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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래시장] 복합문화공간 인왕시장

    [재래시장] 복합문화공간 인왕시장

    장도 보고 미술작품도 감상하고,음악공연도 구경하고….백화점 얘기가 아니다.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시장은 주민이 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지난해 새로 지붕을 얹고 바닥을 정비해 ‘시설의 현대화’를 이루었고,이번달부터 상인들이 친절교육을 받고 미술전시회도 마련해 ‘서비스의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홈페이지 마련 인터넷 주문도 받아 홍제3동 800여평 규모의 인왕시장은 1972년부터 지난해까지 여느 시장과 다름없는 전통 재래시장이었다.인근에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이 없는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시장을 찾는 주민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단지 싸다는 이유만으로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은 더 줄어들 것입니다.” 인왕시장을 관리하고 있는 대현흥업주식회사 부사장 김경환(51)씨는 소비자의 욕구가 변해가고 있음을 인정했다.“상인들과 ‘변해야 산다.’는 공감대를 이루어 시설도 바꾸고 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바꾸니까 시장이 다시 살아나더군요.” 야채를 파는 골목은 길을 넓혔고,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음식가게를 한군데로 모아 위생 시설을 강화한 ‘음식부’로 개편했다.“시장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주문을 받아 배달 서비스도 하고,물건에 이상이 있을 때는 환불도 해드릴 것입니다.” 백화점급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그는 의욕을 보였다. 운영진과 상인들의 노력으로 인왕시장은 생기를 찾았다.오전에는 물건을 떼가려는 행상 상인들로 붐비고,오후에는 반찬거리를 사거나 인왕시장 ‘별미’를 맛보러 오는 주민들로 시장이 꽉 찬다.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순대국밥집을 30년 전부터 해온 차봉순(56)씨는 “장을 보러 왔다가 순대국밥(4000원)을 먹으러 오는 가족도 있고,아예 여기서 생선구이(2000∼5000원) 안주에 소주 한잔 놓고 계모임을 하는 주민들도 생겼다.”며 “저녁 시간대에는 손이 모자라 딸까지 나와 도와야 할 정도다.”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친절교육 실시등 구청서도 적극지원 가족과 함께 손칼국수(3000원)를 먹으러 이곳에 왔다는 김양순(45·여)씨는 “예전에는 왠지 지저분한 것 같아 꺼렸는데,요새는 거의 매주 아이들과 함께 장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가니 아이들도 재미있어하고 교육에도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지역경제과 안기민(43) 주임은 “지난 일요일 상인들을 대상으로 친절강사를 불러 교육을 실시했는데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전체 150명의 상인 중 120명이나 참석했다.”며 변화하려는 상인들의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구청에서도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친절교육뿐 아니라 지역 내 초·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술작품을 공모해 시장 내에 전시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등 ‘애프터서비스’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고객들이 손꼽는 명물가게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의 봉평장터에서는 술에 거나하게 취한 장돌뱅이 허생원이 동이와 술집에서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인왕시장내 ‘닭내장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소주 1인 1병’을 아시나요 주인 정태이(62·여)씨는 아무리 음식을 많이 주문한 손님에게도 소주 1병 이상은 팔지 않는다.가게에 온 손님이 모두 좋은 기분으로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우리 바깥 양반이 문 앞에서 지키고 있다가 이미 술 드시고 온 분은 ‘다음에 오시라.’고 했어요.” 이웃 상인들은 한번 ‘그 맛’에 매료된 사람들은 해외에서 돌아오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올 정도로 맛이 ‘끝내준다.’고 입을 모았다. 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해 음식을 시켰다.“1인분에 닭 60마리의 내장이 들어있어요.”라고 말하며 정씨가 자랑스레 내놓은 ‘닭내장탕’은 꼬들꼬들하고 고소한 맛이 돋보였다.1인분에 8000원. ●윤기가 자르르,싱싱한 생선만 팝니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생선만 사세요.” 어머니를 쫓아다니다 장사를 하게된 지 벌써 20년째인 채운철(47)씨는 부인 홍정옥(46)씨와 함께 “우리 가게는 싱싱하지 않으면 절대 안 판다.”며 자신있게 말했다. 채씨 부부는 “조금이라도 신선도가 떨어진 생선을 팔면 단골손님 다 끊긴다.”며 재고는 떨이로도 안 판다고 손사래쳤다.근처에 살다가 일산이나 원당으로 이사간 단골들이 여기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일등 품질’ 때문. 요즘 제일 잘나가는 생선은 국산 병어다.마리당 4000원에서 6000원까지 있는데 하루 판매량이 20마리는 족히 넘는다고 한다.마리당 1000원에서 5000원까지 있는 오징어,5000∼8000원까지인 갈치도 모두 국산으로 인기 품목이다. 글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부처교류자 먼저 승진시킨다

    중앙부처 국장급 직위교류와 공모자에게 인사상 인센티브를 준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5명이 처음으로 승진혜택을 받게 됐다.앞으로도 다른 부처로 옮겨 근무하는 공무원에게는 승진 우선권이 주어진다.이에 따라 직위 교류제도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중앙인사위원회는 5일 “다른 부처에 파견근무 중인 국장급 교류자들에게 당초 약속대로 인센티브를 주자는 취지에서 승진 때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3급 5명 첫 혜택 다른 부처에 파견근무 중인 3급 국장들 가운데 최소 승진 소요연한인 3년을 채운 4명의 국장들을 우선 2급으로 승진시키기로 했다.인사교류를 통해 행정자치부에서 근무 중인 배국환 지방재정국장(행시 22회)과 직위공모를 통해 자리를 옮긴 국방부 남동균 계획예산관(행시 23회),행자부 이창구 조직혁신국장(행시 21회),농림부 서병훈 농촌개발국장(행시 22회)이 최근 열린 인사위원회 심사에서 승진이 확정됐다. 또 조달청에서 근무하다 직위공모로 교육부로 옮긴 이종갑 대학지원국장(행시20회)도 7일 심사를 거쳐 승진시키기로 했다. 현재 중앙부처 3급에서 2급으로 승진하는 데 소요되는 최소근무연한은 3년이지만 평균적으로는 4년 4개월 정도 걸린다. 인사위 김명식 기획관리관은 “교류와 직위공모자는 특별한 흠이 없으면 3년만 지나면 승진혜택이 주어질 것”이라며 “지금까지 정부의 파견자 관리지침에는 파견 중에는 승진을 시키지 못하도록 했으나 이번엔 예외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해당 직위가 복수직급이기 때문에 정원과는 관련이 없다. 인사위는 이와 함께 아직 3년 소요연수가 되지 않은 4명의 3급 국장들도 기한이 되면 모두 심사절차를 거쳐 승진시키기로 했다.2급 국장은 1년간 업무성과를 평가해 1급 승진 때 우선권을 주고,정무직 발령 때도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부처간 교류를 과장급까지 확대하고,파견 국장이 내부 인사전보권을 갖도록 제도를 보완하기로 했다. ●중앙-지방간 교류도 확대 행자부는 이날 산업자원부 구미협력과 정경배(45·5급)씨와 인천시 국제통상투자과 김충진(33·5급)씨를 맞교환하는 등 중앙과 지방간 8개 직위 16명에 대한 교류인사를 단행하고,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행자부는 이에 앞서 지난 4월 17개 직위 34명에 대해 교류를 했으며,올 9월까지 40개 직위 80명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윔블던테니스] 17세 요정 샤라포바 ‘윔블던 여왕’ 등극

    고향을 떠난 지 꼭 10년.처음으로 윔블던 결승 코트에 선 ‘시베리아 요정’의 라켓이 불을 뿜었다. ‘그랜드슬래머’ 세레나 윌리엄스(23·미국)의 폭발적인 스트로크에 한 치도 물러섬 없이 송곳 백핸드로 받아치는 그의 오른팔은 요술에 걸린 듯했다. 40-15 챔피언십 포인트에서 상대의 공이 그물에 걸리는 순간 17세의 ‘요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코트에 주저앉았고,센터 코트를 가득 채운 1만 3000여명의 팬들은 ‘새 여왕’의 탄생을 기립박수로 축하했다. 러시아의 마리아 샤라포바(13번 시드)가 4일 영국 윔블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벌어진 올 시즌 세번째 메이저인 윔블던테니스(총상금 970만 7000파운드) 여자 단식 결승에서 톱시드의 세레나 윌리엄스(미국)를 2-0으로 완파하고 첫 메이저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상금은 56만 500파운드(약 11억 8000만원). 지난 2001년 프로에 입문,지난해 호주오픈을 시작으로 메이저대회에 발을 들인 샤라포바는 이로써 메이저 7번째 도전만에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17세의 샤라포바는 또 이 대회 역대 세번째 최연소 우승자로도 이름을 남겼다.1887년 영국의 로티 도드가 15세로 가장 어렸고,‘알프스 소녀’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가 97년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는 16세였다. 남녀를 통틀어 러시아선수가 윔블던 패권을 차지한 것도 127년 대회 사상 처음.러시아는 또 지난 5월 프랑스오픈에서 아나스타샤 미스키나(세계 3위)의 우승에 이어 메이저대회 여자단식을 거푸 휩쓸며 테니스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첫 세트를 6-1로 가볍게 따낸 샤라포바는 2세트에서는 세레나에게 첫 게임을 내주며 주춤했다.그러나 게임스코어 4-4의 팽팽한 상황에서 3차례나 듀스 접전을 벌인 끝에 세레나의 게임을 브레이크,승기를 잡은 샤라포바는 이어진 자신의 서비스게임에서 강력한 에이스까지 곁들이며 상대 코트를 공략,1시간12분만에 대회 3연패를 노리던 세레나를 침몰시켰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현대문학 창작선 최일남 ‘석류’ 김채원 ‘지붕밑의…‘

