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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항공산업의 국가적 상징성

    항공산업은 자국민은 물론 불특정 다수의 외국인 생명을 담보로 하는 특수성과 함께 소속 국가의 대외신인도를 대표하는 고도의 공공성(公共性)을 지닌다.때문에 ‘안전’은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강조되는 경영의 요체다.추락사고 등의 참사가 잇따라 발생하면 문제가 해당기업에 그치지 않고 즉시국가적 파장으로 확산되는 것이 다른 제품생산업체와 뚜렷이 구분되는 항공업의 특성이다. 특히 대한항공(KAL)의 경우 KOREAN으로 시작되는 상호나 태극마크에서 잘 알 수 있듯 비록 사기업이긴 하나 대외적으로 우리나라와 관련된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큰 기업이다.정부는 지난 60년대 초부터 항공산업을 중점 육성,외화획득과 함께 대외적인 이미지 개선의 정책수단으로 활용했다.KAL의 독점체제를 허용하고 외국운항소득에 대한 법인세와 연료인 유류(油類)특별소비세 등 각종 조세감면혜택을 주었던 것이다.해외출장 공무원은 의무적으로,일반국민들은 그야말로 순박한 애국심으로 국적기를 이용했다.KAL이 급성장할 수있었던 배경이다.이러한 범국민적 지원과 일방적 특혜조치는 해당기업이 사회적·도덕적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그 나라의 대외신인도를 높일 때 비로소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공감을 얻고 정부 정책도 당위성(當爲性)을 발휘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이미 잘 알듯이 KAL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평가받고 있다.다른 항공사들과 자주 비교되는 불친절은 차치하고라도 98년이후만 하더라도 불과 1년4개월 사이에 무려 12건의 사고가 발생했다.오랜독점체제와 족벌경영에서 비롯된 일방통행식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조직을경직시킴으로써 항공의 절대요소인 안전문제가 소홀해졌던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의 경우 대형사고 발생시 항공사 폐쇄나 경영진 퇴진은 상식적인 일이다.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최근 KAL 사고와 경영권 문제에 관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언급은 대내외적인 국정(國政)운영의 최고책임자로서 마땅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쉽게 말해 인명피해나 국가신인도 추락과 관계가 없는 것이라면 구태여 경영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사기업 경영권간섭이란 재계 일각의 반응도 항공업의 특수성은 전혀 고려치 않은 단견이란 지적을 면할 수 없다.또 정부가 특정인을 지목한 것도 아니고 전문성 위주의 경영체제로 인명과 국가신인도를 중시토록 강조한 것은 시장경제를 혼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사려깊은 자세임을 올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너(소유주)경영체제의 문제도 불필요하게 확대해석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일이다.무조건 오너체제는 나쁘고 전문경영인은 좋다는 식의 이분법(二分法)적 사고는 정답이 아니다.기아그룹의 경우 오너 대신 전문경영인이 회사를맡았지만 위기를 맞았다.대한항공은 어떤가.오너의 목소리가 항공업계 세계12위의 대규모 회사 전체를 일방적으로 지배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주인은 있되 전문경영인과 근로자 등 모든 조직구성원의 화합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경영이 이뤄져야만 지속적이고 건전한 기업발전이가능한 것임을 강조한다.창업주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으로 신임사장을 바꾼 대한항공이 이번 체제 변화를 계기로 기업도 살리고 대외신인도도 회복하길 당부한다. [禹弘濟 논설실장]
  • 지구촌 실업대란… 노동자 33% 실직

    전세계의 실업자 숫자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국제노동기구(ILO)는 최근 발표한 ‘98·99년 세계고용보고서’에서 전세계 노동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명이 실업자이거나 불완전고용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1,000만명은 순전히 올해 아시아 금융위기로 실업자 신세가 됐다.또 1억5,000만명은 하루하루 끼니 때우기조차 불가능한 완전실업자로 분류됐다. 지금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실업은 금융위기로 더욱 심화돼 골이 깊어졌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의 실업난 현주소를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해본다. ◎日의 실상과 대책/실업률 2차대전 이후 최악/9월까지 1만5,000기업 파산 ‘사상 최고’/정부 1,000억엔 들여 ‘고용네트워크’ 구축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의 실업률은 다른 경제 지표가 그렇듯 2차대전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총무청이 2일 발표한 8월의 완전 실업률은 4.3%.숫자로는 297만명.‘거품 경제’가 한창이던 90년의 2.1%보다 두배가 넘는다. 이들 가운데 올들어 경영이 악화되면서 구조조정이나 도산으로 해고된 사람이 91만명에 이른다.자그마치 3명 가운데 1명은 올해에 직장을 잃은 셈이다.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파산한 기업은 올들어서만 9월까지 1만5,000건에 달했다.사상 최고치다. 문제는 높아만 가는 실업률이 이쯤에서 진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금융기관의 대대적 구조조정이 예정돼 있고 기업 도산도 줄지 않을 전망이다. 최악의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듯 일본인들이 느끼는 고용불안은 심각하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0명중 7명이 고용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전국의 직업 안정소에는 일자리를 다시 구하려는 사람들로 연일 장사진을 친다는 소식이다.도쿄의 번화가인 신주쿠(新宿)나 우에노(上野) 등에는 ‘홈리스족’들이 점점 늘고 있다.실업수당을 지급받는 사람도 올해 100만명을 돌파,정부의 실업기금도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다급해진 일본 정부는 1,000억엔을 투입해 ‘고용 네크워크’를 구축키로 했다.또 주택건설을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했다.당장 뾰족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예전의 안정권에 이르려면 적어도 2∼3년은 걸릴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의 실업대책/정부,職訓費로 年 22억弗 투자/직업은행 전국에 1,800곳… 원하는 정보 제공 【워싱턴=崔哲昊 특파원】 9월의 미국 실업률은 4.6%.8월보다 0.1% 포인트 늘기는 했지만 눈길을 끌지는 못한다.미국은 실업률이 5% 미만이면 안정권으로 판단한다. 어느 정도의 실업자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하기도 하지만 실업 그늘을 쉽게 걷어낼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비록 일자리를 잃었더라도 40% 가까이는 2주일이면 곧바로 다시 다른 직장을 찾아낸다.실업이 취업으로 곧바로 복원된다. ‘실업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추는 두개.하나는 직장문화로 요약해볼 수 있다.일단 직장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 직장은 해당 분야에 계속 일할 것으로 판단되는 대상자들에게 많은 기술과 경험을 쌓게 해준다. 이는 업무 능률을 높여 줄뿐만 아니라 그 자리를 그만둔 뒤에도 익힌 기술을 응용해서 전문가로 자립할 수 있게 해준다.다른 일자리를 찾는 데 결정적인 방향키가 된다.새내기 직장인의 훈련비용은 겉으로 사용자가 부담하지만 실제로 정부가 댄다.미국 정부는 매년 22억달러를 쏟아붓는다. 실업에 대비한 안전장치는 또 있다.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미국 직업은행(Job Bank of America)’이 위력을 발휘한다.60년 전에 만들어져 전세계 직업 은행의 모델이기도 한 JBA는 무슨 직업이든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보수,원하는 분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누구나 쉽게 접근하게 해준다. 미 전역에 1,800여곳,각 주에 평균 36개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직업은행은 원하는 모든 기업과 컴퓨터로 연결돼 일자리가 나거나 충원되는 상황을 자세하게 보여준다.말 그대로 완벽한 직업은행이 되어 구직을 안내하고 주선해주고 있다. ◎동남아 실업률/연말 10% 넘는 국가 속출 예상/印尼­하루 수천명 해고/泰­한달 1,000개 기업 도산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최근 30년이래 최악의 실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90년대 초반만해도 동남아 국가 실업률은 3%선.금융위기로 실업자가 폭증하며 연말이면 실업률이 10%를 넘어서는 국가도 속출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지원을 받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실업률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하루에도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소식이다. 연말쯤이면 10명중 1명이 일자리 없는 사람이 된다는 추정이다.인도네시아 정부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지하 자금을 양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실업 대책에 안간힘이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태국도 형편은 비슷하다.한달 평균 1,000개의 기업이 무너지면서 최근 50년이래 최악의 실업에 허덕이고 있다.올 연말의 실업률은 9%선을 넘어설 전망. 태국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지원받은 7억달러를 몽땅 투자해 개인 창업을 지원하고 부녀자의 직업훈련 등 고용 창출을 위한 12개 프로그램을 시행키로 하는 등 안간힘이다.그러나 실업률을 끌어내리는데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필리핀도 어렵다.실업률이 자그마치 10%선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말레이시아 역시 6∼7%로 고 실업률에 몸살을 앓을 것이다. 이웃의 형편이 이렇고 보면 홍콩이라고 실업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실업률이 15년만의 최고치인 5%까지 뛰어 올랐다.경제사정이 비교적 안정된 싱가포르도 4%를 넘어서 내년에는 7%선까지 치솟을 전망이다.문제는 비방.뾰족한 처방이 없다는 게 아시아 국가들을 더욱 애태우게 한다. ◎유럽의 실업률/룩셈부르크 2.2% 최저… 스페인 18.7% 최고/EU 15개국 평균 10%… 내년 고용상황 더 암울 유럽은 전통적으로 실업률이 높은 경제권이다.사회보장제도가 잘 구비돼 있는 탓에 실업자들이 취업에 목을 매달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실업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지불해야 하는 실업수당이 늘어 세금이 증가하기 때문이다.이번 독일 총선에서는 실업자감소 방안과 함께 실업수당 감축안이 공약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의 15개국 실업률은 평균 10%.내년 1월 단일통화로 ‘유로’를 쓰기로 한 11개국의평균실업률은 11.1%나 된다.룩셈부르크가 2.2%로 가장 낮고 스페인이 18.7%로 가장 높다. 국제노동기구(ILO)는 9월에 발표한 ‘세계고용보고서’를 통해 옛 소련 블럭에서 독립한 폴라드 등 동유럽 국가의 평균실업률은 9% 이상이라고 밝혔다. EU통계국은 유럽연합의 실업자를 8월 말 기준으로 1,68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ILO는 연말이면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불완전취업자와 자발적 시간제근로자를 제외해도 1,800만명 이상으로 많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 고용상황은 더 암울하다.경제대국인 일본과 아시아,러시아,중남미의 경기침체로 수출 전망이 어둡고 경제성장이 악화돼 고용사정이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도 세계 경제위기 여파가 미치면서 저성장에 따른 고실업의 고통에 몸살을 피할 수 없을 것같다. ◎실업이란/일하고 싶으나 일자리가 없는 상태/일할 뜻 없으면 실업률 통계서 제외 일을 하고 싶으나 일자리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이른바 비자발적실업을 가리킨다.특히 일할 능력과 의사를 갖고 있으면서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을 ‘완전실업자’라고 한다. 실업에는 노동시장이 원활하지 못해 생기는 계절적 실업과 마찰적 실업, 산업구조 재편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실업이 포함된다. 일할 의사가 없어 일자리가 없는 자발적 실업은 비경제 활동 인구로 분류돼 실업률 통계대상에서 제외된다. 흔히 실업이라고 할 때에는 완전 실업을 의미한다.또 실업과 취업을 가리는 기준으로는 1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간주하는 국제노동기구(ILO)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실업률이 5%라함은 일자리가 없어 1주일에 1시간도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100명 중 5명이라는 뜻이다.
  • 예리한 필봉 휘두른 항일언론인/9월의 독립운동가 張道斌 선생

    ◎대한매일신보 시절 반일 언론의 선봉/일제의 행각 발로 뛰며 낱낱이 기사화/국사연구 몰두… 황국사관 정면 반박도 “국가라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국민을 모아 이룬 것이오. 국정이란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국민이 그 일(국정)을 자치(自治)하는 것이오. 애국이란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국민이 그 몸(국가)을 스스로 사랑하는 것이라. 고로 민권이 흥(興)하면 국권이 세워지고 민권이 멸(滅)하면 국권이 쓰러지니 윗 사람이 압민(壓民)하는 권리에 힘쓰면 그 나라는 스스로 멸망하는 것이오,국민된 자가 그 권리의 신장에 힘쓰지 아니하면 그 몸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張道斌의 대한매일신보 논설중에서) 산운(汕耘) 장도빈(張道斌·1888∼1963)선생. 타고난 문재와 예리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일생을 언론활동과 역사연구에 몸바쳤던 애국자다. 반일·항일의 선봉에 섰던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 기자겸 논설위원으로 언론계 활동을 시작해 일제하에서 날카로운 필봉을 날리며 이름을 떨쳤다. 망명과 귀국을 거치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통해 굽힐줄모르는 지조와 의식을 발휘했던 빼어난 애국자·민족주의자이기도 하다. 평안남도 중화에서 태어난 張선생은 5세에 사서삼경을 통독,신동 소리를 들었던 인물. 소문을 들은 평양감사의 추천으로 대한제국의 학부가 관장하던 한성사범학교에서 수학했다. 선생은 여기서 교편생활을 했던 朴殷植의 소개로 1908년 봄 대한매일신보와 인연을 맺어 총무인 梁起鐸의 각별한 신임을 얻었다. 21세에 논설위원이 됐고 申采浩의 후임으로 논설주필을 맡아 친일내각과 친일단체인 일진회에 당당하게 맞서 싸웠다. 대한매일신보는 일제를 신랄하게 비판해 미움을 받았지만 영국인 裵說이 사장을 맡아 항일의 강한 논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일제의 폭압이 더해가면서 신문압수와 검열이 심해졌으나 선생은 일제의 행각을 발로 뛰며 낱낱이 기사화한 장본인으로 이 시절 미국에서 돌아온 安昌浩의 신민회 비밀회원으로 가담했다. 이 때 金九·李昇薰·李商在·尹致昊 등 애국지사들과 교분을 쌓아 나중 망명생활 때 큰 도움을 받게 된다. 1910년 한일합방직후 필진들이 묶여 들어가고 신문사의 명맥이 끊어질 때까지 필봉을 늦추지 않았다. 밤엔 보성전문학교를 다니면서 국사연구에 몰두, 사학자의 발판을 다졌다. 선생의 사관은 당시 팽배해 있던 황국사관과 사대주의사관을 정면으로 반박해 우리의 독립적인 역사의식을 불어넣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결국 1913년 블라디보스토크행 망명길에 올랐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까운 신한촌에서 다시 申采浩를 만나고 독립투사들과 교류했다. 그는 신병으로 安昌浩가 초청한 미국행을 포기하고 1916년 귀국했다. 평북 영변의 서운사에서 요양한 뒤 처음으로 민족혼을 일깨우는 역사서적 ‘국사’를 저술했다. 1919년 귀경후 동아일보의 발간을 출원해 허가를 받았으나 돈이 없어 운영을 양도했다. 하지만 1926년까지 잡지 ‘서울’‘학생계’‘조선지광’을 발간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때 출판사 고려관을 설립,‘조선사요령’‘조선위인전’‘조선역사록 등 숱한 책자를 편찬했다. 1927∼45년은 고적답사를 통한 역사연구에 전념하던 시기. 일제말기 총독부의 끈질긴 중추원 참의 제의를 거부하고 고향 근처의 심산에 은둔하며 역사서적 집필에 전념했다. 그는 후학양성에도 뜻이 컸다. 1947년 한국대학을 설립한데 이어 1948년 단국대학을 설립,초대학장을 맡았다. 1949년엔 육군사관학교 국사학교수로 일했다.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문화훈장을 수상했다. 그러나 단국대 명예교수로 강의를 가던 길에 짐수레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1년간 병원에서 고생하다 1963년 76세의 일기로 운명했다. 지난 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으며 98년 9월 국가보훈처가 지정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그의 후손들/高合 회장 致赫씨 등 5남1녀/모두 재계·학계 뿌리내려 저명 선생은 늦은 나이인 33세에 평북 영변의 기독교 집안 출신 金淑姿씨(1979년 타계)와 결혼,5남1녀를 두었다. 선생의 은둔생활과 구국운동에 따라 부인 金여사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모두 재계·학계에서 뿌리를 내린 유명인사들이다. 장녀 致豊씨는 지난 60년대 결혼후 도미,76년 작고했고 장남 致榮씨는 신동아손해보험 상임이사·고려다이아몬드공업 대표이사를 지낸뒤 92년 별세했다. 삼양식품을 창설한 차남 致德씨도 지난 88년 작고했고 3남 致健씨는 신화다이아몬드공업 회장·고려합섬 이사를 거쳐 현재 BBC 영어연구원 고문이다. 고려합섬을 창업한 4남 致赫씨(고합그룹 회장)는 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81년 산운학술문화재단(현 고려학술문화재단)을 설립했고 막내 致順씨는 중앙대 사회과학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 여성의 표정 회복/김호기 KAIST 신기술창업지원단장(굄돌)

