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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처 극복하는 마음은 원래 우리들 안에 있었다”

    “상처 극복하는 마음은 원래 우리들 안에 있었다”

    상처 지닌 남녀의 이야기 ‘경애의 마음’ 지난 겨울 광화문광장서 힘과 위로 얻어한 번이라도 마음을 잃어 본 사람이라면 알 터다. 속절없는 사랑에, 사무치는 외로움에, 찢어질 듯한 아픔에 공허해진 마음을 채우는 건 또 다른 마음이라는 것을. 위로의 한마디, 따뜻한 눈빛과 손길이 차곡차곡 쌓였을 때 생채기 난 마음에 새 살이 차오른다.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한국 문단의 기대주 김금희(39) 작가의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창비)은 바로 우리가 주고받았던 그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다.최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사옥에서 만난 작가는 “서로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마음은 새롭게 생겨났다기보다 우리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마음이라는 것, 그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곁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 나도 모르게 그의 안위를 신경쓰는 순한 마음들 덕분에 우리의 삶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작가는 타인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이 ‘경애(敬愛)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두 남녀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 덕분에 ‘반도미싱’이라는 회사에서 어렵사리 팀장직을 단 ‘공상수’와 파업에 참여했다가 회사의 눈밖에 난 공상수의 유일한 팀원 ‘박경애’가 그들이다. 우연한 기회에 한 팀에 엮인 두 사람은 처음엔 삐걱거리지만 상대방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슬픔을 응시하면서 서로의 진심에 가닿는다. “처음엔 진한 연애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두 사람을 연애 관계로 두고 쓰다 보니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됐는데, 여러 방면에서 조력자로 설정하니 생동감 있게 흐르더라고요.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인식하지는 못해도 결국 서로의 곁에 조력자로 남는 이야기를 그리게 됐어요.” 회사에서 처음 알게 된 경애와 상수에겐 그들 자신도 모르는 연결 고리가 있다. 경애가 자신의 연애 고민을 털어놓는 페이스북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의 운영자인 ‘언니’가 상수라는 것과 두 사람 모두 고등학교 시절 인천에서 발생한 호프집 화재사건으로 가까운 친구를 잃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회사에서 겉돌며 ‘이중 생활’을 하는 상수와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애가 서로의 삶을 다독이는 과정을 가만한 문장으로 들여다본다.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보여 주는 건 참 어려운 일이죠. 그 마음을 끄집어냈을 때 상대가 이해하도록 하는 행위는 구도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고요. 저 역시 언제라도 문을 쾅 닫고 들어가서 혼자 있는 게 익숙한 사람이지만 최근에서야 힘들면 친구들을 만나 마음을 털어놓곤 하거든요. 현실의 어려움을 혼자 극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우리 곁엔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다시 어려움에 빠진다고 해도 서로 마음을 나눈다면 지금보다 더 수월한 상태가 될 거예요.” “모든 소설은 ‘우리 함께 살아보자’고 말하기 위해 쓰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는 지난 겨울 광화문광장에서 생각지 못한 힘을 얻었다고 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경험이 감동적이었어요. 사실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믿고 싶었지만 믿을 수 있는 순간이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그때의 경험이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제게 큰 힘이 됐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한 그 순간의 질감 덕분에요. 우리가 (촛불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 역시 우리 사회를 좀더 좋은 쪽으로 추동하는 마음들을 확인한 덕분이겠죠.”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6·12 북미 정상회담] 통일 다룬 책 상반기 판매량 작년의 8배…트럼프 ‘거래의 기술’ 베스트셀러 등극

    [6·12 북미 정상회담] 통일 다룬 책 상반기 판매량 작년의 8배…트럼프 ‘거래의 기술’ 베스트셀러 등극

    출간 종수 절반에도 판매 폭발 “올림픽·정상회담 이슈가 견인”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관련 도서들도 상종가를 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북한 관련 도서 판매량이 지난 3년간 판매량과 맞먹을 정도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관련 도서 판매량이 껑충 뛰었다.12일 온라인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0일까지 팔린 북한·통일 관련 도서는 모두 2만 9950권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8배나 증가한 수치다. 출간 종수는 46권으로 지난해(88권)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판매량은 지난 3년간 전체 판매량에 맞먹는다. 손민규 예스24 사회·정치 MD(담당자)는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참가에 이어 두 차례 이어진 남북 정상회담이 관련 도서 판매량을 대폭 견인했다”고 분석했다.특히 트럼프 대통령 관련 도서의 약진이 눈에 띈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이 화제가 되면서다. ‘거래의 기술’(살림)을 비롯해 ‘도널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한국경제신문사), ‘트럼프 시대 트럼프를 말하다’(서교출판사) 등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내건 책이 인기다. 예스24에 따르면 이 책들은 지난달 대비 무려 6.4배나 더 팔렸다. 특히 그의 자서전인 ‘거래의 기술’은 예스24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영풍문고 집계 결과 지난해 대비 판매량이 5배나 급증했다. 미국 NBA 선수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 위원장에게 선물했던 바로 그 책이다. 트럼프가 어떻게 사업을 운영하고 삶을 꾸려 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북한 관련 책 가운데에는 지난달 발간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3층 서기실의 암호’(기파랑)가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북한의 실상을 고발한 책은 3주 연속 예스24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평화학자이자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의 방북을 중재했던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의 ‘선을 넘어 생각한다’(부키)도 주목받는 책이다. 서울신문 강국진 기자가 ‘김정은과 트럼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한반도 비핵화는 실현 가능한가’ 등의 질문을 하고, 박 명예교수가 답을 제시했다. 영풍문고에 따르면 책은 지난달 대비 판매량을 2배 이상 넘기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이 밖에 탈북자 주승현씨의 자전적 에세이 ‘조난자들’(생각의힘)과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의 ‘70년의 대화’(창비) 등의 신간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쓴 ‘통일을 보는 눈’, 개성공단에서 근무한 남측 주재원들의 이야기를 엮은 ‘개성공단 사람들’ 등의 옛 책들도 다시 판매 순위권에 올랐다. 도서관에서도 북한·통일 관련 책의 대출이 증가 추세다. 도서관 대출 정보 플랫폼인 ‘도서관 정보나루’가 2013년부터 올해 4월까지 3627만여건의 대출 추이를 분석한 결과 ‘새로운 100년’, ‘노무현 김정일 246분’, ‘서해전쟁’, ‘개성공단 사람들’, ‘북한 현대사’가 상위권에 올랐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지금까지 북한 관련 도서가 워낙 적어 일부 눈에 띄는 책과 과거 출간된 책들까지 독자들이 찾아보는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이 좋은 결과를 낸다면 앞으로 관련 도서 판매량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시민 직접 참여 없이 통일은 어렵다”

    “시민 직접 참여 없이 통일은 어렵다”

    “남북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당신의 분단체제론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럴 때마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분단체제가 다시 굳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답했다. 판문점 선언을 비롯해 최근 정황을 돌아보니, 내 의견이 맞았던 것 같다.”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창비)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들어 나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너스레로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그가 주장했던 통일 담론인 ‘분단체제론’이 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설명한 것이다. 그는 반민주적인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남북 어느 쪽에서도 온전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분단체제가 허물어질 것이라 진단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이후 보수 정권이 들어서고 미국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남북 관계가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는 이번 신간을 통해 분단체제론에 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재확인했다. 책은 창비 출판사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반도 정세를 진단하고자 마련한 ‘창비담론아카데미’에서 7차례에 걸쳐 진행한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의 토론 내용을 담았다. 교사, 문인, 연구자, 시민운동가, 출판사 편집자 등 30명이 백 명예교수의 글과 저서를 읽은 뒤 첫째, 셋째, 다섯째 주에 모여 토론했다. 둘째, 넷째, 여섯째 주에는 백 명예교수가 참여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함께 토론했다. 이어 마지막 일곱째 주에 종합토론을 진행해 완성했다. 당시는 남북 관계가 상당히 악화됐을 무렵이었다. 이 탓에 책엔 남북 관계를 비관적으로 보는 내용이 다수 실렸다. 백 교수는 그럼에도 촛불시민혁명을 내세워 “희망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의 통일 방안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시했다. 중도주의는 ‘중도가 아닌 것들을 하나씩 깨나가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는 “분단체제에 무관심하거나 전쟁에만 의존하는 통일 방식, 남한이나 북한만의 변혁을 요구하는 방식, 또 평화주의 생태주의가 결여된 방식 등을 깨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국의 야합이 깨지면서 전쟁이 발발한 예멘이나 국민당 정부와 중국 정부가 통일을 주도하다 관계가 틀어져 버린 대만의 사례를 돌아보라. 시민들이 참여하지만 통일은 어렵다. 시민들이 촛불혁명에서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이어질 남북 교류와 협력, 재통합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정부를 채찍질하거나 필요하면 직접 참여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동아시아나 국제사회와의 연대 등도 꾀해야 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주의 어린이 책] 악어·오랑우탄 지나 드디어 할머니 품에

