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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도 6백년의 서울/이배영 남북문화교류협회장(굄돌)

    흔히 서울을 문화가 없는 도시라고 한다.외형적 현대화에만 치중해 우리 전통문화는 사라지고 서양의 문화가 홍수처럼 넘치고 있다.개발에 밀려 유서 깊은 서울의 이미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서울은 고도6백년의 역사와 전통문화가 있고,도심에는 경복궁,경희궁,덕수궁,창경궁,창덕궁 등의 고궁,무형문화재들도 많다.또 남산,북한산,관악산,도봉산과 한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을 갖춘 도시이다.이런 좋은 자연을 갖추고 있음에도 서울은 악성 피부병을 앓는 사람처럼 파괴당하고 있다.산업화 물결에 휩쓸려 개성과 멋이라곤 모조리 없어 지고 있는 것이다.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고도의 옛 모습은 불과 1백년동안에 매연가스와 폐수,산업쓰레기가 가득찬 도시로 변했다. 우리 조상들은 초가집을 짓더라도 산수의 경치를 두루 살피고 지었다.파괴가 아닌 조화의 슬기로움을 발휘한 것이다.지금도 선조들의 발자취가 배어있는 시골 마을을 살펴보면 새끼 병아리가 어미 닭 품에 안긴 것처럼 산비탈에 집을 지어 자연 속에 동화돼 있다.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옛동헌이나 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선조들은 항상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마치 어린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한 생활방식을 취하며 살았다.예를 들어 집터를 잡는 데 있어서도 산이 작은 언덕 높이라 할지라도 그 언덕 정수리에 집을 짓는 법이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자연을 정복해 쾌감을 얻기 보다는 고향을 찾아가듯 겸손한 태도로 생활했다.아름다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곰곰이 되새겨 보면 헤아리기 어렵다.사람을 사랑하고 이웃을 아끼는 심성을 지닌 자만이 인자하고 너그러운 자연의 숨소리를 들을수 있다.이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의 자연관이다. 서울시에서는 정도6백년을 맞이해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우리는 서울시가 주관하고 있는 행사를 구경만 해서는 안된다.우리 자신의 집부터 예술적 아름다움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 거리:상/시전 있던 종로는 상업의 중심지(서울 6백년 만상:15)

    ◎“사람 구름처럼 모인다” 운종가로 불려/현재 세종로인 육조거리엔 관청 자리 서울에는 세종로·종로·청계천로·태평로 이렇게 고유의 이름이 붙여진 거리가 5백개가 넘는다. 6백년전 서울이 한양이란 이름으로 처음 수도로 정해질 때만해도 이름을 가진 거리는 3개에 불과했다.예나 지금이나 서울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광화문네거리를 중심으로 지금의 세종로에 해당하는 육조거리,지금의 종로인 운종가,을지로쪽을 일컫는 구리개 혹은 동현. 하기야 당시 한양의 상주인구가 5만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고 보면 3개의 거리만으로도 충분했는지 모를 일이다. 「육조거리」가 거리이름에서도 바로 읽혀지듯 이·호·예·병·형·공조등 6개 행정부처가 자리한 정치의 거리였다.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궁궐·종묘·사직·관아·문묘등을 건설한 다음 도성을 축조해갔다.이때 태조는 통치의 근간이 되는 6조를 궁궐인 경복궁에서 지금의 광화문네거리 사이에 배치했다. 폭 1백m로 국내에서 가장 넓은 6백m의 이 거리에는 정부제1종합청사를 비롯,문화체육부·미대사관·국세청·체신부와 한국통신공사등이 자리잡아 정치의 거리구실을 하고 있는 것은 6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흔히 「육조앞」이라고도 불리던 이 거리는 일제때 「광화문통」으로 바뀌었다가 해방후에는 반만년 역사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이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태어났다 해서 세종로로 명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한양을 대표하던 거리는 지금의 종로인 운종가였다.그당시에 사람이 모이면 얼마나 모였으랴만 그래도 사람이 구름처럼 모인다 해서 운종가라고 이름을 붙였다니 옛날은 옛날이었나 보다.지금의 종로는 광화문네거리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거리를 이르지만 한양시대 운종가는 창덕궁 동쪽 문 그러니까 지금의 종로3가끝까지였다. 그 가운데 중심지는 통금시각의 시작과 해제를 종소리로 알리기 위해 당시 가장 번화가인 운종가에 커다란 종을 만들어 매달아놓은 종루였다.맨처음 종루가 지어진 것은 태조의 한양천도 4년후인 1938년4월로 처음에는 청운교 서쪽,그러니까 지금의 파고다공원옆에 있었다.그러다 42년후인 세종 22년(1440년)에 지금의 종각자리 부근으로 옮겨 지었다고 옛문헌들은 전한다.그후 종루를 재건축하면서 2층으로 지어 그 밑으로 사람이나 말들이 통행하도록 했다고 한다.세종조의 종루는 임진왜란때 불타 세번째 다시 지어지고 운종가에서 조금더 안쪽으로 옮겨 지어 현재 종각(보신각)자리를 지키고 있다. 운종가와 종로가 한양과 서울을 대표하는 거리가 된 것은 「경제의 거리」였고 그래서 언제나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 나중에는 정치·경제·문화의 구심점 몫까지 도맡은 데서 연유한다.또 운종가가 6백년동안 끊임없이 「경제의 거리」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은 것은 조선왕조가 지금 말로 대단위유통단지를 조성했기 때문이다.궁궐에 이어 도성축조까지 마무리되면서 새 왕조로서 토대가 굳건해지자 3대왕 태종은 즉위 12년(1412년)째부터 2년여에 걸쳐 광화문네거리에서 동대문까지와 종루에서 남대문 사이에 길양옆으로 2천6백33칸의 행랑을 건설했다.행랑은 관청에서 세운 상설점포로 관청에 세금을 내고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해서 시전(시전)행랑이라 했다.성종실록에서는 운종가를 「지역은 좁고 사람은 많아 간사한 무리가 속이고 빼앗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차마가 꽉 메워 사람이 많이 상한다」고 묘사해놓고 있다. 이같은 「경제의 거리」로서 종로의 명성은 1920년 파고다공원옆에 미니백화점격인 동아부인상회가 들어선 이후 1922년 종각네거리의 화신백화점시대를 거쳐 70년 초반까지 줄기차게 이어졌다.70년대 중반부터 한강이남이 집중개발되면서 서울의 상권을 강남쪽으로 많이 빼앗겼지만 아직도 내로라하는 금은방·주단포목점·지물포와 서점만은 종로에 자리잡고 있어야 최고로 쳐주는 세상인심만은 여전하다.
  • 개혁 3백65일 성과와 과제/본사취재부장 좌담(문민정부 1년)

    25일로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한지 한돌이 됐다.32년만에 부활된 문민정부는 신한국 창조의 기치아래 공직자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의 실시등 쉴새 없는 개혁조치들로 군사문화의 잔재를 씻어내느라 숨가쁜 한해를 보냈다.아울러 쌀등 농산물시장 개방,대형사건·사고,북한핵문제등 시련도 많았다.서울신문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부등 5개 부서 부장들의 방담을 통해 그동안의 변화와 개혁을 평가하고 문민정부 2차연도의 과제를 짚어본다. ◎“「한국병」 과감히 수술… 성역 없앴다”/공직사정 서슬에 경기회복 지연 아쉬움/폭력시위 줄었지만 집단이기민원 늘어/총독부건물 철거 등 민족정기 회복 노력 ▲이중호정치부장=김대통령은 취임하자 바로 본인과 가족들의 재산을 공개하고 정치자금의 단절을 선언함으로써 신한국 창조를 위한 힘찬 첫발을 내디뎠습니다.여기서 비롯된 「공직자 재산공개 태풍」은 숱한 인사들을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나게 하는등 정치권이 자기 살을 베는 아픔을 격기도 했지요. 또 「5·16」과 「12·12」를 「구데타」등으로 규정함으로써 군사정권과 단절하고 헌정질서를 제자리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깨끗한 정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정치관계 입법도 새 정부의 개혁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인치법치논쟁 유감 김대통령이 개혁을 주도하면서 한때 「인치 법치」논쟁이 일었던 것은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여기에는 정치권이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개혁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활발했던 정상외교는 문민한국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올해는 일본과 중국 순방등을 통해 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를 추진해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고요. ▲정신모경제부장=김영삼대통령은 취임후 격주로 과천청사를 찾았습니다.경제도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챙기면 곧 일어날 것이라는 정치적 발상이었다고나 할까요.그러나 고통분담이라는 이름아래 추진된 1백일 계획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기는 합니다만. 전격적으로 단행된 실명제와 2단계 금리자유화 조치는 처음 우려와는 달리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특히 실명제는 정면돌파를 특기로 하는 김대통령 아니면 실시가 불가능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쌀등 농산물시장 개방을 가져온 우루과이라운드(UR) 태풍으로 어지간히 시끄러웠지요.농어촌특별세가 도입돼 연간 1조5천억원씩 10년동안 15조원을 농어촌에 투자한다는 계획이 착실히 추진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올들어 경기가 회복되고 있습니다만 여러가지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특히 사정활동의 강화는 그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투자활동을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경제에 주름살을 지웠지요.기업인들의 불안감을 신뢰로 바꾸는 연구가 부족했던 결과가 아닐는지요. ○노동법개정 늦어져 ▲이기백사회부장=사회적으로는 광범위한 부정부패 척결이 이뤄지면서 「한국병」의 실체를 파헤쳤지요.군의 인사비리·율곡사업비리 감사,동화은행 비자금 수사,슬롯머신등 과거 정권에서 성역시 되던 분야에 대한 과감한 수술은 「표적」시비를 낳기도 했지만 높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열린 사회,열린 마음」의 의지는 청와대 앞길 개방,인왕산 개방,청와대주변 안가 철거 및 시민공원 조성,지방 청와대의 시민 편의 시설 전환등 군사문화의 잔재일소로 나타났고요.전격적인 군인사와 숙군작업은 문민우위의 원칙과 군의 정치불개입 원칙을 확인시킴으로써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게 했고요.대규모 사면·복권과 가석방,수배해제,복직등 국민대화합을 위한 조치도 뒤따랐습니다.폭력시위가 줄어든 대신 집단이기주의적인 민원이나 시위가 늘어난 것도 큰 변화이지요. 지난 한해는 자율에 입각한 노사관계로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각종 압력·이익단체에 강력 대응하지 못하는 약점을 보인 아쉬움도 남겼습니다.노동관계법 개정이 늦어지고 있는 점이나 「무노동 무임금」같은 주요 정책추진에서도 일관성을 잃은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김정열문화부장=문화분야에서는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잡기 위해 단행한 국립중앙박물관 건립과 옛총독부건물 철거등이 주목됩니다.오는 2000년이면 건국이후 처음 우리 손으로 지은 박물관이 용산가족공원 안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굴욕의 상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겠지요. 경복궁의 강녕전,창덕궁의 인정전 행각과 인정문 복원사업등 문화재의 원형복원작업도 새 정부의 「작품」입니다.해외에 산재한 문화유산의 보존·전승대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이밖에 「민중미술」「민예총」등 재야예술단체의 제도권수용은 문민정부의 진전된 의식전환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을 비롯한 큼직한 문화공간이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소프트웨어의 개발및 공급부족으로 제구실을 못해 안타깝습니다. ▲황병선국제부장=외국에서 바라본 김영삼대통령의 개혁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극찬」 그 자체였습니다.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금융실명제의 실시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를 앞다퉈 소개했고 개발도상국들은 『우리들이 사는 길은 한국의 개혁사례를 본받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새 정부의 강력한 개혁드라이브가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은연중 높이고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는 것이 아닐는지요. 한예로 중국의 신화통신·광명일보·북경일보에서는 「국수 한그릇」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김대통령의 검약정신과 개혁마인드를 소개하며 중국관리들을 질타하기도 했었지요.러시아·헝가리등 동구권 국가들도 김대통령의 개혁에 대한 관심,경의표시는 마찬가지였다고 보입니다.미국의 비즈니스 위크지 최신호에서는 새 정부의 경제부문에 대해 B학점을 매겼는데 경제규제 완화조치,금융실명제의 전격실시등 획기적인 경제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불황과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꼽았더군요. ▲이정치부장=북한핵문제는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요.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갈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 보입니다. 곧 마무리지어질 정치개혁입법을 현장정치에 접목시켜 「깨끗한 정치」를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것입니다.이는 95년의 4개 지방선거와 96년 총선이라는 시험대를 통해 가름되겠지요.국회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강구되고 있지만 정치인 스스로의 의식전환도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정경제부장=최근물가정책의 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정책에 정치논리가 개입되는 것 역시 고쳐져야 겠지요.물가문제는 결국 소비자가 인상분을 부담하거나,공공서비스에 있어서는 세금을 올려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데 무작정 눌러놓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요.미봉책 때문에 결국 왜곡이 심화된다는 사실을 실감할 날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군 효율성 제고 시급 ▲이사회부장=일선 경찰관들의 금품수수에다 무사안일주의 등은 근절되어야 합니다.떼강도사건 등의 재발방지등 민생치안의 강화를 위해 경찰의 사기진작이나 장비의 과학화등이 함께 추진되어야 하고요.교육개혁을 반드시 이뤄내고 교육개방에 대비해야 하는 것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군문제와 관련해서는 장군서열 조정,낙후 병영시설 개선,부대운영의 비효율성 개선등도 필요합니다. ▲김문화부장=지적재산권을 비롯한 국제화,개방화에 대비한 적극적인 지원책이 시급합니다.국민들의 문화향수 욕구에 부응한 폭넓은 프로그램 개발등이 아직 미진한 것도 숙제로 지적되고 있고요.이같은 맥락에서 영화,연극등의 기술요원을 포함한 문화예술 전문인력의 양성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합니다. ○문화전문인력 양성 ▲황국제부장=주변강대국들은 김영삼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대과제로 경제회복문제 보다 북한핵문제 같은 것을 꼽고 있습니다.김대통령이 올 신년사를 통해 밝힌 것처럼 북한의 핵개발로 야기된 일련의 문제를 지구촌차원에서 더욱 관심을 갖고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자세를 촉구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 다리:상/구릉·계곡따라 80여개 산재(서울 6백년 만상:10)

