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창사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봉하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99
  • 피라미드식 자석요 판매원 셋/동료 감금·합숙 강요

    서울 송파경찰서는 1일 고향친구를 피라미드식 자석요 판매조직에 끌어들이기 위해 3일동안 여관 등지에 감금한 박은수양(21·회사원·충남 논산군 연무읍 동산1리 343)등 3명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입건,조사중이다. 중학동창사이인 박씨등은 지난달 14일 상오9시쯤 자신들이 근무하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 D빌딩 4층 피라미드 자석요 판매점인 마패교역 사무실에서 고향 친구인 장모양(22·공원·충남 논산군 벌곡면)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직장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속여 사무실로 유인한 뒤 자신들이 합숙하는 서울 강동구 길동B여관에 3일동안 감금시킨채 교육을 받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 TV3사/고발성 교양시사프로 경쟁 가열

    ◎「그것이 알고싶다」 인기끌자 「사건 25시」 등 도전/다큐 내용 전달위해 드라마 활용/소재·접근방법은 다양화 바람직 고발성과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한 시사 교양프로그램들을 놓고 방송3사간의 뜨거운 공방전이 예상된다.이는 최근의 드라마,토크쇼경쟁에 이은 제3라운드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특히 관심을 모으고 있다. MBC­TV 의「PD수첩」과 SBS­TV의 「그것이 알고싶다」에 이어 KBS도 프로그램 봄개편에 따라 「사건 25시」와 「다큐멘터리 극장」등을 지난 2일부터 제1TV를 통해 방송하기 시작했다.KBS의 이들 두 프로그램은 경쟁관계에 있는 양채널이 주말 드라마를 내보내는 시간대(토·일 하오8시)에 편성돼있어 교양물과 드라마의 격돌이라는 새로운 양상에 대한 결과가 주목된다. 매주 토요일 하오8시 방송되는 「사건 25시」는 기존의 사회고발성 프로그램과는 구분되는 「공개수사 프로그램」.미제사건 가운데 용의자가 있는 사건을 재구성,시청자의 제보를 유도함으로써 수사당국의 사건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의도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범죄예방·감시·고발의식을 고취시키는 데도 목적이 있다.「보도본부 24시」등을 통해 낯익은 이윤성 해설위원이 진행을 맡아 프로그램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첫 방송으로 지난해 8월 실종된 「지한별양 사건」을 내보낸데 이어 「뺑소니 사건」및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혀만 자르는 「괴범죄」를 방영한다.경찰및 수사관계자 5명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일 계획이다. 임기준 담당PD는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점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 위험성도 지니고 있다.이런 우를 범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그는 또 온가족이 함께 보는 저녁 8시대에 방송되기 때문에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잔인한 범죄보다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생활범죄부터 다룰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기 소설가 고원정씨의 진행으로 오는 9일 첫방송되는 「다큐멘터리 극장」은 「그것이 알고싶다」와 「제3공화국」의 중간 성격을 띤 프로그램이다.광복이후 역사적 사실이 왜곡됐거나 의혹에 묻힌 사건,역사변천과정의 결정적 순간들을 입체적으로 재조명,역사속에 올바른 자리매김을 지향한다는 기획의도를 갖고있다.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비율을 각각 50%로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프로그램 특성상 내용의 진실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드라마를 도입한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다큐멘터리로 제작할 경우 화면처리가 불가능한 부분,증언이 엇갈리는 부분,공개적으로 나서길 꺼리는 증인들의 증언등을 드라마로 제작한다는 것이다.「김지하의 오적필화사건」에 이어「5·16에 항거한 군인들」「대도 조세형」「거창사건」등을 방영할 계획이다. 한편 MBC­TV의 「PD수첩」도 기존의 사건취재 중심에서 단일주제를 심층 분석하는 형식으로 포멧을 바꾸고 다른 프로그램과의 차별성에 역점을 두고있다.취재담당 PD 3명이 돌아가며 진행을 맡아 각각 단일 주제를 놓고 부정적·긍정적 측면,결론적인 시각을 취재해 주제에 대한 입장을 대변하게 된다. 이처럼 사건에 대한 비판적이고 심도깊은 분석이 뒷받침되는 시사 교양프로그램들의 증가는 우리 방송문화의 질적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그러나 프로그램들간의 차별성을 유지하면서 소재및 포맷의 개발,접근방법의 다양화를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 「거창사건」·「4·3사태」 재평가/민자,명예회복특별법 등 추진키로

    정부와 민자당은 「거창양민학살사건」과 「제주 4·3사태」등 현대사에서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진실규명을 위해 정부·학계인사등으로 구성된 범정부기구를 구성,대대적인 재평가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정부와 민자당은 30일 거창사건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경제기획원,법무·국방부,보훈처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민자당사에서 당정실무회의를 갖고 거창사건을 비롯,문제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작업을 벌여나가기로 방침을 정했다. 민자당의 강삼재 제2정책조정실장은 『현재 정부나 학계에서조차 여순반란사건이나 거창사건등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은 만큼 문민시대를 맞아 전체적인 재평가가 내려져야 한다는데 당정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당정은 조속한 시일내에 특별위원회 형식의 기구를 구성해 이들 사건의 경위와 성격을 규명하고 배상및 명예회복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올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 「거창학살」 명예회복·배상/민자,특조법 추진

    민자당은 28일 6·25전쟁당시 발생한「거창양민학살사건」의 희생자및 유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위로하기 위해「거창사건관련자의 명예회복및 배상에 관한 특별조치법」(가칭)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민자당은 이를 위해 30일 하오 경제기획원·내무·법무·국방·보훈처등 관련부처와 배상금지급 대상 범위와 배상액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민자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 특별법은 사망및 부상자에 대해 5억여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위령탑과 공동묘역을 조성하는 것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 “부실규제·노사분규땐 대한양 자금지원 재고”/정 상은행장 밝혀

