”섬목선창에서 만난 어부에게 이상향 운운하는 고상한 말을 건넸더니 대뜸 막막하다는 대답이 되돌아온다.그 옛날 이상향의 지금 모습은 강파르기만 해 3만을 헤아리던 인구가 8000명으로 줄었다.오징어 흉년에다가 주업인 약초재배도 중국산이 범람해 막을 내리는 중이다. 이 땅의 역사 기록은 ‘이사부’로부터 시작된다.신라 22대 지증왕 13년(512)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정벌케 하였다.인심이 사나워서 무력으로는 항복시키기 어려우니 계책으로 항복케 하리라 하고 목우사자로 위협하여 굴복시킨 뒤 매년 신라 조정에 조공을 바치도록 했다.이 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우산국 우해왕(于海王)이 대마도 공주와 결혼했다는 전설이 현재까지 전승된다.울릉도와 대마도가 해상을 통해 상통하였다는 증거다.‘말을 잘 듣지 않는’ 우산국은 항복은 하였으되 반독립적 상태를 장기간 지속했음 직하다.학자에 따라서는 해상 강국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울릉도 ‘거주 금지’와 ‘육지 소환’은 육지로부터의 ‘독립성’을 중앙 통치권력에의 도전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울릉도 개척은 조선조 고종 19년(1882)의 개척령 반포에 이르러서야 공식 윤허된다.그렇다하여 개척령 이전에 잠행하는 도민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으리라.개척령이 가난한 이들에게 울릉도행 배를 타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동해안의 강원·경상도민뿐 아니라 멀리 전라·제주에서까지 들어왔다.지금도 곳곳에서 개척이란 단어를 많이 듣게되며,주민의 뿌리도 각양각색이다. “개척 당시,겨울을 지내면 식량이 바닥나곤 했지요.굶주림에 시달릴 때 눈 속에서 명이가 올라오는 거예요.그걸 캐다가 연명했대요.명(命)을 잇게 한다고 이런 이름이 붙은 나물입니다.” 저동항에서 작은 음식점을 경영하는 이정례(49)씨 식탁에도 틀림없이 이 명이가 올라온다.귀한 반찬이다.산마늘을 뜻하는 말로,울릉도 나리분지의 특산물이다.남획으로 줄어들기는 했으나 부지깽이 삼나물 고비 땅두릅 산마 더덕 미역취 도라지 등과 더불어 여전히 울릉도의 특산물에 속한다.도민의 대부분이 비탈밭에서 나물농사를 짓거나 자연채취로 생계를 꾸려갈 정도다. 섬이기는 하지만 어업 못지않게 농업이 중요하다는 증거다.사실 횟감보다도 산나물이 더 잘 알려져 있다.풍족한 비와 적설량,대마난류권의 따스한 연중 기온,제주 화산토와는 다른 강한 지력(地力) 등은 이곳을 산채 및 약초의 본향으로 만들었다.화산섬이란 특수한 자연 조건이 만든 결과이다. ●땅과 바다의 힘이 맞서 탄생한 화산섬 미국의 저명한 생태학자 레이철 카슨은 화산섬을 ‘지속적이며 격렬한 산고의 결과물’로서,‘창조하려 애쓰는 땅의 힘과 거기에 저항하는 바다의 힘이 맞선 결과로 탄생한다.’고 하였다.지금도 세계의 바다 속에서는 끊임없이 화산 폭발이 진행돼 섬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다.울릉도 역시 폭발 이후에 누적된 바다의 침식과 풍뇌우설의 공격으로 깎이고 다듬어져 오늘에 이르렀다.분화구였던 나리분지에는 물이 고이고 고여 기름진 토양의 원천이 되었다. 1787년 서양인 최초의 울릉도 탐사기라 할 수 있는 ‘라 페루즈 항해기’에는 울릉도를 ‘다주레’라고 명명한 기록이 남아 있다.‘경사가 굉장히 심했고,산정에서 물이 있는 곳까지 좋은 수목으로 뒤덮여 있다.상륙 가능한 7곳의 모래로 된 조그만 만(灣)을 제외하고는 벽처럼 수직으로 노출된 암벽이 섬 주위를 둘러쌌다.’ 지금이라고 이 기록과 크게 다를 바 없다.울릉도의 시원지인 현포,연락선이 닿는 도동,어업 전진기지 저동,아름다운 천부항,신항이 건설되는 사동 등을 제외하면 가파른 암벽투성이다.울릉도가 신비롭다 함은 그만큼 산세가 험하다는 의미다.고종 29년(1892)에 창작된 정처사술회가(鄭處士述懷歌)에도 개척민의 고난과 험준한 도로사정이 잘 그려져 있다.현포에 상륙해 바닷길을 따라 귀암을 거쳐서 천부동에서 나리동을 올라가 거기에서 다시 저동으로 내려와 도동을 거쳐 사동으로 가는 고단한 노정이었다. 나리분지의 투막집과 너와집은 이런 고난의 개척사를 여실히 증명해 준다.최병용(36) 북면 청년회장이 원시림 속의 산신령 약수터로 잡아끈다.“성인봉 아래에서 솟는 이 물 자시고 가면 천년을 살지요.” 마셔 보니 과연 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천연기념물이 된 울릉국화와 섬천리향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으니 나리분지야말로 울릉도의 중핵이다.지금은 일부에만 후박나무와 향나무 숲이 남았지만 예전에는 조밀한 숲이 우거져 선박건조용으로 남벌됐다.일본은 물론이고 러시아까지 벌채권을 확보하여 이곳 나무를 베어갔다.강원도 관초(關草·1886)에 따르면,일본인들은 대규모 선단으로 출몰하여 아예 도동에 점포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송곳같이 솟은 추산 자락에서 고비와 도라지농사를 짓는 주민 서영필(전 북면 면장)씨는 이곳을 ‘해중보배’로 표현한다.“관음도는 원래 깍새섬이라고 했지요.고기가 없던 개척 당시에 그 깍새 고기로 영양을 보충했고요.” 깍새는 슴새를 말한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슴새나 멧비둘기들이 모두 훌륭한 단백질원이었다.산세는 거칠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먹을 것이 지천이다.“그러나 해중보배라도 교통 불편은 어쩔 수 없습니다.”실제로 섬을 헤짚고 다니는 차는 모두 사륜구동이다.일반 승용차로는 어림없다. 석포에 오르니 독도가 먼 발치에 떠있다.고 이종학옹이 자료를 내놓고 삼성이 지원하여 독도박물관을 지은 것까지는 좋았는데,하필이면 바다도 보이지 않는 계곡에 지은 것이 영 불만스럽다.코 아래로 죽도가 보이고 쾌청한 날이면 독도까지 보이는 석포야말로 독도 관해(觀海)의 명당임은 필자만의 생각일까.토박이 박태철(73)옹도 “물마루에 떠오르는 독도는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라며 거든다. 육지와 섬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울릉도에도 도동을 중심으로 한 관청 중심지와 북면 등의 오지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일주도로가 관음도 바로 앞의 섬목에서 끊겨 반드시 배를 타야만 도동이나 저동으로 나올 수 있다.섬 안에 또 하나의 섬이 존재하는 셈이다. ●따스한 기온 기름진 땅에 후덕한 인심까지 지금의 조건만으로도 울릉도는 충분히 ‘이상향’이다.맑은 공기,따스한 기온,기름진 땅,게다가 후덕한 인심까지 더해진다.섬이라는 조건에 부합하고 백년을 내다볼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이 아쉽고 절실하기만 하다.