    ◎영제­옥천­금천교 궁중위험 갖춘 “조형예술”/세종때 건립 수표교는 치수의 지혜 엿보여 다리는 떨어진 두곳을 잇는 매개체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단순히 지나는 곳만이 아닌 「만남」의 중심이요 무대인 것이다. 그해 신수가 좋아진다고 믿으며 정월 대보름달 아래서 청춘남녀들이 즐긴 다리밟기와 불가에서 절을 지을 때 속세와 불국토,즉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믿고 다리를 함께 놓은 것에서 다리의 이같은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다리는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강이나 개천 또는 언덕과 산을 쉽고 편하게 건너거나 넘기 위해 놓여진 것이다.오늘날 토목학자들은 인간이 만든 구조물 가운데에 가장 길고 큰 것이 다리이기에 다리를 「토목구조물의 꽃」이라 일컫는다. 내사산과 외사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의 서울은 한복판에 청계천이 흐르는등 구릉과 계곡이 많아 다리 역시 많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서울에 얼마나 많은 수의 다리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조선조 고종때를 전후해 작성된「한경식략동국여지승람」 「수전지도」 「서울지도」등에 따르면 서울에 산재해 있던 다리는 성안 76개,성밖 10개등 대략 86개로 알려지고 있다.경복궁의 영제교를 비롯,창경궁의 옥천교,창덕궁 금천교등 궁궐안 다리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 다리들은 정전에 이르는 외당앞에 명당수가 흐르는 어구위에 건설된 것이어서 단순한 다리기능외에 다양한 조형미를 연출한 예술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제교는 다리바닥의 가운데가 높은 어도이고 좌우는 낮은 삼도로 이뤄져 신분에 맞게 다니도록 했다.폭이 10.2m로 어가의 행렬이 지나는데 꼭 맞고 난간과 멍엣돌에는 재앙을 막고 왕조를 지키기 위해 귀면이나 석수를 조각했다. 영제교는 새 왕조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 경복궁을 지을 때 함께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원래 근정전앞 총독부청사 뒤쪽에 있었으나 일제가 총독부건물을 지으면서 헐렸다 지난 74년 복원됐다. 궁중다리 가운데서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옥천교 역시 삼도로 되어 있으며 중앙의 벽면에 삼각형 모양의 귀면을 조각해 벽사시설을 했다.창덕궁 금천교는 1411년에 공조판서 박자청이 감독한 현존하는 궁안의 돌다리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난간 밖으로 내민 멍엣돌에 용두상이 조각돼 있다. 그러나 시정의 일반시민들의 귀에 가장 익은 다리이름은 아마도 수표교일 것이다. 수표동 43번지와 관수동 152번지 사이의 청계천에 있던 이 다리는 1420년 세종때 건설될 당시의 이름은 마전교였다.그러다 세종 23년에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리 돌기둥에 「경진지평」넉자를 새겨 수표석을 세워 수량을 측정하면서 수표교로 불리게 됐다.청계천복개에 따라 철거된 수표교는 장충단공원안에,수표는 홍릉의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옮겨졌다 현재는 여주 영릉에 보존돼 있다.이 다리는 교각이 물의 저항을 덜 받도록 네모와 육모기둥의 석재를 2단으로 세워 우리 조상들의 이수·치수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서울의 다리로 살곶이다리를 빼놓을 수 없다.한자말로는 전곳교인 이 다리는 성동구 사근동 한양대학교 남쪽에 위치한 돌다리로 살곶이앞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폭 5.95m,길이 75.75m로 조선시대에 세운 교량으로는 가장 긴 살곶이다리는 세종 21년(1439년)에 가교공사를 시작했으나 진척이 지지부진하다 착공 60여년만인 성종 14년(1483년)에야 승려들을 동원하여 가까스로 완성했다.기록에는 『스님이 살곶이다리를 놓으니 그 탄탄함이 반석과 같다 하여 성종이 제반교라 어명하였다』고 전한다.대원군때 경복궁을 지으면서 모자라는 석재를 보충하기 위해 살곶이다리의 석재 절반을 갖다 쓴데다 1920년 장마에 떠내려가 폐교상태였다 지난 77년 서울시가 복원했다. 이름없는 수많은 다리와 달리 한강에 다리가 생겨나고 서울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한강교량의 건설이 서울의 발전과 맥을 같이하게 되면서 다리는 통행로 본래의 기능을 되찾는다.
  • 전국 공공도서관·중앙박물관·사상연 등 다양한 강좌 개설

    ◎즐거운 겨울방학 뜻깊고 알차게/고전·독서·민속 등 교양프로그램 다채/초중고교·대학생·교사 등 대상 겨울방학에 맞춰 박물관·도서관을 비롯한 각 학술·사회단체에서 각종 교양 프로그램을 활발히 준비하고 있다.프로그램의 내용이 독서지도·고전강좌등 다양하고 기간도 5일에서 석달에 이르는등 갖가지여서 자신에게 알맞는 것을 골라봄직하다.대표적인 프로그램 몇가지를 소개한다. ▷공공도서관 겨울독서교실◁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한 전국의 각급 공공도서관이 새해 1월10일부터 어린이독서교실을 연다.도서관 관계자들이 도서관 이용법,원고지 쓰는 법,올바른 독서법,좋은 책 선택법,독후감 작성법등 독서 및 도서관 이용에 따른 전반적인 사항을 지도한다.각 도서관 사정에 따라 개설시기·기간등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국민학생 3∼6학년과 중학생 대상으로 6∼10일 일정이다.이번에 48번째 개설되는 독서지도 프로그램으로 지난 겨울강좌에서는 전국 1백55개 도서관에서 8천8백50명이 수강했다.문의(02)569­5638. ▷어린이·청소년 박물관교실◁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민학생 4∼6학년 4백명,중학생 2백명을 대상으로 개설한다.기간은 국민학생이 새해 1월10∼14일,17∼21일 두차례,중학생이 1월24∼28일등 각 5일씩이다. 전통문화에 대한 강의와 전시실 학습,유적답사,실습등 다양하게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참가비 5천원.문의(02)739­3872. ▷고전강좌◁ 한국사상사연구소(소장 김용옥 전고려대교수)에서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사서를 강의하는「도올서원의 동양학겨울서당」이 있다.일반적인 교양강좌와는 달리 수강자 자격을 엄격히 제한해 희망자는 소속대학·학과·배우려는 목적등을 적은 자기소개서를 보내 입학허가를 받아야 한다.개설기간은 새해 1월10일부터 2월4일까지 주5일 2시간씩이다.등록금 5만원.강의장소 서울 동숭동 성좌소극장건물 4층 도올서원.문의(02)395­09 80 기초한문을 배우려는 사람은 전통문화연구회(02­762­8401)에서 개설한 교양강좌를 수강하는 것이 손쉬울 듯 하다.지난 2일 시작돼 2월 말까지 계속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청소년민속강좌◁ 고교생을대상으로 13일부터 17일까지 박물관 3층 민속공방에서 열린다.전통적인 관혼상제의 예,족보 및 친족관계,농경세시풍속과 무속신앙·민담·전설등을 전문가들이 강의한다.수강료는 받지 않으며 접수순으로 2백50명만 받는다.문의(02)720­3137. ▷기 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각급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한국인과 문화」를 주제로 한 전통문화강좌를 연다.기간은 새해 1월10∼15일이며 프로그램은 전통문화개론·한국고미술·한국의 전통예술·건축과 조경등에 대한 강의와 창덕궁,충주·중원지역 답사로 구성돼 있다.수강료 5만원.문의(02)266­6938. 이밖에 아람연구원에서 13일부터 새해 2월말까지 3차례로 나누어 개설하는「성경원어 특강」이 있다.국내 대학등의 교과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헬라어·히브리어·수메르어등 고대 중근동지방의 언어를 가르친다.문의(03 43)69­3123.
  • 유구한 역사 걸맞는 국제도시로 건설/정도6백년 기념사업 골격

