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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덕궁·수원성/세계문화유산 등록 추진/문체부

    ◎7월1일까지 신청서 제출 문화체육부는 올해 창덕궁(사적 제122호·서울 종로구 와룡동 2의71)과 수원성곽(사적 제3호·경기도 수원시 장야동·연무동·남수동·지동리)등 2건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키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문체부가 오는 7월 1일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사무국에 등록 신청서를 제출하면 내년 3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대상 문화재에 대해 실사를 실시한 뒤 내년 6월 WHC 집행이사회 심의평가를 거쳐 내년 12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등록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한국의 문화재로는 지난해 12월 불국사·석굴암,해인사 대장경판및 판고,종묘등 3건이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었다. 창덕궁은 140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창건된 조선 5대궁중의 하나로 왕궁의 장중함이 가장 잘 보존돼 있고 특히 유일한 궁궐 후원인 비원은 조선시대 조경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또 수원성곽은 1794∼1796년사이 조선 정조가 생부 장헌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옮기면서 당시 실학자들의 과학적 지식을 활용해 쌓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성곽이다.
  • 신한국상 세계에 올바로 알린다/대외홍보위원회 첫 회의 안팎

    ◎국제 지위 걸맞게 “부정이미지 씻기”/위원장 총리로 격상… 부처 홍보정책 효율적 조정/무협 등 민간경제단체 참여… 고유문화 적극 소개 우리나라의 잘못된 이미지를 바로 잡고 나아가 새로운 한국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확대·발족된 대외홍보위원회 첫 회의가 12일 이수성국무총리 주재로 열렸다. 새 위원회는 먼저 위원장이 공보처장관에서 국무총리로 격상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위원회의 권위가 높아졌다는 것이 외형상의 변화이다.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총리의 종합조정 아래 부처 이기주의에 매달리지 않고 효율적으로 대외홍보정책을 세울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위원회 구성원의 면모도 달라져 전경련과 무역협회 등 민간경제단체가 새로 참여했다.기업 이미지는 그 기업이 소속된 국가의 이미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현실이 이들 단체 참여의 이유가 됐다. 이날 회의에서 오인환 공보처장관이 『한국을 국제시장에서 판촉하는 차원에서 국가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보고된 올해 국가이미지 홍보 추진계획은 위원회의 변화상에 걸맞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공보처는 이미 알려진대로 국내체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방송(월드채널)과 국제위성방송(코리아채널)을 위해 「국제방송교류재단」을 이달중 설립한다는 계획을 보고 했다.또 외신취재를 해외공보관이 총괄하도록 하거나,각 부처별로 외신지원을 전담하는 창구를 지정키로 했다. 해외에 진출한 우리기업의 상품광고에도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 문구를 삽입키로 했다. 정부가 우리문화를 대표하는 이미지물(CI)을 선정해 해외에 소개하겠다고 밝힌 대목도 적극적인 문화정책의 단면으로 주목된다.올해 한라산과 창덕궁·무령왕릉 등 10건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추가 등록을 추진키로 했다.지난해 석굴암·종묘 등을 등록한 결과 세계 여러나라에 우리나라를 신흥산업국으로 뿐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나라로 인상지우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글·도자기·사물놀이·김치·태권도등 우리 고유의문화유산도 해외문화원이나 재외공관,해외진출 기업의 지사망등을 통해 다각적으로 전파시킨다는 전략이다.
  • 고궁서 민속놀이 즐기세요/설연휴 서울 5개궁·놀이마당 개방

    ◎팽이·윷·제기 등 전통놀이판 마련/사물놀이·비나리굿·경기민요 공연도 문화체육부가 설 연휴인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동안 창경궁,경복궁,덕수궁,창덕궁,종묘등 서울소재 5개궁을 개방하고 전통민속놀이 실습장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국립민속박물관도 지난 15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전통놀이 마당을 설치한다.또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서울놀이마당에서 19·20일 이틀간 「설맞이 민속놀이 한마당」을 개최해 고향을 찾지못한 이들에게 전통적인 설의 모습을 제공한다. 5대 고궁과 민속박물관내에 설치되는 전통 민속놀이마당은 매년 설과 추석을 전후해 운영하고 있어 내·외국인들에게 모두 호응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번 마당에는 윷,제기,팽이,줄넘기,널뛰기,굴렁쇠,연과 함께 옛날 궁중에서 즐기던 놀이인 투호를 마련해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배워 놀이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설맞이 민속놀이 한마당」은 각 전통 민속놀이단체의 공연과 민속놀이 강습·시범,그리고 전통놀이기구 판매등으로 짜여진다. 이틀동안 매일 하오 3시부터 4시40분까지 제기차기,널뛰기,연강습 시범이 펼쳐지며 19일은 비나리굿·경기민요·사물놀이·평택농악,20일은 사물놀이·송파산대놀이·마당풍물놀이등의 공연이 열린다. 특히 전통놀이 시범에는 제기차기에 이우섭씨,널뛰기에 지정춘씨,연에 노유상씨등 각 분야의 기능보유자가 직접 이야기와 실연을 해준다.
  • “국군 서울지구병원 이전/국립미술관 분원 설립을”

    ◎「사간동 문화거리 추진위」 청원서 제출 경복궁 맞은편 종로구 사간동의 국군서울지구병원을 이전,그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지역에 자리한 갤러리 현대와 국제화랑,스페이스 아트 인 서울의 대표들을 비롯한 문화예술계 인사 24명은 최근 「사간동 문화의 거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청와대,문화체육부,서울시,국방부등 관계 요로에 「국군병원을 이전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전달했다. 추진위원으로는 손용두관훈·인사동문화마을보전회장,장우성월전미술관장,전영우간송미술관장,홍나희호암미술관장,조병화예술원회장,오광수환기미술관장등이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청원서를 통해 『일제 잔재인 국군 서울지구병원을 이전하여 경복궁과 창덕궁,인사동을 잇는 주변 미관을 개선하고 그 귀중한 자리에 시민을 위한 수준급 미술관을 유치하기 희망하는 사민들의 여망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이들은 『국군 서울지구병원이 있는 사간동은 조선왕조의 사간원과 이왕가종친부 및 규장각등의 관아가 있던곳이었으나 일제가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짓밟기 위해 관아건물들을 전용,총독과 고관대작등 일본인을 위한 병원과 의학전문학교를 세웠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 모임은 이두식한국미술협회이사장을 위원장으로 김홍남이화여대박물관장,허규북촌창우극장대표,유홍준영남대교수,박명자갤러리현대대표,이현숙국제화랑대표,우찬규스페이스아트인서울대표,권대성한국불교미술관장대표,문명대서울시문화재위원장,허영환성신여대박물관장등 12명의 실행위원회도 구성했다.
  • 국악인 김천흥(이세기의 인물탐구:89)

