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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한류 뒤 나는 배곯는 가수다

    화려한 한류 뒤 나는 배곯는 가수다

    지난달 9일 흥미로운 증권사 리포트가 발표됐다. LIG투자증권 정유석 애널리스트는 국내 3대 연예기획사의 하나인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의 5인조 아이돌 그룹 빅뱅이 올해 콘서트로만 380억원을 비롯해 음반·음원 120억원, 광고 50억원 등 총 780억원의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YG의 또 다른 축인 4인조 여성 아이돌 2NE1의 올 매출액은 콘서트 150억원, 음반·음원 50억원 등 총 300억원으로 추정됐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청년뮤지션 생활환경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인디 음악인 221명의 생활수준을 설문조사했더니 고정수입이 월평균 69만원이었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2012년 55만 3354원)에도 못 미치는 월소득 50만원 이하도 38%나 됐다. 200만원이 넘는 사람은 9%에 불과했다. 77%의 인디 음악가들이 음악활동 외에 강습·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현 정부 들어 짙어진 사회 양극화의 그늘이 대중음악계, 나아가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동남아는 물론 유럽과 북미, 남미까지 한류와 K팝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의 지원과 언론의 관심은 아이돌 그룹 위주의 K팝에만 쏠리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1년에 20개 레이블을 선정해 1000만원을 직접 지원하는 등 창작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정책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창작지원은 실종된 상황이다. 당장 영화를 찍고, 음반을 녹음할 돈이 없는데 좋은 작품을 만들어 오면 유통과 홍보를 돕겠다는 성과주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형기획사들의 대대적인 투자와 더불어 음악적 깊이와 폭을 더한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음반·음원시장을 잠식한 것도 비슷한 시기다. 경력 12년차인 고구려밴드의 리더 겸 보컬리스트 이길영(40)씨는 요즘 KBS의 밴드 오디션프로그램 ‘톱밴드 시즌 2’(시즌 1은 신인밴드 발굴 프로그램이었지만 올해부터 기성밴드에도 문호 개방) 출전을 고민 중이다. 골수팬들이 듣는다면 뒷목을 잡을 일이다. 객원보컬로 덴마크에서 열리는 월드뮤직페스티벌에도 참가했고, 일본과 타이완 등에서도 공연을 했던 그다. 2000년 강원도 속초에서 결성된 고구려밴드는 우리네 정서를 제대로 담아낸 록밴드다. 국악기 한두 개를 섞어 놓고 퓨전 운운하는 뮤지션들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스스로의 음악을 ‘(정선)아라리록’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그들의 음악이야말로 ‘한류’의 참뜻에 부합할지도 모른다. 2004년 창작국악경연대회 금상을 받으면서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인정받았다. 정규앨범 두 장을 비롯해 세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 등 상업적으로 ‘뜬’ 밴드를 논외로 한다면, 홍대 밴드 중 살림살이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금은 지자체 행사에서 300만~400만원의 개런티를 받는 단계까지 올라왔다. 그런데도 서울에서 가장으로, 생활인으로 버텨 내기란 쉽지 않다. 음악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멤버당 연간 1000만~15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이씨는 최근 고향 정선의 정선문화회관 음악감독으로 옮겼다. 물론 4대 보험이 되는 정규직은 아니다. 다른 멤버들은 서울에서 레슨을 하거나 세션 등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이씨는 “지난 10년, ‘아라리록’을 하는 밴드로 명예를 지키자는 약속은 지켰는데 지금은 정말 힘들다.”면서 “음반·음원시장을 아이돌과 대형기획사가 독식하는 상황에서 공중파를 타지 못한 뮤지션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오죽하면 우리가 ‘톱밴드’ 출전을 고민하겠나. (경연의) 중간단계까지 버티면 지금보단 낫겠다 싶은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커버스토리] 예술인 증명은 각자? 산재 적용은? 복지기금은?

    상을 차린 쪽에서는 첫술에 배부를 리는 없다고 말한다. 정작 숟가락을 들 이들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인디뮤지션 달빛요정과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등 젊은 예술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리기라도 하듯 예술인복지법이 지난해 11월 17일 제정됐다. 예술인의 지위를 법으로 규정하고 특정 직종의 복지를 다룬 법을 만든 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법을 통과시키는 데 급급했던 터라 좀처럼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자격증명·산재보험 규정 안갯속 법은 예술인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자를 말한다.’고 정의했다. 증명할 방법은 대통령령으로 밀어놓았다. 문화예술에 대한 자격증은 따로 없다. 결국 고용관계를 증명하거나 신춘문예나 각종 콩쿠르 입상경력, 각종 기금 수혜 이력, 납세 실적, 공식적인 유통경로를 통해 발표한 창작물 등으로 예술가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얘기다. 산업재해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예술인의 범위도 안갯속이다. 법이 통과될 당시에는 공연·영상 분야에 종사하는 5만 7000여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에서 제도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상은 천차만별이다. 산재보험은 원칙적으로 보험료를 사업주가 부담한다. 캐디와 학습지 교사, 레미콘 기사,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직 근로자(5월부터 택배 기사와 퀵서비스 기사도 포함)에 한해 사업주와 노동자가 비용을 반반씩 부담할 수 있다. 문화예술인도 특수고용직과 같은 잣대를 적용할지는 미지수다. 고용주가 불명확하거나 도급·출연계약 등 고용관계가 복잡하고 단절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용부와 함께 최근 연극과 드라마 분야의 고용관계 실태조사를 마쳤다. 산재보험 가입과 더불어 법안의 핵심인 예술인복지기금 설치도 겨우 첫삽만 뜬 상태다. 예술인복지법에 따르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설립해 ▲예술인의 직업안정·고용창출 및 직업전환 지원 ▲원로 예술인의 생활안정 지원 등 취약예술계층의 복지 지원 ▲개인 창작예술인의 복지 증진 지원 ▲예술인의 복지 및 근로 실태의 조사·연구 ▲예술인 복지금고의 관리·운영 등 핵심 사업들을 위임할 태세다. 현재로서는 재원 조달을 오롯이 예산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관련 예산은 10억원뿐. 그나마 1억원은 재단설립을 위한 연구용역비다. ●복지재단 설립도 첫삽만 뜨고 무관심 문화부 관계자는 “의미가 큰 법안이지만 실질적인 지원책이 빠졌다는 지적도 알고 있다. 오는 11월 시행을 앞두고 시간이 촉박한 게 사실이다. 시행령에 예술인을 어떻게 정의하고 산재보험 적용 대상을 어떤 식으로 결정하든 불만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복지재단의 정관을 만드는 작업과 중장기적인 재원조달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결국 관건은 예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커버스토리] 밥은 먹고 예술 하십니까 꿈만 먹고 눈물 흘립니다