    직업이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이라 학회 참석이나 프로젝트 협의 등으로 가끔 해외나들이를 하면서 우연히 우리나라 여성들의 표정이 외국여성들과 비교하여 왠지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끼고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과학 하는 사람이라 여성의 미용이나 패션에 무심하게 지내는 편이어서 쉽지는 않았으나 우리 여성이 외국여성보다 훨씬 의상이 화려하고 화장이 진한 것이 그 원인이 아닌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그후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성,주변 여성들의 얼굴을 가끔은 유심히 보게 되는데 여대생이건 주부건상당수가 진한 화장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60년대 이전 생존 수준의 가난에서 벗어나 산업화를 이루고 소득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철학이 빈곤한 많은 졸부가 생겨났다.또 이들의 무분별한 소비행태가 바람직스럽지 못한 소비문화를 발생케 하는 토양을 마련하였다.그 과정에서 호스티스 그룹이 생겼으며 이들이 패션이나 미용을 주도하고,여성들은 부지불식 간에 ‘호스티스 문화’에 물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화장’에 해당하는 영어의 ‘cosmetic’은 “결점을 감추는 것”이 그 본뜻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그렇다면 화장은 얼굴의 결점을 감추는 행위인데 우리나라 여성의 얼굴은 그렇게 결점이 많은가? 내가 관찰한 바로는 외국여성보다 피부도 곱고 모습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결코 결점이 많아 화장을 꼭 해야만 하는 얼굴이 아니고 더더구나 짙은 화장으로 감추어야 할 결정적인 결점은 더욱 없다. 자연스럽고 깨끗하며 단정한 얼굴이 아름답지 아니한가!이제 막 피어나는 젊은 여성이 그 아름다움을 왜 진한 화장 속에 묻으려는지 안타깝다. 얼굴의 표정을 회복하자.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답지 아니한가.
  • 親日의 군상:3/3·1문화상과 皇國예술인(정직한 역사 되찾기)

    ◎민족 짓밟고 해방후 민족상까지 받아 ‘3·1문화상’이라는 상이 있다.1960년에 제정돼 올해로 39회째 수상자를 냈다.3·1문화재단(이사장 文仁龜)에서 주관하는 이 상은 대한유화 창업자 李庭林(작고)씨가 제정한 것으로 시상분야는 학술·예술·기술 등 세 분야.재단측이 밝힌 이 상의 제정취지는 “조국광복을 지향하여 거족적으로 발양된 위대한 3·1정신을 영원히 기념하여……”다.상 이름에도 ‘3·1’이 들어가고 또 매년 3·1절 당일 시상식을 갖는 것으로 봐 이 상은 3·1정신을 길이 계승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 분명하다.그런데 이 상의 역대 수상자·심사위원 중에는 일제 당시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거나 친일 작품을 남긴 예술가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예술분야 수상자중 13명,심사위원 중에는 20여명(일부 수상자와 중복됨)이 이에 해당된다.그들의 면면과 구체적인 일제시대 행적을 살펴보자. ◎상받은 예술인 13명의 친일행적은…/문인·화가 등 30여명 ‘위대한 3·1정신’ 왜곡/식민정책 전위대 역할… 청년 징병 내몰아 우선 예술분야 수상자가운데 문학가는 趙演鉉(13회)·安壽吉(14회)·白鐵(17회)·毛允淑(21회)·崔貞熙(24회)·李周洪(28회)등 6명,미술가는 李象範(4회)·金景承(5회)·金殷鎬(6회)·金仁承(9회)·朴泳善(10회)·金基昶(12회)등 6명,음악가는 金聖泰(22회) 1명이다. 문학 분야의 趙演鉉은 대학 재학시절부터 친일 잡지 ‘동양지광’에‘동양에의 향수’(1942년 5월),‘아세아부흥론 서설’(42년 6월)등 친일성향의 평론을 썼다.이중 아세아부흥론 서설은 ‘동양지광’이 현상공모한 ‘지상(紙上)결전 학생웅변대회’에서 3등으로 입선한 작품으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고 이 땅의 청년학도들이 아시아부흥의 투사로 나설 것을 부추긴 내용이다.‘북간도’로 유명한 소설가 安壽吉은 친일 문학잡지 ‘국민문학’(42년 2월)에 발표한 ‘원각촌’ 이외에도 ‘벼’,‘북향보’등의 친일성향의 작품을 쓴 바 있다. 평론가 白鐵은 작품보다는 친일단체에서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는 친일 문인단체인 조선문인협회(회장 李光洙) 상무간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를 지냈으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학예부장 시절 친일 미술가 沈亨求(해방후 반민특위에 의해 구속됨)와 함께 조선미술가협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여류문인으로 이 상을 수상한 사람은 毛允淑,崔貞熙 두 사람이다.이들은 모두 조선문인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41년 2월27일 부민관(현재 서울시 의회 건물)에서 개최된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에 참석해 강연을 했다.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李周洪 역시 상당수의 친일 작품을 남겼다.그는 친일 잡지인 ‘동양지광’에 수필 ‘청년과 도의’(43년 7월)를 비롯해 단편소설·시 등도 남겼다.그는 유일하게 사후에 이 상을 수상했다. 미술계의 친일논쟁은 해방직후부터 시작됐다.문화예술인의 최초 조직이었던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조선미술건설본부는 金殷鎬·金基昶·金景承·沈亨求·李象範·尹孝重 등을 친일 미술가로 규정,회원에서 제외시킨 바 있다.이들의 대다수는 41년 2월21일 결성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황민문화’ 건설을 목적으로 조선문인협회·보도사진협회 등 11개예술단체와 더불어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단체로 활동하면서 전람회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기도 했다.43년 1월9일∼17일 정자옥(丁子屋·일제 당시 현 미도파백화점 자리에 있던 백화점)에서 ‘애국백인일수(愛國百人一首) 전람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은 것이 그 예다. 미술가로서 첫 수상자인 李象範(4회)은 沈亨求와 더불어 국민총력연맹 문화부 문화위원을 지냈으며,金景承·金仁承 형제는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평의원을 지냈다. 특히 金仁承은 朴泳善과 함께 선일(鮮日)합작 미술단체인 단광회(丹光會)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단광회는 43년 3월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회원 21명이 4개월에 걸쳐 공동으로 ‘조선징병제 실시’(100호 규모)를 제작,제1회 단광회 유화전에 출품하였는데 나중에 이 그림은 조선군 애국부를 경유하여 군에 헌납되었다. 순종(純宗)의 초상화를 그린 金殷鎬 역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37년 중일전쟁 무렵에는 조선여성들이 당시 용산 사단사령부 모 일본군 장성에게 금비녀·금반지 등을 바치는내용의 ‘금채봉납도(金釵奉納圖)’를 그리기도 했다.金基昶은 최근까지도 친일논쟁이 있었던 인물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등의 친일성향의 그림을 그린 바 있다. 음악가로는 金聖泰가 유일하다.그는 玄濟明 등과 함께 ‘가창지도대’,‘경성후생실내악단’등 친일 음악단체에서 활동하였다.이 단체들은 ‘음악보국음악회’,‘비행기헌납 음악대연주회’등을 개최,황민음악을 보급하였다. ◎‘역사의 심사’받아야 할 심사위원은… 3·1문화상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도 20여 명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들이 포함돼 있다.이들중 申奭鎬와 李丙燾는 총독부·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하면서 조선역사를 왜곡하고 식민사관을 뿌리내린 장본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의료계의 鄭求忠과 尹日善도 학병권유 논설을 쓰고 시국강연회에 참석했다. 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경제학자 高承濟는 ‘국민문학’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등에 수많은 친일 평론을 남겼다.언론인 高在旭은 경성배영(排英)동지회와 전조선배영동지회연맹에서 상무이사를 지냈으며 여류 교육가 高凰京은 金活蘭·毛允淑 등과 같이 각종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문인중에서는 金八峰·朴鍾和·兪鎭午·郭鍾元 등도 다소 차이는 있으나 모두 친일 논설·작품을 남겼고 극작가 柳致眞·徐恒錫,음악가 金元福(피아니스트) 등도 모두 친일 예술활동을 한 적이 있다.柳致眞의 경우 친일 행적이 문제가 돼 고향 충무에 세워졌던 그의 흉상이 95년 주민들에 의해 철거됐다. ◎“아니! 이럴수가…” 독립유공자 심사까지/‘식민학자’ 등 10여명 18년간 활동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포상은 지난 62년 군사정부가 6·25 전상자를 위한 ‘군사원호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정부는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우고 독립유공자들의 공로를 후세에까지 전한다는 취지에서 매년 광복절 등 역사적 기념일에 이들에 대한 포상을 실시해 왔다. 현재까지 독립유공 공로로 포상을 받은 국가유공자는 모두 8,514명(외국인 40명 포함)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역대 독립유공 서훈자 가운데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사람이 포함돼 있다거나 ▲가짜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 ▲서훈자가 서로 뒤바뀐 경우 ▲형평에 어긋난 포상 등의 논란이 있어 왔다.또 이들중 일부 친일 경력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돼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역대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중에도 친일 단체나 기관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일부 포함됐었다는 지적도 있다. 첫 포상이 실시된 62년도 이후 80년까지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는 10여명(일부 중복자 포함)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가 포함돼 있다. 1962년 문교부 산하 독립유공 공적조사위원회의 위원 7명(위원장 포함)가운데 申奭鎬·李丙燾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申奭鎬는 1930년∼37년의 총독부수사관보(修史官補)를 거쳐 37년부터 수사관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으며,李丙燾는 1925년∼27년에 총독부 수사관보,이후는 촉탁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다. 1963년에는 내각사무처 독립운동유공자 상훈심의회에서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2명 중에는 4명의 친일인사가 들어 있다.高在旭·申奭鎬·柳光烈·李甲成 등이 그들이다.高在旭은 1937년 7월 12일 결성된 경성배영동지회와 같은 해 8월5일 결성된 전조선배영동지회에서 상무이사를 지냈다.柳光烈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편집국장과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조선언론보국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친일논설 및 친일 시국해설 다수를 발표한 언론인이다.李甲成은 상해서 밀정노릇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1968년에는 총무처 독립유공자 상훈심의회가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1명중 高在旭·白樂濬·申奭鎬·柳光烈·李丙燾·李瑄根·洪鍾仁·金聲均 등 8명의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들어 있다.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을,李瑄根은 만주국 협화회의 협의원을,洪鍾仁은 ‘매일신보’의 사회부장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를 지낸 사람이다.金聲均은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언론·출판 검열담당)에서 근무한 기록이 있다. 1977년 원호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 11명 가운데도 柳光烈·李殷相 등 2명이 포함돼 있는데 李殷相은 만주에서 발행되던 친일지 ‘만선일보’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에 포함된 친일 경력자 논란은 1980년까지 계속됐다.이 해 원호처의 독립유공자 심사위원 11명 중에는 申奭鎬가 ‘끈질기게’ 포함돼 있다.그는 62년 첫 심사부터 63년,68년,80년도에 걸쳐 독립유공자 심사에 참여했었다. 친일파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故)林鍾國씨는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논하는 자리나 대일(對日)외교 무대 등에는 친일파들이 나서서는 안될 자리”라고 강조한 바 있다.
  • 현대그룹/鄭周永의 現代정신(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업)

