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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은 어떻게 특권이 되었나

    시간은 어떻게 특권이 되었나

    시간은 건강 다음으로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실질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원치 않는 활동에 쓰도록 강요받거나 유도되고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현재 전 세계 연평균 노동시간은 1800시간에 육박하고 한국 노동자들은 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9일 더 일한다. 한국은 ‘장시간 노동 국가’, ‘과로 사회’, ‘일중독 사회’라는 꼬리표를 여전히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사회 계급 개념을 정립하고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에 맞서는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해 온 저자는 “시간 불평등이야말로 모든 불평등 가운데 가장 최악”이라고 경고한다. 노동에 매몰된 시간 속에서 돌봄, 우정, 정치적 참여와 숙의의 자리가 줄어들면서 민주주의의 기반이 약화되고 각종 불평등과 빈곤이 더욱 심화된다는 것이다. 책은 언제부터 다수의 시간이 노동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시간의 자유는 소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었는지 역사적으로 규명한다. 정치경제학자인 저자는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현대 사회에 이르러 더욱 왜곡되고 불합리해졌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노동자가 작업장 밖에서도 일하는 것이 당연해졌고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고 노동과 여가의 경계가 희미해져 노동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게 됐다. 저자는 이 같은 상황이 프레카리아트에게 더 위협적이라고 말한다. 프레카리아트는 소득을 토지 임대료나 정기적인 봉급, 비임금 특전 등이 아니라 오직 임금 노동에만 의존해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계급이다. 그들은 대부분 임시직, 단기 계약직, 심부름 노동, 플랫폼 노동 등에 동원되는데 일자리의 불확실성 때문에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기 어렵고 자신의 시간을 거의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일에도 상당한 시간을 써야 한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일자리 보장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무의미한 일자리에 매달리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일할 권리 대신 일하지 않을 권리를 우선시하며 모두의 시간을 존중하는 소득과 분배 체제를 정립하는 것이 시간 불평등 해결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 지금 ‘소년이 온다’… 성북의 아주 특별한 ‘한강 노벨상’ 기념식

    지금 ‘소년이 온다’… 성북의 아주 특별한 ‘한강 노벨상’ 기념식

    ‘소년이 온다’ 편집자 참석해 소회“진 빠진 작가님 안아 주고 싶었죠”‘한 책’ 선정 때 작가 메시지 공개도“많은 이들에 읽혀 완성되는 소설” “‘소년이 온다’ 연재가 끝나고, 처음 만난 한강 선생님의 진이 빠진 모습에 꼭 안아 드리고 싶었죠.” 한국인 최초로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 아리랑도서관에서는 성북구가 연 특별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강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의 편집자인 김선영 핀드출판사 대표가 독자들과 만나는 ‘지금, 소년이 온다’였다. 당시 창작과비평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김 대표는 “슬픈 장면에선 여지없이 눈물을 흘리며 원고를 읽었기에 글을 쓰는 선생님의 마음도 짐작할 수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성북구는 지난 2010년부터 주민협의체가 토론을 통해 올해의 책을 선정하고 함께 읽는 ‘한 책 읽기’ 운동을 하고 있다. 2016년에는 ‘소년이 온다’가 선정됐다. 논의 과정에선 “오래된 고름 같은 이 문제를 터뜨려 새살을 돋게 해야 한다”는 한 고등학생 위원의 주장에 팽팽한 격론이 비로소 정리됐다. 성북문화재단 관계자는 “당시 광주, 전남이 아닌 지역에서 ‘소년이 온다’를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경우가 많지 않아 주목받았다”며 “성북이 함께 읽은 책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 기쁘다”고 했다. ‘소년이 온다’는 단행본 출간 전인 2013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됐다. 김 대표는 연재 과정에 대해 “선생님은 미리 원고를 준비해 꼼꼼한 교정 교열을 거칠 수 있었다”며 “원고만 가지고도 책을 묶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고 돌이켰다. 이어 “문법상 고쳐야 하는 표현인데도, 입말을 살려서 고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할 정도로 선생님은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또 “수상 소식을 접하고 연재 과정에서 매번 댓글을 달아 큰 힘을 주셨던 독자가 생각났다”고 했다. 장내는 50여명의 독자들로 가득했다. 한 참가자는 “탄광 속 카나리아 같은 소설”이라며 “잔인한 고통을 직시하는 책을 만들며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고, 김 대표는 “울다가도 최대한 오류를 줄이려는 편집자의 역할에 집중하려 했다”고 답했다. 또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등 소설 속 한 구절을 나눴다. 아울러 성북문화재단은 2016년 당시 한강이 성북구의 한 책 선정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이 소설은 많은 이들에게 읽힘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책”이라고 한 편지도 참가자들과 공유했다.
  • [베스트셀러]한강 ‘소년이 온다’ 5주 연속 1위…노벨주간 행사서 ‘계엄령’ 언급할까 주목

    [베스트셀러]한강 ‘소년이 온다’ 5주 연속 1위…노벨주간 행사서 ‘계엄령’ 언급할까 주목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소설 ‘소년이 온다’가 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제124회 노벨상 시상식을 앞두고 12일(현지시간)까지 ‘노벨 주간’ 행사가 이어지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에 대한 관심도 이어질 전망이다. 한강이 이번 행사에서 지난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언과 관련해 어떤 이야기를 할지도 이목이 쏠린다. 교보문고가 6일 발표한 11월 마지막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소년이 온다’는 한강의 또 다른 소설 ‘채식주의자’를 따돌리고 선두를 지켰다. 다만 다른 작품은 지난주보다 1~2계단씩 하락했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4위로 한 계단 내려갔다. 소설 ‘흰’(7위)은 두 계단,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8위)는 한 계단 하락했다. 유튜버 유혜주의 ‘우리는 사랑 안에 살고 있다’가 출간과 함께 3위로 진입했다. 시인 류시화의 신작 시집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가 19위로 새롭게 진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책 가운데에는 ‘트럼프 2.0 시대’가 5위에 올랐다. 다음은 교보문고 11월 넷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 1. 소년이 온다(창비) 2. 채식주의자(창비) 3. 우리는 사랑 안에 살고 있다(21세기북스) 4.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5. 트럼프 2.0 시대(글로퍼스) 6. 트렌드 코리아 2025(미래의창) 7. 흰(문학동네) 8.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 9. 넥서스(김영사) 10.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페이지2북스)
  • 자신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에게