    ◎근대한국 자료 정리 「서울학」 총서 발간/21세기 대비,도시구조개편 학술회 등 개최/「한국방문의 해」에 맞춰 각종 문화행사 준비 서울 르네상스를 목표로 하는 「서울정도 6백년사업」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세계에서 인구규모로 4위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도시 서울은 로마,아테네,카이로 등에 이어 13번째로 오래된 수도이다.그러나 6백년이라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가 아직은 미약한 실정이며 급속한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서울시민들의 뿌리의식도 희박해진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정도 6백년을 계기로 서울의 역사·문화를 재발견하고 고도성장에 따른 도시문제를 해결해 21세기 국제적 수도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이같은 시의 구상이 반영된 6백년 사업은 ▲서울뿌리찾기 ▲서울모습다듬기 ▲문화진흥과 시민화합 ▲국제화·미래화등 총 4개 분야로 이루어져 있으며 민간단체가 주최하는 기념행사도 개최된다. ▷서울뿌리찾기사업…다시보는 서울◁ 1890년대의 서울의 자연경관,건축물등을 1천2백분의 1로 축소해 서울 옛모습을 가로·세로 각각 7m 모형으로 제작한다.또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국회도서관,일제시대 조선총독으로 재직했던 일본인들의 모임등에서 나온 근대한국 관련 해외자료및 국내 한말신문등을 정리해 「서울학」총서를 발간한다.태조 한양입성,서울을 빛낸 명인,서울 시대연극등을 거리행렬로 재현하며 조선시대 무과시험중 창던지기인 기창등을 시민과 함께 실연한다. ▷서울모습 다듬기…새로나는 서울◁ 서울 남산제모습찾기사업으로 내년 외인아파트,안기부 등을 철거해 남산의 경관을 트이게 한다.경희궁∼덕수궁∼창덕궁 등을 잇는 역사탐방로와 인왕산∼남산∼북한산의 보행산책로를 조성한다. ▷문화진흥과시민화합…신명나는 서울◁ 멀티미디어,모형,원자료등 각종 매체로 서울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서울,새로운 탄생 종합전」이 내년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리며 이 전시물들은 오는 96년 10월 완공되는 시립박물관에 영구 보존된다.또 대전 엑스포때 인기를 모았던 갑천 수상쇼가한강에서 열리며 신촌과 올림픽공원일대에서 대학대동제,거리연극,환경예술제등이 펼쳐진다. ▷국제화·미래화…열려 있는 서울◁ 21세기에 대비한 장기적 정책,도시구조 개편안,지역별 사업계획 등을 연구하며 내년에는 이를 위해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유네스코등 해외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21세기 학술대회를 연다. ▷민간단체 참여사업◁ 한국관광공사는 각국 전통요리 경연대회및 주한외교사절 부인 요리시범,세계 각 술을 전시하는 국제요리축제등 다양한 행사를 한국방문의 해와 연계해 전개한다.또 내년 6월 내한공연을 갖는 로열필하모니오케스트라는 「서울예찬곡」을 작곡,연주할 예정이다.유네스코는 기관지인 「쿠리에」에 서울6백년 특집기사를 게재해 세계 각국에 배포하며 예술의 전당에서는 서울세계합창제·바스티유오페라공연을,한국미술협회는 서울국제현대미술전등을 준비해놓고 있다.
  • 중앙박물관 철거계획 확정 안팎/1백m옆 임시이전…유물훼손“최소화”

    ◎지하수장고 8만여점은 그대로/새박물관 설계는 국제공모 검토 국립중앙박물관(옛 조선총독부 청사)철거가 먼저냐,중앙박물관을 새로 짓는게 먼저냐를 놓고 석달 가까이 벌어졌던 치열한 논쟁이 마침표를 찍게 됐다. 정부가 5일 건물 철거를 앞당기면서도 이에 따른 유물의 훼손을 최소화할「절묘한」계획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총독부청사를 조속 철거하는데 걸림돌이 된 요소들은 ▲임시이전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점 ▲임시이전에 따른 문화재 훼손 우려 ▲중앙박물관의 장기간 휴관상태등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의 중앙박물관과 같은 경복궁 경내에 있으면서,거리상 1백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사회교육관 건물을 임시박물관으로 선정함으로써 이같은 문제점들을 대부분 해소했다. 우선 중앙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일부만이 움직이게 돼 문화재 훼손의 부담감을 크게 줄였다. 정부는 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인 5천5백여점만 임시박물관으로 옮기고 8만여점에 이르는 지하 수장고의 유물은 새 박물관을 지을 때까지 그대로 보관키로 했다. 더욱이임시장소까지의 이동거리가 짧아 사람이 들어서 나르거나 지게차 사용등이 가능해 장거리 차량운송에 따른 훼손 우려도 덜었다. 이와함께 현재의 문화재 보호장치를 계속 활용할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으로 꼽힌다. 중앙박물관에는 항온·항습및 환기장치를 작동시키는 종합기계실이 지하에 설치돼 있는데 이 기계실이 사회교육관과도 연결돼 있어,전시품들이 임시장소로 옮겨지더라도 동일한 환경에서 보존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사회교육관을 임시박물관으로 활용하기 위해 오는 95년말까지 2백억원을 들여 그 규모를 1천8백31평에서 5천75평으로 늘린뒤 문화재를 옮겨 96년1월부터는 문을 열 계획이다. 새 중앙박물관이 건립되면 이 임시박물관은 경복궁·창경궁·창덕궁·덕수궁·경희궁·종묘등지에 흩어져 있는 궁중유물 3만6천여점을 모아 전시하는 조선왕궁역사유물관으로 탈바꿈한다. 한편 새 박물관 부지로는 문화체육부가 당초 원했던대로 용산가족공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하면서『군부대소재지 3곳을 포함,수도권내에 있는 부지 10곳을 후보지로 골라 관계부처와 여러차례 논의한 결과 용산가족공원이 가장 적당한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새 박물관은 94년 말까지 설계를 마치고 95년 8월에 착공,2000년까지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이같은 일정은 잠정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공기내에 완성하기 위해 공사를 서두르지는 않겠으며 설계를 국제공모할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총독부청사 철거 일정에 대해서도 임시박물관이 문을 여는 95년 말이나 96년 초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임시박물관으로의 유물이전이 95년 6월이면 끝날 예정이어서 광복 50주년을 맞는 95년 8월15일에는 건물철거의 첫삽을 뜰 수 있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추석연휴/놀이공원·민속마을 행사 풍성

    ◎자연농원·서울랜드,국화·민속잔치/민속촌에선 산대놀이­탈품 공연도 올 추석엔 연휴기간을 토·일요일까지 포함,5일로 하는 기업체가 많아 이번 추석연휴엔 고향을 찾는 사람 못지않게 관광인파도 줄을 이을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심각한 교통체증이 우려되는만큼 교통난을 피해 가까운 곳에서 여가를 즐기는것이 바람직 하다. ○가족나들이로 적당 연휴기간중 가족과 함께 쉽게 찾아볼수 있을만한 곳을 소개한다. ◆놀이공원=연휴기간에는 대부분의 서비스업종이 문을 닫는데 비해 놀이공원들은 추석맞이 각종 특별 프로그램까지 준비하고 고객유치에 나서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6천여평의 국화원에 2백여종 3천만 송이의 국화를 선보이는 국화큰잔치를 열고 있는 용인 자연농원은 추석연휴동안 「추석민속한마당」을 마련,민속놀이한마당과 국악한마당을 펼친다. ○옛영화 무료상영도 18일부터 역시 국화축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랜드도 한가위 특집으로 널뛰기·그네타기·윷놀이 등 누구나 참가할수 있는 민속놀이한마당을 마련하며 30일부터 3일간공간소리패의 풍물농악과 사물놀이공연을 하루 2회에 걸쳐 펼친다.또한 10월1일부터 3일간은 「금지된 장난」「쉘부르의 우산」등 추억의 명화를 무료상영한다. 연휴기간중 추수감사제 성격의 독일민속축제인 「옥토버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롯데월드는 추석특별행사로 한가위큰잔치·추석특별퍼레이드·민요메들리공연 등을 펼치며 민속박물관에서 이은주 명창등이 출연하는 「한가위 팔도민요잔치」를 벌인다. ◆민속마을=민족의 명절 추석을 맞아 어느때보다 더욱 활기를 띠게 되는 민속마을은 이맘때 찾아보면 우리 옛것에 대한 사랑을 더욱 진하게 느낄수 있는곳. 용인 한국민속촌은 한가위를 맞아 연휴기간중인 30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중요무형문화재를 초청해 북청산대놀이·남사당놀이·송파산대놀이·강령탈춤공연을 펼치며 팔씨름·널뛰기·그네뛰기·투호놀이등 민속놀이 경연대회를 개최,입상자에게 상품및 상패를 증정한다.또 농악·줄타기·전통혼례등도 매일 공연한다. ○도자기전시장 볼만 한국 전통도예의 중심지인 이천 도자기마을도 수도권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귀경길에 한번쯤 들를만한 곳이다.민속도예촌전시관·민속도자기종합전시장 등을 비롯해 2백여개의 도자기 생산업체가 산재한 이곳은 도자기의 제조과정을 직접 볼수 있어 도자기에 대한 심미안을 키울수 있으며 싼값에 도자기를 구할수 있다.특히 온천도 있고 이 지역 문화제인 설봉문화제의 부대행사로 도자기축제가 10월2일부터 열릴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 이밖에 우리의 민속정취를 맛볼수 있는 곳으로 경북 경주 양동민속마을,전남 승주 낙안읍성민속마을,제주 표선민속촌 등이 있으며 경복궁·덕수궁·창덕궁·창경궁·종묘 등 서울시내의 고궁들도 제기차기·널뛰기·윷놀이 등 민속놀이 장소를 제공하며 상오9시부터 하오6시까지 추석나들이객을 맞는다. ◆박물관·미술관=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광주·청주·경주·부여·공주·진주에 있는 국립박물관은 연휴기간중에도 문을 열어 평소 역사에 소홀하기 쉬운 어린이들을 교육시키기에 좋다.이에 비해 경기도 포천군의 광릉수목박물관(30일은 휴무)은 삼림욕을 즐기며자연스럽게 자연공부가 되는 곳이다. ○역사교육 좋은 기회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도 서울대공원 가는 길에 한번 들를만한 곳.28일부터 대한민국미술대전을 열며 야외조각도 전시한다.서울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장흥은 토탈야외미술관에서 야외조각을 감상할수 있으며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맛볼수 있는곳으로도 인기가 높다.
  • 순조 생모 박씨 묘소 조성 기록/불 반환 「휘경원…」은 어떤책