    [커버스토리] 밥은 먹고 예술 하십니까 꿈만 먹고 눈물 흘립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다섯 명이 2007년 국악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깜깜했다. 연습 공간을 구하는 것부터 힘에 겨웠다. 겨우 음악학원을 빌렸다. 사용시간은 학원수업이 끝난 오후 6시부터 새벽까지로 한 달에 30만원이었다. 가끔 공연하고 받는 출연료가 수입의 전부였던 터라 이 돈마저도 빌려 내야 할 시기가 닥쳤다. 근근이 무대를 찾고, 공연을 하고, 음악을 만들며 기량을 다지기를 2년. 한 공연기획자를 만났다. 프로젝트 그룹이 아니라 아예 고정 그룹을 결성했고, 자비를 털어 음반을 냈다. 조금씩 출연 제의가 늘었다. 지난해 5월에는 서울 충무아트홀의 상주예술단체로 지정됐다. 지난 11일에는 이 공연장 대극장에서 연출가 박근형, 무용인 이원국과 정영두, 국악인 백경우 등 쟁쟁한 국악인들과 공연하며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국악그룹 ‘앙상블 시나위’ 얘기다. 앙상블 시나위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나도….”를 목표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영화] 명문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A(32)씨가 영화판에 뛰어든 건 10년 전. 촬영감독을 꿈꾸며 2002년부터 조명부 막내로 현장에 입문했고 3년 전 촬영부로 옮겼다. 충무로 체계는 여전히 ‘도제식’이다. 보통은 촬영감독 밑에 팀장 격인 퍼스트, 그 아래 세컨드와 서드 등 4명이 한 팀을 이룬다. 퍼스트를 가장으로 둔 가족과 비슷하다. 퍼스트가 제작사와 ‘통계약’을 맺고 ‘짬밥’(경력)에 따라 스태프에게 돈을 나눠 준다. A씨는 배터리를 충전하는 단순작업부터 시작해 지금은 세컨드까지 올라갔다. 이 정도면 한 달에 300만원 안팎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일감이 없다는 것. 게다가 촬영 준비단계에는 테스트 촬영 몇 번이 전부여서 다른 일도 못 하고 수입도 없다. 지난해 서드급으로 영화 두 편에 참여했다. 언제 촬영이 끝날지, 언제 쉴지 예측 불가능한 현장에서 주 60~70시간을 일하며 7개월을 보냈다. 지난해 총수입은 1600만원 남짓이다. 틈틈이 홍보영상 촬영 등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는 버텨 낼 재간이 없다. “야외촬영은 해가 떨어지면 끝이니까 하루 12시간만 일하면 됩니다. 그나마 행복하죠. 세트촬영은 짐작도 안 돼요. 3~4일 밤샘하면 쉬고, 장마가 겹치면 쭉 쉬는 게 휴일인 거죠. ‘통계약’이라 휴일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는 불가능하고요. 꿈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니까 버티죠. 결혼하고 애가 있는 선배들은 생활이 되질 않습니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그래요. 나이 들어서 전직을 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뮤지컬] 요즘 가장 주목받는 뮤지컬계도 명암이 엇갈린다. 뮤지컬 주연급 배우의 출연료는 회당 200만~300만원. 유명해지면 쑥쑥 오른다. 지난해 배우 조승우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하며 회당 1800만원대 개런티를 받아 화제가 됐다. 한 해 공연되는 뮤지컬은 100여편에 이르지만 이런 경우는 몇 명에 불과하다. 1~3차로 나눠 받는 출연료를 1차만 받고 끝나는 사례도 많다. 주연급이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은 배우들의 생활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09년부터 2년간 세 개의 작품에 출연한 B(27)씨는 총출연료를 따져 보니 740만원이었다. 그나마 140만원은 아직 받지 못했다. 2년 내내 공연과 연습에 매달렸지만 연봉은 300만원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래서 작품하는 틈틈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뮤지컬 경력 7년차 앙상블(코러스) 배우 C(31)씨는 회당 5만~7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무대에 오를 때 기준이라 연습 기간엔 수입이 없다. 게다가 흥행이 안 돼 출연료를 아예 못 받은 일도 허다하다. “생계가 어려워 낮에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서빙을 한 적도 있어요. 주변 동료 중에는 밤에 대리운전하는 배우도 있죠. 무대에 선다고 생활이 화려한 것만은 아니죠.” [무용] 무용수들은 병이 친구요, 반창고가 피붙이다. 높이 뛰어 올라 착지하는 동작이 많은 공연이면 무릎과 허리엔 반창고투성이다. 현대무용을 하는 D(35)씨는 한 시간에도 십수 번 몸을 뒤척인다. “어떤 움직임에만 익숙해져 한 자세로 앉아 있으면 몸이 쑤신다. 이럴 때마다 다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니 자연히 ‘은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남들은 한창 일할 30대에 말이다. “현대무용 하는 사람들은 한국무용 하는 사람들이 부럽고, 발레 무용수들은 또 우리를 부러워하죠. 발레는 30대 중반만 돼도 은퇴 얘기가 나오거든요. 한국무용은 일흔을 앞두고도 무대에 오르잖아요.” E(29)씨는 이따금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 무대에 선다. 3년 전 대학을 졸업한 뒤 한 달 수입 50만원인, ‘예술하는 사회인’으로 몇 달을 버텼다.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무용 강사를 하고, 가끔 지인을 통해 공연 제의가 들어오면 한 달 가까이 연습하고 이틀 무대에 올라 40만원을 받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면 1시간 30분에 5만~10만원을 받지만, 수업과 공연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공립 무용단에 들어가면 기본급에 무대수당 등을 받아 금전적인 상황은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무용수 생명이 길지 않은 현실을 따져 보면 ‘노후대책’ 따위는 꿈일 뿐이다. “그래도 목표가 있고 내 실력을 믿으니까 버티고 있어요. 아직은 젊다는 거 하나로 밀고 나가는 거죠. 하지만 설 수 있는 무대가 점점 줄면 그 이후에는 어떡해야 할까요.” [미술] 미술은 단독작업이다. 스태프 같은 집단이 없다. 해서 작업은 더 어렵고 지원은 더 간절하다. 판매시장이 형성된 회화 쪽은 그나마 낫다. 영상, 설치, 퍼포먼스 작업은 판매가 제로에 가깝다. 동시대미술이라 각광받지만 수입은 제로인 셈이다. F(47)씨도 마찬가지. 나름대로 미술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다. 그럼에도 작업에 한번 착수하려면 몇 달간 돈을 모아야 한다. F씨는 “공연 분야는 티켓 수익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비록 적자라도 일정 수익이 보장되겠지만 미술 쪽은 그렇지 않다.”면서 “나 역시 작품 판매로 인한 수입은 거의 없기 때문에 평균 수입이 얼마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들쭉날쭉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늘 마이너스 인생이다. 거기다 작가들은 작업실 유지비용이 들어간다. “남는 땅이나 건물 같은 것을 작업실로만 쓰게 해 줘도 한결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F씨는 그나마 자기 사정은 낫다고 했다. F씨는 “그래도 미술계에서 쌓아 온 인지도 때문에 특강, 원고 청탁, 심사위원 활동 같은 것이 있어 간간이 수입이 들어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작품 경력인 포트폴리오의 단절이다. “작가에게는 자신의 작업세계의 변화와 발전을 보여 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목숨과도 같은데 돈 문제에 치이다 보니 흐름이 끊겨 버립니다. 사실 미술 쪽 사람들에게 돈 문제는 생계보다 포트폴리오의 단절이라는 문제가 더 크죠.” 시인 90%가 출판 업무·학원 강의로 생계 [문학]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출신 시인 G(32)씨는 올해부터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면서 월수입이 100만원 안팎을 왔다갔다할 만큼 올랐다. ‘88만원 세대’보다 못한 무명 시인으로 어떻게 혼자의 힘으로 서울 생활을 꾸려 왔나 돌아보면 자신이 대견하기만 하다.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출신은 훈장일 뿐 고봉밥을 주지는 않는다. 시인들의 원고료는 편당 계산된다.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 대여섯 개 전통 문예 계간지는 편당 10만원을 준다. 한 번 게재될 때 3~5편이 실리니 30만원에서 5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 날은 운수대통한 날이다. G씨는 “시문학 잡지들이 많아 시인들의 창작 횟수는 많지만, 시가 게재돼도 고료를 주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두 편을 3만원에 퉁 치는 곳도 있고 원고료 대신 정기구독을 권유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전업 시인’은 전업 소설가와 달리 거의 불가능하다. 시인의 90%가 출판사에서 일하거나 학원강사를 하는 등 시간제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 최근 문예창작과가 많아지면서 논술과 창작 지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첫 시집을 내려면 대부분이 등단 5년 이상은 돼야 한다. 소설가는 시인보다는 좀 낫다. 원고지 70~120장의 원고를 쓰고 보통 100만원의 원고료를 받는다. 조금 팔리는 성싶으면 두세 군데 출판사가 선계약하는 등 출판이 더 원활하고, 원고 청탁도 더 낫다고 G씨는 덧붙였다 문소영·최여경·조태성·김정은기자 symun@seoul.co.kr
  • “창작 오페라 ‘연서’…원작 독창성 살리며 새로움 더해 사실에 가까운 면모 볼 수 있을 것”

    “창작 오페라 ‘연서’…원작 독창성 살리며 새로움 더해 사실에 가까운 면모 볼 수 있을 것”

    극단 여행자 대표 겸 상임연출가 양정웅(44)은 연극계에서 가장 바쁜 몸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스케줄을 들여다보면 연극 ‘십이야’(11~20일)와 ‘돈키호테’(1월 7~22일),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1월 6~29일), 연극 ‘뷰티풀 번아웃’(2월 18~26일) 등 4편을 올렸다. 국내뿐이 아니다. 오랫동안 셰익스피어에 천착해 온 그는 본고장인 영국 런던의 글로브시어터에 오는 4월 30일 ‘한여름밤의 꿈’을 올린다. 그런데 앞으로 2년간 연출일정이 꽉 잡힌 그가 창작오페라 ‘연서’의 연출을 덜컥 맡았다. 느닷없는 일은 아니다. 2006년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창작오페라 ‘천생연분’을, 이듬해 오페라 ‘보체크’와 창작발레 ‘심청’을 올린 “전방위 연출가”이기 때문. 양정웅은 “현대연극의 신화적 존재인 영국 연출가 피터 브룩은 ‘오페라는 무대예술의 꽃’이라고 했다.”면서 “어릴 때부터 김자경 오페라단 회원일 만큼 오페라를 좋아했다. 드라마를 통해 음악이 주는 감동을 즉각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오페라는 거부하기 힘든 매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몸이 두 개라도 버텨내기 힘든 살인적 일정이라 고민도 했다. ‘연서’의 예술총감독을 맡은 박세원 서울시 오페라단 단장은 양정웅에게 삼고초려를 한 것은 물론, 지인을 통해 그의 아내인 배우 윤다경(41)씨를 설득했다. 양정웅은 “살짝 고사했는데 아내의 전화가 결정적이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하면 좀 그렇고, 아내가 독문학을 전공한데다 가방끈도 길고 작품분석도 정확하다. 작품에 대한 조언은 잘 받아들이는 편”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연서’는 2010년 초연 때 회당 1700명이 넘는 유료관객을 동원한 화제작이다. 베르디, 푸치니 등 고전이 아니라면 흥행이 쉽지 않은 국내 풍토를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연극계의 흥행 연출가 양정웅이라도 부담스러울 법하다. 그는 “개작이 훨씬 어렵다. 원작의 오리지널러티를 살리면서 새로움을 더해야 하니 제약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초연 영상을 여러 번 봤고, 자문단 평가자료도 꼼꼼하게 읽었는데 초연 때는 주인공들이 두 번 환생하면서 조선시대 한양, 일본강점기 경성, 현재 서울을 넘나드는 복잡한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스토리를 잘 모르는 창작오페라인 만큼) 관객 이해를 도우려면 압축할 필요가 있었다. 경성 부분은 통째로 들어내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현재로 둔 채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극을 끌어가는 액자구조로 고쳤다. 갈등구조와 멜로코드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연서’의 무대 중앙에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거대한 누각이 설치된다. 연극팬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양정웅은 그동안 셰익스피어와 브레히트 등 고전 텍스트를 해체·재구성하는 데 장기를 발휘했고, 여태껏 그의 무대는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이미지가 풍성했기 때문. 양정웅은 “늘 같을 수는 없다.”면서 “그동안 모던하고 추상적·상징적인 부분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구상적이고 사실에 가까운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다작에 대한 일각의 우려와 관련, “에너지가 고갈돼 작품을 망칠 것 같으면 쉬어야겠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나를 망쳐가면서 불꽃을 당기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히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확 달라진 ‘양정웅의 연서’에는 지난해 ‘주인이 오셨다’로 대한민국연극대상 희곡상을 받은 고연옥 작가와 양정웅의 짝패인 임일진 무대미술감독이 합류했다. 강혜정과 이은희(도실 역·소프라노), 나승서와 엄성화(아륵 역·테너), 한경석(기탁 역·바리톤), 최웅조(재필 역·베이스) 등 성악가들과 서울시향, 서울시합창단이 함께한다. 공연은 1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1만~7만원. (02)399-1114.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창작오페라 ‘연서’ 명문가의 딸 도실과 비단 장인 아륵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명문가의 딸이었지만, 기탁의 음모로 하루아침에 몰락한 도실은 조선 최고의 미모를 이용해 기생이 되고서 사내들의 재물을 빼앗고 몰락시키는 요부로 변신한다. 도실과 아륵은 우여곡절 끝에 애틋한 마음을 확인하지만, 현생에서는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생에서 재회한다.
  • 만화 아트 마켓 나온 이현세 스케치의 가격은…