    상업은행은 주한양에 대해 주거래은행으로서 제한적 금융지원을 계속해 회사를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노력하되 부실공사 제재나 노사분규 등 경영외적인 요인으로 회생이 어렵게 될 때에는 자금공급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정지태상업은행장은 20일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은 한양이 최악의 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회사는 나름대로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은행은 여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계속 지원해 경영을 정상화시킬 계획이나 경영외적인 요인으로 회사가 어려워질 경우 금융지원을 무턱대고 계속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 한양 발행어음 할인 전면 중단

    (주)한양이 부실시공과 노사분규로 창사이래 최악의 경영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사채시장과 단자사 창구에서는 (주)한양이 발행한 상업어음과 융통어음의 할인이 전면 중단되고 있다. 19일 금융계와 사채중개업소에 따르면 (주)한양이 하도급 건설업체에 발행한 상업어음은 배종렬회장의 사퇴사실이 나돈 지난 16일부터 사채시장에서 유통이 중단됐다. 이와 함께 단자업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양과 적격업체 거래를 해오던 서울소재 S투자금융이 19일 (주)한양의 융통어음 할인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밝혀져 단자사를 통한 한양의 단기자금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 대천무역(앞서가는 기업)

    ◎시설 자동화로 원가절감·고품질화/“역경을 호기로” 섬유 경쟁력 회복/소량 다품종 위주,바이어와 직거래/창사 3년여만에 1천6백만불 수출/중동·남미·아프리카 등에 지사설립도 추진 갈수록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견직업계에 중소업체인 대천무역(주)의 돌풍이 일고 있다. 바이어와의 직거래,다품종 소량의 차별화 전략,생산공정의 자동화,설립 3년여만에 수출실적 1천6백만달러,30대 사장을 중심으로 한 노사화합….이 회사의 간략한 명세서이다. 김도균사장(37)은 『생산공정의 자동화를 통해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며 원가를 낮춘 반면,납기는 반드시 지킴으로써 바이어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말했다. 동남아국가의 저임금에 밀려 설 곳을 잃어가는 섬유업계에서 대천무역은 역경을 호기로 활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다.이 회사의 성공에는 우리 섬유업계가 본받아야 할 교훈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임금코스트를 낮추기 위해 하청 대신 생산공장을 직접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으며,소량 다품종 위주로 수출선과 직거래를 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였다.김사장이 대천무역을 설립한 것은 지난 88년6월.5천만원의 자본금으로 서울 남대문로 국제화재빌딩의 사무실을 빌려 사양산업으로 불리던 면직물 업계에 뛰어들었다.진주고와 서강대 외교학과를 나와 동국무역에서의 7년간의 근무,특히 비스코스 레이온의 생산에 참여했던 경험이 큰 보탬이 됐다. 처음부터 상품의 고급화 및 고부가가치에 목표를 두고 직거래를 추진,창업 1년여만인 89년 수출의 날에 1백만달러 수출탑을,90년에는 5백만달러 수출탑과 상공부장관상을 받았다. 김사장은 원단을 들고 연 1백일 이상 세계 각국의 섬유전시회를 찾아다니며 바이어들을 만났고 직원들은 제품의 끝처리와 납기준수를 위해 밤일을 마다하지 않았다.미국의 세계적인 실크회사인 앨버트 니폰,앤 테일러,엘란트레이시,이탈리아의 만테로사등과 수출계약을 맺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모든 직원의 세일즈맨화를 위해 아침마다 회사에서 한시간 동안 미국인 강사를 모시고 영어회화를 배우며 40여명외로 사무직원들은 연 2차례 정도 해외로 출장을 나간다.또 직원들마다하루에 한개 이상의 거래처에 견본보내기 운동도 펴고 있다.현재 북미·호주·동남아등 30개국에 원단을 수출하고 있다.요즘은 중동·남미·유럽·아프리카 지역에 지사설치를 추진 중이다. 임가공 위주의 생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비약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지난 91년 4월부터 1년 간격으로 안산 한국실크단지의 날염공장과 반월공단의 2공장을 인수하면서부터. 1공장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한 실크원단에 자동날염기로 색깔을 입히며,2공장에서는 제품의 뒷처리와 결함을 최소화하는 체계를 갖췄다.이 자동화 설비에는 매출액의 10%인 25억원을 투자했다. 자동스크린 날염기와,후처리 공정에서수분을 없애고 촉감을 부드럽게 하며 구김을 펴주는 열처리기계의 설치로 거의 모든 공정이 수직계열화됐다. 시설자동화로 생산량은 월 30만야드에서 2배로,매출액은 월 3억원에서 4억5천만원으로 늘었으며 원가 및 인건비는 15% 가량 절감됐다.또 합성섬유와 면직·견직·비스코스 레이온등 50여종의 원단을 처리,전량 수출할 수 있게 됐다. 김사장은『자동화로 원가가 낮아진데다 품질이 훨씬 좋아짐으로써 대기업인 동국무역이나 동아견직보다 수출단가를 10% 쯤 높게 받을 수 있어 5년차 생산직 근로자에게 월 1백만원 이상의 임금을 지급한다』고 말했다. 수출액은 91년 1천만달러,지난 해 1천6백만달러로 늘어났고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유망 중소기업으로 뽑혔다.노조 없이 노사협의회만으로도 양측의 의사소통에 부족함이 없으며 김사장 역시 직원들과 함께 등산·볼링·축구를 함께 즐기며 형제처럼 지낸다. 김사장은 『중소기업은행의 자금지원을 받아 원단의 설계 및 제도의 자동화에 필요한 CAD 및 CAM기를 연내 설치,완벽한 일관 생산공정을 갖출 계획』이라며 『바이어가 원하는 디자인과 색상을 입혀 수출하는 방식으로 오는 95년에는 수출액을 5천만달러까지 늘림으로써 섬유산업이 유망업종임을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 상림기연(앞서가는 기업)