    鄭周永. 현대그룹 창업자이면서 아직도 실질적 오너인 ‘왕회장’. 그를 한마디로 형언하기에는 모자람이 너무 많다. 살아있는 우리나라 경제의 역사이자 증인이랄까. 그는 불모의 땅에 경제기적을 이룬 한국 근대화의 큰 축이다. 朴正熙 전 대통령에 비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가 감히 소떼 방북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경색된 남북협력을 소떼로 뚫어보겠다는 기막힌 발상. 소떼 방북은 불굴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함을 창조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鄭회장의 오늘은 무엇보다 강원도 통천에서 뼈저리게 겪었던 체험을 승화시킨 정신력에서 비롯된다. 그의 행보는 현대정신에 그대로 녹아있다. ‘창조적 예지’ ‘적극 의지’ ‘강인한 추진력’이 바로 그것이다. ◎초인적 의지로 불가능에 도전/황량한 울산바닷가서 중공업立國 바라봐/막힌곳 창조적 예지로 뚫어 경제기적 창조 창조적 예지는 ‘중공업 한국’을 일군 원동력이 됐다. 60년대말 울산의 황량한 바닷가에 수십만t 건조능력의 조선소를 세우리라 생각한 사람은 鄭 회장 밖에 없었다. 71년 사업계획서와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 1장을 들고 영국 런던으로 차관을 얻으러 간 사실은 차라리 아스라한 추억이다. 서산의 4,700만평에 이르는 대규모 간척지를 옥토로 가꾼 것도 그의 선견지명을 잘 보여준다. 84년 최대 난공사인 최종 물막이 공사를 보자. 그는 대형 유조선을 이용,엄청난 압력의 물 흐름을 막아 둑을 완성하는 기상천외의 기법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초인적 의지와 추진력은 오늘의 ‘현다이’ 명성을 낳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鄭회장을 불세출의 인물로 각인시킨 대역사였다. 68년 2월 428㎞건설에 착공해 2년5개월이라는 세계 최단기간 완공기록을 세웠다. 76년에는 중동붐을 타고 ‘20세기 최대의 역사’로 불린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을 9억4,000만달러에 따냈다. 단일공사로 세계 최대 건축공사인 알코바 공공주택사업(6억3,000만달러),젯다 공공주택공사(5억2,000만달러)등도 鄭회장 특유의 돌파력과 추진력,긍정적인 사고가 빚어낸 작품이었다. 자동차사업 진출도 마찬가지. 76년 포니 출시에 이어 86년엑셀의 미국 진출이라는 신화를 낳았다. 최근에는 첨단 전자산업에 주력하고 있다. 鄭회장은 이제 남북통일의 길을 튼 금강산 개발사업에 필생의 열정을 쏟고 있다. 鄭회장의 성공은 정신력의 승리 외에 다름 아니다. 그는 자서전‘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정치와 경제에 기적이란 없다. 기적이란 인간의 정신력으로 실현한 것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확실히 우리는 이론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이것은 바로 정신의 힘이다. 신념은 불굴의 노력을 창조할 수 있다. 진취적인 정신,이것이 기적의 열쇠다” ◎現代의 야심찬 경협계획/소떼로 금강산 가는길 텄다/새달 25일 첫 관광객 출발/44억弗 수출단지도 구상/금강산 광천수 금명 개발 500마리 소떼 방북은 20세기에 마지막으로 연출할 수 있는 장관이었다. 이는 곧 거대한 남북 경제협력사업을 국내·외에 알리는 서곡이기도 했다. 현대는 ‘금강산 사업’에 향후 20억달러를 들여 추진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하일라이트는역시 금강산 관광사업. 오는 9월 25일이면 3만2,000t급 ‘현대금강산호’가 1,000여명의 관광객을 싣고 동해항을 출발한다. 북한측과의 합의와 방북실무단의 협의가 일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관광객들은 4박5일의 일정으로 해금강 등 4개 관광코스를 둘러보게 된다. 실향민들은 고향땅을 어루만지며 한줌의 흙을 소중히 간직해 올 것이다. 현대는 금강산일대를 등산관광코스,해안관광코스,호수 및 온천관광코스,연안관광코스 4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할 참이다. 호텔 쇼핑센터 골프장 노래방 공연장 등 각종 숙박·위락시설도 마찬가지다. 이곳을 통일된 한국의 최대 관광지로 가꿔 설악산관광과 연계시킨다는 생각이다. 곧 관광객 모집에 나서고 비용도 150만원 선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남북경협은 해주 경공업단지와 자동차조립사업이 핵심을 이룬다. 국내 섬유 신발 피혁 등 유휴설비의 20%를 이전,연간 44억달러를 수출한다는 구상이다. 하루 100t규모의 금강산 광천수도 개발한다. ◎어떻게 성장했나/47년 세운 현대토건,6·25후 최대건설사 발돋움/67년 현대자동차 설립 86년에 美國 처녀수출/73년 조선소 세우기도 전에 26만t 유조선 수주/75년 오일쇼크땐 중동진출해 달러 벌어들여 현대그룹의 역사는 47년 5월 야심찬 강원도 청년 鄭周永이 서울 초동에 세운 현대토건에서 시작한다. 해방의 어수선한 경제상황에서 서서히 명성을 다져가던 鄭회장은 50년 현대건설로 상호를 바꾼다. 같은해 터진 6·25는 오늘날의 현대를 일구는 밑바탕이 됐다. 제1한강교 복구공사를 비롯,수많은 미군 공사를 따내며 급속도로 사세를 확장,60년 국내 건설업계 1위에 오른다. 이후 현대는 ‘최초’ ‘최대’라는 각종 최상급 수식어를 갈아치운다. 65년 국내 최초로 해외 건설시장에 진출했다.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세계 무대에 이름을 내밀었다. 이어 베트남 알래스카 괌 호주 인도네시아 등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67년에는 현대자동차가 세워졌다. 미국 포드자동차와 계약을 맺고 ‘코티나’를 조립생산했다. 7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탄생시켰다. 세계에서 16번째,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로 자체 고유모델 생산국이 됐다. 73년 설립된 현대조선소는 오늘날 현대중공업의 모태. 기술과 자본이 전무하다시피했던 당시 鄭회장은 선진국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력을 발휘,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그들을 설득,영국과 스위스 은행에서 1억달러의 차관을 들여왔다. 오일쇼크로 우리 경제가 꽁꽁 얼어붙어 있던 75년,현대는 중동으로 눈을 돌렸다. 미수교국이었던 이라크 리비아에도 현대의 깃발을 꽂음으로써 민간외교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86년에는 국내 최초로 미국에 ‘포니 엑셀’을 수출한다. 4개월만에 5만2,400대를 판매,프랑스 르노가 갖고 있던 수출원년 최다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鄭회장은 87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鄭世永 회장이 그룹회장에 취임했다. 지금의 금강산개발로 대표되는 현대의 남북경협은 89년부터 시작됐다. 국내 기업인 가운데 최초로 방북한 鄭회장은 이때 이미 금강산 공동개발,시베리아개발 공동참여,원산 철도차량공장 등에 대해 장기적 구상을 세웠다. 96년부터 鄭夢九 회장 체제가 출범했고 지금은 鄭夢憲 회장과의 쌍두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현대의 히트상품 2選 ◎현대자동차 아토스/서민을 위한 벤츠A급 ‘서민을 위한 벤츠 A급’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극찬이다. 요즘 각광받는 경차의 대명사다. 4기통 엔진을 장착해 정숙성과 성능이 뛰어나다. 급커브때 안전성도 뛰어나다. 안락한 실내공간과 대형차 못지않은 화물칸을 갖췄다. 초보·여성운전자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됐고 타고내리기가 편하다. 에어백 등 다양한 안전사양을 겸비했다. 올해 열린 제네바 모터쇼에서 가장 실용적인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대정공 싼타모LPG/경제성 뛰어난 미니밴 국내 최초 미니밴 싼타모의 후속 제품.5·6·7인승 다양하다. 평일에는 출퇴근,주말에는 레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경제성이 뛰어나 연료비가 휘발유 값의 3분의 1이면 된다. 자동차세도 연간 6만5,000원에 불과하고 구입시 세금도 70만원 절약할 수 있다. 출시 한달여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다. 환경친화적이라는 특장도 갖췄다. 기본가격은 1,313만원. □현대그룹 계열사 현황(*:상장회사) * 1·현대자동차·67.12.29·자동차 제조/판매 2·현대중공업·73.12.28·선박 건조 및 수리업 * 3·현대건설·47.5.25·건설업 * 4·현대전자산업·83.2.23·반도체,정보,산업전자 등 * 5·현대정공·77.7.1·공작기계,철도차량 제조 등 * 6·현대종합상사·76.12.8·종합 무역업 * 7·현대자동차써비스·74.2.26·자동차판매 및 정비사업 * 8·현대상선·76.3.25·해상운송업 * 9·현대산업개발·86.11.29·주택건설,해외건설업 등 *10·인천제철·53.6.10·재강,압 연,주단강 등 제조 11·현대정유·64.11.2·원유정제 12·현대정유판매·73.12.24·석유류 제품 도·소매 13·현대석유화확·88.9.1·유기화학 제품제조 *14·현대리바트·77.7.1·가구 및 목가공품제조업 *15·고려산업개발·76.3.16·건설업,제조업 *16·대한알루미늄공업·73.7.19·알루미늄 및 합금제조업 *17·현대강관·75.3.18·철강제조 *18·현대에베이터·84.5.23·전기산업용 기계*19·현대미포조선·75.4.28·선박수리 및 개조 20·현대엔지니어링·74.2.11·공학관련 써비스업 21·케피코·87.9.3·자동차 부품 제조 22·현대정보기술·93.9.1·정보서비스 등 23·현대중기산업·89.11.1·건설장비 대여업,수리용역 24·금강기획·83.11.1·광고업 *25·현대증권·62.6.1·증권업 *26·현대종합금융·76.12.31·종합금융업 *27·금강개발산업·71.6.15·백화점,호텔업,의류제종 등 28·한보쇼핑·87.3.31·유통업 29·현대알루미늄공업·87.11.1·알루미늄 및 합금제조업 *30·현대해상화재보험·55.3.5·금융보험업(손해보험) 31·현대문화신문·90.8.29·신문발행 32·현대세가엔터테이먼드·96.11.27·게임전문회사 33·티존코리아·97.5.21·컴퓨터 및 주변기기 도소매업 기타 전화기,음향기,서적 도소매업 34·현대경제연구원·86.10.10·경영자문 및 사업서비스 35·현대투자자문·88.3.19·투자전문업 36·선일상선·72.1.18·무역 37·한소해운·90.11.1·해상운송(대극동지역) 38·현대자원개발·90.8.23·자원개발39·동해해운·91.6.5·운수관련써비스업(대극동지역) 40·현대물류·88.6.13·운수관련 써비스업 41·현대우주항공·94.2.23·기계 및 장비제조업 42·현대할부금융·93.12.22·금융써비스업 43·현대유니콘스·87.10.21·프로야구운영업 44·한국물류·90.1.31·보관업,부동산업,도매서비스 45·현대파이낸스·96.2.1·금융업 46·서울프로덕션 47·다이아몬드베이츠·96.7.19·광고업 48·현대선물·97.1.21·금융서비스업 49·현대에너지·96.11.22·민자발전 *50·한국프랜지공업·74.7.15 51·국민투자신탁증권·82.6.22·증권,투자신탁업 52·현대기술투자·97.4.8·창업투자업 53·현대방송·97.5.30·케이블TV 프로그램제작 공급업 및 영상사업(영화제작 배급) 54·인천공항외항터미널·97.5.9·서비스 부동산업 55·서한산업·96.4.3·자동차부품 제조 *56·동서산업·75.9.1·비금속 광물제품 제조 57·동서관광개발·90.2.1·오락,문화 및 운동 관련 58·신대한·93.12.1·절연선 및 케이블 제조 *59·주리원백화점·82.11.26·종합도소매업 60·울산방송·97.9.1 61·국민투자신탁운용·98.2.23·기타 금융업 *62·울산종합금융·81.10.21·기타 금융업
  • ‘취업 외교’로 IMF 극복을/金弄柱 연세대 취업담당관(발언대)

    1963년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서독의 탄광회사 사장과 ‘광부파견에 관한 협약’을 맺었다.그것은 우리 정부의 일자리 확보를 위한 끈질긴 물밑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60년부터 조금씩 파견되던 한국의 간호사들이 65년 대규모로 서독에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파견된 한국의 광부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성실하게 일한 때문이기도 했다. ○희망자 등록제 실시 80년대 150억불 이상의 해외 건설공사 수주와 이에 따른 건설인력의 수출은 당시 국가외환사정을 건강하게 해주었다.해외건설 시장에서의 성실한 시공 덕분에 85년에는 간호보조원 500명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이 또한 취업 외교의 개가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일하기 보다는 쓰는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더니 수년전부터 3D업종 기피와 과소비,노동 자세 상실과 정책부재 등이 겹치면서 결국 지금의 경제위기를 불렀다.이대로 가다가는 IMF상황이 극복되더라도 일자리 부족 현상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벤처기업 창업과 해외일자리 확대 정책에 달려 있다. ○진지한 노동자세 지녀야 해외 취업외교의 성공을 위해서는 해외 노동시장 개척 기능을 확대 강화시킬 의지와 제도가 필요하다.먼저 ‘해외 취업 희망자 등록제도’를 범국가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노동부의 각 지방 사무소를 통해 희망직종,경력,능력,외국어 가능여부,진출희망 국가 등을 등록 받아서 집중 관리하고,이 자료를 각국의 공관에 보내 구인 희망자와 연결시켜 주는게 바람직하다.다음은 해외취업 희망자의 능력평가시스템을 직종별로 새로 만들어,이들에게 각 나라에서 필요한 기능훈련은 물론,현지 문화,직업여건,언어 등을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이에 앞서 힘든 일도 하겠다는 우리 구직자들의 노동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외국의 탄광에서,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외로움과 싸우던 그 기백과 용기 없이는 해외취업 외교는 성공하기 힘들다. 1903년 하와이에서,63년 독일에서,80년대 중동에서 성공한 우리 선배들의 직업의식 속에서 배울 점을 찾아보자.고대희랍 사람들이 ‘일은 고역(苦役)’이라고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 土種브랜드 해태/禹弘濟 논설실장(外言內言)

    해태는 행복과 길운을 전하며 시비·선악을 판단함은 물론 화기(火氣)를 누르는 상상의 영물로 전해 진다.조선왕조의 정궁으로 임금이 정사를 돌보던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앞 양쪽에 해태상이 놓인 까닭도 백성들의 행복과 국정운영의 공정무사(公正無私)함을 빌던 선인들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다.또 이곳 해태상의 부릅 뜬 두 눈이 응시하는 곳은 관악산으로 이 산은 풍수지리상 능선이 활활 타오르는 화산(火山)이기 때문에 화기를 막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해태는 사람들이 다툴 때 옳지 않은 사람은 외뿔로 받는다해서 옛 중국과 우리나라 판관들의 관모와 흉배에 해태상을 수 놓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해태가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과자류 제조업체인 해태제과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1945년 해방과 함께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성장하면서 국산과자의 대명사처럼 됐다.이 회사의 창업주도 이나라 어린이들이 올바른 가치관으로 행복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해태를 브랜드로 정했다고 한다.또 대부분의 50,60년대 장년층들은 해태카라멜의 맛을 아련한 향수로 간직하며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구멍가게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왕사탕만 해도 눈이 번쩍 뜨이던 그 시절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 빨리 없어지는 게 아쉽기조차 했던 카라멜 맛이 코흘리개들에겐 가히 환상적이기도 했을 터이다.밀크카라멜에서 밀크(milk)의 일본식 발음인 ‘미루쿠’로 불리기도 했고 영어를 제대로 알 리없는 동네꼬마가 카라멜을 카메라로 잘못 말해 배꼽을 잡은 일들도 모두 해태가 토종(土種)브랜드로서 이 나라의 동심(童心)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일 게다. 지금 이 해태제과를 모태기업으로 한 해태그룹이 해체위기를 맞고 있다.채권은행단은 모든 계열사를 외국 유명식품회사등에 매각처분할 방침인가 하면 종합금융사를 비롯,제2·3금융권은 감자(減資)를 통한 대출채권의 출자전환으로 해태제과와 해태타이거즈만은 살리려 은행단측과 협상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비록 그룹전체 자금난 여파로 부도는 났지만 해태제과는 한달 130억원의 이익을 내는 우량기업이어서 앞으로 부채상환에 어려움은없다는 것이다.외국제품 홍수속에서도 손색없는 국민의 기업으로 자라온 해태의 재기를 기대한다.
  • 해태 이름이라도 남았으면…