    현대문학사가 발행하는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이 내년 1월이면 창간 50돌을 맞는다. 현대문학사는 현존하는 월간 문예지 가운데 최장수라는 양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내용면에서 알찬 내실을 다져왔음을 확인하듯 최근 의욕적인 기획물을 내놓기 시작했다.그 가운데 하나가 ‘현대문학 창작선’으로,1차로 펴낸 창작집의 주인공이 중견 작가 최일남과 김채원씨 등 내로라 하는 작가들이어서 눈길을 끈다.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작품으로 빚는 방식이 다른 두 작가의 창작집 ‘석류’와 ‘지붕 밑의 바이올린’의 세계로 들어가본다.산전수전 다 겪은 원로의 해학에 낄낄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석류’)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단추를 꼬옥 채운 채 끝없이 본원의 세계를 동경하는 ‘내면의 열정’도 맛볼 수 있다. ●‘석류’ 곰삭은 해학미 속도는 더디지만 읽을수록 곰삭은 맛이 우러나는 작품으로 인상지어진 작가가 4년 만에 낸 13번째 창작집.2001년 이후 쓴 7편의 중단편에 97년에 쓴 작품 1편을 보탠 것으로,세상을 그리는 작가의 해학과 넉넉함이 그득하다.구체적으로 작가는 가는 것과 오는 것을 비교하면서 애잔한 심정을 들려준다.세상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대서사(代書士) 부자의 운명을 다룬 ‘명필 한덕봉’,미국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서울의 변모와 ‘우리’보다는 ‘나’를 중시하는 개인주의로의 변화 과정을 그린 ‘돈암동’ 등에서 작가의 연륜은 빛난다. 작가는 또 ‘소주의 슬픔’에서 친구를 하관한 뒤 묘 앞에서 술문화의 변천사를 들려주는가 하면 가난했던 지난 날을 돌이키는 표제작에서는 이른 죽음을 감지한 듯 정서적으로 조숙했던 누이가 죽기 전 ‘석류가 먹고 싶다’고 하자 한겨울에 석류를 구해준 어머니의 깊은 회한을 아련하게 되살린다. ●‘지붕 밑의‘ 끝없는 본원 탐구 지난해 마무리한 연작소설집 ‘가을의 환’이 보여주듯 김채원의 작품세계는 모호한 현실과 삶에 대한 생래적이고 막연한 두려움으로 집약된다.그러면서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근원에의 탐색을 시도하는 특징을 갖는다. 최근까지 발표한 11편의 작품을 모은 이번 창작집도 그 연장선에 있다.실체없는 삶과 현실에 직면한 소설속 주인공들은 당연히 갈증을 느낀다.본원이 여기가 아닌 어디,이것이 아닌 저것이 있으리라 여기며 끝없이 방황하거나(‘바다의 거울’) 무기력한 자신에게서 끊임없이 벗어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자정 가까이’). 그러나 작가는 이들에게 명쾌한 대답을 주는 대신 허무와 맞닥뜨리게 만든다.비록 힘들지 모르지만 그 세계에서 힘을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세상이란 어차피 “남과 같은 자기를 안고 몸부림치는 곳”이기에(‘푸른 미로’),또 저마다의 고통으로 앓고 있기에 다가서는 것 자체로 고통이 될 지도 모른다.그래서 작가는 ‘인 마이 메로미’‘봄날에 찍은 사진’속 주인공들처럼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자기만의 공간’을 지니면 세상을 헤쳐갈 길이 보일 지 모른다고 속삭인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불황 가요계 발라드만이 살길?

    ‘음반시장 불황에도 발라드는 먹힌다?’ 여름은 보통 댄스나 힙합이 강세인 계절이지만 발라드가 여전히 각종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음반판매량을 집계하는 인터넷 사이트 한터의 6월 둘째주 차트를 보면 20위권에 성시경,박효신,팀,김범수,김형중,이수영,JK김동욱,플라워 등 발라드 가수가 절반 정도 포진해 있다.한국 가요 시장의 ‘발라드 강세’,문제는 없는 걸까. ●로커가 발라드 가수로 변신? 요즘 웬만큼 가창력이 있다 싶으면 발라드 가수로 키워진다.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테이는 언더그라운드 로커 출신이다.길거리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가 인터넷에 올랐고,한 기획사가 캐스팅해 발라드 가수로 승부수를 띄웠다.지난달 마야·JK김동욱의 쇼케이스에 모습을 비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신인가수 후도 출발은 로커.뛰어난 가창력에 눈독을 들인 기획사에서 발탁,역시 발라드로 채운 음반을 9월중 선보일 예정이다.마케팅도 ‘조성모 같은 발라드’에 초점을 맞췄다. 기획사에서 발라드 가수를 키우는 건 “그래도 발라드는 먹힌다.”는 인식 때문이다.음반판매량 순위에서 발라드·댄스·힙합 이외의 다른 장르는 찾아볼 수 없는 데다,외모·춤·엔터테이너로서의 기질을 가진 3∼4명 이상을 발굴해야 하는 댄스 가수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 발라드 가수는 매력적인 타깃일 수밖에 없다.서울 엔터테인먼트 류호원 팀장은 “주기를 많이 타는 댄스가수보다는 장기적으로는 발라드 가수를 키우는 것이 낫다.”면서 “발라드는 그나마 음악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일한 장르”라고 말했다. ●발라드 끼워넣기는 기본 발라드를 표방한 음반이 아니더라도 한두 곡 정도 끼워넣는 건 기본이다.‘담백하라’로 인기를 얻고 있는 Mr.Kim(김태욱)의 음반에 담긴 ‘너였구나’‘사랑 그 설레임’등은 로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아름다운 발라드 곡이다.댄스그룹들도 음반에 R&B풍의 발라드 몇 곡을 삽입하는 것이 대세다.흥겨운 애시드 솔을 표방한 12인조 밴드 커먼 그라운드는 데뷔앨범에서 ‘Without U’‘소금사탕’등 두곡의 감미로운 발라드를 삽입했다.JNH 이주엽 실장은 “음악적 변절이 아닌 범위에서 몇곡 정도는 대중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다양한 음악 살리려면 “음반을 제작하는 것 자체가 모험”이라는 대중음악업계의 자조섞인 말처럼 요즘 음반시장의 상황은 최악이다.게다가 돈을 주지 않고 다운받아 음악을 듣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에서,그나마 음반 구매력이 있는 20∼30대가 발라드를 선호하고 있어 발라드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록음반을 발매한 K2의 김성면은 “음악을 다운받아 듣는 것이 일반화되면 다양한 음악들을 만들 수 없는 풍토가 돼 대중음악계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은 그 피해가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천편일률적인 발라드의 양식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는 “R&B 느낌의 창법,드럼머신의 비트,뻔한 가사 등 비슷한 노래들이 복제되다시피 하는 현상이 문제”라면서 “음반시장의 불황을 뚫기 위해서는 소극적인 전략에서 벗어나 가요계 전체의 움직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어른을 위한 동화] 치타를 위한 진혼곡

    ●치타의 이야기 나는 가만히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본다.이런 내 모습을 보면 표범,넌 또 뭐라고 할까? 어느날 내가 먹을 만큼 먹고 사냥한 고기에서 물러나자,독수리 떼들이 앞을 다투어 그 먹이에 달려들으며 하는 말을 들었다. “아,글쎄 사자들 치사한 것 좀 봐.배가 빵빵해져서 더 이상 한 입도 먹지 못하면서도 한사코 우리를 쫓아내려 드는 거야.거기에 비하면 저 치타는 정말….” “그러게나 말이야.결국은 잠이 들어 버리더구만.”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그래.난 먹이를 남겨두었다가 다시 먹는 일을 싫어한다.아니,내 손으로 얻은 갓 잡은 고기가 아니면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게다.그것은 냄새 때문이다.먹이에서 나는 냄새.훔치거나 구걸한 고기에서는 냄새가 난다.대개 조금씩 부패해 가는 중인 그 먹이에서는 어둠 냄새가 난다.축축하고 끈적거리고 또 어느 만큼은 매캐하기도 한,그런 냄새가. 그 냄새는 때때로 내가 구한 먹이에서도 난다.내가 두고두고 내 배만 채우자고 욕심을 부릴 때는,영락없이 그 냄새가 나보다 먼저 와 있다.난 도저히 그 냄새를 견딜 수가 없다.바람이 일기 시작한다.뱃속이 비었다.머릿속도.서둘러야겠다.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사냥을 마쳐야 할 테니.이 말을 들으면 넌 또 한마디 짚고 넘어가겠지? ‘어째서 남들은 일부러 기다리는 밤 사냥을 하지 않겠다는 거냐? 무슨 배짱이냐?’ 글쎄,잘 모르겠다.아무튼 난 먹이를 구하는 일에 어둠을 이용하거나 술수를 쓰고 싶지는 않다.절대로 그런 식으로는 목숨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목표물을 정하고,그 목표물을 향해 전력 질주를 하고,그뿐이다.난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어찌됐든 이젠 정말 서둘러야 한다.아,마침 잘됐다.저기 떼지어 달아나는 가젤영양들 중에 한마리를 고르자.그래,저기 오른쪽에서 세번째 녀석이 좋겠다.목표물이 정해지자마자,나는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린다. 달려라,달려! 나는 내닫는다.죽을 힘을 다해.아,좋다.나는 이처럼 목표물을 정하고 그 목표물을 향해 온몸을 던지듯 달리는 일이 정말 좋다.슉,슉,슉.양쪽 귀밑에서 바람이 갈라진다.아,난 그대로 바람이 된다.나는 느낀다.‘살아있슴’을 온몸으로 느낀다.세포 하나하나가 터질 듯 충만하다. 두두둑 두두둑.가젤영양들도 달린다.마른 먼지가 솟구친다.두두둑 두두둑 가젤영양의 발굽소리와 터질 듯한 내 심장의 고동소리가 귀를 가득 채운다.온몸이 쩌릿쩌릿하다. 두두둑 두두둑 둥둥둥둥 둥둥둥둥 아,실패다! 시간이,시간이 없다.숨이 차 오른다.가슴이 점점 옥죄여 온다.삼십 미터,사십 미터,오십 미터.….힘들다.이제 더 이상 달릴 수 없다.가슴이,가슴이 폭발해 버릴 것 같다.영양은 저만치 달아나는데 더,는,무,리,다.그래….나는 한구석에 쓰러진다.아직도 가슴은 터질 것 같고,발가락 끝 하나 움직일 힘도 없다.머리 위를 맴돌던 독수리들도 날아가고 하늘에는 불그레한 노을만 가득하다. ●표범의 이야기 자,마침내 해가 지평선에 걸려 있다.곧 어두워질 테니 이제 슬슬 일어나 움직여 봐야지? 나는 슬슬 몸을 일으킨다.어디 보자….오늘은 누가 내 저녁거리가 되어줄까.어? 마침 저기에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어린 영양들이 있다! 됐다,됐어! 이제는 평소대로 내 솜씨를 멋지게 한번 발휘하면 되겠다! 나는 우선 무대를 고른다.그래.이렇게 자리를 옮기고 얼굴을 찌푸린 다음 시작하는 거야.자,좀더! 좀더! 배를 이렇게 감싸쥐고,금방 숨이 넘어갈 듯이….그래! 옳지! 한 걸음만 더! 너희들끼리 키득거리는 것도 이제 끝이다.그 웃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아마 너희들은….그래 어서 와라,어서 와.그렇지! 그대로 조금만 더 가까이…. 나는 그중 한 녀석을 순식간에 낚아챘다.잡았다,요녀석! 껄껄껄.그러게 내가 웃을 시간이 별로 없다고 했지? 어린 영양의 살코기는 보드랍고 고소하다.음,나는 행복하다. 불쌍한 어린 것 들! 하긴 불쌍할 게 뭐 있겠어.난 중얼거린다.충고 한마디할까? 삶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더구나 경거망동은 금물이라는 것이다.내가 연기를 잘해서 진짜 아픈 것 같이 보였다 해도 그렇지,천적인 내 앞에서 방심을 하고 허점을 보이다니.더구나 건방지게 키득거려가면서.그건,커다란 실수였다.목숨과 맞바꿀 만큼 아주 결정적인 것이었지.가진 능력을 모두 활용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터에 경솔한 장난이라니! 그래서 말인데 치타,너! 내가 지금 한 말 명심해 두는 것이 좋겠다.이 충고는 너도 받아야 될 것 같으니.넌 달리는 일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 같다.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사냥법을 연출해 내지 않고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달리는 것만이 전부라는 말이냐? ‘먹이를 구하는 일에 술수나 속임수를 쓰지 않겠다? 당당하게 정공법으로 사냥을 하겠다?’그래,아주 좋은 말이다.상당히 멋진 말이고말고! 그러나,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지.그러다 굶어죽기 십상이란 말이다.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한다.아무렴! 그리고 ‘눈속임’이라는 말도 그렇다.아까 내가 어린 영양들에게 어디가 아픈 것처럼 ‘연기’를 했다.넌 그런 내 모습을 말 할 가치조차 없다고 입을 꽉 다물어 버릴 거다.하지만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냐? 그 녀석들은 분명히 치명적인 잘못을 했고,이 세상은 그런 녀석들까지 흐느적거리며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좁다.난 그렇게 확신한다. 그렇게 정신 빠진 녀석들은 어차피 누군가에게 잡아먹히게 되어있다.그게 나라고 해서 대단히 잘못된 일이냐? 살아남기 위해서 그 정도의 눈속임이 뭐가 그리 큰 문제란 말이냐? 그건 그렇고,급한 불은 껐으니 남은 것을 챙겨서 나무 위로 올라가야겠다.내가 애써 잡은 것을 공짜로 남에게 줄 수는 없다.나도 생 땀을 흘려가며 얻은 것이니까.물론 너는 이 점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할 말이 많겠지.하지만 내가 왜? 아,좋다.배도 부르고 이렇게 나무 위에 느긋하게 엎드려 있으니 참으로 세상 부러울 것이 없구나.이제 막 해는 지고,바람이 쓰다듬듯 얼굴을 간지르고 지나간다. ●다시,치타의 이야기 터질 듯 거칠던 가슴의 박동이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는다.얼마나 이러고 있었을까? 이제 곧 정말 어두워지겠구나.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그러나…. ‘그럼에도 정면으로 맞부딪치겠다.승부란 그래야 하므로….’ 나는 잠깐이나마 흔들렸던 마음을 추스리면서 가뿐하게 몸을 턴다. ‘얼룩말이다!’ 목표물을 정하자마자 나는 다시 바람처럼 내닫는다.나는 나를 아끼지 않는다.나를 온통 내던지듯 달리고 또 달린다. ●작가의 말 현란하기까지한 온갖 테크닉에 비해 슬프리만치 정직한 치타의 사냥법을 보면 자꾸만 겹쳐지는 얼굴이 있습니다.그가 치타와 함께 오늘,여기에서 메이저에 속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 [어른을 위한 동화] 치타를 위한 진혼곡