    ◎사장·사원 “혼연일체”/고품질 무인자동화설비 개발/“종업원이 가장 큰 자산” 자질향사 주력/창사 6년만에 공장규모 10배이상 성장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에게,위기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이다. 작년에는 많은 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91년까지 5년동안 10% 안팎의 고도성장을 자랑하던 우리 경제의 거품이 해소되며 지난해 5% 수준으로 성장세가 둔화됐기 때문이다.작년에 쓰러진 기업이 모두 1만7백69개로,전년의 6천1백54개보다 4천6백15개가 늘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살아남은 기업들도 과감한 감량을 단행하는등 큰 고생을 했다. 그러나 고객의 요구에 적절하게 부응하는 기업들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서울 구로2공단 (주)상림기연(사장 정순관)은 이같은 미래준비 기업의 대표적 사례이다. 전기전자제품 자동생산라인,즉 자동화설비를 생산하는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32억원으로 전년의 27억원보다 18·5%가 증가했다.주문이 밀려 임대공장의 규모도 2백90평에서 3백60평으로,종업원도 당초 18명에서 50여명으로 각각늘렸다. 이 회사가 설립된 것은 지난 87년.당시 매출액 2억7천만원,공장건평 35평에 비하면 6년만에 무려 공장규모가 10배이상 커졌다.자본금도 5천만원에서 6억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독일 자동조립기 전문업체인 슈ㄴ크사와 일본의 반도체 및 정밀부품 자동조립 설계업체인 교토 세트케이 키카쿠사와 기술제휴를 하는등 시야를 해외로까지 넓히고 있다. 상림기연이라고 역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정사장이 20년간의 대기업 생활을 그만 두고 세운 이 회사는 지난 89년 TV브라운관에 쓰는 새도우 마스크의 자동조립기 개발을 위해 6개월간 직원들과 밤샘을 했으나 실패함으로써 1억원의 비용을 날리고 발주자에게는 위약금까지 물어주었다.창사하던 해 여름에는 공장이 침수돼 가동을 못 했으며 90년에는 위장취업 대학생이 일으킨 노사분규로 1년간 법정을 드나들었다.기업으로서 겪을 수 있는 문제는 모두 겪은 셈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빨리 자리를 잡은 것은 사장과 사원들이 혼연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점은 우수한 종업원의 확보가 어려운데다,어렵게 구한 사람도 걸핏하면 이직하는 것이다. 정사장은 종업원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가 봉급보다 회사에서 배울 것이 없거나,회사가 종업원을 홀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해마다 우수직원을 뽑아 해외로 연수를 보내는등 종업원들의 자질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다.상호불신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평소에 회사의 경영상태도 직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창업 직원들이 대부분 남아있는 게 우연이 아니다. 노사가 한 마음으로 뭉쳐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점차 주변으로부터 「무서운 아이」로 평가받게 됐다.실제로 설립 이후 6년동안 모터와 전동공구,VCR헤드드럼의 자동조립라인등 수십종의 무인자동화설비를 제작해 금성사등 대기업에 납품했다.모두 수입에만 의존하던 품목들이다.지난 90년에는 기계의 본고장인 독일에 자동기계를 수출하기도 했다. 알찬 회사라는 소식이 알려지며 90년 중소기업은행으로부터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돼 자금사정에 다소 여유가 생겼다.올해에는 매출규모를 36억원으로 늘리는 한편 내년에 입주할 예정으로 지난해 확보한 시화공단 1천5백평 부지에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정사장은 하루의 대부분을 관련업체등을 방문하며 수주활동을 한다.또 생산성본부등의 요청에 따라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끔 야간강의도 나간다.기술습득과 자문을 위해 외국출장도 다닌다.지난 13일에는 상림의 제품을 납품받는 대기업의 직원과 동행해서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기술자문을 해주기 위해서이다.월급쟁이 시절에 비하면 엄청나게 바쁜 나날을 보내는 셈이다. 정사장은 기업운영에서의 어려움으로 『발주처들이 무료로 견적을 내놓으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첨단기술 제품은 견적을 내는데 전체 공정의 절반 이상의 노력과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외국의 경우 반드시 견적료를 주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불합리한 기업풍토를 꼬집었다.
  • 주택가서 강간·절도/고교생 등 10명 영장

    서울 송파경찰서는 3일 최모군(15·B상고 1년·송파구 가락동)등 고교생 7명이 낀 10대 10명을 특수강간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김모군(16·H고 1년)등 10대 8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중학교 동창사이인 이들은 지난 1월5일 상오3시쯤 평소 알고지내던 지모양(16·송파구 마천동)을 서울 송파구 문정동 M국교로 유인해 집단 성폭행하는 등 91년 8월부터 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10대 소녀들을 강간해온 혐의를 받고있다. 이들은 또 지난해 11월24일 하오11시쯤 송파구 문정동 D중국집 출입문 자물쇠를 드라이버로 뜯고 들어가 잠자고 있던 종업원 이모씨(20)의 허벅지를 흉기로 찌르고 현금 6만7천원을 빼앗는등 송파구 일대 음식점과 주택가를 무대로 지금까지 10여차례에 걸쳐 강·절도를 일삼아 43여만원을 턴 혐의도 받고 있다.
  • 주차 승용차 훔쳐/고교생 등 셋 영장