울릉도는 울릉도다워야 한다.‘육지 따라 배우기’를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해양생태적 사고만이 울릉도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으리라. 이곳의 옛 길과 임도(林道)를 살린다면 어떨까.가령 길이 끊긴 내수전~섬목 구간은 옛길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다.작은 섬에 수천 대의 차량이 나다닐 필요가 있을까.친환경적인 자전거도로를 거미줄처럼 엮어놓는다면 그 자체가 장관 아니겠는가.‘자전거의 섬’이 완성된다면 현재의 차량 물결에 비하랴.덧붙여,포항 배편 같은 독점 노선은 언제나 말썽이다.교통문제 해결없이는 현실적으로 이상향은 어렵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용출수만으로도 수력발전을 할 수 있는 섬,죽도와 삼선암을 비롯한 천혜의 자연풍광으로 유혹하는 신비의 섬,우산국은 사라졌어도 여전히 ‘우산민국’인 섬,그 섬에서 돌아오는 뱃전에서 연방 울릉도 호박엿을 먹고 있었다.이상향이 될 조건은 여전히 충분한데,그 이상향이 현실 속에서도 이 호박엿만큼이나 달콤했으면 오죽 좋으랴.
  • 명목은 국제회의 참석 본심은 핵 책임자 추궁?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나흘 일정으로 3일 방한했다.공식 목적은 ‘국제회의 참석’이지만 방한기간 이해찬 국무총리·오명 과학기술부 장관 등 정부 고위인사들과 연쇄접촉을 갖고 한국의 핵물질 실험에 관해 의견을 나눌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3일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1982년 플루토늄 추출 실험과 2000년의 우라늄 분리실험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는지 집중적으로 캐물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두 차례에 걸친 IAEA 사찰활동의 주된 목적이 시료 채취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의 더 주된 요구사항은 ▲당시 실험에 정부자금이 지원됐는지 ▲누구의 지시로 지원이 이뤄졌는지 ▲당시 책임자가 지금도 현직에 있는지를 밝히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우리 정부는 “실험사실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으며,따라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우리 정부의 이같은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IAEA측은 사찰단을 자꾸 보내 ‘물고 늘어지기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전언이다.원자력전문가인 정모씨가 이번 IAEA 사무총장 선거에 재도전장을 내밀어,‘3연임’을 노리고 있는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헌재 “피의자 지문 강제채취 합헌”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영일 재판관)는 23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피의자의 지문을 강제로 채취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피의자가 경찰 등의 신문을 받으면서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지문채취에 불응하는 경우 처벌하도록 한 것은 정당한 이유없이 지문채취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수사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다른 사람의 인적 사항 도용과 범죄 및 전과의 은폐 등을 차단하기 위해 피의자의 신원확인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울진 진~한 ‘송이버섯’

    울진 진~한 ‘송이버섯’

    태곳적 신비의 향과 맛을 간직한 송이(松茸).머리까지 개운해지는 그윽한 향,단 듯한 특유의 감칠맛,졸깃하면서 퍼석거리지 않는 질감.이런 특징을 지닌 송이는 ‘버섯의 왕’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을의 진미’ 송이는 고스란히 자연이 준 선물이다.동물을 복제해 낼 정도로 인간의 과학기술이 발달했다지만 송이는 아직 인공재배를 하지 못한다.대부분의 버섯이 죽은 나무나 이끼 등에 붙어 살지만 송이는 살아 있는 소나무의 작은 뿌리에서 공생한다.소나무의 푸른 정기를 흡입해 자라는 송이는 ‘산중의 영물’로 여겨진다.솔가리를 뚫고 솟아오른 자태는 어찌 보면 상당히 ‘노골적’이다.이런 까닭으로 송이산에는 여성들의 접근이 금기시됐으며 양기에 좋다는 말도 전해온다.위나 장기를 강하게 하고,항암에도 효과가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 도움말 울진군 산림과 울진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송이를 먹어야 가을을 실감한다.”는 경북 울진 사람들은 자기 고장의 송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동해와 백두대간,낙동정맥이 만나는 청정지역인 울진은 남한에서 금강송이 가장 울창하다. 이런 까닭으로 울진 송이는 금강송의 실뿌리에서 자라 향기와 맛이 더욱 빼어나다.바닷바람도 적당히 쐬어 표피가 두텁고 단단하며 특유의 향이 진하다.멜라닌 색소가 많아 다른 지역의 송이보다 색깔이 더 짙다. 울진 송이가 인근 봉화나 양양 등지보다 국내에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김진업 울진군 산림계장은 “몇년 전만해도 일본이 헬기를 동원,울진 송이를 싹쓸이해가는 바람에 국내에 소개될 물량이 적었던 탓”이라며 “이젠 일본에 중국산과 북한산 송이가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울진도 내수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울진 토박이인 50대 송이 채취꾼 2명을 따라 불영사 계곡 근처의 산에 올랐다.나뭇잎에 연노랑 물이 들기 시작했다.산에선 군인보다 빠르다는 ‘산사람’들을 따라 고개를 몇개 오르내리자 땀이 쭉 흘렀다. 아래쪽은 거북 등딱지처럼 쩍쩍 갈라지고 위쪽은 붉은 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나무 숲을 지나자 비닐로 엮은 움막이 나왔다.움막에는 이불과 가재도구,TV와 라디오까지 갖췄다.