    만화 아트 마켓 나온 이현세 스케치의 가격은…

    국내 대표 만화가 이현세 화백이 그린 인기작 ’폴리스’ 주인공 오혜성의 연필 스케치 100만원, 국내 역사 만화를 그리는 데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백성민 화백이 말의 역동성을 포착한 수묵화 500만원, 국내 만화계의 맏형 이두호 화백이 수채화로 그려낸 신천동 판자촌 풍경은 300만원, 시사 만화가로 유명한 박재동 화백이 바라본 한강 저녁 풍경은 30만원….  한국 만화가 ‘아트 마켓’의 가능성에 도전한다.  국내 첫 만화 아트 마켓인 ‘33+컬렉션(Collections)’ 개막식이 14일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 디자인갤러리에서 열렸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현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방중혁 서울애니메이션센터장 등 각계 인사를 비롯해 만화계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다음달 14일까지 이어지는 ‘33+컬렉션’은 국내 유명 만화가의 육필 원고와 원화 등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사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아르떼피아가 공동 주최한다.  그동안 자선 행사나 정부 주관 사업 차원으로 만화 원화 시장이 열린 적은 있었으나, 민간 차원의 본격적인 만화 아트 마켓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만화를 ’제9의 예술’로 명명하고 만화 작가들의 원화를 구입해 소장하는 문화가 일상이 됐다. ‘꼬마 니콜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장 자크 상페의 경우 원화가 수백~수천만원대로 거래되고 있을 정도다. 이번 만화 전문 아트 마켓은 해외에 견줘 저평가돼 있는 국내 만화의 예술 가치를 끌어올리고 만화가의 창작 활동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만화계는 이번 행사가 아직 시장 가격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국내 만화 아트 마켓의 틀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현세 이두호 이희재 김동화 김형배 백성민 박재동 오세영 김혜린 등 주요 작가 33명을 비롯해 권가야 석정현 최규석 하일권 등 신진 작가, 만화적인 상상력이 뛰어난 현대 미술 작가 등 65명의 작품 168점이 전시된다. 초기작에서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출판 만화 원고, 원화, 삽화, 스케치 등이 망라 됐다. 작품당 가격은 적게는 15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에 이른다. 총 판매 예상 가격은 무려 2억원이다.  김병헌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원장은 “(애호가들에게는) 유명 작가들의 생생한 숨결과 섬세한 펜 터치를 가까이에서 접하고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 “만화 아트 마켓이 제대로 뿌리 내리면 창작력을 발산해야 할 작가들에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봄철 가족나들이 영등포로 오세요”

    “봄철 가족나들이 영등포로 오세요”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 봄을 맞았다. 초·중·고교 주 5일 수업 전면 시행으로 가족 단위의 나들이가 활기를 띠게 된다. 하지만 야외로 나가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 부담이 적지 않다. 이를 고려해 영등포구는 멀리 가지 않고도 가족끼리 봄바람을 쐴 수 있는 코스를 개발했다고 13일 밝혔다. 관련 지도는 구청과 각 동 주민센터에서 배포하며, 구 홈페이지(www.ydp.go.kr)에서도 곧 만나볼 수 있다. ‘아이가 똑똑해지는 나들이’를 테마로 가족 여행자들의 패턴을 반영해 여행 목적에 걸맞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4개 코스로 나눠 사진과 관광 포인트, 교통편을 지도에 꼼꼼히 담았다. 국내 최초의 방송전시관인 ‘KBS 견학홀’에서 국내 방송의 역사와 현재를 체험할 수 있다. 입체영상체험관, 홀로그램, 캐릭터 코너, 미니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 위치한 ‘금융투자 체험관’에는 청소년관이 마련돼 있어 시뮬레이션 방식을 통해 금융과 자본시장에 대한 기본 지식을 배울 수 있다. 30~40명 단위 단체관람 때 인터넷 홈페이지(www.kcie.co.kr)에서 ‘꿈꾸는 여의도 경제버스’난을 찾아 신청하면 된다. 국내 최고 수준의 민간과학관인 LG사이언스홀은 생명과학, 미래에너지, 디지털 네트워크 등 8개 테마전시관을 갖춰 과학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과거 정수장이었던 ‘선유도 공원’이 생태공간으로 다시 탈바꿈했다. 가족 나들이 코스로 인기 ‘짱’이다. 한강역사관과 수질정화공원도 체험할 수 있다.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에선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각종 희귀 동식물을 만날 수 있다. 서울교에서 여의교까지 ‘생태체험 학습구역’과 하류의 ‘둔치경관탐방구역’이 추천 코스다. 여의도공원은 신선한 정취를 느끼며 하이킹이나 산책을 즐기기 좋아 웰빙 투어코스로 꼽힌다. 수중생물을 만날 수 있는 63시티 ‘씨월드’와 한강 사계절 테마파크 ‘수피아’도 들러보자. 삭막했던 문래동 철제 상가촌에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홍대나 신사동 가로수길에 못잖은 감성적이고 근사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과 창작촌 곳곳에 숨어 있는 그림 및 조각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한강변의 플로팅 스테이지나 영등포 아트홀에서도 가족 중심의 공연·전시가 연중 계속돼 미리 일정을 체크하고 찾아보는 게 좋다. 고급 브랜드가 모인 백화점부터 저렴한 대규모 할인점이 밀집해 주말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영등포 재래시장에서 시장 구경은 물론 먹자골목 체험도 곁들여 짭짤한 재미를 볼 수 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미디어·애니메이션·연극·음악과 무용의 만남… 젊은 안무가들 놀라운 ‘실험정신’

    미디어·애니메이션·연극·음악과 무용의 만남… 젊은 안무가들 놀라운 ‘실험정신’

    #1. “만약 우리 만남을 공연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두 개 스크린 속에 무용수가 각자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창 밖을 오가고, 공간에서 연습한다. 배경에서 상당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들이 각각 한국과 독일에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멀리 있는 두 사람의 소통을 무대로 옮겨 영상과 무용의 만남을 꾀했다(황수현의 ‘코 랩: 서울-베를린’). #2. “그 남자랑 왜 헤어졌는데?” 남녀 6명이 구석에서 대화한다.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늘어 놓는 이들의 대화는 마치 연극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내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 낮게 깔리면서 무용수들이 서서히 몸을 움직이다가 점점 강렬하게 얽히고설키며 춤을 춘다. 말보다 몸짓이 더 강렬하게 와 닿는다(전성재의 ‘서른 즈음에’). 오는 16~17일과 23~24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젊은 안무가들의 생각과 몸짓, 창의성이 응축된 ‘2012한팩 라이징 스타(Rising Star)’가 열린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이 공연은 한국공연예술센터(한팩)가 추진하는 차세대 예술가 육성 프로그램으로, 젊은 무용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자리다. 이번에는 다른 장르와 융합을 주제로, 각각 미디어·애니메이션·연극·음악 등을 무용과 한 데 섞었다. 안애순 예술감독은 “최근 공연들이 관객 중심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데, 우리는 가급적 이들의 작가주의를 지켜 주고자 노력했다.”면서 “젊은 안무가들의 창작 역량을 키우고 소개하는 것인 만큼 관객들이 이들의 생각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애써 작품을 이해시키기 위한 동작이 아니라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최근 아르코예술극장 스튜디오에서 짤막하게 맛본 작품들은 확실히 개성이 강하다. 금배섭 안무가의 ‘보이는 것에 대하여’에서는 한바탕 욕지거리가 걸쭉하게 울려 퍼진다. 창문 하나에는 다리가 버둥거리고, 다른 하나에는 팔 두 쌍이 그림자 연극을 하듯 모양을 만들어 내며, 상대에게 스멀스멀 다가가 움켜쥐기도 한다. “어떻게 바라볼지는 관객의 경험과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게 안무가의 설명이다. 이재영의 ‘기타리스트’는 움직임과 이야기를 동시에 전달하고자 더 고민한 느낌이다. 남성 두 명이 마이크를 가운데 두고 실뜨기를 하듯 정교한 동작으로 주고받는다. 마이크를 잡고 독백을 하는 여성 뒤로 서로 돌리고 부딪치면서 거친 움직임을 이어 가더니 여성을 밀어내고 당기며 점점 역동성을 극대화한다. 마음이 찡해지는 여성의 독백도 좋다. 젊은 안무가가 선사하는 신체 움직임에 집중하거나, 이야기를 눈여겨보거나, 독특한 표현에 놀라거나 적어도 하나는 경험하게 될 자리인 것은 확실하다. 16~17일에는 1팀인 황수현·금배섭·윤푸름(‘존재의 전이’)이, 23~24일에는 2팀인 전성재·지경민(‘애니메이트’)·이재영이 무대에 오른다. 1팀 공연은 19세 이상, 2팀 공연은 13세 이상이 관람할 수 있다. 전석 1만원. (02)3668-0007.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국내 인기 만화가, 릴레이 1인 시위 “노컷!”

    국내 인기 만화가, 릴레이 1인 시위 “노컷!”

