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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지스탕스 출신 맹렬여성/다니엘여사는 누구인가

    ◎44년 미테랑과 결혼… 인권사업 큰 관심/손 여사와 비원 돌아본 뒤 “감동 받았다”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의 부인 다니엘여사는 누구인가.다니엘여사는 미테랑대통령이 김영삼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다른 대통령의 부인과 마찬가지로 손명순여사와 별도 환담한뒤 하오 5시30분부터 비원을 관람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 대통령부인들은 시간상의 이유로 보통 30분정도 소요되는 경복궁을 관람하는게 통례였다.그러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다니엘여사는 1시간정도 시간을 낼수 있어 비원으로 택했다.비원에는 프랑스어를 하는 안내원이 없어 외무부 의전실에서 대신 안내를 맡았다. 다니엘여사는 먼저 창덕궁에 들러 임금이 정사를 보던 인정전­침전인 대조전­집무실인 선정전­어전회의실인 희정당을 거쳐 비원을 둘러봤다.비원에서는 과거를 보던 영화당­부용정­임금이 책을 읽던 주합루등 8개의 정자를 1간여동안 관람했다.관람도중 궁궐의 여러가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 안내자가 전했다. 다니엘여사는 『한국문화의 정수를 보는 것 같다』며 『무척 감동을 받았다』고 관람 소감을 말했다. 한국 문화재 관람에 1시간을 낼만큼 문화지향적인 다니엘여사의 취미는 역시 예술품 제본.미테랑대통령과는 레지스탕스활동을 하던 지난 44년 결혼했다.당시 다니엘여사는 레지스탕스 연락사무와 부상자치료를 전담하는 간호요원으로 참여했다.미테랑대통령이 레지스탕스 아지트로 사용하던 한 아파트에서 친구동생 사진(다니엘여사)를 보고 그 자리에서 결혼을 결심,결국 그 여인과 결혼을 했다는 얘기는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일화다.다니엘여사는 이론적인 사회주의자로 결혼후 미테랑대통령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미테랑대통령이 공산당을 포함한 좌파연합의 정치노선을 걷는데 일조했다. 현재는 중남미 좌익 혁명세력 지원을 통해 사회당내 국제연맹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인권과 인도주의적 자선 사업에도 큰 관심을 갖고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도 우아함을 잃지않고 있는 다니엘여사는 1924년생으로 올해 나이는 69세.2박3일동안 일정은 대전 EXPO 참관등 거의 미테랑대통령과 함께할 예정이다.
  • 힐러리 “조용한 서울나들이”/내한 1박2일… 일정에 관심집중

    ◎첫날 청와대 거쳐 고궁 관광/둘쨋날은 모친과 「자유시간」 힐러리 클린턴여사(45)의 방한 1박2일은 비교적 소박할 것 같다.그래도 그녀의 당차고,세련된 이미지 때문에 클린턴대통령에 버금가는 뉴스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일본 방문때도 힐러리여사는 뛰어난 패션감각과 돋보인 매너로 갖가지 화제를 뿌렸고 그때마다 매스컴의 초점이 되어왔다.우리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외무부 의전팀이 밝힌 힐러리여사의 공식일정은 청와대에 클린턴대통령과 나란히 도착,방명록에 서명한뒤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손명순여사와 30분 정도 환담한다.그뒤 1시간 정도 짬을 내 청와대 주변 경복궁을 둘러본다.경복궁 관람코스는 2∼3개 정도 잡혀있다.지난번 방한한 독일 콜수상과 호주 키딩수상 부인들은 근정전∼경희루∼햐원지∼향원정 코스였다고 하나 이번에는 정확치 않다.한창 공사중인 조선조 왕비들의 정궁침전 복원현장도 들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관람이 끝나면 국회로 이동,클린턴대통령과 함께 여·야당지도자들을 만나고 이만섭국회의장 부인과 20분 동안 의장공관에서 별도의 환담을 나눈뒤 클린턴의 연설을 경청한다.그리곤 청와대 만찬 참석을 끝으로 공식행사를 모두 마친다. 11일의 비공식 일정은 거의 알려진게 없다.주한미사관이 주관할 뿐 아니라 비공식 행사로 경호상 극비사항이기 때문이다.힐러리여사도 『일요일인 11일은 자유시간으로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클린턴대통령이 전방 미군부대를 방문하는 동안 자신은 어머니 로댐여사와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된다. 지금까지는 이날 아침 서울 정동의 모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본뒤 어머니와 함께 창덕궁의 비원을 둘러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조선조 고유 정원인 비원관람은 미리 일반에 공개되면서 다소 유동적이다. 나머지 3∼4시간은 일본에서 처럼 소핑시간으로 잡혀 있다.장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주한미군들과 외국 여행객들이 즐겨찾는 용산 이태원상가가 유력하다.이러한 일정 가운데 경복궁관람과 교회예배 모습은 일반에 비교적 생생히 전해질 전망이다.
  • 경복궁 등 5대궁 역사교육장화/시민 관리참여 유도

    문화재관리국은 21일 경복궁 창경궁등 5대궁을 궁별로 특성화해 국민 역사교육장으로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문화재관리국은 ▲경복궁은 당초의 계획을 앞당겨 오는 97년까지 조선시대 정궁으로 복원하며 ▲창경궁은 천연기념물등의 전통수목단지로 조성할 방침이다. 또 창덕궁(비원)은 전통조경 보존지역으로,덕수궁은 왕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궁궐로,종묘는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신궁의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각각 특성화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창경궁과 동구릉을 시범지역으로 지정,▲쓰레기통을 없애는 대신「쓰레기 되가져가기 운동」을 벌이고 ▲지역사회·학교등과 자매결연을 맺는등 시민들이 고궁과 능 관리에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 67개 문화유적 정비·부수공사정착 지원

    ◎문체부 주요업무 보고내용/청소년프로그램 1백50종 개발/도덕성회복 범국민적 운동전개 ▷문화예술분야◁ ◇가치관 재정립과 도덕성 회복 ▲인·의·예·지·신 등 선현의 생활체험을 확산시키기 위한 「고전의 세계」등 교재발간과 「이달의 문화인물」사업 활성화 ▲윤리와 도덕성 회복을 위한 범국민적 문화운동 전개 ▲독서 생활화 사업 등 6개 분야 39개 사업을 전개해 전국민이 적극 참여토록 적극 유도. ◇지역문화의 균형 발전 ▲시·도 단위 종합예술제 등 지역 문화예술행사 70개를 중점 지원 ▲국·공립 예술단의 지방 순회공연 확대▲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지방문화원진흥법 제정 추진. ◇민족문화 보존 및 전승 ▲경복궁과 창덕궁 등 일제에 의해 훼손된 문화유산 복원 ▲신라·백제·가야·중원·영산강 유역 등 5대 지역 문화권 67개 유적 정비 ▲오는 4월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복원 완료하는 등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를 순차적 복원 추진 ▲안재호와 오일도의 생가 등 1950년 이전까지의 근세역사 문화인물 유적 40여건 정비. ◇문화 기반시설확충 ▲예술의전당 운영합리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 추진 ▲대구·부여·김해·제주 등 국립지방박물관 건립 ▲시·도 단위의 종합문예회관 계속 건립 ▲96년까지 4백30개의 공공도서관을 세워 선진국 수준인 10만명당 1개의 도서관을 확보하고 도서관 전산망을 확충해 정보의 공급기능을 확대. ▷체육청소년분야◁ ◇청소년 수련터전확충 ▲청소년중앙공원(독립기념관 동쪽기슭)과 한국청소년수련마을(강원도 평창군)을 건립 ▲전국 6천5백20여곳의 문화원 체육관 운동장을 여가공간으로 개방 ▲96년까지 5천1백명의 청소년지도자를 양성,관련 단체등에 의무배치 ▲97년까지 1백50종의 수련프로그램개발 보급,자율성과 책임성함양 ▲문화예술시범학교 30개교 지정및 수련활동과 문화현장학습 학습평가 반영추진 ◇불우청소년복지대책 ▲2백곳의 야간공부방을 올해안에 2백67곳으로 확대 ▲지방청소년 상담실 10곳 설치운영 ◇국민생활체육진흥 ▲누구나 참가할수 있는 생활체육프로그램을 개발,주2∼3회 운동하는 인구를 97년까지 50%까지 확대 ▲시군단위 운동장12곳,체육관 5곳,동네체육시설 5백곳,실내빙상장등 사계절체육시설 5곳 조성 ◇우수선수육성 ▲신인선수8종목 3백명 후보 27종목 1천명을 육성해 올림픽등에 대비 ▲태릉선수촌숙소신축 ◇올림픽성과 확산 ▲「올림픽기념관」등 건립및 한민족체전과 서울평화상 재정립 ◇국제대회유치및 청소년국제협력 ▲태권도의 올림픽종목채택추진 ▲96동계아시안게임및 2002년 월드컵 남북공동개최 추진 ▲중국 쿠바와 체육교류협력추진 ◎공보처 퇴폐언론 자율정화활동 등 강화/종합유선방송 95년초 실시 추진 ◇언론의 자유영역 확대와 발전을 위한 지원 ▲구시대의 잔재인 「규제적 발상」을 완전 청산하여 문민시대에 걸맞는 언론자유를 창달할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기자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연수활동도 적극 지원한다. ◇정부시책 정보의 적극적인 공개관행 정착 ▲주요정책의 구상입안,결정집행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기회를 확대한다.▲각부처의 정기·부정기 브리핑제도를 정착하고 기자실 개방등 언론의 취재영역을 확대한다.▲부처내 정책결정과정에 공보관 참여를 관행화하는등 각부처 공보관제도를 활성화한다. ◇언론자유에 조화되는 사회적 책임의 제고 ▲언론사별 자발적 내부윤리강령을 제정 시행토록 권고하는 한편 잡지·주간지협회의 퇴폐언론 자율정화활동을 강화하고 광고의 윤리성 제고를 위한 광고자율심의 기구의 설립을 지원한다.▲언론의 인권침해사례를 고발하고 시정 요구할수 있도록 법개정을 추진,언론중재위의 중재기능을 확보토록 한다.▲신문발행부수공사제도(ABC)의 조기정착을 적극 지원한다. ◇국민과 국가에 유익한 방송의 질적도약 추구 ▲KBS로 하여금 국민에 유익한 보도·다큐멘터리·토론·기획특집·건전드라마및 공익광고 확충에 노력토록하는등 공영방송위상을 강화한다.▲종합유선방송은 국민적 합의도출을 위해 전반적 쟁점사항을 종합점검 보완후 시행토록 하되 93년말 이내 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선정하며 프로그램 공급업자및 종합유선방송국을 단계적으로 허가해 95년초 종합유선방송을 실시한다.▲대도시 중심의 지방민영TV방송 신설을 추진하고 도별라디오방송은 주파수 범위내에서 신설을 검토하는등 방송의 지방화시대 개막에 따른 지방민영방송(TV 라디오)의 신설을 검토한다.▲종교방송 라디오 지방국의 신설을 추진하되 종교간의 형평을 최우선적으로 고려,주파수 범위내에서 지방국 신설을 추진한다.
  • 권위주의 청산… 사법 중립화 진전/6공 5년 국정평가 내용