김진모(50·가명)씨는 “송이 채취가 끝나는 10월말까지 산에서 먹고 잡니다.”라고 움막을 설치한 까닭을 말했다. ■ 이렇게 가세요 울진 사람들은 울진이야말로 오지중의 오지라고 믿고 있다.교통편은 자동차뿐.동서울에서 울진까진 5시간은 걸린다.이런 까닭으로 수려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됐다.유기농 재배도 전국에서 가장 많이 한다.내년 여름에 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를 열 정도다. 서울에서 울진을 하루 만에 왔다갔다하기에는 좀 벅차다.울진을 찾았을 때 묵을 수 있는 곳으로 경북 봉화에서 울진으로 넘어가는 36번국도상에 있는 통고산자연휴양림(054-782-9007)을 권할 만하다.금강송 사이의 호젓함을 만끽할 수 있다.울진 시내에서 15㎞정도 들어간 응봉산 자락의 구수곡자연휴양림(054-783-2241)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숲속의 집에서 하루 묵는데 방 크기별로 4만∼6만원.구수곡자영휴양림에서 2㎞만 더 들어가면 국내유일의 자연용출 온천인 덕구온천(054-782-0672)에서 몸을 풀어도 좋다. 둘러볼 만한 곳으로 36번 국도 곁의 불영사와 불영계곡은 가을 단풍이 절경이다.민물고기 전시장과 탁트인 동해의 망양정이 있다.울진을 갈 때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내려 36번 국도를 탔다면 올 땐 7번 국도를 따라 올라와 동해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울진 북부를 거의 둘러볼 수 있다. 쭉쭉 벋은 금강송 사이로 양탄자를 밟는 듯 솔가리가 푹신한 능선을 따라 고개를 넘자 ‘아들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송이산이 나왔다.김씨에게 산이름을 묻자 “야산인데 무슨 이름이 있겠어요.”라며 퉁놨다.그러면서 얼굴 사진은 절대로 찍지 못하게 했다.얼굴이나 산 이름이 나가면 송이 도둑이 들기 때문이란 설명이다.그도 그럴 것이 요즘 송이 1㎏의 시세가 20만원대.한창 나갈 땐 60만원도 넘었단다.‘숲속의 보석’이다. 김씨가 “저게 송이야.”라고 가르켰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솔가리 속에 파묻힌 송이는 색깔도 비슷해 자세히 봐야 구별이 됐다.채취꾼들이 미리 봐둔 것은 솔가리를 긁어 도톰하게 덮어뒀다.그래야 송이 갓이 빨리 피지 않고 대가 두툼해지는 까닭이란다.송이를 직접 캐보았다.한쪽 끝이 뽀족한 작대기로 송이 뒤쪽을 콕 찔러 들어올리면서 송이 뿌리 부분을 잡고 좌우로 몇번 흔드니 쏙 빠져 나왔다.구멍을 흙으로 다시 덮었다.그러면서 주위를 함부로 밟지 못하게 했다.땅속에서 자라는 어린 송이가 뭉개지기 때문이란다. 조심스레 송이 몇 개를 뽑아 움막으로 돌아와 이들의 방식으로 구웠다.뿌리쪽을 잘게 삐져낸 다음 얇은 겉껍질을 벗겨냈다.송이갓 윗부분을 몇 번 두들겨 갓속에 든 먼지를 털어냈다.송이대를 떼어내고 갓을 그대로 석쇠에 올려 소금을 조금 뿌리고 불에 노릇하게 구웠다.갓살에 물방울이 맺혔다.짭쪼름하면서 감칠맛이 깊었다.송이대는 손으로 세로로 길게 찢어 삼겹살 고기와 함께 익혔다.다른 양념을 전혀 넣지 않았지만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고,고기에 솔향이 짙었다.이들이 하루에 따는 분량도 대체로 2㎏ 내외.하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열흘 가량 일찍 가을 송이가 나기 시작해 지난해보다 작황이 좋을 것으로 기대했다. ■ 시원한 송이칼국수 고소한 송이불고기 송이철이면 울진의 식당 대부분이 송이를 취급한다.하지만 송이는 보관이 어려워 4계절 송이만 다루는 전문점은 없다.울진 사람들은 송이를 사다가 고깃집으로 가져가 고기와 함께 구워먹는다.주물럭으로 먹기도 하고,구워 먹기도 한다.이들은 비싼 1등급보다는 등외품목 ‘퍼드래기’를 1㎏씩 사다가 먹는다.등외품은 1㎏에 4만∼5만원. 현지인들이 가장 대표적으로 손꼽는 식당은 울진읍내 산림조합 맞은편 홍두깨손칼국수(054-782-8778).주인 김광일씨가 홍두깨로 칼국수 반죽을 민다.가을에만 송이칼국수를 한다.즉석에서 반죽한 탓인지 칼국수는 찰기가 없고 뚝뚝 끊어지는 반면 송이 향이 진하다.또한 불고기도 하는데 송이 불고기 가격은 정해져 있지않다.들쭉날쭉하는 송이 가격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린다.이외에도 부촌갈비(054-783-2307)는 송이 불고기(1만원)를 전골식으로 내온다.황우촌(054-783-8891) 역시 송이 불고기(8000원)와 양념갈비 송이불고기(1만4000원)를 한다. 서울시내 호텔에서도 자연송이를 내놓고 있다.밀레니엄 서울힐튼 중식당 타이판(317-3237)은 다음달 말까지 송이와 전복볶음(10만 5000원),자연송이와 쇠고기 안심볶음(9만원)을 선보인다.일식당 겐지(317-3240)도 자연송이 소금구이(10만원),자연송이 맑은국(1만5000원),자연송이 주전자찜(3만8000원)을 내놓았다.호텔 리츠칼튼서울 일식당 하나조노(3451-8276)역시 11월 말까지 자연송이 코스(20만원),자연송이 버터구이(15만원),자연송이 덮밥(5만원)을 시판한다.세종호텔 일식당 후지야(3705-9240)는 10월 31일까지 송이 코스요리(12만원),송이 주전자 술찜(1만5000원),송이튀김(4만5000원),송이죽(2만5000원)을 준비했다.하얏트 리젠시 제주의 오미 마켓 그릴(064-733-1234) 역시 송이 초밥과 버섯 모둠전골을 준비했다. ■ 여기서 사세요 송이 채취에는 법도가 많다.산신제를 지내고 산에 들어가며 까다로운 사람들은 여자들은 송이산에 얼른거리지도 못하게 한다.채취꾼들은 새벽부터 한낮까지만 송이를 캔다.이렇게 캔 송이는 오후부터 산림조합에서 1·2·3등품과 등외,4등급으로 나눈다.1등품은 갓이 퍼지지 않은 길이 8㎝ 이상,2등품은 길이가 6∼8㎝로 갓이 3분의 1가량 퍼진 것,3등품은 갓이 많이 퍼지고 6㎝ 미만인 것이다.그리고 등외품은 모양이 이상하게 생겼거나 부러진 것,벌레 먹은 것이다. 송이 경매는 오후 4시쯤 들어간다.이게 바로 그날의 시세이자 다음날 경매가가 결정될 때까지의 가격이다.경매가는 매일 들쭉날쭉한다.하루 차이에 5만원 이상이 오르내리기도 한다.등급별로는 4만∼5만원의 차이가 난다. 울진 송이를 사려면 북면의 흥부농산(054-783-0414)과 산림조합 인근의 울진농수산(054-782-5592) 등으로 연락하면 된다.택배비는 별도 부담이다.울진을 방문했다면 울진 곳곳에 있는 ‘송이 수집·판매소’에 들러도 된다.경매장인 산림조합(054-782-2249)은 소매는 하지 않지만 가격은 물어볼 수 있다. 귀하디귀한 송이의 손질은 간단하다.기둥 밑부분의 흙을 칼로 살살 긁어 내고 젖은 면포로 겉을 살살 닦는 정도면 충분하다.표면의 누런색 껍질을 모두 벗겨 속의 흰살만 쓴다면 맛과 향이 반감된다.또 조리하기 전에 미리 썰어 두거나 공기 중에 오래 두면 향이 날아가므로 손질하자마자 바로 조리하는 것이 요령이다.