     국내 인기 만화가들이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웹툰 심의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힙합’ ‘좌우’ 등으로 유명한 김수용 작가는 12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만화가 동네북이냐. 방통심의위의 무분별한 심의에 반대한다. (작품을)마감해야 하는 데 항의하기 위해 나왔다.”며 1인 시위를 펼쳤다. 범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윤태호·백정숙)는 “최근 방통심의위가 웹툰 23편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사전 지정한 것에 항의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치기로 했다.”면서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실상의 검열을 막기 위해 만화계가 온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13~14일 ‘전설의 두목’ 이종규·이윤균 작가에 이어 15일에는 ‘이끼’의 윤태호, ‘순정만화’의 강풀, ‘신과 함께’의 주호민, ‘더 파이브’의 정연식, ‘살인자ㅇ난감’의 꼬마비노마비 작가가 한꺼번에 나선다. 만화계의 릴레이 1인 시위는 작가 40여명이 참여해 5월 15일까지 지속될 예정이다. 만화계와는 별개로 진보넷, 언론연대, 언론인권센터, 참여연대 등은 지난해 말부터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통신 심의 폐지를 요구하며 4개월째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학교 폭력이 사회 문제로 비화되자 일부 웹툰이 그 원인을 제공하는 폭력 만화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논란이 됐다. 이에 방통심의위는 법적으로 인터넷상 정보에 해당하는 웹툰에 대한 심의를 확대해 23개 작품을 문제 작품으로 꼽은 뒤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관련 사전 통지 및 의견 안내 공문’을 각 포털사이트에 발송했다. 만화계는 이번 사태가 만화 창작 전반에 대한 규제로 이어져 만화 산업을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범만화인 비대위는 지난달 20일 웹툰 심의에 반대하는 블로그(http://nocut_toon.blog.me/)를 열어 작가들의 항의 만화를 게재하는 한편, 항의 배너를 배포하고, 심의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한 분석 등을 올려놓은 데 이어 같은 달 27일 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 및 대대적인 항의 시위를 연 바 있다.  한편, 방통심의위는 이르면 이달 내로 청소년유해매체물 사전 통지 받은 웹툰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지금&여기] 또 만화에 자기 검열의 족쇄를 채울건가/홍지민 온라인뉴스부 기자

    [지금&여기] 또 만화에 자기 검열의 족쇄를 채울건가/홍지민 온라인뉴스부 기자

    요즘 국내 만화계는 격앙된 상태다. 1997년 ‘천국의 신화’ 음란물 시비를 촉발시키며 만화산업 전반을 위축시킨 청소년보호법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달 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네이버, 다음 등 웹툰을 연재하는 포털 사이트에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관련 사전통지 공문을 보냈다. 네이버 웹툰 13개를 비롯해 다음 5개, 야후 3개, 파란 2개가 대상에 포함됐다. 너무 폭력적이어서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다. 이는 지난해 말 대구 중학생 자살 등 학교 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야후의 ‘열혈초등학교’가 논란이 되는 등 화살이 웹툰과 게임에 돌려진 탓이 크다. 방통심의위의 문제작 리스트에는 지난해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던 정연식 작가의 ‘더 파이브’, 2011년 오늘의 우리만화 수상작인 꼬마비·노마비 작가의 ‘살인자ㅇ난감’도 포함됐다. 신선한 연출로 해외에서 화제를 모았던 호랑 작가의 ‘옥수역 귀신’과 ‘봉천동 귀신’, 영화로 만들어지는 이종규·이윤균 작가의 ‘전설의 주먹’도 도마에 올랐다. 만화계는 특히 작가와 업계 스스로 19세 미만은 볼 수 없도록 성인 인증 절차 시스템을 마련해 놓은 작품들도 유해매체물 대상에 올려놓은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다. 자율 규제 노력이 무시당했다는 판단에서다. 방통심의위는 이르면 이달 중 해당 웹툰의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유해매체물로 지정되면 ‘19금’ 딱지를 달아야 하고 성인인증 절차 없이는 접근할 수 없다. 이러한 심의가 보편화되면 작가 스스로 자기 검열의 족쇄를 채울 수밖에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창작력 위축이 불보듯 뻔하다. 수많은 작품이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지며 우리 시대 최고의 만화가로 꼽히는 허영만 작가는 과거 정부 검열 시대가 끝난 뒤에도 몇년 동안 자기 검열의 속박에서 허우적댔다고 토로한 바 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역량을 키워 왔던 우리 만화는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차세대 한류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청소년에 해악을 끼치는 매체로 손가락질당하고 있다. 우리 만화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두 얼굴이다. 날개를 펼치려는 창작자들에게 자기검열이란 족쇄를 다시 채워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icarus@seoul.co.kr
  • 부산 상수도 폐가압장 4곳 문화공간 변신

    부산 상수도 폐가압장 4곳 문화공간 변신

    부산 상수도 폐가압장이 마을재생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수정산 배수지 완공으로 쓸모가 없어진 상수도 가압장 4곳이 대상이다. 가압장은 고지대가 많은 지역 특성상 1960~80년대 수돗물 압력을 높여 주기 위해 설치됐다. 부산시는 첫 결실로 사상구 주례동 폐가압장을 문화예술공간(오른쪽 문화주례공터·면적 150.8㎡)으로 조성했다고 9일 밝혔다. 1층에는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폐자재 활용 에코악기 제작·실습 체험장이 들어선다. 2층에는 청소년 게임 창작 워크숍, 청소년 커뮤니티 대학, 다문화 합창단 등 주민문화예술 창작 교실이 설치돼 지역주민, 청소년, 다문화 가족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사상구는 건물을 무상사용하며 이 공간을 문화예술 분야 전국 최초 사회적기업인 ㈜부산노리단에 위탁 운영했다. 부산노리단은 연말까지 ▲주례는 대학(마을의 문화예술자원 발굴) ▲주례에서 놀자(익숙한 마을공간의 재해석 및 놀이마당으로 변신) ▲주례쇼하자 (주민참여형 마을축제 기획) 등 3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개소식은 오는 12일 오후 3시 허남식 시장, 송숙희 사상구청장을 비롯해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송 구청장은 “구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 제공을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며 “새롭게 거듭난 문화공간이 창작 체험장과 문화예술 활동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편 시는 이 밖에 부산진구 범천가압장(북카페 및 어른쉼터), 부산진구 범일가압장(소규모 창업지원 사업장), 남구 문현가압장(고동골 마을 문화·교육 거점)의 리모델링 및 신축공사를 하고 있으며 순차적으로 문을 연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92세 在美 시인의 ‘모국 사랑’

    미명의 언덕 위/형장으로 끌려가는 학생들 사진/어두운 그림자 신문에 보았다/갈데 없어 허우적거릴 넋들/이제는 잠자게 해야지.(‘억울한 목숨들’ 중) 재미(在美) 작가 박만영(92) 시인이 새 시집 ‘목숨의 탄도’(문학나무 펴냄)를 냈다. 폐렴과 식도 이상 증세로 수 차례 수술하고 음식도 넘기기 못하는 상황에서 창작의 열정을 녹였다. 시인은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면서 ‘풀어진 매듭’, ‘섬진강 달맞이꽃’, ‘여기에 살고 있다’ 등을 출간했다. 재미 한인 중견문인들이 제정한 ‘문정 시인상’의 첫 수상자가 됐다. “우리 것을 앞세우고 닦아나갈 때 세계의 문학에 낄 수 있다고 본다. 아류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시인은 시집에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 나라에 대한 걱정과 애정, 모국어에 대한 사랑 등을 다양하게 풀어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뮤지컬·연극

    ●뮤지컬 ‘서편제’ 4월 22일까지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고(故) 이청준 작가의 대표작이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초연 당시 더뮤지컬어워즈 최우수창작뮤지컬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해 작품성도 인정받은 뮤지컬 서편제는 2년 만에 대극장으로 옮겨오면서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로 더욱 풍성한 음악을 선보인다. 윤일상 작곡가가 새롭게 참여했다. 3만~9만원. 1666-8662. ●연극 ‘게이 결혼식’ 7월 1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어느 날 결혼을 조건으로 100만 유로를 상속한다는 고모의 유언장을 받게 된 바람둥이 앙리. 유산을 받기 위해 새빨간 거짓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들의 신혼집에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올 때마다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2011년 프랑스에서 코미디 연극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초연된다. 3만 5000원. (02)766-3440.
  • “국악은 한민족 묶는 원형질, 기틀 다지며 활로 모색할 것”

    “국악은 한민족 묶는 원형질, 기틀 다지며 활로 모색할 것”