    ◎6·29선언 실천… 지자제부활·인권신장/언론기본법 폐지… 자율·경쟁체제 확립/남북한 유엔 가입 실현… 국제 위상 제고/전방위외교 결실… 통일기반 구축/대내외 난관 딛고 경제안정기조 확보/국민의보­연금제로 획기적 복지향상/2백만호 주택건설… 부동산값 고삐잡아 정부는 14일 상오 청와대에서 현승종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각부처 차관 및 외청장,각부처 본부 1급이상 공무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평가종합보고회」를 열고 6공출범이후 각 분야별로 지난 5년간 수행한 국정운영성과를 평가하고 향후과제 등 국정마무리와 관련한 내용을 노태우대통령에게 보고했다.이날 회의는 총괄보고인 「종합평가」에 이어 「민주화개혁」,「북방정책과 통일기반 구축」,「선진경제기반 구축과 국민생활 향상」,「교육개혁과 문화창달」순으로 진행됐다.보고내용 요지는 다음과 같다. ○주요성과 ▲6공화국의 주요성과=6공화국은 민주화라는 국내의 전환기적 진통과 세계경제의 침체등 어려운 국제환경속에서 출범했다. 이렇듯 어려운 여건속에서도6공정부는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구현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국민들에게 약속하기위해 민주화·자율화·개방화를 정책기조로 설정했다. 이러한 정책기조의 차질없는 실현을 위해 부문별 세부계획과 공약사업의 실천계획을 일관성있게 추진해왔으며 특히 「20대 역점시책」을 선정,집중적인 관리를 해왔다. 그 결과 민주화측면에서는 지난 시대의 권위주의를 청산,인권신장과 지방자치제부활등 개혁적 노력을 지속해 민주시대의 새장을 열었다. 대외적으로도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북방외교와 통일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을 높이고 민족적 염원인 평화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민주화에 따른 부작용등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 안정기조의 회복과 함께 높은 소득증가와 고용안정을 이룩했다. 사회적으로는 전국민의료보험,국민연금제·부동산투기근절및 주택2백만호건설·농어촌구조개선등 정책추진을 통해 사회적 형평과 국민복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이밖에 교육환경개선·문화예술의 향유기회 확대등 국민생활의 질적인 면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대통령공약사업의 이행에도 총력을 기울여 총4백59건의 공약사업중 57%에 이르는 2백60건을 완료하고 나머지 1백99건도 정상추진중이거나 절차가 진행중에 있다. 사업비는 지난 92년까지 48조6천9백60억원(54%)을 투자했고 올해에도 8조6천4백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종합평가=국정운영을 종합적으로 볼때 6공화국정부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유례없이 민주발전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하고 평화통일의 디딤돌을 확고히 하면서 선진복지사회의 기반을 구축했다. 특히 노태우대통령의 9·18결단으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공명정대한 선거문화를 이룩함으로써 출범 당시의 6·29선언은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귀결돼 21세기 선진사회를 향한 대전환의 기틀을 마련했다. 선진사회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앞으로 무엇보다 틀이 갖추어진 민주적 제도와 조화될 수 있는 합리적인 사회질서의 확립과 의식의 선진화를 이룩해야한다. 또 물가안정의 바탕위에서 산업경쟁력강화시책의 가시적인 성과가나타나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강화하면서 사회간접자본시설등 중장기투자계획을 착실히 추진해나가는 미래지향적인 정책적 노력이 지속되어야한다. ○민주개혁 ▲6·29선언의 실천=기본적인 인권이 최대한 신장되고 사법부의 실질적 독립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등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성됨으로써 한 차원높은 민주주의가 실현됐다. 특히 헌법재판소설치 및 위헌법률심사제도 활성화·검찰의 중립성보장으로 사법제도가 보완됐다. 구속적부심 확대 및 피해자진술권 보장등 형사절차상의 인권신장으로 국민의 기본권침해가 방지됐으며 무주택서민의 임대차보호제도실시,법률구조공단사업확충,서민보호법률서비스의 대폭향상으로 서민대중의 권익이 보호됐다. 또 국가보안법과 사회보호법개정·사회안전법의 폐지로 인권침해방지를 위한 제도가 개혁됐다. ▲언론자유의 창달=언론기본법의 폐지로 언론의 자율과 경쟁이 보장됐다. 이에따라 정기간행물의 등록이 전면 개방됨으로써 6·29선언당시 2천2백36종이었던 정기간행물이 92년 말에는 3배가 넘는 6천9백55종이 됐다. 또 지방주재기자제도가 전면 부활되고 프레스카드 발급제도가 폐지됐으며 신문발행면수와 구독료가 완전자율화됐다. 노동조합설립과 운영의 자율화가 신장되고 근로조건이 향상되는등 민주·자율적인 노사관계가 정착됐다. ▲지방자치의실현=30년만에 지방의회를 구성,지방화시대를 개막함으로써 주민의 참여와 자율로 주변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해결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지방재정자립도가 높아지고 지방재정 및 세수규모가 대폭 늘어나는등 지방재정이 크게 확충돼 자치수행능력이 향상됐다. ▲선거문화의혁신=특히 지난 대선은 대통령의 9·18결단과 이를 뒷받침하는 중립내각의 노력 및 국민의 성숙된 의식에 힘입어 사상유례없는 공명선거를 이룩함으로써 민주헌정사의 새로운 장을 개막했다. 또 국민의 민주의식 향상과 선거관련법령의 정비등 공명선거실시를 위한 기반이 구축되어 지방의회를 비롯한 각종선거가 공명정대하게 실시됐다. 또 선거때마다 수반되던 폭력·불법시위가 사라지고 선거특수로 인한 과소비등의 부정적 행태가 지양됐으며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등 새로운 선거문화가 창출됐다. ▲행정의 민주화=행정의 권위주의를 탈피,규제는 작고 봉사는 큰 민주행정구현을 위한 기반이 구축됐다. 전기설비검사,석탄제품품질검사등 모두 1백63건의 행정권한을 민간단체에 위탁하고 행정쇄신차원에서 중앙과 지방을 망라한 규제완화를 적극 추진한 결과,행정규제사항 6백3건을 폐지했다. 또 서류감축 7백41건,통·폐합 3천7백95건등 민원제도를 간소화하고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했던 다수기관·다수법령 관련 복합민원·고질민원 2천1백2건(82%)을 해소했다 ▲민주사회질서확립=새질서·새생활운동을 적극 전개해 급속한 민주화 과정에서 파생된 각종 불법·무질서 등 전환기적 사회병리현상을 치유함으로써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했다. 특히 조직배폭력,어린이 및 여성상대범죄등 국민체감치안의 개선에 주력했고 국민과 3분거리내의 「현장즉응체제」확립등 범죄대응능력을 대폭 강화했다. ○북방정책 ▲통일기반구축=발상과인식의 대전환을 통해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위한 3대 정책과제를 설정해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국정지표를 구현했다. 「7·7특별선언」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북방외교」및 남북대화 전개로 이같은 국정지표가 구체화됐다. 남북한 유엔가입,중국·러시아등과의 수교로 한반도 주변국들의 평화통일에 대한 지지환경도 조성했다. 90년9월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개최이후 92년 12월말까지 8차례의 본회담을 비롯해 1백19회의 회담으로 「남북기본합의서」및 부속합의서를 채택했다. 90년8월1일 「남북교류협력법」「남북협력기금법」제정 시행으로 남북교류 협력의 법제도를 정비했다. 남북교류 협력추진때 우리측의 부담과 손실의 지원·보전을 위해 총1천50억원의 「남북협력기금」을 조성했다. ▲북방외교=북방외교는 외교지평의 확대,안보환경의 개선,평화통일여건 조성,우리의 국제적 위상제고,경제활동의 영역확대에 기여했다.6공화국 출범이래 45개국과 새로 수교함으로써 현재 1백71개국과 공식 관계를 갖게 됐으며 21개의 공관이 신설됐다. 91년9월 정부수립후 43년만에 북한과 함께 유엔에 가입했다. 북방권과의 관계개선으로 인구 14억의 새로운 시장이 우리의 경제활동 영역에 추가되어 92년 교역규모가 1백12억달러에 달했다. ▲자주국방태세의 확립=북방정책의 성공과 걸프전 참전,PKO참여등으로 제고된 우리의 위상,국제적 대북핵포기 압력등으로 대북우위의 군사전략 환경이 조성됐다. 해상·공중작전능력 향상,입체고속기동전력 증강,합동군체제로의 역사적 전환,미국과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합의등 안보협력관계의 개선·조정으로 자주국방태세가 강화되었다. 러시아와는 러·북한 상호원조조약 재검토,대북한 공격용 무기수출 자제,대북한 군사및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조관계를 다졌다. 앞으로 핵사찰문제,이산가족문제등 당면 현안과제의 우선적 해결을 모색하는 한편 남북합의사항 이행을 통한 각분야별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 전통우방인 미·일과의 기존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러시아등과 선린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동북아지역 4강과의 외교를 조화롭게 추진하는 것은 물론 북방외교를 내실화,「통일외교」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경제·민생 ▲종합평가=지난 5년간 우리경제는 연평균 8·5% 내외의 실질성장을 이룩,1인당 국민소득이 87년의 3천1백10달러에서 지난해에는 6천7백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 90∼91년의 경우 내수경기의 과열로 물가불안과 국제수지 적자문제에 직면했으나 지난 2년간 경제안정화 시책을 추진함으로써 물가안정 기조를 회복하고 국제수지 적자규모가 대폭 축소되는 성과를 거뒀다.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경쟁여건에 적응하기 위한 구조조정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에 주력하는 풍토를 조성해가고 있다. 종합적으로 지난 5년간 우리 경제가 어려움과 진통이 있었음에도 정치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시기로 평가된다. ▲경제안정기반의 구축=90∼91년중 9%대를 기록했던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에는 4.5% 오르는데 그쳤다.특히 생활물가를 나타내는 신선식품과 20개 기본생활 품목 등의 가격이 크게 안정됐다. 부동산가격 안정은 6공화국의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다.91년까지 크게 오르던 부동산 가격은 90년 이후 강력한 투기억제 정책과 2백만호 주택건설에 따른 수급안정에 힘입어 91년5월 이후 하향안정세를 지속하고 있다.토지가격도 지난해 2·4분기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수지는 90년부터 적자로 반전,91년에는 87억달러까지 규모가 확대되다 지난해 45억달러 수준으로 축소됨으로써 개선추세가 분명해졌다. 금리와 임금도 안정됐다.시중 실세금리는 91년말 19%까지 상승했으나 현재 13%까지 떨어져 금융자율화의 여건이 조성됐다.임금은 단기간에 너무 급속히 상승함으로써 물가상승 압력과 대외경쟁력 약화등을 초래했다.그러나 점차 임금안정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 ▲산업경쟁력 강화시책의 추진=지난 2년간 우리 경제의 모든 초점은 안정기조를 통한 기업의 국제경쟁력회복에 두어졌다.고임금으로 약화된 산업경쟁력을 보완하기 위해 기업들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정부도 기술개발,인력양성,사회간접자본 애로타개등 경쟁력의 바탕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정부는 제조업경쟁력 강화대책을 마련해 추진하는 일면,중소기업 육성과 사회간접자본의 획기적 확충,과학기술 개발 및 정보화를 촉진시켰다.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기금 조성,의무대출비율 상향조정,상업어음할인 확대등의 조치가 이루어져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생산비중이 88년 42.4%에서 45%로 높아졌다. 일반예산이 5년 동안 2.1배 는 반면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3.5배로 늘림으로써 국도포장률이 79.5%에서 97%로 높아졌고 5년간 14개소의 발전소를 착공,올해부터 10% 이상의 전력예비율을 확보하게 된다. 강력한 기술드라이브정책으로 국민총생산중 과학기술투자 비중이 1.87%에서 2.12%로 높아졌다.64메가디램개발,우리별1호 제작등의 성과가 있었다. ▲국민생활향상과 복지증진=소득이 2배 이상 늘어났다.마이카시대가 실현됐고 전화보급,의료보험 혜택등이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다.2백만호 주택건설 계획은 목표를 69만호나 초과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고 88년에 국민연금제와 최저임금제가 도입됐다.고용보험제도를 제외하면 선진국이 가진 사회보장 제도의 대부분이 도입된 것이다.이런 시책들로 사회보장 예산이 지난 5년간 3.6배나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어촌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됐다.90년4월 농어촌발전기금을 설치하는등 관련제도를 강화했고 91년 7월에는 10년간 추진할 농어촌구조 개선대책과 42조원의 투자계획을 마련했다.경지정리면적은 48만㏊에서 62만㏊ 늘어났다. 도시교통난 해소노력으로 5백58㎞의 지하철·전철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환경청을 90년 환경처로 승격시켜 제도를 강화하고 환경예산을 3.4배로 늘리는등 환경투자를 대폭 증액했다.맑은물 공급대책이 추진돼 수도의 식수불량률이 1.6%에서 1.1%로 떨어졌다.대기오염도 전국의 아황산가스 오염도가 80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기준치 0.5ppm이하로 떨어졌다. ▲경제효율의 향상과 국제화추진=부동산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토지초과이득세와 개발부담금제등을 신설,투기를 진정시켰다. 총액출자 규제도 시행,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한 재벌의 계열회사간 채무보증 제한제도가 도입됐으며 이는 경제력집중 완화를 위한 공정거래제도의 확립을 의미한다. 경제의 개방화·국제화가 추진됐다.우루과이라운드 협상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고 국내 시장개방으로 수입자유화율을 97.7%까지 끌어올렸다.외국인의 국내 상장주식 직접투자로 자본자유화도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 ○교육·문화 ▲교육개혁=교육의 양적 성장을 바탕으로 전인교육 실현을 위한 초·중등교육의 내실화 등 교육의 질적향상 기반조성,21세기 정보화사회에 대비한 직업및 과학기술교육 강화,지방교육 자치제의 실시,평생교육체제의 확충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92년부터 군지역 중학교 의무교육을 단계적으로 실시했으며 국민학교 학교급식을 16.3% 수준으로 확대 실시했다. 국립사범계 대학출신 우선임용제를 폐지하고 신규교사 공개전형제를 도입해 우수교원 확보의 기반을 마련했다. 고급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이공계대학 정원을 대폭 늘리고 사립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4백억원(92년)규모로 늘렸다. 내신성적을 40%이상 반영하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학별고사의 채택여부및 반영비율은 대학이 자율결정토록 하는등 대학입시제도를 대폭 개선했다. ▲문화창달=자유와 자율의 바탕위에서 활력에 넘치는 새로운 문화풍토를 조성했으며 문화유산의 보존과 문화기반의 확충으로 민족문화창달의 터전을 마련했다. 영화·연극·무용 등 대본 사전심의제도를 폐지하고 방송·공연이 금지된 대중가요 7백51곡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는 등으로 창작발표에 대한 각종 규제를 철폐했다. 문화부 신설,국립국어연구원 개원,한국 예술종합학교 설립 등으로 문화진흥 체제를 대폭 정비했다. 신라·백제·가야·중원·광주 등 5대 문화권을 정비(44건 완료)하고 경복궁·창덕궁 등 일제에 의해 훼손된 문화재 복원작업을 추진했다. ▲체육진흥 및 청소년 육성=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국민역량을 결집하고 체육의 중흥을 이룩함으로써 국제적인 위상을 제고하는 한편 국민적 사기진작과 체육의 생활화를 이룩했다. 서울올림픽은 동서화해와 동구 민주화에크게 기여한 것은 물론 한국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일신케 하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3천1백10억원의 올림픽 잉여금으로 경기단체 자립과 청소년생활체육교육을 위한 재정적 기반을 확보했다.1백33개국에서 1만9천여명이 참가한 세계 잼버리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여성권익신장=88년 여성정책 전담부서인 정무장관실 발족을 계기로 본격적인 여성정책 추진체제를 확립하는등 교육·고용·복지·가정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여성의 「삶의 질」을 괄목할 만큼 향상시켰다. 90년 가족법(민법중 친족·상속편)의 개정으로 남녀평등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남녀고용평등법의 개정으로 여성에 대한 고용확충 기반을 조성했다.
  • 화가 장우성씨(이세기의 인물탐구:8)

