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창조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카오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지출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별똥별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하사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545
  • “전남문화예술재단 활성화를”

    전남문화예술재단의 장기 비전 수립과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포럼이 열린다. 전남문화예술재단(이하 재단)과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은 20일 오후 2시 목포대에서 ‘전남문화예술재단,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공동포럼을 열고 문화예술재단의 발전 전략과 역할을 모색하는 열린 담론의 장을 마련한다. 포럼은 3세션으로 나뉘는데, 제1세션은 ‘전남문화예술재단의 비전과 발전전략’이 주제다. 임영진 전남대 교수가 발표자로 나서 도민의 창조적 문화활동과 문화예술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재단이 해야 할 역할과 발전 방향을 짚어 본다. 제2세션에서는 강봉룡 목포대 교수가 도서해양문화의 정체성과 예술혼을 부각시킨 문화 콘텐츠 활용 방안과 방향성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고, 제3세션에서는 전남문화산업의 발전 방안을 주제로 김선출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팀장이 발표하고 김준 전남발전연구원 박사와 전남문화산업진흥원 전략사업팀장이 토론을 벌인다. 무안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스티브 잡스와 세종대왕

    [최동호 새벽을 열며] 스티브 잡스와 세종대왕

    스티브 잡스의 죽음이 세계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21세기에 들어 그 어느 누구의 죽음보다 강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세계를 개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20세기 초 마르크스는 세계를 개혁하는 거대한 담론을 제시했다. 세계 도처에서 그 혁명적 모델을 실천했지만 지금은 그 시대적 유효성이 소진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제 새로운 혁신 모델이 절실해진 것이다. 21세기 디지털 혁신은 잡스로부터 시작되었고, 잡스가 바꾼 혁명적인 기기들은 우리 생활을 더욱더 혁신적으로 개혁해 나가게 만들었다. 잡스의 코드는 단적으로 말해 지칠 줄 모르는 창조적 혁신에 있다. 그는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는 끝내 그 실패를 성공으로 역전시킨 혁명적 인간이었다. 지금까지는 잡스 없는 디지털 혁명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잡스 없는 혁신의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모두가 잡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을 때 한 가지 애석하게 지나간 일이 있었다. 그것은 한글 창제 565돌이 무관심 속에서 그냥 스쳐 지나간 것이다. 형식적인 행사와 의례적인 축사들이 남발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세종대왕은 여러모로 잡스와 비교되지만 국가를 경영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세종대왕은 잡스를 능가하는 혁신적인 지도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한글 창제에 있어서 세종의 기여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다. 집현전을 만들어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반대파를 설득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켜 국가적 융성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세종은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창조적 지도자였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적, 국가적 융성은 그간의 험난한 역사적 시련을 극복한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과학적으로 창제된 한글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 혁명은 기술혁신을 향한 속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디지털기기의 경쟁에서 한글의 속도는 세계 다른 어느 나라의 문자와 비교할 수 없는 탁월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입증된 바 있다. 문맹률 제로에 가까운 한국인의 문자해독능력은 우리가 한글을 가지고 한국어를 습득하기 때문이다. 정인지의 말대로 ‘우수한 자는 아침나절에, 그렇지 못한 자라 하더라도 하루 동안에 터득할 수 있는’ 문자가 한글이다. 여 기서 생각해 볼 것은 한글의 세계화이다. 현재 한국어의 세계적 역량은 크게 격상되어 세계 10위권 안팎에 있다고 한다. 앞으로 더욱 강화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예견할 때 한국어와 한글의 세계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모국어로 생각하고 모국어로 느끼는 민족만이 다른 어느 민족도 할 수 없는 독창적 사고를 할 수 있다. 최근 한 대학 신문에서 “한국어가 가장 절실했을 때가 언제인가”를 묻는 문항을 보았다. 답변 중에는 “아빠가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낼 때”,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을 때”, “내 마음의 진실을 애인에게 전할 때”, “아카데미 토익을 들을 때” 등등으로 답하고 있었다. 한국어는 우리들이 숨 쉬고 호흡하는 공기나 바람과 같이 우리와 함께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한국어만 있거나 한글만 있었더라면 한국은 오늘과 같은 문화적 혁신과 발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글 창제의 반대파 우두머리 최만리조차 상소문에 한글의 우수성을 가리켜 “지극히 신묘하여 실로 천고에 뛰어나다.”고 썼다. 디지털문화의 혁신자로서 잡스의 뛰어난 공적에 공명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한글의 창제자 세종대왕의 위업을 기리고 새 문명의 혁신적인 문자로서 한글을 과학적·세계적 문자로 갈고닦아야 한다. 한국의 혁신운동은 500년 전에 세종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후계자로서 우리는 지금 디지털문명의 창조적 혁신자로 스스로 자신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의 순간에 서 있다.
  • [기고] 가갸거겨 거리/최민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기고] 가갸거겨 거리/최민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최근 세종시의 마을 공원 도로 등을 순우리말로 이름지어 한글로 표기하는 데 대해 국민의 많은 관심과 격려가 있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군 세종대왕의 업적 중 우리 민족의 만년 세세 영원한 자랑이자 긍지인 한글. 그리고 그런 자부심을 직접 구현했다는 점에서 가슴 벅차다.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일화가 생각난다. 하루는 한국의 젊은 외교관에게 물었다.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소?” “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바 료타로는 또 물었다. “한글이 한국의 독자적인 창조물이기 때문입니까?” “독자적일 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의 수많은 문자 체계를 집대성한 결과일 수도 있으니까요.” 시바 료타로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한글의 위대성은 많은 한국인이 자랑하는 독자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성에 있는 것입니다. 한글은 당대 최고의 지성이 중국을 오가며 산스크리트어, 파스파 문자, 티베트문자, 굽타 문자, 나아가 렙차문자까지 연구하여 그 결정체를 집적시켜 만든 문자입니다. 표음문자는 인류의 문자체계 중 가장 나중에 발달한 문자체계이지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그러한 위대한 종합성을 말하지 않고 늘 세종대왕이 창제한 독자성만 말하더군요. 한국의 지성은 편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오늘 학자도 아닌 관료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세종시의 거리나 시설물의 이름을 순수 우리말로 정해 한글로 표기해 보고자 하는?생각은 바로 이러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한글을 세종시의 삶에 잇대어 보고자 하는 실마리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었다. 거리의 순서대로 ㄱ(기역), ㄴ(니은), ㄷ(디귿)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자음 14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차례대로 도로 이름이 붙여졌다. 겨레로, 늘빛로, 다솜(사랑의 옛말)로, 라온(즐거운의 옛말)로, 배움로, 슬기로…. 교량 또한 마찬가지이다. 금강1교, 금강2교 하던 이름이 가람교, 학나래교, 한두리교, 우람 한교, 우람 두교 등으로 바뀐다. 학교 또한 참샘 초등학교, 솔밭 중학교, 한솔고등학교이다. 한뜰 마을, 큰뜰 공원 등 아름답고 산뜻한 이름이 계속 이어진다. 세종시의 보도블록은 예쁜 한글의 자음과 모음 문양으로 디자인된다. 독특한 우리만의 거리 문양과 이름이 탄생하면서 누구든 길을 걸으면서 한글을 깨우칠 수 있다. 현 위치를 말할 때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도로 이름만 들어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한글의 과학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사랑하고 민족의 영원한 자존을 위해 창제하신 한글이 600년 뒤에 세종시라는 도시의 거리에서 그 가치를 발하게 된 것이다. 세종시는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정책 결정의 행정중심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과학기술의 허브, 우리 국민의 미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미래도시,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전통이 살아 숨쉬는 문화예술의 명품도시다. 도시 전체가 순우리말로 이름지어져 한글로 표기된 국내 유일의 도시로서, 세종시는 앞으로 한글의 세계화 전진기지가 될 것이다. 세종시를 명군 세종대왕이 내려주신 최대의 선물로 생각하고, 최고의 세종시 건설에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 “유레카!” 1000년전 아르키메데스 자필문서 보니…

