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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폭서로 10명 사망/섭씨 44도 육박… 가축들 폐사

    ◎중·동부 지역 【뉴욕 AP 연합】 지난 6일간 섭씨 44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미국 중부와 동부지역을 강타,13일 최소한 10명이 사망했다. 아이오와주에서는 소 등 수천마리의 가축들과 12만여마리의 칠면조가 더위로 죽었으며 네브래스카주에서는 철로가 높은 기온으로 뒤틀리는 바람에 열차가 탈선하기도 했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또 시카고에서는 창문을 닫은 채 에어컨도 작동하지 않는 스쿨버스를 타고 가던 어린이 22명이 탈수와 열사병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는 등 더위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 우랄산맥을 넘어(시베리아 대탐방:22)

    ◎유럽·아시아의 분수령… 정상엔 경계비 우뚝/모스크바 떠난지 30여시간만에 첫 기착/140만 인구 에카테린부르크에 여장 풀어/2차대전뒤 군수공장 대거 이전… 산업 중심지로 우랄의 역사는 곧 옛날 러시아 정복자들의 침략사다.침략은 15세기에 시작돼 16세기에 마무리됐다.철길 대신 카마강의 물길을 따라 동진해온 러시아 정복자들은 페름주와 스베르들로프주의 경계지대인 우랄 산자락까지 와서 그곳에서 산맥을 넘었다.그리고 우랄북쪽에서부터 도시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도시는 카마강변의 솔리캄스크.「카마강의 소금채취장」이란 뜻을 가진 마을이다.우랄산맥을 넘어 에카테린부르그 북쪽에 베르하투라가 두번째로 건설됐다.「투라강 상류의 마을」이란 뜻.정복자들은 이후 투라강을 따라 동남진하며 70∼80여개의 도시를 건설해나갔다.피터대제는 메탈 매장량이 많은 이곳에 작은 금속공장을 계속 만들었다.튜멘주의 수도 튜멘은 투라강이 시베리아철도와 교차하는 지리적 요건 덕분에 융성한 대표적 도시가 됐다. ○피터대제 부인 이름 따 도시건설은 두 갈래 방향에서 추진됐다.하나는 메탈공장 건설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중심지를 만드는 것이었다.1720년대에만 17개의 새 공장이 우랄에 건설됐다.스베르들로프스크주의 두번째 도시 니즈니타길도 이때 건설됐고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되는 페르보우랄스크도 이때 세워졌다.그러다가 드디어 1723년 모든 우랄공장의 총괄본부로 에카테린부르그가 건설됐다.정숙한 피터대제의 부인 에카테리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에카테린부르그로 진입하기 전 만나게 되는 명물은 페르보우랄스크의 유럽·아시아 분수령에 서 있는 대리석 경계비. 우랄의 산정역 베르시나역을 지난 뒤 5㎞,모스크바에서 1천7백77㎞ 떨어진 지점에 이 오벨리스크는 서 있다.철로에서 불과 10여m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높이 7∼8m의 수수한 돌조각물 상단에 「아시아·유럽」이라고 쓰인 선명한 글씨가 두 대륙의 경계를 알린다.승객들은 차창가에 몰려 이 역사적 기념물을 카메라에 담느라 법석이다. 러시아인들도 이 산정 경계를 우리와 똑같이 「바다라즈젤(분수령)」로 부른다.산정에서 물이 한쪽은 유럽으로 다른 한쪽은 아시아로 흘러들어가는 말뜻 그대로 분수령인 것이다.추사바야강은 왼편 유럽으로 흘러들어가고 타길·네바·살바·투라강 등은 아시아로 흘러들어간다. 페르보우랄스크에는 유난히 금속튜브공장이 밀집돼 있는데 1920년대 우랄에서 첫번째 튜브생산품이 이곳에서 나오자 이를 기념해 「페르보우랄스크(우랄에서 첫번째)」라고 부른 것이 그대로 도시이름이 됐다. ○금속튜브 공장들 밀집 이곳에서 50㎞를 더 나아가 마침내 스베르들로프주의 수도 에카테린부르그역에 도착했다.모스크바를 출발한지 꼭 29시간30분만에 처음으로 짐을 꾸려 기차에서 내렸다.이웃들이 모두 복도로 몰려나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91년 도시이름을 스베르들로프스크에서 에카테린부르그로 바꾸면서 주이름은 그대로 두어 다소 혼란을 일으킨다.이름을 바꾼 이유는 스베르들로프가 볼세비키의 이름을 딴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혁명 뒤 볼셰비키들의 총애를 받아 번창한 전형적 사회주의 행정·산업중심지이다.현재 인구가 1백40여만명에 이르는 우랄의 비공식 수도이다.1723년 이셰치강변의 작은 메탈공장으로 도시가 출범한 이래 우랄지역 각종 광산들의 관리소가 이곳에 들어섰다.그러나 혁명 전까지 우랄의 행정·지리적 수도는 페름이었고 이곳은 단순한 산업도시 기능만 했다.이를 볼세비키들이 혁명 뒤 모든 행정·문화중심을 이곳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그것은 옛 전통을 끊고 프롤레타리아의 새 전통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특히 이곳은 반혁명부대인 체코백군의 본거지가 됐던 곳이다.혁명 뒤 23년 이곳을 우랄의 행정수도로 정하면서 볼셰비키들은 그 이듬해 도시이름을 스베르들로프로 바꾸었다.그 뒤 극장·박물관·대학·과학아카데미·연구소 등이 줄이어 들어서기 시작했다.2차 대전중 모스크바,레닌그라드 등 유럽쪽에 있던 군수공장들이 대거 이곳으로 피난와 본격적 산업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소비예트 시절 시베리아에는 크게 두가지 타입의 도시가 존재했다.하나는 오랜 학문·예술전통을 가진 도시들로서 페름·옴스크·톰스크 등이 바로그들이다.이들은 혁명 뒤 볼세비키정권에 의해 무대 뒷전으로 밀려나 과거의 명성을 잃게 된다.다른 하나는 새로 각광받은 노동자 도시들이다.에카테린부르그·노보시비르스크·이바노바 등이 단적인 예이다.오랜 정치·문화·학문전통을 억누르고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거역할 수 없는 판도의 역전이었다. ○옐친이 태어난 곳 지금 크렘린의 안방을 차지한 사람들은 「스베르들로프 마피아」들이다.옐친 대통령을 비롯해 일본의 옴진리교로부터 뒷돈을 받고 이들을 러시아로 진출시켜주었다는 로보프 안보위서기와 부르불리스 장관 등이 그 멤버들.이외에 15∼20명의 이곳 출신 인사가 현재 옐친 주위에서 일을 하고 있다.옐친 대통령은 에카테린부르그에서 동쪽으로 1백㎞ 떨어진 스탈리차에서 출생해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고 에카테린부르그시당 제1서기,주당 제1서기를 거친 다음 고르바초프가 불러올려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를 지냈다. 에카테린부르그는 예부터 돈많은 광산주들이 많았던 탓에 대부호의 저택들이 유난히많이 남아 있다.또 전형적인 우랄 통나무집들도 곳곳에 보존돼 있다.이들 전통가옥들이 스탈린시대 때 건설된 웅장한 대리석 건물들과 조화를 이뤄 매우 아름다운 도시풍경을 만들고 있다.전형적인 우랄 통나무집은 보통 2층인데 1층은 반지하로 만들어 시멘트,돌 등으로 아주 견고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겨울에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지반이 흔들리는데 대비하기 위함이다.거기다 창문주위에 갖가지 문양을 새긴 나무장식을 해놓아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우랄사람들은 이 창문장식을 「날리치니키(얼굴)」라고 부른다.집의 얼굴이라는 뜻. 쨍쨍 내리쬐는 5월의 햇살 속에 거리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굵은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갔다.우리가 「여우비」라고 부르는 이 자연현상을 우랄사람들은 「버섯비」라고 불렀다.이 비가 지난 뒤면 숲의 버섯이 쑥쑥 자라기 때문이다.
  • 코트디부아르 「평화의 성당」(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19)