    서울 강남경찰서는 15일 최모군(15·Y고 1년)등 10대 3명을 특수절도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중학교 동창사이인 이들은 지난달 26일 하오7시쯤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 주차장에서 홍모씨(36·회사원)의 쏘나타 승용차를 훔치는등 지금까지 7차례에 걸쳐 승용차 3대와 차안에 있던 골프채등 모두 3천5백만원어치의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있다.
  • 전통적 삶의 해체과정 무리없이 그려(TV주평)

    ◎SBS창사특집 30부작 「관촌수필」을 보고 토속적 영상미로 복고풍드라마의 한 전형을 제시한 SBS창사특집 30부작 「관촌수필」(남홍식 극본,이종한 연출)이 16일로 아쉬운 종막을 고한다. 이문구 원작의 동명소설을 극화한 「관촌수필」은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성장하는 주인공 민구(양동근분)의 눈에 비친 한 양반가문의 몰락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우리네 전통적 삶의 해체과정을 그린 작품.해방과 6·25를 전후한 좌우이데올로기의 갈등이라는 시대적 분위기를 밑그림으로 전개되는 갈머리(관촌)마을의 궁핍상은 바로 지난날 우리들의 자화상이기에 더욱 공감을 살만하다. 전통적 정서의 복원을 통해 「잊혀진 자신」을 돌아본다는 어쩌면 다소 「박제된」주제임에도 불구,이 작품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그것은 이 드라마가 최소한 70년대 「팔도강산」류의 계몽·계도적인 분위기에서 탈피,작위성의 함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이는 곧 우리가 살아온 진솔한 삶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강요되지 않은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으며 나아가 극적 진실에 보다 접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관촌수필」은 원작에의 충실도란 측면에서도 평가할만하다.사실 이문구의 작품은 그 특유의 걸쭉한 입담과 만연체적 스토리전개로 TV극화 하기엔 상대적으로 어려운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연작형태의 원작을 해체해 사건별 혹은 연대순으로 재구성,그 문맥을 브라운관안에 온전히 용해시켜 놓음으로써 손상없는 메시지 전달에 성공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또한 시대극의 「운명」이라 할 세트 및 소품구입의 어려움을 무난히 해소,원작의 무대인 충남 보령군을 중심으로 토속적 정취의 초가집이나 베틀등 당시의 풍물을 충실히 재현함으로써 극적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신디사이저 대신 국악을 도입,해금가락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한국적 정서와도 맞닿아 있어 연출의도를 제대로 살렸다는 느낌이다.음향효과 또한 TV드라마 사상 최초로 스테레오로 제작돼 현장감을 더해 줬다. 다만 이 작품은 그 예술적 향기와는 별개로 완만한 극적 흐름과애정구도의 결여 탓인지 저조한 시청률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 신씨일당 「배후」 있는듯/4개대부정 개입/받은돈 백화점상가 투자

    대입 대리시험사건과 관련,한양대·덕성여대 대리시험의 주범인 신훈식씨(33)와 수배중인 국민대 입시브로커 김성수씨(38·대일외국어고교사),출신고및 내신성적을 조작한 김광식씨(52)등이 과거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의 배후에 더 큰 입시브로커조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6일 김광식씨가 88년에도 고려대입시에서 교직원을 매수,신모군(19)의 내신성적을 조작해 부정입학 시킨 사실이 있는데다 신씨가 조사과정에서 김씨의 수법을 모방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이번에 드러난 범행이 보다 방대한 조직적 범행의 일부일수 있다고 보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또 신씨와 수배중인 김성수씨도 81년 경기도 평택의 모 고교를 시작으로 84년 대일외국어고가 설립되면서 함께 전근하는등 긴밀한 사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또다른 입시부정도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와함께 올해 입시에서 대리응시할 대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연락책 역할을 한 김경수씨(38)가 김성수씨와 서울S국교 동창사이라는 점도이들의 조직적 범행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조사결과 신씨와 김성수씨가 김경수씨의 소개로 각각 1억5천만원씩 서울 노원구 중계동 S백화점 상가분양에 투자했을 정도로 이들의 관계는 긴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 불법체류 연장서류 위조/중국교포 등 5명 구속

    ◎14명에 30만∼50만원씩 팔아 서울지검 남부지청 수사과는 1일 불법체류 중국교포인 백재일씨(28·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태평구 동과가 22호)등 3명을 공문서 위조및 사기등 혐의로 구속하고 인장업자 김병옥씨(35·서울 중구 황학동 227의3)등 2명을 공인 위조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91년 6월 중순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입국한뒤 불법체류해오다 지난해 9월초부터 지난달 초순사이 서울 청계천등지에서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장과 법무부 장관의 가짜직인을 만들어 중구 퇴계로 A호텔에서 불법체류자들의 출국을 연기해주는 출국권고서 51장을 위조한뒤 지난달 12일 서울역앞 K다방에서 중국교포인 박모씨(35)에게 40만원을 받고 파는등 불법체류 중국교포 14명에게 한장에 30만∼50만원을 받고 모두 21장의 위조 출국권고서 5백75만원어치를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장업자 김씨등은 지난달 19일 하오 3시쯤 서울 종로구 장사동 김씨의 점포인 「청룡사」에서 사증발급인정서류에 필요한 법무부 장관의 직인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10만원을 받고 함께 구속된 노기환씨(37·서울 중랑구 묵2동 248의 55)의 인장포인 「세창사」에서 인장을 만들어준 것을 비롯,2차례에 걸쳐 25만원을 받고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의 직인을 위조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 10대 유흥비범죄 잇따라/강도미수 등 하룻새 14명 구속·수배

