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창당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열차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이름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새로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친척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393
  • [사설] 국회, 타협의 정신 잊지 말아야

    7월 임시국회가 오늘부터 본격적인 의사 일정에 들어간다. 원 구성 갈등으로 파행을 거듭해 오다 21대 국회 임기 시작 한 달 보름 만에 정상화의 길에 들어선 것이지만 여러 현안을 두고 의견차가 커 파열음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22일부터 사흘간은 21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이 열린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피소 사실 유출과 서울시청 방조 의혹 등이 집중 추궁 대상이다.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의 실효성을 두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거취 문제도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문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 의혹 등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오늘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의 청문회를 비롯해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23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27일) 청문회도 여야 간 대결장이 될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위기에 처했다. 지난 17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문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전체 응답의 46%로 5월 넷째 주(65%) 이후 7주 연속 하락했다. 리얼미터의 7월 3주차 주중 잠정 집계도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51.7%를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율도 35.4%를 기록, 전주 대비 4.3% 포인트 하락한 반면 미래통합당은 1.4% 포인트 상승한 31.1%를 나타냈다. 양당 지지율 격차는 4.3% 포인트로, 통합당 창당 이후 처음으로 오차 범위 내로 좁혀졌다. 여당과 정부의 일방적 국정 운영에 대한 경고음이 켜진 셈이다. 21대 국회는 제20대의 구태를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크게 나아질 기미가 없다. 여당의 18개 상임위원장 독식, 야당 몫 국회부의장의 공석이 21대 국회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정부와 여당은 압도적 의석수(176석)를 등에 업고 원하는 대로 밀어붙이면 당장에는 국정 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듯 보이겠지만 야당의 반발과 함께 민심에서 멀어지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 대통령도 지난 16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 “20대 국회의 가장 큰 실패는 협치의 실패였다”면서 “새로운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야당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협치를 구체화하길 바란다. 여당은 국정 운영 과정에서 사과할 부분은 제대로 사과하고, 야당과의 타협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야당도 정부와 여당의 흠집내기 공세에만 주력할 게 아니라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는 등 ‘일하는 국회’로 답하길 바란다.
  • “배신한 中 더 조인다” “모욕 준 美 받아친다”

    “배신한 中 더 조인다” “모욕 준 美 받아친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 속에 있다’는 비유가 적절해 보인다. 두 나라가 수교한 뒤로 최악의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국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떠올리게 한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물러나면 양국 갈등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한 충돌은 피할 수 없다”는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중국은 어떤 나라일까.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에 미국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미중 각자의 관점에서 서로에 대한 속내를 들여다봤다.■“中 어떡하나”… 세계 최강대국 美의 속내 1971년 7월 9일 미국의 외교 전략가로 유명한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두 나라의 데탕트(긴장 완화)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일주일 뒤인 15일 리처드 닉슨(1913~1994) 미 대통령은 방송을 통해 키신저의 방중을 알리며 “중국 정부가 자신을 초청해 이를 수락했다”고 알렸다. 닉슨은 “7억 5000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참여 없이 세계 평화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5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2020년. 이제 수도 워싱턴에서 닉슨 행정부처럼 중국에 우호적 입장을 가진 이들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미중 수교는 소련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했다. 사회주의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1893~1976)은 1969년 중소 국경분쟁 당시 소련의 군사력을 체감하고 두려워했다. 닉슨 대통령도 자국의 패권에 도전하려는 소련을 봉쇄해야겠다고 느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공감대를 통해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가 구현됐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2001)도 양국의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고자 애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만 워싱턴이 미래를 정확히 내다볼 수 있었다면 굳이 베이징에 손을 내밀 필요가 없었다. 소련은 내부 모순 때문에 스스로 무너질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소련의 붕괴 뒤로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를 자처했다. 미국의 배려로 WTO에 가입해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우뚝 섰음에도 미국 주도 국제질서인 ‘팍스 아메리카나’를 거부하고 자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를 추구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아예 러시아와 손잡고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베이징에 대한 미국의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다.워싱턴은 공화당·민주당에 관계없이 중국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 집중하던 미국의 외교·군사정책을 아시아로 옮겨 중국을 견제하려는 ‘피봇 투 아시아’(아시아 중시)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외교 정책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력충돌을 불사하는 수준의 말 폭탄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89년 베이징에서 톈안먼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주도하며 대량살상 책임을 물었다. 중국은 톈안먼 관련자 일부를 석방하며 국제사회에 고개를 숙였다. 이달 1일부터 베이징은 서구 세계의 반대에도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을 강행했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서 톈안먼 사태 당시 수뇌부가 보여준 불안감이나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두 나라가 손을 잡은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워싱턴에는 ‘미국이 바란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인식이 퍼졌다”면서 “워싱턴의 현실주의는 베이징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한다”고 진단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美 어떡하나”… 세계 2위 경제대국 中의 속내 “인류의 4분의1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이 일어섰다. 다시는 (외세에) 모욕받지 않을 것이다.” 신중국(사회주의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 공산당 주석이 1949년 10월 1일 건국행사에서 이같이 선언한 지 71년이 지났다. 19세기부터 서구 열강의 혹독한 지배를 받은 중국은 이제 마오의 바람대로 누구도 모욕할 수 없는 대국으로 거듭났다. 미국 한 나라만 빼고 말이다.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2033년쯤 중국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내다본다. 이에 대해 일부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그간 미국은 자국 GDP의 40%에 근접하는 나라가 나타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너뜨렸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70~1990년대에 구소련과 일본, 독일 등이 미국의 군사 압박과 환율 재평가 요구를 버티지 못하고 패권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중국은 예외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재임하던 1995년만 해도 중국의 GDP(7360억 달러)는 미국(7조 6400억 달러)의 10%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던 2005년에는 20%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반기인 2015년에는 60%까지 뛰어올랐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 ‘중국 죽이기’가 시작됐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국가 부도 위기를 수습하느라 중국을 견제할 여력이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뒤늦게 중국을 압박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 올해 중국은 미국의 72%까지 추격할 전망이다.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불안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시진핑 국가주석 등 베이징 수뇌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개시하고 홍콩보안법 시행을 명분 삼아 여러 보복조치를 쏟아내는 행태를 ‘피할 수 없는 역사적 대결’로 이해한다. 미국산 농산물을 더 많이 사주거나 홍콩에 대한 자치권을 보장한다고 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국제질서 주도권인 패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1904~1997)이 제시한 ‘두 개의 100년’ 목표가 있다.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 샤오캉사회’(중진국)를 실현하고 신중국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다퉁사회’(선진국)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베이징 수뇌부가 전임 지도부의 유훈을 지키려면 미국과의 충돌을 피해선 안 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승리를 위해 ‘중국 때리기’를 정략적으로 활용하고 타협이 불가능한 대만 독립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모습은 분명 ‘외세의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 얻어맞더라도 모욕에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문 대통령 지지도 44.1% ‘조국 사태’ 이후 최저…여성·30대 폭락