    ◎3년만에 건립한 세계최대 성전/콘크리트 기둥·대리석을 조립식으로 축조/“영혼없는 건축”… 집권자의 과대망상적 산물/높이 170m 총33만 8천여명 동시 미사참여 가능 명지대학교 최재필 지금은 작고한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라는 제목이 붙은 일련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에 대해 새삼 경탄을 하게 된다.김환기화백의 그림은 그저 조그만 네모와 그 속의 점들이 커다란 화폭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이다.이 그림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이거 뭐 이래? 애들 장난같잖아』하는 반응을 보일는지 모른다.아무런 뜻도 없는(다시 말해서 의미있는 형태가 아닌)그저 조그만 무늬의 반복은 시정 아낙네의 치마폭에 인쇄된 무늬와 무엇이 다를까 하고 느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김화백이 네모 하나하나,점 하나하나를 캔버스에 그리는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보자.김화백은 노년이 되어 마지막으로 그 큰 캔버스에 네모 하나,점 하나를 찍으며 그간 그의 일생에서 스쳐지나갔던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만나서 좋았던 사람.이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젊었을 시절 신세를 졌던 사람.김화백은 네모 하나 점 하나를 그려가며 이들과의 추억을 되살리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리라.밤이 새도록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작업을 하던 어느 날 새벽 그 넓은 캔버스에 이제는 더 채워넣을 공간이 남지 않았음을 발견했을 때,그는 그가 그동안 보냈던 삶의 전부가 이 한장의 캔버스에 녹아들어 있음을 확인하며 탈진한 그의 육체를 뛰어넘는 초월의 경지를 느꼈으리라. ○규모 웅장… 감동은 없어 바로 이런 것이 예술품의 가치가 된다.이러한 가치는 비단 미술품에 그치지 않는다.건축도 마찬가지다.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건축물도 이것이 땅 위에 굳건히 서게 되기까지 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것에 용해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유럽에는 대성당이 많다.로마 바티칸시의 성베드로 성당,파리의 노트르담사원,런던의 성바오로 성당 등.이들 성당 앞에 서면 그 웅대한 규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석구석에까지 정열을 쏟아 만들어 놓은 세심한 장식 디자인에 우리는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신을 향한 인간의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이들 건물을 짓는데 수백년이 걸렸다.중세의 장인들은 대를 이어가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는 말이다.이들중 대부분은 살아있는 동안 완성된 건물을 보지도 못했다.그렇지만 이들은 벽돌 한장한장을 쌓아가며 스테인드글라스 한조각 한조각을 맞추어 나가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또 그것이 아름다웠든 그렇지 못했든지를 막론하고 그것을 신에게 바친다는 태도를 견지했을 것이며 자신이 마치지 못한 작업은 그의 아들에게,그의 후배들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그래서 수백년이 흐르면 비로소 그토록 아름답고 장엄한 성당이 완성되어 오늘의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이보다는 인내심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바로 5년전,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 단 3년만의 공사 끝에 건립되었다.더구나 이 성당은 본고장 유럽에 있지도 않다.「평화의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이름지어진 이 건물은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라는 나라의 야무스크로시에 세워진 것이다. 성당 중앙부의 돔은 지름이 90m에 이르며,꼭대기의 높이는 지상에서부터 1백70m니 우리나라 63빌딩보다 약간 낮은 정도다.그러나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 몇개가 이 돔 안에 들어갈 수 있다.성당 내부 제단의 캐노피(차양)높이만도 9층 높이가 되며,10층 건물의 높이를 가진 창문을 장식하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총면적은 2만3천평에 이른다.그뿐이랴.이 성당에는 좌석이 7천석이 있고,추가로 1만1천명이 서서 미사를 드릴 수 있다.게다가 대리석이 깔린 옥외광장은 32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모두 총합 33만8천명이 동시에 미사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코트디부아르의 행정수도로 근래 새로이 개발된 야무스크로시의 총인구가 3만명을 넘지 못하고,그중에서도 카톨릭 신자는 4천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렇듯 비현실적이다 못해 과대망상적으로 큰 성당을 지은 사람은 다름아닌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인 펠릭스 우페이 바냐다.참고로그는 코트디부아르가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부터 이제껏 35년간 대통령을 해오고 있다. ○63빌딩보다 약간 낮아 우페이 바냐 대통령이 어린시절,그의 고향 야무스크로에는 성당이 없었기 때문에 영세를 받기 위해서 수십리 길을 걸어가야 했다고 한다.그로부터 80년이 지난 오늘 그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을 그의 고향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자신의 고향에 아름다운 성당을 갖고자 하는 개인적인 염원 자체야 높이 사 줄만 하지만,이러한 염원이 과대망상적인 사고로 귀결지어진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이 평화의 성모 마리아 성당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3년만에 뚝딱 지어졌다.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피에르 카브렐리라는 건축가는 다음과 같이 회상을 하고 있다.처음 우페이 바냐 대통령에게 불려간 자리에서 대통령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원대한 꿈을 이야기했다.나는 요즈음 누가 이런 고전양식의 성당을 지으려고 할까하고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다.그리고는 이 성당을 언제까지 완공해야 할는지 물어보았다.대통령은 바티칸의 교황이 4년만에 한번씩 아프리카를 방문하는데 그가 작년에 왔다고 말하면서 그렇다면 이제 다음번 방문까지 몇년이 남았는지를 나보고 계산해 보라고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대의 성당은 3년만에 지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현대의 기술이 없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돌 하나하나를 깎고 기둥을 하나씩 만들어 지은 중세의 성당과는 달리 이 성당은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부재(공상에서 미리 만든 콘크리트 기둥이나 벽체 등)를 현장에서 대형 크레인을 써서 조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다보니 김환기화백의 네모와 점에 녹아든 영혼,또는 중세 장인들의 수공예작품에 밴 종교적 열정을 여기에서는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 대통령의 업적” 과시 어느 후진국 장기 집권자의 개인적 욕구에서 시작되어 과대망상적으로 지어진,그러나 영혼이 없는 건축,이것이 이 세계최대 성당의 현주소다.우페이 바냐 대통령의 나이는 현재 90세가 넘었다.그가 대통령직에서 어떤 연유로든지 물러난 후에도 이 성당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지닐지 우리는 예측할 수가 없다.후진국의 장기 집권자나 식민통치자들은 거개가 다 자신의 통치기간 중에 개인의 업적을 과시하려는 대형 구조물을 한 두개쯤은 지어놓게 마련이고,이들이 권력을 잃은 후에도 대부분의 이러한 건축물은 오래지 않아 장대한 기념식과 함께 허물어지거나,요행히 그렇지 않더라도 그 모습이 쇄락해지게 마련인 것을 우리는 멀고 가까운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올 8월이면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리게 된다.5공 시절 세워진 천안의 독립기념관의 그토록 장엄한 모습이 요즈음 그리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쓸쓸한 퇴기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는 소식도 들려온다.국민의 성금(?)으로 시작된 평화의 댐 공사는 그래도 중간에 무산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34년만에 처음으로 인구 1천만의 국제도시 서울에 민선시장이 선출되었다.포부도 크고 개인적인 신념도 가지고 있겠지만 세계최대의 무엇을 서울에 들여놓고자 무작정 밀어붙이는 일만은 삼갔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 정신질환/「가상현실기법」으로 치료

    ◎시뮬레이션 단계실시… 고소공포증 해소/폐소·대인공포증 등 신경증상에도 응용 가상현실기법으로 공포증을 치료한다.뉴욕타임스 최근호는 현재 교육·오락 등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첨단컴퓨터기술인 VR(가상현실)기법이 고소공포증·폐소공포증 등 각종 정신질환을 치료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상현실기법이 정신치료에 가장 먼저 응용된 예는 높은 곳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고소공포증.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제작된 화면을 통해 고소공포증이 있는 환자가 치료실에서 마치 고층건물에 있는 것과 같은 환경을 제공한다.환자는 바로 옆에 있는 버튼으로 마음대로 고도를 조정할 수 있다. 보통 20분에서 40분 가량 단계적으로 수행되는 이 치료는 환자가 한 단계에서 더이상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다음 단계로 올리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미 조지아공대에 다니는 크리스 클라크씨(22)는 이 가상현실치료를 통해 고소공포증에서 깨끗이 벗어난 예.어렸을 때 자유의 여신상 전망대에 올라간 이후로 최근까지도 고소공포증에 시달려왔던 그는 가상현실치료를 통해 이제는 20층짜리 건물 꼭대기에서 머리를 창문에 내놓고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대담해졌다. 고소공포증외에도 가상현실기법은 비슷한 종류의 정신질환치료에 응용되고 있다.사람들앞에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대인공포증,공공장소를 두려워하는 신경증 등이 그 응용 예이다. 컴퓨터공학자들은 이 기법이 발전하면 가상현실속에서 환자의 어렸을 때의 친구와 가족 등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인물들을 재구성해 정신치료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터넷을 이용하면 지역과 장소에 관계없이 네트워크와 가상현실을 이용한 치료도 가능해 가상현실치료기법은 급속도로 발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주립대 공포·불안증연구소장 데이비드 바로씨는 『가상현실기법의 좋은 점은 현실세계를 그대로 본뜰 수 있다는 것 외에도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공포의 세계를 연출해 환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 “살아야 한다” 오줌 마시며 사투(「삼풍」참사/24인 구조드라마)

    ◎4평 남짓 탈의실에 한데모여 서로 격려/주차장차 연쇄폭발로 벽·천장은 용광로/옷찢어 창문 막으며 가스유입 온힘차단 『살아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아요』 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지방공사 강남병원.52시간 동안 죽음의 터널에 갇혀있다 1일밤 극적으로 구출된 삼풍백화점 청소용역회사인 신천개발 소속 환경미화원 24명은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냈지만 아직도 저승속을 해메는 기분이다. 간밤의 구조 순간이 문득문득 생각 나면서 살아있구나 하고 어렴풋이 악몽과 탈출의 순간을 더듬는다. 29일 하오 5시 55분.이들은 유난스레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막 마치고 미화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유난스레 무더웠지만 아침부터 에어컨도 나오지 않아 땀이 뒤범벅이 된 하루였다.『식당가 등의 건물이 정상이 아닌데 이렇게 두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구먼』 누군가의 걱정스런 목소리도 들렸다.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을 울렸고 순식간에 눈앞이 깜깜해 지는 것을 느꼈다. 『놀란 동료직원들의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뒤엉겼습니다』 임춘화(64·여·은평구 갈현동)씨는 커다란 폭탄이 떨어진 줄 알았다고 말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옆방 남자탈의실에 있던 남자직원들이 유독가스를 피해 창문을 통해 여자탈의실로 건너왔다.옷으로 창문을 막아 가스유입을 차단했다.4평남짓한 공간에 남자 10명,여자 14명이 몰려앉았다.건물전체가 무너지는 충격에서도 천장이 지하 2층 주차장 바닥 아래여서 천장이 비스듬하게 내려앉았기 때문에 몰사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었다. 이어 주차장 차들이 연쇄폭발을 일으키면서 요란한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대부분 50∼60대의 고령인 이들은 『침착하게 살길을 찾아보자』며 서로를 진정시켰다.이계준씨(62)등 2명이 반장역할을 했다. 남자들은 마침 하나 남아있던 야근자용 손전등으로 무너진 건물더미로 보이는 쥐구멍만한 틈새를 찾아내 쇠파이프로 마구 쑤셨다.나머지는 『살려달라』고 구원을 외쳤다.헛수고였다. 하지만 이들은 좌절하지 않았다.『일주일이상 굶어도 살 수 있다더라』,『우리가 고생하며 산 것을 생각해서라도 꼭 살아돌아가야 한다』 서로를 격려했다. 벽과 천장은 불길로 달구어져 손을 댈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시간이 흐를수록 목이 타들어 갔다.오줌을 받아두었다가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좀더 기다리다보니 마침 비가 내렸고 구조대들이 뿌린 물이 흘러들었다. 이 물로 모두들 목을 축였다.목숨을 이어준 생명수였다. 그러나 위험은 계속됐다.비교적 가스가 덜 스며들던 여자탈의실 천장이 무너진 건물더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점점 내려앉고 있었다.마침내 앉은채로 머리가 닿을 정도가 되자 모두 가스가 차있는 남자탈의실로 이동했다. 함께 주저앉아 기다리기를 한참 뒤 기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졌다.이때 『쿵… 쿵…』하는 진동음이 들렸다. 『구조대다』 누군가 소리쳤다.모두 힘을 모아 『살려달라』고 절규했다.갑자기 불빛이 눈앞에 번쩍거렸다. 30일 상오 11시30분쯤이었다.구조의 첫 신호였다. 『거기 누구 있어요』,『몇명이 살아있습니까』 구조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이젠 살았구나』 환호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구조대원들이 가끔씩말을 걸어왔으나 구조의 손길이 닿기에는 너무 두꺼운 장벽이 있어 한때 초조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다행히 한 생존자가 손전등을 계속 비춰 그 불빛을 따라 구조작업이 계속됐다.6∼7시간의 작업끝에 마침내 주먹이 들어갈만한 구멍이 뚫렸다.저승에서 삶으로 이어주는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생존 24인 입원 병원 주변/“궂은일 하는 사람이라 하늘이 도왔다”/“사고 자리에 추모탑 세워 후세 교훈 삼자” ○…1일밤 기적같은 드라마를 연출하며 53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조돼 삼성동 강남병원에 입원해 있는 생존자 24명은 김석호씨(60) 1명만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뿐 나머지는 모두 건강이 양호한 상태. 중환자실에 있는 김씨도 혈압이 좀 높아서 관찰하는 것일뿐 건강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병원측은 설명. ○…이들은 또 갇혀있던 지하 3층에 가득차 있던 물로 인해 다리가 심하게 부어 올라 있었고 갑작스런 불빛에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이날까지도 수건으로 눈을 가린 상태. 구조당시 입술이 하얗게 말라 있는 등 매우 지친 표정이었던 이들은 이날 부터 건강이 크게 회복.이들은 친지가 나타나자 서로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으며 간단히 서로 말을 주고 받는 등 예상보다는 빠른 회복. 병원측은 그러나 긴장이 풀려 호흡곤란 등의 증세를 보이는 등 이따금 증세가 나빠지는 생존자는 가족외의 면회를 제한. 생존자 가족들은 『궂은 일을 맡아서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라 하늘이 도와준 것같다』고 입을 모으기도. 『다른 분들도 많이 구조되고 있느냐』며 여유를 되찾은 생존자 윤성희(60)씨는 『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 충혼탑을 세워 후세에 교훈이 되게 해야 한다』고 한마디. ○…이에앞서 생존자 24명이 1일밤 앰뷸런스에 실려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병원에 속속 도착하자 수백명의 가족과 친지들이 몰려들어 병원전체가 아수라장. 병원에 도착한 생존자들 가운데 자신들의 부모·형제가 확인될 때마다 몰려든 가족과 친지들은 『아버지가 살았어』 『와』하며 환호성과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 생존자 가운데 최동성씨(51)의 부인 이남순씨(47)는 남편의 무사함을 확인하자 말을 잇지 못한채 울먹이다 실신,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치료를 받기도. 또 가족의 생환을 확인한 사람들이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병원내 공중전화 부스로 몰려드는 바람에 전화부스 부근이 북새통을 이루기도.
  • 서예가 여초 김응현(이세기의 인물탐구:77)