    ◎장례의식절차·경과·경비지출내역등 수록 프랑스측이 15일 돌려준 외규장각 도서는 조선조 순조임금의 생모인 수빈(수빈)박씨의 산소 조성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휘경원 원소도감 의궤」상하편중 「상」이다. 「휘경원」은 수빈이 서거한 뒤 정해진 묘소의 이름이며「원소」란 왕세자,왕세자빈 또는 왕의 친척들의 산소를 일컫는 말.「휘경원 원소도감」은 수빈의 장례를 치르려고 임시로 설치한 관서이며 이 관서에서 당시 행했던 모든 의식절차및 경과,경비지출 내역등을 적은 책이 「휘경원 원소도감 의궤」이다. 책의 첫머리에는 수빈이 18 82년 12월26일 창덕궁 보경당에서 세상을 떠난 사실이 기록돼 있고 이어 ▲장례 절차를 논의하려고 관리들이 모인 날짜 ▲도감관원의 관직,이름을 적은 명단 ▲장례에 따른 왕명을 적은 전교 ▲장례를 마친 뒤 관리들을 논공행상한 내용 ▲도감 설치이후 장례를 마칠 때까지의 경비 내역들이 수록돼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34.4㎝,세로 48.2㎝로 모두 1백29장이다.닥종이로 만들었고 겉장은 철책장정에 고리가 달려 있다. 현재도 제작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보존상태는 매우 좋은 편이다. 이 책은 국내에도 서울대 규장각등지에 2권 보존돼 있어,프랑스국립도서관에 아직 남아 있는 외규장각 도서중 유일본 38책에 비해서는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프랑스측이 이 책을 우선 보낸 이유는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국내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편 수빈 박씨는 정조의 후궁으로 들어와 순조임금과 숙선옹주등 2명의 자녀를 낳았다.행실이 착하고 예절에 밝아 현숙하다는 칭송을 받은 것으로 순조실록등에 남아 있다. 그의 묘소인 「휘경원」은 경기도 남양주군 진전읍 부평리에 있으며 지난 91년 10월 사적 제360호로 지정됐다.
  • 고전의 보존(외언내언)

    세종대왕에 이어 조선조의 문예부흥을 이룩한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규장각을 설치했다.규장이란 임금의 글씨와 그림을 뜻하는 말.창덕궁 비원의 부용정 일대에 세워진 규장각엔 세조의 친필 현액이 걸리고 역대 국왕의 시문·서화등이 보존됐다.이곳을 혁신정치를 위한 기획연구기관으로 활용,도서를 수집 발간하기도한 정조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강화도 행궁에 비상용 서고,즉 외규장각을 짓는다.규장각을 만든지 5년만인 17 81년이었다.강화도의 외규장각은 「강도외각」이라고도 불리고 규장각은 궁궐 안에 있다 하여 「내각」이라 불리기도 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약탈된 외규장각도서가 한불 정상회담 결과 규장각으로 돌아 오게 됐다.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외규장각 도서의 규장각 귀환은 우리에게 일말의 불안감을 안겨준다.규장각 도서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일제의 조선강점후 조선총독부를 거쳐 경성제대로 이관됐다가 해방후 서울대가 관리를 맡게된 규장각은 연구관리인원과 예산부족으로 귀중한 자료들을 사장시키고 있는 형편.조선왕조실록,일성록등 5종 3천8백33책의 국보를 포함 총22만여점의 보관자료가 해제작업은 커녕 목록도 완전히 작성되지 않은채 서가에서 먼지를 둘러쓰고 있다.심지어 조선왕실의 인쇄원판 1만8천여장은 경복궁 보관 당시 묻은 비둘기배설물 조차 닦아지지 않은 상태다.자료의 영인작업은 겨우 20%에 머물러 있다.규장각 자료를 제대로 정리 연구하면 우리 역사를 새로 써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그만큼 규장각은 우리 문화유산의 보고다. 문화재의 반환도 중요하지만 국내 문화재의 보존에도 눈을 돌려야 겠다.규장각뿐만 아니라 장서각과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희귀도서들도 관리부실로 2∼3년후면 보존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정부는 물론 기업이나 개인들도 우리 문화유산의 보존에 적극 나서야겠다.
  • 레지스탕스 출신 맹렬여성/다니엘여사는 누구인가

    ◎44년 미테랑과 결혼… 인권사업 큰 관심/손 여사와 비원 돌아본 뒤 “감동 받았다”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의 부인 다니엘여사는 누구인가.다니엘여사는 미테랑대통령이 김영삼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다른 대통령의 부인과 마찬가지로 손명순여사와 별도 환담한뒤 하오 5시30분부터 비원을 관람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 대통령부인들은 시간상의 이유로 보통 30분정도 소요되는 경복궁을 관람하는게 통례였다.그러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다니엘여사는 1시간정도 시간을 낼수 있어 비원으로 택했다.비원에는 프랑스어를 하는 안내원이 없어 외무부 의전실에서 대신 안내를 맡았다. 다니엘여사는 먼저 창덕궁에 들러 임금이 정사를 보던 인정전­침전인 대조전­집무실인 선정전­어전회의실인 희정당을 거쳐 비원을 둘러봤다.비원에서는 과거를 보던 영화당­부용정­임금이 책을 읽던 주합루등 8개의 정자를 1간여동안 관람했다.관람도중 궁궐의 여러가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 안내자가 전했다. 다니엘여사는 『한국문화의 정수를 보는 것 같다』며 『무척 감동을 받았다』고 관람 소감을 말했다. 한국 문화재 관람에 1시간을 낼만큼 문화지향적인 다니엘여사의 취미는 역시 예술품 제본.미테랑대통령과는 레지스탕스활동을 하던 지난 44년 결혼했다.당시 다니엘여사는 레지스탕스 연락사무와 부상자치료를 전담하는 간호요원으로 참여했다.미테랑대통령이 레지스탕스 아지트로 사용하던 한 아파트에서 친구동생 사진(다니엘여사)를 보고 그 자리에서 결혼을 결심,결국 그 여인과 결혼을 했다는 얘기는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일화다.다니엘여사는 이론적인 사회주의자로 결혼후 미테랑대통령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미테랑대통령이 공산당을 포함한 좌파연합의 정치노선을 걷는데 일조했다. 현재는 중남미 좌익 혁명세력 지원을 통해 사회당내 국제연맹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인권과 인도주의적 자선 사업에도 큰 관심을 갖고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도 우아함을 잃지않고 있는 다니엘여사는 1924년생으로 올해 나이는 69세.2박3일동안 일정은 대전 EXPO 참관등 거의 미테랑대통령과 함께할 예정이다.
  • 힐러리 “조용한 서울나들이”/내한 1박2일… 일정에 관심집중

    ◎첫날 청와대 거쳐 고궁 관광/둘쨋날은 모친과 「자유시간」 힐러리 클린턴여사(45)의 방한 1박2일은 비교적 소박할 것 같다.그래도 그녀의 당차고,세련된 이미지 때문에 클린턴대통령에 버금가는 뉴스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일본 방문때도 힐러리여사는 뛰어난 패션감각과 돋보인 매너로 갖가지 화제를 뿌렸고 그때마다 매스컴의 초점이 되어왔다.우리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외무부 의전팀이 밝힌 힐러리여사의 공식일정은 청와대에 클린턴대통령과 나란히 도착,방명록에 서명한뒤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손명순여사와 30분 정도 환담한다.그뒤 1시간 정도 짬을 내 청와대 주변 경복궁을 둘러본다.경복궁 관람코스는 2∼3개 정도 잡혀있다.지난번 방한한 독일 콜수상과 호주 키딩수상 부인들은 근정전∼경희루∼햐원지∼향원정 코스였다고 하나 이번에는 정확치 않다.한창 공사중인 조선조 왕비들의 정궁침전 복원현장도 들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관람이 끝나면 국회로 이동,클린턴대통령과 함께 여·야당지도자들을 만나고 이만섭국회의장 부인과 20분 동안 의장공관에서 별도의 환담을 나눈뒤 클린턴의 연설을 경청한다.그리곤 청와대 만찬 참석을 끝으로 공식행사를 모두 마친다. 11일의 비공식 일정은 거의 알려진게 없다.주한미사관이 주관할 뿐 아니라 비공식 행사로 경호상 극비사항이기 때문이다.힐러리여사도 『일요일인 11일은 자유시간으로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클린턴대통령이 전방 미군부대를 방문하는 동안 자신은 어머니 로댐여사와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된다. 지금까지는 이날 아침 서울 정동의 모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본뒤 어머니와 함께 창덕궁의 비원을 둘러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조선조 고유 정원인 비원관람은 미리 일반에 공개되면서 다소 유동적이다. 나머지 3∼4시간은 일본에서 처럼 소핑시간으로 잡혀 있다.장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주한미군들과 외국 여행객들이 즐겨찾는 용산 이태원상가가 유력하다.이러한 일정 가운데 경복궁관람과 교회예배 모습은 일반에 비교적 생생히 전해질 전망이다.
  • 경복궁 등 5대궁 역사교육장화/시민 관리참여 유도

    문화재관리국은 21일 경복궁 창경궁등 5대궁을 궁별로 특성화해 국민 역사교육장으로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문화재관리국은 ▲경복궁은 당초의 계획을 앞당겨 오는 97년까지 조선시대 정궁으로 복원하며 ▲창경궁은 천연기념물등의 전통수목단지로 조성할 방침이다. 또 창덕궁(비원)은 전통조경 보존지역으로,덕수궁은 왕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궁궐로,종묘는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신궁의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각각 특성화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창경궁과 동구릉을 시범지역으로 지정,▲쓰레기통을 없애는 대신「쓰레기 되가져가기 운동」을 벌이고 ▲지역사회·학교등과 자매결연을 맺는등 시민들이 고궁과 능 관리에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 67개 문화유적 정비·부수공사정착 지원