    문 대통령 지지도 44.1% ‘조국 사태’ 이후 최저…여성·30대 폭락

    리얼미터 조사… 핵심 지지층 이탈 뚜렷 與 지지율 급락…‘박원순 성추행 의혹’ 영향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가장 낮은 44.1%를 기록했다. 특히 전직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이후 여성과 30대 지지층에서 지지율이 폭락했다. 당 지지율에 있어서도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처음으로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 文 지지율 4.6%p 하락…9개월 만에 최저부정 평가, 20주 만에 오차범위 밖 앞서 16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13∼15일에 전국 유권자 15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긍정 평가)는 전주(46.5%)보다 4.6%포인트 하락한 44.1%로 파악됐다. 이는 지난해 10월 2주차(41.4%)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당시는 조 전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한창이었다. 5월만 해도 6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던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20%p 가까이 빠졌다. 5월 3주째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62.0%였다.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는 전주보다 5.2%포인트 오른 51.7%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질렀다. 부정 평가 수치는 ‘조국 사태’가 정점에 이르렀던 지난해 11월 1주차(52.2%) 이후 가장 높다. 부정 평가와 긍정 평가의 차이는 7.6%포인트로 오차 범위 밖이다.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넘어선 것은 3월 2주차 이후 처음이다. 오차 범위 밖에서 앞지른 것은 2월 4주차 이후 20주 만이다. 리얼미터는 “긍정·부정평가가 교차할 때는 통상 오차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기간이 있는데, 이번에는 조정 기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부동산 정책 반발·인국공 사태 이어박원순 성추행 의혹 영향 크게 작용” 국정수행 지지도가 크게 하락한 것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반발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등으로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사 기간에 박 전 시장의 영결식과 박 전 시장 고소인 A씨의 기자회견(13일)이 있었고, 이번 사태에 관심이 큰 30대, 여성, 서울 등 지역·계층의 지지율 변동이 컸다는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실제 성별 지지도를 보면 여성의 긍정평가 하락폭(-7.9%p)이 남성(-1.3%p)보다 컸다. 부정 평가 증가 폭도 여성(9.5%p)이 남성(0.9%)을 압도했다. 이는 여권 출신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잇단 성범죄 연루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전 시장이 성범죄 연루 의혹이 제기된 직후 극단적 선택을 하기 이전에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여직원 성추행 의혹,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여비서 성폭행 등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되풀이 되고 있는 점이 결정적 이유로 보인다.특히 더불어민주당에서 박 전 시장 사건과 관련해 고소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아 피해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피해자’라는 용어 대신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써 ‘2차 가해’ 논란을 확산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연령대별로는 30대에서 긍정 평가가 전주보다 13.9%포인트 큰 폭으로 하락해 전체 지지도 하락을 이끌었다. 30대는 그동안 문 대통령에 대해 높은 지지율이 보여왔다. 이어 70대 이상(-7.0%p), 50대(-5.9%p), 40대(-2.1%p) 등의 순이었다. 부정 평가 상승폭도 30대가 16.1%p로 가장 컸다. 50대(7.6%p), 70대 이상(6.8%p), 20대(1.7%p) 등이 뒤를 이었다. 30대의 지지율 하락에는 부동산 대책과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 채용 논란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지역별로는 강원(-20.7%p), 제주(-14.4%p), 서울(-6.0%p), 대구·경북(-5.1%p), 경기·인천(-4.6%) 등에서 지지도가 크게 하락했다.민주 35.4% vs 통합 31.1% 오차범위 내…통합당 창당 이후 처음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35.4%, 미래통합당 31.1%, 정의당 5.8%, 국민의당 5.0%, 열린민주당 4.7%로 조사됐다. 민주당 지지도는 전주보다 4.3%포인트 내렸고, 통합당 지지도는 1.4%포인트 올랐다. 민주당과 통합당의 지지율 격차는 4.3%포인트로 오차 범위 안에 들어왔다. 두 당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 범위 내로 좁혀진 것은 통합당 창당 이후 처음이라고 리얼미터는 설명했다. TBS 의뢰로 진행된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2.5%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독립운동 좌우통합 앞장… 의회정치 주춧돌 놓은 ‘임정의 산파’

    독립운동 좌우통합 앞장… 의회정치 주춧돌 놓은 ‘임정의 산파’

    검사로 일하다 국치 후 독립운동가 변호인천서 13도 대표자대회… 한성정부 수립임시의정원 제도 개선·법률제정 등 주도 국무령으로 선출된 뒤 연립내각도 구성“가장 큰 죄악 분열, 가장 큰 공능은 결합”한국독립군 만들어 대전자령 등서 대승환국 후 좌우합작 노력… 심장천식 별세임시정부 및 임시의정원 출범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4월 국회도서관에서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임시정부 국회 격인 임시의정원 의장을 세 차례나 지낸 ‘임정의 산파’ 홍진의 흉상이었다. 임정의 입법부 의장과 행정부 수반을 지낸 인물은 선생이 유일하다. 이념과 방략, 지연에 따라 분열된 독립운동의 통합에 앞장선 점은 선생의 가장 큰 업적으로 칭송받는다. 1942년 10월 중국 충칭에서 임시의정원 제34차 정기의회가 열렸다. 이 의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김원봉의 조선혁명당 등 좌익세력이 임정에 참여한 것이다. 임정은 좌익 인사 21명을 의원으로 새로 선출했다. 의원 44명 중 37명이 참가해 의장을 선출했는데 선생이 33표라는 몰표를 얻었다. 선생은 좌우 어느 쪽에서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통합형 리더였다. 좌익진영에서는 “각 당파의 행(幸)이요 영광인 동시에 전 민족의 행이요 영광”이라고 환영했다.●임시의정원 의장 선출 때 좌익서도 ‘대환영’ 의정원은 처음으로 여야 공존 체제가 됐다. 전에 없던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중국이 광복군 활동을 규제하는 ‘광복군행동 9개 준승’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취소 방법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자 선생은 의장석에서 내려와 직접 논의에 참여했다. 외교적으로 푸는 게 좋겠다는 선생의 의견에 따라 임정이 나서서 중국이 ‘9개 준승’을 취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회의에서도 당파에 치우치지 않았다. 선생은 여당 소속 의장이면서도 국무위원 투표 방식을 무기명으로 하자는 야당 주장에 동의했다. 좌익진영의 정부 조직 참여를 수용하려고 여당을 탈당해 헌법을 고쳐 좌우연합정부를 구성했다. 홍진 선생은 1877년 8월 27일 서울 서소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다. 1898년 법관양성소를 졸업한 선생은 1905년부터 충북 충주에서 검사로 근무하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사직했다. 마음만 먹으면 변호사로 편히 살 수 있었던 길을 포기한 것이다. 검사로 있을 때 의병에 대한 논고를 거부한 것은 선생의 반일 의식이 남달랐음을 보여 준다. 이후 선생은 서울과 평양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충북 청주의 연락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됐다. 그것이 ‘한성임시정부’다. 각계 인사와 논의한 끝에 4월 2일 선생의 주도로 인천 만국공원에서 13도 대표자 대회를 열어 한성정부의 조직과 조각을 확정했다. 중국 상하이에서도 임시정부가 4월 11일 출범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더 지체할 수 없었던 선생은 담뱃갑과 성냥갑에 한성정부 조직안을 숨겨 상하이로 갔다. 상하이임시정부는 논의 끝에 한성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리어 선생은 밀정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망명 과정에서 도움을 준 황옥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평양에서 일제 경찰이면서 의열단을 도운 황옥과 친분관계를 맺었는데 그게 문제가 됐다. 선생은 임시의정원의 평의원으로서 독립공채 발행, 독립의연금 수합, 세금 징수 등을 제안해 시행하도록 했다. 7월부터는 임시의정원 법제위원장으로서 제도 개선과 법률 제정 등 근대적 법치의 틀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한편 연해주에서도 대한국민의회라는 임시정부가 설립됐는데 상하이임시정부와 통합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9월 11일 출범했다.●‘태평양회의’ 각국 대표에 독립청원서 발송 출범 직후부터 임정은 엄청난 분란에 휩싸였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이었다. 신채호는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우리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은 놈”이라며 비난했다. 비판이 잇따르자 이승만은 1921년 5월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연해주의 좌익 지도자 이동휘도 돌아갔다. 혼란의 와중에 선생은 임시의정원 3대 의장에 취임했다. 선생은 의정원 기능을 정상화시키고 조직을 정비해 나갔다. 그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태평양회의를 앞두고는 독립청원서를 각국 대표에게 발송하고 연설회 개최 등의 활동을 폈지만 좌절되자 의장직을 사직했다. 이즈음 창조파와 개조파로 분열된 임정을 통합하기 위한 국민대표회의는 답보를 거듭했다. 1922년 7월 선생은 안창호, 신익희 등 50여명과 시사책진회를 만들어 중재에 나섰지만 결과는 파국이었다. 상심한 선생은 “한갓 병적인 상태에서 편당적 감정이 농후하여 갈 뿐”이라며 1924년 4월 임정 법무총장직도 사임하고 장쑤성 쩐장에서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선생이 없는 사이에 이승만은 탄핵당하고 임정은 국무령제로 체제를 바꾸었다. 임시의정원은 1926년 7월 선생을 국무령으로 선출했다. 당파에 치우치지 않고 난국을 헤쳐나갈 인물로 높이 산 것이다. 은거하는 동안 선생은 ‘통분과 절망’이라는 글을 독립신문에 실어 새 길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선생은 우선 정당 조직에 나섰다. 당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는 이당치국(以黨治國)이었다. 안창호의 도움을 받아 지역 안배를 통한 연립내각도 구성했다. 선생은 “죄악 중에서 가장 큰 죄악은 분열이고 공능(功能) 중에서 가장 큰 공능은 결합”이라고 주장하며 민족대당(民族大黨) 결성을 주장했다. 유일당 운동은 만주로도 퍼져갔고 국내에서도 좌우가 뭉친 신간회가 결성됐다.●좌우합작에 의한 ‘민족유일당’ 건설 주도 선생은 유일당 운동에 직접 나서고자 1926년 12월 국무령을 사임했다. 홍남표 등 좌익 세력과 힘을 합쳐 1927년 4월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를 조직했다. 선생은 무장투쟁의 본거지인 만주로 떠났다. 신민·정의·참의 삼부를 돌아다니며 통일을 종용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선생은 창당 후 확대해 민족대당을 결성하는 방안을 시도했다. 1930년 7월 지린성에서 생육사(生育社)와 한족자치연합회를 모체로 만든 한국독립당이 그것이다.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염원하던 유일당의 모양새를 갖춘 정당이었다. 선생은 당 대표인 중앙집행위원장이 되고 당군으로 한국독립군을 편성, 총사령으로 이청천을 선임했다. 1931년 9월 일제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되자 한국독립군은 중국군과 연합해 쌍성보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일본군에 대승을 거두었다. 대전자령 전투는 청산리 대첩에 못지않은 승전이었다. 일제의 대대적인 공세에 한국독립당은 1933년 11월 본부를 난징으로 옮겼다. 이듬해 2월 선생은 한국혁명당과 합당해 신한독립당을, 나아가 1935년 7월에는 의열단·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대한독립당 등을 통합한 민족혁명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의열단계와 비의열단계의 파벌 싸움에 실망해 탈당했다. 임정은 1939년 5월 쓰촨성 치장에 도착했다. 선생은 여기에서 임시의정원 의장에 재선됐다가 임시정부의 국무위원(내무장)으로 선임되자 의장직을 사임했다. 국무위원으로 있을 때 선생은 중국 정부와 교섭해 광복군 창설에 전력을 기울였다. 임정은 충칭으로 이동한 직후인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는데 선생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선생은 창설식에서 이렇게 훈사(訓辭)를 했다. “용맹스럽게 나가라. 그리하여 왜놈을 무찌르고 우리의 옛 나라를 광복하여라.” 만주에서 당군(黨軍) 한국독립군을 창설했던 선생은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광복이 되고 1945년 12월 2일 선생은 환국했다. 선생은 또다시 좌우합작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더는 이어 갈 수 없었다. 심장천식으로 입원한 선생은 1946년 9월 9일 6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정부는 19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정의당 류호정·장혜영 조문 거부… 당원들 “탈당” 진통

