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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돌 맞은 민음사...재단장한 세계시인선으로 독자 영혼 살찌운다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다.”(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김경주 시인)  1973년 민음사가 첫선을 보인 세계시인선은 시인과 독자들의 영혼을 풍요롭게 살찌웠다. 세계시인선은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고 김현 평론가에게 건넨 제안에서 뿌리를 내렸다. 당시만 해도 해외 문학 책은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게 대부분이었다. 박 회장은 “번역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원문과 한글 번역을 나란히 배치해 제대로 번역한 시집을 내보자”고 김 평론가를 부추겼다. 그렇게 해서 1973년 12월 고은 시인이 번역한 이백과 두보의 작품집 ‘당시선’,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검은 고양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 4권이 탄생했다. 이 시집들은 1966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 옥탑방에서 움튼 민음사가 국내 대표 문학 출판사로 자라나는 양분이 됐다.  19일 창립 50년을 맞은 민음사가 일체의 기념행사 없이 세계시인선만을 새로 펴내기로 한 데는 이런 역사가 있다. 지난해 현암사의 70주년, 지난 2월 창비의 50주년 행사에 견주면 다소 초라하다. 민음사는 “지금의 민음사를 있게 만든 세계시인선 재단장을 통해 더욱 기본에 충실하고 또 한 번의 반 세기를 준비하는 출판사로 기반을 튼튼히 다지겠다”고 밝혔다.  새 시인선의 목표는 100권 출간이다. 1973년 시작 때 세운 계획이지만 당시에는 80권 완간에 그쳤고 1994년부터 2007년까지 다시 펴냈을 때도 63권에 그쳤기 때문이다. 내년에만 50권을 낼 계획이다. 이번에 출간된 1차분 15권 가운데 새로 펴낸 시집은 9권이다. 대표적 비극 정전인 ‘욥의 노래’, 라틴 문학의 고전인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 ‘소박함의 지혜’, 김수영의 ‘꽃잎’, 백석의 ‘사슴’,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의 노래’ 등이다. 소설가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찰스 부코스키, 극작가로만 알려진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집도 펴내며 그들 안의 시심(詩心)도 느낄 수 있게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강제 징용·원폭 피해 ‘증언’… 과거사 마주하는 이정표 됐으면

    강제 징용·원폭 피해 ‘증언’… 과거사 마주하는 이정표 됐으면

    “이 소설은 수면 위에 떠 있는 얼음덩어리일 뿐입니다. 독자들이 수면 아래 잠긴 죄악과 진실의 거대한 얼음을 마주하는 이정표가 되어 준다면 기쁘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게 지옥의 섬이었던 ‘군함도’. 일본 하시마섬에서의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폭의 실상을 소설로 옮기는 데 30여년을 매달렸던 한수산(70) 작가의 과업이 완성됐다. 지난해 3월부터 쓰고 자고 먹기만을 반복하며 다시 써냈다는 ‘군함도’(전2권·창비)다. 1988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이듬해 도쿄의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펴들면서 조선인 강제징용과 원폭 피해에 눈뜬다. 1990년부터 하시마섬, 나가사키를 10여 차례 넘게 찾아가 취재하고 자료를 끌어모아 2003년 장편 ‘까마귀’(전 5권)를 펴냈다. ‘까마귀’의 원고를 3분의2 이상 쳐내고 새로 써 3500매로 압축한 게 이번에 펴낸 ‘군함도’다. 작가는 2009년 일본에서 ‘까마귀’의 내용을 덜어낸 ‘군칸지마’(軍艦島)를 펴내며 한·일 동시 출간 계획을 세웠다. 그때 실현하지 못했던 한국어판 출간이 이제야 완성된 셈이다. “우리 집사람은 제 소설을 싫어합니다. 그랬던 사람이 ‘까마귀’를 완결했을 때 이틀에 걸쳐 읽고 나더니 울어요. 이런 역사를 써 줘서 고맙다고요. 그 사람이 연속극만 보면 조기 종영되거든요. 그때 제가 이 작품이 이렇게 오래 저를 붙잡을 거란 암담한 전도를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네요(웃음).” 일제강점기 군함도로 끌려간 징용공들은 강제 노역으로 신음하다 비밀리에 노동쟁의를 준비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발각돼 잔혹하게 진압당한다. 탈출한 이들은 나가사키 조선소로 스며들지만 원자폭탄 투하로 죽거나 겨우 살아남는다. 작품에서 작가는 70년 전 고난의 역사와 한·일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터져 나오는 현안을 두루 아울렀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소설을 이루는 뼈대가 됐다. “1990년 일본 하시마섬, 나가사키 취재를 하면서 만난 강제징용 피해자 서정우씨를 잊을 수가 없어요. ‘이 절벽에서 죽으려 했다’, ‘가장 큰 고통은 린치도 노동도 아니었다. 배고픔이었다’며 군함도에서의 참혹했던 시절을 들려주셨죠. 누가 열다섯 소년을 병들고 지친 70대의 남루한 노인으로 만들었을까요. 전차 정류장에 나와 제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 있는 그의 모습 때문에 27년간 이 작품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사할린 문제, 조선인 BC급 전범 문제, 피폭 2·3세 문제 등 과거사를 문학으로 새겨 넣는 ‘기억의 3부작’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에 초청받아 온 귄터 그라스에게 아는 분이 물었다고 해요. ‘일본은 왜 독일처럼 선명하게 과거를 청산하지 않느냐’고요. 그가 되물었죠. ‘한국에 일제강점기에 대한 소설이 몇 편, 영화가 몇 편 있느냐’고요. 고난의 역사를 제대로 그린 소설, 영화 하나가 없다는 것, 그게 우리들의 부끄러움입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칠십이라 뭘 약속드린다는 게 힘들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치유의 문제 등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각성을 위해,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의 적확한 자리매김을 위해 과거사를 그리는 작업은 이어질 겁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27년 매달린 소설 ‘군함도’ 마침표 찍은 한수산