    ◎시·서·화 도양화삼절의 노인가/인위·조작없는 「무위사상」바탕,독창적 화풍/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 은은하게 표출/정많은 성품.부정엔 단호… 「친일논란」때 미술계풍토 비판도 대나무처럼 곧고 차가운 죽색청한과 물빛처럼 영롱하고 푸르른 수광징벽의 한벽원.이는 월전 장우성화백의 개인미술관 이름이다. 경복궁뒤 사간동 화랑가에서 삼청공원으로 이르는 초입에 위치한 한벽원은 서울 한복판(종로구 팔판동 35)이건만 인적없는 산간에 묻힌 선비의 서숙인양 적요속에 묵향이 감도는 분위기다. 눈부시게 흰 화강암건물과 「한벽원」이란 이름만으로도 주인의 기상과 풍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대나무·백매와 계수나무 사이사이로 진귀한 옛 석물·석등이 배치되고 뜰한가운데는 일중 김충현의 「한벽원용」,내부벽면은 12지신·광개토대왕 비문·석굴암 관음상에서 탁본해온 석고부조로 장식되어 미술관다운 품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바로 이곳이 월전의 모든 예술생애가 집약되고 또 앞으로 우리 한국전통미술의 올바른 맥을 보존·육성해나갈 본산이기도 하다. 아다시피 화단의 거봉인 월전은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서·화의 삼절로 동양화 전영역에서 유창탁발의 화업을 이뤄낸 노대가다. 그의 작품은 공자가 그림을 두고 말한 「회사후소」,즉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마음을 깨끗하게 가다듬는다는 후소정신과 인위와 조작이 없는 무위사싱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월전의 이런 선비기질은 그의 그림에서 보듯 한점의 허세나 과장이 없이 잔잔한 운율이 유운문처럼 번지고 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가 은은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가 즐겨 그리는 학과 백로,화훼와 산수는 모든 기교가 배제된 간결 산뜻한 선묘와 담백한 설채,특히 그만의 묵의 묘취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기막힌 환희를 안겨준다. ○담백한 선조 일품 월광을 배경으로한 백매가지에는 방금 물오른 새싹을 틔울듯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고 흰 눈속을 헤쳐서 꺼낸듯한 꽃의 화관은 보석처럼 눈부신 진주빛을 발한다. 마치 신운이 움직이는듯한 절제의 필치로써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장인기질보다는 원로의 정신미를 정밀하게 누리고 펼치는 시기라 할수있다. 1912년 임자생.80의 나이에도 그에게는 「노인」이란 단어가 무색하다. 바르고 건강한 모습에 단정하고 깎듯한 움직임,사물을 꿰뚫는듯한 예지의 눈길은 『글씨나 그림등 예술은 가장 천진한것이 극치』라는 완당의 말대로 그 청정의 눈빛을 지니고 있다.그에게선 어떤 흐트러짐이나 허술한 곳도,만모의 기색도 찾아볼수 없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선 다감하고 정이 깊고 상대방을 포용한다.단지 그것이 마음에 들지않으면 추호의 용서나 양해가 없다.늘 옳은자의 편을 들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한다. 주말에는 골프,커피와 담배,두주불사의 애주가로 몇년전까지만해도 양주 한병을 비운 술실력이나 요즘은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순한 청주나 곡주를 즐긴다. 집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그러나 작업실이 있는 한벽원까지 아침 9시반에 출근해서 하오2시부터 작업대 앞에 선채로 3시간에서 4시간씩 작업에 몰두한다. 내년 가을 호암아트홀이 기획한 그의 화력 60년을 총정리하는 신작준비 때문이다.이는88년 일본 세이브미술관 초대 「한국·국화의 거장 장우성전」이후 5년만의 대작전시회여서 그는 모든 정열을 이곳에 쏟고있다. 그의 화적을 새삼 더듬을 필요는 없겠지만 월전은 18세되던 해인 30년 스승인 이당의 낙청헌에 입문,초기에서 10여년은 사실적 시각에 바탕을 둔 감각적 형태의 극세극채색의 치밀한 묘사에 밀착해왔다.그러다가 해방후 서울대미대에 재직하면서 스승의 회화권에서 벗어나 전통동양화인 수묵화에 정진하여 추상이 곁들여진 힘차고 분방한 용필로 활달한 화면을 추구해나갔다. ○18세때 이당에 사사 그는 경기도 여주의 전통적 유교가문에서 2남5녀중 다섯째,부친(장수영씨)의 나이 30세에 얻은 만득자여서 부모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월전」은 어릴때부터 유난히 달을 좋아한 아들을 위해 부친이 손수 지어내린 아호다. 할아버지에게 「동몽선습」「소학」「명심보감」과 「사서삼경」을 배우고 붓글씨를 공부하면서 그림을 시작,그림공부를 위해 상경할 무렵에는 평소 위당 정인보선생과 교분이 두터웠던 부친의 배려로 위당댁에 드나들면서 조선역사를 익혔다. 이당문하에서 운보 김기창,현초 이유태와 나란히 수학한지 2년만인 32년 제11회 선전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갈매기를 그린 「해병소견」으로 화단에 등단,41년에 「푸른 전복」으로 총독상,그리고 연이어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두차례 수상하고 44년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때 그린 「푸른 전복」은 열정적으로 부채춤을 추고난후 호흡을 가다듬는 무녀의 휴식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우리미술사를 말할때마다 거론되어지는 대표작중의 하나다. 범접하기 힘든 깨끗한 눈매며 전립의 영모,패영의 구슬은 이슬이 방울진듯,푸르른 구군복과 치마단까지 흘러내린 붉은 끈의 선과 색의 대비,공간을 여백으로 설정한 것등은 훗날 월전 문인화와도 일맥 상통한다. 싸늘한 겨울 날씨와 화면을 가득 채운 만월,한천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를 문인화의 무기교와 자연스럽게 절제된 묵선으로 관조한 조형어법은 「종교와도 같은 높은 이념이 함축」되어있다는 평이 뒤따르고 있다. 한치의 흔들림없이 지금도 여전히 화단의 정상을 지키는 월전으로서도 80성상을 돌아보면 흑색반점처럼 지워버리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44년 최고상을 받았을때 총독부의 요청으로 수상자를 대표하여 「답사」한것을 스승과 의논없이 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이당의 미움을 받아 소원했던 일,서울대 미대교수시절 「교수자리」를 탐내는 후배의 이간으로 미대 창설동지이며 당시 학장이던 장발씨와의 긴 오해등,어지러운 세속에 휘말려야했던 곤혹과 환멸이 잊을수 없는 얼룩으로 남아있다.물론 시간이 흘러 밝은 대낮처럼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곤 하지만 꼿꼿하게 앞만보고 살아온 그에겐 자존심에 먹칠당한 슬픈 추억의 장면장면들이다. 문인사대부의 학문과 역량은 익히 알려진 바이고 그의 그림속에 실린 아름다운 시구외에도 그는 「화맥인맥」등 신문에 자주 글을 발표한 미문으로도 유명하다. ○문장력도 뛰어나 그 한예로 83년봄 한 미술계간지가 다룬 「한국미술의 일제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이란 특집기사로 인한 「친일 화가파동」때 그는 대단한 문장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같은해 4월21일자 모 두 일간지 광고를 통해 발표한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를 묻는다」는 이 성명서는 잡지에 게재한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일제36년과 해방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미술가는 친일파이며 모든 미술작품은 일본의 식민지 잔재인양 매도하고 미술교육도 잘못되어 후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했다는 기사내용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망설」임을 전제,「작고작가와 현역 미술인 대부분을 부관참시식으로 난도질」하면서 과거 민족수난의 불행했던 역사는 외면한채 「민족예술창조라는 허구에찬 궤변」으로 사회여론을 오도,「이 방약무인한 오만을 나무라기전에 그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왔으며 소위미술평론가의 자격은 어디에서 취득했고 누가 인정했던가 묻고싶다」는 실랄한 항변과 규탄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 글을 기초한 사람이 바로 월전으로 이 사건은 화단의 경종이 되어 서로 자숙하고 침착하게 자기 성찰하는 기회로 마무리 되었다. 월전은 이처럼 깐깐하다.굳이그가 나서지 않아도 되지만 「화단의 누」라는 차원에서 가차없이 솔선하고 나섰다.그의 작업실은 그의 성품만큼이나 정갈하고 청결하여 난초의 홍자색은 싱그럽고 고고하기만 하다.호불호를 선명하게 가려 「한다」고 마음먹은 것은 일사불란하게 실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번 미술관도 88년 구상·계획하여 그가 몸담았던 서울대 미대와 홍대미대의 제자·화우들을 주축으로 즉시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89년 미술관 착공,91년 3월개관 2주일전 부설 동양미술연구소 제1회 수강생 20명을 배출했다. 까다로운 성품과는 달리 각계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은 수화 김환기,영운 김용진,의재 허백련,소전 손재형과 친형제같은 우의를 다졌고 대한교육보험의 신용호회장과 황수영 유경채 이대원 김원용 특히 일중과의 우정은 난향과도 같다. 가족은 부인 유리정여사(73)와 1남3녀.장녀인 정란씨가 동양미술사를 전공했다.그의 만년의 예술은 「붓가는대로 그린다」는 명경지수의 염과 자연에 돌아가 자유하는 마음으로 우주를 넘나드는 광대무변의 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이제 월전화는 그의 생을 황홀하게 장식하기 위한 무르익은 화경에 접어들어 그 마지막 붓끝까지도 불후의 명작을 그리게 될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아산 현충사·정읍 충렬사 봉안 이충무공 영정,세종대왕 기념관 벽화 「집현전학사도」 낙성대봉안 강한찬장군·김경신장군·윤봉길의사·정포은선생·문익참선생·김종직선생·조식선생·정기용박사·유관순열사등 영정 제작.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1천호)」,고려대벽화 「군려도」크리스트상화(63빌딩)제작. □연보 ▲1912년6월 경기도 이주출생 ▲30년 이당 김은호 「낙청헌」입문 ▲32’ 제11회 선전 「해병소견」입선이후 계속 출품 ▲33’ 육교 한어학원 졸업 ▲41∼44’ 「푸른 전복」등 연4회 특선·추천작가 ▲46∼61’ 서울대 미대 교수 ▲49’ 로마 국제미전 「성모와 순교복자」3부작 출품(바티칸시 수장) ▲50’ 제1회 개인전(동화백화점 미술관) ▲63’ 도미,미국무성 화랑 개인전 ▲64’ 워싱턴 스퀘어 화랑주최 국제미술제 한국대표초대출품 ▲65’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 설립 ▲71’ 홍대 미대 교수 ▲75’ 유럽7개국 미술계시찰 ▲80’ 현대화랑서 도불 기념전 ▲〃 프랑스 정부초대 파리세루뉘시 미술관 개인전 「홍매」「석」등 프랑스문화성소장 ▲81’ 월전화집(지식산업사간) ▲82’ 독일 쾰른 시립미술관 초대 개인전 ▲85’ 국립 현대미술관 원로작가 초대전 ▲88’ 도쿄 아트포럼에서 「한국 국화의 거장 장우성전」개최 ▲〃 동산방화랑서 개인전 ▲92’ 오늘의 작가 11인전(진화랑)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역임 현 예술원회원 서울특별시 문화상·예술원상·5·16민주상 수상.
  • 창덕궁/왕조의 숨결 심처 곳곳에/내전 전각들엔 왕가의 위엄서려