    [이주의 어린이 책] 악어·오랑우탄 지나 드디어 할머니 품에

    오후 3시 무렵 기차역 승강장. 빨간 티셔츠를 입은 한 아이가 2호차에 올라탄다. 곰돌이 가방을 꼭 움켜쥔 채 앉아 있는 소년 앞에 나타난 늑대 차장은 승차권을 보더니 오른쪽을 가리킨다. 아무래도 아이가 잘못 앉은 모양이다. 홀로 떠나는 여행에 잔뜩 긴장한 아이는 다른 객차로 향하는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소년을 반기는 건 금목걸이에 금팔찌를 찬 덩치 큰 오랑우탄. 무서워서 황급히 다음 객차로 넘어왔지만 산 넘어 산이다. 악어가 헤어치는 늪을 지나니 커다란 상어가 기다리는 물속이다. 잠수복을 입은 낯선 사람까지 아이의 뒤를 쫓는다. 걸음을 재촉하던 아이는 끝내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소년을 잡아 삼킬 듯 따라오던 악어와 상어, 오랑우탄, 잠수부, 생쥐는 왜인지 소년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 12호차에 다다라서야 안도하는 소년. 떠나온 지 4시간을 넘긴 오후 7시 20분쯤. 드디어 소년의 험난했던 여행은 끝이 났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할머니를 마주하니 웃음이 절로 번진다. 신예 작가 한아름이 지은 첫 창작 그림책 ‘이상한 기차’는 부모님 없이 혼자 여행을 떠난 아이가 느낀 복잡한 감정을 풀어냈다. 2호차에서 12호차까지 자신의 자리를 찾아 달리는 동안 아이는 극도의 불안감을 마주했을 터다. 엄마나 아빠에게 투정을 부리지도 못한 채 낯선 사람들을 피하는 동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그래도 기나긴 모험 끝에 마주한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과 할머니의 얼굴을 본 순간은 짜릿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아이의 다채로운 심리 변화를 글 없이 그림만으로 구현해 냈다. 바람에 흔낱리는 커튼,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의 변화, 등장 인물들의 역동적인 동작은 기차 안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탈북민들의 안정적인 정착이 바로 통일의 작은 시험대”

    “탈북민들의 안정적인 정착이 바로 통일의 작은 시험대”

    “탈북민들이 취업해 잘 정착하는 것이야 말로 통일의 작은 시험대 입니다.”그간 격하게 대립했던 남북이 지난달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탈북 청년들의 역할 찾기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수가 3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거나 현재 재학중인 청년들은 누구보다 남북 통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고립과 폐쇄로 일관했던 북한이 최근 남북 화해 무드에 편승해 핵포기와 개혁·개방을 맞바꿀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는 상황이다. 때문에 탈북청년들은 통일이후 자유시장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를 선도할 사명감에 고무돼 있는 모습이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창비서교빌딩에서는 탈북 청년 단체 ‘위드유’(with-U)가 주최한 제2회 with-U 통일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연사로 참가한 고경빈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 와있는 탈북민들이 우리사회에 잘 정착하는 일이 핵심적인 것”이라며 “탈북 청년들의 정착을 위해 정부와 기업, 사회 모두가 나서서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고 이사장은 또 과거 동서독이 통일될 때도 동독 주민들의 생활 안정에 서독 정부가 적극 나섰던 것을 거론 하며 “탈북민들이 취업해 잘 정착하는 것이야 말로 통일의 작은 시험대이다”라고 주장했다. 탈북 청년들의 사회적 역할과 통일이후 남북 사회 통합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 청년 단체 ‘위드유’의 활동은 지금까지 안팎의 주목을 받아 왔다.2011년 탈북민 출신 대학 졸업생 8명이 모여 결성한 ‘위드유’는 그 해 3월 발대식을 갖고 통일에 대한 이슈와 동향인들의 친목을 다지는 모임을 가져 왔다. 북한 출신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스스로 바꿔보자는 목표로 활동해온 이들은 ‘말보다는 행동’이란 생각으로 2014년 8월 가수 이승철과 함께 ‘독도음악회’를 개최했다. 또 2015년에는 좌·우 이념 갈등을 넘어 균형 있는 역사관을 배우려는 취지로 직접 마련한 한국 현대사 강좌를 개최했다. 강좌에서는 보수·진보 인사가 고르게 강사진으로 참여해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의 현대사까지 우리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해 폭 넓은 시각을 보여준 바 있다. 또 그해 북한의 DMZ 목함지뢰 도발로 부상을 입은 당시 하재헌 하사에게 바자회를 통해 마련한 500만원을 위문금으로 전달해 감동을 주기도 했다.2016년 7월에는 독일을 방문해 베를린 장벽에서 ‘오늘의 베를린에서 내일의 평양을 본다’ 주제로 통일 기원 합창을 진행한 바 있다. 박영철 위드유 대표는 2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다가올 통일시대에서는 탈북민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할 것”이라며 “위드유가 플랫홈이 되어 탈북청년들이 남북사회 통합의 가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with-U 통일포럼은 남북정상회담 전날인 지난 4월 26일 첫회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포럼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 포럼은 하나금융그룹에서 후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문맹(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로 국내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헝가리 출신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1935~2011)의 자전적 소설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여파를 피해 스위스로 이주한 작가가 모국어를 버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던 프랑스어를 뒤늦게 배워 작품 활동을 했던 기억을 풀어냈다. 128쪽. 1만 1000원.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불안 위에서 서핑하기(이범·하지현 지음, 창비 펴냄) 각계각층 전문가가 청춘들의 대학·취업 고민에 대한 전략과 대안을 전하는 ‘나의 대학 사용법’ 시리즈 책. 교육 평론가 이범은 최근 노동시장의 변화인 ‘탈스펙’과 ‘노동시장의 이중화’에 대한 대처 방법을,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은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 가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마음의 태도를 설명한다. 각 권 148·204쪽. 각 권 1만 1000원.통행금지(박상률 지음, 서해문집 펴냄) 국내 청소년문학계 대표 작가인 저자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신작 소설. 군인들이 쏜 총에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 어지러운 시국 속에서 광주시 외곽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화목한 광민이네 가족의 눈을 통해 당시 광주의 풍경을 그려냈다. 128쪽. 9000원.뉴욕은 교열 중(메리 노리스 지음, 김영준 옮김, 마음산책 펴냄) 교정·교열·편집이 까다롭기로 정평 난 미국 주간 잡지 ‘뉴요커’의 책임 교열자인 메리 노리스가 40여년간 일하며 작가·동료와 있었던 에피소드와 각종 문장부호들에 담긴 의미, 비속어에 대한 생각, 영어 대명사와 젠더 문제, 연필에 대한 애정 등을 소개한다. 280쪽. 1만 5000원.성서 그리고 사람들(장 피에르 이즈부츠 지음, 이상원 옮김, 황소자리 펴냄) 그리스도교 경전인 동시에 매혹적인 이야기책이기도 한 성서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시대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성경 속 이야기를 인류학·고고학·지리학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성서 관련 예술품과 유물 사진을 곁들였다. 380쪽. 6만 8000원.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김기봉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역사학자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로 대변되는 ‘어제의 역사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21세기에 걸맞은 역사학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저자는 ‘내일의 역사학’을 위해 일제 식민사학의 유산인 한국사·동양사·서양사 체제를 청산하고 민족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글로벌 한국사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12쪽. 1만 5000원.
  • 詩요일에 만난 이별과 아버지