    정의당 류호정·장혜영 조문 거부… 당원들 “탈당” 진통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조문을 둘러싸고 정의당이 진통을 겪고 있다. 일부 의원이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박 전 시장의 조문을 거부한다고 밝히자 친(親)더불어민주당 성향 당원들은 여기 반발하며 탈당을 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국면에서 조 전 장관을 두둔하다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았던 정의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보 야성’을 회복할지 주목된다. 정의당 소속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각각 10일과 11일 페이스북에 조문 거부 의사를 밝혔다. 류 의원은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피해 호소자를 향해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위로했다. 장 의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애도할 수 없다”며 “고인이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이 아무리 크고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 해도, 아직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후 두 의원의 페이스북 및 정의당 당원게시판에는 ‘조문 거부’에 동의할 수 없다며 탈당하겠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인신공격적 비난 댓글도 쏟아졌다. 노회찬 전 의원 사망 후 대거 입당한 친민주당 성향 당원들의 단체 행동으로 보인다. 최근 정의당 혁신위원회는 ‘민주당과 관계 설정’을 주요 의제로 논의 중이다. 혁신위는 오는 17일 밝힐 혁신안 가안에 ‘정의당만의 길을 간다’는 내용을 포함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혜연 전 부대표나, 정의당 창당 당시 유시민 작가를 앞세웠던 국민참여당계 등은 ‘독자 노선’에 반대하고 있다. 정 전 부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탈당하겠다는 분들의 글을 보면서 우리 당이 어떻게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참담함을 느낀다”며 “당의 스피커가 되는 청년 국회의원이 지금 상황의 원인이라는 것에 더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지난해 조 전 장관 사태 때 정의당을 탈당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탈당, 말릴 필요 없다. 원래 민주당에 갈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정의당에 와 있었던 것뿐”이라며 “이참에 진보정당으로서 제 색깔을 뚜렷하게 하고, 진보 성향 당원을 새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또’ 탈당사태 정의당...‘민주당 2중대’ 이번엔 벗을까

    ‘또’ 탈당사태 정의당...‘민주당 2중대’ 이번엔 벗을까

    친민주 성향 당원 반발 이어졌던 정의박원순 조문 관련 다시 한 번 탈당러시이번에는 민주당2중대 벗어날지 관심정의당이 성추행 혐의가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조문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일부 의원이 내 당내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친민주당 성향 당원들이 정의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박 시장 조문과 관련한 의견을 내놓자 일제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조국 전 장관 청문회 국면 당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정의당이,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정의당 소속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각각 10일과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원순 시장 조문과 관련한 의견을 냈다. 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여성을 향해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위로했다. 장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애도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고인이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이 아무리 크고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 해도, 아직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후 류 의원과 장 의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비난하는 댓글로 가득찬 상황이다. SNS의 댓글에는 인신공격적인 내용으로 도배됐다. 이 같은 현상은 고 노회찬 전 의원 사망 후 대거 입당한 친민주당 성향 의원들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들은 고 노 전 의원의 후원회장이었던 조 전 장관에 대한 애정으로 정의당에 입당했다. 이런 이유로 정의당이 민주당에 반대되는 입장을 이야기하면 ‘탈당하겠다’, ‘대표 사퇴하라’ 등의 언급을 이어왔다. 정의당 혁신위에서도 이 같은 사태에서 벗어나고자 ‘정치노선 혁신’을 주요 의제로 논의하고 있다. 12일 정의당 혁신위 관계자에 따르면 17일 밝힐 혁신안 가안을 통해 ‘정의다은 정의당의 길을 가겠다’고 밝힐 예정이다. 물론 이 같은 노선에 반대하는 당내 세력도 존재한다. 정혜연 전 부대표나 정의당 창당 당시 유시민 작가를 앞세웠던 참여계 등이 대표적이다. 정 전 부대표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부끄럽기에, 탈당하는 당원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그래서 더 탈당하시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언급했다. 정의당이 반대 목소리를 뚫고 정의당만의 혁신안을 만들 수 있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쏠린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서울광장] 윤석열,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윤석열,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박록삼 논설위원

    1961년 5월 18일 전두환 대위를 비롯한 200여 젊은 장교들은 육사생도 800명을 이끌고 시가행진에 나섰다. 전두환 대위가 육사 교장인 강영훈 중장을 겁박해 만든 결과물이었다. 서울 동대문을 지나 남대문, 시청까지 이어진 ‘5·16 쿠데타 지지 데모’였다. 한국전쟁 휴전을 선언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시기 이들의 늠름한 모습을 본 시민들은 영문이야 몰랐지만 절로 박수를 쳤고, 이는 마치 민심이 박정희의 쿠데타에 우호적인 듯 비쳐졌으며, 미국 CIA보고서에도 그렇게 작성됐다. 육사생도들의 시가행진은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전두환은 19년 뒤인 1980년 5월 18일 광주 시민의 피를 뒤집어쓰며 12·12 쿠데타를 완성했다. 박정희에 이어 한국 역사상 두 번째 헌정 질서 문란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1980년 광주 이후로 4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 사회에 쿠데타는 없었다. 특히 1987년 이래로 민주주의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동안 설령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갈등할지언정 모두 법체계와 질서를 존중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지난 2일 추미애 법무장관이 검찰청법 8조에 근거해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윤 총장은 담대한 선택을 했다. 긴급하게 전국검사장회의를 열었다. 법적 근거도, 효력도 없는 임의기구이지만, 여기에서 법무장관의 수사지휘를 받을지 말지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다. 한자리에 모여 회의한 것도 아니고 고검장, 지방 검사장, 수도권 검사장 등으로 나눠 진행했다. ‘윤총장파’와 ‘비(非)윤총장파’ 사이에서 혹시라도 적전분열이 일어나는 상황을 막겠다는 의도로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대검은 며칠이 지난 뒤 ‘법무장관의 수사 지휘는 부당하고, 특임검사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는 검사장 회의 결과를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에게 각각 보고했다. 대위들을 앞세워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인받은 박정희 소장처럼 윤 총장 역시 검사장들을 앞세워 정당성을 획득하려고 한 것은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정치 활동 이력이야 전혀 없지만, 최근 윤 총장이 자신이 손에 쥔 권력을 활용하는 능력이나 자신의 측근들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챙기고 보호하는 모습 등을 보면 ‘정치 9단급’ 계파 보스를 방불케 한다. 치고 빠지는 타이밍 포착 능력도, 아내·장모 등 가족들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나 궁지에 몰린 순간 이를 업어치기하는 국면 전환 능력도, 언론을 쥐락펴락하며 교묘히 활용하는 능수능란함도 어지간한 정치인은 흉내 내기도 힘든 노회한 정치력이다. 게다가 법무부 소속 외청임에도 마치 별도의 독립된 기구, 혹은 정치권의 한 정당인 양 법무장관과 맞서거나 청와대와 맞서는 데 주저함이 없는 모습은 이미 한 정당의 대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박상기 전 법무장관을 허수아비로 만들었고, 조국 전 법무장관을 끝내 낙마시켰고, 추 법무장관의 아들 군대 휴가 미복귀 의혹 사건을 수사하며 또 다른 파워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그가 지난달 말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0.1%를 얻으며 이낙연 전 총리, 이재명 경기지사에 이어 일약 3위로 올라선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때마침 미래통합당이 절박하다.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19일 초선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외식사업가 백종원씨를 대선후보로 거명한 해프닝도 통합당의 지리멸렬한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툭하면 아스팔트로 달려가 극우세력들과 손을 맞잡는 것 외에는 정책적 대안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는, 그래서 최소한의 경쟁력을 갖춘 대선후보가 전무한 통합당으로서는 윤 총장의 부상이 반가운 일일 게다. 다만 아쉽게도 윤 총장에게 이를 부득부득 가는 이들이 바글대는 통합당이라 합류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현대 정치사 속 제3후보는 늘 실패했다고 하지만 윤 총장은 다를 수도 있다. 예컨대 ‘검찰권익당’을 직접 창당한 뒤 대선후보가 되는 것도 방법이다. 위선과 거짓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반대, 검경수사권 조정 반대를 정치적 목표로 내걸고, ‘정의사회 구현’과 같은 강령을 선포한다면 동의하는 국민들도 없진 않을 것 같다. 전현직 검사들로 구성된 가칭 ‘검찰당’ 같은 정당을 창당해 진짜 정치에 뛰어드는 것이 더 떳떳한 일이리라. 야당 정치인 윤석열, 여당으로서는 제일 부담스러운 2022년 대선 구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youngtan@seoul.co.kr
  • 고이케 도쿄도지사 연임… 우클릭 세진다