    유흥비 마련을 위한 고교생등 10대들의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경찰청 특수대는 31일 박모군 (17·공고 2년)등 고교생 3명이 낀 10대 5명을 강도미수 혐의로 구속했다. 중학동창사인이 박군등은 지난달 30일 하오 8시쯤 세운상가 앞길에서 자동차용품 노점상 양모씨(32)를 마구 때린뒤 현금 10만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강동경찰서도 이날 상오 7시10분쯤 천호동 화랑상가내 구멍가게에 들어가 주인 김모씨(46·여)를 위협,금품을 빼앗으려다 달아난 윤모군(18)을 특수강도혐의로 구속하고 10대 2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강서경찰서도 1일 용돈과 유흥비 마련을 위해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며 상습적으로 금품을 날치기해온 서모군(17·중구 신당동)등 10대 2명을 특수절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정모군(16·서울 S중 3년)등 4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

    ◎여명기의 민족지/“항일구국” 염원안고 대한매일신보 탄생/국운 기울어 암울했던 1904년 창간/주권수호 앞장서며 숱한 고난/해방직후 서울신문으로 속간/초대사장에 오세창 취임… 권동진·홍명희 고문에 영입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그 시대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1904년 국운이 기울어가는 암담한 나라 운명속에서 한가닥 빛으로 창강된 대한매일신보.그 항일구국지가 1945년 서울신문으로 거듭 태어나기까지는 파란만장한 우리 근·현대사를 함께 살았다.당시 민족의 생존이 그렇듯 일제의 모질고 간교한 탄압에 쓰러진 대한매일신보의 맥락은 서울신문이 잇고있다.일제 강점기 사이에 변화도 없지 않았으나 서울신문의 뿌리는 분명히 대한매일신보에 두었다.그 위대한 항일구국지 창간 1세기를 불과 1년 앞둔 오늘,그 역사를 조명하여 서울신문의 연륜을 다시 헤아리고자 한다. 「대한매일신보」는 대한제국 말기 6년동안 항일언론의 최선봉에서 민족주권 수호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가히 전설적인 신문이었다.근대 언론사에서 「다시 없는민족의 대변기관」으로 평가 받는 이 신문은 나라 안팎이 매우 복잡한 시기에 발행됐다. 국제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일본이 한국의 지배권을 열강으로부터 승인받아 한국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던 때이기도 했다.그리고 국내정세는 일본의 한국지배를 반대하는 민족운동이 불길처럼 치솟던 시기였다. 특히 나라안에서는 일본의 한국 황무지 개간권을 막으려는 민중운동과 함께 의병 무장투쟁,국채보상운동,애국계몽운동등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한매일신보는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창간되어 항일구국의 가시밭길을 걸었다.창간한 사람은 영국인 배설(Ernest Thomas Bethell·1702∼1909년)이다. 러·일전쟁때 취재차 한국에 왔던 런던의 데일리 크로니클 특별통신원인 그가 한글전용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날짜는 89년전인 1904년7월18일로 돼있다.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도 동시에 창간했다. 창간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모를 보아도 쟁쟁하다.당대의 언론을 주도했던 논객이자 우국지사였던 양기탁을 비롯,박은식·신채호·옥관빈등이 그 주역들. 나중에는 안창호·이갑등 구국운동조직인 서북학회의 인사들도 뛰어들었다. 창간호(타블로이드판)는 한호의 지면이 6면으로 4면은 영문,2면은 한글전용의 2개국어 신문체제였다.그러나 이듬해 8월에는 국한문 혼용판과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를 분리,2종을 발행했다.1907년5월에는 한글전용 「대한매일신보」를 새로 창간,3종의 신문을 한꺼번에 펴 냈다.국한문·영문·한글등 3종의 신문이 발행되기는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일이다. 황실(고종)의 은밀한 재정적 뒷받침과 민족진영의 도움을 받았다.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대한매일신보의 논조는 처음부터 반일구국일수밖에 없었다.그 첫 지탄공격은 황무지 개간권 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시작됐다.이를 시발로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전재,샌프란시스코의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 저격사건보도,영국의 트리뷴지에 실린 고종밀서사진 전재등 기사와 논설로 항일언론의 횃불을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 신문의 강력한 반일논조야말로침략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장 큰 저해요인이었다. 일본은 이에 대응,「경성일보」(일어)「Seoul Press」(영어)등 통감부의 기관지를 직접 발행하여 언론대응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또 한편으로는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외교적 압력과 사법적인 탄압을 가했다.외교적 압력은 영국측에 대해 배설의 추방요구로,사법적 탄압은 통감부의 신문압수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항일언론 자세는 좀체 꺾이지 않아 국한문판 24차례,한글판 21차례의 압수를 당하면서도 여전히 지속됐다.민족진영의 언론보루로서 이처럼 항일언론을 펼칠수 있었던 것은 이 신문이 영국인 소유여서 치외법권을 누릴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신문에 몸담고 있던 항일언론투사들의 민족사상과 구국정신이 그같은 논조를 주도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한매일신보」가 남긴 족적중 또한 특기할만한 것은 이 신문이 주동이 되어 벌인 국채보상운동이었다.이는 을사보호조약이후 일본으로부터 얻은 나라의 빚 1천3백만원을 국민의 성금으로 갚아 일본의예속에서 벗어나려는 일대 구국운동이라 할 수 있다. ○우국지사 대거 참여 대한매일신보는 이 운동의 중심기관이 되던 시기에 사세를 크게 신장,발행부수가 1만부를 넘어섰다(1907년 9월3일 기준 국한문 8천,한글3천부).