    자신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에게

    ‘거짓말 같은 이야기’로 2011년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에서 수상한 강경수(50) 작가의 그림책 ‘세상’이 출간됐다. 그동안 동화, 동시, 그래픽 노블, 청소년 소설 등을 통해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강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기존에 나왔던 ‘꽃을 선물할게’, ‘눈보라’를 잇는 철학 그림책 3부작을 완성했다.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강경수 그림책 ‘세상’은 ‘커다란 손’에 의해 양육된 한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진짜 세상을 발견하고 나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어느 도시 변두리 집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지구를 거쳐 우주로 확장된다. 쇠창살 달린 창문이 세상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인 집에서 아이는 ‘커다란 손’과 부족한 것 없이 평화롭고 행복한 날을 보낸다. 어느 날 창밖으로 사슴이 늑대에 쫓기는 모습을 목격한 아이가 바깥세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실제 세상이 그러하듯 작품은 세상에 밝음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 사슴은 그 자리에서 천천히 썩어 가고 결국에는 뼈만 남게 된다. 사슴이 죽은 자리에서 소녀가 나타나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세상에는 아름다움과 추함이 모두 존재하며 삶과 죽음은 순환됨을 보여 준다. ●노란색·검은색 만으로 표현, 극적 효과 아기였다가 아이로 자라고 소년이 된 주인공은 자신이 속할 곳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자아를 확립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손에게 인사를 건넨다. 커다란 손은 아이가 믿었던 것들로부터 배신당하고 그로 인해 상처받을 것을 우려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택한다. 노란색과 검은색으로만 이뤄진 그림은 극적인 효과를 준다. 무채색으로만 존재하던 주인공은 자신의 세상에 나아가 비로소 노란색 빛을 낸다. 앞서 작품마다 이야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화풍을 시도해 온 작가는 이번 그림책에선 점과 선을 겹쳐 그림자를 표현하고 입체감을 살렸다. 또 창문 프레임을 활용해 집 안과 밖의 공간감을 부각하는 탁월한 화면 연출을 선보인다. 우주에서 시작해 우주로 끝나는 풍부한 면지(표지와 본문을 이어 주는 종이)의 활용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아이의 독립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양육자 혹은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 작가인 키티 크라우더의 ‘메두사 엄마’와 견줘 읽는 것도 좋겠다.
  • “詩가 살아 있는 한국 면모 인증”…한강의 재발견에 뜨거운 문단

    “詩가 살아 있는 한국 면모 인증”…한강의 재발견에 뜨거운 문단

    日 하루키 아닌 한강을 선택한 건韓 예술적 혁신 인정한강이 상의 격 높여시와 교류하는소설의 문장들은장면을 더 감각적으로형상화 하는 역할 일상에서의 여운은 조금 가신 듯하나 문단은 여전히 뜨겁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문학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특집이 주요 문예지에 속속 실리고 있다. 이 역사적 사건을 동시대 비평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2일 문학계에 따르면 창비는 계간 ‘창작과비평’ 겨울호(통권 206호)에 ‘노벨문학상 수상 특별기획’을 실었다. 한기욱 인제대 명예교수는 ‘한강 소설이 우리에게 오는 방식’이라는 글에서 “1990년대 이래 한국문학은 쇠락 일로에 접어든 것이 아니라 상당히 인상적인 예술적 혁신을 이뤄 냈다”면서 “한강을 포함한 새 세대 여성 작가들의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덕분”이라고 했다. 이어 “아시아권의 유력 후보이자 탈근대소설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라 한강을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 노벨문학상의 공신력을 높였다”면서 “노벨문학상이 한강을 빛냈지만, 역으로 한강 문학이 노벨문학상의 격을 높인 면도 있다”고 평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한강 문학을 평한 것에 대해 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시적인 산문이라는 평가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한강의 작품은 시가 두텁게 살아 있는 나라인 한국의 면모를 알아보게 만든다”면서 “그의 산문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들과의 교류는 소설 속 한 장면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때로는 작품의 전체 구조 내지 분위기를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재미 한국문학 연구자인 유영주 미시간대 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는 ‘소년은 오고 또 온다’는 글에서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를 비롯한 세계 각국 독자들의 진지한 수용과 높은 평가는 식민지 경험과 동족상잔, 반공 냉전 군사독재 체제로 점철된 20세기 한국에서 원조에 의존하던 국가로는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21세기 초 달라진 한국 상황을 한강의 문학이 어떻게 잇고 또 가로지르는지 탐색해 보려는 세계인의 호기심 어린 주목에도 닿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명출판도 계간 ‘문학인’ 겨울호(통권 16호)에 특집을 펼쳤다. 젠더와 퀴어의 관점에서 한강 수상에 의미를 부여한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눈은 문학/항쟁의 주체가 될 수 있나’라는 글에서 “(이번 수상은) 광주, 제주, 여성과 소수자, 비인간 존재가 ‘한국문학’ 혹은 ‘한국적인 그 무엇’에서 독립해서, ‘세계사적 힘’에 의하여 국가의 경계를 넘어 주권을 표명한 계기”라며 “한강의 최근 소설들은 전 지구적인 소수자 글쓰기와 이론적 실천에 관한 관심과 지형 변화와 매우 밀접한 접점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강은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등단하기에 앞서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먼저 문단에 나온 바 있다. 그의 시 세계를 분석한 백선율 가천대 강사는 ‘희미한 저녁의 거주자’라는 글에서 “어둠과 빛 사이에서 거주하며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일은 한강에게 사는 일이자 쓰는 일일 것”이라며 “이 일을 시인 한강은 저녁에, 북향 방에서 지속하고 있다”고 적었다. 월간 ‘현대문학’은 지난달 11월호(통권 839호)에 문학평론가 한영인의 글 ‘세계의 폭력을 가로지르는 유토피아적 충동의 질주’를 실었다. 한강의 초기 단편을 분석한 이 글에서 한영인은 이런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한강의 작품이 인간과 세계의 실존적 고통을 섬세한 시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는 정당하지만 거기에는 그 고통에 직면한 우리의 책임을 심문하는 윤리적 계기가 강렬하게 포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는, 그리고 전 세계의 독자들은 여전한 전쟁의 참화와 일상적인 폭력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책임을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맞게 되었다.”
  • 누구도 가지 않은 길 걸은 두 여성의 ‘중꺾마’ 동화