    [어른을 위한 동화] 치타를 위한 진혼곡

    ●치타의 이야기 나는 가만히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본다.이런 내 모습을 보면 표범,넌 또 뭐라고 할까? 어느날 내가 먹을 만큼 먹고 사냥한 고기에서 물러나자,독수리 떼들이 앞을 다투어 그 먹이에 달려들으며 하는 말을 들었다. “아,글쎄 사자들 치사한 것 좀 봐.배가 빵빵해져서 더 이상 한 입도 먹지 못하면서도 한사코 우리를 쫓아내려 드는 거야.거기에 비하면 저 치타는 정말….” “그러게나 말이야.결국은 잠이 들어 버리더구만.”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그래.난 먹이를 남겨두었다가 다시 먹는 일을 싫어한다.아니,내 손으로 얻은 갓 잡은 고기가 아니면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게다.그것은 냄새 때문이다.먹이에서 나는 냄새.훔치거나 구걸한 고기에서는 냄새가 난다.대개 조금씩 부패해 가는 중인 그 먹이에서는 어둠 냄새가 난다.축축하고 끈적거리고 또 어느 만큼은 매캐하기도 한,그런 냄새가. 그 냄새는 때때로 내가 구한 먹이에서도 난다.내가 두고두고 내 배만 채우자고 욕심을 부릴 때는,영락없이 그 냄새가 나보다 먼저 와 있다.난 도저히 그 냄새를 견딜 수가 없다.바람이 일기 시작한다.뱃속이 비었다.머릿속도.서둘러야겠다.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사냥을 마쳐야 할 테니.이 말을 들으면 넌 또 한마디 짚고 넘어가겠지? ‘어째서 남들은 일부러 기다리는 밤 사냥을 하지 않겠다는 거냐? 무슨 배짱이냐?’ 글쎄,잘 모르겠다.아무튼 난 먹이를 구하는 일에 어둠을 이용하거나 술수를 쓰고 싶지는 않다.절대로 그런 식으로는 목숨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목표물을 정하고,그 목표물을 향해 전력 질주를 하고,그뿐이다.난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어찌됐든 이젠 정말 서둘러야 한다.아,마침 잘됐다.저기 떼지어 달아나는 가젤영양들 중에 한마리를 고르자.그래,저기 오른쪽에서 세번째 녀석이 좋겠다.목표물이 정해지자마자,나는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린다. 달려라,달려! 나는 내닫는다.죽을 힘을 다해.아,좋다.나는 이처럼 목표물을 정하고 그 목표물을 향해 온몸을 던지듯 달리는 일이 정말 좋다.슉,슉,슉.양쪽 귀밑에서 바람이 갈라진다.아,난 그대로 바람이 된다.나는 느낀다.‘살아있슴’을 온몸으로 느낀다.세포 하나하나가 터질 듯 충만하다. 두두둑 두두둑.가젤영양들도 달린다.마른 먼지가 솟구친다.두두둑 두두둑 가젤영양의 발굽소리와 터질 듯한 내 심장의 고동소리가 귀를 가득 채운다.온몸이 쩌릿쩌릿하다. 두두둑 두두둑 둥둥둥둥 둥둥둥둥 아,실패다! 시간이,시간이 없다.숨이 차 오른다.가슴이 점점 옥죄여 온다.삼십 미터,사십 미터,오십 미터.….힘들다.이제 더 이상 달릴 수 없다.가슴이,가슴이 폭발해 버릴 것 같다.영양은 저만치 달아나는데 더,는,무,리,다.그래….나는 한구석에 쓰러진다.아직도 가슴은 터질 것 같고,발가락 끝 하나 움직일 힘도 없다.머리 위를 맴돌던 독수리들도 날아가고 하늘에는 불그레한 노을만 가득하다. ●표범의 이야기 자,마침내 해가 지평선에 걸려 있다.곧 어두워질 테니 이제 슬슬 일어나 움직여 봐야지? 나는 슬슬 몸을 일으킨다.어디 보자….오늘은 누가 내 저녁거리가 되어줄까.어? 마침 저기에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어린 영양들이 있다! 됐다,됐어! 이제는 평소대로 내 솜씨를 멋지게 한번 발휘하면 되겠다! 나는 우선 무대를 고른다.그래.이렇게 자리를 옮기고 얼굴을 찌푸린 다음 시작하는 거야.자,좀더! 좀더! 배를 이렇게 감싸쥐고,금방 숨이 넘어갈 듯이….그래! 옳지! 한 걸음만 더! 너희들끼리 키득거리는 것도 이제 끝이다.그 웃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아마 너희들은….그래 어서 와라,어서 와.그렇지! 그대로 조금만 더 가까이…. 나는 그중 한 녀석을 순식간에 낚아챘다.잡았다,요녀석! 껄껄껄.그러게 내가 웃을 시간이 별로 없다고 했지? 어린 영양의 살코기는 보드랍고 고소하다.음,나는 행복하다. 불쌍한 어린 것 들! 하긴 불쌍할 게 뭐 있겠어.난 중얼거린다.충고 한마디할까? 삶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더구나 경거망동은 금물이라는 것이다.내가 연기를 잘해서 진짜 아픈 것 같이 보였다 해도 그렇지,천적인 내 앞에서 방심을 하고 허점을 보이다니.더구나 건방지게 키득거려가면서.그건,커다란 실수였다.목숨과 맞바꿀 만큼 아주 결정적인 것이었지.가진 능력을 모두 활용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터에 경솔한 장난이라니! 그래서 말인데 치타,너! 내가 지금 한 말 명심해 두는 것이 좋겠다.이 충고는 너도 받아야 될 것 같으니.넌 달리는 일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 같다.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사냥법을 연출해 내지 않고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달리는 것만이 전부라는 말이냐? ‘먹이를 구하는 일에 술수나 속임수를 쓰지 않겠다? 당당하게 정공법으로 사냥을 하겠다?’그래,아주 좋은 말이다.상당히 멋진 말이고말고! 그러나,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지.그러다 굶어죽기 십상이란 말이다.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한다.아무렴! 그리고 ‘눈속임’이라는 말도 그렇다.아까 내가 어린 영양들에게 어디가 아픈 것처럼 ‘연기’를 했다.넌 그런 내 모습을 말 할 가치조차 없다고 입을 꽉 다물어 버릴 거다.하지만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냐? 그 녀석들은 분명히 치명적인 잘못을 했고,이 세상은 그런 녀석들까지 흐느적거리며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좁다.난 그렇게 확신한다. 그렇게 정신 빠진 녀석들은 어차피 누군가에게 잡아먹히게 되어있다.그게 나라고 해서 대단히 잘못된 일이냐? 살아남기 위해서 그 정도의 눈속임이 뭐가 그리 큰 문제란 말이냐? 그건 그렇고,급한 불은 껐으니 남은 것을 챙겨서 나무 위로 올라가야겠다.내가 애써 잡은 것을 공짜로 남에게 줄 수는 없다.나도 생 땀을 흘려가며 얻은 것이니까.물론 너는 이 점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할 말이 많겠지.하지만 내가 왜? 아,좋다.배도 부르고 이렇게 나무 위에 느긋하게 엎드려 있으니 참으로 세상 부러울 것이 없구나.이제 막 해는 지고,바람이 쓰다듬듯 얼굴을 간지르고 지나간다. ●다시,치타의 이야기 터질 듯 거칠던 가슴의 박동이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는다.얼마나 이러고 있었을까? 이제 곧 정말 어두워지겠구나.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그러나…. ‘그럼에도 정면으로 맞부딪치겠다.승부란 그래야 하므로….’ 나는 잠깐이나마 흔들렸던 마음을 추스리면서 가뿐하게 몸을 턴다. ‘얼룩말이다!’ 목표물을 정하자마자 나는 다시 바람처럼 내닫는다.나는 나를 아끼지 않는다.나를 온통 내던지듯 달리고 또 달린다. ●작가의 말 현란하기까지한 온갖 테크닉에 비해 슬프리만치 정직한 치타의 사냥법을 보면 자꾸만 겹쳐지는 얼굴이 있습니다.그가 치타와 함께 오늘,여기에서 메이저에 속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