    “유레카”를 외친 고대 그리스의 천재 수학자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직접 작성한 1000년 전 문서가 대중에 최초 공개됐다. 이 문서는 1998년 익명의 바이어가 경매에서 200만 달러에 낙찰받은 것으로, 최근 미국 동부 메릴랜드의 월터스아트박물관에서 열리는 ‘아르키메데스의 비밀’ 전시에서 공개됐다. 이 문서에는 아르키메데스가 창조한 고대 그리스 수학의 천재적인 이론, 실험 성과 등이 적혀 있다. 10세기 경 요하네스 미로나스라는 성직자가 성경책 제작을 위해 양피지를 재사용하려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본문서를 발견했으며, 필사로 덧씌우고 이를 보존해왔다. 이후 200년간 내용과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복원작업을 담당한 미국 스탠포드 가속기 광원(Stanford Synchrotron Radiation Lightsource, SSRL) 연구소 측은 엑스레이 등을 이용해 문서 표지에서 요하네스 미로나스의 이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양피지 위의 흐릿한 글씨들은 엑스레이 빔(Beam)을 통해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장치해, 관람객들은 특별한 기구 없이도 아르키메데스의 위대한 업적이 담긴 양피지 문서를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닐 노엘은 “이 문서를 포함한 전시는 대중들이 아르키메데스의 모든 명예로운 결과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내년 1월까지 계속된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SW·디자인 인재 면접만으로 선발

    ‘끼 있는데 시험이 왜 필요합니까.’ 삼성전자는 소프트 기술 경쟁력 강화와 창의적 인재 확보를 위해 소프트웨어 및 디자인 분야 신입사원을 필기시험 없이 면접만으로 뽑는 특별전형을 시행한다고 17일 밝혔다. 삼성전자는 신입사원 공채 때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와 면접 전형을 시행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와 디자인 분야에 탁월한 재능을 갖춘 신입사원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자 ‘미래 창조자 도전’ 전형을 도입하기로 했다. 지원자의 해당 분야 재능과 잠재역량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형 방식을 차별화한 것이 이 전형의 가장 큰 특징이다. 면접은 1, 2차로 나눠 해당 분야 과제를 해결하는 심층 역량 면접과 제시된 주제를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디어 면접으로 진행된다. 오는 20~28일 삼성 채용 홈페이지(www.samsungcareers.com)를 통해 신청받는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수도권 유일 기초장 재선거’ 양천구청장 후보 공약은

    ‘수도권 유일 기초장 재선거’ 양천구청장 후보 공약은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기초자치단체장을 새로 뽑는 양천구청장 재선거에는 후보 5명이 공약을 발표하며 치열한 정책 대결을 펼치고 있다. 이 가운데 세 번째 구청장에 도전하는 추재엽(56·한나라) 후보와 선거법 위반 혐의로 물러난 이제학 전 구청장의 부인 김수영(47·민주당) 후보가 치열한 승부를 펼치고 있다. 3·4기 양천구청장을 지낸 추 후보는 “서남권 명품 도시 완성을 위한 검증된 일꾼”이라며 목동아파트를 명품 도시 공간으로 재창조하고, 신정차량기지 복합단지 개발, 항공기 소음 피해지역 지원 확대, 경전철 조기 착공 등 지역개발 공약을 내세워 지지를 호소했다. ●후보 5명 개발·복지 관련 공약 쏟아내 그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활성화 공약을 통해 해누리타운 내 취업지원센터 상시 운영과 아파트형 공장 유치, 재래시장 환경개선 및 경영지원, 주거용 오피스텔 공과금 부과기준 일원화 추진과 함께 2014년까지 구청 교육경비보조금 대폭 증액, 우수고교(특목고) 신설, 맞벌이·저소득층 가정 초등학교 돌봄교실 운영 등을 약속했다. 복지 전문가인 김 후보는 “민선 5기 구정이 단절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여성들에게 일하는 권리를 찾아 주기 전담 뱅크 구축과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일자리 정보화 전담팀 구성을 공약하며 맞섰다. 또 당당한 노년생활 영위를 위한 노인복지 재단 설립과 자연 및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양천 둘레길 조성, 양화 빗물펌프장 증설 등 근본적인 수해대책 완성을 강조했다. 급식조례제정 양천위원장을 지낸 민동원(47·진보신당) 후보는 지역 먹을거리 공급 시스템 확립과 먹을거리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불안정한 비정규 노동 감소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재래시장 공공개발, 주민참여 예산제 실시, 지역 밀착형 복지행정을 내세우고 있다. 무소속 후보들도 공약 알리기에 매진하고 있다. 대학학원 이사장인 김승제(59) 후보는 신월동 유휴지에 항공우주파크를 조성해 지역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목동 신정유수지 일대 문화체육 콤플렉스 조성, 안양천 고수부지 생태숲 조성, 국제학교 등 명품 교육 실현, 노부모 봉양수당 및 일자리 1만개 창출을 주요 공약으로 앞세웠다. ●무소속 김승제·정별진, 공약 알리기 매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경기 지역 자문위원인 정별진(43) 후보는 정당에 휘둘리지 않는 공직사회를 위해 공정한 인사와 함께 돌봄이센터 운영, 교육지원센터, 방과후 학교, 재능기부센터운영, 친환경 농산물 인터넷 경매센터 운영 등을 내걸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8) ‘자본론’ 칼 마르크스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8) ‘자본론’ 칼 마르크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들은 공산주의 혁명 속에서 족쇄 이외에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공산당선언)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말대로 “탁월하고 폭발적인 창의력이 써내려 간, 정치적 입장을 초월해 마치 스스로 불후의 명언이 되어버린 것 같은 간결한” 저 문장을 읽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전율했던 적이 있었다. 두려움 또는 희망의 이름,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마르크스가 살았던 당시는 산업혁명과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진보를 체감하던 시기였다. 철로가 놓이고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대도시가 생겨났으며, 프랑스에서는 노동자와 산업자본가가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1848년 2월, 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제2공화정을 무너뜨리는 혁명을 일으킨다. 새로운 사회관계가 형성되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탄생한 것이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다. 마르크스가 분석한 부르주아들은 혁명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처음으로 인간의 활동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가를 증명”했다. 이전의 모든 봉건적 관계를 끊어내고 현금관계 외에는 어떤 끈도 남기지 않은 계급과 부를 축적하기 위해 새로운 욕구를 창출해내고,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으로 확장시켰던 그들은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봉건제 안에서 부르주아의 태동을 보았고 부르주아의 성립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싹을 본다. 그가 보기에 프롤레타리아의 도래는 ‘필연적’이었다. 마르크스는 그 무렵 신문에 “부르주아 지배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견했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 6000 프랑을 기꺼이 체제 전복을 위해 써버린다. ●“철학은 세계 해석이 아니라 변혁”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의 소멸을 확신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그는 1818년 프로이센 라인란트 지방의 트리어 시에서 존경받는 유대인 변호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마르크스는 논쟁을 즐기고 명석했지만, 쉽게 흥분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공격적이고 거만한 이미지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청년 마르크스. 술에 취해 패싸움도 불사하는 문제적 아들에게 아버지 하인리히 마르크스는 “너의 광기를 잠재우라.”고 애원하며 제발 부모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마르크스도 처음에는 가족의 바람대로 법학을 공부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법은 아무 설명을 하지 못했다. 사회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답을 찾아 지적 탐구를 하던 와중에 마르크스는 청년헤겔주의자들을 만나 헤겔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역사 발전의 법칙을, 부르주아의 필연적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설명해줄 수 있는 무기로 보였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모두 헤겔을 ‘죽은 개’ 취급할 때 공개적으로 헤겔의 사상적 제자임을 공언했다. 이때를 그는 “인생의 한 시기를 완성하고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는 변경의 초소와 같은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내 헤겔을 떠나게 된다. 헤겔은 역사의 추동력을 변증법적 ‘이성’에서 찾았고, 19세기 당대 유럽의 놀라운 진보는 모두 이성의 힘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검열과 비밀 경찰의 힘으로 유지되는 절대 왕정을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는 스승 헤겔의 논리를 뒤집는다. 절대이성이 현실을 만들어 낸 게 아니라 현실 사회의 생산력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변증법의 운동은 바로 현실세계에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철학을 통해 현실을 이해해서는 안 되고, 현실을 통해 철학이 새롭게 정초되어야 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철학은 지금까지 세계를 설명하고 해석하기만 해왔다. 하지만 이제 철학은 현실 속에서,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야 한다. ●대영박물관 열람실의 혁명가 세계를 바꾸기를 원했던 혁명가 마르크스를 사람들은 ‘요람에 누운 아기를 잡아먹는 신사’ 쯤으로 생각했다. 죄 없는 부르주아들을 잡아먹는, 말끔한 지적 테러리스트. 그러나 마르크스는 비밀주의와 음모를 싫어했다. 그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지향을 표명했다. 공산주의는 충동과 정열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마르크스의 말과 글을 통해 새롭게 개념화되었다. 2월 혁명이 실패한 후,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추방당한다.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정치경제학 공부에 매진한다. 그가 처음으로 계급, 개인소유, 국가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842년 ‘라인신문’ 편집장 시절 ‘농민들의 목재 절도 사건’ 이다. 이때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정치경제학도 잘 몰랐기 때문에 보수적인 귀족이 쓴 글에 대해 재치 있는 답변을 했을 뿐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마르크스는 현실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더 치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기반성에 이른다. 그리고 유럽을 휩쓴 혁명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후에, 세상의 함성에서 동떨어진 도서관에서 마르크스는 계급과 소유, 국가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 결과 탄생한 역작이 ‘자본론’이다. 마르크스의 혁명은 도서관에서 시작됐다. 마르크스에게 혁명은 꿈이 아니었다.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고 불황이 반복되는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근검을 외치는 것도 아니고 부르주아의 동정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부르주아를 증오하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상품경제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현실을 분석해냈다. 그는 그로부터 거대한 자본주의 기계 안에 왜소해진 인간의 모습을, 소외된 노동을 이끌어 냈으며, ‘자본’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작동을 보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경제학 저술이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재론을 탐구한 철학서였다. ●마르크스의 또 다른 이름 엥겔스 “어떻게 천재를 질투할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천재란 아주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재주가 없는 우리는 처음부터 그것이 얻을 수 없는 권리임을 알 수 있지. 그런 것을 질투하는 사람은 자신이 엄청나게 속 좁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꼴밖에 안되네.”(엥겔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생리는 정확하게 간파했지만, 정작 자기 가계를 꾸리는 능력은 ‘제로’였다. 귀족과 결혼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마르크스였지만 아내의 집안에서 물려받은 가보는 늘 전당포에 맡겨야 했고, 대문 앞에는 청구서를 든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다. 이런 마르크스의 생활을 구원한 사람은 그의 영원한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였다. 마르크스의 ‘도서관에서의 혁명’에 엥겔스가 끼친 영향력은 간단히 말하기 어렵다. 물질적 지원도 지원이거니와 아버지의 공장에서 직접 경영을 체험한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부족한 실물경제의 원리를 알려줄 수 있었다. ‘자본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저라고 봐도 좋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1권만 저술하고 세상을 뜨자, 마르크스의 악필을 독해하고 단편적 메모들을 모아 하나의 이론으로 완성해 2권, 3권을 출판한 사람도 엥겔스였다. 그 자신은 아버지 회사에서 “비굴한 장사, 증오스러운 장사”를 한다고 자신을 혐오했지만 그 덕에 마르크스는 생계난 속에서도 비굴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가장 좋아했던 경구는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였다. 그는 부인 예니와 딸들을 무척 사랑했지만 결혼하지 않은 엥겔스를 부러워했고, 저속한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매우 세련된 신사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속되면서 귀족적이었고, 차가우면서도 감상적이었다. 이런 마르크스의 모습은 종종 적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되곤 했다. 그의 저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부분들이 많다. 그는 자신의 삶 자체도 일관성 있게 포장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론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었다. 그는 자기 이론을 이상화하지도, 완성이라 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자기가 보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자기 분석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그의 이론을 영원한 ‘과정’ 속에 던져 놓았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한때 마르크시즘은 오류로 단언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예언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그때 필요한 것들을 해나갔을 뿐이다. 현실 분석이 철학을 바꾸고 철학이 현실을 변혁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혁명가이자 철학자. 은행이 파산하고, 정리해고를 당하고, 물가가 폭등할 때마다, 이른바 ‘자본주의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환멸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이름을 기억한다.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얼마간은 ‘마르크시스트’가 아닐까. 홍숙연 남산강학원 연구원
  • GM, 첨단 2인용 전기차 ‘쉐보레 EN-V’ 개발