    ◎「춘앵전」 등 궁중무 재현에 80평생/14세때 아악생으로 입문…악·가·무 두루 갖춰/대한 국악원·민속 예술원 등 설립,후지 양성/오는 3월 미수 앞두고 “전아의 극치” 「춘앵무」공연 준비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에 노란 관과 붉은 띠,오색 한삼속에 감춘두손을 좌우로 펼쳤다가 이마높이로 들어 모으며 창사를 읊조린다.여섯자 화문석위에서 「평조회상」에 맞춰 추는 「춘앵전」은 꾀꼬리가 버들가지를 넘나들며 노니는듯 노래부르는듯 화사하고 밝은 화전태와 여의풍이 특징이다.이는 궁중정재의 마지막 한끝을 잇는 심소 김천흥이 재현한 춤으로 그는 상영산에서 잔영산에 이르는 원형그대로를 추기도 하지만 느린 가락의 상영산을 생략하고 세영산을 위시한 삼현도드리와 변주곡인 군악의 장단으로 아정한 무작을 짜고 있다. ○꾀꼬리 춤사위 일품 그의 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사람의 심금을 움직인다.그것은 한낱노익장을 과시했다는 표현으로는 미치지 못하달 수가 있다.특히 한국무용의 기교를 전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처용무」는 「깊은 온축과 비범한 예술성,씩씩하고 장엄한 남무의 풍도와 낙화유수의 가녀린 애조가 두드러져 우리의 고대무용을 보다 본격적으로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즉 그의 춤은 천격이나 기교가 없이 「심소가 아니면 되살릴수 없는 무격이 제격」이다.크고 광활하게 장삼을 흩뿌리는 「승무」역시 무기교의 절제미와 정제미,무념무상의 선비적인 청정이 깃들어 몸이 아닌 마음으로 추는명무로 손꼽힌다.그런가 하면 그의 「살풀이」는 멈출듯 주춤한 정지속의 움직임과 여백의 미가 일품이다.명주수건을 던졌다가 다가서고 다가섰다 물러서는 흐르는 춤태는 손끝 하나에서도 예술의 연륜이 묻어나 이를 보고 「속으로 흐느끼지 않은이가 없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다.이 춤은 지난 연초 하와이대 객원교수로 갔다가 배한라여사의 1주기를 맞는 추모무대에서 춘 것이 「그곳의 객석을 흐느끼게 했다」고 전해져 왔다.노예술가의 연륜을 거론하는 것은 외람되나 약관 14세에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의 아악생으로 입소하여 장천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기를 어느덧 70여년.1923년 순종황제 탄신 오순을 경축하는 창덕궁 어전연주에서 무동으로 뽑힌 것이 인연이되어 그는 당대 명인 하규일 함화진으로부터 「악.가.무」일체를 이어받는 예인의 길에 올랐다.그가 재현하여 공연에서 선보인 궁중무만도 「춘앵전」외에 「무고」 「가인전목단」,용알을 가지고 사를 부르며 추는 「포구락」등 48종.궁중명무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 아악부를 떨치고 나가 교방의 무속악사로 전전한 경험때문에 민속무용과 무속음악에도 일가를 이루어 「꼭두각시」에서 「봉산탈춤」에 이르기까지 그가 추지 않은 춤은 없다.악기도 아악부시절의 전공은 해금이지만 양금 아쟁의 명수이고 곰삭고 결삭은 성대를 구사하여 남녀창인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선유가등 12잡가와 사설시조 휘모리시조를 어느 자리에서나 두루 거침없이 노래부른다.그가 춤과 국악으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개인무용발표회를 가진것은 56년부터 7차례,궁중무용 재현은 10여차례가 넘지만 공연뒤 리셉션을 가진 것은 72년 「무악생활 50년」과 92년 「무악생활 70년기념」공연등 단 두번뿐이다.그만큼 그는남에게 폐스러운 일,번거로운 일을 삼가고 분수에 넘치는 것은 넘보지 않는다.첫번째 공연에서 벌써 「우뚝하고 반듯한 김천흥의 무용」으로 평가되더니「완숙의 미와 멋과 흥」등 넘치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만약 충고하는 조언이 있으면 언제라도 주춤거리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돋보인다. ○순종 오순때 무동으로 「일찍이 없었고 뒤에도 없을 그의 공업은 동료와 제자의 경의와 찬하만으로 모자란다」는 이성천교수(서울대)의 말대로 그는 참으로 많은 업적을남기고 있다.40년대초 이전에서의 국악교육을 필두로 대한국악원 국악사양성소 무용인협회 한국가면극 대한민속예술원 정농악회등 국악과 관련된 수많은 단체를 만드는데 앞장서 왔으나 그는 이를 굳이 「창단」「결성」으로 강조하기보다 단순히 「참여」한 것으로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청렴했던 심소는 80평생 살림집과 무용연구소 이사를 다닌 것만도 50여번이 넘는다.살림집은 사글세 전세 전세를 전전하여 40여번,연구소는 지난 55년 낙원동에 김천흥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나서 78년 문을 닫기까지 10여번이상을 옮겨다녔다.무용발표 때마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집을 가진 것은 68년 잠실주공아파트가 처음이고 그후 다시 수번을 이사한 끝에 2년반전 현재의 서초구임광아파트에 정착했다.그러나 무용연구소 시절 장구쳐 줄 사람이 없어 하루종일 「하나둘 하나둘」 육성박자로 춤을 가르치는 궁핍한 생활에서도 그는 연구생들이 내는 월사금외에 별도로 작품료를 받은 적이 없고 월사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그냥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만사에 최선을 다하여 대강 넘어가지 않는 그는 60년대초 원각사 공연때는 빈혈로 쓰러지자 아침마다 신당동에 다니며 소피를 먹으면서 무대에 선 적도있고 76년 미독립 2백주년기념 축하행사는 50일간 필라델피아 워싱턴등 11개지역에서 20여회를 공연하는 동안 급작스런 복통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자신의 할바와 의무에 빈틈을보이지 않았다.지금도 「국록」을 받는다는 자세로 매일 국악원에 나와 직접후진을 지도한다. ○40여회 전·월세 전전 국악계를 통틀어 『높은 스승일뿐만 아니라 인품이요 덕망,학식이고 예술에서 앞으로 누가 있어 선생을 따를 이가 과연 있을 것 같지않다』는 성경린씨(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지휘 기능보유자)의 말대로 「명확한 운궁법을 통한 정확한 표현력으로 평가되어지는 악기」를 젖혀두고라도 전통무용으로 저문한 그는 당연히 「한국무용사의 산증인」이요 「궁중정재의 대명사」이며 「정재재현의 명장」이 아닐 수 없다.아악부 시절에 만난 성경린과의 총죽지교는 「한 핏줄과도 같은깊고 짙은 우정」으로 일요일마다 「산행의 동반자」이기도 하다.가족은 그를말없이 내조해온 부인 박준주여사는 2년전 타계하고 3남3녀중 5남매는 미국에 체류중.차남 정완씨(회사원)가 극진히 모시고 있다.여전히 가볍고 날렵한 그의 몸놀림은 어느 한구석 비틀거림이나 흐트러짐이 없다.갸냘프리만치 깡마른 체구에도 강단이 세고건강해서 그에게선 「노인」의 티란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춤을 출때 그렇다.『남과 다투지 않고 아부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 편히 늙었으니 행복하고후회가 없다』는 그는 『그러나 노장은 무용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무대에 서서 살아있는 춤을 보여주고 싶다』는 절규와도 같은 기원을 기필코지키고 싶어한다.오는 3월 30일 미수를 앞둔 제자들의 축하공연에서 심소는 또한번 「전아의 극치」로 일컬어지는 「춘앵무」로 우리에게 상서로운 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그것은 무용가 최현의 표현대로 「결과 멋과 흥」이 샘물처럼 어우러진 「절예의 경지」 또는 「입신의 경지」 그자체일 것이다. □연보 ▲1909년 서울출생 ▲22∼26년 이왕직 아락부원양성소 졸업(해금·양금·아쟁전공) ▲23년 순종황제탄신 오순경축공연 무동출연 ▲26∼42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아악수장 ▲40∼45년 이화여전 강사 ▲43∼45년 조선음악가협회회원 ▲45∼47년 대한국악원이사 ▲50∼88년 서울대·한양대·추계예대·숙대무용과 출강 ▲51∼95년 국립국악원 예술사,연주원,자문위원,현재 원로사범 ▲55∼78년 무용연구소 개설 ▲1956년 첫번째 무용발표회 이후 75년까지 7차례,창작무극 「처용랑」「만파식적」「흥부전」「봉산탈춤」등 발표 ▲61∼76년 한국국악협회이사,부이사장,상임고문,명예회장 ▲61∼80년 서울시 문화재위원 ▲62∼95년 미주·동남아·유럽지역등 해외공연 21차례 ▲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39호 처용무기능보유자지정 ▲73∼93년 대락회 이사장 ▲77∼현재 정농락회 회장,궁중무용발표회 이후 10여차례 ▲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92년 「심소김천흥선생 무락생활 70주년기념」공연(국악원소극장) ▲93년 무악생활 70주년기념 해외순회공연 ▲95년 하와이대 초청 객원교수 한국무용의 기본무보(69년) 정악양금보(82) 정악해금보(88) 심소김천흥무악70년(95년) 서울시문화상(60년) 문화재보존공로상(68년) 한국문화대상(69년) 대한민국예술원상(70년) 국민훈장모란장(73년) 한국국악대상(83년) KBS국악대상 특별공로상(92년)
  • 국악계 원로 김천흥옹 회고록 출간/내일 출판기념회

    한국무용사의 산 증인이자 국악계의 대원로인 김천흥 선생(86)이 회고록 「심소 김천흥 무악70년」을 최근 출간했다. 회고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과 제39호 처용무의 예능보유자인 김선생이 19 22년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 2기생으로 입소한 이래 지금까지 겪어 온 개인사 및 한국음악과 무용의 현대사를 담고 있다. 『크림과 박가분을 바르고 순종황제와 윤황후 앞에서 춤을 춘 기억이 생생하다』는 김선생은 15세이던 19 23년 창덕궁 인정전의 어전 연주회에서 무동으로 춤을 춘 이래 지난 92년 「무악생활 70년 기념공연」에 몸소 출연해 명무의 기량을 선보이기까지 70평생을 오로지 춤과 음악에 바쳐왔다.현재도 하와이대 초청 객원교수·예술원 회원·국립국악원 원로사범·정농악회 회장 등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회고록 출판기념회는 14일 하오 6시30분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열린다.
  • 화가 김흥수(이세기의 인물 탐구:87)