이같은 발행부수는 그때까지 한국언론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강경한 논조를 터뜨리던 이 신문은 일본 통감부의 집요한 탄압끝에 배설의 상해옥살이와 양기탁의 구속으로 물이 꺾이기 시작했다.그후 배설이 숨지면서 이 신문은 더욱 기울어졌으며 영국인 만성(Alfred Marnham)이 사장직을 인수받았다.그러나 영·일간의 외교문제를 꺼리던 주한 영국총영사 보나르(Bonar)와 통감부의 회유및 압력을 받아 1910년 5월21일 결국 통감부에 팔리고 만다.국권수호의 상징적 존재였던 「대한매일신보」가 마침내 비극적인 종언을 고한것이다.그때의 지령은 제1461호(국한문판)였다. 그리하여 「대한매일신보」는 한일합병 이튿날인 1910년 8월30일부터 제호가운데 국가를 상징했던 두글자 「대한」을 빼앗겨 버린다.「대한」이 없어진 「매일신보」는 결국 통감부의 기관지로 전락하는 것이다.그러면서도 「매일신보」는 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국한문판 종간호인 제1461호(1910년 8월28일)의 지령을 계승,제1462호부터 국한문판을 발간했다.(한글판은 제939호부터) 이 날짜의 사설제목은 「동화의 주의」로 나온다.제국주의 36년간의 일본 전위역할을 이렇게 상징하고 일제 선전기관으로 얼굴을 바꾼 매일신보는 이틀만인 9월1일 대한제국의 기관지 성격이던 한양신문(전대한신문)까지 합병한다.국한문판과 한글판의 두가지 신문을 발행하는 유일한 한국어 신문이었지만 한국인이 만드는 한국의 소리는 담기지 않았다.이는 「일선융화와 세도인심의 감화유도」를 내건 일제의 어용언론활동의 전주곡이었다. 경영의 측면에서 경성일보사에 흡수통합,경일편집국의 한부서로서 철저하게 총독부기관지 역할을 수행한 매신은 그후 3·1운동의 결과로 일제의 무단정치가 표면상 문화정치로 바뀌면서 1920년 독립된 편집국으로 확대 승격됐다.그리고 1929년에는 한국인 편집국장이 임명된데 이어 1930년 한국인 부사장이 처음 기용되어 다소 편집제작의 재량권이 이루어지는듯 했다. 그러나 매신은 철저하게 일제의 입장에서 만들어져 편집방향은 「내선일체」를 고수했다.이러한 목적을 위해 총독정치의 선전과 홍보를 위주로 했으나 민족민간지들의 논조를 반박하거나 민족진영을 비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의 비호속에 이같은 논조로 일관하던 매신은 기구를 확대,경성일보사에서 분리하게 됐다.1938년 4월16일 독립된 언론기관으로서 제호를 매일 「신」보로 고쳐 새로 출발한 것이다. 매신이 경일과 맞붙은 지금의 프레스센터 자리에 4층 콘크리트 사옥을 짓고 들어선 것은 바로 이때였다.하지만 경일은 매신의 주식 45%를 소유한 대주주로 남았고 여기에 총독부 소유의 주를 포함한다면 매신의 경일예속은 이전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셈이었다.매신의 일제옹호논조 또한 해방직전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는 패망했다.1945년 8월15일 마침내 조국광복을 맞았다.매신은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으로서의「서울신문」으로 거듭나기위해 대대적인 개편수술을 받게됐다.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정청이 그해 10월2일 매신을 접수,매신 한인주주총회를 열어 새중역진을 구성토록 종용했다.이에따라 10월25일 주총이 열려 「서울신문」이라는 새로운 제호와 오세창을 사장으로하는 간부진용이 결정됐다.이 무렵은 사장 이성근이 지난날의 과오를 전사원에게 사과하고 자퇴한뒤 사원자치위원회에 의해 신문이 발행되던 때였다. 경영간부가 없는 상태에서 신문을 만들어오던 6백명의 자치위는 그러나 주총의 간부진용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주총결정은 자치위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는게 그 표면적 이유였으나 실상은 간부진용에 우익인사가 너무 많은데 불만을 품은 때문이었다. 그동안 비교적 관망상태에 있던 미군정당국은 11월10일 재산조사를 이유로 매신에 정간명령을 내렸다.매신이 정간되던날 자치위는 「3천만 민중의 정당한 공기」로서 신문이 새롭게 출현해야 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 한뒤 일단 한발 물러섰고 이를 계기로 개편실무진과 자취위 사이에 얽혔던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때 총독부 기관지로 미군정당국으로부터 매신개편의 대업을 새로 위임받은 이관구와 하경덕은 재원확보문제와 함께 내외에서 모두 수긍할수 있는 권위있는 인사들로 경영·편집진을 구성하는 작업을 신속하게 추진했다. 초대사장에 위창 오세창이 추대됐다.근대 신문계의 선구자이자 지조높은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닌 사회적·정치적 덕망은 새롭게 등장하는 서울신문의 이미지에 걸맞는 것이었다.위창과 함께 역시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인 권동진과 당시 문단의 원로격인 홍명희가 고문에 영입됐다. 서울신문 탄생의 산파역을 맡은 저명교육자 하경덕이 부사장에,그리고 사려 깊은 논조를 감당할 주필에는 항일언론의 선봉에 섰던 이관구가 선임됐다. 이러한 일사천리의 준비작업은 21일 5층 옥상에서 가진 오세창사장의 취임식으로 그 결실을 보게됐다.해방의 감격과 함께 독립한 이 민족의 진실된 언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서울신문이 마침내 그 첫 지면을 이 땅에 선보인 것이다. 이날이 1945년11월22일이었는데 신문은 11월23일자로 발행됐다. 이때의 서울신문 지령은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매일신보를 그대로 계승,제13738호를 기록하기에 이른다.그 고난의 역사를 마감하고 또 다른 시련의 역사를 향해 서울신문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었다. □연보 ◇대한매일신보(1904·7·18∼1910·8·28) ▲1904년 7월18일 창간 ▲편집겸 발행인 배설,총무 양기탁취임 ▲1910년 5월21일 통감부가 매수 ▲1910년 8월28일 국한문판 1461호,한글판 938호로 종간 ◇매일신보(1910·8·30∼1938·4·28) ▲경성일보에 흡수 통합,1910년 8월30일 매일신보로 개제발행(지령은 대한매신을 계승) ▲경성일보사장 길야태좌위문 취임(매일신보사장 겸임) ▲1912년 3월1일 국한문판과 한글판을 한글전용으로 합간 ▲1938년 4월28일 매신의 제호로 최종발행(지령11 012호) ◇매일신보(1938·4·29∼1945·11·10) ▲경일에서 분리독립,제호를 매일신보로 개제발행(지령은 매신을 계승) ▲사장 최린,부사장 이상협취임 ▲1945년 11월10일미군정에 의해 정간 ◇서울신문(1945·11·23∼현재) ▲1945년 11월23일 매신을 서울신문으로 개제발행(지령은 매신을 계승) ▲초대사장 오세창,고문 권동진 홍명희,부사장 하경덕,전무 김동준,주필 이관구취임
  • 연말 유흥비 노린 청소년범죄 극성/10대 5명 영장