    GM, 첨단 2인용 전기차 ‘쉐보레 EN-V’ 개발

    제너럴 모터스(GM)가 첨단 2인용 전기차인 차세대 쉐보레의 컨셉트카 EN-V 개발을 진행해 화제다. 네트워크 전기차로 불리는 EN-V는 톡톡 튀는 디자인과 첨단 기능이 특징이다. 14일 GM에 따르면 쉐보레의 EN-V는 실용성 확인을 위해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시범 운용 프로그램을 가질 계획이다. 글로벌 쉐보레 마케팅 및 전략부문 크리스 페리 부사장은 “쉐보레 EN-V 컨셉트카는 교통문제가 심각해 해결책을 요구하는 곳에 거주하는 전세계 고객들에게 가능성 있는 해결책을 보여 줄 것”이라고 전했다. 네트워크화된 전기차라는 의미의 EN-V는 전기로 움직이는 2인용 컨셉트카로 지난해 상하이 세계 엑스포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환경 문제뿐 아니라 교통 혼잡, 주차, 안전성, 에너지 소비 문제를 해소해 보자는 취지에서 개발됐으며 온도 조절, 개인 수납공간, 모든 기후 상태 및 노면 상태에서의 작동 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GM 선행기술 컨셉트카 담당 크리스 보로니 버드는 “쉐보레 EN-V 컨셉트카는 전기 동력과 네트워크 기반의 연결성을 결합한 차량의 새로운 특징을 창조했다.”면서 “교통 혼잡, 사고로부터 자유롭고 석유와 배출 가스가 없는 도심 운송을 위한 해결책이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재미와 패션적인 요소를 강조한 모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잠재적인 시범 프로그램을 위해 미국 등 세계 다른 지역에서의 시범 운영도 모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EN-V는 다른 차량 및 기타 통신 인프라와 통신할 수 있는 기능을 통해 차량 사고 빈도를 줄이고 주차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등의 기능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차세대 자동차로서 주목받고 있다. 디트로이트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헬프’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헬프’

    확실히 예전보다 여자 배우가 중심에 선 영화가 많이 줄었다. 요즘에도 ‘웬디와 루시’(2008)처럼 중요한 여성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대중영화의 영역에서 여배우들이 주목할 만한 역할을 창조해낸 작품을 만나기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프레셔스’(2009)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2011)과 ‘헬프’가 차지하는 의미는 적지 않다. 대중영화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각기 특색을 지닌 세 영화는 여성 영화의 모범적인 예를 남겼다. 대중적인 여성 영화에 대한 희망을 접기엔 아직 이른 것이다. ‘헬프’는 2009년 출간돼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동명 원작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원작을 쓴 캐서린 스토킷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낸 테이트 테일러가 연출을 맡았으며, 연기력을 인정받는 신·구 여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쟁쟁한 액션 블록버스터가 포진한 여름 시즌에 여성 드라마 ‘헬프’는 대중과의 접점을 창출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스타가 없고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됐음에도 ‘헬프’는 북미 박스오피스 수위를 수주간 지켜내며 올여름 가장 성공한 영화 가운데 한 편으로 남았다. 1963년 미국 미시시피주의 잭슨. 갓 대학을 졸업한 스키터(엠마 스톤)는 작가를 꿈꾼다. 경험을 쌓고서 오라는 출판사 편집장의 충고에 따라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지역 신문사의 가사 칼럼을 맡게 됐으나 집안일에 서툰 그녀는 베테랑 가정부 에이블린(비올라 데이비스·오른쪽)에게 도움을 청한다. 에이블린과 대화하다 흑인 가정부의 현실에 눈뜬 스키터는 책을 쓰겠다며 인터뷰를 제안한다. 시민운동이 벌어지던 당시에도 잭슨은 견고한 룰이 버티고 섰던 곳이다. ‘짐 크로 법’으로 불리던 흑백분리 정책이 여전히 흑인들의 삶을 옭아매던 때, 백인의 무관심 탓에 아들을 잃은 에이빌린은 위험한 요청을 받아들인다. ‘헬프’는 20세기 중반 미국 남부에서 벌어졌음직한 소극이다. 괄괄한 성격 탓에 사건의 중심에 선 미니,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인 걸 모르는 인종차별주의자 힐리, 폐쇄적인 백인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다 미니의 도움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는 셀리아 등의 인물이 어우러져 눈물과 웃음을 번갈아 빚는다. 영화의 일등공신은 여러 인물의 앙상블이다. 연륜을 더하면서 보석으로 자리 잡은 중견배우들과 야무진 신성의 조화가 기막히며, 더불어 허투루 버려지는 인물은 한 명도 없다. ‘헬프’는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배움의 가치와 자신을 바르게 표현하는 것의 소중함을 깨우치며, 진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궁금한 건 왜 작금의 미국인들이 20세기 중반이 배경인 교훈극을 사랑하게 됐느냐다. ‘헬프’의 성공은 잃어버린 선을 되찾기를 갈망하는 현대인의 마음을 반영한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길을 더듬던 그들은 그 안에 빛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모던한 작품을 선호하는 관객은 ‘헬프’를 순진하고 안전하며 고리타분한 작품으로 여길 게다. 그런 사람은 극 중 사용된 밥 딜런의 노래를 새겨들을 일이다. 딜런은 ‘두 번 생각하지 마, 괜찮거든’이라고 일러둔다. 그러니까 옳은 말씀 앞에서 굳이 배배 꼬인 마음을 품을 이유는 없다. 11월 3일 개봉. 영화평론가
  • 태국 치앙라이-시간은 그들의 규칙대로 흐른다