    누구도 가지 않은 길 걸은 두 여성의 ‘중꺾마’ 동화

    2022년 사람으로 변신한 호랑이 이야기 ‘루호’로 한국형 판타지를 보여 줬던 채은하(43) 작가가 ‘눈에 불이 담긴’ 두 여성의 연대를 다룬 역사 동화 ‘이웃집 빙허각’으로 돌아왔다. 실존 인물인 빙허각 이씨(1759~1824)는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로 알려져 있다. 작품은 가난한 양반의 딸 덕주가 빙허각과 함께 최초의 한글 실용 백과사전인 ‘규합총서’를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여인은 자신을 낮추고 없는 듯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를 위시한 시대 상황에 덕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 덕주에게 빙허각이라는 호를 쓰는 은행나무 집 할머니는 숨통과 같은 존재다. ‘기댈 빙(憑)에 허공 허(虛), 집 각(閣), 풀자면 허공에 기댄다 혹은 아무 데도 기대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호에서 덕주는 “무척이나 외롭고 달리 생각하면 한없이 자유로운 느낌”을 받는다. 할머니는 덕주에게 “총명함은 무딘 글만 못하다”라는 말로 글 쓰는 일의 귀중함을 일깨워 준다. 또 책이라는 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는 방법을 연구한 책도 많다는 것을 알려 준다. 책에 쓰인 것이 전부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천락수 실험’이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절개가 매서운 여인’이라는 뜻의 열녀가 아닌 ‘여러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열녀록 등의 에피소드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덕주는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결국 답을 찾아내는 인물로, 자칫 빙허각이라는 인물에 치우쳐 주인공이 부수적인 인물에 그칠 수 있다는 독자의 우려를 불식시킨다. 책을 언문으로 쓸 것이냐, 진서라고 불리는 한자로 쓸 것이냐 하는 문제로 두 사람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모습 등에서 덕주라는 인물이 확연히 보인다. 덕주의 성장도 눈부시다. 대체 왜 험한 길을 가려는지 묻는 아버지에게 덕주는 “다들 아무리 힘들고 고되어도 숨 쉴 구멍 하나는 찾더라고요. 마치 미꾸라지처럼요”라고 말하며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단단한 결심을 밝힌다. 각자의 꿈을 지혜롭고 용감하게 마주하는 두 여성의 연대는 담대하게 자신의 마음을 지켜 나가는 현실의 우리를 북돋아 준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주제 의식이 뭉클함을 남긴다.
  • ‘자본주의 이행’ 고민한 ‘DJ의 절친’…나종일 교수 별세

    ‘자본주의 이행’ 고민한 ‘DJ의 절친’…나종일 교수 별세

    ‘중세에서 근대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연구하는 서양 근대사 분야를 개척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나종일(羅鍾一)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가 21일 오전 9시30분쯤 타계했다. 98세. 1926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목포 상고,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석사,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남대 문리대 조교수를 거쳐 1992년까지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영국사와 근대 자본주의 이행 등을 강의했다. 1982∼1984년 한국서양사학회장, 1991년 영국사연구회(1996년부터 영국사학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고인이 주로 연구한 분야는 초기 자본주의 형성사였다. 영국 농민들이 농지에서 쫓겨나 노동자가 되는 ‘인클로저 운동’ 연구 결과를 저서 ‘영국 근대사 연구’(1988), ‘세계사를 보는 시각과 방법’(1992), ‘영국의 역사’(2005) 등에 담았다. 또 E.P. 톰슨(1924∼1993)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2000), 이매뉴얼 월러스틴(1930∼2019)의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창비·1993), ‘근대세계체제’(까치·1999) 등을 번역했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도, 고인의 ‘근대세계체제’ 등의 번역 출판이 계기가 됐다. 2012년에는 1576쪽에 이르는 번역서 ‘자유와 평등의 인권선언 문서집’(한울)을 내놨다. 13세기 영국의 ‘마그나카르타’부터 2000년 유엔 ‘새천년 선언’까지 서양에서 나온 인권 관련 문서를 집대성한 책이다. 고인은 DJ의 절친으로도 알려져 있다. 1992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열린 나 교수의 정년 퇴임 기념 논총 증정식에 목포 상고 친구였던 김대중(DJ·1924∼2009) 당시 평민당 총재가 참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DJ와 처음 만난 것은 5년제 고교의 3학년 때다. 그는 1∼2학년 때 취업반에 있다가 3학년 때 진학반으로 옮기면서 저와 졸업할 때까지 같이 공부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을 아는 지인들은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추천받았는데도 거절하고 학문 연구에 몰두할 만큼 학문에만 눈을 돌리고, 본인에게 혹독한 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인은 “한국 서양사학계를 넘어 사학계 전체에서도 거목”이라며 “외부 활동을 거의 안 하고 대중서를 안 썼지만, 학문의 깊이와 폭은 ‘태두’(泰斗)라는 평이 아깝지 않다”라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23일. (02)3010-2000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회색에서 왔습니다(한요나 지음, 창비) “우주를 가로질러 네가 있는 곳으로 간다.” 외출이 어려울 정도로 대기가 오염된 ‘회색 행성’을 배경으로 가상 교실에서 만난 두 소녀 묘원과 서라가 우정을 쌓는다. 서라의 과거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빛나는 다정과 용기. 험난한 기후위기의 현실에서도 힘차게 발을 내딛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점차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손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달라진 세계에서 우정은 어떤 모양일까. ‘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 ‘버니와 9그룹 바다 탐험대’ 등의 소설과 ‘연한 블루의 해변’ 등의 시집을 출간한 한요나의 장편 청소년소설이다. 204쪽. 1만 5000원. 호랑이가 돌아왔다(조명화 지음, 책고래) “우리 동네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가 우리 일상에 살아간다면 어떨까. 조명화의 그림책은 이런 상상에서 시작한다. 사람에게 쫓겨 숲을 벗어난 호랑이가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헤맨다. 공원에 숨기도, 어린아이 집에 몰래 들어가 보기도, 잡화점에서 전시물인 척 시치미를 뚝 떼 보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곳은 하나도 없다. 호랑이가 안전하게 머물 곳은 과연 어디일까. 시베리아 호랑이라고도 불리는 한국 호랑이는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계속되는 도시 개발로 동물들은 삶의 터전을 잃는다. 그림책 속 호랑이는 조금 엉뚱하고 익살맞지만 왜인지 가엾고 애처롭기도 하다. 48쪽. 1만 5000원.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유수연 지음, 문학동네) “슬픔이 바나나보다 빨리 익는다//두면 먹겠다 싶었는데 한 개는 끝내 검게 변했다/생긴 건 저래도 맛은 있단 걸 잘 알지만//보기 좋은 슬픔이 울기도 좋은 걸 누가 모르나” 대화를 건네는 듯한 친숙한 어법, 부드럽고 섬세한 감정으로 우리 안의 닫힌 마음을 두드려 깨우는 유수연의 두 번째 시집이다. 2017년 일간지 신춘문예로 데뷔한 유수연은 이번 시집에서 “산다는 것”이란 슬픔을 마주하는 것을 넘어 “슬픔을 갱신하는 일”(‘정중하게 외롭게’)임을 깨닫는다. 사랑과 이별, 사람과 상처에서 발견되는 고유한 슬픔을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시린 겨울, 지친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시집이다. 124쪽. 1만 2000원.
  • 이영광 시인, 제26회 백석문학상 수상