    詩요일에 만난 이별과 아버지

    시인 55명 이별詩 모은 시선집 ‘아버지’ 주제 엮은 산문집 출간출판사 창비가 운영하는 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인 ‘시요일’이 1주년을 맞아 시요일 운영진들이 시선집과 시 산문집을 선보였다. 지난해 4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이용자가 21만명을 넘어선 시요일은 최근 아이돌그룹 워너원의 강다니엘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추천하는 글을 올리면서 이틀간 1만 5000여회 다운로드되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 시요일 기획팀은 성원에 힘입어 그간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키워드인 ‘사랑’과 ‘가족’을 테마로 한 시들을 엮었다.시선집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는 백석, 최승자, 기형도, 이제니, 박준, 자크 프레베르 등 시인 55인의 이별 시를 한데 모았다. 사랑의 시작이 아닌 사랑이 끝난 자리를 더듬어 보는 시들만 모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별 직후 마주하는 쓸쓸한 감정의 흐름을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벽 뒤에 살았습니다’, ‘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그리운 차마 그리운’이라는 제목을 달아 4부로 구성했다. 기획위원으로 참여하는 박준 시인은 “우리들의 사랑이 모두 다른 모양이었던 것처럼 사랑의 끝자리도 모두 다르다”면서 “지나가거나 혹은 머물러도 좋을 사랑의 끝자리에 함께하면 좋을 시들”이라고 설명했다. 신용목·안희연 시인이 엮고 쓴 시 산문집 ‘당신은 우는 것 같다’는 한번쯤 아버지를 미워했거나 아버지와 서먹한 관계를 경험한 이들에게 건네는 시와 산문이 실렸다. 특히 가정의 달인 5월, 곁에 있지만 늘 잊고 마는 부모님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책이다. 두 시인은 ‘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스물일곱과 만났다’는 제목 아래 각각 20편의 시를 엮고 각 시 뒤편에 시인의 아버지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산문을 덧붙였다. 박신규 시요일 기획위원장은 “사랑과 가족이라는 큰 주제 아래 이별과 아버지라는 뜻밖의 소재에 집중한 것은 보통의 시집과는 다른 다양한 시도”라면서 “이별 후 처음에 자포자기했다가 나중에 서서히 깨닫게 되는 감정들이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백지연의 생각의 창] 더 멀리 걷는 꿈

    [백지연의 생각의 창] 더 멀리 걷는 꿈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러시아 교민 가족들이 들려준 학교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남았다. 러시아 학교 일과 중에는 ‘산책시간’이 있어 학생들이 그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배려한다고 한다. 학생들은 그 시간에 산책을 포함해 운동이든지 공부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산책할 수 있다니.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잠시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 과외까지 병행하는 대다수의 한국 학생들 입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나 역시 돌아보니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한 후로는 함께 산책하는 일은 정말 까마득한 기억이 됐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 가까운 산과 넓은 공원이 있는 지금의 동네로 이사 왔다. 가장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은 여러 가지 길로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과 하루하루 미묘하게 다른 공기를 쐬는 일이 좋아서 걷고, 달리기도 하고, 뒤늦게 자전거 타기도 시작했다. 유치원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도 얼마나 바깥 활동을 많이 하는 곳인가였다. 아이가 옷에 흙이 잔뜩 묻어 돌아와도, 때로는 물장난으로 흠뻑 젖어 돌아와도 마음이 편했던 시절이었다.작가이자 활동가인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반비ㆍ2017)에서 마음을 가장 잘 돌아보는 길은 ‘걷는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이 책은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로서 ‘걷기’를 주목한다. 저자는 걷기의 역사가 ‘생각의 역사’를 구체화하는 일임을 다양한 문화적 고찰을 통해 입증해 보이고 있다. 그에 따르면 걷기는 ‘그 자체가 수단이자 목표인 행위’다. 걷기는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 예를 들면 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행위다. 우리는 걸으면서 ‘사유와 육체 사이의 풍부한 잠재적 관련성, 어떤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상상과 연결되는 방식’을 체감할 수 있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에 가까운 보행, 몸을 움직임으로써 만드는 사유의 시간은 어른뿐만 아니라 경쟁과 속도 체제를 사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다. 어릴 때 자연스럽게 추구할 수 있었던 산책의 시간은 어느 순간 등을 구부정하게 숙이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시험과 경쟁에 최선을 다하기를 요구하는 학습 환경에서 아이들은 뭐든지 열심히 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해석하고 통찰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을 달달 외우고 수많은 유형의 문제를 풀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이주민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수자 문제를 진솔하게 서술한 이항규의 ‘후아유’(창비ㆍ2018)는 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식 교육의 힘과 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는 한국 학생들의 성실함이 좋은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하라고 시키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이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능력에 맞게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잘 도와주는지”에 대한 고민은 어른들이 답하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멀리 나아가는 꿈을 꾸는 탐색의 시간과 일상의 기쁨을 누리며 충실하게 사는 일은 얽혀 있다. 진은영의 시가 간절하게 일러주는 것처럼 ‘멀리 있으니까’ 좋은 그 무엇들을 꿈꿀 수 있어야 가까이 있는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다. “홍대 앞보다 마레 지구가 좋았다/내 동생 희영이보다 앨리스가 좋았다/철수보다 폴이 좋았다/국어사전보다 세계대백과가 좋다/아가씨들의 향수보다 당나라 벼루에 갈린 먹 냄새가 좋다/과학자의 천왕성보다 시인들의 달이 좋다//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김 뿌린 센베이 과자보다 노란 마카롱이 좋았다/더 멀리 있으니까/가족에게서, 어린 날 저녁 매질에서//엘뤼아르보다 박노해가 좋았다/더 멀리 있으니까/나의 상처들에서//연필보다 망치가 좋다, 지우개보다 십자나사못/성경보다 불경이 좋다/소녀들이 노인보다 좋다//더 멀리 있으니까//나의 책상에서/분노에게서/나에게서//너의 노래가 좋았다/멀리 있으니까//기쁨에서, 침묵에서, 노래에게서//혁명이, 철학이 좋았다/멀리 있으니까//집에서, 깃털 구름에게서, 심장 속 검은 돌에게서”(진은영, ‘그 머나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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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김정희(유홍준 지음, 창비 펴냄) 추사 김정희(1786~1856)를 30여년간 연구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재조명한 추사의 일대기. 탄생부터 만년까지 까칠한 천재가 위대한 예술가가 된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그림 ‘세한도’와 글씨 ‘침계’ 등 280여점의 컬러 도판이 추사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600쪽. 2만 8000원.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얀 루프 오헤른 지음, 최재인 옮김, 삼천리 펴냄) 1942년 일본군이 네덜란드 식민지 인도네시아를 침공했을 때 일본군으로부터 성학대를 받은 사실을 증언한 네덜란드 여성 얀 루프 오헤른의 회고록. 평화와 여성 인권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가 지난 50년간 가슴속에 담아둔 고통스러운 기억을 털어놓는다. 308쪽. 1만 7000원.요코 씨의 말 1~2권(사노 요코 지음, 기타무라 유카 그림, 김수현 옮김, 민음사 펴냄) 가식 없는 솔직담백한 에세이로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일본 작가 사노 요코가 생전에 발표한 작품 중 큰 공감을 얻었던 글을 엄선해 기타무라 유카가 그림을 붙였다. 노년의 일상, 소박한 기쁨, 잃어버린 것에 대한 쓸쓸함 등 가벼운 소재이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는 글들이 묶였다. 각 권 180쪽. 각 권 1만 4000원.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이유진 지음, 메디치 펴냄) 연세대 중국연구원의 전문 연구원인 저자가 천년 고도 시안, ‘삼국지연의’ 낙양으로 잘 알려진 뤄양, 송나라의 카이펑, 중국 시인 소동파의 고장 항저우, 근현대사의 비극이 서린 난징, 중국의 수도 베이징 등 중국 역사의 심장부를 이룬 여섯 도읍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524쪽. 1만 8000원.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이수희 지음, 부키 펴냄) ‘아이 없는 삶’을 비주류 혹은 비정상으로 분류하는 한국의 가족주의 사회에서 아이 없이 사는 여성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다양한 여성들의 인터뷰를 통해 가정과 사회에서 직면하는 일에 당당하게 대처하는 법도 일러준다. 264쪽. 1만 3800원.공감의 언어(정용실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명사 인터뷰와 책 프로그램 진행자로 이름을 알린 26년차 아나운서 정용실이 공감을 끌어내는 대화와 소통의 가치를 설명한다. 저자는 진정한 호기심으로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감정을 살피는 훈련을 해야 유연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44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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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하지 말고 달려라-초고속! 참근교대(도바시 아키히로 지음,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펴냄)일본 에도시대 막부들이 다이묘(지방영주)들을 통제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에도와 영지를 오가도록 강제한 일종의 인질제도를 일컫는 ‘참근교대’를 둘러싼 일화를 그린 소설. 참근을 마치고 돌아온 작은 지방의 영주 마사아쓰에게 5일 만에 다시 참근하라는 막부의 명령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388쪽. 1만 4000원.나.36.이승엽(이승엽 지음, 김영사 펴냄)인생에 홈런 한 방이 필요한 이들에게 건네는 한국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라이언킹’ 이승엽의 이야기.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숨은 노력과 고통, 이승엽을 만든 태도와 사람, 두려움과 고난을 이겨 온 시간을 담았다. 300쪽. 1만 5000원. 애주가의 대모험(제프 시올레티 지음, 정영은 옮김, 더숲 펴냄)술을 통해 세상을 탐험해 나가는 음주 모험가인 저자가 1년간의 음주 여행을 통해 세계사·문화사·지리학을 넘나들며 술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이 담긴 ‘음주 인문학’을 탄생시켰다. 496쪽. 1만 8000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하재영 지음, 창비 펴냄)소설가이자 동물단체 활동가인 저자가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을 추적하고 개산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한국 개산업의 실태를 고발한 르포. 316쪽. 1만 5000원. 웰빙·웰다잉(박명윤 지음, 라이크출판사 펴냄)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최대 욕망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2010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건강 칼럼을 게재해 온 저자가 100세 시대를 맞아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데 도움이 되는 칼럼들을 담았다. 366쪽. 1만 8000원. 징검다리꽃(성민선 지음, SUN 펴냄)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지낸 저자가 정년퇴직 후 새롭게 배우는 자세로 수필을 쓰기 시작해 46편의 이야기가 담긴 첫 번째 수필집을 펴냈다. 256쪽. 1만 3000원.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화암사 ‘대시주’무인 성달생 위패 모신 한 칸짜리 사당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화암사 ‘대시주’무인 성달생 위패 모신 한 칸짜리 사당