    ◎비학과 첩학을 접목한 온자한 서풍/우리 전통서예 존중,「옛것」 부활 노력/동방연서회 설립… 후학 7천명 양성/보통학교때 붓글씨 시작… 단 1점의 타작도 안써 「고졸하나 우둔하지 않고 활달하나 법도가 있고 염미하나 속되지 않고 웅혼하나 패도하지 않아 강과 유가 서로 돕고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다」,즉 『글자마다 생동미 넘치는 운필은 자연스러운 리듬과 균형미에 따라 「중화의 기」가 흐른다』는 뜻이다.이는 여초 김응현 서법에 대한 종명선 교수(서안교대)의 평이다.종교수는 현재 중국서협 학술위원이며 평론가,중국서법대가의 한 사람이다.지난 92년 한·중건교기념 김응현서법전에 붙여진 이 찬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경사범대 교수이며 당대 명서법가로 명성을 떨치는 계공은 여초의 서법을 전대의 대가인 추사와 비유하는데 아무 주저함이 없다.우선 두 사람이 모두 「금석고고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비학과 첩학의 접목을 중시하여 자재로운 천취를 얻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단지 추사의 글씨가 「바람을 끼고 비를 몰고오듯 유유자적하게 걸어나오는 데 비해 여초의 서법은 유고유아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70년대 북경서 초대전 널리 알려지다시피 여초는 우리 서예계에서 옛것을 존중하여 전통을 부활시키며 이를 연구하여 마침내 새로운 것을 이뤄내는 데 전생애적 노력을 기울여온 원로다. 그는 일찍이 국제무대로 눈을 돌려 70년대 중반에 대북과 도쿄에서 각각 초대전을 가졌고 80년대말에는 본격적으로 중국본토에 진출하여 북경의 계공,상해의 사치유·왕북악등과 교분을 트면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에서 개인전을 개최,연변·장춘·심양등을 순회하여 그곳 서예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중국여행중 발표한 「당대의 해서가 동국에 미친 영향」 「안진경이 한·일서법에 끼친 영향」제하의 논문은 「중원시대의 문자와 단군시대의 문자,중원서법과 고구려의 인연관계」를 정밀하게 파헤쳤고 「동방의 금석은 자발적으로 진전됐으며 서체 또한 중국 영향권에만 있어왔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여 한·중 학자간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그러나 「심도 있는 견해와 견실한 입론,광활한 사로로 펼쳐진 그의 문장은 추호의 빈틈 없는 치학태도」로 평가되어 오히려 중국 서법가들의 공감과 호감을 산 바 있다. 여초의 초기의 서법은 주로 진의 왕희지,당의 구양순,원의 조맹부에 영향을 받아 「새벽바람 속의 잔월(효풍잔월) 같은 청려,대해파도 같은 웅호,뜬구름 스치듯한 표일,고하고 졸하며 기하고 위한 여러 글씨체를 지나」비학을 통한 광개토왕비체와 훈민정음체를 탐구하면서 「화려와 아첨(유미)을 몰아낸 강건한 주경을 성취」한 것으로 대찬되고 있다. 그는 18대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대부명가의 후손이다.그의 증조부는 구한말 종일품벼슬을 지내다 경술국치때 순국한 김석진 학자이며 조부는 비서원승직을 지낸 동강 김영한,창문여고 설립자인 김윤동씨의 5남3녀중 3남으로 태어나 숭인보통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벌써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고 휘문중시절 동몽선습과 명심보감,율곡의 격몽요결 등 옛명현의 시문에 접근해 있었다.그러다가 1944년 아무 연고없이 일경에 연행됐다가 풀려나온 데 대한 후유증으로 도봉동 초가에 묻혀 그때부터 법첩으로 독학한 것이 친형인 김충현·창현 등과 함께 서예의 길을 걷게 된 동기다. ○불의에 타협않는 성품 성품이 꼿꼿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그는 50년대 중반 「평론 없는 분야는 독립된 분야로 성립될 수 없다」는 자각에서 60년대초까지 스스로 필봉을 휘둘러 「붓에 먹을 찍어서 종이에 긋기만 하면 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문의 뜻도 모른 채 쓰거나 글씨를 그림그리듯 하거나 남의 글씨를 임서하거나 손끝의 재주로 숙달된 필체」가 아닌,「오랜 서법에 의해 연마되고 탁마된 고매한 인격에서 우러나온 작품」을 주장해왔고 국전 서예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선현의 가언경구나 명문장을 선택하여 민족의 나갈 바를 열어주는 진취성 있고 주체적인 내용」,그리고 「아무리 원로라도 공부하지 않는 원로」는 심사위원으로 추대할 수 없으며 「추호의 사정이 깃들이지 않은 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심사원 선출」을 역설하여 서예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서예계의 난맥상을 쇄신한다는 차원에서 56년 체계적인 서예연구와 보급을 위해 지금의 동방연서회를 창립,전예해행초 오체의 철저한 연구와 훈련끝에 그동안 배출한 서예인만도 7천여명,서예전문지 「서통」을 지난 30년간 개인의 힘으로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다. 그가 평생을 두고 신조로 삼는 것은 노자의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라는 글귀다.「스스로의 만족됨을 알게 된다면 부끄러움이 있지 아니하고 그칠 바를 알아서 위태롭지 아니하여 오랠 수 있다」는 경구다. 그런 그에게 사욕이란 있을 수 없다.더구나 지난 91년 봄 손위 형인 창현씨가 「대화도중 갑자기 쓰러져 타계」하는 것을 보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인생」에 무상을 절감한 나머지 그해 여름 자신의 사재 18억원을 출연,「사람은 사라져도 세상에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을 남긴다는 취지와 함께 동방연서회를 재단법인으로 재출범시켰다. 그는 지금도 새벽이면 도봉동에 있는 그의 집을 나와 아침 8시 서실이 있는 동방연서회에 도착,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서실은 글씨를 쓰는 책상외에 방안 가득히 서법에 관한 서적이 산적해 있고 행길가인데도 난향과 수석과 녹차향 때문일까,온자한 서풍이 감도는 속에서 그는 「오늘은 심선이 그려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엄숙히 자문해본다.낙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라도 그는 한점의 타작도 용납치 않으려는 주의다.그래서 한평생 붓을 잡으면서도 지금까지 아무 때나 기분내키는대로 가볍게 붓을 잡은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심기가 평화롭고 사방이 청결하고 날씨가 화창하면 그날은 왠지 일점일획에도 오차가 없는 「정수」가 탄생될 것을 기대해 볼 뿐이다. ○세속적 취향과는 멀어 전보다 많이 옳은 말을 줄이고 일체의 세속적 취향에 타협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골프를 하고 싶어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일조」하는 것같아 철저히 외면한다.물론 서예와 관련된 모든 잡사에도 끼어들지 않는다.하오에는 문중 사람을 더러 만나지만 특별히 친분 있는 사람도,그렇다고 서로 소원할 필요도 없이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시기다.다만 그의 개인전을 집중적으로 주선해온 동방화랑의 서정철사장과는 30여년간 난향 같은 청교를 나눈다.가족은 부인 강영순 여사와 5남매,서예를 잇는 자녀는 없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안되는 것이 글씨다.서법은 쓰는 사람의 내면의 성숙과 외율의 조화이기 때문에 천질만으로도 부족하고 노력만으로도 미치지 못한다.따라서 서예는 미숙만이 있을 뿐 영원한 프로는 있을 수 없다」.이는 여초의 변이다. 그러나 그 서체가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어 「천외천,예술외 예술」로 찬사되고 있는 시점에 서 있다.명지대 진태하 교수의 평처럼 「고희를 내년으로 앞둔 여초의 세계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넘치는 가운데 원숙과 창로의 경지에 들어 혼연천성하고 묘합자연하여 자신만의 서법언어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이제 그로서는 「예술이상과 예술도에 이른 자신의 지음을 눈부신 지면에 향기로 뿌리는 일만이 남았다. □연보 ▲1927년 서울 출생 ▲46년 휘문중 졸업 ▲51년 고려대 졸업 ▲50∼61년 국회보 주간,국회도서관 창설참여 ▲56년 동방연서회 창립멤버 ▲60년 국전 추천작가 ▲69년동방연서회 이사장 ▲70년 숙대·홍대·성균관대 강사 ▲71년 동방연서회 회장 ▲74년 방화전(중국국립 고궁박물원) ▲75년 국전 초대작가,한중 서법학대회 대회장 ▲76년 현대화랑초청 개인전 ▲78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79년 국제서도연맹초청 개인전(도쿄),중국국립 역사박물관 초청 개인전(대북) ▲80∼현재 한국전각학회 회장 ▲82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83년 신가파 중화서화협회고문 ▲84년 이마미술관 초청 개인전 ▲86년 중앙일보사 초청 개인전 ▲89∼현재 사단법인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 이사장,동방연서회 서법교류 방중단단장 ▲90년 김응현서법전(중국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신가파 제1회 국제서법교류대전 ▲91년 염황예술관이사회 명예이사,절강성박물관·서호서원 명예원장,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종남인사 예술고문,서안서학원 특격원위 ▲92년 김응현·김종길시화전,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의전(추모의전),김응현서법전(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 및 상해) ▲93년 산동대학 동방서화연구원 고문겸 교수,김응현서법전(정주 하남성서화원),하남성서화원 고문 ▲94년 김응현·계공서법전(북경 영보재) 김응현서법전(서울 동방화랑) ▲95년 7월3일부터 8월7일까지 한·중·일 산경 서법전(한국 김응현·중국 계공·일본 임금동 일본 동경 선샤인문화회관)예정
  • 폭탄·무기 소지 “폭파” 위협/일 여객기 납치 이모저모