    고이케 도쿄도지사 연임… 우클릭 세진다

    고이케 유리코(68) 일본 도쿄도지사가 인구 1400만명의 거대 도시를 앞으로 4년간 더 이끌어 가게 됐다. 일본 수도 행정의 보수우경화 색채가 한층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고이케 지사는 5일 치러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 4년간의 도쿄 대개혁이 높이 평가받았다. 앞으로 코로나19의 2차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번 선거에는 역대 가장 많은 22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나 고이케 지사의 적수는 없었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공명당은 직접 후보를 내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고이케 지사를 지원했다. 고이케 지사에게 맞설 만한 후보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력(이집트 카이로대 졸업) 위조 의혹의 구체적인 내용과 사람 됨됨이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여러 사례가 폭로됐으나 대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방송 앵커 등을 거쳐 1992년 일본신당 소속으로 정계에 발을 들인 그는 여러 번의 당적 변경을 거쳐 자민당에 입당, 2007년 첫 여성 방위상을 지냈다. 2016년 아베 신조 총리와의 불화 끝에 자민당을 탈당해 치른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처음 당선됐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은 고이케 지사에게 순풍이 됐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던 중앙정부의 아베 총리보다 더 능숙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평가를 유권자들로부터 받았다. 재선 성공에 따라 과거사 부정 등 그의 우경화 행보는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최대 우익단체 ‘일본회의’ 소속인 그는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도 참배하는 인물이다. 그는 역대 모든 지사가 해 왔던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대한 추도문 전달을 2017년부터 중단했다. 이에 더해 올해에는 9월 1일 추도식 행사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7년 중의원 선거 때에는 ‘희망의 당’이라는 이름의 신당을 창당하면서 입당 희망자에게 ‘외국인 참정권 부여에 반대한다’는 협정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최연소 구의원 출신…‘풀뿌리 정치’ 앞장, 매달 택시운전사로 뛰며 마포 민심 훑어

    최연소 구의원 출신…‘풀뿌리 정치’ 앞장, 매달 택시운전사로 뛰며 마포 민심 훑어

    ‘노’(No)를 모르는 의지의 한국인이다. 하면 된다는 일념과 도전정신은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소년가장 출신이다. 1962년 전북 고창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몰락하면서 맏형으로서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기 위해 중1 때 학업을 포기하고 봉제공장에서 재봉틀을 돌리며 생활 전선에서 뛰었다. 14세 때 가족들이 성산동으로 이주하면서 마포와 인연을 맺었다. 그의 어려운 사정을 아는 동사무소 공무원이 가정 형편에 의한 입영 연기 제도를 알려줘 군 면제를 받는 과정을 통해 “공무원 한 사람의 힘이 서민 한 가정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생활정치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새벽에는 신문배달을, 낮에는 재봉틀을 돌리면서도 매일 신문을 읽으며 한자 공부에 매진했다. 중·고교 학력을 검정고시로 땄으며 오십줄에 방송대를 거쳐 지금은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최연소 구의원 출신으로 구청장 자리까지 올랐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평화민주당 청년당원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사소한 일도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에 1995년 구의원 출마 추천을 받아 32세의 나이에 최연소 구의원(2대)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당내 계파 투쟁 등 외적인 요인으로 재선하지 못했지만 꿈을 접지 않았다. 2010년 정청래(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무국장으로 8년간 지역을 다지면서 6대 구의원이 된 데 이어 9대 서울시의회 의원을 지냈다. 박홍섭 전임 구청장의 3선 연임 불출마로 구청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치열한 당내 경쟁을 뚫고 본선을 통과해 마포구 살림 총책임자가 됐다. 40년 넘게 마포에서 살면서 구의원, 시의원 등을 역임한 만큼 앞으로도 지역 구석구석을 챙기는 마포 전문가로 뛴다는 목표다. 취임 직후 오픈한 온오프라인 소통플랫폼인 ‘마포1번가’, 구민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무엇이든 상담창구’ 등을 운영하며 구민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불편을 해소하고 있다. 월 1회 택시운전사로 뛰며 민심을 훑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제나 경청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고 말한다. 구정 철학은 지주반정(砥柱反正)이다. 든든한 기둥이 바위처럼 버틴다면 세상은 바른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말처럼 구민이 주인 되는 마포, 더 큰 마포, 더 행복한 마포를 만들기 위해 신명을 다해 마포구민의 든든한 바위가 되겠다는 일념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약력 ▲1962년 전북 고창 출생 ▲중·고교 학력 검정고시,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정치행정리더십 재학 중 ▲2·9대 마포구의회 의원(1995~1998년, 2010~2014년) ▲서울시의원(2014~2018년) ▲민선 7기 마포구청장(2018년~현재) ▲부인 박용자(55)씨와 1남 1녀
  • [특별기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며