    ◎하모니즘 창시… 세계화단에 우뚝/뜨거운 열정으로 작품마다 혁신적 표현 시도/93년 동양작가로 처음 푸슈킨 미술관서 개인전/작품 모두 1천여점… 미술사에 남기려 대작은 안 팔아 검은 펠트모자에 브라운컬러가 든 선글라스를 쓰고 김흥수 화백이 공식석상에 나타나면 그의 현란한 차림에 좌중은 경이의 시선을 집중시킨다.오늘날 우리 화단에서 알아주는 멋쟁이에다 그 재치가 탁발하여 예술가적 기질이 충일한 반면 옳은 말을 참지 않고 올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세우려는 불 같은 정의감 때문에 그는 곧잘 엉뚱한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에선 「폭군화가」「독설가」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의 외모는 사나이답고 솔직하며 내심은 섬세청렴하여 저질스러운 것,치사한 것,부당한 것을 용납치 않는다.오죽하면 바람 잘 날이 없는 자신을 향해 『넓고 넓은 황무지를 혼자서 한없이 걷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중에서도 49년 국전에 입선된 「나부군상」과 53년 「침략자」에 얽힌 사건은 화단이면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의 하나다. ○화면곳곳 고뇌의 흔적 선전에서의 입선과 특선후 국전 제1회에 출품한 「나부군상」은 나체화가 한 사람이 아닌 여럿이라는 이유로 전시도중 철거되었고 6·25를 테마로 한 「침략자」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너무 적나라하게 다룬 것이 화근이 되어 전시철회를 권유받기도 했다.당시 심사위원측은 작품 「침략자」를 취소할 경우 그의 「군동」에 대통령상을 줄 것을 제의했으나 『상을 타기 위해 자식 같은 그림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는 끝내 「침략자」전시를 고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성격인 만큼 경우에 어긋나는 처사를 묵과할 리 없다.한 미술전문지가 조사한 화가의 「그림값문제」를 놓고 『특정한 몇사람에게 부당한 이득을 주기 위해 많은 작가의 자존심을 짓밟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조작극』으로 비판한 일과 외국작가초대전에 대해서도 『우리의 것을 세계에 알릴 생각은 하지 않고 외국작가를 데려다가 온갖 경비를 들여 모든 영광을 바치는 비굴한 발상,거지 같은 음모』등으로 몰아붙여 주최측을 곤혹스럽게 했다. 또 「대한민국 예술원회원의 자격기준은 어디에 있으며 그들은 과연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공개서한을 신문에 발표한 것도 그가 아니면 엄두도 못낼 일련의 사건이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한군데 머물지 않고 모색과 탐구를 계속해온 그의 작업은 「그림의 내용과 형식·색채에 대한 진취적이고 장인적인 고뇌의 흔적을 화면에 면면이 점철시킨 것」이 특징이다.초기에는 민족적 주제의 사실적 화풍이 주조를 이루다가 도쿄유학이후 주관과 객관의 문제에 파고들기 시작했으며 파리시절은 「탐미주의적 경향」을 무제한으로 방출한 풍요로운 색채의 의장이 두드러진다. ○크리스티서 작품 거래 평론가 오광수는 한국고유의 양식에 뿌리를 둔 그의 거대한 아라베스크의 화면을 보고 『추상적 톤과 장식적 요소,예리한 선획으로 대상을 해체하고 분할하면서 마티엘의 파편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시적 감흥을 준다』고 이를 설명한다.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재미시절 「주관적인 표현과 객관적인 표현,구상과 추상을 하나의 화면에 공존」시킨 이른바 새로운 미술사조인 「하모니즘」으로 다시 한번 「화면속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77년8월 워싱턴에서 선보인 그의 하모니즘은 미국화단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지난 90년,세계적인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주선한 파리 「김수(Kimsou) 하모니즘(Harmonism)」전으로 세계화단의 스폿을 받는 역사적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이 유서깊은 뤽상부르초대전은 한국인으로서 처음이기도 하지만 관람객이 줄을 잇는 이변 가운데 현지 매스컴도 전례없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그가 친애해 마지않는 레스타니는 『그가 창안한 하모니즘,즉 조형주의는 예술에서 서로 상반되거나 대조적인 테마를 자연발생적인 변증법적 논리로 결합한 아주 특별한 세계』임을 전제,『바로 이와 같은 이원적 우주관은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시간의 정지속에서 몽상적인 초현실과 현실을 지속케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파리 악튀알리테」와 「렉스프레스」도 「그는 한 작품속에서 우연과 필연,유형과 무형,표와 이,긍정과 부정,음과 양의 상반된 양극을 화합하여 오리지널리티의 완결성을 보여준다」고 보도한 바 있다.이로써 예술을 향한 뜨거운 집념과 고집스러운 창작욕은 「조형주의 창시자」로서 세계미술사에 등재되고 그의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은 한치의 오차없이 정상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김흥수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네르기슈의 작가이며 작품에 대해 그가 구현하려는 의욕은 참으로 끈질기고 고집스럽다』고 임영방씨(국립현대미술관장)는 말한다.이어서 『불굴의 기백과 투지,그리고 집요한 탐구와 비범한 예술적 아이디어는 작품마다에서 혁신적인 표현을 이룩해낸다』고 경탄해 마지않는다.그는 거장답게 지난 91년 국제적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기쁨을 누렸으며 93년 동양작가로는 처음 러시아 푸슈킨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이는 74년 샤갈전 이후 생존작가로는 그가 두번째다. 그의 치열한 삶의 지표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허덕거리도록 온 힘을 다 받쳐서 완성된 작품 앞에 섰을 때의 그 희열을 위해」 그는 「한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망각속에 묻어버린 채」 새희망,새 삶속에 솔직하고 싱싱한 생동감을 그때마다 재확인해 나간다.그리고 정열과 돈과 시간을 자신의 화업에 아낌없이 쏟아붇는다.그동안 20여회의 개인전과 1백20여회의 국내외 그룹전·초대전을 통해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은 1천여점,그러나 미술사에 남기기 위해 대작을 절대로 팔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웬만한 기성화가가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그래선지 『내가 돈 잘 버는 화가인 줄 안 전처는 내게 실망하고 떠났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육식 즐기고 춤솜씨 일품 3년전 연하의 제자인 장수현(34)과의 결혼으로 장안이 떠들썩할 때도 『예술가는 평범한 생활을 해서는 개성과 창조를 생명으로 하는 작품을 남길 수 없다』고 자적한 태도를 보였다.거실을 화실로 쓰고 있는 방배동 황실아파트에 들어서면 현관에서부터 그 짙은 유화냄새와 함께 황홀한 그림의 범람이 눈앞을 압도한다. 부인은 현재 파리유학중. 함남 함흥시 공무원이던 김영국씨와 창덕궁 양잠소 교사를 지낸 이부갑여사의 3남1녀중 차남,그림그리기를 좋아한 소년시절에는 완고한 부친이 『표현능력이 뛰어나고 말을 잘하니 변호사가 될 것』을 명령했으나 함흥고보시절 「밤의 정물」이 선전에 입선하자 부모는 일본유학을 허락해주었다. 그의 화업은 이제 「예술은 내용이냐,탐구냐 또는 형식의 발견이냐」를 지나 「하나의 화면을 채색으로 쌓아올리는 루오의 탐구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와 달라질 그날을 위하여 나는 나의 그림을 자유속에 놓고 싶다.그리고 격렬한 현실에 몸담고 있는 인간의 호흡을 화면에 재현하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고정된 틀속에 묶어두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금도 볼보를 몰고 육식을 즐기는 대식가에다 눈부시게 돌아가는 춤솜씨가 일품인 그의 예외적인 정열은 몸속으로부터의 깊고도 끈질긴 모티베이션,자유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는 과연 누가 뭐라 해도 자유의 화가다.그리고 깨어 있는 형식과 의식으로 인해 어디서나,언제까지나 자유다. ◇연보 ▲19 21년 함남 함흥 출생 ▲36년 함흥고보재학중 제16회 선전 「밤의 정물」입선 ▲38∼39년 가와바타화(천단화)학교 데생수학 ▲44년 도쿄미술학교 졸업.선전 「밤의 실내정물」특선 ▲49년 귀국,서울 첫개인전(현신세계미술관),국전 「호」특선 ▲53년 국전「군동」특선 ▲54년 도불고별전(미도파화랑) ▲57년 파리 개인전(라라 뱅시화랑),살롱도토느 회원피선 ▲60년 라벨가브리엘 화랑주최 개인전 및 살롱 콩파레종 초대출품 ▲61년 귀국전,국전심사위원 ▲62∼67년 국전추천작가 ▲66년 도미고별전(서울신문회관) ▲67∼68년 필라델피아 무어미술대 초빙교수,필라델피아 미대강사 ▲69년 시카고·위스콘신 개인전 ▲71년 우드미어 아트갤러리 「이해의 수작초대전」1등상 ▲73년 젠킨타운 아트페스티벌 믹스드 미디어 1등상 ▲79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85년 김흥수 유화전(현대화랑) ▲86년 한불수교 1백주년기념 서울·파리전 출품 ▲90년 김흥수 조형주의미술전(파리 뤽상부르미술관) ▲92년 김흥수 장수현 부부전 ▲93년 김흥수 조형주의작품전(모스크바 푸슈킨 박물관 및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쥬박물관),대한민국예술대전 구상부문 심사위원장 5월문예상(61) 한국미술대상(73) 문화훈장 옥관장(86)
  • 중기지원 대폭 강화… 경영난 타개 부축/김 대통령 시정연설 요약