    ◎공중분해 비운 朴健培 회장 마지막 기대/60년대 급성장… 70년대 식품사로 절정기/사업 넓히다 적자… IMF파고 못넘어 朴健培 해태그룹 회장은 요즘 담배를 부쩍 많이 피운다.몸무게도 최근 7개월새 5㎏이나 줄었다. 회사를 살려보려고 좋아하는 골프도 끊고 밤낮 가리지 않고 뛰었으나 역부족이었다.끝내 ‘그룹 해체’라는 비운을 맞았다.창업 53년 만의 일이다.그래서 朴회장의 심정은 착잡하다.부도에 따른 도덕적·경영상 책임을 모두 떠안아야 할 참이다.그러나 朴회장은 ‘해태’의 명맥이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해태는 지난 45년 선친 朴炳圭씨 등 3명이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해태제과를 설립한 이래 재계 21위에 까지 올랐다.설립 초기 ‘해태카라멜’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해 웨하스,드로프스,최초의 국산껌 수퍼민트 등으로 50∼60년대에 급성장했다.70년대 들어서도 ‘부라보콘’ ‘맛동산’ 등을 히트시키며 국내 최대의 종합식품업체로 뿌리내렸다. 77년 朴炳圭 회장이 타계하자 81년 아들인 朴健培 회장이 경영을 맡았고 이후 전자,건설,중공업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해태타이거즈는 프로야구9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소외된 지역주민의 정서에 숨통을 터주었다.朴회장은 역도연맹 회장과 보이스카웃 총재를 역임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도 펼쳤다.그러나 사업확장으로 적자에 시달리던 터에 지난 해 불어닥친 IMF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게 됐다.호남 연고인 아시아자동차,화니백화점,한라·나산·거평그룹 등에 이은 아픔이다.다행히 은행권과 달리 3조원의 채권을 가진 15개 종금사들이 ‘공중분해’에 반대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해태의 운신 폭은 다소 넓어진 듯 하다.어릴 적 ‘해태’상표를 가까이 하며 자란 많은 국민들이 해태그룹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도 힘이 되고 있다.朴회장은 주력사를 팔아서라도 채권자와 소비자의 빚을 갚는데 힘을 쏟겠다고 한다.이 일을 마무리짓고 훌훌 털어버리겠다는 생각이다.
  • 고비용 저효율 탈출구 벤처기업(눈높이 경제교실)

    ◎정부의 역할/벤치기업 자생력·자금 확보 ‘측면 지원’ 우리 경제의 고비용 저효율 문제는 기술·지식집약적 벤처기업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는게 정부의 생각이다.높은 수익성과 설비·노동·토지 절약적 특성은 용지난과 물류비 대처에 용이할 뿐더러 지식과 기술은 고부가가치를 창출,저효율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이같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시책은 자금공급,기술개발 및 인력공급 그리고 입지공급의 원활화로 요약된다. 우선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위해 공무원연금기금 군인연금기금 등 72개 연기금의 투자를 허용했고 종목별 개인별로 한도가 정해진 외국인의 주식취득 제한을 벤처기업에 대해서는 철폐했다.아울러 액면가 100원 이상의 주식발행을 허용,유동성을 높이고 스톡옵션제도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으며 창업투자회사의 회사채 발행한도를 자기자본의 5배에서 10배로 확대,투자재원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창업투자조합이나 신기술사업투자조합에 출자할 경우 출자액의 20%만큼 소득공제를 해주는 등 투자유인책도 마련해두고 있다.또 직접금융 조달의 활성화를 위해 기존 코스닥 시장을 흡수한 새로운 주식시장 설립을 추진중이다. 정부는 정부부처 및 투자기관으로 하여금 ‘중소기업기술개발지원계획’수립을 의무화하고 국공립대 교수나 국공립연구소 연구원의 벤처기업 창업이나 경영참여시 휴직을 허용,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있다.이와 함께 연구기관 대학 등이 개발한 기술을 창업중소기업에 이전하는 기술복덕방 제도를 지난 6월부터 시행중이며 기술개발 소요자금지원을 위해 특허 실용신안 등을 담보로 인정해주는 기술담보제도를 시행중이다.벤처기업과 관련한 정부의 역할은 규제완화를 통해 벤처기업이 가용할 수있는 재원을 확충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서 그 재원이 시장에 원활히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체계적 규제완화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시장에서 분배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벤처기업지원 시책은 기존의 산업지원시책과 큰 차이가 있다. □벤처란 벤처(Venture)란 사전에서 모험,투기 등으로 풀이하고 있듯 모험적인 사업을 의미한다.일반적으로는 이러한 사업을 직접 영위하는 벤처기업과 벤처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주는 벤처금융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모험적인 사업이란 실패의 위험성이 크지만 성공할 경우 높은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을 말한다. ○위험상 크나 성공확률 높은 사업 벤처기업은 신기술기업,하이테크기업,기술집약적 기업 등으로도 불리고 있듯이 정보통신 전자 신소재 생명공학 등 첨단기술을 무기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신생·중소기업이 주류를 이룬다.벤처기업이 생겨나는 것은 창업자가 돈을 벌기 위해서지만 이들 기업이 활성화되면 국민경제적으로도 기술수준 향상,생산성 증대,중소기업 활성화,산업구조 고도화 등 여러가지 긍정적 효과를 얻을수 있다. ○담보·신용 부족… 정비·기계 구입 애로 그런데 아무리 유망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공장을 짓고 기계나 장비를 구입할 돈이 없으면 이를 사업화하기가 힘들다.이 돈을 은행대출로 조달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 대중으로부터 받은 예금을 가급적 안전하게 운용하려는 은행이 사업의 성공여부가 확실하지 않고 신용도나 담보능력도 부족한 기업에게 대출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그렇지만 돈을 가진 사람중에는 은행에 예금을 해서 미리 정해진 이자를 받기 보다는 돈을 떼일 위험은 있지만 잘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곳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이와 같은 사람에게는 벤처기업이 매력있는 투자대상이 될 수 있으며이런 동기에서 벤처기업에 투자되고 있는 자금을 벤처금융 또는 벤처캐피탈이라 한다.그리고 벤처금융을 업으로 영위하는 회사는 벤처금융회사라 불린다. 벤처금융의 역할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벤처기업의 성장단계별 자금조달원에 대해 살펴보자.벤처기업의 성장단계는 연구개발기,창업기,성장전기,성장후기 및 성숙기로 구분할 수 있다.이중 연구개발기에는 주로 자기자금을 이용한다.창업기나 성장전기에는 자기 돈만으로는 사업할 수 없고 신용도 및 담보력 부족으로 은행대출이나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조달도 어려우므로 벤처금융에 크게 의존하게된다.그 후 성장후기 및 성숙기로 들어가면 벤처기업은 은행이나 주식시장에서 대부분의 자금을 조달하게 되고 벤처금융회사는 투자자금을 회수하여 다른 벤처기업으로 투자처를 옮기게 된다. □유래 역사적으로 벤처는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극동으로 항해하는 지름길을 개척하겠다는 아이디어를 가진 콜롬버스에게 항해자금을 제공한 것이 효시라고 한다. ○콜럼버스 항해자금이 ‘효시격’ 현대적 의미의 벤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무기,우주개발 등 국책사업에 참여했던 다수의 전문연구자들이 전직하면서 자신들의 기술을 기업화한 데서 비롯되었다.그 후 벤처기업은 60년대에들어 반도체산업이 급속하게 발달한 데 힘입어 번성하기 시작했다.벤처기업이 많이 몰려 있는 실리콘벨리가 테크노 폴리스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7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는 반도체외에 유전공학 및 퍼스컴기술의 기업화가 활발하였으며 90년대 들에 들어서는 인터넷 등 정보화 관련 벤처기업의 설립붐이 일고 있다. ○60년대 반도체산업 발달로 번성 벤처기업에 대해 자금을 제공해 주는 벤처금융회사로는 1946년 미국에서 설립된 아메리칸 리서치 앤드 디벨로프먼트(ARDC)가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ARDC는 MIT에서 연구된 결과를 상품화하는데 주력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한편 벤처는 미국에서 처음 생겨났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벤처산업은 기업가의 창의를 높이 평가하는 사회풍토,높은 기술수준,방대한 시장규모 등 미국 특유의 경제·사회적 여건에 힘입어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왔다.반면 유럽 일본 등 여타 선진국이나 개도국에서는 벤처산업이이렇다할 발전을 보지 못해 오다가 80년대 이후 이룰 육성하기 위한 정책적노력이 강화되면서 점차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성공사례 ○빌게이츠 DOS 개발,컴퓨터 시장 주도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미국의 마이크로 소프트사 회장인 빌 게이츠일 것이다.빌 게이츠는 하버드대학을 중퇴하고 1975년 컴퓨터 운영체제인 도스(DOS)를 개발하여 기업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그후에도 신기술 연구개발에 끊임없이 노력하여 윈도우즈(Windows)를 상품화하는 등 컴퓨터와 인터넷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한글과 컴퓨터’ 대표적 우리나라에서는 우선 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이찬진씨가 90년 설립한 한글과 컴퓨터(주)를 들 수 있다.이 회사는 한글 워드프로세서인 “한글”을 개발함으로써 현재 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또 정문술씨가 83년 설립한 미래산업은 반도체 제조장비를 생산하면서 급신장한 대표적인 벤처기업이다.이 회사는 95년 6월에 장외시장에 등록하였고 96년 11월에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주식매매가가 30만원에 육박하기도 하였다.이 밖에도 (주)메디슨,성미전자(주),수산중공업(주) 등도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7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결과의 기업화를 지원하기 위하여 한국기술진흥(주)이 최초의 벤처금융회사로 설립되었다.이어80년대 초에 3개의 벤처금융회사가 추가로 설립되었으나 벤처금융이 제도화된 것은 86년 ‘신기술사업금융지원에 관한 법률’과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이 제정되면서부터이다.현재 우리나라의 벤처금융은 이들 두 법률 증 어느법률이 설립근거인 지에 따라 신기술금융회사와 창업투자회사로 구분된다.10월말 현재 4개 신기술금융회사와 59개 창업투자회사가 영업중에 있다. ○벤치금융사 한국기술진흥 74년 설립 이들 회사는 업무내용이 같지는 않지만 대체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및 융자와 함께 경영 및 기술지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이밖에 벤처금융회사는 여러 사람들이 벤처기업에 공동으로 투자하기 위하여 결성되는 투자조합에 일부 출자하고 투자조합의 재산을 운용·관리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올해 특별조치법 제정… 전폭 지원 그리고 벤처기업으로는 창업투자회사가 투자한 업체를 기준으로 할 때 지난해 말 약 1천600개사가 영업중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이들은 주로 정보통신,컴퓨터 소프트웨어,반도체,전자,산업기기 분야 등에 진출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0월부터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10년간 한시적으로 시행에 들어감에 따라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주요 내용을 보면 연·기금 및 보험회사의 비상장기업주식투자 허용,벤처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주식 취득한도 폐지,‘엔젤 캐피탈’ 제도의 도입,교수·연구원의 벤처기업 참여 확대,벤처단지에 대한 조세감면 혜택부여 등 자금·인력·입지면에서의 지원을 포괄하고 있다.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엔젤 캐피탈 제도는 창업기업에 투자하는 개인이나 개인투자조합에게 세제혜택을 주거나 개인과 벤처금융회사가 공동으로 결성한 투자조합의 운용·관리권을 개인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개인투자자의 벤처금융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 경영환경 악화속 구조조정(눈높이 경제교실)