    이영광 시인, 제26회 백석문학상 수상

    이영광(사진) 시인이 올해 펴낸 시집 ‘살 것만 같던 마음’으로 제26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한다고 창비가 14일 밝혔다. 이영광은 1965년 경북 의성 출생으로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 ‘그늘과 사귀다’, ‘아픈 천국’, ‘나무는 간다’, ‘끝없는 사람’, ‘해를 오래 바라보았다’,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와 산문집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가 우리를 죽여주니까’ 등을 펴냈다. 노작문학상, 지훈문학상, 미당문학상, 형평문학상 등을 받았다. 창비 측은 이영광의 ‘살 것만 같던 마음’에 대해 “세상이 망가지고 있다는 팽배한 절망감에 경종을 울리며 그것을 몰아내려 애쓰는 시집”이라며 “시인은 신자유주의 코로나 시대에 삶과 죽음, 강자와 약자, 빈자와 부자가 마주하는 세상에서 무시로 변하는 마음의 정동을 반어법과 역설법을 활용하여 과감하게 서술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생을 향한 사랑을 포함해, 모든 사랑에 내재한 아이러니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시적 역량이 ‘모던하게 돌아온 듯한 백석’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예심은 신미나 시인과 이근화 시인, 본심은 김해자 시인과 진은영 시인, 한기욱 문학평론가가 심사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 시인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문학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자야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10월에 제정됐다. 상금은 2000만원이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신동엽문학상·창비신인문학상과 함께 이달 하순 개최 예정이다. 이영광의 수상소감 및 심사평 전문은 2024년 계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실린다.
  • [베스트셀러]여전한 한강 열풍…‘소년이 온다’ 1위

    [베스트셀러]여전한 한강 열풍…‘소년이 온다’ 1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열풍이 서점가에 여전하다. 지난주 ‘채식주의자’가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이번 주에는 ‘소년이 온다’가 선두를 탈환했다. 1위 자리를 두고, 한강의 작품끼리 경쟁하는 국면이다. 교보문고가 8일 발표한 11월 첫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소년이 온다’가 ‘채식주의자’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3위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세 작품이 돌아가면서 1위를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앞서 10월 둘째 주에는 ‘소년이 온다’가, 셋째 주에는 ‘작별하지 않는다’가, 넷째 주에는 ‘채식주의자’가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4위는 ‘흰’, 5위는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6위는 ‘희랍어 시간’이 차지했다. 8위 ‘디 에센셜: 한강’, 10위는 1995년 발간한 한강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이 이어졌다. 전체 10위 안에 8개 작품이 한강의 책이다. 한강 열풍이 전체 소설 분야 인기로 이어지는 현상도 보인다. 양귀자 소설 ‘모순’이 11위, 올해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인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은 13위, 정대건 소설 ‘급류’는 19위를 차지했다. 10위 권 안에 내년 전망서 ‘트렌드 코리아 2025’(7위)와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9위)가 이름을 올렸다. 다음은 교보문고 11월 첫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10월 30일~11월 5일 판매 기준). 1. 소년이 온다(창비) 2. 채식주의자(창비) 3.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4. 흰(문학동네) 5.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 6.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7. 트렌드 코리아(미래의창) 8. 디 에센셜: 한강(문학동네) 9. 넥서스(김영사) 10.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
  • [책꽂이]