    ◎지형맞게 조경… 비원자연미 일품/옥류천일대 출입통제… 관람시간도 시간별 제한 모처럼 바람 쐬러 시내 바깥에 나갔다가 교통체증에 기분전환은 고사하고 울화만 뻗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 시내 안에도 기분전환의 바람을 속에 품고있는 장소가 많다.고궁탐방은 구태의연해 보이지만 고궁 문턱을 넘어서면 생각이 차츰 달라진다.비원이 뒤에 들어앉아 있는 창덕궁은 시외나들이의 차선책으로 찾았던 마음을 열렬한 경배자의 그것으로 바꿔놓는다.조선왕조는 사라졌지만 오백년동안 가꿔지고 가다듬어졌던 왕궁의 바람은 매혹의 마력을 안고 있다. 고궁의 매력은 역사적 배경에서 먼저 솟아난다.창덕궁은 잇대어 자리한 창경궁과 함께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궐로 불려졌다.태종 초년에 창건되었으나 초기의 임금들은 대부분 경복궁에서 정사를 보아 이궁에 머물렀다.그러나 성종과 연산군은 주로 이곳에서 지냈으며 임진왜란으로 정궁인 경복궁은 물론 창덕·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린 뒤 1609년(광해군1)창덕궁이 가장 먼저 복구,중건돼 경복궁이 1867년(고종4) 중건되기 까지 2백50년 넘게 조선왕조의 법궁 자리에 있었다.여기서 인조반정,장희빈,사도세자 뒤주참사 등의 사건이 일어났다. 경복궁이 일사불란한 직선 구도의 위용을 펼치는 데 반해 창덕궁은 곡선의 은밀함이 천천히 깊어지는 형세이다.같은 구중궁궐이라도 창덕궁에선 나선형의 심처로 이끌려가는 기분이다.그리고 창덕궁의 구중심처는 왕의 침전인 평지의 내전이 아니라 표고 90m미만의 동산에 조성된 10만평의 후원인 비원이다. 창덕궁은 근 15만평에 이르러 5대궁궐중 제일 넓지만 지세가 굴곡지고 경관 또한 한결같지 않아 탐방객들을 늘 깨어있게 한다. 이런 취향에 맞게 창덕궁은 정문인 돈화문이 한가운데에 있지않고 남서쪽 모퉁이에 나있다.정전인 인정전과 내전일곽인 희정당 대조전 등의 초입은 일제시대인 1912년 일반에 공개되면서 많은 변형과 훼손이 가해진 곳이다.그러나 돈화문은 광해군,선정전은 인조,인정전(국보 225호)은 순조 때 각각 재건돼 오늘에 이른다.내전 건물들은 19 17년 화재이후 다시 지었고 19세기 때의 3분의1규모에도 미치지 못한다.그러나 전각과 전각이 원래의 특징인 복도구조로 쭉 연결된 외관은 답답한 가운데서도 왕의 처소다운 위엄을 느낄 수 있다. 건물군 뒷쪽에 계단형식으로 정원을 꾸민 화계가 나타나면서 비원이 열린다.비원은 부용지,연경당,반도지,옥류천부근 등 대충 4구역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가장 깊숙한 곳인 옥류천 부근은 출입금지되어 있다.창덕궁의 건물들이 인위적인 대칭구성에서 벗어나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도 속에 놓여 있듯이 비원도 여기저기를 손질해 인공적으로 꾸민 게 아니라 동산의 자연미를 살려 드넓고 다양한 풍치의 정원을 일으켜 세웠다.관상수를 부러 가져다 심지 않았고 나무에 전지를 하지 않았으며 따로 꽃밭도 만들지 않았다.인조 때부터 세워진 28개동의 누정이 1백여종의 나무 사이사이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길잡이◁ 창덕궁·비원은 3년동안 일반에 폐쇄된 뒤 79년부터 안내원의 인솔하에 제한관람하게 되어있다.9시부터 1시간단위로 하오4시까지 입장하며 이와따로 외국어안내가 중간중간 있다.비원까지의 주관람로는 2.2㎞로 1시간 10분이 소요된다.입장료 1천8백원(어린이 9백원).
  • 서울 정도 600년 사업 세부내용