    소박하면서도 단정하게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사찰을 두고 흔히 ‘곱게 늙은 절집’이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안도현 시인이 ‘화암사, 내사랑’에서 말한 ‘잘 늙은 절 한 채’의 변주(變奏)가 아닐까 싶다. 시인이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다’고 했던 절은 완주 화암사(花巖寺)다. 절에 오르기는 쉽지가 않다. 시인이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다’고 한 그대로다. 그렇게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 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나타나는 절이 화암사다. 그런데 ‘화암사 중창비’의 분위기도 안 시인의 묘사와 닮아 있다. ‘바위 벼랑의 허리에 한 자 폭 좁은 길이 있어 그 벼랑을 타고 들어서면 이 절에 이른다.…바위가 기묘하고 나무는 늙어 깊고도 깊다’ 비문은 1441년(세종 23) 지은 것이다.●‘하앙식 구조’ 화암사 극락전 국보 지정 화암사라면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1981년 해체 수리하면서 찾은 기록으로 1605년(선조 38) 세운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극락전은 이른바 하앙식(下昻式) 구조로 유명하다. 복잡한 설명이 뒤따라야 하지만, 한마디로 지붕을 높여 맵시 있게 보이기 위한 건축적 장치라면 크게 망발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건물의 겉모습만으로 알아차리기란 전문가도 쉽지 않다. 하앙식 구조가 아니더라도 날아갈 듯 아름다운 지붕이 우리나라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극(極)·락(樂)·전(殿) 세 글자를 한 글자씩 따로따로 내건 편액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물론 편액을 이렇게 만든 것도 하앙식 구조이기 때문일 것이다.화암사를 말할 때 강당에 해당하는 우화루도 빼놓으면 안 된다. ‘잘 늙은 절 한 채’라는 이 절의 인상은 아마도 우화루에서 결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극락전과 우화루, 여기에 적묵당과 불명당이 마당을 감싸며 이른바 산지중정형 사찰의 모습이 완성됐다. 화암사가 아름다운 것도 각각의 전각도 전각이지만 이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오늘은 극락전도, 우화루도 아닌 화암사에서 가장 작은 철영재(英齋)로 눈길을 돌려보고자 한다. 극락전 동쪽에 자리잡은 철영재는 불과 한 칸짜리 사당이다. 뜻밖에 조선 초기의 무신(武臣) 성달생(1376~1444)의 위패를 모셔 놓았다. 절집에 무신의 사당이라니….●철영재 현판 글씨는 문인 자하 신위가 써 철영재 현판 글씨는 자하 신위(1769~1845)가 썼다. 추사 김정희와 비교되곤 하는 조선 후기 문인이다. 자하는 금강경을 필사하고 감상을 적은 ‘서금강경후’(書金剛經後)를 남겼을 만큼 불교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인물이 사당의 현판 글씨를 썼다니 성달생과 화암사, 나아가 성달생과 불교의 인연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화암사는 창건 연대가 통일신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중창비는 전한다. 원효와 의상도 수도했다고 적었다. 1425년(세종 7)부터 1440년(세종 22)까지는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다. 당시의 대(大)시주가 성달생이다. 그는 1417년(태종 17)부터 이듬해까지 전라도관찰사 겸 병마도절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화암사와 인연을 맺은 듯하다. 그런데 인연은 중창에 머물지 않는다. 조선시대 불경(佛經) 간행의 역사에서 화암사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 중심에 성달생과의 인연이 있다. 성달생은 개성유후(開城留後)를 지낸 성석용의 아들이다. 유후는 조선의 창건 수도인 개성을 다스리는 벼슬이었다. 태종실록에 있는 성석용의 졸기(卒記)에는 ‘글씨를 잘 썼다’는 대목이 보인다. 그런데 글씨라면 그의 아들 삼형제 달생·개·허도 일가견이 있었다.●법화경 등 판각한 조선 불경 간행 중심지 성달생과 성개가 필사한 안심사판 묘법연화경은 최근 보물로 지정됐다. 완주 안심사는 화암사에서 멀지 않다. 화암사와 더불어 불경 판각이 활발했던 안심사에는 금강경, 원각경, 부모은중경 등 조선시대 한글 경판도 다수 전하고 있었지만, 6·25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다고 한다. 성달생의 글씨로 찍은 화암사판 불경은 1443년(세종 25)부터 쏟아져 나온다. 법화경, 능엄경, 중수경, 부모은중경, 지장경, 육경합부, 시왕경 등 모두 12종에 이른다. 육경합부(六經合部)는 금강경, 화엄경, 능엄경, 아미타경, 관세음보살예문, 법화경의 한 대목씩을 엮은 것이다. 성달생의 아들과 손자는 단종 복위 운동으로 나란히 목숨을 잃은 성승(?~1456)과 성삼문(1418~1456)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삼문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성달생이 필사한 화암사판 법화경에는 성승과 성삼문도 발원자로 참여했다. 화암사판 법화경은 이후 복각본만 24종이 나왔다. 조선시대 법화경은 성달생 글씨를 판각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봐도 크게 과장은 아니다. 철영재 현판을 쓴 자하 역시 ‘성달생 법화경’을 읽으며서 불교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여 갔을 것이다. 그러니 화암사는 성달생의 존재로 ‘조선시대 불경 간행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절 경내, 그것도 큰 법당 곁에 이런 인물의 사당을 지은 것도 이해할 만하다. 화암사에 남은 성달생의 흔적은 철영재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창비는 높이 130㎝, 폭 52㎝, 두께 11㎝이니 그야말로 아담하다. 비문은 15세기 중엽 지었다지만 비석을 세운 것은 1572년(선조 5)이다. 중창비에는 비문을 누가 짓고, 글씨를 누가 썼는지 나타나 있지 않다. 매우 이례적이다. 그 주인공으로 성달생을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문을 지었다는 1441년은 그가 죽기 3년 전이다. 아들과 손자가 ‘역모’에 가담했으니 성달생도 무사하지 못했다. 세조실록에는 ‘예조에서 성승의 아비에 대하여 연좌를 청하여 그대로 따랐다’는 대목이 보인다. 파주 무덤의 석물(石物)을 모두 없앤 것이다. 성승과 성삼문이 복권된 것은 1691년(숙종 17)이다. 중창비를 세운 시기 그들은 여전히 ‘대역죄인’이었다. 성달승의 이름을 새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달생은 일화도 많이 남긴 인물이다. 전라도관찰사에서 내직인 내금위삼번절제사로 옮긴 1418년 세종이 명나라 사신을 전송할 때 직책상 칼을 찼다. 세종이 즉위한 해다. 그런데 상왕, 즉 태종 앞에서 칼을 찼다는 이유로 세종으로부터 질책을 받아 파직된 것이다. 형제의 난을 일으키는 등 칼로 일어선 태종 이방원이 적지 않게 놀랐던 때문일 듯하다. ●유감동 ‘섹스 스캔들’에 연루돼 물의도 성달생은 세종실록의 표현대로 ‘명나라 황제의 친척’이 되기도 했다. 명나라는 공녀(貢女)의 악습을 원나라로부터 물려받았는데, 1408년(명나라 영락 6)부터 1433년(명나라 선덕 8)까지 7차례에 걸쳐 114명의 조선 소녀를 징발한다. 성달생의 열일곱 살난 딸도 여기에 포함됐다. 공조판서 시절이었으니 조선시대를 통틀어 공녀의 부친으로는 가장 벼슬이 높았다. 성달생은 유감동의 간부(奸夫)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유감동은 양반 가문의 딸이자 고위 관리의 부인으로 세종시대 40명 남짓한 조정의 전·현직 관리와 스캔들을 일으켜 물의를 빚었는데, 성달생도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그는 충청도 초수로 안질을 치료하러 간 세종을 호종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고소영’ ‘사미자’… 특권층 안식처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고소영’ ‘사미자’… 특권층 안식처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권력과 교회/김진호 지음/강남순·박노자·한홍구·김응교 대담/창비/247쪽/1만 6000원지난해 11월 교인 8만명의 초대형 교회 명성교회가 ‘세습 논란’에 휩싸였다. 40년간 지도력을 행사해 온 원로목사가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겨준 것.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에 불거진 대형 교회의 세습 행태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두고 개신교 내의 한 인사는 “이번 사건으로 가장 피해를 받는 존재는 바로 하나님과 한국교회”라며 “목회자로서 깊이 사과한다”는 뼈아픈 성찰의 목소리를 냈다. 이 사건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적폐의 성역’임을 보여 주는 한 사례다. ‘개독’이라는 네티즌들의 비아냥에서도 알 수 있듯, 오늘날 교회는 “한국사회가 지닌 지독한 문제들이 집약된, 한국사회의 축소판”(강남순)이라는 비판의 한가운데 있다. 사회 각계에서 민주화가 이뤄졌으나 대형 교회는 아직도 목회자 세습 등 전근대적 시스템이 굳건히 자리해 있다. 사랑과 포용을 이야기해야 할 교회에서 여성·성소수자·무슬림 등 소수자들을 향한 목사의 혐오 발언도 횡행한다. 이명박 정권 시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권 시기 ‘사미자’(사랑의교회·미래를경영하는연구모임)라는 말이 있듯 특권층의 배타적인 안식처로 자리잡기도 했다. 결혼과 취업을 위한 인맥공장으로 기능하면서 말이다. 책은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강남순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의 대담으로 엮였다. 대담을 진행한 저자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개신교 출신 파워엘리트 혹은 개신교라는 종교 자체는 사회에 좋은 존재인가”라고 반문하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 평가에 한 표를 던질 것이며 책이 기획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대담자들은 한국사회의 적폐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한국 교회의 문제들을 비판하며 개신교가 개혁과 쇄신을 통해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영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타진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시론] 문학권력의 고백성사를 요구한다/최강민 문학평론가·우석대 교수