    [책꽂이]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팀 파머 지음, 박병철 옮김, 디플롯) ‘카오스 이론’이라고 하면 ‘베이징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이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을 일으킨다’라는 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카오스 이론의 핵심은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다. 이론물리학자이자 기상학자로, 현재 많은 나라 기상청에서 쓰고 있는 앙상블 예측 기법의 기틀을 마련한 저자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는 것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확률적 예측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비선형 확률 예측 기법은 날씨는 물론 바이러스 확산, 경제 변동, 국가 간 충돌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무질서 속의 질서를 보게 해 준다. 436쪽, 2만 7800원.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유홍준 지음, 창비)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박물관장, 문화재청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까지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를 대표하는 것은 500만부 판매 신화를 쓴 인문학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다. 산문이나 에세이, 수필도 아니고 ‘잡문’이라는 이름을 붙여 하나 마나 한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답사기를 쓰면서 겪었던 일들, 예술과 문화를 대하는 태도, 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말하는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부록에는 ‘좋은 글쓰기를 위한 15가지 조언’이 실려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문 비법도 훔쳐볼 수 있다. 364쪽, 2만 2000원. 언니네 미술관(이진민 지음, 한겨레출판사) 미술관에 가는 것은 좋지만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철학자인 저자는 슬픔, 사소함, 서투름, 근육, 거울, 마녀, 직선과 곡선, 앞과 뒤, 너와 나라는 9개 키워드로 그림을 읽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그림 속 요소들을 하나씩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자기 몸에 있는 모든 감각을 온전히 느끼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사물의 뒷모습과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자고 제안한다. 332쪽, 1만 8500원. 레볼루션 코리아(구윤철 지음, 바다위의정원) 33년 동안 국가 정책과 예산을 다루는 일을 맡았던 저자가 현재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지만 국가 시스템 곳곳에 여전히 추격형 경제 시절의 비효율성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쌍끌이하기 위해 경제, 사회, 정치, 행정 분야에서 필요한 11가지 실행 전략을 제시한다. 320쪽, 2만 5000원.
  •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못하겠습니다… 마음 생채기 기억하는 두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못하겠습니다… 마음 생채기 기억하는 두 다짐

    2022년 10월 30일 아침, 전 국민은 말도 안 되는 뉴스를 접하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불과 몇 시간 전인 전날 밤에 159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아직도 참사의 진상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창 빛을 내야 할 젊은이들이 세상을 떠났는데 사고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는 괴상한 참사. 세월호 참사와 함께 한국인의 가슴에 트라우마를 남긴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가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면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는 이태원 주민, 그곳이 일터인 사람들,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아끼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참사를 이야기한다.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영안실에 갔을 때 두려워 안아 주지 못했지만 병원에서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40분 동안 딸을 안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어머니, 분향소로 매일 출근해 당국의 철거 위협에 맞서 밤새 아들의 영정을 지킨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책을 통해 이태원 참사는 피해자 유족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후 삶에 대해 불안감이 커져 오랫동안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사고 당일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인원을 찾는 요청을 외면하고 집으로 되돌아간 것에 대해 아직도 자책하며 매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참사를 목격한 뒤 일상에 도사리는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던 이들도 있다. 이 책들은 왜 이태원 참사를 기억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재난과 위험이 일상화된 현재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해 안전한 사회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아픈 기억이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상처를 보듬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람 간 믿음과 연대라는 것을 강조한다.
  • [베스트셀러]톱10 중 9개가 한강 작품...서점가 ‘한강열풍’ 여전

    [베스트셀러]톱10 중 9개가 한강 작품...서점가 ‘한강열풍’ 여전

    지난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서점가에 ‘한강 열풍’이 여전하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10종 가운데 9종이 모두 한강의 작품으로 채워지고 있다. 교보문고가 25일 발표한 10월 3주 차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한강 작품이 10위 가운데 1~7위를 차지했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1위, 소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가 그 뒤를 이었다. 한강의 유일한 시집도 상위권에 올랐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가 4위였다. 소설 ‘흰’(5위), ‘희랍어 시간’(6위), ‘디 에센셜: 한강’(7위)이 뒤따랐다. 9위는 한강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 10위는 한강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이었다. 한강 작품이 아닌 책으로는 유일하게 ‘트렌드 코리아 2025’(8위)만이 10위 안에 들었다. 다음은 교보문고 10월 셋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10월 16~22일 판매 기준). 1.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 소년이 온다(창비) 3. 채식주의자(창비) 4.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 5. 흰(문학동네) 6.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7. 디 에센셜: 한강(문학동네) 8. 트렌드 코리아 2025(미래의창) 9.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 10. 노랑무늬영원(문학과지성사)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왜왜왜 동아리(진형민 지음, 이윤희 그림, 창비) “우리는 멸종되기 싫어요! 기후야, 변하지 마! 우리가 변할게! 지구의 미래, 어린이가 지킨다!” 어린이 생활에 밀착한 서술과 함께 묵직한 주제 의식을 엮은 작품으로 독자와 평단에서 두루 사랑받는 진형민 작가의 신작 동화다. 바닷가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주인공이 친구들과 무엇이든 파헤치는 ‘왜왜왜 동아리’를 결성해 활동하던 중 어른들의 일이 기후 위기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다는 이야기다. 기후라는 무거운 주제를 활기찬 분위기로 풀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00쪽. 1만 3800원. 물의 극장에서(이선이 지음, 걷는사람) “내 몸에서 유독 귀만이 문 닫을 줄 모르는 24시간 편의점/밤낮없이 기도가 자라야 할 그곳이려니//국수처럼 순하고/버섯처럼 무른/무심을 버무려 도대체 무엇에 쓸까” 199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선이 시인의 신작 시집. 시인은 ‘물’을 통해 존재의 유동성과 변화하는 모습에 관심을 기울인다.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물의 속성을 통해 인간 존재와 감정, 삶의 불안정한 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흐르고 사라지는 물은 표면적으로는 상실과 고독의 정서를 불러일으키지만 그보다 더 아래에서는 존재의 확장과 공감을 매개하고 있는 것임을 시인은 알아챈다. 140쪽. 1만 2000원. 세 가지 인생(거트루드 스타인 지음, 이은숙 옮김, 민음사) “친구 사이에서 지배력은 하강 곡선을 그리기 마련이다. 한쪽의 힘이 계속 커져 결국 다른 한쪽은 상대를 이길 수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해가 지나도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계속 강해지며 약해지는 법이 없는 관계는, 결혼과 같은 닫힌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달아날 길이 없을 때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미국의 시인이자 극작가, 번역가인 동시에 예술가들의 열렬한 후원자이기도 했던 거트루드 스타인의 소설집이다. 여성주의자였던 스타인은 이 소설에서 ‘애나’와 ‘멀랜사’ 그리고 ‘레나’ 세 사람의 삶을 다룬다. 실험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소설이지만 중심 인물의 삶을 펼치는 데 정성을 크게 들였다. 그래서 낯섦보다는 다정한 울림을 준다. 삶의 단순함과 복잡함을 동시에 담아내며 그래서 삶의 소박함과 숭고함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328쪽. 1만 5000원.
  • ‘한강 효과’ 독서 후진국 문화 바꿀까…전국 도서관, 한강 책 분당 평균 3권 대출