    ◎자금난 종금사 M&A ‘발등의 불’ 종합금융사의 구조조정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됐다.종금사 구조조정은 오래 전부터 거론돼 온 사안이나 금융당국이 최근의 외환시장 불안과 시중금리 상승을 촉발시키는 요인이 종금사의 부실화에 있다는 진단을 내리면서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재정경제원 관계자는 “그동안 검토해온 금융기관 구조조정 방안은 종금사와 은행 등 전 금융권을 목표로 했던 것이지만 대기업 연쇄부도에 따른 거액 부실채권을 떠안게 된 종금사가 극심한 원화 및 외화자금난에 시달리면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때문에 종금사의 구조조정 시기가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앞당겨 졌다”며 “종금사별로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을 파악하고 있으며 매달 보고하는 종금사 영업보고서 등의 기초자료를 토대로 부실화의 중증 여부를 진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종금사에 자금을 지원한 뒤 구조조정에 나서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금지원과 구조조정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기업에 단기자금을 공급하는 종금사가 갑작스럽게 인수·합병(M&A)될 경우 그 파급효과가 기업의 자금난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재경원 관계자는 “종금사의 구조조정으로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며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기 때문에 급박한 상황에서도 부작용을 감안,조심스럽게 수위 조절을 하고 있다”고 했다.그는 “연내에 종금사간 M&A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내년에는 가시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오승호 기자〉 □의미 환경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진화론적 생존법칙은 자연세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기업도 끊임없이 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진화론적 적자생존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특히 자유화,개방화의 진전으로 국내외로부터 경쟁이 거세어지고 있는 최근에는 더욱 그러하다.기업의 구조조정이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경영환경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직,인력,자산 및 의사결정과정 등 경영체제를 바꾸는 것을말한다.이와 같은 구조조정은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가 있기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또한 나라 경제의 입장에서도 산업은 개별기업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은 결과적으로 산업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져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높일수 있다. ○조직 인력 등 경영체제 변화 통칭 기업의 구조조정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수 있다.먼저 기업의 조직이 필요이상으로 비대하여 채산성이 떨어질 경우 불필요한 조직을 없애거나 축소하고 인원도 줄임으로써 비용을 줄이거나 생산성을 높일수 있다.이를 다운사이징(downsizing)이라고 한다.기업내의 조직과 인원을 재배치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기호나 사업환경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이를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이라 한다. ○리스트럭처링·아웃소싱 등으로 대별 여러개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기업집단이나 사업부문이 다양한 기업은 경쟁력을 잃은 기업이나 사업부문을 매각하거나 정리한 후 경쟁력 있는 부문에 전문화함으로써 수익성을 올리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부동산을 매각하여 부채를 줄이거나 단기부채를 장기부채로 전환하는 등 재무구조를 개선함으로써 기업의 자생력을 키울수 있다.이와같은 기업구조조정 방법을 리스트럭처링이라고 한다.한편 기업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던 사업이나 업무를 전문기술이나 정보를 갖춘 외부업체에 맡겨 처리함으로써 제품의 원가를 절감하고 조직의 효율성도 높이는 아웃소싱(outsourcing)은 효율적인 기업의 구조조정 수단이 될 수 있다.또한 조직,인사,공정,영업,성과측정,재무관리 등 기업의 모든 업무를 재구성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일수 있다.이를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이라 한다.그밖에 주식매입 등을 통해 서로 다른 기업을 하나의 기업으로 합치거나 타 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다.이러한 기업간의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은 부실화된 자회사를 매각하거나 경쟁력을 잃은 기업을 정리할 수 있다. □외국의 사례 개별기업의 구조조겅이 원활히 이루어지면 그 기업의 수익성이나 경쟁력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그나라 경제 전체가 활기를 띠게 된다.기업이 구조조정에 성공함으로써 나라 경제가 되살아난 대표적인 사례로서는 미국과 영국을 들 수 있다. ○미 80년대 개별기업 자구노력 결실 미국은 월남전과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경제력이 쇠퇴해지고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80년대초 2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 기업이 자발적으로 추진했던 적극적인 구조조정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서 90년대 들어 장기간의 호황을 지속하고 있다.즉 미국의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기업의 인수·합병,리스트럭처링,리엔지니어링,다운사이징,아웃소싱 등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한 예로 무리한 사업확장과 판매부진으로 도산위기를 맞았던 크라이슬러사는 해외사업을 대폭 정리하는 한편 35명의 부사장 중 33명을 해임하고 8,500여명의 근로자를 해고하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통해 재기에 성공하였다.AT&T,IBM,GM,보잉 등 미국의 세계적인 기업들도 직원을 30%이상 감축하고 일부 사업부문을 매각하는등 경영합리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다.이에 따라 경제 전체로는 단기적으로 실업자가 늘어났으나 경쟁력의 향상과 신규 창업의 증가 등으로 일자리가 생겨나면서 취업자수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영국병 70년대말 정부주도로 치유 영국도 60년대말 이래 장기간에 걸쳐 잦은 노사분규,저성장,고물가,고실업등 소위 영국병에 시달려 왔으나 70년대말 이래 정부가 제도개혁 등을 통해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함으로써 재기에 성공하였다.즉 정부는 고비용­저효율의 온상이 되고 있던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리스트럭처령,다운사이징,사업분할 등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강화한 후 이를 민영화하는 한편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을 육성함으로써 기업체질을 강화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반면 80년대말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을 꿈꾸던 일본의 기업들은 새로운 것으로의 변화에 수반되는 고통을 두려워하여 구조조정을 지연시킨 결과 기업과 금융기관이 부실화되면서 91년 이후 지금까지 근 7년간의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다.□우리나라는 우리 경제는 연초 이래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와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화,금융·외환시장의 불안정 등이 이어지면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우리 경제가 이처럼 갑작스럽게 휘청거리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성장률 둔화,개방화·자유화의 진전에 따른 경쟁의 심화등으로 경영환경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으나 우리기업들은 지나치게 높은 차입금 의존도 등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우리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각 기업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효율을 높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하여 대외경쟁력을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 기업은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문을 정리하고 부동산 등을 처분하여 차입금을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차입금 의존 축소로 경쟁력 확보 이와 함께 정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제도를 정비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먼저 기업의 인수·합병을 제약하고 있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여 부실기업이 시장에서의 매매를통해 조기에 정리될 수 있도록 촉진하여야 할 것이다.이와함께 기업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부동산을 매각하고 싶어도 과중한 세금 때문에 이를 팔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여 관련세금을 경감해 주어야 할 것이다.또한 경영난으로 해산할 수밖에 없는 기업에 대해서는 부동산이나 회사자산을 매각할 때 부담해야 할 법인세,소득세 등을 경감함으로써 기업이 스스로 회사를 정리할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할 것이다. ○인수·합병 지원,부실기업 줄여야 과도한 경쟁을 줄이거나 전략산업등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사업자 지정,인허가 등 새로운 기업의 시장참여를 제한하는 각종 규제는 이를 완화함으로써 경쟁을 통한 경영혁신,재무구조 개선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구노력을 유도하여야 한다.한편 기업의 인수·합병,업종전환등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력의 감축 등이 필수적이므로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다만 부실기업의 정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제력이 일부 기업집단에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고 공정거래제도가 확립될 수 있도록 보완장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또 정리해고 등에 따른 고용불안을 줄일수 있도록 직업훈련,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여야 할 것이다.
  • 기아 4전5기 가능할까/부도방지협약 적용으로 4번째 시련

    ◎53년동안 6·25 등 세차례 위기 극복/또한번 ‘오뚝이 역사’창조 이목집중 기아자동차가 4전5기 할 수 있을까.기아는 44년 창업한 뒤 6.25로 인한 공장파괴와 60년대 부도사태,80년대 산업합리화 조치 등 세차례나 위기상황에 몰렸다가 재기한 경험이 있다. 해방 직전 자전거 제조업체인 경성정공으로 출발한 기아그룹은 당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으나 6·25로 영등포공장이 대파됐다.그러나 김철호 창업주가 3개월간 지하에서 숨어지내다 1.4후퇴때 폐허가 된 공장에서 생산시설을 뜯어 열차에 싣고 부산으로 가 공장을 재건했다.부산에서 기아산업으로 사명을 바꾼 기아는 국산자전거 1호인 ‘삼천리호’ 자전거를 생산하며 부흥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엄청난 시련이 닥쳤다.55년부터 시작된 과중한 투자로 56년부터 4년 연속 대규모 누적적자를 기록했다.59년에는 메가톤급 태풍 사라호가 부산공장을 강타,생산시설이 대파돼 회사의 반쪽을 잃고 말았다.61년 11월 기아는 김철호사장의 비장한 경영대책에도 불구하고 부도를냈다.은행측 요구로 종업원 450여명중 200명이 회사를 떠났다.김사장이 강력 반대했으나 반수의 종업원들이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썼다. 난국을 타개한 것은 오토바이와 삼륜자동차 제조업 진출.기아는 첫 4륜 화물차 타이탄의 생산,소하리공장 준공,국민차 브리사 생산을 거치면서 중흥기를 맞아 흑자행진을 했다.하지만 세번째 위기가 기다렸다.80년 8월20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경기침체 타개책으로 자동차산업을 재편,승용차는 현대자동차가,트럭과 버스는 기아가 전문 생산하도록 강제했다.위기가 닥치자 종업원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섰다.82년 3월 종업원들은 급여인상분과 상여금을 전액 반납했고 오너인 김상문 전 회장도 재산을 헌납,회사살리기에 나섰다.전 사원이 경비절감과 봉고승합차 판매에 주력한 결과 82년 순이익 1위 기업에 오르는 ‘봉고신화’가 탄생됐다. 기아그룹은 ‘오똑이 역사’를 종업원들에게 상기시키며 이번에도 회사재건에 힘을 모아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계열사 노조들도 화답하듯 임금동결과 모금운동으로 회사살리기에 나섰다.기아가 이번에도 일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과학기술 진흥­테마별 지상토론(대선주자 국정비전을 듣는다:16)

    ◎과기처 정책기능·지원 강화엔 공통인식 여야 대선후보 및 예비주자들은 15일 현행 과학기술 행정조직의 개편구상과 정부연구소 개혁,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물은 서울신문 국정테마의 마지막 열여섯번째 설문에 과학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처의 총괄정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통 인식아래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신한국당 이홍구 고문은 『정보통신사업의 육성을 위해서는 산업과 과학기술의 접목이 필요하다』며 산업기술부 신설을 제안했고,이한동 고문은 산·학·연의 협동연구 및 위탁연구 확대를 역설했다.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신한국당 박찬종 고문은 『국방·건설교통·통상산업 등으로 분산되어 있는 과학기술지원산업을 과학기술처로 통합해야 할 것』이라며 과기처의 부 승격을 제안했다.김덕룡 의원은 정부의 과학기술지원예산을 현행 2.7%에서 5%로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정부연구소 개혁과 관련,신한국당 최병렬 의원은 『세계 일류수준의 연구원과 경영마인드를 가진 기관장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신한국당 주자는 연령순〉 ◎이홍구 고문/산업·과학기술 접목… 산업기술부 신설 정보통신사업은 21세기 경제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선진국 진입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확대가 필요하다.특히 산업과 과학기술을 접목하는 산업기술부의 신설이 필요하다.현재 GNP의 2.7%인 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도 3%이상으로 높히고 정부부문의 부담율을 19%수준에서 31%로 크게 늘려 과학기술인들의 연구활동을 고양시켜야 한다. 정부연구소의 경우 기초기술·과학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겠지만 국가의 기간산업에 대한 지원성과도 중요하다.따라서 정기적인 평가와 민간 연구소와의 경쟁을 통해 실질적인 경쟁력 향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벤처산업의 경우 위험부담이 크고 우수인력 확보가 어려우며 각종 제도 및 사회관행이 창업과 육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창업절차를 간소화하고 기술담보 대출제도 정착,투자자금 공급확대,창업공간과 시설 및 기술지원 강화들의 정책이 필요하다. ◎이한동 고문/산·학·연 협동­위탁연구 등 확대 바람직 산·학·연의 유기적인 연계체계가 갖춰지면 기술개발을 위한 노력은 보다 적은 비용으로 파급효과를 높일수 있다.그러나 국내의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기업은 서로 경쟁적 입장과 상호견제 분위기로,대학은 이론적 연구에만 치중함으로써 상호 연계체계가 미흡한 실정이다.따라서 각 연구주체가 자금·인력·정보 등을 분담,협력체제를 구축한다면 기술의 고도화 추세에 맞춰 연구개발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우선 국책과제 등의 산·학·연 협동연구 및 위탁연구를 확대하는게 필요하다.자유롭고 창의로운 분위기 조성과 연구개발자금의 확보가 중요하다.이를 위해 기업이 산업계나 학계에 연구투자할때 조세감면 혜택을 주어야 하며,이·공계 학부 및 대학원의 정원 확대와 특수분야 산업기술대학의 설립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또 대학의 인력공급구조에 탄력성을 부여함으로써 고급연구인력의 수급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 ◎이회창 대표/각부처 분산된 업무 과기처로 통합을 현재의 과학기술 관련 행정업무는 과학기술처,통상산업부,정보통신부 등에 산재돼 부처간 협력과 조성에 어려움이 많다.통산산업부,정보통신부에 산재되어 있는 업무중 기초과학기술 연구분야는 과기처로 통합하고 응용산업기술분야는 각 부처에서 주관하되,부처간 협력 강화와 상호연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기처로 하여금 부처간 이해관계를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정부 연구소 개혁은 인위적인 통폐합을 지양하고 무엇보다 연구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임금 및 복리후생 수준을 높이는 것이 긴요하다.또한 연구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책연구소간 혹은 민간연구소와의 경쟁체제를 통해 발전을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벤처기업 육성은 무엇보다 대학이나 연구소의 고급인력의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사업화할 수 있는 풍토의 조성이 필요하다. ◎최병렬 의원/고급공무원에 이공계출신 진출 넓혀야 첫째,국가 연구개발의 종합조정 기능의 강화가 시급한 현실문제로서 과기장관회의의 활성화 및 이공계 출신의 고급공무원 진출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둘째,과기특별법에서명시하고 있는 국가연구개발의 범부처적 조사·분석·평가 기능의 확보가 필요하다.셋째,현실적인 문제로서 각 부처별 연구관리 전담기구간의 수평적 연계체제 강화를 통해 연구단가 책정,평가지표의 일원화를 도모해야 한다.넷째,정보화 관련 분야의 국책연구사업(지식사업)개발 및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연구소 개혁을 위해서는 세계 일류수준의 연구원 확보와 경영마이드를 지닌 기관장 확보가 중요하다고 본다.벤처산업에 필요한 과학기술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연구원의 별도정원을 인정하고,휴직 및 겸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대학교수의 벤처산업 겸업 등을 인정해야 한다. ◎이수성 고문/과학기술인력 늘리는데 과감한 투자 과학기술 정책이 과학기술처 이외에 통산부,교육부,정통부등으로 분산되어 있어 이를 체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과학기술처의 위상도 업무의 총괄조정 및 협의 등을 관장하는 통합조정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고해야 할 것이다.하급 행정조직의 개편은 연구개발 체제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또 과학행정기관에 대한 인사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을 우선조건으로 고려해야 한다. 재정확보와 민간참여 유도를 통해 부족한 과학기술인력을 2000년까지 30만명 수준으로 늘리는데 과감히 투자하겠다.단기적으로는 현재 과학기술 인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데도 활용정도가 미미한 대학의 과학기술 인력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이들이 정부연구소나 일반 기업체 특히 벤처 사업과 연계해 연구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박찬종 고문/기초과학 투자집중·과기처 부승격 필요 우리나라 종합과학기술수준은 세계 10위권이지만 기초과학수준은 20위권에 머물고 있다.이는 현 우리의 과학기술정책이 장기적으로 기초과학 투자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과학기술행정조직의 개편은 국책연구기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국책연구기관에 필요이상의 행정조직은 과감히 능률화하고 연구 본연의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국방부,건설교통부,교육부,통상산업부,정보통신부 등에서 하고 있는 과학기술지원사업은 그 관리를 과학기술처로 통합하고과학기술처를 부로 승격하는 것도 고려할 만 하다. 벤처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해외초빙 과학기술자를 벤처기업에 우선 파견하고 학계와 벤처기업간의 연계를 강화,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을 만들어야 한다.또한 국책연구원 및 대학이 벤처기업에 인력을 파견해 창업을 지원토록 하고 이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김덕룡 의원/과학기술 연구투자 5%로 상향조정 과학기술처는 이 분야의 총괄정책조정의 역할을 하고 있다.장기적으로 과기처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조직의 강화가 필요하다.올해 입법된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의 충실화를 위해서는 정부예산중 과학기술 연구투자를 5%로 상향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연구소 개혁문제는 과학기술과 연구의 장기적 속성을 고려하고 창조적 연구팀의 육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프로젝트베이스 시스템(PBS)을 발전시켜 전문성·창의성·자율성을 특성으로 하는 소규모 연구팀을 중심으로 각 연구기관을 운영해야 한다. 벤처기업의 육성을 위한 기술인력 양성은 우선 인력개발의 파라다임을 질적 관리와 수요유발 방식으로 바꾸는데서 시작해야 한다.이를 위해 우수인재의 과학기술분야 영입기반 확충해야 한다. ◎이인제 지사/과기행정 체계 목표지향적으로 개편 현행 부처간 절충형 과학기술 행정체계는 정책 집행과정에서 비효율적이다.연구개발과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에 비해 가시적 성과가 적다.21세기 과학기술의 세계적 리더쉽 확보를 최우선으로 「테크놀러지 드라이브(기술우위)」 정책을 강력 추진하고 과학기술 행정체계는 목표지향적 조직으로 개편하며 평가제도를 강화해야 한다.정부연구소의 연구기능을 이원화,기초과학분야와 민간중심의 응용관련 분야간 공동연구 체제를 구축한다.연구개발시장의 개방을 확대하고 기술경제 체제구축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연구결과물의 정보네트워크를 구축한다.과학기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민간에 의한 과학기술분야 전문대 및 대학원 설립을 유도,지원해야 한다.산·학·연 협동프로그램에 의한 과학기술 인력의 재교육을 실시한다.21세기 신인력 프로그램을 실시,첨단산업인력 재교육 및벤처기업가를 육성해야 한다. ◎김대중 총재/과기행정 일원화/전문가 처우개선 과학기술정책의 입안과 시행의 효율성제고를 위해서는 우선 분산되어 있는 과학·기술 행정을 일원화해야 한다.또한 과학기술처가 과학기술행정의 총괄부가 되고,지위를 격상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대통령 직속으로 과학기술수석비서관을 두는 등 과학기술보좌관을 보강해야 한다. 과학기술 인력양성을 위해선 연구원들의 처우개선에 힘써야 한다.연구과제 선정과 연구과정에서 어떤 간섭도 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기초과학진흥기금 설치를 통해 정부연구소 및 대학연구소 연구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이외에 국책연구소로서 그 역할을 축소되는 부문은 민간연구소로의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과학 영재의 양성을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하고 과학기술전문가에 대한 병역특례를 확대하며 각종 정부지원금에 대한 우대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김종필 총재/과기처 위상 강화/경쟁력 제고 시급 현재 정책수립은 과기처에서 하고 집행은 통상산업부·정보통신부·교육부 등으로다기화된 절충형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이끌어가고 있다.정보통신부의 초고속 정보통신망,교육부의 과학기술 인력양성과 대학연구개발지원,재경원의 예산심의권 등이 과기처의 기능을 더욱 취약하게 한다.경쟁력을 좌우하는 국가적 차원의 과학기술 지표를 과기처가 수립하고 연구·조정할 수 있는 실질적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60년대 후반부터 정부출연연구소는 신기술의 산실로서 산업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으나 80년대 들어 처우후퇴 등으로 기능을 전면 재검토할 시점에 와 있다.제2의 도약을 위해서는 연구원들이 마음놓고 일할수 있는 연구마인드를 조성해야 한다.벤처산업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데 기술연구인력의 분야별 재배치와 전문적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 법정관리신청 한신공영