  • 1982년 플루토늄 실험 조사

    1982년 플루토늄 실험 조사

    핀란드 출신 샤코넨(58) 단장을 포함한 IAEA(국제원자력기구) 2차 사찰단 5명이 20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소를 조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유성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는 사찰단은 연구소 앞에 미리 대기 중이던 국내외 언론들의 질문공세에 철저하게 함구한 채 조사장비를 들고 곧바로 연구소로 들어갔다. 과학기술부 조청원 원자력국장은 “IAEA 사찰단이 지난 1차 조사에서 시료채취를 못한 부분이 있어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요청해와 이를 수락했다.”고 말해,이번 2차 사찰단의 주된 임무가 국내에서 추출된 플루토늄 등 핵 물질에 대한 시료채취임을 시사했다. IAEA는 8월31일부터 9월4일까지 실시한 1차 조사에서 2000년 분리된 농축우라늄 0.2g의 절반을 시료로 채취해 갔으나 1982년 추출된 플루토늄에 대해서는 시료 채취를 하지 않고 봉인만 해뒀다.2차 사찰단은 당시 실험에 참가한 국내 과학자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면담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82년 플루토늄 추출 실험 및 금속우라늄 제조 참가 과학자 4∼5명과 2000년 우라늄 분리실험 관련 과학자 3∼4명이 대상이다.실험동기,진행과정,실험후 관련 핵물질 사용실태 등을 집중적으로 물을 것으로 보인다.80년대 당시 말단 연구원이었던 장인순 원자력연구소장과 당시 기록 담당자도 면담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하지만 82년 실험에 참가했던 과학자 가운데 책임자는 이미 사망했고 생존자 4∼5명도 서울과 대전 등 전국에 흩어져 있어 면담조사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2000년 실험을 주도한 원자력연구소의 미래원자력기술개발단 소속 양자광학기술개발팀은 대부분 연구소에 그대로 몸담고 있어 상대적으로 조사가 수월하다.인광석에서 천연우라늄을 추출해 원자력연구소에 공급한 울산 영남화학(이후 상호 변경)도 재조사 선상에 놓여 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비밀 입국 IAEA 사찰단 ‘첩보영화처럼’

    우라늄 및 플루토늄 추출실험을 보완 조사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2차 사찰단의 입국은 ‘첩보영화’의 한 장면만큼이나 비밀스러웠다. 핀란드 출신인 샤코넨(58) 단장은 공항에서 ‘IAEA 조사단이냐.’고 묻자 “아니다.그게 뭔지 모른다.”며 기자들을 따돌리려 했다.그는 말문에 시종 알듯 말듯한 미소와 함께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신분이 밝혀지자 “우리는 어떠한 것도 말해줄 수 없다.오스트리아 빈의 IAEA 대변인이 말해줄 것”이라며 극도로 보안에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다.또 ‘핀란드 출신이냐.’는 등 구체적인 질문으로 들어가자 “IAEA 출신”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찰단은 입국 시간부터 숙소,국내활동 일정,출국 날짜 등까지 모든 게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항공기편도 일본 오사카를 거쳐 인천으로 들어왔다.이에 대해 사찰단은 “직항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을 거쳐 온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이들은 봉인된 컨테이너 드럼 등 검사장비가 들어 있는 7∼8개의 커다란 박스를 가지고 왔다.이 컨테이너 드럼에는 지난 82년 추출한 플루토늄 0.08g의 시료 채취용 등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일부 짐은 엑스레이 및 개봉검사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보안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공식 입국장이 아닌 공항 동쪽 끝으로 빠져 나갔다.이어 낮 12시 15분쯤 대기하고 있던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이스타나 승합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공항 주재 경찰도 이들의 입국 시간과 편명을 당국으로부터 통보받지 못하는 등 이들의 입국정보는 국가정보원 등 극소수의 정부기관만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 대표단으로 이번 IAEA 이사회에 참석하고 귀국한 외교통상부 오준 국장은 19일 “원래 IAEA 사찰단은 모든 활동이 그렇게 비밀리에 하게돼 있고,그런 내부 규칙이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사찰단은 오는 26일 조사를 마치고 서울을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정부는 11월 이전에도 추가 사찰단이 한차례쯤 더 다녀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봉인 플루토늄 시료 채취할듯

    IAEA(국제원자력기구) 2차 사찰단이 19일 입국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우라늄 분리 및 플루토늄 추출실험 ‘의혹공방 2라운드’가 시작됐다. IAEA 이사회는 우리의 핵물질 실험과 관련,별도의 ‘의장 요약문’을 채택하지 않은 채 지난 17일 막을 내렸다.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주요 9개 이사국들은 오는 11월 나오는 공식보고서 결과를 보고 태도를 결정짓겠다는 입장을 보였다.우려했던 고강도 발언이 나오지 않아 우리 정부로서는 한숨 돌린 셈이다. 추가 사찰단의 조사는 크게 1982년과 2000년의 플루토늄 추출 및 우라늄 분리 실험의 두 줄기를 추적하는데 맞춰질 전망이다.1차 조사단은 지난 2000년에 한국과학자들이 분리해낸 농축우라늄 0.2g중 절반을 시료로 채취해 갔다. 하지만 지난 1982년 추출한 플루토늄 0.08g에 대해서는 봉인만 한 채 그대로 뒀기 때문에 추가사찰단은 이에 대한 시료를 채취해 갈 것으로 보인다.