    태국 치앙라이-시간은 그들의 규칙대로 흐른다

    고산족인 아카족 마을의 어느 집 마당에서 조속조속 졸고 있는 빨래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HAILAND CHIANG RAI 시간은 그들의 규칙대로 흐른다 태국 북단의 치앙라이를 다녀왔다. 화사한 정원을 둘러보고 순백의 사원을 방문했으며 구수한 재래시장도 구경했다. 그리고 소수민족인 아카족의 마을에도 잠시 머물렀다. 한나절 잠시 머물렀을 뿐이지만 2박 3일의 일정 중에 그게 제일 좋았다. 지금도 그곳 사람들의 무구한 표정이 내 코끝에 걸려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태국관광청 www.visitthailand.or.kr 치앙라이Chiang Rai 여정의 첫머리를 장식한 곳은 도이 퉁Doi Tung이었다. 태국과 미얀마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산인데, 산의 등줄기들이 중첩된 이곳에서 세심하게 들여다본 대목은 무성한 수목이 아니라 그 넉넉한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마을의 감동적인 변천사였다. 여기에는 현 국왕의 작고한 어머니이자 태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리나가린드라 여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상전벽해의 마을과 순백의 사원 도이 퉁이 자리한 곳은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이기도 하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가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삼각형 모양으로 만나는 골든트라이앵글은 익히 알려진 대로 아편 생산 기지로 악명이 높았다. 사람들은 마약을 재배하고 하릴없이 마약에 중독돼 갔다. 사람과 마을과 자연이 모두 피폐해지는 상황을 가슴 아프게 여긴 스리나가린드라 여사는 이른바 ‘도이 퉁 프로젝트’를 공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녹화 사업, 아편 추방 운동, 주민 재활 사업 등을 맹렬하게 추진했다. 그녀는 마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사람들에게 직접 꽃과 나무를 심고 재배하는 법을 가르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 결과 마약이 지배하던 마을은 점차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 도이 퉁은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공동체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도이 퉁에는 커피와 마카다미아 농장이 있다. 1983년부터 태국 정부에 의해 아편의 온상 양귀비 밭이 불태워지자 대체 작물로 이들이 선택됐던 것이다. 특히 커피의 존재감이 도드라진다. 태국과 커피의 상관관계에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태국, 특히 북부 고산지대에 위치한 치앙라이와 치앙마이Chiang Mai는 커피 재배를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맛있는 커피 생산을 위한 기본 삼박자인 고도와 기후와 토양 등이 두루 적합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이 퉁에서 경험한 커피의 향과 맛은 일품이었다. 맛이 복합적이면서도 각각의 맛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한 채 균형을 잘 잡고 있었다. 보통의 커피와는 다른 상큼한 뒷맛이 인상적이었다. 도이 퉁에서 내려와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왓 롱쿤Wat Rong Khun을 찾았다. 왓 롱쿤은 화이트 템플, 말 그대로 백색 사원이었다. 사원은 두 가지 의미에서 눈부셨다. 건물의 장식미가 화려할 뿐만 아니라 외관이 온통 하얗게 칠해져 있어 파란 하늘과 강렬한 색의 대비를 이뤘다. 사원의 흰색은 부처님의 순결을, 사원에 쓰인 흰색의 유리는 우주를 밝게 비추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한다고 한다. 어쨌든 세계를 유람하며 수도 없이 많은 불교 사원을 가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모습임에는 틀림이 없다. 미증유의 사원을 창조해낸 인물은 찰럼차이Chalermchai라고 하는 지역의 ‘괴짜 예술가’다. 건축가이자 화가인 그는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1998년에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삽을 뜬 지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왓 롱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방인의 눈에는 흠잡을 데 없는 ‘완성품’처럼 보이지만 창조자의 생각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예술가의 끝없는 창작욕인지 아니면 터무니없는 과욕인지 알 수 없지만 찰럼차이는 해마다 조금씩 왓 롱쿤의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앞으로도 수십년의 공기工期를 더 들일 것이라고 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만일 풍문이 사실이라면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화이트 템플의 완성은 그의 사후에나 가능할 일일 것이다. 고산족 마을에서 보낸 한나절 숙소에서 땀으로 뒤범벅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시내로 나가기 위해 자전거 택시에 올랐다. 지붕이 있는 승객용 삼륜 자전거는 노회한 운전사의 인도 아래 물 흐르듯 막힘없이 나아갔다. 지천명을 넘겼음 직한 사내의 종아리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세 바퀴 택시’에서 내려 재래시장 탐방에 나섰다.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컬러풀한 열대의 과일들과 푸릇푸릇한 채소들과 다양한 종류의 길거리 음식들이었다. 그중에는 우리의 순대와 비슷해 보이는 먹을거리도 있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손님을 부르는 소리, 파는 자와 사는 자 사이의 흥정, 그리고 물건을 구입한 사람이 셈을 치르는 소리로 시장은 들끓었다. 치앙라이의 고산지대는 흔히 ‘살이 있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카렌족, 아카족, 리수족, 몽족 등의 소수민족이 촌락을 이루어 곳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아카족의 마을로 향했다. 마을이 산악 지대에 올라앉아 있는 탓에 중간에 사륜구동 차량으로 갈아타야 했다. 아카족은 중국 남부의 윈난성 등지에서 메콩 강을 따라 이주해 온 부족이다. 이들은 화전을 일구거나 야채나 콩을 재배하며 살아간다. 아카족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점은 물을 유난히 무서워하고,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물의 영혼을 두려워한 나머지 잘 씻지 않는데, 물에서 말라리아나 박테리아가 나온다고 믿는단다. 일각에서는 이런 미신이 물이 부족한 아카족의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아카족의 남자는 15세, 여자는 13세부터 결혼할 수 있다. 결혼식은 보통 여자가 임신을 한 연후에 이뤄지는데,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남자 측에서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살펴본 아카족 마을은 짐작했던 대로 시간이 정지한 곳처럼 보였다.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허름한 풍경과 열악한 삶의 조건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외부인의 일방적인 시선과 편견에 가까운 기준을 마을 주민들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잔주름이 많은 할아버지는 대를 엮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으며, 마을 아낙들은 동전이 주렁주렁 달린 전통 모자를 쓴 채 그늘 밑에서 한담을 나누었다. 까맣게 그을린 사내는 내리꽂는 햇볕에 곡식을 말리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맨발로 동네를 뛰어다니며 들까불었다. 그들은 늘 그랬듯이 고유한 시간의 법칙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일상을 고수하고 있었다. 딱히 밝을 것도, 딱히 어두울 것도 없는 그들의 얼굴은 관광객의 순간으로 규정하거나 재단할 수 없는, 면면히 이어지는 일상의 표정이었다. 어느 가정집에서 점심 대접을 받았다. 달걀부침과 나물과 찐 호박이 상 위에 올랐다.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 다음에는 따끈한 엽차도 얻어 마셨다. 안주인의 손맛에 더해 마음 맛이 느껴지는 밥상이었다. 포만감을 느끼며 집 밖으로 나왔다. 주민들 모두가 점심을 먹고 낮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마을 전체에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목욕 후의 나른함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유난히 하늘이 높았던 청명한 날, 고산족 마을의 오후가 그렇게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치앙라이Chiang Rai 여정의 첫머리를 장식한 곳은 도이 퉁Doi Tung이었다. 태국과 미얀마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산인데, 산의 등줄기들이 중첩된 이곳에서 세심하게 들여다본 대목은 무성한 수목이 아니라 그 넉넉한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마을의 감동적인 변천사였다. 여기에는 현 국왕의 작고한 어머니이자 태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리나가린드라 여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1 건물의 외관이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는 일명 화이트 템플로 불리는 왓 롱쿤 2 아카족 마을의 여인들. 악령을 막아 준다는 전통 모자를 쓰고 있다 3 치앙라이 시내를 달리는 자전거 택시와 오토바이들 4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아카족 마을의 아이들 5 도이 퉁 지역의 특산물 중 하나인 마카다미아 6 물 위에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왓 롱쿤 7 아카족 마을의 최고령 할아버지 8 치앙라이 재래시장에서 생선을 판매하는 행상 9 먼 길 달려온 손님을 위해 아카족의 한 아주머니가 마련해준 점심상. 