    27년 매달린 소설 ‘군함도’ 마침표 찍은 한수산

     “이 소설은 수면 위에 떠 있는 얼음덩어리일 뿐입니다. 독자들이 수면 아래 잠긴 죄악과 진실의 거대한 얼음을 마주하는 이정표가 되어 준다면 기쁘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게 지옥의 섬이었던 ‘군함도’. 일본 하시마섬에서의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폭의 실상을 소설로 옮기는 데 30여년을 매달렸던 한수산(70) 작가의 과업이 완성됐다. 지난해 3월부터 쓰고 자고 먹기만을 반복하며 다시 써냈다는 ‘군함도’(창비)다.  1988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이듬해 도쿄의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펴들면서 조선인 강제징용과 원폭 피해에 눈뜬다. 1990년부터 하시마섬, 나가사키를 10여 차례 넘게 찾아가 취재하고 자료를 끌어모아 2003년 장편 ‘까마귀’(전 5권)를 펴냈다.  ‘까마귀’의 원고를 3분의2 이상 쳐내고 새로 써 3500매로 압축한 게 이번에 펴낸 ‘군함도’다. 작가는 2009년 일본에서 ‘까마귀’의 내용을 덜어낸 ‘군칸지마’(軍艦島)를 펴내며 한·일 동시 출간 계획을 세웠다. 그때 실현하지 못했던 한국어판 출간이 이제야 완성된 셈이다.  “우리 집사람은 제 소설을 싫어합니다. 그랬던 사람이 ‘까마귀’를 완결했을 때 이틀에 걸쳐 읽고 나더니 울어요. 이런 역사를 써 줘서 고맙다고요. 그 사람이 연속극만 보면 조기 종영되거든요. 그때 제가 이 작품이 이렇게 오래 저를 붙잡을 거란 암담한 전도를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네요(웃음).” 일제강점기 군함도로 끌려간 징용공들은 강제 노역으로 신음하다 비밀리에 노동쟁의를 준비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발각돼 잔혹하게 진압당한다. 탈출한 이들은 나가사키 조선소로 스며들지만 원자폭탄 투하로 죽거나 겨우 살아남는다. 작품에서 작가는 70년 전 고난의 역사와 한·일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터져 나오는 현안을 두루 아울렀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소설을 이루는 뼈대가 됐다.  “1990년 일본 하시마섬, 나가사키 취재를 하면서 만난 강제징용 피해자 서정우씨를 잊을 수가 없어요. ‘이 절벽에서 죽으려 했다’, ‘가장 큰 고통은 린치도 노동도 아니었다. 배고픔이었다’며 군함도에서의 참혹했던 시절을 들려주셨죠. 누가 열다섯 소년을 병들고 지친 70대의 남루한 노인으로 만들었을까요. 전차 정류장에 나와 제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 있는 그의 모습 때문에 27년간 이 작품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사할린 문제, 조선인 BC급 전범 문제, 피폭 2·3세 문제 등 과거사를 문학으로 새겨 넣는 ‘기억의 3부작’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에 초청받아 온 귄터 그라스에게 아는 분이 물었다고 해요. ‘일본은 왜 독일처럼 선명하게 과거를 청산하지 않느냐’고요. 그가 되물었죠. ‘한국에 일제강점기에 대한 소설이 몇 편, 영화가 몇 편 있느냐’고요. 고난의 역사를 제대로 그린 소설, 영화 하나가 없다는 것, 그게 우리들의 부끄러움입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칠십이라 뭘 약속드린다는 게 힘들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치유의 문제 등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각성을 위해,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의 적확한 자리매김을 위해 과거사를 그리는 작업은 이어질 겁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1분에 9.6권 팔린 ‘채식주의자’…새달 출간 소설 ‘흰’ 사인본 예약 완판

    1분에 9.6권 팔린 ‘채식주의자’…새달 출간 소설 ‘흰’ 사인본 예약 완판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수상 작가가 된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일부 서점에서는 책이 품절될 정도다. 곧 나올 신작에도 벌써부터 독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1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는 이날 오후 6시 기준으로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하루 동안에만 4500여부 팔려나갔다. 전날(200부)에 비해 판매량이 무려 22배 넘게 뛰었다. 오프라인 매장에 있던 500부가량의 재고는 오전 중에 모두 품절됐다. ‘소년이 온다’ 등 한강의 다른 작품도 관심을 받으면서 그의 저서 10여종이 5400여부가량 판매됐다. 인터넷 서점 예스24도 이날 오후 6시 기준으로 ‘채식주의자’가 6700부 팔렸다고 전했다. 전날(180권)에 비해 37배나 치솟은 판매량이다. 예스24는 “1분당 약 9.6권씩 팔린 셈이고, 최근 15년간 가장 빠르게 팔린 2012년 ‘안철수의 생각’의 1분당 9.4권을 근소하게 앞섰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도 ‘채식주의자’는 오후 6시 기준으로 3500부가량 팔렸다. 이들 주요 서점의 판매량을 합하면 ‘채식주의자’는 이날 하루에만 1만 4000부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다음달 1일 문학동네 임프린트 난다에서 출간할 소설 ‘흰’은 지난 12일 예약판매를 건지 사흘 만에 작가의 친필 사인본 2000부가 모두 동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흰색을 소재로 한 65개의 소설 같기도, 시 같기도 한 이야기다. 책은 국내 출간 전 이미 영어 번역 작업이 시작되는 등 이미 해외 수개국에서 번역, 출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영국에서는 ‘채식주의자’ 번역자인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을 맡았으며 내년 겨울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해 계간 창비 수록작이자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3부작 연작소설로 출간될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한강 맨부커상 수상] 인간의 폭력과 존엄 녹아든 아름다운 문장… 세계를 홀렸다

    [한강 맨부커상 수상] 인간의 폭력과 존엄 녹아든 아름다운 문장… 세계를 홀렸다

    “나는 왜 이토록 인간을 의심하며 바라보나. 인간을 껴안는다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건가. 제 소설 속엔 늘 이런 투쟁이 있어요. 결국 인간을 뚫고 나가는 게 제가 소설을 쓰는 가장 강력한 동기죠.”(한강 작가) ‘인간을 뚫고 나간 소설’에 세계도 홀렸다. 무참한 폭력을 저지르는 인간, 그에 대응해 존엄을 되찾으려는 인간은 한강 소설을 꿰뚫는 큰 화두다. 이를 치열하게 탐색해온 그의 작가정신은 ‘채식주의자’가 올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승자가 된 이유다. 공신은 또 있다.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한강의 시심(詩心) 어린 문장과 섬세한 감수성을 스타일리시한 문체와 정밀한 뉘앙스로 세공하듯 옮긴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다. 2007년 출간된 ‘채식주의자’(창비)는 스스로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고 믿으며 육식을 거부하고 죽음으로 다가가는 영혜의 이야기다. 세 화자의 관점으로 풀어 쓴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3개의 중편이 연작소설로 묶였다. 상처입은 인물의 고통에 식물적인 상상력을 결합시킨 소설은 기괴한 이미지, 아름다운 문체로 발표 당시에도 큰 주목을 받았다. 스미스의 번역으로 지난해 1월 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에서 ‘더 베지터리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작품은 지난 1월 미국 호가드 출판사에서도 발표됐다. 이후 영미권에서 잇단 호평을 받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 25개국에 판권이 팔려나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이고 한 문장 한 문장이 놀라운 경험”이라고 서평을 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나온 가장 에로틱한 소설 중 하나”라며 “이 치밀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책은 독자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며 꿈에까지 나올 수 있다”고 평했다. 미국 소설가 에이미어 맥브라이드는 “허술한 데가 한 군데도 눈에 띄지 않아 놀랍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는 맨부커 후보 발표부터 수상의 순간까지 줄곧 역자에게 공을 돌렸다. 스미스는 포르토벨로 편집자에게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한 20쪽짜리 샘플과 홍보 자료를 처음 건네 출간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6년 전 처음 한국어를 배웠다는 스미스의 정교한 번역은 한강의 문학성을 세계에 알린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런던대 소아스(SOAS)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밟은 그는 단어마다 일일이 사전을 뒤졌던 ‘번역 초보’에서 한국 문화와 언어의 뉘앙스를 간파한 ‘언어의 연금술사’가 됐다. BBC는 이날 별도 기사를 통해 스미스의 한국어 번역에 주목했다. 스미스는 앞으로 한강 작품 이외에도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 ‘올빼미의 없음’, ‘서울의 낮은 언덕’ 등을 번역해 미국 출판사를 통해 출간할 계획이다. 또 자신이 세운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아시아·아프리카 문학 전담)를 통해 황정은과 김연수 등의 작품도 영국에 소개할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한강 신작에 서점가 벌써부터 들썩