    연말 유흥비 마련을 위한 청소년의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서초경찰서는 30일 이모군(19·무직·강남구 역삼동)등 10대 3명을 특수강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고교동창사이인 이들은 지난7일 하오3시쯤 서초구 반포본동 반포아파트 앞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던 황모씨(38·여)를 뒤따라가 황씨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밀치고 들어가 1백60여만원을 빼앗아 달아나는등 지금까지 12차례에 걸쳐 같은 방법으로 5천여만원어치의 금품을 빼앗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서울성북경찰서는 이날 추모군(18·K고2년)등 고교생 2명을 강도상해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 28일 상오1시20분쯤 성북구 정릉3동 골목길에서 정모씨(30·주부)를 『돈을 내놓지 않으면 죽인다』며 마구 때려 정신을 잃게한뒤 현금5만원을 빼앗고 정씨를 성폭행하려한 혐의를 받고 있다.
  • 「한국통신 10년사」 발간/전사·종합사 등 5편으로 구성

    ◎봉화시대서 세계8위 전화시설국 되기까지/통신발달·성장과정기술… 21C 비전도 제시 우리나라 전기통신 1백년사에 한 획을 그으며 지난 82년 출범한 한국통신이 창사 10주년을 맞아 최근 「한국통신10년사」를 발간했다. 이 책에는 전화시설 3백50만회선에서 시작,불과 10년사이 1천9백50만회선의 세계8위 전화시설 보유국이 되기까지 한국통신의 역할과 발자취를 회고하고 현재의 위상및 21세기의 대처방안 등이 폭넓게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전사,종합사,부문사,21세기 전망 그리고 부록의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사」에서는 전기통신 1백년(1885∼19 81)의 발자취를 약술하고 있다.즉 봉화,파발을 이용한 통신에서부터 전기통신의 도입기,식민통치시대의 전기통신,독립운동과 전기통신 그리고 전기통신의 근대화에 이르는 과정을 역사별로 서술하고 있다. 한국통신 10년의 업적을 통사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제2편 「종합사」에서는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설립배경과 국산 전전자교환기개발,정보사회의 기반조성과 국민기업으로 변신하기 까지를 자세히담고 있다. 제3편 「부문사」에선 각 실,단,본부및 부설기관의 10년사업을 분야별로 서술하고 있다.경영·기술·서비스·관리의 4개 분야로 나눠 인력개발,대외협력,재무관리,사업·기술개발,통신망·국제통신사업 등에 대한 세부사항을 소개하고 있다. 제4편 「전망」에선 21세기 정보사회를 주도해 나갈 비전을 제시하고 있으며 마지막 「부록」엔 법령,기구 변천표및 통계와 연표가 수록돼 있다. 9백55쪽 비매품.
  • “법질서 유지 협조하려 출두”/1백억 제공설 질문엔 답변 회피

    ◎정몽준의원 검찰출두하던 날 부산지역기관장모임 도청사건과 관련,일요일인 27일 갑자기 검찰에 출두한 국민당 정몽준의원은 베이지색 바바리코트에 정장차림으로 긴장한 탓인지 다소 굳은 표정으로 검찰청사에 들어섰다. 정의원은 이날 국민당 변정일대변인,차수명의원,이종순변호사와 함께 하오1시50분쯤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청사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사진기자 등의 촬영에 응한뒤 수사를 맡은 12층 특수2부로 직행했다. 정의원은 출두동기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법질서 유지에 협조하기 위해 나왔다』고 답변했다. 정의원은 당초 28일 상오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26일 하오 검찰측에 타진했으나 『기왕에 나올 거라면 빨리나와달라』는 서울지검 이건개검사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날 하오 자진 출두했다. 이날 정의원에 대한 조사는 김진태검사가 담당했으며 검찰 직원을 복도밖에 배치,취재진들의 접근을 막았다. 정의원은 검찰조사를 마친후 기자들과 만나,『지난 11일밤 서울 롯데호텔에서 문씨와 안종윤씨(43·전부산태화고무 예비군중대장)를 만나 녹음테이프를 건네받는 대가로 1백억원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문씨의 진술에 대해서는 『선거철에는 별 얘기가 나돌기 마련인데 그런 얘기를 퍼뜨린다고 해서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약속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정의원은 또 도창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부산에서 올라와 문씨 등을 롯데호텔에서 만났을때 처음들었다』고 말했다.
  • TV3사,연말·연시 시청자 확보 “비상”