    ◎“옴교보복 일수도…” 일 열도 공포/“얼음송곳 위협” 기장 첫 타전/F15기 긴급배치… 비상 대비/아사하라 부인 납치범에 투항 호소 ○…죽음의 독가스테러 사건으로 세계를 놀라게했던 옴진리교의 공포가 21일 다시 일본열도를 강타했다. 도쿄지하철 독가스 테러사건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날 옴교 신도로 알려진 범인에 의한 전일호(ANA)여객기 납치사건이 다시 발생, 옴진리교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비난과 증오가 증폭되고 있다. ○…비행기 납치사건이 일어나자 일본자위대는 하코다테 공항에 화학방호부대를 긴급대기태세에 들어가도록 하고 상공에는 항공자위대의 F15 전투기와 F전투지원기를 각각 2대씩 포진시켜 긴장된 초계 태세에 들어갔다. 삿포로에 진주하고 있는 육상자위대도 화학방호부대원 약30명에 대한 출동령을 발동. ○…범인은 얼음깨는 송곳만으로 여객기를 납치했으며 항공관계자들은 범인이 어떻게 얼음송곳을 지니고 비행기를 탈수 있었는지에 대해 큰 의문을 제기. 일본 당국은 일본항공(JAL)기 요도호사건 드어을 계기로공항에 금속탐지기를 비치해 승객의 몸을 철저히 뒤지고 있기 때문에 금속성 칼이나 총기류는 유대가 사실상 불가능 하도록 되어 있다. ○…일정부는 가능한 모든 방책을 강구해 승객들의 안전구출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으로 법질서유지를 위해 범인의 요구에는 단호한 입장으로 대처할 방침. 일정부는 특히 75년 적군파사건 당시의 비난등을 계기로 78년 후쿠다(복전)내각 당시 마련된 「항공기 공중납치에 대한 대처방침」에 입각,아사하라 쇼코(마원창황)옴교 교주의 석방요구 등에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노나카 히로무 자치상(국가공안위원장)과 경찰청장관, 이가라시 고조 관방장관등을 불럴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 ○…범인이 스스로 옴 진리교 신도라며 「고바야시 사부로」라고 밝힌데 대해 ANA측은 그같은 사람이 탑승했음을 확인했으나 옴교측은 짚이는 곳이 없다며 현재 그런 신도가 있는지를 조사중이라고 발표. ○…아사하라 쇼코 옴진리교주의 아내이자 옴진리교주의 대행자 역할을 하고 있는 마쓰모토 토모코는 21일 여객기 납치범들에게 투항하라고 호소. ○…밤이 깊어지자 공항에는 불안한 긴장감이 감돌았으며 대치상황이 계속되면서 일부 승객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고 조종사가 보고.또 단체관광객 안내원으로 기내에 억류돼 있는 여행사 관계자들이 이날 휴대전화로 회사에 연락해온 내용에 따르면 승객들은 눈가리개와 마스크를 한 채 전원 자리에 앉아 있으며 손을 결박당한 상태라는 것.그러나 ANA측은 여행사 안내원들의 이같은 보고에 대해 신빙성이 떨어지는 얘기라며 의문을 제기.납치여객기의 창문은 대부분 가려져 있고 기내 등도 일부 꺼져있으나 에어컨 작동을 위해 보조엔진은 가동. ○…일본당국은 기장을 통해 여객기 납치범과 계속 교섭하고 있으나 당국의 선 인질석방요구와 범인의 연료급유 및 도쿄 회항 요구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ANA에 따르면 범인은 조종석에 들어가 기장을 통해 요구사항을 전달했으며 당국 역시 기장을 통해 범인과 직접 교섭,승객 석방 및 환자 발생시 병원 후송 등을 요구했으나 범인은 이를 거부.일본정부도 연료급유를 허락할 수 없다고 거부. ○…승객 가운데는 유아 등 어린이 7명과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95명이나 포함돼있다고 ANA측이 발표.이 가운데 최고령자는 92세인 것으로 확인됐는데 당국은 저녁시간이 되자 3백70여명분의 오니기리(주먹밥)와 음료수 등을 준비했으나 납치범이 거부. ○…납치된 여객기에 타고있는 한 여승무원은 NHK TV에 전화를 걸어 『납치범들이 폭탄과 다른 무기들을 갖고있다』고 말했다면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납치범들의 협박메세지를 전달.범인은 특히 이날밤 10시35분 6번째 전화를 NHK방송국에 걸어 얼음 송곳은 밖에서 비행기 안으로 갖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면서 자신은 옴교 신도라고 말한적도,이름을 댄 사실도 없다고 강력히 부인. ◎납치기장과 교신 내용 ▲12시3분=2층 객실에서 남자가 얼음송곳으로 위협하고 있다.옴 신자인 것 같다. ▲12시30분=범인의 요구다.활주로에서 연로를 보급하라.객실 유리창의 빛 가리개를 모두 내려라. ▲12시33분=기장이 승객들에게 공중납치사건 발생을 밝혔다.승객들에게는 기내방송으로 12시40분 하코다테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12시47분=(범인으로부터) 활주로에 누구도 접근시키지 말라는 요구다. ▲12시55분=기체에 접근하고 있는 사람 수를 확인해달라. ▲12시59분=범인은 연료보급을 빨리 하라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1시18분=(범인이) 연료보급을 하지 않으면 플라스틱 폭탄 시한장치를 풀겠다고 말하고 있다.
  • 장진홍 의사(이달의 독립운동가)

    ◎대구 조선은행 폭파 “미완의 거사”/일제만행 철저히 조사… 국제사회 고발시도/동경경시청 테러 모색중 붙잡혀 순국자살 『육체는 죽는다해도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위해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겠다』 창려 장진홍 의사(1896년 6월6일∼1930년 6월5일)가 일제에 의해 사형이 확정된뒤 대구 옥중에서 일제총독에게 보낸 서한문의 한 대목이다. 의사는 35년의 짧은 생애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쳐 싸운 독립투사였다. 경북 칠곡 출신인 의사는 19세때인 1914년 조선보병대에 입교,2년동안 군사지식을 배우고는 제대해 곧바로 독립운동단체인 광복단에 가입했다. 국내에서 일경의 감시가 심해지자 의사는 1918년 만주 봉천(심양)을 거쳐 연해주로 건너가 광복단 동료들과 함께 한인 청년 80여명을 규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시베리아출병으로 훈련이 어렵게 되자 다시 귀국,국내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맞았다. 의사는 일제가 독립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제암리 학살사건등을 저지르자 일제의 만행을 철저히 조사,국제사회에 고발코자 전재산을 정리해 한국인 피해조사작업을 펼쳤다. 서적행상으로 가장해 전국곳곳을 돌아다니며 일제의 학살·방화·고문사실등을 기록한 「조사문」을 작성,인천함대에 근무중인 친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의사는 국내 독립운동이 미약해지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에게 타격을 가할 기회를 기다렸다. 마침내 1927년 4월 의사는 동료의 소개로 한국의 독립에 우호적인 일본인 폭약전문가 굴절무삼낭을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굴절로부터 폭탄제조법을 배웠으며 만주와 국내에서 다이너마이트·뇌관등을 구입했다. 의사는 이어 1927년 8월 시험적으로 제조한 2개의 폭탄을 칠곡 산중에서 터뜨리는 폭파시험을 가졌다. 폭파위력을 확인한 의사는 혼자 거사하기로 결심하고 폭탄투척장소를 경북도청·경찰부·조선은행 대구지점·대구 부호가등 5곳으로 선정하는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의사는 거사를 위해 다시 6개의 폭탄을 제조,1927년 10월18일 거사에 나섰다. 이날 상오 9시쯤 자전거에 폭탄을 싣고 대구시내 덕흥여관으로찾아온 선생은 『길전상점 점원인데 이 여관에서 며칠간 묵게 됐다』고 신분을 위장하고 투숙했다. 선생은 이어 상오 11시30분쯤 폭탄을 4개의 벌꿀상자속에 넣어 싼뒤 여관점원에게 『이웃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이 선물상자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점원은 대구지점의 한 일본인 은행원에게 이 상자를 전달했으나 이 은행직원이 폭탄폭발 직전 상자를 열어보는 바람에 폭탄임이 들통났다. 은행원들은 서둘러 폭탄 도화선을 자르고 다른 3개는 길옆으로 내다놓았다. 그러나 11시50분쯤 길옆의 폭탄 3개가 폭발,신고를 받고 쫓아온 일경등 5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은행창문 70여장이 부서졌다. 이 거사로 대구시내는 심한 혼란상태에 빠졌고 일경은 총비상이 걸렸다. 의사는 미리 여관을 나와 선산군의 한 동지집으로 피신해있었다. 일경은 범인을 찾을 수 없자 전에 독립운동을 벌였던 이정기등 8명을 검거,고문으로 거짓조서를 받아 공판에 회부했다.민족저항시인 육사 이원록 선생(건국훈장 애국장)도 이 때 사건에 연루돼 무고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의사는 이어 1928년 다시 영천경찰서등에 폭탄을 투척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일경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아예 일본땅에서 거사를 할 생각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에서 11개월동안 이곳저곳 폭탄투척장소를 물색하던 의사는 동경 일제 중의원과 경시청을 가장 좋은 곳으로 선정하고 거사후 일본을 탈출할 계획까지 치밀하게 짰다. 그러나 일제는 의사에게 이미 혐의를 두고 검거작전을 비밀리에 진행중이었다. 일제는 거사를 며칠 남겨둔 1928년 2월13일 의사가 묵고있던 대판시내 안경점을 급습,의사를 체포했다. 체포된뒤 대구로 압송된 의사는 일경의 심문과정에서 『조선은행 폭탄사건은 혼자 한 일』이라고 강조하고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쳐 동포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의사는 사형이 확정되자 자결순국했다. 정부는 의사의 공을 기려 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 민자 정원식/본사 대학생 명예기자가 본 서울시장후보 「빅3」