    ◎문체부 주요업무 보고내용/청소년프로그램 1백50종 개발/도덕성회복 범국민적 운동전개 ▷문화예술분야◁ ◇가치관 재정립과 도덕성 회복 ▲인·의·예·지·신 등 선현의 생활체험을 확산시키기 위한 「고전의 세계」등 교재발간과 「이달의 문화인물」사업 활성화 ▲윤리와 도덕성 회복을 위한 범국민적 문화운동 전개 ▲독서 생활화 사업 등 6개 분야 39개 사업을 전개해 전국민이 적극 참여토록 적극 유도. ◇지역문화의 균형 발전 ▲시·도 단위 종합예술제 등 지역 문화예술행사 70개를 중점 지원 ▲국·공립 예술단의 지방 순회공연 확대▲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지방문화원진흥법 제정 추진. ◇민족문화 보존 및 전승 ▲경복궁과 창덕궁 등 일제에 의해 훼손된 문화유산 복원 ▲신라·백제·가야·중원·영산강 유역 등 5대 지역 문화권 67개 유적 정비 ▲오는 4월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복원 완료하는 등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를 순차적 복원 추진 ▲안재호와 오일도의 생가 등 1950년 이전까지의 근세역사 문화인물 유적 40여건 정비. ◇문화 기반시설확충 ▲예술의전당 운영합리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 추진 ▲대구·부여·김해·제주 등 국립지방박물관 건립 ▲시·도 단위의 종합문예회관 계속 건립 ▲96년까지 4백30개의 공공도서관을 세워 선진국 수준인 10만명당 1개의 도서관을 확보하고 도서관 전산망을 확충해 정보의 공급기능을 확대. ▷체육청소년분야◁ ◇청소년 수련터전확충 ▲청소년중앙공원(독립기념관 동쪽기슭)과 한국청소년수련마을(강원도 평창군)을 건립 ▲전국 6천5백20여곳의 문화원 체육관 운동장을 여가공간으로 개방 ▲96년까지 5천1백명의 청소년지도자를 양성,관련 단체등에 의무배치 ▲97년까지 1백50종의 수련프로그램개발 보급,자율성과 책임성함양 ▲문화예술시범학교 30개교 지정및 수련활동과 문화현장학습 학습평가 반영추진 ◇불우청소년복지대책 ▲2백곳의 야간공부방을 올해안에 2백67곳으로 확대 ▲지방청소년 상담실 10곳 설치운영 ◇국민생활체육진흥 ▲누구나 참가할수 있는 생활체육프로그램을 개발,주2∼3회 운동하는 인구를 97년까지 50%까지 확대 ▲시군단위 운동장12곳,체육관 5곳,동네체육시설 5백곳,실내빙상장등 사계절체육시설 5곳 조성 ◇우수선수육성 ▲신인선수8종목 3백명 후보 27종목 1천명을 육성해 올림픽등에 대비 ▲태릉선수촌숙소신축 ◇올림픽성과 확산 ▲「올림픽기념관」등 건립및 한민족체전과 서울평화상 재정립 ◇국제대회유치및 청소년국제협력 ▲태권도의 올림픽종목채택추진 ▲96동계아시안게임및 2002년 월드컵 남북공동개최 추진 ▲중국 쿠바와 체육교류협력추진 ◎공보처 퇴폐언론 자율정화활동 등 강화/종합유선방송 95년초 실시 추진 ◇언론의 자유영역 확대와 발전을 위한 지원 ▲구시대의 잔재인 「규제적 발상」을 완전 청산하여 문민시대에 걸맞는 언론자유를 창달할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기자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연수활동도 적극 지원한다. ◇정부시책 정보의 적극적인 공개관행 정착 ▲주요정책의 구상입안,결정집행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기회를 확대한다.▲각부처의 정기·부정기 브리핑제도를 정착하고 기자실 개방등 언론의 취재영역을 확대한다.▲부처내 정책결정과정에 공보관 참여를 관행화하는등 각부처 공보관제도를 활성화한다. ◇언론자유에 조화되는 사회적 책임의 제고 ▲언론사별 자발적 내부윤리강령을 제정 시행토록 권고하는 한편 잡지·주간지협회의 퇴폐언론 자율정화활동을 강화하고 광고의 윤리성 제고를 위한 광고자율심의 기구의 설립을 지원한다.▲언론의 인권침해사례를 고발하고 시정 요구할수 있도록 법개정을 추진,언론중재위의 중재기능을 확보토록 한다.▲신문발행부수공사제도(ABC)의 조기정착을 적극 지원한다. ◇국민과 국가에 유익한 방송의 질적도약 추구 ▲KBS로 하여금 국민에 유익한 보도·다큐멘터리·토론·기획특집·건전드라마및 공익광고 확충에 노력토록하는등 공영방송위상을 강화한다.▲종합유선방송은 국민적 합의도출을 위해 전반적 쟁점사항을 종합점검 보완후 시행토록 하되 93년말 이내 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선정하며 프로그램 공급업자및 종합유선방송국을 단계적으로 허가해 95년초 종합유선방송을 실시한다.▲대도시 중심의 지방민영TV방송 신설을 추진하고 도별라디오방송은 주파수 범위내에서 신설을 검토하는등 방송의 지방화시대 개막에 따른 지방민영방송(TV 라디오)의 신설을 검토한다.▲종교방송 라디오 지방국의 신설을 추진하되 종교간의 형평을 최우선적으로 고려,주파수 범위내에서 지방국 신설을 추진한다.
  • 권위주의 청산… 사법 중립화 진전/6공 5년 국정평가 내용