    해가 바뀐다든가 몸이 곤곤할 때면 머리 속으로 이것만은 지켜야지,이것만은 하지 말아야지 심각하게 다짐을 하는 버릇이 있다.방학하는 날 계획표 같은 걸 벽에다 써 붙여 놓아야 안심하고 씩씩하게 나가놀던 어릴 적 버릇인 듯싶다.노년에 들어서면서 해마다 하게 되는 결심은 ‘일기를 쓰자.’라는 건데 아직도 일년을 꽉 채운 일기장이 없다.그래도 한두 달에서 서너 달,반 년을 넘긴 일기장으로 차차 쓴 기간이 길어져 가는 걸 보면 대견하다기 보다는 건망증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 것 같아 쓸쓸해지곤 한다. 건망증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서글픈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남을 위해 좋은 일 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사회정의를 위해 일신의 안일을 희생한 적도,불우한 이웃을 위해 큰 돈을 쾌척한 적도 없다.기껏해야 남에게 폐나 안 되게 살려고 전전긍긍 옹졸하게 살았다.마음으로 할 수 있는 남의 슬픔조차 나누기보다는 나의 슬픔을 위로하는데 써먹곤 했다.죽음 저편에 심판이야 있건 없건 생과 사의 경계를 건너야 하는 일은 무섭고,조금이라도 덜 무섭게,조금 더 욕심을 부려 편안하게 건너고 싶다면 죽음 자체가 엄혹한 심판일 것이다.비록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은 못했을망정 해라도 덜 끼쳐야지 작심하게 된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같이 살던 아이들을 내보내고 홀로 생활하게 되면서 직접 하게 된 일중 가장 어려운 게 쓰레기 처리였다.혼자서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게 되니 이 많은 인구가 배출하는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갈까,국토가,지구가 신음하는 게 몸으로 느껴져 진저리가 쳐지면서 내 쓰레기라도 줄이자,작심을 했다.뭐든지 작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건 그만큼 고생길에 들어서는 일이다.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상품을 포장했던 상자에 부착한 스카치 테이프나 끈을 떼어내고 속 포장을 한 스티로폼을 따로 하고 남은 상자를 판판하게 부피를 줄이려면 요새 상자는 왜 그렇게 튼튼한지 힘에 여간 부치는 게 아니다. 접착력이 강한 넓은 스카치 테이프로 봉투 위에 또 하나의 봉투를 입힌 것 같은 우편물도 적지 않다.사실 이런 과잉포장은 내 뜻대로 안 되는 우편물이나 선물로 들어 오는 것들이다.쓰레기에 신경을 너무 쓰다보면 누가 딸기를 한 상자 들고 와도 딸기를 먹을 생각보다는 딸기 몇 배의 포장을 처리할 일이 버겁게만 느껴진다.선물이 선물로 보이지 않고 쓰레기로 보인다.가장 부담이 안 되는 꽃 몇 송이도 요즈음은 10ℓ 쓰레기봉투가 모자랄 정도로 겹겹으로 부풀린 망사 치마를 두르고 있다.분리해 놓으면 산더미만 해질 것을 생각하면 과대포장 안하기 운동에 나서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만약 그 운동이 성공하면 포장 업체는 다 망하고 말테니 안 되겠구나,망사치마 두른 꽃다발 안받기 운동을 한다면 망사 만드는 업계도 그렇고,그런 솜씨를 가진 꽃 집 아가씨도 실직할 테니 그것도 안 되고,이런 식으로 체념을 해가는 것도 내 나름으로 습득한 자본주의 공부인지도 모르겠다. 지어먹은 마음이 아니라 저절로 오랫동안 지켜 온 절약정신이 하나 있는데 그건 음식물은 버려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어려서부터 농사짓기의 어려움과,곡식으로 된 것은 쉰밥도 버리지 못하고 씻어먹는 걸 보아온데서 비롯된 원초적인 죄의식 때문일 터이다.내 몫은 남의 집에서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우고,손님을 치고 남은 음식도 다 거둬들였다가 몇날 며칠을 그것만 먹다가 다 먹은 후에야 새 음식을 만드는 버릇 때문에 자식들한테 구박도 많이 받았다.엄마 몸이 쓰레기통인줄 아느냐는 혹독한 소리까지 들었다.자식들이 그러건 말건 그 버릇만은 좋은 버릇인 줄 알았는데 이 참에 고쳐야 할 것 같다. 화면이 그 끔찍함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준 탓도 있었겠지만 만두 속 만드는 과정을 보고 욕지기가 치밀면서 저런 사람 중 대표적인 한 명 정도는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살의에 가까운 혐오감을 느꼈다.그리고 먹는 거라면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이 늙은이를 자식들이나 손자들이 창피스러운 나머지 죽는 날이나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남은 음식은 지딱지딱 버리고 새로 사먹는 게 젊은 사람 마음에 드는 일도 되고 농사짓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도 된다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 내 자본주의 공부는 끝도 없어라.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

    해가 바뀐다든가 몸이 곤곤할 때면 머리 속으로 이것만은 지켜야지,이것만은 하지 말아야지 심각하게 다짐을 하는 버릇이 있다.방학하는 날 계획표 같은 걸 벽에다 써 붙여 놓아야 안심하고 씩씩하게 나가놀던 어릴 적 버릇인 듯싶다.노년에 들어서면서 해마다 하게 되는 결심은 ‘일기를 쓰자.’라는 건데 아직도 일년을 꽉 채운 일기장이 없다.그래도 한두 달에서 서너 달,반 년을 넘긴 일기장으로 차차 쓴 기간이 길어져 가는 걸 보면 대견하다기 보다는 건망증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 것 같아 쓸쓸해지곤 한다. 건망증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서글픈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남을 위해 좋은 일 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사회정의를 위해 일신의 안일을 희생한 적도,불우한 이웃을 위해 큰 돈을 쾌척한 적도 없다.기껏해야 남에게 폐나 안 되게 살려고 전전긍긍 옹졸하게 살았다.마음으로 할 수 있는 남의 슬픔조차 나누기보다는 나의 슬픔을 위로하는데 써먹곤 했다.죽음 저편에 심판이야 있건 없건 생과 사의 경계를 건너야 하는 일은 무섭고,조금이라도 덜 무섭게,조금 더 욕심을 부려 편안하게 건너고 싶다면 죽음 자체가 엄혹한 심판일 것이다.비록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은 못했을망정 해라도 덜 끼쳐야지 작심하게 된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같이 살던 아이들을 내보내고 홀로 생활하게 되면서 직접 하게 된 일중 가장 어려운 게 쓰레기 처리였다.혼자서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게 되니 이 많은 인구가 배출하는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갈까,국토가,지구가 신음하는 게 몸으로 느껴져 진저리가 쳐지면서 내 쓰레기라도 줄이자,작심을 했다.뭐든지 작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건 그만큼 고생길에 들어서는 일이다.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상품을 포장했던 상자에 부착한 스카치 테이프나 끈을 떼어내고 속 포장을 한 스티로폼을 따로 하고 남은 상자를 판판하게 부피를 줄이려면 요새 상자는 왜 그렇게 튼튼한지 힘에 여간 부치는 게 아니다. 접착력이 강한 넓은 스카치 테이프로 봉투 위에 또 하나의 봉투를 입힌 것 같은 우편물도 적지 않다.사실 이런 과잉포장은 내 뜻대로 안 되는 우편물이나 선물로 들어 오는 것들이다.쓰레기에 신경을 너무 쓰다보면 누가 딸기를 한 상자 들고 와도 딸기를 먹을 생각보다는 딸기 몇 배의 포장을 처리할 일이 버겁게만 느껴진다.선물이 선물로 보이지 않고 쓰레기로 보인다.가장 부담이 안 되는 꽃 몇 송이도 요즈음은 10ℓ 쓰레기봉투가 모자랄 정도로 겹겹으로 부풀린 망사 치마를 두르고 있다.분리해 놓으면 산더미만 해질 것을 생각하면 과대포장 안하기 운동에 나서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만약 그 운동이 성공하면 포장 업체는 다 망하고 말테니 안 되겠구나,망사치마 두른 꽃다발 안받기 운동을 한다면 망사 만드는 업계도 그렇고,그런 솜씨를 가진 꽃 집 아가씨도 실직할 테니 그것도 안 되고,이런 식으로 체념을 해가는 것도 내 나름으로 습득한 자본주의 공부인지도 모르겠다. 지어먹은 마음이 아니라 저절로 오랫동안 지켜 온 절약정신이 하나 있는데 그건 음식물은 버려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어려서부터 농사짓기의 어려움과,곡식으로 된 것은 쉰밥도 버리지 못하고 씻어먹는 걸 보아온데서 비롯된 원초적인 죄의식 때문일 터이다.내 몫은 남의 집에서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우고,손님을 치고 남은 음식도 다 거둬들였다가 몇날 며칠을 그것만 먹다가 다 먹은 후에야 새 음식을 만드는 버릇 때문에 자식들한테 구박도 많이 받았다.엄마 몸이 쓰레기통인줄 아느냐는 혹독한 소리까지 들었다.자식들이 그러건 말건 그 버릇만은 좋은 버릇인 줄 알았는데 이 참에 고쳐야 할 것 같다. 화면이 그 끔찍함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준 탓도 있었겠지만 만두 속 만드는 과정을 보고 욕지기가 치밀면서 저런 사람 중 대표적인 한 명 정도는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살의에 가까운 혐오감을 느꼈다.그리고 먹는 거라면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이 늙은이를 자식들이나 손자들이 창피스러운 나머지 죽는 날이나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남은 음식은 지딱지딱 버리고 새로 사먹는 게 젊은 사람 마음에 드는 일도 되고 농사짓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도 된다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 내 자본주의 공부는 끝도 없어라.˝
  • [부동산 in]‘청약관행’ 바꾼다