    한강 신작에 서점가 벌써부터 들썩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수상 작가가 된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물론 곧 나올 신작에도 벌써부터 독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17일 예스24에 따르면 이날 오전 수상 소식이 알려진 지 4시간 만에 ‘채식주의자’ 판매량이 2000부를 돌파하는 등 급상승세를 보였다. 이는 전일 대비 10배에 해당한다. ‘소년이 온다’, ‘여수의 사랑’ 등 한강 작가 전체 도서 판매량도 전일 대비 7배 증가했다.    다음 달 1일 문학동네 임프린트 난다에서 출간할 소설 ‘흰’은 지난 12일 예약판매를 건지 사흘 만에 작가의 친필 사인본 2000부가 모두 동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흰색을 소재로 한 65개의 소설 같기도, 시 같기도 한 이야기다. 한강 작가는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해서 쓴 책”이라며 “제가 요즘 고민하는 삶의 발굴, 빛. 더럽히려야 더럽힐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책은 국내 출간 전 이미 영어 번역 작업이 시작되는 등 이미 해외 수개국에서 번역, 출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영국에서는 ‘채식주의자’ 번역자인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을 맡았으며 내년 겨울 출간될 예정이다. 한강 작가는 ‘흰’에 실린 사진을 찍은 차미혜 작가와 함께 서울 성북동 한옥갤러리에서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가재 손수건으로 아기 배내옷을 만드는 등 한강이 직접 펼친 여러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이 전시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라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 계간 창비 여름호 수록작이자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3부작 연작소설로 출간될 예정이다. 40대 초반의 여성 화자 k에게 3년 전 세상을 떠난 첫 직장(잡지사)의 남자 선배가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역시 고인이 된 여자 동료를 함께 회상하는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가 기묘한 온기를 전해준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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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드 걸 굿 걸(수전 더글러스 지음, 이은경 옮김, 글항아리 펴냄) 대중문화 속에 진화된 성차별주의를 해부하며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강박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펼쳐낸다. 580쪽. 2만 3000원. 미친 교수의 헬수업(박성태 지음, 가디언 펴냄) 학생들로부터 2000여통이 넘는 손편지를 받은 화제의 강의를 담은 내용으로 학생들 스스로 특별함을 찾는 법칙들을 소개한다. 248쪽. 1만 3000원. 백년의 마라톤(마이클 필스버리 지음, 한정은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세계 유일의 패권국을 꿈꾸는 중국의 욕망에 대응해 미국이 중국의 실체를 보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을 담았다. 384쪽. 1만 7000원. 자본주의 길들이기: 자본과 자본 아닌 것의 역사(장문석 지음, 창비 펴냄) 이탈리아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요소들이 활용된 사례를 제시하면서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아닌 것의 공존을 전한다. 356쪽. 1만 8000원. 감정 테러리스트(레오 마르틴 지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펴냄) 전직 독일 비밀첩보 요원인 저자는 ‘감정 테러리스트’를 다혈질형, 자만심 과다형, 불평불만분자형 등으로 나누고 방어책을 설명한다. 292쪽. 1만 4000원. 병에서 나온 형(에밀리 샤즈랑 지음, 오렐리 귀으리 그림, 박선주 옮김, 책과콩나무 펴냄) 슈퍼에서 산 ‘형이 나오는 병’에서 갈망하던 형을 얻은 이폴리트. 하지만 형이 생기자 말썽도 함께 생긴다. 외동인 아이, 형제가 있는 아이가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그림책. 48쪽. 1만 2000원.
  • 세월호·송파 세 모녀… 이웃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詩語