    [특별기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며

    셀수없이 많은 이들에게 스승으로 남는 분들이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그렇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제자를 계수하는 속좁은 직업꾼과 달리, 선생은 이미 피하고 싶어도 스스로 거대한 사상 공동체의 초석이었다. 선생의 글을 읽는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도반(道伴)을 자청한다.어설픈 너스레로 살아온 나 역시 그를 사숙해온 ‘나 홀로 제자’였다. 어제 갑자기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버스창에 스쳐 지나가듯, 며칠에 한번씩 존경하는 분들의 부음(訃音)을 듣지만, 선생의 부음은 너무 갑작스러워 눈물도 안 나왔다.김종철 선생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012년 4월 6일 ‘리얼리스트’에 선생님 인터뷰를 싣기로 해서 노지영 평론가와 함께 찾아 뵈면서였다. 도서출판 녹색평론, 달랑 방 두 칸의 작은 공간인데 왜 그리 큰 출판사로 보였는지. 영적인 눈으로 보면 물리적인 크기가 달리 보인다다. ‘4대강 재앙사건’과 ‘후쿠시마 사건’이라는 지리멸렬한 시대에, 선생의 표정은 어두웠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독일에서는 68혁명의 세대가 나중에 녹색당 창당으로 귀결되면서 녹색운동, 시민운동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전공투 세대가 대부분 대기업으로 들어가 버리면서 오늘날 독일과 일본의 차이가 생겨버렸지요. 일본이 보이는 ‘무책임의 체계’하고도 관계가 있을 겁니다.” 이명박 시대의 총선 전이었는데, 선생께서 지지하던 녹색당은 1석도 가망이 없었다. “지금처럼 계속 가면 도시는 장기 지속이 불가능하죠. 농업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밖에 안 되는데, 적어도 50%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안정된 사회가 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죠. 비정규직 문제도 농업인구를 늘리는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모여서 살면 농사가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혼자서 하려면 고달파지죠. 준비를 해야죠. 당장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시적 삶이 유기농 삶으로 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만들어야 되겠지요.” 선생의 표정은 곧 저물녘처럼 여전히 어두웠다. “두부 나오는 갈치 조림 잘 하는 괜찮은 집 있는데, 가실까?” 대화가 끝나고 김종철 발행인이 같이 막걸리나 하자고 하셨다. 막걸리를 권하시면서 그제야 선생은 예의 소리없는 미소를 자주 보이셨다. 내 주량을 금방 파악하시고, 막걸리 두 사발 이상 권하지 않으셨다. 두부를 자꾸 권하셨다. 내가 갈치 조림을 금방 먹자, 한 마리 더 시켜 주셨다. 생태계 얘기하다가 ‘나무’를 ‘나무님’이라 하셨다. 이후로 선생은 내게 반은 반말, 반은 경어로 대하셨다. 얼마 후 내게 부탁하셨다. 일본 여류 시인의 시집인데 꼭 ‘녹색평론’에서 내고 싶으니 판권을 알아봐 달라 하셨다. 이시무레 미치코(石牟禮道子)였던 거 같다. 알고 보니 일본에 있을 때 잠시 일을 도왔던 일본 출판사에서 판권을 갖고 있었다. 이 출판사에는 나는 ‘고은 시선집’을 일본어로 공역해 내고, 김명인 평론집, 신경림 시집, 황석영 소설 등을 여기서 냈다. 마침 한국을 방문한다는 출판사 대표에게 ‘녹색평론’이 한국에서 얼마나 중요한 출판사인지, 김종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설명했다. 인사동에서 두 분 자리를 마련했는데, 출판사 대표가 반술에 취했는지 고자세였다. 한국 작가들에게 깎듯하게 대하는 출판인인데, 왜 이러시나 싶었다. 통역하면서 대표의 말을 겸손한 말로 바꾸어 전했다. 찌는 여름밤, 모기까지 물어 짜증스러웠다. 선생은 기분 언찮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저작권을 받아내려 하셨다. 선생은 대나무처럼 꼿꼿하며서도 대나무 잎새처럼 유연하셨다. 꼿꼿함과 유연함의 절묘한 품성으로 그는 자신을 ‘책장사하는 사람’이라고 늘 낮추셨다. 이 분은 모든 것을 내려 놓으셨구나, 이 날 느꼈다. 선생의 태도를 시험해보려 했던 출판사 대표를 설득했고, 얼마후 이시무레 미치코 시집 ‘신들의 마을’이 번역되어 나왔다.이후에 내게 ‘녹색평론’에 글 쓰게 하셨고, 일본 문학이나 일본 현대시에 대해 가끔 전화 주셨다. 이후에 한번 더 내가 찾아 뵈었다. 그때 또 두부 나오고 갈치 조림이 괜찮은 그 집에 가서 막걸리와 함께 저녁을 들었다. 지난 2019년 4월에 대구 지역의 작가 후배인 김용락 시인의 시집 출판 식사 모임에 오셨다. 옛 제자를 만나 밝게 웃으시며 반가워 하셨다. 시대가 바뀌고 선생님 빈 표정에 웃음이 많고 즐겁게 말씀하셨다. 선생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한국 지성인들은 큰 그림을 그릴 줄 몰라요. 쓸데없는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버릴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큰 그림을 갖고 굵직하게 써야 해요. 지금 르포가 가장 필요한 문학 형태라고 봐요. 잡문이 중요해요. 세상은 잡풀이 주인이거든.” 쓸데없는 장식을 버린 그의 문장은 꾸밈없고 검박하다. 가볍고 쉽지만, 그 안에 사상은 진득하고 울림이 크다. 그의 강연은 아무 준비를 안 한 듯 허허로웠는데, 사상의 총량이 넘친다 할까. 익은 포도주의 넘치는 포도즙처럼 맛깔났다. 그의 강연은 느림으로 가득했고, 그 느림은 모든 빠름을 부끄럽게 했다. 생태운동을 하면서도 도시 안에서 사는 자신을 그는 자주 자책했다. ‘녹색평론’을 창간했던 1991년 11월 당시 더 큰 출판 운동과 영업을 하려면 서울로 옮겨야 했고, 전국에 녹색운동을 강연하려면 서울로 출판사를 옮겨야 했다. 도시와 농촌 격차가 사라져서 어디에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도시가 생태를 망쳐 놓고 있으니 오히려 도시에서 생태계 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도 선생은 자주 자신의 글과 삶이 다르다며 자책하곤 하셨다. 자책하면서도 선생은 스스로 ‘나무님’으로 사셨다. “병원 안 간지, 신체 검사 안 한지 삼십 년이 넘었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병든 지구가 아파하듯 그는 지구와 함께 아파했다. 지구의 고통은 얼마나 그를 괴롭히고 압도했을까.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 우리는 몰랐다. “곧 시스템이 붕괴됩니다. 정권을 잡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생명이냐? 죽음이냐? 전환이야? 자멸이냐? 그걸 걱정해야 할 시기입니다.” 선생이 늘 걱정하듯이,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음과 자멸을 체험하고 있다. 그의 예언을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했었다. 후학들 앞에서 잘 웃으셨지만 골목길을 돌아서는 선생의 뒷모습은 외로워 보였다. 빈소에는 선생을 스승으로 모셔온 단독자들이 많이 모였다. 더 오래 사셔서 더 귀한 글과 말을 남겨주셔야 하는데, 73세. 우리는 90세 이상으로 살아 글 써주시기를 바랐나 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선생의 ‘숙환’을 함께 아파했다. 자주 웃으셨기에 선생의 깊은 병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빈소에서 돌아와 선생의 책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모셨다. 선생의 글 읽기 모임을 만들어 이 정신을 배우고 이어야지. 다음 학기부터 수업 때 선생의 산문 읽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 뵐 때마다 책을 주시곤 했는데, 없는 책이 있다. 녹색평론사에서 낸 단행본을 더 구입했다. “소년 시절에는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로 시작하는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은 선생의 문학론 핵심이 다 들어 있다. 신동엽 시인이 우리 생태문학의 핵심이니 잘 연구하라고 권하셨다. “신동엽의 반(反)권위적이고 원시 반(反)봉건에 대한 몽상이랄까. 이것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 가지고 시인이 있는 거 아닙니까? 시인은 ‘현대에 사는 원시인이다’라는 얘기도 있듯이 삶의 원천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몽상하고 전달하는 것이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동엽은 전형적인, 순결한 시인이죠. ” 이 책에 실린 평론 ‘신동엽의 도가적 상상력’은 신동엽 연구하려는 이들에게 필독해야 할 명문이다. 스스로 “한국인이라면 이 책 정도는 읽어야 하는데”라며 말씀하셨다는 ‘근대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은 선생님 사상이 종합되어 있다. 선생은 제대로 된 세계인의 사상을 겸허하고 전했다. 블레이크, 디킨스, 매슈 아놀드, 리비스, 프란츠 파농, 이시무레 미치코 등 작가론이 담긴 『대지의 상상력』은 세계인과 연대하는 선생님의 비교문학적 연구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근대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 ‘대지의 상상력’. 이 세 권은 2학기 수업과 학회에서 초등학생처럼 문장 하나 하나 읽으며 강독해야겠다. 이 거대한 존재를 따를 길이 없다. 평론의 가치를 가르쳐 준 선생들 중 선생의 오롯한 글은 범접하기 어려운 경계에 있다. 그는 종교인들에게 ‘집단실천으로서의 하느님’, ‘나무님으로서의 하느님’을 제시했다. 그저 두부에 갈치 조림에 막걸리를 즐기시던 선생님 곁에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더 갔다면, 허탈하고 그립고 힘없이 무너진다. 거대한 산맥 하나가 사라진 큰 사건이다. 누가 선생의 빈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지.이 심야에 조용하게 불러봐요, 김종철 선생님 이제 씨앗으로 살아나실 거예요. 선생님 정신의 씨앗이 움트고 새싹이 오르기 시작할 거예요. 전국에 ‘녹색평론’ 독자 모임, 작가 후배들의 선생님 저서 읽기 모임 등 선생님 정신을 깊게 넓여 나갈 거예요. 선생님이 절망하시고 아파하시던 그 고통, 우리가 새기며 선생님 사상을 나누며 조금씩 실천할께요. 잊을 수 없어 선생님을 배웅하지 못해요. 떠나보내지 못해요. 선생님, 편히 쉬셔요. 이제부터 또다시 시작할께요.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시인)
  • 리커창과 ‘불화설’ 시진핑 “샤오캉 사회 건설“ 재차 강조

    리커창과 ‘불화설’ 시진핑 “샤오캉 사회 건설“ 재차 강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에도 자신의 핵심 정책인 샤오캉(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을 재차 강조했다. 경제 성장이 쉽지 않은 상황임에도 자신의 최대 치적이 될 정치적 목표에 매진해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10일 신화망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8일부터 이날까지 북서부의 닝샤 후이족 자치구를 시찰하며 이런 입장을 피력했다. 후이족은 튀르크족의 분파로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이다. 시 주석은 이번 시찰에서 자신의 발전 이념인 온중구진(안정 속 진전) 기조를 견지할 것을 주문하면서 샤오캉 사회 달성과 빈곤 탈퇴를 이룩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후이족 촌민집도 방문해 거실과 주방, 외양간 등을 살피며 취업 상황과 소득, 의료 등을 물어보는 등 빈곤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중국에는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1904~1997)이 제시한 ‘두 개의 100년’ 목표가 있다.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 샤오캉사회’(중진국)를 실현하고 신중국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다퉁사회’(선진국)를 건설하는 것이다. 올해가 바로 ‘2개의 100년’ 가운데 첫 번째 목표인 전면적 샤오캉사회 실현의 마지막 해다. 시 주석이 취임 당시 제시한 전면적 샤오캉사회의 기준은 2020년 GDP를 2010년의 두 배로 만드는 것인데, 이를 달성하려면 올해 중국은 최소 5.5%는 성장해야 한다.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거둔 터라 이 목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단순 수치로만 본다면 전면적 샤오캉사회 실현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이 미국과 함께 명실상부한 양대 강국(G2)으로 부상했고 1인당 GDP도 1만 달러(약 1225만원)로 올라서는 등 성과가 충분해 다른 지표들을 내세워 ‘전면적 샤오캉사회가 사실상 완성됐다’는 논리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시 주석이 닝샤 시찰에서 샤오캉 사회를 집중적으로 거론한 것은 최근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6억명의 월수입이 1000 위안(약 17만원)에 불과하다”고 말한 데 대한 보완 차원의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화권 언론에서 둘 간 불화설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 주석은 밝은 면을, 리 총리는 어두운 면을 부각하기로’ 역할을 분담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지금 이 시점에, 시진핑에겐 없고 리커창에겐 있는 것