    [시론] 문학권력의 고백성사를 요구한다/최강민 문학평론가·우석대 교수

    2016년 10월 촛불혁명 이후 적폐청산은 시대의 화두가 됐다. 이 연장선에서 2018년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범죄를 알리는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점화됐고, 최영미 시인은 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비판하는 문학계의 미투 운동으로 적폐청산의 도미노 게임에 참여했다. 문학의 윤리성과 저항성을 상징하던 고은은 숨겨진 괴물의 자화상이 폭로되면서 추락했다. 최영미가 이어받은 미투 운동은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돼 현재진행형이다. 고은 시인의 성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될 수 있었던 것은 고은을 포함한 문학권력과 낡은 문학 관행이 함께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은은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간사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했고,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문학권력이었다. 이러한 고은의 문학권력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바로 창비와 한국작가회의다. 그동안 진보문학의 좌장 역할을 한 창비는 문학의 현실 참여, 삶과 문학의 진정성, 문인의 윤리성을 강조하며 한국문학을 변혁시켰다. 고은의 성폭력은 창비의 뒤풀이 모임에서도 있었다고 최영미는 증언하고 있다. 창비는 고은의 상습적인 성폭력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고은은 계간 창작과 비평의 지면에 시를 꾸준히 발표했고, 창비의 주요 행사에 초청됐다. 이것은 창비의 안이한 성폭력 인식과 묵인, 남성 문인들의 성폭력에 대해 관용적인 문학관이 함께 작용한 참사다. 고은의 성폭력 사건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옹호하는 페미니즘 책을 발간한 창비의 이중적 처신과 위선을 드러낸다. 파쇼적 보수정권과 대결하는 상황에서 고은의 성폭력을 묵인했다면 창비의 조직 보호 논리는 그들이 비판한 극우보수의 행태와 닮은꼴에 불과하다. 고은의 성폭력 사건은 한국문학의, 진보문학의 위기를 상징한다. 지난 2월 한국작가회의의 총회에서 최원식(계간 창작과 비평 전 편집주간) 이사장은 “부족한 저를 지난 2년간 이사장으로 허락해 준 고은 선생을 비롯한 고문단”에게 깊이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했다. 고은의 성폭력이 폭로된 상황에서 한국작가회의를 대표하는 최원식은 고은 시인에게 감사의 말을 던졌던 것이다. 성폭력을 반대한다는 한국작가회의의 성명과 이사장의 엇박자 발언은 경악할 일이다. 이날 총회에서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이렇게 하지 않을 법한 일들이 ‘관행’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됐다. 총회의 파행은 직선제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따른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거 집행이 부재했기에 발생한 적폐였다. 한국작가회의는 이사장과 사무총장을 선출할 때 민주주의 선거 원칙인 비밀선거를 하지 않았고, 출마의 변도 없었다. 선거는 공개적인 거수투표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강행했다. 고은의 성폭력과 한국작가회의 총회는 쌍생아의 적폐였다. 유명 연예인의 성폭력은 당사자가 개인으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고은의 경우 개인을 넘어 문학권력, 악습의 문학 카르텔이 깊게 관련돼 있다. 그래서 추가적인 미투 운동이 쉽지 않다. 고은의 성폭력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문인들과 문학권력은 고은 사건의 확대를 두려워한다. 이들 일부는 내부 고발자인 최영미의 개인 행실을 비판하는 마녀사냥의 꼼수 발언으로 대응했다. 고은과 방조자를 포함한 문학권력은 모두 유죄다.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죄인이라는 각자의 인식 속에 진솔한 참회의 고백성사다. 고은은 최근 외신에 부끄러운 어떤 짓도 하지 않았다고 변명의 발언을 했다. 무죄라고 생각한다면, 고은은 최영미 시인을 즉각 고발하고 경찰의 조사를 받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라. 존경받던 문인이 위선자로 밝혀진 것은 한국문학의 비극이자 역사의 아이러니다. 문학계의 미투는 적폐 관행을 폐기하라는 선언이자 질적 갱신의 필요성을 채찍질하는 절규다. 미투 운동은 남녀가 평등한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는 자구적 움직임이다. 문인들과 문학권력은 이 선언과 절규에 뜨겁게 대답해야 한다.
  • “국제 위상 높인 성과 위에 한국문학 성찰 담겠다”