    세월호·송파 세 모녀… 이웃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詩語

    ‘날마다 상처를 밀치고 올라오는 새살 같은’ 생의 순간순간이 시로 맺혔다. 웅숭깊은 시선으로 생명 있는 것들을 한 품에 어르는 이상국(70) 시인. 등단 40년에 이른 그가 펴낸 일곱 번째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창비) 얘기다. 천진하고 질박한 언어로 수놓인 시편에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며 대신 앓는 부처의 자비)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아시는지 모르지만 나무 이파리나 풀잎들이 원래는 햇빛을 잘 간수하기 위해 검은색이었지요. 그런데 온갖 풀벌레들의 몸이 초록색이니까 그들의 집이 되어주기 위해 저들도 제 몸을 파랗게 만든 것입니다. (중략) 겨울 가을 봄 여름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그러다가 털 없는 짐승이나 날개 가진 것들 혹은 하루살이나 나무들이 골고루 살라고 나중에 하늘이 제 몸을 갈라 준 것입니다.’(아시는지 모르지만) 이는 시인이 ‘어머니’와 ‘고향’에서 문학적 양분을 수혈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난 시인은 속초에서 자라고 살며 설악산 자락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설악산과 동해가 주는 비와 바람, 모든 자연의 혜택과 정서를 흠뻑 받으면서 자라왔으니 산의 동체대비 속에 같이 묻혀 있는 거죠. 백두대간 동쪽 특유의 독특한 정서가 저의 한 부분이고요. ‘달이 째지게 걸렸다’는 어머니의 말을 시로 만들기 위해 40여년을 애써 왔으니 어머니라는 모성에서 몇 발자국도 못 떠나왔다는 생각이 들지요(웃음).” ‘뿔을 적시며’ 이후 4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현실에 대한 비애를 유독 짙게 드러낸다. 인간의 존엄을 지켜 주지 못하는 사회에 던지는 목소리는 나직해서 더 아프다. ‘죽음도 죽음에 대하여 영문을 모르는데/바다가 뭘 알겠냐며 치맛자락에 코를 풀고//다시는 오지 말자고 어디 울 데가 없어/이 추운 팽목까지 왔겠냐며//찢어진 만장들은 실밥만 남아 서로 몸을 묶고는/파도에 뼈를 씻네//그래도 남은 슬픔은 나라도 의자도 없이/종일 서서 바다만 바라보네’(슬픔을 찾아서) ‘송파 어디선가 월세 살던 세 모녀가/공과금과 마지막 집세를 계산해놓고/한날한시에 세상을 버린 것도/다시는 볼 일이 없더라도/국가와 집주인에게 당당하고자 했던 것이다’(존엄에 대하여) 그래서 시인은 즐거움이 아닌 결핍, 그리움이 시쓰기의 동력이라고 말한다. ‘나에게는 즐거운 시가 없다/그래도 웃는다/모두 어디가 조금 모자라거나 불편한 것들뿐인데도/그런 시를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나도 딴사람처럼 웃는다’(나도 웃는다) “내 시편들은 대부분 어딘가 늘 모자라고 그리운 구석이 있어요. 하지만 내가 행복하다든가 흡족하다든가 세상에 그리울 게 없다든가 하면 시가 써지겠어요? 억지로 웃지만 그 웃음 띤 얼굴과 웃음 뒤의 얼굴은 다르겠죠.”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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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장난 자본주의에서 행복을 작당하는 법(유병선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사람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제활동을 뜻하는 ‘사회적 경제’의 기본 원리와 새로운 대안을 살펴본다. 332쪽. 1만 5000원. 내 몸속의 우주(롭 나이트·브렌던 불러 지음, 강병철 옮김, 문학동네 펴냄) 우리 몸속에 사는 100조개의 미생물이 인간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왜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탐구한 과학교양서. 184쪽. 1만 2800원. 괴짜 물리학(렛 얼레인 지음, 정훈직 옮김, 북라이프 펴냄) ‘슈퍼맨은 정말 펀치 한 방으로 사람을 우주로 날려버릴 수 있을까’와 같은 엉뚱한 질문에 대한 물리학적 답변. 388쪽. 1만 6800원. 신여성, 개념과 역사(김경일 지음, 푸른역사 펴냄) 1920년대 신여성의 출현은 한국사회가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겪은 커다란 변화 중 하나다. 이들을 세대와 이념 등에 따라 집중 조명했다. 336쪽. 2만원. 학생에게 임금을(구리하라 야스시 지음, 서영인 옮김, 서유재 펴냄) 왜 대학 등록금이 공짜여야 하는지부터 교육의 기회균등이 갖는 철학적 의미, 실현 가능성을 특유의 유머와 재기로 들려준다. 312쪽. 1만 6000원. 나는 자라요(김희경 지음, 염혜원 그림, 창비 펴냄) 단춧구멍을 끼우고 양말을 신는 사소한 순간에도, 동생 대신 혼나 우는 억울한 순간에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자란다.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잔잔한 수채 그림에 아름답게 담겼다. 44쪽. 1만 2000원.
  • ‘새 역사’ 앞에 선 ‘Mr. 역사’

    ‘새 역사’ 앞에 선 ‘Mr. 역사’

    학생·성인 역사 탐방 수업… ‘유관순 길’ 조성 등에도 심혈 “여기가 임진왜란 때 명나라와 왜(倭)나라가 우리를 빼놓고 협상했던 곳이에요.”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의 한 정자에서 특별한 역사 강의가 열렸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일일 교사로 나서 청파초등학교 5학년생 20명에게 정자인 ‘심원정’에 담긴 사연을 들려줬다. 심원정은 한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있는 유서 깊은 정자로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일본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전쟁을 멈추자는 취지의 강화회담을 벌인 곳이다.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은 당사국인 조선은 이 회담에서 배제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인데도 아이들은 할아버지 구청장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성 구청장은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6·25전쟁 당시 정전협정할 때 썼던 테이블도 있다. 우리 지역에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 많다”면서 “여러분도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해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용산구의 역사탐방 프로그램인 ‘나도 용산 역사문화 전문가’의 첫 수업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지역사를 정확히 알리려는 취지로 기획됐는데 전문 해설사가 아이들과 함께 지역의 주요 역사·문화유적지 10곳을 돌며 기원 등을 설명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올해 안에 지역 초·중·고교생 2000명을 대상으로 역사탐방 수업을 벌일 예정이다. 탐방코스는 ▲서울성곽길 ▲유관순 열사 추모비 및 이태원부군당 ▲옛 용산철도병원 ▲연복사탑중창비 ▲새남터성당 ▲용산신학교 및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심원정터 ▲효창공원 등이다. 성 구청장의 역사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2010년 구청장 취임 이후 지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여러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9월에는 유관순추모비를 건립하고 유관순길을 조성했다. 또 한국과 악연을 가진 베트남 퀴논시를 기념하는 테마거리를 이태원에 오는 10월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구는 이달부터 성인인 구민을 대상으로 용산의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는 ‘출발! 해설이 있는 용산문화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성장현 용산구청장, “용산구 전체를 역사박물관으로 만들겠다”

    “여기가 임진왜란 때 명나라와 왜(倭)나라가 우리를 빼놓고 협상했던 곳이에요.”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의 한 정자에서 특별한 역사 강의가 열렸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일일 교사로 나서 청파초등학교 5학년생 20명에게 정자인 ‘심원정’에 담긴 사연을 들려줬다. 심원정은 한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있는 유서깊은 정자로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일본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전쟁을 멈추자는 취지의 강화회담을 벌인 곳이다.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은 당사국인 조선은 이 회담에서 배제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인데도 아이들은 할아버지 구청장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성 구청장은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6·25전쟁 당시 정전협정할 때 썼던 테이블도 있다. 우리 지역에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 많다”면서 “여러분도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해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용산구의 역사탐방 프로그램인 ‘나도 용산 역사문화 전문가' 첫 수업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지역사를 정확히 알리려는 취지로 기획됐는데 전문 해설사가 아이들과 함께 지역의 주요 역사·문화유적지 10곳을 돌며 기원 등을 설명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올해 안에 지역 초·중·고교생 2000명을 대상으로 역사탐방 수업을 벌일 예정이다. 탐방코스는 서울성곽길, 유관순 열사 추모비 및 이태원부군당, 옛 용산철도병원, 연복사탑중창비, 새남터성당, 용산신학교 및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심원정터, 효창공원 등이다. 성 구청장의 역사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2010년 구청장 취임 이후 지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여러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9월에는 유관순추모비를 건립하고 유관순길을 조성했다. 또 한국과 악연을 가진 베트남 퀴논시를 기념하는 테마거리를 이태원에 오는 10월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구는 이달부터 성인인 구민을 대상으로 용산의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는 ‘출발! 해설이 있는 용산문화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노오력의 배신(조한혜정·엄기호 외 지음, 창비 펴냄) 저자들은 압축적 근대를 경험한 한국 사회가 빠르게 붕괴되는 현실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헬조선’과 ‘노오력’을 대표 키워드로 잡고 분석한다. 236쪽. 1만 3800원. 평화의 경제적 결과(존 메이너드 케인스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펴냄)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인 케인스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책. 파리평화회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관용에 바탕을 둔 평화가 필요한 이유를 조명한다. 272쪽. 1만 5000원. 직장인의 감정수업(이주희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21년을 대기업에서 버틴 저자가 후배 직장인들에게 원하는 직장 생활을 실현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 자세와 행동 방법을 조언한다. 260쪽.1만 3000원. 원마인드(래리 도시 지음, 이수영 옮김, 김영사 펴냄) 인간 의식을 아우르는 무한한 통합의 차원인 ‘원마인드’의 존재를 규명하며 여러 증거를 통해 의식을 깨우치는 길로 안내한다. 472쪽. 1만 8000원. 부동산 투자 100문 100답(박정수 지음, 평단 펴냄) 부동산 투자를 왕초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상세하게 풀어낸 부동산 실전 사례집이다. 320쪽. 1만 5000원. 노란 달이 뜰 거야(전주영 지음, 이야기꽃 펴냄) 아빠는 없지만 아빠의 목소리가 선연히 남아 있는 산동네 구석구석에 노랑나비가 날아든다.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을 떠나보낸 아이의 마음을 매만져 주는 그림책이다. 32쪽. 1만원.
  • 죽은 시인의 사회?… 스테디셀러 시집의 존재감