    지금 이 시점에, 시진핑에겐 없고 리커창에겐 있는 것

    덩샤오핑의 ‘두 번째 100년 계획’ 길목코로나 여파로 성장률 제동 걸렸지만시 주석 “샤오캉사회 완성” 소리낼 듯리 총리 “6억명 월소득 고작 17만원”신냉전 속 현실자각… 솔직한 ‘자기반성’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두 달 넘게 연기돼 지난달 21~28일 열렸다. 양회는 가장 중요한 법률과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다. 중국 정부의 한 해 청사진을 확인할 수 있어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본다. 올해는 중국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을 앞둔 13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2016~2020년)의 마지막 해이자 ‘전면적 샤오캉사회’(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 달성을 약속한 시기다. 예년 같으면 양회에서 정부의 성과를 자축하고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홍보했지만 올해는 감염병 비상 사태를 강조하며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한 주민 불만 잠재우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2020년 양회를 결산하며 중국의 전망과 과제를 살펴봤다. 1일 신화망 등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매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가 함께 열린다. 이 둘을 합쳐서 양회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전인대는 중국 헌법상 최고 국가권력기관으로 우리나라의 국회와 비슷하다. 1954년 9월 처음 열렸다. 인민대표는 22개 성과 5개 자치구, 4개 직할시, 홍콩·마카오 특별행정구, 인민해방군 등에서 선출하며 3000명을 넘지 않는다. 정협은 중국 공산당의 정책 자문기구로 1949년 9월 출범했다. 공산당과 소수정당, 인민단체, 문화계·경제계 등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위원 2000여명으로 이뤄져 있다. 실권은 없지만 중국이 명목상이나마 다당제 국가라는 점을 알리고 신중국(사회주의 중국) 건립 때 생겨난 사회통합 정신을 이어 가려는 취지다. 전인대 대표와 정협 위원의 임기는 5년이다. 공산당이 5년에 한 번씩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열어 최고지도부를 선출하면 이듬해 3월 전인대도 이에 맞춰 새로 임기를 시작한다. 전인대와 정협은 1959년부터 같은 시기에 개최됐다. 1985년부터는 3월에 열리는 것이 관례가 됐다. ●코로나 여파에 전면적 샤오캉사회 불투명 이번 양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중국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한 해 경제성장 목표치를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은 양회에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한다. 이후 재정·통화 정책을 적절히 사용해 목표에 부합하는 결과를 도출한다. 지난해에는 GDP 성장률 목표를 6∼6.5% 구간으로 설정했고 실제로 6.1%를 달성했다. 하지만 올해는 바이러스 여파로 1분기 성장률이 -6.8%로 곤두박질쳤다.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지난달 22일 전인대 개막 업무보고에서 “세계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 때문에 성장률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상하는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2%로 물가상승률(3.5% 안팎)을 밑돈다.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부가 GDP 전망치를 밝히지 않은 것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치를 공개해 주민 동요가 커지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중국에는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1904~1997)이 제시한 ‘두 개의 100년’ 목표가 있다.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 샤오캉사회’(중진국)를 실현하고 신중국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다퉁사회’(선진국)를 건설하는 것이다. 올해가 바로 ‘2개의 100년’ 가운데 첫 번째 목표인 전면적 샤오캉사회 실현의 마지막 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시한 전면적 샤오캉사회의 기준은 2020년 GDP를 2010년의 두 배로 만드는 것인데, 이를 달성하려면 올해 중국은 최소 5.5%는 성장해야 한다.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거둔 터라 이 목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단순 수치로만 본다면 전면적 샤오캉사회 실현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이 미국과 함께 명실상부한 양대 강국(G2)으로 부상했고 1인당 GDP도 1만 달러(약 1225만원)로 올라서는 등 성과가 충분하다. 다른 지표들을 내세워 ‘전면적 샤오캉사회가 사실상 완성됐다’는 논리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시 주석은 이날 발간된 중국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에 발표한 기고를 통해 “우리는 샤오캉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목표를 기본적으로 실현했다”고 선언했다. 다만 리 총리는 시 주석과 달리 양회 내내 중국의 미래를 두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지난달 28일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에서 (소득 하위) 6억명의 월수입은 고작 1000위안(약 17만원)밖에 안 된다. 이 돈으로는 어지간한 도시에서 집을 빌리고 세를 내는 것조차 버겁다”고 토로했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최고지도자의 솔직한 ‘자기반성’이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생산 활동 중단으로 빈곤층이 다시 늘었다”면서 “고용이 최대의 민생”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예년 양회에서 ‘중국몽’이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성과 등을 설명하며 중국의 발전상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던 것과는 달라진 태도다. 감염병 사태로 인한 내부 불만과 국제사회에 부는 반중 정서 등을 감안한 ‘로키’(낮은 자세) 행보로 분석된다.●코로나로 인한 국제사회 반중정서 의식도 앞서 중국은 양회 개막 전인 지난 4월 중앙정치국 회의를 통해 ‘육보’라는 경기부양책을 제시했다. 주민 취업, 기본 민생, 기업 활동, 식량·에너지 안전, 산업공급망, 기초행정 업무 등 여섯 가지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감염병 확산으로 중국 경제가 마비되다시피 하자 대졸 취업자와 극빈층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에 올인(다걸기)해 주민들의 살림살이부터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다. 중국에서는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 대신 공산당은 경제성장과 소득 증대 등 가시적 결과물로 일당 독재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가 1929년 대공황에 비견되는 위기를 맞게 된 지금이야말로 차별화된 성과를 보여 줘야 할 때다. 하지만 이번 양회 발표만 놓고 볼 때 중국 역시 아직까지는 ‘돈풀기’ 말고는 이렇다 할 묘수를 찾지 못한 상태다. ●美 봉쇄 기정사실화… ‘장기항전’ 돌입 의지 중국은 ‘신냉전’으로 불리는 미중 갈등에 비교적 유화적 태도를 보였다. 리 총리는 “양국 간 갈등과 이견이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며 두 나라가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갈등을 줄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존심을 중시하는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잇따른 ‘중국 때리기’가 매우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시 주석이나 리 총리가 공식적으로 응전을 선언하면 미국과 사생결단을 치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쉽게 말해 미국을 이기거나 아니면 미국에 장렬히 패배하고 지도부가 물러나야 한다. 리 총리가 미국을 직접 비난하지 않은 것은 아직 미국과의 정면 승부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중국은 양회 마지막 날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켰다. 홍콩을 반환받은 뒤 약속한 ‘고도의 자치권’을 제약하는 조치라는 지적을 받는다. 전인대 업무보고에서도 대만과의 ‘평화통일’과 ‘92공식’(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해석은 각자 알아서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대만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도) 홍콩과 대만을 넘어 남중국해, 인도 히말라야산맥 국경 지역 등 영유권 분쟁지에서까지 장악력을 키우고 있다”고 관측했다. 미국의 중국 봉쇄를 기정사실화하고 ‘장기항전’에 돌입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중국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더 이상 미국의 지적재산을 도입하는 것이 어려워진 만큼 한국과 일본에 ‘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받겠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주펑 중국 난징대 교수 인터뷰를 인용해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감정이 이토록 비우호적이었던 적은 없었다”면서 “중국이 단기 이익을 위해 과도하게 움직인다면 ‘처참한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서울광장] 홍콩! 어느새 먹구름은 가득하고…/이지운 논설위원