    ‘한강 효과’ 독서 후진국 문화 바꿀까…전국 도서관, 한강 책 분당 평균 3권 대출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을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의 영향력이 강력하다. 온오프라인 대형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기록을 갈아치우더니, 전국 도서관 대출 순위까지 갈아치우고 있다. 18일 국립중앙도서관에 따르면 “전국 공공 도서관 1499곳에 소장된 한강 작가의 작품 20종에 대한 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던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닷새간 한강 작가의 저서를 대출한 사례는 총 1만1356건”이라고 밝혔다. ●도서관 대출 1~10위도 역시 ‘한강’ 도서관 측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있기 전인 지난 5~9일 닷새 동안 공공 도서관에서 한 작가의 책은 총 805건 대출됐지만, 10∼14일에는 1만1356건으로 1310.7%나 늘었다. 수상 전과 비교하면 14배에 달하는 수치이며, 분당 평균 3권꼴로 대출된 셈이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지난 11일에는 대출 1~10위까지 모두 한강 작가의 책이었다고 도서관은 밝혔다. 서점 베스트셀러 1위는 ‘소년이 온다’(창비)였지만, 도서관 대출 1순위는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널상을 수상해 한강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채식주의자’(창비)로 10~14일에 총 1382건이 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무력 진압과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다룬 ‘소년이 온다’의 대출 건수는 1178건으로 2위, 4·3 제주 사건을 다룬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는 1152건으로 뒤를 따랐다. 나이별로 대출 현황을 보면 40대(2629건), 50대(2195건), 30대(1895건) 순이었으며, 남성보다는 여성의 대출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전남, 경북, 강원, 전북에서 많이 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韓 문학작품 외국 러브콜도 빗발 이뿐만 아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외국 독자들이 한국 문학작품들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실제로 ‘한강 효과’로 지난 16일 시작돼 오는 20일까지 열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국문학 판권에 대한 문의가 예년보다 3~4배 늘어났다. 한강 작가의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펴내고 차기작까지 출간 예정인 출판사 문학동네에 따르면 예년에는 한국문학에 대해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문의가 많았지만, 올해 도서전에서는 영미권과 유럽 국가 출판사들의 판권 문의가 부쩍 늘어났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60여개 미팅 현장에서 한강 작가의 수상 축하 인사로 미팅을 시작한다”며 현지 분위기를 알렸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독일어판(번역 이기향)은 현재 예약 판매 중으로, 오는 12월 16일 아우프바우 출판사에서 출간되며, 미국 펭귄랜덤하우스 그룹은 이 작품의 영문판을 내년 1월 출간할 예정이다 한 작가의 작품 이외에도 조남주 작가의 신작 청소년 소설 ‘네가 되어 줄게’를 비롯해 은희경, 최은영, 백수린, 김언수, 서미애, 조해진, 이슬아 등 다른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도서전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영 문학동네 대표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한국 작가와 작품에 관한 관심을 높이는 데 마중물이 되고 있다”며 “한국 힐링 소설이 대세였던 해외시장에서 순수문학이 앞으로 더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전했다.
  • 창비·문학동네 새로운 문학상 얼굴되는 첫 번째 동화와 그림책

    창비·문학동네 새로운 문학상 얼굴되는 첫 번째 동화와 그림책

    ‘그림책상’에 이경아 ‘… 바다’‘초승달문학상’ 대상 ‘해든 분식’ 새로운 문학상의 ‘얼굴’이 되는 제1회 수상작들이 동시에 출간됐다. 제1회 창비그림책상 수상작(가작)인 이경아(42) 작가의 ‘아빠, 나의 바다’와 제1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작인 동지아(40) 작가의 ‘해든 분식’이다. 이경아 작가는 바다를 넘나드는 아빠 마도로스를 기다리는 아이의 이야기를 쪽빛 바다색과 함께 그림책으로 빚어냈다. 겨울바람도 닿지 않는 바다에 가느라 큰 가방에 여름옷만 잔뜩 챙기는 아빠, 바다 한가운데서도 모르는 길이 없는 아빠, 이불만큼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 아빠, 그러면서도 아이를 위한 작은 인형과 커다란 소라 껍데기와 돌을 챙기는 아빠…. 아이는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와 소라 껍데기에서 들리는 바닷소리를 통해 아빠가 닿은 먼바다를 상상한다. 특히 아이가 그리움에 멈추지 않고 아빠를 떠올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다부지게 이뤄 가는 과정까지 그려 냈다는 점은 이 동화를 더욱 반짝이게 한다.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와 김동수 그림책 작가는 심사평에서 “어린이가 어른의 세계를 관찰하면서 그것을 뛰어넘어 성장하는 모습을 나타냈다는 점이 새롭다”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자 어린이 주인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동지아 작가를 발굴한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은 1999년 시작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이 처음으로 저학년 동화만을 분리해 만든 공모전이다. ‘해든 분식’은 아홉 살 곱슬머리에 빨간 테 안경을 쓴 분식집 딸 강정인이 주인공이다. 강정인은 갑자기 닭강정으로 변하게 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난처한 상황에서도 상황 자체가 웃기니 ‘일단 웃기로’ 하는 낙천적이고 유쾌한 어린이다. 친구들을 생일 파티에 초대해 근사하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지만 내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 서로의 별명을 지어 주며 곁을 지켜 주는 단짝 친구들과의 우정, 앙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주인공을 챙기는 이성 친구 이야기까지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닭강정 소스처럼 잘 버무려져 있다. 분식집을 비울 수 없는 상황에서도 딸의 생일 파티를 멋지게 열어 주고 싶어 하고, 닭강정을 담아 둔 마지막 컵은 딸에게 주고 싶어 팔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서 사랑을 가득 느낄 수 있다. 심사평처럼 “세계에 대한 믿음과 안정감”을 주는 동화다. 그림책 ‘꽁꽁꽁 시리즈’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윤정주 작가의 그림이 동화와 함께 어우러져 읽는 재미를 더한다.
  • 3일간 53만부 팔려… 초판은 웃돈 붙어 30만원