    죽은 시인의 사회?… 스테디셀러 시집의 존재감

    TV·SNS로 젊은 시인에 호응 “수요 꾸준 … 건강한 성장 상징” 책이 안 팔리고 시가 안 읽힌다는 자조가 일상인 시대다. 이런 시류에도 끊임없이 독자들의 호출을 받으며 굳건히 존재감을 곧추세우는 시집들이 있다. 출간된 지 많게는 수십년, 적게는 수년이 흘러도 매년 쇄를 거듭해 찍는 스테디셀러들이다. 기형도, 이성복, 황지우, 최승자, 정호승, 최영미, 도종환 시인 등 문단을 묵직하게 지켜 온 원로, 중견 시인들의 시집은 출간된 지 20~30년이 지났어도 매년 한두 차례 중쇄하는 건 기본이다. 출판사와 판매 추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시집은 1쇄를 500부~3000부가량 찍는다. 기형도 시인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 시인선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려 나간 시집이다. 1989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요절한 시인의 사후 2개월 뒤 출간된 시집은 매년 8000~9000부를 찍을 정도로 여전히 각광을 받으며 ‘기형도 현상’을 이어 가고 있다. 13일 현재까지 중쇄 횟수만 56쇄, 팔려 나간 부수는 28만 5000부에 이른다. 1980년 나온 이성복 시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도 매년 증쇄하는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다. ‘뒹구는 돌…’은 지난해 11월 50쇄를 찍었고 2개월 만인 지난 1월에 51쇄를 다시 찍었다. 이 책은 지금껏 6만 7000부가 판매됐다. 황지우 시인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9)는 33쇄(10만 6000부),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1981)은 44쇄(4만 6000부)를 찍었다. 창비 시인선에서는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가 51쇄를 찍어 52만부가, 정호승 시인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는 40쇄를 찍어 13만부가 팔려 나갔다. 최근에는 TV 방송,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팟캐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향유되고 입소문을 탄 젊은 시인의 시집들도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케이블 채널 tvN의 책 소개 프로그램 ‘비밀 독서단’에서 다뤄지며 폭발적인 증쇄에 들어간 박준 시인과 심보선 시인의 시집이 대표적인 예다. 2012년 출간된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는 지난해 9월 방송을 타면서 지난 1년간 무려 14차례(4만 6000부) 찍었다. 지금까지 6만부가 나가면서 2011년 시작된 문학동네 시인선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시집이 됐다. 심보선 시인의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2008)는 문지 시인선에서 최근 1년간 가장 많은 중쇄(7차례) 및 부수(1만 9000부)를 찍어 총 3만 5000부(24쇄)가 나갔다. ‘비밀 독서단’에서 다뤄진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에만 네 차례 증쇄할 정도로 인기였다. 3년 전 출간된 한강 작가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기존에도 꾸준히 찾는 독자들이 많았지만 최근 맨부커상 후보에 오르며 더 주목을 받는 사례다. 1만 6000부(9쇄)가 팔린 시집은 지난해 10월에 이어 지난 4일 3000부를 더 펴냈다. 이근혜 문지 편집장(문학 담당)은 “요즘 출판 환경에서는 독자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난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고 출간 직후에만 ‘반짝’ 팔리고 사라지는 책들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세월이 지난 시집을 꾸준히 찾는 독자들이 있고 이를 절판하지 않고 계속 펴내는 출판사들이 있다는 건 시장 일부에선 건강한 성장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짚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야기가 피어나는 정원…꿈이 자라나는 다락방