    [서울광장] 홍콩! 어느새 먹구름은 가득하고…/이지운 논설위원

    2008년 5월 쓰촨(四川) 대지진의 현장을 떠나며 ‘다난흥방’(多亂興邦)을 주제로 칼럼을 썼다. ‘많은 어려움을 겪은 뒤 나라를 일으킬 자극을 받게 된다’고. 실로 당시 중국은 그러했다. 칼럼은 ‘국가의 재발견’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의 이름으로, 생명을 구하러 달려온 모습을, 모든 구성원이, 처음으로 확인한 현장이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국가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요인으로는 ‘공개성’을 꼽았다. ‘다난’(多亂)의 역사 가운데, 고통의 현장이 온 국민에게 그렇게 열렸던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그 효과는 더없이 극적이었다. 이 장면은 중국 현대사의 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번 열린 ‘개방의 문’이 다시 닫히지 않았듯, ‘공개’도 역행은 쉽지 않으리라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발견된 새로운 국가의 모습이 어떻게 진화·발전할 것인지 내내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2020년 중국 양회(兩會)의 1성(聲)은 홍콩이었다. 그리고 홍콩 말고는 없었다. 양회에 이렇게 뉴스가 빈약했던 적이 있었을까. 비전과 계획이 쏟아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해설과 전망이 뒤쫓기 바쁜 행사다. 세계가 궁금해하는 경제성장 예상치나 코로나19 이후 대책 같은 것은 내놓지도 않았다. 우악스럽기까지 한 미국의 압박에 대한 결기도 없었다. 아마 ‘홍콩’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양회가 홍콩으로 묻힌 게 아니다. 홍콩으로 덮어버렸다. 중국 지도부는 홍콩 문제를 베이징에 가져다 놓고 ‘내 손’으로 다루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반환받을 때부터 홍콩 정부를 유모 삼아 맡겼던 일이었다. 영국과의 약속도 있었거니와 세계는 홍콩이라는 렌즈를 통해 베이징과 중국 전체를 보려 했고, 베이징도 이 렌즈를 그렇게 활용했다. 게다가 홍콩에 이식된 ‘민주, 인권, 자유’라는 가치들은 너무 친서방적인 것들이어서 바로 현관 안으로 들이기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가치들은 베이징을 너무 신경 쓰이게 했다. 때로는 손톱 밑에 깊이 박힌 굵은 가시처럼 통증도 컸다. 그래도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근원적 가치’라는 너무 심각한 지점에 박힌 것이어서다. 손대기엔 위험했다. 베이징이 그 가시들을 뽑아냈다. 어떤 출혈과 후유증에도 이제는 주먹을 꽉 쥐어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 같다. 먼저 홍콩 주민들을 떠올렸을까? 본토 중국인들이 1차 대상이었을 것이다. 베이징은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해 ‘국가’를 새롭게 보여 주려 한 것 같다. 요즘 유행 중인 ‘국가의 귀환’(the return of the State)인 셈인데, 전형적인 ‘중식’(中式)이다. 주먹은 점점 또렷하게 보일 것이고,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해할 것이다. 미국과 세계는 좀더 심각하게 봐야 할지 모른다. “금융 중심지의 지위는 더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둥 협박 따위는 이제 호들갑 떠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화웨이 문제 정도는 이제 숱한 전장 가운데 하나쯤 될 수도 있다. 이전 같으면 난리가 났을 ‘위안화 기습 절하’ 같은 건 변변한 뉴스감도 되지 못한다. 한판 대결이 시작되면, 적어도 한동안은 ‘난타전’이다. 여기서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지 못할 때 미국은 ‘아시아로의 귀환’은커녕 뱃머리를 댈 항구를 구하기도 힘들어질 수 있다. 패자(覇者)가 신흥세력의 도발에 분명하고 확실하게 응징하지 못할 때는 패권이 위험해질 수 있다. 눈치 보던 주변국들이 패권을 패권으로 인정하지 않는 순간이 오면 새로운 정글이 펼쳐지는 법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인공섬을 만들고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동안 미국이 짐짓 눈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학자들은 진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대결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유는 두 나라 지도자들의 처지 때문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분위기도 크게 험악해졌지만, 국내 문제에는 견줄 게 못 된다. 중국인에게 2008년과 2020년의 국가는 너무도 달랐다. 산골 벽지에 파묻힌 ‘소수’를 구하러 사지로 달려온 국가를 봤던 기억과 감동이 뚜렷한데, 2020년의 중국은 ‘재발견’ 이전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2022년 시진핑의 3기 준비까지 이대로 갈 수는 없다. 미국의 지도자도 보통 다급한 게 아니다.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는 개인에게 사활의 문제이다. 그러니 피차 벼랑 끝 심정일 테고, 여기서 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손바닥만 한가 했던 먹구름은 어느새 머리 위를 덮었고, 뉴스에는 윤미향이 한가득이다. jj@seoul.co.kr2020
  • [사설] 30대 혁신위원장 선택한 정의당, 환골탈태 기대한다

    정의당이 정치 입문 7개월 된 30대 여성에게 대표 자리를 맡겼다. 정의당은 심상정 대표가 사실상 지난 총선의 부진을 책임지고 2021년 7월까지였던 당 대표직을 내려놓음에 따라 혁신위 체제로 돌입했으며, 장혜영 비례대표 당선자를 혁신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상당한 파격이다. 장 위원장은 오는 8월 말까지 당 쇄신과 지도부 교체 작업을 수행한다. 정의당은 이제 남은 100일가량 혁신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적극 추진했던 정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교섭단체 진입’까지 기대했으나 지역구 1석을 포함해 6석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었다. 전문가들은 “민주당과의 연대·공조에 치중해 왔다”거나 “새로운 담론으로 기성 정치를 깨우는 역할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조국 사태’ 때 “더불어민주당의 2중대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뼈아플 것이다.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겠으나,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장 위원장은 2011년 이른바 ‘SKY 자퇴 사건’의 주인공으로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중 명문대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이별 선언문’이란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했다. 30대, 여성, 짧은 정치경력 등은 한국 정치 풍토에서 ‘비주류’이다. 장 위원장은 여러모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면서도 “완전히 근본적인 차원에서 (혁신안을) 검토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임하고 있다”고 의지를 밝혔다. 장 위원장의 언급 중 “위기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도그마에 갇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태도”라는 시각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정의당이 대안 제시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새겨듣겠다고 했다. 장 위원장은 진보정당으로서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선을 재정립하고, 조직도 혁신하는 힘겨운 과제와 씨름해야 한다. 노동계와 여성, 다문화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지만 힘센’ 정의당으로 복귀해야 한다. 정의당으로부터 시작하는 혁신이 정치권 전체의 혁신으로 확산하길 기대한다.
  • ‘몽니’ 한국당 결국 소멸… 통합당과 합당 결정

    ‘몽니’ 한국당 결국 소멸… 통합당과 합당 결정

    독자노선행을 두고 ‘몽니’를 부리던 미래한국당이 26일 미래통합당과의 합당을 최종 의결하며 창당 4개월 만에 소멸 수순을 밟게 됐다. 27일 통합당 전국위원회에서 합당 안건을 최종 의결하면 21대 총선에서 거대정당이 띄운 비례위성정당은 모두 사라진다. 한국당은 이날 20대 국회의원·21대 당선자 합동총회와 지도부 최고위원회의를 잇따라 열어 합당을 위한 당내 절차를 모두 마쳤다. 한국당 의원·당선자들은 “한국당은 태어날 때부터 4·15 총선 후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이제 국민께 한 약속을 이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당초 이날 원유철 대표의 임기 연장을 위한 전당대회를 개최하려다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내 독자노선파는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설득과 양당 당선자들의 압박으로 결국 백기를 들었다. 한국당은 끝까지 ‘당 대 당’ 통합을 고집했지만 합당은 흡수통합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통합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임기 등을 결정하기 위해 열리는 27일 전국위에 비례정당 합당안도 상정할 계획이다. 합당안이 통과되면 수임기구 실무 협의를 거친 뒤 오는 29일까지 선거관리위원회 등록을 마칠 예정이다. 통합당 지도부는 이미 합당을 전제로 당무에 임하고 있다. 여야 원 구성 협상도 103석(통합당·한국당 당선자)을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상임위원장 배분은 여야가 11대 7로 정해져 있다”며 “합당을 전제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주 원내대표는 통합당 차원에서 진행하는 세비 반납 캠페인에 한국당 의원들도 동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5일 띄운 위안부태스크포스(TF)도 양당 당선자들을 섞어 구성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몽니’ 한국당 결국 소멸… 통합당과 합당 결정

    ‘몽니’ 한국당 결국 소멸… 통합당과 합당 결정

    독자노선행을 두고 ‘몽니’를 부리던 미래한국당이 26일 미래통합당과의 합당을 최종 의결하며 창당 4개월 만에 소멸 수순을 밟게 됐다. 27일 통합당 전국위원회에서 합당 안건을 최종 승인하면 21대 총선에서 거대정당이 띄운 비례위성정당은 모두 사라진다. 한국당은 이날 20대 국회의원·21대 당선자 총회와 지도부 최고위원회의를 잇따라 열어 합당을 위한 당내 절차를 모두 마쳤다. 한국당 의원·당선자들은 “한국당은 태어날 때부터 4·15 총선 후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이제 국민께 한 약속을 이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당초 이날 원유철 대표의 임기 연장을 위한 전당대회를 개최하려다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내 독자노선파는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설득과 양당 당선자들의 압박으로 결국 백기를 들었다. 한국당은 끝까지 ‘당 대 당’ 통합을 고집했지만 합당은 흡수통합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통합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임기 등을 결정하기 위해 열리는 27일 전국위에 비례정당 합당안도 상정할 계획이다. 합당안이 통과되면 실무 협의를 거친 뒤 오는 29일까지 선거관리위원회 등록을 마칠 예정이다. 통합당 지도부는 이미 합당을 전제로 당무에 임하고 있다. 여야의 원 구성 협상도 통합당·한국당 합당 103석을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야는 이를 기준으로 통합당에 상임위원장 7석을 배분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 원내대표는 통합당 차원에서 진행하는 세비 반납 캠페인에 한국당 의원들도 동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5일 띄운 위안부태스크포스(TF)도 양당 당선자들을 섞어 구성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몽니’ 부리던 미래한국당 결국 소멸