누구에게는 소박할 수도 있겠지만 마을 주민들에게는 푸짐한 상차림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상전벽해의 마을과 순백의 사원 도이 퉁이 자리한 곳은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이기도 하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가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삼각형 모양으로 만나는 골든트라이앵글은 익히 알려진 대로 아편 생산 기지로 악명이 높았다. 사람들은 마약을 재배하고 하릴없이 마약에 중독돼 갔다. 사람과 마을과 자연이 모두 피폐해지는 상황을 가슴 아프게 여긴 스리나가린드라 여사는 이른바 ‘도이 퉁 프로젝트’를 공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녹화 사업, 아편 추방 운동, 주민 재활 사업 등을 맹렬하게 추진했다. 그녀는 마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사람들에게 직접 꽃과 나무를 심고 재배하는 법을 가르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 결과 마약이 지배하던 마을은 점차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 도이 퉁은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공동체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도이 퉁에는 커피와 마카다미아 농장이 있다. 1983년부터 태국 정부에 의해 아편의 온상 양귀비 밭이 불태워지자 대체 작물로 이들이 선택됐던 것이다. 특히 커피의 존재감이 도드라진다. 태국과 커피의 상관관계에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태국, 특히 북부 고산지대에 위치한 치앙라이와 치앙마이Chiang Mai는 커피 재배를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맛있는 커피 생산을 위한 기본 삼박자인 고도와 기후와 토양 등이 두루 적합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이 퉁에서 경험한 커피의 향과 맛은 일품이었다. 맛이 복합적이면서도 각각의 맛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한 채 균형을 잘 잡고 있었다. 보통의 커피와는 다른 상큼한 뒷맛이 인상적이었다. 도이 퉁에서 내려와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왓 롱쿤Wat Rong Khun을 찾았다. 왓 롱쿤은 화이트 템플, 말 그대로 백색 사원이었다. 사원은 두 가지 의미에서 눈부셨다. 건물의 장식미가 화려할 뿐만 아니라 외관이 온통 하얗게 칠해져 있어 파란 하늘과 강렬한 색의 대비를 이뤘다. 사원의 흰색은 부처님의 순결을, 사원에 쓰인 흰색의 유리는 우주를 밝게 비추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한다고 한다. 어쨌든 세계를 유람하며 수도 없이 많은 불교 사원을 가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모습임에는 틀림이 없다. 미증유의 사원을 창조해낸 인물은 찰럼차이Chalermchai라고 하는 지역의 ‘괴짜 예술가’다. 건축가이자 화가인 그는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1998년에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삽을 뜬 지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왓 롱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방인의 눈에는 흠잡을 데 없는 ‘완성품’처럼 보이지만 창조자의 생각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예술가의 끝없는 창작욕인지 아니면 터무니없는 과욕인지 알 수 없지만 찰럼차이는 해마다 조금씩 왓 롱쿤의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앞으로도 수십년의 공기工期를 더 들일 것이라고 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만일 풍문이 사실이라면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화이트 템플의 완성은 그의 사후에나 가능할 일일 것이다. 고산족 마을에서 보낸 한나절 숙소에서 땀으로 뒤범벅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시내로 나가기 위해 자전거 택시에 올랐다. 지붕이 있는 승객용 삼륜 자전거는 노회한 운전사의 인도 아래 물 흐르듯 막힘없이 나아갔다. 지천명을 넘겼음 직한 사내의 종아리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세 바퀴 택시’에서 내려 재래시장 탐방에 나섰다.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컬러풀한 열대의 과일들과 푸릇푸릇한 채소들과 다양한 종류의 길거리 음식들이었다. 그중에는 우리의 순대와 비슷해 보이는 먹을거리도 있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손님을 부르는 소리, 파는 자와 사는 자 사이의 흥정, 그리고 물건을 구입한 사람이 셈을 치르는 소리로 시장은 들끓었다. 치앙라이의 고산지대는 흔히 ‘살이 있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카렌족, 아카족, 리수족, 몽족 등의 소수민족이 촌락을 이루어 곳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아카족의 마을로 향했다. 마을이 산악 지대에 올라앉아 있는 탓에 중간에 사륜구동 차량으로 갈아타야 했다. 아카족은 중국 남부의 윈난성 등지에서 메콩 강을 따라 이주해 온 부족이다. 이들은 화전을 일구거나 야채나 콩을 재배하며 살아간다. 아카족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점은 물을 유난히 무서워하고,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물의 영혼을 두려워한 나머지 잘 씻지 않는데, 물에서 말라리아나 박테리아가 나온다고 믿는단다. 일각에서는 이런 미신이 물이 부족한 아카족의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아카족의 남자는 15세, 여자는 13세부터 결혼할 수 있다. 결혼식은 보통 여자가 임신을 한 연후에 이뤄지는데,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남자 측에서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살펴본 아카족 마을은 짐작했던 대로 시간이 정지한 곳처럼 보였다.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허름한 풍경과 열악한 삶의 조건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외부인의 일방적인 시선과 편견에 가까운 기준을 마을 주민들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잔주름이 많은 할아버지는 대를 엮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으며, 마을 아낙들은 동전이 주렁주렁 달린 전통 모자를 쓴 채 그늘 밑에서 한담을 나누었다. 까맣게 그을린 사내는 내리꽂는 햇볕에 곡식을 말리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맨발로 동네를 뛰어다니며 들까불었다. 그들은 늘 그랬듯이 고유한 시간의 법칙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일상을 고수하고 있었다. 딱히 밝을 것도, 딱히 어두울 것도 없는 그들의 얼굴은 관광객의 순간으로 규정하거나 재단할 수 없는, 면면히 이어지는 일상의 표정이었다. 어느 가정집에서 점심 대접을 받았다. 달걀부침과 나물과 찐 호박이 상 위에 올랐다.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 다음에는 따끈한 엽차도 얻어 마셨다. 안주인의 손맛에 더해 마음 맛이 느껴지는 밥상이었다. 포만감을 느끼며 집 밖으로 나왔다. 주민들 모두가 점심을 먹고 낮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마을 전체에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목욕 후의 나른함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유난히 하늘이 높았던 청명한 날, 고산족 마을의 오후가 그렇게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치앙라이Chiang Rai 여정의 첫머리를 장식한 곳은 도이 퉁Doi Tung이었다. 태국과 미얀마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산인데, 산의 등줄기들이 중첩된 이곳에서 세심하게 들여다본 대목은 무성한 수목이 아니라 그 넉넉한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마을의 감동적인 변천사였다. 여기에는 현 국왕의 작고한 어머니이자 태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리나가린드라 여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Travel to Chiang Lai 1 치앙라이 시내의 불교 사원 2 수안팁 바나 리조트의 객실 내부. 침대 옆에 전통 복장을 한 목각 인형이 놓여 있다 ▶가는 방법 방콕 돈무앙 공항에서 타이항공의 국내선을 이용하면 치앙라이까지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자동차로 치앙라이 공항에서 도이 퉁까지는 약 1시간이, 치앙라이 시내에서 아카족 마을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볼거리 왓 프라캐오Wat Phra Kaeo는 방콕의 왓 프라캐오에 있는 그 유명한 에메랄드 불상이 있었던 곳이다.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으나 에메랄드 불상이 발견되면서 지금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됐다. 옥으로 만든 같은 모양의 불상이 본당에 모셔져 있다. 14세기 지어진 왓 프라싱Wat Phra Sing은 ‘신성한 사자의 사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역시 같은 이름의 사원이 치앙마이에도 존재하는데, 치앙라이에 있던 불상을 옮겨다 놓았다. 산악민족박물관Hilltribe Museum은 고산족의 민예품과 생활 도구 등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호텔 레전드 치앙라이 부티크 리버 리조트 & 스파(www.thelegend-chiangrai.com)는 치앙라이 시내를 적시고 지나가는 매콕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다운타운에서 차로 수 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수페리어 스튜디오, 디럭스 스튜디오, 그랜드 디럭스, 풀 빌라 등으로 객실의 종류가 나뉜다. 울창한 열대림에 싸여 있는 수안팁 바나 리조트(www.suanthipresort.com)는 자연의 호젓한 기운이 충만한 곳이다. 널찍한 객실에는 개별 테라스가 딸려 있다. 아유르베딕 마사지를 받거나 쿠킹 클래스에 참가할 수 있다. 리조트 뒤편의 강에서 대나무로 만든 뗏목 래프팅도 즐길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가을 산책로 ‘광진느루길’ 어때요