    ◎70년대 아파트건설로 성장… 2만3천여가구 공사중 30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한신공영은 창업주인 고 김형종 회장이 지난 50년 보일러 생산업체인 「한신보일러」를 모체로 해 출발했다.60년대 말부터 건설로 사업영역을 확장,70년대 이후 서울 반포에 2만여 가구의 아파트를 지으면서 성장세를 탔다.그러나 70년대말 중동에 진출하면서 사세가 기울었고 87년에는 해외건설업 면허를 반납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관급공사 69건(총 계약액 1조2천29억원)과 아파트 및 민영공사 45건(1조8천9백27억원)을 하고 있다.주요 관급공사는 경부고속철도(1천56억원)와 수서 인터체인지(8백43억원),영동고속도로(9백68억원),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공사(1천1백3억원) 를 수행 중이다.아파트 및 민영공사로는 김해 외동지구 등 전국 40곳에서 외주 주택공사 1만9천238가구,자체 주택공사 3천801가구 등 모두 2만3천39가구의 건설을 하고 있다.이 가운데 오는 6월 말부터 연말까지 입주 예정인 아파트는 부산 서면아파트 705가구 등 8곳의 4천610가구에 이른다.따라서 재산보전 처분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이같은 관급공사와 아파트 건설사업이 차질을 빚을 것 같다.
  • 하노이의 대우(메콩강이 부른다:2)

    ◎대규모 공단·신도시 조성… 개발 열풍 합류/총9억불 규모 투자… 자동차 공장 설립도 추진/작년 개관 복합빌딩 「하노이센터」 새 명물로/「도이모이」 정책 동참 대규모 프로젝트 하나하나 결실 인구 7천5백만명에 남북한 1.5배 크기의 나라,베트남.베트남은 경제개혁을 위해 86년부터 착수한 경제개혁 「도이모이정책」이 성공을 거둬 연평균 9% 내외(96년 9.5%)의 고성장을 구가하는,메콩6개국중 시장잠재력이 가장 큰 시장이다. 우리의 60년대를 연상케하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그러나 요즘은 개발열풍이 불면서 비디오점과 노래방이 속속 들어서고 점증하는 승용차들로 북적댄다.불과 4년전만 해도 단층건물에 잿빛일색이던 하노이 시가지는 20∼30층의 고층건물들이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노이에서 동북쪽으로 10㎞쯤 떨어진,하이퐁항으로 빠지는 길목에는 대우그룹의 사이동공단 건설예정부지를 알려주는 큰 광고판이 서있다.오는 11월에 착공될 이 공단은 420㏊(1백26만평)규모로 1억5천만달러가 투입된다.대우가 60%,베트남 하넬사가 40%씩 출자하며 대우는 이 공단에 10만대규모의 승용차생산공장과 관련 부품공장,전자공장을 유치할 계획이다. 사이동 공단건설을 포함,대우그룹의 베트남 투자규모는 총 9억달러로 단일기업으로는 최대다.메콩6개국중 「잘나가는 나라」이긴 하지만 베트남의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대우그룹의 베트남 투자는 그야말로 모험적이다.그러나 세계경영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베트남 프로젝트들은 하나하나 결실을 맺고 있다. ○연 9%내외 고성장 대표적인 사업이 대우하노이센터.하노이 중심부에 연접한 툴레호수를 배경으로 우뚝솟은 대우하노이센터는 양식당 중식당 일식당 연회장 헬스클럽 비지니스센터 등을 완비한 서구식 5성호텔로 93년 12월에 기공,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지상 18층(411실)의 호텔과 16층 아파트(193세대),14층 오피스빌딩으로 된 이 복합빌딩은 하노이의 명물로 등장했다.도 무오이 서기장과 레둑안 대통령이 개장식에 직접 참석했고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수상이 투숙객으로 다녀갔다.「하노이의 개발속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 최고급 호텔에서 오는 11월에는 불어권 45개국의 정상회담이 열린다.이 센터 역시 대우가 70%,하넬사가 30% 투자했다. 대우하노이센터는 대우의 베트남 건설시장 공략의 신호탄이다.이 센터가 위치한 곳은 원래 호수지역으로 연약지반이어서 1천800개의 콘크리트파일을 지하 40m까지 박아야 했다.공사가 한창일 때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참사가 발생,베트남정부가 미국감리회사를 데려다 감리를 하는 일까지 있었다.물론 대건설업체의 건설경험과 노하우로 아무런 하자없이 완공됐다. 대우하노이호텔은 현재 김우중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 대우개발회장이 직접 현지경영을 하고 있다.호텔내부에는 정회장이 직접 구입한 현지작가들의 그림이 장식돼 있어 마치 화랑처럼 느껴질 정도다. 대우하노이센터의 건립과정을 보면 베트남시장 진출의 맥을 읽을수 있다.대우는 한·베트남 수교(92년 12월 22일) 전인 90년 12월에 호치민지사를,91년 6월에 하노이지사를 설립했다.처음엔 하넬사와 손잡고 연간 2백20만대의 컬러TV브라운관 제조업체인 오리온하넬사를 세웠다.하넬사와 베트남 종합가전공장(냉장고 연10만대,컬러TV 연 40만대)사업도 같이했다.하넬사를 합작파트너로 잡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합작선을 잡기위해 베트남정부에 파트너를 선정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하넬사와 K사를 선정해주더군요.그래서 두 회사대표를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그런데 약속 당일 하넬사의 니엔 사장은 자기소개서와 회사소개서를 갖고 정확히 약속시간을 지켰고 다른 회사대표는 회사소개서도 없이 10분이나 늦게 오더군요.더 생각할게 없었습니다』(대우그룹 베트남지사 대표 김주성 전무) ○김 회장 부인이 직접 경영 당시 하넬사 니엔사장은 지금 하노이 시장이다.폴란드에 유학한 데크노크라트로 하노이산업대 교수로 있다가 하넬사를 창업한 인물로 베트남 정부는 국제감각을 갖춘 그를 시장으로 앉혀 하노이를 개발시키고 있다. 하넬사와의 인연은 베트남의 대우건설사업에 돛을 달아주었다.신도시 개발과 백화점,쇼핑몰,금융기관이 입주하는 60층짜리 복합빌딩 건설 등이 후속사업으로 속속 추진되고 있다.미 벡텔사와 추진하는 150㏊(45만평)규모의 신도시개발계획은 이달 중 수상실에 보고한다.행정·주거·금융기능을 갖춘 종합도시로 사업규모만 20억달러.이 사업은 대우그룹이 베트남건설시장을 착실히 공략한 끝에 얻어낸 성과다. 베트남은 경제개혁 「도이모이」의 성공으로 94년부터 본격적인 이륙단계에 들어섰다.이에 힘입어 사회간접자본 확충사업에 외국자본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재원부족 때문에 조인트벤처를 통한 건설사업이나 자체공장 수요를 위한 공장 및 공단개발 형태가 건설시장의 주류를 이룬다.공사비를 받아 수익성을 맞추기보다 우선 「내돈으로 건설해 수익성을 내는 방식」의 투자시장이다.그런 점에선 위험(RISK)이 있다. 재원문제 외에 특유의 장애물도 있다.대표적인 것이 주민보상.사이동공단 개발책임자인 (주)대우 백승군부장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주민보상이 무슨 소리냐고 할 지 모르지만 베트남의 모든 토지는 국가소유이나 가옥과 농작물 등의 지상권은 주민에게 귀속돼 있어 보상절차가 마무리돼야 착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대규모 프로젝트에는 「보상」이라는 복병이 있고 이를 여하히 극복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주민보상 문제로 마찰 대우그룹도 골프장 건설사업의 보상문제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공사허가를 받고 지상권을 하노이시에 모두 보상해줬지만 아직까지 깨끗이 해결이 안됐다.하노이시가 대우로부터 받은 보상금의 일부만 주민들에게 주는 바람에 마찰을 빚고 있다.18홀짜리 골프장사업이 그래서 계획보다 늦어지고 호텔사업에도 차질을 주고 있다.최근엔 대우가 직접 주민접촉을 통해 주민들에게 골프장 등지에 고용을 약속,보상문제가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사이동공단 개발보상도 남아있다. 또 하나의 복병은 공급과잉.하노이시만해도 20∼30층 고층 호텔들이 10여곳 이상 들어서고 있다.때문에 호텔이나 오피스빌딩의 공급과잉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공급과잉은 건설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베트남정부는 자동차 합작허가만도 벌써 14개 외국업체에 내주었다. 따라서 베트남은 가능성이 많지만 복병도 적지않은 시장이다.대형 합작건설사업의 경우 베트남측은 대부분 30∼40년간의 토지임대료만 자본으로 계산,출자하기 때문에 투자실패의 위험이 적다.반면 외국업체들은 투자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 ○ 당시 하넬사 니엔사장은 지금 하노이 시장이다.폴란드에 유학한 데크노크라트로 하노이산업대 교수로 있다가 하넬사를 창업한 인물로 베트남 정부는 국제감각을 갖춘 그를 시장으로 앉혀 하노이를 개발시키고 있다. 하넬사와의 인연은 베트남의 대우건설사업에 돛을 달아주었다.신도시 개발과 백화점,쇼핑몰,금융기관이 입주하는 60층짜리 복합빌딩 건설 등이 후속사업으로 속속 추진되고 있다.미 벡텔사와 추진하는 150㏊(45만평)규모의 신도시개발계획은 이달 중 수상실에 보고한다.행정·주거·금융기능을 갖춘 종합도시로 사업규모만 20억달러.이 사업은 대우그룹이 베트남건설시장을 착실히 공략한 끝에 얻어낸 성과다. 베트남은 경제개혁 「도이모이」의 성공으로 94년부터 본격적인 이륙단계에 들어섰다.이에 힘입어 사회간접자본 확충사업에 외국자본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재원부족 때문에 조인트벤처를 통한 건설사업이나 자체공장 수요를 위한 공장 및 공단개발 형태가 건설시장의 주류를 이룬다.공사비를 받아 수익성을 맞추기보다 우선 「내돈으로 건설해 수익성을 내는 방식」의 투자시장이다.그런 점에선 위험(RISK)이 있다. 재원문제 외에 특유의 장애물도 있다.대표적인 것이 주민보상.사이동공단 개발책임자인 (주)대우 백승군 부장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주민보상이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베트남의 모든 토지는 국가소유이나 가옥과 농작물 등의 지상권은 주민에게 귀속돼 있어 보상절차가 마무리돼야 착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대규모 프로젝트에는 「보상」이라는 복병이 있고 이를 여하히 극복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 대우그룹도 골프장 건설사업의 보상문제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공사허가를 받고 지상권을 하노이시에 모두 보상해줬지만 아직까지 깨끗이 해결이 안됐다.하노이시가 대우로부터 받은 보상금의 일부만 주민들에게 주는 바람에 마찰을 빚고 있다.18홀짜리 골프장사업이 그래서 계획보다 늦어지고 호텔사업에도차질을 주고 있다.최근엔 대우가 직접 주민접촉을 통해 주민들에게 골프장 등지에 고용을 약속,보상문제가 마무리단계에 와있다.사이동공단 개발보상도 남아있다. 또 하나의 복병은 공급과잉.하노이시만해도 20∼30층 고층 호텔들이 10여곳 이상 들어서고 있다.때문에 호텔이나 오피스빌딩의 공급과잉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공급과잉은 건설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베트남정부는 자동차 합작허가만도 벌써 14개 외국업체에 내주었다. 따라서 베트남은 가능성이 많지만 복병도 적지않은 시장이다.대형 합작건설사업의 경우 베트남측은 대부분 30∼40년간의 토지임대료만 자본으로 계산,출자하기 때문에 투자실패의 위험이 적다.반면 외국업체들은 투자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
  • 삼미 어떤 회사인가/54년 창업… 한때 계열사 14개 거느려

    ◎60년들어 급성장… 92년부터 경영악화 삼미특수강과 (주)삼미 등 6개 계열사에 임직원이 4천500여명인 삼미그룹은 목재·건자재·금속제품등의 무역업과 스테인레스강판 제조,자동차 기계부품용 단조품 제조,유통업(부산유나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다.54년 창업주인 고 김두식 전그룹회장이 세운 대일기업이 모태.6.25이후 수요가 많았던 목재를 공급하며 사업기반을 다졌다. 60년대에 들어 경제개발 붐을 타고 무역업으로 사업을 확장한 삼미는 67년에 삼양특수강을 인수해 특수강 소재를 국산화,산업자재 공급에 한몫을 했다.74년에는 정부에서 특수강 육성업체로 선정되고 77년에는 삼미금속을 설립하는 등 사세를 키워갔다. 89년에는 캐나다 아트라스 특수강공장 인수해 삼미아트라스사를 설립하는 등 투자를 확대했다.91년들어 철강경기 하강과 과잉투자로 14개 계열사중 삼미특수강과 (주)삼미 등 6개사를 제외한 8개사를 처분하는 등 자구책을 썼으나 92년부터 4년연속 적자기록하는 등 경영난이 지속됐다.95년 말 김현배 회장체제가 출범한뒤 지난해 12월지속된 경영난으로 주력기업인 삼미특수강 사업부문과 미국·캐나다 특수강공장을 포철에 일괄 매각했으나 경영은 계속 악화돼 왔다. ◎김현배 회장 문답/회사 정상화에 최선/현철씨 만난적 없어 ­자금사정이 어려운 이유는. ▲삼미특수강 평가금액에 포철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특수강 매각으로 그룹전체의 부채가 감소하는 것은 사실이나 자금난 완전해소는 힘들다.사옥을 팔아서라도 회사를 살리려했지만 부동산이 처분되지 않아 여의치 않았다. ­향후 대책은 ▲모든 자산을 처분해서라도 회사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겠다. ­김현철씨와 친분이 두텁다는데. ▲사실과 다르다.현철씨와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모르는 사이다. ­부도전 법정관리신청 이유. ▲자금난이 빠른 시일내에 회복되기 어렵다고 판단돼 부도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위해 결정했다. ­다른 계열사는 어떻게 되나. ▲상황을 봐가며 법정관리 신청여부를 결정하겠다.
  • 성공→침체→재도약­소니사의 20C 신화(고비용을 깨자:19)