    ‘몽니’ 부리던 미래한국당 결국 소멸

    독자노선 버티던 한국당 결국 합당‘당대당’ 아닌 통합당에 흡수 형식독자노선행을 두고 ‘몽니’를 부리던 미래한국당이 26일 미래통합당과의 합당을 최종 의결하며 창당 4개월 만에 소멸 수순을 밟게 됐다. 27일 통합당 전국위원회에서 합당 안건을 최종 승인하면 21대 총선에서 거대정당이 띄운 비례위성정당은 모두 사라진다. 한국당은 이날 20대 국회의원·21대 당선자 총회와 지도부 최고위원회의를 잇따라 열어 합당을 위한 당내 절차를 모두 마쳤다. 한국당 의원·당선자들은 “한국당은 태어날 때부터 4·15 총선 후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이제 국민께 한 약속을 이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당초 이날 원유철 대표의 임기 연장을 위한 전당대회를 개최하려다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내 독자노선파는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설득과 양당 당선자들의 압박으로 결국 백기를 들었다. 한국당은 끝까지 ‘당 대 당’ 통합을 고집했지만 합당은 흡수통합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통합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임기 등을 결정하기 위해 열리는 27일 전국위에 비례정당 합당안도 상정할 계획이다. 합당안이 통과되면 실무 협의를 거친 뒤 오는 29일까지 선거관리위원회 등록을 마칠 예정이다. 통합당 지도부는 이미 합당을 전제로 당무에 임하고 있다. 여야의 원 구성 협상도 통합당·한국당 합당 103석을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야는 이를 기준으로 통합당에 상임위원장 7석을 배분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 원내대표는 통합당 차원에서 진행하는 세비 반납 캠페인에 한국당 의원들도 동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5일 띄운 위안부태스크포스(TF)도 양당 당선자들을 섞어 구성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코로나19가 샤오캉사회 완성 막았다’...中, 사상 첫 성장률 목표 미제시

    ‘코로나19가 샤오캉사회 완성 막았다’...中, 사상 첫 성장률 목표 미제시

    감염병 사태로 성장률 낮아져 올해 ‘전면적 샤오캉사회’ 불가능 무리한 목표치 제시하는 것보다 수치 제시 않는 게 낫다고 본 듯 “바이러스 확산 방지 성과” 자평...홍콩·대만 문제 강경노선 고수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개막한 가운데 양회 행사의 핵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렸다. 이날 전인대 업무보고에서 중국 정부는 1949년 신중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한 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내놓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6.8%에 달하는 등 대내외 여건이 극도로 나빠진 탓이다. 또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며 홍콩 의회를 대신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3차 연례회의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이런 계획을 밝혔다. 리 총리는 “올해는 경제 성장률 목표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코로나19 여파와 세계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성장률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경제 성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현재 중국은 국제 금융 시장의 급변, 일방주의와 보호무역주의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정학적 정치 위험도 비교적 높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해마다 양회에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한다. 그리고 한 해동안 재정·통화정책을 적절히 사용해 목표에 부합하는 결과를 도출해 왔다. 지난해에는 경제성장률 목표를 6∼6.5% 구간으로 설정했고 실제로 6.1%를 달성했다. 올해 초만 해도 중국이 6% 안팎의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였지만 코로나19 충격으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이 목표는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2%에 그칠 것으로 추산한다. 올해는 중국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둔 13차5개년 계획(2016~2020년)의 마지막 해로 ‘전면적 샤오캉사회’(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 달성을 약속한 시기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이 제시한 샤오캉사회의 기준은 2020년까지 GDP를 2010년의 두 배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올해 중국은 6% 가까이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명확한 경제 성장 목표치조차 제시하지 못하게 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치적이 될 ‘전면적 샤오캉사회 완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미 중국이 GDP 기준 세계 2위 국가로 올라섰고 1인당 GDP도 1만 달러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올해 경제 부진의 이유가 시 주석의 실정 탓은 아닌 만큼 그에 대한 책임론 등이 거론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 총리는 올해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적자 목표치를 국내총생산(GDP)의 3.6% 이상으로 높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8%에서 대폭 확대했다. 중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뒤로 재정적자 3% 돌파는 처음이다. 지방정부의 인프라 채권 발행액은 3조 7500억 위안(약 650조원)으로 지난해 2조 1500억 위안에서 대폭 확대했다. 재정적자에 포함하지 않는 중앙정부 특별채도 1조 위안(170조원) 발행하기로 했다. 이렇게 최소 4조 7500억 위안이 투입되는데, 이는 중국 역대 최대 경기부양 규모다. 소비자 물가는 3.5% 유지, 도시 실업률은 6% 안팎으로 설정하고 일자리 900만개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올해 대외 개방을 강화하고 대외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관심을 모았던 코로나19 사태에 대해서는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리 총리는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의 경제 사회에 큰 충격으로 왔다”면서 “하지만 시 주석의 지휘 아래 우한과 후베이의 보위전이 결정적인 성과를 거뒀고 전염병 저지전에서 중대한 전략적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중국 사회주의 제도, 국가 통치 체계는 매우 강한 생명력과 현저한 우월성을 갖고 있어 어떤 어려움과 위험도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시위 사태가 이어져온 홍콩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리커창 총리는 “홍콩과 마카오에 대해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지키되 국가 안보를 위한 법률 및 집행 체계를 만들어 이들 지역이 헌법상 책임을 다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올해 전인대에서는 양회 기간 ‘홍콩 안전 보호를 위한 법률 제도와 집행 기구 수립’ 초안에 대한 심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홍콩 정부는 2003년에도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홍콩 시민들이 반발해 법안을 취소한 바 있다. 이에 중국 중앙 정부가 직접 국가보안법 제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미국과 갈등을 빚는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대만의 분리주의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독립 추구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전인대는 회의 기간 3차례 전체회의를 연 뒤 28일 폐막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원칙·권한·명분없는 ‘한국당 버티기’… 보수 野 힘만 빠진다

    원유철 대표 임기 8월까지 연장 강행나서 사무처 노조 “합당 촉구” 당내 불만 커져 지체 땐 상임위 배분 등서 野에 불리 미래한국당이 원칙과 권한, 명분 없는 버티기로 미래통합당과의 합당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한국당 김기선 정책위의장은 21일 통합당 당선자 연찬회에 참석해 29일 전 합당은 불가하다는 공식 입장을 전했다. 한국당은 오는 26일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원유철 대표의 임기를 8월 말까지 연장하는 당헌 개정을 강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날 한국당 사무처 노동조합이 양당의 조속한 합당을 요구하며 당무 거부에 돌입하면서 지도부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지난 2월 창당 과정에서 자금을 갹출하고 한국당에 인력을 파견했던 통합당 사무처 노조도 성명서를 내고 즉시 합당을 촉구했다. 한국당 지도부는 21대 국회 개원 전까지 시간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공식 브리핑에서는 “조속한 합당”이 원칙이라면서도 구체적 시기를 못박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까지 한국당이 존재하게 되면서 오히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원(院) 구성 협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이 존치하면 상임위원장 배분 관례를 따르지 않고, 본회의 표결을 강행한다고 경고했다. 한국당이 내세우는 정무적 실리가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한국당의 ‘비례대표 득표율 1위’ 주장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 통합당 의원은 “대체 한국당을 보고 투표한 사람이 누가 있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가 한국당 한선교 전 대표의 전횡을 막기 위해 급조한 지도부의 권한도 문제다. 통합당이 당 지도체제 결정을 20대 현역 의원들이 아닌 21대 당선자들이 결정하기로 한 것과 정반대다. 일부 비례대표 당선자들은 지도부에 조속한 합당을 요구하는 의견을 전달하며 통합당과 공조 압박에 나섰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박근혜, 아버지 암살 뒤 총선 출마 원해…전두환도 권유”

    “박근혜, 아버지 암살 뒤 총선 출마 원해…전두환도 권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듬해 총선 출마를 희망했다는 내용이 미국 국무부 기밀문서에 기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외교부가 공개한 미 국무부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외교문건에 따르면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미국대사는 1980년 2월 2일 국무부에 한국 정치 상황을 보고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보고서는 “암살된 대통령의 딸에 갑작스러운 야심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며 “사정을 잘 아는 민주공화당 의원에 따르면 박근혜가 다음 총선에 아버지의 고향을 포함한 지역구에서 출마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8살로 1981년 3월 치러진 11대 총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청와대 경호 근무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 일가와 친해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박근혜에게 출마를 권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내용을 주한미국대사관에 전한 소식통은 “전두환은 모든 곳에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민주공화당 지도부가 박근혜의 출마로 박정희 시대를 주요 선거 이슈로 만들어 당내 분열을 일으키고 제3당 창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김종필이 박근혜가 출마하지 않도록 설득하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가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 문건은 외교부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 국무부에 요청해 받은 43건의 기밀해제 문건 중 하나로 민주화운동뿐 아니라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한 주한미국대사관의 보고가 포함됐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위로