    가을 산책로 ‘광진느루길’ 어때요

    “광진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습니다. 어린이대공원과 한강, 아차산입니다. 이 보물들을 하나로 융합해 새로 창조할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느루길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김용한(55·구의3동) 광진느루길 위원장이 15일 시민들과 함께 코스체험을 하고 독서토론회를 갖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느루길은 ‘느루 가는 길’의 준말로 한번에 몰아치지 않고 시간을 길게 잡아 천천히 가는 길이란 순우리말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좇자는 뜻이다. 그는 “문화관광 콘텐츠를 살리면 경제적 유발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1㎞인 코스는 세 갈래로 나뉜다. 간조롱길은 능동 어린이대공원 후문에서 숲속의 무대~순종비~유강원(순명효왕후 민씨의 능)~음악분수~팔각정~아차산 저잣거리에 이르는 사색의 길이다. 기원정사를 출발해 아차산을 도는 늘솔길은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조망의 길이다. 풍광을 뽐내는 물비닐길은 워커힐 벚꽃길·리버뷰 8번가를 거쳐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에 이른다. 지난해 10월 코스를 만든 뒤 다녀간 사람은 은행원, 학교동문회 등 2000명을 웃돈다. 안내·해설 자원봉사자만 200명이다. 길에 늘어선 야외무대에서 7080콘서트, 패밀리음악콘서트 등 문화도 향유할 수 있다. 걷기체험에선 문경용 길문화생태체험 연구소장이 ‘자연과의 소통’을 주제로 강연하고 동화 ‘당산 할매와 나’를 읽고 토론도 한다. 김기동 구청장은 “주민들이 지역발전에 애쓴다니 아주 반갑다.”며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대학생들과 연계한 느루길 축제도 열 계획이라니 기대된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한·미 FTA 전운…홍준표 ‘단독표결’ 손학규 ‘결사반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 여야의 전운(戰雲)이 고조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달 중 단독으로라도 처리하겠다는 입장인 데 반해 민주당은 미국과의 재재협상을 거듭 요구하며 강행 처리 저지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12일 KBS 정당대표 라디오 연설에서 “미국 의회가 한·미 FTA 이행법안을 곧 통과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 국회도 이달 안에 비준안과 14개 이행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미 FTA 비준안 통과로 한·미 군사동맹, 한·미 경제동맹의 두 축을 통해 시너지를 높이는 ‘쌍끌이 한·미 동맹’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의 움직임에 맞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비준안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려 든다면 국민적 저항과 국론 분열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여권이 비준안을 상정하고자 한다면 민주당이 제시한 ‘10+2 재재협상안’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가 국회를 존중하고, 정말 친서민 정부라면 국익을 다시 찾아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홍 대표는 “민주당의 ‘10+2 재재협상안’ 중 두 가지는 우리가 검토 중인 통상절차법과 농업 분야 지원책이지만 나머지 10가지 재재협상안 중 9가지는 노무현 정부 당시 미국과 협상한 내용”이라며 “이를 또 재재협상 하자는 것은 국익이나 경제적 측면에서 한·미 FTA에 접근하는 게 아니라 반미 이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으로, 참으로 걱정스럽다.”고 역공했다. 한편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등 야5당과 진보진영 시민단체들은 이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한·미 FTA 강행 처리 반대 공동 결의대회’를 열고 강경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재연·황비웅기자 oscal@seoul.co.kr
  • 범야통합 “민주당 해체뒤 신당 창당” 45.3%

    범야통합 “민주당 해체뒤 신당 창당” 45.3%

    범야권 통합 움직임에 대해 유권자들은 대체로 이를 지지하는 의견이 우세하고, 통합의 형태는 민주당 등 기존 야당들을 모두 해체한 뒤 통합신당을 창당하는 헤쳐모여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신문·엠브레인 공동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등 범야권 정당들의 통합에 찬성하는 유권자의 응답률이 40.3%로, 반대 32%보다 높았다. 무응답은 27.7%였다. 범야권 통합방법에 대해서는 ‘민주당을 포함한 모든 야당이 해체 후 신당 창당’이 45.3%로 ‘민주당 중심의 통합’ 29.5%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소통합이라 불렸던 민주당을 제외한 민노당·참여당 등의 재창당은 17.5%에 그쳤다. 지지정당별로는 범야권 통합에 민주당 지지자들의 64.7%가 찬성했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24%에 불과했다. 보수층의 경우 야권 대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통합방법에는 민주당 지지자를 제외한 나머지 야당 지지자들이 민주당 해체 후 통합정당 창당에 한 표를 던졌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자 24.8%도 민주당 해체 뒤 통합 창당을 선택했다. 박 후보의 지지자들은 61.2%가 범야권 통합에 찬성했다. 전 야당 해체 후 신당 창당이 47.2%로 민주당 중심의 통합(28.7%)보다 20% 포인트가량 많았다. 특히 박 후보 지지자들의 47.2%,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의 42.2%가 민주당 해체 뒤 통합신당 창당을 지지했다. 중도성향의 유권자 절반에 가까운 48.4%가 범야권 통합에 찬성했으며 반대는 27.1%였다. 진보성향 유권자들도 55.5%가 범야권 통합을 지지했다. 보수성향 유권자는 25.3%에 그쳤다. 그러나 통합형태에 대해서는 이념 성향에 상관없이 민주당 등 모든 야당 해체 뒤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라고 입을 모았다. 중도성향 유권자가 47.3%로 가장 높았으며 진보 46.3%, 보수 41.1%였다. 흔히 부동층으로 꼽히는 중도층의 ‘민주당 중심 통합’은 27.3%, 진보층은 30.9%에 머물렀다. 연령별로는 20~40대가 범야권 통합에 손을 들었으며 30~40대는 절반을 넘었다. 반면 보수층이 두꺼운 50~60대는 반대가 더 많았다. 전 지역에서 ‘민주당 해체, 통합신당 창당’에 찬성하는 한편 강남이 54.6%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민주당 중심의 통합은 20~30% 초반을 넘지 못했다.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 학생층이 각각 51.8%, 48.1%로 모든 야당 해체 뒤 신당 창당에 찬성했다. 이남영 세종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는 “박 후보의 선출로 이미 정당은 해체된 것이나 마찬가지며 무력감에 빠진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았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서울시장 보선 D-14] 공동위원장 22명… 범야총동원 선대위

    [서울시장 보선 D-14] 공동위원장 22명… 범야총동원 선대위

    범야권 무소속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11일 선거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야권의 대선 잠룡들을 필두로 야 5당과 시민사회 진영이 대거 참여한 매머드급 연합군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 5당과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스타급’ 야권 인사들이 포함됐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유시민 국민참여당·공성경 창조한국당 대표, 이수호 전 민노당 최고위원, 문 이사장, 남윤인순 ‘혁신과통합’ 공동대표, 이·한 전 총리, 민주당 정동영·정세균·천정배 최고위원, 추미애 의원,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등 22명이 공동선대위원장에 이름을 올렸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상임 선대위원장직을 비롯한 민주당 주도의 선대위 구성에 반발해 직책을 맡지 않았다. 선거를 진두지휘할 선거대책본부장에는 19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상임 본부장을 맡았고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인 박선숙 의원, 천호선 전 참여당 최고위원 등이 참여했다. 민주당은 87명의 국회의원을 전원 서울 권역별로 지원 배치키로 했다. 특히 이색적으로 박 후보의 ‘멘토단’을 구성해 다양한 목소리를 선거운동에 반영하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 멘토단에는 영화 ‘도가니’ 원작자인 공지영 작가, 신경민 전 MBC 앵커, 조국 서울대 교수, 영화배우 문소리,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소설가 이외수, 이창동·정지영 영화감독 등이 포함됐다. 박 후보는 “다양한 정당, 계층이 모인 건 시대의 명령이고 부름”이라면서 “새로운 시대와 정치, 새로운 서울시장을 맞을 준비가 됐느냐.”며 파이팅을 외쳤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공연 5일장’ 놓치지 마세요