    ◎“이대론 안된다” 지도부 개편·경영 혁신/고도 성장­TV·위크맨 상품마다 히트 “수직 상승”/뒷걸음질­거품불황·아이디어 부재… 93·94년 매상 “뚝”/부활­감원않고 효율성 제고… 작년 4조엔 매출 소니는 전세계 영상·음향기기 시장의 거인이다.소니의 제품들은 새로운 유행,새로운 시장,새로운 생활패턴을 창출해 왔다.소니는 지난 51년동안 일본의 경제성장을 상징해 왔다. 소니에게 90년대 초반은 악몽과 같은 시기였다.미국영화사 컬럼비아사를 인수했으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거품불황과 히트 상품의 부재가 판매부진을 불렀다. ○디지털 신상품 승부수 그러나 거인 소니는 최근 들어 침체를 극복하고 다시 도약하고 있다.터닝 포인트는 95년에 단행된 지도부 개편.새 경영진은 경영방식을 바꾸고 디지털 분야에서 새 상품들을 내놓으면서 서서히 재도약의 기반을 정비했다.아직도 몇가지 취약점이 지적되고 있지만 소니의 경쟁력은 소생하고 있다. 미국의 비지니스 위크지는 최근호에서 96년도의 세계 최우수경영자 25명을 선정했다.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출정신지)사장이 「뚜렷한 비전을 갖고 크게 공헌하고 있다」는 이유로 뽑혔다.일본에서는 2명뿐이다.소니의 재도약이 순조로움을 상징한다. ▷소니의 독창성◁ 소니는 지난 46년 도쿄 시나가와의 한적한 동네 어귀에서 도쿄통신공업이라는 이름으로 창립됐다. 회사를 설립한 것은 이부카 마사루(정심대,현 최고상담역)와 모리타 아키오(성전소부,현 명예회장).그들이 회사 창립에 앞서 만든 제품은 의외이긴 했지만 실상은 매우 간단한 물건이었다.나무 밥통에 알미늄 판을 깔아 전기를 통하게 한 「보온밥통」이었다.패전후 밥 먹기도 어려운 일본에서 비싼 전기로 밥을 보온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발상이었다. 소니는 통신기기위주에서 오디오기기로 전환한 50년대 곧 「경단박소」의 신화를 창조하기 시작한다.55년 처음으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제조했다.47년 발명된 트랜지스터가 보청기등에나 사용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을때 소니는 트랜지스터에서 「진공관대신 작고 가볍고 들고 다닐수 있는 그러면서도 전력 소비가 작은 라디오를 만들수있을 것」이라는 꿈을 보았다.57년에 제작한 「포켓 사이즈」 라디오는 실제는 포켓보다 조금 커서 포켓에 잘 안들어가자 사원들에게 주머니를 크게 만든 셔츠를 맞춰 입고 다니도록 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무수한 세계제패 품목 60년에는 세계에서 최초로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TV가 「창조」됐다.65년 제작한 가정용 비디오도 세계 최초였다.79년 시장에 내놓은 워크맨도 전례가 없는 대 히트작이었다.소니의 워크맨은 엉터리 영어이름이었지만 품질에서,성능에서 세계를 제패했다.ENG카메라를 비롯한 방송용 기자재,홈 비디오 카메라 등 세계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상품들의 수는 전부 헤아리기에 벅찰 정도다.소니사의 쇼룸은 지난 51년동안의 발자취와 함께 미래의 전기전자제품 시장의 흐름을 읽게 해준다. 소니는 그동안 54년 매출액 6억3천6백만엔의 중소기업에서 지난해 3월 매출액 4조5천9백26억엔으로 성장했다.서울의 영등포나 뚝섬에 해당될 시나가와의 동네공장(정공장)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소니는 비상해 올랐다. ▷침체기◁ 90년대 초반은어려운 시기였다.일본에 거품불황이 찾아들었다.90년 들어 게걸음을 걷던 일본 국내 매상은 92년 1조5백94억엔에서 93년 1조3백52억엔,94년 1조3백33억엔으로 뒷걸음쳤다. 엔고 현상의 영향도 있지만 히트상품의 부재로 미국과 유럽에서의 매상도 하락했다.두 지역 판매고는 93년 2조2천5백58억엔에서 94년 1조9천8백72억엔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89년 50억달러에 사들인 헐리우드의 컬럼비아사도 실적이 오르지 않았다.소니는 자사가 개발한 비디오인 베타막스 시스템이 후발주자인 VHS에 패배했다.소니는 원인이 소프트웨어의 부족이라고 판단했다.컬럼비아사 작품으로 소프트웨어 부족을 극복해 보자는 복안이었다.하지만 지난 7년동안 힘이 돼 주지 못하고 있다.일본의 월간지 문예춘추는 지난 12월호에서 소니의 컬럼비아사 매수는 5년동안 32억달러의 손실을 입힌 실패였다고 보도했다.물론 소니는 감가상각의 결과일 뿐 손해는 보지 않았다고 하지만 다미야 겐지(전궁겸차)전무는 『그 보도를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부품가에서 1엔,1전을 다투는 제조회사로서는 매입가와 손실액이 천문학적인 규모라고도 할 수 있다. ○컬럼비아사 인수 악재 소니는 자사만의 침체가 아니라 전기전자업체들의 공통된 현상이라면서 여전히 건재하다고 자부했지만 영상 음향기기 분야에서 톱을 유지하던 소니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는 끊이지 않았다. ▷재도약◁ 이사에서 상무로 승진한지 1년밖에 안된 이데이 노부유키가 95년3월 파격적으로 사장에 발탁됐다.부사장 4명,전무 6명,다른 고참 상무 등 13명을 뛰어넘는 초고속 승진인사였다.오가 노리오(대하전웅) 전임사장은 『기술과 소프트 비지니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외국어도 잘 하며 사장을 7∼8년은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발탁배경을 설명한다.일본 기업에서 이처럼 대담한 발탁인사는 77년 마쓰시타전기에서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데이 사장 전격 발탁 새로운 경영진이 이끄는 소니는 「디지털화에 의한 영상·음향기기와 정보통신의 융합」을 새로운 사업목표로 내걸었다.시대의 흐름을 타고 재도악하겠다는 목표였던 것이다. 아오키 데루아키(청목소명)상무는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디지털화에 따라 영상·음향기기와 정보통신시장이 융합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시대에 기업이 적응하는데는 보더리스,스피드,플렉시빌리티(유연성)의 3가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지금까지의 연장선상에서 경영하는 시대는 끝났다』면서 『디지털시대는 타사와 기본기술은 같다.소니는 「섬싱 디퍼런트」를 모토로 한다.디지털혁명속에 새로운 찬스를 잡는데 주력한다』고 말했다. ○“섬싱 디퍼런트” 모토 소니는 재도약을 위한 인원감축은 실시하지 않았다.대신 90·91년 1천명씩 뽑던 신입사원을 3백명 수준으로 감축하고,기존의 「사내모집」제도를 통해 인력의 효율적 재배치를 꾀했다.또 권한 이양과 분권화를 실시,회사의 구조를 8개 사업분야에서 10개로 재편해 플렉시빌리티를 강화했다. 소니는 95년 이후 경쟁력이 회복되고 있다.CD플레이어의 뒤를 잊는 MD(미니디스크)플레이어,전자카메라 등이 히트 상품 대열에 오르고 있다.96년에는 4조5천9백25억엔의 매출을 기록했다.엔저현상도 업적 회복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분석들이다.「발상 무한대」를 추구하는 소니의 3단도약의 착지점은 어디일 것인가 ­일본뿐 아니라 국제적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임원들이 꼽는 「성장비결」 ◎다마야 겐지 전무/개척정신·세계 경영·브랜드 중시/조직 유연성 가미로 경쟁력 회복 ­동네공장에서 세계기업으로 성장한 경쟁력의 비결은. ▲첫째 소니의 스피리트다.소니는 창업때부터 세상에 없는 것,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자는 높은 이상을 가졌다.시장이 있으니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만들어 가면서 제품을 생산해 왔다.둘째 처음부터 일본시장만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시야에 넣었다.미국에 60년 자회사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빠른 편이었다.세째 소니라는 브랜드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브랜드 이미지에 강점이 있다. ­90년대 초 고전했는데. ▲90년대 들어 영상·음향기기시장의 신장율이 전세계적으로 둔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졌다.엔고도 가속화됐다. ­최근 경쟁력 회복의 배경은.어떤 노력이 있었는가. ▲디지털분야를 열심히 하고 있다.좋은 상품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멀티미디어시대는 디지털 기술없이는 안된다.또 가격 프리미엄이 좋은 아시아의 경제력이 증가하고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의 유연성이다.소니도 5조엔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하는 대기업으로 성장,유연성이 사라져 왔다.94년 이후 사업을 재편하고 경영진을 젊은 층으로 바꾸는 등 유연성을 강화해 왔다. ­마쓰시타는 미국의 영화사를 처분했는데. ▲우리는 소니 픽처(컬럼비아사의 개명)의 재건이 가능하다고 본다.새로운 시대는 영상·음향기기와 퍼스컴이 융합되고 있다.또 멀티 채널 시대가 열리고 있다.최대의 엔터테인먼트는 영화다.영화사를 갖고 있는 것은 전략적 의미가 있다. ◎아마누마 디자인 부장/현재보다 1∼2년뒤 흐름 내다봐/타사 모방않는 독창 디자인 특화 ­소니는 경단박소의 흐름을 주도했다.디자인의 역할은. ▲소비자는 기능 가격 디자인 브랜드 4가지를 보고 상품을 선택한다.기능과 가격은 차가 거의 없다.브랜드도 습관적인 선택 요인이다.디자이너는 엔지니어와 소비자 사이에서 다른 회사보다 얼마나 재미있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한다.개발의 타겟을 설정하게 된다.예를 들면 최근의 비디오 카메라는 여권크기만하다.선전하기도 쉽다. ­소니의 디자인을 다른 회사와 비교하면. ▲오리지낼러티를 지켜왔다.모방하지 않는다.다른 회사의 디자인은 거의 분석하지 않는다.다만 세상 여러가지를 보면서 열심히 생각하고 여러나라 사람을 만나 아이디어를 얻는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물론 매상고가 중요하다.그러나 디자인은 내년 내후년 팔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현재 보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따라서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만드는 것이 크게 평가된다.
  • 이 니트전문업체 「미소니」(G7으로 가는 길:53)