    ◎6·29선언 실천… 지자제부활·인권신장/언론기본법 폐지… 자율·경쟁체제 확립/남북한 유엔 가입 실현… 국제 위상 제고/전방위외교 결실… 통일기반 구축/대내외 난관 딛고 경제안정기조 확보/국민의보­연금제로 획기적 복지향상/2백만호 주택건설… 부동산값 고삐잡아 정부는 14일 상오 청와대에서 현승종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각부처 차관 및 외청장,각부처 본부 1급이상 공무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평가종합보고회」를 열고 6공출범이후 각 분야별로 지난 5년간 수행한 국정운영성과를 평가하고 향후과제 등 국정마무리와 관련한 내용을 노태우대통령에게 보고했다.이날 회의는 총괄보고인 「종합평가」에 이어 「민주화개혁」,「북방정책과 통일기반 구축」,「선진경제기반 구축과 국민생활 향상」,「교육개혁과 문화창달」순으로 진행됐다.보고내용 요지는 다음과 같다. ○주요성과 ▲6공화국의 주요성과=6공화국은 민주화라는 국내의 전환기적 진통과 세계경제의 침체등 어려운 국제환경속에서 출범했다. 이렇듯 어려운 여건속에서도6공정부는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구현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국민들에게 약속하기위해 민주화·자율화·개방화를 정책기조로 설정했다. 이러한 정책기조의 차질없는 실현을 위해 부문별 세부계획과 공약사업의 실천계획을 일관성있게 추진해왔으며 특히 「20대 역점시책」을 선정,집중적인 관리를 해왔다. 그 결과 민주화측면에서는 지난 시대의 권위주의를 청산,인권신장과 지방자치제부활등 개혁적 노력을 지속해 민주시대의 새장을 열었다. 대외적으로도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북방외교와 통일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을 높이고 민족적 염원인 평화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민주화에 따른 부작용등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 안정기조의 회복과 함께 높은 소득증가와 고용안정을 이룩했다. 사회적으로는 전국민의료보험,국민연금제·부동산투기근절및 주택2백만호건설·농어촌구조개선등 정책추진을 통해 사회적 형평과 국민복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이밖에 교육환경개선·문화예술의 향유기회 확대등 국민생활의 질적인 면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대통령공약사업의 이행에도 총력을 기울여 총4백59건의 공약사업중 57%에 이르는 2백60건을 완료하고 나머지 1백99건도 정상추진중이거나 절차가 진행중에 있다. 사업비는 지난 92년까지 48조6천9백60억원(54%)을 투자했고 올해에도 8조6천4백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종합평가=국정운영을 종합적으로 볼때 6공화국정부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유례없이 민주발전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하고 평화통일의 디딤돌을 확고히 하면서 선진복지사회의 기반을 구축했다. 특히 노태우대통령의 9·18결단으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공명정대한 선거문화를 이룩함으로써 출범 당시의 6·29선언은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귀결돼 21세기 선진사회를 향한 대전환의 기틀을 마련했다. 선진사회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앞으로 무엇보다 틀이 갖추어진 민주적 제도와 조화될 수 있는 합리적인 사회질서의 확립과 의식의 선진화를 이룩해야한다. 또 물가안정의 바탕위에서 산업경쟁력강화시책의 가시적인 성과가나타나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강화하면서 사회간접자본시설등 중장기투자계획을 착실히 추진해나가는 미래지향적인 정책적 노력이 지속되어야한다. ○민주개혁 ▲6·29선언의 실천=기본적인 인권이 최대한 신장되고 사법부의 실질적 독립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등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성됨으로써 한 차원높은 민주주의가 실현됐다. 특히 헌법재판소설치 및 위헌법률심사제도 활성화·검찰의 중립성보장으로 사법제도가 보완됐다. 구속적부심 확대 및 피해자진술권 보장등 형사절차상의 인권신장으로 국민의 기본권침해가 방지됐으며 무주택서민의 임대차보호제도실시,법률구조공단사업확충,서민보호법률서비스의 대폭향상으로 서민대중의 권익이 보호됐다. 또 국가보안법과 사회보호법개정·사회안전법의 폐지로 인권침해방지를 위한 제도가 개혁됐다. ▲언론자유의 창달=언론기본법의 폐지로 언론의 자율과 경쟁이 보장됐다. 이에따라 정기간행물의 등록이 전면 개방됨으로써 6·29선언당시 2천2백36종이었던 정기간행물이 92년 말에는 3배가 넘는 6천9백55종이 됐다. 또 지방주재기자제도가 전면 부활되고 프레스카드 발급제도가 폐지됐으며 신문발행면수와 구독료가 완전자율화됐다. 노동조합설립과 운영의 자율화가 신장되고 근로조건이 향상되는등 민주·자율적인 노사관계가 정착됐다. ▲지방자치의실현=30년만에 지방의회를 구성,지방화시대를 개막함으로써 주민의 참여와 자율로 주변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해결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지방재정자립도가 높아지고 지방재정 및 세수규모가 대폭 늘어나는등 지방재정이 크게 확충돼 자치수행능력이 향상됐다. ▲선거문화의혁신=특히 지난 대선은 대통령의 9·18결단과 이를 뒷받침하는 중립내각의 노력 및 국민의 성숙된 의식에 힘입어 사상유례없는 공명선거를 이룩함으로써 민주헌정사의 새로운 장을 개막했다. 또 국민의 민주의식 향상과 선거관련법령의 정비등 공명선거실시를 위한 기반이 구축되어 지방의회를 비롯한 각종선거가 공명정대하게 실시됐다. 또 선거때마다 수반되던 폭력·불법시위가 사라지고 선거특수로 인한 과소비등의 부정적 행태가 지양됐으며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등 새로운 선거문화가 창출됐다. ▲행정의 민주화=행정의 권위주의를 탈피,규제는 작고 봉사는 큰 민주행정구현을 위한 기반이 구축됐다. 전기설비검사,석탄제품품질검사등 모두 1백63건의 행정권한을 민간단체에 위탁하고 행정쇄신차원에서 중앙과 지방을 망라한 규제완화를 적극 추진한 결과,행정규제사항 6백3건을 폐지했다. 또 서류감축 7백41건,통·폐합 3천7백95건등 민원제도를 간소화하고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했던 다수기관·다수법령 관련 복합민원·고질민원 2천1백2건(82%)을 해소했다 ▲민주사회질서확립=새질서·새생활운동을 적극 전개해 급속한 민주화 과정에서 파생된 각종 불법·무질서 등 전환기적 사회병리현상을 치유함으로써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했다. 특히 조직배폭력,어린이 및 여성상대범죄등 국민체감치안의 개선에 주력했고 국민과 3분거리내의 「현장즉응체제」확립등 범죄대응능력을 대폭 강화했다. ○북방정책 ▲통일기반구축=발상과인식의 대전환을 통해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위한 3대 정책과제를 설정해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국정지표를 구현했다. 「7·7특별선언」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북방외교」및 남북대화 전개로 이같은 국정지표가 구체화됐다. 남북한 유엔가입,중국·러시아등과의 수교로 한반도 주변국들의 평화통일에 대한 지지환경도 조성했다. 90년9월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개최이후 92년 12월말까지 8차례의 본회담을 비롯해 1백19회의 회담으로 「남북기본합의서」및 부속합의서를 채택했다. 90년8월1일 「남북교류협력법」「남북협력기금법」제정 시행으로 남북교류 협력의 법제도를 정비했다. 남북교류 협력추진때 우리측의 부담과 손실의 지원·보전을 위해 총1천50억원의 「남북협력기금」을 조성했다. ▲북방외교=북방외교는 외교지평의 확대,안보환경의 개선,평화통일여건 조성,우리의 국제적 위상제고,경제활동의 영역확대에 기여했다.6공화국 출범이래 45개국과 새로 수교함으로써 현재 1백71개국과 공식 관계를 갖게 됐으며 21개의 공관이 신설됐다. 91년9월 정부수립후 43년만에 북한과 함께 유엔에 가입했다. 북방권과의 관계개선으로 인구 14억의 새로운 시장이 우리의 경제활동 영역에 추가되어 92년 교역규모가 1백12억달러에 달했다. ▲자주국방태세의 확립=북방정책의 성공과 걸프전 참전,PKO참여등으로 제고된 우리의 위상,국제적 대북핵포기 압력등으로 대북우위의 군사전략 환경이 조성됐다. 해상·공중작전능력 향상,입체고속기동전력 증강,합동군체제로의 역사적 전환,미국과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합의등 안보협력관계의 개선·조정으로 자주국방태세가 강화되었다. 러시아와는 러·북한 상호원조조약 재검토,대북한 공격용 무기수출 자제,대북한 군사및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조관계를 다졌다. 앞으로 핵사찰문제,이산가족문제등 당면 현안과제의 우선적 해결을 모색하는 한편 남북합의사항 이행을 통한 각분야별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 전통우방인 미·일과의 기존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러시아등과 선린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동북아지역 4강과의 외교를 조화롭게 추진하는 것은 물론 북방외교를 내실화,「통일외교」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경제·민생 ▲종합평가=지난 5년간 우리경제는 연평균 8·5% 내외의 실질성장을 이룩,1인당 국민소득이 87년의 3천1백10달러에서 지난해에는 6천7백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 90∼91년의 경우 내수경기의 과열로 물가불안과 국제수지 적자문제에 직면했으나 지난 2년간 경제안정화 시책을 추진함으로써 물가안정 기조를 회복하고 국제수지 적자규모가 대폭 축소되는 성과를 거뒀다.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경쟁여건에 적응하기 위한 구조조정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에 주력하는 풍토를 조성해가고 있다. 종합적으로 지난 5년간 우리 경제가 어려움과 진통이 있었음에도 정치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시기로 평가된다. ▲경제안정기반의 구축=90∼91년중 9%대를 기록했던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에는 4.5% 오르는데 그쳤다.특히 생활물가를 나타내는 신선식품과 20개 기본생활 품목 등의 가격이 크게 안정됐다. 부동산가격 안정은 6공화국의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다.91년까지 크게 오르던 부동산 가격은 90년 이후 강력한 투기억제 정책과 2백만호 주택건설에 따른 수급안정에 힘입어 91년5월 이후 하향안정세를 지속하고 있다.토지가격도 지난해 2·4분기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수지는 90년부터 적자로 반전,91년에는 87억달러까지 규모가 확대되다 지난해 45억달러 수준으로 축소됨으로써 개선추세가 분명해졌다. 금리와 임금도 안정됐다.시중 실세금리는 91년말 19%까지 상승했으나 현재 13%까지 떨어져 금융자율화의 여건이 조성됐다.임금은 단기간에 너무 급속히 상승함으로써 물가상승 압력과 대외경쟁력 약화등을 초래했다.그러나 점차 임금안정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 ▲산업경쟁력 강화시책의 추진=지난 2년간 우리 경제의 모든 초점은 안정기조를 통한 기업의 국제경쟁력회복에 두어졌다.고임금으로 약화된 산업경쟁력을 보완하기 위해 기업들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정부도 기술개발,인력양성,사회간접자본 애로타개등 경쟁력의 바탕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정부는 제조업경쟁력 강화대책을 마련해 추진하는 일면,중소기업 육성과 사회간접자본의 획기적 확충,과학기술 개발 및 정보화를 촉진시켰다.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기금 조성,의무대출비율 상향조정,상업어음할인 확대등의 조치가 이루어져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생산비중이 88년 42.4%에서 45%로 높아졌다. 일반예산이 5년 동안 2.1배 는 반면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3.5배로 늘림으로써 국도포장률이 79.5%에서 97%로 높아졌고 5년간 14개소의 발전소를 착공,올해부터 10% 이상의 전력예비율을 확보하게 된다. 강력한 기술드라이브정책으로 국민총생산중 과학기술투자 비중이 1.87%에서 2.12%로 높아졌다.64메가디램개발,우리별1호 제작등의 성과가 있었다. ▲국민생활향상과 복지증진=소득이 2배 이상 늘어났다.마이카시대가 실현됐고 전화보급,의료보험 혜택등이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다.2백만호 주택건설 계획은 목표를 69만호나 초과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고 88년에 국민연금제와 최저임금제가 도입됐다.고용보험제도를 제외하면 선진국이 가진 사회보장 제도의 대부분이 도입된 것이다.이런 시책들로 사회보장 예산이 지난 5년간 3.6배나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어촌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됐다.90년4월 농어촌발전기금을 설치하는등 관련제도를 강화했고 91년 7월에는 10년간 추진할 농어촌구조 개선대책과 42조원의 투자계획을 마련했다.경지정리면적은 48만㏊에서 62만㏊ 늘어났다. 도시교통난 해소노력으로 5백58㎞의 지하철·전철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환경청을 90년 환경처로 승격시켜 제도를 강화하고 환경예산을 3.4배로 늘리는등 환경투자를 대폭 증액했다.맑은물 공급대책이 추진돼 수도의 식수불량률이 1.6%에서 1.1%로 떨어졌다.대기오염도 전국의 아황산가스 오염도가 80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기준치 0.5ppm이하로 떨어졌다. ▲경제효율의 향상과 국제화추진=부동산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토지초과이득세와 개발부담금제등을 신설,투기를 진정시켰다. 총액출자 규제도 시행,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한 재벌의 계열회사간 채무보증 제한제도가 도입됐으며 이는 경제력집중 완화를 위한 공정거래제도의 확립을 의미한다. 경제의 개방화·국제화가 추진됐다.우루과이라운드 협상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고 국내 시장개방으로 수입자유화율을 97.7%까지 끌어올렸다.외국인의 국내 상장주식 직접투자로 자본자유화도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 ○교육·문화 ▲교육개혁=교육의 양적 성장을 바탕으로 전인교육 실현을 위한 초·중등교육의 내실화 등 교육의 질적향상 기반조성,21세기 정보화사회에 대비한 직업및 과학기술교육 강화,지방교육 자치제의 실시,평생교육체제의 확충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92년부터 군지역 중학교 의무교육을 단계적으로 실시했으며 국민학교 학교급식을 16.3% 수준으로 확대 실시했다. 국립사범계 대학출신 우선임용제를 폐지하고 신규교사 공개전형제를 도입해 우수교원 확보의 기반을 마련했다. 고급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이공계대학 정원을 대폭 늘리고 사립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4백억원(92년)규모로 늘렸다. 내신성적을 40%이상 반영하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학별고사의 채택여부및 반영비율은 대학이 자율결정토록 하는등 대학입시제도를 대폭 개선했다. ▲문화창달=자유와 자율의 바탕위에서 활력에 넘치는 새로운 문화풍토를 조성했으며 문화유산의 보존과 문화기반의 확충으로 민족문화창달의 터전을 마련했다. 영화·연극·무용 등 대본 사전심의제도를 폐지하고 방송·공연이 금지된 대중가요 7백51곡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는 등으로 창작발표에 대한 각종 규제를 철폐했다. 문화부 신설,국립국어연구원 개원,한국 예술종합학교 설립 등으로 문화진흥 체제를 대폭 정비했다. 신라·백제·가야·중원·광주 등 5대 문화권을 정비(44건 완료)하고 경복궁·창덕궁 등 일제에 의해 훼손된 문화재 복원작업을 추진했다. ▲체육진흥 및 청소년 육성=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국민역량을 결집하고 체육의 중흥을 이룩함으로써 국제적인 위상을 제고하는 한편 국민적 사기진작과 체육의 생활화를 이룩했다. 서울올림픽은 동서화해와 동구 민주화에크게 기여한 것은 물론 한국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일신케 하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3천1백10억원의 올림픽 잉여금으로 경기단체 자립과 청소년생활체육교육을 위한 재정적 기반을 확보했다.1백33개국에서 1만9천여명이 참가한 세계 잼버리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여성권익신장=88년 여성정책 전담부서인 정무장관실 발족을 계기로 본격적인 여성정책 추진체제를 확립하는등 교육·고용·복지·가정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여성의 「삶의 질」을 괄목할 만큼 향상시켰다. 90년 가족법(민법중 친족·상속편)의 개정으로 남녀평등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남녀고용평등법의 개정으로 여성에 대한 고용확충 기반을 조성했다.
  • 화가 장우성씨(이세기의 인물탐구:8)