    ◎다자간 정상외교 확대… 국제 위상 제고/농림수산부문 8조5천억 투자… 구조조정 촉진/저소득층 지원금 최저 생계비 수준 인상/군 전문­정예화·군장비 현대화 지속 추진/부동산 실명제 정착시켜 주기 철저 차단 김영삼 대통령은 16일 이홍구 국무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을 통해 내년도 국정운영방향을 밝혔다.다음은 분야별 요지. ○지방화시대 뒷받침 ▷정치◁ 내년 4월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우리 정치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어떤 대가와 희생을 치르더라도 불법과 타락이 발을 붙일 수 없는 명실상부한 공명선거가 이 땅에 뿌리내리도록 할 것이다. 민선 자치단체장체제의 출범으로 이제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시대가 열렸다.지역 주민의 기대속에서 모든 자치단체가 의욕적으로 지방살림을 꾸려가고 있다.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율과 책임,경쟁과 협력을 통해 세계화시대에 부응하는 지방화시대를 열어 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 나갈 것이다.지방의 발전이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도록 국정의 통합성 유지에 역점을 두어나갈 것이다. ○북한 변화유도 노력 ▷통일·외교·안보◁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기조를 일관되게 견지해 나가고 있다.북한의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는 것도 평화 유지와 남북협력의 이정표를 세우고자 하는 데 근본 목적이 있다.우리 기업들의 대북 투자 허용등 남북간의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북한의 자세와 태도에 맞춰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우리가 북한 동포들이 겪고 있는 식량난을 덜어주기 위해 쌀 15만t을 아무런 조건없이 제공한 것도 화해와 협력의 기틀을 마련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에서 취한 조치였다.앞으로도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면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일 것이다.무엇보다 남북 당국간의 회담이 조속히 정상화될 수 있도록 북한의 성의있는 자세 변화를 촉구해 나갈 것이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해 세계속에서 한국의 지위와 역할을 제고하기 위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외교노력을 강화하고 있다.나는 오늘 유엔 창설 50주년 기념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또 이 기회에 캐나다도 국빈자격으로 방문하기 위해 출국한다.이번 유엔특별정상회의에는 1백50개국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이 참석할 예정으로 있어 나의 유엔 방문은 다자간 정상외교를 통해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다시 한번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이 기회를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 상임이사국 진출을 앞두고 상응하는 국제적 역할과 기여를 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릴 계획이다.또 정부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을 포괄하는 지역경제협력체인 APEC를 주축으로 우리 위상과 국익을 높여 나가면서 역내의 경제발전과 협력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내년 3월 방콕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유럽 정상회의에 적극 참여해 EU와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데도 노력할 것이다. 국군의 전력 극대화를 위해 군의 전문화 및 정예화와 군장비의 현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국군이 국가안보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방패로서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군의 사기와 복지 개선을 위해서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 ○첨단기술 집중 개발 ▷경제◁ 정부는 물가안정이 서민생활 안정의 절대적 요건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 올해 소비자물가를 5% 이내에서 안정시키겠다.통화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재정수지를 개선하는 등 총량면에서 경제안정기조를 확고히 뒷받침하겠다.유통 혁신을 촉진하고 농산물 및 공산품 가격과 개인서비스요금등 부문별 물가안정을 위한 노력도 병행해 나가겠다.금융실명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계기로 경제활동의 투명성과 형평성을 뒷받침하는 제도로 뿌리내릴 것이다.지난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부동산실명제를 정착시켜 부동산 투기를 제도적으로 막고 부동산가격의 구조적 안정기반을 마련하겠다. 내년에도 치열한 국제경쟁 여건속에서 우리 경제가 활력있게 성장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첫째,사회간접자본을 대폭 확충함으로써 화물 유통의 원활화를 도모하고 교통난으로 인한 국민생활의 불편이 점차 해소되도록 노력해 나가겠다.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예산 배분상의 우선순위를 높게 유지해 내년에 8조원 이상을 집중 투자하고 민자유치사업도 적극 추진하겠다.전국 수송량의 60% 이상을 분담하고 있는 서울∼부산 축의 수송애로를 완화하기 위해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철도경영 개선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국고 지원을 늘리겠다.수도권 신공항이 21세기 동북아시아의 중추공항이 되도록 건설을 추진할 것이며 지방공항도 중장기 개발계획에 따라 확충해 나가겠다.세계적인 수출입 화물 항구로서 부산·광양 양항제체를 구축하고 권역별로 주요 항만의 시설능력도 확충해 나가겠다.도심을 통과하는 국도의 대체우회도로와 교통량이 많은 지방간선도로의 공사비를 정부재정에서 지원함으로써 기간교통망의 병목현상을 완화하겠다. 둘째,정보화시대에 앞서가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과학기술 개발에도 적극 노력하겠다.2015년까지 모든 공공기관과 기업 및 가정을 연결하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이 구축될 수 있도록 하겠다.정보화촉진기본법의 시행을 계기로 공공부문의 정보화는 물론 산업정보화와 지역정보화등 국가사회 정보화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한편 국가지리정보체계(GIS)구축사업등 국민생활의 안전확보를 위한 정보화사업도 추진하겠다.G­7사업등 첨단기술 및 산업현장 기술개발을 위해 연구사업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민간의 기술개발도 적극 지원하겠다. 셋째,중소기업의 경영애로를 타개하기 위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겠다.영세사업자의 자금난을 덜고,인력난 완화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동화사업과 공동집배송단지등 물류개선사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우리 경제의 뿌리인 중소기업이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그동안 정부의 지원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영세중소사업자에 대해 시설 현대화와 사업전환 자금을 신규로 지원하겠다. 넷째,세계무역기구(WTO)출범등 대내외적 여건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농어촌발전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내년에 농림수산부문에 약 8조5천억원의 예산을 투자할 계획이다.특히 경지정리와 용수개발등 농업생산 기반정비를 위한 투자와 농수산물 유통개선사업을 집중 지원해 농어업의 구조전환을 촉진시키겠다.기술집약형 고부가가치 농업의 실현을 위해 인력육성과 기술개발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수산자원조성과 산지자원화를 위한 투자도 확대해 나가겠다.농어촌의 생활환경 개선과 농어민의 복지증진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재해를 입은 농어민에 대한 재정지원도 강화하겠다. ○정수시설 현대화 ▷민생◁ 정부는 교량·가스·지하철·선박·항공기·통신구 시설등 위험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과 보수에 주력하고 있다.지난 7월 재해관리법 제정에 이어 정부의 재난관리기능을 보강하면서 부실건설 추방을 위한 개혁작업을 적극 추진하겠다.맑은 물 공급대책의 일환으로 하수처리장등 환경기초시설을 앞당겨 건설하고 광역상수도의 확충과 정수시설의 현대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대도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청정연료의 사용을 더욱 확대하고 자동차 배출가스로 인한 대기오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재활용 처리시설을 연차적으로 확충해 자원재활용에 힘쓰겠다.또 환경산업 육성을 위한 기술개발과 환경친화적 기업경영체제 확산에 역점을 두고 인접국가들과의 환경협력도 강화해 나가겠다.적조등 해양오염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해양오염방지대책 5개년계획」을 수립해 시행할 것이다.오염이 심한 연안바다를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하고 연안지역에 하수처리장과 축산폐수처리장등 환경기초시설을 앞당겨 건설하겠다.어장도 단계적으로 정화해 나가겠다.해양오염이 발생했을 때 어민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공신력있는 기관과 합동으로 피해를 조사하겠다.특히 영세어민에 대한 보상기준을 대폭 현실화하겠다. ○유공자 처우 개선 ▷사회복지◁ 근로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수준을 98년까지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인상하겠다.장애인 취업훈련시설과 고용촉진을 위한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노인 치매 전문병원을 건립하고 치매노인 부양가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등 종합적인 노인대책을 연말까지 마련하겠다.저소득층의 자녀학비 지원대상을 실업계 고교생에서 성적이 우수한 인문계 고교생까지로 확대하고 생업자금 융자도 늘리겠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방과후 아동지도제도를 실시하며 국민학생에 대한 전면 급식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를 추진하겠다.공무원 채용에 있어 여성고용목표제를 도입하고 공기업에서도 여성직원의 고용이 증가되도록 하겠다. ○여성 사회참여 부축 ▷교육·문화◁ 우리가 추구하려는 새로운 교육은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을 창의력과 인성개발 위주의 다양한 교육으로,공급자 중심의 교육을 학생과 학부모가 선택하는 수요자 존중의 교육으로,그리고 규제보다는 자율에 바탕을 둔 교육으로 탈바꿈하자는 것이다.이를 위해 앞으로 3년간 총 62조3천억원을 교육분야에 투자하도록 했다.또 문화예술 공간을 확충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면서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참여를 유도하겠다.국민들의 여가 수요에 대응하고 외국관광객 유치를 위해 「관광발전 10개년 계획」을 마련하는 등 관광산업을 세계화시대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에 최선을 다하고 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와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준비도 차질없이 진행하겠다. 경복궁과 창덕궁 복원을 위한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와 국외에 안장되어 있는 선열의 유해 봉환등을 계속 추진해 단절된 민족사를 복원하는 전기가 되도록 하겠다.독립유공자를 비롯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연금을 비롯한 보상금등 각종 지원시책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겠다.국가유공자의 노령화에 따라 보훈의료시설을 확충하고 고령자 공동주거시설등 노후복지시설을 확충하겠다. ○학교폭력 추방 최선 ▷공직및 사회기강 확립◁ 공직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노후에 대한 걱정이 없도록 공무원연금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한편 보수도 국영기업체 수준으로 현실화해 나가겠다.민생치안을 위해 현장치안에 중점을 둔 방범활동과 범죄를 유발하는 각종 유해환경정화에 힘쓰고 학교주변 폭력행위와 조직폭력배,마약사범 소탕에 주력하겠다.집단이기주의적 불법행위나 폭력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
  • 「총독부」 첨탑 69년만에 철거/세종로 중앙경축식 5만 운집