    ◎가식 없는 모습·호소력 있는 연설 돋보여 고려대 박중상 유세현장에서 만난 민자당 정원식 서울시장후보는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던 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껏 나는 정후보를 전교조탄압에 앞장선 장본인,밀가루를 뒤집어쓴 국무총리 정도로 알고 있었다.또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했으니 집권여당의 서울시장후보에 동원됐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선거현장에서 마주친 정후보의 모습은 이러한 선입견을 상당부분 지워주었다.시장 구석구석과 달동네를 누비며 유권자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는 검게 탄 그의 얼굴에서 가식의 그늘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또 뙤약볕이 작열하는 연단에서 교통·환경문제에 대한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무사안일을 신랄하게 질책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여당후보가 그래도 되는 건지.그런데도 그가 왜 「예스맨」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을까. 교수출신이라는 선입견 탓인지 몰라도 그의 말은 연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강론에 가까웠다.강단에 서 있는 듯한 약간 구부정한 자세는 오히려 호소력이 있어 보였다.또 「정원식」을 연호하는 청년당원에게 둘러싸여 서울대 앞 주차장과 양재동 근린생활공원에 모인 유권자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설 때도,유권자를 향해 구청장 및 광역의원후보들과 손을 맞잡고 환호에 답할 때도 정치꾼과는 다른 「때묻지 않은 어색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유세 때마다 『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민의 시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또 시원하고 깨끗하며 편안한 모습으로 「새로 나는 서울」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그렇게만 된다면야.누가 시장이 되든 서울의 모습은 달라져야 해.고개를 끄덕이는 유권자의 모습도 간혹 눈에 들어왔다. 선거라면 누구를 비난하고 청중을 자극하는 다분히 쇼맨십이 가미된 선동무대로 생각하던 나는 정후보의 유세를 지켜보며 고정관념을 수정하지 않을 수없었다. ◎민주 조순/즉흥 유세·「공정·깨끗한 표」 유도 인상적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를 여는 지자제선거가 시작됐다.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의 명예기자로서 민주당 조순 서울시장후보의유세에 동행하게 됐다. 조후보는 대학생에게 정치인보다 「경제학원론」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동행취재중 조후보를 가까이서 처음 본 것은 화랑에서 서예를 하던 때였다.하얀 눈썹과 학자풍의 용모가 무척 인상적이었다.백미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정치인과 기자들 사이에서 낯설었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감은 다소 풀렸다.다만 눈코뜰 새 없이 움직이는 선거운동원 속에서 선거전의 긴박감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도 담배 한 개비 피울 여유가 없었다.화려하게 생각하던 유세장의 연단모습은 트럭위의 간이연단으로 다소 의외였다.그러나 좀더 생각하니 간소하면서도 기동성이 있다는 점에서 유리해 보였다. 「살리자 서울」,「포청천 조순」,「경제시장 조순」 등의 캐치프레이즈와 조후보를 열정적으로 외치는 민주당의원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약간 떠는 듯하면서도 준비된 연설문 없이 즉흥적으로 유세하는 조후보의 모습 또한 또렷하게 남는다. 유세장을 바쁘게 움직이면서 시민과 일일이 악수를 하는 모습도 보았다.시민이 정말 「깨끗하고 공정한 표」를 행사하도록 유도하는 느낌이었다.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유권자도 진지했다.나이가 지긋한 분이 많았는데도 더운 날씨에 아랑곳 않고 끝까지 경청했다.한마디마다 박수를 아끼지 않는 모습은 민주시민의 모습이었다. 50여일의 짧은 정치경력에도 경제시장의 강점을 얘기하는 조후보를 보면서 순수하고 소탈한 분이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었다.이화여대에서의 유세는 학생의 수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뒤로 미뤘다고 한다.제자를 아끼는 교육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준 듯하다. ◎무소속 박찬종/성실한 자세 호감… 청중들의 열의 실감 유세장에는 이른바 박수부대가 실제 유권자보다 많다고 들어왔다.그러나 박찬종 후보를 따라 유세장을 찾은 내 눈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대신 유세장의 간소함과 박후보의 격의 없는 자세만이 눈에 들어왔다. 간이연설대를 놓기가 마땅치 않은 곳에서는 육교위로 올라가 마이크 하나만 쥐고 연설하는 박후보의 스스럼없는 태도….시민에게 군림하는 시장이 아닌 시민의 청지기가 되겠다는 그의 연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조심스레 인터뷰를 요청했다.상업문화로 멍든 대학가를 학생에게 다시 되돌려줄 방안을 물었다.박후보는 『대학촌은 대학촌다워야 한다』며 『대학가의 상업문화 침투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대학문화 보존대책으로 책방이나 학생을 위한 토론장소등 학생편의시설에는 재산세를 감면해주는 등의 혜택을 줘 이들이 대학가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성실하게 답변하는 그의 모습은 먼 발치에서 바라볼 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어느 유세장에서건 그의 연설을 듣는 시민의 자세는 무척 진지했다.공감하는 부분에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으며 옆사람과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유세장옆을 지나던 자동차들은 박수 대신 클랙슨을 울렸고 손을 흔들어 응원하는 사람도 보였다.아예 차를 세우고 귀를 기울이는 유권자도 있었다.투표권이 없는 입시생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연설에 집중하는 열의를 보였고 주변 건물의 창문가도,먼 육교위의 계단도 그의 연설을듣는 청중으로 빼곡했다. 유세장을 나서면서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그러나 유세장 뒤편 육교위에 빈바구니를 달랑 놓고 앉아 있는 초라한 행색의 할아버지였다.민선시장이 나타나면 과연 이런 분들이 거리가 아닌 공동시설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지….우리가 뽑은 우리의 시장이라면 이런 우리 사회의 그늘도 말끔히 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 IMF 융자재원/한국도 출연/일지보도/비 선진국들에 확대 방침

    ◎G7회담서 합의 할듯 【도쿄 연합】 서방 선진 7개국(G­7)은 15일부터 열린 정상회담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융자제도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과 사우디 등 선진국 이외 국가에게도 융자재원을 부담시키기로 합의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이는 멕시코 경제위기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형 융자가 시급할 경우 자금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때문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현재 IMF의 일반차입협정(GAB)에는 G­7과 네덜란드,벨기에,스웨덴,스위스 등 11개국이 참가하고 있으나 선진 각국은 멕시코형 통화위기가 다른 신흥 경제국에서 일어날 경우 짧은 기간에 대형 융자를 실시하는데는 불충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G­7 정상들은 이에 따라 11개국이 출연한 자금폭을 배증시키고 대상국도 한국과 사우디 등 비 선진국들에게 확대한다는 방침을 확인하고 경제선언에도 이를 담을 방침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G7회담 개최지 가 핼리팩스/인구11만… 시드니 다음가는 천혜 미항/명물 「녹색 두꺼비」건물 토론장 사용 서방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캐나다의 핼리팩스는 호주 시드니 다음으로 규모가 큰 천혜의 항구도시다. 대서양으로 돌출한 반도인 노바 스코샤주 주도이기도 한 핼리팩스는 상주인구 11만 4천명의 소도시로 지난 83년 회담장이었던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 이후 규모가 가장 작은 도시로 손꼽힌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오타와 다음으로 두번째로 범죄율이 높은 곳으로 지적된다.다만 범죄다발국인 미국에 비하면 연간 살인사건이 4건에 불과할 만큼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도시에는 지난 1756년 독일 이주민들이 지은 35석짜리의 작은 교회가 있는데 헬무트 콜 독일총리가 이곳을 방문,1만달러를 기부할 예정이어서 분위기는 점차 고조되고 있다. G7 정상들의 토론장 중의 하나인 7층 건물은 「녹색 두꺼비」란 별명을 갖고 있다.이는 건물내의 모든 창문이 옅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고 카페트와 벽지도 녹색인데다 동물이 웅크린듯한 건물모양을 하고있어 이같은 애칭이 붙여졌다. 이번 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은 소형 요트와 범선,대서양 해양박물관에서도 재무,외무장관을 배석시킨 채 회의를 가질 예정이며 각국 퍼스트레이디들은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대서양 해안을 따라 1백여㎞ 떨어진 3천년 역사의 루넨버그를 방문할 계획으로 있다.
  • 치과의사 모녀 변사체로/서울/아파트 목욕탄 욕조에 잠긴채 발견

    ◎경찰,반항흔적 등 근거 피살 추정 12일 상오 9시20분쯤 서울 은평구 불광1동 미성아파트 5동708호 이도행(32·외과의사)씨 집 목욕탕에서 부인 최수희(31·치과의사)씨와 딸 화영양(2)이 욕조에서 숨져 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 조부식(60)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경비원 조씨는 『최씨의 집에서 연기가 심하게 나 119 소방대원과 함께 창문을 뜯고 들어가보니 안방 장롱과 침대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으며 최씨와 딸이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엎드린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씨의 목과 팔에 찰과상이 있는 등 반항한 흔적이 있고 숨진 곳까지 불길이 미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루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범행을 위장하기 위해 이들을 살해한 뒤 사체를 옮기고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최씨는 목과 뺨에 상처를 입고 알몸으로 발견됐으며 현관문은 잠겨 있었다. 경찰은 이에따라 최씨 주변 인물이 범행을 저지르고 문을 잠근 뒤 달아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 공산품값 10∼40% 더 내릴수 있다/유통실태와 전망