    “한심하게도 요즘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일제강점기 사상이 녹아들어 우리 음악의 뿌리를 뒤흔들고, 이제는 학교 교육에서도 국악을 홀대하고 있지요. 임기 2년 동안 국립국악원에서 우리 음악이 무엇인지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취임 100일을 맞아 8일 기자들과 만난 이동복(63) 국립국악원장은 국악이 처한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사람들도 위대한 수령 어쩌고 하면서도 노래는 우리처럼 아리랑을 부른다.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한민족을 묶어 주는 원형질이 음악”이라고 강조한 이 원장은 “그 정체성을 확보하는 근원을 살려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국악의 활로를 모색하겠다.”고 역설했다. ●“빚을 갚는 심정으로 30년 만에 돌아와” 1970년대 말 국악원에서 대금 연주자로 활동한 이 원장은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국악원에 다시 오게 됐다.”고 말했다. 1962년부터 대금을 배웠다는 그는 가난 때문에 진학이 어려웠지만 국립국악사양성소(현 국악중·고등학교)에서 국비 장학금을 받아 배움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뒤 국악원에 들어갔다가 대학으로 적을 옮겼고, 30년 만에 돌아왔다. 이 원장은 “국립국악원은 그 사이 거대한 조직이 됐는데, 정작 국가 대표 브랜드가 돼야 할 국악은 정체돼 있는 듯하다.”면서 국악을 견고하게 다지기 위한 구상을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역시 공연이다. “국립국악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문묘제례악’은 중국에서도 배워 갈 정도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면서 “수준 높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당장 오는 27~28일 정악단 공연을 연다. 풍류음악의 대표작인 ‘영산회상’을 악곡 구성과 악기 편성을 달리해 ‘가즌회상’, ‘평조회상’, ‘관악영산회상’ 등으로 들려주는 기회를 마련한다. 이어 4월 12~13일에는 민속악단의 역량을 모아 대풍류, 굿, 시나위 등 민속기악곡을 연주한다. 5월에는 창작 소리극 ‘언문외전 한글을 만나다’, 11월에는 정가극 ‘이생규장전 영원한 사랑’을 공연한다. “최고 실력을 갖춘 연주단원들은 국악원의 꽃”이라는 그는 “연주단원들의 기량을 더욱 향상시켜 격조 높은 예술을 보여 주고 국제적인 활동도 늘리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을 비롯해 남원·부산·진도 등의 국악원 소속 국악인 480여명에게 특별교육과 다양한 전통예술 체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어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들이 더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면서 “국악 동아리의 연주 장소를 제공하고 국립국악원 단원이나 원로 연주자들의 강습 기회도 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악 교육에도 새로운 전기 마련해야” “우리 아이들이 국악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는 이 원장은 “국악 교육 자료를 더욱 체계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교육용 국악 웹사전에 국악 표제어를 충실히 담고, 동영상·음향·이미지 등 기록물을 차근차근 공개할 예정이다. ‘표준 국악실기교재’를 개발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문화원이 운영하는 세종학당이나 국악문화학교에도 보급하는 것을 준비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국악능력시험 개설도 고려하고 있다. 전문 자격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교육을 하면서 국악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판단에서다. “자격 시험을 국악원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공인시험위원회 등과 연계해 추진하는 것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 조선시대 ‘日記 뱅크’ 마련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 조선시대 ‘日記 뱅크’ 마련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조선시대에 살았던 조상들은 어떤 일기를 썼을까. 설명이 많으면 감동이 없는 법, 흥미로운 몇 가지 예로 직접 느껴보자. #하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채 보름도 안 된 1592년 음력 5월 12일 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데 광해군의 빈궁이 해산을 했다. 광해군이 생산한 첫 자식이다.’ 이 내용은 당시 내원의 제조로 광해군의 분조(分朝)를 수행했던 정탁(1526~1605)의 ‘피난일기’에 적혀 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졌던 광해군의 첫 자식 출산이 1598년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 기록은 6년이나 앞당겨져 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왕자인지 공주인지 모르며 이후로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둘 ‘1617년 6월 25일 김택룡은 바쁜 하루를 보낸다. 아들 김각이 내일 과거시험을 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시험장에 타고 갈 말을 빌리고 시험 칠 때 사용할 붓을 빌린다. 이전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사용한 붓을 통해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목욕재계을 한 후 제물을 꼼꼼히 챙겨서 제사 준비를 마쳐둔다. 이후 시험 답안지를 정부 규격에 맞추어 꼼꼼하게 마름질하고 시험 치는 사람의 신상명세를 기록한 녹명단자도 준비한다. 온갖 기원을 담아 바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시험장에 가야 하는 26일 모든 가족이 모여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어머니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낸다. 먼 길 떠나는 아이의 편의를 봐 달라고 의흥현감에게 보내는 편지도 작성한다.’ 요즘 수능 시험을 치르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심정과 비교할 수 있어 눈길을 끄는 일기 내용이다. #셋 ‘1780년 8월 15일 맑음. 어느새 명절이 되고 보니 성묘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주막 사람이 돈을 너무 많이 요구하여 노자가 거의 떨어졌다. 명절날 한번 배부르게 먹는 것도 마련할 수 없으니 진실로 한번 웃고 말 일이다.’ #넷 ‘1599년 11월 15일, 조익(趙翊)과 동지사(冬至使) 일행은 황궁의 서관(西館, 사신관)에 머물고 있었다. 이날 명나라 예부에서 관리가 공문을 가지고 와 내일 하사품을 받을 것이라 알려 주었다. 다음 날(11월 16일) 동지사 일행이 대궐로 나아갔다. 명나라 예부주사(禮部主事)는 조선의 사신들에게 하사되는 물품을 감독하여 지급하였다. 표저의(表紵衣) 각 두 벌, 흑단(黑段) 4필, 황기(黃綺) 각 4필, 청(靑, 청포) 2필 등의 물품이다. 그리고 사신의 옷에는 협금(挾金)을 사용하였고 하사품의 양도 두 배로 하였다. 수행원에게는 다만 견의(絹衣) 한 벌, 청(靑) 2필을 지급하고, 화청(靴淸) 등의 물품도 있었다. 광록시(光祿寺)에서 규례대로 일상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주는 것은 5일에 한 차례, 사신과 수행원 21명에게 지급하였다. 돼지고기 52근(斤) 8냥(兩), 향유(香油) 2근 10냥, 염장(鹽醬) 각 5근 4냥, 화초(花椒) 4냥, 엽채(葉菜) 3근 4냥, 쌀 1석(石) 5승(升), 술 52병 반, 야채 2근 6냥이었다. 황제가 내리는 일상 생활 물품은 단지 한 차례 내려주는데 양(羊) 네 마리, 거위 네 마리, 닭 여섯 마리, 다식(茶食) 네 접시, 호두 네 접시, 향유 2근 10냥, 염장 각 5근 4냥, 화초 5냥, 엽채 3근 4냥, 쌀 2석 1두 1승, 술 42병, 야채 26근이었다.’ 당사자가 직접 쓴 일기도 있고 옆에서 본 사람이 쓴 내용도 있다. 얼핏 봐도 당시 시대상과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말 그대로 재미가 무궁무진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을까.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 소장돼 있다. 200자 원고지 4장 분량의 일기 목판이 무려 6만 3000여장이나 보관돼 있다. 10만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국내 유일의 10만대장경을 기록하는 셈이다. 그저 단순한 일기뿐만이 아니다. 첫째 예에서 보듯 정탁의 ‘피난일기’는 사료적 가치가 보물급이다. 현재 번역 작업을 하고 있으며 올해 말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김병일(67) 원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김 원장은 국학진흥원뿐만 아니라 선비문화수련원의 이사장도 맡아 ‘선비정신’의 전파, 보급에도 앞장서고 있다. 두루마기가 잘 어울리는 김 원장에게 먼저 국학진흥원에 수집된 자료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물었다. “고문서와 고서, 목판 등과 같은 민간 소장 전통 기록 유산이 주류를 이룹니다. 기탁 수집 방식을 통해 국학 자료 33만 9000여점이 보존돼 있어 국내 한국학 관련 연구소 가운데 최대 소장량을 자랑합니다. 국보급 1종(징비록)과 보물 52종 등 고문서 16만 7000여점, 고서 10만여점, 일기류 목판 6만 3000여점 등의 다양한 문화재 자료가 보관·보존돼 있지요.” 기탁 수집 방식이란 원 소장자의 소유권을 인정하면서 수집된 자료에 대한 관리와 연구 및 학술적 가공의 권리만 가지는 제도를 말한다. 이 방식은 국학진흥원에서 처음 채택했다. 국학진흥원의 보물창고라고 알려진 ‘장판각’으로 장소를 옮겨 인터뷰를 계속했다. “장판각에 보관된 일기류 기록 자료들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창작자들에게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됩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러한 일기류 자료 가운데 사료적 가치가 높고 문화 콘텐츠 산업에 활용 가능한 일기류를 선별해 번역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지요. 한문으로 기록된 자료를 한글로 옮김으로써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해소하면서 이야기 소재 뱅크를 구축하는 사업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 600여개의 소재를 개발했고 올해도 600여개의 소재를 개발할 예정이다. 향후 1만여개의 이야기 소재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원장은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창작자들을 위한 최대의 창작 인프라를 구축해 우리의 이야기에 기반한 세계적인 한류의 전진 기지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특히 장판각에 보관된 일기류들은 우리나라 선비·유교문화의 실생활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특별하다. “선현들이 남긴 거룩한 내용(일기)들이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인기를 끄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등 여러 사극도 이런 소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지요.” 최근 국학진흥원에서는 ‘조선시대 일기류를 활용한 전통문화 콘텐츠 소재 뱅크 활용 방안과 전망’이란 주제로 ‘전통문화 콘텐츠 소재 뱅크 보고 및 시연회’를 가져 창작인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끌었다. 허구의 가공된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의 생생한 사실 정보를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이상의 현실 같은 이야기 소재’여서 창작자들에게는 최고의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시 말해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물음에 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국학진흥원의 장판각 일기 보관소인 셈이다. 세계적인 소설이자 영화인 ‘해리포터’가 영국 전통문화의 결정체라고 한다면 한국판 ‘해리포터’는 전통문화의 보고인 국학진흥원의 장판각 일기를 참고한다면 충분히 생산 가능한 일이라고 김 원장은 강조한다. 이뿐만 아니다. 국학진흥원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을 펼치고 있다. 조손(祖孫) 세대 간의 문화 소통을 통해 미래 세대(유아 및 아동)의 인성을 함양시키고 민족적 정서가 배어 있는 이야기 구연을 통해 민족 문화를 전승하는 사업을 말한다. 3년 전 시작한 이 사업은 56세 이상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지난해 300명, 올해 600명, 내년 1000여명의 이야기 할머니들이 전국 3000여개의 유치원에서 미래 세대에게 전래동화와 선현들의 미담을 들려주는 이야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요즘 학교 폭력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이런 미담을 들은 아이들이 자라면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김 원장은 말한다. 이어 화제를 어른들로 돌려 선비수련원 이야기를 꺼냈다. 2001년 퇴계 선생 탄신 500주년을 맞아 설립된 선비수련원에는 그동안 10만명 가까이 다녀갔을 만큼 해마다 인기를 더해가고 있단다. 처음에는 주로 학생과 교원이었으나 최근에는 관공서 직원, 기업인과 일반인 등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점점 각박해져가는 오늘날에 선비 정신의 중요성을 새삼 체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 원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퇴계 선생의 청량산행 시를 인용한다. ‘산봉우리 봉긋봉긋, 물소리 졸졸/새벽 여명 걷히고 해가 솟아오르네/강가에서 기다리나 임은 오지 않아/내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 친구 이문량에게 쓴 시로 조급해하지 않는 여유와 기다림의 미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김병일 원장은 194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1963년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나온 뒤 서울대에서 사학과와 행정대학원(석사)을 졸업했다.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를 거쳐 재정경제원 국민생활국장(1994), 국회예산결산특위 수석 전문위원(1995~1997), 통계청장(1997~1998), 조달청장(1999~2000), 기획예산처차관(2000~2002), 금융통화위원(2002~2003), 기획예산처장관(2004~2005), 한국개발연구원 자문위원(2005~2008)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장,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상훈으로는 황조근정훈장, 청조근정훈장 등이 있다.
  • 사연따라 연예 반세기(演藝 半世紀)…그시절 그노래(7)