또 분리한 우라늄 0.2g의 원재료가 됐던 150㎏의 금속우라늄(1982년 제조) 사용실태도 집중조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실험과정에서 실종됐다고 우리나라가 주장하는 금속우라늄 12.5㎏의 ‘진실’도 캘 것으로 보인다.정말 실험과정에서 실종된 것인지,왜 금속우라늄 총량 변동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는지가 쟁점이다.사찰단은 82년 플루토늄 실험을 주도한 과학자 가운데 생존자와 2000년 우라늄 실험 관련자들의 직접 면담도 추진중이다.당시 인광석에서 금속우라늄을 제련했던 민간업체(영남화학)도 재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사찰단은 26일 IAEA 본부로 돌아가 수집한 자료와 한국정부가 지난 8월 제출한 보고서를 대조한다.이를 토대로 11월25일 IAEA 정기이사회 때 공식보고서를 제출하면 이사국들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한국에 대한 제재수위를 결정한다.만일 보고서가 한국의 핵물질 실험이 ‘의무불이행’(noncompliance)이라고 판정하면 유엔 안보리 회부가 불가피하다.최악의 경우 제재도 받을 수 있다.하지만 보고의무에 대한 협정위반(violation,breach) 정도로 끝날 경우 이번 사안은 ‘유의’하라는 선에서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IAEA 총회가 이달 20일부터 열리지만 이사국들이 공식결과 보고서를 기다리기로 한 만큼 별도로 우리나라의 핵물질 실험은 논의하지 않을 전망이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의 내달 방한과 관련해 정부는 “행사(퍼그워시총회) 참석차 오는 것이지 추가 사찰과는 관계없다.”고 주장하지만 ‘물밑 대화’가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이번 IAEA 이사회에서 우려할 만한 이사국들의 발언이 없었고,‘평화적 핵 이용 4원칙’까지 국제사회에 천명한 만큼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고 조심스럽게 관측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3) 물질로 기른 탐라여성의 강인한 힘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3) 물질로 기른 탐라여성의 강인한 힘

    ‘해녀’가 아니라 ‘잠수(潛嫂)’다.단일 마을로는 이 잠수가 가장 많아 108명에 이르는 서귀포 법환리의 조계화(65) 잠수회장은 “어릴 적에도 해녀보다는 잠수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고 증언한다.더러 ‘잠녀’라는 말도 쓰지만 잠수가 본딧말.일본에서 건너온 ‘해녀’라는 용어가 지배하고 있으나,‘확실히’ 잠수가 맞다.왜 그런가. 문헌을 살피면 ‘나잠(裸潛)’이라는 말이 보인다.나잠은 남녀를 포함한다.여성 전업은 아니어서 남자들도 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가거도 같은 오지에도 남자 잠수가 많았으며,요마적에는 동해안에도 남자 잠수가 늘고 있다.이런 사정인데도 근래 ‘해녀’라는 말이 두루 쓰인다.하지만 역사적으로 해남(海男)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해녀가 모든 잠수의 대표 명칭은 될 수 없다.교과서부터 고칠 일이다. 천대받던 잠수가 ‘뜨고’ 있다.공민왕 시절 최영 장군이 몽골의 묵호들을 토벌한 마지막 격전지 법환리를 찾아드니 문화관광부에서 아예 역사문화마을로 지정했다는 입간판까지 서있다.지난 여름에는 이곳에서 잠수축제도 열렸다.그러나 잠수로 먹고 살려는 이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어리석게도 ‘잠녀잡녀(潛女雜女)’라고 경멸했던 전근대적 풍조가 잔존하는 데다 같은 제주도에서도 반가(班家)를 표방하는 이들은 물일을 피했다.험한 물일을 하지만 잠수하는 이들도 여자다.늘상 소금물에 몸을 담그니 아무리 가꾼들 피부가 어찌 거칠지 않으랴.요즈음 젊은 여성에게 매일 소금물에 몸을 담그라면,아마 억만금을 줘도 못할 일이리라. ●우는 아기 구덕에 실어두고 바다로 조선 정종 때 신광수(申光洙)는 석북집(石北集)에서 이 잠수의 광경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했다.“일시에 긴 파람으로 숨을 토해내니,그 소리 비장하게 움직여서 수궁 깊이 스민다.”잠수의 한이 가히 용궁까지 미칠 듯하다.풍덩풍덩 물로 뛰어드는 모습이 마치 필사의 돌격대같다.숨쉬러 올라오면서 고요했던 바다는 갑자기 숨비소리로 충만해진다.매서운 엄동설한에도 우는 애기를 애기구덕에 실어두고 한숨 들이마신 뒤 뛰어드는 바다물질. 세종조 때 기건(奇虔) 목사가 눈보라가 하늬바람에 얹혀 매섭게 휘몰아치던 날,순력에 나섰다.그런데 엄동설한에 발가벗은 여인들이 무리지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목사는 질려버렸고,그로부터 염치지심(廉恥之心)이 용납하지 않아 그네들 손으로 잡아올리는 전복이나 소라 따위를 일절 먹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세월은 바뀌었지만,지금도 전복 따위를 먹을 때는 한번쯤 잠수들을 떠올려 볼 일이다. 법환리에서도 예전에는 16∼17세가 되면 물질에 나섰다.꼬마들은 연습삼아서 얕은 ‘갓’(물가)에서 보말을 잡거나 우뭇가사리를 뜯었다.같이 배운 물질이지만 능력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헤엄 잘치고,채취 잘하고,신체 건장한 여자를 ‘상군’이라고 하고 그 밑으로 ‘중군’과 ‘하군’이 층을 이루고 있다.상군과 하군의 격차는 생각보다 커서 ‘내려갈 땐 한빗,올라올 땐 천칭만칭 구만칭’이란 속담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범섬 주변은 배를 타고 나가 물질을 하고,‘갓’에서는 헤엄치면서 채취한다.주로 전복 소라 오분재기 보말 성게 해삼 톳 감태 갈래곰보 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하는데,역시나 해중 보물은 전복.봄이 오면 해경(解警),혹은 허채(許採)라 하여 금지했던 작업이 일제히 풀린다.미역은 2∼3월에 베어내며,봄철이 지나면 녹음이 짙어 뻣뻣해지므로 식용이 불가능하다.감태는 여름철에 종괴호미로 베어내 거름으로 쓰는데,이 거름을 한번 뿌리면 삼 년은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땅이 걸어진다. ●백화현상으로 해초 사라져 환경이 변하면서 전복은 눈을 씻어도 찾아보기 어렵다.