    장롱 속 아파트 청약통장을 다시 꺼내보자.급변하는 청약시장 환경에 맞춰 아파트 청약전략을 점검하고 다시 짜야 할 것 같다.하반기부터 주택공급제도가 확 바뀌면서 청약통장·가입액·보유기간 등에 따라 청약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우선 공공택지 공급 방식이 변한다. 모든 택지를 추첨 경쟁으로 공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25.7평 초과 아파트 부지는 채권입찰제 도입이 확실시된다.25.7평 이하 아파트는 원가연동제를 통해 분양가 규제가 이뤄진다. ●최고 수혜자는 무주택우선공급 대상 주택공급제도 변화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은 무주택우선공급자.청약 1순위 통장을 갖고 있는 사람 중에서 만 35세 이상,5년 이상 무주택가구주는 일단 느긋하게 움직이는 것이 유리하다.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75%에 해당하는 물량이 무주택우선공급 대상자의 몫이다.우선 청약에서 떨어지면 일반 청약에서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 싼 값에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분양가를 표준건축비와 땅값에 연계해 책정하는 원가연동제가 적용된다.분양가를 정부가 직접 규제한다는 것이다.택지도 채권입찰제 적용 대상에서 빠진다. 지금처럼 싼값에 택지를 공급받아 저렴한 분양가 혜택을 누릴 수 있다.채권입찰제를 실시하는 25.7평 초과 아파트와 비교해 평당 분양가격이 저렴하다는 얘기다.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차익은 더 커진다.그래서 유망 택지지구 아파트 당첨은 ‘로또 당첨’으로 통한다. 때문에 절대로 통장을 헛되게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원하는 택지지구 아파트가 나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판교·동탄 신도시 아파트 공급을 기다렸다가 청약할 것을 권한다. 건교부는 판교 신도시 25.7평 이하 아파트 평당 분양가를 700만∼800만원대로 보고 있다.하지만 분당 신도시 아파트값은 평당 1400만∼1500만원을 호가한다.판교 등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청약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대형 아파트는 채권입찰제 시행 전에 청약 국민주택규모 이하 아파트를 청약할 수 있는 300만원짜리 통장 가입자는 무주택우선공급 대상자와 같이 신도시 25.7평 이하 아파트 청약에 도전할 것을 권한다.무주택우선청약자에게 75%가 배정돼 비록 당첨 기회는 비좁지만 아파트 분양가는 무주택자와 마찬가지로 싸기 때문이다. 문제는 치열한 청약경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무주택우선공급 대상자에 치여 청약기회를 놓친 일반 1순위자들이 대거 청약에 참여할 것이 뻔하다. 청약통장 증액으로 중대형 아파트 청약에 도전하면 치열한 청약경쟁은 조금 벗어날 수 있다.하지만 중대형 아파트 부지는 채권입찰제가 적용돼 분양가 인상이 필연적으로 따르므로 통장 증액은 판교 등 시세차익이 ‘보장’된 유망 택지지구 아파트 청약을 노리는 경우만 해당하는 전략이다. 중대형 아파트 청약이 가능한 청약통장 가입자는 채권입찰제 시행 전에 분양받는 것이 낫다.화성 동탄,고양 풍동 등에 청약하는 것도 괜찮다. ●청약저축통장 가치 올라간다 청약통장 가입자는 도시 주변 그린벨트를 풀고 공급하는 25.7평 이하 공공 분양 아파트를 노려볼 만하다.송파 마천지구,강남 세곡지구 등 국민임대주택단지에도 일반 분양 아파트가 40% 정도 들어선다.이중 주공이 내놓는 공공분양 아파트를 노리면 큰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다. 당장 분양받을 형편이 안되는 청약저축 가입자는 국민임대주택으로 눈을 돌려 잠시 숨을 고르는 전략도 있다.임대아파트라고 해서 과거 영구임대 아파트처럼 비좁거나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내집 마련의 ‘징검다리’로 이용하기에는 최고다. ●단기 투자는 금물 당첨 이후 입주와 동시에 팔아치워 차익을 얻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분양가 원가연동제 실시와 동시에 입주 후 일정 기간 전매를 규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적어도 3년 보유,1년 이상 거주 요건을 채운 뒤 전매를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해보자 실내정원

    1바구니 밑바닥에 부직포를 깔고 그 위에 배수판을 얹는다 2 그 위에 다시 부직포를 덮는다 3 흙을 바구니의 4분의3가량 채우고 큰 식물부터 심는다 4 작은식물,꽃식물 등으로 마무리하면서 흙을 더 채운다 5 마사토나 바크로 흙을 덮어서 수분손실을 막는다 6 식물에 물을 흠뻑 준다.꽃에 직접 물이 닿지 않게 주의한다 ˝
  • 쉬어가기˙˙˙

    2개월 앞으로 성큼 다가온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각국 선수단이 아테네의 ‘살인적인 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미국 ABC뉴스는 각국 선수단이 냉각 젤로 채운 조끼 착용,경기 직전 얼음물에 손 담그기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할 계획이라고 보도.캐나다의 한 스포츠의학 관계자는 “경기 전에 워밍업을 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오히려 경기 전에 몸을 식히는 작업을 해야 할 판”이라고 설명.올림픽 기간 아테네의 기온은 섭씨 37도까지 치솟을 전망이라고.˝
  • [환경엄마 김수영의 건강한 밥상] 아이들 생일상 패스트푸드는 이제 그만

    자녀들이 같은 반 아이들과 제법 친해진 요즘,주말이면 아이들 생일잔치가 이어진다.앙증맞게 만든 초대 카드를 돌리고,초대받은 아이들은 조그만 선물을 준비해서 생일을 맞은 아이집을 찾는다.학원 때문에 반 친구들과 같이 모여 노는 시간이 많지 않기에,많은 아이들이 친구들의 생일날 놀러 가는 것을 반기는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음식이다.차리는 음식들이 거의 비슷하다.김밥,닭튀김,피자,콜라,탕수육,군만두,초콜릿,과자,그리고 생일케이크….대부분이 패스트푸드이고 인스턴트식품이다. 물론 이유는 있다.10여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혼자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또 피자나 닭튀김을 내놓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하고 생일상을 잘못차렸다는 얘기를 듣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생일잔치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을 축하하고 앞으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자리이다.그런데 그런 날 오히려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음식으로 상을 채운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또 부모의 역할이 음식 주문을 위해서 전화 몇 통 하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것 역시 문제다. 조금만 신경 쓴다면 아이에게는 특별하고,친구들에게는 색다른 생일상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가장 먼저,생일상의 꽃인 생일케이크만 해도 ‘산뜻한 변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케이크 대신 떡으로 차리는 것이다.물론 떡집에 하루 전쯤에 주문을 해야 한다.호두가 들어 있는 수수찹쌀떡,호박찰편 등 종류가 케이크 이상으로 다양하며,모양도 예쁘다.산뜻한 생일떡 위에 촛불을 밝히면 특색 있고,우리의 전통도 살아날 것이다. 또 다르게는 생활협동조합(생협) 케이크를 올려놓는 방법도 있다.이 역시 2∼3일 전에는 주문을 해야 한다.그러면 생크림 범벅도 아닐 뿐더러 수입 밀가루가 아닌 국산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케이크를 아이 생일상 위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역시 생일잔치에서 소외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아이 친구들에게 엄마의 존재를 알려주는 방법으로 요리 한 두 가지 정도는 직접 해서 내놓는 것이 좋다.찹쌀만 미리 불려놓으면 약식 만드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 않아 김밥 대용으로 손색이 없다.밖에서 떡볶이를 주문하여 내놓기도 하는데,이 대신 떡볶이떡을 넣어 만든 떡잡채나 조랭이떡으로 맵지 않게 만드는 궁중식 떡볶이를 내놓아 보자.훨씬 풍성한 느낌을 주고 아이들 입맛을 돋울 것이다. 음료수 역시 마찬가지다.콜라,사이다를 내놓기보다 집에서 만든 현미식혜나 생협에서 나오는 야채효소로 만든 차를 내놓아 보자.특색 있을 뿐더러 맛도 신선하여 콜라 찾는 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음식을 한꺼번에 잔뜩 내놓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다.과식을 하거나 편식을 하기에 알맞을 수 있다.또 정작 아이들 몸에 좋은 과일을 내놓았을 때 배가 불러 먹지 못할 수도 있다.음식을 내놓기 전에 샐러드만을 먼저 내놓아 아이들이 채소를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 아이에게 특별한 생일을 만들어준다고 차리는 피자나 닭튀김이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이 생일상을 점령하면서 건강과 함께 독특함마저도 희석되어 버린 것이다.특별한 아이에게 특별한 생일을 만들어주는 것은 오히려 특별한 음식인 패스트푸드를 멀리하는 것이다. 친구 생일에 초대받았던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내 생일에도 생일떡 해줘요.”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아이 생일상으로 인해 올바른 먹거리가 널리널리 퍼져나가게 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김순영씨는 YMCA와 경실련 등에서 일한 시민운동가이며,지금은 환경정의 이사로, 특히 우리의 전통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 음양오행식으로 건강 지키자