    ◎인하 어디까지 가능한가/높은 물류비용·특소세가 장애/진공청소기 서울 10만원­LA선 5만9천원/「오렌지」 1병에 할인점­백화점 가격 1천원차 최근 공산품 가격을 인하하는 방법론에 대한 관계부처 간 논쟁이 한창이다.통상산업부는 냉장고와 세탁기·진공청소기·에어컨·오디오 세트·VTR 등의 가전제품에 물리는 특별소비세 때문에 가격이 외국에 비해 높다고 주장한다.특별소비세를 더 낮춰야 합리적인 가격인하가 가능하다는 시각이다.반면 물가당국인 재정경제원은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다.특별소비세를 면세해 준다고 해도 외국보다 비쌀 뿐 아니라 특별소비세를 물리지 않는 신사복과 카메라·커피 등의 품목도 역시 외국보다 비싸다는 근거를 댄다.업계의 가격인하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과 3일 국내 주요 가전사들은 냉장고와 에어컨 등 7대 가전제품의 가격을 내렸다.결국 정부 부처간의 논쟁이나 당사자인 가전업계의 가격인하 조치는 우리나라의 공산품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이다.물론 일부가전업체는 경쟁사의 인하정책에 밀릴 수 없어 따라간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공산품 가격은 과연 내릴 수 있는 것일까.우리나라의 공산품 가격이 비싸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해 준 것은 최근의 일이다.재정경제원과 소비자보호원이 서울등 세계 8개 도시에서 43개 품목을 조사해 지난 달 23일 발표한 「국내외 공산품의 가격차이 현황」에서 실태가 처음 드러났다. 일본의 경우 80년부터 경제기획청에서 국내외 가격차에 대한 조사를 연례적으로 실시하는등 선진국의 경우 이런 조사가 정기적으로 이뤄진다.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한 것이어서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조사대상 도시 중 도쿄를 제외한 싱가포르나 파리·런던·뉴욕·로스앤젤레스 등은 물가가 안정된 곳으로,우리나라가 모델로 삼기 위해 선택했다. 품목별 가격의 실태를 보면 예컨대,서울에서 10만원을 줘야 하는 진공청소기는 물가가 가장 비싸다는 도쿄에서는 9만3천4백원이면 살 수 있다.타이베이(6만4천6백원)나 싱가포르(4만5천6백원),파리(7만2천5백원),런던(5만3천5백원),뉴욕(7만2천2백원),로스앤젤레스(5만9천원)는 훨씬 더 쌌다. 서울에서 1백만원짜리인 TV를 도쿄에서는 96만8천원에 살 수 있으며,뉴욕(47만원)과 로스앤젤레스(42만1천원)의 가격은 서울의 절반도 안됐다.카메라도 서울이 가장 비쌌으며,뉴욕보다는 3배 가까이 비쌌다.시계와 컴퓨터도 8개 도시 중 서울이 최고였고,아동복의 경우 서울은 싱가포르의 4배 수준이나 됐다. 국내외 가격 차이가 큰 것은 물론 국내제품의 경우도 판매업소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소비자보호원이 지난 달 3∼10일 백화점과 슈퍼마켓 및 할인매장 등 21개 업소를 대상으로 43개의 식품 및 생활용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 1.5ℓ짜리 후레시 오렌지의 경우 E마트에서는 1천3백원인 반면 애경백화점은 2천4백원으로 1천1백원(84.6%)의 가격차이가 났다.프라이스클럽에서 1천6백원하는 8백g짜리 리본표 마요네즈를 삼양유통에서는 1천1백80원(73.8%) 비싼 2천7백80원을 받았다. 나산백화점에서 4백58원밖에 안하는 1백20g짜리 리도 한방쑥 비누를 한양유통에서는 2백62원(57.2%)이 비싼 7백20원을 줘야 살 수 있었다.한신코아에서 1천7백원인 3백g짜리 오양맛살도 그랜드백화점에서는 2천5백50원으로 8백50원(50%)이 비쌌다. 12ℓ짜리 생수통인 바이오 탱크와 아트만(A­3) 칫솔도 판매업소에 따라 각각 최고 9천7백원(71.9%)과 6백10원(51.3%)의 가격차이가 났다.기호품인 커피(1백50g짜리 맥스웰 블루엣)는 판매업소에 따라 최저 3천8백원에서 최고 4천8백80원까지 거래됐으며,주류인 패스포드(7백㎖짜리)도 최저 1만8천원에서 최고 2만3천원까지 가격이 달랐다. 우리나라의 공산품 가격이 국내판매업소간에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은 인하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공산품가격이 높은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물류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17.1%나 되는 등 유통산업이 낙후된 것도 한 요인이다.미국의 매출액 대비 물류비용은 7%,일본은 11.3%로 우리보다 낮다. 가전제품 및 의류를 중심으로 전속대리점 형태의 유통 계열화를 통한 공산품 가격의 통제로 유통단계에서의 경쟁이 미흡하며,냉장고와 세탁기·에어컨 등 일부 가전제품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가 31∼45.75%로 3∼25%인 외국에 비해 높은 점 등도 꼽힌다. 제품의 판매장소 별 가격과 안정성 등에 대한 상품정보 및 거래조건도 대부분 제조업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실정이다.이는 결국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 및 시장경쟁을 저해해 제품의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재경원 조성익 소비자정책과장은 『공산품의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한 근본 대책은 국내외 업체간 경쟁을 촉진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실제로 지난 2∼3월 기성 숙녀복 제조업체의 재무구조와 가격 및 유통구조를 파악해 봤더니 가격 및 이익률이 몹시 높았다』며 『기술개발 및 유통시설의 확충 등도 중요하나,업계가 자발적으로 유통마진을 낮추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공산품의 가격을 유통마진 축소를 통해 인하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업계의 가격인하 노력이 기대된다. □공산품값 인하에 대한 정부·업계 입장 ◎재경원/“특소세 탓은 잘못… 물류비 줄여야” 재정경제원은 특별소비세때문에 공산품 값이 주요국보다 비싸다는 통상산업부와 업계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특소세가 공산품의 값을 높인 하나의 이유는 되지만 전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얘기다.소비자보호원의 분석을 보면 냉장고와 에어컨,진공청소기 등 6개 가전제품의 경우 소비관련 세금을 전혀 안물려도 외국제품보다 1.2∼2·7배,이불이나 신사복 등 9개 제품도 1.2∼3.7배 비싸다.따라서 세금때문에 공산품 값이 비싸다는 건 어불성설이며,특소세 역시 지난 해 현실에 맞게 개편한 만큼 추가인하는 어렵다고 맞선다. 재경원은 세율인하보다는 국내 수입을 억제하는 수입선 다변화정책의 해제나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유통구조의 혁신이 오히려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여기에 상품정보와 거래조건이 제조업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공됨으로써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과 경쟁을 제한하고 있어 자율인하와 함께 불공정 유통거래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재경원 관계자는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을 통해 값을 내리고 유통산업의 규제완화를 통한 유통혁신과 TV 등 수입선다변화 품목의 조기 해제,과다한 유통마진에 대한 공정거래조사가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통산부/“업계 자율로… 제품 부실화 없어야” 통상산업부는 공산품의 가격인하에 원칙적으로 찬성이다.그러나 가격인하가 하청업체에 대한 가격인하 압력으로 이어져 제품이 부실해지거나 잦은 모델변경으로 연결될 경우 소비자들이 가격인하의 혜택을 보지 못하게 돼 무리한 인하는 금물이라는 입장이다. 통산부는 특별소비세 때문에 공산품 값이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인식은 갖고 있다.따라서 가전제품 등의 특소세율을 조정하면서 한편으론 업계의 자율인하를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사실 통산부는 지난 해 재경원의 요청에 따라 가전3사를 닦달해 가격인하를 이끌어냈다.최근 가전업체들이 값을 다시 내린 것 역시 통산부의 입김이 음으로 양으로 작용했다. 통산부는 그러나 가격인하가 품질저하로 연결되지 않도록 공업진흥청을 통해 가격인하를 전후해 품질조사를 하겠다는 방침이다.그동안 가격인하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제품의 내용을 바꾸는사례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기업이 값인하를 이유로 하청기업에 부품가격 인하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보고 부당거래의 단속과 함께 재경원에 특소세율의 합리적인 조정을 요청 중이다. ◎삼성전자/“손해 감수… 고객에 경영성과 환원” 재정경제원은 지난달 23일 전세계 8개 도시의 43개 공산품 가격을 조사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 물가수준이 일본 도쿄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다고 발표했다. 특히 가전제품이 다른 도시에 비해 매우 큰 가격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자료에 대해 업계로서는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8개 도시의 43개 제품 비교는 각국의 문화와 제품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이다.예를 들어 외국 에어컨은 주로 창문형이고 우리나라는 분리형으로 대체로 분리형이 창문형에 비해 가격이 3배 비싸다. 둘째,국내 공산품이 비싼것은 사실상 간접세가 높기 때문이다.가전제품 특히 TV의 경우 세금이 제품값의 30%를 넘고 에어컨은 절반을 세금으로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일「95고객신권리선언」을 발표하고 7대 가전제품에 대해 최고 16.3%에서 최저 2.8%까지 평균 6.5%의 가격인하를 단행했다. 가격인하조치로 삼성전자는 연말까지 약1천억원 상당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신경영 2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경영성과를 고객에게 환원하는 차원에서 실시하게 됐다. 전자업계가 자발적인 가격인하로 물가안정에 기여한데 이어 이제는 사회인프라 구축으로 물류개선과 간접세 인하를 통해 우리 제품의 국제경쟁력이 향상되기를 바란다.
  • 손탁호텔 그후(외언내언)