    “국제 위상 높인 성과 위에 한국문학 성찰 담겠다”

    순수 한국문학 전공자 첫 임명 “한국어 문학 전체로 시야 확장” “이제 단순히 번역보다 과연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물음을 되돌아봐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순수문학 전공자인 저를 선택한 배경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5일 한국문학번역원장에 선임된 김사인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1996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의 원장은 그동안 외국문학을 전공하고 번역이나 한국문학 평론 분야에서 활동해 온 전문가들이 주로 맡아 왔다. 순수 한국문학 전공자가 이 자리를 맡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 20여년간 한국문학번역원을 이끈 외국문학 전문가들의 노력 덕분에 몇몇 한국 작가들이 노벨문학상 후보군으로 거론될 만큼 한국 문학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졌다”면서 “그 성과 위에 한국문학의 성찰을 담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문학번역원은 그 명칭 때문에 단순히 문학 작품을 번역해 해외에 소개하거나 국내 작가의 해외 진출을 돕는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사명을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 문학의 세계화 전략본부’라고 볼 수 있다”면서 “그간 한반도 남부 지방, 특히 서울을 우리 문학의 영토로 여겨 온 우리의 시야를 한국어 문학 전체로 넓히고 문학 콘텐츠의 빈약함을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81년 시인으로 등단한 김 원장은 대전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장·시분과 위원장·이사·부이사장 등을 지냈다.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IWP)을 수료하고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교환교수·중국 중앙민족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문학계와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을 지원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원장은 시집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 등을 펴냈고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며 ‘박상륭 깊이 읽기’와 ‘시를 어루만지다’와 같은 해설서도 출간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는 창비 팟캐스트 라디오 ‘김사인의 시시(詩詩)한 다방’을 진행하기도 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사랑방 타고 전해진 조선 한문 단편

    사랑방 타고 전해진 조선 한문 단편

    이조한문단편집(전 4권)/이우성·임형택 편역/창비/각 권 472~548쪽/각 권 3만원18~19세기는 전통적인 양반 사대부가 몰락하고 수공업자·농민층에서 신흥 부자들이 등장해 사회 세력 관계의 판도가 급변하는 시기였다. 이 격변기 사회는 거리의 이야기꾼들에게 풍부한 소재를 제공했다. 국내 한문학의 대표 학자인 이우성(1925~2017) 교수와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거리와 민간의 사랑방에서 입으로 전해진 한문 단편 187편을 국내외에서 수집·발굴해 1973년 초판 출간했다. 임 교수가 최근 5년간 제자들과 독회 과정을 밟으며 현대적 문체를 더하고 최신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45년 만에 새로 펴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데스크 시각] 침묵하면 ‘돌’들이 일어나 외친다/안동환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침묵하면 ‘돌’들이 일어나 외친다/안동환 문화부 차장

    2010년 10월 법무부 장관이 동석한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의 성추행. 여검사의 삶은 그 장례식장에서 멈췄다. 밝은 옷과 치마를 즐겨 입던 그녀는 상복 같은 검은색 바지만 고집했다. 보이지 않는 ‘원심력’에 떠밀린 그녀는 15년차 검사의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해 점점 먼 곳으로 유배됐다. 서지현 검사가 지난달 29일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에는 ‘참고 침묵하기만 했던 내 잘못이라는 건가’라고 자문하는 대목이 있다. 서 검사가 여러 경로로 제기한 성추행 문제는 묵살됐고 인사 보복이 뒤따랐다. 서 검사가 자유 의지로 침묵을 깬 건 자의반 타의반 8년 동안 침묵한 대가(“내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사라는 사실을 잊은 채 검찰 내부의 힘없고 작은 부품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를 깨달은 후다. 독일 사상가 한나 아렌트가 홀로코스트 전범 재판에서 목격한 것처럼 ‘악’(惡)은 평범한 이들의 침묵에서 시작됐다. 부패와 독직을 방조한 건 다수의 침묵이다. 약자의 목소리가 억압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악에 무감각해진다. 침묵은 원심력보다 구심력이 더 크다.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일어나 소리 지르리라.’ 성경 구절처럼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일어나면서 ‘침묵의 카르텔’이 깨지고 있다. ‘#미투’(나도 피해자다)는 성폭력 고발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침묵해 온 부조리로 확대된다. 아이디 ‘인니’라는 방송작가가 지난달 24일 KBS 구성작가협의회 게시판에 올린 ‘내가 겪은 쓰레기 같은 방송국, 피디들을 고발합니다’라는 글이 대표적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목격자들’ 등 유명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작가는 “밖에서는 정의로운 척, 적폐를 고발하겠다는 피디들이 내부의 문제엔 입을 ‘조개처럼 꾹’ 닫았다”고 비판했다. 인니의 글에 다른 작가들의 ‘미투’가 잇따랐고, 한 무더기 글에 비친 방송계는 ‘갑질 천국’이었다. 최저임금보다 적은 급여로 작가들을 착취하고, 폭언과 모욕적 언사로 순응하게 했다. 회식 자리에 신인 가수를 불러 노래하게 하고, 여성 작가의 무릎 위에 앉아 술을 마신 피디를 증언한 대목은 엽기적이고 기이할 정도다. 서지현 검사,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을 폭로한 안미현 검사, 문단 권력을 저격한 최영미 시인, 인니 등 침묵의 성채에 ‘짱돌’을 던지고 있는 건 여성이다. 미국 여성 사회운동가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창비)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솔닛은 여성을 침묵시켜 온 체제의 원인으로 ‘언어의 부재’를 꼽는다. 성희롱·성추행 같은 표현은 1970년대에 발명된 신조어다. 대중적으로 쓰인 건 1990년대 들어서다. ‘데이트 강간’이나 ‘여성 혐오’는 여전히 일반인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현상은 존재했지만 말은 부재했던 시대의 목소리는 제한되거나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솔닛은 “새로운 인식에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건 ‘침묵을 거부하고 말하기 시작한 여자들’이 아니라 침묵을 거부하고 외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미투’의 본질은 성 대결이 아니라 강자의 억압과 횡포의 고발이다. 주의 사항도 덧붙인다. 하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함부로 가르치려 들지 말라. 둘, 그 목소리를 내 것인 양 가로채 이용하지도 말라. 셋, 누군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면 경청하라.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더이상 침묵하지 않을 테니까. ipsofacto@seoul.co.kr
  • “누군가의 처벌로 끝나는 게 아니라 뿌리깊게 박힌 문제 함께 고민해야”