    “봄은 오행에서 목(木)에 해당하지요.이럴 땐 녹색이나 푸른색의 산나물이 간에 좋아요.” 서울 세곡동 4거리에서 판교쪽으로 500여m를 가다보면 하얀색 건물이 나온다.녹음이 짙은 은행나무와 개나리 사이에 6각형 모양의 건물,‘서원’이란 한정식 전문점이다.‘오행음식 주창자’ 최영숙(52)씨는 “우리 음식에는 음양오행에 바탕을 둔 동양철학이 스며들어 있다.”고 강조했다. “좀 있으면 여름인데요,어떤 게 좋은 음식일까요.”라고 찔러봤다. “여름엔 보리밥이 좋지요.보리는 한겨울 동지 무렵에 뿌리를 내려 음의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는데,양의 기운이 가득한 여름에 딱맞아요.”즉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한정식을 오행에 맞는 요리를 만드는 좀 특별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오곡(벼·보리·콩·조·기장)을 중심으로 단맛은 토(土),신맛은 목(木),쓴맛은 화(火),매운맛은 금(金),짠맛은 수(水)에 해당하지요.”색상으로 보면 노란색은 토,푸른색은 목,붉은색은 화,흰색은 금,검은색은 수에 해당된다. 음식의 색상이나 맛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까닭이다.신맛은 간장에,매운맛은 폐에,쓴맛은 심장에,짠맛은 신장에,단맛은 비장에 각각 작용을 해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오행체질에 맞는 식생활은 맛뿐 아니라 건강과 장수까지 보장할 수 있다. 그가 이처럼 나름대로 오행음식을 고집하게 된 것은 한학을 공부하면서 비롯됐다.10여년 전,한학과 다도를 배우다가 깨우친 음양오행론을 음식에 적용시켜 봤다.“음식에 올리는 다섯가지 고명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오행이 다 들어 있어요.”우리 음식을 재발견한 계기란다. 그는 반상·그릇·수저 등으로 이루어진 한식 상차림에도 음양 오행 사상이 내재한다고 설명했다.즉 반상의 다리가 4개인 것은 사방(四方)과 땅인 음(陰)을 상징한다.“둥근 형태의 그릇은 양으로,그릇에 담긴 음식을 통해 하늘의 양기를 몸에 받아들이고자 하는 뜻이지요.”또 둥근 숟가락 한 개는 양이고,젓가락 두 짝은 음으로,수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재질로 볼 때 반상은 나무이며,수저와 그릇은 금·은·유기 등의 쇠나 흙으로 만든 것이고,간장·국·찌개·동치미 등은 수기(水氣),어육은 불에 굽거나 찐 것으로 화기(火氣)가 포함되어 있다.이렇듯 상차림 하나에도 음양 오행 사상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식은 수치화나 계량화가 아닌 감각’이라고 강조했다.“우리가 어머니나 할머니로부터 어깨 너머로 음식을 배울 때 들은 ‘한 움큼,수북이,넣는둥마는둥,조금’등의 말을 어떻게 계량화,수치화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그래서 조리법 작성을 가장 어려워한다. “김치를 담글 때 절일 소금도 시기별로 다릅니다.”가을배추나 여름배추,봄배추 모두 수분 함량이 달라 소금의 양도 달라야 된다. 그러면서 그는 그 자리에서 요리과정을 보여줬다.“오행음식은 특별한 비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철 음식을 제때에 먹는 것”이라고 말하더니,텃밭에서 민들레를 한 움큼 뜯어와서는 흐르는 물에 씻은 후 찬물에 잠깐 담갔다.큰 바가지에 간장과 식초를 붓더니 설탕과 소금·고춧가루를 약간 넣었다.그리곤 바가지에서 민들레를 맨손으로 조물조물 무쳐냈다.‘민들레 겉절이’였다.분량을 재거나 간이 맞는지 맛을 보는 일도 없었다.“음식 맛이 손끝에서 나오는데,요즘 주부들은 비닐 장갑을 끼고 나물을 무쳐.그래서 무슨 맛이 나겠어.”라고 한마디를 더하면서. 사실,우리 음식은 손이 많이 가고,정성이 많이 들어간다.“여유로움이나 기다림의 미학이 있지요.된장·김치·젓갈뿐만 아니라 장아찌도 수 년씩은 묵어야 짠맛이 죽고,제맛이 납니다.” 그는 슬로푸드로 저장음식을 권한다.무·감·매실·깻잎·콩잎·가죽나물 장아찌 등 20여가지의 장아찌를 갖고 있다.“무 장아찌가 7년 됐는데,다른 장아찌도 보통 5년씩은 곰삭았지요.오래 숙성될수록 맛이 깊어요.” 발효·저장음식은 음식이상의 의미를 갖고있단다.“어머니가 장아찌를 담그면서 깻잎은 큰아들 주고,감 장아찌는 둘째아들 주고…,이런 정이 담겨 있지요.물론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지혜였겠지만.” 웰빙을 추구하는 요즘,동양철학이 스며든 그의 오행음식과 발효·저장음식은 더욱 돋보인다. 글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서원(031-723-7120)은 한 끼에 한 팀만 예약받는 한정식 전문점이다.음양오행론을 음식에 적용하는 최영숙씨가 모든 음식을 직접 조리한다.조리한 지 30분이 지난 음식은 손님에게 내지 않는 까닭에 예약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손님은 타박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냉채와 겉절이·삼색전·대합찜 등 제철 음식은 색깔별로 화려하고 재료 고유의 깊은 맛을 낸다.장아찌와 젓갈·간장게장 등 20여가지의 발효음식이 다양하고 올곧게 곰삭아 깊은 맛을 낸다.지나가는 길에 들러서는 음식 맛을 보지 못한다.알음알음으로 찾는 손님들도 최소한 1주일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 최영숙의 오행음식 요리조리 ●웰빙 삼색전 재료(4인기준) 패주 3개,칵테일 새우 16마리,말린 표고버섯(작은것) 8개,쇠고기 50g,소금·참기름·청주 약간,달걀 노른자 4개,밀가루 1컵,파슬리 적당량 만드는 법 (1)패주는 옆에 있는 막을 떼고 네 쪽이 되도록 편으로 썬뒤 소금물에 헹군다.(2)표고버섯을 뜨거운 물에 불려 꼭지를 뗀 다음 소금 (@)작은술,참기름으로 무친다.(3)쇠고기를 다진뒤 참기름과 청주를 넣고 치댄다.(4) (2)의 표고버섯 안쪽에 밀가루를 뿌린뒤 양념한 쇠고기를 채워 넣는다.(5)파슬리를 1㎝길이로 썬다.(6)패주에 밀가루와 달걀 노른자를 묻혀 중불에서 익힌뒤 뒤집어서 익힌다.(7)새우에 밀가루와 달걀을 묻혀 머리와 꼬리가 만나도록 2마리씩 전을 지지고,한 면이 완전히 익으면 뒤집어 파슬리를 올려서 살짝 익힌다.(8)쇠고기를 채운 표고버섯을 고기가 보이는 쪽에 밀가루,달걀을 묻혀서 한쪽만 익힌다. ●대합찜 재료 대합 2개,쇠고기 50g,두부 ¼모,달걀 1개,청·홍피망 ½개씩,말린 표고버섯 1개,달걀 푼 것 2큰술,소금·참기름·후춧가루·청주 약간씩,식용유 적당량 만드는법 (1)대합은 껍데기를 까서 내장을 제거한 다음 곱게 다진다.(2)쇠고기는 기름기가 없는 부위로 준비해서 곱게 다진다.(3)두부는 물기를 꼭 짠 다음 곱게 으깬다.(4)팬에 식용유를 약간 두르고 (2)의 쇠고기를 넣어 볶다가 (1)의 다진 대합과 소금·후춧가루·청주를 넣고 물기가 없도록 익힌다.(5)쇠고기와 대합이 익으면 두부를 넣어서 잘 섞는다.여기에 풀어놓은 달걀을 섞어서 익힌다.(6)달걀 1개로 황백지단을 나눠 부쳐 곱게 다지고,피망도 곱게 다진다.(7)표고버섯을 뜨거운 물에 불려 꼭지를 제거한 다음 곱게 다진다.소금·후춧가루·참기름으로 양념해서 볶는다.(8)깨끗이 씻은 대합 뚜껑에 (5)의 재료를 잘 채워 넣는다.(9) (8)의 위에다 다진 고명을 청피망·흰지단·홍피망·표고버섯·노란지단 순으로 줄을 가지런히 맞춰 보기좋게 얹는다. ●호박죽 재료 늙은 호박 400g,찹쌀가루 4큰술,설탕 2큰술·꿀 2큰술씩,소금 약간,찹쌀가루 ½컵,마른 대추(돌려 깎은 것)·잣 약간씩 만드는 법 (1)늙은 호박은 깨끗이 씻어 작게 등분하여 씨를 빼고 껍질을 벗긴다.(2)껍질을 벗긴 호박은 작게 등분하여 물을 4컵 붓고 푹 끓인다.(3)찹쌀가루에 물을 4큰술 섞어 찹쌀물을 만들다.(4) (2)의 푹익은 호박은 체에 내려 곱게 만들어 끓인다.(5)끓어 오르면 설탕·소금·꿀을 넣고 익힌다.(6)익으면 (3)의 찹쌀물로 걸쭉한 농도를 맞춘다.(7)그릇에 (6)을 담아낸 다음 잣과 대추를 고명으로 올려준다. ●들깨부각 재료 깨부생이 20개,찹쌀죽(불린 찹쌀 2컵,물 1∼1½컵,소금 ½큰술,설탕 1큰술),식용유 적당량 만드는 법 (1)찹쌀을 씻어서 물에 담가 2∼3일 정도 냉장 보관한다.물은 자주 갈아주어야 한다.(2)믹서에 불린 찹쌀을 넣고 물을 부어 곱게 간다.불에 올려 계속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면서 된 죽을 쑨다.(3) (2)의 죽에 소금·설탕을 넣고 간한다.(4)깨부생이는 깨끗이 씻어서 채반에 밭쳐 물기를 없앤다.(5) (2)의 양념된 찹쌀죽을 손질한 깨부생이에 바른다.비닐을 깔고 깨부생이를 펼쳐 선풍기로 말린다.(6)깨부생이가 어느 정도 말라서 꾸덕꾸덕해지면 채반에 담아서 햇볕에 말린다.표면에 하얗게 분이 나도록 말린다.(7)냄비에 식용유를 넣고 160℃ 정도가 되면 튀겨낸다.찹쌀풀이 하얗게 일어나면 꺼낸다. ●해파리 냉채 재료 해파리 200g,달걀 1개,말린 표고버섯(중간) 3개,청·홍 피망 ½개씩,해파리 재움장(레몬식초 ¼컵,설탕 3큰술,소금 1작은술,청주 1큰술),겨자 소스(연겨자·식초·설탕·물 1큰술씩,머스터드 1작은술,소금 약간) 소금·후춧가루·참기름 약간씩 만드는 법 (1)해파리는 썰지 않은 원장으로 구입해서 0.3㎝ 폭으로 채썬다.(2)해파리를 찬물에 여러번 헹군 다음 끓는 물(80℃정도)을 끼얹는다.(3) (2)의 해파리를 재움장에 1시간 정도 담가둔다.(4)달걀을 황백으로 나눠 지단을 부친다.(5)표고버섯을 뜨거운 물에 불린 다음 꼭지를 떼고 채썰어서 소금·후춧가루·참기름 약간으로 양념해 볶는다.(6)피망과 달걀 지단을 0.3×5㎝ 크기로 채썬다.(7)분량의 겨자소스 재료를 섞어 겨자소스를 만든다.(8)접시에 야채를 색에 맞춰 담고 가운데는 물기를 꼭 짠 해파리를 놓는다.마지막에 (7)의 겨자소스를 끼얹어서 차려낸다. ●탕평채 재료 청포묵 100g,달걀 1개,말린 표고버섯(중간) 3개,청·홍 피망 ½개씩,김 1장,간장 ½작은술,설탕 (C)작은술,소금·후춧가루·참기름·깨소금 약간씩,초간장(간장 1작은술,설탕 ¼작은술,식초½작은술) 표고버섯,청·홍피망 만드는 법 (1)청포묵은 두께 0.3㎝,길이 7㎝로 자른 다음 끓는 물에 데쳐 물기를 제거하여 참기름·소금으로 양념한다.(2)달걀은 황·백으로 지단을 부쳐 채를 썬다.(3)표고버섯은 뜨거운 물에 불린 다음 꼭지를 떼고 채썰어서 소금·후춧가루·참기름 약간으로 양념해 볶는다.(4)피망과 달걀 지단을 0.3×7㎝ 크기로 채썬다.(5)김은 구워서 부순다.(6) (1)∼(4)를 준비한 초간장으로 무쳐 그릇에 담아낸다. 최영숙씨는 충남 조치원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조치원여고와 건국대를 마치고,1975년 산업은행 총재 비서실에서 근무했다.결혼 이후 전업주부로 있다가 92년부터 예지원에서 노재욱 선생으로부터 한학을 배우던 중,음양오행론을 우리 음식에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 儒林(100)-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나는 씁쓸한 느낌이었다.원래 심곡서원에는 치사재(治事齋)란 건물이 있어 원생들이 기거하며 공부를 하였다. 서원은 원래 지방 사림세력의 구심점이며,나아가 중앙 정치세력의 기반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던 중요한 거점이었다.따라서 서원은 학문 연구와 선현제향을 위해서 사림에 의해 건립된 사설 교육기관임인 동시에 향촌의 자치 운영기구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원은 성리학 보급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조선조 최고의 학당이었으며,오늘날의 대학에 해당하는 고등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그런데 원생들은 사라지고 장서각에 보존되었던 귀중한 교재들은 도난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나는 강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원생들이 모여서 화합과 학문에 정진하던 강당 안에는 문화재급에 해당하는 중요한 유물이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특히 송시열이 쓴 ‘심곡서원강당기(深谷書院講堂記)’와 숙종대왕이 조광조의 문집이 간행됨을 축하하며 쓴 ‘어제(御製)’의 두 현판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송시열은 평생 조광조를 흠모한 성리학자로 직접 능주에 있는 ‘적려유허비문’을 썼을 뿐 아니라 1637년 10월에는 심곡서원을 방문하고 그 기문을 목판에 새겨 강당 천장에 내걸었다. 과연 송시열의 강당기는 빼곡히 채운 문장으로 천장에 걸려 있었다.그보다 내 눈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숙종대왕이 직접 지은 어제였다. 민진원(閔鎭遠)은 왕비였던 인현왕후의 동생으로 문장과 글씨에 뛰어난 문신이었는데 숙종이 죽은 후 ‘임금은 돌아가셨으나 신하인 자신은 아직도 살아 있다.’하여서 미사신(未死臣)이란 겸사(謙辭)로써 자신을 칭하고 몸소 숙종의 뜻을 받들어 어제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민진원은 우선 정암집을 읽고 난 후 감탄한 숙종이 직접 쓴 시의 서두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늘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솟아났었는데, 지금 선생의 글을 읽어 보니 더욱더 도덕이 밝았음을 알겠도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공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고,시골의 노파들도 존경하였다네. 부수적으로 예(藝)에 노닐며 굳센 필세(筆勢) 또한 아름답도다.” 숙종의 어제에 나오는 ‘시골의 노파들도 역시 존경하였다네(野亦尊敬)’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연보에 의하면 조광조에게 사명이 내리자 아우 숭조(崇祖)가 분망히 길을 가는데 어떤 할머니가 산 가운데로부터 슬피 울며 나오면서 묻기를 “무슨 일로 곡을 합니까.”하였다.숭조가 대답하기를 “저는 형이 죽었기 때문에 곡을 합니다만 할머니는 어째서 곡을 합니까?”하니,할머니는 대답하였다.“나라에서 조광조를 죽였다고 하니,어진 사람이 죽으면 백성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합니까?”하였다고 전하고 있고,강령현(康翎縣),지금의 인천시 옹진군에서는 한 농부가 마침 닥친 가뭄의 원인을 두고 조광조를 죽인 탓이라 했다가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까지 전하고 있다.민진원은 숙종의 어제를 간행한 뒤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숙종 어제가 간행된 뒤에는 제생들이 비로소 이를 볼 수 있었다.감모의 정성을 감당치 못하여 장차 서원의 벽에 걸어서 영구히 교훈을 남기고자 하여 나에게 부탁하여 베껴 쓰게 하였다.내 삼가 완미하고 엄숙히 읽어 보니 우리 성고(聖考:숙종)께서 유학을 높이고 도를 귀중히 여기셨으며,세상에 드문 상감(相感)의 지극한 뜻을 엿볼 수 있었다.한번 읊조리고 세 번 탄식하며 감동하여 눈물이 절로 솟아나왔다.삼가 엎드려 절하여 눈물을 씻고 이를 쓴다.” 나는 ‘서원의 벽에 걸어서 영구히 교훈을 남기고자 썼다.’는 민진원의 현판을 강당 천장에서 찾아내 이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 儒林(10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0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나는 씁쓸한 느낌이었다.원래 심곡서원에는 치사재(治事齋)란 건물이 있어 원생들이 기거하며 공부를 하였다. 서원은 원래 지방 사림세력의 구심점이며,나아가 중앙 정치세력의 기반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던 중요한 거점이었다.따라서 서원은 학문 연구와 선현제향을 위해서 사림에 의해 건립된 사설 교육기관임인 동시에 향촌의 자치 운영기구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원은 성리학 보급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조선조 최고의 학당이었으며,오늘날의 대학에 해당하는 고등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그런데 원생들은 사라지고 장서각에 보존되었던 귀중한 교재들은 도난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나는 강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원생들이 모여서 화합과 학문에 정진하던 강당 안에는 문화재급에 해당하는 중요한 유물이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특히 송시열이 쓴 ‘심곡서원강당기(深谷書院講堂記)’와 숙종대왕이 조광조의 문집이 간행됨을 축하하며 쓴 ‘어제(御製)’의 두 현판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송시열은 평생 조광조를 흠모한 성리학자로 직접 능주에 있는 ‘적려유허비문’을 썼을 뿐 아니라 1637년 10월에는 심곡서원을 방문하고 그 기문을 목판에 새겨 강당 천장에 내걸었다. 과연 송시열의 강당기는 빼곡히 채운 문장으로 천장에 걸려 있었다.그보다 내 눈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숙종대왕이 직접 지은 어제였다. 민진원(閔鎭遠)은 왕비였던 인현왕후의 동생으로 문장과 글씨에 뛰어난 문신이었는데 숙종이 죽은 후 ‘임금은 돌아가셨으나 신하인 자신은 아직도 살아 있다.’하여서 미사신(未死臣)이란 겸사(謙辭)로써 자신을 칭하고 몸소 숙종의 뜻을 받들어 어제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민진원은 우선 정암집을 읽고 난 후 감탄한 숙종이 직접 쓴 시의 서두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늘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솟아났었는데, 지금 선생의 글을 읽어 보니 더욱더 도덕이 밝았음을 알겠도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공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고,시골의 노파들도 존경하였다네. 부수적으로 예(藝)에 노닐며 굳센 필세(筆勢) 또한 아름답도다.” 숙종의 어제에 나오는 ‘시골의 노파들도 역시 존경하였다네(野亦尊敬)’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연보에 의하면 조광조에게 사명이 내리자 아우 숭조(崇祖)가 분망히 길을 가는데 어떤 할머니가 산 가운데로부터 슬피 울며 나오면서 묻기를 “무슨 일로 곡을 합니까.”하였다.숭조가 대답하기를 “저는 형이 죽었기 때문에 곡을 합니다만 할머니는 어째서 곡을 합니까?”하니,할머니는 대답하였다.“나라에서 조광조를 죽였다고 하니,어진 사람이 죽으면 백성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합니까?”하였다고 전하고 있고,강령현(康翎縣),지금의 인천시 옹진군에서는 한 농부가 마침 닥친 가뭄의 원인을 두고 조광조를 죽인 탓이라 했다가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까지 전하고 있다.민진원은 숙종의 어제를 간행한 뒤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숙종 어제가 간행된 뒤에는 제생들이 비로소 이를 볼 수 있었다.감모의 정성을 감당치 못하여 장차 서원의 벽에 걸어서 영구히 교훈을 남기고자 하여 나에게 부탁하여 베껴 쓰게 하였다.내 삼가 완미하고 엄숙히 읽어 보니 우리 성고(聖考:숙종)께서 유학을 높이고 도를 귀중히 여기셨으며,세상에 드문 상감(相感)의 지극한 뜻을 엿볼 수 있었다.한번 읊조리고 세 번 탄식하며 감동하여 눈물이 절로 솟아나왔다.삼가 엎드려 절하여 눈물을 씻고 이를 쓴다.” 나는 ‘서원의 벽에 걸어서 영구히 교훈을 남기고자 썼다.’는 민진원의 현판을 강당 천장에서 찾아내 이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 기초단체장 공천배제 추진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입후보자에 대한 정당의 공천배제 문제가 정부와 정치권에서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이 문제는 기초단체장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해 왔으나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하지만 정부가 적극 나서기 시작했고,과반 의석을 확보한 여당도 공론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해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19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가진 열린우리당과의 정책협의에서 “기초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 배제를 강력히 요청한다.”며 여당이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요구했다. 허 장관은 이어 “정치권이 나서지 않으면 행정자치부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개정을 추진할 수도 있다.”면서 강한 톤으로 정치권 차원의 추진을 거듭 요청했다.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홍재형 정책위원장은 “당론을 모을 필요가 있다.”며 일단 확약을 피했다.하지만 17대 총선때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이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 문제를 전면 재검토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어 향후 논의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는 ‘정당은 기초의원을 제외하고 선거때 선거구별로 소속당원을 후보자로 추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주용학 전문위원(행정학 박사)은 “지자체장의 정당공천은 중앙정치가 지방정치에 족쇄를 채운 것”이라며 “지방정치를 개혁하려면 먼저 정당공천을 배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완주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전주시장)은 “공천배제 문제는 기초단체장의 최대 숙원”이라면서 “6월초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당 지도부를 방문하는 등 모든 정치력을 모아 관철하겠다.”고 강조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손지애 CNN 서울지국장