    ◎“비싸지만 남다른 옷” 최고급 이미지 구축/독특한 디자인·최고가 정책·물량조절로 승부/판매전략 지역별 다각화… 문화·역사 배경 고려 이탈리아 바레세 시 수미라조 마을의 해발480m 산 정상 바로밑에 자리잡은 니트웨어 전문업체 미소니.안개없는 휴양지로 유명한 이 곳에서는 남미의 원주민들의 옷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무늬의 니트웨어가 만들어진다. 오늘날 멋쟁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니트웨어 「미소니」를 생산·판매하는 이 회사는 1953년 설립 당시 평범한 스포츠웨어업체로 출발 했다.설립자인 오타비오 미소니(75)가 400m 장애물경기 선수로 48년 베를린 올림픽 때 참가한 경력이 있는 만큼 은퇴후의 생활대책으로 운동복을 생산·판매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회사가 니트웨어에 진출한 것은 60년대 중반이었다.그러나 첫 제품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하게 생각했다.울긋불긋한 컬러,강렬한 인상등 부유한 사람들이 입기에는 「뭔가 튀는」 옷이었다.그러나 바로 그와같은 독특한 특성때문에 미소니를 찾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겨나게 됐다.파격적인 모습의 니트웨어가 남다른 옷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게 되면서 미소니는 날이 갈수록 성장을 거듭했다. ○한벌에 80만∼200만원 미소니의 고가정책이 주효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미소니가 요즘 만들어내는 옷의 가격은 한벌에 80만∼200만원.「미소니=고급 니트웨어」라는 이미지를 심은 것이다.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자극하기 위해 항상 모자란 듯이 공급한 작전도 적중했다.미소니의 경쟁력은 한마디로 다른 니트웨어와 구별되는 특이한 컬러의 디자인과 고가정책,그리고 물량조절이 역어낸 합작품이다. 미소니의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미소니 가족들이다.특히 설립자인 오타비오는 미소니 고유의 컬러를 만들어내는 직물디자인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오타비오는 오스트레일리아,중국,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고급원사를 생산하는 나라들로부터 양모·비단·캐시미어·모헤어 등의 원사를 구입해 빨강·노랑·파랑등 미소니만의 고유한 색채를 가미한다. 그는 이렇게 염색된 원사로 특이한 디자인의원단을 만들어낸다.전세계적으로 미소니만이 갖고 있는 천이 탄생하는 것이다.오타비오가 원단을 만들어 낼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사람」이다.그는 컴퓨터의 자판조차 두드려 본 적이 없는 컴맹이다.원단의 디자인에는 복잡한 수학공식이 필요없다고 여기는 사람이다.타고난 재능과 오랫동안 연마한 기술 즉,감각과 경험으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그가 색연필을 잡고서 손으로 그려내는 무늬와 색채의 조합이 미소니의 디자인이다.이듬 해 유행시킬 디자인도 자신이 쌓아온 연륜에 바탕을 두고 결정한다. ○남미 민속의상서 착안 오타비오는 원단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남미의 민속의상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다.남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수십년간 공부해와 그는 전문가 뺨치는 수준급의 실력자이다.디자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그의 왕성한 활동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칠줄 모른다.대가들이 펴낸 그림집도 부지런히 보고 중요한 전시회는 빠짐없이 관람한다.여행을 좋아하는 체질이라 전세계로 여행을 다니며 직물점에 들러 천의 무늬와 색채등을 꼼꼼히 살핀다. 또한 미소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오타비아의 아내 로지타(66)와 딸 안젤라(38)이다.이들은 오타비아가 만들어낸 니트 원단을 재료로 의상을 디자인 한다.두 사람 역시 오타비아와 마찬가지로 도면없이 눈썰미로 옷을 디자인 한다.수십년간 쌓인 감각과 경험으로 디자인을 해낸다.그들을 도와 일하는 20년이상 경력의 디자인 기술자들도 두 사람의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뒷받침해준다.이곳에서 13살 때부터 43년간 일해온 수석재봉사 실비아는 『우리들은 두 사람의 눈빛만 보아도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최고가품 5개만 제작 이들은 새 디자인의 모델을 만들어낸뒤 판매에 들어가기 6개월 전에 미소니의 견본품을 전문가들에게 보여주는 컬렉션을 개최한다. 두 사람이 이곳에서 일하는 디자인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1년간 만들어내는 모델의 종류는 250∼300종쯤 된다.보통 일반적인 모델은 1천개 정도 만들어지고 고급모델은 50∼100개쯤 제작된다.그러나 특별히 신경을 써서 디자인한 모델은 5개만을 제작할 때도 있다. 미소니는 이탈리아 국내 판매보다 국외로의 수출이 훨씬 더 많다.전체 판매액중 국내 판매는 25%에 불과하고 나머지 75%가 다른 유럽지역과 아시아,아메리카 등에서 팔린다.따라서 미소니의 판매전략도 지역별로 다르다.유럽시장에서는 유럽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중시,각 나라별로 그에 어울리는 의상들을 출시하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동양인들의 체구가 서구인들 보다 작은 점을 고려,제품의 품질은 그대로 유지하되 니트웨어의 사이즈를 약간 줄였다.또한 부담이 있는 직영매장 보다는 백화점등에서 현지인이 판매와 경영을 담당하는 「체인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시장에도 뉴욕 등 대도시에는 직영매장이 있으나 다른 도시에서는 체인점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부사장 비토리오 미소니/“전세계로 시장 분산… 불황 몰라요”/종업원 250명… 작년 매출 532억원 상당 니트웨어 전문업체 미소니의 비토리오 미소니 부사장(43)은 『제품을 전세계에 고루 판매함으로써 위험부담을 줄이고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매출액을 늘리는 것이 미소니의 판매전략』이라고 말했다.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미소니는 니트 전문업체라고 들었는데 시장에서는 청바지나 아동복,스포츠의류등의 상표도 눈에 띄고 있다.어떻게 된건가. ▲간단하다.미소니는 니트웨어만을 생산·판매한다.나머지 제품들 즉 침구류·아동복·액세서리·스포츠의류 등은 미소니의 상표를 이용하고자 하는 회사들에게 로열티를 받고 생산·판매케 하고 있다.따라서 미소니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상품은 누가 뭐라해도 니트웨어이다. ­지난해의 매출액은 얼마였나. ▲니트웨어의 매출액은 총 9백50억리라(한화 5백32억원)였다.이 가운데 순이익은 4분의 1인 2백40억리라 정도이다. ­매장은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 ▲직영매장과 체인점으로 나눠 운영한다.미소니 판매량이 많은 대도시에는 모두 직영매장을 갖추고 있다.이탈리아내에 200개의 직영매장이 있고 런던과 파리에는 대형직영매장을 각각 한곳씩 갖추고 있다.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 소도시가 잘 발달된 나라에서는 직영매장을 여러 곳에 두고있다.아시아와 미국에서는 백화점내의 한 코너를 임대,현지인이 판매를 대행하는 체인점 형태의 매장이 대부분이며 앞으로도 이를 확대·발전시킬 계획이다. ­누가 미소니를 입는가. ▲그거야 중상류층 이상이 아니겠는가.니트제품이어서 기후가 중요한 요소이다.지역적으로는 추운 곳에서 잘 팔린다.유럽과 아시아 대륙중에서도 북쪽 지방에서 많이 팔린다.중동과 남미는 더운 곳이어서 판매가 되지 않는다. ­회사운영상 어려운 점이 있다면. ▲거짓말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미소니는 창업이래 단 한번도 불황이나 위기를 맞은 적이 없다.매년 예외없이 10∼15%씩 성장해왔다.최근들어 한가지 애로사항이 있다면 바느질 잘 하는 사람을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니트웨어의 단추구멍은 바느질로서만 만들 수 있다. ­노사관계는. ▲미소니의 종업원은 모두 250명이다.월급도 이탈리아에서는 높은 편이라 종업원들이 대체로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업종특성상 90% 이상의 종업원이 여성들이다.노동조합은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와 같이 회사를 운영해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즉 미래도 「지금처럼」 꾸려나간다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다.
  • 「이산티 가죽박물관」 올 6∼7월 개관

    ◎창업 50돌 기념… 18C 제품 등 1천점 전시 이산티는 창업 5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이탈리아 유일의 가죽제품 박물관을 개장한다.아직 개장일자를 정확히 잡지는 않았지만 곧 장소를 마련,오는 6∼7월에는 문을 열 계획이다. 박물관에 전시될 물건들은 밀라노의 B 코리오 거리 이산티 본사에서 200m쯤 떨어진 한 아파트에 임시로 보관돼 있다.아마토 회장의 조카로 이 곳의 물건관리를 맡고있는 지오바니 이산티는 『유행은 과거의 것이 오늘날에 재현되는 등 돌고 돌기 때문에 유행과 디자인에서 남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아마토회장이 이 박물관을 개관하려는 것』이라고 설립취지를 밝혔다. 30평쯤 되는 이곳에는 1700년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시대의 가죽 핸드백을 비롯,현대에 이르기까지 1천여점의 가죽제품들이 보관돼 있다.이곳에는 200여년전의 유명배우들이 썼던 가죽가면,가죽길이를 재는 1800년대식 자,가방에 문양을 찍는 도구및 가방에 구멍을 뚫는 공구 등 가죽제품 제작과 관련된 물건들도 다수 보관돼 있다.아마토 회장이 60년전부터 모은것들이다.그는 이산티를 만들때 고풍스런 옛 제품들에서 아이디어를 얻기위해 수시로 고물상 등을 돌아다니며 가죽제품들을 모았다.지금까지 이 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1천명을 넘었다고 지오바니는 귀띔한다. 그는 『이 곳에 모아놓은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대별로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서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양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수십년 뒤에는 이와 비슷한 양식들이 유행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따라서 박물관은 이산티가 새 가죽제품을 만들어낼때 끊임없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일종의 「데이터 베이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물론 동종업계가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 전문가좌담­새법의 과제(새노동법/더많은 고용으로 가는길:4·끝)

    ◎“정리해고 국제관행… 공정성이 문제”/법개정 OECD국들 기준에 맞춘것/홍콩·싱가포르는 철저한 시장원리/근기법 확대 적용·사회보장 강화를 □참석자 ·곽상경 고려대 교수 ·이한구 대우 경제연 소장 ·이선 한국노동연 부원장 노동법개정으로 고용시장은 개방된다.근로자의 입장에서는 해고의 불안감을 가질 수도 있다.그러나 노동시장개방은 경제에 활력을 주고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곽상경 고려대교수와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이선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의 대담을 통해 새로운 노동법의 의미를 짚어본다.〈편집자주〉 ▲곽교수=87년의 민주화운동이후 노동조합결성이 활발해지는 등 노동운동도 본격화됐습니다.86년부터 저달러(고엔)·저유가·저금리의 3저바람을 타고 경기가 좋아진 시기와 겹치기는 했지요.경기가 좋고 실업률이 낮아지고 노동운동도 제대로 되면 좋지요.하지만 이런 상태가 계속될 수 없어 문제가 나오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급속하게 임금이 오르다 보니 다른 나라에 비해 가격경쟁력도 종전보다는떨어졌지요.경쟁력을 키우고 모든 것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면에서 인력구조와 고용구조 등에 문제가 있는 노동법을 바꿀 필요성은 있는 것이지요. ○40여년만에 바뀐 골격 ▲이소장=그렇습니다.우리나라의 노동법은 길게 보면 40여년,짧게 보면 10년간 골격이 변하지 않은 셈입니다.그동안 경제여건은 많이 변했습니다.개방화와 기술혁신이 이뤄지고 근로자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기업은 이러한 변화에 따라가다 보니 치열한 경쟁을 맞아 힘이 들게 됐지요.생산물(제품)시장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노동 등 생산요소시장의 운신의 폭은 제한돼 기업에는 어려움이 가중됐지요.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에 따라 다른 회원국과 각종 제도가 비슷해야 정책을 조율하기도 쉽습니다. ▲이부원장=기존의 노동법은 블루칼라(육체근로자)와 상용근로자를 보호하는데 주안점이 있었습니다.하지만 산업이 고도화되는 현상태에서 그러한 기조로는 어렵지요.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해 경제활동참여를 높이고 노사관계의 왜곡된 관행을 바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노동법을 개정할 필요성은 충분히 있습니다.노동법개정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입니다. ▲곽교수=노동법을 개정하는 것은 좋지만 절차상 문제는 있습니다.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한정된 위원이 얘기한 것을 갖고 법제화하고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은 문제입니다. ▲이소장=노개위에서 당초에 낸 안을 그대로 통과시켰으면 보다 좋을 뻔했습니다.사용자나 근로자나 모두 확실한 무기를 갖고 서로 견제하는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이부원장=노동법개정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우려스럽습니다.노사가 힘을 합쳐도 경쟁에서 이기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노사갈등은 빨리 치유돼야 합니다. ○근로자간 불평등 개선 ▲이소장=근로자계층간에 불공평한 것을 개선하는데도 노동법개정의 필요성은 있습니다.종전의 노동법을 그대로 갖고 가면 처음에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능력이 있고 열심히 일하더라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적당히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면 그 뒤에는 혜택을 누리는 이러한 사회불공평을 없애는데도 새로운 노동법의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봅니다. ▲곽교수=미국은 60년대까지는 제조업이 대표적이었습니다.하지만 노사문제와 임금문제가 쉽지 않았지요.미국정부나 기업은 제조업을 하면서 노사관계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그 뒤 첨단서비스업종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비롯해 산업구조조정을 거쳤습니다.미국기업은 블루칼라나 화이트칼라(정신근로자)나 가릴 것 없이 과감한 해고를 했습니다.미국이 큰 불경기없이 최근 10년간 호황을 보이는 것은 구조조정을 한데다 노사관계를 이처럼 거의 해결한 게 주요한 요인중 하나입니다. ▲이소장=미국과 유럽은 80년대 중반부터 구조조정을 한 점은 같습니다.하지만 방법은 달라요.미국은 고용탄력성을 기반으로 했지만 유럽은 해고는 하지 않으면서 해법을 찾으려 했어요.현재의 상황을 볼 때 미국식의 해결이 나았던 셈이지요.미국보다 더한 나라가 홍콩과 싱가포르입니다.두 나라는 처음부터 노동시장에서 철저한 자본주의를 도입했지요. ○없던 제도 만들지 않아 ▲이부원장=국제적으로 가장 막강했던 미국과 영국의 노조는80년대 들면서 정부정책과 사회적 비난 등에 밀려 많이 약해졌습니다.대신 노동시장은 많이 유연해졌죠.미국의 우량기업은 노사협력강화에 노력하고 있고 이는 미국경제가 활력을 되찾는데 기여했습니다. ▲이소장=미국의 경우 경영자와 근로자간의 임금격차가 벌어졌다는 현상에는 동의합니다.살아 남은 경영자는 분명히 많이 받습니다.그러나 햄버거장사를 하는 정리된 경영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부원장=우리는 노동법뿐 아니라 연공관행 등 각종 관행이 고용구조를 왜곡시켜왔습니다.이번에 도입된 고용조정제(정리해고제)는 없던 제도를 도입한 게 아니라 판례로 있는 것을 법제화한 것으로 상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이소장=근로자간 2중구조는 반드시 점검해야 할 문제입니다.대기업은 현재 사람이 남아돕니다.특히 창업역사가 길수록 더욱 심각합니다.반면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어 아우성입니다. ▲곽교수=우리 노동시장의 문제는 과부족·불균형이 너무 심한 데 있습니다.현재의 고용구조가 유지된다면 일자리가 줄어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결과를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부원장=국제적으로도 합리적인 고용조정은 인정하고 있습니다.불가피한 경우에 한해,기업이 살아 남기 위해 필요할 경우 노사합의라는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대상을 공정하게 선정할 경우에는 대부분 인정됩니다. ○기업·근로자 협력 중요 ▲곽교수=중국의 국영기업은 고용차원에서 사람을 많이 고용은 해놓았지만 놀고 먹는 사람이 많아 형편없어졌습니다.고용의 탄력성문제는 국제경쟁력이 심화되면서 특정국가에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이부원장=80년대 들어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과제로 부상했습니다.근로기준법의 유연화는 물론 지나친 임금인상을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을 도출해내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있어왔습니다.세계적으로 노동자를 가장 많이 보호해주고 있는 독일과 일본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독일의 경우 근로기준법을 계약법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일본에서도 변형시간근로제가 점차적으로 완화돼 1년단위까지 도입됐고 70년대 시작된 종신고용제나 연공제 타파노력은 80년대이후 가속화됐습니다. ▲곽교수=노동법이 개정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문제는 앞으로 이를 어떻게 운영해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이소장=결론에 앞서 향후 우리가 겪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대해 짚어보고 싶습니다.고임금체제는 단기적으로 깨질 수 없습니다.노동법이 바뀌었다고 임금이 내려가는 것은 상상도 못합니다.따라서 고성장은 어려울 것이고 실업률은 구조적으로 조금씩 올라갈 것으로 전망됩니다.기업·근로자·정부는 구조적으로 실업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최소화하는 데 각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 고부가가치산업에 기업과 근로자가 함께 힘을 모아줘야 합니다. ○기업 새법 악용말아야 ▲이부원장=법개정을 둘러싼 갈등이 조속히 마무리돼야 합니다.법개정뿐 아니라 관행의 개선이 중요합니다.덧붙여 노사협력관행이 하루빨리 정립돼야 합니다.인력의 비교우위는 우리의 과거성장을 이끌어온 열쇠입니다.인력의 비교우위를 지속시켜 산업선진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이를 위해 경제활동참여를지속적으로 높여야 합니다.여성과 중·고령인력의 경제활동참여를 늘리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인력개발도 중요합니다.안정적이고 제도화된 1차 노동에 대한 규제는 완화하는 대신 지나치게 유연한 2차 노동시장은 오히려 법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4인이하 사업체와 시간제근로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을 확대적용하고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해야 합니다. ▲곽교수=노동법은 어느 일방에 손해를 주거나 이익을 주기 위해 개정된 것이 아니라 법 자체에 모순이 있기 때문에 개정된 것입니다.올해 경기는 80∼81년이후 최악이 될지도 모릅니다.노동법개정여부와 관계없이 기업은 기업 나름대로 불경기극복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 새 법을 악용해서는 안됩니다.근로자도 기업과 함께 비용절감·생산성향상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노사합의·협력이 더욱 시급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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