    ◎「광복 50돌」 전국서 성대한 행사 역사적인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경축식이 15일 상오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과 각계 대표,광복회원,해외동포,시민 등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다. 「광복 50년 통일로 미래로」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경축식은 상오 9시부터 10시까지 식전행사,10시부터 10시55분까지 본행사,10시55분부터 11시10분까지 식후행사 등 3부로 나뉘어 2시간 10분동안 화려하고 웅장하게 치러졌다. 경축식은 일제 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상부 첨탑을 떼어내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어둠 걷우기」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주최측은 건물 철거를 만천하 호국영령께 알리는 고유시 낭독에 이어 대형 크레인으로 첨탑을 끌어내렸다. 이날 식전행사는 역사의 그늘에 갇혔던 선열들의 넋이 빛(횃불)과 소리(북·바라)가 되어 거대한 행보를 시작하는 「새아침의 소리」,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와 경복궁 복원을 알리는 「어둠 걷우기」와 「다시 찾은 빛」 공연,1천여명이 넘는기수단이 입장하는 「한울림」의 순으로 진행됐다. 본행사에서는 김승곤 광복회장의 기념사에 이어 축가 「동방의 빛」 합창,독립유공자 포상,김대통령의 경축사,광복절노래 제창과 만세3창,축하비행이 있었다. 식후에는 「우리의 소원」을 편곡한 통일판타지에 맞추어 한반도와 무궁화를 무용으로 나타내 통일과 번영의 한민족시대를 향한 민족의 결의를 상징하는 「통일로 미래로」가 이어졌다. 이날 본행사 시작 직전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서는 일제히 종을 울렸고 선박은 기적을 울려 50주년 광복절을 경축했다. 지방에서도 자치단체별로 중앙경축식에 준하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정부는 이날 하루 창덕궁을 제외한 5대 궁과 능원,현충사,국·공립 공원등을 무료로 개방했으며 경복궁 경회루에서 각계 대표 1천여명이 참석하는 경축연회를 개최했다.
  • 광복절 경축 예행연습 이모저모

    ◎「새아침의 소리」 연주 이어 화려한 “폭죽”/전통국악대 연주… 장병 바라꾼도 눈길/「통일 환타지」서 모두 「우리의 소원」 합창 총무처는 13일 광화문앞 세종로 일대에서 광복절 중앙경축식 행사 예행연습을 가졌다.이날 연습한 부분은 식전행사인 「새아침의 소리」와 「다시 찾은 빛」,그리고 식후행사인 「통일환타지」등 3개. ○…「새아침의 소리」는 이날 상오 국립국악원에서 나온 대고수 5명,육군 60사단에서 차출한 장병으로 구성된 멜북꾼 2백4명,육군 71사단에서 나온 장병으로 이루어진 바라꾼 2백9명등 모두 4백18명이 참가했다.중앙식단 전면에 위치한 전통군악대는 「새아침의 소리」 연주에 이어 세종로 중앙분리대에서 큰북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폭죽이 터지면서 충무공동상앞에 대기하고 있던 멜북꾼·횃불수·바라꾼들이 북과 바라를 두드리면서 광화문으로 입장했다.「새아침의 소리」 연주는 과거의 어둠을 향한 초혼의 나발을 의미하며 북과 바라 소리는 역사의 문을 여는 소리,그리고 폭죽은 어둠에 눌렸던 과거의 빛을 상징하는것이라고 총연출을 맡은 표재순sbs프로덕션사장이 설명했다. ○…「다시찾은 빛」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속에 국립무용단 서울시립무용단 경기도립무용단 단원들의 무용이 횃불수 멜북꾼 바라꾼과 한데 어우러진 「구시대의 유물인 총독부 건물의 첨탑이 사라지니 찬란하고 새로운 빛이 비쳐온다」는 내용.국악인 김성녀,성악가 신동호씨와 3백명으로 구성된 연합합창단의「천둥소리」합창이 이어졌다. ○…「통일환타지」는 한국현대무용단 서울시립가무단과 육군 56사단에서 차출된 군인들로 이루어진 무용단,서울 미동국교 어린이들의 무용과 합창이 어우러지는 행사.미동국교 어린이들이 식장 전면으로 춤추며 등장한데 이어 현대무용수들이 동·서 양쪽에서 합세해 「한반도」와 「무궁화」를 무용으로 표현하고 세종로 중앙분리대쪽에서 어린이 독창자를 태운 리트프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모든 출연자와 참석자들이 「우리의 소원」을 불렀다. 행사장 주변은 차량 통제로 매우 한산했으나 북과 바라,그리고 합창이 광화문 일대에 울려퍼져 광복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미리본 광복 50돌 중앙 경축식/옛 총독부 첨탑철거부터 행사 시작/시민·해외동포 등 5만명 축제 참여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경축식이 15일 상오 9시 광화문앞 세종로 광장일대에서 각계대표와 광복회원,해외동포및 일반시민등 모두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다. 이날 경축식은 광화문에서 충무공동상에 이르는 세종로 일대의 교통이 통제된 가운데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의 식전행사,10시부터 10시55분까지 본행사,10시55분부터 11시10분까지 식후행사로 나뉘어 2시간10분동안 진행된다.정부는 특히 식전행사에서 일제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상부첨탑을 크레인으로 철거한다. 전국의 사찰·교회·선박은 본행사 시작 1분전에 일제히 타종·취명을 해 광복절을 경축한다.국민들은 경축식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고 창덕궁을 제외한 5대궁과 능원,현충사,국·공립공원등이 이날 하루 무료 개방되며 광복회원및 동반가족 1인에게는 철도및 시내버스 무임승차 혜택이 주어진다.
  • 「울산 반구대암각화」 국보 지정