    ◎시·서·화 도양화삼절의 노인가/인위·조작없는 「무위사상」바탕,독창적 화풍/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 은은하게 표출/정많은 성품.부정엔 단호… 「친일논란」때 미술계풍토 비판도 대나무처럼 곧고 차가운 죽색청한과 물빛처럼 영롱하고 푸르른 수광징벽의 한벽원.이는 월전 장우성화백의 개인미술관 이름이다. 경복궁뒤 사간동 화랑가에서 삼청공원으로 이르는 초입에 위치한 한벽원은 서울 한복판(종로구 팔판동 35)이건만 인적없는 산간에 묻힌 선비의 서숙인양 적요속에 묵향이 감도는 분위기다. 눈부시게 흰 화강암건물과 「한벽원」이란 이름만으로도 주인의 기상과 풍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대나무·백매와 계수나무 사이사이로 진귀한 옛 석물·석등이 배치되고 뜰한가운데는 일중 김충현의 「한벽원용」,내부벽면은 12지신·광개토대왕 비문·석굴암 관음상에서 탁본해온 석고부조로 장식되어 미술관다운 품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바로 이곳이 월전의 모든 예술생애가 집약되고 또 앞으로 우리 한국전통미술의 올바른 맥을 보존·육성해나갈 본산이기도 하다. 아다시피 화단의 거봉인 월전은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서·화의 삼절로 동양화 전영역에서 유창탁발의 화업을 이뤄낸 노대가다. 그의 작품은 공자가 그림을 두고 말한 「회사후소」,즉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마음을 깨끗하게 가다듬는다는 후소정신과 인위와 조작이 없는 무위사싱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월전의 이런 선비기질은 그의 그림에서 보듯 한점의 허세나 과장이 없이 잔잔한 운율이 유운문처럼 번지고 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가 은은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가 즐겨 그리는 학과 백로,화훼와 산수는 모든 기교가 배제된 간결 산뜻한 선묘와 담백한 설채,특히 그만의 묵의 묘취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기막힌 환희를 안겨준다. ○담백한 선조 일품 월광을 배경으로한 백매가지에는 방금 물오른 새싹을 틔울듯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고 흰 눈속을 헤쳐서 꺼낸듯한 꽃의 화관은 보석처럼 눈부신 진주빛을 발한다. 마치 신운이 움직이는듯한 절제의 필치로써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장인기질보다는 원로의 정신미를 정밀하게 누리고 펼치는 시기라 할수있다. 1912년 임자생.80의 나이에도 그에게는 「노인」이란 단어가 무색하다. 바르고 건강한 모습에 단정하고 깎듯한 움직임,사물을 꿰뚫는듯한 예지의 눈길은 『글씨나 그림등 예술은 가장 천진한것이 극치』라는 완당의 말대로 그 청정의 눈빛을 지니고 있다.그에게선 어떤 흐트러짐이나 허술한 곳도,만모의 기색도 찾아볼수 없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선 다감하고 정이 깊고 상대방을 포용한다.단지 그것이 마음에 들지않으면 추호의 용서나 양해가 없다.늘 옳은자의 편을 들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한다. 주말에는 골프,커피와 담배,두주불사의 애주가로 몇년전까지만해도 양주 한병을 비운 술실력이나 요즘은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순한 청주나 곡주를 즐긴다. 집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그러나 작업실이 있는 한벽원까지 아침 9시반에 출근해서 하오2시부터 작업대 앞에 선채로 3시간에서 4시간씩 작업에 몰두한다. 내년 가을 호암아트홀이 기획한 그의 화력 60년을 총정리하는 신작준비 때문이다.이는88년 일본 세이브미술관 초대 「한국·국화의 거장 장우성전」이후 5년만의 대작전시회여서 그는 모든 정열을 이곳에 쏟고있다. 그의 화적을 새삼 더듬을 필요는 없겠지만 월전은 18세되던 해인 30년 스승인 이당의 낙청헌에 입문,초기에서 10여년은 사실적 시각에 바탕을 둔 감각적 형태의 극세극채색의 치밀한 묘사에 밀착해왔다.그러다가 해방후 서울대미대에 재직하면서 스승의 회화권에서 벗어나 전통동양화인 수묵화에 정진하여 추상이 곁들여진 힘차고 분방한 용필로 활달한 화면을 추구해나갔다. ○18세때 이당에 사사 그는 경기도 여주의 전통적 유교가문에서 2남5녀중 다섯째,부친(장수영씨)의 나이 30세에 얻은 만득자여서 부모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월전」은 어릴때부터 유난히 달을 좋아한 아들을 위해 부친이 손수 지어내린 아호다. 할아버지에게 「동몽선습」「소학」「명심보감」과 「사서삼경」을 배우고 붓글씨를 공부하면서 그림을 시작,그림공부를 위해 상경할 무렵에는 평소 위당 정인보선생과 교분이 두터웠던 부친의 배려로 위당댁에 드나들면서 조선역사를 익혔다. 이당문하에서 운보 김기창,현초 이유태와 나란히 수학한지 2년만인 32년 제11회 선전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갈매기를 그린 「해병소견」으로 화단에 등단,41년에 「푸른 전복」으로 총독상,그리고 연이어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두차례 수상하고 44년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때 그린 「푸른 전복」은 열정적으로 부채춤을 추고난후 호흡을 가다듬는 무녀의 휴식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우리미술사를 말할때마다 거론되어지는 대표작중의 하나다. 범접하기 힘든 깨끗한 눈매며 전립의 영모,패영의 구슬은 이슬이 방울진듯,푸르른 구군복과 치마단까지 흘러내린 붉은 끈의 선과 색의 대비,공간을 여백으로 설정한 것등은 훗날 월전 문인화와도 일맥 상통한다. 싸늘한 겨울 날씨와 화면을 가득 채운 만월,한천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를 문인화의 무기교와 자연스럽게 절제된 묵선으로 관조한 조형어법은 「종교와도 같은 높은 이념이 함축」되어있다는 평이 뒤따르고 있다. 한치의 흔들림없이 지금도 여전히 화단의 정상을 지키는 월전으로서도 80성상을 돌아보면 흑색반점처럼 지워버리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44년 최고상을 받았을때 총독부의 요청으로 수상자를 대표하여 「답사」한것을 스승과 의논없이 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이당의 미움을 받아 소원했던 일,서울대 미대교수시절 「교수자리」를 탐내는 후배의 이간으로 미대 창설동지이며 당시 학장이던 장발씨와의 긴 오해등,어지러운 세속에 휘말려야했던 곤혹과 환멸이 잊을수 없는 얼룩으로 남아있다.물론 시간이 흘러 밝은 대낮처럼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곤 하지만 꼿꼿하게 앞만보고 살아온 그에겐 자존심에 먹칠당한 슬픈 추억의 장면장면들이다. 문인사대부의 학문과 역량은 익히 알려진 바이고 그의 그림속에 실린 아름다운 시구외에도 그는 「화맥인맥」등 신문에 자주 글을 발표한 미문으로도 유명하다. ○문장력도 뛰어나 그 한예로 83년봄 한 미술계간지가 다룬 「한국미술의 일제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이란 특집기사로 인한 「친일 화가파동」때 그는 대단한 문장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같은해 4월21일자 모 두 일간지 광고를 통해 발표한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를 묻는다」는 이 성명서는 잡지에 게재한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일제36년과 해방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미술가는 친일파이며 모든 미술작품은 일본의 식민지 잔재인양 매도하고 미술교육도 잘못되어 후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했다는 기사내용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망설」임을 전제,「작고작가와 현역 미술인 대부분을 부관참시식으로 난도질」하면서 과거 민족수난의 불행했던 역사는 외면한채 「민족예술창조라는 허구에찬 궤변」으로 사회여론을 오도,「이 방약무인한 오만을 나무라기전에 그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왔으며 소위미술평론가의 자격은 어디에서 취득했고 누가 인정했던가 묻고싶다」는 실랄한 항변과 규탄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 글을 기초한 사람이 바로 월전으로 이 사건은 화단의 경종이 되어 서로 자숙하고 침착하게 자기 성찰하는 기회로 마무리 되었다. 월전은 이처럼 깐깐하다.굳이그가 나서지 않아도 되지만 「화단의 누」라는 차원에서 가차없이 솔선하고 나섰다.그의 작업실은 그의 성품만큼이나 정갈하고 청결하여 난초의 홍자색은 싱그럽고 고고하기만 하다.호불호를 선명하게 가려 「한다」고 마음먹은 것은 일사불란하게 실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번 미술관도 88년 구상·계획하여 그가 몸담았던 서울대 미대와 홍대미대의 제자·화우들을 주축으로 즉시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89년 미술관 착공,91년 3월개관 2주일전 부설 동양미술연구소 제1회 수강생 20명을 배출했다. 까다로운 성품과는 달리 각계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은 수화 김환기,영운 김용진,의재 허백련,소전 손재형과 친형제같은 우의를 다졌고 대한교육보험의 신용호회장과 황수영 유경채 이대원 김원용 특히 일중과의 우정은 난향과도 같다. 가족은 부인 유리정여사(73)와 1남3녀.장녀인 정란씨가 동양미술사를 전공했다.그의 만년의 예술은 「붓가는대로 그린다」는 명경지수의 염과 자연에 돌아가 자유하는 마음으로 우주를 넘나드는 광대무변의 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이제 월전화는 그의 생을 황홀하게 장식하기 위한 무르익은 화경에 접어들어 그 마지막 붓끝까지도 불후의 명작을 그리게 될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아산 현충사·정읍 충렬사 봉안 이충무공 영정,세종대왕 기념관 벽화 「집현전학사도」 낙성대봉안 강한찬장군·김경신장군·윤봉길의사·정포은선생·문익참선생·김종직선생·조식선생·정기용박사·유관순열사등 영정 제작.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1천호)」,고려대벽화 「군려도」크리스트상화(63빌딩)제작. □연보 ▲1912년6월 경기도 이주출생 ▲30년 이당 김은호 「낙청헌」입문 ▲32’ 제11회 선전 「해병소견」입선이후 계속 출품 ▲33’ 육교 한어학원 졸업 ▲41∼44’ 「푸른 전복」등 연4회 특선·추천작가 ▲46∼61’ 서울대 미대 교수 ▲49’ 로마 국제미전 「성모와 순교복자」3부작 출품(바티칸시 수장) ▲50’ 제1회 개인전(동화백화점 미술관) ▲63’ 도미,미국무성 화랑 개인전 ▲64’ 워싱턴 스퀘어 화랑주최 국제미술제 한국대표초대출품 ▲65’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 설립 ▲71’ 홍대 미대 교수 ▲75’ 유럽7개국 미술계시찰 ▲80’ 현대화랑서 도불 기념전 ▲〃 프랑스 정부초대 파리세루뉘시 미술관 개인전 「홍매」「석」등 프랑스문화성소장 ▲81’ 월전화집(지식산업사간) ▲82’ 독일 쾰른 시립미술관 초대 개인전 ▲85’ 국립 현대미술관 원로작가 초대전 ▲88’ 도쿄 아트포럼에서 「한국 국화의 거장 장우성전」개최 ▲〃 동산방화랑서 개인전 ▲92’ 오늘의 작가 11인전(진화랑)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역임 현 예술원회원 서울특별시 문화상·예술원상·5·16민주상 수상.
  • 창덕궁/왕조의 숨결 심처 곳곳에/내전 전각들엔 왕가의 위엄서려