    ‘공연 5일장’ 놓치지 마세요

    공연 5일장이 열리고 있다. 지난 10일 시작해 오는 14일까지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과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등에서 열리는 ‘공연예술 장터’, 2011 서울아트마켓(PAMS, 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이 그것이다. 올해 7회째인 이 장(場)이 서는 5일 동안 해외 공연예술전문가들이 대거 이 시장에 모였다. 폴란드 말타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미하우 메르친스키, 이탈리아 나폴리 페스티벌 아시아 프로그래머인 마시아 파봉, 이란 국제연극제의 모하메드 헤이다리 등 해외 유명인 150여명이 주요 초청인사 명단에 올랐다. 국내 공연 전문가 1300여명도 이들과 함께한다. 국내 창작물의 경우 ‘팸스 초이스’(PAMS Choice)라는 주제 아래 해외 수출 기회를 얻는다. 이자람의 ‘사천가’가 서울아트마켓을 발판으로 해외로 뻗어간 대표적인 작품이다.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첫 공식 초청작으로 올여름 화제를 모았던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나 안은미 무용단의 작품을 에든버러에 주선한 곳도 서울아트마켓이다. 올해는 무용극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연극 ‘1동 28번지 차숙이네’, 음악극 ‘정가악회 세계 문학과 만나다’ 등 사전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13개 작품이 30분씩 하이라이트 공연을 펼친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http://www.pams.or.kr)를 참고하면 된다. ‘포커스 세션-아시아, 창조적인 협업의 파트너’ 학술행사와 국내외 공연예술 단체의 홍보 공연도 펼쳐진다. 서울아트마켓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행사다. 참관을 원하면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해야 한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24) 폼 안 나도 보람찬 수의사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24) 폼 안 나도 보람찬 수의사

    성경 창세기편에 보면 신이 천지와 인간을 창조한 뒤 마지막에 ‘보기에 참 좋더라.’란 말씀을 남긴다. 너무 문장이 단순해서 오히려 흘려듣던 그 말이 언젠가부터 가슴속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행해서 결과가 내 보기 좋다면 그것 이상 무얼 더 바라겠는가! 나 역시 동물들을 치료하다 보면 간간이 입에 미소도 머금어지고,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맛 때문에 이 직업을 좋아한다. 어떤 개가 장염에 걸려 진료실로 들어왔다. 바이러스성 장염은 초기 3~4일이 고비다. 이때만 넘기면 급속히 회복기에 접어든다. 그 고비 동안 주인과 수의사는 온통 냄새나는 구토물과 설사 속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나의 무기는 끊임없이 빠져나가는 수분과 전해질을 몸에 다시 채우기 위해 링거액을 혈관에 계속 집어넣는 것이고, 개의 무기는 병을 이겨내려는 의지와 체력이다. 그렇게 4일 정도 지나면 어느 순간 개가 물을 찾아 홀짝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는 세상 어떤 음악보다 듣기 좋다. 소가 전위증에 걸렸다. 이 병은 소의 제4위에 발효가스가 차서 떠오르면 커다란 제1위가 눌러 버리는 병이다. 그러면 장으로 가는 음식물의 흐름이 거의 막혀 버린다. 그럼 소는 전혀 먹지 못한 채 먹이 앞에서 입맛만 다시면서 말라가고 눈이 쏙 들어간다. 진단은 간단하다. 소의 뱃가죽에 청진기를 대고 손가락으로 튕기면서 ‘핑~’ 하는 날카로운 가스 찬 소리를 듣는 것이다. 진단이 내려지면 소의 옆구리를 뚫어 부풀어 오른 제4위에 직접 주삿바늘을 꽂는다. 그러면 “피시식” 하고 바람이 빠지면서 소는 즉시 풀을 우걱우걱 씹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면 마치 내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든다. 소가 난산 중이다. 자정부터 새벽까지 어렵사리 송아지 자세를 교정하고, 잠자는 여러 사람들을 깨웠다. 모두 힘을 합쳐 송아지 다리를 끌어당겨 드디어 송아지가 어미소의 몸에서 스르르 하고 빠져나오면 온몸이 소똥과 양수로 얼룩지지만 그 순간은 세상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 멀리서 데려온 표범이 15일간의 긴 단식을 풀고 드디어 소고기를 게걸스레 먹기 시작했다. 거의 반년 이상을 먹지 않던 아나콘다가 환경을 바꾸어 주었더니 마침내 닭을 감고 조이기 시작한다. 어렵게 데려온 기린 한 쌍이 서로 소 닭 보듯 하더니 드디어 수컷이 암컷 등에 올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강아지가 갓 태어났는데 거의 미동을 하지 않기에 입안 가득 코를 물고 양수를 빨아냈더니 깽깽 하는 소리와 함께 환하게 살아난다. 마취약 과다로 쓰러진 사슴을 다들 포기하고 바라만 보는데 1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열심히 했더니 마침내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꽥꽥거리며 악만 쓰던 앵무새가 어느 날 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사람을 피하던 침팬지가 날마다 말을 건넸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는 체를 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너무나 좋다. 최종욱 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lovnat@hanmail.net
  • 방범장치 열악 女세입자 불안