    ◎보물 「궁궐도」,국보 제249호 동궐도에 추가/문체부,「명안공주 관련유물」은 보물로 문화체육부는 25일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국보 제285호,조선시대 「명안공주(명안공주)관련 유물」을 보물 제12 20호로 지정했다.또 보물 제596호인 「궁궐도」는 지정종별을 변경해 국보 제249호 동궐도에 추가지정했다. 「울산대곡리반구대암각화」는 신석기 후기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강변 암벽에 떼어내기(음영화)와 쪼아파기(선각화)기법으로 새긴 북부유럽및 시베리아 계통의 암각화로 바다및 육지동물과 탈쓴 무당,어부,사냥꾼등 다양한 모습이 들어가 있다.여러사람이 탄 배와 동물들의 내장이 망처럼 연결돼 투시된 것처럼 보이도록 처리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신앙풍속을 보여주고 있다. 「명안공주 관련유물」은 조선 18대 현종의 3녀로 오태주란 인물에게 출가한 명안공주가 명안궁에서 쓰던 유품과 오태주 일가의 전래자료로 왕실에서 오가던 한글편지와 임금의 필적을 찍은 판본,서책등 다양한 유물을 포함해 궁중풍속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국보로 지정된 「동궐도」는 조선 순조때 도화서 화원이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식으로 그린 궁궐배치도.모두 16폭으로 돼 각 건물의 명칭을 먹으로 기록해 소실된 전각들의 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궁궐 복원작업에 참고자료로 쓰이고 있다.
  • 내일부터 문화재 관람시간 연장/5∼8월 하오 5시서 7시로/문체부

    문화체육부는 문화시설의 관람규칙및 규정을 개정,오는 5월1일부터 고궁 등 주요 문화시설의 관람시간을 1∼2시간씩 연장키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문체부는 내외국인에 대한 관람편의를 도모하고 문화휴식 공간의 이용확대 차원에서 관람 마감시간을 3∼4월과 9∼10월은 현행 하오 5시에서 6시로 1시간 늘리고,5∼8월은 현행 5시에서 7시로 2시간 연장하기로 했다.11∼2월은 현행대로 하오 6시까지 관람이 허용된다. 문체부는 그러나 능·사적지·창덕궁은 산불예방과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해 관람시간을 연장하지 않고 경복궁은 복원정비공사를 위해 5∼8월에만 1시간 연장키로 했다.
  • 「돈의문」 편액글씨 주인공은 누구

    ◎기존 「조일회작품」아닌 「조윤덕글씨」 반론 제기/조윤덕 9대손인 연수씨 족보 등 새증거 제시/조일회/전남 영암서 출생 영암서 사망/조윤덕/서울생,족보에 “편액썼다” 옛 서울도성 4대문의 하나인 돈의문.일제가 19 15년에 헐어버린 서대문의 본래 이름이다.80년이 지난 지금 그 실물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그런 판에 간판격인 편액을 누가 알랴만,편액글씨의 주인공을 놓고 논란이 일어 화제가 되고있다. 이 편액은(세로 1백10,가로 2백50㎝) 다행히도 창덕궁이 보관하고 있는 유물.문화재관리국이 지난 86년에 펴낸 「궁중유물도록」해설편에 따르면 글씨를 쓴 사람은 조일회로 되어있다.서울대 규장각 소장 필사본 「동국여지비고」 기록을 근거로 그를 편액글씨의 주인공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또 다른 자료인 「조선시대사찬읍지」(사천읍지·한국인문과학원)도 필사본 「동국여지비고」내용을 빌려 같은 사람의 글씨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힘찬 해서체의 돈의문 편액글씨가 조일회의 작품이 아니고 조윤덕(1677∼1740년)의글씨라는 반론이 나왔다.조윤덕은 조일회의 재종손으로 남남도 아닌 가까운 친족.이같은 반론은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에 사는 조윤덕의 9대손 연수(51)씨가 제기하고 나섰다.조윤덕을 제치고 조일회가 등장한 동기는 규장각이 필사본 「동국여지비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조연수씨의 주장이다. 규장각이 지난 1955년 「동국여지비고」필사본을 옮길 때 사용한 원본은 고종시대 (1864∼1907년)에 편찬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 원본 「동국여지비고」에는 조일회가 썼다는 기록은 물론 조윤덕의 작품이라는 설명도 없다.그렇다면 필사본에 조일회가 적혀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이는 규장각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원본을 가지고 필사본을 만들 당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조일회의 이름을 써넣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돈의문 편액이 조윤덕의 글씨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다른 몇몇 자료가 전해내려오고 있다.1767년(영조 43년)에 제작한 「창령조씨정해대동보」와 1779년(정조 3년) 조석중이 지은 「창령조씨지선록」이 그것이다.조상의 내력과 명망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지은 지선록은 조윤덕에 대해 「그 글씨가 세상에 이름이 높아 돈의문 편액을 썼다」고 기록했다.반면 이들 두 자료에는 돈의문과 관련한 조일회의 이야기는 들어있지 않다. 그리고 「창녕조씨정해대동보」(족보)에 따르면 조일회는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영암에 묻혔으나,조윤덕은 서울 태생으로 묘소가 분당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이는 조윤덕이 서울에 살았다는 증거인 동시에 돈의문 편액을 그의 작품으로 보는데 큰 도움을 주는 자료라는 것이다.조윤덕은 벼슬을 마다하고 풍류와 서도를 즐긴 인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연을 추적한 후손 조연수씨는 『두 어른이 다 문중의 조상이지만,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의 정도라는 관점에서 사실을 사실대로 가리려했다』고 말했다.
  • 설연휴/가족과 함께 민속놀이를

    ◎고궁·민속촌등서 2월1일까지 다채로운 행사/고궁/윷놀이·널뛰기 등 놀이마당 마련/민속촌/송파산대놀이 등 전통예술 공연/잠실 석촌호수선 팽이치기 등 전통놀이 다섯마당 설날인 31일을 전후해 민속놀이와 축제등 각종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각 고궁이 관람객들을 위해 개방되고 민속놀이 마당이 마련돼 찾는이들이 자유롭게 전통놀이들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런가하면 잠실 석촌호수에서는 민속 대축제가 열리기도 한다.또 한국민속촌에서는 내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공연과 놀이대회도 다채롭게 마련될 예정이다. 문화체육부는 29일부터 2월1일까지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종묘등 5개궁과 12개 능·원을 개방하고 이 가운데 창경궁과 덕수궁·경복궁에는 민속놀이 실습장을 마련키로 했다. 이 기간동안 덕수궁 함녕전부근과 창경궁 간천대,경복궁 향언지부근에는 윷놀이,널뛰기,제기차기,투호.팽이치기등을 할 수 있는 실습장이 개설돼 관람객들이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각종 민속놀이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된다.이와 함께 정릉 서오릉서삼릉 광릉 동구릉 태강릉 홍릉 사릉 헌인릉 선정릉 육릉 영릉 장릉 등 서울과 주변 12개지구 능·원도 개방돼 인근 주민들이 연휴동안 이용할 수 있다. 한편 국립민속박물관측도 지난 26일부터 2월15일까지 「설맞이 전통민속놀이마당」을 박물관 광장에 설치,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널뛰기 팽이 윷 제기차기 줄넘기 굴렁쇠 연 투호를 즐길 수 있는 장소와 함께 씨름판도 마련돼 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한국민속촌이 설날인 31일과 2월1일 이틀동안 각각 준비하는 「95돼지해 설 민속 대축제」와 「설날맞이 전통문화 한마당」도 수도권에 살고 있는 주민이나 귀성객들에게 설 분위기를 갖게 해주는 행사로 눈길을 끈다. 서울시와 민학회가 후원하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서울놀이마당 민속대축제는 그동안 잠실 석촌호수 서울놀이마당에서 단순히 보여주기식 행사로 펼쳐졌던 것에서 탈피,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로 바뀐다. 서울놀이마당 2천5백평 부지에서 윷놀이 널뛰기 투호놀이 제기차기 팽이치기 등 전통놀이 다섯마당이 동시에 펼쳐지며 놀이 중간중간 전통예술공연이 펼쳐진다.전통 놀이마당 주변에는 토정비결 엿장사 국밥장사등의 전통 장거리도 재현된다. 전통예술공연은 설날 비나리의 명인인 김복섭옹이 사물놀이패와 함께 비나리굿을 재현하며 남사당패를 초청해 흥겨운 풍물로 마당밟기도 한다.둘째날에는 송파산대놀이팀이 흥겨운 마당놀이,평택농악팀이 판굿을 벌인다. 한국민속촌이 마련하는 「설날맞이 전통문화 한마당」도 현장감있는 전통문화 소개를 위한 특별행사. 송파산대놀이 농악 지신밟기 서낭제 고사 등 민속촌 자체공연외에 송파산대놀이 북청사자놀음을 초청공연으로 보여주며 매일 상오 11시부터 하오 3시까지 팔씨름 제기차기 윷놀이등 민속놀이대회를 열기도 한다.
  • 「타임캡슐」 오늘 묻힌다/하오3시 필동 남산골공원 광장에 매설