소라도 수십 년을 살아 날카로운 돌기가 떨어져 나간 탓에 ‘둥구쟁이’라고 불리는 놈들은 찾아볼 수 없다.5년여 전부터 이 바다에도 백화현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해초들도 대거 사라지고 말았다.바다가 하얗게 변하는 이른바 ‘갯녹음’이 시작된 것이다. 잠수들은 한달에 10∼12일 정도 물질을 나간다.물질은 물때에 맞춰 시작되는데,법환리 속담에 ‘물싼때랑 나비잠자당 물들어사 돔바리 잡나’란 말이 있다.썰물때는 그럭저럭 지내다가 밀물에 바다에 뛰어들어 일을 한다는 뜻이다.특히나 물이 움직이지 않는 한조금날에는 물질을 피한다.여기에다 파도까지 치면 더욱 힘들다.보통 2m의 파도라도 이런 날에는 2배 즉,수심 4m까지 영향이 미친다.너울이 심하면 전복이 눈앞에 있어도 울렁거려서 잡을 수가 없다. 이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잠수병.머리가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뇌신이나 감기약 같은 것을 무턱대고 먹는다.잠수 복지정책이라며 이곳 종합병원에서 특수진료를 시작했지만 언감생심 완치는 꿈도 못꾼다.이들에게 연간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천차만별이지요.수 천만원에서 수 백만원,지금도 상군 잠수가 일본에 나가서 석달만 뛰면 1000만원은 거뜬하지요.”라고 말한다.그야말로 ‘언더우먼’이다.가사노동에다 물질까지 해서 어렵사리 번 돈으로 밭도 사고 자녀들 대학까지 공부도 시킨다.이곳에서 자란 저명인사 중 잠수 어머니의 손길로 키워낸 사람들이 많다.김계담 서귀포문화원장이 농담삼아 거든다.“그 뿐인가.남편 술값도 보태지.” 70년대부터 잠수복 다운 잠수복이 나왔지 그 전에는 추운 겨울에도 반나체로 바다에 들었다.작가 현기영은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에서,‘해촌의 포작진상은 수량이 월등히 많아 일년 열두달 바닷속 열명길을 들락날락 자멱질하여야 했다.노적가리만큼 큼직큼직한 진상꾸러미를 만들어 전복·미역·청각·우뭇가사리·산호·대모 외에 해중 귀물인 진주와 앵무조개 진상은 나중에 면제되었지만 그 대신 전복의 수량이 엄청 불어났으니 포작인의 고역은 말이 아니었다.남정네 근력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마누라와 딸자식까지 벌거벗겨 물질을 시키건만….’이라며 옛적 잠수 수탈의 역사를 고발하고 있다. ●中·러·日로 원정 잠수도 이들의 행동반경이 제주 바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부산 울릉도 독도 흑산도 등지로 나가는 이가 많았고,심지어는 중국이나 러시아,일본 등 동북아시아 전역으로까지 ‘출가’하였다.봄이면 객지로 떠나 반년 여를 물질만 하다가 가을이면 돌아오는 원정잠수도 있었다.심지어 며칠씩 배를 저어 중국 칭다오(靑島)나 다롄(大連)까지 진출하기도 했다.현지에서는 이들에 대한 착취가 비일비재해 ‘부산 영도 일대에서 (제주 잠수가)짓밟혔다.’는 일제시대의 신문기사가 이를 잘 말해 준다.심지어 선금을 제대로 못갚으면 현지에서 볼모로 잡혀 불귀의 객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한 끼 밥값이라도 아끼기 위해 좁쌀 따위의 양곡을 갖고 다녔으며,근검절약으로 돈을 모았다.아기엄마들은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면서 물질을 다녔다.우도의 신화적인 잠수였던 조완아는 황해도로 물질 나갔다가 뱃전에서 아기를 낳았다.배에서 낳은 배선이,항에서 낳은 축항동이,길에서 낳은 길동이 등 자녀들의 이름을 보면 만삭의 잠수들이 출산 직전까지 물질을 했음을 알 수 있다.그 애환을 지금의 우리가 어찌 다 알 것인가. ●‘바다가 집이요,배 밑창이 칠성판’ 물질은 헤엄쳐 나가서 행하는 갓물질,15∼20명쯤이 함께 배를 타고 나가서 치르는 뱃물질이 있다.가까운 ‘앞바르’를 벗어나 외국까지 가서 오로지 배에서 먹고자면서 떠도는 ‘난바르’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바다가 집이요,배 밑창이 칠성판’이란 노래가 실감난다.용궁을 다녀온 우도 만행이할머니의 전설같은 실화는 죽음이 늘 이들 곁에 있었음을 암시하는 사례다.그렇게 억척같이 돈을 모아 살림을 키웠으니 ‘위대한 어머니,장한 딸’이 아닐 수 없다. 그녀들은 독립운동사에서도 혁혁한 기록을 남겼다.이야기는 일제시대로 올라간다.잠수들의 권익옹호라는 미명 아래 어업조합이 발족되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조합장을 도사(島司)가 겸임한 탓에 제주도내에서 잠수의 권익은 애당초 고려되지 않았다.1931년,구좌면 일대 잠수들이 9개 조항의 진정서를 도사에게 제출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이들의 불만은 1932년 1월24일 세화리 잠수사건으로 폭발하고 만다.하도리의 부춘화(夫春花·당시 22세)라는 여성의 지휘 하에 1000여명이 세화리 주재소 앞에 모여든다. 당시 인구로 볼 때 1000명은 보통 숫자가 아니다.마침 도사가 이곳을 지나간다는 소식에 양손에 비창,호미 등을 들고,머리에 흰 물수건을 동여맨 채 행진가를 높게 부르면서 거리에 운집하였다.도로를 가로막고 항의를 시작하였으나 도사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분노의 불길은 더욱 높아져 급기야 관용차를 대파했으며,결국 긴급 출동한 경찰과 충돌하기에 이른다. 그 장거(壯擧)는 지금까지 잠수의 역사로 길이 남았거니와 당시에 불려지던 노래말을 들어 보자.‘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잠녀/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추운날 무더운날 비가 오는날/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는 몸/아침 일찍 집을 떠나 어두우면 돌아와/어린 아기 젖멕이멍 저녁밥 진자/하루종일 해봤으나 번 것이 없어/살자하니 한숨으로 잠못이룬다.’ 노령의 잠수들은 지금도 이 노래를 기억한다.제주 여성의 강인한 힘은 이같은 고통의 산물이리라.최대 20여m 이상의 물속을 헤집는 잠수들의 노역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니,오죽하면 미국무부에서 심해 공사와 해군력 증강을 위해 제주잠수들을 연구하기까지 했을까.잠수를 말하지 않고는 제주바다의 삶에 관한 논의는 애당초 불가능하다.제주민의 바다삶에서 잠수는 알파요,오메가이기 때문이다.