    “누군가의 처벌로 끝나는 게 아니라 뿌리깊게 박힌 문제 함께 고민해야”

    2009년 등단한 김현(38) 시인은 ‘리얼리스트’, ‘참여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곧잘 호명된다. 시를 통해 사회의 편견과 불의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적극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고발에 앞장선 시인은 최근 최영미 시인의 고발로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되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시인은 2016년 문학계간지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실린 ‘질문 있습니다’라는 글에서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지적하고 자정의 목소리를 촉구한 바 있다.●朴정권ㆍ세월호의 참담함 담아 최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난 그는 “당시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로부터 터져 나온 증언들이 심각했기 때문에 작가들 스스로 점검해 보자는 의미에서 발표한 글이었는데 이렇듯 많이 회자될 줄 몰랐다”면서 “다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누군가의 폭로나 누군가의 처벌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단 내부에) 뿌리 깊게 박힌 문제를 같이 들추고 고민해야만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운동에 동참하는 것, 글을 쓰는 것, 설사 뒷담화라고 하더라도 문학장 안에서 개선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젠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즘 젊은 작가들과 교류하는 등의 작은 일들을 앞으로도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저항하는 시인으로서의 행동성은 두 번째 시집 ‘입술을 열면’(표지·창비)에서도 드러난다. 2014년 첫 시집 ‘글로리홀’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이 시집에는 2013~2015년에 쓴 시 53편이 담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시인이 느꼈던 참담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불온서적’과 박근혜 정권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쓴 ‘열여섯 번째 날’이 각각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 시민, 페미니스트, 사회적 약자, 노동자로서 제가 느꼈던 다양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어요. 특히 ‘열여섯 번째 날’은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304낭독회’(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와 시민들이 함께하는 낭독회)를 소재로 삼은 작품인데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언급하면서 희망적으로 맺고 싶었어요.” ●“사회적 약자 목소리 내고 싶었죠” 이 시에 나오는 “말해버렸다/입술은 행동할 수 있다/사람이라는/진실은 이토록 정처 없이 희망차고”라는 마지막 부분이 뜨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또 다른 시 ‘생명은’에서도 “입술소리로 한평생 진실을 읽는다/뽀뽀의 순리//생명은 뽀뽀함으로 가볍다//우리는 그 길로 사람을 이해하므로/생명의 첫 지름을 깨우친다”라는 구절처럼 ‘입술’은 생동한다. 시집의 제목인 ‘입술을 열면’ 뒤에 ‘미래가 나타나고 ’가 숨겨져 있다고 한 시인의 말이 이해를 돕는다. “제가 이번 시집에서 입술, 목소리와 관련한 시어를 많이 썼더라고요. 입술을 열어야 발화하고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잖아요. 나와 타인이 서로 마주 앉아 입술을 열어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 입술을 다문 채 침묵하고 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2017년, 너도나도 빌려간 ‘채식주의자’

    2017년, 너도나도 빌려간 ‘채식주의자’

    지난해 공공 도서관 이용자가 가장 많이 빌려 본 책은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창비)였다. 비소설보다 소설의 대출 빈도가 더 높았다.국립중앙도서관은 전국 660여개 공공 도서관의 2017년 대출 자료 약 5700만건을 분석한 결과를 7일 발표했다. 한국 소설로서는 최초로 2016년 영국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가 2만 2565건을 기록해 1위에 올랐다. 한강의 인기에 힘입어 그의 또 다른 작품 ‘소년이 온다’도 1만 3242건으로 8위에 올랐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도서와 작가의 미디어 노출 빈도가 대출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2016년 대출 순위가 58위였지만, 작가가 방송에 출연하고 영화도 개봉하면서 지난해 6위로 급상승했다. MBC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던 한국사 강사 설민석이 쓴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9위를 차지했다. 전반적으로는 소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2만 678건)이 2위를 기록했다. 정유정이 쓴 ‘종의 기원’(1만 5231건)과 ‘7년의 밤’(1만 4271건)은 각각 4위와 6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페미니즘 열풍을 불러온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5위를 기록했다. 비소설로는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가 3위(91만 6103건), 윤홍균의 ‘자존감 수업’이 7위였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과 맞물려 2016년 500위권밖에 있었던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김훈의 ‘남한산성’이 50위 안팎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공공 도서관 도서 대출자는 6대 4 비율로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다. 특히 40대 여성은 전체 도서 대출량의 22.3%로, 도서관을 가장 자주 이용하는 계층으로 나타났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승철 시인, 최영미 시인 ‘미투’에 “피해자 코스프레 남발”…‘2차 가해’ 논란