    미스 손탁(손·).풍운 감돌던 구한말 개화기에 서양문물을 우리 궁중에 보급했던 여인이다.손탁(Sontag)은 1895년 러시아공사 웨베르가 서울에 부임할 때 따라 들어온 독일여성.프랑스에서 손탁은 서양식 식기와 장식품,악기와 의복을 가져와 고종의 궁중에 보급,궁중의 생활양식을 서양화하는데 한몫을 한다. 그러나 그보다 미스 손탁은 서울 정동에 세운 「손탁호텔」로 더 유명하다.그녀가 1902년에 세운 호텔은 서울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외교무대의 중심지가 되었다. 각국 대사들이 연회에 몰려들었고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는 등 사교장으로,외교 1번지로 각광을 받았다.자연 미스 손탁은 사교계의 여왕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고종으로부터 경운궁(지금의 덕수궁)건너편에 있던 땅을 하사받아 호텔을 세웠다고 하니 고종의 총애도 두터웠던 듯 하다. 손탁호텔은 러시아계통의 2층양옥으로 우리 건축사에도 이름이 오를 정도.건물 전면이 아치형 창문으로 꾸며져 낭만적 정취를 풍기는 건축물이다.1904년 러·일전쟁때 영국의 처칠총리가 신문기자시절 방한해 이 호텔서 하룻밤 숙박을 했다.개화의 상징이기도 했던 손탁호텔은 일제 강점이후 옛 영화를 잃기 시작했다.마침내 1917년 이화학당에 팔려 교실과 기숙사로 사용되다가 1922년 헐리는 비운을 맞는다. 손탁호텔의 옛터에 다시 호텔이 들어선 것은 1969년,3층건물의 하남호텔이 문을 열었다.정동교회 맞은편 비교적 한산한 길가에 고풍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구한말 서울최초의 서양식 손탁호텔의 영예를 이어 받은 호텔이라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외관이었다. 1급호텔이 우후죽순격으로 이곳저곳에 세워지면서 하남호텔은 이름만 호텔이지 여관급으로 격하되었다.그 하남호텔도 명맥을 더 잇지 못하고 최근 헐리고 말았다.손탁호텔로부터 93년만에 우리나라 호텔 1호의 대가 끊긴 셈이다.
  • 사할린 진도 7.5강진/“2천5백명 사망”

    ◎네프테고르스크시 완전 폐허/러 통신 보도/러,즉각 재난지역 선포… 구조반 급파/우리동포 3만명 거주… 큰 피해 우려 【모스크바·유즈노사할린스크·런던 외신 종합】 28일 새벽(한국시간 27일 밤) 사할린섬 북부지역을 강타한 리히터 규모 7·5의 강진으로 최고 2천5백여명이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이 28일 이 지역 민방위본부 책임자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타스통신은 이번 지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할린 북부 네프테고르스크는 도시 전체가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사할린 주정부 당국은 지진으로 19층의 건물 한채와 20개동의 아파트가 붕괴되면서 70명이 숨지고 2천명 이상이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있다고 밝혔었다. 한편 인테르팍스 통신도 비탈리 고밀레프스키 사할린 부지사의 말을 인용,총인구 3천5백여명의 네프테고르스크에서 즉각 구조된 사람은 5백여명에 불과하며 지진발생 지역이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짙은 안개로 덮여 구조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해 나머지 3천여명은 구조가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네프테고르스크를 탈출한 목격자들은 지진이 일어나면서 5층짜리 건물 16개동이 일제히 무너져 내렸으며 아파트 창문이 모조리 깨지고 벽에 금이 가면서 건물 전체가 무너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이날 지진으로 오하시와 네프테고르스크시 근처 모스칼보 마을 등 일부 지역의 통신이 두절됐다.한편 러시아 극동재해대책센터는 지진피해 지역을 즉시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긴급구조반을 현지에 파견했으나 현지의 도로사정이 나빠 현장도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하바로프스크와 모스크바에서도 구조팀이 급조돼 현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지진은 지난 1월 일본 고베지역을 강타한 리히터 진도 7.2의 지진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진앙지는 오하시 북쪽 70㎞ 떨어진 엘리자베타곶 인근 바다속인 것으로 관측됐다. ◎총인구는 75만 사할린은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사할린섬과 쿠릴열도 등 섬으로 구성된 행정구역으로 면적은 8만7천1백㎦이며 전체 인구는 75만여명.이 가운데 2,3세를 포함한 우리 동포는 3만5천2백여명(94년 통계)에 이른다. 우리 동포들은 현재 주도인 유주노 사할린스크를 비롯한 사할린 각 지역에 산재해 거주하고 있어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김 대통령 위로전문 김영삼 대통령은 28일 하오 러시아 사할린지방 네프테고르스크시에서 발생한 지진참변과 관련,러시아 옐친대통령에게 위로전문을 보냈다.
  • 달리는 차 번호 자동인식… 통행료 부과/「주행물체 인식시스템」개발

    ◎KAIST 연구팀/마이크로파 이용 CPU­자동차 응답기 교신/시속 2백㎞까지 가능… 미·유럽3국선 실용화 달리는 차량의 번호를 자동으로 인식해 요금징수원 없이도 통행료 등을 부과할 수 있는 지능고속도로의 핵심시스템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및 전자공학과 이용훈 교수팀은 24일 통상산업부 공업기반기술사업 과제로 「주행물체 인식시스템」을 2년간의 연구끝에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번 기술을 우선 주차장의 주차요금관리와 건설현장의 레미콘트럭 출입관리,김포매립지와 같은 대형 쓰레기매립장 차량출입관리,포항제철과 같은 대형 생산공장의 화물차통제 자동화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시스템을 발전시킬 경우 도심의 터널통행료,도시고속도로통행료는 물론 고속도로통행료 징수도 무인징수로 자동화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말 고속도로 톨게이트앞에서는 요금징수절차 자체가 교통체증의 한 원인이며 러시아워때 도심의 터널앞도 마찬가지.그러나 이 시스템을 설치하면 통행료징수대 앞에서도 논스톱으로 달릴수 있어 차량소통이 한결 원활해질 뿐더러 징수관리원도 필요없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주행물체 인식시스템」은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질문기와 응답기로 구성된다.질문기는 통행료징수대 위에 설치되고 응답기는 신용카드크기로 만들어져 운전자의 옆창문에 부착된다. 달리는 자동차가 질문기 3m전방에 접근하면 질문기는 1천분의 5초당 1회 간격으로 마이크로파를 발사해 질문을 보내고 응답기는 이 질문을 받아 변조신호로 응답한다.이때 응답기는 미리 저장해 둔 차량번호등의 정보를 질문기에 알려줌으로써 자동으로 요금징수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자동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2백㎞.실제로 이교수팀은 과학기술원 주차장에서 시속 20·40·60㎞ 속도로 인식실험을 한 결과 50회 주행에서 1백% 정확률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시스템이 현재 통신할 수 있는 정보량은 40비트 정도다. 하지만 이를 확장할 경우 차량번호는 물론 통장계좌번호,소유주이름까지도 집어 넣을 수 있다는 이교수의 설명.또 응답기를 선불카드 형태로 만들 경우 징수대를 1회 통과할 때마다 자동으로 액면가(예를 들면 1만원짜리)에서 요금이 징수되도록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행물체 인식시스템」은 전국 도로망이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관련DB가 구축될 경우 요금과금은 물론 통행량조절등 엄청난 교통난 완화효과를 가져올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우정성은 97년 실용화,영국은 98년 실용화를 목표로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고 미국과 북유럽3개국은 이를 일부 실용화한 단계에 있는 실정이다.국내의 경우도 서울시가 도심통행료 징수방법으로 전자카드제 도입계획을 밝힌바 있다. 이 교수는 『이 시스템을 국산화하려면 신뢰도 향상연구등이 뒤따라야 한다』면서 이 분야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요망했다.
  • 밤중에 교무실 침입/고교생 시험지 훔쳐/과천고 9명이나

    【성남=김명승 기자】 경기도 성남시 성일고교에서 교사가 중간고사 시험지와 답안지를 빼내 학생에게 넘겨준 데 이어 과천시 과천고교에서도 학생들이 중간고사 시험문제를 사전에 빼낸 사실이 드러났다. 학교관계자는 3학년생 5명과 2학년생 4명 등 9명이 중간고사 전인 지난 1∼5일 한밤중에 2층 창문을 통해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 출제교사들의 책상 서랍을 뜯고 3학년의 국어·영어·수학 등 5개 과목 시험지와 2학년의 국어·영어 등 4개과목 시험지를 베껴갔다고 말했다.
  • 담넘은 나뭇가지로 소송·배상이라(박갑천 칼럼)

    도시에는 이웃이 없다고들 말한다.옆집주인 이름을 모른다.얼굴이 익지 않으니 인사도 없다.뭣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것 또한 당연하다.물론 이웃사촌같이 지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생활정도가 나은 동네일수록 더 폐쇄적인 게 현실인 듯하다. 그래서 한지붕아래 사는 노인이 죽은것도 모르고 지내다가 며칠후에야 발견되기도 한다.상대방을 알게되는 계기가 대체로 좋잖은 일일 때라는 게 도시생활의 이웃관계이다.상하수도문제로 말썽이 난 경우라든지 집을 지으려면서 일조권문제 등을 두고 다툰다든지…. 얼마전의 한 고소사건도 그것이다.서울 연희동에서의 일.자기집 나뭇가지가 이웃집 담장을 넘어갔는데 그집 주인이 그걸 잘라낸 데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피고는 원고에게 30만원을 지급하라는 것이 법원의 판결.「정신적 고통을 받은데 대한 배상」이라는 것이 이유였다.결딱지싸움의 결과였다고는 하겠으나 이웃끼리 이 무슨 망신이람. 복린이란 말이 「춘추좌씨전」에 나온다.주거를 정하기전에 먼저 그 이웃의 선악을 점친다는데서였다.「명심보감」(성심편)에는 신종황제의 말을 인용한 거필택린이라는 말도 보인다.주거를 정하려면서는 이웃을 먼저 가려야 한다는 뜻이다.한다지만 오늘의 사회에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어쨌거나 두집안 감정의 앙금은 깊을 듯하다.어느쪽인가 이사갈 마음이 날것도 같다. 이와 관련해서는 야사 한토막이 떠오른다.만취당 권율과 백사 이항복의 이야기이다.이백사의 집 감나무가 담을 넘어 이웃 권만취당 집으로 뻗어나갔다.그런데 그집종들이 담넘어 와 열린 감은 자기들거라고 우김으로써 종들 사이에 티격태격이 벌어진다.나이어린 이항복의 베거리가 깜찍하다.권율의 집을 찾아가 다짜고짜 창문으로 제주먹을 들이밀면서 묻는다.『이게 뉘주먹입니까?』이 서낙한 뚱딴지 짓에 움찔할밖에.『네주먹이지 뉘주먹이란 말이냐』『방안으로 들어갔는데도요?』『그렇더라도 네주먹이지 내주먹이겠느냐』.더이상의 사살은 필요없다.「감」재판은 끝난 게 아닌가.훗날의 오성대감 이항복은 행주산성싸움의 영웅 권율장군의 사위가 된다. 네것내것에 앞서 여유가 풍겨 엇구수해지는 느낌이다.그게 멀리사는 사촌 못지않다는 이웃의 정리 아닐지.한데,소송에 배상이라….『존속살해사건 9일에 한건꼴』(강지원 사법연수원교수)사회의 이웃이니 그렇다고 망단할 건가.
  • 급변하는 성도 곤명시(운남성을 가다:5)