  • 한국의 전통생태학/이도원 엮음

    우리의 전통마을은 산을 뒤로 하고 하천을 바라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가파르지 않은 남향 산기슭에 발달했다.마을 앞의 논은 오랜 세월 산에서 흘러내린 미세한 점토와 유기질 토양이 쌓인 문전옥답(門前沃沓)이었다.마을 뒤 경사면은 무덤과 숲으로 연결되었다.이같은 공간배치는 풍부한 샘물로 취수가 편리하고,일조량이 많고,북서 계절풍을 피할 수 있으며,연료 채취가 용이해 외부 침입에 대한 방어에 유리했다. ‘한국의 전통생태학’(사이언스 북스 펴냄,이도원 엮음)은 우리 선조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생태학적 지혜를 찾아내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준다.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의 지원으로 2002년부터 진행한 ‘전통생태모임’에서 발표한 논문을 엮었다. 전통생태학은 삶의 꼴,살아가는 모습을 연구하는 학문이다.서구에서 에콜로지(ecology)를 집(eco)의 학문(logos)으로 푸는 것과는 다르다.서구인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주민들의 복지향상을 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구의 정복자들이 무시해온 원주민들의 전통 생태 지식의 합리성과 신뢰성을 현대 과학과 동등하게 재조명하는 전통생태학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엮자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도원 교수는 “생태학은 생물학에서 시작됐지만 이제 생명을 물질성의 테두리에 가두려는 생물학과는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최근에는 생물학이 생명공학이라는 이름으로 추앙받고 있지만,물질주의의 잣대로 가름되는 풍토에서는 문화를 아우르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생태를 꽃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전래의 풍수와 굿 문화에도 잘 나타난다.우리 선조들의 자연환경에 대한 태도와 환경 사상은 자연친화적이며,하늘·땅·바위·나무 등 자연을 섬기는 것이었다.자연을 정복한다거나 개조한다는 생각은 찾아볼 수 없다. 풍수의 환경 순환 이론,개발 성장의 한계성,자연환경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사고,자연을 쉽게 다치기 쉬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전통생태학과 맥을 같이한다. 자연에 대한 사고를 잘 보여주는 것이 또한 비보(裨補)이다.비보는 우리 전통 취락에서 일반적이라고 할 만큼 흔하게 발견된다. 주거지 조건을 개선하고 삶의 질의 향상을 꾀하는 사탑,숲,방풍림,장승,못 등이 그 예다.우리 선조들은 비보에서도 인간과 자연의 상생 관계를 기조로 하며 생태적 경관 요소의 보완을 추구했다. 책은 지리·환경학부 교수,전통마을 가꾸기 사업을 지도하는 활동가,생태학자,건축학자,화가 등 21명의 학제(學際)간 연구 활동의 산물이다. 제1부 ‘우리 전통 속의 생태 사상’,제2부 ‘전통 생태 환경 읽기’,제3부 ‘대안 생태공간으로서의 전통마을’로 나누었다.3부는 현 시점에서 실천할 수 있는 우리 전통생태학의 지혜를 살펴본다. 이들의 논의와 주장들은 앞으로 과학적인 연구와 검증이 더 필요하다.그러나 한국 전통생태학의 현 주소요,출발점이자 시금석으로 새로운 장을 열기에 부족함이 없다.3만원 황진선기자 jshwang@seoul.co.kr
  • “IAEA 한국사찰 목적은 핵물질 시료 추가채취”

    오는 19일쯤 입국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방한목적이 한국원자력연구소가 핵연료 실험과정에서 추출한 플루토늄 등 핵물질의 시료를 채취하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9일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IAEA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 파견됐던 과학기술부 조청원 원자력국장은 15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IAEA사찰단은 이달 초 원자력연구소 조사과정에서 시료채취를 못한 부분이 있어 이번에 다시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IAEA사찰단은 지난 8월말부터 9월5일까지 대전 원자력연구소를 조사하면서 2000년 초 우라늄 분리실험의 시료를 채취했으나 1982년의 핵연료 실험에서 나온 소량의 플루토늄에 대해서는 봉인만 한 채 시료채취를 하지 않았었다. 따라서 사찰단은 봉인된 플루토늄과 82년에 생산한 금속우라늄 150㎏ 가운데 대전 한국 원자력연구소의 핵폐기물 창고에 보관중인 134㎏과 핵물질 실험과정에서 발생한 핵폐기물 등의 시료채취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IAEA의 시료채취는 보고서에 신고된 핵물질 등이 실제와 같은 것인지 등을 확인할 목적으로 해당 핵물질의 일부를 IAEA본부로 가져가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조 국장은 IAEA의 조사기간에 대해 “두달가량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특히 IAEA측의 한국에 대한 반응에 대해 “크게 두가지”라고 전제한 뒤 “하나는 한국정부가 과거의 핵 관련 실험에 대해 자진신고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는 점이고,또 하나는 지난 1차 조사때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협조와 협력에 감사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연합
  • IAEA사찰단 ‘12.5㎏’ 손실경로 집중 검증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오는 19일쯤 다시 방한할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어느 부분에 조사가 집중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번 2차 조사의 대상은 1차 때처럼 서울 노원구 공릉동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와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소가 될 전망이다. 과학기술부 관계자는 “1차 조사는 우리나라가 올 2월 비준한 IAEA 안전조치 협정에 따라 신고한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이었고,2차 조사는 1차에서 미진했거나 자료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조사의 성격”이라고 말했다. ●신고내용 확인수준 예상 그러나 상당수 원자력 전문가들은 IAEA의 최근 움직임을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장흥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의 ‘심각한 우려’ 발언 등을 볼 때 IAEA가 이번 핵 관련 실험을 어물쩍 넘기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특히 이라크에서 핵무기를 찾아내지 못해 사찰능력을 의심받았던 IAEA가 오명을 씻어낼 기회로 한국을 점찍었다는 관측도 있다. 우리 정부나 IAEA가 핵실험 당시의 상황이나 보고내용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추측은 힘들지만 대체로 핵 관련 물질의 경로추적에 조사가 집중될 전망이다.