    ◎지형맞게 조경… 비원자연미 일품/옥류천일대 출입통제… 관람시간도 시간별 제한 모처럼 바람 쐬러 시내 바깥에 나갔다가 교통체증에 기분전환은 고사하고 울화만 뻗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 시내 안에도 기분전환의 바람을 속에 품고있는 장소가 많다.고궁탐방은 구태의연해 보이지만 고궁 문턱을 넘어서면 생각이 차츰 달라진다.비원이 뒤에 들어앉아 있는 창덕궁은 시외나들이의 차선책으로 찾았던 마음을 열렬한 경배자의 그것으로 바꿔놓는다.조선왕조는 사라졌지만 오백년동안 가꿔지고 가다듬어졌던 왕궁의 바람은 매혹의 마력을 안고 있다. 고궁의 매력은 역사적 배경에서 먼저 솟아난다.창덕궁은 잇대어 자리한 창경궁과 함께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궐로 불려졌다.태종 초년에 창건되었으나 초기의 임금들은 대부분 경복궁에서 정사를 보아 이궁에 머물렀다.그러나 성종과 연산군은 주로 이곳에서 지냈으며 임진왜란으로 정궁인 경복궁은 물론 창덕·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린 뒤 1609년(광해군1)창덕궁이 가장 먼저 복구,중건돼 경복궁이 1867년(고종4) 중건되기 까지 2백50년 넘게 조선왕조의 법궁 자리에 있었다.여기서 인조반정,장희빈,사도세자 뒤주참사 등의 사건이 일어났다. 경복궁이 일사불란한 직선 구도의 위용을 펼치는 데 반해 창덕궁은 곡선의 은밀함이 천천히 깊어지는 형세이다.같은 구중궁궐이라도 창덕궁에선 나선형의 심처로 이끌려가는 기분이다.그리고 창덕궁의 구중심처는 왕의 침전인 평지의 내전이 아니라 표고 90m미만의 동산에 조성된 10만평의 후원인 비원이다. 창덕궁은 근 15만평에 이르러 5대궁궐중 제일 넓지만 지세가 굴곡지고 경관 또한 한결같지 않아 탐방객들을 늘 깨어있게 한다. 이런 취향에 맞게 창덕궁은 정문인 돈화문이 한가운데에 있지않고 남서쪽 모퉁이에 나있다.정전인 인정전과 내전일곽인 희정당 대조전 등의 초입은 일제시대인 1912년 일반에 공개되면서 많은 변형과 훼손이 가해진 곳이다.그러나 돈화문은 광해군,선정전은 인조,인정전(국보 225호)은 순조 때 각각 재건돼 오늘에 이른다.내전 건물들은 19 17년 화재이후 다시 지었고 19세기 때의 3분의1규모에도 미치지 못한다.그러나 전각과 전각이 원래의 특징인 복도구조로 쭉 연결된 외관은 답답한 가운데서도 왕의 처소다운 위엄을 느낄 수 있다. 건물군 뒷쪽에 계단형식으로 정원을 꾸민 화계가 나타나면서 비원이 열린다.비원은 부용지,연경당,반도지,옥류천부근 등 대충 4구역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가장 깊숙한 곳인 옥류천 부근은 출입금지되어 있다.창덕궁의 건물들이 인위적인 대칭구성에서 벗어나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도 속에 놓여 있듯이 비원도 여기저기를 손질해 인공적으로 꾸민 게 아니라 동산의 자연미를 살려 드넓고 다양한 풍치의 정원을 일으켜 세웠다.관상수를 부러 가져다 심지 않았고 나무에 전지를 하지 않았으며 따로 꽃밭도 만들지 않았다.인조 때부터 세워진 28개동의 누정이 1백여종의 나무 사이사이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길잡이◁ 창덕궁·비원은 3년동안 일반에 폐쇄된 뒤 79년부터 안내원의 인솔하에 제한관람하게 되어있다.9시부터 1시간단위로 하오4시까지 입장하며 이와따로 외국어안내가 중간중간 있다.비원까지의 주관람로는 2.2㎞로 1시간 10분이 소요된다.입장료 1천8백원(어린이 9백원).
  • 서울 정도 600년 사업 세부내용

    ◎4가지 주제별 12개 경축행사 “푸짐”/문화축전 등 시민 자발 참여 부축/난지도매립장에 환경생태공원 조성/위인동상 제자리 찾기·전통거리 재현 서울시가 27일 확정한 정도 6백년 기념사업기본계획안은 시민 스스로 하는 사업,경축 기념사업,미래에 대비하는 계기사업등 3가지 유형으로 역사·인간·문화·세계도시등 4개의 주제별로 모두 12개의 세부사업을 벌인다. ▷6백년전◁ 서울의 발생부터 조선·일제치하·전후혼란기·급성장기등 시대구분에 따른 성장사를 자연환경·도시형태등 종합적인 시각에서 알리는 6백년 종합전을 94년 9월부터 95년 6월까지 한강변에서 연다.이를 위해 서울생활풍속전 근대1백년 도시예술전 서울사람전등의 주제별 전시를 통해 시민의 관심을 제고시키며 93년 10월부터 2개월동안 대전엑스포와 연계,사진및 소리를 통해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보는 자료전을 개최한다. ▷21세기구상◁ 통일시대 지방화시대 정보화시대 경제블록화시대를 맞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서울 21세기 위원회」를 구성,21세기 서울의 도시구조및 서울시정을 짠다. 21세기 서울의 모습에 대한 시민의 의식을 조사하고 94년중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세계질서와 동아시아에서의 서울의 위상과 역할을 찾는다. ▷서울탐사◁ 서울의 역사·지리·문화·경제등의 분야에 대한 연구를 촉진하도록 서울학을 육성하고 특히 일제치하의 흩어진 자료를 일본등에서 집중 수집하고 93년 말부터 서울학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와함께 시민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서울문화그림지도등 서울미디어를 개발한다. ▷서울동네운동◁ 아파트단지·단독주택지역등에서 주민들이 합심해서 꽃과 나무를 함께 가꾸며 대학과 기업이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어 우리동네를 다듬는다. ▷서울새도시얼굴◁ 여의도광장 지하에 주차장,시민문화시설,편익시설등을 마련해 시민시대의 중심광장으로 만들고 21세기 준공목표로 시청사 건립을 구체화한다.또 95년까지 경희궁터에 시립박물관을 건립,시민역사교육의 중심공간으로 조성한다. 대원군 사가를 매입하는등 운현궁을 정비 개발하고,창덕궁 담장을 따라 순라길을 재현하는등 원서동 사적공원을 조성하며 경희궁을 역사·환경거리로 정비한다.옛 지형과 계류를 복원해 「남산골」을 조성,전통공방을 전시한다. 북한산성 문루및 인접성곽을 복원하고 남산 낙산등 서울성곽 훼손부분및 혜화문의 성곽을 따라 역사탐방로를 만든다. 중앙박물관에서 남산,예술의 전당을 잇는 남북축을 만들고 경희궁에서 정동까지를 근대사의 거리,경희궁 박물관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를 문화의 거리,경희궁에서 사직공원 인왕산까지를 역사의 거리로 조성한다. 또 위인동상 제자리 찾기를 벌이고 노래하는 조각공원을 만드는등 도시공간에 거리조형물을 조성한다. 폐쇄되는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에는 환경생태공원을 만들고 한강변에 집중녹화 사업을 벌인다. ▷문화경진◁ 시에 행사기획전문업체·문화예술전문가·시민등으로 문화촉매단을,구에는 작은축제위원회를 발족시켜 시민이 참여하는 우리마당 작은 축제를 펼친다.또 「나도 예술가」축전을 통해 시민이 찍은 서울영상전,우리동네 그리기,주부생활민예페어,동네문화 야시장등의 행사를 갖는다. ▷6백년대동제◁ 서울을 둘러싼 외4산 내4산 한강등을 시민이 직접 찾아 6백년 기념 나무심기,산수제례,봉화올리기,성곽돌기등의 행사를 갖고 한강선상음악회·백송 사물놀이·야외연주회등을 개최한다.또 역사향토제의 일환으로 서울성장사 재현놀이·세시풍속놀이·전통예술놀이를 한다. 6백년이 되는 94년 11월 29일 남대문 앞에서 국악과 양악,무용,첨단기술이 결합된 종합경축공연을 벌이고 세계민족필름제·세계공연예술제·문학축제·인형극제등을 개최한다. ▷세계도시기반조성◁ 정보화시대를 맞아 정보항(텔레포트)등 정보기관시설과 국제교역기능등 중심업무기능을 갖춘 첨단정보화 업무단지를 조성한다.서울을 세계속의 도시로 부상시키기 위해 회의장 공연장 호텔등의 시설을 갖춘 국제컨벤션 센터 건설을 추진한다.
  • 서울 21세기 첨단도시로 새출발/정도 600년 기념사업 최종 확정

    ◎10만평규모 정보화단지 조성/여의도엔 복합문화타운 건설/경·평정기축구전 부활도 추진 오는 94년 정도 6백년을 맞아 대규모 첨단정보업무단지가 조성되고 난지도 89만평에 꽃박람회등을 열수 있는 환경생태공원이 조성된다. 또 11만여평의 여의도 광장 지하에 주차장 도서관 식당등의 시민문화시설과 편익시설이 들어서고 새로운 시청사 건립이 본격화된다. 서울시는 27일 상오 세종문화회관에서 53명으로 구성된 서울6백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김원용)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한 서울 6백년기본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이에따라 시는 연말까지 구체적인 세부계획을 마련,93년부터 95년까지 3년동안 본격적인 기념사업을 벌여나가 96년에는 서울을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인 도시로 완전 탈바꿈시킨다. 시는 「우리 서울,서울답게」라는 구호아래 기념사업을 「다시보는 서울」 「새로나는 서울」 「신명나는 서울」 「열려있는 서울」등 4가지의 주제로 나눠 41개의 단위사업으로 벌인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통신위성과 지하광케이블을 주축으로전자정보센터·국제금융센터등 정보처리기능을 집결한 첨단정보화업무단지를 10만평 규모로 97년 착공,2005년까지 1단계 공사를 마무리 한다. 또 1만5천평 규모의 컨벤션센터를 세워 각종 국제회의장시설을 갖춰 서울을 국제도시로서 동북아의 중심도시로 면모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이달말 폐쇄되는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은 복토·가스제거기설치등 안정화 작업을 거쳐 환경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환경생태공원은 꽃박람회 환경예술전시및 각종 대회를 열수 있게 된다. 또 여의도광장에는 국내 최대의 지하타운을 건설,각종 문화시설과 휴식공간을 갖춰 시민광장으로 꾸미기로 했다. 서울을 새로운 문화·역사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경희궁에서 구러시아공관 정동근린공원을 잇는 근대사의 거리,경희궁 박물관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를 문화의 거리,경희궁에서 사직공원·인왕산까지를 역사의 거리로 조성한다. 그리고 운현궁을 정리·개발하고 창덕궁 담장을 따라 순라길을 재현하는등 원서동 사적공원을 조성하며 「전통남산골공방」을 만드는등 6백년역사를 재현키로 했다. 이밖에 서울의 뿌리를 되찾는 사업으로 ▲시립박물관 건립(95년) ▲역사탐방로 개설(93년) ▲서울·평양축구경기부활등을 추진키로 했다. 시의 한 관계자는 『이번 계획은 지난 1394년 태조3년에 수도로 정한 서울이 6백년 역사의 저력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제2의 도약을 할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고 말했다.
  • 이화장 양각 장검 발견/길이 80㎝… 구한말 황실 의전용 추정

    구한말 임금들이 의전용으로 찼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검이 강원도 춘천에서 발견됐다. 이 장검은 길이 80㎝,폭은 칼 윗부분이 1.9㎝,칼끝은 1.1㎝로 손잡이에는 대한제국 당시 황실에서 사용하던 배꽃무늬(이화장)가 금으로 도금돼 10개가 양각돼 있다. 소장자인 이인섭씨(46·춘천시 후평2동)는 이 장검을 20여년전 춘천 근교의 고물상에서 우연히 구입했다면서 『그동안 육군사관학교 무기박물관과 창덕궁이 「이왕실 유물 관리실」등에 알아봤으나 고종과 순종이 의전용으로 찼던 칼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밖에 여러 전문가들에게 문의해 『이화장이 대한제국의 황실 문장이고 칼의 모양새가 전통적인 국내검이어서 황실에서 사용하던 것이 틀림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강원대 박물관장 박민일씨(55)는 『구한말 임금이 사용하던 물품에는 배꽃무늬를 반드시 새겨넣어 황실 사용품임을 알렸다』면서 『이 장검을 면밀히 조사해 본 결과 당시 고종이나 순종임금이 찼던 것 중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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