    3일간 53만부 팔려… 초판은 웃돈 붙어 30만원

    지난 10일 밤(한국시간)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사흘 동안 온오프라인 대형 서점 두 곳에서만 50만부 넘는 한강(54) 작가의 책이 팔렸다. 한강의 작품이 계속 품절되면서 웃돈을 얹은 중고 거래까지 등장했다. 부친인 한승원 작가 저서까지 인기몰이 중이다. 인쇄소도 부족한 물량을 따라가느라 때아닌 잔업에 들어갔다. ●서점 오픈런… 부친 한승원 작품도 인기 13일 종로구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이 ‘오픈런’을 하기 위해 입구에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한강의 작품을 진열한 특별 매대에서는 채워 넣기 무섭게 책이 사라졌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한강 작가의 책들이 베스트셀러 1위부터 16위를 석권하면서 교보문고에선 10일 밤부터 이날 정오까지 26만부가 팔렸다. 노벨상 직전 기간(7~9일) 대비 910배 늘어난 수치다. ‘소년이 온다’(창비), ‘채식주의자’(창비),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순으로 판매량이 많았다. 또 다른 대형 서점인 예스24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일 밤부터 일요일 오후 2시까지 한강이 쓴 책은 27만부가 판매됐다. 교보문고와 예스24 두 곳에서만 사흘간 53만부가량 팔린 것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한강 작가의 수상 후 부친인 한승원 작가에 대한 관심까지 늘어나 같은 기준으로 지난 사흘간 110배 판매가 상승했다”고 밝혔다. 독립 서점에서도 한강의 책은 구경조차 어렵다.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주인은 “재고까지 모두 다 팔린 지 오래이고 한강 작가가 평소 언급한 다른 작가의 책들까지 싹 팔렸다”고 전했다.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후 지난 9월 한 달간의 판매량과 비교한 결과 ‘소년이 온다’는 3598%, ‘채식주의자’는 3960%, ‘작별하지 않는다’는 5502% 판매가 늘었다고 밝혔다. 특히 ‘소년이 온다’는 오후 8시 수상자 발표 이후 밤 12시까지 분당 18권씩 판매됐다. ●‘품귀’에 중고 상품 웃돈 거래 홍수 국내 최대 중고 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는 하루 만에 한강의 책 판매 글이 20건 가까이 올라왔다. 특히 ‘소년이 온다’ 양장본 초판은 ‘희귀본’이라는 설명과 함께 30만원에 올라왔다. 양장본의 원가는 1만 3000원이다. “비싼 값에 사겠다”며 먼저 가격을 제시하는 글도 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 초판은 각각 20만원, 40만원에 사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초판 1쇄부터 찍고 있는 경기 고양의 한영문화사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주문량을 감당하기 위해 주말인 13일에도 인쇄기를 가동 중이다. 지난 10일 출판사인 문학동네에서 들어온 주문량은 5만부였지만 수상 발표 다음날 저녁 15만부로 증쇄가 결정됐다. 송영천 한영제책사 차장은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인쇄기 6대를 계속 돌리고 있다”면서 “경사스러운 특수 상황에 종이 구하는 것도 전쟁이라 간신히 대형 국전지 총 100만장을 겨우 주문했다”고 말했다. 내지의 순서를 맞추던 장원진(48)씨는 “몸은 힘들지만, 내가 노벨문학상 작가의 책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 작품세계 실천하듯 회견 고사한 한강… 수상 연설에 세계가 집중

    작품세계 실천하듯 회견 고사한 한강… 수상 연설에 세계가 집중

    “전쟁 주검 실려나가는데 무슨 잔치”기자회견 사양, 서면 소감만 전해수락 연설문은 작가 문학세계 압축 佛 카뮈·日 오에 등 연설 오래 회자 한강(54)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지난 11일. 한강의 소설을 출간했던 출판사 창비와 문학동네는 “작가의 기자회견은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됐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러면서 기자회견을 대신한 작가의 다음과 같은 서면 소감을 전했다. “수상 소식을 알리는 연락을 처음 받고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자 천천히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루 동안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의 마음들이 전해져 온 것도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개인에게는 엄청난 영광이자 국가적 경사인데도 작가는 언론 앞에 나서지 않았다. 그가 전한 짤막한 소감만으로는 딱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85)이 같은 날 전남 장흥에 있는 작업실 ‘해산토굴’ 앞에서 한 기자회견을 보면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한 작가는 “(딸에게) 출판사와 함께 장소를 마련해 기자회견을 하라고 했는데 (딸이) 그렇게 해 보겠다고 하더니 아침에 생각이 바뀌었더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면서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더라”고 말했다. 폭력과 죽음이 도사린 세계에서 작가의 영광은 한줌 재와 같다는 의미다. 심지어 한강은 그런 폭력과 트라우마의 세계를 정면으로 직시한 작품을 쓴 소설가다. 그와 어울리는 결정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한 작가는 딸 한강에 대해 “부모를 뛰어넘은 자식”이라고도 찬사를 보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문은 시상식이 열리는 오는 12월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낭독될 예정이다.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문은 작가의 문학 세계를 압축하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글이다. 작가가 남긴 작품과 함께 시간이 지나도 끊임없이 회자하는 중요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예술과 작가의 역할을 강조했던 1957년 수상자 알베르 카뮈, 전후 일본인으로서 서구를 추종했던 정체성을 반성한 1994년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등의 연설문이 대표적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1964년 수상자로 지명됐지만 “노벨상이 서구에 치중돼 있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상은 받지 않았지만 수상한 것보다 더 유명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 한강의 힘, K문학 봄이 온다