    손지애(42) CNN 서울지국장의 낭랑하고 유창한 영어 리포트를 들으면 언뜻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어릴 때 미국에서 몇년 산 적은 있지만,손 지국장은 순수 한국인이다. 손 지국장은 최근 200여명의 외신기자들이 소속된 서울외신기자클럽 정기총회에서 20대 회장으로 다시 뽑혔다.당면 과제는 외신기자들의 취재 창구를 만드는 일이다.브리핑제가 도입되면서 정부기관에 대한 밀착 취재가 봉쇄됐기 때문이다. 24시간 긴장 속에서 살고 밤낮이 따로 없지 않으냐는 질문을 하자 “여유로운 편”이라는 예상밖의 대답이 돌아왔다.“전세계에서 방송되는 CNN의 장점은 항상 잠이 깨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방송한다는 점입니다.생방송의 의미가 적은 셈이지요.” 손씨의 영어 실력은 99% 노력의 결과다.초등학교 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5년 동안 학교를 다녀 영어의 기초는 자연스럽게 체득했다.“무엇보다 영어를 자연스럽게 생활화한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어려서부터 집에서는 부모와 영어로만 얘기를 나눴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항상 영어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늘 가까이 하며 더 발전시키려고 애를 썼다.고교와 대학 4년 내내 교내 영자신문사에서 활동했고 영어웅변대회에도 참가했다.영어회화 클럽 활동도 했고 영문잡지 교정과 번역,통역 일도 했다.뉴욕타임스,뉴스위크,타임 등 국내에서 영어 신문과 시사주간지를 통째로 외우다시피 읽었다고 한다.그녀의 표현대로 ‘목숨을 걸고’ 영어공부를 한 덕에 ‘영어의 달인’이라는 호칭을 듣게 됐다. 영어에 대한 이같은 경험은 중3인 큰딸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었다.집에서 영어를 직접 가르친 적은 없다.영어학원에 다니게 한 적도 없고 과외도 시키지 않았다.하지만 갓난아이 때부터 해외에 나갈 일이 생기면 극성스럽게 데리고 다녔다.영어를 공부가 아닌 생활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남편은 비즈니스 코리아 입사 1년 후배인 이병종(48)씨로 현재 뉴스위크 서울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그녀는 직장 여성으로서 세 아이를 모유로 키웠다.얼음을 채운 아이스박스와 모유 유축기를 어깨에 메고 취재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는 여성 후배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요.” 똑똑하고 능력도 있지만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이다.여성이 직장생활을 잘 하려면 집안일과 육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저 주저앉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는 것 아니냐.”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녹색공간] 江은 江이요 늪은 늪이다/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신록이 완연한 늦봄이다.마침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비가 내려 삼라만상을 가득 채운 생명의 속삭임을 듣는다.최근 한 달간 영호남 일부 지역을 빼고는 적당한 비가 오셨다 하니,모내기 준비에 여념이 없는 농부들의 발걸음도 약간은 가벼워졌을 터이다.이렇듯 생명의 기운을 일으켜 북돋워 주는 비지만 언제나 반가운 손님인 것은 아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태풍을 동반하는 장마철 큰비는 공포와 원망의 대상이었다. 조지 스튜어트는 ‘폭풍우’라는 소설에서 “건초 수확기의 뇌우는 내각을 갈아 치우고 기온이 약간만 변해도 왕좌가 흔들린다.”고 했다.우리나라에서도 수해는 오래 전부터 가뭄과 함께 국운을 좌우하는 천기의 변화로 받아들여졌다.재해가 왕의 부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근신하고자 했던 피정전(避正殿)이나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던 진휼(賑恤)은 물을 잘 다스리는 일이 국가의 중대사였음을 보여준다. 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오늘날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태풍 ‘매미’와 ‘루사’가 몰고 왔던 기습폭우로 수백 명의 인명 피해와 수조원의 재산 피해를 입었던 것이 바로 작년과 재작년이다.따라서 수해 예방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추진돼야 할 정책의 하나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문제는 그 방향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있다.매년 재해복구비 7조원과 치수사업 예산 1조여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수해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홍수에 무기력하고 매년 더 큰 피해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홍수에 대한 이해가 근본부터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정부의 치수대책은 제방을 높이고 더 튼튼하게 쌓거나 강바닥을 긁어내어 낮추는 것이 전부다.하지만 이는 비가 새는 집에서 지붕을 고치기보다는 마룻바닥에 양동이를 대어 물을 받겠다는 것과 같다.홍수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강이 범람해 생명과 재산을 빼앗는 예외적인 사건이지만,사실은 우리가 굳은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극히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현상이다. 아니나 다를까.작년과 재작년 수해가 극심했던 곳은 예외없이 인위적으로 물길이 바뀐 지역이었다.제방을 높이고 콘크리트 구조물을 붙여 물을 가두어둘 수 있다고 믿었지만,결국 불어난 강물이 제 물길을 찾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최근 제방 사면에 콘크리트 호안블록을 붙여 논란을 빚고 있는 창녕 우포늪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침수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던 지역은 원래는 늪이었으나 60년대 이후 농업진흥공사가 매립해 논이나 밭으로 개간한 곳이다. 제방을 튼튼히 쌓아 홍수피해를 막아보겠다는 시도는 단기적으로는 성공할지 몰라도 언젠가 더 큰 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지속가능한 수해예방의 원칙은 강과 늪에 우리들이 빼앗았던 공간을 가능한 한 돌려주어 물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탄핵 기각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단기적 경기 부양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성장잠재력을 튼실하게 할 수 있는 쪽으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이러한 원칙이 수해 예방에도 적용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인내심을 가지고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 정책을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 치수대책에 요구되는 자세일 것이다.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작은 교육혁명 꿈꾸는 ‘아아세상’