    ◎4가지 주제별 12개 경축행사 “푸짐”/문화축전 등 시민 자발 참여 부축/난지도매립장에 환경생태공원 조성/위인동상 제자리 찾기·전통거리 재현 서울시가 27일 확정한 정도 6백년 기념사업기본계획안은 시민 스스로 하는 사업,경축 기념사업,미래에 대비하는 계기사업등 3가지 유형으로 역사·인간·문화·세계도시등 4개의 주제별로 모두 12개의 세부사업을 벌인다. ▷6백년전◁ 서울의 발생부터 조선·일제치하·전후혼란기·급성장기등 시대구분에 따른 성장사를 자연환경·도시형태등 종합적인 시각에서 알리는 6백년 종합전을 94년 9월부터 95년 6월까지 한강변에서 연다.이를 위해 서울생활풍속전 근대1백년 도시예술전 서울사람전등의 주제별 전시를 통해 시민의 관심을 제고시키며 93년 10월부터 2개월동안 대전엑스포와 연계,사진및 소리를 통해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보는 자료전을 개최한다. ▷21세기구상◁ 통일시대 지방화시대 정보화시대 경제블록화시대를 맞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서울 21세기 위원회」를 구성,21세기 서울의 도시구조및 서울시정을 짠다. 21세기 서울의 모습에 대한 시민의 의식을 조사하고 94년중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세계질서와 동아시아에서의 서울의 위상과 역할을 찾는다. ▷서울탐사◁ 서울의 역사·지리·문화·경제등의 분야에 대한 연구를 촉진하도록 서울학을 육성하고 특히 일제치하의 흩어진 자료를 일본등에서 집중 수집하고 93년 말부터 서울학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와함께 시민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서울문화그림지도등 서울미디어를 개발한다. ▷서울동네운동◁ 아파트단지·단독주택지역등에서 주민들이 합심해서 꽃과 나무를 함께 가꾸며 대학과 기업이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어 우리동네를 다듬는다. ▷서울새도시얼굴◁ 여의도광장 지하에 주차장,시민문화시설,편익시설등을 마련해 시민시대의 중심광장으로 만들고 21세기 준공목표로 시청사 건립을 구체화한다.또 95년까지 경희궁터에 시립박물관을 건립,시민역사교육의 중심공간으로 조성한다. 대원군 사가를 매입하는등 운현궁을 정비 개발하고,창덕궁 담장을 따라 순라길을 재현하는등 원서동 사적공원을 조성하며 경희궁을 역사·환경거리로 정비한다.옛 지형과 계류를 복원해 「남산골」을 조성,전통공방을 전시한다. 북한산성 문루및 인접성곽을 복원하고 남산 낙산등 서울성곽 훼손부분및 혜화문의 성곽을 따라 역사탐방로를 만든다. 중앙박물관에서 남산,예술의 전당을 잇는 남북축을 만들고 경희궁에서 정동까지를 근대사의 거리,경희궁 박물관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를 문화의 거리,경희궁에서 사직공원 인왕산까지를 역사의 거리로 조성한다. 또 위인동상 제자리 찾기를 벌이고 노래하는 조각공원을 만드는등 도시공간에 거리조형물을 조성한다. 폐쇄되는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에는 환경생태공원을 만들고 한강변에 집중녹화 사업을 벌인다. ▷문화경진◁ 시에 행사기획전문업체·문화예술전문가·시민등으로 문화촉매단을,구에는 작은축제위원회를 발족시켜 시민이 참여하는 우리마당 작은 축제를 펼친다.또 「나도 예술가」축전을 통해 시민이 찍은 서울영상전,우리동네 그리기,주부생활민예페어,동네문화 야시장등의 행사를 갖는다. ▷6백년대동제◁ 서울을 둘러싼 외4산 내4산 한강등을 시민이 직접 찾아 6백년 기념 나무심기,산수제례,봉화올리기,성곽돌기등의 행사를 갖고 한강선상음악회·백송 사물놀이·야외연주회등을 개최한다.또 역사향토제의 일환으로 서울성장사 재현놀이·세시풍속놀이·전통예술놀이를 한다. 6백년이 되는 94년 11월 29일 남대문 앞에서 국악과 양악,무용,첨단기술이 결합된 종합경축공연을 벌이고 세계민족필름제·세계공연예술제·문학축제·인형극제등을 개최한다. ▷세계도시기반조성◁ 정보화시대를 맞아 정보항(텔레포트)등 정보기관시설과 국제교역기능등 중심업무기능을 갖춘 첨단정보화 업무단지를 조성한다.서울을 세계속의 도시로 부상시키기 위해 회의장 공연장 호텔등의 시설을 갖춘 국제컨벤션 센터 건설을 추진한다.
  • 서울 21세기 첨단도시로 새출발/정도 600년 기념사업 최종 확정

    ◎10만평규모 정보화단지 조성/여의도엔 복합문화타운 건설/경·평정기축구전 부활도 추진 오는 94년 정도 6백년을 맞아 대규모 첨단정보업무단지가 조성되고 난지도 89만평에 꽃박람회등을 열수 있는 환경생태공원이 조성된다. 또 11만여평의 여의도 광장 지하에 주차장 도서관 식당등의 시민문화시설과 편익시설이 들어서고 새로운 시청사 건립이 본격화된다. 서울시는 27일 상오 세종문화회관에서 53명으로 구성된 서울6백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김원용)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한 서울 6백년기본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이에따라 시는 연말까지 구체적인 세부계획을 마련,93년부터 95년까지 3년동안 본격적인 기념사업을 벌여나가 96년에는 서울을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인 도시로 완전 탈바꿈시킨다. 시는 「우리 서울,서울답게」라는 구호아래 기념사업을 「다시보는 서울」 「새로나는 서울」 「신명나는 서울」 「열려있는 서울」등 4가지의 주제로 나눠 41개의 단위사업으로 벌인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통신위성과 지하광케이블을 주축으로전자정보센터·국제금융센터등 정보처리기능을 집결한 첨단정보화업무단지를 10만평 규모로 97년 착공,2005년까지 1단계 공사를 마무리 한다. 또 1만5천평 규모의 컨벤션센터를 세워 각종 국제회의장시설을 갖춰 서울을 국제도시로서 동북아의 중심도시로 면모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이달말 폐쇄되는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은 복토·가스제거기설치등 안정화 작업을 거쳐 환경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환경생태공원은 꽃박람회 환경예술전시및 각종 대회를 열수 있게 된다. 또 여의도광장에는 국내 최대의 지하타운을 건설,각종 문화시설과 휴식공간을 갖춰 시민광장으로 꾸미기로 했다. 서울을 새로운 문화·역사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경희궁에서 구러시아공관 정동근린공원을 잇는 근대사의 거리,경희궁 박물관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를 문화의 거리,경희궁에서 사직공원·인왕산까지를 역사의 거리로 조성한다. 그리고 운현궁을 정리·개발하고 창덕궁 담장을 따라 순라길을 재현하는등 원서동 사적공원을 조성하며 「전통남산골공방」을 만드는등 6백년역사를 재현키로 했다. 이밖에 서울의 뿌리를 되찾는 사업으로 ▲시립박물관 건립(95년) ▲역사탐방로 개설(93년) ▲서울·평양축구경기부활등을 추진키로 했다. 시의 한 관계자는 『이번 계획은 지난 1394년 태조3년에 수도로 정한 서울이 6백년 역사의 저력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제2의 도약을 할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고 말했다.
  • 이화장 양각 장검 발견/길이 80㎝… 구한말 황실 의전용 추정

    구한말 임금들이 의전용으로 찼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검이 강원도 춘천에서 발견됐다. 이 장검은 길이 80㎝,폭은 칼 윗부분이 1.9㎝,칼끝은 1.1㎝로 손잡이에는 대한제국 당시 황실에서 사용하던 배꽃무늬(이화장)가 금으로 도금돼 10개가 양각돼 있다. 소장자인 이인섭씨(46·춘천시 후평2동)는 이 장검을 20여년전 춘천 근교의 고물상에서 우연히 구입했다면서 『그동안 육군사관학교 무기박물관과 창덕궁이 「이왕실 유물 관리실」등에 알아봤으나 고종과 순종이 의전용으로 찼던 칼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밖에 여러 전문가들에게 문의해 『이화장이 대한제국의 황실 문장이고 칼의 모양새가 전통적인 국내검이어서 황실에서 사용하던 것이 틀림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강원대 박물관장 박민일씨(55)는 『구한말 임금이 사용하던 물품에는 배꽃무늬를 반드시 새겨넣어 황실 사용품임을 알렸다』면서 『이 장검을 면밀히 조사해 본 결과 당시 고종이나 순종임금이 찼던 것 중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막바지 피서인파 절정/동해안 해수욕장 등 30만 몰려