    이야기가 피어나는 정원…꿈이 자라나는 다락방

    “제가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그 사랑을 아이들에게 베풀어야죠. 저희 집을 우리 그림책도서관으로 만드는 이유예요. 이 도서관과 이야기 정원에 아이들이 빠지면 아무 의미가 없죠. 아이들이 나무 그늘 아래 둘러앉아 책을 읽고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풍경이 제겐 황홀할 만큼 아름답게 느껴지거든요.” ●우리집을 도서관으로… 받은 사랑 돌려주고파 산수유꽃이 먼저 꽃망울을 터뜨렸다. 제 차례라는 듯 진달래가 허겁지겁 뒤따랐다. 동화작가 채인선(54)의 충북 충주 양성면 음촌2리 시골집에 당도한 봄 소식들이다. “50대가 되면 농부가 되자”고 남편과 다짐했다는 그는 1년 반 전 충주에 터를 잡았다. 과수원을 하던 충주 외갓집에서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밤이면 고라니가 물을 먹고 가는 연못을 바라보고 꿩이 푸드득거리며 날아가는 산기슭에 기대 선 작가의 집. 이곳은 요즘 아이들에게 행복한 유년의 풍경을 만들어줄 공간으로 변신 중이다. 4평(13.2㎡) 남짓한 집 2층 다락방은 ‘한국 그림책도서관 1호’가 된다. 1000여평(3305.8㎡)에 이르는 밭은 사과·포도·체리 나무 100여 그루와 곳곳에 이야기 요소를 심은 ‘이야기 정원’이 된다. 오는 5월 5일 어린이날부터 왁자지껄한 개구쟁이 손님들을 받을 예정이다. 지난 4일 충주 시골집에서 만난 채 작가는 한창 ‘노가다’ 중이었다. “요즘은 오후 내내 ‘노가다’예요. 직접 짠 책장에 오일도 세 번이나 발라야 되지, 발코니에 페인트도 칠해야 되지. 정원 꽃밭 경계석도 제가 다 돌을 날라서 심은 거예요. 그렇게 남편 ‘시다바리’를 하고 저녁에 서재에 올라와 책 교정 좀 볼라치면 금방 졸리는 거야(웃음).” 1996년 창비 제1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에서 당선되며 등단해 지금껏 80여종의 어린이책을 펴낸 채 작가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동화작가 중 한 명이다. 그가 요즘 하루 5~6시간씩 집필이 아닌 노동에 매달리는 이유는 바로 아이들이다. 그간 자신의 책을 사랑해 준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뒹굴며 이야기 속으로 담뿍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집을 변신시키고 있다. 이 꿈은 작가가 되기도 전에 영글었다. 지금은 20대 후반 직장인이 된 두 딸의 어린 시절 책을 읽히다 보니 대부분 외국 작가 책이라는 각성이 그를 일깨웠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우리 책과 외국 책을 분리 진열해 보면 비대칭이 심하다는 걸 금세 깨닫게 돼요. 도서관 어린이책 서가에 가 보면 80%는 외국 작가의 그림책입니다. 우리 창작 그림책 한 권을 내려면 1000만원 정도가 들어요. 이건 외국 그림책 세 권 내는 비용이죠. 그러니 출판사들도 쉬운 길을 택하는 거예요. 인세도 국내 작가(통상 10%)가 외국 작가(5%)보다 비싸고 디자인 개발비도 많이 들고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시간도 투자해야 하니 종이값과 인세만 드는 외국 그림책을 더 많이 펴내는 거죠.” ●출판비 많이 드는 우리책, 서가에서 소외당해 이런 문제의식을 품고 있던 그는 2004년 ‘우리책사랑모임’에 이어 2010년 ‘한국그림책연구회’를 조직해 이끌며 우리 그림책을 알리고 연구하는 데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아이 교육 때문에 2000~2004년 머물던 뉴질랜드에서의 경험이 우리 책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교 도서관에 갔더니 1층은 자국 작가들이 쓰고 자국에서 출간된 책들로만 다 채웠더라구요. 거길 드나들다 보니 책으로만 구현된 뉴질랜드란 나라에 대해 실감하게 됐어요. 이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공유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확연히 느끼게 된 거죠. 그곳 사서에게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물어봤어요. ‘이렇게 따로 분류하지 않으면 미국, 영국, 호주 등 다른 나라와 문화권의 책들과 구분이 안 돼 사람들의 생각도 다 뒤섞인다’며 ‘한국은 고유 글자가 있으니 이런 걸 신경쓸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우리 그림책만 품은 도서관을 구상하게 됐지요.” ●국내 작가 그림책 1000여권 모아 서가에 빼곡 이때부터 그는 국내 작가가 쓴 그림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예술적 의미, 이야기의 재미, 새로운 기법 등으로 그림책의 고전으로 남을 만한 책들을 하나씩 사들인 게 1000여권이 됐다. 이 책들은 그의 다락방 도서관 서가에 빼곡히 꽂혀 있다. “이렇게 아이들을 위해 베푸는 게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혼자서 호의호식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저랑은 안 맞고요. 제가 여기에서 한국 그림책만으로 도서관을 꾸민다고 하면 ‘국수주의 아니냐’고 할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나라에 우리 그림책도서관이 하나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아이들이 태어나 가장 먼저 접하는 책이 그림책이잖아요. 아이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땅과 만나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고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 우리 그림책의 역할이 막중한 거죠.” 아이들이 그의 이야기 정원에서 짓까불고 재잘대려면 아직 한 달여가 남았다. 하지만 이미 작가의 머릿속에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풍경이 선연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빠들은 우리 남편과 일 좀 하고(웃음) 엄마들은 텃밭에서 상추 따서 가시고 아이들은 저와 노는 거죠. 한 시간쯤 같이 책 읽고 놀러 나가게 해야지. 풀어놓으면 뿔뿔이 흩어지겠죠. 아이들은 정원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곳곳에서 이야기를 만나게 될 거예요. 고라니, 다람쥐, 토끼, 꿩들과도 눈을 마주치겠죠. 나뭇잎, 열매로 다람쥐 김밥, 토끼 김밥도 함께 싸보고 나무에 새겨진 동화 캐릭터도 만져 보고 보물찾기도 하고요. 이렇게 자연과 몸으로 놀면서 우리 그림책과도 친해지면 행복한 아이, 감정이 풍부한 아이로 자라날 거라 믿어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세월호 2주기… 문화계 ‘기억과 희망’ 추모 행사 봇물

    세월호 2주기… 문화계 ‘기억과 희망’ 추모 행사 봇물

    “시간이 멈춰 버렸다는 거, 시간을 잃어 버렸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전 아직도 스무 살 같고 4월 16일에 있는 것 같고….”(세월호 희생학생 박성호의 누나 박예나 구술) “서로 막 다 먼저 올라가라고. 바닥에 디딜 데도 없고 올라가려면 잡을 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서로 어깨 밟으라고 하면서 올려주고….”(세월호 생존학생 단원고 2학년 반세윤 구술) 다시, 4월이다. 벌써 2년이 흘렀지만 그날 그 침몰의 기억은 생생하다. 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2주년을 맞아 다양한 시선을 기록한 책들이 출간되고 공연과 전시회가 열리는 등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환기하는 문화계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창비는 5일 세월호 기록집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출간했다. 참사 당시 생존한 학생 11명과 형제자매를 잃고 어린 나이에 유가족이 된 15명이 털어놓은 2년여 삶의 구술이자 속내를 모은 첫 육성 기록집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의 부모 13명을 인터뷰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후속작으로 웹툰으로도 제작됐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은 서울과 안산을 수십 차례 오가며 참사의 당사자인 10대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그린비)은 참사 이후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세월호의 사회적 치유를 모색하는 인문사회학자 14명의 글을 실었다. 세월호 참사는 그 자체로도 깊은 사회적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었지만 그 이후 전개된 양상은 가히 ‘사회 전체의 침몰’에 가까웠다. 이 책은 ‘국가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등의 물음에 응답한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힘)은 세월호가 당일 오전 8시 49분 급격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해 10시 30분 침몰할 때까지 101분 동안의 각종 기록을 1분 단위로 재현해 주목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제3자들의 시선에서 조망한 다큐멘터리 ‘업사이드 다운’도 개봉한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나쁜 나라’가 진실을 규명하려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사투에 동행했다면 이 작품은 권영국 인권변호사 등 16명의 서사적 증언이 줌인된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아버지 네 명의 육성과 눈물도 교차 편집됐다. 재미교포 출신 김동빈 감독이 연출했다. 오는 9일 오후 6시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4·16연대와 4·16가족협의회가 주최하는 2주기 추모 콘서트 ‘약속’이 열린다. 가수 한영애, 이승환, 밴드 부활, 뮤지컬 배우 배해선 등이 참여한다. 지난해 ‘다시, 봄’ 프로젝트 음반을 냈던 인디 뮤지션들을 비롯해 4·16가족합창단, 평화의 나무 합창단 등도 동참한다. 추모 뮤지컬 ‘나 여기 있어요’도 무대에 올려진다. ‘다시, 봄’ 프로젝트 팀은 10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고래야, 잠비나이 등 젊은 국악팀, 모리슨호텔 등 뮤지션유니온 소속 팀들과 함께 4시간짜리 추모 공연을 연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경기도 미술관은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 ‘사월의 동행’을 16일 개막해 6월 26일까지 이어간다. 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인 다음 기도하는 손의 모습을 촬영한 조소희의 사진 연작 ‘봉선화기도’를 비롯해 서용선, 안규철, 조숙진, 최정화, 강신대, 전명은, 전진경, 이윤엽 등 분야와 세대를 아우르는 작가 22팀의 100여점이 출품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숨은 지역 작가 찾아 나선 전북 문인 20명