    한강의 힘, K문학 봄이 온다

    한국어로 세계 보편성 획득… 언어 장벽 허문 번역 공도 커 바야흐로 ‘한강의 시간’이다. 지금껏 세계문학의 주변부로 존재했던 한국문학의 뿌리 깊은 열등감은 한강의 빛나는 성취로 일거에 해소됐다. 한강 이후 한국 문학사는 조금 더 세계적 보편의 시각에서 쓰일 전망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소설가 한강(54)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지금껏 한국 문학사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던 ‘노벨문학상 콤플렉스’를 완벽하게 지워 낸 역사적 쾌거다. 폭력의 트라우마 속에서 유려하고 도도하게 흐르는 그의 시(詩)적인 산문은 마침내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희구하던 경지에 당도했다. 한강에게는 여러 가지 ‘최초’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앞서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을 때도 그는 ‘아시아 작가 최초’였다. 이번 노벨문학상도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다. 세계 3대 문학상(스웨덴 노벨문학상·영국 부커상·프랑스 공쿠르상) 중 2개를 석권한 작가는 한강을 포함해 8명뿐이다. 문학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정점에 올라선 한강은 변두리 언어인 한국어로 쓰인 문학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문장으로, 온몸으로 증명했다. 한국의 ‘노벨문학상 콤플렉스’는 역사가 꽤 깊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물은 1913년 수상자로 ‘시성’(詩聖)으로도 불리는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다. 그러나 한국인의 열등감에 불을 지폈던 건 1968년 일본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의 수상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눈의 고장(雪國)이었다”는 첫 문장으로도 유명한 소설 ‘설국’을 쓴 가와바타의 문학은 동양적인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이후 한국 문학계는 ‘설국’을 둘러싸고 면밀한 비평을 이어 간다. 그러고는 “우리도 못 할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다. 이후 국내에서 시인 김지하(1941~2022)나 고은(91) 등의 수상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진 이유다. 정작 한강의 이름은 이 명단에 없었다. 전 세계 문학·출판계가 ‘깜짝 수상’이라는 반응을 내놨던 이유다. 그간 노벨문학상은 70대 이상 작가에게 돌아갔다. 여기에 비하면 한강은 아직 많이 젊은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카프카’로 불리는 찬쉐(71)나 일찌감치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무라카미 하루키(75) 등 쟁쟁했던 후보들을 제쳤다. 중국과 일본의 외신들은 다소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기꺼이 아시아 최초 여성 수상자를 향한 축하를 건넸다. 한국 문단 안에서 한강은 이른바 ‘아웃사이더’ 혹은 ‘은둔형 예술가’로 불린다. 작품활동 외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는 것을 꺼리기로 유명하다. 한 중견 문인은 13일 “문단 안에서도 (한강과) 친하게 지내는 문인은 극히 드문 걸로 안다”며 “오롯이 작품만으로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거의 끝까지 이뤄 낸 작가”라고 치켜세웠다. 한강의 성취는 한강의 힘으로만 이뤄진 건 아니다. 한국어로 된 텍스트를 영어를 비롯한 세계 각국 언어로 옮긴 번역가들의 공이 컸다. 소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을 영어로 옮긴 데버라 스미스를 비롯해 지난해 프랑스 메디치상을 받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불어로 옮긴 최경란과 피에르 비지우, 소설 ‘희랍어 시간’을 독일어로 옮긴 이기향과 카롤린 리터 등이 한강의 유려한 글이 최대한 손실 없이 세계인과 만날 수 있도록 고심했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뒤 2016년 ‘대산문화’에 쓴 글에서 “한강은 이 소설이 독자들을 자극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모색하게끔 만들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했다. 한강은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문화예술인 중 한 명이었다. 부커상 수상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축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조명한 소설 ‘소년이 온다’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번 수상을 두고서도 일각에서 정치적인 진영 논리의 언어로 폄훼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당분간 ‘한강 신드롬’은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과거 창비에서 ‘소년이 온다’를 책임편집한 출판사 핀드 김선영 대표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수상으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던 분들도 서점을 찾을 테고 그것으로 한동안 침체해 있던 한국문학 시장에 활기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 한강, 110글자 서면 소감…“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 감사”

    한강, 110글자 서면 소감…“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 감사”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54) 작가가 “놀랍고 감동했다”며 간략한 수상 소감을 밝혔다. 노벨문학상 수상 관련 기자회견을 열지 않기로 했다. 출판사 문학동네 관계자는 11일 저녁 한강이 쓴 110자 분량의 서면 수상 소감을 공개했다. 한강 작가는 “수상 소식을 알리는 연락을 처음 받고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자 천천히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다”며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하루 동안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의 마음들이 전해져온 것도 저를 놀라게 했다”면서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고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한 국내 기자회견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출간한 세 출판사인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는 작가 측과 노벨상 기념 국내 합동 기자회견 개최를 조율해왔으나 작가가 극구 고사해 최종적으로 회견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한강 작가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은 앞서 이날 자신의 집필실인 전남 장흥군 해산토굴 앞 정자에서 기자들을 만나 딸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면서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더라”고 밝힌 바 있다. 한강 작가는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해 정식으로 수상 소감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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