    지난 9일 밤 10시 서울 관악구 대학동 일명 ‘녹두거리’에 위치한 한 고시원은 1층 입구의 유리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여성전용층인 2층으로 들어가는 자동문에도 잠금장치가 없어 버튼만 누르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1층에는 고깃집이 있어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게진 남성들이 입구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고시원에 사는 한 20대 여성은 “내 방의 문만 잘 걸어 잠그면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며 살지만 취객이 복도로 들어오지 않을까 불안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고시원과 고시텔은 이름만 다를뿐 시설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 주한 미군이 고시텔에 사는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고시원, 고시텔이나 자취방에 사는 여성들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오피스텔이나 원룸은 방범장치가 잘 돼 있는 대신 방세가 비교적 비싸고, 월세가 25만~30만원 안팎으로 저렴한 고시원이나 자취방 등은 방범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방범장치 설치는 집주인의 자율에 맡겨져 있는 까닭에 싸고 허름한 주거시설에 몰린 여성들은 사실상 범죄 사각지대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원룸과는 달리 욕실과 주방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고시원과 일명 ‘잠만 자는 방’이라 불리는 자취방의 경우, 방범여건이 좋지 않은 곳들이 적지 않다. 1층 입구부터 잠글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복도에 들어올 수 있거나, 1~2층에 방범창조차 없는 곳들도 있다. 동작구 노량진동의 ‘잠만 자는방’에 사는 한 여성은 “1층인데도 방범창이 없어 집주인에게 달아달라고 했지만 ‘도둑 들 리 없다’면서 달아주지도 않는다.”며 애만 태우고 있다. 입구에 잠금장치가 없는 한 고시텔에 사는 김모(23·여)씨는 “미군의 고시텔 성폭행 사건과 같은 일이 내가 사는 고시원에서도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현행법상 고시원이나 원룸 등의 방범장치 설치는 전적으로 집주인의 권한이다. 건물을 지을 때는 관할 구나 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지만 건축법·소방방재법 등 관련 법규를 지켰는지 여부만 점검한다. 이들 주거시설의 방범장치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적 규정이 없기 때문에 방범장치는 점검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입자 입장에서 집주인에게 대놓고 따질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고시원이나 자취방 등 공동주거시설의 방범장치설치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거복지연대 남상오 사무총장은 “주택은 개인 소유물이라는 인식 때문에 방범장치를 집주인의 자율에 맡겨두고 있지만 공동주택은 상황이 다르다.”면서 “고시원·원룸 등 공동주거시설의 잠금장치나 방범창 등에 관한 조항을 건축법 등 관련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열린세상] 인문학, 스스로 꼬아 올리는 구원의 동아줄/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인문학, 스스로 꼬아 올리는 구원의 동아줄/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인문학은 위기일까? 얼마 전 귀천한 스티브 잡스의 삶이 명증하듯, 인문학자의 위기일 뿐이다. 미혼모의 아들로 시리아인 유학생의 핏줄을 받은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다. 그를 걷어 길러준 양부는 노동자였다. 등록금이 없어 리드대 철학과를 한 학기만에 그만둔 그는 주류사회 진입이 어려운 주변인이자 약자였다. 1976년 21살 새파란 청춘에 애플을 공동 창업한 그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세상에 내놓았다. 개인용 PC시대를 여는 쾌거를 일구어 냈지만, 30살 되던 1985년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퇴출되었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그날의 좌절을 회상하며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그의 말은 심금을 울린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1996년 애플에 다시 복귀한 그는 기술에 영혼을 불어 넣었다. 아이팟(2001년), 아이폰(2007년), 아이패드(2010년). 우리는 통념에 매몰되지 않았던 그가 건넨 선물을 징검다리 삼아 아날로그의 강물을 넘어 디지털의 신세상으로 건너갔다. “소크라테스와 한나절 보낼 수 있다면 난 애플의 모든 기술을 내놓을 것이다.” 그가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IT(정보기술)의 제왕’에 오를 수 있었던 상상력의 원천은 인문학에 있었다. 그에게 인문학은 영감과 지혜의 보물창고였다. 그는 인문학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황금알을 낳는 어미 닭임을 증명해 보였다. 지구마을 사람들이 그를 기리는 이유는 무얼까? 정상에서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지만, 좌절을 모르고 불굴의 응전 의지를 불태워 인류 역사의 진보를 이끈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로 우뚝 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일군 성공의 신화는 우리가 왜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인문학은 사회적 약자들이 꿈을 잃지 않고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고를 뚫고 나갈 힘을 주는 희망의 오아시스로 다가선다. 승자독식의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강자가 되려 한다. 자본의 정글 먹이사슬 가장 위에 위치한 이들은 미국 월가의 인재들일 것이다. 몇 해 전 세계적 금융위기를 부른 이들의 탐욕은 그칠 줄 몰랐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이제 빈부격차 해소와 일자리를 요구하는 도심시위대의 구호는 뉴욕을 넘어 미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상의 승자들은 몇 해 전 월가가 촉발한 세계적 금융위기를 맞아, 그 주역들을 배출한 하버드대학 전 총장 해리 루이스가 발한 자성의 목소리를 기억해야만 한다.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영혼 없는 수월성(Excellence Without a Soul)”의 추구가 도덕적 해이를 불러왔으며, 그 결과 공동체를 뒤흔드는 커다란 재앙을 초래했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인문학적 소양은 승자들이 물신(物神)의 유혹에 사로잡히지 않고 깨어 있게 해주는 성찰의 지혜를 주는 힘이자 영혼의 부패를 막아주는 소금이기도 하다. 미국의 위기는 남의 집에 난 불이 아니다. 우리 미래를 짊어진 청년들이 ‘88만원 세대’로 자신을 낮추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날로 심해지는 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나아가 인종과 문화가 뒤섞일 수밖에 없는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급속히 접어들고 있는 오늘. 세대와 계층, 인종과 성별 등 모든 사회·문화적 울타리를 넘어 지향과 이해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 모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 인문학적 소양일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인문학은 영감과 지혜를 주는 보물창고이자, 약자에게 힘을 주는 희망의 오아시스이기도 하며, 영혼이 썩지 않게 지켜주는 소금으로도 다가선다. 종교가 하늘에서 내려주는 동아줄이라면, 인문학은 깨어 있는 주체로서 우리 스스로가 꼬아 올리는 구원의 동아줄이라 할 수 있다. 시민을 위한 인문학,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은 물론 경영자를 위한 인문학과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까지…. 우리 시민사회는 니체가 말한 ‘삶에 봉사하는 인문학’에 목마르다. 이제 인문학자들이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답할 때다.
  • 연이은 미군 고시텔 성폭행...방범 열악한 고시원·자취방 여성들 ‘불안’

     지난 9일 밤 10시 서울 관악구 대학동 일명 ‘녹두거리’에 위치한 한 고시원은 1층 입구의 유리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여성전용층인 2층으로 들어가는 자동문에도 잠금장치가 없어 버튼만 누르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1층에는 고깃집이 있어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게진 남성들이 입구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고시원에 사는 한 20대 여성은 “내 방의 문만 잘 걸어 잠그면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며 살지만 취객이 복도로 들어오지 않을까 불안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고시원과 고시텔은 이름만 다를뿐 시설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  주한 미군이 고시텔에 사는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고시원, 고시텔이나 자취방에 사는 여성들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오피스텔이나 원룸은 방범장치가 잘 돼 있는 대신 방세가 비교적 비싸고, 월세가 25만~30만원 안팎으로 저렴한 고시원이나 자취방 등은 방범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방범장치 설치는 집주인의 자율에 맡겨져 있는 까닭에 싸고 허름한 주거시설에 몰린 여성들은 사실상 범죄 사각지대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원룸과는 달리 욕실과 주방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고시원과 일명 ‘잠만 자는 방’이라 불리는 자취방의 경우, 방범여건이 좋지 않은 곳들이 적지 않다. 1층 입구부터 잠글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복도에 들어올 수 있거나, 1~2층에 방범창조차 없는 곳들도 있다. 동작구 노량진동의 ‘잠만 자는방’에 사는 한 여성은 “1층인데도 방범창이 없어 집주인에게 달아달라고 했지만 ‘도둑 들 리 없다’면서 달아주지도 않는다.”며 애만 태우고 있다. 입구에 잠금장치가 없는 한 고시텔에 사는 김모(23·여)씨는 “미군의 고시텔 성폭행 사건과 같은 일이 내가 사는 고시원에서도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현행법상 고시원이나 원룸 등의 방범장치 설치는 전적으로 집주인의 권한이다. 건물을 지을 때는 관할 구나 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지만 건축법·소방방재법 등 관련 법규를 지켰는지 여부만 점검한다. 이들 주거시설의 방범장치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적 규정이 없기 때문에 방범장치는 점검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입자 입장에서 집주인에게 대놓고 따질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고시원이나 자취방 등 공동주거시설의 방범장치설치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거복지연대 남상오 사무총장은 “주택은 개인 소유물이라는 인식 때문에 방범장치를 집주인의 자율에 맡겨두고 있지만 공동주택은 상황이 다르다.”면서 “고시원·원룸 등 공동주거시설의 잠금장치나 방범창 등에 관한 조항을 건축법 등 관련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오늘의 눈] 한반도 주도권 미·중에 넘길텐가/김미경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한반도 주도권 미·중에 넘길텐가/김미경 정치부 기자

    “동북아에 신(新)냉전은 불가피하다. 한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다 미국과 중국 중 선택해야 할 것이다.” 국제정치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가 최근 한국을 처음 찾아 외교안보연구원 주최 ‘한반도 문제의 해법’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던진 발언이다. ‘공격적 현실주의자’이자 전통적 동맹이론의 대가인 이들 두 교수가 전망한 동북아 및 한반도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한반도 정세가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관계 전망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한 포럼에서 “미·중 사이에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가장 어려운 상황으로 악몽”이라고 밝힌 것에서도 드러난다. 미어샤이머 교수의 제자로 알려진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도 “한국이 미·중 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고 동북아 안보는 냉전시대보다 더 불안정하고 불확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전망은 열강의 패권주의와 갈등, 동맹을 중시하는 시각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냉전이라는 양극화 시대를 지나 다극화 시대, 나아가 무극화 시대로 가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그만큼 전통적 열강 중심의 국제정치 질서를 넘어 다양한 차원의 협력과 공조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도 더 이상 열강 사이에 끼인 약소국이라는 패배·열등감에 싸여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 외교’ 마인드를 갖고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 정세의 운명을 이끌어갈 묘책을 짜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외교가에는 미국과 연합하고 중국과 화목하게 지내는 ‘연미화중’(聯美和中)과, 미·중과 모두 손잡는 ‘연미연중’(聯美聯中)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문제는 이들 두 화두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다. 오는 1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전략동맹도 이런 차원에서 우리 측에 유리하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chaplin7@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