    사연따라 연예 반세기(演藝 半世紀)…그시절 그노래(7)

     신인가수 공개선발 행사인 가요 「콩쿠르」가 1929년에 처음 시작되었다.「컬럼비아·레코드」가 주최한「전선(全鮮) 9대 도시 가요 콩쿠르」대회가 그것이다.  이것은 직업 가수의 등장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매우 큰 뜻을 갖는다. 이때까지의 가수라면 사실상 연극배우, 영화배우가 노래를 겸한다거나 기생이「레코드」를 취입한다는 식으로 뚜렷한「장르」가 없었다. 인기인이라면 대개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용모도 예뻐야 하는, 요즘의「탤런트」적 재질이 있어야 했다. 어느 편이냐 하면 용모 연기력이 먼저이고 노래 솜씨는 차선인 게 그때까지의 연예인이었다.  20년대 후반기에서 3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런 상황은 급변했다. 유성기(축음기)가 보급되고 방송국이 세워지면서 가수들은 황금기를 맞게 된 것이다.  1930년에는 이미 서울에 8개의「레코드」사가 생겼다. 일동(日東), OK, 태평(太平),「시에론」,「컬럼비아」,「빅타」,「뉴코리아」,「포리돌」이 그것이다. 본사는 일본에 있어서「레코드」제작은 일본서 하고 한국에서는 보급을 맡아 하는 지사(支社)들이었지만 각 사간의 가수 쟁탈전은 퍽 치열한 것이었다. 신인가수 발굴을 위한「콩쿠르」가 생겨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 최초의「콩쿠르」에서 탄생한 가수가『타향(他鄕)살이』『짝사랑』의 고복수(高福壽)다. 그는 29년 10월에「컬럼비아」의 전선(全鮮)가요 「콩쿠르」에서 1등에 당선함으로써 가요계에「데뷔」했다.  고복수(高福壽)의 가요계「데뷔」는 가요 사상 누구보다 화려했다.  「레코드」사는 6개월 전부터 신문·잡지·「라디오」에 이 신인가수 모집 광고를 실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등에 뽑히면 1년 전속금 1천원을 주고 일본(日本) 송죽(松竹)영화사의 전속가수를 시켜준다고 공약했다. 지역별「콩쿠르」가 열리는 9개 도시(경성(京城)·평양(平壤)·부산(釜山)·대구(大邱)·광주(光州)·대전(大田)·함흥(咸興)·청진(淸津)·신의주(新義州)에서 비행기로 선전「비라」를 뿌릴 정도였다.    한달 하숙비가 15원 할때···1년 전속료 1천원 받고   1910년생인 고복수(高福壽)의 그때 나이는 만 19살. 울산(蔚山)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빈들빈들 놀고 있던 그는 부산(釜山) 역전 공회당에서 열린 부산지역 선발전에서 1등, 서울 본선에 진출했다.  그때 그의 옷차림은 검정 두루마기에 검정 고무신, 손에는 하얀 무명장갑을 끼고 있었다. 본선 장소는 지금 상공회의소 자리인 공회당, 심사위원은 홍난파(洪蘭坡), 안기영(安基永), 현제명(玄濟明) 제씨.「콩쿠르」실황은 경성(京城) 방송국이 생방송으로 방송했다.  구수한 목소리의 이 시골 청년은 지정곡『구슬픈 마음』과 자유곡『낙화암』을 불러 1등을 차지했다. 8개 도시서 3등까지 모인 24명과 서울지역의 50여명 중에서 고복수(高福壽)는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톱」을 끊은 것이었다.  「레코드」사는 곧 수만장의「프로마이드」를 만들어 전국에 뿌렸고 고복수(高福壽)의 사진은 그때 신문 잡지마다 큼직하게 소개되었다. 일약「스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고복수(高福壽)가 그의 출세곡이자「레코드」사를 살찌게 한『타향(他鄕)살이』를 취입한 것은 그를 발탁해 낸「컬럼비아」가 아니고 OK「레코드」였다.  상금으로 걸었던 전속료 1천원과 월급 40원을 취입하는 날로부터 1년을 계산해서 주기로 약속했던「컬럼비아」가 3개월이 되도록 고복수(高福壽)한테 곡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달 하숙비 15원을 가지고 올라왔다가 그 돈으로 양복을 해입은 이 신인가수는 돈 때문에 퍽 초조했던 것같다. 그 위에 OK「레코드」의 작곡가 손목인(孫牧人)의 유혹이 있었다.  『「컬럼비아」에는 채규엽(蔡奎燁), 강홍식(姜弘植) 같은 가수가 있으니까 좋은 곡은 그들이 다 가져갈 것이고 결국 당신은 찌꺼기 노래만 받게 될 거』라고.  어쨌든 고복수(高福壽)는 OK「레코드」가 주는 1천원을 받고 「컬럼비아」를 떠나버렸다. 한달 하숙비가 15원이었던 것으로 보아 전속료 1천원은 큰 돈이었다.  『타향(他鄕)살이』는 다음 해인 30년 3월에 취입했다. 손목인(孫牧人) 곡에 김능인(金陵仁)이 붙인 가사는 다음과 같다.  ① 타향살이 몇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나 십여년에 청춘만 늙고  ② 부평같은 내 신세가 혼자서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③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호둘기를 꺾어불던 그때는 옛날  ④ 타향이라 정이 들면 내 고향 되는 것을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언제나 타향  당초엔 3절밖에 없던 노래를「레코드」취입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4절은 즉석에서 고복수(高福壽)가 만들어 불렀다는 설도 있다. 그때의「디스크」1면은 3분30초였는데 3절까지 부르고 나도 시간이 남아서 녹음 도중에 창작, 보충했다는 것이다.   4절은 취입 도중 즉석에서 만들어 불러   이때 고복수(高福壽)는 함께 일본에 간 이난영(李蘭影)과「듀엣」으로『바다의 행진곡』『떠나간다』『바다의 로맨스』 등 몇곡을 더 불렀다 한다.  실향민 심금을 제대로 두드린 탓일까?『타향(他鄕)살이』는「테스트」반이 나오면서부터「히트」하기 시작했다. 기미 3·1운동으로부터 11년, 일본의 학정에 살 곳을 빼앗기고 고향을 떠난 실향민들은 고복수(高福壽)의 애절한 노랫소리에 눈물을 짓기 일쑤였다.  31년도, 고복수(高福壽)는 순회극단의 일원으로 북간도(北間島) 용정(龍井)에서 공연을 했다. 그의『타향(他鄕)살이』가 그곳에 있는 동포들을 실컷 울렸던 건 잠작할만한 일. 그런데 그의 노래를 들은 한 부인이 그날 밤 여관방으로 고복수(高福壽)를 찾아와 울고 돌아간 뒤 음독 자살을 했다는 것. 그때 간도(間島)신문에는 이 여인의 자살을 고복(高福壽)의 향수 어린 노래 탓이라고 기록했다 한다. 그 뒤로는 한동안 고복수(高福壽)가 무대에 오르면『또 누굴 죽이려느냐』는 여유와 갈채가 터져 나왔다는 얘기.  일제 밑에서 억눌린 민족의 설움을 대신 노래하면서 대중의 우상이 되었던 고복수(高福壽)는 55년도에 가요계를 은퇴하고 그 뒤 줄곧 조용한 생활을 해 왔다.  말년에는 가난과 모진 병마에 시달리며 쓰라린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가 고혈압과 인후암으로 서울 연세대 부속병원서 세상을 떠난 게 72년 2월10일, 바로 작년 이 무렵. 타향 아닌 타계로 떠난 그의 육성은 이제 들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조관희(趙觀熙)기자> [선데이서울 73년 2월18일 제6권 7호 통권 제227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유럽식 실험+미국식 몸짓… 英 현대무용에 홀리다

    유럽식 실험+미국식 몸짓… 英 현대무용에 홀리다

     영국의 현대무용은 유럽과 미국의 특징이 적절히 어우러졌다. 유럽 현대무용은 무용과 다른 장르를 접목하려는 실험적인 색채가 강하다면 미국 무용은 몸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심정민 무용평론가는 “문화예술의 흐름은 빠르게 상호영향을 받으면서 본연의 특징에 이질적인 것을 뒤섞기도 한다. 영국 현대무용은 이런 미국과 유럽의 개성을 가장 잘 절충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달과 새달,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나란히 오르는 현대무용 두 편에서 영국 현대무용의 오늘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주목받는 ‘호페시 셱터’ (22~23일)  먼저 관객을 찾아오는 무용단은 호페쉬 쉑터 컴퍼니로, 이 안무가를 현대무용 정상에 올려놓은 작품 ‘반란’과 ‘당신들의 방에서’를 올린다.  이스라엘 출신인 호페쉬 쉑터는 오하드 나하린이 이끄는 세계적인 현대무용단 바체바 댄스 컴퍼니에서 활동하다가 2003년 영국에서 ‘파편(Fragments)’으로 안무가 데뷔를 했다. 이 작품으로 제3회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안무 콩쿠르에서 1등 상을 차지하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호응을 얻으며 2009년 영국 비평가협회가 선정하는 국립무용상(최고 현대 무용 안무상)을 수상했다. 영국 인기 TV시리즈 ‘스킨스 (Skins)’에 그가 안무한 춤이 오프닝에 쓰이면서 대중적인 인기도 급상승했다.  ‘반란’은 2006년 작품으로, 쉑터가 직접 작곡한 강한 비트의 음악에 맞춰 남자 무용수 7명이 부딪히고 달려나가고 튀어 오르면서 혁신적이고 도발적인 기운을 분출한다.  2007년작 ‘당신들의 방에서’는 남녀 무용수 11명과 연주자 5명이 참여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작품. TV채널을 돌리듯 순식간에 일어나는 상황 전환과 공간 분할이 독특하다. 영국 주간지 ‘더 옵저버’는 “밀레니엄 이후 영국에서 창작된 가장 중요한 무용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22~23일, 3만~7만원(회당 100매 한정으로 학생 20% 할인). ●현대사회 진단하는 신체극 ‘DV8’ (새달 6~8일)  DV8 피지컬 씨어터는 이름 그대로 신체극을 내세운다. ‘DV8’는 댄스(dance)와 비디오(video)의 결합이자, 일탈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디비에이트(deviate)이기도 하다.  안무가 로이드 뉴슨은 호주 멜버른대학에서 심리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무용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1986년 DV8을 창단한 이래 인간의 영혼, 삶과 현실 등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현대무용으로 풀어냈다. 지난 2005년 홀로그램을 활용해 현대사회를 조롱한 ‘저스트 포 쇼(Just for Show)’로 내한한 뒤 7년 만에 들고온 작품은 ‘캔 위 토크 어바웃 디스?(Can we talk about this?)’이다.  소설 ‘악마의 시’(1988)를 집필해 암살 현상금이 걸렸던 살만 루시디, 무슬림 여성들의 인권실상을 고발한 단편영화를 찍은 후 살해당한 테오 반 고흐 감독 등 큰 충격을 안긴 사건들을 무용수 11명이 신체 움직임으로 이야기한다. 이 작품을 위해 뉴슨은 2년 동안 사건을 연구하고 관련인물들을 40회 이상 인터뷰했다니, 난해한 사회문제를 몸짓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더욱 호기심이 인다. 4월 6~8일, 3만~7만원. (02)2005-0114.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평론가에서 연출가로… 초연 이어 앙코르까지… “묘하다”