    ◎외국인투자액 3년새 25배 급증/매년 12% 고성장속 마약·매춘 오명/일년내내 봄날씨… 관광객 연 백40만/도심 새벽까지 불야성… 부녀자 인신매매 극성 운남성의 성도 곤명시의 하루는 두번 시작된다.상오8시를 전후해서 각기 직장에 출근하면서 공식적인 하루가 시작되지만 퇴근이후 또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하오5∼7시쯤이면 시내의 인도를 온통 노점상들이 차지한다. ○인도 노점상으로 가득 각종 물건과 음식을 파는 장사꾼들로부터 구두닦이,점치는 사람,즉석 건강진단에 나선 병원의사와 의학도,맹인안마사들까지 저녁이면 거리는 커다란 장터가 된다.새벽 1∼2시까지 미용실겸 안마시술소의 불빛과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전거길을 달리는 시민들의 자전거 행렬로 곤명의 밤은 쉼이 없다. 일년내내 봄날씨가 계속된다해서 「상춘지성」이란 별명을 가진 이곳 곤명은「공산당 지배하의 딱딱한 도시」라는 인상이 전혀없이 자유로워 보인다.「서남지역의 진열장」이란 별명답게 중국과 운남성의 고민과 가능성을 모두 안고 있다.마약·매춘·에이즈의 오명과 몇해째 계속되는 12%가 넘는 경제성장률,외국투자의 급증,연 1백40만명이상의 국내외 관광객…. ○차량 연 1백50% 늘어 92년 등소평의 외국투자 제한해제등 전면개방이 시작되면서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91년까지 53㎦였던 도시면적은 몇년사이 1백6㎦로 팽창했으며 자동차는 해마다 1백50%씩 늘고 있다. 외국인투자도 91년 합작기업 35곳,투자액 2천3백만달러에서 지난해엔 6백70곳,5억8천만달러로 기업수는 19배,투자액 25배나 뛰어올랐다. 홍콩·대만기업인들의 투자가 전체투자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미얀마·싱가포르·태국이 투자순위 6위안에 들어있다.이곳엔 태국과 라오스·미얀마영사관이 있고 베트남도 70년대말 관계악화로 철수했던 영사관의 재개설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창문을 여니 신선한 공기와 함께 모기와 파리가 들어온다」는 등소평의 말처럼 부작용도 긍정적 면과 함께 커가고 있다.직업을 위해 농촌을 떠나온 연 30만∼40만명의 유동인구에 따른 부작용은 마약·매춘·치안악화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다.유동인구중 등소평의 고향인 사천성출신이 80%이상이며 택시 살인사건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는게 시 관계자 설명이다.이 때문에 단기체류 노동자에 대한 거주지등기와 증명이 올부터 의무화됐다. ○홍콩·대만기업 대부분 연간 수백명의 여성이 곤명등지에서 납치된다는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85년부터 성 전체에서 단지 수백명의 여성이 납치됐다가 구조됐을 뿐』이라는 성부녀연합회 왕의명회장의 답변에서 인신매매가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김용반점,금화대주점,곤명반점등 별4개의 호텔주위에선 밤은 물론 낮에도 어렵잖게 낯선 남자에게 눈짓하는 「수상한」 여인들에 부딪치는 것도 「신선한 공기」와 함께 들어온 불청객임은 물론이다. ○이농인구 30∼40만 78년 문화대혁명이후 이곳에 온 첫 외국인이었던 미국인 엘리자베스 부즈씨의 표현처럼 이곳은 더이상 『도시전체가 황토빛 느낌』도 아니고,『차를 이따끔씩 구경할 수 있는 널따란 대로에서 중국인 친구들과 유유히 이야기하며 자전거를 모는 즐거움』도 더이상 누릴 수없다.그녀가 영어를 가르쳤던 곤명대학의 붉은 진흙벽돌 담벼락도 이젠 모두 콘크리트로 바뀌었다.우중충한 중국옷대신 갖가지 산뜻한 옷을 차려입은 시민들은 「모기와 파리」는 아랑곳않은채 자유롭고 「신선한 공기」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곤명이 당·송시대 이래 초웅·대리시등을 통해 미얀마 북부와 인도·아라비아까지 중국 차와 도자기등을 실어나르는 주요 무역로의 위치를 되찾고 있음을 반가워한다.왕곤명시장도 『국경무역과 상호 교차투자,인적인 교류와 원자재의 물물교역등 동남아와의 경제적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경제 도약단계에 있다』고 말한다.93년부터 운남·사천·귀주·광시·티베트등 서부지역 5개성이 매년 8월초 곤명에서 동남아회사들을 겨냥한 교역회를 열고 있다.지난해엔 5천4백여명의 외국바이어들이 참가,1억5천만달러의 교역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당나라 때부터 다마로라 불리며 북쪽의 실크로드 못지않게 번성한 무역로였던 곤명루트는 지금은 아름드리나무와 트랙터·가전제품등을 가득 싣고 베트남·미얀마등 국경지역을 오가는 일본제 대형화물차들이 대신한다. ○대동남아 교역 가속화 이강 시정부 비서장은 『이곳과 미얀마북부 라시오시사이의 2∼4차선도로는 2차세계대전당시 일본군과 싸우던 중국군에 무기와 전쟁물자,증원군을 지원하던 「아시아전선의 생명선」 버마(미얀마)로드 또는 스틸웰(장군)로드로 미국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다』고 말한다.프랑스인들에겐 1백년전 「대인도차이나 식민지건설의 영광」이라는 전설로 남아있는 곤명에서 하노이까지의 협궤철도는 제대로 연결이 돼있지 않지만 실제 주요 수송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비서장은 『이곳은 운남성 뿐 아니라 아직 미개발상태에 있는 동남아 북부의 개발을 촉진하고 중국의 개방성과와 방향을 가늠하는 척도역할을 하며 발전할 것』이라며 자신있게 진단했다.
  • 가나팀 라커룸 도둑/현금·가방 등 털어

    14일 한국·가나 올림픽축구대표팀 1차평가전이 열린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가나팀 라커룸에 도둑이 들어 금품을 털어간 사건이 발생. 가나팀 관계자에 따르면 전반전까지는 아무일이 없었으나 평가전이 끝난뒤 하오 4시쯤 라커룸에 돌아와 보니 창문이 뜯겨져 있고 일부 선수들이 가지고 있던 미화 5백달러와 운동화·가방·옷가지등이 없어졌다는 것. 한 축구관계자는 『도둑이 경기장에 나온 축구선수들에게서 무엇을 가져가려고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잃어버린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나선수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분노를 표시.
  • 「O­링 이야기」가 주는교훈/문용인 서울대사범대교수(일요일아침에)

    한강다리를 차로 건널 때마다,물에 빠질 것에 대비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떠돈 적이 있었다.그 이야기가 뜸해질만 하자,새로운 사건이 또 하나 터졌다.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가 그것이다. 재작년부터 연이어 발생하기 시작한 굵직한 사고들을 두고 육·해·공·그리고 강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란 묘한 일치성 때문에 이제는 땅속에서 사고가 날 차례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는데,그것이 우스갯 소리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왜 불안한가. 서울의 아현동과 대구의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의 마무리 과정을 지켜보면서,이런 종류의 사고는 더 이상 일어 나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을 얻지못했기 때문이다.땅속에 묻힌 도시가스 관에 구멍을 뚫은 공사장 인부의 부주의한 실수가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잘 밝혀져 있고,그래서 사건의 마무리도 그런 실수에 대한 책임추궁의 언저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그러나 이 사건을 보는 국민들의 관심은 처벌의 구체적 대상자와 그 내용에 있지 않고,더 이상 그런 부주의한 실수가 재발되지 않게할 대책에 있다. 가스관에 구멍을 낸 공사장의 인부와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그런 실수가 생겨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유도해온 작업체제,사고예방점검체제,회사내 의사결정체제,그리고 건설·토목관련 기업들의 생태환경체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하여 부주의한 실수가 생겨날 틈을 원천적으로 봉쇄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지난 한 두해 사이에 일어난 대형 건설·토목관련 사고에 대해서 과연 어떤 체제 점검 노력이 있었는가.성수대교 붕괴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그렇다.엄청난 사고였다. 사고의 직접 원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그런 직접 원인이 발생하게끔 유도해온 작업체제와 의사결정체제,그리고 기업환경이 더 중요하다.직접적 원인제공 당사자를 아무리 처벌하고 바꾸어도,그런 원인이 생겨나게끔 유도하는 환경체제가 그대로 존재하는 한,사고는 계속 발생케 될 것이기 때문이다. O­링 이야기가 하나의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미국의 우주선 챌린저호의 폭발사고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1986년1월28일 11시39분에 발사된 챌린저 호는 발사대를 떠난지 꼭 73초만에 공중에서 폭파되었고,그안에 탔던 7인의 우주비행사도 죽었다. 대통령 특명조사단이 구성되어 밝힌바에 의하면 고체연료로켓들을 연결하는 부위에 끼워둔 O­링(Ring:일종의 고무바킹)이 부식되어,이곳으로 가스가 샜고,이 가스가 폭발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이른바 직접적 원인은 바로 손가락 굵기 정도의 3.6m길이의 O­링의 기능장애였는데,조사단은 이 O­링과 관련해서 기가막힌 일을 밝혀낸다. 즉,발사전날 저녁,그러니까 발사하기 12시간 전에,폭발한 로켓트제작사의 O­링전문가인 보이스졸리라는 사람이 NASA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O­링의 위험성을 들어 챌린저호의 발사취소를 강력하게 요청했다는 것이다.물론 보이스졸리는 개인의견을 제시한게 아니었고,회사의 공식적 의견을 제시한 것이었다.그러나 NASA측은 그런 발사취소 요청을 거부했고,계획대로 카운트 다운을 해내려 갔다. O­링의 사고 위험성은 NASA 전문가들 사이에선 10여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고,특히 2∼3년전부터는 O­링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제작자들이 구체적 물증까지 제시하며,경고 사인을 보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막기어려웠던 불가항력적 사고는 아니었으며,오히려 사고가 나도록 방치되고,유도된 폭발이었다는 것이다.O­링의 위험성에 대한 심각한 경고를 계속해서 무시 해온 NASA의 의사결정체제가 곧 챌린저 폭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끔 유도해온 원흉이었다. 근자에 발생한 대형 참사들 속에서 「O­링」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내는 일도 중요하지만,더욱 필요한 것은 그런 참사에 대한 경고사인을 무시하고 방치해서,결국 사고를 내도록 유도해내는 기업들의 운영과 작업체제를 개선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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