    제10호 태풍 재니스가 우리나라를 완전히 빠져나간 9일 시민들은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떠나거나 해수욕장등의 유원지를 찾아 모처럼 쾌청한 휴일을 즐겼다. 또 출수기를 앞둔 농민들은 농작물에 농약을 뿌리는등 바쁜 하루를 보냈다. 서울 한강시민공원에 있는 7곳의 실내수영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어린이등 가족단위의 피서객 3만여명이 모여들어 물놀이를 즐겼고 과천 서울어린이대공원에도 평소보다 1만여명이 많은 3만여명의 인파가 줄을 이었다. 이밖에 창덕궁·경복궁등의 고궁과 북한산·도봉산등의 계곡에도 평소보다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더위를 식혔다. 그러나 이날 하룻동안 평소와 비슷한 6만5천여명의 인파가 서울역을 통해 빠져나간 것을 비롯,경부·중부·영동·동해등의 고속도로 일부 진입로에서 교통체증을 빚은 것을 제외하고는 상·하행선 모두 원활한 교통소통을 보였다. 태풍 「재니스」때문에 입욕이 금지된 경포대와 속초·망상등 동해안 83개 해수욕장에 15만 인파가 찾은 것을 비롯,설악산 5만,오대산 1만5천명등 이날 하룻동안 동해안에만 30여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 경복궁 복원공사 현장소장 고문현씨(인터뷰)

    ◎“민족맥 잇는 역사 맡아 영광”/일제파괴 원형 완벽하게 재현해 낼것 『민족의 맥을 이어가는 중차대한 작업을 맡게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일제에 의해 파괴 변형된 경복궁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이번 작업을 완벽하게 이루어내고야 말겁니다』 지난달말의 강녕전 상량식으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경복궁 복원공사의 현장소장 고문현씨(53·공영토건)­. 『엄격히 말해 이번 공사는 보수나 복원이라기보다는 중착작업으로 봐야 합니다.일제에 의해 고의적으로 훼손돼 모습을 잃은 경복궁의 기본궁제를 당시의 형태와 기능을 철저하게 살려내 다듬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는 99년말까지 모두 3단계로 나눠 진행될 경복궁복원 공사중 고소장이 담당한 부분은 왕과 왕비의 침전인 강녕전·교태전등을 비롯한 고건물 8동과·행각·담장·출입문등 지형과 시설물 조형을 당시 모습과 기능그대로 재현해내는 1단계공사.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기초공사와 석공사를 토대로 강녕전 목구조건립에 돌입,현재까지 10%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 강녕전은 조선조 국왕들의 침전으로 사용되다가 1917년 창덕궁의 침전이 소실되는 바람에 창덕궁재건의 목재로 쓰기위해 일제에 의해 헐린 후 70년만에 재건되는 셈으로 경복궁복원의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문화재관리국 연구소와 설계자 감독관 시공자등 4개파트로 나눠진 복원작업자들이 일치돼 고증과 설계 시공작업을 병행해나가고 있습니다. 철저한 고증과 완벽한 설계를 토대로 실제 집짓는 기능이 뒷받침될 때 옛날 모습 그대로 기능을 살려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오는 93년말까지 1단계공사를 마무리지어야 다음 공사 진전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관계로 현장작업자들의 일손은 바쁘기만 하다.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후 첫 직장으로 문화재관리국을 택해 영선계에만 10년간을 근무하면서 일제에 의한 우리문화재 훼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는 고씨. 그는 현장소장으로선 마지막 맡는 공사가 될지도 모를 이번작업이 잊혀진 과거사를 찾아내 민족사의 긍지를 되살리는 성공적인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열망하고 있다.
  • 조선의 고대의서 대부분 약탈/위가 빼앗아간 우리문화재들

    ◎엄청난 규모… 서적·활자 가져가 일문화 발전 7년간의 왜란으로 입은 문화재 손실은 일반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막대한 것이었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과 서적·미술품등이 소실되고 약탈됐으며 역대실록 가운데 귀중한 사서를 보관하던 사고는 전주사고만 남고 이 기간중에 모두 불타 없어졌다. 특히 조선으로부터 활자를 가져가 일본활자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보았으며 「퇴계집」과 같은 중요한 전적들은 일본에 건너가 집집마다 읽혔을 정도로 일본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임진왜란 당시 위군 무장들은 안국사 중이었던 혜경등 학승들을 앞세워 조선의 문적을 일본으로 실어날랐는데 위군에 의한 서적약탈은 「임란이전에 출판된 조선의학서적 거의가 일본에 가 있다」는 일본학자의 지적처럼 엄청난 것이었다. 당시 일본에는 임란때 약탈해간 조선문적 8백여부를 중심으로 16 02년 덕천가강에 의해 순하문고가 세워져 문고발달의 기틀이 마련되며 조선에서 가져간 인쇄활자로 「공자가례」등 「순하판」을 찍어내 문서보급에도 박차를 가하게 된다.또 가강이 덕천의직에게 물려준 어량본 3백77부 2천8백39책 가운데 거의 절반인 1백62부 1천4백92책이 조선본이었다는 사실에서처럼 약탈된 조선서적의 규모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가강사후 세 아들에게 분양된 어량본 가운데 「기이문고」는 명치시대에 들어와 「남규문고」로 공개돼 현재는 동경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돼있다. 임란에 참가했던 위군 장수들의 조선문적 약탈로 인한 갑작스런 도서의 격증과 덕천막부의 문치정책으로 일본에서는 새로운 문고의 발달계기가 만들어졌고 서적의 활발한 이동은 공사문고로 이어져 학교도서관의 발달을 가져왔다. 의학수준이 뒤떨어져 있던 일본의 입장에서 의서에 대한 욕심은 당연한 것.그 결과 일본은 임란 당시 조선의 고대 의학서 대부분을 일본으로 가져가 우리나라에는 의서가 거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조선의학사 및 조선질병사」를 쓴 일본학자 삼목영씨는 적고 있다.의학서 장서의 대명사인 양안원은 가강과 수충의 관의가 만든 문고로 「자금단방」「산서해록」등 조선고유의서와 「양생론」「침구집방」등 중국의서의 조선판등 상당수의 의서가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보길도 부용동 사적 지정(문화단신)

    문화부는 전남 관도군 보길면 부황리 200 일대 고산 윤선도의 유적 8만3천5백32㎡를 사적 제368호로 지정 고시했다. 조선 중기의 문인인 고산은 보길도 부용동으로 알려진 그곳에서 1637년부터 1671년 숨을 거둘 때까지 33년동안 살면서 어부사시사등 수많은 시를 남겼다. 부용동은 선연정과 천동석실,낙서재,곡수당등의 인공물을 계곡의 자연지형과 조화시킨 뛰어난 안목으로 조성되어 역사적 조경사적으로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어왔다. 문화재연구소는 지난 90년10월22일부터 11월16일까지 실시한 시굴조사결과 선연정지에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지와 온돌 아궁이 연도 등을,천동석실지에서 초석과 기둥자리 흔적 등을 발견해 현존 유적들이 고산년보 및 보길도지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종합연구서 「동궐도」 출간 문화재관리국은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조감도식으로 그린 국보 제249호 동궐도(고려대박물관 소장)에 대한 각 분야별 종합보고서 「동궐도」를 펴냈다. 이 책은 고려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동궐도의 종합개요에 이어 회화·건축·조경·과학기술 분야로 나누어 전문가들이 집필한 자료를 실었고 각 건물·전각 등의 명칭을 화폭별 순서에 따라 수록했다. 이 책에는 동궐도 이외에 고구려에서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우리나라 궁궐도의 개요도 실었다.비매품.
  • 남북 학생·교원교류 적극 추진/교육·문화·여성문제 부처별대책 내용