    평론가에서 연출가로… 초연 이어 앙코르까지… “묘하다”

    신문의 문화면을 자주 접하는 독자라면 익숙한 이름일 테다. 특히 뮤지컬 분야에 관심이 많다면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아, 그분!’ 하고 무릎을 칠지도 모르겠다. 뮤지컬 평론가 조용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평론가 외에 뮤지컬 연출가라는 새옷을 입어 호평을 얻었다. 소극장 공연에서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 올해는 600석의 중극장 무대로 옮겨 공연되는 뮤지컬 ‘모비딕’의 연출가로 나선 것. 허먼 멜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 ‘모비딕’은 거친 바다에서 펼쳐지는 흰고래 모비딕과 선원들의 한판 대결을 그린 작품으로, 여느 뮤지컬과 달리 배우들이 직접 오케스트라를 대신해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기타, 트럼펫 등을 연주하며 연기한다. 악기들은 때론 소품으로도 활용되며 극의 재미를 더한다. 초연의 성공에 이어 앙코르 공연을 앞두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연출가 조용신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조용신은 초연과 비교했을 때 앙코르 공연은 더욱 풍성해진 것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두산아트센터 내 소극장 SPACE 111에서 공연된 ‘모비딕’은 오는 20일 600석의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무대로 장소를 옮겨 공연된다. 신곡도 3곡이나 추가됐고 110분이던 러닝타임도 중간휴식 포함 140분으로 늘어났다. 그는 “소극장에서 공연했을 때에는 액터 뮤지션 자체가 주는 매력이 있었다. 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뒤 “중극장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장치들을 내밀하게 활용, 감정선을 좀 더 복합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초연 때는 배우들이 많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내면의 목소리를 독백 형태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중극장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캐릭터들의 관계를 많이 강화했다. 또 보컬이 들어간 곡 외에 브리지곡, 연주곡, BGM 등을 대부분 바꿔 음악적인 비중을 높였다. 110분에 다 담지 못했던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해결했다. 초연을 보신 분들은 앙코르 공연을 통해 드라마와 연기, 음악이 통합돼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접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액터 뮤지션 뮤지컬 ‘모비딕’, 즉 연기와 연주, 노래가 모두 가능한 배우들이 무대에 서다 보니 캐스팅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는 “초연 당시 캐스팅하는 데만 7개월가량 걸렸다. 처음에는 연주자 위주로 캐스팅한 뒤 연기자를 투입하며 연주와 연기의 합을 이루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앙코르 공연에선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2’에서 인상 깊은 가창력을 보여 줬던 차여울과 SBS 기적의 오디션 출신 배우 지현준(34)이 각각 내레이드와 작살잡이 퀴퀘그 역을 맡았다. 조용신은 “차여울의 경우 초연을 한 달 앞두고 내레이드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 무척 실력 있다 싶었지만 피아노 연주가 다소 아쉬웠다. 공연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아 바로 투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노래도 잘하고, 작곡도 전공했고, 시간만 넉넉하면 함께해도 좋을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몇달 뒤 그녀가 위대한 탄생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앙코르 공연을 앞두고 개인 오디션을 봤는데 노래와 피아노 연주 실력 모두 성장해 있었다. 연습 시간도 충분히 있어 이번 공연에 합류하게 됐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지현준의 경우 공동 연출인 이소영 감독이 어떤 무용공연에서 바닥을 구르며 바이올린을 켜는 배우가 있다고 제보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게 지현준이다. 외모는 야성적인데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그가 연구를 많이 해서 캐릭터를 재해석해 새로운 퀴퀘그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뮤지컬 제작사 설앤컴퍼니에서 제작 프로듀서로 일한 바 있다. 이후 미국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뮤지컬을 공부한 뒤 평론가로 돌아와 왕성한 활동을 해 왔다. 주로 평가를 하던 입장에서 작품을 직접 만드는 연출가로 변신했을 때 부담감은 없었을까. 그는 “묘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모비딕’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소극장에서 공연한 작품이 관객의 요청에 의해 재공연이 성사되고, 소극장에서 중극장으로 무대를 넓히는 과정 모두가 묘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비딕 공연 이후 경성시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콩칠팔새삼륙’을 통해 프로듀서로서도 외연을 넓힐 계획이다. 한편 액터 뮤지션 뮤지컬 ‘모비딕’은 20일부터 4월 29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4만 5000~6만 5000원. (02)708-5001. 글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밀월도 가는길’ -‘교내폭력’ 주제에는 공감 하지만…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밀월도 가는길’ -‘교내폭력’ 주제에는 공감 하지만…

    동조는 인천 소재 신문의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돼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다. 애당초 인천에 길게 머물 마음은 없었다. 평소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고향 말만 나와도 버럭 화를 내는 그였다. 상을 받고 출판계 사람과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떠나려던 생각은 과거의 문턱에 걸려 바뀐다. 동조는 전학 가면서 헤어진 재호, 유진과 만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나씩 꺼낸다. 그때마다 여지없이 불려나오는 기정이란 이름의 소년. 사실 동조가 이번에 쓴 소설은 오래전 기정, 유진과 떠난 짧은 여행에 기초한 작품이다. 무의식적으로 기정의 이야기를 창작에 반영한 동조는 그가 남긴 혼란스러운 기억을 되살린다. 머릿속에서 떨쳐내고 싶은 기억,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는 유령이 되어 동조와 마주한다. 교내폭력 문제를 소재로 선택한 몇 편의 독립영화가 근래 주목받았다. 그 밖에도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무수한 장·단편영화들이 비슷한 소재를 다뤄 오고 있다. 20~30대 감독들이 바로 앞 시절에서 건져낸 조각들을 화두로 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학창시절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상업영화와 달리, 그들은 십대 중후반이라는 시간을 어두운 기운이 지배하던 때로 기억한다. 그런데 우연인지 그들의 영화는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하나, 무덤덤하게 현실을 살아가던 인물 앞으로 끔찍했던 십대의 기억이 문득 찾아온다. 둘째, 방문자의 손에는 집단 따돌림과 폭력의 통증이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밀월도 가는 길’도 그러하다. 운명처럼 고향으로 돌아간 인물은 지우지 못할 흔적과 싸워야 한다. 반복되는 패턴에도 십대를 다룬 독립영화들이 하나의 뭉치로 읽히지 않는 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일군의 작품 가운데 가장 쓰라린 상처를 간직한 ‘밀월도 가는 길’은 비참한 상황에 부닥친 인간이 소망했던 무엇을 이야기하려 한다. 기정은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고 아지트를 꾸미고 미지의 세계인 웜홀에 의지하는 소년이다. 겉으로 그의 슬픔은 집단 따돌림이나 가난의 비참함에서 비롯된 듯하다. 진짜 비극은, 소년이 소망하는 바를 아무도 믿지 않음으로써 일어난다. 소년이 규정하는 ‘금지구역’의 개념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혹은 영화의 원작인 ‘노변의 소풍’)에서 따왔는데, 구역이란 희망을 버린 이들을 살려주는 도피처이자 기적으로 기능한다. 현재와 과거가 소설 속 이야기와 뒤섞여 전개되는 ‘밀월도 가는 길’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몇몇 장면과 대사에서 ‘잠입자’의 영향이 감지되지만 2~3분 정도는 쉽게 넘기는 타르코프스키 특유의 길게 찍기 같은 건 여기 없다. ‘밀월도 가는 길’은 때때로 빠른 편집과 현란한 움직임으로 현대 스릴러의 리듬을 취한다. 30여년 전 타르코프스키가 희망과 믿음을 잃은 사람들을 보며 느낀 절망의 속도가 현 시점으로 오면서 빨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주제에 공감하면서도 선뜻 지지하기엔 망설여지는 영화다. 시야에서 사라진 인물을 불러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두 인물의 관계를 기계적으로 봉합했다는 생각이다. ‘잠입자’와 ‘밀월도 가는 길’은 서늘한 계절의 긴 한나절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면의 이야기를 아래로 묻어둔 전자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이어붙인 후자 중 과연 누가 더 진실에 접근했을까?
  • 김어윈군 등 작곡영재 6명 3일 창작발표회