    숨은 지역 작가 찾아 나선 전북 문인 20명

    ‘큰 어른’ 정양 시인의 ‘헛디디며… ’ 출간 중앙 집중화 문제는 문단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역 출판사는 시장 진입이 어려워 사라지기 일쑤고 지역 문인들은 작품을 내고 싶어도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전북 출신 문인 20명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문학의 다양성’, ‘지역 출판의 지속성’을 기치로 내건 출판사를 세운 이유다. 김용택·안도현·유강희 시인, 이병천 소설가 등이 500만원씩 1억원을 만들어 지난 1일 설립한 전북 전주의 모악출판사다. 모악은 첫 책으로 정양(오른쪽 74·우석대 명예교수) 시인의 새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아래)를 펴냈다. 손택수·박성우 시인과 함께 모악시인선 기획위원을 맡은 문태준 시인은 “지역 문학인들이 나서 출판사를 세워 잠재력 있는 작가를 발굴한다는 것 자체가 새롭고 특별한 시도”라며 “좋은 작품을 갖고 있지만 기존 출판사와 관계를 맺지 못해 책을 내지 못했던 문인들과 독자들을 가까이 이어 주는 책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모악시인선의 첫 주인공인 정양 시인은 전북 지역 문인들에겐 ‘큰 어른’ 같은 존재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한국작가회의의 후배 작가들이 마련한 ‘아름다운 작가상’(2002년), 창비가 제정한 백석문학상(2005년) 등을 수상했다. 이번 시집은 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정 시인은 4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요즘 후배들이 시 쓰는 거 보면 제가 굳이 시를 안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시란 게 참 그렇다. 어려운 시는 쓰기가 쉽고, 쉬운 시는 쓰기가 어렵다”고 소회를 밝혔다. “어이없고 황당한 역주행의 시절이 어서 마감되기를 빈다”는 시인의 말에서도 읽히듯 그의 시편들은 ‘못된 짓만 못된 짓만 풀어먹는 일들이/나날이 늘어가는 세상’(잃어버린 이름)에 대한 쓸쓸한 성찰이자 뼈아픈 일침이다. ‘사실 나는 이제껏 외눈으로 살지 않았나/핏발 선 눈을 안대로 가리고 거리에 나선다/남은 눈알에 헛힘이 쏠리고/발이 헛디뎌지고 손잡이가 헛짚인다/시력이 형편없어도 무슨 구실은 했던지/외눈으로 세상을 가늠하기가 만만찮다/핏발 선 눈을 끝내 가리고/헛디디며 헛짚으며 갈 데까지 가봐야겠다’(핏발 선 눈을 가리고) 이날 자리에 참석한 안도현 시인은 “작년 문학권력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국문학판 안에서도 자기반성이 있었다”며 “오로지 상업적인 목표만을 위해 출간하는 출판사 행태에 대한 반성,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시인도 “수호지에서 의로운 호걸들이 양산박에 모여들었듯 좋은 글쟁이들이 모악출판사에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모악은 시, 소설은 물론 인문서도 꾸준히 펴낼 계획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주의 어린이 책] 애들과 친해지려는 ‘무늬 애벌레’의 이상한 몸짓은

    [이주의 어린이 책] 애들과 친해지려는 ‘무늬 애벌레’의 이상한 몸짓은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김원아 지음/이주희 그림/창비/104쪽/7500원 애벌레가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하는 의태어는 ‘꿈틀꿈틀’, ‘꾸물꾸물’ 정도다. 웬지 이 미약한 존재는 의지도 생각도 없을 거란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들이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먹이를 먹거나 기어다니는 게 전부일 듯한 애벌레가 경이로운 성장담의 주인공이 됐다. 제2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초등 저학년 부문)인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에서다. ‘나’는 3학년 2반 교실에 놓인 관찰 상자에서 일곱 번째로 태어난 애벌레다. ‘나’는 먼저 태어난 형들 눈에는 독특한 캐릭터다. 형들의 목표는 하나다. 빨리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 하지만 ‘나’는 둘레둘레 주변을 살피기 바쁘다.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구름의 아름다움에 빠져드는가 하면, 먹어치워야 할 배춧잎엔 엉뚱하게도 세모, 네모, 별 등의 무늬를 새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얻은 별명이 ‘무늬 애벌레’. 호기심에 작은 생명체를 함부로 만지는 아이들을 피하기는커녕 친근함을 느끼기까지…. 형들로선 이해할 수 없는 ‘별종’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기행(?)은 안온할 것 같던 관찰 상자 속 애벌레들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하는 기지로 작용한다. 주변의 놀림과 위협에도 자신만의 개성을 우직하게 지키고 날개를 돋우는 ‘무늬 애벌레’의 성장기는 아이들의 마음의 호수에 오래 동심원을 일으킬 동화가 됐다. 배추흰나비의 한살이는 실제 초등학교 3학년 과학 수업에서 배우는 주제다. 현직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을 이야기로 녹여내 등단한 작가는 무늬 애벌레의 입을 빌려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같이 작은 애벌레들은 인간을 믿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 작은 생명도 소중히 아껴 줄 거라는 믿음 말이야. 하얀 나비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 줄래?”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정천구 지음, 산지니 펴냄) 한비자의 해석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현상을 살피고,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며 깊이 있는 비판과 통찰력을 보여준다. 256쪽. 1만 5000원. 사토 마나부, 학교 개혁을 말하다(사토 마나부 지음, 손우정·신지원 옮김, 에듀니티 펴냄) 배움의 공동체를 통해 세계 학교 개혁의 바람을 불러 일으킨 저자가 학교 개혁을 어떻게 할지와 학력의 문제를 통찰력 있게 다루고 있다. 204쪽. 1만 5000원. 부탄(단정석 지음, 김성철 사진, 두르가 펴냄) 국내 최초로 부탄의 국토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하면서 부탄의 문화와 역사를 총체적으로 담았다. 부분적인 여행서가 아니라 부탄에 대한 모은 정보를 담은 종합안내서다. 544쪽. 2만 8000원. 취업준비생을 위한 NCS 사용설명서(송하식 지음, 광문각 펴냄) 최근 대기업과 공공기관 공채에 적용되고 있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대한 정보와 활용 가이드를 상세하게 다룬 전문 서적이다. 316쪽. 2만원. 인문학 따라쓰기-명문으로 묻고 필사로 답하고(고정욱 엮음, 스크린영어사 펴냄) 고정욱 작가가 현대인의 외로움과 상처에 위안이 되는 동서양 인문학 고전 속 명문장들을 골라 따라 써보도록 한 필사책. 256쪽. 1만 4800원. 도둑왕 아모세(유현산 지음, 조승연 그림, 창비 펴냄) 3400년 전 이집트에서 도둑 소년 아모세가 사라진 보물을 찾는 신비한 모험을 촘촘하고 활기찬 서사로 직조한 이야기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초등 고학년 부문 대상작. 184쪽. 9800원.
  • 역사 속 그 판결, 가려진 민낯을 심판하다