    ◎이공계·전문대 95년까지 3만6천명 증원/대학의 재정난타개위해 「기여입학제」도입/11개시에 문화회관…남원엔 민속국악관 국무총리실과교육·문화·체육청소년·정무제2등 5개부처는 27일 상오 청와대에서 ▲교육발전의 기본확충과 교육개혁추진 ▲민주·번영·통일의 시대 문화창달 ▲올림픽대비와 청소년 건전육성 ▲국가발전을 위한 여성역할제고 등을 주요 정책추진 목표로 한 「교육개혁과 문화창달 및 여성참여확대대책」을 노태우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교육개혁 추진/교육부 학교에 「학부모교실」및 「가정교육 상담실」을 설치·운영,학교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학생 선도활동을 펴나가도록 하고 우수교원 확보를 위한 법제정도 추진한다. 의무교육을 군지역 중학교신입생부터 확대실시하는 것은 물론 도시지역 저소득층 중학생 14만9천명에게 학비를 지원해준다. 또 사학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기여입학제도의 활성화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올해부터 94년까지 기업체가 이공계대학에 모두 9백85억원을 지원토록 유도해 나간다. 산업체의 인력난을해소하고 다가올 21세기의 고도산업사회에 대비,오는 95년까지 실업계학생을 1백만명으로 늘려 인문계와 실업계의 비율이 50대50이 되도록 한다. 이를 위해 올해 인문계고교의 실업계전환 또는 실업계고교신설등을 통해 실업계고교를 22개 늘리고 인문계고교생 가운데 비진학자 4만2천5백명을 대상으로 직업교육을 실시한다. 이와함께 전문대와 이공계대정원도 95년까지 각각 3만6천명,1만6천명 늘려 중견기술인력 수요에 대비하고 기술대학제도의 도입도 추진한다. 현재 과별로 정원을 정하고 있는 대학정원정책도 단계적으로 자율화,오는 97년이후 대학별 총정원제로 바꾸고 대학교원 인사제도에 경쟁의 원리를 도입,교수의 임용 또는 승진시 연구실적을 감안토록 할 방침이다. 산학협동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산업체 고급두뇌의 교수임용폭을 확대하고 대학과 출연연구기관이 공동운영하는 합동학위과정을 활성화한다. 또 평생교육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독학학위제도의 전공영역을 인문사회계열에서 이공계분야까지 확대한다.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북한바로알기교육을 펴나가는 한편 남북학생교류 및 학교자매결연,남북교원 및 교원단체교류 등도 적극 추진한다.○통일시대 문화창달/문화부 문화부는 올해 시책방향을 ▲민족문화의 정체성 확립 ▲문화예술의 창달과 문화의 사회적 기능 증대 ▲국민문화향수의 기반확충 ▲통일문화대책의 제시등 크게 4가지로 가닥을 잡았다. 이가운데서도 세부적으로는 임진왜란 4백주년과 관련된 사업과 청소년문화육성,문화의 중앙편중개선에 크게 비중이 두어졌다. 먼저 임진왜란의 주요전적지 가운데 이미 문화재로 지정한 15군데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전적지등 11군데를 발굴해 정비한다.이와함께 일제에 의해 훼손된 문화재의 복원작업도 계속 추진해 경복궁내 건물 8동과 창덕궁 인정전의 행각을 복원한다. 청소년문제에 있어서 그동안 문화정책에서 소외되어온 지방 및 근로청소년에 초점이 모아져 박물관과 미술관·도서관·종합문예회관·문화원등 전국의 모든 문화시설을 청소년문화활동 공간으로 개방하고 직장문화활동에 대한 지도를 강화해 기업별로특성있는 중점문화서클을 육성토록 한다. 지방의 높아진 문화욕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올해말까지 44개의 도서관 없는 시·군·구에 도서관이 건립되며 전국 1천4백23개 읍·면회관과 1백71개 지방문화원이 도서관으로 개방된다.또 연내에 부산 대구 광주 인천 수원 춘천 강릉 목포 구미 진주 제주등 11개 시에 종합문화회관을 건립하고 7개 시에 대한 문예회관 건립을 추진한다. 94년 완공될 국립 남원민속국악당은 오는 4월 착공된다. 통일을 대비한 문화정책은 새로운 제안 보다는 이미 제안되었거나 추진중인 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으로 이에 따라 우선 10년계획으로 통일종합국어대사전 편찬작업에 착수한다. ○여성력할 제고/정무2 여성들이 앞장서서 근검·절약·저축을 생활속에서 실천,경제안정 기반 구축에 기여한다. 이를 위해 알뜰시장을 확충,유휴생활용품을 재활용하고 주부들이 에너지 절약에 적극 참여한 가운데 대중교통 이용하기등 「덜사기·덜쓰기·덜하기 운동」실천을 확산한다.또한 간소한 식단,바른식사습관으로 음식쓰레기 줄이기등 식생활 문화개선에도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다. 사회안정을 위해 여성들이 「새질서·새생활 운동」의 주체가 되어 도덕성 회복에 적극 참여하고 공명선거 풍토조성에 기여토록 한다.자원봉사활동을 생활화하여 「더불어 사는 사회」의 새로운 기풍조성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계획이다. 여성의 사회참여확대를 위해 여성전문직업훈련,시간제 취업등 여성고용안정책을 우선 강화하는 동시에 보육시설 확충등 기혼 취업여성을 위한 지원제도의 정착에 힘쓴다.
  • 「새 청와대」 준공/“통일 앞당길 민주정부 표상으로”/노 대통령

    ◎“민족 자존 걸맞게 우리기술·자재로 완성”/신본관 연건평 2,564평의 2층/전통 한식… 본채 좌우에 별채 노태우대통령은 4일 상오 청와대 신축본관 준공식에 참석,연설을 통해 『지금처럼 온나라에 생동력이 넘치고 국민의 자신감이 충만했던 때는 우리 역사에 일찍이 없었다』고 강조하고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이 세기안에 민주 번영 통일의 빛나는 나라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오늘 새 청와대를 준공하는 이 자리에서 나라와 겨레의 밝은 앞날을 열기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앞으로 이곳에서 이뤄질 일들로 우리 국민의 행복이 증진되고 우리나라가 무궁히 발전되기를 기원한다』고 희망했다. 노대통령은 청와대 신축과 관련,『건국 반세기를 내다보는 이제까지 52년전 일제가 총독관사로 지은 집을 집무실겸 관저로 써온 것은 민족의 자존에도 어긋나는 일이며 높아진 나라의 위상과 국민의 긍지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고 지적하고 『우리의 기술과 우리의 자재로 지어진 청와대의 새로운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오늘의 당당한 나라를 이룬 보람을 나누며 우리 모두의 밝은 미래를 기약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또 『새 청와대가 국민의 사랑과 신뢰위에서 선 민주정부의 표상으로서 번영하는 선진국,7천만겨레가 한나라 속에 사는 통일을 이루고 또한 그 속에서 민족의 무한한 영광을 창조하는 전당이 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준공식에는 전현직 3부요인,김영삼대표 등 민자당최고위원,김대중 신민당총재와 각계대표·국가유공단체대표·보통시민대표 등 6백여명이 참석,새 청와대의 준공을 축하했다. 이날 완공된 청와대신본관은 총공사비 1백63억원을 들여 지난 89년 7월22일 착공됐으며 연건평 2천5백64평으로 경복궁·창덕궁·덕수궁 등의 건축양식을 참고해 정통한식 형태로 지어졌다. 노대통령은 이날중 구본관에서 서류·자료 등이 이곳으로 옮겨진뒤 5일 첫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본격적인 신본관집무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사용해온 구본관은 역사적 가치가 없는 건물로 헐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지배적이나 일부에선역대대통령의 기념관으로 이용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어 청와대 당국은 좀더 폭넓은 의견을 수렴한뒤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외언내언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의 한 구절. 소나무는 애국가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래동화·민요·속담 등에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에도 빠져서는 안 되는 단골 소재. 예부터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가장 친숙한 나무였다. ◆나무껍질은 검붉고 비늘모양,잎은 바늘의 형상. 한반도와 중국·일본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데 한 그루의 모양새는 그리 아름답지도 않고 열매인 솔방울도 별 쓸모가 없다. 경제적으로는 효용가치가 적은 편. 옛 건물의 건축재나 침목으로 쓰이고 있지만 옛날의 여인네들은 주로 땔감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보릿고개로 상징되던 참담했던 가난의 시절,소나무 껍질을 벗겨 굶주린 배를 달래던 일을 50대 이상의 중·노년들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옛날에는 산마다 소나무가 울창했었다. 산만이 아니라 큰 마을 어귀에는 소나무 숲이 있었고 그곳은 마을 사람들의 운치있는 쉼터였다. 창덕궁의 후원인 비원도 소나무 숲이 자랑거리였다. 1826∼1830년에 제작된 「동궐도」에 따르면 비원에는 키가 20m나 되는 금강송이 숲을 이루었고 창덕궁 건물 주위에도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원의 소나무 숲이 비위에 거슬렸던 일제가 소나무를 모두 잘라내고 그 자리에 밤나무·벚나무 등을 무더기로 심는 바람에 우리의 전통적 궁궐조경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문화재관리국은 비원의 옛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소나무 숲을 다시 조성키로 하고 일차적으로 식목일인 지난 5일 15년생 소나무 1백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산의 조림수종으로는 적합치 않겠지만 도시의 공원이나 집뜰에 소나무를 심어 우리의 전통적인 조경으로 가꾸어 간다면 정서순화에도 도움이 될 듯. 실제로 서울도심에 있는 몇몇 빌딩 주위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어 독특한 멋을 자랑하고 있다. 최근 한국갤럽이 조사한 것을 보면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응답자의 54%가 소나무를 꼽았다고 한다. 소나무는 예나 이제나 「우리 민족의 나무」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 외언내언

    『아아! 지붕에 걸리련다. 옳다! 넘어섰다. 겨울 바람이 꽤 강하게 부는 날이었다. 재욱 소년은 사랑뜰에서 연을 올리고 있었다….』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22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아들 명복으로 하여금 익종의 대통을 잇게 하라』는 교지를 받든 영의정 김좌근 등이 운현궁에 들어섰을 때 임금될 소년은 이렇게 연을 날리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의 「사랑뜰」이 다른 기록에는 「무너진 울타리 안마당」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천하의 건달 행세를 하던 흥선군이었으니 집안 건사가 제대로 되었을리 없다. 「쓰러져 가는 아래채」 「거미줄 친 추녀」 같은 표현은 「운현궁의 봄」에도 보인다. ◆운현궁은 명복소년이 익성군­고종으로 되면서부터 궁궐같은 엄청난 규모로 늘려 지어진다. 창덕궁과 가깝게 왕래할 수 있는 임금 전용의 경근문과 대원군 전용의 공근문이 있었다. 담장 안에는 아재당,사랑채 노안당,안채 이노당·노락당이 있고 영화루도 있었으며 조상을 모시는 사당도 있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의하면 철종때부터왕기가 서렸다는 말이 나온 운현궁터. 여기서 흥선대원군이 천하를 호령했다. ◆사적 257호. 그러나 물론 옛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 일부는 덕성여대의 교사로 쓰이고 있고 일부는 전 TBC(동양방송)의 스튜디오로 개조되었으며 대원군이 주로 쓰던 아재당도 헐려버렸다. 그런 중에도 안뜰에는 고종임금이 소년시절에 그 그늘 아래서 놀았다는 노송이 남아 있다. 고종이 임금이 된 다음 이 소나무에 금관자를 달아주었기에 대부송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서울시에서는 내년 10월 운현궁 정비·복원작업을 시작하여 94년에 무료 개방한다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전통 생활문화전시관으로 활용할 방침이라는 것. 그 동안 일반인에게는 소원했던 운현궁이다. 가감없이 복원되어 살아있는 역사의 교육현장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 남북공동작곡 「통일의 길」 큰인기/평양민족음악단 1차공연 이모저모