특히 민간기업인 영남화학이 인광석(燐光石)으로부터 제련한 천연우라늄 약 900㎏을 원자력연구소가 사들여 얼마만큼을 언제,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면밀한 점검이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 어떤 용도로 얼마나 사용? 우리 정부는 이 가운데 700㎏은 월성 원자력발전소 연료로 사용했고 150㎏은 1982년 금속 형태로 정련해 방사선 차폐용기 제작시험 등에 사용했으나 이 과정에서 일부 폐기물이 발생하면서 12.5㎏이 줄어든 상태(134㎏)로 보관해 왔다고 이미 해명한 상태다.또 2000년에는 3.5㎏이 원자 증기 레이저 동위원소 분리법(AVLIS)을 이용한 우라늄 농축실험에 추가로 사용됐으며 여기서 0.2g의 저농축도 우라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IAEA 사찰단은 또 1982년 당시 생산된 금속우라늄의 행방,특히 폐기물 발생으로 12.5㎏이 줄어들었다는 한국정부 해명의 타당성과 이 문제가 20년간 보고되지 않은 경위 등을 당시 실험 관계자 면담 등을 통해 집중 검증할 것으로 전해졌다.이를 위해 사찰단은 지난 1차 조사에서 못했던 플루토늄 시료(試料·분석에 쓸 표본) 채취를 할 가능성이 높다.IAEA는 82년 트리가 마크Ⅲ 연구용 원자로를 이용한 연료봉 중성자 조사(照射)실험에 이어 플루토늄 추출 실험이 이뤄진 점을 중시,이 실험과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금속우라늄의 행방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옹진군 “환경단체가 미워”

    주민과 환경단체 등의 반발로 바닷모래 채취를 전면금지한 인천시 옹진군이 막대한 세수 손실로 예정사업들을 축소 또는 중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 옹진군은 14일 “해사채취 중단으로 인한 세원 감소로 올해 추경예산으로 추진할 예정이었던 수산증식사업 등의 사업을 취소하거나 규모를 축소했다.”고 밝혔다. 올해 건설교통부가 옹진군에 허가한 해사채취량은 2300t에 이르나 어민들이 반발하자 군은 1600t으로 축소했고,이 가운데 채취한 물량은 1·4분기 동안 400t에 불과하다. 군은 올해 해사채취 세수입으로 138억원의 예산을 책정했으나 지금까지 확보된 해사수입은 20억원에 불과해 118억원의 차질이 발생했다.수도권 전체 모래공급량의 60∼80%를 공급해온 옹진군은 바닷모래 채취로 인한 세수입이 연간 군 전체예산(1250억원)의 10% 이상을 차지해왔다. 때문에 군은 구멍이 생긴 118억원중 78억원을 지난달 추경에서 줄이고 나머지 40억원도 연말에 있을 정리추경에서 전액 삭감할 방침이다. 해사채취 세수입은 50%를 수산자원 조성사업에 사용하고 나머지 50%는 일반예산에 반영토록 돼 있다.군은 이미 책정됐던 치어방류사업 10억원과 전복방류 5억원,어업지도선 구조개선사업 5억원을 삭감하는 등 예산운용에 차질을 빚고 있다. 옹진군은 지난 2월부터 “해사채취로 어류자원이 감소하고 연안 해양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며 모래채취 중단을 요구하는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 6월부터 해사채취를 전면중단한 상태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IAEA “20일 한국에 사찰단”

    IAEA “20일 한국에 사찰단”

    |빈 함혜리특파원·서울 안미현기자|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한국의 우라늄·플루토늄 실험을 추가 조사하기 위해 오는 20일 사찰단을 파견할 방침이라고 IAEA의 외교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사찰단은 20일 출발,한국에 도착 후 대덕 한국원자력연구소와 공릉동 연구센터 등 과거 우라늄 추출과 플루토늄 분리 실험 등을 한 것으로 보고된 현장을 방문,환경시료 채취 등 보고서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실험 관계자나 정부 당국자들과 만날 계획”이라며 “사안에 따라 IAEA는 여러 차례에 걸쳐 사찰단을 파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IAEA측은 추가사찰단의 파견일정은 한국당국과 상의할 사안이라며 정확한 출발 시점과 사찰단의 규모 등에 대해 공식 확인을 거부했다.한국에 대한 추가사찰 결과는 오는 11월 열리는 4분기 정기이사회에 보고된다. 한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이 아직 보고되지 않은 또 다른 실험이 한국에서 실시됐다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IAEA의 관계자는 “지난 13일 이사회에 보고한 외에 다른 미신고 실험이 있었다는 발언을 사무총장이 한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앞서 13일 개막된 IAEA 정기이사회의 보고에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한국이 신고되지 않은 3개 시설 중 한곳에서 80년대 150㎏의 금속우라늄(natural uranium metal)을 생산했으며 이 가운데 일부가 2000년 레이저동위원소분리법(AVLIS)으로 농축우라늄 0.2g을 제조하는데 사용됐다.”고 밝혔다. 이 부분은 우리 정부가 우라늄 농축실험과 플루토늄 추출실험 등 2건의 실험에 대한 해명과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다. 빈에 파견된 과기부 조청원 원자력국장은 이에 대해 “금속우라늄은 당시 핵연료 국산화 차원에서 0.02%의 우라늄을 함유하고 있는 인광석으로부터 천연우라늄을 추출해 이를 실험재료인 금속우라늄으로 전환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시험생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조 국장은 “당시 인광석으로부터 천연우라늄 800㎏정도를 생산해 대부분은 월성 원전용 핵연료로 사용했으며,이 중 남은 물량을 변환해서 금속우라늄을 만들었다.”며 “2000년 실험에 사용된 것과 손실분을 제외한 134㎏의 금속우라늄은 현재 원자력연구소가 보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기부는 지난 8월의 IAEA 보고를 앞두고 총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금속우라늄의 존재가 드러남에 따라 이를 지난 7월 IAEA에 신고,IAEA사찰단도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실시한 원자력연구소에 대한 조사에서 확인했다고 조 국장은 밝혔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언급한 ‘신고되지 않은 3개 시설’은 수입 인광석으로부터 천연우라늄을 생산한 시설,천연우라늄을 금속우라늄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이 진행된 시설을 지칭하는 것으로,이 시설들은 이미 폐기됐으며 IAEA사찰단도 지난번 조사에서 이를 확인했다.금속우라늄은 비료의 원료인 인광석에서 이산화우라늄(UO(F)·분말형)→사불화우라늄(UF(H)·분말형)을 거쳐 만들어지며 AVLIS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시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금속우라늄의 시험생산은 초창기 과학자들이 실시한 핵연료 연구의 일환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지난 80년대 전환작업을 통해 금속우라늄 150㎏을 생산하고 이를 2000년 우라늄 농축에 사용한 점 ▲플루토늄 추출 사실을 IAEA 사찰단의 정황표본 추출 후에야 보고한 점 등을 들어 정부의 해명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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