    ◎창덕궁∼돈화문로∼종묘공원 어가행렬도 「서울 천년 타임캡슐」이 정도 6백년 기념일인 29일 하오 매설된다. 서울 정도 6백년 기념사업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타임캡슐 매설은 오늘날의 시민생활 및 서울의 모습을 대표할 수 있는 문물 6백점을 캡슐에 담아 4백년 뒤인 서울 정도 1천년에 후손에게 유산으로 전하는 사업이다. 타임캡슐 매설은 하오 3시 중구 필동 남산골공원 광장 1천5백여평에서 시민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시민 공모를 통해 채택된 캡슐광장은 분화구 모양으로 시간의 영속성을 의미하고 있다. 캡슐은 보신각종을 본뜬 모형이며 실물·축소모형·마이크로필름·영상기록 형태로 수장된다.실물은 한복·유아복 등 섬유류,신용카드·전화카드·식기세트 등 화학제품류,서울 2000년 도시계획·토지매각제도·농수산물유통구조·교통지도 등 기록류,수지침·토큰 등 금속류,전자제품류,씨앗류,약품류 등 2백50개 품목이 보관된다. 또 식생활관습·일간지·공직자재산등록양식·낙찰계·신장기증자명단·입시참고서·과외실태·대형교통사고·한강교량설계도·재개발사업·유행농담집·북한핵·올해 히트상품 등 1백4개 품목은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들어져 수장된다. 이밖에 경찰관복장·양식·중식·개소주·가정의례·복덕방·서울야경·대학로·오렌지족·서편제 등 2백46개 품목은 영상자료로 보관된다. 29일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문무 백관들과 함께 입성한지 6백돌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서울에서는 서울의 과거를 돌아보는 조선조 한양입성 어가행렬이 하오 2시부터 3시30분까지 창덕궁∼돈화문로∼종묘시민공원간 1.2㎞에서 화려하게 재현된다. 한편 이날부터 12월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천도과정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삶을 되돌아본 뮤지컬 「서울사람들」이 공연된다.
  • 정자:하(서울 6백년 만상:58)

    ◎창덕궁 후원엔 아직도 15개 정자 그대로/부용정·관람정 등 다양한 형태로 보존/부암동 석파정,대원군 별장으로 유명 정자의 보고인 창덕궁 후원에는 지금도 관람정·애련정·승재정·능허정·청심정등 무려 15개의 정자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자리잡고 있다.방형·육각형·다각형·부채 모양의 다양한 정자는 연못,그리고 누각등을 배경으로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한다. 전체면적이 약 9만여평에 이르는 창덕궁 후원은 북악에서 내려뻗은 완만한 언덕과 여기저기에 맑은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어 연못과 정자를 꾸미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태종때 창건됐다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창덕궁에 이처럼 많은 정자가 지어진 것은 후원의 대규모 조성공사가 벌어진 광해군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원 중심에 있는 연못인 부용지 남쪽에는 사방에 창살문까지 꾸며진 부용정이 마치 물위에 뜬 형상으로 있고 북쪽에는 연회장으로 유명한 주합루가 자리잡고 있다.또 한반도 모양의 연못 반도지 동쪽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부채꼴형 정자인 관람정이,남쪽에는 육모지붕의 존덕정이,연못 반대편 언덕위엔 마치 절간같은 승재정이 각각 위치하고 있다. 임금들이 산책을 하는 도중 들러 정사로 복잡해진 심신을 식히거나 대소신료와 외부 손님을 불러들여 연회를 베풀기에 정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장소였다.또한 조정 중신들이 한가한 시간을 틈내 독서를 하거나 강론을 펴는 곳으로도 활용되었다. 그러나 조선말기에 이르러서는 이등박문등 일본의 대신들을 접견하고 향응을 제공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자하문터널을 지나 세검정으로 가는 길목인 부암동동사무소에 인접한 종로구 부암동 316의1에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유명한 석파정이 있었다.석파정은 본래 철종때의 권신인 김흥근의 별장이었는데 대원군이 이 별장을 빼앗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철종이 승하한 뒤 자신의 아들인 고종의 등극으로 정권을 장악하게 된 대원군은 그동안 수모를 주었던 안동 김씨 세력을 제거하는데 골몰했으며 특히 그 권문의 한 사람인 김흥근을 미워했다.대원군은 주변 숲이 울창하고 계곡의 물이 맑아 그야말로 별천지인 석파정을 김흥근으로부터 빼앗기로 하고 꾀를 냈다. 일단 자신의 부인 병요양을 핑계로 임시로 석파정을 빌려쓰던 대원군은 어느날 『대궐에만 갇혀 계시니 좀 갑갑하시겠냐』며 고종을 석파정으로 초청했다.고종이 도착한뒤 저녁 무렵이 되자 대원군은 대전 내시를 통해 상감께서 오늘밤 이곳에서 유숙하기로 했다는 담화문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국왕이 한번 유숙한 곳은 민간인의 소유를 금하는 국법을 이용해 김흥근으로 하여금 석파정을 포기케 하려는 의도였다. 이런 사연을 지닌 석파정은 대원군 사후에도 계속 왕실에 세습돼 오다 일제때는 총독부 소유로 변했으며 6·25 직후에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 터를 잡기도 했다. 지금 석파정에서 세검정쪽으로 2백m 내려간 홍지동 125에는 옛날 석파정의 일부였다가 떨어져 나온,「대원군별장」으로 불리는 사랑채 하나가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다.석파정은 서울시 지정문화재 26호로,대원군별장은 23호로 지정돼 개인들이 관리하고 있다.
  • 세계문화유산(외언내언)

    남태평양의 발리섬을 찾아 본 한국인들은 『왜 제주도가 발리섬 만큼 유명한 세계적 관광지가 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영화「남태평양」으로 유명해진 발리섬 보다 우리의 제주도가 훨씬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은 자연의 경우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에도 존재한다.세계적으로 이름난 문화유산에 비해 우리의 문화유산이 결코 뒤처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화유산에 대한 세계의 인지도는 매우 낮다. 그런점에서 문화체육부가 오는 2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석굴암과 팔만대장경 및 종묘를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보존을 위한 국제협약」에 따라 72년 설립된 기구로 회원국이 신청하는 각국의 문화 및 자연유산을 세계유산으로 공표하고 각종 간행물을 통해 전세계에 소개하며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이 위원회에 등록된 세계유산은 95개국의 4백11개.문화유산 3백5개,자연유산 90개,혼합유산 16개다.우주선에서 볼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인공구조물이라는 중국의 만리장성,세계7대 불가사의중 하나로 꼽히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사원,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등이 그속에 포함돼 있다.92년 유네스코 협약에 가입한 일본도 4개의 유산(문화2개,자연2개)을 등록시켰는데 88년에 가입한 우리는 이제야 처음 등록신청을 하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려면 ▲독특한 예술적 업적,즉 창조적인 재능의 걸작품을 대표할것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것 ▲지극히 희귀하거나 아주 오래된것등 까다로운 여러 기준을 충족시켜야만 한다.오는 12월에 있을 심의에서 우리의 3개 문화재가 등록되면 창덕궁·수원성곽·무녕왕릉등 5개의 문화재와 설악산 한라산등 자연도 세계유산으로 등록신청되리라 한다.늦었지만 좋은 결과 있기 바란다.
  • 광복절 49돌 기념행사/“재미있고 다채롭게”/범국민 축제로 유도