    ◎남은 합진,북은 독진·독창 돋보여/북 단장,“통일대하 누구도 막지 못할것”/양쪽 출연진 대합창으로 절정에 ○…서울 방문 이틀째를 맞은 평양민족음악단(단장 성동춘) 일행 29명은 9일 상오 10시쯤 창덕궁에 도착,약 1시간20분 동안 인정전·대조전·비원 등을 관람. 이우용 관리소장 및 안내원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은 이들은 달력·기념배지·엽서·도자기 등 준비해온 선물을 안내원과 보도진들에게 나눠주며 말을 거는 등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부용정 휴게소에서 다과 등을 들며 20여 분 간 환담을 나눈 성 단장은 『우리 선조들이 만든 귀중한 문화재들이 임진왜란 때 소실돼 가슴아프다』면서 다시는 이런 재난을 당하지 말아야겠다고 말하기도. 이날 창덕궁은 일반인들의 관람도 허용,북측 일행은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궁내를 오갔으며 인정전 앞뜰과 비원에서 두 차례 기념촬영을 한 뒤 예정시간보다 30여 분 늦은 상오 11시30분쯤 창덕궁을 출발. ○맵시있는 옷차림 ○…한편 이날 창덕궁을 찾은 평양민족음악단 일행의 옷차림은비교적 세련된 모습들. 엷은 줄무늬 회색 싱글차림의 성 단장 등 남자 일행들은 대부분이 양복차림이었고 제1차 공연에서 능수버들 양산도 등을 부른 독창가수 배윤희 등 여성 출연자들은 감청색의 꽃무늬가 수놓인 한복에 흰색 목도리를 두르거나 투피스에 바바리코트를 걸친 맵시있는 차림들. ○…성동춘 평양민족음악단 단장은 이날 하오 서울체류 후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통일염원차원에서 이번 축제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 성 단장은 『통일을 위한 민족대음악축제에 중앙일보 보도 등 유감스런 문제가 아쉽긴 하지만 통일기운이 거세차게 흐르는 대하』라면서 『그 가운데 자질구레한 거품이 있을 수도 있으나 결코 그 대하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역설. 그는 또 북에 민간예술단체가 있느냐는 질문에 『민간단체는 북에 얼마든지 있고 노동자 농민들이 일주일에 한 번 콩쿠르에 출연할 만큼 문화예술을 즐기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한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는 것이 배우와 같은 문화예술인들』이라면서 『이들이 주축이돼 정치·군사 등 첨예한 문제에 앞서 문화통일을 이뤄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문보도에 불쾌 ○…2부인 평양민족음악단의 첫 공연 곡목 중 78세의 인민배우 김진명옹의 독창인 「배따라기」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야위고 연로한 김옹의 목소리가 의외로 찌렁찌렁 울려나오자 노익장에 모두 감탄하는 눈치. 또한 하이라이트는 김옹과 69세의 공훈 여배우 김관보씨의 혼성민요 제창. 이들은 「박연폭포」 「정방산성가」 「자진난봉가」 등 3곡을 불렀는데 70∼80대에 이른 원로들의 진지한 가창모습에 모두 넋을 빼앗긴 듯했다. 이어서 북한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공훈배우 백영희씨(35)의 「평북영변가」와 「바다의 노래」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평양민족음악단의 해금 연주자 유덕재씨(42)는 전통음악의 개량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열심히 설명했다. ○북 최고 인기배우 『우리는 전통음악 계승에 많은 신경을 쓰면서 민요를 기악곡으로 편곡,인민들의 구미에 맞도록 개량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현재 민족악기와 양악기를 합한 배합관현악의 연주도 활발하다』고 소개. 특히 배합관현악은 음색이 독특하고 웅장해서 인민들이 모두 좋아한다는 자랑까지 곁들였다. ○…북한측 공연이 독주·독창·병창 등 제한된 인원내에서 돋보이는 개인기량을 한껏 발휘한 데 반해 우리측 공연은 많은 출연진과 우렁찬 합주,화려한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 9일 첫 공연에서 먼저 무대를 장식한 우리측은 60명이 출연한 가야금 합주 「침향무」와 입체장 「심청가」 중 부녀상봉 대목에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후 국립무용단과 88무용단 등 80명이 출연한 「북의 합주」에서 힘찬 타악의 리듬과 힘나는 국무로 피날레를 장식,큰 박수를 받았다. 후반부에 등장한 북한측 공연단은 프로그램 선곡을 경쾌한 음악으로 골랐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 민요가락에서 일반 성악곡까지 모든 리듬이 흥겹게 구성됐으며 지난 8월 평양에서 성동춘 단장과 황병기 위원장이 함께 작곡했다는 노래,「통일의 길」 역시 밝고 부담없는 곡조로 저음가수 송영희의 열창으로 열광적인 박수를 이끌어냈다. ○북의옥류금 첫선 ○…이날 북측이 8번째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독주악기 옥류금은 북한이 내놓은 최고의 전통악기로써 남쪽에서 이 악기가 실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자에 앉아서 켜게 돼 있는 이 옥류금은 삼국시대에 있던 하프형태의 재래악기 「공후」와 가야금의 원리를 조화시킨 새로운 악기로서 그 음향이나 용도가 전통음악에 쓰이는 그야말로 북한의 독자적인 전통악기이다. 소리가 옥같이 맑다고 해서 옥류금이라 이름붙인 이 악기는 하프에서 피아노·실로폰 등 각종 악기의 음색을 다채롭게 구현해내 객석의 환호를 받았다. 황병기 집행위원장은 『북한에 갔을 때 이 악기를 사오려고 했는데 저들이 무슨 이유인지 주문생산만 받고 재고가 없다고 해서 못 구해왔는데 매우 훌륭한 악기임엔 틀림없다』고 촌평. ○…평양민족음악단의 총 연출자 최상근씨는 이번 공연과 관련,민족 색깔이 짙은 고전민요를 위주로 연주곡목을 선정했다며 옥류금·장쇄납 등 북한의 악기개량작업에 대해서도 설명. 그는 또 북한에서는 「악기연구소」라는 전문 연구단체에서 전통민족악기를 시대와 민족요구에 맞게 개량하는 연구를 꾸준히해 오고 있다고 전하면서 「범민족통일음악회」에서 황병기씨가 연주한 거현금에 대해 개량악기는 아니라고 본다며 북한에서는 9현이나 6현으로 개량한 가야금도 쓰인다고 말했다. ○「우리의 소원」 합창 최상근씨는 「피바다」 「꽃파는 처녀」 「밀림아 이야기하라」 등 여러 가극의 곡을 만든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 ○…첫날 공연에 앞서 평양민족음악단은 이날 하오 3시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으로 옮겨 본격적인 리허설에 돌입. 이들은 처음에는 무대시설을 낯설어 했으나 연습이 진행되면서 쉽게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날씨가 포근한 데다 스팀까지 들어와 땀까지 흘린 북측 단원들은 『남북관계가 이런 겨울날씨 같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한마디씩. ○…이날 북한측의 공연에 이어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의 피날레는 남북 출연진이 모두 출연하여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온 객석을 감동과 감흥의 한순간으로 이끌었다. 우리측 공연단 2백23명과 북측 공연단 24명이 한데 어우러져 손에 손을 잡고 이 노래를 부르자 객석의 모든 관객들도 함께 일어나 합창,가슴벅찬 통일의 열망으로 막을 내렸다. 이날 심봉사역으로 나왔던 남측의 조상현씨가 북측의 인민배우 김진명의 손을 잡고 나와 함께 노래했으며 조씨가 김씨를 덥석 업어 무대위를 빙빙돌자 장내는 박수와 환호로 뒤범벅. ○…북측에선 이번 공연을 위해 포스터 5백장을 특별제작해왔으나 남측에서 이를 붙여주지 않는다고 기자단에게 불만을 토로. 이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자 공연 직전 콘서트 홀 주위에 우리측 포스터가 붙은 곳 옆에다 북측 포스터를 황급히 붙이는 촌극을 연출.
  • 가슴을 적신 천년가락/나윤도 문화부 기자(오늘의 눈)

    「북한의 민족음악단이 서울에 온다」 「과연 그들이 판문점을 넘어올까 또 와서는 공연이 제대로 진행될까」 이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던 기자의 기대와 의문은 말끔히 씻겨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북관계에 있어서만큼 한 치 앞도 내달볼 수 없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그같은 기대와 의구심이 교차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평양민족음악단이 이번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에 참석,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연주에 임할 것을 지켜보면서 조그마한 신뢰의 징검다리가 놓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첫날 공연이 있던 9일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꺼림칙한 앙금으로 남아 있는 것은 8일 밤 이어령 문화부 장관의 만찬장에 북한음악인들이 한 시간 이상이나 늦게 참석했다는 점이다. 전후사정은 북측 음악인들은 서울의 모 석간신문의 기사를 문제삼아 대책회의를 하느라 늦게 참석했다는 이야기인데,그와 같은 결례를 범하고도 북측의 성동춘 단장은 원로 국악인들을 한 시간씩 기다리게 한 데 대한 사과의 말은 없이 만찬답사에서 『우리 수령님과 체제를 모독하는 그 기사는 온 겨레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강력히 비난하며 『해당 신문사 사장의 사죄와 정정기사 게재』를 강력히 요청했다. 문제의 기사는 주로 김일성의 전력에 관해 비판한 것으로 그들의 입장에서는 참기 어려웠을는지도 모른다. 좌석에 앉아있던 다른 북한 대표단원들도 한결같이 「그 기사」에 대해 분개하는 말을 했다. 기자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북측의 한 기자도 같은 항의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인 9일 아침 창덕궁을 관람하는 자리에서 성 단장은 『어제의 기사문제는 이번 공연의 목적인 남북통일이라는 대전제를 놓고 볼 때는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며 앞으로의 공연일정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이같은 북측의 태도결정이 그들이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아량을 가진 때문인지,아니면 상부 지시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 단장의 설명을 듣는 순간 앞으로도 남북한에 『통일이라는 대전제 앞에 사소한 일은 문제삼지 않는다』는 하나의 원칙을 모든 남북문제에 적용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북측은 남측의 민주사회 속에서 흔히 있어온 「다원주의」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것만이 앞으로도 이와 같은 불필요한 오해를 갖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첫날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남북 음악인뿐 아니라 모든 관람자들이 1천년의 가락을 함께 즐겼다. 40년의 단절로 인한 이질감을 4천년간이나 이어져 내려온 동질성으로 극복해보자는 전통음악의 만남. 이 만남이 민족통일의 전주곡이 되기를 기자는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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