    이승철 시인, 최영미 시인 ‘미투’에 “피해자 코스프레 남발”…‘2차 가해’ 논란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로 원로시인 ‘En’의 상습적인 성폭력을 폭로해 문단이 떠들썩한 가운데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았던 이승철 시인이 최영미 시인 비판글을 올려 ‘2차 가해’ 논란이 일고 있다.이승철 시인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전날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최영미 시인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고 표현했다. 이승철 시인은 “인터뷰를 보면서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면서 “최영미는 참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잣대로 마치 성처녀처럼 쏟아냈고, 천하의 손석희는 한국문단이 ‘아, 이럴 수가 있나’하며 통탄하고 있었다”고 평했다. 이어 “(최영미 시인은) 메이저 출판사와 무소불위의 평론가들의 묵계를 강조하면서 그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최영미 인터뷰는 한국문단이 마치 성추행 집단으로 인식되도록 발언했기에 난 까무라치듯 불편했다”면서 최영미 시인의 과거 행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늘어놓았다. 이승철 시인은 최영미 시인에 대해 ‘튀는 성격’, ‘유아독존적’, ‘무례함’, ‘민족문학은 사실상 최영미 현상으로 인하여 절단나고 있었다’, ‘표절’, ‘난리 부르스’, ‘안하무인’, ‘싸가지 없던 악다구니’, ‘제기럴’ 등등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해가며 비난했다. 그러면서 최영미 시인의 ‘돼지들’이라는 시집에 대해 “그 시집을 보면 시적 소재로 등장한 수많은 문화계, 문학계 인사들이 나온다. 시의 요점은 모두들 그녀에게 했다는 성적 추행의 이력이다”라면서 “어찌보면 지독한 남성혐오에 가까운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그는 ‘En’ 시인을 적극 옹호했다. 이승철 시인은 “‘En’ 시인의 기행에 대해서 숱한 얘기를 들은 적 있지만 먼먼 소싯적 얘기를 현재진행형하여(현재진행형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조금도 납득할 수 없다”고 썼다. 그는 “난 ‘미투’가 두렵지 않다. 나도 한때는 여자사람을 좋아했는데 누가 나를 20년, 30년 전 일로 ‘미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옛날을 되돌아본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허나 ‘미투’ 투사들에 의해 다수의 선량한 문인들이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며 글을 맺었다. 이승철 시인의 글에는 80여개의 댓글이 달리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이승철 시인의 글에 공감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이승철 시인이 최영미 시인에 대해 ‘2차 가해’를 한 것이라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한 댓글은 “지금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동참하고 있는 중이란 걸 알아야 한다”면서 “아무리 오래 됐어도 범죄는 범죄고, 피해 사실의 흔적은 평생을 간다. 비록 최순실이라도 지나가다가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해 쓰러지면 가해자는 처벌받아야 하고, 피해자는 치료부터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승철 시인이 올린 글 전문. 최영미 시인이 갑자기 떴다. 미투라고 했다. JTBC 손석희-최영미 인터뷰를 보면서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문단에 만연한 성추행이라니, 최영미는 참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잣대로 마치 성처녀처럼 쏟아냈고, 천하의 손석희는 한국문단이 “아 이럴수가 있나” 하며, 통탄하고 있었다. 메이저 출판사와 무소불위의 평론가들의 묵계를 강조하면서 그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 최영미의 그런 발언에 대해 절실성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내가 그녀의 가해자가 된듯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최영미 인터뷰는 한국문단이 마치 성추행집단으로 인식되도록 발언했기에 난 까무라치듯 불편했다. 왜 그녀가 이 시점에서 자기 체험을 일반화해서 문단 전체에 만연한 이야기로 침소봉대해 쏟아내는지 조금 의아했다. 지난번 호텔 집필실 사건이 터졌을 때 썩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난 그녀를 옹호했었다. 시인도 인간이기에 욕망에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은가. 하긴 그녀는 손석희와 인터뷰 때 추악한 문단을 떠난지 오래였다고 했다. 허나 그 오랜 기억이 문단의 현재적 풍토인양 뉴스화됐다. 내가 1993년에 김남주 시인을 상임이사로 모시고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 황석영 선생 귀국 문제가 조직의 현안으로 대두된 적이 있었다. YS 정권 초창기였다. 그해 4월에 황석영 작가가 오랜 망명생활 끝에 귀국하여 안기부(국정원)에 체포되었기에 ‘국제 엠네스티’ 등이 긴급행동요구를 발동해 황석영 석방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최영미 시인이 작가회의 사무실에 놀러온 적이 있었는데 때마침 영국 엠네스티 본부에서 황석영 문제로 전화가 와서 (서)울대 출신인 그녀에게 바꿔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매우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기에 난 그녀에게 작가회의 사무국 간사로 일할 수 있냐고 요청했고, 그녀가 흔쾌히 수락했기에 이후 한동안 사무실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최영미 시인, 그녀는 선병질적으로 튀는 성격이었다. 매우 완강한 자존의 소유자였고, 어찌 보면 유아독존적 처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시에 대해 추호의 비판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건 어찌보면 창비와 언론이 만들어낸 ‘최영미 현상’이 불러온 결과였기에 그녀의 무례함에 대해 누구도 대놓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즈음 이 땅의 민족문학은 사실상 최영미 현상으로 인하여 절단나고 있었다. 그녀의 시 구절 - “컴퓨터와 씹하고 싶다”는 말만이 오랫동안 술좌석에 회자되었을 뿐, 그때 우리는 그녀가 야기한 환멸의 미학에 얼마나 통탄스러워했던가. 1994년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서울 마포 아현동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 합평회’가 열렸다. 그날 창비에서 출간된 그녀의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잔치는 끝났다”는 표현은 서정주 시의 표절이었다)에 대해 수십명의 시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토론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저자인 그녀는 물론 민영 시인 등 원로 문인들도 자리를 함께 했는데, 몇몇 시인들이 그녀 시에 대해 사소한 비판을 했는데, 그때 그녀는 좌중이 놀랄 정도로 난리 부르스를 쳤다. 숫제 안하무인이었다고 할까. 그 싸가지없던 악다구니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합평회란 시의 문제점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이 오가는 게 상례건만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한 정도로 그녀는 피해의식으로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그무렵 그녀를 둘러싼 이런저런 소문이 있었다. 그녀 시집에 등장한 첫남편(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었다)에 대한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었다. 남녀간 사랑이란 순탄치 않게 파국을 맞으면 둘 사이의 과거는 시쓰는 시인에게 증오로 표출될 수도 있다. 철학자 니체가 루 살로메의 가혹한 채찍을 언급한 것처럼 최영미는 그 남자의 혁띠를 들먹거렸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파탄은 통상 상대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만을 뇌리 깊숙이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즈음 그녀와 사귀고 있던 어느 소설가(유명 출판사 사장이었다)가 내게 무심결에 한 말을 듣고 난 깜짝 놀란 바 있었다. “야, 이승철 네가 최영미한테 무슨 잘못을 한 거야. 혹시 너, 달라고 추근거린 거 아니야. 최영미가 네 이야기가 나오면 그딴 인간과 왜 자주 만나냐고 난리치더라. 너와 다시는 만나지 말라는데 네가 무슨 잘못을 한 거야.” - 아, 잘못이라뇨? 형님! 내가 그 잘난 여자한테 무슨 잘못을ᆢ 다만 황석영 석방대책 건으로 사무국 간사로 선임했는데, 모 선배시인이 그 (미친) 여자를 왜 작가회의서 일하게 하냐고 해서, 할수없이 본의 아니게 한 달도 못되어, 그만두라고 한 적이 있었을 뿐입니다. 어쨌든 내가 미안하다는 사과편지를 건네주었고, 그 후로 사적으로 만난 적 이 없는데, 이런 제기럴 영미ᆢ. 그 선배작가는 최 시인이 날 우습게 여기더라는 말을 이후로도 안주삼아 몇번이나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난 이런 씨부럴 하며 울화를 달래야 했다. 최영미 시인이 십여년 전인가 실천문학사에서 ‘돼지들’이란 시집을 펴낸 적이 있었다. 그 시집을 보면 시적 소재로 등장한 수많은 문화계, 문학계 인사들이 나온다. 시의 요점은 모두들 그녀에게 했다는 성적 추행의 이력이다. 어찌보면 지독한 남성혐오에 가까운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왜 그녀는 그 시집에 등장한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일부러 만나 그런 사건을 만들어야 했는가. 어찌보면 난 그게 의문스러웠다. 그 시집을 읽고 이걸 팩트로 믿어야 하나, 물론 시적 장치이지만, 여러 의구심이 들었다. 최영미 발언이 용기 있다고 한다. 어허 그렇다면 한국문학의 상징, 우리 En시인은 어찌할꼬나. 물론 En 시인의 기행에 대해서 숱한 얘기를 들은적 있지만 먼먼 소싯적 얘기를 현재 진행형하여 매도하는 건 조금 납득할 수 없다. 남자의 성적 욕망이란게 얼마나 무서운가. 그리고 그 욕망의 피해자가 받는 고통은 또 얼마나 지속적이고 치유 불가능한가. 그걸 최영미 발언을 통해서 확인해본다. 1994년이던가? 소설가 이문열이 <시인>이란 소설로 En를 매도하다가 자신의 소설을 폐기처분한 바 있는데, 이제 최영미가 다시 등장했다. 난 미투가 두렵진 않다. 나도 한때는 여자사람을 좋아했는데 누가 나를 이십년, 삽십년 전 일로 미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옛날을 되돌아 본다. 타인의 불행이 더이상 나의 행복은 아니다. 허나 미투 투사들에 의해 다수의 선량한 문인들이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길섶에서] 시(詩)요일/진경호 논설위원

    슬그머니 다가와 넌지시 앉았다. 아는 척하지도 않았고, 모른 척 내치지도 않았다. 무심한 듯 고개 돌려 눈 한 번 맞췄고, 이내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졌다. 창비의 시 앱 ‘시(詩)요일’ 얘기다. 아니, 시 얘기다. 뭘 타고 왔는지 문득 스마트폰 창에 날아 앉았고, 시나브로 ‘시요일’이 날려 보낼 시 한 닢을 기다리는 중독이 일상에 얹어졌다. 시는 읽는 걸까, 보는 걸까. 혹시, 잠기는 건 아닐까. 읽는 것도, 보는 것도 아닌 잠기는 것, 마음을 내려놓고 추억을 길어 내고 상상에 날개를 다는 것…. 타인의 시선을 훔치고, 그렇게 훔친 시선에 살짝 마음을 데이고, 그렇게 데인 마음에 기분 좋은 몸살을 앓는 것…. 작가 이기주에겐 미안하지만 그가 쓴 ‘언어의 온도’가 해를 넘겨 베스트셀러 상단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현실은 슬프다. 말과 글에 상처 입은 세상의 신음이 그 책을 떠받치고 있다. 칼질, 도끼질이 난무하는 저 핏빛 댓글난을 시로 씻으면 어떨까 싶다. 하루하루가 시요일일 권리가, 아픈 우리에겐 있다. 그 무슨 말라비틀어진 소리냐 싶다면 당장 거울 앞으로 달려가 누가 서 있는지 보길 바란다. 그를 위해 울길 바란다.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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