    ◎특집 다큐멘터리 경쟁 뜨겁다/심혈기울인 야심작 잇따라 방영/KBS­1/멸종위기에 처한 원앙의 일생 추적/MBC/국내 불법체류 외국인문제 파헤쳐/SBS/몽골 심층취재… 우리문화 원형 탐구 KBS·MBC·SBS등 방송3사의 특집다큐멘터리 경쟁이 뜨겁다. 연말연시 시청자 확보의 「비상령」이 떨어진 가운데 이들 TV3사가 새로 선보일 다큐멘터리 프로는 KBS­1TV 「멸종위기에 처한 원앙」(1월1·2일 하오8시),MBC­TV 「불법체류자」(1·2부 28·29일 하오 10시55분,3부 30일 하오11시20분),SBS­TV 「유목민의 땅­몽골을 가다」(26·27일 하오10시55분)등 모두 3편. 이중 KBS­1TV의 「멸종위기에 처한 원앙」은 KBS가 장기계획의 일환으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본격자연다큐멘터리.제1편 「19 92년 7월생 원앙」에서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천적의 멸실등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는 원앙의 일생을 추적,아직 밝혀지지 않은 생태학적 특성을 규명하고 원앙의 생태와 민간속설과의 관계도 알아본다.또 원앙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해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를 모색해본다.제2편 「잃어버린 둥지」에서는 환경변화로 제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새들의 보금자리를 중심으로 새 환경에 적응해가는 독특한 생존방식을 집중 소개한다.특히 블록담속에 둥지를 튼 박새,버스의 엔진룸에서 포란중인 딱새,가정집 서재의 형광등에 집을 지은 제비등의 기형적 생태와 원인등을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중점 조명한다. KBS제작팀은 민감한 원앙의 생태를 영상에 담기 위해 지난 5개월 동안 특수장비를 총동원,광릉 숲 홍천 양수리등지에서 현지촬영,다큐의 사실감을 높였다. MBC­TV 창사특집 3부작 「불법체류자」는 현재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체류 외국인의 문제를 심층 추적,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대처방안을 모색해보는 기획프로.제1부 「후세인과 아키노」에서는 「코리아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흘러들어온 동남아 출신의 불법체류자들에게 한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또 제2부 「연변 아줌마의 우리 중국 우리 한국」에서는국내 친척들의 초청을 받아 가족단위로 입국,잡역부나 단순기능공 또는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교포들의 실상을 알아보며 제3부 「코리안 드림」에서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조명해봄으로써 그들에 대한 정치 사회 문화적 대응방안을 찾아본다. 한편 SBS­TV가 마련한 「유목민의 땅­몽골을 가다」는 우리 방송사상 처음으로 몽골인의 참모습을 문화인류사적으로 추적한 다큐2부작.이 프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몽골문화의 유적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동몽골지역을 집중 취재,한국문화의 원형을 밝히겠다는 야심작이다. 제1부 「할힝골 대초원의 수수께끼」에서는 고구려의 국경지역을 표시했던 조형물로 알려진 훈촐로(돌하루방)가 서있는 할힝골 대평원을 직접 가보며 고구려 초기의 무덤형태인 적석총군도 보여준다.또 고구려의 전설이 깊이 잠들어 있는 할힝골 이목민의 가정을 방문,3대가 함께 모여사는 그들의 생활풍습과 유목민의 특질등을 살펴본다.제2부 「울란바토르에 부는 바람」에서는 구소련의 붕괴와 몽골의 민주화를 거쳐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울란바토르시의 변모된 모습을 전해준다.그밖에 징기스칸이 칼을 갈고 10만대군을 숨겨놓은채 후일을 도모했다는 강가 호수와 몽골의 영산 신림복드도 카메라에 담아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미 교포사회 실상 굴절없이 전달(TV주평)

    ◎M­TV 창사특집드라마 「억새바람」을 보고 구한말 하와이 사탕수수밭 이민역사가 기록된지 1백년.60년대말부터 산업화정책의 일환으로 비롯된 「또 하나의 이민사」가 씌어진지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그 이민 1세대와 자녀세대인 2세대.그들이 겪어온 이민생활의 실상과 애환을 잔잔한 톤으로 전해주는 드라마가 있다. MBC­TV 창사특집 16부작 「억새바람」(조소혜극본 이관희연출).이 드라마는 재미교포작가 김유미씨의 장편소설 「칭크」와 「억새바람」을 각색·극화한 작품으로 미시카고와 LA등지서 현지촬영,극의 사실감을 한껏 살렸다. 최초의 본격 「이민사 드라마」라 할 이 작품은 「자유와 풍요의 땅」미국에의 꿈을 좇아 이민온 한 해직교사 태섭(이영하반)의 가족과 그 주변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을 통해 교포사회의 밑바닥 실상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억새풀처럼 질긴 생명력을 지닌 한국인.그 혼과 긍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뼛속까지」미국인이 되어야 하는 이율배반의 고충을 「억새바람」은 빈틈없이 포착,되도록 긍정적측면에서 조명함으로써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태섭이 일하는 주유소에서 낯선 흑인의 외상요구로 예고된 불안감을 희망적 이야기로 풀어간 장면은 한흑갈등의 위기속에서도 화해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연출자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극중 수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중반부로 접어든 이 드라마는 이제 보다 복잡다단하게 전개되고 있다.한정된 그릇에 모든 것을 담으려는 과욕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올바로 여과해 전달하려는 균형있고 절제된 연출감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프로가 단지 피상적인 교포사회의 소개 차원을 넘어 현지 교민들의 리얼한 삶을 정직하게 비춰주는 의미있는 작품으로 완성되길 기대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