    모성을 앞세운 여성성은 남성사회가 여성에게 채운 족쇄에 불과한가. 최근들어 모성이 본능이 아닌 학습의 산물이라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학습되지 않은 모성이 얼마나 무책임하고,비인간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늘고있기 때문이다. 한편 성숙한 여성성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어머니’의 넉넉함과 푸근함으로 껴안아,해체위기의 가정과 사회를 구원할 것임을 믿게 하는 또다른 예도 많다. 우리 사회 곳곳의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을 만났다. 최근 교사와 학부모들 사이에 작은 교육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매일 아침,‘아아세상(아름다운 아이,아름다운 세상 www.aaworld.org)’에서 배달된 편지를 읽으면서 오늘의 교육현실을 생각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아이가 아름다운 세상 만든다 ‘아아세상’이란 ‘아름다운 아이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소망을 담은 여성 유아교육학자들의 모임 명칭이자,이들의 사이트 이름이기도 하다.이화여대 이기숙 교수,동덕여대 우남희 교수와 연세대 신의진 교수가 주축이 된 이 모임에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교수들은 전남대 김영옥,명지대 김향자·류지후,울산대 박혜원,덕성여대 신은수,원광대 심성경,경성대 이연승,동덕여대 정대련·이종희,성신여대 장영희,한신대 이경숙,연세대 김명순,강남대 이순례,경남대 한미라 교수 등 38명.아침마다 교수들이 ‘∼올림’이라 쓴 편지를 읽는 회원이 현재 1000명에 이른다. 교수들이 교육현실을 바꾸기 위해 NGO를 결성하고,바쁜 시간을 쪼개 아침편지의 집필진으로 적극 참여하는 것이 신선하다.“더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들의 자세가 믿음직스럽다. 이들은 조기교육의 폐해를 알리고,자녀교육에 관한 한 생각을 바꾸면 어린이는 물론 부모들과 사회전체를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또한 유치원에서도 부모들의 성화에 못이겨 조기교육일색으로 파행화하고 있는 유아교육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더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뭉쳤다는 것.특히 이들은 아이들의 발달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상업화된 틀 속에 아이들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타고난 모습에 맞게 아름답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남희(동덕여대 아동학과) 교수는 지난해 11월,‘아아세상’이 발기모임을 가지기 전부터 늘 “이래도 좋을까.”는 고민을 함께 해온 교수들이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우리 아이들만큼 어릴 때부터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아이들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이렇게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좋은 품성을 갖고,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을지 오래 전부터 염려해 왔지요.그러나 이렇게 걱정만 하고 있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모였습니다.” ‘아아세상’이란 명칭을 정할 때부터 좀더 자극적이고,눈길을 끌 만한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지나친 자극은 피하자.”는 의견에 뜻을 모았다.특히 이기숙(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교육적인 자극이 많습니다.그래서 정작 필요한 자극이 별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지요.우리만이라도 성급하지 않게,천천히 성장단계를 거치자고 결정했지요.”라는 말로 이 모임의 성격을 규정했다. ‘아아세상’의 편지는 이론을 앞세우기보다는 재미 있는 이야기 속에 교육철학을 녹여내어 의미가 크다.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교수들이 공을 들이는 것에는 못 미칠 만큼 회원 증가 속도가 느리다.하지만 이들은 철저히 상업성을 배제하고 속도감조차도 배제하고 있다. 신의진(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름다운 아이,행복한 아이가 행복한 인생을 설계한다.”고 강조했다.“부모들이 불안에 떨면서 아이들을 닦달하고 있습니다.조금 발달이 빠른 아이를 금방 ‘영재’로 치켜세우는 상업적인 사교육은 결국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혐오증을 줄 뿐아니라 뇌 발달에도 손상을 가져옵니다.유아기에 신나게 뛰어놀면서 사회적 관계를 학습하고 행복한 유아기를 보낸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적응을 잘하고,사회인으로도 성공한다는 사실을 전문가의 입으로 이야기합니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이들의 ‘적기(適期)교육’이론은 낡았거나,뒤떨어진 교육으로 매도되는 이 시대를 바꾸겠다는 이들의 편지는 작고 가냘퍼 보인다.그러나 교수가 아닌 부모로서 이들이 직접 밝히는 자녀교육에서의 시행착오는 어떤 이론서보다 더 울림이 크다. ●글 읽다보면 슬그머니 반성의 기회가… 우 교수의 ‘초보엄마’란 글은 부모라면 누구나 경험했음직한 실수다.“아침에 학교 가기 전,급히 숙제검사를 해달라고 공책을 들고 온 아들 앞에서 나는 글씨가 이게 무엇이냐고 공책을 쫙쫙 찢어 버렸었다.국어책을 20번씩 써오라는 숙제에 아이는 전날 밤 졸음을 참아가며 겨우겨우 공책을 메웠지만 글씨에 만족하지 못한 나는 학교에 늦는다고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기어코 다시 쓰게 한 후 학교에 보냈었다.27년 전,누구보다도 아이를 잘 키워 보겠다던 초보엄마의 잔인한 모습이다.” 또한 문미옥(서울여대 유아교육과) 교수의 ‘도를 닦자’는 글 역시 이론이 아닌 자신의 경험에서 나옴직한 글이라 더 눈길을 끈다.“자식들은 잘되라고 일러주면 잔소리라 하고,내버려두면 무관심하다고 한다.칭찬하면 교만해지고,못한다고 지적하면 기가 죽는다.그래서 부모는 화가 나도 안아줘야 하고,할 말이 있어도 때로는 침묵해야 한다.칭찬도 조심해서 해야 하고,예뻐도 야단칠 수 있어야 한다.” 엄마인 자신이 보기에도 엉성한 일기장에 “정말 일기를 잘 쓰는구나.”라고 칭찬한 교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 엄정애(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의 이야기,“초등학교 입학을 마냥 기뻐하기는커녕 아이들은 걱정한다.매일 학교 갔다 와서 숙제 안한다고 엄마에게 혼나는 오빠처럼 자신도 야단맞지 않을까.”라고 전해주는 김영심(동덕여대 박사후 연구원)씨의 이야기는 작은 이야기이지만 생각의 고리를 만들어준다.갑자기 화를 폭발시키거나 충동장애를 겪는 듯한 아이들을 통해 부모들의 화내는 모습을 본다는 채혜정(대전대 겸임교수)씨의 이야기는 슬그머니 반성의 기회를 갖게도 한다. 축 늘어뜨린 팔에 학원가방을 끼고 회색의 아파트를 지나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옮겨 다니는 아이들을 구하겠다는 이들 교수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울림은 날로 커질 것임에 분명하다. 허남주기자 h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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