    ◎인기 체육·연예인 경축식 초청/특별 문화행사 다양하게 준비/글짓기·그림그리기·웅변대회도 열기로 올해 제49주년 광복절 행사는 되도록 많은 국민이 참여하고 관심을 갖도록 하자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정부는 광복 5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한해 내내 국가적 행사를 벌일 계획을 짜고 있다.올해는 그에 앞서 국민들의 관심을 고조시킬 필요가 있어 광복절 행사를 다채롭게 가지기로 한 것이다. 가장 특색있는 것은 15일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거행되는 경축식이다.경축식이라면 흔히 딱딱하고 의례적이라는 인상을 준다.올해는 거기에서 탈피,재미있게 행사를 꾸며 되도록 많은 시민이 TV를 통해서도 시청하게끔 유도한다는 방침이다.예년과 달리 일반인 5백명에게도 초청장을 발송,전체 참석규모를 1천6백명으로 늘렸다. 경축식이 재미있으려면 역시 참석인사가 일반의 눈길을 끌어야 된다.이번에는 인기 체육인·연예인이 대거 경축식에 초청되었다.마라톤 영웅인 손기정옹과 황영조선수를 비롯,현정화(탁구)전병관(역도)김수령(양궁)선동렬 장종훈(야구)홍명보(축구)씨 등이 체육계 대표로 참석한다.연예계 인사로는 안성기 이덕화 강수연(영화배우)박인수 오현명(성악가)이미자 최희준(가수)박동진 성창순(국악인)김을동 박규채(탤런트)구봉서(희극인)씨 등이 포함되어 있다. 경축식장 분위기도 전통을 살려 새로 꾸미기로 했다.전통복식의 의장대(62명)와 취타대(37명)를 식장 주변에 배치해 경축분위기를 북돋울 계획이다.의장기도 황룡 백호 현무 주작 청룡을 나타내는 5방기와 12간지 가운데 상서로운 6가지 동물을 상징화한 6정기를 식장 좌우에 도열시키기로 했다. 광복절 경축식말고도 갖가지 문화행사를 다양하게 준비되고 있다.KBS의 「열린 음악회」 프로그램을 광복절 특집으로 꾸며 8·15전야에 방영한다.또 광복절을 전후해 전국에서 태극기와 무궁화 및 애국가를 소재로한 글짓기와 그림그리기·웅변대회를 연다.덕수궁 청소년음악제(20일)국립 중앙극장광장 판소리마당(20일)도 계획되고 있다.전국 주요 시·도청 앞에 홍보탑도 세웠다. 창덕궁을 제외한 고궁및 능원이 14∼16일 국민에게 무료로개방된다.광복회원들에게는 철도 버스의 무임승차와 국립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의 무료입장 혜택이 주어진다.
  • 덕수궁/궁궐:9(서울 6백년만상:46)

    ◎함녕전 화재후 1906년 중건/고종,수옥헌을 거처로… 을사조약 체결도/석조전은 최초 서양식건물… 9년걸려 지어 덕수궁은 궁의 이름을 고종의 존호를 따온데서 알 수있듯이 고종과는 떼 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종41년(1904년) 4월14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불이나 대한문과 대분의 전각이 불에 탔다.중신들은 고종에게 경복궁이나 창덕궁으로 옮길 것을 권했으나 경복궁의 민비 참변사건과 창덕궁에서 갑신정변·임오군란의 쓰라린 경험때문에 옮기기를 꺼려했다.이에 고종은 화마를 면한 수옥헌으로 거처를 옮기고 중건에 착공,2년뒤 완공을 보았다. 오늘날 남아 있는 모든 전각들은 이때 지어진 것들이다. 고종이 거처를 옮긴 수옥헌에서 이듬해 11월18일 이등박문을 앞세운 일제의 강압과 이완용의 매국행위로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됐다.또 고종이 헤이그밀사사건을 계획했던 곳이기도 하다.결국 이 사건으로 고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왕위를 이어받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길때까지 거처로 삼았다.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나 수옥헌은 정동교회를 조금지나 오른쪽으로 꺾어져 들어가 미대사관저와 인접한 곳에 있었다. 영국의 건축가 하딩이 설계,1900년에 공사에 착공한뒤 9년만에 완공한 석조전은 두개의 동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우리 나라 최최의 서양식 건물로 화강암으로 쌓아 올린 3층건물이다.임금의 거처로 쓰일 예정이었으나 완공을 못보고 국운이 기울어 빛을 보지 못했다. 석조전은 광복후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후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 지금은 궁중유물 전시관과 문화재관리국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덕수궁의 또하나의 현대식 유물은 석조전 앞의 청동 분수대.1937년 만들어진 이 분수대는 2차대전당시 일제에 의해 전시물자로 철거돼 콘크리트로 대체됐다가 지난 84년 복원됐다. 정문인 대한문을 들어서면 여느 궁궐과 마찬가지로 김천교라는 돌다리가 놓여있다.이 돌다리는 일제가 자동차 통행을 위해 흙으로 덮었두었으나 광복후 40년이 지나도록 존재자체를 모르다가 지난 86년에 비로소 복원되는 말못할 사연을 안고 있다. 일제에 의해축소되고 훼손된 덕수궁은 1960년대 들어 또한번 시련을 겪었다.태평로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담장을 허물어 대한문에서부터 태평로 파출소까지 철책을 두른 것이다. 이때 오늘날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으로 애용되고 있는 대한문과 문앞을 지키고 있는 두마리의 석수도 태평로의 도로가 넓혀진 만큼 뒤로 물러나는 설움을 받았다.이것도 모자라 서울시는 덕수궁을 시민공원으로 만든다는 발상아래 스케이트장을 만들고 상점과 음식점을 지었다.담장도 뒤로 물러 앉은 상태로 복원됐으나 궁궐내부는 옛모습을 많이 잃었다. 그러나 옛것과 새로운 것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덕수궁안에 들어서면 언제나 유유자적했던 선조들의 정취를 맛볼 수 있어 좋다. 비록 옛 모습이 훼손되기는 했어도 서울의 궁궐 가운데 가장 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덕수궁의 규모는 1만8천여평.크기는 작지만 각박한 현실에 쫓겨 사는 서울시민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휴식공간으로 서울의 새로운 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 덕수궁/월산대군사저… 임란후 궁으로/궁궐:8(서울6백년만상:45)

    ◎고종퇴위후 거주… 전기·전화 최초가설/일제 1933년 시민공원으로 개방 덕수궁은 궁궐이라기보다는 공원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등 현존하는 3대궁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우선 정문인 대한문을 들어서면 세종대왕동상이 앉아있고 분수대가 물을 뿜고 있으며 매점등 편의시설이 즐비하다.점심시간대에는 인근 회사원들에게 산책 코스로 각광을 받고있는 여느 도심공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단지 대한문을 필두로 중화전 즉조당 함녕전등 몇 안되는 전각들과 스피커를 통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우리 가락이 이곳이 궁궐이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을 뿐이다. 덕수궁은 원래 세조의 큰아들이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으나 정궁이 된 배경은 임진왜란과 을미사변등 국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임진왜란의 발발로 신의주까지 피란갔다 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경복궁과 창덕궁이 타버려 어쩔 수 없이 덕수궁에 거처를 정했다. 이때는 궁궐의 이름도 없이 그저 정릉동행궁이라 불리다 광해군이 즉위 3년만에 행궁의 이름을 경운궁이라고 지어 처음으로 궁궐의 반열에 섰다.그러나 불과 7년만에 인목대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광해군이 대비를 이곳에 유폐하면서부터 경운궁은 서궁으로 격하됐다. 광해군을 이어 덕수궁 즉조당에서 즉위한 인조는 경운궁을 명례궁으로 부르다 1623년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덕수궁은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2백70여 성상이 흐른 광무 원년(1897)을미사변의 와중에서 러시아공관으로 파천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이곳에 칩거하면서부터 궁의 이름에 고종의 존호를 사용,덕수궁이라고 불렀다. 고종이 이곳으로 옮긴뒤 두차례에 걸친 대규모 축조공사로 함녕전 보문각 선원전 중화전 관명전이 새롭게 태어나 궁의 모습이 일신됐다. 이때 덕수궁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대한문은 원래 중화전의 문인 대안문을 옮겨놓았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2년뒤에 중건,대한문으로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수궁은 서울의 다른 궁궐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됐다. 원래는 경희궁(옛 서울고자리)과 연결돼 있을 정도로 규모가 방대했으나 열강들의 각축이 벌어지면서 조금씩 떼어내 외국공관으로 사용케 해 규모가 줄어들다가 고종이 승하한뒤 빈 궁궐로 남아 있자 일제가 기다렸다는 듯이 궁의 서쪽 선원전을 통과하는 도로를 뚫은뒤 1933년 시민공원으로 개방했다. 지금의 대법원과 새문안길을 잇는 이 길이 바로 60∼70년대 서울의 연인들이 낭만을 즐겼던 「덕수궁 돌담길」이다. 일제는 도로 서쪽으로 떨어져 나간 궁궐의 전각들을 헐고 경기여고를,그리고 도로 동쪽 제사준비소터에 덕수국민학교를 세웠다.또 동쪽 언덕을 밀어내고 최초의 방송국인 경성방송국국을 지어 궁궐이 반쪽으로 줄어들었다. 광무10년(1902)궁내에 발전소가 완성돼 전기가 들어오고 궁내부전화가 설치되는등 신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기도 했던 덕수궁은 구한말 격동의 시기에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며 수많은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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