    역사 속 그 판결, 가려진 민낯을 심판하다

    “역사를 왜곡하고 불의에 편들었던 역사 속의 재판을 다시 뜯어보고 재검토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법조인으로서 증언자로서 또 피고인으로서 불운한 시대를 목격했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50여년 동안 시국 사건과 양심수를 변호해 온 인권변호사이자 전 감사원장인 한승헌(82) 변호사가 여운형 암살사건부터 인혁당 등 유신 시대의 사법살인,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까지 역사적 재판들을 1인칭 시점으로 증언한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창비)를 22일 펴냈다. 한 변호사는 이번 책 출간이 자신의 소명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한 변호사의 책은 해방 이후 주요 정치재판에 대해 직접 체험한 내용을 토대로 한 역사 서술 방식을 취했다. 재판 현장에서 치밀한 논리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피고인의 죄목을 반박하며, 검사 측 증인을 몰아붙이는 변호사로서의 감각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조봉암, 김재규 등이 사법부에서 사형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마치 법정 풍경을 옆에서 보듯 생생하게 재현했다. 자신이 직접 참여한 재판의 경우 경고, 휴정, 항의소동 등으로 혼란에 빠지는 장면이나 검찰관이 누군가에게 쪽지를 받아보고 들락거리는 모습, 격정적인 논박이 오가는 법정 분위기를 책 속에서 되살려 냈다. 법정을 소재로 한국현대사를 그려낸 책의 의미는 각별하다. 한 변호사는 “독재권력의 입김이 작용하고 그 자체로 무서운 사법적 결과를 가져온 한국 현대사의 사법의 민낯을 제대로 알리고, 불행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 스스로가 군사정권에서 탄압의 표적이 돼 고문을 받고 두 번의 옥고를 치른 양심수이기도 하다. 사법부에 대한 문제의식은 현재진행형이다. 한 변호사는 “과거 사법부에 대한 외부 간섭이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사법부 밖의 정치지형과 집권 세력의 입장과 눈치, 이해관계가 여전히 사법부의 판단에 보이지 않게 작동하고 있다”면서 “요즘 사법부의 모습은 유신시대로 회귀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 변호사의 50년 법조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사법 피해자는 누구일까. 그는 민청학련과 인혁당의 연관성을 조작하기 위한 고문에 허위 자백을 하고 상고심 선고를 받은 지 18시간 만에 사형당한 여정남을 평생 기억해 왔다고 말한다. “사법부가 정의라고 판단해 목숨을 빼앗았던 그 사건은 법관이 압제자의 편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 압제자였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한국 문학 위상 10년 새 크게 올라 세계 시장서 통할 매력·가능성 충분

    한국 문학 위상 10년 새 크게 올라 세계 시장서 통할 매력·가능성 충분

    세계 최대 도서전인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는 ‘리트프롬’(litprom)이라는 산하 기관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아시아아프리카남미문학 진흥 위원회’. 1980년 세워진 비영리단체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독일 입장에서는 ‘제3세계 문학’인 이들 문학에 대한 정보를 축적·홍보하고 번역, 출간을 돕는다. 최근 리트프롬의 아니타 자파리(63) 대표가 한국을 찾았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초청으로 관심 있는 한국 작가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카페창비에서 만난 자파리 대표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전날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에 “마침 며칠 전 ‘채식주의자’를 읽었는데 이게 웬 우연인지 모르겠다. 나도 행복했다”며 담뿍 반가워했다. “2005년 한강 작가와 독일 여러 도시를 돌며 ‘채식주의자’ 낭독 투어를 열었어요. 그때 문학에 관심도 없던 제 친구들을 데려갔는데 이번에 제가 한국에 간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나 그때 한국 작가가 쓴, 여자가 식물로 변하는 이야기 아직도 기억해.’ 여성의 문제를 예술적으로 풀어 간 그런 얘기는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죠. 한강 작가의 소식을 듣고 그게 떠오르며 얼마나 반갑던지요.” 자파리 대표와 우리 문학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리트프롬에서 해당 문화권 여성 작가들에게 주는 문학상을 오정희 작가의 ‘새’가 수상하면서 처음 한국 소설을 접했다. 이후 우리나라가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초청된 2005년에는 30여명의 한국 작가를 데리고 독일 내 낭독 투어를 진행했다. 최근 영미권 출판계에서는 한강 작가가 화제를 모은 데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정유정의 ‘7년의 밤’이 독일 유력 주간지 차이트에서 ‘올해의 추리소설 톱 10’ 가운데 8위로 뽑히며 매력적인 서사로 인정받았다. 자파리 대표에겐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상황들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 문학을 펴내려는 출판사도 없었고 소형 출판사에서 냈다 한들 팔리지도 않았어요. 한국 문학은 전후 상황이라는 특수한 역사를 담고 있는 주제로만 알려져 독자들이 다가가기 쉽지 않았던 거죠. 좋은 책을 선별할 만큼 한국 문학을 잘 아는 번역가도 거의 없었고요.”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한국 문학요? 세계 출판 시장에서 통하기 위해 바꿀 것도 없습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 매력과 가능성이 충분하거든요. 소재도 현대사회의 공통된 고민과 맞물리고 한국 문학과 문화에 눈이 밝은 번역가들도 늘어났어요. 출판시장도 아시아 여러 나라 중에서 선진적이고요. 이 때문에 리트프롬에서 배포하는 도서 추천 리스트, 작가 소개 브로슈어 등을 보고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출간하겠다는 독일 출판사들도 많아졌죠.” 그가 이번에 성석제, 정유정, 윤성희, 황선미 등 여러 국내 작가들을 만난 것도 그 때문이다. “정유정 작가는 독일에서 성공적이라 할 만한 게 책을 낸 출판사에서 다른 한국 작품도 출간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어요. 성석제의 ‘위풍당당’은 올해 독일에서 출간될 예정이고요. 윤성희 작가는 흥미로운 작품을 쓰기 때문에 작가 교환 프로그램에 올 수 있는지 물어봤죠. 한국 문학을 다른 문화권에 알리려면 낭독 행사처럼 독자와 직접 만나 작품을 접하게 하는 게 제일 효과적이거든요.” 그래서 리트프롬은 주한독일문화원 등과 함께 연간 10~15명 규모의 양국 간 작가 교환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문학이 읽히지 않는다는 자조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자파리 대표는 문학의 미래를 낙관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역사, 문화를 교감하는 데 이야기의 힘만 한 게 있을까요. 결국 모든 문화의 기초이자 인류의 기본적인 욕구는 스토리텔링이니까요.” 글 사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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