    국내 최고 음악 영재교육시스템인 예술의전당 음악 영재아카데미에서 작곡을 배우는 김어윈(거제 대우초등학교 5년) 등 6명의 창작발표회인 ‘작곡영재들의 그림책 음악여행’이 3일 오후 5시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타워 올림푸스홀에서 열린다. 김어윈군은 모디캐이 저스타인의 글과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걸어간 남자’를 피아노 연주할 예정이다.
  • [김문이 만난사람] 한국 최초 비언어극 ‘난타’ 제작자 송승환 뮤지컬협회 이사장

    [김문이 만난사람] 한국 최초 비언어극 ‘난타’ 제작자 송승환 뮤지컬협회 이사장

    두드리면 열린다. 그래서 온몸으로 힘차게 두드렸다. 결국에는 열렸다. 말 그대로 난타(打)로 세계의 문을 활짝 열었던 것이다. ‘난타’는 한국 전통 가락인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코믹하게 표현한 한국 최초의 비언어극(Non-verbal performance)이다. 칼과 도마 등 주방기구로 무대에서 신명난 예술로 승화시켜 세계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해외 첫 데뷔 무대인 1999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평점을 받았으며 이후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일본, 싱가포르, 네덜란드, 호주 등으로 이어지는 해외 공연의 성공을 발판으로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2004년 3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장기 공연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기록을 되짚어 보면 더욱 흥미롭다. 1997년 10월 첫 공연 이후 지금까지 무려 700만명(외국인 80%)이 관람했다. 초연 당시 1개였던 공연팀이 10개로 늘어났고 출연 배우는 5명에서 현재 50명에 이른다. 그동안 2만 1000여회(세계 270개 도시) 공연하는 동안 야채 소모량을 따져 보니 대략 오이가 19만여개, 양파가 6만여개, 당근이 19만여개, 양배추가 10만여개나 된다. 또한 칼이 약 1만 6000자루, 도마가 1만 7000개 소모됐다. 전용관만 해도 국내 4곳(서울 3, 제주 1), 국외 1곳(방콕) 등 모두 다섯 곳에 이른다. 지금도 이 전용관에서는 연중 상설 공연 중이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중국 상하이나 베이징에도 전용관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처럼 50년 장기 공연하고파 이런 ‘난타’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난타’를 기획하고 만들어 낸 송승환씨다. 그는 현재 공연기획사 PMC 프러덕션 대표이사,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 대학장, 한국 뮤지컬협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카드 사외이사로 추천됐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PMC프러덕션 사무실에서 송 대표를 만났다. 15년을 맞는 소감이 어떤지 묻자 “아직 15살이다. 영국에서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연극이 50년 넘게 공연되고 있다.”면서 “우리의 ‘난타’도 그 이상으로 공연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의욕을 밝혔다. ‘난타’는 초연 때부터 화제가 됐다. 비언어극이라는 생소하고 실험적인 ‘난타’가 작품 선정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호암아트홀에서 초연 무대를 올렸던 것이 우선 그랬다. 이에 대해 송 대표는 “원래는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올리기로 했는데 바로 직전의 다른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는 바람에 호암아트홀을 생각했다.”면서 “처음에는 대관 담당이 반대했지만 연습실로 데리고 와 직접 작품을 보여 주면서 꾸준히 설득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이렇게 해서 어렵게 호암아트홀에서 초연이 성사됐고 언론의 관심에 힘입어 곧바로 동숭아트센터로 무대를 옮겨 바람몰이를 시작했다. 관객들의 발길이 계속되면서 자신감을 얻은 송 대표는 2년 뒤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도전했고 기대와 달리 최고의 찬사를 받으면서 단숨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난타’가 됐다. “사실 처음 난타를 만들 때부터 세계 시장을 노렸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이 문제였고 고민 끝에 언어가 없는 공연을 만들게 됐지요. 외국에서 이 작품이 호평을 받는 이유는 우선 언어가 없기 때문에 스토리를 다 이해할 수 있고 한국적인 사물놀이 리듬을 사용한 것이 외국인들에게 독특하게 다가갔습니다. 또 주방이라는 공간, 요리사의 등장은 아주 자연스럽고 글로벌한 보편성입니다. 게다가 한국적인 특성이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세계시장 노려 비언어극 만든 것 주방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간이고, 그 공간에서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과정에서 관객들을 참여시키기 쉽다는 것이 ‘난타’의 특징이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비트와 리듬, 신명이 곁들여지기에 더욱 흥미롭다. 그렇다면 송 대표는 어떻게 해서 ‘난타’와 인연을 맺었을까. “1989년 극단 ‘환퍼포먼스’를 만들어 공연 제작을 쭉 해 왔지요. 그런데 하는 것마다 빚을 지게 됐습니다. 고심 끝에 1996년 친구와 함께 ‘극단 PMC’를 만들면서 넓은 시장을 노크할 비언어극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결국 사물놀이와 주방을 떠올리며 작품을 만들어 갔고 그 과정에서 하루는 스태프 중 한 사람이 ‘이건 정말 매일 난타다, 난타!’라고 푸념 비슷하게 툭 말을 던지더군요. 그래서 제목을 어지럽게 두드린다는 뜻의 ‘난타’로 바로 정하게 됐습니다.” 초연 이후 ‘난타’는 꾸준히 진화를 거듭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리는 더욱 화려하고 다양해졌다. 철판요리, 국수, 통돼지 요리에 칵테일 쇼까지 등장했다. 주방에서 빠질 수 없는 불을 이용한 쇼까지 생겨났다. 다시 말해 ‘난타’의 퍼포먼스는 주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더욱 극대화하면서 볼거리와 웃음을 생산해 냈다. 이는 창작 뮤지컬 중 마케팅 면에서 아주 흥미로운 접근 방식을 보여 준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결국 사물놀이와 비언어극의 절묘한 접목이라는 힘이 세계 시장에서 먹혀들어 갔다. “초기에는 스토리가 별로 없었습니다. 에든버러 축제에 참가하면서 스토리를 만들었고 그 이듬해 스토리 면에서 완벽할 정도로 달라지게 됩니다. 이후에도 부분적으로 수정하면서 템포를 더욱 빠르게 업그레이드를 시켰지요. 난타의 특징은 드라마틱한 코미디라는 겁니다. 또 대중적인 면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패밀리 쇼’인 셈이지요. 그것이 아마 성공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외국 공연을 갈 때마다 송 대표는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만난다. 그러면 “아주 재미있다.”, “시원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파워풀하고 에너제틱하다.”, “마음에 움직임을 준다” 등등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 언론의 반응도 이와 비슷하다. ‘난타’ 15년을 얘기하던 송 대표에게 초연 당시 배우가 아직까지 있느냐고 하자 “김문수라는 배우가 있는데 처음에는 주방장 역할이었으나 지금은 지배인이 됐다. 그 친구는 기네스북감이며 곧 등재시킬 예정”이라며 웃는다. 15년 동안 한 작품을 계속해 온 배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외국 관객들 “스트레스 확 풀린다” 칭찬 ‘난타’의 후속작은 없을까. “올해 비언어극 두 편을 무대에 올릴 예정입니다. 하나는 ‘난타2’ 격인 ‘드림’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식장을 무대로 한 ‘웨딩’이라는 작품입니다. 둘 다 현재 연습 중이며 ‘웨딩’은 오는 6월, ‘드림’은 10월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특히 ‘웨딩’은 결혼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모아 춤과 노래를 곁들인 작품이어서 아마 또 다른 재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난타’는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 한류의 원조가 됐다. 이에 대해 “그런 얘기를 자주 듣는다. 드라마나 K팝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인기를 유지하면 한류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1년에 100편 창작뮤지컬… 지원 절실 화제를 바꿔 우리나라 뮤지컬의 위상에 대해 물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시장이 굉장히 커졌지요. 그런데 대부분 외국 작품, 다시 말해 라이선스를 통해 수입하는 뮤지컬에만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150편의 뮤지컬이 공연되는데 그중 100편이 창작 뮤지컬입니다. 큰 극장에서는 주로 수입 뮤지컬들이 공연되고 언론을 통해서도 그런 작품만 소개하다 보니 소극장 뮤지컬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창작 뮤지컬에도 많은 관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발전하고 있지만 스토리를 창조해 낼 인력이 부족해 사실상 뿌리가 약하다. 이를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 우리 창작 뮤지컬이 활성화되면 외국의 비싼 작품을 들여올 필요가 없을 것”이라면서 “드라마와 영화가 제자리를 찾고 있듯 뮤지컬도 그렇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역 배우를 한 것이 계기가 돼 일찍부터 배우의 꿈을 키워 나갔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대사 외우고 방송국 분장실에서 시험공부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대학에 진학할 때는 주위의 권고로 아랍어과를 선택했으나 끼를 버리지 못해 연극반에 가담했다. 그러다 신촌에서 76소극장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기성 연극에 뛰어들었다. 송 대표는 지금도 영화와 드라마, 연극 등에 가끔 출연한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난타를 들고 세계 무대를 누볐듯이 우리 창작 뮤지컬로 브로드웨이에 가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계속 출연할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다 나이에 맞는 배역이 있게 마련이며 그쪽의 끼는 접을 수 없을 것”이라며 웃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송승환 이사장은 초등3년 아역배우 → 대학2년 연극무대 → 1996년 공연제작자로 1957년에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아역 배우로 일찌감치 연예의 길에 들어섰다. 학창 시절에도 방송반과 연극반 등에서 활동했다. 1976년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외국어대 아랍어과를 다니면서도 연극을 했고 대학 2학년 때 신촌에서 76소극장을 만들어 기성연극 무대에 뛰어들었다. 1989년부터 1995년까지 극단 ‘환퍼포먼스’ 대표로 일했으며 1996년 ‘PMC프로덕션 대표이사’를 맡아 ‘난타’를 제작했다. 현재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장과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수상 작품으로는 1968년 동아연극상특별상 ‘학마을 사람들’을 비롯, 백상연기대상 남자연기상 ‘에쿠우스’(1982),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 ‘영원한 제국’(1994), 동아연극상작품상 ‘남자충동’(1998) 등이다. 이 밖에 2007년 제13회 한국뮤지컬대상 프로듀서상과 제56회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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